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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6일 토요일

수조원 벌고도 세금 0원 투기자본 위한 지상천국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6-15일자 기사 '수조원 벌고도 세금 0원투기자본 위한 지상천국'을 퍼왔습니다.


(보물섬)

<보물섬> 니컬러스 색슨 지음, 이유영 옮김/부키·2만원
인구 2만 영국 버진아일랜드
기업 80만개나 등록된 까닭?
투기로 벌어들인 ‘먹튀’ 자본
조세 피하려 ‘역외금융’ 이용

외환은행 인수 매각으로 몇 조원이나 되는 막대한 차액(투자수익률 239%)을 챙긴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를 앞세워 또다시 몇 천억원의 세금을 돌려받겠다고 하는 모양이다. 외환은행 매각 주체가 론스타의 벨기에 법인인 ‘LSF-KEB 홀딩스’이고, 벨기에와 한국은 이중과세 방지협정을 맺고 있어 벨기에 법인이 한국에 투자해 수익을 얻으면 벨기에가 과세권을 갖는다는 게 그 이유다. 벨기에는 해외 주식투자 소득에 세금을 물리지 않는 나라다. 따라서 론스타는 몇 조원 수익을 올렸으면서도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 과정에서 ‘독소조항’ 비판을 받은 투자자-국가 소송제 첫 사건이 되는 셈인데, 국세청이 패소할 수 있다. 온라인 서점 아마존의 영국법인은 지난 3년간 8조56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도 세금 한 푼 내지 않았다.
영국 저널리스트 니컬러스 색슨의 (보물섬)을 읽어 보면 그 까닭을 알 수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벨기에는 대표적인 조세회피처 가운데 한 곳이다. 책에서 ‘역외 세계’ ‘역외 체제’라고도 부르는 조세회피처는 “해외에서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금융비밀주의와 조세 혜택 및 여러 법망 회피수단을 고안해서 제공하는 곳”이다. 한마디로 치외법권지대에 가깝다. 서방 거대자본들이 약탈적 방법으로 긁어모은 거액의 자금을 세금 한 푼 안 내고 세탁해서 거래하고 은닉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따라서 론스타의 주장은 부도덕하고 추악한 것일지라도 합법일 수 있다. 약탈해서 숨겨둔 피묻은 보물 찾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도덕적 판단기준이 약간 모호한 활극을 그린 스티븐슨의 소설 (1883)을 제목으로 따 붙인 것은 그럴듯하다.
(보물섬)은 최근 수십년간 발생한 유의미한 대형 경제적·정치적 사건들 배후에는 이 역외금융체제가 똬리를 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미국 워싱턴 국제정책센터의 글로벌금융건전성 프로그램에 따르면, 2006년 한 해에만 개발도상국들이 불법 금융거래로 입은 손실액이 약 8500억~1조달러에 이른다. 이 손실 규모는 해마다 18%씩 커가고 있단다. 이 프로그램을 주도한 레이먼드 베이커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서구인들은 테이블 위로 1달러를 관대하게 던져 주면서 테이블 밑으로는 불법적인 돈 약 10달러를 빼앗아 오고 있다.”
아프리카만 따로 떼어내서 보면, 1970~2008년의 약 40년간 빠져나간 불법적 금융자본 총액이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8540억달러, 많게는 1조8000억달러에 이른다고 국제정책센터는 밝혔다. 1967년 서른두 살에 아프리카 자원 부국 가봉의 대통령이 된 오마르 봉고는 2009년 사망할 때까지 통치한 세계 최장기 독재자였고, 아들 알리 봉고가 또 대통령이 됐다. 옛 종주국 프랑스는 소수민족 출신으로 지지기반이 약했던 봉고가 권력을 잡자 그의 궁전, 그곳과 지하로 연결된 부대에 수백명의 공수부대원을 배치했다. 프랑스 기업들은 지하자원 개발 독점권을 얻었고 거기서 조성된 거액의 비자금은 자크 시라크의 프랑스 우익 정당 공화국연합의 정치자금으로 흘러들어갔다. 사회당도 일정부분 공모했다. 이 신식민주의적 상황을 가봉의 한 저널리스트는 “프랑스 사람들이 앞문으로 떠나더니 도로 옆문으로 들어왔다”고 요약했다. 2007년에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된 니콜라 사르코지가 제일 먼저 전화한 외국 리더도 봉고였다.
독점적 특혜 대신 봉고의 장기집권을 보장해준 옛 서방 주군들뿐만 아니라 봉고의 가신·측근들 역시 거액을 빼돌렸다. 1%의 그들은 실은 한 패거리다. 2008년에만 약 18조달러나 되는 돈이 네덜란드 ‘역외법인’들을 거쳐 갔는데, 이는 네덜란드 국내총생산(GDP)의 20배나 된다. 이 역외법인들이 바로 조세피난처다.
그러나 오늘날 최대 조세피난처는 네덜란드가 아니라 영국이고 미국이다. 영국 조세 회피지역의 핵은 수도 런던 중심부인 시티 오브 런던과 그 주변부의 금융서비스업계로 구성돼 있다. 이곳에서 전세계 주식거래의 절반, 장외 파생상품 거래의 45%, 글로벌 외환거래의 35%, 국제 주식공모의 55%가 이뤄진다. 미국 뉴욕 맨해튼은 증권화와 보험, 기업 인수합병, 자산관리 등 분야에서 런던보다 규모가 크지만 대부분의 거래가 국내시장 관련이어서 런던이 세계 최대의 국제 금융허브이고 역외금융의 허브, 곧 최대의 조세회피처다. 런던 시티 바로 바깥을 저지·건지·맨과 같은 영국 왕실령 섬들과 케이맨 제도 같은 14곳의 해외영토들이 에워싸고 있고 또 그 바깥에는 홍콩과 싱가포르 등의 옛 식민지 금융허브들이 포진하고 있다. 이 영국 조세피난처 전체 집단이 국제 은행권 총자산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얼마 전 엘리자베스 여왕의 화려한 재위 60년 기념행사 뒤에 서려 있던 대영제국의 어두운 그림자다. 영국 조세회피집단의 최대 이용자는 미국 자본이다. “앞문으로 떠나더니 도로 옆문으로 들어온” 옛 제국주의 종주국의 대표는 프랑스가 아니라 영국이요 미국인 셈이다.
인구 2만5000명도 안 되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는 무려 80만개 넘는 기업이 등록돼 있다. 이용자는 바로 서방 금융투기자본들이다. 파산한 미국 거대 에너지거래 회사 엔론은 881개에 이르는 역외회사를 갖고 있었다. 그중 692개는 케이맨에, 119개는 터크스케이커스에, 43개는 모리셔스에, 나머지 8개는 버뮤다에 있었다. 모두 거미줄처럼 엮인 영국 조세피난처들이다. 시티그룹은 427개, 폭스 뉴스 소유주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퍼레이션은 152개의 자회사를 조세회피처에 두고 있다. 론스타도 별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은이는 1%를 위한 이런 약탈적 금융기법이 세계경제를 망치고 결국 그 1%마저도 망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조세피난처의 역사를 꿰뚫고 있는 (보물섬) 얘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현대 금융자본 100년의 이면사가 읽힌다. 이 분야 전문가인 옮긴이 이유영씨에 따르면, 관세청은 지난해 조세피난처로 자체 분류한 국가나 지역으로부터 수입 통관 때 신고된 금액은 모두 429억달러였으나 실제 대금지급 총액은 1317억달러였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그 차액 889억달러, 103조원, 우리나라 정부 연간 예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거금이 어디로 빠져나갔단 말인가.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2012년 6월 10일 일요일

