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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3일 목요일

밀양 송전탑 반대 할머니 "경찰, 너희들이 더 밉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3-05-22일자 기사 '밀양 송전탑 반대 할머니 "경찰, 너희들이 더 밉다"'를 퍼왔습니다.
공권력 철수 촉구 목소리 높아... 경남공대위 "주민들과 함께 싸울 것"

"한전 직원들은 모르겠는데, 너희들은 여기에 왜 왔느냐. 한전보다 너희들이 더 밉다."

여기서 말하는 '너희'는 경찰을 말한다.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마을 송전탑 공사현장에 있는 중장비 밑에 들어가 있던 한 할머니가 경찰이 다가와 이야기를 건네자 이같이 쏘아 붙였다.

▲ 한국전력공사가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지 사흘째인 22일 주민들이 쓰러지자 헬기를 이용해 병원으로 후송했다. ⓒ 곽빛나

한국전력공사는 20일부터 6곳에서 걸쳐 송전탑 공사를 재개했는데, 공권력이 투입된 것이다. 밀양 송전탑 갈등이 8년째 계속되고 있지만, 경찰 병력이 투입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경찰은 거의 매일 500명 안팎의 기동대원을 투입하고 있다.

송전탑 현장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한국전력 직원뿐만 아니라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할머니들은 경찰이 저지하자 옷을 벗어 '알몸 투쟁'에 나서기도 하고, 오물을 담아와 뿌리기도 한다.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는 경찰이 주민들을 막으면서 한국전력 시공업체가 공사를 하도록 방어 역할을 해주고, 마찰 현장에서 한국전력 편을 든다고 지적했다.

공사 재개 첫날 현장을 찾았던 민주당 조경태 의원은 "공권력 투입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킨다"고 밝히기도 했다. 경남지역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밀양 765kV 송전탑 백지화 및 공사중단을 위한 경남공동대책위'는 22일 "공권력은 국민을 위한 것"이라며 "경찰병력 즉시 철수시키고 자숙하라"고 촉구했다.

반핵부산대책위도 "공사 재개를 반대하는 주민들은 경찰 병력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흘 동안 주민 12명이 경찰과 한국전력 직원들과 몸싸움 등으로 쓰러지거나 병원에 후송되기도 했다.

한국전력은 "전력 대란을 막기 위해 공사를 해야 하고, 주민 안전을 위해 경찰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경남공대위 "주민들과 뜻 같이 하며 함께 싸울 것"


▲ 한국전력공사가 20일 밀양 송전탑 건설공사를 재개한 가운데, '송전탑 반대' 할머니들이 화악산 8부능선에 있는 127번 철탑 공사장 부근에서 경찰로부터 저지를 당하자 인분을 물병에 담아와 투척했다. ⓒ 윤성효

경남공동대책위는 22일 오후 밀양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민들과 뜻을 같이하며 함께 싸울 것"이라며 "한국전력은 밀양 765KV 송전탑공사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 한국전력공사가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지 사흘째인 22일 오후 공사장 부근에서 한 할머니가 옷을 벗고 공사 저지 투쟁에 나서자 여성경찰들이 달라 들어 제압하고 있다. ⓒ 이계삼

이들은 "한국전력은 대화를 통해 밀양 송전탑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었다. 밀양주민들은 공기업 한전의 이 같은 약속이 허언이 아닐 것이라 믿으며 지난 몇 달 동안 새벽기차를 타고 서울을 오르내렸다"며 "농사일도, 개인적인 일상도 모두 제쳐 두고 조금만 더 고생하고 노력하다보면 송전탑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면서 감내했었다"고 밝혔다.

이어 "온몸이 아프고, 마음이 병들고, 생활이 곤궁해졌지만 힘들다는 말씀 한번 하지 않았던 밀양 주민들의 노력과 기대가 한전의 공사 강행으로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경남공대위는 "20일, 한전은 공사를 강행했다. 이전부터 이미 주민들 사이에는 한국전력이 공사를 시작할 것이고, 경찰병력도 대거 투입될 것이라는 등 소문들이 무성했지만, 모두들 그저 소문이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민사회와 주민들이 공사강행 시에 일어날 사태에 대해 염려했던 일들이 고스란히 벌어지고 있다"며 "80대 할머니들이 젊디젊은 경찰들과 대치하다가 혼절을 하고, 어느 할아버지는 공사 인부들과 맞서다가 부상을 입었다. 공사 인부들이 밀쳐 허리를 다치고, 경찰에 끌려가다 팔, 다리를 다친 분들이 모두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시다"고 덧붙였다.

경남공대위는 "아무리 국책사업이라고 하더라도 국민들에게 폭력과 폭압을 행사하면서 강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된다. 이런 집단은 사회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특히 한국전력과 같이 전국 곳곳에서 이런 사태를 벌이는 공기업이라면 과연 이대로 존치시켜야 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밀양주민들의 요구와 주장이 절대 부당하거나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설령 지나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한전이 보여준 태도와 공사강행은 절대 용납할 수 없고, 우리는 밀양주민들의 송전탑 반대 투장을 지지하며 끝까지 함께 투쟁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한국전력공사가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지 사흘째인 22일 주민들이 공사 저지를 위해 중장비 쪽에 앉아 있다. 사진은 한국전력 직원들이 주민들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 ⓒ 곽빛나


윤성효(cjnews)

2013년 5월 20일 월요일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공권력도 투입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3-0520일자 기사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공권력도 투입'을 퍼왔습니다.

한국전력공사가 20일 경남 밀양지역 765kV 고압 송전탑 공사를 전격 재개했다.

지난해 9월 공사가 중단된 지 8개월 만이다.

한전은 이날 오전 6시부터 밀양시 부북.단장.상동.산외 등 4개 면에 들어설 52기 송전탑 공사를 위해 장비와 인력을 긴급 투입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경찰도 이날 한전과 반대 주민들 간의 충돌 사태에 대비해 7개 중대, 500명의 경력을 현장에 투입해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전은 앞서 지난 18일 밀양 송전탑 공사재개의 시급성을 담은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고 공사를 재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홍민철 기자

2012년 12월 3일 월요일

‘제압’도 모자라 ‘확 제압’이라니요


이글은 시사IN 2012-12-03일자 기사 '‘제압’도 모자라 ‘확 제압’이라니요'를 퍼왔습니다.

“촛불시위를 공권력으로 확 제압했어야 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사진)이 한 말이다. 두 가지 의미에서 기가 찬 말이다. 하나는 유신이나 5공 시절의 독재 본능을 드러낸 것이요, 하나는 처참하게 제압하고도 오리발을 내미는 것이어서다.

2010년 지방선거를 눈앞에 둔 시점에 사건이 하나 터졌다. 15만명이 가입한 대규모 인터넷 카페 운영진이 불법 모금을 하고 모금액을 술값으로 유용했다는 사건이었다. 

