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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2일 목요일

"가상 시나리오보다 실사구시를"


이글은 레디앙 2011-12-22일자 기사 '"가상 시나리오보다 실사구시를"'을 퍼왔습니다'
[기고] "미중 한반도 이해관계 드러나…북미대화는 유훈"

‘문제적 인물’은 그가 살아 있을 때보다도 죽음과 죽음 이후에 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곤 하는 것 같다. 여기서 ‘문제적’이라 함은 특정의 가치판단을 개입시킨 표현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 사람의 삶 자체가 역사적 과정 속에서 많은 문제를 제기해왔으며, 수많은 역사적 문제들과 얽혀 있음을 의미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또한 그의 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마찬가지로 그러하다.
사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뉴스로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1994년 7월 故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필자가 다니던 학교 학생회관 앞에 붙었던 모 학생정치조직 명의의 ‘경축 독재자의 죽음’이라는 대자보, 격렬했던 조문파동, 대학가 분향소 설치 논란, 박홍 당시 서강대 총장의 주사파 파동과 공안사건들로 이어지던 어두운 기억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그 정도까지 극단적인 논란의 소용돌이에는 빠지지 않은 점은 1990년대 초부터 단속적으로 진행되어온 남북 화해, 교류협력 흐름의 성과라고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아버지 김일성 주석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미 ‘역사화’된 인물이다(그가 살아 있었을 때조차도). 그는 40년 가까운 세월을 북한 체제 권력의 핵심에 있었다. 또한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후에는, 당국가체제(party-state system)라는 표현이 부족해 ‘수령제’와 같은 수식어를 붙이곤 하는 북한 체제 ‘최고지도자’로서 군림해왔다.
따라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과 ‘죽음 이후’를 분석하고 전망하며 대응하는 시야는 조의, 조문과 같은 문제에 국한될 수 없다. 또한, 생전의 김정일이라는 인물과 그가 구축하고 이끌어온 체제에 대한 호불호와도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가상 시나리오보다는 실사구시를
예컨대, 조의, 조문의 문제는 이미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정부가 조금만 유연성을 발휘하면 큰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는 선택지들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용열차가 정지해 있었는지 달리고 있었는지가 국정원과 군 정보당국에게는 꽤 중요한 정보로 여겨지는 것 같다.
만약 그것이 정보당국들의 무능력을 질타하는 여론을 의식해 (우리는 이 정도까지 알고 있었다는 것을 각인시키려는 듯) 서로 경쟁하며 정보를 흘리는 것이라면, 볼썽사납지만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기에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런 정보가 북한의 급변사태 징후를 염두에 둔 발언들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토록 핵심적인 정보를 정보위 국회의원들을 통해 언론에 공개하는 것도 그렇고, 특히 국정원 측의 정보와 군 정보당국의 정보가 서로 엇갈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원세훈 국정원장의 12월 20일 국회 정보위 발언과 김관진 국방장관의 12월20일 국회 국방위 발언).
북한 급변사태론(혹은 붕괴론)은 특히, 200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과 와병을 즈음해서 다시 힘을 얻은 바 있다. 이를 계기로 개념계획으로 존재해오던 한미연합 ‘작계5029’를 공식화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참고로 ‘작계5029(정확하게 얘기하면 개념계획5029, CP-5029)’는 북한 급변사태를 상정한 북한 지역에 대한 개입과 안정화 작전에 대한 계획이다. 이중 일부는 올해 2월 한미연합 키리졸브 훈련 시 시험 적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정부가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을 마냥 탓할 수만은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이 공표되었을 때, 워치콘 단계를 격상시키는 등의 조치도 비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공공연하게 북한의 급변사태나 붕괴를 상정한 군사훈련이나 군사적 조치가 취해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생각해봐도 북한을 자극해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문제이다.
북한 급변사태가 어떤 근거 하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인가도 문제이다. 북한의 리더십과 체제의 불확실성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까지 이렇다 할 불안정과 동요가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 김정은을 중심으로 하는 북한의 집단지도체제는 장의위원회 명단 발표와 참배 모습, 중국의 반응 등을 종합해 볼 때 그동안 준비해왔던 ‘권력승계 프로세스(succession process)’를 착실히 밟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중론이다.
결국, 오히려 북한의 새로운 권력체제의 운명은 이후 전개되는 내외적 요인들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성급한 결론을 내리려고 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적확한 인식에 기반 한 판단이라기보다는, 자칫 현실을 희망적 사고로 재단하게 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북한의 권력승계 과정을 둘러싼 국제정치
우리는 북한의 내적 문제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갖고 있지 않다. 설사, 무리한 개입을 시도한다고 할지라도 그 결과가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것은 세계사가 확인해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북한과 북한 리더십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정책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외적 환경을 조성하고 그를 위한 신뢰 조성의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염두 해 두어야 할 문제들이 있다. 우선, 북한과 미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전에 고위급 대화를 진행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3차 북미 고위급 대화가 예정된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급서’를 맞이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북한과의 대화에 대해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연합뉴스 12월21일자). 북한의 입장에서는 애도 기간과 ‘국상’이라는 변수로 인하여, 미국만큼 적극적일 수는 없을지라도 대화의 모멘텀은 유지해 갈 가능성도 있다.
특히, 북미 대화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과 같은 사업으로 볼 수도 있으며, 또한 북미 대화를 시작한 배경이 남북 관계의 단절과 6자회담의 교착국면 속에서 전기를 마련하기 위한 조처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6자회담 재개와 같은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질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한다. 또한, 6자회담이 재개된다고 해도 ‘비핵화’를 위한 논의의 진전이 가능한가는 더 미지수다.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가 김일성 주석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지속된 북미 대화의 성과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시에 이미 공고한 권력기반을 구축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1974년 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의 후계자 공인만을 고려해보더라도 20년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배경에서 나름의 ‘정치적 결단’이 가능했을 것이다.
후계자 김정은의 경우는 이제 갓 후계자라로서 권력의 전면에 등장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북한의 새로운 리더십이 ‘정치적 결단’에 이르기에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미 간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가능성의 공간은 새롭게 열릴 수도 있다. 그것이 당장 한반도 문제의 ‘일대전환’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그동안의 경색된 정세를 돌파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관계’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북한 문제’에 관한 한 ‘관계’라는 것이 서로 상대가 존재하고 복수의 행위자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구성되어진다는 점을 망각하곤 한다.
중국과 미국,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라는 공통의 이해관계
북한과 중국의 관계도 북미 관계와 연동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대중 접근, 대중 의존에 대해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들이 나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위기’를 맞은 북한이 이 같은 경향성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러한 우려는 과장된 측면도 있지만 단순히 근거 없는 시나리오로 치부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으로 전락한다든지, 혹은 ‘종속’될 것이라는 등의 표현은 한미 관계의 프리즘을 통해 북중 관계를 바라본다는 점에서, 혹은 북중 관계를 너무 단순화해서 바라본다는 점에서 불편한 점이 있지만, 북한이 남쪽과 서쪽으로 문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라고 촉구하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북한의 대중 접근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남북 교류협력 사업의 축소, 단절, 그리고 사실상의 남북관계의 단절이 계속되었고, 6자회담은 한 번도 열리지 않고 있다. 이런 조건 하에서 북한이 경제적 측면에서나, 외교안보적 측면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는 것은 예상된 결과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게 남쪽과 서쪽으로 문을 열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된다면 그런 우려는 기우로 끝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오히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중국과 미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북한의 권력승계 국면을 맞아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오래간만에 일치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과 미국이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라는 이해관계에서 일치를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중국과 미국이 발표한 성명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한반도의 안정이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미중 양국이 한반도의 현상변경보다는 현상유지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북한의 핵무장과 핵보유국으로서의 등장도 현상변경에 해당할 수 있다). 이러한 미중 양 강대국의 이해관계는 우리의 이해관계와는 절반 정도밖에 일치하지 않는다.
비핵화도 중요하지만, 평화협정의 체결을 통한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도 중요하다. 또한, 전쟁의 부재도 중요하지만 국지적인 무력충돌을 예방하고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라는 점은 여러 차례의 경험을 통해 절실히 실감하고 있다. 이산가족 문제를 비롯한 인도적 문제도 우리에게는 중요한 과제이다. 장기적인 목표이기는 하지만, 남북의 경제공동체 건설과 통일 같은 목표도 갖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맥락 속에서 북한을 상대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구축이라는 큰 틀에서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우리에게는 평화와 통일이라는 목표가 있다. 설사 급격하고 격렬한 체제변동이라고 할지라도 북한의 체제변동이 바람직스럽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들은 그 과정에서 치러야 할 비용-정치적, 경제적 비용 뿐만아니라 인간적 비용(human cost)까지를 포함해서-에 대해서 언급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우리가 한반도 문제에 대해 목적의식적 접근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할 때, 평화는 포기할 수없는 목표이다. 또한, 평화가 전면 전쟁의 부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의 남북관계 상황을 고려해 보면, 정부의 운신의 폭은 그리 넓어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단기적 성과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인도적 지원의 재개와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조치와 군사훈련 등의 자제만으로도 신뢰회복의 메시지는 보낼 수 있다. 이것이 어쩌면 현 정부가 다음 정부에게 남겨주는 유일한(!) 긍정적 유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정부만의 몫은 아니다. 시민사회와 다양한 민간부문의 사려깊은 대응이 동반되어야 할 부분이다. 현 정부의 정책전환을 촉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요구에 부응하지 않는다면 비판하고 심판하는 몫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2011년 12월 22일 (목) 16:15:50 이준규 / 메이지가쿠인대학 국제학연구소

