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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11일 목요일

北 "워싱턴-하와이 등 美 4곳이 타격목표"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3-04-11일자 기사 '北 "워싱턴-하와이 등 美 4곳이 타격목표"'를 퍼왔습니다.

북미항공사령부, 해군기지 등 최초로 공격목표 적시


북한이 미국 수도인 워싱턴 DC 등 4개 지역을 공격목표로 적시, 파장을 예고했다.

미국에 대한 핵폭격 위협을 해온 적은 있으나 구체적으로 공격목표를 적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재미언론인 안치용씨의 (시크릿오브코리아)에 따르면, 북한의 대남선전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10일 웹사이트에 4분여길이의 '네줄의 열핵직격선'이라는 동영상을 올렸다.

북한은 이 동영상을 통해 워싱턴DC, 콜도라도 스프링스의 북미항공사령부, 샌디에고의 포인트로마해군기지, 하와이 등 4곳을 타격목표로 언급했다.

안치용씨는 이같은 사실을 전하며 "미국을 최대한 자극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생각된다"고 분석했다.

이영섭 기자

2012년 12월 1일 토요일

그럴 줄 알았다, 일단은 강정


이글은 프레시안 2012-11-30일자 기사 '그럴 줄 알았다, 일단은 강정'을 퍼왔습니다.
[기고] 새누리당의 해군기지 예산 날치기 통과를 보며

그럴 줄 알았다.11월 21일, 작가행동의 평화도서관 제안식이 있었던 강정에서, 나는 어리벙벙해서, 발목도 손도 식은 채로 뭘 해야 좋을지 몰라 배회하고 있었다. 그렇게 떠돌아다니다가 얼결에 옆 사람과 팔짱을 낀 채로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고립되었다. 그 뒤로는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함께 고립된 사람들을 멀뚱하게 바라보거나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히거나 하며 그냥 서 있었다. 이럴 줄은 짐작했으나 어이가 없도록 순식간이었고 무력했다. 내 뒤쪽으로 해안을 따라 설치된 펜스의 문이 열렸고 트럭과 레미콘이 쏟아져 나왔다. 머리를 한참 젖히고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커다란 차들이었다. 누군가 몇 대나 지나갔느냐고 물었다. 일곱 대까지 세고 말았는데 그 뒤로도 한동안 이어졌으니 열 대는 넘었을 것이다.이 와중에도 앞쪽으로도 뒤쪽으로도 옆쪽으로도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그냥 서 있었다. 바짝 붙어선 몸들 때문에 서 있으려는 의지 없어도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울적했고 성질이 났다.아저씨, 숨쉬기가 갑갑해요, 라고 나는 말했는데 스스로 듣기에도 그 말투가 매우 불량했다. 그 말을 하자마자 내 등을 누르고 있던 경찰이 움직여서 공간을 조금 터주었다. 사물처럼 꼼짝도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 움찔하는 기색에 무안해졌다. 그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사람을 사람으로 보기를 잊었으니 내가 불량한 것이 맞았다. 누가 나에게 이런 불량 열매를 먹였나. 나가면 트럭 때문에 다쳐요, 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경찰들에게 둘러싸인 사람들의 몸에 닿지 않으려고 손등과 손가락을 어색하게 구부리고 있었다. 좀 서글펐다. 해군기지에 관한 결정권도 가지지 못한 우리가 서로에게 가해하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공사 차량들이 다 빠져나오고 그 많던 경찰들도 어디론가 사라진 뒤, 강정천으로 내려가는 내리막엔 꽃씨가 날렸다. 사방에 손가락 한 마디는 되는 꽃씨가 굴러다녔고 날아다녔다. 이 정도의 꽃씨를 날린 것을 보니 큰 나무겠다고 생각했다. 근처 어느 군락지에서 날아왔을지도 모르겠다. 이 계절에 꽃씨를 뿌리는 나무가 있나? 일순 그런 의문도 품었으나 제주니까. 제주에 그런 식물이 없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듣기로는 강정에 머물며 공사를 몸으로 지연시키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의 점퍼에서 터져 나온 거위털이라는 것이었다.사실을 듣고도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만져 봐도 그것은 꽃씨였다. 그토록 많은 꽃씨를 날려 큰 나무를 상상하게 만든 사람과 또 다른 사람들이 강정에 머물고 있었다. 그들의 신발과 겉옷과 머리카락 중에, 땅에 쓸리고 끌리지 않은 것이 없었다. 옷이며 신발은 닳아서 터졌고 머리카락엔 먼지가 수북해서 잿빛이었다. 레미콘과 덤프트럭이 드나드는 길목에 엎드려 있다가 경찰 수십 명이 달려들어 바닥에서 떼어내고 밀어낼 때까지 각자의 힘으로 서로의 힘으로 버티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모습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매일 벌어지는 일이라서 일상이라고 한다.그러므로 내가 강정에 가서, 그런 일을 겪었다고 말하기보다는 그런 반나절을 보았다고 말하는 편이 옳겠다.

ⓒ프레시안(손문상)

이럴 줄 짐작했으나 이럴 줄은 몰랐다는 듯 그 자리에 갔던 것은 근래 보았던 어떤 묘지에 관한 기억 때문이었다.내게는 이번이 세 번째 제주 방문이었다.지난여름 첫 번째로 방문했을 때의 일이었다. 콩밭 옆을 지나다가 아무래도 묘(墓)인 것을 보았다. 밭 한가운데 나지막하게 쌓인 검은 돌담 안에 봉분이 있었다. 제주도의 독특한 장례 풍습으로 산담이라고 한다. 서울로 돌아와서도 이 산담이 궁금했다. 재방문 계획을 잡으며 산담을 포함한 제주의 장례 풍습을 알아보는 중에 4·3사건에 관련된 이야기를 자주 접했고 그쪽으로도 관심이 이어졌다.제주 서남부, 사계리 공동묘지 곁엔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池)라는 곳이 있다.조상이 다른 백서른 두 명이 죽어 뼈가 엉키어 하나가 되었다, 라는 뜻이다.두 번째로 제주를 방문했을 때는 이 장소에 가보자고 마음먹었다. 운전할 줄 아는 친구와 함께 갔으므로 차를 빌려서 내비게이션을 사용했다. 이름만 입력해도 자동으로 안내되는 식당은 숱했는데 백조일손지지라는 장소는 내비게이션 속에 없었다. 백조일손지지, 백조일손, 무엇으로 검색해도 없는 장소였다. 사계리 공동묘지 곁에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었으니 일단은 묘지를 찾아가기로 했으나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사계리까지는 진입했는데 공동묘지가 어느 쪽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마을 안팎을 수차례 들락거리며 헤매다가 마침 마주친 할아버지에게 길을 묻기로 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사계리 공동묘지를 물으니 자전거를 딱 세우고, 거긴 뭐 하러 가느냐며 표정이 바뀌었다. 험악했다. 괜히 욕이라도 한 마디 들을 것 같았다. 외지인에 관한 제주 사람의, 은근하고도 완강한 경계심을 귀띔 받은 바 있어 식은땀이 났다. 제주 4·3사건의 영문명은 Red Hunt다. 그 연배의 노인에게는 더욱 예민한 화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할아버지는 거길 뭐 하러 가는지 말하면 그 대답을 듣고 자신이 대답해주겠다고 했다. 4·3에 관심이 있어 공부를 하고 싶다고 소심하게 대답하자 할아버지의 표정이 다시 바뀌었다. 4·3에 관심, 에서 이미 활짝 웃는 얼굴이었다. 오해일 가능성을 조금 감당해서 말해보자면, 그 정도의 조그만 관심이 반가워 웃는 얼굴이었고 그 정도로도 낯선 사람을 향해 단번에 열려버린 얼굴이었다. 백조일손지지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하자 아, 예비검속, 하고 할아버지는 혼자 말하듯 말했다. 내게는 듣기로는 말하기로도 낯선 그 말을 그는 쌀, 보리 하듯, 가위, 바위 하듯, 익숙하게 말하고 있었다. 의식으로든 무의식으로든 제주 사람에게 4·3은 여태도 강렬한 흔적이로구나, 싶었다.예비검속이란 말 그대로 미리 검속한다는 의미이다.1948년에 벌어진 4·3사건 이후 약 3만 명의 양민 학살이 이어진 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4·3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풀려났던 사람, 그 밖에 공산당에게 협조할 것 같은 사람, 범죄를 저지를 것으로 짐작되는 사람을 군경이 미리, 강제 구속해서 처벌한 일을 말한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알고 있지 않은가.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이 일을 육십여 년 전 제주에서 실현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이 예비검속으로 구속되었다가 재판이고 뭐고 없이 새벽에 학살당한 사람들의 뼈를, 후손들이 나중에 옮겨 묻은 곳이 백조일손지지다. 할아버지는 자전거에서 내려서 마을 너머 남쪽 방향을 가리키면서 자신의 삼촌도 한림읍에서 체포되어 사살 당했다고 말했다.그가 국민학교 5학년이던 시절의 일이었다고 한다.