ⓒ뉴시스

문제의 카페는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일명 ‘안티MB’로 유명한 ‘촛불’ 카페였다. 조·중·동을 비롯한 대부분 신문과 KBS·YTN 등 방송이 일제히 이 사건을 보도했다. 상당수 언론이 확인된 사실이라고 보도했고, 일부는 ‘좌파의 파렴치’([문화일보]), ‘적나라한 부도덕’([헤럴드경제])이라 질타했다. 촛불도 끄고, 촛불에 대한 테러도 덮고, 선거 표심도 흔드는 사건이었다.

2년을 훌쩍 넘긴 지난 9월, 법원은 기소된 안티MB 운영진 전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조·중·동도, KBS도 무죄판결을 보도하지 않았다. YTN은 기자가 기사를 송고했지만 방송하지 않았다. (경향신문)과 (연합뉴스) 정도에만 기사가 실렸다.

다시 김무성. 오리발 내밀 수는 없게 되었다. 다만 그냥 제압은 성에 안 차서 ‘확 제압’이라고 한 것이리라. 선거를 앞두고 뒤지고 잡아가고 가두고 기소한 검·경, 그리고 무고한 이들을 파렴치범으로 만들고는 입 꾹 다물고 있는 언론. 게다가 이를 능가하는 ‘확 제압’까지, 그들이 꿈꾸는 정권에 소름이 돋는다. 

노종면 (YTN 해직기자, 트위터 @nodolbal)

2012년 11월 22일 목요일

김무성 “촛불, 공권력으로 확 제압했어야” 또 막말


이글은 경향신문 2012-11-21일자 기사 '김무성 “촛불, 공권력으로 확 제압했어야” 또 막말'을 퍼왔습니다.

새누리당 김무성 중앙선대위 총괄본부장(사진)은 21일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내용에 반대해 벌어진 시민들의 촛불시위를 두고 “대통령이 공권력으로 확 제압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농어업 경쟁력 강화혁신 특별위원회 발대식에서 “(유권자들이) 이명박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당선시켰는데 국가 공권력 집행을 제대로 못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본부장은 “정권 초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은 대못을 빼내야 할 시기에 ‘병든 소 수입해 우리 국민을 다 미치게 만든다’는 말도 안되는 말 가지고 우리나라 심장인 광화문이 90일 이상 점령당해 마비됐다”고도 했다. 이어 그는 “대통령이 공권력으로 확 제압했어야죠. 그런데 청와대 뒷동산에 올라 촛불을 보며 ‘아침이슬’을 불렀다고 자랑스럽게 공개해 국민을 실망시켰다”고 밝혔다.

그는 또 “권력형 부정부패의 사슬이 아직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이 구속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부정해 그걸 감추기 위해 자살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모시고 집권해 청와대에 가보니 거짓말 안 보태고 이 방의 한 40% 정도 되는, 은행 지점보다 더 큰 스테인리스 금고가 있었다”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현금을 쌓아놓으려고 금고를 만든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 그걸 보고 나쁜 놈·도둑놈이라며 당장 처리하라고 해서 8t 트럭 5대분이 실려나갔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박근혜 후보를 두고는 “5년 전 이명박 후보와 본선보다 더 치열한 예선전을 치르는데 저한테 1원도 안 줬다”며 “대통령이 되고 친·인척이나 측근이 (비리에) 연루되면 자기 손으로 잡아넣을 무서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에 민주통합당 김현 대변인은 논평에서 “자신들에 의해 죽음을 당한 전직 대통령을 정략적인 목적을 위해 부관참시하려는 새누리당 행태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포기한 패륜적 범죄”라고 말했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 측 유민영 대변인도 논평에서 “박 후보 주변 세력과 측근 문제는 그들이 집권했을 때 국정 운영 세력을 예상케 한다는 점에서 국민에게 위협적이고 위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2008년 촛불시위를 공권력으로 확 제압했어야 한다는 발상은 유신시대를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이지선 기자 jslee@kyunghyang.com

이인간 차지철과 하나더 다를게 없다!

2012년 8월 12일 일요일

국가가 키운 폭력을 파는 괴물


이글은 한겨레21 2012-08-13일자 제923호 기사 '국가가 키운 폭력을 파는 괴물'을 퍼왓습니다.
[특집]무선조종 헬기 등 첨단장비 갖추고 파업 진압부터 대체 인력까지 일괄 제공하는 ‘기업형’ 민간용역 업체2008~2010년 노동자 등 3832명 기소하며 용역직원 0명 구속한 공권력이 키운 통제 불가능한 괴물의 실체

» 용역경비업체들은 진화하고 있다. 국가의 ‘묵인’ 아래 세련된 폭력을 돈 받고 제공한다. 폭력으로 노동자들을 내쫓은 뒤 공장 앞을 지키고 있는 용역경비업체 컨택터스 직원들. 한겨레 류우종

“지상에 더 힘센 자가 없으니 누가 그와 겨루랴.”
토머스 홉스가 쓴 (리바이어던)은 국가의 탄생을 이렇게 전한다. 성서 욥기 구절에서 따온 이 말은 ‘리바이어던’의 절대권력을 보여준다. (리바이어던) 초판 속표지에는 수많은 이들이 모여 거대한 사람의 형상을 이룬 그 유명한 그림이 실려 있다. 국가이자 절대군주인 리바이어던은 교회의 첨탑과 집, 산과 들, 바다를 내려다본다. 왕관을 쓴 리바이어던의 오른손에는 날카로운 검이 들렸다. 폭력을 통할하는 국가의 힘이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몸통을 이룬 개개인들의 눈은 리바이어던의 얼굴, 즉 국가만을 ‘올려다보고’ 있다. “국가는 모든 사람이 포기한 권리, 모든 사람이 사용을 유보한 폭력의 집합적 구성물이다. 국가는 그 모든 폭력을 자신 안으로 흡수함으로써 그 자신이 폭력이 되고, 압도적인 힘의 비대칭성 속에서 감히 어느 누구도 폭력을 사용할 수 없게끔 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한다.”(공진성, [폭력]) 자신들이 양도한 작은 폭력들, 그렇게 모인 거대한 힘에 의탁해 생명과 안전을 보장받는다. 폭력의 합법적 독점체, 국가의 탄생이다.