‘먹튀’ 론스타 ‘ISD 칼’ 휘두르며 귀환


이글은 한겨레21 2012-06-11일자[제914호] 기사 '‘먹튀’ 론스타 ‘ISD 칼’ 휘두르며 귀환'을 퍼왔습니다.
[경제] ‘양도소득세가 자의적’ ‘매각 승인 늦춰 손해’ 중재의향서 제출… 세금 써 고액 재판 할 판에 정부는 ISD 용어 감추고 ‘협의 요청’ 보도자료

» 론스타가 지난 5월22일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에 따라 국제중재를 청구하겠다는 내용의 중재의향서를 주벨기에 한국대사관에 보냄에 따라 한국의 ‘ISD 1호 사건’이 탄생했다. 참여연대 회원들이 5월24일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앞에서 ‘론스타의 외환은행 부당이득 환수 추진을 위한 주주모집’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라는 무기를 들고 론스타가 돌아왔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지난 5월30일 보도자료를 내어 “한국 정부의 불법적 조처로 손실을 입었다”며 ISD를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ISD란 상대국 정부가 투자협정상 의무를 위반해 외국 투자자가 손실을 입었을 경우, 그 투자자가 정부를 상대로 국제중재를 청구하는 제도를 말한다. 지난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국회 비준 동의를 앞두고 ‘독소조항’이라는 비판이 일어 이명박 대통령이 재협상을 약속한 바로 그 제도다.
“벨기에 법인이므로 한국에 세금 낼 필요 없다”
론스타가 주장하는 손실은 두 가지다. 첫째, 국세청이 부과한 양도소득세가 ‘자의적이고 부당하다’는 것. 지난 2월 론스타는 하나금융지주에 외환은행의 주식을 팔아넘기고 3조9156억원을 받기로 했다. 이는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할 때 투자한 원금 2조1549억원을 웃돌 뿐 아니라, 지난 9년간 배당 등을 통해 회수한 2조9027억원까지 합치면 투자수익률이 239%에 이르렀다. 이에 국세청은 양도소득세로 주식양도가액의 10%인 3915억원을 원천징수하기로 했다. 하나금융은 이를 납부한 뒤 나머지 주식대금만 론스타에 건넸다.
하지만 론스타는 한국에 세금을 낼 이유가 없다고 맞섰다. 외환은행의 매각 주체는 벨기에 법인인 ‘LSF-KEB 홀딩스’인데, 벨기에와 한국은 조세조약(이중과세 방지협정)을 맺고 있어 벨기에 법인이 한국에 투자해 수익을 얻으면 벨기에가 과세권을 갖기 때문이다. 벨기에는 해외 주식투자 소득에는 세금을 물리지 않아 론스타는 어디에서도 세금을 내지 않을 수 있다. 미국 텍사스주에 기반을 둔 론스타가 벨기에에 법인을 세워 한국에 우회 투자한 이유다. 론스타는 지난 5월9일 양도소득세 3915억원을 돌려달라는 경정청구서를 국세청에 냈다.
둘째 주장은 2006년 KB금융지주, 2007∼2008년 HSBC에 각각 외환은행 주식을 매각하려 했지만 한국 정부가 매각 승인을 늦춰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2007년 9월 론스타는 HSBC에 외환은행 지분 51%를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가격은 주당 1만8045원으로 총 5조9376억원이었다. 하지만 한국 금융 당국이 인수 승인을 1년 가까이 미뤘고 마침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져 HSBC가 2008년 9월 계약을 철회했다. 지난 2월 하나금융에서 외환은행의 주식 매각대금으로 3조9156억원을 받았으니까 배당소득 등을 제외하고 계산하면, 한국 정부의 늦장 승인 탓에 HSBC에 매각할 기회를 놓쳐 론스타가 2조22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내용을 담은 중재의향서를 론스타는 5월22일 주벨기에 한국대사관에 보냈다. 한국 정부가 위반했다는 협정은 1976년에 체결하고 2011년 3월에 개정한 한-벨기에 투자협정(BIT)이다. 이 협정은 국회 비준 동의 절차도 밟지 않고 발효됐다. 제8조를 보면, ‘투자자-국가 분쟁은 당사자가 서면으로 통보하며 그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분쟁이 해결되지 않으면 미국 워싱턴에 있는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절차에 회부된다’고 돼 있다. 론스타의 중재의향서 통보로 한국의 ‘ISD 1호 사건’이 시작된 것이다. 론스타도 5월30일 보도자료에서 투자협정이 규정한 6개월의 냉각 기간이 끝나는 오는 11월에 중재신청서를 ICSID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신만만 론스타, 중재 재판부 구성에 50% 영향력
지난해 그토록 논란이 많았던 ISD 사건이 처음 접수됐는데도 한국 정부는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금융위원회가 석가탄신일인 지난 5월28일 오후 6시쯤에 ‘론스타가 우리 정부에 협의를 요청하는 문서를 전달했다’고만 밝힌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이 보도자료에는 ISD라는 용어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ISD를 제기한 이유도 론스타가 이틀 뒤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 언론에 알려졌다. ISD 중재의향서를 접수하면 정부 공식 홈페이지에 곧바로 전문을 공개하는 미국이나 캐나다의 정부와 전혀 다른 대응이다.
론스타는 승소를 자신하고 있다. 존 크레이켄 론스타 회장은 “한국 및 해외 법률가들과 상의했고, ISD 청구가 설득력 있다는 조언을 받았다”며 “공정한 중재 패널로 구성된 ICSID에서 한국 정부가 (론스타) 투자자들의 피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판정을 내릴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자신만만한 이유는 국제중재에서 외국 투자자들이 더 우호적인 대우를 받기 때문이다. 우선 중재인은 법관 같은 ‘공적 신분’이 아니다. 그래서 분쟁 당사자가 각 1명씩 선정하고 의장을 맡을 제3의 중재인만 양쪽이 합의해 뽑는다. 론스타가 중재 사건을 맡을 재판부를 구성하는 데 50%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셈이다. 한국 법원에서는 절대로 행사할 수 없는 권리다.
뒤집어 말하면, 한국 정부의 조세·금융 정책을 무력화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재판부의 최소한 절반이 다국적기업의 변호사로 주로 일하며, 미국법의 영향을 많이 받는 해외 법률가로 채워진다는 얘기다. 실제로 ICSID에서 중재인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미국인은 지난해 12월까지 144명에 달하지만 한국인은 1명도 없었다.
또한 중재인들은 행정소송을 다루는 한국 법관들처럼 국가정책의 정당성이나 동기를 고려하지 않는다. 상대국 정부의 어떤 조처로 인해 투자자의 자산 가치가 감소했고, 그것이 투자협정 위반이라면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한국 법원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희박한 론스타의 처지에서는 포기할 수 없는 마지막 카드다.
앞서 2004년 12월 서울 강남 스타타워빌딩(강남파이낸스센터) 주식을 매각한 뒤에도 론스타는 양도소득세와 법인세를 내지 않으려고 한국 법원에 행정소송을 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 1월 벨기에 법인은 론스타가 조세회피 목적으로 세운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해 한-벨기에 조세조약을 적용할 수 없다고 최종 판결했다. 국세청이 론스타에 세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대법원 판결을 ISD를 통해 뒤집겠다는 게 론스타의 목표다.
승소해도 치를 비용 최소 200만달러
하지만 한국 정부의 처지에서는 패소하면 조세·금융 정책과 대법원 판결이 무력화되고, 승소하더라도 고액의 중재·법률 비용을 국민 세금으로 부담해야 할 상황이다. ICSID가 중재인 수당만 하루에 3천달러(약 350만원)로 책정하고 사건이 최소한 2∼3년 진행되는 탓에 중재 비용만 50만~100만달러 필요하다. 여기에다 변호사 선임 비용을 더하면 ISD 관련 법률 비용은 200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실제로 미국 기업 포프앤탤벗이 1999년 12월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낸 중재 청구에서는 손해배상금이 46만달러에 그쳤지만 사건이 4년이나 진행된 탓에 법률 비용은 760만달러나 들었다.
론스타는 잃을 것 없는, 한국 정부는 잃을 것밖에 없는 ISD 전투가 시작됐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2012년 4월 26일 목요일

