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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4일 수요일

박근혜가 경제 민주화? 진정성 의심스럽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11-13일자 기사 '박근혜가 경제 민주화? 진정성 의심스럽다'를 퍼왔습니다.
[기고] 각 당 경제민주화 정책의 진정성과 실현가능성

대선을 앞두고 각 캠프에서 경제 민주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 민주화라는 말이 무성한 것에 반해 각 캠프가 내놓는 방안에 진정성이 담겼는지, 실현 가능성이 충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동걸 전 한국금융연구원장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출간하는 (계간 민주) 5호(10월호)에서 이 문제를 짚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다가 자리에서 물러난 이 전 원장은 현재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 달여의 시차가 있는 글이지만, 각 캠프의 경제 민주화 방안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내용이기에 게재한다. (편집자)

박근혜 후보 측의 경제민주화 마케팅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총선 때 경제민주화를 '팔아서' 톡톡히 재미를 봤고, 적어도 대선까지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요구가 수그러들지 않을 테니 연말 대선까지는 계속 우려먹지 않겠는가. 표장사가 되는 한 우려먹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우려먹을 것이다.

민주통합당으로서는 분통이 터질 일이다. 민주통합당의 실책과 새누리당의 교묘한 전술에 말려 선거 마케팅에서 새누리당에 기선을 제압당하고 이슈를 뺏기다시피 하기는 했지만 사실 경제민주화는 총선을 겨냥해서 민주통합당이 만들어낸 정책 아이디어였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 민주통합당은 '경제민주화특위'를 구성해서 수개월간의 작업을 하였고, 이를 근거로 경제민주화 총선 공약을 발표했다. 경제민주화특위의 정책보고서 내용이 밑에 깔려 있으니 선거공약으로서는 드물게 구체적인 세부 정책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내용상으로 매우 충실한 공약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이슈를 채 가면서 그야말로 재주는 민주통합당이 넘고 재미는 새누리당이 본 셈이 되었다. 민주통합당의 입장에서 보면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공약이 별 내용도 없는데 그렇게 됐으니 더욱 분할 수밖에 없다. 민주통합당은 곰처럼 미련했고, 새누리당은 여우처럼 약삭빨랐다.

민주통합당은 자기들이 진짜고 새누리당은 가짜('짝퉁')라고 한다. 국민들이 "자연미인과 성형미인"을 구별해줬으면 하고 있다. 과연 그러면 각 당은 국민들에게 어떤 경제민주화 정책을 약속하고 있는가. 이에 필자는 독자 여러분들이 판단해보실 수 있도록 각 당의 경제민주화 정책의 내용과 진정성, 실현가능성들을 비교해서 보여드리고자 한다.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발표된 정책들이 많지도 않지만 그동안의 논의 내용과 각 당의 논의과정 등을 종합해서 정리해보고자 한다.

경제민주화는 복합적인 이슈로서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서 정의를 달리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 핵심은 재벌개혁 문제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재벌개혁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도 평가의 대상에 포함하였다. 안철수 원장이 정당의 후보는 아니지만 최근 공식 출마 선언을 하였고 또 국민 대다수가 그를 유력한 대선 후보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하에서 경제민주화가 왜 이슈가 되었는지, 경제민주화는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우선 간단히 살펴보고, 이를 기준으로 각 후보들의 경제민주화 정책을 평가한다.
경제민주화, 왜 이슈가 되었나

작년 여름 민주통합당이 헌법 제119조 2항에서 이름을 빌려 경제민주화특위를 구성하고 정책 작업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경제민주화'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런 면에서 민주통합당에 약간의 점수를 주기는 해야겠지만, 경제민주화가 이 시대 최대의 화두가 된 것은 민주통합당 때문이라기보다는 이 시대의 사회경제적 상황이 경제민주화를 절실히 필요로 하였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더욱 극심해진 승자독식 경제구조, 재벌대기업에만 더욱 유리한 편파적 규제완화, 1%의 주머니만 불려주는 부자감세, 왜곡된 시장만능주의 경제정책 등으로 중소기업과 서민ㆍ중산층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소위 이명박의 '7ㆍ4ㆍ7' 정책으로 양극화는 더욱 극심해졌다. 국민 모두 함께 잘사는 것이 아니라 1%가 더 잘살기 위해서 99%가 희생되었고, 0.1% 재벌대기업이 더 잘되기 위해서 99.9%, 300만 중소기업ㆍ영세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희생되었다.

재벌기업에 엄청난 경제력이 집중되면서 중소기업, 자영업, 노동자, 농민 등 상대적 약자들이 희망을 갖기 힘든 경제구조가 되었다. 재벌들은 순환출자, 연쇄출자 등 가공자본을 만드는 방법으로 지배력을 뻥튀기하여 경제력 집중과 계열확장을 심화시켰다. 10대 재벌의 경우 재벌총수들은 순환출자 방법을 통해 1.1%의 개인지분으로 53.5%의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행해진 무분별한 업종 확장과 재벌가 자녀들의 경쟁적인 소비성 사업 진출은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침해하고 자영업자들의 생활터전인 골목상권까지 침범함으로써 특히 서민·중산층에게 극심한 해를 끼쳤으며,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재벌의 힘이 강해짐에 따라 거래 중소기업에 대한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하도급기업에 대한 불공정거래행위(단가후려치기, 기술탈취, 대금 늑장지급, 부당한 주문끊기 등)가 심해져 중소기업들이 막대한 피해를 보았고, 담합 등 부당공동행위가 빈발하면서 소비자들의 피해도 심해졌다.