제주는 밤이 어둡다.도시가스 설비가 없어 LPG가스나 기름을 연료 삼기 때문에 쓸데없이 가로등을 밝히지 않는다.1950년이라고 지금보다 더 밤이 밝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어둠 속에서 트럭에 실렸다가 학살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십대 삼십대 남자들로 가장이었다. 당시의 계엄군은 한 사람 앞에 한 발씩, 252명을 총으로 쏘아 넘어뜨리고 돌과 함께 구덩이에 묻은 뒤, 그 장소의 출입을 금지시켰다. 유족들이 시신을 거두려고 한밤을 틈타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끄집어냈다가 군인들에게 발각되어 파낸 시신을 그대로 묻어두고 돌아가기를 반복하다가 육년이 지난 뒤에야 시신 발굴 작업이 이루어졌다. 살은 이미 흔적 없고 뼈만 남아 서로 얽혀 누가 누군지 구분할 수 없었으므로 유족들은 의논 끝에 두개골 하나에 팔 두 개, 다리뼈 두 개씩으로 구색을 맞춰 백삼십이 개의 무덤을 만들었다.백 서른 두 명의 할아버지를 조상으로 두었으나 뼈가 얽혀 하나의 몸이 된 사람들, 백조일손지지에 이장된 사람들이 학살당해 본래 묻혔던 장소는 알뜨르라는 이름의 제주 남단 벌판에 있다. 섯알오름이라는 곳이다. 1950년 8월에 벌어졌던 예비검속으로 제주 각지에서 체포된 천 삼백여명 가운데, 이 장소에서 발굴된 유해만 이백 오십 여구에 달한다. 이 장소는 학살 장소가 발각되어 시신을 발굴해낸 유일한 장소라고 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어디에서 죽고 어디에 묻혔는지도 알려진 바 없다.일제 강점기 시절, 제주도민을 강제 동원하여 만든 도내 최대의 탄약고가 있었으며, 가미가제의 출격지이기도 했다던 알뜨르 벌판 곳곳엔 비행기 격납고가 남아 있었다. 바람이 세고 너른 벌판, 고구마와 감자 밭 너머로 용암산인 산방산이 밥공기를 엎어둔 듯한 모습으로 솟아 있었다. 첫 번째 방문 때는 다만 규모와 외양이 굉장한 산이었던 그 산이 이제, 사람의 역사와 무관하게 생각할 수는 없는 풍경이 되고 말았다. 제주 곳곳에 이런 장소가 있다. 4·3에 관련된 장소를 따로 찾아다닐 것도 없이, 산방산이고 성산일출봉이고 돌아다니다보면 지나게 되고 만나게 된다.이 땅의 근현대사가 진행되는 동안 제주와 제주도민은 섬 바깥 사람들의 이념과 욕심으로 숱하게 난데없는 고난을 당해왔다. 알뜨르 벌판의 격납고들 너머로 먼 듯 가까운 듯 솟은 산방산을 바라보며 뜻밖에도 강정을 떠올리게 된 것은 제주의 그런 사정을, 그런 사정의 구체를 접했기 때문이었다.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강정 사람들의 박탈감과 분노는 이런 제주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생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살아가던 사람들의 생업이, 생활이, 무엇보다도 마을 공동체가, 외부의 간섭으로 붕괴된다. 제주엔 이런 일이 이미, 너무, 자주 벌어졌다.벌어졌다, 라고 과거완료형으로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재도 그런 일은 벌어지고 있다.이제는 웬만한 경우 당신도 알고 나도 아는 그 장소, 일단은, 강정에서.

* 새누리당이 제주해군기지 예산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는 뉴스를 보고 마음이 다급해 쓴다.

황정은. 소설가. 1976년 생.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 열차) (백의 그림자) (파씨의 입문). 한국일보문학상,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지난 11월 21일, '작가행동 1219'의 (강정마을 평화도서관 만들기) 사업 제안식에 참여한 후 이 글을 보내왔다.


 /황정은 소설가

2012년 8월 10일 금요일

제주도는 파도마저 아프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8-09일자 기사 '제주도는 파도마저 아프다'를 퍼왔습니다.
[기고] 강정 평화 대행진을 다녀와서

사람의 일이란 것이 어찌 보면 우연의 연속입디다. 제가 강정을 처음 안 것은 소설가 현기영 선생님이 (경향신문)에 쓴 '강정을 아십니까?' 칼럼을 통해서였습니다. 그 때 저는 강정을 제주도의 어느 아름다운 고장 정도로만 인식했고, 제주도가 고향이신 현기영 선생님의 애향심이 강정이란 마을에 닿아 있구나, 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수개월 후 어느 날 밤, 저는 어느 작은 절에서 다른 시인 선생님과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현기영 선생님의 전화가 도착했습니다. 아마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을 맡고 있었던 때라 선생님이 전화를 주셨던 것 같습니다. 강정에 한 번 함께 가지 않겠냐고 말이지요. 저는 그날 밤, 꼭 가겠다고 어쩔 수 없는(?) 약속을 드리고야 말았습니다.

중덕 해안가에서 우리 일행은 문화제를 주민들과 함께 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2011년 어느 늦은 봄날이었을 겁니다. 그 때 다리가 짧은 백구 중덕이도 알게 되었고, 바로 그 구럼비 바위에 서서 출렁이는 바다도 보았고, 마을 주민 한 분이 더위를 식히러 거침없이 바다로 뛰어들던 모습을 통해 장년이 된 '똥깅이'([지상에 숟가락 하나]의 주인공 이름)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 번 와 보지도 않고 문화제에서 낭송할 시를 숙제처럼 썼는데, 중덕 해안가로 들어가는 길에서 써 놓은 시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저는 그 시를 1행만 빼고 완벽히 복원해 내었습니다. 저는 제가 쓴 시를 외우지 못하거든요.

하지만 그 시가 정말 과제물이었음을 아프게 알게 해준 건, 다음날 4·3 공원에서 만났던 1만 5000명의 희생자 위패였습니다. 책을 통해서 4·3의 희생자가 3만 명에 가깝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3만이라는 추상적인 수를 벗어난 단독자의 죽음들 앞에서 저는 순간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탈육된 백골을 모의로 전시해놓은 것보다도 하나하나의 죽음 앞에서 심장이 부르르 떨렸던 겁니다. 북촌리에 있는 너븐숭이 기념관에는 학살당한 주민 350여 명의 구체적인 죽임이 조금 더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두 살 먹은 아이까지 말이지요. 북촌리는 현기영 선생님의 소설 '순이 삼촌'의 무대라고 하더군요.