[사설] 한-중 간 심각한 외교 부재, 전면 재검토해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2-22일자 사설 '[사설] 한-중 간 심각한 외교 부재, 전면 재검토해야'를 퍼왔습니다.
이상징후를 보여온 한-중 외교관계의 실상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을 계기로 그 적나라한단면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 사망 발표 뒤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 정상과 긴급통화를 했는데, 유독 중국과만 불통이었다. 우리 쪽에서 후진타오 주석과의 통화를 여러 차례 요청했는데도 중국 쪽이 회신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중 외교장관끼리의 통화도 20일 밤에야 이뤄졌다.
이는 정상적 외교관계로 보기 힘들다. 중국은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자 6자회담 의장국이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 사망으로 앞날을 점치기 어려운 북한의 최대 맹방이자,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후견국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중국과 핫라인도 개설돼 있지 않았고 긴급상황에서 정상 간 통화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한-중 관계가 이처럼 비정상적인 관계로 악화한 것은 우리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 일변도의 외교정책을 강화하면서 미국의 대중국 압박 정책에 동참했다. 중국으로서는 이런 한국이 달가울 리 없다. 김 위원장 사망과 관련해 후진타오 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가 대거 조문을 하면서도 한국에 대해서는 이처럼 냉랭하게 대하는 것은 미국 일변도인 우리 정부의 외교적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천안함 사태 때와 최근 미-중 간 대미얀마 외교 신경전에서도 보듯 지금 중국은 미국의 중국 봉쇄 전략에 매우 민감하게 대응한다.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그동안의 대중 외교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물론 중국의 태도도 적절치 않다. 중국이 최우선 목표로 설정한 북한의 안정적 관리는 미국과의 관계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남북의 한 당사자인 한국을 빼놓고 한반도 안정을 얘기할 수는 없다. 중국도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바란다면 좀더 유연한 자세로 한국과 대화하고 협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2011년 12월 20일 화요일

외교안보라인, 김정일 사망 낌새도 못챘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1-12-19일자 기사 '외교안보라인, 김정일 사망 낌새도 못챘다'를 퍼왔습니다.
[뉴스분석] ‘김정일 사망’ 직후 MB는 일본 방문, 대북 정보망 심각한 허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이라는 한반도의 중요사건이 발생한 직후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를 비운 채 일본을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은 한반도 정국에 가장 중요한 정보라고 할 수 있는 북한 최고 책임자의 사망 소식을 인지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가 김정일 위원장 사망소식을 전했는데도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한 것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현재로서는 이명박 정부가 북한 조선중앙TV를 통한 공식 발표가 있기 전까지 김정일 위원장 사망 사실을 감지하지 못했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한 시간은 12월 17일 오전 8시30분이다. 조선중앙TV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17일 오전 8시30분 현지 지도의 길에서 극병으로 서거했다”고 보도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한지 몇 시간 지나 일본 방문을 위해 한국을 떠났으며 1박2일간 일정을 마무리 한 뒤 서울로 돌아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19일 오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과 관련, 청와대에서 김황식 국무총리, 김성환 외교통상부장관, 김관진 국방부장관, 원세훈 국정원장 등과 NSC를 주재하고 있다.

이와 관련 헤럴드경제는 19일 이라는 기사에서 “이 대통령은 17일 낮 12시 30분에 한국을 떠나 일본에서 1박 2일의 셔틀외교를 펼친 뒤 18일 오후 3시 한국에 도착했다. 결국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음에도 국가 원수가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1박 2일 동안 비우고 있었던 셈”이라고 보도했다.

전병헌 민주통합당 의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보다 충격적인 것은 '정말 청와대가 사흘간 몰랐는가'라는 것"이라며 "유사시 대통령의 존재를 감안할 때 사망을 알았다면 (일본 방문) 일정이 당연히 조정됐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선택 자유선진당 최고위원은 “보도에 의하면 사망한지 50시간 이틀이 지나서 발표되었다. 이틀 동안 우리 정부가 이 사실을 낌새도 못 챘다고 한다면 우리 대북 정보망에 심각한 허점이 있다. 안보망에 중대한 허점이 있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 경색에 따라 ‘핫라인’이 끊겼다는 지적을 받기는 했지만, 심각한 ‘정보 부재’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북한이 12월 19일 특별방송을 할 것으로 알려진 뒤에도 정부쪽에서는 ‘북·미 회담’과 관련한 내용이 될 것으로 예측하다 화들짝 놀랐다.
이명박 정부의 위기대응 체계에 큰 구멍이 뚫려있다는 게 다시 한 번 확인된 장면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19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한 자리에서 “국민들에게 아무 동요 없이 경제활동에 전념해 달라”고 말했다고 안광찬 국가위기관리실장이 전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7일 오전 8시30분 과로로 열차에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7월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김 위원장의 '5월11일공장'을 시찰 모습.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사건은 한반도 정세에 있어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중요한 변수가 될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불안과 걱정을 잠재우는 ‘정치 리더십’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남북관계 급변과 같은 상황 변화가 오지 않도록 관리하고 국민 불안을 덜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유정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이날 긴급최고위원회의 결과 브리핑을 통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서에 조의를 표한다. 북한 지도부는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가 악화되지 않고 평화가 안정적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노력해줄 것을 당부한다. 미국과 중국 등 국제사회에도 북한사회의 안정과 한반도 평화 조성 노력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김유정 대변인은 “정부는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국가안보에 한 치의 빈틈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남북관계에 불필요한 긴장과 갈등이 조성되지 않도록 지혜롭게 대처해야할 것”이라며 “민주통합당은 이번 사태로 남북기본합의서와 6.15공동선언, 10.4선언의 정신과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초당적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우위영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6.15 공동선언과 10.4선언의 공동선언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소식에 애도를 표명한다. 그 어느 때보다 남과 북 주변당사국들이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진보신당은 이날 성명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에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면서 “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인해 한반도 긴장이 강화되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가 이번 계기를 통해 기본적 안보 태세를 갖추는 것을 넘어 국민의 과도한 불안감을 유발해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을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국회는 이날부터 외교통상통일위원회 국방위원회 정보위원회 등 관련 상임위원회를 열어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두아 한나라당 원내대변인은 “여야 원내대표가 전화통화로 통외통위, 국방위, 정보위, 행안위 등 관련 상임위를 오늘부터 개최하는 것으로 입장을 정했다. 다만 형식이 상임위 인지 간담회인지, 장소, 시기, 정부 관계자 참석 여부(장관, 차관, 실무자) 등을 각 상임위 별로 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정일 사망, MB는 김영삼 반면교사 삼아야


이글은 대자보 2011-12-19일자 기사 '김정일 사망, MB는 김영삼 반면교사 삼아야'를 퍼왔습니다.
[공희준의 일망타진] 한반도의 냉엄한 현실과 북한 급변사태 대비해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작스러운 사망은 그동안 우리가 너무나 내부적인 정치적 화두들에만 자폐적으로 몰두해왔음을 통렬하게 일깨워주었다. 특히 이른바 ‘생활정치 제일주의’에 광신적으로 매몰된 ‘축소지향형 정치집단’의 득세는 대한민국이 마치 북유럽 여러 나라들과 같은 안온하고 안전한 국제정치적 환경을 누리고 있는 것과 같은 어처구니 없는 착시현상을 불러온 것이 사실이다.

