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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16일 일요일

“위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다”고? 기자 맞습니까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9-16일자 기사 '“위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다”고? 기자 맞습니까'를 퍼왔습니다.
[미디어현장] 이성재 MBC 카메라기자

집회를 마치고 선후배들과 함께 거리 서명전에 나서던 모습이 이젠 익숙한 일상이 될 무렵, 우리는 170일 전의 일상으로 복귀했다. 반년의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마주한 일상은 그 길었던 시간만큼이나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우선 예전에는 없던 전혀 새로운 일상이 생겨났다. 기자로, 아나운서로, PD로 현장을 누비던 선배들은 교육인사발령으로 MBC아카데미에 모여 한창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할 시간에 브런치를 만들고 요가를 배우고 있다. 정확한 판단과 발 빠른 취재로 특종상을 휩쓸던 선배는 카메라를 빼앗긴 채 용인에 있는 드라마 세트장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을 안내하고 있다. 기자회의 성명서를 도맡아 쓰던 선배는 상암동 신사옥 건설현장에서 카메라를 쥐는 대신 안전모를 쓰고 있다.

일 년에 두어 차례 정기적으로 나던 인사발령은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온다. 징계도 일상으로 변했고, 그걸 보는 우리들도 이젠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어떠한 원칙과 기준도 없이 마구잡이로 휘둘러대는 보복의 칼춤이 김재철 사장의 마지막 몸부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저 부장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국장에게 거세게 항의하면, 게시판에 윗분들 심기불편하게 하는 글 몇 줄 쓰면 징계가 내려진다. 예전 같아서는 징계가 내려질 것 같으면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했지만 이제는 올라오는 징계자 명단에 내 이름이 빠져있으면 ‘내가 투쟁을 더 열심히 안했나’ 하는 부끄러움에 동료들에게 미안해진다. 오히려 내가 왜 빠졌냐며 항의하는 선후배들도 생겨났다. 매일 사내 인트라넷 시스템에 접속하면 출근시간대에 열리는 기자회의 피케팅과 침묵시위를 중단하지 않으면 징계하겠다는 인사부장의 메일이 날짜만 달리해 도착해있다. 이 모두가 과거에는 없던 일상이다.

있었지만 없어진 일상도 있다. 늘 우리와 함께하던 동료들이 취재현장에서 쫓겨나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지면서 일상에선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해고된 박성호, 이용마, 박성제 선배는 사무실은 물론이고 인사정보시스템에 흔적조차 없다. 파업에 참여했던 보도국 구성원의 절반 가까운 기자들의 손에는 더 이상 카메라와 마이크가 쥐어지지 않는다. 기자로 입사했지만 기사를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고 카메라를 내려놓아야하는 현실, 이젠 뉴스시스템에 접속조차 할 수 없다. 늘 당연한 듯 손에 있던 모든 것들이 없어졌다. 나의 동료들이 쫓겨난 그 자리에는 파업기간에 들어온 대체인력들이 시용기자와 뉴스영상PD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직도 선후배들의 핏자국이 흥건한 보도국 사무실에는 동료들의 웃음은 없어지고 보직부장들과 대체인력들의 웃음만 남아있다.

일상이 차곡차곡 모여 이루어진 역사도 없어졌다. 한 달 전에는 내가 4년간 몸담았던, 나의 선배들이 40여년을 일궈온 영상취재부가 하루아침에 공중분해 돼 70여 명의 MBC카메라기자들은 각각 정치부, 경제부, 사회1·2부 등으로 배속되었다. 카메라기자가 한두 명 뿐인 부서장이 사회부의 카메라기자를 ‘빌리러’다니고, 카메라기자가 한 명뿐인 어느 부서는 취재기자들이 카메라기자의 취재일정에 맞춰 제작을 미루는 것도 이제 그들에겐 일상이 되었다. 효율성을 이유로 각 현업부서에 카메라기자를 전진 배치했다고 하는데, 내가 그동안 ‘효율성’이란 단어를 잘 이해하지 못했나보다.