이게 제가 처음 감각으로 느낀, 제주도의 진실이었습니다.

다시 한 달 뒤 서귀포 시내에서 있던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 때에는 우리를 초빙한 분의 개인사를 속으로 울먹이며 듣고 나서 제주도에는 파도마저도 아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만치 떨어져 있던 작은 무인도도 말이지요. 그렇게 제주도만 생각하면 하얗게 무너지는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뒤로 저는 제주도를 찾지 못했습니다. 몇 번의 결심은 아주 사소한 생활 앞에서 형편없이 구겨졌지요.

그런데 한국작가회의가 그 즈음 강정마을의 싸움에 동참하기로 조직적 결정을 내렸고, 한국작가회의의 사실적인 활동가(?) 조정 시인의 열정으로 이런저런 일을 한다고는 했습니다만 당신이 보기에는 어떠했는지 모르겠네요. 알다시피 저는 문학으로 무엇을 하지 못한다는 입장이잖아요. 굳이 변명하자면, 제 허무는 패배의식이 아니라 문학의 한계치에 대한 자각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지난 겨울에 있었던 '글발글발' 행사는 최소한 외형적으로는 대단한 일이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임진각에서 강정마을까지 릴레이 국토 종단은 사실 툭 던진 반 농담이 기적처럼 이루어진 경우입니다. 당연히 저는 신중파였어요. 검토하고 준비할 게 너무 많다는 게 이유였지만 솔직히는 그걸 감당할 능력을 자신하지 못해서였습니다.

한낱 스태프 역할만 하는 것에도 저는 이렇게 소심하기 짝이 없답니다. 결과적으로는 사람에게 잠재되어 있는 어떤 열정을 읽어내지 못한 꼴이 되었지요. 아무튼 순전히 열정으로 작가들은 강정까지 가고야 말았습니다. 아, 미안해요. 작가들이 뭐 대단한 일 했다고 내세우자는 게 아니에요. 지난 주 잠깐 참가했던 강정 평화 대행진을 상기해보자고 한 게 긴 세설을 낳았군요.

ⓒ프레시안(손문상)

이번 평화 대행진 기간에 제가 걸었던 구간은 다른 구간에 비해 무척 수월했고 코스도 가장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언제나 제주도는 전혀 상반된 마력으로 다가오지요. 탄성을 거듭 터뜨리게 하는 아름다움과 씻기지 않는 아픔이 그것입니다. 아마도 이 둘의 낙차가 마력의 정체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불가해함 앞에서 인간의 정신과 논리 같은 건 무화되어버리곤 하잖아요.

그렇다면, 제주도에 대한 제 느낌에는 어느 정도의 퇴폐미가 섞여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건 비윤리적이거나 강정 마을 사태에 대한 비본질적인 무엇이 아니라 제가 창조한 다른 제주도일 겁니다. 인간의 인식이 보통 대상에 대한 표상이거나 유아(唯我)적인 관념이라고 정의되기도 하지만, 다른 세계의 창조라는 주장도 있는 것을 감안하면 그것을 표현하는 데에 감히 용감해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현재 구럼비는 15퍼센트 정도가 훼손되었는데요, 그 아픔은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놓고 이제 평화 공동체를 만들자는 대안이 제출되었습니다. 제 식으로 이해하기로는 해군 기지 '반대'에서 평화 공동체에 대한 '찬성'으로 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의 상상력이 움직인 겁니다. 뜨거운 햇볕 속을 걸으면서 거듭 문학이 단지 그럴듯한 메타포나 유미적인 문장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문학보다 앞서가고 있었어요. 앞서가는 그 뒷모습을 작가들은 단지 언어화할 뿐이지요. 김수영 식으로 말하자면, 뒤떨어졌다는 것을 솔직히 받아들이기만 해도 문학의 역할은 그리 왜소하지 않을 거라고 저는 아직 믿는 쪽입니다. 근데 이거 근사하지 않아요? 반대에서 찬성으로! 부정에서 긍정으로! 수동에서 능동으로!

이게 이번 평화 대행진에서 제가 본 강정 마을의 눈부신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마을 주민들의 아픔과 고달픔을 읽지 못했어요. 혹 생길지도 모르는 섣부른 감상과 되지도 않는 위무를 미리 차단하려는 자기 본능이 아니랍니다. 이미 그 분들의 영혼은 저 같은 무명 시인을 압도하기 시작했거든요.

결국 도움을 준 게 아니라 도움을 도리어 받은 격입니다. 해군 기지를 건설하려는 이들은 마을 주민들을 절대 못 이깁니다. 설령 현실에서는 이긴 것처럼 보여도 그들은 이미 완벽히 패배했어요. 그것을 그들이 아직 깨닫지 못하니까 이번 평화 대행진이 시작된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실은 평화 대행진에 참여하기로 한 결심한 순간부터 오갈 교통 편 때문에 걱정이 많았고, 그것 때문에 행사 참여에 어떤 지장이 있을 거라고 미리 겁을 먹기도 했습니다. 숙영지인 김녕 해수욕장에 도착한 건 밤중이었습니다. 몇몇 작가회의 회원들과 인사 겸 회포를 푼 다음에 잠자리로 이동했지만 태풍이 남기고 간 습기가 만만치 않아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도 알지 못한 채 눈을 뜨니 조금 이른 새벽이었습니다.

아침 식사 전까지 바다 구경을 하다가 천천히 대열을 따라 움직였는데, 오른쪽에 펼쳐진 수평선에 마음을 빼앗겨, 이것은 뭐 마치 피크닉 같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걸은 분의 말씀으로는 지금까지 한 고생에 대한 보답 같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제게는 피크닉이 맞습니다.)

그러나 오전 11시 즈음에 도착한 너븐숭이에서 볼 때마다 힘든 학살당한 사람들의 원혼을 만나고 말았습니다. 제주도는 이렇습니다. 섬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기다 보면 어김없이 4·3의 흔적이 나타납니다. 선무당의 입장에서 어림잡아 봐도, 해군 기지 건설 강행은 강정 마을 주민들의 아물지 않은 아픔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입니다. 참으로 씻기 힘든 악행이지요.

강정 마을의 입지 조건 자체가 큰 군함들이 들어올 형편이 안 되는데도 정부는 왜 그리 억지와 떼를 쓰는지 모르겠어요. 대림건설이나 삼성건설에 갚아야 할 부채가 있는 거야? 하는 항간의 소문도 허투루 들리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번 행사에 참여하기 전에 읽은 정욱식 선생님의 (아카이브 펴냄)에는 또 다른 이유가 적시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 방어 체제에 한국을 끌어들이려고 했다는 것은 그간의 언론보도에 의해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명시적, 잠재적 대상국인 북한,중국, 러시아와 가장 인접해 있는 미국의 동맹국"(322쪽)이 우리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급기야 양국 정부는 한국이 오키나와와 괌을 방어하는 데 기여하는 방안도 밀실에서 논의했다. 2011년 6월호에 따르면, '괌이나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에 미사일이 발사되는 경우에도 한국군이 이를 대신 요격해주는 콘셉트가 여러 차례 도출됐다'라고 한다. 적어도 개념 수준에서는 한·미 간의 MD 협력이 이미 한반도를 넘어서 동아시아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제주 해군기지 논란도 이러한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지도를 펼쳐보면 알 수 있듯이, 제주도는 오키나와와 괌으로 날아가는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최적의 전략적 요충지이다." (327쪽)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군사 기지가 들어선다 해도 전쟁이 꼭 일어나지는 않을 거야 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속삭임도 솔직히 같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꼭'이라는 부사에는 항상 어떤 주관적인 바람이 함께 들어가 있기 마련이지요. 전쟁이 일어날지 어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쟁이 일어날 확률만큼은 부쩍 올려주는 것이 강정 마을에 지금 뚝딱거리고 있는 해군 기지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앞으로의 일은 언제나 오늘에 배태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미래는 현재와 동떨어진 오지 않은 시간이라는 관념에 익숙해져 있습니다만, 사실 미래는 이미 와 있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미래에 대해서 어중간한 희망을 버무려 지금 당장을 위무하려는 일이야말로 비겁한 태도이기 십상입니다.