재벌 회장, 자녀, 조카 등 총수 일가의 사익추구 및 사적 지배력 강화, 변칙 대물림을 위한 재벌계열사의 부당한 일감몰아주기로 회사 및 다른 주주들의 이익이 심각하게 침해되었고 탈세도 만연하였다. 모 단체의 조사에 의하면 2010년 말 현재 지배주주 일가 192명이 얻은 부의 증가액은 총 10조원이고, 평균 수익률은 755%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특히 현대자동차그룹의 정의선(수익률 4901%, 2.2조원), 정몽구(8266%, 1.5조원) 부자는 도합 3.7조원의 수익을 올렸고, 현재 회사 돈 횡령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은 2조원, 200배의 수익을 올리는 등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웬만한 중산층 월급쟁이만 돼도 평균 20~30%의 소득세를 내고 있는데, 이들 재벌 회장들은 소득세나 상속세도 거의 내지 않으면서 그만큼의 부를 축적했다니 이 사회가 불공정해도 너무 불공정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속된 말로 글로벌 경제위기 와중에서 중소기업, 영세상인, 서민들은 배곯아 죽을 지경인데 재벌 일가는 배 터져 죽을 판이 되었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는 재벌감세, 부자감세만 해주면서 재벌들 편만 드니 서민ㆍ자영업자ㆍ중소기업들은 기댈 곳마저 없어졌다. 어려운 경제 사정은 더 이상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점점 더 불안해지기만 하였다. 우리 사회는 국민 대다수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회가 되었고, 경제적 약자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의 장벽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제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경제영역에서 정의 구현이 그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되었다.

경제민주화란 무엇인가

경제민주화는 워낙 포괄적인 개념이라 보는 이의 입장이나 관점,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보편적인 다수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시장경제체제에 민주적 통제를 가함으로써 민주적이고 공정한 시장경제체제가 정상적으로 구축ㆍ작동될 수 있도록 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즉, 승자독식(=재벌독식)과 강자지배(=재벌지배)의 낡은 질서가 지배하는 시장만능주의 경제를 공평과 정의가 지배하는 경제로 전환하는 일이 경제민주화다.

우리나라의 현 경제모델은 박정희식 개발독재(재벌중심) 모델의 잔재 위에 시장만능주의식 모델이 합해진 재벌독재, 재벌만능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필자의 생각으로 우리나라에서 경제민주화는 재벌독재 시장만능주의 모델을 극복하여 민주적이고 공정한 시장경제 모델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자본에 의한 국가의 통제'를 끝내고 '국가에 의한 자본의 통제'를 회복함으로써 민주적 시장경제를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가 말하는 민주적 자본주의(democratic capitalism), 즉 '자본주의에 대한 시민의 통제'가 이루어진 사회와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는 재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힘의 불균형을 바로잡아 약자가 억울하게 당하는 것을 막고, 경제적 약자라 하더라도 공정하게 경쟁하고 노력한 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는 경제를 만드는 일이다. 소수가 특권을 가지고 시장을 독점하고 좌우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 누구나 경제 주체로서 공정한 기회를 보장받는 경제, 즉 공정한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결국 한마디로 표현하면 경제민주화는 '1%만 잘 사는 경제'를 '함께 잘 사는' 경제로 바꾸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민주화의 정의로 보나, 경제민주화가 이 시대의 화두가 된 경제적ㆍ시대적 환경으로 보나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재벌개혁일 수밖에 없다. 불공정거래, 경제 양극화의 정점에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지배확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외에도 분배상의 정의, 노동시장 민주화, 교육기회 또는 신분상승 기회의 균등, 조세의 형평성과 정의, 금융민주화 등도 경제민주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제이지만, 이것들도 상당부분이 재벌문제와 맞물려 있다.

  
▲박근혜 후보. ⓒ프레시안(최형락)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 정책 : 서둘러 만든 정치광고 카피

지난 연말 집권 여당은 절체절명의 존립위기를 맞아 당명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바꾼다, 로고를 바꾸고 색깔도 빨간색으로 바꾼다, 경제민주화를 정강 정책에 포함한다 하는 등 부산을 떨며 포장과 화장은 잘했고, 그 결과 지난 총선에서 경제민주화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 하지만, 이 글을 쓴 시점을 기준으로 볼 때 아직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라고 할 만한 정책을 별로 발표한 것이 없다. 최근에도 출마선언을 할 때, 후보 수락연설을 할 때 등 기회 있을 때마다 경제민주화를 하겠다고 말하고는 있으나 아직은 말뿐이다. 정치 마케팅의 광고효과는 극대화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박 후보가 경제민주화 정책이라고 내놓은 것은 총선 이후에는 없다.

