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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3일 목요일

“통신재벌 KT는 ‘갑’질의 종합전시장”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5-22일자 기사 '“통신재벌 KT는 ‘갑’질의 종합전시장”'을 퍼왔습니다.
‘KT갑의횡포피해자모임’ 투자자 울린 부동산 임대업, 일방적 납품 거부, 위장 정리해고 의혹 등 피해사례 발표

남양유업과 배상면주가 밀어내기 파문 등 갑의 횡포에 대해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통신기업 KT가 갑의 횡포를 휘둘러 피해를 입은 업체, 노동자들이 모여 “KT야말로 갑질의 종합전시장”이라며 피해사례를 발표했다.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2층에서 열린 ‘KT횡포- 중소기업·상인·대리점·직원 피해사례 발표회>에서는 KT의 납품 거부로 인해 상장 폐지된 중소기업의 사연부터 일방적 사업 철수로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대리점에 수수료 주지 않기 위해 전산조작했다”= 2007년 KT에게 인테리어 비용 지원을 구두로 약속받고 통합상품 판매 대리점을 시작한 ㈜모일태인포. 이 업체 대표 오영순씨에 따르면 KT는 일한 몫으로 수수료를 달라는 대리점에게 가입비, 번호이동수수료, 단말기 판매금액 등 전산을 조작해 수수료를 주지 않았다. 인테리어 비용도 안 줬다.

오영순씨는 현재 KT와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1심에서 패소했지만 소송 과정에서 KT의 전산조작을 하다 자충수를 둔 증거를 찾았다고 전했다. KT가 2006년 4월 단종된 LG-KF1000 단말기를 대리점에서 개통한 것으로 꾸민 전산조작 서류를 발견한 것. 오씨는 자신도 모르게 휴대전화와 일반전화 몇 개가 오씨와 자녀들 명의로 개통돼 있었다고 전하면서 담당 KT 직원을 위증죄로 형사고소했다고 전했다.


▲ KT

▷오피스 임대업 벌이다 자진 포기… 투자자만 울렸다= KT가 지난 2010년 신사업으로 사무집기와 회의실을 구비한 오피스를 소자본 창업자 등에 단기간 임대하는 ‘KT올레서비스드오피스’를 추진했다. 높은 입주율을 보장하며 투자를 독려했지만 결과는 바닥이었다.

2011년부터 명동센터에 총 5억5000만 원을 투자했다는 김혜정씨는 “KT를 믿고 투자했는데 적자만 2억5000만 원 생겼다”고 말했다. 김씨는 “KT 담당자가 ‘오픈 3개월이면 85% 입주율을 달성할 수 있고, 전국 각지에 있는 전화국 빈 공간을 활용해 수십 개 센터를 구축하고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지만 올해 3월 사업을 접겠다고 통보했다”고 말했다.

▷자회사 만들어 일감 몰아주기, 십 년 동안 일한 청소업체 폐업 직전= 굿모닝에프는 시설관리업체다. 2001년 KT 자회사 한국통신개발을 인수했고 연 400억 원의 안정적인 매출을 올렸다. 2009년 기준 KT 건물 403개의 시설관리와 청소업무를 맡았다. 노동자는 4000명에 달했다. 그런데 KT가 2009년 자회사 KT텔레캅 아래 손자회사 KFNS를 세운 뒤 사정이 달라졌다.

KT는 2009년 KFNS에 굿모닝에프의 일감을 절반 정도 몰아줬고, 2010년에는 일감 34%를 줄여 KFNS에 넘겼다. 굿모닝에프에 따르면 KT는 2010년 퇴직임원을 굿모닝에프 등기이사 및 총괄부사장으로 보낸 뒤 이듬해 KFNS 대표이사로 발령했다. 2011년에는 수수료로 하도급금액 중 1%를 징수하던 것을 4%로 올렸다. 결국 굿모닝에프는 KT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난청 노동자에 콜센터 업무… 위장 정리해고”= 최광일씨는 지난 2009년 명예퇴직한 뒤 현재 KT가 고객 클레임 접수업무를 위탁한 KTIS의 상담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KT는 본사 경험을 살릴 수 있는 2선 처리 업무를 KTIS KTCS 등에 위탁했다. 당시 500여 명의 명퇴자에게 3년 동안 고용보장과 임금 70%, 3년 뒤부터는 임금 60%도 약속했다. 

