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3일 월요일

시멘트벽 위에서 피어나는 향기로운 꽃

이글은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퍼왔습니다.
  
▲ 좋은 세상 만들기 정수 대표
ⓒ 강형구
 좋은 세상 만들기
드넓은 나주평야 모내기로 바쁜 이앙기 엔진소리가 진종일 들녘을 울리는 농촌 들녘, 하늘로 줄기를 곧추세우고 연잎을 푸르게 펼쳐 올리는 너른 저수지를 휘돌아 올라가는 전라남도 나주시 산포면 화지리 홍련마을 길가 무표정한 회색의 시멘트벽에 예쁘고 건장한 젊은 남녀들이 옹기종기 모여 벽화를 그린다. 회색의 담 벽에 푸른 연잎이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붉은 꽃잎을 활짝 펼쳐 올린다. 거기 연한 연향이 가득 풍겨 나오는 것만 같다.


  
▲ 벽화를 그리고 있는 모습
ⓒ 강형구
 좋은 세상 만들기
모내기 하러 간 고향 길에서 만난 풍경이다. 누가 저토록 삭막한 시멘트벽 위에 화사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것일까? 그런 의문을 안고 며칠 새 지켜보며 바쁜 발걸음으로 그냥 지나쳤건만 그들과의 인연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벽화 그리기로 이미 세간에 널리 이름이 알려진 '좋은 세상 만들기'의 대표 정수(36)씨가 회원들과 함께 며칠 새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정수씨는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화가다. 그런 정수씨가 왜 이 벽화를 그리는 '좋은 세상 만들기'라는 단체를 꾸리고 운영하게 되었을까?

이야기는 정수씨가 미술대학에 다니던 2002년으로 돌아간다. 정수씨의 아버지는 당시 뇌졸중으로 앓아누워 식물인간 상태로 2년을 살다가 그만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버렸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정수씨는 화장하여 담양의 영락공원에 안치한 아버지를 거의 주말마다 찾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길 위에 놓인 담양의 어느 시골 허름한 시외버스 정류장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버려진 듯 있는 낡은 소파 두어 개,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쓰레기들, 무표정한 회색의 시멘트 벽, 그것은 아버지를 여의고 실의에 빠져 있는 자신의 초상화임을 발견하게 된다. 한동안 그것을 바라보던 정수씨는 그 자리에서 무언가를 결심 하게 된다. 거기에다 아름다운 벽화를 그려 생명을 불어 넣어야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작한 벽화 그리기의 시초가 된 것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일찍 저 세상으로 떠나가신 아버지가 저에게 준 선물이지요. 너는 캔버스나 화선지에 그림을 그리지 말고 이 세상에다 그림을 그려 보아라하고 가르쳐 주신 것이지요."

정수씨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아마도 아버지에 대한 사무치는 정이 아버지가 계시는  담양 시골 정류장 벽화그리기로 표출되었던 것 아닌가 싶다. 그 후로 정수씨는 뜻있는 학생들과 '좋은 세상 만들기'라는 단체를 만들었고 순전히 사비를 털어 여기저기 시멘트벽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답답한 회색의 시멘트벽이 휘황찬란한 예술의 공간으로 탈바꿈하자 모두들 환영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정류장 80여 곳, 나주 삼한지 테마파크 등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도 40여 곳이나 된다고 한다. 또 노무현 대통령 서거 추모 벽화를 그리기도 했으니 그 활동 영역이 어느덧 전국을 무대로 확대된 것이다. 

  
▲ 벽화를 그리고 있는 모습
ⓒ 강형구
 좋은 세상 만들기
현재 '좋은 세상 만들기'는 1800여 회원이 참여하고 있는데 거의 대부분이 대학생이라고 한다. 스펙 쌓기나 취직 시험에만 골몰할 것만 같은 이기적인 대학생의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은 일면이고 실재로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하여 공공문화 가꾸기 같은 일에 헌신적으로 참여하여 봉사하고 싶어 하는 것이 우리 대학생들의 참 모습이라고 정수씨는 말한다. 아직 우리 사회가 그들의 봉사 욕구나 참여 욕구를 효과적으로 분출할 수 있는 장치가 미비한 상태라고 지적한다. 

