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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0일 금요일

“난 돈만 벌면 그만” 적나라한 자본의 내면


이글은 진실의길 2013-05-09일자 기사 '“난 돈만 벌면 그만” 적나라한 자본의 내면'을 퍼왔습니다.
[분석] 이남자의 솔직함을 어찌하오리까
<돈을 좋아하는 남자 전동수 사장>


이남자의 솔직함을 어찌하오리까

지난 1월 브라질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클럽 사장은 불길이 치솟자 손님들에게 돈을 받겠다며 입구를 막았고 결국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손님 245명이 질식해 숨졌고, 100여 명이 다쳤습니다. 10여 년 전 동인천에서도 그와 똑같은 일이 벌어져 57명의 학생들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저런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이 벌어진 이유는 클럽의 사장이 ‘나는 돈만 벌면 그만’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제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전동수 사장은 기자들에게 불산 누출 사고에 관한 질문을 받고 “몰라요. 나는 돈만 많이 벌면 되잖아”라고 답했습니다. 이남자가 14년 전 화재가 났던 동인천 라이브호프의 사장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프로이트에 의하면 말실수는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무의식중에 새어 나온 말일 겁니다. 저런 비상식적인 말을 의식적으로 하는 바보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해가 쉽습니다. 의식적인 말이라면 말의 배경이나 의도를 생각해야겠지만, 무의식중에 흘러나온 내면의 소리는 액면 그대로의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 남자는 정말, 진심으로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토록 적나라하게 인간의 추악한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지난 1월 화성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에서 불산 희석액이 유출돼 협력업체 직원 4명이 부상을 입고 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삼성 측은 자신들의 책임을 부인하며 유가족 앞에 나타나지도 않고 현장을 취재진에게 철저히 통제하는 등 사건을 은폐하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권오현 부회장이 재발방지약속이 포함된 대국민사과를 발표한 것은 사건이 발생한지 한 달도 넘은 뒤였습니다. 지난 2일 이곳에서 일하던 또 다른 협력사 직원 3명이 부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습니다. 사건이 아직 조사중이지만 지난번 사고가 일어난 장소와 동일한 곳에서 비슷한 작업을 수행하다 벌어진 사고인 만큼 삼성측이 책임을 피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자신이 관리하던 사업장에서 사람이 죽고 다친 와중에도 ‘난 돈만 벌면 그만’이라 말하는 사장님의 패기가 모골을 송연하게 합니다. 수천 직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있는 이남자의 솔직한 발언은 몇일 전 공개된 남양유업 말단사원의 막말보다 수십배는 서늘하게 들립니다.
많은 국민들이 저 남자의 말을 듣고 분개하였으나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도 과연 그랬을지는 의문입니다. 저 남자가 근무하는 모 기업의 ‘역사’를 생각하면 저런 발언이 나온 배경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번 사건은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 사건이나 삼성X파일사건, 노조분쇄공작 등과 비교하면 아주 ‘경미한’축에 속합니다. 그런 일들이 터졌을때 삼성이란 기업이 어떻게 대응했었는가를 떠올려 보면 저런 뻔뻔함이 일종의 ‘기업문화’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불산누출사고가 발생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국가가 도덕적 경영 강제해야

물론 모든 기업가들이 저런 멘탈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모럴 헤저드’, ‘기업가정신의 망각’ 같은 규탄이 쏟아져 나오지만 사실 그들은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특별한 도덕을 가진 사람들도, 특별한 도덕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아닙니다. 자본가 중에는 누구든 있을 수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도 있으며, 남양유업의 홍원식도 있습니다. 모든 자본가들이 선하길 바라는 것은 마치 소개팅 상대가 매번 조인성, 김태희 이길 바라는 것만큼이나 낭만적입니다. 
기업과 개인의 차원에서 부도덕한 기업인, 기업을 규탄하는 것은 비교적 쉽고 간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훈계와 질책만으로 자본가에게 도덕을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자본가의 선의를 믿을 수 없다면, 그들이 ‘이윤의 명령’을 받아 부도덕한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적인 견제가 필요합니다. 
4월 임시국회가 끝났지만 국회를 요란하게 달궜던 경제민주화관련 법안들은 결국 아무것도 처리되지 못한 채 6월국회로 넘어갔습니다. 이번에 논의됐던 대표적인 경제민주화 법안인 가맹사업법(프랜차이즈법)과 공정거래법(공정거래위원회 전속 고발권 폐지) 개정안은 지난 6일 국회 정무위원회를 만장일치로 통과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의 반대에 부딛혀 제동이 걸렸습니다. 여당의 미온적 태도와 경제단체들의 적극적로비로 볼 때 이 법안들이 6월이 아니라 박근혜정부 임기내에 통과될 수 있을지조차 의문입니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논의된 법안들은 본사가 대리점에게,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구체적인 규제들이 담긴 법안들입니다. ‘갑’에게 도덕적 경영을 강제하는 법안인 것이죠. 이것을 반대하는데 사활을 걸고 있는 전경련을 비롯한 경제5단체의 속내는 ‘나는 돈만 벌면 돼’라는 전동수 사장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그들은 대한민국 기업인들의 이해를 직접적으로 대변하는 단체들이며, 그들이 보여주는 도덕수준은 곧 대한민국 기업인들의 평균입니다. 기업인들의 도덕수준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가 그것을 강제해야할 필요가 있음을 말해줍니다.  
‘나는 돈만 벌면 돼’라고 생각하는 기업인은 언제, 어디에든 존재합니다. 다만 전동수 사장처럼 솔직하지 않을 뿐이죠. 경제민주화법안같은 온건한 개혁법안조차 통과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경제는 도덕없는 ‘승냥이’들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 * 시사블로거 다람쥐주인님이 9일자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글을 필자의 동의하에 소개 합니다 - 편집자 )

편집부

2013년 1월 12일 토요일

[기고]“국가와 자본의 폭력에 언제까지 관대할 것인가”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3-01-11일자 기사 '[기고]“국가와 자본의 폭력에 언제까지 관대할 것인가”'를 퍼왔습니다.
용산참사 4주기를 맞아

이상림, 양회성, 한대성, 윤용헌, 이성수.