당연한 듯, 늘 있던 일과 존재가 없어지고, 불필요하고 자격 없는 존재들이 당연한 듯 자리 잡고 있다. 

반년 사이에 전혀 다르게 바뀌어버린 지금의 모습들은 우리가 받아들여야할 MBC의 일상이 아님을 모두가 안다. 취재 현장이던 건설 현장이던 일터이자 ‘현장’은 맞지만 십여 년의 시간동안 뉴스만을 만들던 우리네 선배들이 마주할 일상들은 분명 아니다. 마음에 안 든다며 전출 보내고, 말 안 듣는다고 징계하고, 한 사람을 위해 공영방송의 뉴스를 사유화하는 것이 일상이 돼서는 안 된다.

이성재 MBC 카메라기자
우리가 파업기간 동안 돌아가기를 바라던, 우리가 꿈꾸던 일상으로 반드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파업 직전의 부끄러운 일상으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너희들이 그러고도 기자냐”, “MBC 나가라”라고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뒤로하며 ‘위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지’, ‘내가 무슨 힘이 있겠어?’라며 자조하고 체념하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 긴 세월을 싸워온 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당당하게 공정방송 쟁취했습니다!”라며 파업의 마침표를 찍는 그 순간까지, 우리의 원래 일상을 찾기 위한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투쟁이 365일의 일상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성재 MBC 카메라기자 | media@mediatoday.co.kr 

2012년 8월 30일 목요일

김재철 사장에 찍힌 카메라기자 잔혹사


이글은 미디어스 2012-08-30일자 기사 '김재철 사장에 찍힌 카메라기자 잔혹사'를 퍼왔습니다.
[익명 기고] 'MBC 국민 품으로…' 약속 아직 미완의 진행형

지난 17일 MBC는 영상취재1부·2부, 시사영상부 등이 속한 보도영상 부문을 해체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파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카메라 기자들에 대한 보복’이라는 것이 내부의 중론이다.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카메라 기자들에게 가해졌던 ‘탄압’은 결국 ‘영상부문 해체’로 정점을 찍은 것. (미디어스)는 한 MBC 카메라 기자가 현재의 MBC 상황에 대한 소회를 담담하게 밝힌 기고문을 게재한다. 실명을 밝혔을 경우 현 MBC 경영진이 징계와 같은 ‘보복’을 가할 가능성이 큰 점을 고려해, 익명 게재한다. 

지금 MBC는 확실히 비정상이다. 사장이 그러하고, 임원진이 그러하다 보니, 결국 프로그램도 비정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비정상의 내리사랑은 MBC를 마침내 ‘이상’한 방송국으로 만들어 버렸다. 능력을 검증받은 스타 아나운서들이 화면에 나오지 않고, 석연찮은 이유로 베테랑 작가들이 전원 교체되는가 하면, 방송을 코앞에 둔 제작물이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한다. 또, 기자상을 휩쓴 기자는 드라마파크에 오토캠핑장을 짓느냐 마느냐를 고민하고 있고, 다른 능력자 PD는 신사옥을 잘 짓겠다고 안전모를 고쳐쓰고 있다. 이렇듯 우열을 가리기 힘든 이상함들 중 최고는 이 모든 것이 ‘경쟁력’ 때문이라는 회사의 설명이다.

▲ 전국의 방송사 카메라 기자들로 구성된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는 24일 MBC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MBC의 보도영상 부문 해체에 대해 "파업기간에 강한 결속력을 보인 카메라 기자를 향한 분풀이"라고 비판하며 원상복귀시키지 않을 경우 협회 차원에서 MBC를 모든 뉴스의 공동취재단(풀단)에서 제외하는 등 불이익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곽상아

