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28일 화요일

해무 두른 섬이 불쑥~ 거, 장관일세!

이기사는 오마이뉴스에서 퍼온 기사 입니다.


전라북도 군산의 서해 앞바다에는 고군산군도라고 불리는 무인도를 포함한 40여 개의 섬들이 떠있다. 그 중 선유도는 한 폭의 동양화 같은 풍광을 지닌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신선들이 놀다가는 섬 선유도(仙遊島)이라고 했나 보다.

게다가 이웃 섬인 장자도, 대장도, 무녀도 사이에 작은 다리가 연결되어 있어 섬을 좋아하는 자전거 여행자에게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곳이기도 하다. 군산 여객선 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1시간 20분 정도 바다 위를 달려가면 옹기종기 모여 있는 4개의 섬과 그 안에 담긴 호수처럼 고요한 마을과 바다가 기다리고 있다.

군산버스터미널에 같이 내린 애마 자전거의 페달을 부지런히 밟으며 거대한 굴뚝들이 서 있는 부둣가와 군산항을 지나 선유도 가는 배를 탈 수 있는 군산여객선터미널으로 달려간다. 여객선은 두 가지가 있는데 선유도 가는 배와 이웃 섬인 장자도 가는 배가 있다. 뱃삯 1만2000원을 내고 시간이 맞는 장자도행 배를 탔다. 선유도행이나 장자도행 배들 모두 작지만 야무지고 날쌔게 생겼다 했더니, 그동안 섬에 갈 때 탔었던 차량들이 같이 승선하는 '카페리호'가 아닌 승객 전용배다. (선유도 가는 배 예약 및 운항안내 www.sunyudo.com)

사람들만 타는 배지만 자전거는 따로 뱃삯도 받지 않고 우대한다. 흰머리가 은빛 갈치처럼 반짝거리는 한 부부 라이더와 반갑게 눈인사를 하며 같이 승선했다. 군산 선유도는 젊은이도 노인들도 자전거 여행을 할 수 있는 부담 없는 평탄한 섬인 듯해 안심이 된다. 장자도행 배에는 좌석 이외에 두 개의 넓은 마루가 있다. 새우처럼 등을 옆으로 구부리고 누워있는 섬마을 아낙네들 사이에 같이 누워 엔진열에 뜨듯해진 마룻바닥에 등을 지지며 있자니 잠이 솔솔 몰려온다.  

  
▲ 섬을 찾은 여행자를 처음 반기는 건 섬의 봉우리를 감싸안은 짙고 몽환적인 해무다.
ⓒ 김종성
 선유도
몽환적인 안개가 맞이해 주는 섬

바다 위를 얼마쯤 달렸을까, 배 안의 사람들이 창밖을 보며 감탄을 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거의 도착을 했는지 배는 속도를 줄이며 선착장에 다가서고 있다. 섬 주변이 온통 하얀 해무로 뒤덮여 있다. 낮에는 한여름처럼 덥고 밤에는 쌀쌀한 날씨로 인한 기온차는 과일만 맛나게 하는 게 아니라 이처럼 짙은 안개도 만들어 낸다. 섬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선유봉, 대장봉, 대봉…. 우뚝 솟은 섬의 봉우리들이 하얀 해무를 몸에 두르고 바다 위에 불쑥 나타난다. 와 ~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오게 하는 몽환적인 풍경이다. 

장자도에 가뿐하게 내려 생선 말리는 짭조름한 냄새가 나는 바닷가의 포구를 따라 바로 옆의 섬 대장도를 향해 먼저 간다. 군산여객선터미널의 여직원이 대장도에 있는 봉우리 대장봉이 멋있으니 한 번 올라가 보라고 추천해서다. 장자도와 대장도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이자 해 질 녘 노을이 아름답다는 '장자대교' 앞에 섰다. '대교'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내가 탄 자전거가 넉넉히 지나갈 정도의 작고 귀여운 빨간색 다리다. 포구에 한가로이 떠있는 동네 어선들을 눈 아래로 구경하며 장자대교를 건너면 딴딴하게 생긴 커다란 바위산이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선 대장도가 나타난다.

  
▲ 대장도의 울창한 숲속 대장봉에 오르다보면 섬의 풍경과 섬 마을속 삶의 모습이 오롯이 펼쳐진다.
ⓒ 김종성
 대장도
마을의 포구가에 나무 데크 계단으로 만든 대장봉 오르는 초입길이 표지판과 함께 보인다. 입구를 못 찾는다면 주변의 주민들에게 물어봐도 되겠다. 나무 계단 길은 곧 끝나고 낭랑하게도 지저귀는 새소리를 경음악처럼 감상하며 타박타박 흙길을 걸어 오르면 온통 초록뿐인 울창한 숲 속이다.

