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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일 토요일

그럴 줄 알았다, 일단은 강정


이글은 프레시안 2012-11-30일자 기사 '그럴 줄 알았다, 일단은 강정'을 퍼왔습니다.
[기고] 새누리당의 해군기지 예산 날치기 통과를 보며

그럴 줄 알았다.11월 21일, 작가행동의 평화도서관 제안식이 있었던 강정에서, 나는 어리벙벙해서, 발목도 손도 식은 채로 뭘 해야 좋을지 몰라 배회하고 있었다. 그렇게 떠돌아다니다가 얼결에 옆 사람과 팔짱을 낀 채로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고립되었다. 그 뒤로는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함께 고립된 사람들을 멀뚱하게 바라보거나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히거나 하며 그냥 서 있었다. 이럴 줄은 짐작했으나 어이가 없도록 순식간이었고 무력했다. 내 뒤쪽으로 해안을 따라 설치된 펜스의 문이 열렸고 트럭과 레미콘이 쏟아져 나왔다. 머리를 한참 젖히고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커다란 차들이었다. 누군가 몇 대나 지나갔느냐고 물었다. 일곱 대까지 세고 말았는데 그 뒤로도 한동안 이어졌으니 열 대는 넘었을 것이다.이 와중에도 앞쪽으로도 뒤쪽으로도 옆쪽으로도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그냥 서 있었다. 바짝 붙어선 몸들 때문에 서 있으려는 의지 없어도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울적했고 성질이 났다.아저씨, 숨쉬기가 갑갑해요, 라고 나는 말했는데 스스로 듣기에도 그 말투가 매우 불량했다. 그 말을 하자마자 내 등을 누르고 있던 경찰이 움직여서 공간을 조금 터주었다. 사물처럼 꼼짝도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 움찔하는 기색에 무안해졌다. 그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사람을 사람으로 보기를 잊었으니 내가 불량한 것이 맞았다. 누가 나에게 이런 불량 열매를 먹였나. 나가면 트럭 때문에 다쳐요, 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경찰들에게 둘러싸인 사람들의 몸에 닿지 않으려고 손등과 손가락을 어색하게 구부리고 있었다. 좀 서글펐다. 해군기지에 관한 결정권도 가지지 못한 우리가 서로에게 가해하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공사 차량들이 다 빠져나오고 그 많던 경찰들도 어디론가 사라진 뒤, 강정천으로 내려가는 내리막엔 꽃씨가 날렸다. 사방에 손가락 한 마디는 되는 꽃씨가 굴러다녔고 날아다녔다. 이 정도의 꽃씨를 날린 것을 보니 큰 나무겠다고 생각했다. 근처 어느 군락지에서 날아왔을지도 모르겠다. 이 계절에 꽃씨를 뿌리는 나무가 있나? 일순 그런 의문도 품었으나 제주니까. 제주에 그런 식물이 없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듣기로는 강정에 머물며 공사를 몸으로 지연시키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의 점퍼에서 터져 나온 거위털이라는 것이었다.사실을 듣고도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만져 봐도 그것은 꽃씨였다. 그토록 많은 꽃씨를 날려 큰 나무를 상상하게 만든 사람과 또 다른 사람들이 강정에 머물고 있었다. 그들의 신발과 겉옷과 머리카락 중에, 땅에 쓸리고 끌리지 않은 것이 없었다. 옷이며 신발은 닳아서 터졌고 머리카락엔 먼지가 수북해서 잿빛이었다. 레미콘과 덤프트럭이 드나드는 길목에 엎드려 있다가 경찰 수십 명이 달려들어 바닥에서 떼어내고 밀어낼 때까지 각자의 힘으로 서로의 힘으로 버티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모습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매일 벌어지는 일이라서 일상이라고 한다.그러므로 내가 강정에 가서, 그런 일을 겪었다고 말하기보다는 그런 반나절을 보았다고 말하는 편이 옳겠다.

ⓒ프레시안(손문상)

이럴 줄 짐작했으나 이럴 줄은 몰랐다는 듯 그 자리에 갔던 것은 근래 보았던 어떤 묘지에 관한 기억 때문이었다.내게는 이번이 세 번째 제주 방문이었다.지난여름 첫 번째로 방문했을 때의 일이었다. 콩밭 옆을 지나다가 아무래도 묘(墓)인 것을 보았다. 밭 한가운데 나지막하게 쌓인 검은 돌담 안에 봉분이 있었다. 제주도의 독특한 장례 풍습으로 산담이라고 한다. 서울로 돌아와서도 이 산담이 궁금했다. 재방문 계획을 잡으며 산담을 포함한 제주의 장례 풍습을 알아보는 중에 4·3사건에 관련된 이야기를 자주 접했고 그쪽으로도 관심이 이어졌다.제주 서남부, 사계리 공동묘지 곁엔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池)라는 곳이 있다.조상이 다른 백서른 두 명이 죽어 뼈가 엉키어 하나가 되었다, 라는 뜻이다.두 번째로 제주를 방문했을 때는 이 장소에 가보자고 마음먹었다. 운전할 줄 아는 친구와 함께 갔으므로 차를 빌려서 내비게이션을 사용했다. 이름만 입력해도 자동으로 안내되는 식당은 숱했는데 백조일손지지라는 장소는 내비게이션 속에 없었다. 백조일손지지, 백조일손, 무엇으로 검색해도 없는 장소였다. 사계리 공동묘지 곁에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었으니 일단은 묘지를 찾아가기로 했으나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사계리까지는 진입했는데 공동묘지가 어느 쪽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마을 안팎을 수차례 들락거리며 헤매다가 마침 마주친 할아버지에게 길을 묻기로 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사계리 공동묘지를 물으니 자전거를 딱 세우고, 거긴 뭐 하러 가느냐며 표정이 바뀌었다. 험악했다. 괜히 욕이라도 한 마디 들을 것 같았다. 외지인에 관한 제주 사람의, 은근하고도 완강한 경계심을 귀띔 받은 바 있어 식은땀이 났다. 제주 4·3사건의 영문명은 Red Hunt다. 그 연배의 노인에게는 더욱 예민한 화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할아버지는 거길 뭐 하러 가는지 말하면 그 대답을 듣고 자신이 대답해주겠다고 했다. 4·3에 관심이 있어 공부를 하고 싶다고 소심하게 대답하자 할아버지의 표정이 다시 바뀌었다. 4·3에 관심, 에서 이미 활짝 웃는 얼굴이었다. 오해일 가능성을 조금 감당해서 말해보자면, 그 정도의 조그만 관심이 반가워 웃는 얼굴이었고 그 정도로도 낯선 사람을 향해 단번에 열려버린 얼굴이었다. 백조일손지지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하자 아, 예비검속, 하고 할아버지는 혼자 말하듯 말했다. 내게는 듣기로는 말하기로도 낯선 그 말을 그는 쌀, 보리 하듯, 가위, 바위 하듯, 익숙하게 말하고 있었다. 의식으로든 무의식으로든 제주 사람에게 4·3은 여태도 강렬한 흔적이로구나, 싶었다.예비검속이란 말 그대로 미리 검속한다는 의미이다.1948년에 벌어진 4·3사건 이후 약 3만 명의 양민 학살이 이어진 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4·3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풀려났던 사람, 그 밖에 공산당에게 협조할 것 같은 사람, 범죄를 저지를 것으로 짐작되는 사람을 군경이 미리, 강제 구속해서 처벌한 일을 말한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알고 있지 않은가.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이 일을 육십여 년 전 제주에서 실현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이 예비검속으로 구속되었다가 재판이고 뭐고 없이 새벽에 학살당한 사람들의 뼈를, 후손들이 나중에 옮겨 묻은 곳이 백조일손지지다. 할아버지는 자전거에서 내려서 마을 너머 남쪽 방향을 가리키면서 자신의 삼촌도 한림읍에서 체포되어 사살 당했다고 말했다.그가 국민학교 5학년이던 시절의 일이었다고 한다.

