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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19일 토요일

‘4대강 사업 실패’에도 당당한 ‘찬동’ 논설위원들


이글은 미디어오늘 2-13=01-18일자 기사 '‘4대강 사업 실패’에도 당당한 ‘찬동’ 논설위원들'을 퍼왔습니다.
중앙일보 김진 등 ‘4대강 사업 찬성’ 언론인, 감사원 결과에도 “사업자체는 문제 없어”

22조 2천억 원을 투입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부실 투성이라는 감사원 결과가 나오며 청와대뿐만 아니라 4대강 사업을 찬성해왔던 언론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수년간 제기되어온 정부정책에 대한 합리적 비판을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일축하며 여론을 호도해오며 사업실패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MB씨 4대강 비리수첩 제작단’이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발표한 ‘4대강 사업 찬동인사 인명사전’에 등재된 259명 인사 중 눈에 띄는 언론인들은 다음과 같다.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 △배인준 동아일보 주필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주간 △강병태 한국일보 논설실장 △정규재 한국경제 논설위원 △정재학 데일리안 편집위원 △추창근 한국경제 논설실장 △양영태 인터넷타임즈 대표 △허남진 중앙일보 논설주간 △황영식 한국일보 논설위원 △박영균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정인학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이들 언론인은 지금껏 칼럼 등 지면을 통해 4대강 사업에 대한 각종 찬성론을 펼쳐왔다.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2009년 2월 2일자 칼럼에서 “MB는 기본적으로 물의 남자다. MB는 죽어있는 청계천을 되살려 대통령이 되었고…대운하가 죽는가 싶더니 경제위기를 맞아 4대강이 살아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1년 8월 1일자 칼럼에선 “대운하라는 엉성한 논리로 반대하지 마라”며 4대강 사업은 과학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2011년 8월 1일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의 칼럼.

배인준 동아일보 주필은 2011년 11월 30일자 칼럼에서 “이명박 정부를 겨냥해 벌인 광우병 투쟁, 4대강 투쟁, FTA 투쟁은 ‘잘못된 3대 반대’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 주장했으며, 그해 9월 7일 칼럼에선 “4대강 반대운동을 해온 사람들도 고향 오가는 길에 한 번쯤 (4대강 사업지역에) 들러 조금은 따뜻한 눈으로 변모한 강을 바라봐 주었으면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반대를 위한 반대’의 악습은 이제 끊어낼 때도 됐다”고 밝혔다.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주간은 2010년 7월 4일자 칼럼에서 “환경단체들은 보를 만들면 강물이 썩는다고 주장하지만 위아래로 움직이는 개방보가 하층수를 빼주기 때문에 물이 썩을 염려는 없다”고 주장했으며, “하굿둑과 보와 댐을 건설하면 무조건 환경파괴라는 인식에는 치수와 이수라는 개념이 들어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천주교 주교회의의 4대강 사업 비판을 두고는 2010년 3월 28일자 칼럼에서 “정책 비판 용기와 전문성은 별개”라고 폄훼했다.
황영식 한국일보 논설위원은 지난 1월 16일자 칼럼에서 “(4대강 사업 비판의) 일방적 공격과 반박의 역사는 책 한 권에도 다 담기 어렵다”고 주장한 뒤 최근의 4대강 사업 비판여론을 두고 ”미처 삭이지 못한 대선 패배의 울화를, '가재는 게 편'이라는 속담처럼 크게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한 편인 이명박 대통령에 퍼부으려는 뜻도 잡힌다”고 해석했다.
강병태 한국일보 논설실장은 2009년 12월 1일 칼럼에서 4대강 사업이 “적은 돈으로 큰 일을 한다는 인상을 준 느낌이다”라고 밝혔다. 정재학 데일리안 편집위원은 2010년 7월 4일자 칼럼에서 “강에 물길을 내면 우리는 세 개의 길을 갖게 된다. 자연이라는 이름으로 방치된 세 개의 길이 우리 앞에 거대한 건설의 힘으로 놓여질 것”이라며 4대강 사업을 찬미했다.
정규재 한국경제 논설위원은 2010년 7월 5일자 칼럼에서 “낮에는 4대강 결사반대를 외치는 정치인들이 밤이면 자기 지역의 4대강 예산을 더 끌어가기 위해 로비하느라 정신들이 없다. 오로지 이명박 정부가 하는 일이니 이를 침몰시키자는 위선의 목적으로 온갖 구호를 달아 추종자를 결집하는 것은 2000년 전 처녀 공양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2011년 7월 25일 칼럼에선 “(올해) 다행이 큰 물난리는 없었다. 4대강 효과 때문이었음은 설명이 필요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추창근 한국경제 논설실장도 2009년 12월 10일 칼럼에서 “효율을 중시하는 경제가 전혀 생산성 없는 정치에 휘둘리다 보니 경세제민은 본래의 뜻마저 죽어버린 사어死語로 전락했다”며 4대강 사업 비판을 정쟁으로 격하시켰다. 2010년 10월 21일자 칼럼에선 “4대강 사업에 대한 야당의 반대는 정략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라고 폄훼했고, “강에 물이 많아지면 강을 썩게 하는 오염물질의 농도는 희석된다”며 4대강 사업이 환경과 생태계를 살리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 2013년 1월 18일자 경향신문 1면.

