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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6일 수요일

"일구야! 광화문 시위 참 잘했다."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6-04일자 기사 '"일구야! 광화문 시위 참 잘했다."'를 퍼왔습니다.
MBC, 최일구, 권재홍, 이진숙과의 만남

▲ 김수진·최일구 MBC 아나운서 1인 시위. ⓒ 미디어몽구 트위터(@mediamongu)

“일구야! 오늘 마와리 돈 것 풀 해봐라.” 당시 연합통신의 한 고참 경찰기자는 우리가 지금은 앵커로 익숙한 최일구 초년병 기자에게 반말로 이런 저런 일을 시켰다. 1987년 서울 중부경찰서 기자실의 풍경이다.
여기서 마와리는 일본말로 돌아다닌다는 마와루의 명사형이고 경찰서를 돌아다니며 기사거리를 찾는 경찰기자(또는 사건기자)를 사쓰마와리란 일본말로, 지금 시각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말이지만 어쨌든 당시 기자 사회에서는 이렇게 부르곤 했다.
요즘은 잘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같은 언론사의 선배가 후배에게 반말을 하는 것은 예사였다. 경찰기자 가운데는 서로 다른 언론사 후배한테도 연조가 많이 차이 날 경우에는 종종 반말하는 경우가 있었다. 반말을 한 그 선배와 최일구 기자의 중간 정도 연조였던 필자가 그에게 반말한 기억은 없지만 당시 그에 대한 기억은 사건 현장 이곳저곳을 발바닥이 안보일 정도로 열심히 다녔던 민완 방송기자로 남아 있다.
발바닥 닳게 다녔던 방송 민완기자 파업현장으로
그와는 그 뒤 취재현장에서 만난 기억이 없고 방송뉴스에 종종 모습을 보이다 어느 날 갑자기 유명 앵커가 되어 매일 화면에서 만나게 됐다. 그런 그가 이번 문화방송 대파업 때 유명세와 간부급 기자를 모두 떨쳐버리고 파업에 동참해 후배들을 격려하는 모습을 보고 박수를 보냈다.
그가 최근 후배들의 목을 계속 자르고 있는 김재철 사장과 그 측근인 권재홍, 이진숙 아웃을 외치는 1인 시위를 4일 광화문 광장에서 벌였다는 소식을 듣고 권재홍과 이진숙과도 인연이 있는 필자로서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현실에 대해 서글프고 안타깝고 분노하는 마음을 누를 길이 없어 자판을 두드리게 됐다.
먼저 권재홍 보도본부장은 대학에서 같은 과는 아니지만 사실상 같은 과 후배라고도 할 수 있는 일년 후배다. 그와는 유신시절 이른바 생물3과라고 해서 미생물학과, 식물학과, 동물학과로 나뉘어져 있던(지금은 생명과학부로 통합 돼 있음) 때 관악캠퍼스에서 같이 공부했다. 학년이 달라 교련이나 체육을 같이 하지는 않았고 생물3과생들이 공통으로 배우는 과목들도 함께 배운 기억도 없다. 그는 학과 공부보다는 대학 방송반 활동을 열심히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앵커가 된 유명인 후배들에게 손가락질 
그는 학교 졸업 후 시사영어학원에 잠시 몸담았다가 언론계로 진출했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서인지 필자보다 1년 남짓 더 일찍 기자가 됐다. 1980년대 야생화의 사계 등 자연다큐멘터리로 이름을 날리고 큰 상을 여러 번 받은 그는 사회부 기자를 오래 한 필자와는 달리 경제부 기자 생활을 오래 한 탓인지 출입처나 취재현장에서 서로 만난 일이 없었다.
그도 어느 날 앵커가 되어 유명인이 되었고 김재철 사장 밑에서 최측근이 되어 보도본부장이란 높은 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파업 와중에 얼마 전 퇴근길에 후배들에게 자신이 폭행당했다는 허위사실을 MBC 9시 저녁뉴스 헤드라인으로 보도하도록 지시해 요즘 파업 후배들의 손가락질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자신이 뉴스의 중심이 돼버린 또 다른 유명인이 됐다.
이진숙 기자는 이라크 종군기자로 많은 시청자들에게 각인돼 있다. 그는 서방기자와 한국 기자를 모두 싫어하는 후세인의 이라크 시절에도 상대적으로 신뢰를 받아 단독 기사나 인터뷰를 현지에서 하는 능력을 발휘해 아직도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꽤있다.
그와는 김영삼 정부 때 손학규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같은 출입처에서 선후배 기자로 만났다. 당시 필자는 출입기자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 기자가 다른 동료 기자와 대화를 나누거나 기자실 소파에 앉아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일을 거의 보지 못했다. 필요한 취재 아이템을 가지고 취재원(복지부 공무원)을 만나고 바로 회사로 들어가곤 했다. 그래서 필자와도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보지는 못했다.

▲ MBC기자회가 해고 동료들을 위한 릴레이 시위에 돌입한 4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첫번째 주자로 나선 최일구 앵커가 피켓을 목에 걸고 서 있다. ⓒ News1 박철중 기자

1986년으로 기억하고 있다. 연말에 되어 장관(손학규)이 기자실에 들러 바빠 기자들과의 송년모임도 못해 미안하다며 구두상품권인지, 백화점상품권인지 5만원짜리인지, 10만원짜리인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지만 아무튼 대변인을 통해 상품권을 기자 당 한 장씩 주고 갔다. 대부분 한 장씩 나눠 주고 이진숙 기자에게 이를 주려 하니 그는 받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필자 것과 보태 기자실 서무 아가씨(2명)에게 연말보너스 격으로 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는 이 일로 필자에게 주관이 뚜렷한 기자로 각인됐다.
그 뒤 뉴스에서 별로 자주 보이지 않더니 어느 날 뜻밖에도 문화방송 홍보국장으로 기자 때와는 또 다른 유명세를 날렸다. 지금 파업을 벌이고 있는 대다수 문화방송 동료들에게 유명세가 아니라 악명세를 계속 날렸다. 그리고 그는 권재홍 보도본부장과 함께 퇴출 1순위로 이들에게 꼽히는 수모를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라크 종군기자 회사편에서 악명 날려
이제 내가 알고 있던, 나와 인연이 있던 권재홍․이진숙과 최일구는 서로 프리허그를 할 수 없는 사이가 돼버렸다. 필자는 이들 가운데 최일구 앵커의 정의로움과 양심의 행동을 믿는다. 그 정도의 경력에 유명세는 지닌 그이고 보면 사실 마음만 먹으면 정치권에 진출할 수도 있고 방송사에서 높은 자리나 요직을 꿰찰 수도 있다. 한데도 그는 그러지를 않았다.
그래서 김재철 사장에 의해 해고된 후배 박성호․이용마 기자들을 위해 "해고기자 살려내라" "김재철, 권재홍, 이진숙 OUT"이 적힌 팻말을 들고 1인 시위 첫 주자로서 서울시민 앞에 당당히 나선 것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25년 전 어느 선배가 중부서 기자실에서 했던 표현법을 빌려 “일구야! 장하다. 광화문 1인 시위 참 잘했다.”란 말을 언론계 선배로서 보낸다.

안종주 기자  |  jjahnpark@hanmail.net

2012년 6월 3일 일요일

MBC 기자회장 "두번 해고 당한 심정을 아십니까?"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6-02일자 기사 'MBC 기자회장 "두번 해고 당한 심정을 아십니까?"'를 퍼왔습니다.
[인터뷰]박성호 MBC 기자회장 '김재철 사장 퇴진이 파업 사태 해결'

지난 2009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안을 맴돌았던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는 2012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언론인들에게 올해는 ‘잔인한’ 한해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언론인 총파업이 장기화되고 정면 충돌 양상으로 나타나면서 언론인들이 해고를 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쌍용차의 구호대로라면 두번의 살인을 당한 언론인이 있다. 박성호 MBC 기자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박 기자회장은 지난 2월 29일 제작 거부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 이후 재심을 청구해 정직 6개월로 감경됐지만 지난 30일 직장 질서 문란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또다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재심 절차가 남아있다고 하지만 두번의 해고를 당한 이상 감경 조치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해고 통보 이틀 후 6월 첫째날, MBC 지하식당에서 박 기자회장을 만났다. 예상한대로 그의 얼굴은 어두워 보였다. "속이 상한다"는 한마디로 담담한 심경을 전한 그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가족들한테 미안하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그가 두번째 해고 통보를 받은 날은 장인어른이 간암 수술을 받은 날이었다. 아내는 병원에서 장인어른의 수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고, 박 기자회장은 집에서 둘째 아이를 재우고 있을 때 해고 조치가 내려졌다는 전화를 받았다.
두 번의 해고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회사로부터 최종 해고 통보 전화를 받을 때 둘째가 무릎팎에 안겨 있는데 이상하게 아이를 세게 안게 되더라고요"
지난 2월 첫번째 해고를 당하고 이튿날에는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있었다. 박 기자회장은 당시를 기억하면서 "묘한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첫째 애한테는 회사에서 나쁜 사장님과 싸우는데 아빠가 대장이 돼서 뉴스를 못하게 됐다고 설명했는데 큰 아이는 싸움에서 졌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구요. 부모님은 첫번째 해고를 당했을 때는 옳은 일을 하는 거니까 신념을 갖고 잘 하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몸 좀 사리지 그랬냐고 말씀하셨죠.(웃음)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몸이 안 좋으시기도 하고 조선일보를 보시는데 우리 기사를 잘 다루지 않아서...이럴 때는 조선일보가 좋네요"
넉달 째 월급을 받지 못하면서 생활도 어려워졌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도 아내가 박 기자회장 모르게 끊었다. 어렵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던 아내에게 "장을 볼 때 걱정 없이 봤으면 좋겠다"는 말도 들었다.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었던 마이너스 통장이 실제 마이너스로 떨어지면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도 박 기자회장에게 가족들은 가장 든든한 우군이다. 두번째 해고를 당한 날 그의 아내는 "신경쓰지마, 어차피 당신이 대세야. 조만간 복귀될 텐데 긴 휴가라고 생각해. 마음 편히 갖자"고 위로해줬다.
"권재홍 보도본부장 괜찮은 선배였는데"

