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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2일 수요일

박승춘 보훈처장, 5·18 전날 ‘연평도 폭탄주’ 돌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5-21일자 기사 '박승춘 보훈처장, 5·18 전날 ‘연평도 폭탄주’ 돌려'를 퍼왔습니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보훈학회 2013년 춘계 학술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국가보훈처 제공

지난해 연평도 포격 빗댄 폭탄주 직접 만들어 마시게 해
올해는 ‘임을 위한…’ 제창 막아 반쪽 기념식 만들어

5·18 민주화운동 33돌 기념식을 ‘반쪽 행사’로 전락시킨 장본인이라는 비판을 받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지난해 5·18 기념식 전날 광주를 방문해 저녁을 먹으며 참석자들과 폭탄주를 마신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당시 박승춘 처장은 폭탄주를 직접 만들어 “연평도 폭탄주”라며 참석자들에게 마시도록 돌려 부적절한 처신이란 비판이 나왔다.박 처장은 지난해 5월17일 오후 6시30분부터 전남 담양 한정식집 ㅈ식당에서 광주지역 상이군경회 등 호국·보훈단체 및 4·19와 5·18 단체 대표 등 24명을 초청해 1시간30분 동안 저녁 식사를 겸한 간담회를 열었다. 박 처장은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 두 잔씩을 참가자들과 마신 뒤, 자신이 폭탄주 한 잔씩을 직접 만들어 권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처장은 첫번째 폭탄주를 마실 때 모두에게 건배를 제안했다.한 참석자는 “당시 박 처장이 폭탄주를 만들어 단체 대표 및 관계자들에게 ‘연평도 폭탄주’라고 건넸다. 1명씩 술을 권하니 안 마실 수 없었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연평도 폭탄주란 말이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군인과 민간인 20명이 숨지거나 다친 연평도 포격 사건을 연상시켜 당혹스러웠다고 전했다. 다른 참석자는 “5·18 기념식 전날, 행사를 주관하는 보훈처의 장이 직접 한 사람씩 폭탄주를 돌리며 강권해 부적절하다고 여겼다”고 말했다.이에 대해 보훈처 쪽은 “당시 5·18 관련 3개 단체 대표들은 보훈단체장 간담회에 잘 참석하지 않았는데 모두 참석했다. 그래서 한 보훈단체장이 화합주 한 잔을 마실 것을 제안했다. 이에 박 처장이 맥주잔 절반 정도 분량으로 한 잔씩을 덕담하면서 참석자들에게 권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주지방보훈청 관계자는 “호국단체와 민주단체가 모두 함께한 자리여서 맥주와 소주를 섞어 두 잔씩 마셨다”고 말했다.박 보훈처장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4월 임명돼 박근혜 정부에서도 유임된 인사로 각종 논란의 중심에 올랐다. 보훈처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곡을 공모하겠다며 올해 4800만원의 예산을 편성하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못하게 해 논란을 빚었다. 박 처장은 지난 2일 광주를 방문해서도 기념곡 공모 강행 방침을 철회하지 않아 여론을 악화시켰고, 이는 결국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치르는 5·18 민주화운동 33돌 기념식이 반쪽으로 치러지는 원인이 됐다. 기념식 참가를 거부했던 5월 단체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저지를 주도한 당사자로 박 보훈처장을 꼽고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박 처장은 2004년 7월 국방부 정보본부장으로 근무하다 북한 경비정의 북방한계선(NLL) 월선과 관련해 북한군 교신 내용을 일부 언론에 알려줘 물의를 빚었다. 또 전두환 전 대통령 때 경호실장을 지낸 안현태씨의 국립묘지 안장 심의 과정에서 반대 의견을 낸 쪽에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나 감사원 감사를 받았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2013년 3월 7일 목요일

김병관, '불타는 연평도' 뒤로 하고 일본온천으로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3-03-07일자 기사 '김병관, '불타는 연평도' 뒤로 하고 일본온천으로'를 퍼왔습니다.
천안함 사태때는 골프, 국가 위기때마다 안이한 국가관 노정

천안함 사태 다음날 골프를 쳤던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가 연평도 포격 다음 날에는 일본으로 부부 동반 온천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드러나 자격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7일 민주통합당 안규백 의원실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출입국 기록에 따르면, 김 후보자는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다음 날인 11월 24일 부부 동반으로 일본으로 출국해 29일에야 귀국했다.

당시 한국전쟁이후 초유의 연평도 포격으로 군인과 민간인 4명이 사망하고 19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연평도 주민 1천700여명이 육지로 대피하는 등, 한국은 사실상 전시체제에 돌입했던 삼엄한 시점이었다.

그가 온천을 즐기기 위해 일본에 도착한 11월 24일 일본 요코스카 기지에 정박중이던 미국 핵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는 한국 서해로 출항하기도 했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던 박근혜 대통령도 당일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큰 대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자위권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며 MB정부에 강력 대응을 주문했었다.