그런데 3년이 지나자마자 업무를 회수했다. 노동자들의 임금은 절반으로 줄었고, 50대 노동자들에게 콜센터 상담 업무를 하고 있다. 최광일씨는 “이석채 회장은 기업 경영자로서 사회적 책임을 찾아볼 수 없다”면서 “부도덕한 경영자를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난청 장애가 있는 나와 대부분 50대인 노동자에게 콜센터 업무를 시켰다. 이건 위장 정리해고”라고 주장했다.

▷KT가 요구해 만든 태블릿PC, 납품거부로 상장 폐지= KT와 SK브로드밴드 등에 인터넷전화기를 납품하던 중소기업 엔스퍼트는 2010년 초 KT와 오픈OS 기반 인터넷 전화기 개발 용역을 수행했다. 그런데 2010년 여름 SKT가 삼성전자 갤럽시탭 출시를 발표하자 KT는 이 업체에 태블릿PC를 개발할 것을 요청했다.

KT는 제품 개발을 위해 수십 명을 파견했다. 결국 ‘K패드’라는 태블릿PC가 나왔고 KT는 20만대 중 3만대를 우선 수취했다. 그런데 KT가 품질 문제를 거론하며 나머지는 납품을 거부했다. 엔스퍼트는 수백억 원대 손실을 입고 결국 상장 폐지됐다.

사회를 맡은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사무처장은 “이미 언론에 보도된 사례이지만 이 연단에 오르지 못한 피해자들이 있다”면서 “슈퍼갑의 횡포가 두렵고, 지금 하고 있는 일마저도 없어질까봐 두려워서 얘기를 못하는 ‘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석채 회장에게 면담을 요청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서 “통신재벌 KT 갑의 횡포에 대해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민주통합당 홍희락 의원(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은 “알려지지 않은 (을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함께 할 것”이라며 “여러분이 원하는 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홍 의원은 “자존심을 지키면서 먹고 살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분노스럽고 아프다. 힘들지만 몸부림치면서 투쟁해 보자”고 말했다.

이에 대해 KT 커뮤니케이션실 관계자는 “이미 판결이 난 문제에 대해 얘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내용을 다시 확인하고 (대응 여부를)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최근 법원은 KTIS 노동자들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등 소송에서 KT 손을 들어줬다. 현재 공정위는 엔스퍼트 건에 대해 2차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박장준 기자 |weshe@mediatoday.co.kr   

2011년 12월 4일 일요일

전기요금 오르고, 탈핵 선언은 불가?


이글은 레디앙 2011-11-28일자 기사 '전기요금 오르고, 탈핵 선언은 불가?'를 퍼왔습니다.
[한미FTA와 전력] "정부 역할, 미국 투자자에게 넘겨주나"

최근 한국전력(이하 ‘한전’) 이사회가 전기요금 10% 인상안을 의결했다. 한전 측은 이에 대해 지난 8월 전기요금을 4.9% 인상했으나 원가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 적자가 증가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기요금은 통상 한전 이사회에서 적정한 인상안을 마련해 지식경제부 장관에게 승인 신청을 하고, 장관은 대통령에게 추인을 받아야 한다.