제주는 밤이 어둡다.도시가스 설비가 없어 LPG가스나 기름을 연료 삼기 때문에 쓸데없이 가로등을 밝히지 않는다.1950년이라고 지금보다 더 밤이 밝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어둠 속에서 트럭에 실렸다가 학살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십대 삼십대 남자들로 가장이었다. 당시의 계엄군은 한 사람 앞에 한 발씩, 252명을 총으로 쏘아 넘어뜨리고 돌과 함께 구덩이에 묻은 뒤, 그 장소의 출입을 금지시켰다. 유족들이 시신을 거두려고 한밤을 틈타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끄집어냈다가 군인들에게 발각되어 파낸 시신을 그대로 묻어두고 돌아가기를 반복하다가 육년이 지난 뒤에야 시신 발굴 작업이 이루어졌다. 살은 이미 흔적 없고 뼈만 남아 서로 얽혀 누가 누군지 구분할 수 없었으므로 유족들은 의논 끝에 두개골 하나에 팔 두 개, 다리뼈 두 개씩으로 구색을 맞춰 백삼십이 개의 무덤을 만들었다.백 서른 두 명의 할아버지를 조상으로 두었으나 뼈가 얽혀 하나의 몸이 된 사람들, 백조일손지지에 이장된 사람들이 학살당해 본래 묻혔던 장소는 알뜨르라는 이름의 제주 남단 벌판에 있다. 섯알오름이라는 곳이다. 1950년 8월에 벌어졌던 예비검속으로 제주 각지에서 체포된 천 삼백여명 가운데, 이 장소에서 발굴된 유해만 이백 오십 여구에 달한다. 이 장소는 학살 장소가 발각되어 시신을 발굴해낸 유일한 장소라고 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어디에서 죽고 어디에 묻혔는지도 알려진 바 없다.일제 강점기 시절, 제주도민을 강제 동원하여 만든 도내 최대의 탄약고가 있었으며, 가미가제의 출격지이기도 했다던 알뜨르 벌판 곳곳엔 비행기 격납고가 남아 있었다. 바람이 세고 너른 벌판, 고구마와 감자 밭 너머로 용암산인 산방산이 밥공기를 엎어둔 듯한 모습으로 솟아 있었다. 첫 번째 방문 때는 다만 규모와 외양이 굉장한 산이었던 그 산이 이제, 사람의 역사와 무관하게 생각할 수는 없는 풍경이 되고 말았다. 제주 곳곳에 이런 장소가 있다. 4·3에 관련된 장소를 따로 찾아다닐 것도 없이, 산방산이고 성산일출봉이고 돌아다니다보면 지나게 되고 만나게 된다.이 땅의 근현대사가 진행되는 동안 제주와 제주도민은 섬 바깥 사람들의 이념과 욕심으로 숱하게 난데없는 고난을 당해왔다. 알뜨르 벌판의 격납고들 너머로 먼 듯 가까운 듯 솟은 산방산을 바라보며 뜻밖에도 강정을 떠올리게 된 것은 제주의 그런 사정을, 그런 사정의 구체를 접했기 때문이었다.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강정 사람들의 박탈감과 분노는 이런 제주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생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살아가던 사람들의 생업이, 생활이, 무엇보다도 마을 공동체가, 외부의 간섭으로 붕괴된다. 제주엔 이런 일이 이미, 너무, 자주 벌어졌다.벌어졌다, 라고 과거완료형으로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재도 그런 일은 벌어지고 있다.이제는 웬만한 경우 당신도 알고 나도 아는 그 장소, 일단은, 강정에서.

* 새누리당이 제주해군기지 예산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는 뉴스를 보고 마음이 다급해 쓴다.

황정은. 소설가. 1976년 생.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 열차) (백의 그림자) (파씨의 입문). 한국일보문학상,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지난 11월 21일, '작가행동 1219'의 (강정마을 평화도서관 만들기) 사업 제안식에 참여한 후 이 글을 보내왔다.


 /황정은 소설가

2012년 11월 22일 목요일

“강정은 비상계엄 상황…공사장서 맨몸 투쟁”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1-21일자 기사 '“강정은 비상계엄 상황…공사장서 맨몸 투쟁”'을 퍼왔습니다.

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강동균(왼쪽) 제주 강정마을 회장이 20일 밤 서울 중구 대한문 옆 ‘함께살자 농성촌’에서 촛불을 들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쌍용·강정·용산 이니셜 SKY
우리가 하늘인 것 보여줄 것”
“한달동안 평화대행진 해보니
전국이 초상집…모두가 아파”

‘대한문 농성촌’ 릴레이 인터뷰 ④ 강정마을 강동균 마을회장

강동균(55·사진) 제주 강정마을 회장은 지난 10월 ‘신개념 국토순례’를 탄생시켰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해군기지 반대 강정마을 주민, 용산참사 유가족이 함께 전국 방방곡곡을 걸었던 ‘생명평화대행진’을 처음 제안해 성사시켰다. 이들은 30여일 동안 골프장, 송전탑, 핵발전소, 4대강 건설 등으로 삶터를 잃고 내쫓긴 이들을 만났다.“우리 ‘스카이(SKY) 공동행동’은 힘없는 사람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는 순례를 했어요. 과거 어떤 국토순례와도 다르죠.” 국가폭력에 신음하는 피해자들이 또다른 피해자들을 만나 위로하고 연대하는 순례였다. 이를 이끈 ‘스카이 공동행동’은 쌍용(S)·강정(K)·용산(Y)의 약자를 따 지난 6월 출범한 연대기구다. “‘내쫓기는 사람들이 하늘인 것을 보여주자’는 뜻”이라고 강 회장은 설명했다.이들의 행진은 서울 대한문 옆 ‘함께살자 농성촌’ 마련으로 이어졌다. 행진은 끝났어도 강 회장은 제주 해군기지 공사장 앞 농성장과 서울 대한문 앞 농성촌을 수시로 오가느라 더 바빠졌다.강정마을 주민들이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나선 지 벌써 5년째다.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않고 싸우고 있어요. 쌀, 반찬, 이불 등을 전국에서 소포로 보내주세요.” 그걸 ‘강정앓이’라고 부르데요. 국민들이 강정에 폭 빠져버린 거죠.” 지금까지 국민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돈만 4억원에 이른다.그래도 정부는 해군기지 공사를 멈추지 않았다. 최근 평탄화 작업이 완료된 구럼비바위는 시멘트를 덮어쓴 채 옛 모습을 잃어버렸다. 지금은 24시간 공사가 이뤄진다. 공사장 주변에 천막을 친 주민들은 잠을 설쳐가며 차량 출입을 몸으로 막고 있다.“강정마을은 지금 비상계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20일 대한문 옆 농성촌에서 만난 강 회장은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게다가 지난해 해군기지 예산의 94%를 삭감했던 국회는 올해 해군이 요청한 2010억원의 예산 가운데 1000억원가량을 통과시켜줄 낌새다. “힘이 있어야 평화를 지킨다고요? 평화는 평화로 지켜야 합니다. 국가 안보도 국민·지역주민과 함께 지키는 겁니다. 주민들이 반대하는 기지 건설을 강행해서 어떻게 안보를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강 회장은 ‘내쫓긴 사람들’과 함께 농성촌을 꾸리고 아픔을 나누면서 큰 위안을 얻는다고 했다. “한달 동안 평화대행진 하면서 다녀보니 전국이 초상집이에요.” 그들이 더 위로받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때까지 강 회장은 대한문 옆 천막과 강정마을 앞 천막을 계속 오갈 작정이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2012년 11월 11일 일요일

송강호와 함께 부르는 강정 평화의 노래


이글은 한겨레신문 종교전문 조현기자의 블로그 휴심정 2012-11-08일자 기사 '송강호와 함께 부르는 강정 평화의 노래'를 퍼왔습니다.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 북콘서트…개척자들 평화운동 알리고 해군기지 반대

▲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을 해 온 송강호 박사의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 출간 기념 북콘서트가 11월 6일 서울 용산 청파교회에서 열렸다. 책에는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강정마을에 이르는 송 박사의 평화 활동 여정이 담겨 있다. ⓒ뉴스앤조이 엄태현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을 해 온 송강호 박사(개척자들)가 공사 현장으로 들어갔다는 이유로 지난 4월 1일 경찰에 체포되어 수감되었다가 181일 만인 9월 29일 풀려났다. 송 박사는 출감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10월 17일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IVP)를 냈다. 책에는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강정마을에 이르는 송 박사의 평화 활동 여정이 담겨 있다. 또 구속 수감된 당시 송 박사가 썼던 편지와 일기도 함께 들어 있다.

