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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6일 금요일

생존권 외치는 시민을 범법자 만드는 국가


이글은 프레시안 2012-1`0-26일자 기사 '생존권 외치는 시민을 범법자 만드는 국가'를 퍼왔습니다.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下) 제주해군기지와 평화권

10월 19일에 서울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서강대학교법학연구소 인권법센터, 서울지방변호회, 평화권 연구모임이 공동 주최한 평화권 원탁 워크숍 '평화권의국제적 논의와 한국에서의 수용 가능성'은 한국에서는 아직은 사람들 사이에 익숙하지 않은 개념인 '평화권'을 주제로 한 작지만 의미 있는 모임이었다.

평화운동의 건강성

평화권 워크숍 참석자들이 '평화권'을 놓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8시간 동안 지켜보면서 받은 인상은 한마디로 진지함과 건강한 도덕성이었다. 돌이켜 보면 한국의 시민사회는 지난 몇 년 동안에 SKY(쌍용, 강정, 용산) 사태를 겪으면서 국가권력이 보여온 답답하리만큼의 완고함과 무지막지한 폭력으로 말미암아 스트레스와 분노, 그리고 때로는 좌절감마저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발전적으로 승화시켜 '평화권' 논리를 한국사회에 접목시키려는 워크숍에서 평화운동의 건강성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분노를 거둔 것은 아니다. 마무리 토론시간에 참석자 가운데 한 사람인 송강호 (강정마을 평화활동가)는 "안보사업이라는 이유로 국가는 마을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해도 사법부는 전혀 주민들의 의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정들고 기억 속에 간직되어온 고향마을을 있는 그대로 지키려는 마음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국가권력의 폭력성을 질타했다.

강정마을 활동가의 외침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을 온몸으로 막으려다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고 나온 그는 다음과 같이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정부는 군사기지를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국가를 위해 고통과 피해를 감수하는 것이 국민으로서의 의무임을 강조한다. 국가는 평화를 원하는 이들에게 애국심이 부족할 뿐 만 아니라 종북 좌파라는 사회적인 낙인까지 찍는다. 이들은 평화를 잃고 국가보안법의 희생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불안감까지 느끼게 된다"

평화권 워크숍 토론의 사회를 맡은 박주민 변호사의 다음과 같은 말은 평화권 논의의확대를 통해 이 땅에 평화가 뿌리내리길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평화는 우리의 권리다. 우리는 인권으로서 평화를 본다. 우리가 평화권을 이야기하는 순간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안보 논리들이 깨지고, 그 안보 담론에 민중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그렇기에 계속 평화권을 논의해나가고 공론화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프레시안)은 평화권 워크숍에서의 주요 발제 내용을 모두 3회에 걸쳐 다루고 있다. 이미 소개한 △평화권이란 무엇인가?(세션 1) △평화권 및 평화운동 해외 입법 및 판례(세션 2)에 이어 △제주해군기지와 평화권, 평화운동(세션 3)에서 그동안 제주 강정마을 현장을 거듭 오가며 해군기지 건설을 막는데 힘써온 3명의 평화활동가들이 발제한 내용을 간추려 본다.

▲ 제주해군기지와 평화권을 주제로 한 워크숍 발제자들. 왼쪽부터 하승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 이대훈 성공회대 NGO대학원 연구교수, 최정민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박주민 변호사(사회). ⓒ김재명

■ 민주주의 관점에서 바라본 시민불복종운동(하승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

"이제는 한국사회에서 법은 왜 존재하고 시민들은 왜 법을 지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가 된 듯하다. 왜냐하면 법의 제정과 집행, 해석이 사회의 상식과 일치해야 하는데, 그것과 어긋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 앞에서 시민의 생명과 평온, 자유를 논할 기회도 계속 제한을 받고 있는데, 이것은 법을 어기는 문제가 아니라 법과 법이 충돌할 때 내가 어떤 기준과 원리를 따를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박은식과 함석헌이 남긴 말씀

▲ 하승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 "제 몫을 하지 않는 입법, 행정, 사법부가 헌법정신을 파괴하고 있다. 헌법정신을 살리는 건 시민불복종이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막기 위한 평화운동도 이런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김재명

"한국에서는 법이 상식을 반영하지 않을 뿐 아니라 법이 상식을 규정하고 금지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생명이 위협받고 재산을 침해당하며 자유를 위협받고 있다. 더구나 기득권층은 법망을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부정을 저지르고 범죄가 드러나고 대부분 사면을 받는다.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 시민의 상식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고 사법부의 정치화 경향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어 왔다"

"역사학자 박은식(朴殷植)은 1919년 3ㆍ1운동을 '세계 혁명사의 신기원'이라 칭했고, 사상가 함석헌(咸錫憲)은 3ㆍ1운동 이전이 '정치가의 역사, 지배자의 역사, 영웅주의의 역사'였다면, 그 이후는 '씨의 역사다. 자주(自主)하는 민(民)의 역사'라고 말했다. 우리의 헌법정신이 3ㆍ1운동을 따른다면 그것이 포괄하는 정치의 규칙은 '질서'가 아니라 '자유'이고 '준법'이 아니라 '정의'이다. 일상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불의에 저항하는 것이 새로운 정치이고, 그런 정치를 펼치면서 시민들이 공적인 자유와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권력의 임무이다. 3ㆍ1운동을 뒤따르는 4ㆍ19이념도 마찬가지이다"