가족을 생각하면 미안한 감정이 들지만 징계를 내린 MBC와 김재철 사장을 생각하며 분노할 수밖에 없다.
박 기자회장은 "첫 번째 징계는 일정 정도 징계를 무릎쓰고 단체행동을 한 것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제가 대표해서 다칠 수 있다고 각오를 하고 있어서 마음이 무겁지 않았다"며 "그런데 이번에는 어처구니없는 사례로 해고를 당하니까 화가 난다. 노사 대치 속에서 노조를 제압하기 위해 전술적인 측면이 짙어 보이는데 이런 식으로 한 개인을 짓밟아도 되는지 분하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꽤심죄가 적용돼 해고를 당한 경우다.
두 번째 해고는 지난 3월 보도국 농성과 지난 5월 16일 권재홍 보도본부장의 퇴근 저지 과정을 문제 삼았다. 특히 지난 16일 상황을 놓고 뉴스데스크 톱뉴스로 권 본부장의 부상 소식을 다루면서 극한 상황이 연출됐다. MBC 기자회는 자사 회사를 상대로 정정보도 청구와 2억원의 손해배상까지 청구해둔 상태다. MBC 입장에서는 박 기자회장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야간 상황에 대해 저희들을 완전히 무슨 폭력 노조원들처럼 뉴스에 이미지를 심었다. 권 본부장은 보도국의 제일 큰 어르신인데, 차라기 화가 났으면 내부 입장 발표를 할 수 있고 엄단하겠다고 하던가, 저를 불러서라도 용서치 않겠다고 하던지 여러 방안이 있는데 뉴스데스크 톱으로 보도를 해버렸다. 이에 정정보도와 손해배상 청구를 한 것은 미디어의 횡포에 저항하는 피해자로써 법적 구제수단을 호소한 것인데, 바로 다음날 인사위에 회부해버리더라. 정정보도 청구에 이의제기하고 절충점을 찾자고 하면 우리가 거부를 했겠나?"  
지난 16일 노조는 시용기자 채용이 부당하다는 뜻을 모아 권재홍 본부장과 면담을 추진했지만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보도국 5층 전체 층도 봉쇄해버렸다. MBC 기자회 소속 기자들이 권 본부장의 퇴근길에 대화를 요구했던 이유다.
박 기자회장은 "대답없는 회사 책임자에게 몰려가서 얘기를 듣겠다고 했는데 거부를 했고 길을 터준 것이 해고의 사유가 된다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얼마나 사용자 측에 파리 목숨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다. 법적으로 판단을 받겠다"고 말했다.

▲ 박성호 MBC 기자회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지금은 서로 얼굴을 붉히고 있지만 권재홍 보도본부장은 박 기자회장이 16년 전 MBC에 입사해 수습 기자를 하고 있을 때 사건 데스크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2003년 이라크 전쟁 종군기자를 거쳐 편집부로 복귀했을 때 편집부장을 맡았던 인연이 있다.
지난 16일 박 기자회장이 차창 문 밖에서 "권 선배님이 이런 선배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던 이유도 두 번의 인연을 걸쳐 권 본부장이 '좋은 선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 기자회장은 "후배들에게 자율성을 보장해주고 큰 줄기를 잡아주면서 후배들을 따뜻히 대해줬다. 합리적이고 그렇게 극단적으로 치우친 사람은 아니었다"며 "파업 기간 중이 아니었으면 기자회장과 보도본부장으로서 충분히 대화를 했을 것이다. 김재철 사장 대 MBC 노조의 극한 대치 속에서 대체인력을 투입하고 부당하다며 막겠다는 상황에서 야기한 슬픈 상황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학생 등록금 집회 있다고 하니 “집회 선동하느냐”
이번 해고 조치의 시발점이 됐던 시용기자 채용 논란에 대해서도 박 기자회장은 할 말이 많았다. '1년 근무(시용) 후 정규직 임용'이라는 채용 조건으로 시용기자를 모집하고 있는 것에 MBC 기자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같은 반발을 보고 일각에서는 밥그릇 싸움이라는 비난도 쏟아졌다.
하지만 박 기자회장은 이같은 비난은 오해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저희가 순혈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MBC에 수많은 경력기자가 입사해 있다. 신입 대 경력 비율이 6 대 4 정도 된다. 경력기자를 선발해서 조직 내에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경력기자 채용 문제에 대해서는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MBC 대다수 종사자들이 김재철 사장 체제 하에서는 공영방송을 할 수 없다고 일손을 놨고, 애를 쓰고 있는데 그 상황을 뻔히 알면서 MBC에서 일을 한다고 한다면 동시대 언론인으로서 지향점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채용되면 알게 모르게 편을 가르게 되고 서로 적대시하게 되고 불신하게 된다. 조직 문화에 얼마나 큰 해악이겠나? 지금 응시하시는 분들에게 말씀드린다. 방송이 정상화되고 채용문이 열릴 때 박수를 받고 올 수 있는 장이 있다. 좀 만 참아달라"
애초부터 기자들이 제작을 거부하고 파업에 돌입하게 된 이유는 공정방송 훼손과 제작 자율성 침해에 있다. 박 기자회장도 별 이유 없이 정부 비판 뉴스가 누락된 것을 숱하게 지켜봤다. 기자출신이지만 지난해부터 앵커직을 맡았던 (MBC 뉴스투데이)에서도 박 기자회장은 참담한 심경을 느꼈다.

▲ 박성호 MBC 기자회장
"제가 작년 6월 10일 아침 뉴스 클로징 멘트로 대학생 반값 등록금 촛불 집회가 야간에 예정돼 있었다고 말했다. 24년 전 6월 10일에는 대학생들이 민주화를 외치면서 시청 앞에 모였는데 오늘날 대학생은 반값 등록금을 외치면서 서울 광장에 모이게 됐다고 말했다. 시대 흐름 의 변화와 오늘날 등록금 천만원 시대 고통을 집약해서 표현한 것인데 부장과 부국장으로부터 앵커가 왜 집회 시위를 선동하느냐고 하더라"
지난해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내곡동 사저 문제를 지적하며 대통령을 만나 백지화를 건의하겠다고 한 뉴스가 별다른 이유 없이 누락되는 것도 옆에서 지켜봤다. 박 기자회장은 관련 뉴스가 아침 조간신문 톱으로 장식돼 있는데, 전날 뉴스데스크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것을 알고 따져 물었다.
박 기자회장은 "정치부에 문의를 해보니 납득할 수 없는 해명을 했다. 그런 것을 왜 요구를 하느냐, 그게 문제가 되느냐는 식의 반응이 돌아왔다. 문제를 모르고 있는 것이 정말 문제가 아니냐"며 "이런 일이 거의 이틀에 한번 꼴로 있었다. 그런 일을 추적하고 따지면 굉장히 편집방향에 비판적이거나 여권이 불편하는 기사를 좋아하는 냥 비쳐지는 것 같더라. 앵커 입장에서는 메뉴판에 뭐가 빠지는 것이 없느냐를 보는 것이 기본인데 그때 당시에는 이런 식으로 앵커를 할 거면 언제 그만둬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재철 사장 퇴진이 파업 사태 해결
박 기자회장이 지난 2005년 (시사매거진2580) 기자로 있을 때 김재철 사장은 보도제작 국장을 맡고 있었다. 짧은 기억이지만 당시 아이템 선정 문제나 취재에 있어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박 기자회장 말대로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공정방송이 훼손됐다는 직접적 '실증 사례'들이 무수히 많다.   박 기자회장이 이번 파업 사태의 해결 중 하나로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으면 본인이 어떤 부분이 억울한 측면이 있을지 몰라도 본인과 후배들 고통을 함께 덜고 회사를 정상화 시키는데, 본인이 아쉽더라도 통 큰 결단을 하시면 박수 받고 떠날 수 있다"
한편에서는 김 사장의 개인적 비리 의혹에 힘을 쏟으면서 이번 파업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지만 김재철 사장과 무용수 J씨의 관계 의혹도 반드시 해소시켜야할 대상이라는 것이 박 기자회장의 생각이다.
박 기자회장은 "노조에서는 근거있고 구체적인 방대한 양을 취재한 의혹을 제기했는데, 회사는 근거가 빈약해보이고 흠집내기라고 하고 있다. 수사당국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서 결론을 내면 된다"며 "제기된 의혹은 무용수 J씨가 많이 등장해서 그렇지, 본질은 회사의 정상적인 사업 추진 방식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고 CEO로서 회사의 해를 끼친 것으로 볼만한 것들이 수두룩하게 있고, 그렇다면 공영방송 사장이 갖춰야할 덕목으로써 보도 공정성 수호와 윤리 도덕적인 자질 측면 모두에 있어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 언론사 파업 문제 해결 나서야
박 기자회장은 이번 파업은 국내외 언론인 투쟁 역사를 따질 때 의미가 크다고 역설했다.
"김재철 사장 개인에 대한 문제에서 비롯됐지만 근본은 공영방송사가 정권의 영향력 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원래 본연의 전파가 허가되고 부여된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시정하려는 노력이라고 본다. 프랑스에서는 1968년 공영방송에 대한 정부 보도 누락 지시와 간섭 때문에 총파업을 벌인 적이 있다. 1975년 이탈리아에서도 공영방송이 정권 편향적이라고 해서 총파업을 한 적이 있다. 공영방송제를 채택하는 나라들에서는 끊임없이 정권과 방송 사이에 근원적 갈등이 있다고 본다. 정치권력이 공영방송을 전리품이나 도구를 사용하는 행태에 대한 언론인들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저항이 있는 것이다. 이번 언론인 총파업은 모두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박 기자회장은 정치권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사태 해결을 주문했다. 그는 "정치권이 이 문제를 직장 내 문제로 치부할 성질은 아니라고 본다. 해외 사례들도 보면 의회와 내각이 나서서 해법을 모색했었다"며 "저희가 스스로 힘으로 싸우고 있지만 손을 빌려 달라는 것이 아니다. 사태 해결에 대해서는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도 본질적인 고민과 관심을 꾀할 때"라고 말했다.
박 기자회장은 마지막으로 넉 달 넘게 방송사 파업을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파업이 길어지니까 시청자들도 인내심이 떨어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저희만 과거에 백번 잘했고 사장만이 잘못이다’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성원과 비판 모두 느끼고 있다. 저희들도 시민들의 지적을 잊지 않고 복귀하면 일하는데 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양해를 부탁 드린다"
1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는 저녁 6시가 넘기면서 끝이 났다. 지하 식당을 나와 MBC 로비에 들어서자 어김없이 기자들이 피케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박 기자회장과 헤어지고 저녁 8시경 MBC 구성원 35명이 기습적으로 대기발령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MBC는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6명이 해고를 당하고, 105명이 중징계 조치를 받았다. 그리고 이날 또다시 언제 징계를 받을지 모르는 35명의 명단이 추가됐다.