소액주주 "전기요금 적게 올려 회사에 손해"
한전의 이번 행동은 지난 8월 김쌍수 전 한전 사장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고려한 조처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한전 소액주주 14명은 지난 8월 전기요금 현실화에 실패한 책임을 물어 김쌍수 전 사장을 상대로 2조8000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지난 3년 동안 연료비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전기요금을 인상해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한전 주주소송은 다른 소액주주 소송과 달리 명백한 불법행위나 ‘도덕적 해이’로 송사에 휘말린 것과는 차이가 있다. 김 전 사장이 전기요금을 올리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지가 논란이 되기 때문이다. 한전은 한국정책금융공사와 정부의 지분이 51%에 이르는 전형적인 공기업이고,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한다는 점에서 소송 대상이 정부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
바로 여기서 한미FTA와 전기요금이 연관될 수 있는 실마리가 관찰된다. 한미FTA는 공공복지정책보다 투자자 보호를 중시하는 미국의 일방적인 투자자유화 정책을 그대로 도입하는 협정이다. 특히 대표적인 독소조항 중 하나인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는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유치국의 협정의무 위반 등으로 피해를 입을 경우 투자유치국 정부를 상대로 직접 별도의 중재기관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분쟁해결 절차다.
ISD의 핵심쟁점은 ‘간접수용’ 조항인데, 이는 투자자의 자산가치를 떨어뜨릴 만한 정부의 조치를 ‘수용’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투자자는 자신의 자산을 수용당하지 않더라도 단지 정부의 규제에 의해 자산가치가 하락했다는 이유로 정부를 상대로 제소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한전에 투자한 미국인 주주 한국정부 제소?
이는 한미FTA가 발효된 후 한전 주식에 투자한 미국 투자자들이 전기요금 억제 정책을 펴는 우리나라 정부에 제소를 걸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전은 정부와 한국정책금융공사가 지분의 50%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정부투자기관으로서, 국내 판매전력의 100%를 담당하고 있다. 발전의 경우에도 자회사를 통해 국내 생산전력의 95% 이상을 담당하고 있어 전력수급뿐만 아니라 국가공공정책에서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에 한전은 외국인 보유지분을 40%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긴 하지만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엄연한 주식회사이기도 하다. 미국 투자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거래를 통해 주식을 보유하고 우리나라 전기요금 정책에 대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전은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등 발전자회사 6곳 외에도 엔지니어링·발전설비·정비 등을 담당하는 자회사 5곳을 합쳐 10개가 넘는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자회사 가운데 상장업체로는 지분 80%를 보유하고 있는 한전기술, 한전KPS와 지분 29%를 보유해 2대 주주로 있는 한전산업 3개사가 있다.
이 자회사들의 주식가격은 한전의 영업실적에 따라 출렁거린다. 그리고 한전 영업실적은 대부분 전력을 구입해 팔아 얻는 수입에 의존한다. 우리나라 정부의 전기요금 정책에 따라 한전뿐만 아니라 한전의 자회사들까지 영향을 받는 것이다. 미국 투자자들이 한전의 자회사들이라고 가만히 놔둘 리 없다. 최근 한전은 수천억 원의 영업적자를 이유로 자회사들의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1월 초 일부 인터넷 진보언론을 통해 ‘핵 폐기’를 선언한 독일이 ISD소송에 직면해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스웨덴 국영 에너지기업인 바텐팔이 자신들이 소유한 독일 함부르크 부근 브룬스뷔텔 원전(66.7%), 크뤼멜 원전(50%)을 폐쇄한 독일 정부를 상대로 ISD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향후 우리나라에서 ‘탈핵’을 선언할 경우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주목되었다.
우리도 탈핵 선언하면 제소된다?
한전이 원전사업자는 아니다. 하지만 한전이 지분을 100% 보유한 자회사인 한수원이 전 원전을 보유하고 운영과 관리를 전담하고 있다. 결국 한전의 향후 지배구조 변화와 운영방식 변경에 따라 얼마든지 국내 원전의 소유 비중이 달라질 수 있다.
만에 하나, 한전이 민영화라도 하게 될 경우 통상적이지만 엄청난 폐로비용, 핵폐기물 저장 비용 등 외에 독일의 사례처럼 한국사회도 ‘탈핵’ 사회로 나아가는 데에 엄청난 비용을 추가적으로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한전뿐만 아니라 가스공사, 지역난방공사 등 상장공기업들도 소송의 위험에 직면해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가스공사는 한전과 마찬가지로 정부에서 요금을 통제하고 있어 부대사업이 없으면 적자를 피할 수 없는 구조를 수십년 째 유지하고 있다.
원가 미반영분을 추후에 정산받고 있는 지역난방공사도 계절별 수익구조가 다른 사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주들의 제소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건 물론 한미FTA가 체결되지 않은 상황의 이야기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더 돌이킬 수 없는 상황들이 벌어질 수 있다.
또한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알뜰주유소가 자칫 한미FTA의 투자자국가소송제(ISD) 대상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만일 SK에너지(외국인지분 31%)나, GS칼텍스(미국계 석유자본 셰브론 50% 지분보유)에 투자한 미국 투자자나 기업이 정부의 알뜰주유소 정책으로 SK주유소나 GS칼텍스 주유소의 이익이 침해됐다고 판단할 경우 정부를 제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역할, 미국 투자자에게 넘겨주나
물가와 선거를 의식한 ‘저렴한 전기요금’과 일부 수출 대기업을 위한 ‘고환율 정책’은 에너지 가격 구조의 왜곡을 초래했다. 싼 전기요금은 전기 과소비를 부르고, 높은 환율에 세금이 절반인 석유 가격 구조는 국제 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상승하는 ‘괴상’한 흐름이 연출되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물가나 선거 등을 감안할 때 전기 요금을 대폭 인상할 수도 없고, 유류세를 줄여 세수가 감소하는 것을 방치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에너지정책의 총체적인 실패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못난 정부’라도 우리나라 정부가 에너지가격 등 공공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맞다. 정부는 ‘에너지복지’를 실현할 주체이고, 전기와 같은 에너지는 생활 필수재이기 때문이다. 전기 등 에너지가격을 미국인 투자자가 좌지우지하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 한미FTA는 이 같은 우려를 가능하게 만드는 협정이다. 한미FTA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다.
왜곡된 에너지 가격체계를 바로 잡고 전기요금을 적정수준으로 인상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가정용 전력은 비싸고 산업용은 저렴하게 공급하는 경제주체 간 교차보조금 제도를 없애고 누진율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사회는 지난 9월 15일 초유의 정전대란을 겪었다. 또한 올 겨울 한파가 닥칠 경우 또 다시 전력피크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의 역할을 미국 투자자들에게 넘겨주는 정부에게 희망은 없다. 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권승문 / 녹색연합 녹색에너지디자인