"사법부의 정치화 경향이 문제"

"제주해군기지에 대한 반대도 공무집행방해나 퇴거 불응, 집단재물손괴, 일반교통방해, 공동주거침입, 집시법위반과 같은 개별 법률이 아니라 헌법정신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 불의한 지배와 결정에 맞서 자치권을 실현하려는 운동, 공개적으로 자유와 정의를 지향하는 운동, 자신의 주권을 실현하려는 저항운동은 개별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없고, 헌법을 기준으로 공론화하는 과정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도 왜 법률이 헌법정신의 실현을 가로막고 외려 헌법정신을 실현하려는 다양한 활동들을 처벌하고 있을까? 첫째, 입법부가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입법활동 과정에 시민들의 의견보다 오히려 행정부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 둘째, 행정부가 헌법정신을 고려하지 않는다. 2009년 10월 2002년 9월부터 2009년 7월까지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내린 87개의 법률 중 44건을 정부가 제안했다. 이는 의원입법 위헌 비율(13건)보다 3배나 많다. 셋째, 사법부의 정치화 경향이다.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 이라크 파병, 양심적 병역거부 판결이 그러하다. 이처럼 제 몫을 하지 않는 입법, 행정, 사법부가 헌법정신을 파괴하고 있다. 헌법정신을 살리는 건 시민불복종이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막기 위한 평화운동도 이런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장애인들의 생존권

2001년 7월, 장애인들이 '장애인도 버스를 타고 싶다'란 문구를 걸고 서울역, 대학로, 광화문에서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장애인들은 버스에 몸을 묶고 전경과 몸싸움을 벌여야 했다. 이동권이 생존권이라는 장애인들의 처절한 목소리는 직원과 경찰의 손에 가로막혔고, 장애인들은 재판정에 서야 했다. 검사는 징역형을 구형했고 판사 역시 전동차 운행을 방해했다며 유죄판결을 내렸다. 주장은 정당하지만 방법이 틀렸다는 사법부의 판결이다. 하지만 만약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외치며 거리로 나서지 않았다면, 버스와 철도에 몸을 묶고 싸우지 않았다면, 누가 장애인의 이동권에 관심을 가졌을까?"

"한나 아렌트나 위르겐 하버마스 같은 학자들도 법치국가라면 시민불복종을 필수적인 정치문화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독일의 헤센주나 브레멘 주, 베를린의 헌법 등은 헌법을 어기며 행사된 공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개인의 권리이며 의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시민불복종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시민이 일시적으로 가지는 권리가 아니라 민주사회의 핵심적인 정치권리이다. 특히 한국처럼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사회에서는 시민불복종의 권리가 더더욱 중요하다.

"시민불복종을 처벌하는 것은 심각하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일이다. 한국사회의 문제점인 정치의 사법화 현상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불복종은 정치적인 운동인데, 정치의 사법화는 사건에서 운동의 의미를 제거하고 개인의 행동만을 문제 삼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그런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그것을 통해 드러내려 했던 공공성을 다루지 않고 행위의 준법성만을 재단하는 법원은 시민불복종의 의미를 이미 평가절하 한 상태에서 판결을 내리기 때문이다"

평화권 파괴하는 경제논리

"한편으로, 한국 사회에서 평화로운 삶을 파괴하는 전쟁을 정당화시키는 근거는 더 이상 질서나 안보가 아니라 경제이다. 전쟁국가의 명분도 경제이고 그 결정이 옳다고 믿는 우리의 명분도 경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전쟁이 이명박 정부의 등장을 가능하게 했고 4대강 사업을 가능하게 했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도록 세뇌 당해온 '한강의 기적'이야말로 평화를 파괴하는 근원이다. 공장의 착취와 억압, 생태계의 파괴는 전쟁과 무관하지 않다. 토건국가의 다른 이름이 바로 전쟁국가이다"

"제주해군기지를 둘러싼 논쟁 역시 안보의 형식을 취했지만 실제로는 지역개발을 둘러싼 막대한 이권과 무관하지 않다. 관련된 정보들이 처음부터 충분히 공개되고 지속적인 논의과정을 밟았다면, 즉 민주적인 과정을 밟았다면 시민불복종이 등장할 가능성은 낮아졌을 것이다. 정부가 그런 과정을 밟지 않았기에 발생한 문제이고, 시민들의 저항은 법을 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유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함이었다. 지금처럼 법원의 일방적인 결정이 내려진다면, 시민의 상식을 더욱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고 더 이상 설 자리를 없게 만든다. 그러면 남은 건 법원이 가장 두려워할 질서의 철저한 붕괴 밖에 없다. 시민불복종은 그 최후단계를 예방하는 마지막 보루이다"