철거와 파업, 용역들의 오랜 일터

“모든 높은 자를 내려다보며 모든 교만한 자들에게 군림하는 왕”(욥기 41장)이라던 리바이어던은, 이제 모든 것을 내다파는 왕이 되었다. 국가의 권능은 ‘민영화’한 수많은 영역들로 쪼개지고 대체됐다. 리바이어던이 내려다보는 것은 이제 ‘시장’이다. 마침내, 손에 든 자신의 검마저 좌판에 올려놓았다. 모든 것을 내다파는 시대에, 국가만이 소유했던 ‘폭력’마저 시장의 매대에서 돈으로 거래된다. 공권력의 민영화, 폭력의 외주화다.
지난 7월27일 새벽 4시50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반월공단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 SJM 공장에 진압봉과 방패, 헬멧으로 무장한 사설 용역경비업체 직원 200여 명이 “진격, 뚫어”를 외치며 ‘진압 작전’에 들어갔다. 사업주가 전격적으로 직장폐쇄를 단행한 공장 안에는 임금·단체 협상 문제로 농성 중이던 노조원 150여 명이 있었다. ‘CONTACTUS’(컨택터스)라는 용역경비업체명이 인쇄된 방패를 든 이들은 길이 1m 정도의 진압봉을 마구 휘둘렀다. 공장 안에 있던 쇳덩어리까지 집어 던졌다. 노조원들의 치아가 함몰되고 머리가 깨졌다. 흡사 1990년대 ‘구사대’를 연상케 하는 폭력이 이어졌고 노조원 수십 명이 쓰러졌다. 여성 노동자가 “살려달라”며 112 신고를 네 차례나 했지만, 출동한 근처 파출소 소속 경찰관들은 공장에 들어가지도 않은 채 용역경비업체와 회사 쪽 관계자의 말만 듣고 돌아갔다. 새벽 5시30분에야 경찰기동대 3개 중대가 공장 정문 앞에 배치됐지만 노조원에 대한 불법적인 폭력은 사실상 ‘묵인’됐다. 현장에 있던 경찰 중대장은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 등 현장 소란을 확인하고도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컨택터스는 징후적 현상이다. 한국 사회에서 거래되는 ‘폭력’이 파업 진압부터 대체 인력 투입까지 논스톱으로 처리해주는, 나름의 시스템을 갖춘 ‘기업형 폭력’으로 진화하는 어떤 지점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그때그때 일당을 주고 동네 깡패들이나 동원하던 기존 용역업체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얘기다.

황당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흔한 일이다. 낯설지 않다. 개발연대를 거치며 수없이 목격된 일이다. 1970년대까지는 도시 재개발 현장에서 국가가 직접 자신의 힘으로 밀어붙이던 철거폭력이 횡행했다. 그러던 도시개발사업이 1983년 합동재개발이라는 형식으로 민영화한다. 건설자본이 재개발사업에 끼어들게 되자 ‘빠른 회전’을 생명으로 하는 돈의 논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철거폭력 역시 빠른 시간 안에 확실히 끝내는 무자비한 용역들의 완력으로 대체된다. ‘용역폭력’ 전성시대가 온 것이다.
노동 현장에서의 용역폭력은 철거 현장보다 시기적으로 조금 늦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이 밀어닥친 1990년대 말, 노동쟁의 현장에서 회사 쪽이 고용한 용역경비업체 직원들의 물리적 폭력 행사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노조집회 해산, 노조사무실 봉쇄 과정에 ‘용역깡패’가 난입해 폭력을 휘둘렀다. ‘시설 경비’라는 명목으로 각목과 자전거 체인을 휘두르는 용역경비업체 직원들이 공장을 점령하고 노동자를 내쫓았다. 지난해 충남 아산의 자동차 부품회사인 유성기업 노동쟁의 과정에서 용역경비업체가 저지른 폭력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됐다. 2010년에는 경북 구미의 반도체 회사 케이이씨(KEC), 대구와 경북 경주의 자동차 부품 회사인 상신브레이크·발레오전장에서도 직장폐쇄 뒤 곧바로 용역업체 직원들이 ‘작전’에 투입되거나 경비로 배치됐다.
‘노조 집단행동→직장폐쇄→용역 투입’은 회사 쪽이 노조를 파괴하는 시스템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폭력적으로 컨트롤하는 용역경비업체의 ‘전문성’이 시장에서 사고팔린다. 이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행정법)는 지난 1월 발간한 (용역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대안보고서)에서 “용역깡패들은 국가가 허가한 기업에 고용되어 영업의 일환으로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폭력을 행사한다”고 지적했다. “폭력·물리력의 행사가 하나의 자본주의적 사업이 됐다”는 것이다.

우리는 용팔이, 양아치가 아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컨택터스는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자신을 ‘용역깡패·용역양아치’가 아닌 ‘시위·집회 솔루셔너·시추에이션 매니지먼트’로 불러달라고 했다. 세련되게 주먹질을 한다는 얘기다. 이들은 최대 3천 명까지 경비·경호 인력을 동원할 수 있으며 시위 진압용 물대포차, 손해배상 청구를 위한 불법행위 채증용 무선조종 헬기, 경비견 등 ‘국내 최대 규모의 시위 진압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고 선전했다. 파업 등으로 조업에 차질이 생기면 즉시 ‘대체 인력’을 투입할 수 있는 시스템까지 갖췄다고 홍보했다. 2009년에는 노동쟁의가 진행 중이던 자동차 부품업체에 자기네 직원들을 위장취업시켜 노조파괴 공작을 벌이기도 했다.
컨택터스는 징후적 현상이다. 한국 사회에서 거래되는 ‘폭력’이 파업 진압부터 대체 인력 투입까지 논스톱으로 처리해주는, 나름의 시스템을 갖춘 ‘기업형 폭력’으로 진화하는 어떤 지점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그때그때 일당을 주고 동네 깡패들이나 동원하던 기존 용역업체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얘기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인권법)는 “과거 용역깡패는 애교 수준”이라며 “경찰이 맡은 업무 중에 가장 폭력적 분야인 진압의 영역에까지 조직화된 형태로 뛰어들었다”고 평했다. ‘진화’를 했다는 것이다. “노사가 법적으로 대등하게 싸우도록 힘의 균형을 맞춰준 것이 파업권과 직장폐쇄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균형을 국가가 컨트롤하는 것이 노사관계의 룰이었다. 그런데 돈 있는 쪽이 공권력의 영역인 폭력을 사들이자 힘의 불균형이 극대화했다.”
제대로 된 혁명 한 번 일어나지 않았지만, 미국은 어느 나라 못지않게 유혈 낭자한 노동운동의 역사를 가졌다. 이를 폭력으로 찍어 누른 것이 용역경비업체들이었다.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의 반발이 극심해지던 19세기 중·후반부터 20세기 초, 용역경비업체 핑커턴사는 노조 파괴로 악명을 떨쳤다. 대표적인 것이 1892년 펜실베이니아주 홈스테드시에 있던 카네기 제철소 파업 진압이다. 깡패와 부랑자 등으로 구성된 핑커턴 소속 경비원 300여 명과 노동자들이 무력으로 충돌했고, 이 과정에서 10여 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다쳤다. 탐정 업무도 했던 핑커턴의 로고는 커다란 눈이었다. 눈 밑에는 ‘우리는 잠들지 않는다’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핑커턴은 무력 진압 외에 공작원들을 활용한 노조 침투, 유령노조 설립, 폭력 선동 등을 전문적으로 수행했다. 한 세기 뒤 한국에 나타난 컨택터스가 하는 짓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후 미국 최대의 보안업체로 자리잡은 핑커턴은 1999년 세계적 보안업체인 스웨덴의 ‘시큐리타스AB’에 인수됐다.