김 후보자는 2008년 3월 말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에서 예편한 상태로 2010년 당시는 민간인 신분이었으나, 연평도가 불타는 참상을 목격하고도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일본으로 온천여행을 떠난 것은 4성 장군 출신답지 않은 행태였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특히 김 후보자는 연평도 사태 발발 보름 전인 11월8일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국책자문위원 국방분과 위원장으로 임명된 상태여서, 그의 국가관에 심각한 하자가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그는 앞서 천안함 사건 다음 날인 2010년 3월 27일에도 군 골프장에서 골프를 쳐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오는 8일 예정돼 있으나, 북한이 최근 정전협정 백지화와 불바다 협박을 하고 있는 위기 상황하에서 과연 중대 국가안보 위기때마다 안이한 안보관을 보여온 그가 60만 군을 제대로 통솔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확산되고 있다.

김동현 기자

2012년 9월 30일 일요일

북풍인가, 남풍인가


이글은 한겨레신문 김종대의 디펜스21플러스의 2012-09-28일자 기사 '북풍인가, 남풍인가'를 퍼왔습니다.

우리에게는 매우 익숙한 가설. 선거철이 되면 북한은 남한을 향해 도발한다. 심정적으로는 맞는 가설인 것 같다. 1987년 대선 직전의 여객기 폭파 테러, 1992년 대선에는 대규모 간첩사건, 1996년 총선 때는 판문점 북한 무장군인 난입, 2002년 대선에는 제2연평해전 발발 등 축적된 경험은 많다. 만일 선거 때 안보위기가 없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1997년 대선 때는 이와 관련해 두 가지 의미있는 움직임이 있었다. 첫째는 대선을 앞두고 북한이 함부로 남한 선거에 개입하는 도발을 하지 말라고 북한에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움직임이다. 당시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가 이를 주도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자칫 공안사건으로 연결될 빌미를 제공했다. 둘째는 이전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북한이 도발을 하라고, 휴전선에서 총질이라도 해달라고 은밀히 부탁하는 움직임이다. 정부 여당의 일각에서 이를 주도했다. 훗날 “국기를 뒤흔든 사건”으로 알려진 소위 ‘총풍 사건’이다. 적어도 한국에서 보수정권이 집권한 기간에는 이런 일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다. 선거 때 쟁점이 된 안보위기는 선거가 끝나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는 점이다. 총선을 한달 남짓 앞둔 올해 3월6일 청와대는 돌연 외교안보장관회의를 개최했고, 그 다음날에 김관진 국방장관은 연평도 부대를 방문해 초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이 무렵 김 장관은 “북한이 4·11 총선과 연말 대선에 개입하기 위해 대남 비방전 수위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북한이 태양절(4월15일) 이후 도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마치 북한의 도발을 기정사실화하는 듯 말했다. 정부에서 매일 쏟아져 나오는 강경발언은 전쟁 전야의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총선이 끝난 직후인 4월13일에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한 데 이어 4월23일 남쪽에 ‘특별행동’을 선언하였고, 닷새 만인 28일에 북한은 우리 쪽에 위성항법장치 교란을 위한 전자파 공격을 감행했다. 위기라면 이 시기가 위기였다. 그런데 정부 당국자 그 누구도 이를 위기라고 하지 않았고, 그 흔한 정부 차원의 긴급대책회의도 열지 않는 너무도 ‘차분한’ 대응이 이어졌다. 총선 직전과 대조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선거 이전과 이후라는 국면의 전환이라는 점만 대입하면 모든 것이 명쾌하게 설명된다.

지난 9월26일에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청와대 외교안보장관회의는 최근 북한 어선의 북방한계선 월선 문제에 대해 “대선을 앞두고 북풍을 조성하려는 기획 도발”이라며, 북에 “대선 개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북한 어선 동향을 ‘대선 기획’으로 진단하는 상상력과 분석력이 놀랍다. 최근 북한에 대한 특별한 정보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북한이 최근 여당 후보를 비난하고 있어서 나온 반응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과거의 북풍 경험 때문인지, 배경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과거의 경험 때문에 필자에게는 이 말이 “북한은 대선에 개입하라”고 촉구하는 반어적 표현으로 들린다. 이명박 대통령이 “하지 말라”고 하면 북한은 더 하기 때문이다. 엄마 청개구리가 자식에게 “강가에 묻어 달라”고 말하는 우화적 상황 같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청와대가 집권 기간 중 각종 위기관리에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었더라면, 정치와 안보를 연계시키지만 않았더라면 우리가 청와대의 당연한 말에 트라우마를 겪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야당 후보 지지율이 좀 오르니까 갑자기 선거와 북한을 연계시키는 말을 들을 때 밀려오는 이 석연치 않은 느낌의 정체는 뭘까? 대통령의 관심은 안보인가, 선거인가?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2011년 12월 20일 화요일