이재진 기자 | jinpress@mediatoday.co.kr  

2012년 4월 7일 토요일

해직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4-04일자 기사 ' 해직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퍼왔습니다.
[미디어현장] 박성호 MBC 기자회장

해고된 이후 그렉 다이크(Greg Dyke) 전 BBC 사장의 회고록을 집어 들었다. 그 역시 ‘잘린’ 사람이어서 손이 갔다. 2003년 5월 BBC는 영국 정부가 참전 명분을 위해 이라크 정보 문건을 조작했다고 보도했다. 이 뉴스로 그는 블레어 정부와의 갈등 끝에 이듬해 1월 해임됐다.
그러자 영국 각지의 BBC 직원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항의 시위를 벌였고, 일간지에 그를 지지하는 광고를 냈다. 사랑하던 일자리를 잃은 충격과 직원들이 보여준 뜨거운 반응에 그는  해임된 날을 ‘나쁜 날이자 좋은 날’이었다고 적었다.
나에게는 2월 29일이 꼭 그랬다. 다이크 사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의 해고 소식이 알려지자 기자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피켓 시위에 집단 농성, SNS를 통한 응원. 차장급 이하 기자들 166명이 집단 사직을 결의했다. ‘박성호 기자가 돌아오지 못하면 우리도 떠나겠다’며. 다 초유의 일이었다. 내가 하룻밤에 백 통 넘는 문자를 받은 것이나, 선후배들로부터 생전 들을 일 없던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것까지 포함해서. KBS, SBS, YTN, 조선, 중앙, 동아, 한국, 한겨레 등 언론계 동료들, 취재원들, 동창들. 광주, 부산, 중국, 영국에서도 위로와 응원이 이어졌다. ‘나쁜 날이자 좋은 날’이었다.
해고 이후 사람들은 ‘훈장을 달았다’, ‘계급장을 달았다’는 말을 건네 왔다. 대부분은 격려였지만, 개중에는 ‘언젠가 써먹을’(?) 경력 하나 생긴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있었다. 남들이야 뭐라 말하건, 내가 보기엔 족쇄다. 해.직.기.자. 이 네 글자는 복직해서 퇴사할 때까지 죽 따라다닐 터이니. 용기 있는 언론인의 수식어로 붙을 수도 있다. MBC 저널리즘과 저항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의 언행이 그 타이틀에 값하는가 아닌가를 두고 평가대상이 되기 쉽다. 해직기자 출신이라 다르네?, 해직기자 출신이라더니 왜 저래? 하는. 그래서 해직기자라는 나의 ‘과거’는 ‘미래’를 보증 또는 억압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곧잘 하게 된다.
달리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사람은 변한다고 하지 않는가? MBC 노조의 1992년 파업 동영상을 유튜브로 봤다. 몇몇 선배들이 구호를 외치고 전단을 나눠주는, 짧게 스친 장면이 긴 여운을 남겼다. 지금은 파업에 불참중이고 노조의 ‘공적(公敵)’으로 지목된 분들이다. 과거에는 노조 간부였다가 세월이 흘러 누구보다 노조 탄압에 열을 올리는 경영진도 한둘이 아니다. 이 분들이 변한 건지 아닌지는 물어보지 않아 모른다. 혹시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라며 선을 긋고 있지는 않을까? 그렇게 산다면, 해직기자라는 나의 ‘과거’가 ‘미래’를 보증 또는 억압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복직을 전제로 앞날을 떠올려 본다. 1. ‘해직기자’라는 이름에 값하는 삶을 살 가능성 2. ‘해직기자’라는 이름만을 들먹이며 살 가능성 3. ‘해직기자’는 이력서상 항목일 뿐 세월에 맞춰 변모할 가능성. 그렇다. 훗날 ‘그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해직기자라는 ‘과거’는 당당한 대답을 나오게 할 신분증일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면 위의 2, 3번에 해당될 소지가 있다. 1번이 되려면? 지금도 날마다 지고 있는 ‘말빚’을 떼먹지 않고 갚는 게 아닐까 싶다. 공정 방송하겠다, 불편부당한 보도하겠다,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겠다, 아, 빚 갚는 게 어디 쉬운 일이랴! 또 하나. “과거에 어떤 길을 걸었느냐보다, 지금 행동해야 할 때 어떤 길을 걷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한 후배의 이 말을 나의 ‘미래’를 향해 그물로 쳐놓는다.
해고된 지 한 달이 되던 날, 다이크 회고록을 다 읽었다. 머릿속에 ‘저항’ 두 글자가 남았다. BBC의 뉴스 편집진, 임원들에게 저항은 공영방송의 일상적인 가치였다. 그들은 정부도 일반 국민처럼 BBC에 압력을 가할 권리는 있지만, BBC가 저항하지 않고 굴복할 때가 문제라는 입장을 분명히 갖고 있다. 텔레비전 방송이야말로 정치적 압력에 끊임없이 저항하며 영원히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곳이라고도 정의했다. MBC의 보도 책임자들이 떠오르면서 과연 같은 행성에 사는 사람들일까 싶었다.


박성호 MBC 기자회장.
압권은 이라크전쟁 보도에 관한 블레어 총리의 항의 서한에 다이크 사장이 보낸 답신이다. “총리님은 자신의 독특한 세계관을 인정받기 위해 힘겨운 전투를 벌여왔습니다. 그 전투 상황이 보도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회에서 다른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총리님의 견해에 찬동하지 않는 특정 기사에 대한 우려 때문에 BBC 전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옳지 못한 처사입니다.”
뒤이어 감독기구인 BBC 경영위원회(현 BBC 트러스트)도 성명을 내고 총리실에 맞섰다. 김재철 사장과 방문진이라면 가능한 일이겠는가? 보도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저항은 일선 기자들만의 몫도 아니고, 간부와 사장, 감독기구까지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해직 기자도 ‘별’ 달았다고 뒤로 물러서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저항!

2012년 3월 20일 화요일

MBC기자회 "이진숙ㆍ문철호, 기자 아니다"


이글은 미디어스 2012-03-19일자 기사 'MBC기자회 "이진숙ㆍ문철호, 기자 아니다"'를 퍼왔습니다.
19일 기자회원에서 제명…"기자 가치 무너뜨렸다"

MBC기자회(회장 박성호)가 19일 기자회원인 이진숙 MBC 홍보국장과 문철호 MBC 베이징 지사장(전 보도국장)을 제명했다.
MBC기자회가 19일 오후 기자총회를 개최한 결과, 87년에 입사한 MBC 24기 이하 121명의 기자 가운데 116명이 이 두명에 대한 제명에 찬성했다. 반대는 5표다.


▲ 문철호 전 보도국장(좌)이진숙 홍보국장(우)

MBC기자회가 김재철 사장 체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이진숙 홍보국장과 문철호 전 보도국장을 제명한 것은 이 둘에 대한 MBC 기자사회의 '단죄'로 풀이된다. MBC기자회는 "회원 제명은 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밝혔다.
문철호 지사장은 MBC기자회가 1월 25일 제작거부에 돌입할 당시 보도국장을 맡았던 인물로서, 불공정 보도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MBC기자회의 요구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은 채 파업 돌입 이후 '베이징 지사장'으로 발령난 바 있다. 전선기자로서 이름을 날렸던 이진숙 홍보국장의 경우, '소셜테이너법'의 논리를 생산하고 MBC 파업을 적극적으로 왜곡하는 등 '김재철 지키기의 최선봉'에 나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MBC기자회는 총회 직후 성명을 내어 "문철호, 이진숙 두 사람은 기자로서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가장 상징적인 방식으로 무너뜨렸다"며 "두 사람을 기자로서 인정할 수 없음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MBC기자회는 김재철 사장과 전영배 전 보도본부장에 대해서도 "이미 기자회원이 아니기 때문에 제명할 수는 없지만, 역시 기자로 인정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와 국민, 그리고 반세기를 이끌어온 자랑스러운 MBC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갈 이름도 모를 수많은 후배 기자들에게 기록을 남기기 위해, 다시는 이런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아픈 결단을 내린다"고 말했다.

2012년 3월 8일 목요일

언론 생태계를 뒤흔드는 ‘방송 항쟁’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3-07일자 기사 '언론 생태계를 뒤흔드는 ‘방송 항쟁’'을 퍼왔습니다.
MBC, KBS, YTN의 연대 파업

지금 한국 언론계에서는 사상 유례 없는 격동이 일어나고 있다. MBC, KBS, YTN이 함께 벌이고 있는 파업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혼란’으로 몰아붙이고 싶은 세력은 ‘방송 대란’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겠지만, 나는 ‘방송 항쟁’이라는 용어가 적절하다고 믿는다.
방송 항쟁의 불씨를 지핀 주체는 MBC 기자회(회장 박성호)였다. 이명박 정권의 부정과 비리를 시청자들에게 알리지 않거나 축소·왜곡하는 보도를 양산해내는 뉴스책임자의 사퇴를 촉구하던 기자회는 갈수록 뉴스가 먹칠을 더해가자 지난 1월 25일 새벽 6시부터 제작거부에 들어갔다. 제작거부는 기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강경한 수단이다. 카메라기자 모임인 MBC 영상기자회(회장 양동암)까지 합세한 제작거부에 참여한 사람은 150명이나 되었다. 그래서 그 방송사는 제대로 된 뉴스를 내보낼 수가 없었다.
2월 29일에는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 소속 18개 지역 지부들이 성명을 통해 ‘시청자들과 국민의 열망, 그리고 조합원들의 의지를 한 데 모아 공영방송 MBC의 정상화를 위한 김재철 퇴진 투쟁을 할 것’이라며 무기한 파업을 선언했다.