“우파와 보수가 말하는 이른바 ‘국가 공권력에 대한 도전’은 경찰과 충돌한 서울 용산 참사나 쌍용차 파업보다, 오히려 폭력을 돈으로 사고팔아도 국가가 이를 문제 삼지 않는 용역폭력 현상에서 훨씬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용역경비업체의 폭력이 문제가 될 때마다 경비업체에 대한 허가·관리·감독 권한을 가진 경찰은 ‘허가·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는 뻔한 답을 내놓는다. 지난해 9월 경찰청은 유성기업 용역폭력 사건의 대책으로 “앞으로 폭력을 행사한 경비·용역 업체는 조직폭력에 준해 엄정하게 처리, 고용한 사업체도 청부폭력에 준해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초기부터 경찰권을 발동해 용역폭력을 예방·제지·제압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불과 10개월 뒤 리바이어던에서 폭력을 떼어받은 컨택터스라는 ‘괴물’은 경찰이 보는 앞에서 흉기를 들어 사람들을 팼다. 이계수 교수는 “철거 현장, 노동 현장에서 폭력이 행사되거나 행사 가능성이 예견되는데도 경찰이 개입하지 않는 것은 경찰이 그 문제를 사적 소유권의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폭력의 민영화는 책임과 처벌, 통제를 어렵게 만든다. 국가가 행사하는 폭력, 공권력의 일부로 경찰이 행사하는 폭력은 비교적 통제가 용이했다. 노사문제에 경찰력이 발동할 때, 국가는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인사·예산·정보공개 등 다양한 방식의 민주적 통제를 가할 수 있다. 홍 교수는 “경찰력을 통제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들이 계속 만들어져왔다. 반면 이윤 창출이 목적인 자본에 풀려버린 폭력을 제어할 수단은 마땅히 없다”고 했다.

» 지난 7월29일 경기도 안산시청 앞. 자동차 부품업체 SJM 노조원들이 용역경비업체 컨택터스 직원들의 폭력으로 부상당한 노조원들의 사진을 들고 집회를 하고 있다. 한겨레 류우종

“용역폭력 사들이는 사용자 처벌해야 근절”

직장폐쇄 등 법적·행정적 ‘절차’를 밟은 뒤 이뤄지는 폭력에 대해 경찰·검찰·법원은 무한한 관용을 베풀어왔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그전 3년간 처벌받은 노동자·철거민과 용역경비업체 직원 현황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노동자 등은 무려 4197명이 입건된 뒤 3832명(91.3%)이 기소(구속 43명 포함)된 반면, 폭력을 휘두른 용역업체 직원들은 288명만이 입건됐고, 그나마 재판에 넘겨진 사람도 116명에 불과했다. 구속자는 단 1명도 없었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폭력을 방기하고 느슨하게 조사하고 헐렁하게 처벌하는 경찰·검찰·법원의 책임이 크다”며 “용역폭력을 사들이는 사용자(회사)를 처벌하지 않는 이상 이런 폭력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가는 기본적으로 노동보다 자본에 기울어져 있다. 자본은 이를 믿고 폭력을 사들이고 사병화한다. 방조와 묵인 아래 공공연히 폭력을 행사한다. 이계수 교수는 신자유주의가 본격화한 시기와 민간 경비산업의 ‘발흥’을 연결짓는다.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서양정치사상 전공)는 ‘친자본’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그는 “국가성이 약한 사회부터 먼저 무력 독점이 약해지는 현상이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유럽에서는 여전히 국가가 시장 통제를 하고 있다. 폭력 통제도 마찬가지다. 반면 미국은 건국 과정에서도 무력 통제를 담보하지 못했다. 미국식 자유주의 문화가 이식된 나라일수록 시장이 밀고 들어오면 쉽게 무장해제된다.” 공 교수는 “영주들이 사병을 거느렸던 중세라는 특권적 시대가 끝나고 근대국가가 등장하며 민주주의가 가능해졌다. 기업들이 공장이 사유지라는 이유로 마치 치외법권이 있는 것처럼 사사로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국가 안의 국가’ ‘새로운 중세’가 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우파와 보수가 말하는 이른바 ‘국가 공권력에 대한 도전’은 경찰과 충돌한 서울 용산 참사나 쌍용차 파업보다, 오히려 폭력을 돈으로 사고팔아도 국가가 이를 문제 삼지 않는 용역폭력 현상에서 훨씬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고 했다.
2010년 9월 한국의정연구회가 국회사무처 정책연구과제로 제출한 보고서는 ‘경찰업무와 민간 경비업무의 상호협력 방안’이었다. 보고서는 용산 철거민 참사를 거론하며 “민간 경비업체 역시 민간 분쟁에 있어서 제3자에 해당하지만 경찰과는 다르게 좀더 원활하고 갈등 없이 민간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고 썼다. ‘노사분규 등에 경호경비 요원을 투입, 신속히 재산권 보호 및 신변안전과 시설보호 업무를 수행하겠다’는 컨택터스의 사업모델이 이에 대한 모범 사례로 제시됐다.
경비업계는 불만이다. 일부 불법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업체들 때문에 본연의 경비·경호 업무를 맡은 자신들까지 싸잡혀 욕먹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전의 시장화’는 ‘폭력의 민영화’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홍성수 교수는 “홉스부터 이어온 국가 정당성의 가장 기초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 기능에 생긴 공백을 ‘에스원’이나 ‘세콤’을 통해 돈 있는 사람들이 사들이게 되면 안전에 대한 불평등이 나타나게 된다”고 했다. 시장보다 국가를 더 신뢰한다는, 혹은 그래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조차 누군가의 집에 달려 있는 보안벨과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게 한때는 경찰의 영역이었다는 생각은 이제 들지 않는다. 돈만 있으면 더 안전해질 거라는 믿음은 무의식적인 그 무엇이 됐다. 공진성 교수는 “능력껏 자기를 지키는 세상, 자신들만의 보안 시스템을 따로 가지게 된다면 국가의 의미는 사라진다”고 봤다.