대법원 “ISD, 극심한 법적 혼란” 의견냈었다


■ 주권의 침해·법적 불안정 초래 8쪽짜리 검토 의견서을 보면,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장점이 반쪽, 문제점이 3쪽 분량을 차지한다. 첫번째 문제점으로는 주권의 침해 가능성이 꼽혔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도입하면 정부의 각종 정책이나 규제 조처가 간섭받고, 이러한 분쟁에 대해 사법부가 관여할 여지가 없어져, 국가의 주권 또는 사법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 투자자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직접 중재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해, 외국인이 우리 국민보다 더 많은 권리를 누려 평등권에 어긋날 우려가 있다고 대법원은 분석했다. 이 때문에 선진국에서도 내국인 역차별 비판이 많다. 결국, 2002년 미국 연방의회는 무역촉진권한법을 제정해, 미국 시민보다 더 큰 권리를 외국인에게 부여하는 일이 없도록 행정부가 투자협상을 진행하도록 했다.
두번째로 사법부의 재판도 중재 청구의 대상이 됨으로써 법적 불안정 및 불안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대법원은 지적했다. 미국의 재판 절차와 판결을 중재기구가 심판한 로언 사건을 구체적인 사례로 들었다. 캐나다의 장의업체인 로언이 1995년 미국 미시시피 주법원에서 5억달러를 배상하라는 배심원 평결을 받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ㆍ나프타) 위반이라며 투자자-국가 소송을 청구한 사건을 말한다. 중재기구는 기각 결정을 내렸지만, 사법부의 재판도 중재대상임을 분명히 했다.
■ 공공정책 왜곡 우려 또 국가의 공공정책 왜곡 문제가 지적됐다. 중재기구가 정부의 각종 정책을 평가하고 심리함에 따라 공공정책이 위축되거나 국가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공중 건강, 안정 및 환경 등에 관한 정부 정책은 간접 수용을 구성하지 아니한다는 규정을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포함하고 있어 어느 정도는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대법원은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중재 절차의 투명성 문제도 거론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제3자에게 법률의견서 제출 권한을 부여하고 3년 이내에 상소 기구를 설치할지 협의하도록 규정해 나프타보다는 투명성과 공정성이 확보될 것이라고 했다.
박주선 의원은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 때 대법원의 검토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지난해 12월 현직 판사 166명이 한-미 협정이 사법주권을 침해한다고 또다시 우려를 표시한 것”이라며 “오는 6월로 예정된 투자자-국가 소송제 재협상(개정 협상)에서는 대법원의 의견을 반드시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한-미 협정의 투자 분야를 협정 발효(3월15일) 뒤 90일 이내에 미국과 재협상하겠다고 밝히고, 지난 3월부터 협상안을 마련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2012년 4월 6일 금요일

다국적기업 줄소송에 낭패…“폐기가 최선”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4-06일자 기사 '다국적기업 줄소송에 낭패…“폐기가 최선”'을 퍼왔습니다.