2011년 11월 24일 목요일

한미FTA '폐기'의 조건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1-11-24일자 기사 '한미FTA '폐기'의 조건'을 퍼왔습니다.
협정문 24.5조 따른 폐기 가능..."감당할 진보정권, 국민적 지지 필요"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당의 한미FTA 비준안 날치기 강행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발언대에 올라간 민주당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항의하는 가운데 의장석에 앉아 있던 정의화 국회부의장 앞 민주당 최규성 의원과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의사봉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지난 22일 날치기로 한미FTA비준동의안을 처리한 데 대해 22일에 이어 23일에도 서울에서만 2만여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비준무효와 폐기를 외쳤다. 야당5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은 "국민과 함께 무효화 투쟁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법적으로 이미 국회를 통과한 한미FTA비준동의안의 발효를 막는 방법은 헌법재판소에 한미FTA 비준의 유·무효를 다투는 헌법소원을 제출하거나, 위헌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날치기 통과된 한미FTA비준동의안의 효력을 정지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헌법재판소가 지난 2009년 미디어법 날치기 처리에 대해 절차적 위법성(야당 의원들의 심의·표결권 침해)을 인정하면서도 무효확인 청구에 대해선 기각결정을 내린 것처럼 이미 한미FTA비준안 처리 자체를 무효라고 결정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당시 미디어법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재투표와 대리투표를 했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헌재는 그 효력을 인정한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발효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이 날치기 처리된 비준안에 서명하고, 정부가 미국 측에 한미FTA 발효를 위한 법률적 준비가 끝났다는 서한을 보내는 형식적인 절차를 저지하는 방법도 있다. 시민들과 야당.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청와대는 이미 이명박 대통령이 29일 날치기 통과된 비준안과 14개 한미FTA 이행법안에 서명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영리병원 확대와 관련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서비스산업기본법.경제자유구역법 등 한미FTA와 간접적으로 얽힌 법안들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또 한미FTA와 함께 상호작용을 해 공공서비스 민영화를 앞당길 이른바 '자발적 민영화 법안'의 입법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송기호 변호사)

아울러 향후 미국의 요구에 따라 추진될 가능성이 높은 이른바 '한미FTA 2대 후속조건'인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개방과 쌀 시장 추가개방(쌀 관세화)도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이명박 정부의 계획대로 한미FTA가 내년 1월 1일, 혹은 미국의 의도대로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발효가 현실화 될 경우 결국 공식적으로 한미FTA 폐기 절차를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이하게도 한미FTA협정문에는 폐기조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외교통상부 한미FTA협정문 24.5조 '발효 및 종료'