그나마 지난 총선 때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 공약이라고 발표한 것을 보면, 내부거래 조사강화 및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과세(일감몰아주기 방지방안), 집단소송제도 및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부당 하도급 방지방안), 중소기업 적합업종 강화(중소업종 진출 방지방안), 대형유통사의 중소도시 진입 5년간 금지(소형 유통업자 보호), 프랜차이즈 불공정거래행위 제한(영세 사업자 보호방안)이 전부다. 총선 이후 박 후보가 밝힌 새로운 내용이라야 신규 순환출자 금지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기존 순환출자의 해소나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재도입, 지주회사규제 강화 등 재벌개혁에 관한 핵심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심지어는 금산분리 강화에 대해서도의사표명을 정확히 안 하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박근혜 후보는 재벌의 불공정거래행위 등 행태규제만으로도 경제민주화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치적인 계산에 의해서인지 모르지만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 정책은 민심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몇몇 분야, 즉 표가 되는 몇몇 분야에 국한해서 대증적인 방안을 내놓고 있을 뿐이고 경제민주화를 위한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별다른 내용이 없다. 다만 새누리당 내의 개혁파가 주축이 되어 만든 '경제민주화실천모임'에서 여러 가지 구체적인 경제민주화 정책을 논의하고 있고 부분적으로는 상당히 개혁적인 내용도 담고 있으며, 일부는 법안으로 만들어 발의된 것도 있다. 그러나 실현여부는 현 상태에서 매우 불투명하다.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의 의견은 당 차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닐 뿐 아니라 새누리당 내의 반대도 적지 않고, 박근혜 후보도 이에 대해 반대하거나 잘해야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후보 경제민주화 정책 비판 1 : 본질은 건드리지 않고 곁가지만 치기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재벌개혁이고, 개혁해야 할 재벌문제의 핵심은 재벌들의 끝 모르는 경제력 집중과 무분별한 지배확장에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조그만 연못에 '30마리 고래'가 꽉 들이차 몸집을 불리니 작은 물고기들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깔려 죽기도 하는 등 제대로 클 수 없는 경제환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지 않고는 중소기업의 성장도, 일자리 창출도, 양극화 해소도 불가능하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무분별한 지배확장을 시정하려면 계열사 자금을 이용한 출자를 억제해야 하고 그 핵심수단이 바로 순환출자규제와 출자총액제한제도, 그리고 지주회사제도 강화이다. 순환출자규제는 100% 가공자본을 막기 위한 수단이고,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지주회사제도 강화는 피라미드형의 과도한 연쇄출자를 막기 위한 방안이다. 그러나 박 후보는 이에 대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박 후보는 "순환출자 경우는 가공자본을 만들어서 대주주가 의결권을 행사하는 적절치 못한 측면이 있다"고 하면서도 신규 순환출자만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하라고 하면 재벌들이 해체되어 큰일이 난다는 주장인데, 이는 재벌들과 보수언론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다. 재벌들이 순환출자를 통해 부당하게 쌓은 과도한 기득권이 문제의 핵심인데 이를 모두 인정해주고 털끝 하나 안 건드리겠다는 것이니 재벌문제의 본질적 부분은 해결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본질적인 부분은 건드리지 않고 그 부작용"만" 해소하겠다고 하니 이는 재벌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 상태에서 더 나빠지지 않도록 현상유지만 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본질적 치유 없이 대증적인 미봉책만으로도 재벌문제를 해결하고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재벌의 기득권을 확실히 지켜주고 자신이 집권하더라도 재임 중에는 잘해야 현상유지만 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이 박근혜식 재벌개혁이고 박근혜표 경제민주화라면 이는 재벌들에게 기득권을 모두 인정해줄 테니 소나기 피해가듯 당분간만 좀 자제하고 협조해달라고 구걸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렇다면 재벌의 불공정거래, 부당행위를 막겠다는 박 후보의 약속은 또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박근혜표 경제민주화의 진정성이 의심된다.

박근혜 후보 경제민주화 정책 비판 2 : 잘못된 경제인식에 근거한 경제민주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왜곡된 역사인식이 문제가 되고 있다. 5.16, 유신, 인혁당 사건,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 등에 대한 박 후보의 일련의 발언은 의식 있는 민주시민의 공분을 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통령으로서 자질과 자격에 대한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민주주의와 법치, 인간의 기본권과 존엄성을 파괴하고 헌정질서를 유린한 5.16 군사반란이나 유신쿠데타에 대해 "그 당시 상황을 봤을 때 내가 그때에 지도자였다면 어떤 선택이나 판단을 했을까" 생각해야 한다면서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거나 그에 대한 판단은 "역사의 몫"이라고 하였다. 대한민국 사법사에 가장 치욕적인 사건으로 기록되는 인혁당 사법살인 사건에 대해서도 사법부의 판단을 무시하는 오만한 역사인식을 드러냈다. 사법부를 정권의 시녀 정도로 생각했던 박정희 독재정권 당시를 연상케 하는 소름끼치는 대목이다.

박 후보는 자신의 역사인식에 대한 언론, 지식인, 야당의 문제제기에 대해 "과거 말고 미래를 얘기하자", "'이게 잘못됐다'고 얘기하다보면 계속 과거로만 가게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는 개인의 내면적 의식상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표로서 그러한 왜곡된 인식이 외적 행위로 반복해 나타나기 때문에 과거는 현재이고 미래가 될 수밖에 없다. '잘못된 과거'에 대한 진솔한 반성 없이 '바람직한 미래'가 오겠는가. 더욱이 단순히 일개 개인이 아니라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랴. 민주주의 헌정질서와 법치를 부정하고 역사를 자기중심적으로 다시 쓰려고 하는 제왕적 발상과 그러한 왜곡된 내면적 인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라면 과연 그 사람에게 국가를 맡길 수 있겠냐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박근혜 후보의 잘못된 경제인식도 문제다. 예를 들면, 경제민주화에 대한 박 후보의 인식이 지극히 왜곡되어 있어 박근혜표 경제민주화의 실체와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박 후보는 2007년 경선 당시의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치를 세운다) 공약에 대한 비판을 받자, "줄푸세와 지금의 경제민주화는 철학이 같다"면서 "감세는 세율을 낮추자는 것인데 현 정부에서는 중산층과 저소득층 대상으로 실현했고, '푸'와 '세'는 규제를 풀고 법치를 세운다는 것인데 (지금도) 유효하다"고 설명했다. 정직하지 않다. '줄'은 대기업의 법인세 인하와 부자감세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고, '푸'는 재벌대기업에 유리한 규제완화였으며, '세'는 파업 통제 등 노동조합을 겨냥한 것임을 박 후보가 모를까? 박 후보의 설명은 '줄푸세'와 경제민주화에 관한 실로 엄청난 인식의 왜곡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특히 박 후보의 '푸'에는 재벌의 은행 소유제한 완화도 포함되어 있다. 은행의 재벌지배를 허용하는 것도 박 후보는 경제민주화라고 생각하는가? 박 후보는 역사를 자기 편하게 자기중심적으로 다시 쓰려는 경향을 경제민주화에 대한 해석에서도 보이고 있다.