▲ 아수라장 된 MBC 여의도 본사

경영진은 파국이나 다름없는 비상사태를 맞아 'MBC' 이름으로 한 일간신문 1쪽에 ‘5단통’으로 광고(‘문화방송 시청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를 냈다.  MBC는 그 광고문에서 ‘과 등 드라마 시청률이 고공행진하고 있어 시청자들에게 감사하다’고 말머리를 열면서 ‘노동조합은 문화방송의 경영진이 보내준 인내와 관용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MB(명박)씨의 낙하산’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김재철 사장은 ‘공영방송’을 ‘관영화한 상업방송’으로 전락시킨 책임자로서 사퇴하거나 사과하기는커녕 보복인사로 응수했다. 박성호 기자회장을 해고하고 양동암 영상기자회장에게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가한 것을 시작으로, 노조 홍보국장 이용마 기자를 해고하는가 하면 보직을 사퇴하고 ‘파업 동참’을 선언한 주말 뉴스데스크 최일구 앵커와 보직간부, 노조간부 7명에게 중징계를 내렸다. 
기자들이 불을 지핀 MBC의 방송민주화 운동이 거사적인 ‘항쟁’으로 치솟은 것은 간부사원과 중견 기자들, 그리고 해외특파원들이 합세했기 때문이다. 파업 23일째인 2월 23일, 입사한 지 20년이 지난 간부사원 135명이 자기 이름을 걸고 김재철 사장 사퇴를 요구했고, 3월 4일에는 해외특파원 7명이 ‘김재철 사장은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언론 생태계’의 속성에 비추어 볼 때, ‘혜택 받은 자리’ 또는 ‘양지’에서 일하는 중견 언론인들이 노동조합의 파업에 공개적으로 합류하는 현상은 극히 드문 일이다. 일찍이 1974년 10월 동아일보사에서 시작된 ‘자유언론실천운동’, 그 뒤를 이은 조선·한국일보의 투쟁, 그리고 1980년 전두환 일파의 ‘광주 항쟁 유혈 진압’ 직후 전국의 여러 언론사들에서 벌어진 평기자들의 자유언론운동에 소수의 간부사원들이 합세한 사례가 있었을 뿐이다.
김재철 사장이 ‘시청률 고공행진’의 대표적 사례로 내세우던 드라마 의 책임피디와 연출자들이 마지막 부분인 19~20회 촬영을 거부하면서 파업에 동참한 사건은 그에게 결정타나 다름없었다. 시청률 40%를 넘어선 ‘국민드라마’라고 자랑하던 작품이 결정적 대목에서 불방되고 ‘스페셜편’으로 땜질을 했으니 시청자들은 MBC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명확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김재철 사장이 ‘야심작’으로 내세운 드라마 , 일일연속극 , 주말드라마 의 피디들까지 파업에 가세함으로서 MBC는 ‘식물방송’이 되기 직전에 이르렀다.
MBC는 물론이고 방송계 전체에서 가장 인기 높은 예능프로그램으로 꼽히는 의 김태호 PD가 한겨레에서 조국 교수와 한 인터뷰를 통해 밝힌 파업 동참 이유는 방송 항쟁의 동력이 무엇인지를 선명히 보여준다. “예능 피디들은 논리적으로 이게 이렇고, 저게 저렇고 하나하나 따지고 계산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저도 그렇고요. 이성이나 논리에서는 상당히 약하죠. 대신 감성이나 가슴이 발달한 사람들이 많아요. 프로그램을 만들 때도 치밀한 계산이나 구성으로 시청자들을 유혹하여 보게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포인트 하나가 시청자들과 소통이 되면 그걸로 끌고 간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능 피디의 파업 참여도 가슴이 울었기 때문입니다.”
방송 항쟁의 불길은 MBC에서 KBS로 번졌다. 황동진 한국방송 기자협회 회장은 3월 1일 ‘뉴스 공정성이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고 판단하는 기자들 개개인의 양심에 따라 제작거부에 들어가기로 했다. 회사 징계를 감수하고라도 참여하겠다는 열기가 높다’고 밝혔다. KBS 기자들은 새노조 집행부 13명에 대한 ‘부당징계 철회’와 이화섭 보도본부장 임명 취소를 요구해왔다.
KBS 새노조는 3월 6일 오전 5시부터 ‘공정방송 복원, 김인규 사장 퇴진, 노조 징계 철회’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시작했다. 새노조는 ‘지난 4년간 KBS라는 이름을 말하기에도 부끄럽기만 했다’면서 ‘사죄해도 그 죄가 씻어지진 않겠지만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이 길을 나섭니다’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제 파업입니다. 지난 4년 저희는 철저하게 무기력했습니다. 더 이상 망가질 것도 없습니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김인규 집에 갈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Reset KBS! 국민만이 주인!”
KBS 최경영 기자가 트위터에 올린 글은 총파업의 목적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KBS 3월 6일 파업은 수십 년 묵은 국영방송의 잔재를 털어내는 봄 청소. 내부의 쥐새끼, 진드기들이 완전히 박멸될 때까지 철저히 씻어내야 한다. 지난한 싸움의 시작이다. 김인규 퇴진은 그래서 내부 개혁의 첫 단추일 뿐.”
1979년에 입사한 KBS 6기 피디 6명을 비롯해서 입사 25년째를 넘은 피디 44명은 3월 5일 성명에서 ‘지난 4년간 기자와 피디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부끄러움을 떨치고 일어나 좋은 뉴스와 프로그램으로 국민들에게 다가서려는 처절한 몸부림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KBS에서는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뉴스와 프로그램은 사라지고 일방적으로 정권을 홍보하는 관제 프로그램들이 넘쳐났다. 여기에 도청 의혹에 이르기까지 안팎으로 만신창이가 된 KBS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럽다.” 그들은 최근 방송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외면하는 KBS 경영진에 대해 경고를 보냈다. “팟캐스트 방송 , 등이 상징하듯이 2012년 올해 한 해 혁신과 변화, 새로운 가치에 대한 폭발적인 국민들의 욕구와 목소리를 우리의 뉴스와 프로그램에 담아내지 못한다면 더 이상 공영방송 KBS는 존재할 수 없다.”
YTN은 이명박 정권의 언론 탄압과 방송사에 대한 ‘낙하산 인사’에 맞서 한국언론사상 가장 긴 투쟁을 벌여왔다. 2008년 5월 29일 YTN 이사회가 이른바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에 속한 이명박 대선캠프 언론특보 출신의 구본홍 씨를 사장 후보로 추천하자 노동조합은 ‘낙하산 사장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출근 저지 투쟁을 시작했다. 그러자 회사는 10월 6일, 노종면 노조위원장 등 6명을 해고하고 다른 6명을 중징계 했다. 2010년 3월 11일, 서울고등법원 민사 15부는 YTN 해직기자 6명이 낸 징계무효소송에 대해 ‘전원 해고 무효’라는 1심 판결(2009년 11월 13일)을 뒤엎고 노종면 등 3명의 해고는 정당하다고 선고했다.
2009년 10월 9일 YTN 이사회가 배석규 사장 직무대행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하자 노조는 다시 ‘낙하산 사장 반대’ 운동을 펼쳤다. 그렇게 계속된 YTN의 ‘공정방송 투쟁’은 2012년 3월 8일로 1746일째를 맞이했다. 2008년과 2009년의 파업 이후 세 번째 파업을 벌이기로 한 YTN 노조는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사장 자격이 없는 사람이 연임을 하려고 한다. 연임을 결정하는 주주총회가 내달 9일이어서 일단 연임 저지가 급선무다. 현 배석규 사장은 ‘편 가르기’ 인사를 일삼았고,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며 보도를 통제했으며 노조의 주장은 무조건 반대했다. 임단협 승리 쟁취 못지않게 조합원들에게 절실한 문제는 해직자 복직이다. 그러나 배 사장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노조는 배석규 사장이 상징하는 구악(舊惡)을 청산할 생각이다. 배 사장은 YTN이 케이블 시청률 1위라고 하면서 불공정 보도를 반복하고 있다. 배 사장은 2009년 취임하자마자 보도국장 추천제를 일방적으로 폐기했다. 그 자체로 이미 공정방송의 틀이 무너졌다. 이후 편파보도가 쏟아졌다. 2011년 초에는 박원순 인터뷰가 불방됐고, 최근엔 BBK 관련 아이템이 못 나갔다. 정권에 불리한 보도는 계속 보류됐다.”
MBC와 KBS 경영진이 총파업에 대응하는 태도는 ‘관영화한 상업방송’의 본질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MBC 김재철 사장은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출석 요구에 불응한 채 특급호텔을 전전하면서 장기간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3월 6일 노조가 ‘법인카드로 7억여 원을 남용한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그를 고발하기 하루 전에 그는 총파업을 주도하고 있는 노조 집행부 10명을 상대로 3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서울남부지법에 제기했다. 그가 법인카드로 사들인 ‘명품들’ 가운데 여성용이 많고, 7억여 원의 용도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에 대해 MBC는 2월 27일 ‘특보’를 통해 ‘전임 사장 시절 22억 원에 그쳤던 협찬액이 114억 원으로 늘어난 것은 김 사장이 열심히 법인카드로 결제한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김재철 사장은 제작과 편성 체제가 공백 상태가 되다시피 한 거대조직 MBC를 계약직과 신입사원으로 채우려고 하고 있으나 그런 방법으로 방송을 정상화하기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KBS의 김인규 사장은 새노조의 파업에 대해 ‘이명박식 저지 전술’을 사용했다. 3월 6일 새노조가 본관 앞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려고 하자 회사쪽은 본관 계단 앞을 대형버스 4대로 이루어진 ‘차벽’으로 막고 청원경찰을 배치했다. 그리고 유서 깊은 집회장인 ‘민주광장’ 출입구의 셔터를 내려 출입을 통제했다. 한 언론인은 트위터를 통해, 2008년 6월 초 광우병 미국 쇠고기 반대 촛불 시위 때 광화문 네거리 등에 쌓였던 ‘명박산성’에 비유해서 KBS의 차벽을 ‘인규산성’이라고 불렀다.
나는 2012년 초에 터진 ‘방송 항쟁’이 한국 언론에 혁신적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까닭을 자세히 짚어보자.
 이번에 방송인들이 떨쳐 일어난 동기는 ‘자유언론 실천’, ‘언론인의 자주성과 존엄성 회복’, ‘부당한 권력의 하수인인 경영진 청산’이라고 본다. 그리고 ‘SNS(사회관계망서비스)가 대표하는 새로운 미디어 유통방식에 적응하지 못한 채 언론소비대중을 낡은 시대의 패러다임과 독선적인 경영방식으로 속이려 드는 보수적 매체에 대해 방송인들이 개혁의 깃발을 높이 든 것이다.
나는 MBC와 KBS, YTN의 노동조합이 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사적인 항쟁을 펼치는 것을 보면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될는지 궁금하다. ‘만약 그들이 싸우다 지쳐서 무기력하게 투항하고 일터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렇게 되지는 않으리라고 예상한다. 그 이유를 간추리면 아래와 같다.
내가 직접 겪은 ‘동아일보사 자유언론실천 운동(1974년 10월~1975년 3월)’과 오늘의 방송 항쟁을 비교해 보자. ‘10·24 자유언론실천 선언’에서 비롯된 그 운동은 박정희 유신독재체제를 최대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동아일보사의 기자, 피디, 아나운서, 기술직사원들이 긴급조치가 시퍼렇게 살아 있던 시기, 누구라도 정보기관에 잡혀가서 고문을 당한 뒤 재판에서 극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던 철권정치 시대에 과감하게 그 운동을 추진했는데도 박 정권이 무력으로 대응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민중의 열화 같은 ‘격려광고’, 종교계를 비롯한 재야민주단체들의 적극적인 성원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박 정권은 중앙정보부를 통한 ‘광고탄압’이라는 음험한 술책으로 동아일보사의 목을 조이려다 실패하자 경영진에게 압력을 가해 그 운동에 참여한 언론인 113명을 강제 해직시켰다.
당시 동아일보사의 언론인들이 강제해직에 맞서 선택할 방법은 제작거부와 농성밖에 달리 없었다. 그러자 동아일보사 경영진은 박 정권의 비호 아래 청부폭력배와 일부 사원들을 무장시켜 그들을 폭력으로 몰아냈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은 어떤가? MBC, KBS, YTN 노조원들은 방송국 스튜디오를 점거하거나 보도국 등 제작부서에서 농성을 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시민들을 향해 파업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길로 나갔다. 그리고 같은 SNS를 통해 수십만 대중에게 다가가는 첨단 운동방식을 개발해서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나 세 방송사 경영진은 그들을 폭력으로 굴복시킬 수도, 대중한테서 격리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한 나절 안에 수백만 명에게 정보가 전해져 대대적인 항의와 시위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박정희 정권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다수 언론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10년 동안 방종에 가까운 자유를 누린 것 말고는 권력에 대한 굴종과 유착으로 일관했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는 특히 조선·중앙·동아일보와 매일경제, 그리고 문화일보가 ‘권력과의 일체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런데 과거에 비해 두드러지게 달라진 것은 한국 일간지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는 그 신문들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초라할 정도로 약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2007년의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큰 공을 세웠으나, 2010년의 6·2지방선거와 2011년의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필사적으로 한나라당을 지원했지만 참패를 감수해야 했다. 그들의 의제 설정 방식이나 여론 형성 능력이 크게 약해졌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 때는 20~40대 표를, 시민사회운동 출신의 박원순 후보가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보다 배나 더 많이 받은 것이 승리의 결정적 동인이었다. 그들이 이미 조·중·동·문·매의 영향권에서 훌쩍 벗어나 있음을 웬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는데·····.
이명박 정권의 특혜와 온갖 지원으로 종합편성채널을 따낸 조·중·동·매는 지금 ‘0%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시청률 때문에 숨을 헐떡이고 있다. 그 가운데 한둘은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나는 이번의 방송 항쟁이 한국 언론의 생태계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기대한다. 지난 4년 동안 국민에게 진실을 알릴 의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채 삭제되거나 잘린 기사, 데스크가 무시해버린 영상, 불방되거나 가위질 당한 프로그램, '시청률 지상주의‘를 강요당하던 드라마 때문에 전문직업인으로서 주체성과 자존심을 지키지 못하고 울분에 차 있던 기자, 영상기자, 피디들이 항쟁을 통해 다진 동지애를 바탕으로 국민과 함께 가는 방송을 제작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런 새 세상은 쉽사리 오지 않을 것이다. 방송사의 ‘낙하산 사장들’이 마지막까지 자리를 보전하려고 버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힘없이 물러난다면, 이미 레임덕이 되어버린 이명박 정권의 말기가 더 비참해질 것이므로 그들의 ‘자진 사퇴’를 방관하지도 않을 것이다.
 2012년의 방송 항쟁은 오는 4월 11일, 미흡한 점이 많지만 민주진보 진영이 연대를 통해 승리한 뒤 12월 대통령선거를 통해 민주·평화·복지를 지향하는 정부를 세우는 데 이바지할 때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MBC 기자들이 국민 앞에 허리를 깊숙이 숙이면 ‘석고대죄’ 하는 모습은 비장했다.

