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9일 토요일

‘복수하고 싶어’ 똑딱이로 사진 찍는 남자

'복수하고 싶어' 똑딱이로 사진 찍는 남자
[서평] 마음으로 찍는 사진 <나는 똑딱이 포토그래퍼다>
김종성(sunny21)
지난 주말 개구리도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봄 기운을 느끼며 가까운 청계천으로 나들이를 갔다. 남녀노소 많은 시민들이 나와 따스한 봄 햇살을 즐기고 있는 가운데 빠질 수 없는것은 사진찍기다. 마음에 드는 풍경을 찍기도 하고,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추억을 남기기도 한다. 우리에게 일상적인 문화가 된 '디카질'을 유심히 보면 공통적인 면이 보이는데, 바로 '모든 카메라의 DSLR화' 현상이다. (DSLR 카메라는 렌즈 교환식의 고급 카메라로 과거 사진작가나 기자들이 주로 사용했었다.)
우리나라의 사진 문화는 카메라라는 장비에 유난히 열광한다. 사진을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경우에도 거의 대부분이 묵직한 DSLR 카메라를 가지고 다닌다. 필요에 의한 구매도 있겠지만 겉치레와 속칭 '뽀대'를 중요시 하는 성향 또한 없다고 말하기 힘들다. 
이런 사진 문화 속에서 <나는 똑딱이 포토그래퍼다>(안태영 저, 한빛미디어 펴냄)라고 대놓고 외치는 저자의 책을 읽다보니 통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똑딱이'는 주먹만한 크기의 작은 콤팩트 카메라를 말한다.) 저자는 비싼 장비가 아니더라도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색깔과 이야기를 통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본인이 찍은 160여 장의 사진과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를 버무려 친구처럼 편안하게 말해준다. 아마도 그가 친구처럼 느껴진 건 프로 사진작가도 사진기자도 아닌 취미 사진가로서의 시선때문인 듯하다.

"아저씨, 좀 나오세요... 똑딱이로 무슨 사진을 찍는다고"

▲ <나는 똑딱이 포토그래퍼다> 겉표지
ⓒ 한빛미디어

know-how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보다는 know-what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 본문 중

값비싼 카메라와 렌즈가 사진 찍는 사람들의 신분이 되고 사진의 내공이 되어 버린 요즘, 똑딱이로 찍어서 잘 나온 사진을 보면 우리는 "똑딱이 좋아졌네" 라고 말한다. 그리고 좋지 않은 사진을 보면서는 "똑딱이가 다 그렇지"하고 말할 뿐이다.