인도 정부 ‘ISD’ 폐기 추진영 통신회사, 조세 정책 바꾸자 소송 으름장국영석탄회사도 패소…“부정적 평판 감수”
인도 정부가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를 폐기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은, 투자협정 위반을 내세워 외국 기업이 정부의 공공정책을 위협할 수 있음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월부터 통신, 석탄 업계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은 인도 정부의 정책을 향해 잇따라 칼날을 세워 공격해왔다. 영국 통신업체인 ‘보다폰’의 경우, 인도 정부가 자본이득세 1200억루피(약 2660억원)를 부과하자 투자협정 위반이라며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조처를 단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다른 이동통신업체인 노르웨이 ‘텔레노르’ 러시아 ‘시스테마’도 법적 다툼을 시작했고 인도의 국영석탄회사도 최근 오스트레일리아 기업이 제기한 국제중재에서 패소했다.
인도 통상전문가인 비스와지트 다르는 인도 최대의 영어 일간지인 와의 인터뷰에서 “국제중재가 남용될 소지가 있어 그 위험을 오랫동안 지적해왔다”며 “부정적 평판을 감수하더라도 정부가 투자와 관련한 국제중재를 거부하는 게 정당하다”고 말했다. 결국 인도 정부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포함한 투자협정을 재협상해 외국 기업도 각국의 국내 법원에만 소송을 제기하도록 개정하기로 했다.
최근 국제중재 사건이 급증하면서 인도처럼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반대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가 2004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제외한 데 이어 지난해 4월에는 ‘신통상정책’을 발표하면서 이 제도를 앞으로도 채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브라질 의회도 입법 주권을 제한하는 제도라며 투자협정의 비준 동의를 줄곧 거부해왔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엔 흑인과 백인의 경제적 격차를 줄이기 위한 흑인우대 정책이 다국적 기업의 공격을 받자 제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다수의 국민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는 공감대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라며 “우리나라도 국제적 연대를 통해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폐기하는 방안을 논의할 때”라고 말했다. 거스 밴 하튼 캐나다 요크대 교수(오스굿 홀 로스쿨)도 “폐기가 최선의 선택”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일본 도쿄와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각각 열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국제심포지엄에서도 미국과 뉴질랜드 등에서 온 변호사와 통상법 전문가들이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재협상하기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꾸렸지만 폐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박았다. 9일부터 국민 의견도 인터넷으로 받지만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외국인 투자 유치, 국내 기업의 외국 투자 보호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제도”라며 “사법주권, 정책주권을 침해한다는 데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우리나라와의 자유무역협정 협상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 이어 인도 정부도 이번에 이 제도를 폐기하기 위한 재협상을 우리나라에 요구할 것으로 알려져 우리나라의 향후 대응이 달라질지 주목된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2012년 3월 5일 월요일

[사설] 미국식 ISD에 대한 국제사회 비판에 주목해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3-04일자 사설 '[사설] 미국식 ISD에 대한 국제사회 비판에 주목해야'를 퍼왔습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찬반 논란의 핵심 쟁점인 투자자-국가 소송제(ISD)가 국제적 논쟁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A)의 사전협의 단계에서부터 각국 전문가들 사이에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협정에 들어가기로 한 오스트레일리아와 말레이시아 정부는 공식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배제를 선언한 바 있다. 관련 조항의 개정을 위해 미국과 재협상을 검토하고 있는 우리 정부로서는 주목해야 할 기류다.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1일부터 10일까지 일정으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예비참가국 대표 간 실무협의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주말에는 민간 전문가회의가 따로 열렸다. 이 자리에서 논의된 내용을 보면,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대해 국내에서 제기된 우려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미국 시민단체 ‘퍼블릭 시티즌’의 로리 왈리크 국제무역감시센터 소장은 “미국의 투자협정 모델을 받아들인 국가에선 환경과 의료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투자자의 제소가 크게 늘고 있다”며, 이 제도가 협정 상대국의 정당한 공공정책을 폐기하거나 위축시킨 사례들을 소개했다. 특히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조차 유용하다고 인정한 금융·투자 관련 규제를 미국이 다른 나라와의 통상협정에서는 사실상 무력화시킨다고 경고했다. 오클랜드대 법학대학의 제인 켈시 교수는 “민간 변호사로 구성된 국제중재판정부가 협정 상대국의 법원 판결까지 뒤집는 사례가 많다”고 사법주권의 침해를 비판했다.
각국 전문가들의 이런 의견은 우리 정부의 판단과 크게 상반된다. 정부는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국가간 투자를 촉진하고 보호할 수 있는 국제적 표준이며, 앞으로 더 확산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투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구체적인 조건이나 절차, 범위 등은 협정마다 천차만별이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투자자-국가 소송제 관련 조항들은 주권국가의 지위를 부정한다는 평가가 적지 았다. 이 때문에 다른 나라들한테는 오히려 나쁜 사례로 꼽히는 것이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은 미국과 일본 등 10개국이 협상에 참여하는 다자간 통상협정이다. 미국은 한국과의 협정을 기준 삼아 이들 나라에도 투자자-국가 소송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여러 협상 참가국들이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 안에서도 각 주의 의회와 법조계를 중심으로 비판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식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배제는 우리 정부의 재협상 과제일 뿐 아니라 국제적 흐름이기도 하다.

2011년 12월 4일 일요일

전기요금 오르고, 탈핵 선언은 불가?


이글은 레디앙 2011-11-28일자 기사 '전기요금 오르고, 탈핵 선언은 불가?'를 퍼왔습니다.
[한미FTA와 전력] "정부 역할, 미국 투자자에게 넘겨주나"

최근 한국전력(이하 ‘한전’) 이사회가 전기요금 10% 인상안을 의결했다. 한전 측은 이에 대해 지난 8월 전기요금을 4.9% 인상했으나 원가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 적자가 증가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기요금은 통상 한전 이사회에서 적정한 인상안을 마련해 지식경제부 장관에게 승인 신청을 하고, 장관은 대통령에게 추인을 받아야 한다.