빈익빈 부익부, 안전의 양극화

국가만이 안전을 보장하고 폭력을 독점한다는 홉스·베버식 정치철학은 논쟁적 주제일 수 있다.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는 그의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우리가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걱정”한다. 그는 폭력과 안전을 돈으로 전유하는 민간군사기업과 사설 경호원 등을 언급한다. “부유함이 지닌 유일한 장점이, 요트나 스포츠카를 사고 환상적인 휴가를 즐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라면 수입과 부의 불평등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의 상품화로 인해 돈이 더욱 중요해지면서 불평등 때문에 발생하는 고통이 깊어지고 있다.” 이계수 교수도 같은 지적을 한다. “안전은 점차 각자가 알아서 챙겨야 할 그 무엇이 된다. 안전의 자기책임화가 초래하는 결과는 안전의 시장화와 상품화, 그로 인한 안전 향유의 양극화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누가 그와 겨루랴.” 리바이어던으로 탄생한 국가는, 그렇게 스스로 죽어간다. 국가의 자살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2012년 7월 31일 화요일

농부로 남으려면 범법자가 돼야만 합니까?


이글은 프레시안 2012-07-31일자 기사 '농부로 남으려면 범법자가 돼야만 합니까?'를 퍼왔습니다.
[두물머리, 꼭 그래야 합니까 ·②] "건설사 이익 돕는 공권력 행사"

마지막 4대강 사업 지역인 팔당 두물머리에 행정대집행 영장이 발부됐다. 오는 8월 6일 집행 예정이다. 정부는 유기농지로 사용돼 온 두물머리에 자전거도로와 공원을 만든다며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에게 나가줄 것을 요구했다. 이미 다섯 차례 계고장을 보냈다. 몇 차례 충돌도 빚어졌다.

하지만 이미 30년 넘게 이곳에서 농사를 지어온 농민 입장에선 정부의 일방적인 요구가 답답하기만 하다. 생활 터전을 이루고 살던 곳에서 하루아침에 나가라고만 하는 정부의 방침을 받아들이긴 어렵다.

몇 차례 정부와 대화도 요구했고, 절충안도 제시했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되레 무단으로 토지 점유했다며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견디다 못한 11가구 농가 중 7가구가 대체부지와 저리 융자를 받고 떠났다. 나머지 4가구만이 이곳에서 농사를 짓게 해달라며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물론 이들만 싸우고 있는 건 아니다. 이들 싸움에 오랫동안 지지와 연대를 보내온 천주교 신부들과 생협 조합원들, 시민이 함께 이곳을 지키고 있다. 일반 시민은 이곳에 직접 자신들의 텃밭을 가꾸고 있다. 불복종 운동이다.

이런 이들이 30일부터 두물머리에 유기농 텐트촌을 시작한다. 두물머리 행정대집행 하루 전인 8월 5일에는 전야제를 열고 행정대집행이 진행되는 6일 새벽 6시에는 두물머리에서 유기농지 행정대집행 저지를 위한 행동에 돌입한다. 이후 오후 2시에는 두물머리 신양수대교 11번 교각 밑에서 '4대강 회복과 두물머리 보존을 위한 전국 집중 생명평화미사'를 진행한다. (바로가기 ☞ : 두물머리 유기농지 보존작전(두유작전))

이 과정 속에서 종교인, 학자, 일반 시민, 활동가 등이 (프레시안)에 글을 보내왔다. 왜 두물머리에 유기농지가 필요한지, 일방적인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릴레이 기고글이다. (프레시안)은 30일부터 연속해서 이들의 글을 순차적으로 싣는다. (편집자)

1"국공유지를 불법 점유한 유기농민 4명과 두물머리를 '최후의 보루'로 삼은 일부 좌파단체 앞에서 국가 공권력이 무기력하게 멈춰 서 있다."

지난 6월 23일 (동아일보)(인터넷판)에 실린 '한강1공구 양평 두물지구'의 상황을 묘사한 기사의 한 대목이다. '한강1공구 양평 두물지구'라는 표현만큼이나 참 을씨년스러운 문장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무얼 하라는 것일까. 농민 넷뿐인데 그냥 밀어버리지 왜 그렇게 무기력하게 있냐고? 아마도 철거민들이 용산 남일당 망루에 올라가 우리 말 좀 들어달라고, 우리를 이런 식으로 내쫓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을 때, 저 높은 분도 그렇게 말했을지 모르겠다. 법을 어기고 공권력 조롱하는 거 아니냐고. 왜 그렇게 공권력이 무기력하냐고. 그래서 그들은 결국 법을 구현했고 우리는 시신들을 안아야 했다.

따지고 보면 법(lex)도 일종의 언어(lexicon)이다. 그러나 그것은 '대화어'라기보다는 '명령어'다. 언어의 본질은 소통에 있지만 '법'을 맨 앞에 내세운다는 것은 언어의 중단, 즉 더 이상 대화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말을 독점하는 것, 듣기 없이 말하기만 하는 것. 이 정부는 출범 때부터 '법치'를 귀 따갑게 떠들었는데 아마도 처음부터 '불통'을 자임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생각해 볼 일이다. 언어가 언어 즉 소통이기를 중단하고, 정부와 공권력이 사람들을 추방하며 공동성의 중단을 내비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말이다.

 
▲ 두물머리. ⓒ프레시안(허환주)

2두물머리에서 철거명령을 거부한 채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들이 지금 '불법경작자'인 것은 맞다. 하지만 어떤 점에서 이들은 불법을 저질렀다기보다 불법을 당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들의 농사는 합법이었다. 이들은 당국이 부여해준 '토지 점용권'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정부가 문제의 '4대강 개발'을 명목으로 이 '점용권'을 간단히 취소해버렸다. 농부들이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채 '불법자'가 된 사연이다. 이처럼 범법자가 된 사연은 참 간단하지만, 이들이 거기서 합법적으로 농사를 지어온 역사는 그리 간단치가 않다.

두물머리 농지는 팔당댐을 만들면서 국가에 토지를 강제수용당한 농부들이 댐 건설 이후 새로 생겨난 토지를 가꾸면서 정부와 힘겹게 싸워서 얻어낸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합법적 경작권을 얻어냈다. 그리고 거기서 이 나라 근대 농업 역사상 처음으로 유기농업을 집단적으로 시도했다. 지금의 네 농부가 이어받은 것은 그 농부들의 권리이고, 그 농부들의 농사이자, 그 농부들의 싸움이다. 이것은 이제 4년이 된 정권이 자전거 도로로 간단히 덮어버릴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 '월가점거시위'를 목격하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두물머리를 찾은 적이 있다. 그때 밭에 꽂혀 있는 푯말에서 인상적인 문구를 보았다. '불법경작단.' 전체 11가구 중 지난 해 7가구가 정부의 회유와 압박을 이기지 못해 떠났을 때, 두물머리 농부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불법경작자'를 자임하며 그 땅에 상추를 심고 고추를 심고 토마토를 심은 것이다. "그들이 농부들을 불법경작으로 고발한다면, 우리 모두가 무수하고도 무고한 '피고'가 되자." 지난 4월에 '두물머리밭전위원회'가 출범했을 때 시민들이 선언한 문장이다.

