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8일 토요일

곤충의 세계는 우주보다 더 복잡하다

이기사는 시사인에서 퍼온 기사 입니다.

수년째 ‘정부희 곤충기’를 쓰고 있는 정부희 박사(곤충학)와 함께 갖가지 곤충으로 떠들썩한 숲으로 갔다. 그리고 우주보다 더 복잡하고 매력적인 세상을 만났다.

암수 서로 정다운 건 훨훨 나는 꾀꼬리만이 아니었다. ‘황조가’를 읊으며 떠나간 임을 그리워하던 유리왕이 봤다면 필시 눈꼴시어 했을 낯 뜨거운 풍경이 숲속에서 왕왕 목격되었다. 식물 잎사귀마다 숨어 사랑을 꽃피우는 자그마한 곤충들의 더운 숨이 그렇게 본격적인 여름을 불러오고 있었다.

5월30일 이른 아침 경기도 양평 화야산을 찾았다. <곤충의 밥상> <곤충의 유토피아>에 이어 세 번째 ‘정부희 곤충기’를 준비 중인 정부희 박사(49)의 곤충 답사길에 동행을 청했다. 사계절 365일을 틈만 나면 짐을 꾸려 산으로, 들로, 섬으로 어디든 곤충을 만나러 떠나는 정 박사이지만, 그중 요즘이 숲에 사는 곤충을 만나기에 가장 ‘적기’라는 말을 듣고 냉큼 따라나섰다. 



  
ⓒ시사IN 백승기
사계절, 365일 정부희 박사는 틈만 나면 카메라를 둘러메고 산으로 들로 곤충을 만나러 쏘다닌다(위).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정 박사는 ‘미혹됨이 없다’는 불혹의 나이에 곤충과 ‘접신’했다. 대학 졸업 후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중, 두 아들의 엄마가 됐고, 취미 삼아 아이들과 문화유적 답사를 다니다가 곤충과 사랑에 빠졌다. 애초 정 박사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식물, 특히 야생화였다. 그러다 어느 날 ‘다리가 후들거리는 감동’을 경험했다. 카메라 렌즈를 들이댄 식물 속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던 현란한 색의 노랑가슴녹색잎벌레 때문이었다. “대학 시절 전공 시간에 탐독했던 셰익스피어의 풍성하고 맛깔스러운 은유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었어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시구 또한 곤충의 세계로 빠져들도록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뒤늦게 시작한 공부라 정신없이 몰아쳤다. 박사 과정 내내 노트북 위에 손을 얹은 채, 앉아서 자는 날이 수두룩했다. 그런 엄마가 못 미더웠던 사춘기 둘째 아들의 방황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그것도 잠시. 올해 대학에 진학한 둘째 아들은 엄마의 연구를 돕겠다며 생물학과에 진학했다. 남편(공무원)도, 군대에 있는 큰아들도 그의 큰 조력자이다. 

그는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버섯살이 곤충(거저리과)을 연구한다. 물론 버섯살이 곤충만이 그의 관심사는 아니다. 숲을 헤집고, 물에 이마를 대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말벌에 쏘여 죽을 뻔한 적도 있고, 이름 모를 벌레에 물려 피를 본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위기도, 배고픔도, 피곤함도 정 박사는 괘념치 않는다. “우리나라만의 곤충 이야기도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개발 탓에 흔한 ‘애들’조차 자꾸 사라져가요. 본 건 또 보고, 새로운 건 발견하면서, 기록을 자꾸 해둬야 해요.” 그렇게 정 박사는 시간이 날 때마다 카메라를 둘러메고 곤충이 있는 곳에 성큼 발걸음을 들여놓는다.

구멍 숭숭 뚫린 잎사귀 주목 또 주목

호랑나비 애벌레가 좋아한다는 향긋한 산초나무 이파리에 손을 살짝 비빈 뒤 코끝에 대니 싱싱한 숲 기운에 마음이 왈랑 일었다. 그러나 화야산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동행은 ‘난항’이었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기자의 몸은 산 정상을 향해 자꾸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데, 정 박사는 풀 한 포기 하나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특히나 보통은 흉하다 하고 지나칠 게 분명한 구멍 숭숭 뚫린 잎사귀들이 그의 관심사였다. “이 식물을 이렇게 갉아먹은 애는 누구일까, 궁금하지 않아요?”