암튼 제가 강정 마을과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해서 전문가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거나 해서 이런 흰소리를 늘어놓은 것은 아닙니다. 오늘 할 일을 미루었을 때 언제나 미래는 우리를 배신하더라는 경험칙에 충실할 따름입니다.

제가 제주도에 있는 2박3일 동안 서울은 무척 더웠지요? 늘 그랬지만 이번 행사에도 저는 얼치기여서 밤에는 예쁜 달에 취하고 걸을 때는 수평선에 매혹되었습니다. 휴식을 취했던 함덕 해수욕장의 아름다운 파도는 아마 꽤 오래 기억에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처음부터 걸었던 사람들에게 강정 마을 사람들이 이번 평화 대행진에 임하는 마음을 전해 듣고 이상한 현기증을 앓았습니다.

단순한 찬양과 맹목적인 신앙을 제가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아실 테니 그 현기증의 정체를 여기서 따져보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것만은 이번 행사에 잠깐 다녀와서 확실해진 것 같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수동적인 해군 기지 '반대'를 넘어 궁극적인 평화를 '찬성'한다고 말이지요.

궁극적인 평화는 유토피아일 뿐이라고요? 맞습니다. 궁극적인 평화는 제도나 체제가 아닌 게 확실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이 타면서 내는 한낱 불꽃일 뿐일 거예요. 언제나 불안하게 흔들리는 제도나 체제를 밝히는 그것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당장 힘든 시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시간을 살아야 합니다. 시간을 '함께 사는 것'만 한 연대를 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연대는 연민이나 물질적 도움을 포괄하는 훨씬 더 내밀한 경험입니다. 강정마을과 우리의 미래와 지구별의 웃음을 위한 행동은, 단지 간절한 기도만이라도 그 무게가 가볍지 않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짧지 않은 편지를 쓰는 것도 그 때문이기도 하고요.

기도를 보태주세요. 그리고,노래를 함께 불러주시길….

분명히 우리 자신의 변화와 강정마을의 평화가 함께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럼, 인간의 어리석음이 초래했다는 지독한 무더위 속에서 이만 총총.

 /황규관 시인

2012년 8월 4일 토요일

"강정의 상처, 돈 냄새 묻은 손으로 만지지 말라"


이글은 프레시안 2012-08-03일자 기사 '"강정의 상처, 돈 냄새 묻은 손으로 만지지 말라"'를 퍼왔습니다.
[포토] 비바람 속에서도 계속된 제주해군기지 반대 '강정평화대행진'

제주에서 무엇인가를 용서해야 한다면 그것은 풍경의 강제입니다. 제주 풍경은 일방적으로 우리 마음을 평화로 물들여 버립니다.

옥색 바다와 하늘의 묵묵하고 깊은 숨소리, 바람 탄 나무들의 비명 같은 스톱 모션, 한림에서 곽지로 펼쳐지는 여름의 초록빛 아사 치마에 색색 수를 놓다가 활짝 돌아보며 웃어주는 코스모스들까지.

서진 팀이 행군 나흘째인 8월 2일 아침을 기진맥진으로 시작한 까닭은 전날의 뙤약볕 강행군 때문이었습니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해변 야영을 포기하고 30킬로미터를 넘게 걸어 도착한 한림체육관에서는 샤워시설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참 매정하지요?

제대로 씻지 못하고 습한 곳에서 밤새 성난 태풍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선잠을 잔 250여명 그들이 한림 읍내를 빠져나와 수원초등학교에 이르기 전 완연히 원기를 회복한 건 순전히 제주 자연이 뿜어주는 생명력 때문이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거기에 한 가지를 더한다면 마땅히 사람의 힘입니다.

행군 길 중간 중간 버스 정류소쯤에는 줄곧 함께 걸으실 수 없는 강정마을 어르신들이노란 티셔츠를 입고 앉아 계셨습니다. 사열하듯 그 웃음 앞을 지나며 그렇게 반갑고 힘이 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보며 무구하게 웃을 수 있는 순간. 행복의 작고 뽀송한 손을 잡는 기분이 들었죠.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손문상)

유쾌한 동행은 축지법

한림을 거의 벗어나 켄싱턴리조트 이정표가 있는 교차로를 지나며 옆에 걷는 분과 대화를 텄습니다. 유쾌하나 수다스럽지 않은 동행과의 대화, 이건 사실 축지법에 해당합니다. 두 아들 먹을거리를 챙겨주고 아침 비행기로 내려왔다는 엄마였습니다.

정부와 해군이 저지른 불법 요인을 법리적 물리적 폭력 행위로 무마하고 있는 사실을 외면하는 지역 정치인들에 대한 의아함이 우리의 첫 이야기였습니다.

"참 길어진 싸움이죠?"

"네, 그래도 큰 힘을 가진 그들이 조금만 진정을 가지고 일해주면 이 많은 사람들이 이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요. 왜곡된 현실이 자명한데 동문서답하는 그들을 보면 이권 개입을 의심하게 되기도 해요."

"중앙에 있는 정치인들도 주민과 소통하기 전에 일단 동료인 지역 정치인들에게 상황을 묻고 판단하겠지요. 그들이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면 그렇게 받아들였겠죠."

"지난 총선 때도 모두들 강정에 입을 대고 간을 봤지만 문제 해결 의지는 없고, 강정을 어떻게 이용할까에만 혈안이더라구요. 심지어 새누리 후보들까지도 제주해군기지 공사 중단 입장을 내놓았잖아요. (웃음)"

이렇게 적고 보니 꽤 무거운 내용 같지만 우린 툭툭 내리는 비도 조금 맞으며 사진도 찍히며 웃으며 걸었다. 정치권에 몸담은 적 있는 그에게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사실 처음 제주해군기지 예산이 책정될 때 문제 제기를 했어야 하는데요. 국회의원들이 큰 사안을 놓치는 이유가 '쪽예산' 때문이에요. 지역구 이익과 관련된 대한 예산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큰 사안을 내주고 마는 거죠."

큰 사안을 내주는 것으로 정치적 기반이 확고해진다면 더욱, 열렬히, 무사통과에 손들지 않겠나 싶기도 했습니다. 작년 겨울 어느 식사자리에서 보니 제주도 국회의원들은 2012년 제주해군기지 예산을 삭감시켰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더군요. 올해도, 그 다음 해에도, 치열하게 방책을 세워, 모름지기 그 자부심을 이어주기 바랄 뿐입니다.

탄식이 후렴으로 붙던 우리 대화에는 이런 생산적 제안도 있었습니다.

"지역구가 다르지만 제주해군기지 백지화 편에 선 국회의원들이 여럿 있어요. 도종환, 이학영, 유은혜, 장하나 의원 같은 분들요. 그분들이 강정에 힘을 보탤 수 있을까요?"

"음, 민주동행이나 초선의원 모임인 초생달에 속한 분들은 대부분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제주해군기지 백지화 편에 선 국회의원들을 한 그룹으로 묶어 강정마을회가 지속적으로 현장 정보를 서면으로나마 브리핑하고 마을 소식과 문제점들을 알려주는 일이 참 중요하겠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였습니다.