최근 여기에 큰 건 하나가 추가되었다. 바로, 보도영상을 책임져온 영상기자 조직이 공중분해된 사실이다. 신문사가 아닌 ‘방송국’ MBC에서, 화면을 담당하는 기자들이 분해된 것은, 사실상 뉴스를 포기하겠다는 자폭 선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C의 영상기자들은 또 한번 이상한 경쟁력의 희생양이 되어 정치부로 경제부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이제 막 영상기자 초년병을 넘긴 나 역시 ‘한창 일할 시기’라는 친절한 판단 하에 사회부로 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한창 일해야 할 시기임에도 도저히 일할 수 없는 시스템이 만들어 진 까닭을 누구하나 명쾌하게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여기에는 공정방송을 하겠다며 긴 파업에 가담한 영상기자들에 대한 사측의 분노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사실, 회사가 영상기자 죽이기에 나선 것은 김재철 사장의 철저한 분풀이로 볼 수밖에 없다. 소수의 영상기자들은 파업 초기, 양 기자회(MBC에는 취재기자들 조직인 기자회와, 영상기자들 조직인 영상기자회가 있다)의 제작거부를 이끌어낸 도화선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으며, 파업기간 내내 작지만 강한 단결력으로 줄기차게 사측을 압박하고 괴롭혀왔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당연 눈엣가시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때문에 파업 돌입 이후 영상취재부문은 가장 확실하게 회사의 보복 직격탄을 맞아왔다. (나중에 전 부문으로 확대되긴 했지만) 대체인력을 가장 먼저 도입한 직종은 영상취재 영역이었고, 해외 특파원은 조기 송환된 것도 모자라 대기발령에 처해졌다. 임원들은 ‘값싼 인력이 시장에 널려있다’는 말로 영상기자들의 자존감을 흠집내려했으며, 결국 파업에서 복귀하자마자 조직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결정을 하고 말았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영상에 대해 비전문가인 부장 밑에서, 보도 영상에 대한 격론은 사라졌고 뉴스는 가벼워졌다. 진실의 순간들이 사라진 자리에 온갖 자료화면들만 덕지덕지 넘쳐났다. 무의식에도 작용하는 이미지의 특성상 뉴스영상은 철저히 선별되고 훈련되어야 하지만, 사라진 조직의 남겨진 구성원들이 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었다. 국민의 눈이라 자부했지만 이를 가능케 했던 혹독한 수련공간이 이제는 없어진 상황이고, 때문에 소명의식이 희미해져가는 악순환이 점차 시작되고 있다. 한 때 뉴스의 품격을 논박했던 보도국엔 무력감과 패배주의가 팽배해가고 있고, 구성원 누구도 원치 않았던 조직개편은 이렇듯 MBC뉴스를 조금씩 망가뜨려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영상기자 잔혹사 과정에서, 우리는 좌절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비통했지만 의연했다. 공정방송이란 대의명분 앞에 부끄럽지 않았음을 뿌듯해 했고, 사측의 탄압이 이를 방증해주는 것 같아 일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몸으로 지켜내고 있는 서로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비록 현재는 갈기갈기 찢겨진 상태지만, 상처에 새살이 돋듯 건강한 조직으로 다시 설 수 있다는 확신이 하루하루를 지내는 바탕이 되었다.
또한, 기자들 간의 연대의식을 확인한 것도 아주 커다란 수확이다. 뉴스제작 현장에서 취재기자와 영상기자는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부딪히면서 MBC뉴스의 힘을 만들어낸다. 때문에, 무엇이 나은 뉴스인지에 대한 난상토론이 갈등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170여일의 싸움을 같이 해오며, 그리고 파업 복귀 후 현장에서의 고초(?)를 같이 겪으며, 우리는 서로의 같은 목표점을 확인해서 기뻤고 신뢰를 공유했다. 뉴스가 무너져가는 상황을 좌시 않겠다는 동료들의 분노와 투지는, 우리가 무너질 수 없었던 중요한 이유이자 버팀목이 되었다. 때문에 당연하게도, 지금의 이 연대감은 앞으로 수십년간 MBC 뉴스를 먹여살릴 확실한 에너지이자 날카로운 무기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시청자의 절실함과 그에 비례한 무서움을 잘 알고 있다. 최근의 MBC 상황이 걱정스러운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안에서는 비록 줄기차게 싸우고 있다지만, 결국 드러나는 MBC의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우리를 바라보는 애정어린 시선들이 거두어지는 게 두렵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클 수밖에 없고, 사랑이 큰 만큼 증오도 쉽다는 진리 앞에 우리는 끊임없이 불안하다.
하지만 MBC가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은 아직 미완이며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리고 그 완성의 순간이 이제 목전에 다가왔다. 그래서 뻔뻔함을 무릅쓰고 부탁을 드리게 된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라고…. 공정한 방송, 진실된 언론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카메라를 들게 될 그 순간, 지금의 시련 역시 추억이 아니겠냐고 웃어넘기는 진짜 MBC를 보실 수 있을 것이다. 