DSLR 카메라가 대중 앞에 등장하면서 간편하게 찍히는 똑딱이는 어느새 사진을 잘 찍지 못하는 사람들의 카메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저자가 똑딱이 카메라를 사용하게 된 이유들이 재미있는데 그 세 번째 이유가' 복수하고 싶어서'였단다. 당시 남들처럼 DSLR과 세컨드 디카로 똑딱이를 쓰던 저자는 어느날 똑딱이를 가지고 가까운 공원에 나가 꽃을 찍던 중, 출사를 나온 DSLR 무리들에게 이런 소리를 듣게 되었다. "아저씨, 거기 좀 나와 주세요" 이어 나온 결정적인 말 "똑딱이로 무슨 사진을 찍는다고." 이 사건 이후 20여 만 원밖에 안하는 내 똑딱이로 찍은 사진이 몇 백만 원에 달하는 그들의 카메라로 찍은 사진보다 더 멋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단다.
나도 사진 찍는 게 재미있었고 더 깊이 배우고 싶어 인터넷 사진 동호회에 가입도 하고 회원들과 같이 출사라는 것을 나가보기도 했다. 저자처럼 똑딱이를 들고서 말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모임에 참석했지만 내 손안에 있는 똑딱이를 보는 순간 혹은 대화 중에 "무슨 카메라 쓰세요?"라는 질문에 내가 가진 똑딱이를 보여주면 그것으로 대화는 어색해지고 끝이었다. 렌즈 이야기, 바디 이야기, 카메라 브랜드 이야기까지… 사진을 배우기 위해 나간 자리에 정작 사진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던 거다.
생활을 찍는 나에게 DSLR이 필요할까?... '똑딱이'는 일상이며 자유다
나에게 사진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어난 일상의 작고 다양한 모습이나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생각 어디에도 크고 비싼 DSLR 카메라를 써야 하는 이유는 없었다 - 본문 중
나에게 사진은 무엇일까. 나는 사진을 왜 찍을까?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저자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다. 결론은 사진은 그에게 '생활'이었다는 것. 유명작가들처럼 표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도전을 하는 것도 아니고 상업적으로 사진을 팔기 위한 것도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상을 찍는 것 말고는 없다는 데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 같다.
똑딱이는 '무엇으로 찍어야 하는가'보다는 '무엇을 찍어야 하는가'라는 사진 본연의 특성에 더 잘맞는 카메라다. 커다랗고 무거운 가방도 필요 없고, 사진을 찍을 때 주변 사람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에서도 자유로운 데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찰나의 순간 포착도 쉽다. 내가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장면을 담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바로 자유 아닌가! 카메라가 가벼워진 만큼 내 몸과 마음도 자유로워짐을 깨닫게 된다. 특히 멀리 여행을 떠났을 때 똑딱이만의 자유로움은 고맙기까지 하다.
내 경우는 '시선의 자유로움'이 좋아서 똑딱이를 놓지 못하게 되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한쪽 눈을 감고 외눈으로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본 풍경이나 인물 등의 피사체는 왠지 갇힌 것 같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런 뷰파인터가 없는 똑딱이는 널찍한 LCD 창문으로 들락날락하는 풍경과 사람이 더욱 입체적이고 생동감이 있어서 좋다.
▲ 똑딱이는 일상 속에 숨어있는 소소한 순간들을 새로운 상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준다 - 안태영
ⓒ 한빛미디어


긴 기다림 끝에 원하는 장면을 찍었을 때의 쾌감

사진은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지, 특히 오랜 기다림 속에서 얻은 순간 가운데 값진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리고 기다림 끝에 마침내 원하는 장면을 찍었을 때의 쾌감이란! 
- 본문 중
사진은 '찰나의 예술'이라고 한다. 그래서 순간을 잘 포착한 사진은 그것이 예술 사진이건 다큐멘터리 사진이나 광고 사진이건 모두를 공감하게 만든다. 저자는 이런 순간, 순간들 보다 더 값진 것은 기다림이라고 강조한다. 인물과 빛 그리고 여백의 조화가 인상적인 저자의 사진들을 보면 정말 이 순간을 위해 오래 기다렸겠구나 싶다.
강태공이 낚시대를 걸어놓고 결정적인 순간을 고대하는 것 같은 기다림. 때론 지루하고 따분한 느낌이지만, 책속 사진들에서 느껴지는 기다림은 무언가 새로운 것이 일어날 것만 같고 무언가 새로운 일이 나에게 펼쳐질 것 같은 흥분되는 상상마저 일으킨다.
내게도 기다림이 사진 찍는 여러 기술 중 가장 어려운 기술같다. 언제 올지 모를 한 순간만 기다리고 있다가 다른 장소에 있을 지도 모를 멋진 순간들을 다 놓쳐버릴 것 같은 조바심, 여행지에서 마주치는 모든 순간들을 다 담고 싶다는 욕심. 나도 같은 똑딱이를 쓰지만 저자와 같은 작품 수준의 느낌을 주는 사진이 나오지 않는 이유들일 게다.
요즘 나오는 똑딱이는 크기는 여전히 작지만 기능은 일취월장하여 DSLR에서나 기능했던 M모드(수동촬영 기능), 파노라마 기능 등이 지원된다. 저자는 이런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여 시간의 흐름 찍기, 사람마다 다른 시간의 느낌을 구현해내기 등 나만의 스타일을 찾기 위한 고급 사진 기술들도 쉬운 용어로 친절하게 설명해주니 많은 공부가 되었다.
아직도 저자는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 있단다. 어쩌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똑딱이조차 나에게는 과분한 카메라가 아닐까 하는…
2011.03.19 13:53ⓒ 2011 OhmyNews
몸이 자유롭지 못한 내가 가장 하고픈말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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