박 후보 본인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인식이 확실치 않을 뿐 아니라 왜곡되어 있고, 또 그 안에 구체적인 내용도 없으니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는 같은 당의 원내대표마저도 "정체불명"이라고 할 정도다.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 마케팅은 화려하게 잘하고 있지만, 과연 박 후보가 진짜 경제민주화를 하겠다는 것인지, 한다면 경제민주화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후보 경제민주화 정책 비판 3 : 기득권집단의 덫에 걸려 실천이 불투명

경제민주화가 절실한 시대적 과제가 된 것은 단순히 1%의 소수에 국가의 부와 소득이 집중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특권 기득권층의 호혜적 연합에 의해 소득과 부의 양극화 구조가 우리 사회에 고착되고 있어 99%는 아무리 노력해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루려면 이러한 기득권 세력 간의 연합, 즉 우리 사회의 특권카르텔을 깨는 개혁이 같이 추진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특권카르텔의 정점에는 재벌들이 있다. 재벌들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재벌 체제를 비호하는 관료, 언론, 사법집단, 보수 지식층, 보수 정치세력 등을 한데 묶어 보수집단의 기득권 카르텔을 공고히 구축하고 국가전반에 걸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교수는 자신의 저서 (미래를 말하다)에서 "보수주의 운동의 아교는 돈"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회 곳곳을 적시면서 돌아다니는 재벌의 돈은 이들 다양한 보수집단들로 하여금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하고 있다. 돈맛에 취한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재벌을 위해 "지적 속임수"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보수 관료ㆍ정치인 집단은 재벌에 포획되어 정부가 재벌에 유리하게 돌아가도록 하고 있으며, 보수언론은 재벌의 광고비에 의해 실질적으로 재벌에 매수되어 재벌들의 입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재벌의 돈 앞에 사법정의가 마비되어 재벌들이 법 위에 군림하는 행태가 빈번해졌다.

보수화된 우리나라의 관료ㆍ정치가ㆍ언론ㆍ사법집단은 그동안의 행태를 보건대 공기로서 지위를 망각하는가 하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에 급급하였다. 이들 집단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우리 경제의 기득권 구조를 혁파하는 경제민주화를 수행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새누리당은 보수정당의 특성상 기득권집단과의 유대가 긴밀하고, 그 내부에 재벌이익에 충실한 정치가들이 많이 있다.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책임자인 김종인 위원장이 박근혜 후보의 최측근 인사들과 당내 고위인사들을 지칭하며 재벌과의 특수한 인연을 지적할 정도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박근혜 후보는 정치쇄신을 하겠다고는 하나 관료개혁, 언론개혁, 사법개혁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우리 사회의 특권구조를 개혁하겠다는 말은 아직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들을 개혁하지 않고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있을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후보 경제민주화 정책 비판 4 : 실행할 사람 없는 경제민주화 정책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 책임자인 김종인 위원장은 새누리당에는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도, 실천할 사람이 없다고 여러 번 불평한 바 있다. 이해하고 실천할 사람은커녕 오히려 반대하는 사람들만 많은 것 같다.

박 후보의 총괄선대본부장이었고 지금은 비서실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이는 "경제민주화 이슈를 대선까지 이어갈 수는 없다"고 속내를 드러낸 바 있다. 박 후보는 경제민주화를 하겠다고 하는데 그의 최측근은 그것이 마케팅 수단에 불과했다는 것을 은연중에 실토한 셈이다.

새누리당에서 원내대표라는 높은 중책을 맡은 이한구 의원은 최근 공개적으로 "정체불명인 경제민주화가 기업 의욕을 떨어뜨리고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다"고 비판하였고, 김 위원장은 이에 대해 "이 원내대표는 정서적 불구자"라고 반박한 바 있다. 새누리당 안에서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잡음이 이어지자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 찬반 두 진영의 대표격인 김종인 위원장과 이한구 원내대표 간에 차이가 없다고 밝혀, '박근혜표 경제민주화'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 국민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의 박영선 의원은 최근 박근혜 후보의 대선캠프에 특정재벌그룹과 인연이 있는 인사가 다수 포진했음을 지적한 후 박 후보가 "지금까지 외친 경제민주화가 말뿐이거나 그 실적이 미미한 것", 그리고 "최근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과 토론을 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국익을 생각하지 않는 자세'라고 경고성 발언을 한 것"들이 모두 재벌의 집요한 로비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친재벌 성향이나 재벌그룹의 과거 행태에 비추어 짐작해보건대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런 와중에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실천모임도 주춤하는 분위기인 모양이다. 경제민주화를 이해하고 실천에 옮길 사람들을 충원하기는커녕 그나마 새누리당 내에서 경제민주화를 해보겠다고 생각하는 몇 안 되는 의원들마저 위축시키고 있다.

문재인 후보 경제민주화 정책 : 내용은 풍부, 재벌·기득권집단 저항 극복이 관건

▲ 문재인 후보. ⓒ프레시안(최형락)

문재인 후보의 경제민주화 정책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측에 비해 내용도 풍부하고 훨씬 더 구체적이다. 민주통합당이 작년 여름부터 '경제민주화특위'를 구성해 작업한 내용을 지난 총선 때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발표했고, 문 후보는 민주통합당의 대선후보로서 당연히 이를 이어받을 것이고 여기에 덧붙여 추가적으로 경제민주화 정책을 더 내놓을 예정이다.

우선 민주통합당이 지난 7월에 발의한 9개 경제민주화 법률안에서 중요한 것만 보면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신규 순환출자 금지 및 기존 순환출자 해소, 지주회사제도 강화, 금산분리 강화(은행소유지분 한도 하향조정 및 금융지주회사의 비금융 자회사 소유금지), 재벌계열사 법인 간 수입배당금에 대한 과세(속칭 재벌세), 재벌범죄 사면 제한, 담합 및 부당내부거래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부당하도급거래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등이 있다.