■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강정마을 시민/주민들의 평화권 (이대훈 성공회대 NGO대학원 연구교수)

"강정 해군기지 건설저지투쟁에서 강정 주민들과 평화를 기원하는 시민들은, 정부의 부당한 결정, 부당한 절차, 폭력적 강행을 저지하고자 노력해왔다. 여기서 강정 주민들과 일반 시민이 국가도 군도 지방정부도 침해할 수 없는 어떠한 기본적 권리를 갖고 있는가를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제기되었다. 그렇게 한다면 이러한 노력과 요구의 정당성이 갖는 인권적 기반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이와 비슷한 국내와 국외의 비슷한 처지에 있는 많은 사람들과 더 깊이 연대하는 근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연대와 국제연대의 출발점

▲ 이대훈 성공회대 NGO대학원 연구교수 "해군기지 건설을 밀어붙이는 정부의 매도와 공격은 강정 주민들과 마을공동체에 이차, 삼차 피해를 입히고 지속적인 트라우마를 남기는 것으로서 법과 인권에 기초해야 하는 민주국가에서 너무나 부당하고 충격적인 일이다." ⓒ이대훈

"이미 지금까지 주민들과 평화운동가들의 목소리로 수없이 표현되고 요구된 것 속에서 현재 국제적으로 형성중인 평화권의 근거와 요소가 어떤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보다 분명하고 통합적인 인권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더 큰 정당성과 효력을 기질 뿐만 아니라, 향후 국가의 잘못된 행위를 통제하는 기본규범으로서 형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분명치 않은 국가안보 주장을 명분으로 시민의 권리를 마음대로 헤치는 국가와 군의 전횡을 막는 민주적 통제의 원리로서 정립할 수 있을 것이며, 또 더 확산된 국내적 연대, 그리고 더 높은 수준의 국제연대를 가능케 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 국제인권기구를 포함한 다양한 유엔 기구에서는 이른바 평화-인권-개발(발전)의 삼각주제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었다. 일반적으로 서방진영은 자유권적 인권을 핵심 의제로 삼는데 동의했으며, 사회주의 국가들은 국제평화 문제를 그리고 이른바 남반부 개도국들은 개발(발전)이 핵심 의제라고 주장했다. 공동체가 임의로 침해할 수 없는 불가침의 가치를 권리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인권의 접근이기 때문에 평화-인권-개발(발전)이 삼각주제에 관한 논쟁은자연스럽게 발전권(right to development)과 평화권(right to peace)에 관한 논의로 이어졌다"

강정주민의 말과 행동이 평화권의 근거


"2012 생명평화대행진의 일환으로 지난 10월 4일 제주 강정마을에서 열린 '공감 Talk' 주민간담회에서 제기된 강정 주민의 목소리와 행동 속에서 평화권의 근거와 요소를 파악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현 시기 평화운동의 주요 당면과제인 제주 해군기지건설 저지운동과 연관시켜, 구체적 실천에 기초하여 주민과 시민의 권리를 인권규범화 △인권으로 규정된 평화의 권리는 국가와 군의 안보관련 행위를 시민이 통제하는 이정표 △평화권이 국내외에서 평화권 논쟁에 개입하면서 이를 국내적으로도 또 국제적으로도 보편적 인권의 하나로 정립될 수 있도록 기여 △전쟁, 전쟁준비, 군사와 안보의 과잉을 통제하는 평화를 위한 사람들 간의 연대 등이다"

"강정마을 강동균 마을회장을 비롯한 마을 주민 약 20여명이 참석하는 '공감 Talk' 간담회에서는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된 논란과 공방에서 주민들이 가장 부당하게 또는 폭력적이라고 느낌 점과 강정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무언인지를 두고 의견 교환이 있었고, 이러한 경험과 생각을 권리로 표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먼저 권리로 표현된 것은 다음과 같다. △후손들에게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강정마을의 권리이다. △ 옛날 모습, 일강정을 지켜내고, 자연환경과 사람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 사람과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사는 모습이 우리의 권리이다. △국민을 탄압하지 말고 협상문화를 키우는 것이 우리의 권리이다. △주민들의 동의를 받는 것이 인권이다. △주민 동의 없이 무리한 국책사업을 공권력으로 해결하려는 게 문제다. △법과 원칙이 바로 서야 인권이 보장된다. △국가에서 추진하는 모든 일은 모든 국민이 다 만족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반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의 작은 외침을 외면하지 말라. △법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저희들을 종북좌파로 몰지 않는 것이 인권이다"