송강호 박사의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 출간 기념 북콘서트가 11월 6일 서울 용산 청파교회에서 열렸다. ·IVP 주최로 연 행사에는 송 박사와 한종호 대표(꽃자리출판사)가 이야기 손님
으로 함께했고, 이지상·김재연·백소망·심소라 씨와 목백일홍 팀이 제주의 평화를 염원하는 노래를 불렀다.

▲ 송강호 박사는 평화운동을 통해 그리스도가 평화라는 사실을 자각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엄태현

개척자들을 통해 송 박사는 내전을 겪고 있는 세계 각국을 방문했다. 그가 다녀온 르완다·보스니아·소말리아 등은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곳이었고, 송 박사는 고통의 현장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끌어안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의미 있는 타자를 만나며 제2의 회심을 했다는 송 박사는 평화운동을 통해 그리스도가 평화라는 사실을 자각했다고 말했다. 현재 송 박사는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 찬·반으로 갈린 주민들, 해군 관계자들과 경찰들, 평화 활동가들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평화의 길을 모색해 가고 있다.


기도가 불의와 분열을 이긴다


해군기지 건설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제주도지사나 국방부가 사전에 마을 주민들 전체에 충분한 이해를 구하지 않고 소수의 사람들의 찬성을 얻어 진행했다. 주민들은 무시당한 것도 있지만 소중한 생활사가 깃든 마을이 군사기지로 바뀌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투쟁에 나섰다. 이들과 함께한 송 박사는 "국가가 안보를 위해 해군기지를 짓는다고 하지만, (해군기지는) 자기 몸집을 불리려는 해군의 탐욕을 위한 것이다"고 지적했다.


제주 강정마을에는 주민들뿐만 아니라 평화를 지키려는 이들, 자연·문화재 파괴를 막으려는 사람들 등이 함께 해군기지 건설을 막기 위해 해군 당국과 싸우고 있다. 그 현장을 지키는 활동가들은 15명 남짓 된다. 비폭력 평화 투쟁을 꾸준히 해 온 송 박사는 구럼비 바위에서 정의가 불의를 이기고, 마을에 화해와 평화가 다시 찾아오게 해 달라고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했다. 송 박사는 기도가 사역의 시작이고, 정의와 평화의 사역을 위한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 한종호 대표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나 용산 참사 문제 등 아픔이 있는 사건을 외면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많은 이들이 강정마을 문제에 아파하는 마음을 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엄태현

간절한 바람을 담은 기도와 함께 송 박사는 제주를 비무장 중립 평화의 섬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해군 측은 끊임없이 주민들을 분열시키고 있고, 제주의 군사기지화를 계속 강행하고 있다. 송 박사는 1940년대 후반 미군정과 한국 군경이 제주 전체 인구의 약 10%를 학살한 4.3사건과 같은 폭력의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앞으로도 평화 복무를 계속해 가겠다고 했다.

송 박사와 한종호 대표는 강정마을의 고통스런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관심을 가져 달라는 바람을 나눴다. 한 대표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나 용산 참사 문제 등 아픔이 있는 사건을 외면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많은 이들이 강정마을 문제에 절절히 아파하는 마음을 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 박사는 "활동가들이 싸우고 있는 현장에 와서 공권력의 횡포에 대해 참견해 주는 역할을 할 사람들이 필요하다"며 아무 때나 하루 시간을 내서 동참해 줄 것을 권했다.

"수만 년 사람과 파도와 바람이 놀던 바위 위로 육지 경찰 몰려오고 굴착기 포클레인으로 사람들을 패대고 바위의 심장을 뚫고 군사기지 만들어서 평화를 팔아먹는다네.""너를 위해 하고픈 일 많은데, 내 손길이 닿지가 않으니 이 슬픔 어찌 할꼬. 살아만 있어 다오. 구럼비야. 내 누이야.""드러날 정의, 우리가 지킬 자유, 이어질 생명, 일어날 평화."

대담과 함께 열린 음악회에서 울려 퍼진 노랫말이다. 참석자들은 정의와 평화를 염원하며 함께 노래에 마음을 모았다.

▲ 송강호 박사 대담과 함께 이지상(사진 맨 위) 씨와 목백일홍 팀(사진 가운데), 그리고 김재연·심소라·백소망(사진 맨 아래 왼쪽부터) 씨가 제주의 평화를 염원하는 노래를 불렀다. ⓒ뉴스앤조이 엄태현

▲ 북콘서트에는 70여 명이 참석했다. 송 박사는 참석자들에게 "활동가들이 싸우고 있는 현장에 와서 공권력의 횡포에 대해 참견해 주는 역할을 할 사람들이 필요하다"며 아무 때나 하루 시간을 내서 동참해 줄 것을 권했다. ⓒ뉴스앤조이 엄태현

송강호 박사는 11월 23일 서울 합정동 100주년기념교회 교육관 지하 2층에서 다시 한 번 독자들을 만난다. 이야기 손님으로 송 박사와 김기석 목사(청파교회)가 함께하고, 길가는밴드·코드셋 등이 공연할 예정이다.

▲ 송강호 박사는 11월 23일 서울 합정동 100주년기념교회 교육관 지하 2층에서 다시 한 번 독자들을 만난다. 이야기 손님으로 송 박사와 김기석 목사(청파교회)가 함께하고, 길가는밴드·코드셋 등이 공연할 예정이다. (자료 제공 IVP)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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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 조이) 임안섭 기자

2012년 10월 23일 화요일

국가폭력에 내몰린 평화권을 생각한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10-22일자 기사 '국가폭력에 내몰린 평화권을 생각한다'를 퍼왔습니다.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上) 국가 안보냐 인간 안보냐

올해 2월 중동 팔레스타인 현지 취재과정에서 유대인 정착촌을 반대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만났을 때 제주도 강정마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강정 주민들이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까닭은 국가안보 논리를 내세운 해군기지가 그들의 평화적 생존권(평화권)을 위협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유대인 정착촌을 반대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논리와 같은 맥락이다.

이스라엘은 '국가안보'란 이름 아래 잔혹하고도 거친 국가폭력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해왔다. 이른바 SKY(쌍용, 강정, 용산)도 마찬가지다. 해군기지 건설로 삶의 터전에서 밀려날 처지에 놓인 제주 강정마을 사람들, 쌍용자동차에서 폭력적으로 밀려난 해고 노동자들, 경찰과 용역폭력배들에게 희생된 용산 재개발지역 원주민들은 인간다운 삶을 평화적으로 누릴 권리를 빼앗긴 채 힘든 나날을 보내왔다.

SKY(쌍용, 강정, 용산)가 던진 메시지

우리 인간은 평화적 생존권 및 평화로운 상태를 위협하는 어떠한 외부적 강제조치도 거부할 권리를 지녔다. 평화적 생존권은 다름 아닌 인간안보의 권리, 안전한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권리이다. 국가가 안보라는 이름아래 저지르는 불법적, 반인권적 행위에 대해서 모든 인간은 양심적 거부와 불복종의 권리를 가진다.

태어난 땅에서 인간다운 삶을 평화적으로 누릴 권리를 지님은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이나 제주 강정마을 사람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 용산 재개발지역 원주민들에게 예외일 수가 없을 것이다. 국가안보도 중요한 가치이지만, 그 이름으로 인간안보와 평화적 생존권이 유린된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다.

한국에서의 평화권 논의 첫모임

그동안 국제사회에서는 유엔을 중심으로 평화권(평화적 생존권)을 국제인권법으로 정립하자는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져 왔다. 그렇지만 국제사회에서조차 평화권이 아직 국제인권규범으로 굳건히 자리 잡지 못한 실정이다. 한국에서도 이른바 SKY(쌍용, 강정, 용산) 사태를 거치면서 평화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중이다.

10월 19일에 서울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원탁 워크숍은 '평화권'을 주제로 열띤 논의가 이뤄졌다. (서강대학교 법학연구소 인권법센터, 서울지방변호회, 평화권 연구모임 공동 주최)을 주제로 한 이 모임에서는 △평화권을 연구해 온 법학자들 △현장에서 평화운동을 해 온 시민활동가들 △평화권에 관심이 있는 일반 시민 학생들이 함께 8시간에 걸쳐 진지하고도 깊이 있는 논의를 이어갔다.