  
ⓒ시사IN 백승기
세줄나비가 번데기를 탈피해 ‘우화’하고 있다


곤충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먹이식물(숙주식물)이 정해져 있어서 구멍 난 식물이 곤충의 ‘밥상’일 가능성이 높다. 뽕뽕 구멍 난 식물을 잘 살펴야 곤충을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송편 혹은 만두처럼 잎이 둥글게 말려 있다면 이건 100% 곤충 집이다. 그런 잎사귀는 벌레들의 ‘전용 복합 시설’이나 마찬가지다. 집도 되고, 식당도 되고, 산부인과도 되고…. 잎사귀 하나에 곤충의 복잡하고도 사소한 사생활이 깃들어 있다. 

청미래덩굴 풀잎을 한참 조심스레 앞뒤로 요리조리 뒤집더니 “와아, 귀엽죠?”라고 정 박사가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더니 성큼 손으로 까만 애벌레 하나를 집어 정성스레 살폈다. “곤충 종은 워낙 다양해서 저도 다 몰라요. 그래서 매번 새롭고, 매번 신기하고, 저한테 늘 새로운 ‘숙제’를 줘요. 아마 이 녀석은 청미래덩굴 잎사귀를 먹고 사는 청띠신선나비 애벌레가 아닐까 싶어요.” 꼬물거리는 여덟 개 다리 사이로 복슬대는 털이 수북수북, 그 사이에 손끝을 대보니 애벌레가 잽싸게 움츠린다. ‘미안해’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언뜻 징그러워 보이지만 애벌레의 털은 ‘처절한 무기’이다. 온도 및 습도를 감지하고, 바람은 물론 냄새와 빛도 털을 통해 감지한다. 털은 천적을 겁먹게 하는 데도 한몫을 한다. 애벌레가 어른 곤충이 될 가능성은 고작해야 10%. 외부 환경은 그만큼 늘 위협적이다. 

아니나 다를까, 쪽동백나무의 돌돌 말린 이파리를 수색하던 중 ‘기생당한’ 애벌레를 발견했다. 정 박사 말마따나 ‘옆구리 터진 김밥에서 밥알이 흘러나오듯’ 애벌레 피부를 뚫고 누군가 애벌레 몸에 알을 낳았다. “이 애벌레는 어른 곤충이 되지 못하고 숙주가 돼 점점 죽어가요. 아이고, 얼마나 아플까.” 정 박사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누군가는 그렇게 어른이 되기도 전에 죽어가고 있건만, 가지를 잘라 잘 벗기면 국수 같은 하얀 줄기가 나온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국수나무에서는 곤충들의 반상회가 한창이었다. 애기꽃벌·범하늘소·아무르하늘소붙이를 비롯해 각종 곤충들이 국수나무 꽃을 중심으로 바글바글 모였다. 동물처럼 짝을 찾아 옮겨 다니지 못하는 식물들은 좋은 시기를 택해 곤충을 유인하는 꽃을 피운다. 꽃가루는 곤충들의 ‘종합 영양밥’이다. 탄수화물·단백질·비타민, 없는 게 없다. “요 녀석들, 잘 먹었으니 제 밥값 해야죠. 배부르게 먹고 나면 국수나무 중매쟁이 노릇을 할 거예요.” 식물과 곤충은 그렇게 ‘상생’한다. 


  
ⓒ시사IN 백승기
여름 숲은 사랑이 꽃피는 공간이다. 화려한 몸빛깔을 자랑하는 길앞잡이(위 오른쪽)도, ‘체위’가 난해한 밑들이도 한창 짝짓기에 열중하고 있다(위 맨 오른쪽).