살던 대로 평화롭게 살 권리


"이 발언들을 '인권의 언어'로 번역해 보면, 살던 대로 평화롭게 살 권리, 전쟁에 휩쓸리지 않을 권리, 기본적 존엄성과 권리를 인정받고 보호받을 권리, 주민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바에 따라 살 권리,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와 피해를 구제받을 권리, 부당한 공권력 행사를 통제하고 저항할 권리, 국가안보의 명분과 정책이 인권의 기준에서 조절되고 제약되어야 할 필요, 공동체의 문화와 전통을 유지할 권리, 공동체 주변 환경을 보존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살 권리, 경제활동과 권리를 침해받지 않을 권리, 의사표현의 자유, 결사집회의 자유, 행복추구의 자유 등이다. 현재 국제적으로 논의되는 평화권의 주요 내용이 거의 대부분 표현되고 주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 당사자 그리고 다른 시민들이 갖는, 침해할 수 없는 보편적 인권의 맥락에서 어떤 권리를 향유해야 하는지 밝히는 것은 현재 주민들이 겪은 심각하고 체계적인 인권 침해를 구제하고 보상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국가와 사회의 폭력화를 미연에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정부와 군이 부당한 결정, 부당한 절차, 폭력적 방법으로 제주 강정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데 대해, 주민들은 이러한 사안이 주민의 의사에 기초하여 결정해야 하며 법과 민주주의 원리에 기초한 정당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평화적인 방법으로 정당하게 반대의 뜻을 표시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정당한 노력과 의사는 체계적으로 무시되었으며 심지어 그 의견을 듣고자 노력하기도 전에 국책과 안보를 해치는 매국적인 또는 파괴적인 기도로 매도되고 공격당하는 일이 너무나 많았다"

"이러한 매도와 공격은 주민들과 마을공동체에 이차, 삼차 피해를 입히고 지속적인 트라우마를 남기는 것으로서 법과 인권에 기초해야 하는 민주국가에서 너무나 부당하고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다. 이러한 국가 폭력은 현재 적절히 통제되지 않고 있으므로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민주적 절차와 합의과정보다 이러한 매도와 폭력적 진압이 앞서는 사회에는 미래가 있을 수 없다. 평화의 권리를 보호하고 이행하는 것은 정부의 중요한 의무이다. 정부가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시민의 안전과 권리 즉 인간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야기된다"

인간안보 바탕으로 국가안보 추진해야


"공동체의 운명을 그 구성원 스스로 결정할 권리는 가장 고결한 인권에 속한다. 전쟁에 휩쓸리지 않을 평화적 생존권은 전쟁준비와 위협 생성에 관련된 일에 휩쓸리지 않을 권리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주민들은 주민들과의 사전 협의 없는 일방적 군사기지 건설과 같은 전쟁준비와 그로 말미암을 안보 위협에 휩쓸리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이는 다른 인권침해를 미연에 예방하는 인권이다. 평화적 생존권을 인권으로 지켜야 하는 이유는 시민의 안위, 즉 인간안보를 바탕으로 국가안보를 추진해야 하는 시대에 당연한 것이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시민의 알 권리를 제약하고 정보를 조작하는 일은 지난 시대의 유물이며 인권 침해의 일환이다. 폭력과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시민이 진실된 정보를 접할 권리를 가지며, 강정 주민 역시 정당한 알 권리를 행사하기 위하여 그리고 민주적 의사결정을 위하여 해군기지 추진과 관련된 진실된 정보에 접할 권리를 가진다. 알 권리는 시민의 평화권의 중요한 일부이다"

"특히 평화의 권리에서 갈등을 예방하기 위한 무분별한 군비증강에 시민의 평화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 보장이 중요하다. 이는 평화권의 일환으로서 군축의 권리이다. 제주 해군기지 추진과 같이 인근 국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군비증강 사안에 대해서 시민은 불복종할 권리를 가진다"

■ 전쟁범죄에 저항하려 법률 어기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 (최정민/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오늘 나는 이 자리에서 제주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투쟁이 어떤 인류애를, 오랜 논의 끝에 이뤄낸 우리의 어떤 원칙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원칙을 방어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어떤 불복종 행동을 했는지 그리고 얼핏 민주주의적으로 보이는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결여되어왔는지, 따라서 우리의 행동이 세상을 어떤 혼란에 빠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주장할 것이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환경적인 부분, 안보부분, 경제부분, 외교부분, 절차적 민주주의를 해치는 부분 등 많은 지점에서 사회적 논란을 가져왔고 현재 그 출구가 보이지 않을 만큼 대단히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하지만 이 국책사업에 반대하는 우리들이 느끼는 정부 측의 주장은 생각보다 간단하며 시민들의 동의를 얻기에는 대단히 허술하다는 것이다"

제주가 하와이 같이 된다?

▲ 최정민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하와이가 제주의 미래라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하와이의 물은 해군기지에서 방출한 수많은 발암물질과 방사성 폐기물로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오염되었다. 제주가 하와이처럼 되면 지하수를 비롯한 처참한 환경파괴가 따를 것이다." ⓒ김재명

"몇 달 전 새누리당 박근혜 씨는 '만약 우리가 민군복합항으로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한다면 15만 톤 크루즈가 드나들 수 있게 되어 제주가 하와이같이 될 수 있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전, 현직 고위 관료들과 생각을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마치 하와이가 기지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 살기 좋은 섬이 될 수 있었다는 주장으로 들린다. 하지만 이 발언에 열 받아 제주를 방문한 하와이의 활동가들이 들려준 하와이의 진실은 이와는 전혀 다른, 실로 충격적인 것이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인용해 보겠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하와이의 비극이 바로 지하수가 완전히 오염되었다는 사실이다. 하와이 사람들은 강정처럼 되길 원한다. 하와이 사람들은 다시 깨끗한 물을 갖길 바라고 있다. 하와이의 물은 해군기지에서 방출한 수많은 발암물질과 방사성 폐기물로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오염되었다"