1월 20일 열사력에 빼곡히 적혀있는 이름들을 본다. 이들의 이름은 이명박 정권에 의해 여전히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혀 있다. 구속된 철거민들의 법원 판결문에서는 다섯 철거민들의 죽음의 책임에 대해서는 전혀 묻고 있지 않다. 오직 진압과정에서 사망한 경찰특공대원 한 명의 죽음에 대해서만 묻고 있을 뿐이다. 판결문에서 다섯 철거민들의 이름은, ‘피고인들(구속 철거민들)은 망 이상림, 망 양회성, 망 한대성, 망 윤용헌, 망 이성수와 공동공모하여.... 경찰을 죽였다’는 것으로 호명된다. 여전히 서럽고 서럽게 불리우는 이름들이다.

  
ⓒ양지웅 기자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박근혜 당선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용산참사 4주기 범국민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당선자에게 용산참사 진상규명과 구속철거민 사면을 촉구하고 있다.

참사를 빚은 용산4구역의 개발은, 참사발생 4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 개발이 멈춰진 채로 허허벌판으로 남아있다. 망루가 불탄 남일당 자리는, 철거민들을 폭력적으로 내쫒던 철거용역 깡패들이 주차장 터로 사용하면서 임시영업을 하고 있다. ‘그렇게 허허벌판으로 방치할 걸, 왜 그리 빨리 내쫓으려 했냐’는, 유가족들의 애통함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지난해 SJM등 노동현장에서 ‘컨택터스’라는 경비용역이 진압경찰과 유사한 복장, 장비를 소지하고 노동자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해 사회적 비난이 일었다. 이 사건을 보면서 용산참사 당시 현장을 누비며 ‘POLICIA’라고 적혀있는 사제 방패를 든 이들이 떠올랐다. 이들은 경찰로 오인되었던 철거용역들이었다. 당시 철거민들의 퇴로를 차단하고, 남일당 건물 3층에서부터 집기들을 불태우며 연기를 위로 올려 보냈던 용역들과, 경찰과 함께 물대포를 쏘던 용역들은 집행유예와 벌금형의 가벼운 처벌만 받았다.

무리하고 성급한 진압을 한 경찰과 살인적인 개발을 밀어붙인 건설사, 폭력적인 철거용역은 제대로 처벌받거나 책임지지 않았다. 오직 철거민들만이 모든 책임을 지고 4~5년의 형을 받아 4년째 감옥에 있다. 대통령의 측근과 재벌 총수는 석방되지만, 용산 안건을 ‘독재’적으로 막은 이가 인권위원장에 연임되었지만, 철거민들에 대한 각계의 사면 요구는 거절당했다.

여섯 명이 죽었는데도 처벌받지 않고, 책임지지도 않은 경찰은 같은 해 쌍용차 노동자들을 똑같은 방법으로 폭력진압 했고 국가폭력은 더욱 극심해 졌다. 잘못된 개발의 책임을 면피한 용산4구역 시공사 삼성과 대림은 제주 강정에서 불법적인 해군기지 공사를 강행하며, 곳곳에서 살인을 멈추지 않고 자본의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재대로 책임 지워지지 않은 용역깡패들은 자본의 사병으로 노동자와 철거민들을 폭행하며 활개를 치고 있다.

국가와 자본의 계속되는 폭력에 ‘우리의 관용이 언제까지 갈 것인가’

 
ⓒ이승빈 기자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금융연수원에 위치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용산참가 유가족인 전재숙씨가 용산참사 관련 구속 철거민 사면과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및 강제퇴거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이처럼 용산 투쟁은 2009년 1월 20일에 있었던 단일 사건의 문제를 해결하는 투쟁만이 아니다. 무관용 원칙에 입각한 국가와 자본의 계속되는 폭력에 ‘우리의 관용이 언제까지 갈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용산참사의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으면 이러한 폭력은 반복되고 인간의 존엄은 계속해서 짓밟힐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가 무관용으로 폭력기구들을 지켜보고 맞서야 한다.

1월 20일은 국가와 자본의 폭력에 의해 다섯 철거민 열사들이 돌아가신 용산참사 4주기가 되는 날이다. 이번 4주기는 이명박 정권 시대에서 박근혜 정권 시대로 넘어가는 정권이양의 시기이기도 하다. 이는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힘을 모아내야 할 때이다.

이번 4주기는 다시 ‘용산참사 4주기 범국민 추모위원회’를 구성해 구속철거민의 사면과 참사의 진상규명 그리고 또 다른 용산을 막기 위한, 강제퇴거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추모위원들을 모아나갈 것이다. 그리고 19일(토)에 용산참사 현장과 서울역에서 범국민 추모대회를 통해, 다시금 “여기, 사람이 있다”를 외칠 것이다. 