하지만 이들 주장과 달리 4대강 사업의 총체적 실패는 정쟁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는 4대강에 설치된 16개 보 가운데 15개 보에서 바닥보호공이 유실·침하되고, 12개보는 수문 운영에 차질이 예상되며 수질은 오히려 악화될 우려가 높다는 감사원의 감사결과로 드러났다. 박근혜 당선인측 역시 4대강 사업 실패의 후폭풍을 걱정하는 눈치다. 하지만 18일 미디어오늘 취재결과 앞서 언급한 4대강 찬성 언론인들은 감사원 결과에도 불구하고 기존입장에 변화가 없었다.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4대강 사업이 총체적 실패라는 것은 일부 언론의 해석이며 해석이 잘못됐다”고 말했으며 “4대강 사업 같은 대규모 건설프로젝트는 전문적인 분야이기 때문에 전문가팀의 충분한 검토와 토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경부고속도로와 같은 큰 건설사업에서 하자는 불가피하게 따른다”며 “하자가 사업의 본질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를 봤을 때 ‘총체적 실패’는 선동적 표현”이라고 반박했다.
황영식 한국일보 논설위원 역시 “감사원은 사업의 시행 성과에 대한 기술적인 감사”라고 그 의미를 축소한 뒤 “무조건적인 (4대강) 반대론이 정부가 사업을 재촉하게 만들어 부실시공에 가게끔 만든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4대강 사업은 물을 확보하고 홍수·가뭄을 조절하는 부분에서 탁월한 판단”이라고 강조한 뒤 “이왕 이렇게 된 거 관리를 잘해서 잘 써야 한다”고 밝혔다.
강병태 한국일보 논설실장은 “4대강 사업이 애초에 시작되지 말아야 했다는 것도 비약 아닌가. 감사원 보고가 (일부) 과장됐다”고 주장했다. 
추창근 한국경제 논설실장은 “개발은 보존의 한 방법이다. 4대강 사업은 그 과정이 잘못된 것이다. 개발하지 않은 자연은 없다”고 말한 뒤 “감사원이 아주 나쁜 집단이다. 정치적인 집단이다. 감사원에 전문가 집단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주간은 “알아서 쓰라”며 답변을 피했다. 


정철운·김안수연 기자 | pierce@mediatoday.co.kr  

2012년 9월 18일 화요일

김진의 ‘박정희 옹호’에서 드러나는 보수층의 당혹


이글은 미디어스 2012-09-17일자 기사 '김진의 ‘박정희 옹호’에서 드러나는 보수층의 당혹'을 퍼왔습니다.
인혁당 처형 잘했다 할 수도 없고, 박근혜 말릴 수도 없어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이 오늘자 ‘김진의 시시각각’란에 란 칼럼을 게재했다. 박정희 문제에 대한 보수논객의 글을 논박하는 것이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 시선에 동의하는 이들에게는 비판이 효용이 없을 것이고, 그 시선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겐 비판이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진 논설위원의 글은 보수논객들도 인혁당 문제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 박근혜에 당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글에서 박정희 시대를 정당화하는 보수진영의 상이한 전략들을 읽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