익명의 MBC 카메라 기자  |  webmaster@mediaus.co.kr

2012년 3월 5일 월요일

김주하 등 MBC기자 166명, 집단 사직 결의


이글은 미디어스 2012-03-04일자 기사 '김주하 등 MBC기자 166명, 집단 사직 결의'를 퍼왔습니다.
박성호 기자회장 해고 등 중징계에 반발해 결의

“박성호 기자의 목을 친 자들을 몰아낼 수 없다면, 그래서 그가 우리 곁으로 영영 돌아올 수 없다면 우리도 미련 없이 MBC를 떠나겠습니다.”
MBC기자 166명이 집단 사직을 결의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들은 MBC가 박성호 기자회장을 해고하고 양동암 영상기자회장을 중징계한 것에 대한 반발로 집단 사직을 결의했다.
MBC 기자회 비상대책위원회 특보에 따르면, 비대위가 박성호, 양동암 기자와 동기인 보도본부 28기(95년 입사) 이하 기자들을 대상으로 집단 사직 의사를 물은 결과, 모두 166명의 기자들(취재기자 130명, 카메라기자 36명)이 사직 결의에 동참 의사를 밝혔다. 특히 이번 결의에는 육아나 출산 등을 위해 회사를 나오지 않고 있는 일부 휴직자들까지 참여했다. 


▲ 2월21일 오후 4시30분경,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 사무실 앞에서 파업집회를 가진 MBC 노조 조합원들이 "김재철 사장 해임"을 방문진 이사들에게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승욱