화마에 휩싸인 이미지로만 기억되는 용산이 아닌, 끈질긴 싸움을 기억하고 연대해온 우리가, 용산을 잊지 않은 우리가, 책임자들을 다시 소환해 내자. 용산4주기, 국가폭력과 자본의 폭력에 맞선 우리의 힘을 모아내자!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

2012년 9월 2일 일요일

이건 ‘기부’가 아니무니다


이글은 한겨레21 2012-09-03일자 제926호 기사 '이건 ‘기부’가 아니무니다'를 퍼왔습니다.
[표지이야기] ‘국가 또는 지자체 정책에 찬성 또는 반대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은 기부할 수 없는 법령 예고… “기부는 표현의 자유로서 보호받아야”

제주 해군기지 반대 활동을 벌이는 서귀포시 강정마을회의 후원 계좌를 경찰이 조사하고 나섰다. 강정마을회가 기부금품 모집 등록을 하지 않은 채, 인터넷 사이트에 마을회 이름의 계좌를 게시하고 모금 활동을 벌였다는 게 이유다. 강정마을은 지난 5년간 후원계좌로 4억원을 모았고, 이 중 3억5천만원을 행정소송 비용과 벌금형을 받은 마을 주민 지원 등에 집행해왔다.
‘등록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허가제’로 기능하고 있다. 지자체나 행안부가 기부사업 내용을 멋대로 판단해 등록을 거부할 수 있다. 심사위원회도 따로 없다. 공무원이 결정하면 그만이다.

» 제주 강정마을은 기부금품 모집 등록을 하지 않은 채 인터넷 사이트에서 모금 활동을 벌였다는 이유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강정마을평화대행진에 참여한 참가자 1천여 명이 지난 7월31일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해변 공장 앞에서 출발하는 모습. 서귀포/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등록한 기부는 1%도 안 되는데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은 지난 5월 언론 보도를 보고 경찰 조사 사실을 알았다. “후원금 모금은 2007년부터 해오던 일이다. 제주 지역의 각 마을은 다 그렇게 후원금을 받아 마을 일에 쓴다. 도지사에게 등록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아무런 안내가 없다가 갑자기 불법 운운하며 수사하니 황당하다.” 법률 자문을 맡은 백신옥 변호사는 “기부금 단체가 대부분 지키지 않아 사문화된 법을 수사기관이 갑자기 들고 나와 강정마을에 적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기부금품법)은 회원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공개적 장소에서 1천만원 이상의 기부금품을 모집할 때는 지방자치단체(10억원 미만)나 행정안전부(10억원 이상)에 사전 등록하도록 돼 있다. 경찰은 강정마을회가 이 규정을 어겼다고 보고 수사하고 있다. 하지만 2010년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연간 기부금 총액은 10조300억원인 데 비해 기부금품법에 따라 행정관청에 등록한 기부 규모는 1145억원에 그친다. 전체 모집 시장의 1% 수준에도 못 미친다.
강정마을회 후원 계좌를 개설한 강 회장은 지난 6월 경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한 차례 받은 뒤 피의자로 신분이 바뀌자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기부금품법 위반으로 기소돼 법정에 서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성도 따져볼 계획이다. 마음에 걸리는 건 경찰이 후원금을 보낸 기부자들의 계좌까지 조회하고 신상정보를 수집했다는 사실이다. “제주경찰청에서 은행에 금융거래 정보 제출을 요구해 강정마을 계좌의 입금자 인적 사항을 파악했다. 은행이 입금자에게 최근 이를 통보해 강정마을회로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백신옥 변호사)
강정마을회는 ‘합법화’도 시도했다. 경찰 수사를 받는 중에 후원금 5억원을 목표로 기부금품 모집 등록을 제주도에 신청한 것이다. 모집 목적은 ‘해군기지 문제의 민주적 해결을 위한 활동 지원’ 등으로 적었다. 제주도는 행안부의 법률 검토를 받아 ‘불가하다’고 지난 6월28일 강정마을회에 통보했다. 기부금품법이 규정한 11개 분야의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강정마을회는 “기부금품법이 명시한 환경보전사업, 시민참여사업, 공익사업 등에 해당한다”고 설명했지만 행안부 관계자는 이렇게 반박했다. “공익활동이라면 대다수가 찬성하고 지지해야 하는데 찬반 의견이 엇갈리는 사안이라서 갈등이 커질 위험이 있다. 이런 문제는 불특정 다수에게 후원금을 모집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
애초부터 합법적으로 대중 후원금을 모집할 길이 강정마을에는 없었다는 뜻이다. 강정마을회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후원 계좌를 내렸고 후원금도 크게 줄었다. 백신옥 변호사는 “대법원에서 패소한 행정소송 탓에 제주도가 강정마을회에 소송 비용 3469만여원을 청구했다. 삼성물산 등도 업무방해죄로 주민들을 고발하고 손해배상금도 청구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강정마을이 ‘빚더미’에 올라앉을 날이 다가오고 있다.
정부가 기부금품법을 시민사회 활동을 억누르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등록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허가제’로 기능하고 있어서다. 지자체나 행안부가 기부사업 내용을 멋대로 판단해 등록을 거부할 수 있다. 심사위원회도 따로 없다. 공무원이 결정하면 그만이다. 또 기부금품 등록 비율이 1% 미만이라서 특정 사회활동을 형사처벌하는 수단으로도 검찰이 활용한다.