갑자기 도움을 청하면 피차 갈피가 잡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국회의원들이 예상치 못한 자리에서 강정에 대해 발언하게 될 경우, 평소에 꾸준히 브리핑해온 강정 상황은 매우 주효할 것이라는 게 그의 예측이었습니다. 그 일을 꾸준히 맡아줄 인력이 강정에 있을까 잠시 걱정했는데, 뭐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요.

평소 제 마음을 심히 답답하게 하던 문제를 이야기할 때 그쳤던 비가 후루루 내려 마음을 식혀 주기도 했습니다.

"제주 도지사가 금과옥조처럼 부르짖는 윈윈정책 말이에요. 강정을 해군기지로 내주면 1조 5천억 민간 투자 유치해준다고 중앙 정부가 약속했다잖아요.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국고 지원도 아니고 민간 투자요? 기업들이 대통령 말 듣고 무조건 투자하지 않죠."

"그렇죠? 정권 바뀌면 그 약속에 대한 책임 소재도 불분명할 텐데, 제주도민 일부는 그 말에 기대를 걸고 있어요."

"그건 참."

"실제로 면피용 투자를 약간 유치한다 해도 기업들이 자기 이윤 추구를 우선시하지 제주도의 이익을 도모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아, 제주도 투자 유치에 부응한다는 핑계로 특혜를 요구하고, 특히 환경 파괴 부분을 눙치려고 할 행태가 빤하게 보일 때마다 가슴 답답한 이가 한둘이 아니겠지요.

10여 킬로미터를 걸으며 허심탄회 나눈 이야기들, 이만하면 참 잘 걸은 걸음 아닙니까?

곽지 해수욕장, 긴 휴식은 어제에 대한 보상

힘 센 자들이 편법과 폭력으로 자꾸 억압하니까, 법보다 우위인 뜻으로 싸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 끝에 가서야 우리는 수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름이 뭐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그러나 점심 식사 지점인 곽지해수욕장이라는 이정표는 썩 중하고 반가웠습니다. 시원하게 탁 트인 해안에 사람도 별로 없었으므로 꽤 너른 햇빛가림막 아래가 모두 우리 차지가 되어도 눈치 볼 일은 없었습니다.

점심 메뉴는 돼지고기양배추 두루치기와 우무를 넣은 오이냉국. 밥 위에 두루치기를 얹어주고 냉국 한 사발이었습니다. 기독교 측이 식사와 집회 인도를 맡은 8월 2일 점심식사 하이라이트는 '쉰다리'라는 후식이었습니다.

통에 가득 담긴 건 분명 막걸린데, 막걸리 아니고 '제주 특산 쉰다리'라는 거예요. 제주 토종 막걸리 이름인가 했더니 알콜이 전혀 들어있지 않은 음료라네요. 급궁금. 제주 어머니들이 여름에 살짝 쉰밥을 버리지 않고 발효시켜 만들기 시작했다는 마실거리에 감탄했습니다. 부러진 갈대를 아주 꺾어버리지 않는 연민은 경에서 새삼 배우는 게 아니고 우리 속에 늘 있어왔던 것입니다. 심지어 멀쩡한 자연을 도륙하고, 온당한 자기주장을 하는 백성을 잡아가두다니, 명백히 범죄입니다.

이튿날 점심식사 지점으로 예상된 지역까지 당겨 걸었기 때문에 행진 나흘째의 점심 휴식은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바다에 뛰어들어 해수욕을 제대로 즐기는 이들이 많았고 일부는 개신교회가 인도하는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가림막 아래 누워 쉬는 이들도 꽤 되었습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이 사온 아이스크림 250개가 휴식을 마쳐가는 순례자들에게 작은 기쁨이 되기도 했습니다.

결코 무관심하거나 찬성 하는 게 아니라는 제주도민들

저도 아이스바 하나를 얻어들고 페이스북을 열었습니다. 점심 이후에 동부해안도로를 걷고 있는 동진 팀 소식을 찾기 위해였습니다. 오전에 비바람이 거세서 종달리에 있는 종달교회에 들어가 잠시 비바람을 피했다는 소식, 그 자리에 김두관 씨가 김재윤 의원과 함께 나타났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제주해군기지 백지화를 위한 선명한 발언도 없이 주민들의 고난 행군을 삐죽 들여다보는 정치인들, 여러 번 등치고 간 빼는 수작에 당하다보니 조금 섬찟해지기까지 합니다. 함부로 부는 정치인 비바람을 피할 교회는 어디일까 하릴없는 질문을 혼자 던져보았습니다.

동진 팀으로 가기 위해 곽지를 떠나기 전에 들은 제주도민 부아무개씨(일도이동 거주)의 말은 제주 도지사와 지도층이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었습니다.

"제주 사람들이 관심이 없고 상황을 잘 모른다는 오해를 받는데요, 제주 지역사회가 좁다보니 앞에 나섰다가 자신이나 가까운 가족친지들이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이 돼서 움츠리고 있을 뿐이지요. 물론 민군복합관광미항이 생기면 경제가 조금이라도 좋아질까 기대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분들조차도 해군기지의 폐해나 민군복합항의 허구를 올바로 공론화하면 생각이 달라지실 거라고 봐요."

"공론화에 책임을 가진 분이라면 누구일까요?"

"우근민 도지사지요. 국회의원들, 공무원들, 대학교수들 이런 분들이 평화의 섬 선포할 때와 전혀 다른 입장을 보이는 걸 보면 어이가 없어요.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게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고 지금은 또 입장을 바꾸는 게 이익이 되나 봐요."

서울 향린교회 임아무개 목사는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을 데리고 첫날부터 계속 걷고 있었어요. 장준하 선생과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에게 "와, 이름이 크구나." 했더니 맞장구치듯 활짝 웃은 아이는 땡볕과 비바람 속의 걷기나 거친 잠자리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힘들 때도 있지만 걸으면서 많은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이 재미있어요."

역시 사람이 힘입니다.

곶자왈 평화학교 아이들의 위문 공연

제주시를 통과하여 동진팀이 있는 월정리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렸습니다. 강정의 몸부림이 아무런 파장도 미치지 않는 것만 같은 제주시, 도심. 눈에 안 보일 따름이겠지요.

동진 팀은 마침 월정해안에서 잠시 휴식 중이었고, 곶자왈 평화학교에 평화 캠프를 온어린이들이 모래사장에 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위문공연이라고 했습니다. 어른들은 항상 아이들에게 위안을 받습니다. 갖은 시름과 피로가 휘발되는 효과는 여름바다를 배경으로 한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들을 때가 최고라고 말해도 되겠더군요.

우리 어릴 때는 전쟁 아닌 것이 평화라고 배웠습니다. 그렇게 알고 살았기 때문에 전쟁 상황만 아니면, 굶지만 않으면, 학비만 있으면, 얼마간 인권을 유린당해도, 권력과 돈줄에 억압당해도, 법리적 왜곡에 휘말려도 죽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 여기고 지냈습니다.

저 아이들은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세계가 가진 위험 요인은 전보다 커졌으나, 파괴력이 가공할 지경에 이른 무기들로 인해 전쟁이란 결코 일어나서 안 될 일이 되었습니다. 도발한 나라도 침공 당한 나라도 피차 죽게 되니까요. 더 큰 대안, 더 예민한 외교력이 필요하며, 전 세계 어린이들이 환경과 생명 존중을 최고 가치로 삼는 교육을 받아야 하는 세상이 왔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전쟁이나 환경오염으로 인한 인류멸망 시나리오가 불현듯 현실화될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강정평화대행진은 어용 언론들이 나발 부는 '강정 주민 사익 챙기기'나 '평화활동가들의 민심 혼란 행위'나 '이념 싸움'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여는 싸움입니다. 더불어 사는 평화의 문. 과거와 현재의 사리사욕에 눈 먼 자들은 그 문을 열지 않습니다.

월정해안에서 김녕까지는 멀지 않았습니다.