이번 사직 결의는 박성호 기자 해고에 분노한 일부 기자들의 자발적인 사직서 작성으로 시작됐다. 당초 처음 사직서 투쟁 의지를 밝힌 기자는 “뉴스의 공정성을 짓밟은 자들이 공정보도를 요구한 기자회장을 해고하는 적반하장식 징계를 용인한다면 앞으로 우리 뉴스는 영원히 공정성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며 “MBC 기자들이 모두 사직서를 써놓고 끝까지 투쟁하자”고 제안했다.
MBC 기자들은 성명을 통해 “다짐한다. 박성호 기자가 돌아올 수 없다면 우리도 더 이상 마이크와 카메라를 잡지 않겠다. 아니, 잡을 수가 없다”며 “공정성과 기자적 양심이 이토록 처참하게 유린된 MBC에서 어떻게 우리가 단 하루라도 뉴스를 만들 수 있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번 기자들의 사직 결의를 바탕으로 김재철 사장 퇴진과 동시에 징계 무효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비대위는 “이제 우리 기자들에게 이번 투쟁은 MBC를 정상화시킬 것이냐, 아니면 모두 버리고 떠날 것이냐의 절박한 싸움으로 변했다”며 “사직에 앞서 모두 해고될 각오로 다른 부문의 동지들과 함께 모든 것을 걸고 싸우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기자들이 집단 사직을 결의하며 밝힌 성명 전문이다. 
 사직(辭職)을 결의하며
박성호 기자와 양동암 기자, 그들은 우리와 함께 뉴스를 만들던 동료이자 선배였고, 우리가 직접 뽑은 우리의 대표였습니다. 그리고 그 짐을 짊어진 채 무너진 MBC 뉴스의 공정성을 다시 세우기 위해 우리 앞에 섰습니다. 아니, 어쩌면 비겁했던 우리가 그들을 앞세웠습니다. 그런데 한 명은 해고됐고, 또 다른 한명은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괜찮다며 오히려 우리를 다독입니다. 미안합니다. 그들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 불의(不義)가 정의(正義)를 심판하고, 탐욕(貪慾)이 양심(良心)을 해고하는 걸 끝내 막지 못했습니다. 억울합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일신의 안락(安樂)과 영화(榮華)를 위해 후배의 목을 친 자들을 생각하면 정말 몸서리가 쳐집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일터였던 MBC가 어쩌다 이렇게 거꾸로 서버린 겁니까.  다짐합니다. 박성호 기자가 돌아올 수 없다면 우리도 더 이상 마이크와 카메라를 잡지 않겠습니다. 아니, 잡을 수가 없습니다. 공정성과 기자적 양심이 이토록 처참하게 유린된 MBC에서 어떻게 우리가 단 하루라도 뉴스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한 장, 두 장... 여기 모인 기자 166명이 각자의 다짐을 담아 사직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박성호 기자의 목을 친 자들을 몰아낼 수 없다면, 그래서 그가 우리 곁으로 영영 돌아올 수 없다면 우리도 미련 없이 MBC를 떠나겠습니다.    권순표 나준영 김소영 성장경 송록필 박종일 이동애 이성주 이태원 이승용 이상호 최장원 최호진 (28기, 95년 입사) 금기종 이세훈 이용마 이언주 연보흠 김종경 황상욱 (29기) 김연국 김필국 박범수 문소현 여홍규 이성일 조승원 김주하 김수정 이창순 (30기) 고현승 김주만 김재용 전영우 성지영 김정호 이상현 허지은 장재현 이창훈 (31기) 김희웅 김시현 김해동 한동수 정승혜 유재광 양효경 최형문 (32기) 권희진 김혜성 노재필 민경의 박충희 박찬정 왕종명 이재훈 전봉기 지영은 현원섭 민병호 김현경 전재호 박지민 정연철 최경순 (33기) 김병헌 김수진 이정신 이해인 이세옥 백승은 허유신 손재일 방종혁 정우영 (34기) 장준성 양윤경 백승우 정규묵 김재영 현영준 정시내 노경진 김우철 이형빈 서현권 (35기) 강민구 임명현 박민주 윤효정 이호찬 장미일 박영회 이필희 조효정 전훈칠 김준석 김세진 김기덕 박동혁 (36기) 권지호 구본원 김경호 김세의 김두영 남상호 박선하 신지영 유충환 오령 이정은 전준홍 조영익 조윤정 최훈 (37기) 김지경 이학수 강연섭 정준희 엄지인 전종환 서두범 김태효 김신주 (38기) 이지선 이용주 박주린 오해정 임현주 임소정 전동혁 박주일 현기택 (39기) 강나림 김재경 고은상 박종욱 송양환 신은정 오현석 장인수 조국현 조재영 조현용 김신영 이종혁 정인학 (40기) 공윤선 조의명 이남호 서혜연 김민욱 양효걸 임경아 박주영 이성재 (41기) 박소희 나세웅 곽승규 남형석 염규현 김정인 (42기) 손병산 배주환 이준범 고헌주 (43기) 이상 166명

2012년 1월 26일 목요일

MBC 뉴스 제작 마비, “5분만 방송해도 좋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1-26일자 기사 'MBC 뉴스 제작 마비, “5분만 방송해도 좋다”'를 퍼왔습니다.
MBC 17시간중 뉴스는 25분이 전부… “파행방송해도 제작거부 무한 지지”