»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경우 기부금품 모집을 등록할 수 없다는 내용의 기부금품법 개정안을 행정안전부가 입법 예고한 것과 관련해, 민주통합당 이찬열·진선미 의원이 지난 8월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한 입법토론회’를 열고 있다. 진선미 의원실 제공

강정마을도, 촛불시위도… 못박아 ‘거부’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활동이 그랬다. 서울중앙지검은 촛불집회 과정에서 회칼 테러를 당해 시민의 치료비를 모금한 김아무개(46)씨를 기부금품법 위반과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1천만원 이상을 모금했는데 기부금품법에 따른 등록을 하지 않았고 치료비 외에 택시비 등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또 촛불집회와 관련한 광고를 게재하려고 기부금 1900만원을 모집한 대학생 김아무개(27)에게 세 차례나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도 했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사회활동에 대해서는 기부금품을 모집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이런 메시지를 이제는 법률에 못박기로 했다. 행안부는 8월3일 기부금품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명분은 법률명에 ‘기부문화 활성화’를 추가하고 기부금품 모집을 원칙적으로 등록해주고 일부만 규제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악마는 각론에 숨어 있다. 등록할 수 없는 규제 사업 항목이 문제다. △영리·정치·종교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국가 또는 지자체 정책에 대한 찬성 또는 반대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 △재판·수사 중인 사건에 관여할 목적으로 하는 사업 △법령 위반 등 불법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
공익변호사모임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는 “정부 정책에 대한 시민사회의 여론 형성을 원칙적으로 틀어막겠다는 취지”라고 평가했다.
입법예고안이 알려진 7월2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이 맹형규 행안부 장관에게 물었다.
“시민단체라는 것이 어떤 역할을 한다고 보십니까?”
“정부가 하지 못하는 구석구석의 국민이 필요로 하는 부분들의 일을 하는 단체로 알고 있습니다.”
“시민단체는 국가 정책이 제대로 가는지에 대한 감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당연히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정부 입법예고안은) 추상적이고, 광범위하게 정부 정책에 찬성과 반대하는 경우에는 기부금품을 모집할 수 없는 걸로 돼 있다. 이유가 뭡니까?”
“정책 현안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게 많잖아요? 옛날의 광우병 이런 것들. 기부금품 모집을 허용할 경우에 지역 갈등을 조장하거나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 때문에 이렇게 만든 겁니다.”
“사실상 시민단체의 역할을 마비시키겠다는 의도인 게 너무나 명백하군요.”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은 거세다. 한상민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는 “어처구니가 없다”고 했다. “시민사회의 활동 근거, 시민의 사회참여를 아예 부정하겠다는 발상이다. 환경보호 활동하다가 정부가 이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정책을 뒤늦게 내놓으면 그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얘기인가?”
박영선 참여사회연구소 실장은 기부금품법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시민의 자발적 기부 참여 행위를 국가가 차단하고 특정 영역에 가둘 필요가 없다. 무질서한 기부금품 요구나 난립은 형법으로 규율하고 투명성을 확보하는 사후 관리에 집중하면 된다.”

“정책 현안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게 많잖아요? 옛날의 광우병 이런 것들. 기부금품 모집을 허용할 경우에 지역 갈등을 조장하거나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 때문에 이렇게 만든 겁니다.”-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

» 한겨레21 926호 표지이야기 기부금 현황
단속에 초점 맞춘 1951년 철학 그대로

기부금품법은 사실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애초에 기부활동을 금지하려는 목적으로 제정됐기 때문이다. ‘기부의 자유’ ‘기부의 활성화’를 열망하는 21세기 기부문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옷이다.
1951년 한국전쟁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민간단체들이 반강제적 모금행위를 벌여 재산권을 침해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이에 ‘누구든지 기부금품 모집을 할 수 없다’는 기부금품모집금지법을 제정했다. 다만 ‘국제구호, 천재지변 구호, 자선사업 등 법률이 규정한 공익사업에만 기부금품 모집을 허가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문제가 발생했다. 1997년 7월 ‘북한 어린이 살리기 의약품지원본부’가 북한 주민을 도우려고 현금과 의약품을 모집하겠다고 나섰는데 정부가 불허했다. 지원본부는 행정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원고 승소 판결했다. “북한이 반국가단체라는 사정이 기아와 질병으로 고통받는 북한 주민에 대한 구호와 지원 자제를 금할 명분이 되지 못한다. 국제구호에 유독 북한 주민만 제외할 이유가 없다.” 결국 1998년 5월 이 법률은 헌법재판소에서 생명력을 잃는다. △행복추구권을 제한하고 △기부행위의 허가 여부를 행정청의 재량 행위로 하며 △기부행위의 모집 목적을 지나치게 제한해 위헌이라는 결정이 나왔다.
기부금품법 모집 허가 범위를 넓히고 그 사용 결과를 공개하도록 하는 조항을 추가한 개정안이 만들어졌는데, 이 법률도 2010년 헌재 심판대에 올랐다. 이번에는 합헌이었다. “기부금품 모집의 권리를 부정하고 있지 않으며 옛 기부금품법과 달리 금지가 아니라 과잉모집 규제와 적정사용에 목적을 둔” 법률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조대현 당시 재판관은 위헌이라고 반대 의견을 냈다. “기부행위는 기부자의 자유 의사에 따라 이뤄지는 것으로 모집 목적이 위법행위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해로운 행위라고 볼 수 없다. 모집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위법행위는 형법 등이 규제하고 있으므로 기부금품의 모집을 금지하거나 허가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없다.” 시민사회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행안부는 정부 정책에 찬성·반대하는 기부금품 모집을 규제하는 새로운 입법예고안을 냈다. 염형국 변호사는 “국민의 자유로운 기부를 국가가 지원하고 장려하는 방향으로 기부금품법을 운영해야 하는데, 기부활동을 입맛대로 규제·통제하겠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부행위는 ‘표현’이며, 기부를 규제하는 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법률가들도 있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기부할 것을 권고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로서 보호받아야 한다”며“상업적 거래를 권고하는 광고가 표현의 자유로 인정받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사무총장을 지낸 정연순 변호사는 기부행위를 “정치적 표현”이라고 진단했다. “1970~80년대는 시위하며 의견을 표현했고 시민단체가 생긴 1990년대에는 회원으로 가입해 회비를 내 사회에 참여했다. 하지만 이제는 관심 있는 사안에 모금을 하며 사회운동을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강정마을에 후원금을 보내고 희망버스를 타며 사회에 연대감을 표현하는 거다. 특정 기부행위를 봉쇄하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밖에 없다.”

