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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12일 금요일

서울-베이징-도쿄…평양에는 언제 가려나


이글은 프레시안 2013-04-12일자 기사 '서울-베이징-도쿄…평양에는 언제 가려나'를 퍼왔습니다.

[정욱식의 북핵이야기]존 케리 국무장관의 방한에 부쳐


한반도 위기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는 가운데,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서울-베이징-도쿄 순방에 나섰다. 첫 동북아 순방의 최대 의제는 단연 북한 문제이다. 그의 순방이 한반도 정세의 극적인 반전을 가져올지, 아니면 아무런 기여도 못하게 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북한이 먼저 언행을 개선해야 대화에 나서겠다는 한미 양국 정부의 완고한 입장을 고려할 때 돌파구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북미 간의 유일한 대화채널인 뉴욕 채널마저 유명무실화되고 있다는 미국 언론들의 보도를 보면 이러한 우려는 더욱 짙어진다.

'평양에는 언제 가려나?' 케리의 동북아 순방 계획을 보면서 든 안타까운 심정이다. 미국이 북한을 고립·압박·제재하기 위한 노력의 절반만이라도 북한과 대화에 기울였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 미국 존 케리 국무장관이 지난 2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미국의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한 건 2000년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당시 북한의 2인자였던 조명록 차수의 워싱턴 방문에 대한 답방이자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을 위한 사전 준비의 성격도 함께 띠고 있었다. 이미 고인이 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올브라이트를 데리고 수만 명이 운집한 김일성 경기장에 찾았다. 그리곤 올브라이트에게 말했다. "이것이 공화국의 마지막 미사일 발사입니다." 카드 섹션으로 미사일 발사 장면을 연출하곤 미사일 문제를 풀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이다.

그러나 2000년 11월 대선에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가 당선되면서 클린턴의 방북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올브라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의회와 전문가 그룹의 많은 사람들이 북한과 하는 거래가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의 명분을 약화시킬 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에 반대했다." 공화당의 MD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클린턴의 평양행을 가로막고 타결 일보 직전까지 갔던 미사일 협상마저 요격한 것이다.

케리가 평양에 가야 하는 까닭은?

케리 장관은 미국 상원으로부터 5월 15일까지 범정부 차원의 광범위한 대북정책 보고서를 마련해 의회에 제출토록 요구받았다. 아직 동아태 담당 차관보 등 국무부의 아시아 팀 인선이 마무리되지 않아 보고서 제출이 늦어질 수는 있다. 어쨌든 케리 보고서는 2기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뿐만 아니라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의 향방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케리 보고서 제출이 임박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페리 보고서'이다. 1998년 8월 북한의 금창리 핵의혹 시설 논란과 광명성 1호 발사로 촉발된 한반도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클린턴 행정부는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을 대북정책 조정관으로 임명해 범정부적인 대북정책 검토 및 권고안을 작성케 했다. 8개월간의 집중적인 작업을 통해 1999년 10월 발표된 페리 보고서는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접근"을 제안하면서 한반도 정세의 극적인 반전을 가져왔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고위급 회담이 맞물리면서 한반도 냉전 종식의 문턱까지 갔었다.

당시 페리 보고서가 큰 기여를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미국 정부의 집중적인 노력과 김대중 정부와의 긴밀한 협의, 그리고 북한의 호응이 맞물렸던 것이 주효했다. 특히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페리의 방북이었다. 1999년 5월 클린턴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한 페리 일행은 북한의 고위급 관료들을 두루 만나 "북한 정부의 관점을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했었다. 페리 스스로도 방북 경험이 대북정책 수립에 대단히 유용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미완의 정책으로 끝난 '페리 프로세스'를 재가동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케리의 방북을 포함한 북한과의 고위급 회담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책의 상대를 제대로 만나보지도 않고 나오는 정책은 이미 그 자체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선입견과 관성에 사로잡힌 정책으로는 오늘날의 한반도 위기를 타개하기는커녕 더 불안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잉태하게 될 것이다.