소액주주 "전기요금 적게 올려 회사에 손해"
한전의 이번 행동은 지난 8월 김쌍수 전 한전 사장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고려한 조처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한전 소액주주 14명은 지난 8월 전기요금 현실화에 실패한 책임을 물어 김쌍수 전 사장을 상대로 2조8000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지난 3년 동안 연료비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전기요금을 인상해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한전 주주소송은 다른 소액주주 소송과 달리 명백한 불법행위나 ‘도덕적 해이’로 송사에 휘말린 것과는 차이가 있다. 김 전 사장이 전기요금을 올리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지가 논란이 되기 때문이다. 한전은 한국정책금융공사와 정부의 지분이 51%에 이르는 전형적인 공기업이고,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한다는 점에서 소송 대상이 정부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
바로 여기서 한미FTA와 전기요금이 연관될 수 있는 실마리가 관찰된다. 한미FTA는 공공복지정책보다 투자자 보호를 중시하는 미국의 일방적인 투자자유화 정책을 그대로 도입하는 협정이다. 특히 대표적인 독소조항 중 하나인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는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유치국의 협정의무 위반 등으로 피해를 입을 경우 투자유치국 정부를 상대로 직접 별도의 중재기관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분쟁해결 절차다.
ISD의 핵심쟁점은 ‘간접수용’ 조항인데, 이는 투자자의 자산가치를 떨어뜨릴 만한 정부의 조치를 ‘수용’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투자자는 자신의 자산을 수용당하지 않더라도 단지 정부의 규제에 의해 자산가치가 하락했다는 이유로 정부를 상대로 제소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한전에 투자한 미국인 주주 한국정부 제소?
이는 한미FTA가 발효된 후 한전 주식에 투자한 미국 투자자들이 전기요금 억제 정책을 펴는 우리나라 정부에 제소를 걸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전은 정부와 한국정책금융공사가 지분의 50%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정부투자기관으로서, 국내 판매전력의 100%를 담당하고 있다. 발전의 경우에도 자회사를 통해 국내 생산전력의 95% 이상을 담당하고 있어 전력수급뿐만 아니라 국가공공정책에서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에 한전은 외국인 보유지분을 40%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긴 하지만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엄연한 주식회사이기도 하다. 미국 투자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거래를 통해 주식을 보유하고 우리나라 전기요금 정책에 대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전은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등 발전자회사 6곳 외에도 엔지니어링·발전설비·정비 등을 담당하는 자회사 5곳을 합쳐 10개가 넘는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자회사 가운데 상장업체로는 지분 80%를 보유하고 있는 한전기술, 한전KPS와 지분 29%를 보유해 2대 주주로 있는 한전산업 3개사가 있다.
이 자회사들의 주식가격은 한전의 영업실적에 따라 출렁거린다. 그리고 한전 영업실적은 대부분 전력을 구입해 팔아 얻는 수입에 의존한다. 우리나라 정부의 전기요금 정책에 따라 한전뿐만 아니라 한전의 자회사들까지 영향을 받는 것이다. 미국 투자자들이 한전의 자회사들이라고 가만히 놔둘 리 없다. 최근 한전은 수천억 원의 영업적자를 이유로 자회사들의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1월 초 일부 인터넷 진보언론을 통해 ‘핵 폐기’를 선언한 독일이 ISD소송에 직면해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스웨덴 국영 에너지기업인 바텐팔이 자신들이 소유한 독일 함부르크 부근 브룬스뷔텔 원전(66.7%), 크뤼멜 원전(50%)을 폐쇄한 독일 정부를 상대로 ISD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향후 우리나라에서 ‘탈핵’을 선언할 경우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주목되었다.
우리도 탈핵 선언하면 제소된다?
한전이 원전사업자는 아니다. 하지만 한전이 지분을 100% 보유한 자회사인 한수원이 전 원전을 보유하고 운영과 관리를 전담하고 있다. 결국 한전의 향후 지배구조 변화와 운영방식 변경에 따라 얼마든지 국내 원전의 소유 비중이 달라질 수 있다.
만에 하나, 한전이 민영화라도 하게 될 경우 통상적이지만 엄청난 폐로비용, 핵폐기물 저장 비용 등 외에 독일의 사례처럼 한국사회도 ‘탈핵’ 사회로 나아가는 데에 엄청난 비용을 추가적으로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한전뿐만 아니라 가스공사, 지역난방공사 등 상장공기업들도 소송의 위험에 직면해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가스공사는 한전과 마찬가지로 정부에서 요금을 통제하고 있어 부대사업이 없으면 적자를 피할 수 없는 구조를 수십년 째 유지하고 있다.
원가 미반영분을 추후에 정산받고 있는 지역난방공사도 계절별 수익구조가 다른 사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주들의 제소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건 물론 한미FTA가 체결되지 않은 상황의 이야기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더 돌이킬 수 없는 상황들이 벌어질 수 있다.
또한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알뜰주유소가 자칫 한미FTA의 투자자국가소송제(ISD) 대상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만일 SK에너지(외국인지분 31%)나, GS칼텍스(미국계 석유자본 셰브론 50% 지분보유)에 투자한 미국 투자자나 기업이 정부의 알뜰주유소 정책으로 SK주유소나 GS칼텍스 주유소의 이익이 침해됐다고 판단할 경우 정부를 제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역할, 미국 투자자에게 넘겨주나
물가와 선거를 의식한 ‘저렴한 전기요금’과 일부 수출 대기업을 위한 ‘고환율 정책’은 에너지 가격 구조의 왜곡을 초래했다. 싼 전기요금은 전기 과소비를 부르고, 높은 환율에 세금이 절반인 석유 가격 구조는 국제 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상승하는 ‘괴상’한 흐름이 연출되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물가나 선거 등을 감안할 때 전기 요금을 대폭 인상할 수도 없고, 유류세를 줄여 세수가 감소하는 것을 방치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에너지정책의 총체적인 실패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못난 정부’라도 우리나라 정부가 에너지가격 등 공공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맞다. 정부는 ‘에너지복지’를 실현할 주체이고, 전기와 같은 에너지는 생활 필수재이기 때문이다. 전기 등 에너지가격을 미국인 투자자가 좌지우지하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 한미FTA는 이 같은 우려를 가능하게 만드는 협정이다. 한미FTA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다.
왜곡된 에너지 가격체계를 바로 잡고 전기요금을 적정수준으로 인상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가정용 전력은 비싸고 산업용은 저렴하게 공급하는 경제주체 간 교차보조금 제도를 없애고 누진율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사회는 지난 9월 15일 초유의 정전대란을 겪었다. 또한 올 겨울 한파가 닥칠 경우 또 다시 전력피크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의 역할을 미국 투자자들에게 넘겨주는 정부에게 희망은 없다. 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권승문 / 녹색연합 녹색에너지디자인