이 무도하다 못해 불쌍하기까지 한 지금의 정부는 그 상추와 고추, 토마토를 심는 '불법적 행동'이 얼마나 무서운 의미를 갖는지 이해를 못하는 것 같다. '하천점용권'에 대한 법원 소송이 엎치락뒤치락 하는 가운데 대법원의 판결을 앞둔 상황에서 행정대집행을 지금 꼭 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당국자 중 한 사람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농민들이 하천점용 소송에서 승소한다면 그때 가서 별도로 손해보상 소송을 내면 될 것이다." (경향신문)

'우리는 지금 철거할 거고, 너희가 법원에서 승소하면 그때 보상받으면 될 거 아니냐'는 식의 답변을 천연덕스럽게 내뱉을 수 있다는 게 정말 놀랍다.

3두물머리에서 기꺼이 '불법경작자'를 자임하며 상추를 심고 고추를 심고 토마토를 심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나는 작년 11월 17일 뉴욕에서 보았던 한 시위 장면이 생각났다. 뉴욕시 당국이 월가 점거 운동의 상징적 장소인 '리버티스퀘어(주코티공원)'를 기습 철거했을 때 이틀 뒤 수만 명의 뉴욕시민들이 맨해튼 거리로 뛰쳐나왔다. 평소 리버티스퀘어를 점거하고 있던 사람들은 수백 명에 불과했고, 정부는 이들 소수의 점거자들이 전체 시민들의 안전하고 쾌적한 공원 이용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정작 시민들은 정부의 철거에 분노를 터뜨리며 도심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날 밤 경찰이 설치한 대형전광판에는 도로에 내려선 사람을 연행하겠다는 문구가 번쩍였고 무장경관들은 수갑을 내비치며 시민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때 예닐곱의 시민들이 천천히, 경찰에게 보라는 듯 도로에 내려섰다. 한 시민이 도로에 내려서면 그는 인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나면 또다른 시민이 뛰어와 그 손을 잡고 도로에 내려서고 다시 인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렇게 해서 그날 수백 명의 시민이 연행되었다.

시민 불복종이었다. 언뜻 보면 그들은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불법보행자들'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민불복종은 개별 법조항을 넘어서 더 근본적인 것에 대한 항의 행동이다. 앞서의 (동아일보) 기자는 '무력한 공권력'이라고 했지만, '공권력', '법의 힘'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라는 물음을 우리는 던져 볼 필요가 있다. 법전에 써 있는 문장들은 그 '힘'을 어디서 가져오는 것일까. 그것은 그 법들을 떠받치고 있는 그 '무언가'로부터 나온다. 그 '무언가'를, 철학자 조르지오 아감벤은 '권위(auctoritas, authority)'라고 했다. 법에 '힘'을 줌으로써 법을 법(실정법)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그 법을 떠받치는 '권위'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원로원이 그런 힘을 가졌다. 원로원은 나라가 위험에 처할 때 '법을 중단시키는' 힘을 합법적으로 소유했다. 아감벤에 따르면 이렇게 비상사태에 처했을 때, 법의 효력을 멈추면서까지도 행사될 수 있는 이 권위가 평상시 '법의 힘'을 가능케 하는 근간이다. '권위'를 가진 사람을 로마에서는 '아욱토르(auctor)'라고 했는데, 이들은 딴 데서 힘을 빌어 오는 자들이 아니라, 스스로 힘을 창출할 수 있는 자들을 뜻했다(이 말들의 어원인 '아우게오(augeo)'는 '증가시킨다'는 뜻이다). 그들이 바로 최고권력자, 즉 주권자였다. 로마에서는 원로원이나, 그 이름이 각별한 아우구스투스 황제 같은 이들이 그랬다. 이 권위로부터 그 힘을 빌어 오지 못하면 법은 효력을 잃어버리고 정무관은 그 직위를 박탈당했다.

근대 사회는 시민들을 주권자로 내세우는 체제이자 시민들의 복종에 의존하는 체제이다. 그러므로 법에 대한 시민 불복종은 표면상으로는 개별적인 법조항 하나를 어기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법의 근간이 되는 권위에 대한 인정의 철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법의 권위에 대한 인정을 철회해도 공권력이 행사하는 물리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권위를 박탈함으로써 공권력이 갖는 외견상의 힘은 그대로 있다. 경찰봉과 방패의 힘도 그대로이고 공사용 굴착기의 힘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사라지는 것은 공권력이 가진 '공적 성격'이다. 그런데 그것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공권력과 사적폭력을 구별할 수 없게 된다. 앞서의 뉴욕 시민들은 리버티스퀘어의 철거를 단행한 뉴욕시 당국의 행동에서 공적 성격을 박탈한 것이다. 경찰에 끌려가지만 그 철거를 공무집행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을 불복종을 통해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공적 성격이 부인된 공권력이란 조폭 등 사적 패거리들이 휘두르는 폭력과 다르지 않다.

4몇 주 전에 밀양에 갔을 때 주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송전탑 설치를 강행하는 한전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정부를 향해 한 노인은 내게 말했다. '이 정부가 제 나라 국민을 침략하고 있다'고. 용산의 철거민들도,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도, 강정의 사람들도 마찬가지 심정일 것이고, 그들의 고통을 깊이 공감하는 많은 시민들 또한 그럴 것이다. 한 나라의 많은 시민들이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을 때에도 정부가 '법'과 '공권력'에 대한 복종만을 요구한다면, 사람들은 정부에 부여된 '공공성'을 박탈하게 될 것이다. 즉 법에 힘을 주는 권위에 대한 인정을 철회할 것이다. 그 순간 정부는 형식상으로만 정부이고 실제로는 더 이상 정부가 아니게 된다. 시민들에게는 정부가 정부라기보다 제 집단의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일개 패거리로 비치는 것이다.

두물머리에서 나는 이것을 느낀다. 농부는 농부로 남기 위해 법을 어기는데 공동체와 생태라는 공공의 가치를 구현하는 것처럼 보이고, 정부는 법을 지키기 위해 공권력을 행사하는데도 건설업자들의 사적 이해에 복무하는 것 같은 느낌말이다. 지난 40년 간 합법적 점용권을 갖고 친환경 농사를 고민한 사람들에게 그 '점용권'을 간단히 빼앗아 범법자로 만들고, 그런 권리가 마구 허용될 수 없는 것임에도 마치 여기를 허용하면 전국적으로 난리가 날 것처럼 떠들어대는 것(그런 난리가 났을 거면 지난 40년간 이미 무수히 났을 것이다). 게다가 이곳 농부들만이 아니라 여러 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음에도, 자전거 도로와 잔디공원을 반드시 이곳에 깔아야 한다고, 그것도 조금의 우회조차 할 수 없다고 고집하는 것. 35억이라는 예산을 지금 당장 쓰지 않으면 이 나라에서 사라지는 듯 법석을 떠는 것(이 공사에 쓰지 않으면 국고로 들어가 다른 곳에서 시민들을 위해 쓰일 수도 있고, 최소한 예산을 아끼는 일이라도 될 터인데 말이다). 내 눈에는 이 모든 것들이 올해 임기가 끝나는 특정인과 이 사업에 관여하는 특수한 이해당사자들을 위한 것으로만 보인다.