본격적인 발제에 앞서 이석태 변호사(참여연대 공동대표)는 모두발언에서 "평화권 연구에 몇번 참여하기도 했지만, 규모나 발표하는 사람들을 보니 포괄적이고 형식을 갖춘 것으로는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 평화권 워크숍은 평화권을 주제로 삼은 국내 첫모임이라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

평화권 워크숍은 크게 세 세션으로 나눠 진행됐다. 세션 1에서는 '평화권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가 '평화권에 대한 국제적 논의와 추세'를,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평화권의 우리 헌법에서의 인정 가능성'을 각기 발제했다.

세션 2에서는 '평화권 및 평화운동 해외 입법 및 판례'를 중심으로 이경주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일본),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영국과 미국),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독일의 사례를 발표했다.

세션 3에서는 '제주해군기지와 평화권, 평화운동'이란 주제로 하승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이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시민 불복종 운동', 이대훈 성공회대 NGO대학원 연구교수가 '제주해군기지와 평화권', 최정민 전쟁 없는 세상 활동가가 '제주해군기지 건설 저지를 위한 평화운동은 정당한가'를 각기 발제했다. 이어 오영중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이사), 송강호 박사(개척자들, 강정마을), 이보라 보좌관(장하나의원실)을 중심으로 전체토론 시간을 가졌다.

은 평화권 논의가 지닌 현실적 의미와 시의성을 고려해, 모두 3회에 걸쳐 평화권 워크숍에서 다뤄진 발제내용의 주요부분을 소개한다.

■ 이석태 변호사 (참여연대 공동대표)

▲ 평화권 워크숍에서 인사말을 하는 이석태 변호사 겸 참여연대공동대표 ⓒ김재명

"분단 국가이고 핵 문제도 있는 우리나라는 평화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따지고 보면법률적으로 현재 한국 전쟁 후에 현재까지 전쟁이 종료되지 않았다. 우리 헌법 10조에 모든 인간은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하고 있다. 행복추구권은 권리로 인정되고 있다. 행복추구권이 평화권보다 더 추상적이다. 행복추구권의 여러 권리 중 하나가 평화권이라고 본다"

"행복추구권은 활발하게 논의가 되는데 왜 평화권은 논의가 잘 되지 않을까? 이는 서구의 전쟁 중심적 사고 때문이다. 이를테면 미국은 모든 정책, 모든 국제 외교와 규정이 반전(反戰)과는 반대되는 입장에 서있다. 서구는 자기네가 다른 나라의 평화를 교란해 왔으므로 평화권이 절실하지 않겠지만 우리의 입장은 다르다. 평화권을 발전시켜나가야 할 지식인들의 의무가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도 대표적인 평화권 침해의 문제다. 평화권이 인정되면 병역거부는바로 해결될 것이다. 아직까지 그게 진척이 안되는 것은 평화권이 갈 길이 멀다고 볼 수 있다. 오늘의 모임을 바탕으로 평화권에 관한 깊이있는 연구와 논의가 활성화 되기를 기대한다"

■ 평화권에 대한 국제적 논의와 추세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한반도의 안보 현실은 평화권에 대한 관심과 수용을 더욱 필요로 한다" ⓒ김재명

"국제인권 공동체 사이에서 인권은 크게 네 가지 종류로 분류되고 있다. 시민적·정치적 권리(1세대 인권, 일명 자유권),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2세대 인권, 일명 사회권), 연대권(3세대 인권), 그리고 정보화·세계화 시대의 도래에 따른 새로운 인권(4세대 인권)이 그것이다"

"평화권(Right of peoples to peace)은 발전권과 함께 대표적인 3세대 인권으로 파악되고 있다. 평화권은 이상적이고 모호하게 보이면서 구체적인 범주와 이행 방법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런 평화권 논의가 한반도에 상륙하는 것은 분단 현실과 민주화에 대한 일차적 관심으로 극히 최근의 일이다"

인간안보 잣대로 평화 바라본다

"평화권은 평화적 생존권으로도 불리는데, 평화롭게 살 인간의 권리로 정의할 수 있다. 이 정의는 매우 상식적으로 들리지만, 여기에는 평화권을 정의함에 있어 '평화'에 대한 이해와 평화를 권리로 인정하느냐의 문제가 담겨 있다"

"오늘날 평화는 자연보존, 인간과 자연의 공존, 심성의 화평 등의 차원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그 개념의 중심에는 여전히 인간 생명의 보호, 인간 자체에 대한 존중이 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평화를 인간안보(human security)에 대한 위협의 중단 및 위협 기제의 근절로 파악할 수도 있다"

국제사회, "평화권은 생래적 권리"

"평화권이 처음부터 하나의 인권이라는 인식이 확인되고 인정된 것은 아니었다.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 국제무대에서 평화권이 처음 운위되었을 때의 반응이란, 현재 한국에서 평화권에 대한 생경한 반응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평화권은 적어도 국제인권 무대에서는 그 필요성과 주요 내용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하나의 '생래적 권리'로 인정되고 있다"

"1984년 11월 12일 유엔 총회는 '평화권 선언'(Declaration on the Right of Peoples to Peace)을 채택하였다. 선언은 '지구상 모든 인류는 신성한 평화권을 갖는다'는 원칙을 확인한 후, 대중의 평화권 향유를 '각국의 근본적 의무'로 선언한다. 선언은 평화권 실행을 위해 '전쟁 위협의 금지' 특히 핵전쟁 위협 금지를 거론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사람의 마음 속에 평화를 심는 것'을 모토로 전후에 설립된 유네스코(UNESCO)는 냉전 해체기에 들어 '평화문화'를 강조하고 나섰다. 냉전 해체가 세계평화가 아니라 내전과 대량학살로 이어지면서 전쟁문화를 극복하기 위해 평화문화에 대한 교육·홍보가 절실하다고 보았다. 유네스코는 평화문화 확산을 꾀하며 탈냉전기 분쟁해결에 기여하고자 하였고, 그 일환으로 평화권을 제기해 평화권이 국제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될 수 있도록 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였다.

"유네스코에서의 평화문화 캠페인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 모임과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총회에서의 논의 및 결정으로 확산되어 갔다. 그 연장선상에서 평화권에 대한 관심도 높아 져갔다. 특히 평화운동, 지방자치단체 및 의회 차원의 평화권에 대한 지지 및 정책화 노력은 국제사회에서 평화권 논의가 확산되는 데 촉매로 작용하였다"

한반도에서 평화권이 지닌 의미는

"한반도의 안보 현실은 평화권에 대한 관심과 수용을 더욱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평화권을 소극적 차원에서 침략 전쟁을 비롯한 폭력에 가담하지 않고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권리로, 적극적 차원에서는 그런 소극적 평화를 저해하는 구조적, 문화적 폭력을 거부하고 지속가능하고 정의로운 삶을 영위할 권리로 말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평화권이 주는 더 의미 있는 시사점은 적극적 측면의 평화권이다. 여기에는 군비보유의 배제, 국가에 의한 평화 저해 행위(무기수출 등)의 배제, 양심과 종교의 자유에 따른 군사활동 불참의 권리, 군사적 목적의 기본권 제한(재산 압류, 표현의 자유 제한 등) 금지, 전쟁위험(군사적 긴장 혹은 갈등)에 처하지 않을 권리, 군사안보정책으로 인해 시민의 인권과 근본적 자유가 침해받지 않을 권리, 그와 관련한 국가 정책이 투명하게 진행되고 거기에 시민이 참여할 권리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이는 주한미군 및 기지 운용, 정부의 무기도입사업, 군사기지 이전 및 건설사업, 대북정책, 해외파병정책 등을 재평가할 계기를 제공해주고 있다"

■ 평화권의 우리 헌법에서의 인정 가능성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신자유주의와 재벌 같은 거대자본권력이 구성하는 수많은 억압들은 또 다른 평화의 적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김재명

"우리 헌법학계는 평화헌법를 이해함에 있어 거의 황무지상태이다. 연구성과도 거의 없어 주로 교과서에서의 서술에만 의존하여 정리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나 이 또한 거의 형식에만 그치고 있는 상태이다. 대체로 헌법학계에서는 평화와 전쟁을 직접 대비시키면서 우리 헌법이 선언하고 있는 평화는 침략전쟁의 부인 정도의 수준에서 한정하고 있다"