▲ 오늘자 중앙일보 김진 칼럼

“유일한 살인이 75년 인혁당재건위 8명을 사형한 것이다. 당시는 월남 패망 20여 일 전이었다. 정권이 비정상적 심리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어쨌든 이는 정권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이다. 정보부는 고문으로 사건을 조작하고, 검찰은 협박했으며, 법원은 사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권은 18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했다. 집행만 미루었다면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는 천상(天上)에서 인혁당 8인에게 사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막걸리를 마시며 조국을 얘기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유족을 껴안는 일은 이승의 딸에게 남겨져 있다.“
제 머릿속에서 살인가해자와 살인피해자를 천상에서 화해시키는 엽기적인 상상력에 경악하는 일은 뒤로 미루자. 여기서 확인되는 것은 김진조차도 인혁당 사형 사건을 정당화하거나 그 판단을 유보해서 역사에 맡기자고 말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보수진영 내에서 박정희 시대에 대한 평가는 대략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박근혜 버전. 박정희의 모든 행동은 선의에서 비롯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불의의 피해자가 발생했다고 생각함. 아마도 홍사덕과 많은 TK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을 것임.
둘째, 김진 버전. 어지간한 것은 다 정당화하지만 인혁당 사건 만큼은 ‘사법 살인’으로 인지함.
셋째, 조선일보 버전. 5.16의 긍정성은 인정하되 유신은 ‘삽질’이었음을 밝히자는 일종의 ‘사회적 대타협’을 주장.

▲ 유신시절 육군 사관학교 임관식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박근혜 후보의 모습 ⓒ연합뉴스

문제는 장삼이사로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과 정치적 논쟁에서 자기 논리를 구성하는 것은 좀 다르다는 데에 있다. 박정희 시대를 긍정하는 보수적 유권자 중에 김진이나 조선일보처럼 생각하는 일은 흔치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정확히 무엇이고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도 모를 것이고, 5.16은 긍정하되 유신은 무리한 일이었다는 식의 정치적 타협에도 관심이 없다. 그들 대부분은 아마도 박근혜처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이 된 입장에선 박근혜처럼 얘기를 해서야 계속해서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박근혜가 그렇게 말을 하면 할수록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던 사람들이 그 사건에 대해서 알게 된다. 두 달쯤 전 작가 엄기호는 트위터에서 “박근혜가 박정희의 딸이라서 안 된다는 말은 우리 아버지 세대에겐 더욱 박근혜를 찍어야 하는 이유가 되고 내 조카한테는 찍을지 말지를 정하는 데 눈곱만큼도 참조사항이 못 되고 있다”고 한탄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에 아버지 세대와 조카 세대 모두 “인혁당이 뭐야?”라고 묻고 있다고 전한다. 그래서 설명해주면 “에이, 그건 아니다~”라는 반응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물론 같은 반응이라도 양 세대가 박근혜의 행보에 문제를 느낀 이유는 다른데 있을 것이다. 먼저 조카 세대는, 지나간 역사논쟁인 줄 알았던 것이 현재 박근혜의 통치철학과 맞닿아 있을 가능성을 본능적으로 보았을 것이고, ‘지나간 잘못’을 흔쾌히 인정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 ‘쿨하지 못하다’고 여겼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아버지 세대의 박근혜에 대한 실망은 동북아시아 남성 특유의 와 류의 역사소설에 기반한 정치의식에서 나온 것일 게다. 그들은 아마도 ‘천하를 가지겠다는 자가 자그만 부분도 물러서지 못하는 완고함’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믿을 것이고, 그가 ‘아버지를 위한다고 저리 하지만 결과적으론 아버지의 치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불효하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
그리하여 ‘인혁당 정국’이 박근혜의 핵심지지층을 흔들 수는 없지만, 그 외 중도층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에선 엄연히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바다. 그는 분명히 ‘박근혜 대통령’의 가능성을 스스로 갉아먹고 있다.