한미FTA협정문의 마지막장인 24장 '최종규정' 편에서 '발효 및 종료'를 다룬 24.5조 2항을 보면 "이 협정은 어느 한 쪽 당사국이 다른 쪽 당사국에게 이 협정의 종료를 희망함을 서면으로 통보한 날부터 180일 후에 종료된다"고 돼 있다. 또 24.5조 3항에서는 "당사국이 (협정의 종료를)통보를 한 후 30일 이내"에 이와 관련된 협의를 개시하도록 명시돼 있다. 한EU FTA에는 별도로 '폐기' 조항이 없지만 한미FTA에는 역설적으로 국제관계에서 일방주의와 예외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미국의 요구에 따라 '폐기' 조항이 포함돼 있는데 이를 이용하자는 것이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지난해 한미FTA 재협상 국면 당시부터 한미FTA비준동의안이 날치기 처리된 뒤까지 수차례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이 조항을 거론하며 "한미FTA 협정문 24.5조에 따라 어느 한쪽이 협정의 종료에 대해 서면통보를 한 뒤 이후 6개월이 지나면 자동으로 폐기된다"며 "미국에 (한미FTA협정문 폐기를 통보하는)팩스 한 장 보낼 대통령을 뽑으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폐기 통보의 주체가 대통령인 만큼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한미FTA 폐기를 내건 세력이 의회와 행정부 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선대인경제전략연구소 선대인 소장은 22일 '민중의소리'와의 전화통화에서 "한미FTA폐기 절차를 밟을 수 있지만 국제 협정상의 많은 신뢰를 잃게 되는 등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상대가 미국일 경우 한미관계의 특성상 대통령이 한미FTA를 폐기하자고 통보하는 데는 상당한 부담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대인 소장은 "이 부담들을 압도할 수 있는 것은 국민의 힘"이라며 "압도적인 국민의 힘으로 총선.대선을 지배하면 얼마든지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선 소장은 "국민들이 한미FTA폐기에 따른 부담을 감수하고라도 한미FTA를 폐기하겠다고 결정하면 할 수 있다"며 "결국 닥치고 정치!"라고 강조했다. 

실제 지난 2008년 4월 이명박 정부가 광우병 위험이 있는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허용하자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와 재협상을 요구했고, 결국 미흡하지만 한.미 양국은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될까지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자율규제"하기로 했다. 국회에서는 이를 담보할 가축전염병예방법이 통과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당시 미국 측도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촛불집회로 인해 섣불리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허용을 강하게 요구하지 못했다.

물론 한미FTA 폐기를 위해서는 2008년 촛불보다 더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시민들의 힘이 필요하지만, 정치적 여건은 오히려 당시보다 유리하다는 분석도 있다. 

황진미 평론가는 자신의 트위터에 "2008년에는 광장에 나왔지만 어찌해야할지 비전이 없었다. MB정권 초기였고 신자유주의는 끝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라며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MB정권의 바닥을 보았고, 미국 금융위기와 '중동의 봄'을 보았다. 신자유주의는 몰락하고 있다. FTA는 몰락의 물귀신이다"라고 말했다. 

이와관련 트위터에서는 한 트위터 사용자(@fd***)가 올린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 표가 215만여표다. 이 사람들이 열흘에 한번만 품앗이 삼아 (한미FTA 저지)집회에 나와도 서울만 하루 20만"이라며 10부제를 하자는 의견이 리트윗 되면서 호응을 얻고 있다. 

미국 정부나 미국 투자자 입장에서도 한국 국민들의 압도적인 한미FTA 폐기 주장을 확인할 경우 형식적으로 한미FTA가 발효되더라도 2008년 촛불시위 당시와 유사하게 위축효과(Chilling Effect)가 발생해 한미FTA의 즉각적인 실질적 효과가 상쇄되거나, 더 나아가 한국 측의 폐기 압박을 체감할 수밖에 없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도 한미FTA 폐기에 대해 22일 자신의 트위터에 "큰 갈등 있겠죠. 감당할 진보정권과 국민의 지지 필요합니다"라고 밝혔다. 결국 한미FTA 폐기에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 즉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이어지고, 이에 기반한 세력이 내년 선거에서 정권을 맡아야만 한미FTA 폐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23일 저녁 서울광장 인근에서 한미FTA저지촛불문화제가 열린 가운데 1만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해 한미FTA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