빼앗긴 자들이여, 광장을 점거하자


이글은 레디앙 2012-03-07일자 기사 '빼앗긴 자들이여, 광장을 점거하자'를 퍼왔습니다.
[기고] 3월 10일, '희망의 광장'을 위해…99%를 위한 새 시대

송전탑에도 숱하게 올라봤다도심의 CC카메라탑은 셀 수도 없다한강 난간에 올라가도 봤고매달려 있다 강물로 뛰어내려보기도 했다크레인에도 올라봤고포크레인 위에도 올라봤다건물 옥상에도 올라봤고지붕 위에도 올라봤다
손수 지어 오른 망루도 셀 수 없다망루에서 불타 죽고도1년 동안 장례도 못 지내고 냉동고에 갇혀보기도 했다 목 매단 이뛰어내린 이화염에 휩싸인 이곤봉에 방패에 맞아 죽은 이말할 수 없다
도대체 이 땅의 빈민들은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도대체 이 땅의 농민들은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도대체 이 땅의 1700만 노동자 가족들은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도대체이 땅의 평범한 이들은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공장 문도 닫히고은행 문도 닫히고법원 문도 닫히고국회 문도 닫히고언론사 문도 닫히고주인집 문도 닫히고민주주의도 닫히니모두의 미래가 닫히고모두의 꿈이 닫혔다
도대체우리는 어디로 가란 말인가빼앗긴 자들이여다시 민주주의의 거리를 열어라쫒겨난 자들이여저 너른 광장을 점거하라생을 반납하지 말고저들을 제압하라좌절은 1%의 몫보라. 99%를 위한 새로운 세기가 저기 다가오고 있다
                                                 * * *
[덧말]
아직 내려놓지 못한 각자 크레인 위의 삶