▲ 박정희의 농촌 지도 사진을 들춰보며 흐뭇해 하는 박근혜 후보 ⓒ연합뉴스

보수논객들이 불안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선일보 사설이든,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진의 글이든, 그들이 박정희 시대의 공과를 쪼개서 제시하는 이유는 박정희를 싫어하는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사실상 박근혜 한 사람만을 쳐다보고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만 접어주면 충분히 국민정서를 업어 대처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러기나 말기나 박근혜는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사건에 대한 평가는 거부한 채 유족들만 만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박근혜의 이러한 행보는 매우 고무적이다. 공교육에서 한국 현대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이 나라에서, 모든 유권자에게 수십 년 전 역사를 다시 들춰볼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트렌드에 따라 무언가를 집단적으로 배우는데 대단한 능력을 발휘한다. ‘박정희의 딸’이 대선에 나와 ‘타협 없는’ 모습을 보이면서 온 국민에게 배움을 요구하는 것은, 그가 그의 딸로 이 세상에 나와 한 일 중에서 가장 공익에 부합하는 일일 것이다.
김진의 논리에서도 조선일보의 논리에서도 우리는 ‘과거를 말하지 말자’는 독재계승 세력의 전략 탓에 박정희 시대의 공과를 살피는 논변이 얼마나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 알 수 있다. 조선일보가 유신을 거부하는 논리는 그게 비극적 결과로 마감되었다는 결과론일 뿐이고, 김진이나 홍사덕이 유신을 옹호하는 논리는 상황론일 뿐이다. 그러나 결과에 대한 평가는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며, 정부가 내세운 상황론은 과연 실제의 사태에 부합했는지가 검증되어야 한다.
김진처럼 수험생의 금욕과 개발독재를 비교하려면, 적어도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 문제를 포함해야 한다. 가령 한일협정으로 대일 청구권 자금을 당겨와 생산시설에 투자한 정책행위는 ‘수험생의 금욕’과 비교할 수도 있을 것이고 긍정적인 평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구체적인 평가를 거부하고 개발독재를 통으로 긍정하는 행위는, 비유하자면 폭력가장이 수험생의 생활을 잘 통제했다는 이유로 아내도 때리고 수험생도 때리고 갓난애기도 때린 것을 통으로 정당화하려 드는 것과 흡사하다. 
비교할 만한 제3세계 독재 국가들에 비해서 한국의 개발 독재가 사람을 '덜 죽였다'라는 것은 (김진은 '무혈독재'라 표현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본인이 기술한대로 '상대적'인 얘기일 뿐이다) 한홍구와 같은 진보적 역사학자들도 인정하는 바다. 대신 그들은 한국 사회가 6.25 전쟁 전후로 이미 '좌익'들을 척결한 '반공의 멸균실'이었기에 반체제인사의 숫자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이렇게 본다면 독재체제가 죽일만한 이들이 그리 많지 않았던 한국의 상황은, "금세 공산화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는 독재세력의 정당화의 서사에 대한 의문을 표시할 수 있는 부분이다.    
유신에 대한 얘기 역시 마찬가지다. 유신을 긍정하는 김진은 물론 유신을 비판하는 조선일보조차 당시 박정희 정권 측에서 내세운 상황론을 검증하려 들지 않는다. 1968년의 박정희가 체제에 위협을 느꼈다고 말한다면 차라리 이해가 가는 바다. 하지만 닉슨이 중국과 소련을 방문하던 그 ‘데탕트’의 시기에, 화해협력 조류로 가는 것을 거부하고. 북쪽의 김일성과 서로의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 날짜까지 협의해서 발효한 유신체제가 대체 왜 ‘공산화의 위협을 겁내’ 이루어진 것인지를 박정희 옹호론자들은 설명해야 한다.
보수세력은 지금까지는 이런 종류의 얘기들을 ‘과거는 덮자’는 말로 무시할 수가 있었다. 평균적으로 볼 때 박정희를 옹호하는 이들은 연령으로는 박정희 시대를 겪었으면서도, 지식의 측면에선 박정희 시대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김진은 그 무지를 전제해야만 통할 수 있는 글을 박근혜를 위해서 쓰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박근혜 덕분에, 앞으로는 이보단 맥락에 기반한 논의가 가능해질 지도 모른다. ‘박정희의 딸의 대선출마’의 역설이다.