구좌 체육관에 도착한 일행이 김치찌개 덮밥을 먹고 수박을 먹고 상처 난 발들을 내보이며 물집을 터뜨릴까 말까하는 무렵에 완연히 저녁이 왔습니다. 손으로 터뜨리지 말고 의료팀에게 치료 받고 약 바르는 게 좋겠다는 말. 당연하고 맞는 말이지요.

강정의 상처, 제주도의 평화도 돈 냄새 묻은 손으로 만지지 말기 바랍니다. 강정 주민들의 삶이 약입니다. 제주 도민들의 오래 된 침묵이 평화의 말로 풀려나오게 해주어야 합니다. 제주해군기지가 백지화되는 날, 그날이 오면, 수년에 걸친 싸움과 미움과 억울함과 원망과 반목이 일거에 사라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모두가 거름이 되어 역사 이래 처음으로 우리는 더불어 사는 평화를 얻어냈기 때문입니다. 유구하게 이어져 내려온 일상의 평화, 자연의 본래, 그것을 지키는 힘이 잘 익은 과실처럼 우리를 통과하여 우리 자손들에게 전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날까지 강정평화대행진은 계속되겠지요. 그날이 오면, 오늘 함께 걸었던 사람들이 '공구리쳐진' 구럼비에 모여앉아 한바탕 크게 울어도 좋겠습니다.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손문상)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백지화를 위한 '강정평화대행진'이 지난 달 29일 시작돼 8월4일까지 제주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강정마을에서 시작해 제주의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져 5박 6일 동안 섬 전체를 일주하는 일정입니다. 현지에서 조정 시인과 손문상 화백이 글과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편집자)

☞ 에서 사진 더 보기

 /조정 시인,손문상 기자(=서귀포)

2012년 7월 23일 월요일

다음 대통령이 덜 친미적이면 덜 위험해질까?


이글은 프레시안 2012-07-23일자 기사 '다음 대통령이 덜 친미적이면 덜 위험해질까?'를 퍼왔습니다.
[정욱식의 '오, 평화'] 다시 제주 해군기지의 의미를 묻는다 (中)

☞다시 제주 해군기지의 의미를 묻는다 (上): 강정마을, '해방구'에서 美 전초기지까지

현재 일정대로 2015~16년 사이에 제주 해군기지가건설될 경우, 이 기지를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의 문제는 미래 정부의 몫이다. MB 정부처럼 '친미ㆍ친일' 정권이 집권하면 제주 해군기지의 전략적 위험성은 대단히 커질 것이다. 그럼 이보다 자주적인 정권이 집권하면 제주 해군기지의 위험성은 사라지게 될까? 그 위험성이 일부 줄어들 가능성은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거의 그대로 남을 공산이 크다.

위험성을 줄일 수 있는 부분은 한국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다. 가령 이명박 정부는 '이어도-독도 함대'를 창설해 제주 해군기지를 모항으로 사용하고, 이어도에 대한 해군 초계 활동도 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계획대로 한다면, 중국의 군사적 맞대응을 야기해 이어도 인근 수역은 분쟁 지역이 되고 한국의 국익에도 치명적인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제주 해군기지를 건설해 이어도에 대한 초계 활동을 할 것인가의 여부는 한국의 선택에 달려 있다. 만약 미래의 정부가 해군 함정 투입이 한중관계에 미칠 위험성을 간파해 군사적 접근을 자제하고 외교적 해법에 무게를 둔다면, 위에서 언급한 우려는 기우로 끝날 수 있다.

미국과 무관할 수 없는 제주 해군기지

문제는 한국의 주권 '밖'에 존재하는 제주 해군기지의 위험성은 정권의 성격과 관계없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한미동맹의 법적ㆍ제도적 측면이다. 앞선 글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규정에 따라 미국은 "적절한 통고"를 하면 "대한민국의 어떠한 항구 또는 비행장에도 입항료 또는 착륙료를 부담하지 아니하고 출입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미국 함정이 제주 해군기지에 입항을 한국측에 통보했는데 한국 정부가 이를 막는다면 SOFA를 위반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는 "SOFA 규정상 미군이 우리 시설을 활용하려면 관련 정부, 외교통상부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SOFA 규정 어디에도 이러한 내용은 없다. 실제로 미국 핵항공모함인 조지워싱턴호는 부산항에 수시로 입항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의 사전 승인을 얻지 않은 상태에서 '통고'만으로 이뤄지고 있다. 미국이 2003년 패트리어트 최신형인 PAC-3를 배치할 때에도, 미군기지인 오산공군기지와 군산공군기지는 물론이고 한국군 기지인 수원비행장과 광주비행장에도 통고만 하고 배치했었다.

둘째는 한미동맹의 변화 추세다. 미국이 한미동맹을 중국을 겨냥한 지역 동맹으로 재편하려는 시도는 1990년대부터 존재했고, 2001년 부시 행정부 정부 들어 본격화됐다. 노무현-부시 정부는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용산기지와 2사단을 평택권으로 이전하는데 합의했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도 합의했다.

그리고 이러한 지역동맹화는 한미 전략동맹을 추진한 이명박 정부 들어 가속화되어 오늘날에는 한미일 3각동맹의 맹아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한미동맹이 이처럼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깊숙이 포섭되고 있고, 그 핵심적인 양상이 해상 미사일방어체제(MD) 체제인 이지스탄도미사일방어체제(ABMD) 구축 및 해양안보(maritime security) 확보에 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에 건설 중인 제주 해군기지가 미국과 무관해지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상대적으로 자주적이고 균형 외교를 지향하는 정부가 등장하면 이러한 추세를 되돌릴 수 있지 않느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지역동맹화는 김대중 정부 때 시작되어 노무현 정부 때 본격화되었다는 사례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미국의 대중국 봉쇄전략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초당적 합의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점에서 미국이 이러한 전략을 대폭 수정할 가능성도 극히 낮다. 중국 내에서 급격한 국력 신장에 바탕을 둔 민족주의 경향이 강해지고 미국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군비경쟁의 양상을 보더라도 미중 관계가 패권 경쟁에서 협력으로 대전환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제주 해군기지 완공이 예정된 2015년 이후에 패권 경쟁이 더욱 가속화될 우려가 크다. 이 시기를 전후해 미국은 중국을 겨냥한 최신예 핵항모인 '제럴드 포드호'(USS Ford)를 실전배치할 예정이다. 중국도 2015~2020년 사이에 첫 항모인 '바라크호'를 실전 배치할 예정이다. 또한 미국은 ABMD를 위해 이지스함을 추가로 건조하고 있는데, 2015~2020년 사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집중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미중간에 동아시아 패권 경쟁이 완화될 가능성보다 격화될 우려가 크다는 것을 예고해주는 대목들이 아닐 수 없다.

셋째는 아무리 자주적인 정부라고 하더라도 한미동맹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과의 마찰이 심해지면 크게 두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는 한국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라크 파병에서부터 주한미군 재배치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노무현 정부의 대미정책을 '공미형(恐美形) 친미주의'라고 부를 수 있었던 까닭이다.