▲행사 포스터.
‘희망의 버스’ 건으로 구속되어 3개월여를 차디찬 마루바닥의 0.9평 독방에서 지내다 얼마 전 보석으로 나왔다. 이것도 운명인지, 출소 인사를 해야 할 절친한 이들이 모두 영하 10도의 혹한에 ‘희망뚜벅이’들이 되어 서울에서 평택 쌍용자동차까지 걷기 행진을 하고 있었다. 가서 인사를 하는데도 모두 바빠 말 건네기도 계면쩍었다.
주변 걱정도 많아 바로 발 수술을 받으려 했지만, 다른 건 몰라도, 이소선 어머니 묘소 참배는 하고 들어오고 싶었다. 작년 10월 어머니의 소천 때 ‘이소선 어머니의 희망버스’를 제안하고, 모시며 했던 약속이었다.
85호 크레인 위 사람들이 무사히 내려오고, 나와 정진우 씨도 수배가 풀리면 다함께 어머니 묘소로 찾아뵙고 좋아하시던 소주 한 잔, 담배 한 개비 올리겠다는 약속이었다. 다시 내가 병원으로 들어가게 되면 언제 지킬 수 있을지 모르는 터라, 급하게 일정을 맞춰 어머니 묘소를 다녀왔다.
모란공원에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그제서야 우리는 편하게 몇 마디씩 그간 소회를 얘기하며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검찰은 우리를 공동공모정범이라 해서 무슨 일을 사전에 협의하고 공모한 이들이라 하지만, 사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날 85호 크레인 위에 올라 가 있던 김진숙과 정홍영과 박성호 씨의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서러운 눈물을 보아야 했다. 나도 벅차올라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2차 희망버스가 계획된 후 연일 85호 크레인에 대한 사측과 용역깡패들의 침탈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던가. 박성호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차마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던 이야기. 만약에라도 진짜 강제 침탈이 벌어지면 여기에서 생을 버릴 수도 있다는 각오들을 했다는 얘기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 건물 지붕으로 쫓겨 올라갔다 내려온 이들이 아직도 에서 심리상담 치료를 받고 있듯, 당시의 아픔들이 아직도 모두 이 안전한 평지로 내려오지 못하고 있음을 서럽게, 아프게 느껴야만 했다.
무엇을 이기고, 무엇이 끝났나?
그렇다. 우리는 각자의 삶의 크레인 위에서 내려오지 못했고, 아직도 하고 싶은 말들이 많다. 김진숙과 그의 동료들은 집행유예 등의 형벌을 받아야 했고, 나와 정진우 씨는 이 사회에 작은 희망의 씨앗 하나 심는 일에 함께 했다는 까닭으로, 아픈 이웃을 사랑하고 도우려 했다는 죄로 구속이 되어야 했다. 또 수많은 이들이 약식 기소되어 수백만원 씩의 벌금 폭탄과 아직도 끝나지 않은 기소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한진중공업 사측과 어용노조 집행부는 곧바로 지친 조합원들을 협박 회유해 복수노조를 만들었다. 1년 이내 복직이라는 약속을 어떻게라도 파기해보고 싶은 불손한 시도들이 현장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이기고, 무엇이 끝났다는 말인가.
재능교육 특수고용 비정규직들은 1500일을 결국 넘어야 했고, 얼마전 콜트-콜텍의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은 5년만의 대법 판결에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 함은 반드시 기업의 도산을 회피하기 위한 경우에 한정되지 아니하고,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하여 인원 삭감이 객관적으로 보아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도 포함된다’는 지난 판례의 적용을 받기도 했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로만도 그간 수백만명의 정리해고가 가능했는데, 이젠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까지 노동자들이 감당해야 한다. 그 사이 유성기업과 구미 KEC에서는 더 많은 이들이 잘려 나갔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는 이 시대 모든 평범한 이들의 공통 운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이 3월 10일 토요일 시청광장에 다시 모여 이번에는 ‘희망의 광장’을 열어보자고 했다 한다. 우리의 연대로 한진중공업에서 정리해고를 막아냈던 소중한 승리의 경험을 살려, 이제는 한 공장의 울타리 안에서가 아니라, 이 사회라는 울타리 전체에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라는 우리 시대 최악의 악성종양을 도려내는 간절한 ‘희망’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사탕발림 공약이나마 다행
투쟁하는 노동자들도 개별 사업장 단위를 넘어 사회적으로 연대해 보자는 것이다. 마침 희망의 버스 이후 2012년 총선과 대선이라는 정치적 공간을 맞아 모든 정치권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법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또 다시 사탕발림의 빈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분명하게 그것을 이루려면 작년 희망버스 때보다 더 많은 이들이 모여 광장에서 민중의 법을 먼저 만들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총대선이 어떤 당의, 어떤 인물들의 당선과 집권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요구와 의제를 분명히 하고, 한국 사회의 질적 변환을 꾀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들이다. 그래서 다시는 우리 모두가 여야를 불문하고 구시대적인 정치인들의 권력 놀음의 거수기나 주변이 되지 말고, 우리 모두가 이 막중한 정치의 시기에 분명한 주인 행세를 해보자는 것이다.
이제 수술을 마치고 거동이 아직 불편해 나는 나가지 못하지만, 이 광장에 좀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날 전국에서 모이는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이 다시 김진숙처럼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군요."라는 감격의 인사를 할 수 있도록 진짜 많은 이들이 함께 해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무슨 보살행을 바라는 것도, 무슨 동정이나 연민을 구하는 것도 아니다.
얼마 전 나온 콜트-콜텍과 현대차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대법 판결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의 싸움은 하나하나가 우리 사회의 평범하고 가난한 90%의 운명을 구하고자 하는 사회적 투쟁들이다. 이 싸움을 이제 더 이상 소수의 노동자들이 외롭게, 신경쇠약에 걸려가며, 가정이 파탄나며, 관계들이 모두 어긋나며 과도하게 짊어지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가슴 아픈 일들이지만, 보석으로 출소 이후, 몇몇 기자들과 사람들로부터 쌍차 희망텐트와 재능교육 특수고용직 1500일 투쟁, 인천 부평공장의 콜트-콜텍 농성 등을 얘기하며 "그곳엔 크레인이 없지 않느냐?", "그곳엔 96일을 굶던 김소연이, 김진숙이 없지 않느냐?" 거기다 어떤 때는 눈앞이 아득하게도, "송경동이 없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내 가슴이 미어진 이유
그럴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 아니 그곳에 있는 한 명 한 명이 모두 김진숙이며, 김소연인 것이 보이지 않냐고, 느껴지지 않냐고 울고 싶었다. 그런 전형적 상황이, 그런 야만적인 상황이, 그런 가슴 아픈 사연들이 다시 와야만 또 한번 잠깐 움직일만큼 사람들이 나약하게 보이느냐고, 바보스럽게 보이느냐고, 영악하게 보이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다시 또 한 명의 김소연이, 유명자가 굶으러 들어가고, 또 한 명의 김진숙이 죽음의 계단 한 칸씩을 오르고, 또 누군가 매달리려 내려가고, 또 누군가 내가 희생해서라도라는 위험한 생각의 귀퉁이로 몰린다는 것을 잊었냐고 묻고 싶었다. 다시는 그 누구도 혼자 죽음을 결심하지 않아도 되게 이 평지에서, 이 거리에서, 이 광장에서 먼저 연대하면 좋지 않으냐고 묻고 싶었다.
물론 꿈꿔지는 모든 것은 실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상상되어진다. 하지만, 그 꿈이 모두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제반의 조건들이 맞아야 하는 한계가 있음을 안다. 삶은, 사회는 그런 것이라고 뻗쳐오르던 기대를 접는 때가 더 많기도 하다.
또 어떤 한 사람이 계획되어있지 않았던 한 손만을 내밀 때도 얼마나 많은 고민과 결의가 필요한지도 어렴풋이 알기에 함부로 사람들에게 원칙주의적으로, 교조적으로 어떤 행동을 요구할 수도 없다. 그건 오히려 선의로 치장된 폭력이 되기가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꿈꿔본다. 그런 광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이들이 많을 거라고. 모두가 그런 열린 광장의 시대를 다시 꿈꾸고 있을 것이라고, 법도 국회도 은행도 공장도 주택도 사랑도 우정도 그 어떤 것도 모두 닫혀 있는 이 시대의 척박한 공기 속에서 곧 질식할 것 같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고, 새로운 민주주의의 광장에서 새로운 민주주의의 법과 윤리를 새롭게 주체적으로 제정하고 싶은 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법정에서 혐의를 부인한 이유
사실, 희망버스의 법정에서 나는 거의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했다. 내가 다 한 것으로 하고 더 이상 피해자들을 만들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더 큰 오만일 수 있었다. 희망의 버스는 실제 누가 주고 누가 부이고, 누군가 지시를 내리는 소수의 갑이 있고, 이에 무작정 따르는 을이 있었던 수동적인 운동이 아니었다. 참여한 모든 이들이 그 현장의 주인이었으며, 기획자였고, 주동자였다.
그러지 않고서는 나도 희망의 버스 운동이 모두 설명되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영광임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희망버스 승객 한 사람에 불과했음을 확인하고, 전근대적인 검찰의 기소 내용을 모두 반박할 수밖에 없었다.
정당한 나의 주장대로 희망의 버스 승객들은 나와 보니 그간에도 많은 변화와 변이를 거듭하고 있다. 쌍용의 ‘희망텐트촌’으로, 연대와 ‘희망의 뚜벅이’들로, 강원도와 김해로 향하는 ‘생명의 버스’로, 강정으로 향하는 ‘희망의 비행기’로 수없이 진화해가는 희망의 씨앗들이, 산소들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런 새로운 ‘기획자’들이, ‘주동자’들이 이 광장에 함께 해주기를 꿈꿔 본다. 그들의 연대로 다시 새롭게 출발하는 ‘희망의 광장’이 풍성해지기를, ‘웃으며 끝까지 즐겁게, 투쟁’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빨리 나아 나도 그 문화의 광장에, 기쁨의 광장에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2011년 6월 11일, 1차 희망의 버스 당시 비가 내리는 85호 크레인 아래에서 어울려 밤새 노래하고 춤추던 그 날처럼 눈물겨우면서도, 아름다운 광장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재작년 기륭 투쟁 과정에서 이 병원에 들어와 웅크리고 누워 겨울을 보내고 있을 때 김진숙 씨가 85호 크레인 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전해 듣곤 가슴이 무너졌었다. 그래도 올해는 다행이다. 그가 잘 내려와 이번 희망의 광장 때는 팔순을 맞은 백기완 선생과 토크쇼도 연다고 한다. 허클베리핀·와이낫·무키무키만만수·윈디시티 등 밴드들이 함께하는 희망 콘서트의 제목은 '꽃들에게 희망을'이다.
다시 새 봄이 오고 있고, 이 봄은 이제 더 이상 눈물만 흘리고 있는 봄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쭈뼛쭈뼛 새순들 마냥 솟는다. 이런 생동하는 기분이, 기운들이 너무 좋다.
* 추신 : 부산구치소 시절 지켜주고 찾아봐 주셨던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여러분들의 간절함이 저를 구해 주셨습니다. 열심히, 잘 사는 일로 갚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더불어 희망의 버스 당시 정말 많은 분들이 각양각색으로, 적재적소에서 수많은 일들과, 아름다운 마음들을 내어주신 것으로 압니다. 그분들의 수고가 잊혀지지 않고 기억될 수 있도록 찬찬히 제가 아는 일들을 이 역사 속에 기록해 나가겠습니다. 

2012년 03월 07일 (수) 12:07:27 송경동 / 시인

2012년 3월 5일 월요일

김주하 등 MBC기자 166명, 집단 사직 결의


이글은 미디어스 2012-03-04일자 기사 '김주하 등 MBC기자 166명, 집단 사직 결의'를 퍼왔습니다.
박성호 기자회장 해고 등 중징계에 반발해 결의

“박성호 기자의 목을 친 자들을 몰아낼 수 없다면, 그래서 그가 우리 곁으로 영영 돌아올 수 없다면 우리도 미련 없이 MBC를 떠나겠습니다.”
MBC기자 166명이 집단 사직을 결의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들은 MBC가 박성호 기자회장을 해고하고 양동암 영상기자회장을 중징계한 것에 대한 반발로 집단 사직을 결의했다.
MBC 기자회 비상대책위원회 특보에 따르면, 비대위가 박성호, 양동암 기자와 동기인 보도본부 28기(95년 입사) 이하 기자들을 대상으로 집단 사직 의사를 물은 결과, 모두 166명의 기자들(취재기자 130명, 카메라기자 36명)이 사직 결의에 동참 의사를 밝혔다. 특히 이번 결의에는 육아나 출산 등을 위해 회사를 나오지 않고 있는 일부 휴직자들까지 참여했다. 


▲ 2월21일 오후 4시30분경,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 사무실 앞에서 파업집회를 가진 MBC 노조 조합원들이 "김재철 사장 해임"을 방문진 이사들에게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승욱