이라크 파병과 평택 미군기지 문제

"대체로 평화권이 헌법의 틀과 연관 지으면서 논의되는 것은 두 가지의 경로-이라크파병 및 미국의 해외미군재배치계획(Global Posture Review: GPR) 등을 계기로 한 반전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평화권 논쟁과 북한인권과 관련한 보수진영의 주장에 대한 대항담론적 성격의 평화권논쟁-를 거친다. 전자는 미국을 한 극으로 삼는 세계체제 속에서 미국의 세계전략에 대항하는 방식으로서의 반전운동이 계기가 되어 이를 '안보'의 담론권력을 국가가 독점하는 것에 저항하면서 국민이 주체가 되는 평화권의 관념을 인권의 범주로부터 도출하고자 하였다"

"(한국에서의 평화권) 논의들이 채 무르익기도 전에 평화헌법의 구체적 규율내용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먼저 나왔다. 노무현정부의 이라크파병결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결정(헌재 2004.04.29, 2003헌마814)은 아직 평화헌법의 의미에 대한 헌법학계의 고려조차 이루어지지 아니한 상태에서 나온 최초의 사법판단이었다"

평화권 침해 아닌 통치행위

"이 사건에서 청구인측은 이라크전쟁은 유엔헌장에 입각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우리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침략전쟁에 해당하기 때문에 '국군파견은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5조 제1항에 위반되며, 나아가 이런 침략전쟁에 국군사병을 파견하는 것은 징병제를 취하는 우리 실정에서 군복무중인 자나 군입대 예정자나 군대에 복무중인 자녀를 가진 부모들의 평온은 흔들리게 될 것이고, 이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우리 헌법의 규율범위와 함께 행복추구권으로 형용되는 평화적 '생활권'의 인정여부를 심판의 대상으로 주장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통치행위의 이론을 빌어 판단을 그 판단을 기피하였다"

"2005년에 발생한 미군기지 평택이전을 둘러싼 파동은 헌법재판소의 또다른 소극성을 보여준다((헌재 2006. 2. 23. 2005헌마268). 헌법재판소는 평택으로의 미군기지이전이 그 내용만으로는 장차 우리 나라가 침략적 전쟁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으며 따라서 청구인들의 평화적 생존권은 침해될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건을 각하하였다. 여기서 평화적 생존권의 개념은 상당히 한정적인 개념으로 규정된다. 즉, 헌법재판소는 평화적 생존권의 개념을 '전쟁과 테러 혹은 무력행위' 또는 '그것이 발생할 구체적 위험'으로부터의 자유에만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나마 헌법재판소의 이런 태도조차 곧 부정되고 만다. 2007년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일환으로 진행된 전시증원연습을 두고 청구인들은 이 연습은 '북한을 상대로 한 특정 작전계획에 따른 선제적 공격훈련이 명백하며' 따라서 '헌법 제10조 및 헌법 제37조 제1항으로부터 인정되는 평화적 생존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전시나 전시에 준한 국가비상 상황에서의 전쟁준비나 선전포고 등 행위가 침략전쟁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은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해당하여 사법심사를 자제할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면서, 평화적 생존권의 존재마저 부정해 버렸다"

누가'평화의 적'인가

"보기 나름으로는, 헌법재판소가 평화적 생존권의 존재를 부정하고 나선 것은 아직은 채 법리가 구성되기도 전에 평화 및 평화권의 문제를 성급하게 사법화한 전술적 판단미숙에 그 원인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헌법재판소의 보수성·소극성을 감안할 때 국제사회에서도 아직 구체적 규범으로 실정화되지 못한 권리를, 그것도 사법적 판단보다는 정치적 판단이 우선하는 연대권의 성격을 권리를 최소한 6명 이상의 재판관이 인정할 가능성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리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평화권 내지는 평화적 생존권의 규범화가 완결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그 원인은 평화에 대한 인류의 열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인류의 생명과 삶에 대한 위험들이 나날이 모습을 달리하며 우리에게 가해지고 있음으로 보인다. 한때는 전쟁이 평화의 적이었으나 이제는 테러 혹은 반테러가 평화의 적이며, 신자유주의가 산출하는 수많은 배제와 제거의 권력들이 새로운 평화의 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48년체제가 제도화한 냉전체제가 우리의 평화를 위협하는 한편으로 재벌 같은 거대자본권력이 구성하는 수많은 억압들은 또 다른 평화의 적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김재명 프레시안 기획위원. 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겸임교수

2012년 9월 20일 목요일

평화의 섬, 강정에선 모여만 있어도 ‘채증·연행’


이글은 미디어스 2012-09-19일자 기사 '평화의 섬, 강정에선 모여만 있어도 ‘채증·연행’'을 퍼왔습니다.
강정인권침해조사단, “경찰 감시 일상화 돼 있다”

‘평화의 섬’ 제주, 하지만 강정마을은 경찰력에 의한 인권침해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19일 강정인권침해조사단은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해 9월부터 지난 6월까지 강정에서 벌어진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경찰의 연행과 채증 등 감시가 일상화돼 있다”고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 9월 19일 경찰청 앞에서 강정인권침해조사단이 지난해 9월부터 지난 6월까지 강정마을에서 벌어진 인권침해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미디어스

강정인권침해조사단에 따르면 강정마을에서는 몇몇이 모여만 하고 있어도 경찰이 채증에 나서고 서 있기만 해도 폭행이 벌어지는 공안 분위기다. 법에도 보장돼 있는 1인 시위를 진행한 인권활동가가 연행됐고 신분을 밝힌 취재 기자들 역시 무차별적으로 연행되는 사례도 있었다. 공사장 정문에서 미사를 올리던 문정현 신부와 이영찬 신부·박도현 수사가 업무방해 혐의로 연행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강정마을의 인권침해 형태는 △육지 경찰들의 대규모 유입 이후 인권침해 급증 △경찰의 무작위 연행·기소율 45% △불구속 원칙에도 불구 7명의 인권활동가에 대한 구속조사 등으로 나타났다.
인권침해 유형도 △경찰 상주로 인한 감시와 통제 △집회시위의 자유와 의사표현의 자유 침해, △이동의 자유 제한 및 강제 구금 △진압·연행·수사과정에서의 인권침해 △채증으로 인한 인권침해 △경찰·해군·용역의 여성에 대한 폭력 △무차별 연행의 근거인 업무방해 적용 △언론의 자유 침해 △국제 평화활동가에 대한 입국금지·강제추방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고권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대책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강정에서 벌써 600여명이 연행됐고 현재도 제주교도소에 7명이 수감 중”이라며 “국가사업을 하면서 연행·구속자가 이 같이 많은 경우가 없었다고 들었다. 벌금도 3억을 넘어 5억으로 치닫고 있다”고 밝혔다.
고권일 위원장은 “마을에서 후원금을 모금하지 못하도록 통장에 대한 수사를 하고 있기도 하다”며 “이게 어떻게 민주주의 국가인가”라고 토로했다. 그는 “경찰은 불법행위에 대해 엄중하게 단속하겠다고 밝혔지만 말로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기용 경찰청장은 지난 5월 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강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침해행위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강정은 인권의 볼모지다. 표현·종교·신체 등 모든 자유가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숨부터 내쉬었다.
명숙 활동가는 “강정마을 인권침해는 육지의 경찰들이 제주로 유입되면서 급증했다. 마을 곳곳에 병력이 배치되고 채증과 연행이 일상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600여명이 연행됐지만 기소율은 45%밖에 안 된다. 사건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연행하고 보자’는 식의 공권력 남용”이라고 규탄했다. 이어 “무죄추정원칙에 따른 불구속수사가 기본이지만 강정에서는 주소지가 분명해도 구속수사를 하고 있다. 구속 자체를 처벌로 행사하고 있는 위법 사례”라고 지적했다.
강정인권침해조사단은 이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김기용 경찰청장에 공개 질의서를 보내 강정인권침해 조사에 대한 경과를 밝히라고 촉구했다. 또한 △육지경찰 병력에 대한 철수 △경찰의 광범위한 업무방해 적용과 자의적 구금·불법 사진 채증 등 위법한 법집행 중단 △삼성물산·대림산업 등 시공사 직원들과 용역업체 직원에 의한 인권침해 처벌 △집회시위와 의사표현의 자유 보장 등을 촉구했다.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주요 사례 축약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사업단 앞에서 공사방해 이유로 천주교 신부 3명 체포”(2011년 9월 30일)“서귀포경찰서가 강정마을회에서 집회신고를 한 2건과 평화화통일을여는사람들이 신청한 1건에 대해 금지 통보”(2011년 8월 28일)“강정마을에서 미술 작업을 하고 있는 이 모씨와 최 모씨에 대해 (옥외광고물의 금지 및 제한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설치품 철거 요구”(2011년 9월 25일)“조현오 청장의 제주공항 도착 시간에 맞춰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해당 버스회사에 협조를 구해 공항리무진 버스가 강정마을을 경유하지 못하도록 요청”(2012년 4월 5일)“강정포구에서 사람들이 카약을 타고 나가려고 하는 것을 경찰이 막고 항의하는 과정에서 한 활동가가 쓰러져 이를 보호한 한 활동가 K에 대해 경찰이 군홧발로 목과 얼굴을 세게 밟음”(2012년 2월 27일)“경찰이 강정포구 봉쇄작전 중에 주민들의 마늘밭을 밟는 사건이 벌어짐. 이에 주민은 경찰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 소속과 이름을 물어보자 오히려 항의하는 주인을 경찰이 채증. 또, 부당한 행위를 한 경찰을 빼돌리기 위해 시민들의 팔과 다리를 꺾고 진압함”(2012년 3월 25일)“해군기지 공사장 안으로 들어간 여성 활동가 5명을 남성 경찰들이 강제 연행. 이 과정에서 여성 활동가 상의가 벗겨짐”(2012년 3월 9일)“강정마을 풍림콘도에서 국회 제주해군기지 사업 조사 소위원회 위원장을 기자들이 취재하는 과정에서 KBS제주지회 김 아무개 기자를 밀고 팔로 치는 등 폭력 행사. 해당 기자는 안경이 깨졌고 타 인터넷 언론사의 카메라 후레쉬가 파손됨”(2011년 9월 6일)“국제 평화활동가들의 입국금지 건수는 총 24건으로 과거 강정을 방문했던 이들에 한한 경우도 있었음”(2012년 9월 19일)