이명박 정권 등장 이래로 남북관계는 심각한 퇴행을 거듭하였다. 김영삼 정권이 집권할 당시에 벌어졌던 상황과 놀라울 만큼 대단히 흡사하다. 더군다나 한반도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안정을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북한 핵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김영삼 정부 당시에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였고,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숨졌다. 김일성이 사망하자 한국 정부는 대책 없고 비이성적인 북한 붕괴론에만 매달리다가 한반도의 위기를 오히려 심화시켰다. 이명박 정권은 김영삼 정권의 전철을 답습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매우 크다.

다행히도 그때는 김대중이라는 불세출의 거인이 한반도 정세가 전면적 파국으로 빠지지 않도록 튼튼한 안전판 역할을 훌륭하게 맡아주었다. 허나 현재는 무능하고 식견 짧은 김영삼의 후예들이 집권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들마저 장악하고 말았다. 문재인과 유시민의 대북관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그것에 가까울지, 김영삼 전 대통령의 그것에 가까울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노무현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정권 수뇌부가 가장 먼저 착수한 정책은 대북송금 특검 수용이었다. 역대 수구냉전 정권들과 마찬가지로 정권의 이익을 위해 남북관계를 거리낌 없이 희생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사상 최초의 남북정상 회담을 성사시키고, 남북관계의 발전에 획기적 전환점을 마련한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무거운 역사적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정치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들마저 한반도의 냉엄한 현실과 북한의 급변사태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수수방관하면서 당장의 인기와 지지율에 급급해 친노세력 식의 얄팍한 ‘내수용 정치’에만 몰입한다면 우리 민족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을 외면하는 정치인과, 통일이 필요 없다고 믿는 무리가 진보진영의 미래와 개혁세력의 운명을 주도하는 엽기적인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 민주당 재건의 길은 남북관계 정상화의 길에서 찾아야 한다. 민주당이 해체되었다고 평화롭고 정상적인 남북관계까지 덩달아 아예 완전히 해체당해야만 하겠는가? 
글쓴이는 정권탈환의 본진 누리집(http://soobok.or.kr/) 운영자입니다.

‘김정일 사망’을 계기로 방송에서 사라진 이슈들


이글은 미디어스 2011-12-20일자 기사 '‘김정일 사망’을 계기로 방송에서 사라진 이슈들'을 퍼왔습니다.
디도스·이상득 여비서·BBK 관련 보도는 사라져

19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직후, 대부분 언론은 ‘김정일 사망’ 소식을 전하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언론이 현 시점에서 꼭 보도해야 할 사안들이 방송에서, 지면에서 사라졌다. 특히, 방송 뉴스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약 2시간 동안 쟁쟁하게 펼쳐진 특집 메인뉴스 그 어느 곳에서도 디도스 사건 청와대 외압 의혹, 이상득 여비서 계좌 거액 발견, BBK 등 정권의 ‘핵심’과 연결돼 있는 중요 사안들은 찾을 수 없었다.

▲ MBC, KBS, SBS 사옥 ⓒ미디어스

◇ 디도스 사건 청와대 외압 의혹 = 지난 주말, 시사주간지인 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에 대한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청와대가 외압을 행사해 사건의 중요 사실을 은폐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으로, 사정 당국의 고위 관계자 발언을 통해 “청와대는 특히 청와대 행정관 박아무개(38)씨가 선거 전날 저녁 디도스 공격 관련자들과 술자리를 함께 한 사실, 그리고 한나라당 관계자들과 해커들 사이에 대가성 돈거래가 있었던 사실을 공개하지 않도록 압력을 행사한 정황이 드러났다”고도 전했다.
이 밖에도,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 디도스 공격 사건 수사 발표 이전에 조현오 경찰청장에게 두 차례나 전화를 건 데 이어 정진영 민정수석과도 사건 내용에 대해 상의를 한 정황이 나왔다. 또, 지난 2일 디도스 공격과 관련한 경찰 수사 발표에 대해 청와대 쪽에서 늦추려 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경찰 수사에 개입해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주장을 뒷받침 하는 이 같은 정황은 방송 뉴스가 꼭 취재하고, 보도해야 할 사안이었지만 지난 18일 하루 KBS·MBC·SBS 메인 뉴스에 등장한 이후 김정일 사망 소식에 가려졌다. 유일하게 19일 방송3사 가운데 SBS만이 리포트를 통해 “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 사태에 대한 청와대 개입설을 놓고 정치권의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며 정치권의 ‘입’을 통해 전했을 뿐이다.
◇ 이상득 의원실 여비서 계좌에서 출처 불분명한 10억원 발견 =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심재돈)는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실의 박배수(46) 보좌관 주변 인물의 계좌 흐름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임 아무개씨 등 이상득 의원실 여비서 2명의 계좌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10억원 안팎의 현금이 입금된 사실을 19일 확인했다.
검찰은 또, 박배수 보좌관에게 건너간 돈들이 이상득 의원실 비서관과 비서의 계좌를 거쳐 다시 박 보좌관의 계좌로 들어온 사실도 확인했다. 즉, 이는 박배수씨가 청탁 명목으로 받은 수억원이 이 의원 보좌진 4명의 계좌를 통해 ‘세탁’된 정황이 드러난 셈이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박 보좌관이 받은 수억원의 돈들이 보좌진들의 계좌를 거치면서 5백만원에서 1천만원씩 소액으로 나눠진 사실을 확인했으며, 돈세탁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실 보좌진 계좌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10억원의 현금이 발견되고, 보좌관과 비서관 사이에 소액의 돈들이 수시로 입금된 사실이 드러났다. 언론이라면 충분히 의심할 법한 사안이지만,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한 채 묻혔다. 19일 SBS만이 단신으로 “서울지검 특수3부는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실 여직원 2명의 계좌에서 10억 원의 뭉칫돈을 발견해 이 가운데 출처가 불투명한 8억 원의 출처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을 뿐이다.