이번 사직 결의는 박성호 기자 해고에 분노한 일부 기자들의 자발적인 사직서 작성으로 시작됐다. 당초 처음 사직서 투쟁 의지를 밝힌 기자는 “뉴스의 공정성을 짓밟은 자들이 공정보도를 요구한 기자회장을 해고하는 적반하장식 징계를 용인한다면 앞으로 우리 뉴스는 영원히 공정성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며 “MBC 기자들이 모두 사직서를 써놓고 끝까지 투쟁하자”고 제안했다.
MBC 기자들은 성명을 통해 “다짐한다. 박성호 기자가 돌아올 수 없다면 우리도 더 이상 마이크와 카메라를 잡지 않겠다. 아니, 잡을 수가 없다”며 “공정성과 기자적 양심이 이토록 처참하게 유린된 MBC에서 어떻게 우리가 단 하루라도 뉴스를 만들 수 있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번 기자들의 사직 결의를 바탕으로 김재철 사장 퇴진과 동시에 징계 무효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비대위는 “이제 우리 기자들에게 이번 투쟁은 MBC를 정상화시킬 것이냐, 아니면 모두 버리고 떠날 것이냐의 절박한 싸움으로 변했다”며 “사직에 앞서 모두 해고될 각오로 다른 부문의 동지들과 함께 모든 것을 걸고 싸우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기자들이 집단 사직을 결의하며 밝힌 성명 전문이다. 
 사직(辭職)을 결의하며
박성호 기자와 양동암 기자, 그들은 우리와 함께 뉴스를 만들던 동료이자 선배였고, 우리가 직접 뽑은 우리의 대표였습니다. 그리고 그 짐을 짊어진 채 무너진 MBC 뉴스의 공정성을 다시 세우기 위해 우리 앞에 섰습니다. 아니, 어쩌면 비겁했던 우리가 그들을 앞세웠습니다. 그런데 한 명은 해고됐고, 또 다른 한명은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괜찮다며 오히려 우리를 다독입니다. 미안합니다. 그들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 불의(不義)가 정의(正義)를 심판하고, 탐욕(貪慾)이 양심(良心)을 해고하는 걸 끝내 막지 못했습니다. 억울합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일신의 안락(安樂)과 영화(榮華)를 위해 후배의 목을 친 자들을 생각하면 정말 몸서리가 쳐집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일터였던 MBC가 어쩌다 이렇게 거꾸로 서버린 겁니까.  다짐합니다. 박성호 기자가 돌아올 수 없다면 우리도 더 이상 마이크와 카메라를 잡지 않겠습니다. 아니, 잡을 수가 없습니다. 공정성과 기자적 양심이 이토록 처참하게 유린된 MBC에서 어떻게 우리가 단 하루라도 뉴스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한 장, 두 장... 여기 모인 기자 166명이 각자의 다짐을 담아 사직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박성호 기자의 목을 친 자들을 몰아낼 수 없다면, 그래서 그가 우리 곁으로 영영 돌아올 수 없다면 우리도 미련 없이 MBC를 떠나겠습니다.    권순표 나준영 김소영 성장경 송록필 박종일 이동애 이성주 이태원 이승용 이상호 최장원 최호진 (28기, 95년 입사) 금기종 이세훈 이용마 이언주 연보흠 김종경 황상욱 (29기) 김연국 김필국 박범수 문소현 여홍규 이성일 조승원 김주하 김수정 이창순 (30기) 고현승 김주만 김재용 전영우 성지영 김정호 이상현 허지은 장재현 이창훈 (31기) 김희웅 김시현 김해동 한동수 정승혜 유재광 양효경 최형문 (32기) 권희진 김혜성 노재필 민경의 박충희 박찬정 왕종명 이재훈 전봉기 지영은 현원섭 민병호 김현경 전재호 박지민 정연철 최경순 (33기) 김병헌 김수진 이정신 이해인 이세옥 백승은 허유신 손재일 방종혁 정우영 (34기) 장준성 양윤경 백승우 정규묵 김재영 현영준 정시내 노경진 김우철 이형빈 서현권 (35기) 강민구 임명현 박민주 윤효정 이호찬 장미일 박영회 이필희 조효정 전훈칠 김준석 김세진 김기덕 박동혁 (36기) 권지호 구본원 김경호 김세의 김두영 남상호 박선하 신지영 유충환 오령 이정은 전준홍 조영익 조윤정 최훈 (37기) 김지경 이학수 강연섭 정준희 엄지인 전종환 서두범 김태효 김신주 (38기) 이지선 이용주 박주린 오해정 임현주 임소정 전동혁 박주일 현기택 (39기) 강나림 김재경 고은상 박종욱 송양환 신은정 오현석 장인수 조국현 조재영 조현용 김신영 이종혁 정인학 (40기) 공윤선 조의명 이남호 서혜연 김민욱 양효걸 임경아 박주영 이성재 (41기) 박소희 나세웅 곽승규 남형석 염규현 김정인 (42기) 손병산 배주환 이준범 고헌주 (43기) 이상 166명

MBC기자 166인 “박성호 못오면 우리도 떠난다”


이글은 뉴스페이스 2012-03-05일자 기사 'MBC기자 166인 “박성호 못오면 우리도 떠난다”'를 퍼왔습니다.
징계조치에 ‘집단사직’ 승부수…5일 인사위 결과 주목

MBC 노동조합이 김재철 사장의 퇴진과 공영방송 회복을 요구하며 한 달이 넘게 파업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최근 박성호 기자회장과 양동암 영상기자회장에게 내려진 ‘중징계’에 항의해 MBC 기자들이 집단 사직도 불사하겠다고 사측에 맞섰다.

노조가 5일 공개한 총파업 노보 26호에 따르면 지난 1995년 이후 입사한 취재 및 카메라 기자 166명은 집단 사직서 제출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노보는 “이 정도면 MBC 구성원들이 스스로 몸을 던지는 ‘부신 정국’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라고 논평했다. 

이들이 이같은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이번 파업사태를 주도한 박성호, 양동암 기자에 대해 사측이 내린 징계조치 때문이다. 사측은 지난달 29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박성호 기자회장에게는 해고, 양동암 영상기자회장에게는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린 바 있다. 특히, 기자회장을 해고한 것은 MBC 창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동참 기자들은 성명을 통해 “불의가 정의를 심판하고 탐욕이 영심을 해고하는 걸 끝내 막지 못했다”며 “박성호 기자가 돌아올 수 없다면 우리도 더 이상 마이크와 카메라를 잡지 않겠다. 공정성과 기자적 양심이 이토록 처참하게 유린된 MBC에서 어떻게 우리가 단 하루라도 뉴스를 만들 수 있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그래서 한 장, 두 장... 여기 모인 기자 166명이 각자의 다짐을 담아 사직서를 쓰기 시작했다”며 “박성호 기자의 목을 친 자들을 몰아낼 수 없다면, 그래서 그가 우리 곁으로 영영 돌아올 수 없다면 우리도 미련없이 MBC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해외 특파원까지 ‘김재철 퇴진압박’ 가세…사측 “프리랜서 뉴스앵커 구해요”

파업투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하지만 해외 특파원들도 노조에 힘을 실어줬다. 

윤도한(미국 LA), 이호인(미국 워싱턴), 도인태(미국 뉴욕), 박장호·임영서(일본 도쿄), 김경태(중국 베이징), 박상권(프랑스 파리) 기자 등 특파원 7명은 4일 성명을 발표하고 “MBC에 대해, 앞으로 MBC를 이끌고 가야할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애정이 남아있다면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물러나는 것이 좋다”고 김 사장을 압박했다.

노보에 따르면 이들은 앞으로 김 사장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경우, 행동의 수위를 높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보는 “해외 특파원들까지 공동 성명 발표라는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한국 언론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라며 “보통 해외 특파원들은 파업 열외자로 인식돼 MBC 뿐 아니라 다른 언론사 파업때도 업무를 계속하는 것이 관행이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노보는 “라디오 간판 뉴스인 ‘2시의 취재현장’을 진행하던 임흥식 앵커가 파업에 동참하기로 했다”며 “김병훈, 윤능호, 홍수선(84년 입사), 윤병채(86년 입사) 부장이 파업에 동참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라디오뉴스는 사실상 중단될 위기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사측은 이번 파업사태에 ‘계약직 모집’이라는 미봉책으로 맞서고 있다. 노보는 “사측은 지난 2일 프리랜서 뉴스 앵커와 경력직 기자, 라디오 뉴스 편집 PD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냈다”며 “경력직 기자와 라디오 뉴스 편집 PD의 경우 1년 계약직이고 뉴스 앵커 역시 ‘프리랜서’라는 단서가 붙은 만큼 역시 비정규직”이라고 전했다. 

즉, 한 언론사의 ‘얼굴’이라고 볼 수 있는 뉴스 앵커를 비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노보는 “뉴스 앵커를 프리랜서로 뽑는 건 MBC 창사 이해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신기록 제조기 김재철이 또다시 몰상식 신기록을 MBC 역사에 남긴 것”이리고 일침을 가했다. 

또한, 사측은 5일 인사위원회를 통해 김세용, 최일구 부국장과 정형일 전 문화과학부장, 한정우 전 국제부장, 민병우 전 사회 1부장 등 보직을 던지고 파업에 참여한 중견기자들과 이용마 홍보국장, 김민식 편제부문 부위원장, 김정근 교육문화국장 등 노조 간부들에 대한 징계수위를 결정한다. 징계 대상자 8명은 모두 인사위 출석 거부 의사를 밝힌 상태다.

이같은 상황에서 김 사장을 둘러싼 법인카드 의혹은 MBC 노조에 의해 계속 폭로되고 있다. 

노보는 “김 사장의 법인카드 해외 사용처 중에서도 희한한 항목들이 발견됐다”며 “일본 여성전용 피부관리 및 마사지 업소인 ‘소시에 월드’에서 지난해 4월부터 3차례에 걸쳐 모두 200만원이 넘는 요금이 김 사장의 법인카드로 결제된 것”이라고 전했다. 관련 내용은 노조가 4일 선보인 4회를 통해 공개된 바 있다. 

이어 노보는 “ 취재진을 만난 업소 관계자는 이 업소가 ‘여성 전용’이라고 밝혔다”며 “김 사장이 관리를 받은게 아니라면 공영방송 사장의 법인카드로 일본에서 피부 관리와 마사자를 받은 그 대단한 여성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김 사장이 MBC 업무를 위해 피부관리와 마사지 비용까지 대야 했던 인물은 도대체 어떤 귀빈일까?”라고 지적했다.

한편, 는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김 사장이 여러차례 만났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2012년 3월 4일 일요일

"김재철 사장 물러날 때까지 싸운다"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3-02일자 기사 '"김재철 사장 물러날 때까지 싸운다"'를 퍼왔습니다.
박성호 MBC기자회장 … "해직은 각오했던 일"

얼마 전 해직된 MBC 박성호 기자회장이 “김재철 사장이 물러날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박 기자는 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해직과 관련 “이미 각오했던 일”이라며 “MBC 정상화를 위한 길이기에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첫 해직기자가 MBC에서 나왔지만 더 자유로운 몸으로 싸울 수 있게 됐다”며 “이 정도로 MBC기자들의 기가 꺾일 것으로 생각하면 착각”이라고 강조했다.
MBC는 지난달 29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회사 질서를 문란하게 했다’는 이유로 박 기자를 해고했다. MBC 창사이후 현직 기자회장이 해고된 것은 처음이다.
한편 박 기자가 해고된 이후 그를 응원하는 기자들의 메시지가 줄을 잇고 있다.
성장경 MBC 기자는 “동종업계에선 아시겠지만, 기자 박성호는 경찰기자 캡, 법조1진, 국회반장, 아침뉴스 앵커를 역임한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김재철 따위가 기자직을 박탈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사람 아닙니다”라고 언급했다.
김수진 MBC 기자는 “박성호 기자는 제가 국회 출입할 때 ‘반장’이었습니다. 엄청난 취재력과 특유의 냉철함으로 후배들에게 경계와 경외의 대상이었습니다. 전 가끔 대들었지만, 그의 일하는 방식을 좋아했습니다. 박성호 없는 MBC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해고될 사람은 김재철입니다”라는 멘션을 올려 트위터리안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황세원 국민일보 기자도 “기자 한 명은 하나의 언론입니다! 사장도, 대통령도 함부로 억압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회여야 언론이 제 기능을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박 기자는 이와 관련 “많은 선‧후배들이 응원하고 성원해주는 것을 보면서 지난 17년 가까운 기자생활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감사를 표했다.