문 후보는 지난 7월말 '문재인의 경제민주화 구상(1)'에서 중소기업과 골목상권 보호,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방안을 발표하였다. 그 후 경선으로 인해 발표가 일시 중단되었지만 이제 경선이 끝났으니 앞으로 연속해서 분야별로 경제민주화 정책구상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좀 더 지켜보고 있으면 구체적인 정책방안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후보의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한 최종 평가는 정책방안들이 모두 발표된 뒤에야 할 수 있겠지만, 현 시점에서 새누리당과 비교해본다면 다음과 같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첫째는 박 후보는 곁가지 치기에 그치는데 비해 문 후보는 문제의 본질을 비켜가지 않고 있다. 한 예를 들면, 문 후보의 방안은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정 유예기간을 주고 기존 순환출자도 해소토록 하고 있다. 행태규제만이 아니라 필요하면 구조적 교정책도 실시해서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지배력 확장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면, 부당하도급거래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이 실효성 있게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징벌적 손해배상을 대폭 강화하였다. 둘째, 박 후보 측은 기득권 구조, 즉 특권카르텔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을 피하고 있는 반면, 문 후보는 수차에 걸쳐 "특권과 불평등"의 특권카르텔을 혁파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권카르텔을 개혁하지 않고는 경제민주화가 불가능하다. 셋째, 박 후보 측에서는 내부에서 많은 파열음을 내는 등 경제민주화 실천의지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이는 반면, 문 후보는 "공평과 정의가 나라의 근간"이 되도록 하겠다고 천명하는 등 국정 전반에 대한 강한 개혁의지를 보임과 동시에 "경제분야에서 공평과 정의를 구현"하는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도 강한 실천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상을 종합하면 문재인 후보의 경제민주화 정책이 박 후보의 정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내용도 풍부하고, 진정성과 실천의지도 더 확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집행 가능성과 일관성이다. 박 후보 측과 새누리당은 전통적으로 재벌을 포함한 보수기득권 집단과 이해를 같이하기 때문에 이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어왔고, 따라서 박 후보 측의 문제는 이러한 기득권집단의 덫에 갇혀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반면, 문 후보 측의 문제는 이들 기득권집단 연합세력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강력한 저항을 받다보면 타협하게 되고 그렇다보면 일관성을 잃기 쉽게 된다. 민주통합당과 문재인 후보가 이런 저항을 극복하고 경제민주화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정책 추진전략, 국민들의 설득 등이 정책 그 자체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안철수 후보 경제민주화 정책 : 미완의 정책이나 문제인식 정확하고 내용 풍부

▲ 안철수 후보. ⓒ프레시안(최형락)

(안철수의 생각)에서 밝힌 안철수 후보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경제 양극화는 우리사회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이고, 그 정점에 재벌의 경제력 집중 문제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재벌개혁을 통해 대기업의 특혜를 폐지하고 중소기업을 중점 육성하는 경제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재벌구조 개혁의 해법으로는 재벌의 위법행위 방지, 독점과 담합에 대한 피해보상 강화, 중소ㆍ중견기업에 대한 집중지원, 지배구조 개선, 정부의 불공정행위 감시자 역할 강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한 순환출자금지(유예기간 주되 단호히 철폐), 금산분리 강화는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출자총액제한제도에 대해서는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과거에 정책이 오락가락했던 점을 감안해 일관성 있는 정책추진을 위해 더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우리 사회 전체가 동시에 개혁되어야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재벌들은 사회적으로 정당하지 못한 행위를 무마하기 위해 정치권과 법조계, 언론 등에 부적절한 방법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부패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안 후보는 행정개혁, 사법개혁, 노사개혁도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철수 후보가 (안철수의 생각)에서 밝힌 바를 종합하면, 첫째 경제민주화에 대한 그의 문제인식은 매우 정확하고, 둘째 경제민주화 정책으로 그가 내놓은 것들은 비록 잘 다듬어진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모범답안에 준하는 것으로서 내용상 문재인 후보의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셋째, 그의 진정성이나 실천의지도 현재 상태로는 달리 의심할 큰 이유가 없다.

다만 한두 가지 우려되는 바는 우선 그가 출마 회견에서 "민주통합당은 재벌지배구조 개혁을 하겠다는 것인데, 나는 생각이 다르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겠다"는 말을 했다는 점과 출마회견 때 소개된 그의 최측근 경제브레인이 친재벌 '모피아'로 평가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재벌의 시장행태만을 규제해도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은 박근혜 후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노회한 친재벌 '모피아'를 써서 경제민주화를 하겠다는 생각은 지극히 순진한 생각이다. 그가 경제민주화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경제민주화에 대한 그의 생각이 과연 진심인지, 그리고 진정 실천의지가 있는지 우려를 야기하는 대목이다.


 /이동걸 한림대학교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2012년 9월 18일 화요일

"폭로는 대기발령, '충성맨'은 승승장구?"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9-17일자 기사 '"폭로는 대기발령, '충성맨'은 승승장구?"'를 퍼왔습니다.
민간인 불법사찰 이동걸, 고위공무원으로…SNS '부글부글'