또 하나는 한미동맹이 국내 정치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한미관계 악화는 보수진영의 정치 공세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노무현 정부 때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일본 민주당의 하토야마 정권이 대등한 미일동맹을 주창하면서 미국에 도전했다가 단명 정권으로 막을 내린 것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지난 20일 부산 해군기지에 입항한 미국 해군의 버지니아급 핵추진 잠수함인 하와이호(7천800t)가 21일 오후 정박해 있는 모습. ⓒ연합뉴스

주권적 선택의 비주권적인 결과

엄연한 주권 국가이자 세계 10위권의 국력을 보유한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 위와 같이 지적하면 기분은 나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한미관계와 이에 종속된 국내 정치의 냉엄한 현실이다. 강대국과의 동맹관계는 안보를 보장받는 대신에 정책 자율성, 즉 일부 주권의 양보를 골자로 하기 때문이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다를 것'이라는 호기를 부리기에 앞서 한미관계의 정확한 본질을 깨달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제주 해군기지의 미국 이용 문제를 한국의 주권 영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SOFA 및 그 모법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 개정의 핵심 골자는 미국 군사력의 유출입과 관련해 '사전 동의'를 명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 이후 SOFA 규정 하나를 바꾸는 것도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해왔다. 또한 미국은 자국 군사력 운용에 타국이 간섭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 참여정부가 미일동맹처럼 '사전 협의'를 추진했다가 실패했던 사례도 있다. 한국이 한미동맹의 파기까지 각오하지 않는 한, '사전 동의'를 추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의미이다.

결론적으로 제주 해군기지의 위험성은 정권의 성격이나 변화와 관계없이 존재할 공산이 크다. 그 위험성의 핵심은 미국이 해군기지를 사용하고자 하는데 한국이 반대하면 한미관계에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고, 거꾸로 미국이 사용하게 되면 한중관계에 일대 파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라는 주권적 선택이 가장 비주권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여부'는 우리가 자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다음 글에서 상세히 다루겠지만,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한국의 전략적 위험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면서 남방 해역의 안보를 튼튼히 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문재인과 안철수 등 야권의 유력한 대선 후보들이 절차적인 문제는 인식하면서도 '제주 해군기지의 필요성에는 동감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는 것에 대해 보다 신중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 필자 정욱식 블로그 '뚜벅뚜벅' 바로가기
 * 필자가 (프레시안)에 연재한 글을 엮어 만든 책 (핵의 세계사)가 발간되었습니다. ☞ 책 소개 바로가기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2012년 5월 17일 목요일

해군기지 건설되면 이 은어들은 어디로…


이글은 프레시안 2012-05-17일자 기사 '해군기지 건설되면 이 은어들은 어디로…'를 퍼왔습니다.
[포토] 봄철 맞아 강정천 오르는 은어들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조성봉 독립영화 감독은 지난해 4월부터 온라인 커뮤니티 '구럼비야 사랑해'(☞ 바로 가기)에 '진달래산천의 눈'이라는 게시판을 개설하고 해군기지 건설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강정마을과 구럼비 해안의 아름다운 풍광을 사진으로 남겨 왔다.

16일 조 감독은 구럼비 해안에서 강정천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은어들의 사진을 게시했다. 학문적인 연구가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강정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구럼비 해안이 은어의 겨울철 보금자리라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 구럼비 앞 바다의 바닥이 모래로 되어 있어 겨울철 은어가 머물기에 적합한 환경이라는 것이다.

조 감독의 허락을 구해 은어들의 모습을 싣는다.



▲ '냇깍'이라고 불리는 강전천 끝자락. 봄철이 되면 은어가 강을 거슬러 오른다. ⓒ조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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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란기를 맞은 흑로가 은어를 사냥하고 있다. ⓒ조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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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방문하면 더 많은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조성봉 독립영화감독(=사진)

2012년 5월 6일 일요일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과 동아시아의 평화


이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04-04일자 기사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과 동아시아의 평화'를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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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4일~2월 6일, 일본 효고현 이타미시에 있는 육상자위대 이타미 주둔지에서 미국 육군과 육상자위대가 공동훈련(演習) '야마 사쿠라 6'을 했다. 훈련이라고는 하나,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다. 자위대원 4500명과 미군 1500명이 참가했다. 이 훈련은 1982년부터 해왔는데, 오스트레일리아군이 처음 참가한 이번 훈련에는 주목해야 할 점이 두 가지 있다.
먼저, 중국과 북한의 일본 본토상륙작전이 상정됐다. 이 사실이 공개적으로 발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훈련에 사용된 지도는 당연히 실물이고 중국이 '한난', 북한이 '발해'라는 코드네임으로 각각 쓰여 있다. 이 두 나라가 '한반도 유사'시 주한 미군을 밀어내고 이어서 일본해(동해)에 면한 이시카와와 돗토리현을 '침공'하는 걸로 돼 있다.

일본의 본토상륙작전 대비 훈련

또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 (미-일 양국 군의) 대응태세 강화'를 목적으로 한 훈련에서 작전 전체를 지휘하는 통합임무부대 사령부를 처음으로 주한 미군 제8 육군사령부(주한 미 8군)가 담당했다.
지금 일본과 미국에는 중국이 최대의 가상적국이고, 거기에 대처하기 위해 한-일 두 나라가 어떤 형태로든 공동의 군사 행동·작전을 세우도록 압박받는 듯한 현상을 감지할 수 있다. 실제로 훈련이 끝난 2월 6~8일 이타미 주둔지에서 미 육군과 해병대, 육상자위대의 고위간부 모임인 '제21회 시니어 레벨 세미나'가 열렸는데, 참가 간부들은 "한-미-일 3개국과 다국간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일의 중요성에 인식을 공유했다"고 한다.
한-일 군사관계를 살펴보면, 2010년 3월 한국 해군 초계함 '천안'의 침몰사건과 같은 해 10월 연평도 포격사건을 계기로 밀접한 제휴를 맺으려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2010년 7월 한-미 양국 군이 일본해(동해)에서 실시한 합동 군사훈련 '인빈서블 스피릿'(Invincible Spirit)에 일본 해상자위관 4명이 옵서버로 참가했다. 그해 12월 일본 주변에서 실시된 미-일 공동통합훈련 '킨스워드'(Keen Sword)에는 한국군이 옵저버로 파견됐다. 2011년 1월 서울에서 열린 일본 기타자와 도시미 방위대신과 한국 김관진 국방장관의 한-일 국방장관회담에서 다국간 군사협력에 불가결한 물품역무상호제공협정(ACSA)체결을 위해 협의했으며, 군사정보 포괄보호협정(GSOMIA)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해가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일본은 당면한 위협 대상으로 북한보다는 중국에 무게중심을 두게 되면서도 다케시마(독도) 문제와 역사 인식 등의 장애물을 안고 있어서, 한국과 군사협정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 또 중국이라는 '공동의 적'에 대항하는 제휴가 한국과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자위대는 일본의 오키나와와 난세이제도에 군사력 배치를 강화하고 있으나,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계획과는 관련이 없다. 그 때문인지 일본에서 제주도에 대한 보도를 접할 기회가 적고, 대체로 관심도 희박하다.
지난해 (방위백서)(최신판)에는 한국에 대해서 '방위력 정비' 항목에 "2010년 2월에는 한국의 첫 기동부대가 될 제7기동전단의 창설식이 부산항에서 열렸다"는 등의 기술이 들어 있으나, 제주도를 둘러싼 움직임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본의 보수·우익 세력이 읽고 있는 (산케이신문)이 지난해 9월 1일 인터넷판에 올린 '대중국 경계의 요충 제주도 해군기지 계획, 반대 격화로 정치문제화'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는 "동중국해에 면한 제주도 기지는 해양 권익 확대를 노려 해군력 증강을 계속해온 중국을 견제하는 의미가 있다"고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앞으로 '중국의 위협'을 소리 높여 외치는 세력이 제주도 기지 문제에 관심을 보일 가능성은 있지만, 일본에서 구체적인 중국의 군사적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중국 해군이 제1열도선을 넘어 원양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일본의 방위청과 우파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제1열도선이란, 일본 규슈를 기점으로 오키나와와 대만, 필리핀, 보르네오섬에 이르는 선을 가리키며, 중국 해·공군의 작전구역이다. 한국의 제주도는 이 선 안에 들어 있고, 중국이 타국들과 영유권을 놓고 다투고 있는 남사·서사 군도도 마찬가지다. 최근 일본에서는 제1열도선에서 오키나와 근해를 경유한 중국 해군의 태평양 진출뿐만 아니라 제1열도선 안의 중국 해군 증강에 대한 비난과 경계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일본 해상자위대도(그리고 한국 해군도) 자국의 경제성장에 따라 해군력을 강화해온 만큼 중국이 그 때문에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더욱이 공해를 항해해서 외양(원양)으로 나가는 것은 위법이 아니다.
게다가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눈앞이요 코앞인 황해에서 종종 한-미 합동훈련을 하고 있다. 거대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기동함대의 접근을 중국과 북한이 '무력 위협'으로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의 '중국위협론'자들도 인정하듯이, 제1열도선 안에 미군까지 출동해 중국군과 대규모 전투를 벌일 가능성은 대만에 중국이 침공을 감행할 경우로 거의 한정되지만, 그들은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중국위협론과 제주 해군기지