"지금 여기 와서 봉사하고 있는 대학생들도 일일 5000원씩의 회비를 내고 참여하고 있어요. 여기에서는 오직 재료만 대주고 있지요."

정수씨의 말처럼 화지리 홍련마을 벽화그리기에 필요한 타일(색색의 타일을 잘게 부수어 접착제를 발라 벽에 붙여 그림을 그린다. 페인트는 2년 정도의 수명인 데 반해 타일은 10년 이상 간다고 한다)만을 요청자로부터 제공받은 상태였고, 정수씨를 비롯한 회원들은 교통비와 식비 등에 필요한 회비를 각자 내고 참여하여 순전히 자발적으로 봉사하고 있었다.

정수씨는 그것은 우리 대학생들이 술 마시고 노는 소비적인 문화에 탐닉하기보다는 세상을 향한 나눔의 공감대를 가지고 창조적인 것에 자신을 헌신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더구나 벽화그리기는 대중적 공감대가 크고 오래도록 자신이 그 작품에 참여하여 그렸다는 성취감이 남아 있어 매우 선호하는 봉사활동 중 하나라고 한다.

벽화 작업 도중 지나가는 사람들이 예쁘다고 한참 동안이나 서서 그것을 지켜보고 가거나 또 수고한다고 물이나 음료수 등을 건네기도 한다. 또 시골 할머니가 고생 한다며 고구마를 쪄오고 타일 조각에 손가락이 벤 대학생을 보고 집에 있는 대일밴드를 가져와 붙여 주는 등 우리가 잃어버렸던 훈훈한 정을 체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이 매우 크다.

언젠가는 더운 여름날 갈증은 나고 더운데 물은 사러 갈 수 없고 하여, 그냥 회원 하나가 '물 좀 사 주세요'라고 등에 크게 써서 붙여놓고 작업을 했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그것을 보고 물과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와서 건네주며 좋은 일 한다고 칭찬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좋은 세상 만들기' 회원들은 힘든 벽화 그리기 작업을 통해 함께 하는 회원 간의 협동심을 배우고 또 사람 사는 인간미를 현장에서 직접 느끼고 배우면서 더 큰 세상을 깨닫는 것이다.

  
▲ 벽화를 그리는 봉사원들(단체사진)
ⓒ 강형구
 좋은 세상 만들기
'좋은 세상 만들기'의 벽화 그리기는 이러한 점에서 벌써부터 인기 봉사단체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SKT썬' '잎새주 대학생 홍보단' '광주은행 대학생 홍보단' 등의 기업들이 문화 봉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고, 미술 교육, 비엔날레 전시 참여, 잠 안자기 대회 등을 개최 하는 등 영역을 확대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 하고 있다.

벽화 그림의 소재도 초기의 태권도, 농악 등의 한정적 소재를 벗어나 주변 환경이나 의뢰자의 의도를 고려해 참신한 소재를 선택한다. 어느 정류장 벽화에 노랑머리에 총을 든 서부 사나이를 그리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다가와 '왜 여기에 저런 무서운 그림을 그리느냐?'는 말을 듣고 정수씨는 그때 벽화의 그림 소재도 감상자와 서로 소통을 통한 공감대를 형성하여 그에 맞는 것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러한 정수씨의 벽화 그리기는 그야말로 화가와 관객이 따로 없는 함께하는 참여의 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기에 '좋은 세상 만들기'에 참여하는 봉사자들도 대부분 미술 전공과는 전혀 다른 대학생들과 일반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평소 그림은 그리고 싶었으나 마땅한 기회가 없었는데 이런 벽화 그리기 봉사단체가 있어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다.

"저도 어릴 때는 엄마 말도 안 듣는 불량학생이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그림을 그려서 엄마에게 보여주니 매일 꾸지람만 하던 엄마가 칭찬을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매일 그림을 그려 엄마에게 보여주었지요. 그게 취미가 되고 특기가 되어 미술대학을 진학하게 되었고 이렇게 삶의 일부가 되는 벽화를 그리게 되었지요."