▲ 이동걸 전 고용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

민간인 불법사찰을 폭로했던 장진수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입막음용으로 현금 4,000만원을 건넸다는 의혹을 받은 이동걸 전 고용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이 사퇴한 지 두달만에 고위공무원으로 복귀했다고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17일 에 따르면, 이 전 보좌관은 지난 14일 경남지방노동위원장에 임명됐다고 보도했다. 경남지방노동위는 지난 5월 위원장직이 공석이 되자 공모를 냈지만, 지원자가 없다는 이유로 7월10일 다시금 공고를 냈다. 이에 이 전 보좌관이 지원했고, 경남지방노동위 측은 대외적인 발표 없이 내부 인트라넷으로 이같은 사실을 알렸던 것이다.
앞서 이 전 보좌관은 재공고가 나가기 직전인 7월6일경 민간인 불법사찰과 연루돼 논란이 일자 자진해 사퇴한 바 있다.
이 전 보좌관은 장 전 주무관에게 돈을 준 정황이 분명하지만, 검찰측에선 '장 전 주무관의 변호사 비용을 돕기 위한 것'이라는 이유로 무죄를 받았고, 노동부측에서도 어떠한 내부 징계는 받지 않았다. 
이 전 보좌관이 간 지방노동위원회는 노사간 이익과 권리분쟁을 조정·판정하는 준사법기관이다. 위원장직은 공모로 뽑은 뒤, 중앙노동위원장 추천과 노동부장관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렇기에 지방노동위원회장직을 받은 이 전 보좌관이 보은인사가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또 2010년 9월부터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장 전 주무관과 함께 재판을 받은 원충연 사무관은 노동부 고용보험 심사관실로 복귀해 여전히 근무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거지에서 USB에 불법사찰과 관련된 다수 문건이 발견된 권중기 조사관은 경찰에 복귀해 근무중이며, 증거인멸 의혹을 받은 김진모 검사 역시 검사장으로 승진한 바 있다. 반면, 폭로행진을 이어나간 장 전 주무관은 대기발령 상태이다.
이를 본 트위터 여론은 "갈 데까지 가보겠다는 분위기?", "이거는 뭐 불법사찰을 정부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려주는 정황증거로군요", "법도 없는 나라가 아닌가? 이런 쓰레기들이 처벌받지 않고 호의호식하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인가?", "참 재미있는 세상", "법도 없고, 참 G랄 맞은 나라", "질긴 바퀴벌레 같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재화 변호사(@jhohmylaw)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민간인 불법사찰 입막음용 돈을 전달한 이동걸은 징계 없이 사퇴했다가 두달 만에 경남지방노동위원장에 임명, 원충연도 여전히 근무 중, 권중기도 경찰에 복귀, 이명박 정부 불법의식은 없고 충성맨 철저히 보호. 정부가 조직폭력배 집단인가?"라고 꼬집기도 했다.

김경환 기자  |  1986kkh@pressbyple.com

2012년 9월 17일 월요일

‘불법사찰 연루’ 노동장관 전 보좌관 이동걸씨, 고위공무원 복귀


이글은 경향신문 201-09-17일자 기사 '‘불법사찰 연루’ 노동장관 전 보좌관 이동걸씨, 고위공무원 복귀'를 퍼왔습니다.

ㆍ사퇴 두달 만에 경남지방노동위원장에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연루됐던 이동걸 전 고용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51·사진)이 사퇴한 지 두 달 만에 고위공무원인 경남지방노동위원장직에 임용된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정부가 사찰 연루자를 고위공무원직에 영전시켰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민주통합당 홍영표 의원은 16일 “이 전 보좌관이 지난 14일 경남지방노동위원장에 임용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남지방노동위는 5월 위원장이 공석이 되자 공모를 했다. 하지만 지원자가 없다는 이유로 7월20일 재공고를 냈다. 경남지방노동위는 이 전 보좌관 합격을 대외적으로 공지하지 않은 채 14일 오후 늦게 내부 인트라넷상에 인사발령 식으로 공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보좌관은 재공고가 나기 4일 전 장관 보좌관직을 그만뒀다. 노동부는 당시 “개인적인 사유로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혔지만 민간인 불법사찰에 연루돼 자진해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그는 사찰 실무자였던 장진수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39)의 입을 막기 위해 현금 4000만원을 건넸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그러나 검찰 수사결과 무혐의 처분됐다. 장 전 주무관 변호사 비용을 돕기 위한 돈이었을 뿐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노동부 내에서 내부 징계도 받지 않았다.

검찰은 4000만원 중 2000만원은 이우헌 코레일유통 유통사업본부장이 1000만원, 다른 3명이 각 500만원, 300만원, 200만원씩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 본부장은 지난해 8월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에게 2000만원을 받아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전달한 인물이다. 사찰의 ‘몸통’이라고 자인한 이 전 비서관이 이 돈의 조성과정과 연관돼 있다는 설이 나왔지만 밝혀진 건 없다.

노사정 위원으로 구성된 합의제 기구인 지방노동위원회는 노사 간 이익과 권리분쟁을 조정·판정하는 준사법기관이다. 위원장직은 공모로 뽑은 뒤 중앙노동위원장 추천과 노동부 장관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결국 정부가 이 전 보좌관의 뒤를 봐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정책보좌관을 곧바로 고위공무원으로 임용한 것은 사찰 사건과 관련한 보은인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2010년 9월부터 증거인멸 등 혐의로 장 전 주무관과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원충연 사무관은 노동부 고용보험 심사관실로 복귀해 여전히 근무 중이다. 권중기 조사관도 경찰에 복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지 않아 공무원 직위는 유지할 수 있는 상태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한 장 전 주무관은 현재 대기발령 중이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2012년 9월 13일 목요일

"박근혜, 재벌의 은행 지배가 경제민주화인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13일자 기사 '"박근혜, 재벌의 은행 지배가 경제민주화인가?"'를 퍼왔습니다.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연회 ③] 이동걸 전 한국금융연구원장

"대한민국이라는 조그만 연못에 '30마리의 고래(30대 재벌)'가 붐벼 작은 생선들이 살 수 없는 상황이다. 고래들이 다 죽여 버려 서민들이 먹고살기 점점 힘들어지고 중소기업이 크지 못하며 (좋은) 일자리가 안 생기고 자영업자가 엄청나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동걸 전 한국금융연구원장은 11일 '재벌 지배구조,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주제로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한 강연에서 현재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참여사회연구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이 공동 주관하고 5.18기념재단이 후원하는 강좌 '재벌 공화국을 넘어'의 세 번째 강연이었다. (☞바로 가기 :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2012년 선택은?)

이 전 원장은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 탓에, 임기를 절반밖에 못 채우고 2009년 한국금융연구원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관련 기사 : "이건희를 건드리니, 주변이 온통 적이 됐다"). 지금은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전 원장은 이날 "재벌 지배구조의 핵심 문제는 외적 무한팽창과 내적 1인 수렴 성향"이라고 말했다. 10대 재벌 총수가

순환출자 등을 통해 "1.1원으로 53.5원의 내부지분율을 지배하는 구조"를 만들었고, 그 결과 총수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국민에게는 손해를 끼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전 원장은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불공정거래 행위, 담합, 일감 몰아주기 등 재벌의 문제점을 비판한 후, "재벌 총수는 지배구조에 대한 도전이 들어오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며 삼성 상속 소송을 예로 들었다.