"하와이는 오염지역, 수영도 못한다"

"과거에는 진주항이 오아후 섬 전체의 훌륭한 식량공급처였다. 많은 강줄기들이 아주 잔잔한 진주만으로 흘러 들어왔다. 깨끗한 민물이 잔잔한 바닷물과 만나는 지점은 풍부한 해산물 공급처가 되었다. 강정마을의 구럼비 해안이 깨끗한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보기 드문 다양한 생태계를 만든 것과 비슷하다. 과거 진주항에는 굴과 해산물이 넘쳐났다. 그러나 오늘날 진주항 부근 바다와 육지에는 749개의 오염지역이 산재해 있다. 이는 미해군 발표내용이다. 만일 진주항에서 수영을 했다가는 병에 걸릴 것이다. 아직 물고기가 조금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먹었다가는 병에 걸릴 것이다"

"하와이가 제주의 미래라고 한다면 결국 우리 손으로 뽑은 정부 고위관료들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제주가 하와이처럼 되면 관광산업이 부흥할 수도 있지만 그것의 대가는 지하수를 비롯한 처참한 환경파괴가 될 것이고 그나마 그 수입도 대부분 그 섬에 살고 있는 지역주민들이 아니라 대기업에게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 기지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전 세계 민중들과의 연대를 통해 저희가 파악하고 있는 진실이다"

"제주 해군기지, 사실상 미군기지로 활용"

"지금까지 정부가 줄기차게 부인해왔던 제주 해군기지는 미군기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한국과 미국이 맺고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 '상호 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 제10조 1항 '합중국에 의하여, 합중국을 위하여 또는 합중국의 관리 하에서 공용을 위하여 운항되는 합중국 및 외국의 선박과 항공기는 대한민국의 어떠한 항구 또는 비행장에도 입항료 또는 착륙료를 부담하지 아니하고 출입할 수 있다'에 의거하여 제주 해군기지는 사실상 미군기지로 활용될 것이 분명하다"

"얼마 전 대정부 질의를 통해 민주통합당 장하나 의원실은 흥미로운 자료를 한 가지 제시하였다. 지난 2010년 해군에서 발간한 '08-301-1 시설공사 공사시방서'에 따르면 제주해군기지는 애초 설계단계부터 그 기지를 이용하게 될 대상선박을 한국군이 보유하지도 않은 핵추진항공모함(CVN-65급)을 전제로 하였고, 이러한 설계적용은 주한미군해군사령관(CNFK)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평화옹호자들이 주장했던 내용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정부가 내세웠던 안보상의 근거나 제주 경제발전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는 설득이 애초부터 거짓이었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핵항공모함이 드나들 목적으로 애초부터 기획되었다는 것은 매우 치명적이다. 북한이 살 길은 스스로 핵무기를 포기하고 개혁·개방을 통해 국제사회와 협력하는 것"이라며 북한의 핵개발에 가스통을 들고 분개하는 한국이 미군의 핵무기를 우리 집 앞마당에 들여놓는 것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 비핵 확산의 허브를 자처하며 핵안보 정상회의를 개최했던 것 아니었던가"

"현행법 불복종은 정부와 사법부 탓"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국제법적, 헌법적, 그에 따르는 수많은 국내법적 가치와 절차를 훼손하고 있으며, 이를 가만히 지켜보는 것은 고의로 법을 어기거나 조롱하려는 위정자들에 협조하고 그들에게 위선을 행할 수 있는 근거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이런 판단 아래 우리는 처음부터 비폭력적인 원칙을 가지고, 정부의 판단은 한국 시민들의 동의를 얻어내지 못한 비민주적인 결정이며 평화의 시대에 역행하는 처사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활동하였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공사를 막기 위해 현행법에 불복종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됐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저지하기 위한 시민들의 행동은 불법이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 시민으로서 주어진 권리를 행사한 것이다. 법은 기본적이고 자연적인 정의와 도덕의 기초 하에 세워져야 합니다. 그렇지 못했을 때 그 합법성, 법에 대한 존경심을 상실하는 것은 그 어느 누구의 책임도 아닌 사법부 자체의 책임이다"

 /김재명 프레시안 기획위원, 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 겸임교수

2012년 10월 23일 화요일

국가폭력에 내몰린 평화권을 생각한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10-22일자 기사 '국가폭력에 내몰린 평화권을 생각한다'를 퍼왔습니다.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上) 국가 안보냐 인간 안보냐

올해 2월 중동 팔레스타인 현지 취재과정에서 유대인 정착촌을 반대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만났을 때 제주도 강정마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강정 주민들이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까닭은 국가안보 논리를 내세운 해군기지가 그들의 평화적 생존권(평화권)을 위협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유대인 정착촌을 반대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논리와 같은 맥락이다.