흙길에 가만히 쭈그린 채 몸을 한껏 낮춰 앉아 있던 정 박사가 조심스레 손가락질을 했다. “오늘 우리가 운이 좋네요. 이거 목격하는 게 흔한 일이 아닌데. 평생에 한번 볼까 말까 한 장면이거든요.” 물푸레나무 잎사귀 그늘 아래, 밑들이 커플의 은밀한 짝짓기가 한창이었다. 밑들이 암컷은 ‘혼수’가 준비되지 않으면 절대 짝짓기를 하지 않는 실속파다. 혼수는 죽은 곤충이나 잘 익은 열매이다. 짝짓기를 하고 싶은 수컷은 이를 먹이로 준비해야 한다. 크기는 크면 클수록 좋다. 먹이가 작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암컷이 퇴짜를 놓기 때문이다. 밑들이 암컷은 준비된 혼수를 받아먹는 중에만 짝짓기를 허락한다. 이날도 가만히 들여다보니 힘들게 암컷 위에 올라탄 수컷은 나 몰라라, 암컷은 죽은 애벌레를 쪽쪽 빨아 먹느라 여념이 없다. “밑들이는 짝짓기 체위가 난해해요. 알파벳 대문자 ‘L’ 모양이죠? 이건 저한테 특종입니다.(웃음)” 정 박사의 카메라 플래시가 연방 터졌건만, 밑들이 커플은 카메라 따위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듯 집중 또 집중이었다. 

사랑하고 먹고 노니는 곤충들의 사생활

밑들이만이 아니었다. 숲속 먹이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여름을 맞이해 곤충 커플들의 ‘닭살 행각’은 곳곳에서 발견됐다. 걸음을 조금 옮기니 이번엔 풀잎에 ‘브로치’처럼 딱 달라붙어 있는 남생이 커플의 짝짓기가 한창이었다. 숲길을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가까이 다가가면 저만치 앞서 달아난다 하여 이름 붙은 길앞잡이도 어쩐지 꼼짝 않는다 하여 들여다보니 짝짓기 중이다. 흙길에 몸을 대고 누워 숨도 멈춘 채 녀석들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너무 사생활을 침범하는 건 아닌가 싶어 무안해졌다. 

그런가 하면 세줄나비와 쇠측범잠자리가 번데기에서 막 ‘우화(번데기가 날개 있는 성충이 되는 것)’하는 모습도 운 좋게 목격했다. 정 박사가 “와, 우화하고 있다”라고 감탄하며 나무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세줄나비를 가리켜 보게 된 그 장면은, 정말이지 ‘우아’하기 그지없었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날개를 말리는 세줄나비 탄생의 목격자가 된 기분은 제법 으쓱했다. 

사랑하고 먹고 노니는 곤충들 틈바구니, 나무 그늘 한편에 주저앉아 준비해간 GPS를 확인하니 화야산에서 보낸 시간은 모두 263분(4시간23분). 평균 속도 0.4㎞로 느릿느릿 걸은 거리는 1.98㎞에 불과했고, 실제 걸은 시간은 69분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 194분은 곤충과 눈 맞추며 가만히 정지한 시간이었다. 참고로 750m 높이의 화야산은 등반을 목적으로 오르면 3시간 남짓 걸리는 비교적 ‘쉬운 산’이다. 


  
ⓒ시사IN 백승기
정 박사는 연구용으로 채집한 곤충 표본을 꽤 많이 갖고 있다


화야산에서 내려와 차를 내달려 도착한 서울 광장동 오피스텔에 마련한 연구실에서 정 박사는 수백 장의 사진 정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아직 국내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버섯 곤충 연구도 33㎡ 남짓한 작은 연구실에서 이루어진다. 수납공간마다 정 박사가 연구 목적으로 기르는 버섯과 버섯 곤충이 그득했다. 그는 확신했다. 더 이상 이들을 해치지 않는 게 인간도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숲길을, 들길을 걸을 때 뜀박질하면 나만 보여요. 그런데 뛰다가 걸으면 나무와 숲이 보이거든요? 그리고 걷다가 서면 자연의 합창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다시 그 자리에 앉으면, 그래서 버젓이 자라나고 있는 풀 한 포기를 살살 들여다보면 거기 ‘작은 우주’가 있어요. 거친 세상에 적응하며 사는 건 우리나 곤충이나 마찬가지죠. 이들이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더 이상 개발하지 않는 것이 우리도 사는 방법입니다. 약하고 작은 곤충이 사라지고 생태계 공존이 깨지면, 사람과 대결할 해충만 남게 돼요. 그때, 과연 인간이 이길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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