▲ MBC <뉴스데스크> 12월16일치 보도 화면 캡처

◇ BBK, 다시 법정 공방 시작 = 김경준 전 BBK 투자자문 대표로 인해 피해를 본 옵셔널캐피털(옛 옵셔널벤처스)이 ㈜다스와 김경준씨 일가 및 미국과 스위스에서 그들이 고용했던 변호사 등 20명을 피고로 하는 대규모 민사소송을 미국 현지에서 제기했다. 다스는 지난 대선 직후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실소유주 여부를 놓고 의혹이 제기됐던 곳이다. 
보도에 따르면, 옵셔널캐피털은 지난 1일(현지시각) 로스앤젤레스 고등법원에 이들을 횡령과 사기성 이체(fraudulent transfer) 등 혐의로 고소했다. 앞서 지난달 미국 연방법원이 다스와 김경준씨 사이의 소송 취하 결정을 받아들임에 따라 미국에서의 법적 공방을 사실상 마무리 할 것이라는 관측과는 달리, 다스는 이번 소송으로 또다시 미국에서 법적 공방을 이어가게 됐다. 
이 뿐 아니다. 김경준씨의 기획입국설의 근거가 됐던 편지 작성 과정에 “이명박 대통령의 손윗 동서가 개입됐다”는 주장도 나온 상황이지만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BBK 의혹을 폭로한 김경준 전 BBK 투자자문 대표가 기획입국설의 근거가 된 가짜 편지 작성자 신명씨와 그의 형 신경화씨를 16일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신씨가 가짜 편지를 공개하고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과 관련된 발언을 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냈다.
앞서 한나라당은 지난 2007년 12월,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BBK 의혹을 폭로한 김경준씨의 ‘기획입국’ 배경을 밝혀달라”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주가조작 및 횡령 혐의로 국내에 들어오라는 법무부 요청을 거부한 김경준씨가 갑자기 송환 요청에 응한 게 수상하다는 이유였다. 즉, 한나라당은 당시 청와대(노무현 정부)가 이명박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김경준씨를 ‘기획 입국’ 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근거로, 김경준씨와 함께 수감 생활을 했던 신경화씨가 김씨에게 보낸 편지를 제시했다. 해당 편지에는 “자네(김경준)가 ‘큰집’하고 어떤 약속을 했건 우리만 이용당하는 것”이란 내용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이후, 실제 편지를 작성한 신명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편지 작성을 지시한) 지인 양 아무개씨로부터 대통령 가족 A씨가 지시했고, 이명박 캠프에서 특보로 있던 B씨가 중간에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고 밝혔다. 신명씨는 이후, 이 사건의 배후에 여권의 핵심 인사들, 특히 대통령의 손윗 동서인 신기옥씨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정권의 핵심과 관련이 있는 중대 사안이지만 이와 관련한 방송 보도는 거의 없다. 유일하게 MBC만이 최근 김경준씨의 가짜 편지 작성자 고소 관련 뉴스를 보도했을 뿐이다.
MBC는 지난 16일 단독으로 “BBK 사건의 핵심인물 김경준씨가 기획입국설의 근거가 됐던 가짜 편지의 작성자들을 검찰에 고소했다”며 “이 가짜 편지 사건에 여권 핵심인사들과 대통령의 손윗동서까지 개입됐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어서 검찰이 재수사에 들어가면 적잖은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19일에는 단신으로 “서울중앙지검은 관련 사건을 특수 1부에 배당했다”고 짤막하게 전했다

"MB, 지금이 남북관계 돌파구 만들 기회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20일자 기사 '"MB, 지금이 남북관계 돌파구 만들 기회다"'를 퍼왔습니다'
[전문가 좌담] "김정일 만났던 박근혜가 조의 표명하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가운데 후계자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 북한과 주변국들의 관계 등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은 19일 북한 및 남북관계 전문가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와 김창수 전 청와대 행정관의 긴급 좌담회를 열고 김정일 사망 이후의 정세 전망과 향후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을 짚어봐다.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진행한 이번 대담에서 패널들은 김 위원장의 사망이 북한에서 급격한 변동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은 적으며, 한국 정부는 오히려 경색된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음은 이날 좌담회 전문.


▲ 김정일 사망을 특별방송으로 보도한 북한 <조선중앙TV> 방송화면

"52시간 조용했던 북한, 위기관리 체제 정상 작동 증명"

프레시안 :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에는 하루 뒤 발표했는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틀이 지나 알려졌다. 52시간의 공백 동안 북한의 움직임은 어땠을까.

김창수 : 현재까지의 언론 보도를 보면 그 동안 북한은 내부 체제 단속을 위한 점검 시스템을 만들고 김정일의 사인을 밝히는 후속 조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52시간의 공백은 오히려 북한의 위기관리 체제가 잘 작동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정일 사망 이후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고, 관련된 정보가 잘 통제되는 시스템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근식 : 그 사이에 당이나 국방위원회, 군의 엘리트들이 대책을 논의했을 텐데, 가장 큰이슈는 김정은 후계체제로의 순탄한 이행, 그를 중심으로한 권력 이양, 주민 동의나 대외 특이동향 점검 등이었을 것이다. 52시간 동안 의견 조율이 합의되고 끝난 상황에서 사망 소식이 발표됐기 때문에, 큰 사건이었지만 초동 대응은 잘 했다고 사후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 그동안 중국, 러시아와 조율에 들어가 김정은 후계 체제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암묵적으로 이끌어내는 작업을 했을 것이라고 본다. 대외적 지지를 얻고 대내으로 권력이양을 순탄한 진행했다는 자신감을 확보한 측면이 있다. 반대로 52시간 동안 남쪽은 몰랐다는 것은 굉장한 문제점으로 보여진다.

프레시안 :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중국 측에 사전 통보가 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인가?

김창수 : 단정하긴 힘들지만 현재 북중관계를 고려할 때 52시간 동안 북한의 위기관리 체계가 작동됐다면 중국과 논의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망 직후가 아니더라도 발표 전에 긴급조치를 발표하겠다 정도는 통지됐을 것으로 보인다.

프레시안 : 94년 김일성 사망 시에는 남측에 사전 통보가 왔었나?

김근식 : 당시도 남북이 좋은 사이는 아니었다. 핵문제로 긴박한 상황이었고 2000년 정상회담을 한 이후에나 화해협력이 돼 조문단이 오고갔다. 따라서 94년 당시 상황상 사전 통보는 무리였고, 다만 남측 정보당국은 알고 있었을 수 있다. 두 차례 정상회담 이후 많은 사람이 오고가고 북측에 개성공단까지 있는 현재 상황에서 눈치 못 챈 건 국정원 등 정보라인이 북한에 대해 장님이 됐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김창수 : 다른 시각으로 보면, 기본적으로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최고지도자의 유고 동향은 우리 안보에 중요한 문제다. 그래서 온갖 촉수를 세우고 있는 건 분명한데 정보를 세세히 얻을 수 있느냐는 달리 봐야 한다. 예전 관례를 보면 김정일이 80일 동안 안 나타난 적도 있었고 그 동안 무엇을 했는지 모를 경우도 많았다. 며칠씩 안 나타나는 경우도 허다했다. 우리 측이 항상 즉각 파악한 건 아니었다.

이번에 특별방송을 하겠다고 발표할때까지도 몰랐는데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북한이 예를 들어 핵문제 관련 발언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긴급방송을 사전 예고할 때도 있어서, 이번에도 그런 식이라고 예측했을 수 있다. 또 한미 정보당국이 그 동안 김정일의 건강상태에 대해 대체적으로 4~5년 생존이 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상황을 파악 못한데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망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에 가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정보능력 부족이 대통령의 행보에까지 영향을 미친데 대해서는 비판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일부 보도에는 타살설, 테러설, 정변설까지 나오는데.

김창수 : 북한의 발표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져볼 수는 있다. 개인적으로 북한의 발표는 사실이라 본다. 김정일이 건강 이상으로 사망했을 것이라 보는데, 그간 건강 이상설에 대해 많이 확인된 부분이 있었고, 김정일 사망 원인이 만약 건강 이상이 아닌 다른 요인이라면 52시간 동안 소식이 잘 관리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또 우리나 미국 정보당국이 그것을 모를 수 없었을 것이다.

"외국 조문 안 받기로 한 것, 94년 조문 논란 영향 미친 듯"

프레시안 : 북한은 외국의 조문단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김일성 사망 당시에도 같은 입장이었나?

김창수 : 당시에는 그런 언급이 없었고 통상적인 과정을 거쳤다. 이번에 안 받겠다는 것은 김일성 이후 발생했던 조문 파동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한다. 그때처럼 김정일 사망에 대한 불필요한 논란이 사망 자체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확산되는 것을막기 위해서라고 본다.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도 한 시름 덜어주는 측면도 있다.