더구나 북한은 미국과의 최고위급 대화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NBA 스타 출신 데니스 로드먼도, 평양 주재 영국 외교관들도 전하고 있는 메시지는 "김정은은 오바마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김정은 체제가 오바마 행정부의 최고위층과의 대화를 원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케리가 평양에 가져가야 할 '두 가지'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대화의 성과를 확신할 수 없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결과를 예단하기에는 적극적인 대화 시도가 턱없이 부족했다. 또한 클린턴 행정부 때나 부시 행정부 막바지의 고위급 접촉의 성과도 있었다. 지금 대화에 나서는 것은 북한의 위협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글로벌 아마겟돈'의 위기에서 소련 지도부와의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었던 케네디 행정부를 소련의 협박에 굴복했다고 비난하지는 않는다. 대화 이외에는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또한 대결의 한쪽 당사자인 북한이 고위급 대화를 원하고 있는 상태에서 미국의 대화 회피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미국의 의도가 무엇이냐는 의구심만 증폭시킬 뿐이다.

케리의 방북을 비롯한 고위급 회담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핵심적인 의제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하나는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논의에 즉각 착수할 의사가 있다는 점을 전달하는 것이다. 기실 오늘날 최악의 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데에는 북한에 큰 책임이 있더라도, 평화협정 논의 자체를 기피해온 한미 양국에도 그 책임이 작다고 할 수 없다. 6자회담 9.19 공동성명에서 평화협정을 논의하기 위한 '별도의 포럼'을 구성하기로 합의한 지 8년 가까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평화포럼은 한 차례도 열리지 않고 있는 현실은 이러한 지적이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노무현 정부와 부시 행정부 시기의 한미 대북정책 공조에서는 평화협정과 평화체제가 핵심적인 공동의 목표로 설정되었으나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행정부 들어선 이후에는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서도 평화협정이나 평화체제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평화협정과 관련해 두 가지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하나는 '북핵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이고, 또 하나는 '주한미군은 어떻게 되느냐'이다. 전자의 우려와 관련해서는 평화협정에 북한의 핵 폐기 대상, 방식, 시한을 명시하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 이를 위한 획기적인 신뢰조치로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카자흐스탄의 사례처럼 북한이 '과도기적 지위'로 NPT에 복귀하는 것을 협의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평화협정-비핵화-NPT를 화학적으로 융합해보자는 것이다.

후자의 문제도 기우이다. 북한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북미 적대관계가 종식되면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주한미군의 주둔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주한미군 철수를 전제로 하는 평화협정 체결에는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북한에 전달하면 될 것이다.

또 한 가지 오바마 행정부에 권고하고 싶은 것은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전향적인 태도이다. 이는 미국이 2000년에 했던 미완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자 냉전과 열전의 위험을 오가고 있는 한반도를 탈냉전으로 인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아마도 오바마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면 김정은 위원장은 핵실험으로 응답할 것이다. 어두컴컴한 지하가 아니라 수만 명이 연출하는 카드섹션으로 말이다. 그리고 오바마에게 말할 것이다. "이게 우리 공화국의 마지막 핵실험입니다."

2011년 12월 21일 수요일

"비난은 김정일에게, 그러나 북한 주민들에겐 원조를"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20일자 기사 '"비난은 김정일에게, 그러나 북한 주민들에겐 원조를"'을 퍼왔습니다.
[해외시각] '브래트 트래블' 북한편 저자 "북한은 '생존'의 귀재" 곽재훈 기자(번역)

유명한 여행 가이드북 '브래트 트래블' 시리즈의 북한편 저자 로버트 월러비는 1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인터넷판 기고에서 김정일의 사망은 역설적으로 북한과의 평화를 수립할 수 있는 기회라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 북한의 도발 등을 죽은 김정일의 탓으로 돌리고 새로운 북한 지도부와 원조‧무역을 통해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고 서방에 제언하면서 "지금은 김정일의 사망을 북한 역사상 가장 좋은 일로 만들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다음은 월러비의 글 주요 내용이다. (☞원문 보기)


▲19일 평양에서 북한 주민들이 고(故)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 앞에서 김 위원장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북한과의 평화를 수립할 때

북한의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의 죽음으로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서방이 북한과의 평화를 수립함으로써 한반도의 안정을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죽음은 북한과 (동북아) 역내에 많은 불확실성을 야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예상대로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러나 우리는 서울이 불바다가 되기보다는 평양이눈물바다가 되는 것만을 보게 될 것이다.