[사설]한반도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대응해야


이글은 경향신문 2011-12-19일자 사설 '[사설]한반도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대응해야'를 퍼왔습니다.
ㆍ김정일 사후 우리의 태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지난 17년간 절대권력으로 한반도의 반을 통치해온 최고 지도자가 수많은 과제를 남겨두고 영원히 떠난 것이다. 김 위원장이 지병을 앓고 있었지만 그의 사망 소식은 충격적이다. 갑작스러운 그의 사망으로 6자회담 재개는 물론 남북관계 개선노력도 당분간 중단이 불가피해졌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한반도에 커다란 격랑이 몰아칠 수도 있다. 우리가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앞으로 발생할 상황들을 예측하고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김 위원장의 공과에 대해서는 평가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지속적인 핵 개발로 인해 북한이 세계적으로 더욱 고립되면서 북한 주민의 생활이 피폐해지고 인권 상황이 나빠진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여기에다 연평도 포격 사건과 같은 극단적인 남북 대결 정책을 취했다. 반면 6·15 공동성명과 10·4 공동성명 등으로 남북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한 전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김 위원장 사후 북한의 장래다. 현재 북한은 아버지 김 주석의 사망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북한 내부적으로 볼 때 김 주석의 사망 때는 후계자 문제가 비교적 안정되어 있었다. 김 위원장은 1970년대 초 후계자로 공식지명되어 김 주석의 생전에 사실상 북한을 다스렸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아들 김정은은 후계자로 지명된 지 불과 1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만큼 새 체제가 안정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으며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또 북한의 경제 상황은 김 주석이 사망한 1994년보다 훨씬 열악하다. 김 위원장이 경제개발을 독려해왔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북한의 외부 여건도 17년 전보다 녹록지 않다. 당시에는 북한 핵 문제가 북한과 미국의 회담으로 해법에 가닥이 잡힌 상태였다. 그리고 세계적 이슈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의 핵실험과 농축우라늄 개발로 북한 핵 문제는 세계적 문제가 됐으며, 북·미의 현격한 입장 차이로 해결의 접점을 찾기 힘들다. 북·미가 지난주 베이징 접촉에서 3차 양자대화에 합의했지만 북·미 관계개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김 주석 사망 때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남북이 정상회담 개최 직전까지 갔다. 그런데 현재는 천안함·연평도 사건과 이명박 정부의 강경 대북정책으로 남북이 극도로 대립하고 있다. 

북한이 어디로 갈지는 1차적으로 북한의 선택에 달렸다. 최대 관심사인 후계자 문제에 대해 북한은 김 위원장의 사망을 알리는 ‘보도전문’에서 ‘김정은 동지의 영도 따라’ 오늘의 난국을 이겨나가자고 밝혀 김정은이 후계자임을 분명히 했다. 권력 세습 과정이 짧았다는 점에서 김정은의 권력 장악에 한계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 북한 체제가 당장 불안정한 국면에 빠질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들도 대부분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체제 가능성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정일 사후 북한의 가장 큰 변수는 경제난이다. 경제난이 지금보다 심각해질 경우 북한은 바람직하지 않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새로 북한을 이끌어 갈 김정은 체제가 정책의 초점을 경제난 극복에 맞출 개연성이 높다. 우려스러운 것은 경제난으로 인한 내부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극단적인 세력이 군사적 모험을 자행할 개연성이다. 북한의 새로운 지도부는 경제난에서 벗어나는 데 모든 노력을 경주해 조속히 체제를 안정시키고, 나아가 한반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해 매진하길 기대한다.

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한반도는 또다시 운명의 갈림길에 섰다. 우리의 대응방향에 따라 남북 갈등이 더욱 심화할 수도 있으며, 정반대로 화해의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 위원장의 사망이 기회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우리가 이 기회를 남북 화해의 계기로 삼으려면 기본방향을 ‘한반도 안정’에 두고 결단력 있게 대응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한반도 안정을 위해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다. 북한을 자극하는 것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안정을 해칠 뿐이다. 김일성 사망 때 이미 경험한 바다. 설익은 대북 강경론에 정부가 끌려가면서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됐으며, 결국 그 비용은 고스란히 우리가 짊어지고 말았다. 이미 국내에는 북한 체제 변화 운운하는 대북 강경론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가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이 점을 명심하고 북한을 자극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치권도 국내정치적 목적으로 북한을 자극하는 것을 삼가지 않으면 안된다. 

남북관계 개선 노력을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이따금씩 관계 개선을 위해 북한과 접촉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북 억압정책과 전략 부재 탓이다. 정부는 북한의 안정이 바로 한반도의 안정이라고 인식하고 북한의 새로운 체제가 조기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직간접적 방법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현재 남북관계 개선에 짐이 되고 있는 이른바 ‘5·24조치’ 등은 재검토 대상이다. 

김 위원장의 사망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고 안정시키는 계기가 되려면 한반도 주변국가인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의 동참이 절대적이다. 북한은 김 주석 사망 이후에도 미국과의 접촉은 계속했다. 정부는 이들 국가와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한반도의 긴장지수가 높아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끝으로 굳건한 안보태세가 한반도 안정에 필수적임은 새삼스럽게 재론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말이나 행동을 앞세운 과도한 조치는 안보를 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해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