숲길 한가운데에 다 쓰러져 가는 목조건물이 한 채 있다. 섬의 무속인들이 찾아와 굿을 하거나 제를 올리는 곳이었다고 쓰인 팻말이 서 있어 잠시 읽어보니 대장봉에는 '장자할미바위'라는 뾰족하게 생긴 신묘한 암봉이 붙어 있는데 무속인들이 숭배하는 것이란다.  

포구에서 대장봉 정상까지는 20분이면 넉넉히 닿는다. 정상을 앞두고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하는 바위길이 있어 굳이 끝까지 올라가지는 않았지만, 언제라도 고개를 바다 쪽으로 돌리면 발밑 가까이에 대장도에서 장자도 다시 선유도를 잇는 다리와 길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는 무녀도와 무인도들의 풍광이 바다와 어울려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섬마을마다 포구에 매어 놓은 고깃배들이며 고기잡이에 나선 어선들이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더없이 평화롭고 고즈넉해 보이고 덩달아 내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섬의 교통수단은 전동카트와 자전거다.
ⓒ 김종성
 선유도
섬마을 교통수단은 전동카트, 자전거, 걷기  

장자도, 대장도, 무녀도, 선유도 각각의 섬들을 만날 때마다 그 사이를 잇는 빨간색 다리를 지나가게 된다. 보행자를 위한 작은 다리지만 차들이 쌩쌩 오가는 크고 삭막한 다리들과 달리 친근하고 정답게 느껴져 자전거에서 내려 걸어보기도 한다. 면적이 크지 않은 덕에 섬 마을의 다리와 길은 애초에 이렇게 사람 위주로 만들어져서 차량은 아예 들어서지 못하고 보행자나 자전거, 오토바이 정도만 오갈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선유도에는 차량을 싣고 운항하는 '카페리호'들이 오질 못한다. 차량이라고 해봐야 주민들이 운행하는 승합차가 몇 대 보일 뿐이다. 대장도에서 무녀도로 가는 바닷길가에 관광객들을 위한 전기차 또는 전동카트가 다니고 있다. 관광객들은 전동카트를 빌려 섬을 차례차례 돌아보고, 나 같은 여행자들은 자전거를 타고 혹은 빌려 타고 섬을 누빈다.

  
▲ 여행길에서 만난 염전밭과 소금창고는 언제봐도 이채롭고 끌리는 대상이다.
ⓒ 김종성
 무녀도
처음부터 미래를 내다보고 의도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러다 보니 선유도는 친환경 청정섬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아담한 섬 마을이 한가로이 모여있는 이 고군산군도에도 내후년이면 새만금방조제에서 연육교가 이어진단다. 가뜩이나 크지도 않은 섬에 오가는 차량들로 가득할 선유도가 떠올라 씁쓸하고 아쉽기만 하다.

이름도 독특한 무녀도에 들어서자 담장이 없어 보기 좋은 무녀 초등학교가 맞이한다. 여행을 다니면서 폐교된 초등학교를 많이 보았는데 이 초등학교는 다행히 멀쩡하게 잘있다. 학교 건물 벽에 쓰여 있는 보기드문 문구를 보니 이 초등학교의 끈질긴 생명력이 설명이 된다.

"한 가지만 잘해도 성공한다!"

  
▲ 길 안내도 해주고 나름 멋지게 사진포즈도 취해준 무녀도 사는 귀여운 초딩녀석.
ⓒ 김종성
 무녀도
군산여객선터미널에서 받은 고군산군도 지도에 무녀도 염전밭이 나온다. 동네주민들에게 물어보며 집들 사이 골목길을 따라 가다 보면 갑자기 넓은 갈대밭과 들판이 나오고 저 앞에 정말 소금이 난다는 염전밭이 보인다. 아쉽게도 대부분의 염전은 빨간 풀들이 자라나는 버려진 밭이 되고 있고, 아저씨 한 분만이 몇 개의 소금밭을 돌보고 있다. 완양염전이라고 쓰여 있는 소금창고의 나무간판도 참 오래되어 보인다. 인천에서, 석모도에서, 안면도에서… 자전거 여행길에 만난 염전과 소금창고는 참 이채롭고 끌리는 대상이다. 인간에게 아니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것이 소금이어서 그런걸까.  

그렇게 갈대밭과 포구를 돌아보며 산책 삼아 무녀도를 한 바퀴 돌고 있는데 길 정면에 또 다른 자전거 탄 이가 마주 오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자전거 속도를 줄이며 인사를 나누려고 보니 무녀도 초등학교에 다닌다는 동네 꼬마 녀석이다. 길도 알려주고 나름 멋진 포즈를 취해주며 사진 모델도 해주는 순수하고 귀여운 아이 덕에 나도 활짝 웃어본다.