북한 내부의 분열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는 공개된 반정부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수만 명이 목숨을 걸고 중국으로 탈출하고 있지만 북한에는 야당도 없고 '아랍의 봄' 같은 상황을 불러올 통신수단도 없다.

'경제 붕괴'에 대한 모든 논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사실 놀라운 회복력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수십 년 동안 계속된 한국‧미국과의 반(半) 전쟁상태, 외교적‧경제적 고립과 제재, 기근, 핵무기 개발에 대한 국제적 비난, 그리고 김일성 주석의 사망도 이겨내고 살아남았다. 북한이 가장 잘 하는 것은 '생존'이며 이는 20대인 김정은의 치하에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북한에 대한 어떤 분석에서도 간과되는 것은 생존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 2400만 북한 주민이다. 서방에서 그들은 죽은 지도자를 숭배하며 노예 근성을 가진 세뇌된 기계로 자주묘사된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이 서방의 제재로 인해 더 심해진 기아나 연료 부족으로 사망한다 해도 우리(서방)는 별 불편함을 못 느낀다.

알려지기로 북한 정권은 미치광이의 영도 아래에서 정권의 생존을 첫 번째 목표로 놓고군대에 자원을 우선 배분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한국이나 초강대국 미국과 평화 상태에 있지 않은 그들이 달리 뭘 하겠나?

따라서 서방은 (북한의) 목을 죄고 있는 제재와 위협은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며, 이 기회를 활용해 모든 과거에 대한 비난을 죽은 김정일과 그의 개인적인 기괴함(cult) 탓으로 돌리고 북한에 원조와 무역, 평화를 제공해야 한다.

이는 "북한의 나쁜 행동에 보상을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정권 달래기'도 아니며 평화를 위해 위험한 무기나 핵에 대해 이미 존재하는 구조적 감시 협상을 포기해야 함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북한은 몇 년 동안 사실상 핵보유국이었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큰일도 없었다. 그런 큰일은 특히 중국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들이 북한의 원자로 폐쇄에 대해 경수로 기술과 중유를 제공하기로 한 북한과의 오래된 합의(제네바 기본합의)를 어겼을 때 북한은 핵 프로그램을 재개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고 거짓말을 앞세워 중동을 침공하면서 북한의 핵폭탄 제조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 공격적인 행동 앞에서 폭탄을 만들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미친 짓이다.

더 나쁜 것은,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려 하면서 이뤘던 지난 수 년 간의 외교적‧경제적 진전이 이 핵 소동으로 인해 후퇴했다는 것이다. 1990년대 한국의 김대중 정부는 미 클린턴 정부의 축복 하에 북한에 화해와 투자의 "햇볕정책"을 폈고 김정일은 이를 열성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때 평양의 핵 프로그램은 멈췄었다. 반미 선전선동도 중단됐고 북한과 유럽연합(EU), 영국 간에는 외교와 무역 관계가 맺어졌다. 가족을 넉넉히 먹이고 친구와 맥주잔을 기울이며 소풍을 가서 공원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길 바랐던,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지만 어쩌다 변방의 이상한 나라에 태어났을 뿐인 (하지만 더 나이든 사람들은 김일성을 위해 울었을) 북한 주민들은 진정으로 평화의 새 시대가 싹터온다고 믿었다. 워싱턴의 네오콘들이 판을 깨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무력 대치와 위협 속에서도 한국 돈 수십억 원은 여전히 북한의 공단과관광시설에 투자돼 있다. 세계에서 가장 경계가 엄중한 전선인 '비무장지대'의 일부는 지뢰가 제거됐고 탱크조차 지나가기 두려워했던 길을 관광버스가 가로질렀다. 또 하나의 희망은 평양을 거쳐가는 철도로 인해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이 더 강화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바로 지난주, 북한과 미국의 당국자들은 핵 프로그램에 대한 조건 없는 미국의 인도적 대북지원을 논의하러 만났다. 이 협상에 '평화'를 더하고 버락 오마바 미 대통령으로 하여금 그가 이라크전을 끝냈듯 한국전을 끝내게 해야 한다.

앞선 전례들은 북한과 협력하는 것이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원조와 무역은 적어도 고통받는 북한 민중들에게 구원이 될 것이다. 지금은 김정일의 죽음을 북한 역사상 가장 좋은 일로 만들어야 할 때다.



/곽재훈 기자(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