국가 주도 사업은 ‘기부 특혜’

지난해 12월 민변이 2주 만에 4억8097만원(9038명)의 후원금을 모은 일명 ‘쫄지마 기금’이 그런 사례다. 정식 명칭은 ‘표현의 자유 옹호 및 증진을 위한 공익변론기금’인데,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다 공직선거법 위반, 명예훼손 등 민형사상 피소된 시민들을 변론하려는 기금이다. 팟캐스트 에 출연하던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이 1년 징역형을 받아 수감된 게 계기였다. 민변은 기부금품법에 따라 지난해 11월에 기부금품 모집 등록을 서울시에 신청했고 서울시가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최근 입법 예고된 기부금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쫄지마 기금’과 비슷한 공익변론기금은 앞으로 등록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개정안에는 ‘재판·수사 중인 사건에 관여할 목적으로 하는 사업’의 등록을 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어서다.
기부금품의 또 다른 문제는 형평성을 잃었다는 점이다. 정치자금법,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 문화예술진흥법, 한국장학재단설립법 등 10개 법률에는 기부금품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국가가 주도하거나, 국가 정책에 따른 성금이나 기부금은 손쉽게 모집할 수 있는 ‘특혜’를 누리는 셈이다. 반면 매년 주무 관청에 사업보고서를 내고 국세청의 공시 의무도 이행하는 공익법인은 기부금품법을 추가로 따라야 한다.

‘개별 사업 건별로 등록해야 하는데 각 사업이 1천만원이 넘을지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다. 건별로 등록할 인력도 없다. 기부금품법은 모집 비용을 최고 15%만 쓰라고 하는데 단체 규모가 작을수록 지킬 수 없는 규정이다.”-기부금 단체 관계자

» 기부금품을 행정청에 등록하는 비율이 전체 기부금 규모의 1% 수준에 그친다. 가수 이효리씨가 후원한 동물보호단체도 기부금품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고발당했다.
공익단체도 등록을 거의 하지 않는다. 2010년 기준으로 정부에 등록된 기부금 단체는 2만9132개, 공익단체는 3164개인데, 불특정 다수에게 1천만원 이상을 모집한다고 등록한 건수는 97건에 그쳤다. 기부금 단체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법을 따르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개별 사업 건별로 등록해야 하는데 각 사업이 1천만원이 넘을지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다. 건별로 등록할 인력도 없다. 기부금품법은 모집 비용을 최고 15%만 쓰라고 하는데 단체 규모가 작을수록 지키기 어려운 규정이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15∼25%)에도 한참 못 미친다.” 그런데도 처벌 강도는 날로 높아진다. 기존의 3천만원 이하 벌금형, 3년 이하의 징역에서 올해부터는 지정기부금단체 자격 취소까지 가능하게 됐다.
‘잠재적 범죄자’가 넘쳐나다 보니 고소·고발이 잇따른다. 지난해 ‘제주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범도민추진위원회’가 관련 캠페인을 열어 후원금 56억7200억원을 모금했는데 기부금법에 따라 행정관청에 등록하지 않았다. 강동균 강정마을회장만 기부금품법 위반 혐의로 경찰이 조사하자 제주 시민단체들이 부만근 범도민추진위원장을 고발했다. 지난 3월 정아무개씨가 노무현재단, 아름다운재단 등을 불법 모금단체로 고발했고 동물보호단체도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박아무개씨가 적법한 모금과 투명한 모금 사용을 목적으로 동물보호단체 20곳을 8월24일 경찰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가수 이효리씨가 에세이 의 인세를 전액 기부해 화제를 모았던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관계자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기부금품을 모집하려면 서울시에 등록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며“경찰에 고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달부터 등록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부금 단체의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 8월23일까지 등록 신청한 건수가 44건으로 지난해(41건)보다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체 기부금 규모의 1%도 되지 않는 수치다.

막무가내 고소·고발 잇따라

시민사회단체도 대안을 마련하고 나섰다. 시민사회 대화마당을 8월27일 아름다운재단 1층에서 열어 시민사회 활동을 위축시킬 개정안의 ‘등록 금지 조항’을 전면 폐지하고 기부문화를 활성화할 새로운 대안 법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9월11일까지 입법 예고 기간이라서 시민사회가 의견을 주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2012년 8월 12일 일요일

국가가 키운 폭력을 파는 괴물


이글은 한겨레21 2012-08-13일자 제923호 기사 '국가가 키운 폭력을 파는 괴물'을 퍼왓습니다.
[특집]무선조종 헬기 등 첨단장비 갖추고 파업 진압부터 대체 인력까지 일괄 제공하는 ‘기업형’ 민간용역 업체2008~2010년 노동자 등 3832명 기소하며 용역직원 0명 구속한 공권력이 키운 통제 불가능한 괴물의 실체