이스라엘은 '국가안보'란 이름 아래 잔혹하고도 거친 국가폭력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해왔다. 이른바 SKY(쌍용, 강정, 용산)도 마찬가지다. 해군기지 건설로 삶의 터전에서 밀려날 처지에 놓인 제주 강정마을 사람들, 쌍용자동차에서 폭력적으로 밀려난 해고 노동자들, 경찰과 용역폭력배들에게 희생된 용산 재개발지역 원주민들은 인간다운 삶을 평화적으로 누릴 권리를 빼앗긴 채 힘든 나날을 보내왔다.

SKY(쌍용, 강정, 용산)가 던진 메시지

우리 인간은 평화적 생존권 및 평화로운 상태를 위협하는 어떠한 외부적 강제조치도 거부할 권리를 지녔다. 평화적 생존권은 다름 아닌 인간안보의 권리, 안전한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권리이다. 국가가 안보라는 이름아래 저지르는 불법적, 반인권적 행위에 대해서 모든 인간은 양심적 거부와 불복종의 권리를 가진다.

태어난 땅에서 인간다운 삶을 평화적으로 누릴 권리를 지님은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이나 제주 강정마을 사람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 용산 재개발지역 원주민들에게 예외일 수가 없을 것이다. 국가안보도 중요한 가치이지만, 그 이름으로 인간안보와 평화적 생존권이 유린된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다.

한국에서의 평화권 논의 첫모임

그동안 국제사회에서는 유엔을 중심으로 평화권(평화적 생존권)을 국제인권법으로 정립하자는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져 왔다. 그렇지만 국제사회에서조차 평화권이 아직 국제인권규범으로 굳건히 자리 잡지 못한 실정이다. 한국에서도 이른바 SKY(쌍용, 강정, 용산) 사태를 거치면서 평화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중이다.

10월 19일에 서울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원탁 워크숍은 '평화권'을 주제로 열띤 논의가 이뤄졌다. (서강대학교 법학연구소 인권법센터, 서울지방변호회, 평화권 연구모임 공동 주최)을 주제로 한 이 모임에서는 △평화권을 연구해 온 법학자들 △현장에서 평화운동을 해 온 시민활동가들 △평화권에 관심이 있는 일반 시민 학생들이 함께 8시간에 걸쳐 진지하고도 깊이 있는 논의를 이어갔다.

본격적인 발제에 앞서 이석태 변호사(참여연대 공동대표)는 모두발언에서 "평화권 연구에 몇번 참여하기도 했지만, 규모나 발표하는 사람들을 보니 포괄적이고 형식을 갖춘 것으로는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 평화권 워크숍은 평화권을 주제로 삼은 국내 첫모임이라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

평화권 워크숍은 크게 세 세션으로 나눠 진행됐다. 세션 1에서는 '평화권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가 '평화권에 대한 국제적 논의와 추세'를,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평화권의 우리 헌법에서의 인정 가능성'을 각기 발제했다.

세션 2에서는 '평화권 및 평화운동 해외 입법 및 판례'를 중심으로 이경주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일본),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영국과 미국),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독일의 사례를 발표했다.

세션 3에서는 '제주해군기지와 평화권, 평화운동'이란 주제로 하승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이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시민 불복종 운동', 이대훈 성공회대 NGO대학원 연구교수가 '제주해군기지와 평화권', 최정민 전쟁 없는 세상 활동가가 '제주해군기지 건설 저지를 위한 평화운동은 정당한가'를 각기 발제했다. 이어 오영중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이사), 송강호 박사(개척자들, 강정마을), 이보라 보좌관(장하나의원실)을 중심으로 전체토론 시간을 가졌다.

은 평화권 논의가 지닌 현실적 의미와 시의성을 고려해, 모두 3회에 걸쳐 평화권 워크숍에서 다뤄진 발제내용의 주요부분을 소개한다.

■ 이석태 변호사 (참여연대 공동대표)

▲ 평화권 워크숍에서 인사말을 하는 이석태 변호사 겸 참여연대공동대표 ⓒ김재명

"분단 국가이고 핵 문제도 있는 우리나라는 평화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따지고 보면법률적으로 현재 한국 전쟁 후에 현재까지 전쟁이 종료되지 않았다. 우리 헌법 10조에 모든 인간은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하고 있다. 행복추구권은 권리로 인정되고 있다. 행복추구권이 평화권보다 더 추상적이다. 행복추구권의 여러 권리 중 하나가 평화권이라고 본다"

"행복추구권은 활발하게 논의가 되는데 왜 평화권은 논의가 잘 되지 않을까? 이는 서구의 전쟁 중심적 사고 때문이다. 이를테면 미국은 모든 정책, 모든 국제 외교와 규정이 반전(反戰)과는 반대되는 입장에 서있다. 서구는 자기네가 다른 나라의 평화를 교란해 왔으므로 평화권이 절실하지 않겠지만 우리의 입장은 다르다. 평화권을 발전시켜나가야 할 지식인들의 의무가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도 대표적인 평화권 침해의 문제다. 평화권이 인정되면 병역거부는바로 해결될 것이다. 아직까지 그게 진척이 안되는 것은 평화권이 갈 길이 멀다고 볼 수 있다. 오늘의 모임을 바탕으로 평화권에 관한 깊이있는 연구와 논의가 활성화 되기를 기대한다"