  
▲ 부드러운 모래와 잔잔한 파도가 편안해서 좋은 명사십리해변은 주변 풍광또한 일품이다.
ⓒ 김종성
 명사십리해변
산수화 같은 풍경에 취하다

파도가 잔잔하게 몰고 오는 바닷바람을 마시며 선유도가 있는 명사십리 해변가를 달려간다. 요즘엔 갑오징어가 많이 잡히는지 도시에선 보기 드믄 딱딱한 갑옷을 두른 갑오징어가 바닷가 횟집 수족관에 그득하다. 명사십리 해안가는 고운 모래도 좋고 주변에 망주봉이라는 바위산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어 그 어디보다 멋진 바닷가 풍광을 뽐내는 곳이다. 누구라도 사진을 찍으면 풍경 작품사진이 되겠다.

선유도에 들어서니 햇볕 아래 밭일을 하시는 아주머니가 자전거 타고 다니느라 고생이 많다고 위로를 해주고 달리는 자전거만 보면 짖어대는 동네 개들이 반긴다. 오가는 파도소리가 음악소리같은 몽돌해변도 가보고 그렇게 선유도를 돌다 보니 섬 안내 지도에도 안 나오는 작은 표지판을 발견하게 되었다. '구불길'이라고 쓰인 팻말 앞에 서서 지나가는 주민들에게 물어 보니 최근에 군산시에서 만든 오솔길로 선유도의 뒷산인 '대봉'으로 올라가는 길이라고 한다. 올레길이니 둘레길이니 해서 요즘 걷는 길이 유행인데 이곳에도 그런 길을 만들었나 보다.

  
▲ 푹신한 '구불길'을 따라 선유도의 대봉에 오르면 고군산군도의 아담한 섬들이 한 눈에 펼쳐지기 시작한다.
ⓒ 김종성
 선유도
대봉은 고군산군도의 최고봉이라지만 높이가 160m 남짓으로 구불길을 따라 오르면 30분 정도 걸려 자전거 여행자에게도 부담이 없는 길이다. 솔방울과 솔가지들로 푹신푹신하고 수목이 울창한 숲길은 그늘이 드리워져 따가운 햇살 아래에서도 시원한 기분이 든다. 고군산군도는 발길 닿는 곳 어디나 좋지만, 그중에서도 선유도의 대봉은 섬 여행의 하이라이트이다. 제주도 여행을 가서 마지막 날 한라산을 오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발 아래로 내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온 바위산 망주봉 길과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의 명사십리 해변이 이어져 있다. 그 뒤로 무녀도와 대장도, 첩첩이 겹쳐진 크고 작은 섬들과 마을이 보이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저 멀리 새만금방조제가 마치 바다위 수평선처럼 펼쳐져 있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멋진 산수화 같은 풍경에 흠뻑 취해 하루종일 페달을 밟느라 팍팍해진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겠다.

  
▲ 가로등 불빛이 비추는 민박집 주변 포구를 걷자니 밤바다의 파도소리가 은은하게도 들려온다.
ⓒ 김종성
 선유도
작은 어선들이 정박한 마을 포구에서 주민들이 모여 앉아 그물을 한 땀 한 땀 손질하고 있다. 어느덧 오후 7시가 넘어서고 있지만 아직도 섬은 환하다.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고 해서 섬 포구마다 들어선 민박집을 기웃거린다. 취사가 되는 넓은 방과 아직 밤엔 춥다며 전기담요를 챙겨주시는 주인 아주머니는 해가 지면 멋진 노을을 볼 수 있다는 장자대교도 알려 주신다.  

선유도에서는 당일코스가 아닌 하루쯤 묵는 여행을 권한다. 섬 마을 구석구석을 유유자적 돌아다니며 저녁나절까지 여유롭게 자전거 여행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찰랑찰랑 반짝거리는 명사십리 해변에 발을 담가보고, 썰물 때면 드넓게 펼쳐지는 갯벌 위를 맨발로 걸어보기도 하고, 4개의 섬들 속에 호수처럼 담긴 마을과 바다가 보이는 숲길도 올라보고, 해 질 녘에는 섬 주변을 온통 붉게 물들이는 노을에 푹 빠져도 보며, 저녁밥을 배불리 먹고 나와 달빛 아래 고요한 포구를 걸으며 들려오는 은은한 파도소리를 감상하다 보면 왜 이곳이 신선이 노니는 섬인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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