2011년 12월 3일 토요일

[사설] 판사들이 봐도 ‘불평등 조약’인 한-미 FTA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2-02일자 사설 '[사설] 판사들이 봐도 ‘불평등 조약’인 한-미 FTA'를 퍼왔습니다.
엊그제 인천지방법원의 김하늘 부장판사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불평등을 지적하며 대법원에서 재협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취지로 법원 내부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이에 하루 만에 170명이 넘는 판사들이 공감하는 댓글을 달아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사법부 안에서 이제야 협정을 재검토하기 위한 태스크포스팀 구성 의견이 나오는 것은 유감이다. 그렇지만 사법주권을 위협하는 협정에 대해 사법부가 나서서 제동을 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판사들이 지적한 협정의 문제점은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협정의 법적 효력이 불평등하게 적용되며, 분쟁해결 절차인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는 우리나라의 사법주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협정을 둘러싸고 지금까지 벌어진 찬반 논란에서도 가장 뜨거운 쟁점이었다. 법률에 대한 최종 해석 권한을 가진 사법부로서는 더욱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법적 불평등은 협정의 법적 지위를 두 나라가 다르게 두는 데서 발생한다. 우리나라에선 대외조약을 특별법으로 인정하는 헌법 규정에 따라 협정이 가장 우선 적용되는 법률이 된다. 이와 달리 미국은 연방 법령은 물론이고 주법보다도 아래인 행정협정으로 간주한다. 실제로 미 의회는 지난달 10일 통과시킨 협정 이행법에서 자국 법령과 충돌하는 협정의 모든 규정은 법적 효력이 없다고 못박았다. 반면 우리 국회에선 협정과 충돌하는 모든 국내 법령을 일거에 무력화시키는 협정 비준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협정과 관련한 법적 분쟁을 제3의 국제중재기구에 넘기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우리 사법부의 재판관할권을 빼앗는다. 협정과 충돌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과 조처는 물론이고 법원 판결까지도 미국 투자자와 기업의 제소 대상이 된다. 이에 따라 법원은 모든 판단과 결정의 기준을 국내 헌법 가치와 법률이 아니라 협정에 따른 미국 투자자의 이익에 맞춰야 한다.
법조계 일각에선 삼권분립의 원칙을 들어 협정에 대한 판사들의 의견 개진을 부적절하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이는 협정에 대한 맹목적 지지를 위한 형식논리일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사법주권을 무시하고 협정을 밀어붙인 만큼 이제 이를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는 사법부다. 협정 발효를 서두를 게 아니라 사법부에서 제기된 이 문제부터 철저히 따지고 넘어가야 한다.

2011년 11월 24일 목요일

[사설]한·미FTA 무효화 투쟁 정당하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1-11-23일자 사설 '[사설]한·미FTA 무효화 투쟁 정당하다'를 퍼왔습니다.
야 5당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등 그동안 한·미FTA를 반대해온 시민사회단체들이 어제 비준 무효화를 선언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해 나가기로 했다. 그제 한나라당이 한·미FTA라는 국가 간 중대 조약의 비준을 날치기 처리한 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폭거로서, 야권과 시민사회가 비준 무효화를 위해 즉각 나선 것은 정당한 행동이다.

한·미FTA 비준이 무효화돼야 하는 이유는 날치기 비준 처리로 인한 의회민주주의 파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미FTA는 2006년 6월 협상을 시작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밀실 협상’과 ‘졸속 대응’으로 일관한 보기드문 조약이다. 협상 과정에서 국민과 국회는 철저히 배제됐고, 찬반양론이 치열하게 갈린 상황에서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기 위한 제대로 된 의견수렴도 없었다.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는 무시됐다. 한나라당의 날치기 비준 처리는 절차적 정당성이 실종된 한·미FTA의 예고된 수순이다

절차적 정당성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한·미FTA 그 자체에 있다. 한·미FTA는 단순히 교역을 늘리기 위한 협정이 아니라 우리의 법과 제도, 관행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미국화’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적 효과는 정부 주장보다 더 작을 수도 있고, 반대 진영의 주장보다 더 클 수도 있다. 우리가 우려하고 경계하는 것은 한·미FTA를 통해 이식될 신자유주의, 즉 미국식 시장 자본주의가 초래할 병폐다.
규제 완화와 시장자율, 기업 제일주의와 개방을 통한 무한경쟁으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가 낳은 양극화의 문제는 이미 세계의 고민거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한계와 부작용을 똑똑히 목도했다. 그럼에도 정부와 한나라당은 ‘미국화=선진화’라는 맹목적 인식에 사로잡혀 한·미FTA를 ‘절대선(善)’으로 떠받들고 밀어붙이고 있다. 시대착오적이다.

그동안 수없이 지적돼온 한·미FTA의 불합리·불평등 조항들은 국내법과 제도를 비롯한 경제·사회 체질을 미국화하는 도구다. 미국 법령과 협정이 충돌하는 경우 미국 법령이 우선하지만, 협정과 충돌하는 국내 법률은 모두 무효가 되는 현실이 그 하나의 사례다. FTA를 위해 14개 법을 뜯어고쳤다. 사법주권 침해 우려뿐이 아니다. 시장만능주의의 부작용으로 인해 갈수록 정부의 역할, 정책의 공공성이 절실해지는 상황에서 투자자-국가소송제는 경쟁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는 취약계층·취약산업을 보호할 국가정책을 위협한다. 정부는 이미 FTA와 충돌한다는 이유로 중소상인보호를 위한 유통법·상생법을 반대한 바 있다. 한번 개방하면 그 폭을 되돌릴 수 없도록 한 역진방지 장치 등도 업종간·계층간 양극화를 더욱 확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가뜩이나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국내 현실에서 농어민·중소상인 등 개방 파고에 휩쓸릴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입법활동이나 공공정책의 자율성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돈으로 피해보상하고 넘어가는 ‘사실상 농업 포기’는 또 다른 문제다.

4년 넘는 논쟁에도 불구하고 한·미FTA는 끝내 독소조항 한 군데 손대지 못한 채 날치기로 비준 처리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열린 관계장관 회의에서 “이제 더 이상 갈등을 키우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된다”며 한·미FTA 비준으로 더 이상의 논란은 불필요하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날치기 비준은 끝이 아니다. 무효화의 정당성을 더욱 공고히 할 뿐이다.