■ 평화권에 대한 국제적 논의와 추세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한반도의 안보 현실은 평화권에 대한 관심과 수용을 더욱 필요로 한다" ⓒ김재명

"국제인권 공동체 사이에서 인권은 크게 네 가지 종류로 분류되고 있다. 시민적·정치적 권리(1세대 인권, 일명 자유권),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2세대 인권, 일명 사회권), 연대권(3세대 인권), 그리고 정보화·세계화 시대의 도래에 따른 새로운 인권(4세대 인권)이 그것이다"

"평화권(Right of peoples to peace)은 발전권과 함께 대표적인 3세대 인권으로 파악되고 있다. 평화권은 이상적이고 모호하게 보이면서 구체적인 범주와 이행 방법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런 평화권 논의가 한반도에 상륙하는 것은 분단 현실과 민주화에 대한 일차적 관심으로 극히 최근의 일이다"

인간안보 잣대로 평화 바라본다

"평화권은 평화적 생존권으로도 불리는데, 평화롭게 살 인간의 권리로 정의할 수 있다. 이 정의는 매우 상식적으로 들리지만, 여기에는 평화권을 정의함에 있어 '평화'에 대한 이해와 평화를 권리로 인정하느냐의 문제가 담겨 있다"

"오늘날 평화는 자연보존, 인간과 자연의 공존, 심성의 화평 등의 차원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그 개념의 중심에는 여전히 인간 생명의 보호, 인간 자체에 대한 존중이 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평화를 인간안보(human security)에 대한 위협의 중단 및 위협 기제의 근절로 파악할 수도 있다"

국제사회, "평화권은 생래적 권리"

"평화권이 처음부터 하나의 인권이라는 인식이 확인되고 인정된 것은 아니었다.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 국제무대에서 평화권이 처음 운위되었을 때의 반응이란, 현재 한국에서 평화권에 대한 생경한 반응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평화권은 적어도 국제인권 무대에서는 그 필요성과 주요 내용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하나의 '생래적 권리'로 인정되고 있다"

"1984년 11월 12일 유엔 총회는 '평화권 선언'(Declaration on the Right of Peoples to Peace)을 채택하였다. 선언은 '지구상 모든 인류는 신성한 평화권을 갖는다'는 원칙을 확인한 후, 대중의 평화권 향유를 '각국의 근본적 의무'로 선언한다. 선언은 평화권 실행을 위해 '전쟁 위협의 금지' 특히 핵전쟁 위협 금지를 거론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사람의 마음 속에 평화를 심는 것'을 모토로 전후에 설립된 유네스코(UNESCO)는 냉전 해체기에 들어 '평화문화'를 강조하고 나섰다. 냉전 해체가 세계평화가 아니라 내전과 대량학살로 이어지면서 전쟁문화를 극복하기 위해 평화문화에 대한 교육·홍보가 절실하다고 보았다. 유네스코는 평화문화 확산을 꾀하며 탈냉전기 분쟁해결에 기여하고자 하였고, 그 일환으로 평화권을 제기해 평화권이 국제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될 수 있도록 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였다.

"유네스코에서의 평화문화 캠페인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 모임과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총회에서의 논의 및 결정으로 확산되어 갔다. 그 연장선상에서 평화권에 대한 관심도 높아 져갔다. 특히 평화운동, 지방자치단체 및 의회 차원의 평화권에 대한 지지 및 정책화 노력은 국제사회에서 평화권 논의가 확산되는 데 촉매로 작용하였다"

한반도에서 평화권이 지닌 의미는

"한반도의 안보 현실은 평화권에 대한 관심과 수용을 더욱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평화권을 소극적 차원에서 침략 전쟁을 비롯한 폭력에 가담하지 않고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권리로, 적극적 차원에서는 그런 소극적 평화를 저해하는 구조적, 문화적 폭력을 거부하고 지속가능하고 정의로운 삶을 영위할 권리로 말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평화권이 주는 더 의미 있는 시사점은 적극적 측면의 평화권이다. 여기에는 군비보유의 배제, 국가에 의한 평화 저해 행위(무기수출 등)의 배제, 양심과 종교의 자유에 따른 군사활동 불참의 권리, 군사적 목적의 기본권 제한(재산 압류, 표현의 자유 제한 등) 금지, 전쟁위험(군사적 긴장 혹은 갈등)에 처하지 않을 권리, 군사안보정책으로 인해 시민의 인권과 근본적 자유가 침해받지 않을 권리, 그와 관련한 국가 정책이 투명하게 진행되고 거기에 시민이 참여할 권리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이는 주한미군 및 기지 운용, 정부의 무기도입사업, 군사기지 이전 및 건설사업, 대북정책, 해외파병정책 등을 재평가할 계기를 제공해주고 있다"