"이맹희 씨가 이기면 삼성의 지배구조가 무너진다. 이건희 회장이 공개석상에서 형에게 몰이성적인 이야기를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지배구조에 대한 도전을 받으면 그렇게 된다."

총수 1인 지배체제에서 벌어지는 형제 간 다툼은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 이 전 원장의 판단이다. 또한 이 전 원장은 재직 시절 삼성그룹 등과 접했던 때의 경험을 소개하며 "삼성그룹은 대한민국의 중요한 자산인데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능력을 발휘해 성과를 낸 사람이 아니라 총수 일가의 세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업을 한 사람이 그룹의 2인자로 인정받고 (…) 10명이면 10명 다 총수에게 아부하며 충성 경쟁을 하는 체제다. 위기가 닥쳤을 때 컨트롤할 능력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접하면서) '위기를 맞으면 이 기업은 망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전 원장은 기업에 대한 조세 지원이 재벌에 편중돼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2010년 조세 지원액을 살펴보면, 중소기업 지원액을 다 합쳐도 삼성그룹 지원액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 전 원장은 "재벌에 의한 '이익 사유화, 비용 사회화' 구조가 고착되면서 경제가 실질적으로 재벌 사회주의화하고 있고, 재벌이 각종 특혜 지원을 독식하고 그것에 의존하는 재벌 복지병이 심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계열 확장은 이명박 정부 들어 더 심해졌다. 금산분리 완화 정책도 그 원인 중 하나다. 이 전 원장은 "피감시자(산업자본)가 감시자(금융자본)를 소유·지배해 시장경제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 이동걸 전 한국금융연구원장(자료 사진). ⓒ프레시안(김윤나영)

"보수 운동의 아교는 돈…재벌 개혁, 기득권 구조 전반의 개혁과 함께 가야"

이 대목에서 이 전 원장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도 비판했다.

"박근혜 후보는 자신이 5년 전 말한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가 경제 민주화(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고 한다. '줄푸세'는 강자의 논리를 대변하는 것인데, 워낙 창의적인 분이셔서…. 박 후보는 5년 전 금산분리 완화, 산업자본 즉 재벌의 은행 지배를 허용하자는 쪽이었다. 박 후보에게 꼭 묻고 싶다. 재벌이 은행 지배하는 게 경제 민주화인가?"

박근혜 후보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금산분리 완화 등 재벌 친화적 경제 정책을 주장한 점에서는 이명박 후보와 별 차이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줄푸세'는 재벌 개혁을 중요한 축으로 삼는 최근의 경제 민주화 논의와는 결이 다른 주장이었다.

이 전 원장은 재벌 체제를 비호하는 관료, 언론, 보수 지식층 등으로 비판 대상을 넓혔다. 이 전 원장은 "보수주의 운동의 아교는 돈이다"라는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의 말을 인용해 이 세력을 비판했다. 재벌이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기득권 카르텔을 공고하게 구축하고, 돈맛에 취한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지적 속임수"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전 원장은 "재벌을 비판하면 빨갱이라고 한다"며 "내가 아는 건 미국 경제학인데, 그럼 미국 경제학이 빨갱이(들의 주장이)라는 건가"라고 되물었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재벌 지배구조 개혁은 한국 사회 기득권 구조 개혁 작업과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 이 전 원장의 생각이다.

이 전 원장은 헌법 119조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119조 2항은 경제 민주화의 근거 조항으로 거론된다. 이와 달리 재벌 체제를 옹호하는 이들은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자유와 창의'를 규정한 119조 1항을 강조한다. 이에 대해 이 전 원장은 "재벌 체제는 119조 1항을 침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전 원장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금융 시장에서 자금을 모아 성공하는 미국의 구글이나 애플 같은 사례가 최근 한국에 있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재벌 체제 때문에 그런 기업이 생겨날 수 없는 게 오늘의 한국이라는 것이 이 전 원장의 생각이다. 헌법 119조 2항 이전에 1항부터 재벌 체제가 막아서고 있다는 판단도 이와 관련 있다.

이 전 원장은 "중소기업->중견기업->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좋은 일자리가 많이 창출되는데, 한국에서는 중소기업이 성장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려면 건강한 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 전 원장은 지난 몇 년 사이에 베스트셀러 저자로 떠오른 김난도 서울대 교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 교수를 욕할 생각은 없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고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사회가 문제인데, 개인에게 '네 탓이니 너만 잘해라'라고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지금은 사회를 바꿔야 할 때다. 고쳐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재벌 문제다."