한편으로 중국에 사전에 알려줬다는 가정 하에 생각해보면, 중국 측의 조문단을 비공식적으로 받을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 체제 안착 과정에서 북중이 서로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중국도 김정은 체제의 안착이 필요하고 북한도 중국의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향후 북중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한 징표 측면에서라도 받을 확률이 있다. 당장은 공개하지 않겠지만 정치적 필요에 따라 추후 공개하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본다.

김근식 : 조문단 안 받겠다는 게 특이한 사안인 것은 맞다. 정상적이라면 조문단 왕래는 다양한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외교의 장이다. 가장 우선적인 이유는 호상(好喪)이 아니기 때문인듯 하다. 김일성 사망도 급작스러웠지만 83세로 장수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70세도 채우지 못했다. 두 번째로, 국가영도자의 죽음을 맞은 북한의 분위기가 94년과 비교했을 때 사뭇 차분한 분위기다. 당시처럼 애도의 물결이 넘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런 분위기를 반영한 게 아닌가 싶다.

프레시안 : 북한의 붕괴를 바라는 이들은 체제의 취약성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조문단의 방문을 거절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김창수 : 조문단을 받으면 평양에 가서 북한의 통제를 벗어나 사회 곳곳를 뒤지는 게 아니다. 취약성이 노출되지 않는다. 조문단은 한 국가를 대표하는 제한된 사절단이라 그런 분석과는 큰 관련이 없다. 가령 북한이 아리랑 공연을 할 때 관광객들을 많이 받았고 관광객들은 조문단보다 훨씬 많은 곳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체제 취약성론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프레시안 : 김정일 위원장이 2008년 9월 뇌졸중으로 한번 쓰러졌는데 그때야 말로 김정일이 곧 사망할 것이란 얘기가 많았고 현재는 회복됐다는 분석이 우세한 상황이었는데.

김근식 : 잘못된 진단을 내린건 아니고 2009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 당시 대통령 주치의가 김정일을 장시간 관찰한 결과 직무수행에 이상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중국의 다이빙궈(戴秉国) 국무위원,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방북했다. 현정은 회장도 4시간 동안 김정일을 만났다. 위키리크스가 김정일이 지난해 줄담배를 피웠다는 외교전문도 공개했다.

김정일의 최근 몇 년간 대외 활동과 올해 중국·러시아까지 수천 킬로미터를 가 회담을 한 것을 보면 업무 수행에는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갑자기 사망한 것은 기차에서 심근경색이 발생했고 응급처지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은 체제, 어디로 갈 것인가?

프레시안 : 김일성은 1945년부터 1994년까지 49년간, 김정일은 1994년부터 2011년까지 17년을 통치했다. 후계자로 지명된 이후로 치면 거의 40년이다. 84년 생인 김정은은 2010년 후계자로 지명됐는데 김정일이 없는 북한은 이제 어디로 갈까?


▲ 김근식 경남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김근식 : 김정은 후계체제가 안착하기 전에 유고사태를 맞이해서 북한의 불안정성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봐야한다. 하지만 사망 초기 이틀 동안 큰 동요 없이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권력 이양이 순탄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김정은의 위치와 리더십, 카리스마, 정치적 정당성의 정도는 1994년의 김정일보다 약하다는 사실이다. 김정일은 20년 넘게 후계자 준비를 해 왔다. 전반적 영역에서 경험을 쌓아 당의 리더십을 장악했고 1991년 군 최고사령관에 취임하면서 군 통제권도 확보한 상황이었다.

김정은은 짧게 보면 작년 9월부터 채 2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그것도 김정일의 후광을 업고 현지지도를 다녔다. 내년에 강성국가를 만들어 가야하는데 김정일이 사라진 공백기에 김정은이 경제 차원에서 주민들을 독려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북핵 문제도 북미협상은 재개되겠지만 최고지도자가 결정을 내릴 시점이 있다. 농축 우라늄 프로그램(UEP)을 어떻게 할 것이냐 평화협상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백날 강석주, 김계관이 해봤자 결국엔 김정일이 결정해주는 건데 이제 구심점이 없어지면면서 결정은 미뤄지고 시간이 소요되는 과정이 있을 수 있다.

프레시안 : 협상파과 강경파가 대결할 때 중재 역할로서 리더십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김근식 : 김정은의 후견 그룹이 당내 엘리트를 얼마나 장악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 내년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대중들에게 설명하고 이끌고 선두에 서서 선전할 수 있으냐를 보면 취약하다. 둘째, 정치 엘리트 내부의 갈등이다. 작년 9.28 당대회 이후 뜨는 별이 있고 지는 별이 있었다. 뜨는 별로는 리용호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최룡해 당비서가 급부상했고, 지는 별로는 김영춘 정치국위원, 오극렬 정치국 후보위원 등이 있다. 장의위원회도 '지는 엘리트'의 순번은 뒤다. 이 엘리트 사이의 알력을 김정은이 잘 조절하지 못하면 중장기적으로 갔을 때 내부적 불안정성은 취약하지 않을까 싶다.

김창수 : 첨언하자면 김정일 체제는 후계 체제에 대한 개념과 논리를 만들고 실제 시스템을 만드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70년대부터 시작해 성립도 되지 않았던 후계체제 논리를 만들어 나갔고 이를 바탕으로 1980년대 이후 후계자로 등극했다.

김정은 후계체제가 나오기 전에 북한 연구자 사이에 벌어진 논란은 과연 3대 세습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였다. 세습, 집단지도체제, 과도 체제에서 3대 세습으로 가는 이론이 각각 제기됐다. 이제 3대 세습으로 간 상황이라면 후계체제로 갈 수 밖에 없다고 했던 당시 분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후계체제를 정당화하는 개념과 논리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 이를 바꾸고 집단지도체제로 가려면 또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야 해서 결국은 3대 세습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게 당시 주장이었는데 현재를 보면 맞아떨어진 셈이다. 또한 김정일이 후계체제에 대한 개념부터 시스템까지 만들었자면 김정은은 이미 만들어진 상태에서 올라타는 방식으로 가기 때문에 선대와 달리 압축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이미 최근 몇 년간 김정은 체제의 틀을 만들어 왔기 때문에 틀 자체는 유지가 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중국의 이념 갈등처럼 정치 중심 노선과 경제개발·실용주의 사이의 갈등이 북한 내에도 있어왔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된 국가영도자의 역할을 김정은이 어느 정도로 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프레시안 : 1994년 당시 김정일이 김일성의 3년상을 치르면서 대외관계를 동결시켰는데 앞으로도 북한이 수세적으로 갈 것인지 궁금하다.

김근식 :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이 확고한 역량과 리더십, 정책적 경륜을 100% 습득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상당 기간 테크노크라트에게 결정을 위임할 수 있다. 북핵 문제는 강석주, 대남정책은 김양건, 경제는 최영림 등 각 영역에서 김정은보다 전문 역량이 있는 이들에게 위임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김정일이 결심한 바에 따라 움직이던 이들이라 자신들이 결정한 적이 없어서 과거와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두 번째 가능성은 이러한 배경 하에 테크노크라트와 김정은 모두 과감하게 결정을 못해 미뤄질 가능성이다. 실기(失機)하는 것이다. 앞으로 북미협상을 지켜봐야 알겠지만 그렇게 흘러가면 북한도 대외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대내적으로 통치의 정당성 강화에 집중하면서 대외정책은 김정일이 공언한 정도를 지켜내는 수준에서 상황을 보자는 정도로 갈 수 있다.

▲ 김창수 통일맞이 집행위원. ⓒ프레시안(최형락)
▲ 김창수 통일맞이 집행위원. ⓒ프레시안(최형락) 김창수 : 현 시점에서 북한의 대외관계는 북미관계,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 남북관계가 있다. 김일성 사망 당시 북한이 결과적으로 수세적이었지만 주목할 점은 대미 관계에 있어 그해 10월 제네바 합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협상 타결을 위한 실무접촉은 유지된 셈이다. 당시 대남 관계는 단절됐는데 이는 수세적 태도도 있었지만 조문 파동을 불러일으킨 남측 정부와 관계개선을 원하지 않았던 측면도 있다.