» 용역경비업체들은 진화하고 있다. 국가의 ‘묵인’ 아래 세련된 폭력을 돈 받고 제공한다. 폭력으로 노동자들을 내쫓은 뒤 공장 앞을 지키고 있는 용역경비업체 컨택터스 직원들. 한겨레 류우종

“지상에 더 힘센 자가 없으니 누가 그와 겨루랴.”
토머스 홉스가 쓴 (리바이어던)은 국가의 탄생을 이렇게 전한다. 성서 욥기 구절에서 따온 이 말은 ‘리바이어던’의 절대권력을 보여준다. (리바이어던) 초판 속표지에는 수많은 이들이 모여 거대한 사람의 형상을 이룬 그 유명한 그림이 실려 있다. 국가이자 절대군주인 리바이어던은 교회의 첨탑과 집, 산과 들, 바다를 내려다본다. 왕관을 쓴 리바이어던의 오른손에는 날카로운 검이 들렸다. 폭력을 통할하는 국가의 힘이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몸통을 이룬 개개인들의 눈은 리바이어던의 얼굴, 즉 국가만을 ‘올려다보고’ 있다. “국가는 모든 사람이 포기한 권리, 모든 사람이 사용을 유보한 폭력의 집합적 구성물이다. 국가는 그 모든 폭력을 자신 안으로 흡수함으로써 그 자신이 폭력이 되고, 압도적인 힘의 비대칭성 속에서 감히 어느 누구도 폭력을 사용할 수 없게끔 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한다.”(공진성, [폭력]) 자신들이 양도한 작은 폭력들, 그렇게 모인 거대한 힘에 의탁해 생명과 안전을 보장받는다. 폭력의 합법적 독점체, 국가의 탄생이다.

철거와 파업, 용역들의 오랜 일터

“모든 높은 자를 내려다보며 모든 교만한 자들에게 군림하는 왕”(욥기 41장)이라던 리바이어던은, 이제 모든 것을 내다파는 왕이 되었다. 국가의 권능은 ‘민영화’한 수많은 영역들로 쪼개지고 대체됐다. 리바이어던이 내려다보는 것은 이제 ‘시장’이다. 마침내, 손에 든 자신의 검마저 좌판에 올려놓았다. 모든 것을 내다파는 시대에, 국가만이 소유했던 ‘폭력’마저 시장의 매대에서 돈으로 거래된다. 공권력의 민영화, 폭력의 외주화다.
지난 7월27일 새벽 4시50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반월공단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 SJM 공장에 진압봉과 방패, 헬멧으로 무장한 사설 용역경비업체 직원 200여 명이 “진격, 뚫어”를 외치며 ‘진압 작전’에 들어갔다. 사업주가 전격적으로 직장폐쇄를 단행한 공장 안에는 임금·단체 협상 문제로 농성 중이던 노조원 150여 명이 있었다. ‘CONTACTUS’(컨택터스)라는 용역경비업체명이 인쇄된 방패를 든 이들은 길이 1m 정도의 진압봉을 마구 휘둘렀다. 공장 안에 있던 쇳덩어리까지 집어 던졌다. 노조원들의 치아가 함몰되고 머리가 깨졌다. 흡사 1990년대 ‘구사대’를 연상케 하는 폭력이 이어졌고 노조원 수십 명이 쓰러졌다. 여성 노동자가 “살려달라”며 112 신고를 네 차례나 했지만, 출동한 근처 파출소 소속 경찰관들은 공장에 들어가지도 않은 채 용역경비업체와 회사 쪽 관계자의 말만 듣고 돌아갔다. 새벽 5시30분에야 경찰기동대 3개 중대가 공장 정문 앞에 배치됐지만 노조원에 대한 불법적인 폭력은 사실상 ‘묵인’됐다. 현장에 있던 경찰 중대장은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 등 현장 소란을 확인하고도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컨택터스는 징후적 현상이다. 한국 사회에서 거래되는 ‘폭력’이 파업 진압부터 대체 인력 투입까지 논스톱으로 처리해주는, 나름의 시스템을 갖춘 ‘기업형 폭력’으로 진화하는 어떤 지점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그때그때 일당을 주고 동네 깡패들이나 동원하던 기존 용역업체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얘기다.

황당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흔한 일이다. 낯설지 않다. 개발연대를 거치며 수없이 목격된 일이다. 1970년대까지는 도시 재개발 현장에서 국가가 직접 자신의 힘으로 밀어붙이던 철거폭력이 횡행했다. 그러던 도시개발사업이 1983년 합동재개발이라는 형식으로 민영화한다. 건설자본이 재개발사업에 끼어들게 되자 ‘빠른 회전’을 생명으로 하는 돈의 논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철거폭력 역시 빠른 시간 안에 확실히 끝내는 무자비한 용역들의 완력으로 대체된다. ‘용역폭력’ 전성시대가 온 것이다.
노동 현장에서의 용역폭력은 철거 현장보다 시기적으로 조금 늦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이 밀어닥친 1990년대 말, 노동쟁의 현장에서 회사 쪽이 고용한 용역경비업체 직원들의 물리적 폭력 행사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노조집회 해산, 노조사무실 봉쇄 과정에 ‘용역깡패’가 난입해 폭력을 휘둘렀다. ‘시설 경비’라는 명목으로 각목과 자전거 체인을 휘두르는 용역경비업체 직원들이 공장을 점령하고 노동자를 내쫓았다. 지난해 충남 아산의 자동차 부품회사인 유성기업 노동쟁의 과정에서 용역경비업체가 저지른 폭력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됐다. 2010년에는 경북 구미의 반도체 회사 케이이씨(KEC), 대구와 경북 경주의 자동차 부품 회사인 상신브레이크·발레오전장에서도 직장폐쇄 뒤 곧바로 용역업체 직원들이 ‘작전’에 투입되거나 경비로 배치됐다.
‘노조 집단행동→직장폐쇄→용역 투입’은 회사 쪽이 노조를 파괴하는 시스템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폭력적으로 컨트롤하는 용역경비업체의 ‘전문성’이 시장에서 사고팔린다. 이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행정법)는 지난 1월 발간한 (용역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대안보고서)에서 “용역깡패들은 국가가 허가한 기업에 고용되어 영업의 일환으로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폭력을 행사한다”고 지적했다. “폭력·물리력의 행사가 하나의 자본주의적 사업이 됐다”는 것이다.