 /김덕련 기자

2012년 3월 27일 화요일

[사설]대통령 턱밑까지 간 사찰 의혹, 성역 없이 수사하라


이글은 경향신문 2012-03-27일자 사설 '[사설]대통령 턱밑까지 간 사찰 의혹, 성역 없이 수사하라'를 퍼왔습니다.
이제 대통령 턱밑까지 이르렀다.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사건의 실타래가 풀려가면서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이 의혹의 핵심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청와대 지시로 증거를 없앴다고 밝힌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변호사비 4000만원을 전달한 이가 임 전 실장의 측근인 이동걸 고용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으로 밝혀지면서다. 이 보좌관은 임 전 실장이 노동부 장관일 때 보좌관으로 일했고, 임 전 실장의 팬카페 운영진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앞서 임 전 실장은 이 사건으로 구속된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에게 ‘금일봉’을 전달한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은 지난주 기자회견을 자청해 자신이 증거인멸의 ‘몸통’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몸통이 몸통을 자처하는 일이 희귀한 까닭에 그의 주장을 믿는 이는 거의 없다. 이제 이 전 비서관 뒤에 가려진 ‘진짜 몸통’이 실체를 드러내려는 것 같다. 임 전 실장 재임기간 동안 대통령실장 산하 민정수석실·고용노사비서관실에서 청와대의 증거인멸 지시 사실이 새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거액을 뿌린 정황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임 전 실장이 금품 전달을 직접 지시하거나 개입하지 않았다 해도 그를 둘러싼 의혹이 벗겨지는 것은 아니다. 장진수씨는 지난해 1월 징계위원회에 출석해 “최종석 청와대 행정관이 증거인멸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최씨는 대통령실 직원이고, 대통령실의 최고책임자는 임 전 실장이었다. 대통령실 직원이 관련된 사안인 만큼 임 전 실장이 이를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최씨는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고 몇 달 뒤 주미대사관으로 파견을 떠났다. 임 전 실장이 묵인하거나 비호하지 않았다면 있기 힘든 일이다. 장진수씨가 어제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민정수석실은 소송과정을 지켜본 것은 물론 거기에 든 비용까지 ‘관리’한 것으로 보인다. 임 전 실장이 부하 직원들의 갖가지 ‘입막음’ 시도를 알지 못했다면 직무를 사실상 유기한 것이고, 알고도 묻었다면 범죄행위다.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도 검찰 수사는 느리기 짝이 없다. 재수사에 착수한 지 11일, 장진수씨가 출석하고 이영호씨가 ‘공개 자백’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없다. 검찰은 오히려 임 전 실장의 금일봉 전달 경위에 대해 “아직 조사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벌써부터 꼬리 자르기에 나서려는 것인가. 검찰이 재수사에서도 변죽만 울렸다가는 또 한 번 ‘부러진 검찰’이라는 조소를 면치 못할 것이다.

2011년 11월 21일 월요일

[이동걸 칼럼] 경제학이 실종된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1-20일자 가사 이동걸 칼럼 '경제학이 실종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퍼왔습니다.

»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그분들이 읽은 경제학 교과서와 내가 읽은 경제학 교과서가 정말 그렇게 다른 걸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우리 경제의 미래를 보장해줄 거라는 그분들의 확신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 글에서 필자는 한-미 에프티에이 찬성론자들의 주장을 비판하려고 한다.
첫째, ‘경쟁촉진 효과’론과 ‘역경극복 디엔에이(DNA)’론을 보자. 이 상태로 한-미 에프티에이를 체결하면 우리가 지금 비교열위에 있는 차세대 미래산업을 모두 포기해야 하고, 그러면 우리의 미래 성장동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 그들은 에프티에이가 우리 기업의 “저열한 생산성 제고에 가장 필요한 경쟁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필자도 경쟁의 긍정적 효과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쟁의 승자와 패자가 국적을 달리할 때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미국 국적의 승자가 내일 우리의 일자리를 만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며 우리의 미래산업을 키워주지도 않을 것이다. 통상경제학 교과서도 이 점을 인정한다.
심지어 우리는 어려울 때마다 “당당하게 뒤집기에 성공”했다며 “우리의 자랑스러운 디엔에이를 비하”하지 말라고 꾸짖기까지 한다. 우리 국민은 어려움을 헤치고 성공을 이루어내는 특수한 디엔에이를 가지고 있으므로 비록 지금 비교열위에 있다 하더라도 패자가 되어 도태되는 것이 아니라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필자도 우리 국민의 저력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주장 자체는 매우 위험하다. 한-미 에프티에이로 우리 농업이 위축된다면 그것은 우리 농민의 디엔에이가 열등하기 때문이란 건가. 아니면 우리 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한-미 에프티에이를 한다는 말인가. 황당하다.
둘째, 일자리 창출론을 보자.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에프티에이가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줄 거라 한다. 대단한 오판이다. 한-미 에프티에이로 득을 보는 산업은 대부분 우리나라 재벌들의 주력산업들이다. 문제는 재벌계열 대기업들의 일자리 창출 기여도가 매우 낮다는 거다. 일자리 창출 기여도가 큰 중견·중소 미래기업이 성장하면서 더 좋은 일자리를 많이 창출해내야 하는데 한-미 에프티에이로 이들이 어려워지면 이 대통령의 기대와는 반대로 오히려 좋은 일자리가 줄어든다.
셋째,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를 보자. 이것은 자유무역과 직접 관련이 없는 독소조항이다. 외국인 투자를 보호하려면 내국인 대우 원칙만 확실히 보장해주면 된다. 정책과 제도는 단순명료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한 보수언론은 “결혼(FTA)하자면서 손(ISD)도 안 잡겠다는 것은 웃기는 논리”라며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불가피성을 우기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결혼 후 집안 환경이 변해 부인이 굶더라도 남편은 결혼할 때 기대했던 대로 혼자만 배불리 먹겠다는 것이다.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정당하고 공정한 대우만 보장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 이상은 다른 가족에 대한 불평등 대우다.
넷째, 선비준-후재협상론을 보자. 일단 한-미 에프티에이를 비준하고 나면 재협상에서 우리의 교섭력이 급격히 약해진다. 미국은 시간을 끌기만 하면 된다. 이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협상과 교섭의 경험이 많은 이른바 성공한 기업경영자 아닌가. 어찌 이런 오판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진정 재협상할 생각이 있다면 선비준을 하면 안 된다. 재협상이 국민을 기만하기 위한 정치적 술수라면 모를까.
한-미 에프티에이는 단순한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다. 통상전문가들의 말만 듣고 해서는 안 된다. 무지와 편견과 오만으로 가득 찬 일부 통상전문가들은 단지 오늘 좀더 잘살게 되면 내일도 더 잘살게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근거없는 막연한 기대감에 불과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에프티에이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큰 실수를 한 것도 통상전문가들의 조언만 들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자유무역협정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한-미 에프티에이를 하려면 정확히 알고서 하자는 거다. 우리 경제의 미래에 걸림돌이 될 조항이 많이 있으니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거다.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