정말 안타깝게도 이 정부는 법을 집행하면서 법의 근간을 허물고 공권력을 휘두르면서 그 공공성을 잃어가고 있다. 점차 많은 시민들이 그 권위를 부인해 가는데, 정작 정부와 법의 토대가 무너져 가는데, 그 위에서 칼춤을 추고 삽질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두물머리의 네 농부는 비록 '합법적 점용권'을 잃고 '불법경작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농부로 남을 수 있다. 그러나 법의 이름으로 힘만을 과시하는 정부가 있다면 그 정부는 더는 정부로 남지 못할 것이다.

 /고병권 수유너머R 연구원

2011년 12월 12일 월요일

선관위 테러는 단독범행? 보수언론의 여론조작 무섭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1-12-12일자 기사 '선관위 테러는 단독범행? 보수언론의 여론조작 무섭다'를 퍼왔습니다.
[용가리통뼈뉴스] "친구 한두명, 수십만원이면 저렴하게 된다"

조현오의 경찰은 ‘10.26 선관위 사이버 테러 사건’을 ‘술김에 저지른 우발적 단독 범행’이라고 결론 내렸다. 주범으로 지목된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의 비서 공씨 외에 국회의장의 비서, 친이계 전현직 의원의 비서들, 여기에 현직 청와대 행정관, 전직 검찰 수사관까지 범행 전에 공씨가 만나고 일부 통화를 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아무 일도 아니었단다. 범행에 가담했거나 그렇지 않았다는 인사들 대부분이 최구식 의원의 고향이자 지역구인 진주와 얽혀 있지만 아무 일 아니란다. 하물며 최구식 의원의 사촌형이대검 중수부장인들 아무 일이겠는가?

경찰이 밝히지 못했거나 아예 밝힐 마음이 없었던 건 배후뿐만이 아니다. 최소 수백대의 좀비 PC를 동원해 국가기관에 사이버 테러를 감행하는 ‘비싼 일’을 그냥 해줬단다. 공씨가 체포되기 전 ‘내가 한 일이 아닌데 다 뒤집어 쓰게 생겼다'고 말했다는 증언도 입막음을 했는지, 애초에 잘못 전해진 말인지 아무 일 아닌 것으로 되었다. 공씨가 몇달 전부터 디도스 공격에 대해 물었다는 공범측의 진술도 언론에 한줄 나오고 그만이었다.


10.26 재보선 당일날 있었던 중앙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에 대해 9일 오후 서울 미근동 경찰청에서 황운하 경찰청 수사기획관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자, 그럼 경찰 발표대로 스물일곱살인 국회의원의 9급 비서가 그저 잘 보이려고 술김에 아는 사람 동원해서 국가기관의 전산시스템을 정교하게 특정 기능만 2시간 동안 마비시키는 일이 하루 만에 가능한 일인지 따져보면 될 일이다. 전문가의 판단이 중요하고, 언론이 전문가를 취재해 보도하는 일이 중요하다.

KBS는 12월4일만 해도 이렇게 보도했다. “규모로 봐서는 하루 만에 준비하기 어려울 것… 아마도 사전에 어느 정도 준비가 된 것으로 보인다.” 국내 최고의 보안 전문가 중 한 명(권석철 대표)이 내놓은 평가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며칠 뒤 KBS의 전문가 인터뷰는 달라졌다. 12월7일 이름을 숨긴 보안 전문가의 말은 이랬다. “그런 친구 1~2명만 있으면 서로 맡은 역할을 할 수가 있다.” 이틀 뒤 경찰은 ‘단독 범행' 결론을 내렸고 KBS는 더이상 전문가를 찾지 않았다.


중앙일보 12월7일 3면 .

중앙일보는 디도스 공격의 저렴성에 대해 지면을 연일 할애했다. 12월6일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돈을 조금만 받고 해줄 수도 있다'는 고려대 교수 인터뷰를 실었고, 12월7일자 신문에서는 ‘디도스 공격, 수십만원 주면 OK… 저렴하게 해드립니다’라고 보도했다. 공권력에 대한 도전에 거품 물던 중앙일보가 유독 이 사건에서는 양아치급 범죄 집단이 인심 좋은 이웃 상인쯤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어지간한 전문가들은 선관위 사이버 테러의 3대 성공 조건으로 ‘실력과 준비 시간, 돈’을 꼽는다. 3박자가 갖춰져도 2시간 동안 특정 기능만 마비시키는 것이 가능할 지 의심한다. 그리하여 ‘제3의 조력'이 필요하다고본다. KBS와 중앙일보뿐 아니라 방송과 조중동은 결코 깊게 다루지 않는 내용이다.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선거가 집권 여당 관계자에 의해 사이버 테러를 당했는데 경찰은 배후도, 모의도, 검은 돈도 없었다며 아무 일 아니란다. 거대 언론은 아무 일 아닐 수 있는 논거를 제공해 결과적으로 경찰을 도왔다. 아·무·일, 아주 무서운 일이다. 