앞으로도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는 유지될 것이다. 주목할 점은 올해 1월 후진타오(胡錦濤 ) 중국 국가주석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결과다. 당시 두 정상은 남북대화 유지 및 미국과 북한의 관계개선을 하기로 했는데 결실을 맺지 못했다. 최근 몇 차례 북미접촉 통해 UEP 동결 합의와 영양 지원까지 합의된 것은 그 정상회담의 연장선상에 있다.

문제는 내년이 국제사회에서 모든 한반도 문제에 영향력 행사하는 국가들의 리더십 교체기라는 점인데, 그 시기에 북한이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비전을 만들 것인가에 있다. 현재로서 그 가능성은 유동적이다. 북한이 현재의 수준은 유지해도 새로운 환경에 대해서 어떤 것을 만들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프레시안 : 국내 언론들은 김정은의 리더십이 약하면 군부가 들고 일어날 수도 있고 탈북자가 증가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다.

김근식 : 군부가 최고지도자에 저항하는 것은 북한의 수령제 구조에서는 불가능하다. 군부가 따로 독립해 국방위원장이나 최고사령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방위원회의 정치국 상무위원 등은 사실 당 사람이면서 군에 가있기 때문에 군이 자기의 당과 분리된, 후보자와 분리된 이해관계 때문에 후계 체제에 저항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다만 김정일이 후게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형식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2009년 헌법을 개정해 국방위의 권한을 강화하고 국방위원장을 영도자로 규정했다. 하지만 지난 4월 최고인민위원회에서 김정은, 리용호, 최룡해 등은 국방위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번 장의위원회 명단을 봐도 당, 정치국 인사들이 전면에 섰고 국방위 위원들은 뒤로 밀렸다. 국방위를 중심으로 통치하기엔 김정은이 아직 맡고 있는 직함이 없어서 배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창수 : 북한의 기본 권력구조상 군부가 최후까지 체제를 유지하는 수호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현재 체제에서 이탈하리라는 발상은 북한 연구자 입장에선 타당성이 없다.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이 선군정치를 내세우면서 군이 모든 결정과정에서 우위에 있던게 오히려 비정상적인 과정으로 봐야 한다. 최근에 이러한 경향이 정상화됐고 이는 김정일을 호칭할 때 당 명칭을 앞세우고 군 직함을 뒤로 빼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미국과 중국의 향후 움직임은?

프레시안 : 중국·미국의 향후 움직임은 어떻게 될까? 는 오늘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경고했는데.

김근식 : 중국은 공식적으로 애도를 표명했고 94년 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김일성 사망에 애도를 표명한 것처럼 미국도 유사하게 갈 것이다. 중요한 점은 지난 1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통제할 수 없는 군사적 긴장은 피하자고 합의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북한과의 협상을 진전시켜서 미국이 다시 한반도 문제에 개입해야 북한의 불안정성을 완충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기에 정치적 급변이나 소요사태는 중국과 미국 둘 다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김창수 :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의 미사일 사정거리에 미국이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고 적절한 관리를 해야 할 필요성도 갖고 있다. 한편으로는 내년에 미국도 대통령 선거가 있어서 북한과 적극적 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불확실한 상황이 위험으로 번질 수 있다.

때문에 적극적이지도, 악화되지도 않은 현상 유지 국면이 올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 정부의 반응도 호들갑보다는 냉철하게 관찰하는 편에 가깝다. 미국은 지금까지 유지해온 대화를 좀 더 시간을 두고 추진하지 않을까 한다. 중국 역시 변방에서의 불확실성을 원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미국의 대북 접근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이라는 의견과 현상 유지로 갈 것이라는 분석이 각각 나왔는데, 극소수 사람들은 미국이 북한을 무너트리길 기대하기도 한다.

김근식 : 중국이 있어서 쉽지 않다.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면 그럴 수 있겠지만 북중관계가 전략적 협력관계로 격상된 상황에서는 어렵다. 미국이 그렇게 나오려면 북한 내부의 불안정성이 최고조에 달해 방아쇠를 당기면 터진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아니다. 군사적 임계점이 와야 현실화될 것이다.

김창수 : 미국이 동북아에서 목표로 하는 것은 대중정책이다. 한국의 일부 세력은 미국이 압박하고 군사조치를 강화하는 게 희망상황일 수 있지만 대중정책 추구하는 미국 입장에서 북한 압박이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그런 압박이 효과를 보지 못하면서 북중관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가서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북한만을 독립적 변수로 놓고 압박할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

한국 정부, 조문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

▲ 이날 좌담회를 진행한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결국은 한국의 대응이 미국, 중국이 나아갈 방향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인데, 일단 민주당에서는 조의를 표명했고 통합진보당도 애도를 표했다. 정부 차원에서 조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김근식 : 가장 중요한 건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이다. 김정일이 사망한 오늘은 일단 통상적인 국가안전보장회의, 군 공무원에 대한 경계령을 내렸다. 남북관계가 4년 동안 중단되고 교착되는 것을 반복해왔는데 김정일 사망으로 이를 돌파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모멘텀으로 삼을 창조적인 지혜가 이 대통령에게 있을 것인지가 중요하다.

예컨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당시 남북관계의 엄중한 분위기 속에서도 김양건이 조문단으로 왔다. 그래서 이 대통령을 만나고 나중에 정상회담 합의까지 갔었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지도자가 사망했을 때 그 시점에서 돌파구가 마련되는 게 역사적 현실이었다. 이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관리할 독자적인 행동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면 오히려 이번이 기회다.

프레시안 : 적어도 차분하게라도 조의를 공식적으로 표명해야 한다는 것인가.

김근식 : 조문단을 받지 않으니 조의나 유감 표명도 할 수 있고 조전을 보낼 수 도 있다. 통일부나 현대아산 명의 등 수위를 조절할 수도 있다. 남북관계를 위해 북한을 강압적으로 대하지 않겠다는 신뢰의 시그널을 보내면 된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내년 핵안보 정상회의에 김정일을 초청했었고, 기자회견 때마다 이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용의가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전직 두 대통령이 각각 만나 합의를 도출했던 상대다. 94년 상황과는 다르다. 그 동안의 남북관계 개선 상황을 감안하면 전향적인 표명으로 신뢰 개선이 가능하다.

김창수 : 정부는 우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최우선 원칙으로 세워야 한다. 지금은 비정상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평상시에 수습될 수 있는 남북 간의 사건도 수습되지 않는 상황으로 발전, 확산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철저히 위기관리를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북한 상황을 냉철하게 주시하고 북한의 상황이 남한으로 확산되는 걸 막아야 하는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

둘째로 국민들이 군사적 충돌이 발생해 남북관계의 위험으로 번지는 것을 염려하는데, 오늘도 주가가 요동을 쳤다. 과거 남북관계에 우발적 충돌이 발생하면 주가가 하락했다 반등하면서 '큰손'들만 이익을 챙기곤 했다. 이런 상황이 되면 국민들만 피해를 보는데 현재 글로벌 경제 위기의 장기화가 점쳐지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상황을 잘 관리해 위험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조문도 이 원칙과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남북간의 상황도 악화되지 않고 내부적으로 국론이 요동쳐서도 안된다면 이를 충족시키는 것은 정부가 의젓한 태도로 조의를 표명하는 게 바람직하다.

프레시안 : 조의 표명이 남북관계를 개선할 호기하고 했는데 국내 정치만 보면 상당히 답답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김근식 :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 사이에 대결 구도가 생기기 전에 정부가 주도권을 잡고 정리해줘야 한다. 이를 미루면 진보 진영에서 조문 얘기가 자연스레 나올 것이고 보수 진영에서 반발하면서 김정일의 악행을 보수 언론들이 싣기 시작할 것이다. 이러한 남남갈등이 격화되면 여야 싸움이 되고 정쟁화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국내 정치권이 김정일 사망을 남북관계 개선의 호기로 보는 게 아니라 김정일 사망이 국내 정치 파동의 근원이 될 것이다.