권순택 기자  |  nanan@mediaus.co.kr

2012년 8월 12일 일요일

대추리·강정·두물머리… 행정대집행이란 이름의 폭력대집행


이글은 한겨레21 201208-13일자 제923호 기사 '대추리·강정·두물머리… 행정대집행이란 이름의 폭력대집행'을 퍼왔습니다.
[특집] ‘제3자’ 용역업체 등이 철거 등 행정 대신하고 비용은 ‘원인 제공자’ 철거민 등에게 징수하는 행정대집행… 철거지역 경비, 이주 업무까지 맡는 용역업체들은 강제 철거 전에도 세입자 등에게 폭행·협박 자행

‘2230만원’.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청이 판자촌인 일명 ‘포이동 재건마을’(현 개포동 1266번지) 주민대표 조철순씨에게 이런 비용을 청구했다. 그해 6월 화마로 인해 살 곳을 잃어버린 주민들이 직접 설치한 임시주택 세 채를 강제 철거하는 데 들어간 돈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이른바 ‘행정대집행’ 비용이다. 행정대집행이란, 행정상 의무자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행정청이나 제3자가 이를 대행한 뒤 소요 비용을 의무자에게 징수하는 강제집행 제도다.

명도 소송 통한 철거, 계고장도 필요 없어

강제 철거가 있던 지난해 8월12일 새벽 6시, 강남구청 직원 60명과 철거용역업체 직원 80명이 포이동 재건마을로 들이닥쳤다. 주거 대책을 놓고 주민과 구청이 두 달째 갈등을 빚던 중이었다. 주민과 용역 간 충돌은 불 보듯 뻔했다. 아비규환 속에서 주민 3명이 다쳤다. 앞서 구청은 이재민들에게 서울시 7개 구에 위치한 임대주택 50가구를 마련해 거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제안했으나 주민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임대료와 보증금조차 마련할 형편이 안 되는 어르신이 많았다. 더구나 구청이 1991년부터 ‘시유지 무단 점유’를 이유로 집집마다 수천만원에서 1억원까지 부과한 토지변상금을 떠안은 상태에서 섣불리 마을을 떠날 수 없었다. 재건마을은 1981년 도시빈민·부랑인 등으로 구성된 자활근로대 일부가 이 지역으로 강제 이주돼 형성된 가난한 동네다. 주민들은 지난 2월 서울행정법원에 행정대집행 비용 부과 처분이 부당하다며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철거 현장에 집행 책임자가 나오지 않는 등 절차적 문제가 있었고, ‘공익을 해할 것으로 인정될 때’라는 행정대집행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구청은 절차상 하자가 없었으며, 공익을 해할 위험이 있는 ‘불법 건축물’을 방치할 수 없었다고 맞섰다.
취약 주거계층, 미군기지 건설 등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주민, 재개발 지역의 영세 세입자, 노점상 등의 집이나 가게를 합법적으로 철거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1954년 제정된 뒤 거의 바뀐 부분이 없는 행정대집행 절차를 따르거나, 민사집행상 명도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공공의 이익, 또는 사적 재산권을 수호한다며 이뤄진 법 집행 과정에서 늘상 약자들에 대한 ‘폭력’이 방조돼왔다. 적절한 보상 대책이나 제대로 된 이주 합의가 없었다는 근원적인 문제는 고려 사항이 되지 못했다. 강제 철거는 효율적인 집행을 내세워 불시에 일어난다. 특히 명도 소송을 통한 강제 철거의 경우, 거주민에 계고장을 발부하는 등의 고지 의무조차 없다.
과거엔 하루라도 빨리 개발 이익을 보려는 시행사가 인력을 고용해 구청과 짜고 공권력인 양 위장해 현장에 투입시켰다. 지금은 철거용역업체라는 허울 좋은 외피를 쓴 외주화된 폭력이 그 자리를 꿰찮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서울시의 한 구청 공무원은 “정비 업무 때 대개 용역업체 인력을 쓰는데, 이 업계엔 조직폭력배 출신이 많이 들어가 있다”며 “이런 업체들 중에는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주차장 경비 업무 등을 위탁받아 돈만 받은 뒤 사업장을 폐쇄하는 ‘먹튀’ 행각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서울중앙지법 민사1부 집행관과 철거용역업체 직원 등이 13일 오전 서울 동작구 상도4동 상도11구역 에서 빈 집을 대상으로 명도집행을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정효 기자

1980년대 이래 성장가도 달리는 철거용역회사
최근 물의를 일으킨 용역경비업체 컨택터스의 정관을 보면 사업 목적에 ‘행정대집행업’이나 ‘가로정비업’ 등이 명시돼 있다. 물리력을 필요로 하는 행정대집행 역시 이런 업체들엔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행정대집행을 수행한 용역업체들은 주먹구구식으로 비용을 청구하고, 지자체가 이를 집행해왔다. 이런 이유로 국가권익위원회는 지난 3월 행정대집행 비용 산정 기준 개선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업무를 위탁받은 용역업체가 일방적으로 산정한 금액을 행정청이 별다른 검증 없이 부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정재 ‘민중주거 생활권 쟁취를 위한 철거민연합’(민철연) 연대사업국장은 이런 문제를 두고 “나라가 노점상에게서 돈을 걷어 용역업체에 주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합법적 강제 철거 및 퇴거에 이르지 않더라도, 개발을 반대하는 주민이나 세입자 등은 퇴거를 종용하는 폭력과 공포에 시달린다. 재개발조합 등과 계약을 맺은 철거용역업체들은 이주 업무까지 함께 수행한다. 이런 철거용역회사는 1980년대 중반부터 등장해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 업체들은 건설산업기본법에 의한 비계구조물해체공사업자로 규정되는데 동시에 경비업 허가를 보유한 경우도 있다. 2009년 1월20일 참사가 벌어진 서울 용산 남일당이 포함된 용산 4구역에도 시공사 및 조합과 ‘건설물 해체 및 잔재처리공사 도급계약’을 맺은 호람건설과 현암건설산업이라는 철거용역업체가 들어와 있었다. 이들이 맺은 계약서에는 ‘약정 기간 내에 철거를 끝내지 않으면 지체 1일에 대해 공사 금액의 1천분의 1을 보상금으로 배상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2008년 2월께부터 철거용역업체는 강제 철거를 반대하는 세입자들을 대상으로 폭행·협박·영업방해 등을 통해 퇴거를 압박했다. 상가 세입자들은 철거용역업체의 폭력과 압박에 맞서 남일당 건물 옥상에 올랐다 참변을 당했다.
강제 철거 현장에서의 폭력과 충돌은 거주민뿐 아니라 용역들의 목숨도 위협한다. 2005년 경기도 오산시 수청동 세교택지개발지구 철거 현장에서 주민들과 대치하던 20대 용역 직원이 숨진 경우가 그렇다. 당시 (한겨레) 보도를 보면, 철거 현장에 거의 무방비로 투입된 용역 직원 43명 대부분이 단순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이들은 경찰과 대한주택공사 직원들이 현장에 있었지만 위험한 상황을 통제하기는커녕 수수방관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인권위 개선 권고에도 변함없는 현실