2011년 11월 29일 화요일

[사설] ‘경찰서장 폭행사건’ 침소봉대할 일 아니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1-28일자 사설 '[사설] ‘경찰서장 폭행사건’ 침소봉대할 일 아니다'를 퍼왔습니다.
경찰관에 대한 폭력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흥분한 시위대 몇몇의 과격한 행동은 행위당사자뿐 아니라 집회 참가자 전체를 욕되게 한다. 때로는 집회 자체의 정당성마저 훼손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촛불집회 도중 일어난 박건찬 서울 종로경찰서장에 대한 시위대의 폭행 사건도 이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공권력의 완전붕괴’ ‘무법천지가 된 나라’를 의미할 만큼 심각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누가 뭐래도 아직까지 시위현장에서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보이는 것은 힘없는 시민들이 아니라 경찰이다. 평화적인 집회를 강경진압해 시위대를 자극하는 것은 오히려 경찰이다. 국회의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안 날치기 통과 이후 열린 집회에서도 경찰은 엄동설한에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물대포를 쏘았다. 경찰서장에 대한 폭력에 앞서 ‘공권력을 동원한 경찰의 폭력행위’가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박 서장이 보인 ‘무모한 용기’다. 경찰의 물대포 발사 등으로 시위대가 매우 격앙된 상태임을 모를 리 없는데도 시위대 한가운데를 정면으로 뚫고 지나가려 했다. 집회·시위 현장에 나온 경찰서장이라면 시위대의 정서와 분위기를 면밀히 파악해 이에 상응하게 행동하는 것이 기본상식인데도 이를 무시했다. ‘시위대를 일부러 자극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고의적인 폭력 유발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박 서장의 지각없는 돌출행동이 이번 사태를 자초한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경찰과 시위대의 폭력은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경찰의 강경진압은 시위대의 폭력을 부추기고 이는 또다시 경찰의 강경진압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폭력시위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공권력을 앞세운 경찰의 폭력행위 또한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경찰이 물대포 발사로 국민에게 위해를 가한 행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으면서 경찰서장에 대한 폭력 문제만 침소봉대하는 것은 건전한 시위문화 정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여당과 보수언론들이 이번 사건을 ‘호재’ 삼아 자유무역협정 비준안 날치기 처리의 본질을 희석하려 하는 태도 역시 전형적인 ‘꼬리로 몸통 흔들기’다. 그런다고 날치기 처리의 문제점이 덮어질 것도 아니다.

[사설]‘서장 폭행’이 반 FTA 강경진압 빌미 될 수 없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1-11-28일자 사설 '[사설]‘서장 폭행’이 반 FTA 강경진압 빌미 될 수 없다'를 퍼왔습니다.
박건찬 종로경찰서장이 지난 26일 밤 광화문 광장에서 시위대에 둘러싸여 폭행당했다며 경찰이 강경진압 태세로 돌아섰다. 그러자 한나라당과 보수언론들은 “명백한 야권세력의 폭거이자 공권력에 대한 테러”로 규정하고 시위대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도 어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제복을 입은 경찰관에 대한 폭력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말하며 강경진압 방침을 두둔했다. 시위 현장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진 사건을 두고 무슨 엄청난 사태가 일어난 것처럼 주장하며 강경대응을 외치는 풍경은 ‘공식’처럼 익히 보아왔던 바다.

우리는 결코 폭력을 미화하거나 두둔할 생각이 없다. 박 서장에 대한 폭행이 있었다면 사실을 확인하여 당사자를 처벌하면 된다. 그러나 폭행 사건이 일어난 배경은 도외시한 채 공권력이 무시당한 것만 내세우며 강경진압에 나서는 것은 전형적인 논점 흐리기식 대응이라는 비판을 면할 길 없다. 우발적인 폭력 현장을 정치 공세와 여론몰이를 통해 부각시켜 사안의 본질인 FTA 반대 운동을 묻으려는 발상임은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일이다. 일부 언론은 연초 미국 경찰이 워싱턴 DC의 빈센트 그레이 시장이 연좌데모를 하자 곧바로 수갑을 채운 것을 거론하며 공권력 앞에서는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양국 간 정치적·사회적 배경이 다른 것을 무시한 기계적인 대입이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강경진압의 구실로 삼는 박 서장에 대한 폭행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점이다. 폭행의 당사자로 지목돼 긴급체포된 시위참가자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실제 화면상으로는 시위대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박 서장이 직접 폭행당하는 장면이 확인되지 않는다. 종로서가 폭행의 증거라고 언론사에 제시한 사진의 박 서장 머리 주변의 손은 종로서 형사들의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박 서장이 시위대를 비집고 들어간 배경도 의문이다. 아무리 공무집행이라 해도 경찰복 차림의 종로서장이 흥분한 시위대 사이에 들어간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위험한 상황임을 알면서 일부러 들어간 것이라면 매우 부적절하고 무모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공권력은 마땅히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시위에 대한 권리 역시 보장돼야 한다. 집회와 시위에 관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생명이다. 경찰서장이 폭행당했다고 국민의 이익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FTA 날치기 통과에 항의하는 시위 자체를 막아서는 것은 용인될 수 없다. 우리의 시위 문화도 개선되고 있다. 이런 마당에 극히 우발적인 사건을 빌미로 경찰이 강경대응하는 것은 오히려 시위대를 자극할 뿐이다.

2011년 11월 25일 금요일

[사설] 영하 날씨에 물대포는 반인권적 폭력이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1-24일자 사설 '[사설] 영하 날씨에 물대포는 반인권적 폭력이다'를 퍼왔습니다.
그제 저녁 서울광장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날치기 규탄 촛불집회 뒤 행진하려는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물대포를 쏘았다. 여러 측면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공권력 남용 행위다.
우선 체감온도 영하 10도의 날씨에 물대포를 쏜 것 자체가 과잉대응일 뿐 아니라 심각한 인권침해다. 맞는 즉시 얼굴에 고드름이 얼고 살점이 찢어져 나가는 피해사례까지 있었다니 공권력 행사가 아니라 사실상의 폭력행위에 가깝다. 오죽했으면 원희룡 한나라당 최고위원마저 “체감온도 영하의 날씨에 물대포를 쏘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며 자제를 요청했겠는가. 경찰의 이번 조처를 더욱 묵과할 수 없는 까닭은 불과 2주 전 여의도에서 열린 에프티에이 저지 범국민대회에 참가했던 박희진 한국청년연대 대표가 물대포를 정면으로 맞고 고막이 파열되는 불상사가 있었는데도 경찰이 또다시 물대포를 쏘았다는 사실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강경대응이 내부 지침에 따른 것이어서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찰청은 지난달 21일 전국 지방경찰청에 지침을 내려 도로를 점거하고 해산명령을 따르지 않는 경우 곧바로 물대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도로로 나섰다고 곧바로 물대포를 쏘는 것은 명백한 과잉대응이다. 물대포는 자칫 인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제해야 하고, 도저히 다른 수단이 없을 때만 최후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경찰의 강경대응은 이명박 정부의 천박한 인권의식 수준과 무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좀더 범위를 좁혀보면 경찰 수뇌부도 문제가 심각하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파출소 난동이나 장례식장 폭력 등 사건이 터질 때마다 총기를 과감하게 사용하라는 지시를 남발한다. “조폭에게 인권은 고려하지 않겠다”는 말도 했다. 인권 무개념의 표본이다. 이강덕 신임 서울청장도 이에 못지않다. 영포라인으로정권,한미,ㄹㅆㅁ, 이 대통령 측근이라는 그가 취임한 뒤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거푸 일어나는 것을 보면 정권 지킴이로 총대를 메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한 모양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날치기 처리는 1%를 위해 99%의 희생을 요구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이에 대한 분노는 정당하고, 촛불시위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헌법적 권리다. 이 대통령은 물대포 사용으로 인권을 침해하고 경찰력을 남용한 경찰 수뇌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