개인적인 바람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김정일과 만난 인연도 있고 하니 조의 표명을 하는 수준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이 대통령이 하기 어렵다면, 박근혜로서는 이 대통령과 선을 그을 필요도 있고 비대위원장으로서 쇄신과 혁신을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말 한마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정부 차원에서 힘들다면 박근혜로도 괜찮다는 것인가.

김근식 : 이명박 정부는 지난 4년간 북한에 해온 일이 있어서 그런 기조를 떠나기 힘들 수 있다. 그런 기조를 버리길 바라지만 박근혜가 정당 자격에서 평범하게 조의나 유감을 표명하고, 한반도가 이 일을 계기로 평화롭게 갔으면 한다는 원칙적인 말을 할 수 있다.

김창수 : 우리 사회가 다원주의 사회기 때문에 북한 문제를 놓고 의견이 다양하게 표출되는 건 다양하다. 하지만 양극단에서 충돌하는 상황으로 가서 그 극단이 중간의 여러 세력을 대표하는 방식으로 여론이 잘못 형성되면 문제다.

그렇기에 이 문제에 있어서 정부가 기준점을 잡을 필요가 있다. 북한이 외국 조문단을 받지 않겠다는 것은 우리 정부에겐 부담을 덜어준 셈이다. 조문단 문제가 논란의 화약고가 될 수 있었는데 안 받겠다고 하니 극단적 논쟁으로 빠질 수 있는 상황은 예방됐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가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 수준에서 표명했으면 한다.

프레시안 : 김정일 사망이 일종의 '북풍'이고, 결국 박근혜 위원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겠냐는 얘기가 은연 중에 나오고 있다.

김근식 : 민주당도 비대위를 구성했는데 과거 김대중 대통령 서거시 조문단이 왔으니 우리도 가야하는 게 아니냐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조의 표명 문제는 정부에 맡기고 당은 북한의 안정성에 포커스를 맞추는 게 중요하지 않나 싶다. 남한에서 화약고 될 수 있는 문제를 치고나갈 필요는 없다.

김창수 : 내년 선거 국면에서 한반도 통일 이슈가 최대 이슈로 부각할 가능성이 있다. 이전까지 복지 문제나 양극화 문제, 사회정의 문제가 중요한 이슈였고, 이명박 정부에서 대북정책이 망가진 상황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평화통일이라는 헌법상 의무를 할 수 있겠느냐 정도였다.

이제는 김정일 사망 이후 종합적인 큰 틀에서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불확실한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의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이슈가 등장할 것이다. 또 최근 약화되어가던 흑색선전이 선거 국면에서 검증을 빌미로한 네거티브 선거로 부활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각자가 김정일 사망을 보고 느끼는 소회는.

김근식 : 오늘 뉴스를 보고 여러 생각이 났다. 김일성이 1994년 사망하고 김정일이 최고지도자가 됐는데 아버지로부터 부채만 떠안아 어려운 시기를 겪다 해결을 못하고 사망했다. 17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해보려고 했던 일도 부시 행정부나 남북관계 경색 등 국제환경이 맞지 않았다.

북한을 정상화하고 개혁·개방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와 좌절을 겪었고 2012년 김일성 100주년을 계기로 강성국가를 만들어보겠다고 했지만 새해를 한 달로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문턱도 못 넘은 셈이 됐다. 17년 동안 하루도 편한 잠을 못자던 시기였을 것이다. 죽고 나서도 후계자에게 더 큰 숙제와 부채를 넘겨주고 갔다. 한반도의 안타까운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창수 :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백낙청 선생이 말한 분단체제론을 다시 확인하게 됐다. 남한과 북한은 독립된 구조에 놓여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치든 경제든 북한과 남한은 체제 차원에서 영향을 미친다.

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충격으로 작용하면서 경제, 안보 불안으로 작용하듯 앞으로도 북한의 안정이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남한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북한의 체제가 현재 상황을 안정적으로 극복해 나야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현재 북한 상황에 대한 섣부른 예단을 하지 않는 것이다. 북한을 부추겨 원하는 상황으로 진단하고픈 마음을 접고 냉철하게 북한 상황을 분석해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김봉규 기자(정리)

[사설]조의 표명, 남북관계 개선 계기 될 수 있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1-12-19일자 사설 '[사설]조의 표명, 남북관계 개선 계기 될 수 있다'를 퍼왔습니다.
김일성 주석 사망 3일 뒤인 1994년 7월11일 당시 민주당 이부영 의원은 임시국회에서 정부에 조문 의사가 있는지 질의했다. “정부가 대화의 필요성을 갖고 있다면” “이미 결정된 남북정상회담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면” 등의 전제가 달린 조심스러운 질문이었다. 그러나 이 의원의 발언은 남한 사회에 내재돼 있던 냉전의 광기를 터뜨리는 기폭제가 됐다. 수구언론은 ‘수백만명을 죽인 전범에게 무슨 조문이냐’며 연일 융단폭격을 가했고, 이 의원 등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망동분자’로 몰아붙였다. 이 때문에 온 나라가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 

17년 전의 일을 새삼 거론하는 까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관련해 제2의 조문파동이 발생하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른 데다 북한도 장례가 끝나는 28일까지 외국의 조문사절을 받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이러한 평지풍파가 일어날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김 위원장의 사망에 정중하고도 격식을 갖춘 정부 차원의 조의 표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형식이 조전(弔電)이 됐건, 정부 당국자의 구두 성명이 됐건 구체적인 방법과 수준은 논의하면 될 일이다. 요컨대 남한 정부가 북한 최고지도자의 사망에 예의를 갖춘 조의를 표명함으로써 남쪽에 대한 북쪽의 뿌리깊은 불신과 의구심을 일정하게 씻어줄 수 있는 것이다. 평범한 사인(私人)들 사이에도 해묵은 반목과 질시, 갈등과 증오가 진심어린 조상(弔喪)을 계기로 어느 정도 극복되고 치유되는 경우가 있다. 국가와 국가의 사이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참혹한 동족상잔을 겪었으며, 최근까지도 무력충돌을 경험한 남북한 사이에는 이러한 필요성이 더욱 높다고 하겠다. 

극단적인 수구냉전세력이 아니더라도 ‘연평도에 포탄을 퍼부어 사람을 죽였는데 무슨 조의표명이냐’는 목소리가 일반인들 가운데서도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자연인이라면 자신의 도덕률과 감정에 따라 행동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국가공동체 전체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적에게도 예의를 갖출 수 있어야 한다. 국공내전의 당사자였던 중국과 대만도 각각 상대의 최고지도자인 장제스와 마오쩌둥이 사망했을 때 조의를 표명하지 않았던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4년간의 남북관계는 민간 차원까지 얼어붙을 정도로 악화돼 있다. 정부는 북측 최고지도자의 죽음에 조의를 표명함으로써 최소한의 신의를 쌓고, 이를 경색된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사설]한반도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대응해야