정수씨는 그림을 왜 그리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그리고 한국화를 왜 선택했느냐는 질문에는 먹의 번짐이 좋아서 선택했다고 답한다. 아마 정수씨의 이러한 대답은 누구나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닌가 싶다. 부모에게 칭찬받고 싶고 먹물처럼 사람들 마음에 자연스럽게 퍼져 하나로 동화되고 싶은 마음이 인간의 본연의 마음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벽화 그리기는 매우 보람이 큰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남들과 함께 감상할 수 있고 그 감상을 통해 칭찬 등의 비평을 즉각적으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타자와의 적극적인 소통을 의미한다. 즉 소통은 화선지에 떨어진 먹물이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번져가는 것처럼 내가 다른 사람에게로 자꾸 동화해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 동화는 궁극적으로는 평화요 환희요 행복일 것이다.

"이 일을 하면서 많은 보람을 느껴요. 무엇보다도 서로 함께 일을 하면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큰 보람이지요. 또 지나가는 사람들이 예쁘다고 말하면 정말 기뻐요."

조선대학교 체육학과 4학년에 다니는 서진수(25)씨의 말이다. 20여 작품의 봉사 활동에 참여했다는 서진수씨는 '미술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앞으로도 쭉 봉사 활동을 하고 싶은데 취직 문제가 걸려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여기 와서 봉사 활동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나고 서로 다른 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즐거워요. 또 먼 훗날 여기 와서 내 손으로 만든 이 작품을 보게 된다면 정말 감회가 새롭겠지요. 그런 점에서 계속 이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요."

전남대학교 임학과에 다닌다는 조아라(22)씨는 전남대학교 홈페이지에서 벽화 그리기 봉사원을 모집하는 광고를 2011년 2월에 보고 왔다면서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광주시 광산구 비아동 요양원 벽화에 참여했는데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한다.

  
▲ 조선대학교 서진수(좌)씨와 전남대학교 조아라(우)씨
ⓒ 강형구
 좋은 세상 만들기
"2-3학년 대학생들이 열심히 봉사활동에 참여하다가 4학년이 되면 취직 문제로 싹 빠져나가버려요. 그리고 시험기간에도 참여율이 아주 저조하지요.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현상이지만 이처럼 이 세상에 봉사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직접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 사회가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면 금방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겠어요."

정수씨는 끝까지 함께 할 수 없는 회원들의 현실적 상황에 대하여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어머니가 매일 '장가는 언제 갈 거냐?'고 자꾸 성화를 내는 데도 정수씨는 개인적인 일보다는 항상 세상일에 더 바쁘다.

"우리나라 8도를 지나는 간이역 벽마다 그 지역에 맞는 그림을 그리고, 그 지역의 명사를 초청하여 회원들과 함께 강연을 듣는 일을 추진하고 싶어요. 뜻있는 기업이나 철도공사 같은 곳에서 지원도 해주고 함께 하는 장을 마련해 주면 좋겠지요."

정수씨는 그러한 체험들을 정리하여 '철길 위에서 길을 묻다'라는 제목으로 에세이집을 간행하고 싶다고 말한다.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다. 어디 등 기댈 데라고는 없는 삭막하기만한 세상에서 도무지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일도 이렇게 아름다운 꿈을 꾸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되고 마침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절제하고 세상으로 따뜻한 손을 내밀며 모두가 함께 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이상을 실현하는 길을 조금씩이라도 앞서가는 사람은 위대한 것이다.

생각해보라. 암울한 성장제일주의 시대에 오직 거대 자본과 개인의 영달과 출세만을 위해 미친 듯 질주하는 무표정한 죽음 같은 삭막한 시대의 상징인 저 견고하고 딱딱한 시멘트벽을, 너와 나를 그리고 안과 밖을 완전히 단절시켜 버린 저 시멘트벽 위에 푸른 잎과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리라고 그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해보았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오늘 거기 누군가의 작고 여린 순수한 열정들이 모여 마침내 푸른 잎이 돋고 향기로운 꽃이 피고 있다는 것을 그대는 지금 보고 있지 않은가.   
   
  
▲ 완성된 벽화
ⓒ 강형구
 좋은 세상 만들기

덧붙이는 글 | 좋은 세상 만들기 많은 관심 바랍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