용사 참사가 일어난 직후인 2009년 2월 국가인권위는 그동안 강제 철거 과정에서 심각한 인권침해 상황이 발생해왔는데도 이를 최소화하려는 적극적인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며 △국토해양부 장관에게 충분한 사전고지·협상 및 적절한 보상 없는 강제 철거, 사람이 살고 있는 주택에 대한 강제 철거 등을 금지하도록 관련 법률 정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 예방·금지 규정 및 불이행시 처벌할 수 있는 규정 마련 △경찰청장에게 강제 철거 현장에서 발생하는 철거 및 경비업체 직원에 의한 폭력 문제, 법적 자격 없이 경비업체 업무를 수행하는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관리·감독 강화 등을 권고했다. 2012년 8월,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은 해군기지 건설 현장에 들어온 공권력 및 용역경비업체 직원들의 폭력에 노출돼 있다. 서울국토관리청은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 농민들에게 농지를 비우지 않으면 8월6일 강제 철거하겠다는 행정대집행을 예고했다. 법이라는 방패막 뒤로 난무하는 폭력을 언제까지 두고 볼 것인가.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2012년 8월 4일 토요일

"강정의 상처, 돈 냄새 묻은 손으로 만지지 말라"


이글은 프레시안 2012-08-03일자 기사 '"강정의 상처, 돈 냄새 묻은 손으로 만지지 말라"'를 퍼왔습니다.
[포토] 비바람 속에서도 계속된 제주해군기지 반대 '강정평화대행진'

제주에서 무엇인가를 용서해야 한다면 그것은 풍경의 강제입니다. 제주 풍경은 일방적으로 우리 마음을 평화로 물들여 버립니다.

옥색 바다와 하늘의 묵묵하고 깊은 숨소리, 바람 탄 나무들의 비명 같은 스톱 모션, 한림에서 곽지로 펼쳐지는 여름의 초록빛 아사 치마에 색색 수를 놓다가 활짝 돌아보며 웃어주는 코스모스들까지.

서진 팀이 행군 나흘째인 8월 2일 아침을 기진맥진으로 시작한 까닭은 전날의 뙤약볕 강행군 때문이었습니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해변 야영을 포기하고 30킬로미터를 넘게 걸어 도착한 한림체육관에서는 샤워시설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참 매정하지요?

제대로 씻지 못하고 습한 곳에서 밤새 성난 태풍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선잠을 잔 250여명 그들이 한림 읍내를 빠져나와 수원초등학교에 이르기 전 완연히 원기를 회복한 건 순전히 제주 자연이 뿜어주는 생명력 때문이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거기에 한 가지를 더한다면 마땅히 사람의 힘입니다.

행군 길 중간 중간 버스 정류소쯤에는 줄곧 함께 걸으실 수 없는 강정마을 어르신들이노란 티셔츠를 입고 앉아 계셨습니다. 사열하듯 그 웃음 앞을 지나며 그렇게 반갑고 힘이 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보며 무구하게 웃을 수 있는 순간. 행복의 작고 뽀송한 손을 잡는 기분이 들었죠.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손문상)

유쾌한 동행은 축지법

한림을 거의 벗어나 켄싱턴리조트 이정표가 있는 교차로를 지나며 옆에 걷는 분과 대화를 텄습니다. 유쾌하나 수다스럽지 않은 동행과의 대화, 이건 사실 축지법에 해당합니다. 두 아들 먹을거리를 챙겨주고 아침 비행기로 내려왔다는 엄마였습니다.

정부와 해군이 저지른 불법 요인을 법리적 물리적 폭력 행위로 무마하고 있는 사실을 외면하는 지역 정치인들에 대한 의아함이 우리의 첫 이야기였습니다.

"참 길어진 싸움이죠?"

"네, 그래도 큰 힘을 가진 그들이 조금만 진정을 가지고 일해주면 이 많은 사람들이 이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요. 왜곡된 현실이 자명한데 동문서답하는 그들을 보면 이권 개입을 의심하게 되기도 해요."

"중앙에 있는 정치인들도 주민과 소통하기 전에 일단 동료인 지역 정치인들에게 상황을 묻고 판단하겠지요. 그들이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면 그렇게 받아들였겠죠."

"지난 총선 때도 모두들 강정에 입을 대고 간을 봤지만 문제 해결 의지는 없고, 강정을 어떻게 이용할까에만 혈안이더라구요. 심지어 새누리 후보들까지도 제주해군기지 공사 중단 입장을 내놓았잖아요. (웃음)"

이렇게 적고 보니 꽤 무거운 내용 같지만 우린 툭툭 내리는 비도 조금 맞으며 사진도 찍히며 웃으며 걸었다. 정치권에 몸담은 적 있는 그에게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사실 처음 제주해군기지 예산이 책정될 때 문제 제기를 했어야 하는데요. 국회의원들이 큰 사안을 놓치는 이유가 '쪽예산' 때문이에요. 지역구 이익과 관련된 대한 예산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큰 사안을 내주고 마는 거죠."

큰 사안을 내주는 것으로 정치적 기반이 확고해진다면 더욱, 열렬히, 무사통과에 손들지 않겠나 싶기도 했습니다. 작년 겨울 어느 식사자리에서 보니 제주도 국회의원들은 2012년 제주해군기지 예산을 삭감시켰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더군요. 올해도, 그 다음 해에도, 치열하게 방책을 세워, 모름지기 그 자부심을 이어주기 바랄 뿐입니다.

탄식이 후렴으로 붙던 우리 대화에는 이런 생산적 제안도 있었습니다.

"지역구가 다르지만 제주해군기지 백지화 편에 선 국회의원들이 여럿 있어요. 도종환, 이학영, 유은혜, 장하나 의원 같은 분들요. 그분들이 강정에 힘을 보탤 수 있을까요?"

"음, 민주동행이나 초선의원 모임인 초생달에 속한 분들은 대부분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제주해군기지 백지화 편에 선 국회의원들을 한 그룹으로 묶어 강정마을회가 지속적으로 현장 정보를 서면으로나마 브리핑하고 마을 소식과 문제점들을 알려주는 일이 참 중요하겠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였습니다.

갑자기 도움을 청하면 피차 갈피가 잡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국회의원들이 예상치 못한 자리에서 강정에 대해 발언하게 될 경우, 평소에 꾸준히 브리핑해온 강정 상황은 매우 주효할 것이라는 게 그의 예측이었습니다. 그 일을 꾸준히 맡아줄 인력이 강정에 있을까 잠시 걱정했는데, 뭐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요.

평소 제 마음을 심히 답답하게 하던 문제를 이야기할 때 그쳤던 비가 후루루 내려 마음을 식혀 주기도 했습니다.

"제주 도지사가 금과옥조처럼 부르짖는 윈윈정책 말이에요. 강정을 해군기지로 내주면 1조 5천억 민간 투자 유치해준다고 중앙 정부가 약속했다잖아요.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국고 지원도 아니고 민간 투자요? 기업들이 대통령 말 듣고 무조건 투자하지 않죠."

"그렇죠? 정권 바뀌면 그 약속에 대한 책임 소재도 불분명할 텐데, 제주도민 일부는 그 말에 기대를 걸고 있어요."

"그건 참."