[사설] FTA 피해도 제대로 모른 채 무슨 대책인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23일자 사설 '[사설] FTA 피해도 제대로 모른 채 무슨 대책인가'를 퍼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청와대에서 긴급 관계장관 회의를 열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뒤 피해가 예상되는 부문에 대한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고 한다. 앞서 외교통상부도 대변인 성명에서 “정부는 피해 우려 분야에 대한 보완대책을 차질없이 시행하는 데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시행하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한나라당의 날치기 비준동의에 이어 국내 후속 대책마저 졸속으로 시행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부가 잠정적 목표로 잡은 협정 발효일은 내년 1월1일이다. 협정이 이대로 발효되면 당장 농어민과 소상공인, 내수에 의존하는 중소기업과 제약업계가 타격을 받게 된다. 2007년 6월 말 두 나라 정부가 협상 종료와 함께 체결을 선언할 때부터 예고된 충격이다. 그러나 4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부의 피해대책은 막연하고 실효성도 없어 보인다.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정부의 국내 보완대책이 얼마나 부실한지는 농어민 지원대책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지난 8월에 정부가 발표한 지원대책은 10년 동안 22조원 규모의 재정을 투입해 피해 농민을 구제하고 농업 경쟁력을 높인다는 게 골자다. 이는 2004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발효 때 만든 대책을 2007년 참여정부에서 한-미 협정 체결 때 재탕하고, 이명박 정부가 다시 ‘삼탕’한 것일 뿐이다. 심지어 박정희 정권 때부터 해온 농업육성 사업까지 협정 피해 대책으로 포장한 경우도 있다. 이러니 큰 충격을 코앞에 둔 농민들은 정부가 발표하는 대책에 위로는커녕 절망감만 느끼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국회 비준동의를 밀어붙이는 데 급급해 정확한 국내 피해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다. 더욱이 기대효과는 뚜렷한 근거도 없이 부풀리고 불 보듯 뻔한 피해는 되도록 줄여 여론을 호도해왔다. 한-미 협정에 대한 과장 논리의 압권은 이명박 대통령이 요즘 자주 거론하고 일부 언론이 확대재생산하는 ‘경제영토 확장론’이다. 역사의식과 현실 인식 능력이 지극히 의심스런 논리다. 경제강국들과 무분별하게 경제통합을 추진하다 파국을 맞은 사례가 세계 곳곳에 널려 있는데도 어떻게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지 의아할 뿐이다. 대격변기를 맞아 객관적이고 냉철한 상황판단 능력이 없으면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지금 정부의 모습이 그렇다.

[사설] 국민의 힘으로 ‘FTA 날치기’ 무효화시켜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1-23일자 사설 '[사설] 국민의 힘으로 ‘FTA 날치기’ 무효화시켜야'를 퍼왔습니다.
한나라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날치기 처리 이후 정부여당의 발걸음에 신바람이 묻어난다. 다음주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비준안에 서명하고 나면 곧바로 내년 1월1일 발효를 목표로 미국과 협상을 시작할 방침이라고 한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다.
여당과 보수언론들은 날치기 통과 와중에 터진 최루탄에 일제히 비판의 화살을 집중하며 국민의 관심을 돌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최루탄은 결코 이번 사태의 본질이 아니다. 최루가스로 흘린 눈물은 한순간의 가짜 눈물이지만 앞으로 농어민, 축산업자, 소상공인 등의 눈에서는 진짜 피눈물이 흘러나올 형편이다. 국회의원들은 손수건으로 최루탄 가스의 고통을 비켜갈 수 있었지만, 서민들이 겪어야 할 고통은 손수건 따위로 막을 수준이 아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날치기 처리로 끝일 수 없으며 끝나서도 안 되는 이유다.
더욱이 국가의 이익이 걸린 외국과의 중대한 조약을 이처럼 날치기로 통과시킨 예는 과거에도 찾아보기 어렵다. 여당은 1999년 한-일 어업협정 비준안 강행통과를 예로 들고 있으나 국민의 삶과 나라의 경제체제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을 사안의 중대성에서 차원을 달리한다. 에프티에이 비준안 날치기 처리의 정당성을 절차적으로나 내용적으로 결코 받아들이기 어려운 까닭이다.
청와대 쪽은 “비준 발효 이후에도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의 재협상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마치 큰 선심이나 쓴다는 투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 문제는 이제 그런 차원을 떠났다. 어차피 날치기 통과까지 된 이상 에프티에이의 폐기를 포함한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지난 역사를 보아도 국민의 힘으로 날치기 통과를 원천무효로 돌린 예가 없지 않았다. 1996년 노동법 날치기 파동이 좋은 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날치기 통과의 심각성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야당과 시민단체들도 날치기 통과의 무효를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며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권이 그토록 걱정하는 ‘거대한 촛불’로 진화할 조짐마저 엿보인다. 경찰이 계속 물리력을 동원한 강경진압에 나설 경우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될 수밖에 없다.
날치기 통과된 비준안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일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과제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길이기도 하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 등이 모두 머리를 맞대 지혜를 짜내고 힘을 모아야 한다. 특히 제1야당인 민주당의 책임은 막중하다. 에프티에이 비준안 처리 과정에서 보인 민주당의 갈팡질팡, 지리멸렬함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앞으로 이런 실책을 만회하지 못한다면 민주당 역시 한나라당과 함께 똑같은 심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2011년 11월 23일 수요일