이글은 경향신문 2011-12-19일자 사설 '[사설]한반도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대응해야'를 퍼왔습니다.
ㆍ김정일 사후 우리의 태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지난 17년간 절대권력으로 한반도의 반을 통치해온 최고 지도자가 수많은 과제를 남겨두고 영원히 떠난 것이다. 김 위원장이 지병을 앓고 있었지만 그의 사망 소식은 충격적이다. 갑작스러운 그의 사망으로 6자회담 재개는 물론 남북관계 개선노력도 당분간 중단이 불가피해졌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한반도에 커다란 격랑이 몰아칠 수도 있다. 우리가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앞으로 발생할 상황들을 예측하고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김 위원장의 공과에 대해서는 평가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지속적인 핵 개발로 인해 북한이 세계적으로 더욱 고립되면서 북한 주민의 생활이 피폐해지고 인권 상황이 나빠진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여기에다 연평도 포격 사건과 같은 극단적인 남북 대결 정책을 취했다. 반면 6·15 공동성명과 10·4 공동성명 등으로 남북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한 전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김 위원장 사후 북한의 장래다. 현재 북한은 아버지 김 주석의 사망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북한 내부적으로 볼 때 김 주석의 사망 때는 후계자 문제가 비교적 안정되어 있었다. 김 위원장은 1970년대 초 후계자로 공식지명되어 김 주석의 생전에 사실상 북한을 다스렸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아들 김정은은 후계자로 지명된 지 불과 1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만큼 새 체제가 안정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으며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또 북한의 경제 상황은 김 주석이 사망한 1994년보다 훨씬 열악하다. 김 위원장이 경제개발을 독려해왔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북한의 외부 여건도 17년 전보다 녹록지 않다. 당시에는 북한 핵 문제가 북한과 미국의 회담으로 해법에 가닥이 잡힌 상태였다. 그리고 세계적 이슈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의 핵실험과 농축우라늄 개발로 북한 핵 문제는 세계적 문제가 됐으며, 북·미의 현격한 입장 차이로 해결의 접점을 찾기 힘들다. 북·미가 지난주 베이징 접촉에서 3차 양자대화에 합의했지만 북·미 관계개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김 주석 사망 때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남북이 정상회담 개최 직전까지 갔다. 그런데 현재는 천안함·연평도 사건과 이명박 정부의 강경 대북정책으로 남북이 극도로 대립하고 있다. 

북한이 어디로 갈지는 1차적으로 북한의 선택에 달렸다. 최대 관심사인 후계자 문제에 대해 북한은 김 위원장의 사망을 알리는 ‘보도전문’에서 ‘김정은 동지의 영도 따라’ 오늘의 난국을 이겨나가자고 밝혀 김정은이 후계자임을 분명히 했다. 권력 세습 과정이 짧았다는 점에서 김정은의 권력 장악에 한계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 북한 체제가 당장 불안정한 국면에 빠질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들도 대부분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체제 가능성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정일 사후 북한의 가장 큰 변수는 경제난이다. 경제난이 지금보다 심각해질 경우 북한은 바람직하지 않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새로 북한을 이끌어 갈 김정은 체제가 정책의 초점을 경제난 극복에 맞출 개연성이 높다. 우려스러운 것은 경제난으로 인한 내부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극단적인 세력이 군사적 모험을 자행할 개연성이다. 북한의 새로운 지도부는 경제난에서 벗어나는 데 모든 노력을 경주해 조속히 체제를 안정시키고, 나아가 한반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해 매진하길 기대한다.

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한반도는 또다시 운명의 갈림길에 섰다. 우리의 대응방향에 따라 남북 갈등이 더욱 심화할 수도 있으며, 정반대로 화해의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 위원장의 사망이 기회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우리가 이 기회를 남북 화해의 계기로 삼으려면 기본방향을 ‘한반도 안정’에 두고 결단력 있게 대응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한반도 안정을 위해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다. 북한을 자극하는 것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안정을 해칠 뿐이다. 김일성 사망 때 이미 경험한 바다. 설익은 대북 강경론에 정부가 끌려가면서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됐으며, 결국 그 비용은 고스란히 우리가 짊어지고 말았다. 이미 국내에는 북한 체제 변화 운운하는 대북 강경론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가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이 점을 명심하고 북한을 자극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치권도 국내정치적 목적으로 북한을 자극하는 것을 삼가지 않으면 안된다. 

남북관계 개선 노력을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이따금씩 관계 개선을 위해 북한과 접촉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북 억압정책과 전략 부재 탓이다. 정부는 북한의 안정이 바로 한반도의 안정이라고 인식하고 북한의 새로운 체제가 조기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직간접적 방법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현재 남북관계 개선에 짐이 되고 있는 이른바 ‘5·24조치’ 등은 재검토 대상이다. 

김 위원장의 사망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고 안정시키는 계기가 되려면 한반도 주변국가인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의 동참이 절대적이다. 북한은 김 주석 사망 이후에도 미국과의 접촉은 계속했다. 정부는 이들 국가와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한반도의 긴장지수가 높아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끝으로 굳건한 안보태세가 한반도 안정에 필수적임은 새삼스럽게 재론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말이나 행동을 앞세운 과도한 조치는 안보를 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해칠 수 있다.

[사설] 한반도 안정이 최우선이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2-19일자 사설 '[사설] 한반도 안정이 최우선이다'를 퍼왔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 중병설이 나돌았지만 최근 회복 기미를 보이던 그의 급작스러운 사망은 충격적이다. 북한뿐만 아니라 한반도 및 주변 정세 전반에도 심대한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김 위원장 사망 발표와 동시에 후계 김정은 체제로의 권력승계를 강조함으로써 체제 안정에 대한 의구심에 쐐기를 박았다. 북한이 이후 사태 전개를 제대로 통제하리라고 누구도 장담할 순 없지만 권력 공백에 따른 급변사태가 바로 뒤따를 정도로 체제가 허약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럴수록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로운 대처가 필요하다.
김 위원장의 사망과 그것이 불러일으킬 한반도 및 주변 정세 변동은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에 비견될 만하다. 당시 북한은 현실 사회주의체제 붕괴 뒤 극도의 어려움에 봉착했고, 핵위기로 한반도는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가는 위기상황을 맞고 있었다. 이후 17년간 북을 통치해온 김 위원장은 경제위기와 자연재해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북한 체제를 재건하고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력투구했다.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했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건설도 받아들였다.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체제 존립을 위협한 미국 조지 부시 정권에 맞서 핵무기도 개발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해서 그가 약속한 강성대국은 인민을 먹여살리는 것조차 어려운 처지가 됐다.
정세변동의 정략적 이용 경계해야
김 위원장 사망 이후 상황은 어떤 면에선 김 주석 사망 때보다 더 열악하다. 지난해 공식화한 김정은 후계체제는 긴 세월 동안 권력승계 수업을 받은 김 위원장 때와는 달리 아직 굳어지지 못했고, 경제상황도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못했으며, 대량 탈북 사태에서 보듯 체제 이완의 징후마저 뚜렷해졌다. 남북관계는 더 경색돼 있고, 주변 정세도 17년 전 못지않은 격변기를 맞고 있다. 북 체제의 불안정성은 그만큼 더 커졌다.
이런 긴박한 시기에 남북관계가 17년 전보다 더 경색돼 있다는 건 치명적이다. 현 정권 등장 이후 남북관계는 두 차례의 정상회담이 거둔 성과 이전으로 되돌아갔다. 지난해의 천안함·연평도 사태 이후엔 거의 전면적인 단절 속에서 긴장만 높아졌다. 김 위원장 사망 발표까지 남쪽이 어떠한 이상징후도 포착하지 못한 현실이 이런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남쪽이 북의 정세 변동과 관련해 쓸 수 있는 카드는 거의 없다. 이것이야말로 이런 긴박한 시기에 최대 위험요소일 수 있다. 북을 압박해서 굴복시키거나 체제 붕괴를 통한 흡수통합까지 염두에 둔 남쪽 강경론자들이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사실상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상황은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근시안적이고 무책임하며 위험한 것인지 다시 한번 보여준다.
우리는 당연히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들의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그들과 협의하고 협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독자적으로 쓸 수 있는 카드가 극도로 제한돼 있는 이상, 상황을 우리가 주도하지 못하고 끌려가기 십상이다. 이 또한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다. 내년의 총선과 대선까지 앞둔 우리의 유동적인 정치상황도 불안 재료다. 정권 차원에서 이런 상황을 이용하려는 욕심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그랬다가는 자신들뿐 아니라 민족 전체에 치명적 손실을 가하는 심각한 사태를 부를 수도 있다. 게다가 중국의 급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 속에 동아시아 정세가 근본적인 구조변동을 겪고 있고, 특히 내년은 이들 주요국의 정치 상황이 동시에 바뀔 수도 있는 권력교체기다. 이런 이행기에 안팎의 정치세력이 김 위원장 사망이 촉발할 정세 변동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불장난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