우리는 용팔이, 양아치가 아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컨택터스는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자신을 ‘용역깡패·용역양아치’가 아닌 ‘시위·집회 솔루셔너·시추에이션 매니지먼트’로 불러달라고 했다. 세련되게 주먹질을 한다는 얘기다. 이들은 최대 3천 명까지 경비·경호 인력을 동원할 수 있으며 시위 진압용 물대포차, 손해배상 청구를 위한 불법행위 채증용 무선조종 헬기, 경비견 등 ‘국내 최대 규모의 시위 진압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고 선전했다. 파업 등으로 조업에 차질이 생기면 즉시 ‘대체 인력’을 투입할 수 있는 시스템까지 갖췄다고 홍보했다. 2009년에는 노동쟁의가 진행 중이던 자동차 부품업체에 자기네 직원들을 위장취업시켜 노조파괴 공작을 벌이기도 했다.
컨택터스는 징후적 현상이다. 한국 사회에서 거래되는 ‘폭력’이 파업 진압부터 대체 인력 투입까지 논스톱으로 처리해주는, 나름의 시스템을 갖춘 ‘기업형 폭력’으로 진화하는 어떤 지점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그때그때 일당을 주고 동네 깡패들이나 동원하던 기존 용역업체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얘기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인권법)는 “과거 용역깡패는 애교 수준”이라며 “경찰이 맡은 업무 중에 가장 폭력적 분야인 진압의 영역에까지 조직화된 형태로 뛰어들었다”고 평했다. ‘진화’를 했다는 것이다. “노사가 법적으로 대등하게 싸우도록 힘의 균형을 맞춰준 것이 파업권과 직장폐쇄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균형을 국가가 컨트롤하는 것이 노사관계의 룰이었다. 그런데 돈 있는 쪽이 공권력의 영역인 폭력을 사들이자 힘의 불균형이 극대화했다.”
제대로 된 혁명 한 번 일어나지 않았지만, 미국은 어느 나라 못지않게 유혈 낭자한 노동운동의 역사를 가졌다. 이를 폭력으로 찍어 누른 것이 용역경비업체들이었다.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의 반발이 극심해지던 19세기 중·후반부터 20세기 초, 용역경비업체 핑커턴사는 노조 파괴로 악명을 떨쳤다. 대표적인 것이 1892년 펜실베이니아주 홈스테드시에 있던 카네기 제철소 파업 진압이다. 깡패와 부랑자 등으로 구성된 핑커턴 소속 경비원 300여 명과 노동자들이 무력으로 충돌했고, 이 과정에서 10여 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다쳤다. 탐정 업무도 했던 핑커턴의 로고는 커다란 눈이었다. 눈 밑에는 ‘우리는 잠들지 않는다’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핑커턴은 무력 진압 외에 공작원들을 활용한 노조 침투, 유령노조 설립, 폭력 선동 등을 전문적으로 수행했다. 한 세기 뒤 한국에 나타난 컨택터스가 하는 짓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후 미국 최대의 보안업체로 자리잡은 핑커턴은 1999년 세계적 보안업체인 스웨덴의 ‘시큐리타스AB’에 인수됐다.

“우파와 보수가 말하는 이른바 ‘국가 공권력에 대한 도전’은 경찰과 충돌한 서울 용산 참사나 쌍용차 파업보다, 오히려 폭력을 돈으로 사고팔아도 국가가 이를 문제 삼지 않는 용역폭력 현상에서 훨씬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용역경비업체의 폭력이 문제가 될 때마다 경비업체에 대한 허가·관리·감독 권한을 가진 경찰은 ‘허가·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는 뻔한 답을 내놓는다. 지난해 9월 경찰청은 유성기업 용역폭력 사건의 대책으로 “앞으로 폭력을 행사한 경비·용역 업체는 조직폭력에 준해 엄정하게 처리, 고용한 사업체도 청부폭력에 준해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초기부터 경찰권을 발동해 용역폭력을 예방·제지·제압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불과 10개월 뒤 리바이어던에서 폭력을 떼어받은 컨택터스라는 ‘괴물’은 경찰이 보는 앞에서 흉기를 들어 사람들을 팼다. 이계수 교수는 “철거 현장, 노동 현장에서 폭력이 행사되거나 행사 가능성이 예견되는데도 경찰이 개입하지 않는 것은 경찰이 그 문제를 사적 소유권의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폭력의 민영화는 책임과 처벌, 통제를 어렵게 만든다. 국가가 행사하는 폭력, 공권력의 일부로 경찰이 행사하는 폭력은 비교적 통제가 용이했다. 노사문제에 경찰력이 발동할 때, 국가는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인사·예산·정보공개 등 다양한 방식의 민주적 통제를 가할 수 있다. 홍 교수는 “경찰력을 통제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들이 계속 만들어져왔다. 반면 이윤 창출이 목적인 자본에 풀려버린 폭력을 제어할 수단은 마땅히 없다”고 했다.