[사설] FTA 날치기 한나라당, 국민은 안중에도 없나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1-22일자 사설 '[사설] FTA 날치기 한나라당, 국민은 안중에도 없나'를 퍼왔습니다.
한나라당이 어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전격적으로 날치기 처리했다. 한-미 에프티에이는 단순한 또하나의 통상협정이 아니다. 우리 경제와 사회의 앞날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조약이며 방대한 법률이다. 그런 중차대한 사안을 여당이 의회민주주의 절차를 깡그리 무시하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폭거를 다시 한번 자행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한나라당이 중요 쟁점 사안을 국회에서 날치기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오만과 독선에 가득 찬 여당의 행태에 국민의 염증과 분노도 쌓일 만큼 쌓였다. 그런 터에 어제 한나라당은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려보려고 술수마저 동원했다. 새해 예산안을 심의하기 위한 의원총회를 여는 척하다가 갑작스럽게 본회의장을 점거했다. 심지어 본회의장 방청석을 봉쇄하고 보도진의 접근조차 막으려 했다. 역겨운 행태가 도를 넘고 극에 이르렀다.
이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는 한동안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재논의 가능성을 거론했다. 이를 토대로 여당 협상파는 한-미 장관급 회담에서 이 문제를 재론한다는 방침을 서면으로 합의한다면 야당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되묻기도 했다. 그러나 어제 상황을 보면 그런 행위들조차 위장된 몸짓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국회에서 몸싸움을 할 경우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황우여 원내대표가 버젓이 원내 사령탑에 머문 가운데 벌어진 이런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는가. 이렇게 하고 한나라당이 앞으로도 신뢰 회복과 쇄신을 거론하며 국민 앞에 나설 수 있을지 참으로 의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협정의 졸속 처리에 따른 후과이다. 일부 수출 대기업의 대미 수출 여건은 다소 좋아질지 모르겠으나 공공서비스 위축과 양극화 심화가 불 보듯 뻔하다. 협정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독소조항들은 서민생계 안정을 위한 정책 자율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과 경제주체간 조화를 강조하는 우리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까지 거의 유명무실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당장에는 농어업과 중소상인, 중소기업의 피해가 걱정이다. 정부가 농어업 분야에 앞으로 10년 동안 22조원의 예산 투입 계획을 발표했으나 실상은 눈속임이 많다. 협정에 따른 농어업 피해는 단지 농산물 생산 감소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식량안보의 기반마저 뒤흔들 수 있다.
우리 국회의 행태는 미국 의회와 비교해도 너무나 대조적이다. 미국 의회는 지난 4년 반 동안 협상안을 나름대로 점검했다. 그 결과 두 차례 재협상을 통해 자신들한테 유리하도록 협상 내용을 고쳤다. 또 협정 이행법률안에는 협정보다 자국 법령이 우선한다는 점을 못박아, 사법주권을 철저하게 지켰다. 반면에 우리 국회는 피해 대책은커녕 번역문 오류조차 제대로 점검하지 못한 터였다. 그런 가운데 법적 구속력도 없는 협정 발효 시점에만 매달려 이번 회기 처리를 밀어붙인 것이다. 이런 행태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비준안을 날치기한 한나라당은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치집단으로 볼 수 없다.

2011년 11월 21일 월요일

[이동걸 칼럼] 경제학이 실종된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1-20일자 가사 이동걸 칼럼 '경제학이 실종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퍼왔습니다.

»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그분들이 읽은 경제학 교과서와 내가 읽은 경제학 교과서가 정말 그렇게 다른 걸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우리 경제의 미래를 보장해줄 거라는 그분들의 확신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 글에서 필자는 한-미 에프티에이 찬성론자들의 주장을 비판하려고 한다.
첫째, ‘경쟁촉진 효과’론과 ‘역경극복 디엔에이(DNA)’론을 보자. 이 상태로 한-미 에프티에이를 체결하면 우리가 지금 비교열위에 있는 차세대 미래산업을 모두 포기해야 하고, 그러면 우리의 미래 성장동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 그들은 에프티에이가 우리 기업의 “저열한 생산성 제고에 가장 필요한 경쟁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필자도 경쟁의 긍정적 효과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쟁의 승자와 패자가 국적을 달리할 때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미국 국적의 승자가 내일 우리의 일자리를 만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며 우리의 미래산업을 키워주지도 않을 것이다. 통상경제학 교과서도 이 점을 인정한다.
심지어 우리는 어려울 때마다 “당당하게 뒤집기에 성공”했다며 “우리의 자랑스러운 디엔에이를 비하”하지 말라고 꾸짖기까지 한다. 우리 국민은 어려움을 헤치고 성공을 이루어내는 특수한 디엔에이를 가지고 있으므로 비록 지금 비교열위에 있다 하더라도 패자가 되어 도태되는 것이 아니라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필자도 우리 국민의 저력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주장 자체는 매우 위험하다. 한-미 에프티에이로 우리 농업이 위축된다면 그것은 우리 농민의 디엔에이가 열등하기 때문이란 건가. 아니면 우리 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한-미 에프티에이를 한다는 말인가. 황당하다.
둘째, 일자리 창출론을 보자.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에프티에이가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줄 거라 한다. 대단한 오판이다. 한-미 에프티에이로 득을 보는 산업은 대부분 우리나라 재벌들의 주력산업들이다. 문제는 재벌계열 대기업들의 일자리 창출 기여도가 매우 낮다는 거다. 일자리 창출 기여도가 큰 중견·중소 미래기업이 성장하면서 더 좋은 일자리를 많이 창출해내야 하는데 한-미 에프티에이로 이들이 어려워지면 이 대통령의 기대와는 반대로 오히려 좋은 일자리가 줄어든다.
셋째,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를 보자. 이것은 자유무역과 직접 관련이 없는 독소조항이다. 외국인 투자를 보호하려면 내국인 대우 원칙만 확실히 보장해주면 된다. 정책과 제도는 단순명료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한 보수언론은 “결혼(FTA)하자면서 손(ISD)도 안 잡겠다는 것은 웃기는 논리”라며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불가피성을 우기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결혼 후 집안 환경이 변해 부인이 굶더라도 남편은 결혼할 때 기대했던 대로 혼자만 배불리 먹겠다는 것이다.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정당하고 공정한 대우만 보장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 이상은 다른 가족에 대한 불평등 대우다.
넷째, 선비준-후재협상론을 보자. 일단 한-미 에프티에이를 비준하고 나면 재협상에서 우리의 교섭력이 급격히 약해진다. 미국은 시간을 끌기만 하면 된다. 이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협상과 교섭의 경험이 많은 이른바 성공한 기업경영자 아닌가. 어찌 이런 오판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진정 재협상할 생각이 있다면 선비준을 하면 안 된다. 재협상이 국민을 기만하기 위한 정치적 술수라면 모를까.
한-미 에프티에이는 단순한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다. 통상전문가들의 말만 듣고 해서는 안 된다. 무지와 편견과 오만으로 가득 찬 일부 통상전문가들은 단지 오늘 좀더 잘살게 되면 내일도 더 잘살게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근거없는 막연한 기대감에 불과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에프티에이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큰 실수를 한 것도 통상전문가들의 조언만 들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자유무역협정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한-미 에프티에이를 하려면 정확히 알고서 하자는 거다. 우리 경제의 미래에 걸림돌이 될 조항이 많이 있으니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거다.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