"실제로 면피용 투자를 약간 유치한다 해도 기업들이 자기 이윤 추구를 우선시하지 제주도의 이익을 도모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아, 제주도 투자 유치에 부응한다는 핑계로 특혜를 요구하고, 특히 환경 파괴 부분을 눙치려고 할 행태가 빤하게 보일 때마다 가슴 답답한 이가 한둘이 아니겠지요.

10여 킬로미터를 걸으며 허심탄회 나눈 이야기들, 이만하면 참 잘 걸은 걸음 아닙니까?

곽지 해수욕장, 긴 휴식은 어제에 대한 보상

힘 센 자들이 편법과 폭력으로 자꾸 억압하니까, 법보다 우위인 뜻으로 싸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 끝에 가서야 우리는 수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름이 뭐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그러나 점심 식사 지점인 곽지해수욕장이라는 이정표는 썩 중하고 반가웠습니다. 시원하게 탁 트인 해안에 사람도 별로 없었으므로 꽤 너른 햇빛가림막 아래가 모두 우리 차지가 되어도 눈치 볼 일은 없었습니다.

점심 메뉴는 돼지고기양배추 두루치기와 우무를 넣은 오이냉국. 밥 위에 두루치기를 얹어주고 냉국 한 사발이었습니다. 기독교 측이 식사와 집회 인도를 맡은 8월 2일 점심식사 하이라이트는 '쉰다리'라는 후식이었습니다.

통에 가득 담긴 건 분명 막걸린데, 막걸리 아니고 '제주 특산 쉰다리'라는 거예요. 제주 토종 막걸리 이름인가 했더니 알콜이 전혀 들어있지 않은 음료라네요. 급궁금. 제주 어머니들이 여름에 살짝 쉰밥을 버리지 않고 발효시켜 만들기 시작했다는 마실거리에 감탄했습니다. 부러진 갈대를 아주 꺾어버리지 않는 연민은 경에서 새삼 배우는 게 아니고 우리 속에 늘 있어왔던 것입니다. 심지어 멀쩡한 자연을 도륙하고, 온당한 자기주장을 하는 백성을 잡아가두다니, 명백히 범죄입니다.

이튿날 점심식사 지점으로 예상된 지역까지 당겨 걸었기 때문에 행진 나흘째의 점심 휴식은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바다에 뛰어들어 해수욕을 제대로 즐기는 이들이 많았고 일부는 개신교회가 인도하는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가림막 아래 누워 쉬는 이들도 꽤 되었습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이 사온 아이스크림 250개가 휴식을 마쳐가는 순례자들에게 작은 기쁨이 되기도 했습니다.

결코 무관심하거나 찬성 하는 게 아니라는 제주도민들

저도 아이스바 하나를 얻어들고 페이스북을 열었습니다. 점심 이후에 동부해안도로를 걷고 있는 동진 팀 소식을 찾기 위해였습니다. 오전에 비바람이 거세서 종달리에 있는 종달교회에 들어가 잠시 비바람을 피했다는 소식, 그 자리에 김두관 씨가 김재윤 의원과 함께 나타났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제주해군기지 백지화를 위한 선명한 발언도 없이 주민들의 고난 행군을 삐죽 들여다보는 정치인들, 여러 번 등치고 간 빼는 수작에 당하다보니 조금 섬찟해지기까지 합니다. 함부로 부는 정치인 비바람을 피할 교회는 어디일까 하릴없는 질문을 혼자 던져보았습니다.

동진 팀으로 가기 위해 곽지를 떠나기 전에 들은 제주도민 부아무개씨(일도이동 거주)의 말은 제주 도지사와 지도층이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었습니다.

"제주 사람들이 관심이 없고 상황을 잘 모른다는 오해를 받는데요, 제주 지역사회가 좁다보니 앞에 나섰다가 자신이나 가까운 가족친지들이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이 돼서 움츠리고 있을 뿐이지요. 물론 민군복합관광미항이 생기면 경제가 조금이라도 좋아질까 기대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분들조차도 해군기지의 폐해나 민군복합항의 허구를 올바로 공론화하면 생각이 달라지실 거라고 봐요."

"공론화에 책임을 가진 분이라면 누구일까요?"

"우근민 도지사지요. 국회의원들, 공무원들, 대학교수들 이런 분들이 평화의 섬 선포할 때와 전혀 다른 입장을 보이는 걸 보면 어이가 없어요.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게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고 지금은 또 입장을 바꾸는 게 이익이 되나 봐요."

서울 향린교회 임아무개 목사는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을 데리고 첫날부터 계속 걷고 있었어요. 장준하 선생과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에게 "와, 이름이 크구나." 했더니 맞장구치듯 활짝 웃은 아이는 땡볕과 비바람 속의 걷기나 거친 잠자리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힘들 때도 있지만 걸으면서 많은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이 재미있어요."

역시 사람이 힘입니다.

곶자왈 평화학교 아이들의 위문 공연

제주시를 통과하여 동진팀이 있는 월정리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렸습니다. 강정의 몸부림이 아무런 파장도 미치지 않는 것만 같은 제주시, 도심. 눈에 안 보일 따름이겠지요.

동진 팀은 마침 월정해안에서 잠시 휴식 중이었고, 곶자왈 평화학교에 평화 캠프를 온어린이들이 모래사장에 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위문공연이라고 했습니다. 어른들은 항상 아이들에게 위안을 받습니다. 갖은 시름과 피로가 휘발되는 효과는 여름바다를 배경으로 한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들을 때가 최고라고 말해도 되겠더군요.

우리 어릴 때는 전쟁 아닌 것이 평화라고 배웠습니다. 그렇게 알고 살았기 때문에 전쟁 상황만 아니면, 굶지만 않으면, 학비만 있으면, 얼마간 인권을 유린당해도, 권력과 돈줄에 억압당해도, 법리적 왜곡에 휘말려도 죽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 여기고 지냈습니다.

저 아이들은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세계가 가진 위험 요인은 전보다 커졌으나, 파괴력이 가공할 지경에 이른 무기들로 인해 전쟁이란 결코 일어나서 안 될 일이 되었습니다. 도발한 나라도 침공 당한 나라도 피차 죽게 되니까요. 더 큰 대안, 더 예민한 외교력이 필요하며, 전 세계 어린이들이 환경과 생명 존중을 최고 가치로 삼는 교육을 받아야 하는 세상이 왔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전쟁이나 환경오염으로 인한 인류멸망 시나리오가 불현듯 현실화될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강정평화대행진은 어용 언론들이 나발 부는 '강정 주민 사익 챙기기'나 '평화활동가들의 민심 혼란 행위'나 '이념 싸움'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여는 싸움입니다. 더불어 사는 평화의 문. 과거와 현재의 사리사욕에 눈 먼 자들은 그 문을 열지 않습니다.

월정해안에서 김녕까지는 멀지 않았습니다.

구좌 체육관에 도착한 일행이 김치찌개 덮밥을 먹고 수박을 먹고 상처 난 발들을 내보이며 물집을 터뜨릴까 말까하는 무렵에 완연히 저녁이 왔습니다. 손으로 터뜨리지 말고 의료팀에게 치료 받고 약 바르는 게 좋겠다는 말. 당연하고 맞는 말이지요.

강정의 상처, 제주도의 평화도 돈 냄새 묻은 손으로 만지지 말기 바랍니다. 강정 주민들의 삶이 약입니다. 제주 도민들의 오래 된 침묵이 평화의 말로 풀려나오게 해주어야 합니다. 제주해군기지가 백지화되는 날, 그날이 오면, 수년에 걸친 싸움과 미움과 억울함과 원망과 반목이 일거에 사라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모두가 거름이 되어 역사 이래 처음으로 우리는 더불어 사는 평화를 얻어냈기 때문입니다. 유구하게 이어져 내려온 일상의 평화, 자연의 본래, 그것을 지키는 힘이 잘 익은 과실처럼 우리를 통과하여 우리 자손들에게 전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날까지 강정평화대행진은 계속되겠지요. 그날이 오면, 오늘 함께 걸었던 사람들이 '공구리쳐진' 구럼비에 모여앉아 한바탕 크게 울어도 좋겠습니다.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손문상)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백지화를 위한 '강정평화대행진'이 지난 달 29일 시작돼 8월4일까지 제주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강정마을에서 시작해 제주의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져 5박 6일 동안 섬 전체를 일주하는 일정입니다. 현지에서 조정 시인과 손문상 화백이 글과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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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 시인,손문상 기자(=서귀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