MBC 기자들이 편파보도 책임자 퇴진 제작거부에 나선 첫날(25일) 15분짜리 (뉴스데스크)가 방송되는 등 MBC 뉴스가 사상 유례없는 파행을 겪었다. 아침뉴스 이후 MBC는 하루종일 TV에서 뉴스를 방송한 시간이 25분에 그치는 등 사실상 지상파 방송의 역할을 못했다.
MBC는 25일 밤 (뉴스데스크)를 15분여를 방송했다. 평소 50분 방송한 데 비해 70%를 단축시킨 것이다. 뉴스 아이템도 스포츠와 날씨 소식을 빼고 10꼭지에 그쳤다. 그나마 앵커가 그냥 읽는 단신뉴스까지 포함시킨 것이다. 27~30꼭지씩 하던 평소 방송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뉴스의 내용도 ‘기습폭설’, ‘폭설에 귀경길 혼란’, ‘휴일근무 연장근로…법개정’, ‘민원서류 발급 먹통’, ‘버스-지하철 요금 인상’, ‘오바마 국정연설’, ‘전통시장 대폭 증발’, ‘티베트 유혈사태’ 등 이미 이날 대부분 알려진 얘기들 뿐이었다. 박희태 의장 보좌관 소환 소식은 간략히 단신으로 소개하고 끝냈다.
MBC는 모두 250여 명의 취재기자가 있는데 이 가운데 130여명이 제작거부 참가로 빠졌고, 카메라기자들은 40여 명이 빠졌다. 일선에서 취재하는 기자들 전부가 제작 업무를 중단했기 때문에 사실상 뉴스 제작이 마비된 상태나 다름이 없게 된 것이다.


25일 밤 방송된 15분짜리 MBC <뉴스데스크>

권재홍 앵커는 이날 클로징멘트로 “MBC 기자회의 제작거부 사태로 뉴스를 단축방송하게 된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라며 “빠른 시일 내에 뉴스 제작과 보도가 정상화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사과했다. 제작거부 때문이라는 말은 했지만 왜 제작거부를 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뉴스데스크를 방송한 시간을 대신해 (건강적색경보 SOS ‘구토와 구역질’)이 방송됐고, 드라마 (해를 품은달)이 10분 연장해 방송됐다.
(뉴스데스크) 외에도 MBC는 기자들이 전날까지 제작해놓은 뉴스가 방송됐던 아침 (뉴스투데이) 방송이 끝난 이후부터 이날 방송이 종료된 밤 1시25분까지 17시간35분 동안 뉴스를 방송하는데 25분을 할애한 것이 전부였다. (낮 12시에 10분짜리 뉴스, 밤 9시 (뉴스데스크) 15분)
한편, 이같이 뉴스를 파행으로 내보냈는데도 시민·시청자의 지지와 응원은 되레 쇄도하고 있다. 이날 MBC 뉴스 홈페이지 시청자 의견 게시판에는 “MBC기자회의 무기한 제작거부를 지지합니다”(WJ4443) “양심 기자들, 잘한다!”(METT27) “MBC 뉴스를 벅차오르는 믿음으로 볼 수 있게 되길~!”(shooroop) 등 응원의 목소리가 높았다.


25일 밤 방송된 15분짜리 MBC <뉴스데스크>


26일 새벽 2시 현재 MBC뉴스 시청자 의견 게시판

특히 누리꾼 ‘H2120618’은 “15분 이 아니라 5분만 해도 좋다!”며 “제대로된 뉴스만 나온다면 5분만 시청해도 좋습니다.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는지 국민들은 지켜보겠습니다”라고 성원했다.
아이디 ‘east feel’은 “아무리 긴 밤이라도 흘러가기 마련”이라며 “그 동안 시청자는 속물근성의 냄새로 가득한 헌신적인 ‘종복으로서의 뉴스를 보아왔다. 권력이 요구하는 틀에 맞춰 사건을 이야기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장치를 작동시킨, 경멸심을 자아낼 뿐인 극악한 싸구려언론 - MB씨(MBC)! 인간이 사상과 표현의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걸어온 길 한가운데에는 피의 호수가 있다. 빼앗긴 붓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