2012년 3월 2일 금요일

MBC, 제작거부 책임 물어 박성호 기자회장 해고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2-29일자 기사 'MBC, 제작거부 책임 물어 박성호 기자회장 해고'를 퍼왔습니다.
"이런다고 물러설 것 같은가… 해고될 사람은 김재철 사장" "공정방송하자는 기자들 요구 외면… 제작거부 주도할 때부터 각오했던 일"

MBC가 총파업으로 이어진 보도국 기자들의 제작거부를 주도한 박성호 기자회장에 대해 해고라는 칼날을 빼들었다. 함께 제작거부를 이끈 양동암 영상기자회장에 대해서는 정직 3개월의 중징계가 내려졌다.
회사가 파업 관련자에 대해 중징계 방침을 밝힘에 따라 노조의 대응도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MBC 사측은 29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지난 달 기자들의 제작거부를 주도한 박 기자회장은 해고, 양 영상기자회장에 대해서는 정직 3개월을 최종 확정했다.
김재철 사장은 이날 오후 4시30분께 인사위원회가 올린 징계결과에 최종적으로 사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방송 회복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벌이고 있는 노동조합은 사장 결재가 떨어진 뒤 곧바로 성명을 발표해 회사의 결정을 비난했다. 

노조는 성명을 통해 "이들을 해고한 것은 우리 모두를 해고한 것이다. 이들은 오직 MBC만을 생각하는 구성원들의 충정을 듣고, 이들의 결정을 따랐을 뿐"이라며 "(이번 징계가) 김재철 사장 퇴진의 날을 앞당기고 있음을 명심하라"고 밝혔다.
박 회장은 징계가 결정된 직후 "제작거부를 주도했을 때부터 각오했던 일"이라며 "공정방송 하자는 기자들의 집단적 요구에 대해 김 사장이 철저하게 외면한 것"이라고 이번 징계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박 회장은 "방식도 폭압적인 것이 노조집행부도 아니고 비리혐의자가 아닌 직원에 대해 해고한 것은 창사 이래 처음있는 일"이라며 "짓밟고, 재갈 물리고, 탄압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군사정권 시절 권력자들의 마인드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회장은 "이 정도 하면 MBC 기자들의 기가 꺾여 움츠려 들 것으로 생각했겠지만 그것은 착각"이라며 "김 사장이 해고 당할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오후 5시 현재 MBC 보도국 기자들은 B공개홀에서 기자총회를 진행하다 징계 소식을 듣고 사장실 앞으로 몰려가 징계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2012년 3월 1일 목요일

‘숙방왕’ 김재철, 박성호 기자회장 해고…MBC 창사 이래 최초


이글은 뉴스페이스 2012-02-29일자 기사 '‘숙방왕’ 김재철, 박성호 기자회장 해고…MBC 창사 이래 최초'를 퍼왔습니다.
기자들 “막장드라마 끝을 보겠다”…트위플 “누가 누굴 해고해!”

자사 노조의 파업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재철 MBC 사장이 마침내 ‘해고의 칼’을 뽑아들었다. 이번 파업을 이끈 주역 중 한 명인 박성호 기자회장에 대해 해고 조치를 내린 것이다. 이에 김 사장의 해임과 공정보도를 요구하고 있는 노조도 더욱 강경한 투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 MBC 기자회 공식 트위터(@MBCgija)

MBC 노조는 29일 오후 공식 트위터를 통해 “MBC 김재철 사장은 박성호 기자회장에 대해 해고, 양동암 영상기자회장에 대해 정직 3개월의 징계를 최종 결정했다”며 “MBC 노동조합은 사측의 터무니 없는 징계 폭거를 규탄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기자회장이 해고된 것은 MBC 창사 이래 단 한번도 없었던 일이다. 이에 대해 MBC 노조는 “51년 역사상 처음. 군사정권도 하지못한 일을 기어코 한 김재철. 역사에 기리남을 그 이름 김.재.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회장에 대한 해고결정 소식은 트위터리안들의 ‘RT 물결’을 타고 널리 퍼지고 있다. 아울러 김 사장과 MBC 사측을 비판하는 목소리 또한 더욱 높아지고 있다. 

트위터 상에는 “아- 진짜 갈때까지 가는구나”(skandml****), “끝이 보이는데 뭘 못하겠어요”(ryu****), “보통 사람만 되었어도 감봉 정도였을 텐데...과연 신출귀몰 김재철”(Kain_S****), “당최 누가 누굴 해고해야 하는 거임?”(dyb***)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metta****’은 “낙하산 하나 치우기가 이리도 힘든가”라고 탄식했다.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tak0518)는 “이제 김재철은 너를 해고하려는 10만명의 사람들이 여의도에 모이는 것을 보게 될꺼야”라는 글을 남겼다. 

선대인 세금혁명당 대표(@kennedian3)는 “기자 자르는 기개 청와대에 조인트 까일 때 좀 발휘하지 그랬나?”라고 비꼬았다. 신기남 전 의원(@skn21c)은 “해고와 고소! 이것이 공영방송 MBC의 문제 해결법인가요?”라고 따져물었다. 

분노 못참는 MBC 기자들…“막장드라마의 끝 보고야 만다”

박 회장의 해고사태를 맞은 MBC 기자들의 분노도 트위터 상에 울려퍼졌다. 

MBC 기자회 공식 트위터(@MBCgija)는 “조금전 김재철 사장이 박성호 기자회장에 대한 해고 처분을 최종 승인했다. 양동암 영상기자회장에 대해서도 정직3개월 중징계 처분을 확정다”며 이 “폭거, 가만히 보고있지도 않겠지만 사측 의도대로 저열하게 싸우지도 않겠다. 결대로 한다”고 언급했다.

성장경 기자(@gon846)는 “공정방송하자는 기자대표에게 칼을 휘둘러 피를 묻히는군요”라고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성 기자는 “기자 박성호는 경찰기자 캡, 법조 1진, 국회반장, 아침뉴스 앵커를 역임한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며 “김재철 따위가 기자직을 박탈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사람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소희 기자(@mbc_sohee)는 “오늘을 잊지않겠습니다. 끝까지 싸워서 누구보다 훌륭한 존경하는 선배를 다시 보도국에 모셔오겠습니다. 그 날을 기다려주십시오”라는 글을 남겼다. 박 기자는 “처음엔 분노였는데 이제는 비탄”이라며 “사표는 김재철 사장이 써야한다. 이 막장드라마의 끝을 보고야 말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남상호 기자(@PorcoRosso38)는 “김재철 당신보다 박성호, 양동암 기자와 함께 할 사람이 여기 훨씬 더 많다”는 글을 올렸다. 나세웅 기자(@NaShoong)는 “기자회장 해고 등 중징계에 항의하며 5층 보도국 복도에서 농성하고 있다”며 “김재철이 누굴 징계한다는건지 분통터진다”고 분노를 참지 못했다. 

한국기자협회도 이날 성명을 통해 “김재철 MBC 사장은 MBC 구성원들이 마지막으로 걸었던 기대를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자신의 후배들을 무참히 짓밟았다”며 “같은 언론장악의 제단에 또 한 명 자신의 후배를 바친 김 사장은 한국 언론사에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공영방송 사장으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라고 성토했다.

“김재철 사장 치하에서 징계 받는 것은 가문의 영광”

MBC 노조는 이날 성명을 통해 “더 나은 방송, 더 나은 일터를 만들고자했던 기자들의 목소리에 단 한번도 귀기울이지 않던 김 사장이 엄포 끝에 내놓은 첫 칼부림이 해고라는데 우리는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한다”며 “우리 모두를 해고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는 “사측의 억지대로 파업을 기획하고 주도했다는 이유로 이들에게 중징계를 내렸다면 대상을 잘못 골랐다”며 “우리를 일터에서 떠나도록 부추긴 사람은 공정방송을 붕괴시키고 조직문화를 망쳐놓은 김재철 사장 본인이다. MBC에서 가장 먼저 해고당해야 마땅한 이는 김재철 사장 바로 당신”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노조는 아직 파업에 가세하지 않은 동료들에게 “불공정 방송에 항의하는 동료들의 뜻을 전달한 기자회장을 해고하는 김재철 사장 체제에서 파업 특근 수당까지 받으며 일하는 것이 자랑스러운가?”라며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다면 이제 결단해야 할 때”라고 동참을 호소했다. 

징계의 칼날은 아직 멈추지 않은 상태다. 과거 ‘뉴스데스크’를 이끌었던 김세용, 최일구 기자와 정형일 기자, 한정우 기자, 민병우 기자 등 자신의 보직을 던지고 파업에 가세한 간부 기자들에 대한 인사위원회가 다음달 5일 예정돼 있다. 

이날 인사위원회에는 이용마 기자(홍보국장), 김민식 PD(편제부문 부위원장), 김정근 아나운서(교육문화국장) 등 노조 간부에 대한 징계수위도 결정된다. 이와 관련, 29일 발행된 ‘총파업 노보’는 “징계 대상자들은 모두 인사위원회 참가를 거부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노보에 따르면 한 징계 대상자는 “김재철 사장 치하에서 징계 받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라며 “이왕 징계를 내릴 거면 주의, 근신 등 약한 것 말고 센 것으로 부탁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 간부 사원은 “사측이 용서를 비는 모습을 바라나 본데, 그럴거면 애초에 파업에 참가하지도 않았다”고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노보는 “사측이 밝힌 인사위 회부자들에 대한 징계 사유는 ‘불법 파업과 집단 업무 거부 주도, 선동’ 및 ‘회사 질서 문란’ 등”이라며 “공정방송을 무너뜨려 공영방송의 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끝내 사장을 파업으로 내몬 건 김재철 사장이다. 퇴출대상자인 김 사장이 내리는 징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는 노조의 입장을 전했다. 

한편, 노보는 “김재철 사장과 사측은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사원들에게 ‘파업 특별수당’ 명목으로 1주일에 20만원씩, 4주일 치 80만원을 지급했다”며 “앞으로는 1주일마다 지급할 예정이라고 한다. 나름대로 ‘당근과 채찍’ 전략을 쓰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