■ 평화권의 우리 헌법에서의 인정 가능성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신자유주의와 재벌 같은 거대자본권력이 구성하는 수많은 억압들은 또 다른 평화의 적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김재명

"우리 헌법학계는 평화헌법를 이해함에 있어 거의 황무지상태이다. 연구성과도 거의 없어 주로 교과서에서의 서술에만 의존하여 정리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나 이 또한 거의 형식에만 그치고 있는 상태이다. 대체로 헌법학계에서는 평화와 전쟁을 직접 대비시키면서 우리 헌법이 선언하고 있는 평화는 침략전쟁의 부인 정도의 수준에서 한정하고 있다"

이라크 파병과 평택 미군기지 문제

"대체로 평화권이 헌법의 틀과 연관 지으면서 논의되는 것은 두 가지의 경로-이라크파병 및 미국의 해외미군재배치계획(Global Posture Review: GPR) 등을 계기로 한 반전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평화권 논쟁과 북한인권과 관련한 보수진영의 주장에 대한 대항담론적 성격의 평화권논쟁-를 거친다. 전자는 미국을 한 극으로 삼는 세계체제 속에서 미국의 세계전략에 대항하는 방식으로서의 반전운동이 계기가 되어 이를 '안보'의 담론권력을 국가가 독점하는 것에 저항하면서 국민이 주체가 되는 평화권의 관념을 인권의 범주로부터 도출하고자 하였다"

"(한국에서의 평화권) 논의들이 채 무르익기도 전에 평화헌법의 구체적 규율내용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먼저 나왔다. 노무현정부의 이라크파병결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결정(헌재 2004.04.29, 2003헌마814)은 아직 평화헌법의 의미에 대한 헌법학계의 고려조차 이루어지지 아니한 상태에서 나온 최초의 사법판단이었다"

평화권 침해 아닌 통치행위

"이 사건에서 청구인측은 이라크전쟁은 유엔헌장에 입각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우리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침략전쟁에 해당하기 때문에 '국군파견은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5조 제1항에 위반되며, 나아가 이런 침략전쟁에 국군사병을 파견하는 것은 징병제를 취하는 우리 실정에서 군복무중인 자나 군입대 예정자나 군대에 복무중인 자녀를 가진 부모들의 평온은 흔들리게 될 것이고, 이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우리 헌법의 규율범위와 함께 행복추구권으로 형용되는 평화적 '생활권'의 인정여부를 심판의 대상으로 주장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통치행위의 이론을 빌어 판단을 그 판단을 기피하였다"

"2005년에 발생한 미군기지 평택이전을 둘러싼 파동은 헌법재판소의 또다른 소극성을 보여준다((헌재 2006. 2. 23. 2005헌마268). 헌법재판소는 평택으로의 미군기지이전이 그 내용만으로는 장차 우리 나라가 침략적 전쟁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으며 따라서 청구인들의 평화적 생존권은 침해될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건을 각하하였다. 여기서 평화적 생존권의 개념은 상당히 한정적인 개념으로 규정된다. 즉, 헌법재판소는 평화적 생존권의 개념을 '전쟁과 테러 혹은 무력행위' 또는 '그것이 발생할 구체적 위험'으로부터의 자유에만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나마 헌법재판소의 이런 태도조차 곧 부정되고 만다. 2007년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일환으로 진행된 전시증원연습을 두고 청구인들은 이 연습은 '북한을 상대로 한 특정 작전계획에 따른 선제적 공격훈련이 명백하며' 따라서 '헌법 제10조 및 헌법 제37조 제1항으로부터 인정되는 평화적 생존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전시나 전시에 준한 국가비상 상황에서의 전쟁준비나 선전포고 등 행위가 침략전쟁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은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해당하여 사법심사를 자제할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면서, 평화적 생존권의 존재마저 부정해 버렸다"

누가'평화의 적'인가

"보기 나름으로는, 헌법재판소가 평화적 생존권의 존재를 부정하고 나선 것은 아직은 채 법리가 구성되기도 전에 평화 및 평화권의 문제를 성급하게 사법화한 전술적 판단미숙에 그 원인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헌법재판소의 보수성·소극성을 감안할 때 국제사회에서도 아직 구체적 규범으로 실정화되지 못한 권리를, 그것도 사법적 판단보다는 정치적 판단이 우선하는 연대권의 성격을 권리를 최소한 6명 이상의 재판관이 인정할 가능성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리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평화권 내지는 평화적 생존권의 규범화가 완결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그 원인은 평화에 대한 인류의 열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인류의 생명과 삶에 대한 위험들이 나날이 모습을 달리하며 우리에게 가해지고 있음으로 보인다. 한때는 전쟁이 평화의 적이었으나 이제는 테러 혹은 반테러가 평화의 적이며, 신자유주의가 산출하는 수많은 배제와 제거의 권력들이 새로운 평화의 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48년체제가 제도화한 냉전체제가 우리의 평화를 위협하는 한편으로 재벌 같은 거대자본권력이 구성하는 수많은 억압들은 또 다른 평화의 적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김재명 프레시안 기획위원. 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