» 지난 7월29일 경기도 안산시청 앞. 자동차 부품업체 SJM 노조원들이 용역경비업체 컨택터스 직원들의 폭력으로 부상당한 노조원들의 사진을 들고 집회를 하고 있다. 한겨레 류우종

“용역폭력 사들이는 사용자 처벌해야 근절”

직장폐쇄 등 법적·행정적 ‘절차’를 밟은 뒤 이뤄지는 폭력에 대해 경찰·검찰·법원은 무한한 관용을 베풀어왔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그전 3년간 처벌받은 노동자·철거민과 용역경비업체 직원 현황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노동자 등은 무려 4197명이 입건된 뒤 3832명(91.3%)이 기소(구속 43명 포함)된 반면, 폭력을 휘두른 용역업체 직원들은 288명만이 입건됐고, 그나마 재판에 넘겨진 사람도 116명에 불과했다. 구속자는 단 1명도 없었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폭력을 방기하고 느슨하게 조사하고 헐렁하게 처벌하는 경찰·검찰·법원의 책임이 크다”며 “용역폭력을 사들이는 사용자(회사)를 처벌하지 않는 이상 이런 폭력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가는 기본적으로 노동보다 자본에 기울어져 있다. 자본은 이를 믿고 폭력을 사들이고 사병화한다. 방조와 묵인 아래 공공연히 폭력을 행사한다. 이계수 교수는 신자유주의가 본격화한 시기와 민간 경비산업의 ‘발흥’을 연결짓는다.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서양정치사상 전공)는 ‘친자본’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그는 “국가성이 약한 사회부터 먼저 무력 독점이 약해지는 현상이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유럽에서는 여전히 국가가 시장 통제를 하고 있다. 폭력 통제도 마찬가지다. 반면 미국은 건국 과정에서도 무력 통제를 담보하지 못했다. 미국식 자유주의 문화가 이식된 나라일수록 시장이 밀고 들어오면 쉽게 무장해제된다.” 공 교수는 “영주들이 사병을 거느렸던 중세라는 특권적 시대가 끝나고 근대국가가 등장하며 민주주의가 가능해졌다. 기업들이 공장이 사유지라는 이유로 마치 치외법권이 있는 것처럼 사사로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국가 안의 국가’ ‘새로운 중세’가 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우파와 보수가 말하는 이른바 ‘국가 공권력에 대한 도전’은 경찰과 충돌한 서울 용산 참사나 쌍용차 파업보다, 오히려 폭력을 돈으로 사고팔아도 국가가 이를 문제 삼지 않는 용역폭력 현상에서 훨씬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고 했다.
2010년 9월 한국의정연구회가 국회사무처 정책연구과제로 제출한 보고서는 ‘경찰업무와 민간 경비업무의 상호협력 방안’이었다. 보고서는 용산 철거민 참사를 거론하며 “민간 경비업체 역시 민간 분쟁에 있어서 제3자에 해당하지만 경찰과는 다르게 좀더 원활하고 갈등 없이 민간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고 썼다. ‘노사분규 등에 경호경비 요원을 투입, 신속히 재산권 보호 및 신변안전과 시설보호 업무를 수행하겠다’는 컨택터스의 사업모델이 이에 대한 모범 사례로 제시됐다.
경비업계는 불만이다. 일부 불법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업체들 때문에 본연의 경비·경호 업무를 맡은 자신들까지 싸잡혀 욕먹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전의 시장화’는 ‘폭력의 민영화’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홍성수 교수는 “홉스부터 이어온 국가 정당성의 가장 기초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 기능에 생긴 공백을 ‘에스원’이나 ‘세콤’을 통해 돈 있는 사람들이 사들이게 되면 안전에 대한 불평등이 나타나게 된다”고 했다. 시장보다 국가를 더 신뢰한다는, 혹은 그래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조차 누군가의 집에 달려 있는 보안벨과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게 한때는 경찰의 영역이었다는 생각은 이제 들지 않는다. 돈만 있으면 더 안전해질 거라는 믿음은 무의식적인 그 무엇이 됐다. 공진성 교수는 “능력껏 자기를 지키는 세상, 자신들만의 보안 시스템을 따로 가지게 된다면 국가의 의미는 사라진다”고 봤다.

빈익빈 부익부, 안전의 양극화

국가만이 안전을 보장하고 폭력을 독점한다는 홉스·베버식 정치철학은 논쟁적 주제일 수 있다.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는 그의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우리가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걱정”한다. 그는 폭력과 안전을 돈으로 전유하는 민간군사기업과 사설 경호원 등을 언급한다. “부유함이 지닌 유일한 장점이, 요트나 스포츠카를 사고 환상적인 휴가를 즐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라면 수입과 부의 불평등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의 상품화로 인해 돈이 더욱 중요해지면서 불평등 때문에 발생하는 고통이 깊어지고 있다.” 이계수 교수도 같은 지적을 한다. “안전은 점차 각자가 알아서 챙겨야 할 그 무엇이 된다. 안전의 자기책임화가 초래하는 결과는 안전의 시장화와 상품화, 그로 인한 안전 향유의 양극화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누가 그와 겨루랴.” 리바이어던으로 탄생한 국가는, 그렇게 스스로 죽어간다. 국가의 자살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