예전부터 중국이 가장 우선해야 할 군사행동은 대만 침공 작전일 것이라 여겨왔으나, 2010년 6월 중국과 대만은 자유무역협정에 해당하는 '경제협력기본협정'을 체결했다. 현재 대만 기업의 중국 진출은 2만6천 건이고, 그곳에서 일하는 대만인 사원은 약 100만 명에 이른다. 대만 수출의 40% 이상이 중국으로, 해외 투자의 80%가 중국으로 간다. 고미 사령관이나 군사전문가들이 반드시 언급하는, 중국이 대만 앞바다에 미사일을 쏜 1996년의 대만 위기는 시대가 격변한 지금 이미 지난 시절의 옛이야기가 돼버렸다.
지난 1월 14일 대만 총선에서 최근 급속한 중국-대만 경제관계 강화를 추진해온 마잉주 총통이 이끄는 국민당이 승리했다. 앞으로 대륙과의 경제 일체화(통합)를 더욱 심화시키려는 대만을, 중국이 경제상의 대타격과 국제적 비난과 고립을 각오하고라도 '병탄'하리라 보는 건 매우 무리한 설정이다.
따라서 주변국들과 많은 영토 문제를 안고 있지만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대규모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희박한 이상, 일본과 한국도 군사 외 수단으로 대립을 해소하고 그것을 통해 평화적 질서를 새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쉽게 이해받지 못하는 배경에는 한-일 양국이 각기 군사동맹을 맺은 미국 때문에 사고와 정책상의 제약을 받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월 '미국의 세계적 리더십을 유지하는 21세기 국방의 우선과제'라는 제목의 새 군사전략을 발표했다. 군사전략에서 "앞으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면서 중국을 지칭해 "가상적국을 억지하고, 그들의 목표 달성을 막기 위해 (미국의) 접근과 행동의 자유가 위협받는 지역에 대해서도 미국은 전력(戰力)을 투입할 능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제1열도선 안의 중국 영해에서도 미군은 군사행동을 전개하고 중국 해군을 공격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본은 독자적 안전보장과 외교정책을 추진할 의사도 능력도 결여한 채 대미 종속을 감수하기 때문에 미국의 대중국 방침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자위대도 미군 보충부대로서의 성격이 강해, 제1열도선과 연관된 오키나와·난세이 제도에서의 동향은 미군의 대중국 포위 전략으로 규정되고 있다.
제주도 해군기지도 미국 전략의 울타리 바깥일 수 없다. 정부와 국방부 쪽이 어떻게 주장하든 한-미 상호방위조약상의 주둔군지위협정(SOFA)이 있는 한, 군항 건설 뒤 미군이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상정하긴 어렵다. 오히려 오키나와에는 대규모 미 해군기지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이미 한국 정부가 받아들인 '주한 미군 전략적 유연성'의 견지에서 제주도 해군기지가 그 규모부터 자국의 '자주국방' 틀을 넘어 동중국해와 황해를 시야에 넣고 있는 사세보(佐世保)에 버금가는 세계적 전략거점이 되는 걸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글로벌 나토'와 동아시아의 평화

이미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미국에 가서 오바마 대통령과 회견했을 때 한-미 동맹을 '미국 태평양 지역 안전보장의 초석'이라 규정하고 글로벌 규모의 과제에 공동대처하기 위해 군사협력의 틀을 넘은 '21세기 전략동맹'으로 심화·발전시킬 것을 확인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일본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2003년 5월 미국을 방문해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회견했을 때, 미-일 동맹이 진정으로 글로벌한 '세계 속의 미-일 동맹'임을 확인했다. 그때를 전후해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가담한 다국적군 함선에 대해 일본 해상자위대가 인도양에서 급유활동을 벌이고 △이라크전쟁 때 항공자위대가 쿠웨이트에서 바그다드로 가는 미군의 군사수송을 담당하며 △육상자위대가 이라크 국내에 주둔한다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미군의 글로벌 군사행동으로의 자위대 편입이 비약적으로 강화됐다. 한국도 일본과 같은 대미관계를 구축하는 걸까.
이 대통령은 2011년 2월 언론 좌담회에서 "한-미 관계가 강화되면 될수록 한-중 관계도 강화된다"고 발언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도 2001년 6월 부시 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미-일 관계가 좋아질수록 타국과 관계도 좋아진다"고 말했다. 양자의 유사성을 느낄 수 있는데, 미국과 관계를 우선하면 자연히 다른 나라들과 관계도 별 탈 없이 호전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근거 없는 낙관론일 것이다.
다만 중국은 미국 국채 1조 달러 이상을 보유한 채 미국의 재정을 떠받치고, 월가에서 몇조 달러를 운용하는 미국 금융업계의 큰 고객이 돼 있다. 그런 중국에 대해 '5년간 수출 배증, 200만 명 고용 창출'을 내건 오바마 정권이, 유망한 중국 시장을 희생해서라도 정면으로 군사대결을 벌이거나 과도한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는 쪽을 선택하는 사태는 상정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미국과 동맹하는 한-일의 대중국 관계가 향후 급속히 험악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란 나라는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자를 선출하는 예비선거전에 나선 론 폴 하원의원이 적절히 인정했듯이 "선제공격과 타국 내의 파괴공작, 군사점령, 고문, 암살을 공공연히 자행하는 침략 국가"이고, 그 정부는 "끊임없는 전쟁과 타국의 자원을 지배하기 위한 제멋대로의 침략을 통해 이익을 탐해온, 일부 세력에게만 봉사"하는 나라다.(선거용 비디오 (Mutually Assured Destruction vs Mutually Assured Respect)에서 인용) 미 군사분석가 릭 로조프가 지적하듯이 미-일, 한-미 군사동맹은 '글로벌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라고도 할 수 있는, 그물망처럼 둘러친 "미국이 전세계의 모든 장소에서 군사행동을 하기 위한 군사 블록"의 일환이나 다름없다. '동아시아의 평화 창출'이라는 목적을 위한 이런 미국 주도의 '글로벌 나토'에 한-일이 편입되는 게 유익할까.
오히려 한-일은 지금 아시아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미-중 헤게모니 싸움과는 일선을 그어야 하지 않을까. '억지'나 '균형'을 명분으로 내세운 상대국의 군사력 강화에 똑같은 수법으로 대응하고, 위협에는 위협으로 응수한 이제까지의 '동맹국'적 수법은 재고돼야 한다. 그것은 중국과의 군비 확장 경쟁과 적개심을 증폭시키는 결과만 초래하며, 진정한 의미의 자국 안전 확립과 그를 위한 외교력 형성에는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오키나와·난세이 제도의 자위대 강화와 마찬가지로,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도 동아시아에서의 평화 구축이라는 과제에 대한 현명한 회답이 될 수 없다.

*글•나루사와 무네오 일본 언론인. (週刊 金曜日) 편집부 기획위원.
  번역•한승동 sdhan@hani.co.kr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