▲ 지난 8월 22일 서울 중구 태평로1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유신잔재 청산과 역사정의를 위한 민주행동(가칭)' 출범 기자회견에 참가한 사월혁명회와 민청학련운동계승사업회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행동은 10월 17~27일을 집중행동기간으로 정하고 박정희정권 피해자 추모제, 유신 다큐멘타리 상영 등 시민 참여형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한윤형 기자  |  ahriman@mediaus.co.kr

2012년 9월 2일 일요일

"박정희가 키운" <중앙> 김진, 무식하면 입 다물라


이글은 프레시안 2011-05-18일자 기사 '"박정희가 키운" (중앙) 김진, 무식하면 입 다물라'를 퍼왔습니다.
[기고]내 친구 구충서, 그리고 김진의 '5.16 예찬'

내 친구 구충서

1974년 3월 하순 어느 날 저녁 나는 고교시절부터 깊은 친교를 나눠 오던 벗 구충서와 무교동의 한 막걸리 집에 마주앉았다. 당시 우리는 대학에 입학한 지 한 달이 채 안 된 햇병아리 신입생이었다. 고교시절부터 10월유신에 대해 강한 저항의식을 표출해 왔던 충서는 그날 유신철폐 민주화투쟁에 가담하게 되었다며 내게 동참을 권유했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거절했다.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이를 위해 공부하는 사람도 필요하다는 궁색한 논리를 피력하면서. "너는 투쟁해라. 나는 공부하마." 나의 이 말에 충서는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막걸리 잔을 기울였다.

약 보름 후 충서는 소위 민청학련 사건 최연소 가담자로 체포되었고 열아홉 어린 나이에 12년형을 언도 받고 복역했다. 그해 겨울 육영수 여사 서거에 따른 특사조치로 충서는 대부분의 다른 가담자들과 함께 출옥했지만 그의 정신 상태는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겪어야 했던 고초도 감내하기 힘들었지만 자신으로 인해 파탄 난 집안 모습에 그는 크게 충격 받았다. 광주에서 견실한 자영업을 하던 부모의 사업은 풍비박산이 나 있었다. 서울공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체에 근무하던 형은 직장에서 쫓겨나 실업자가 되어 있었다. 어떻게 제 정신을 갖고 살 수 있었겠는가.

충서의 정신장애는 갈수록 악화해서 다른 선배들처럼 민주화투쟁에 다시 뛰어들 수도 없었다. 그런 벗을 두고 나는 유학길에 올랐다. 군부독재에 저항해서 민주화를 쟁취해 낸 처절한 투쟁이 국내에서 계속되는 동안 나는 외국에서 편안한 유학생활을 영위했다. 1991년 귀국한 나는 충서를 찾아 볼 겨를 없이 쫓기듯 시간강사 생활을 꾸려갔다.

1995년 3월 이화여대에 정식으로 자리를 잡고 나서 나는 비로소 충서를 찾을 생각을 했다. 두 명의 다른 벗들과 힘을 합쳐 마침내 충서 형님을 찾아냈고 그 형님을 통해 충서가 전라도 깊은 산 속에 있는 정신병자를 격리수용해 놓은 기도원에 갇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사이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형님은 아파트 경비원이 되어 있었다. 어떻게 동생을 그런 곳에 방치해 두었냐고 따져 물을 상황이 아님이 여실했다.

산속 기도원에서 만난 친구의 모습은 처참했다. 열아홉 훤칠했던 체격과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했던 눈빛, 당당한 기상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나이는 불과 마흔인데 머리는 하얗게 새었고 어깨는 구부정한 채 초점 없는 눈빛과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며 앞뒤가 전혀 안 맞는 말을 지껄여대는 친구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나는 무엇으로도 갚을 길 없는 빚을 친구에게 졌다는 것을 그 순간 절감했다.

이때 이후 충서는 옛 벗들의 도움에 의지해서 살아오고 있다. 그는 여전히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며 외부와 사실상 단절된 삶을 지속하고 있다.

▲ 2007년 11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해 분향하고 있다. ⓒ뉴시스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과 박정희
나는 왜 내 친구 구충서의 삶을 공개할 결심을 했는가. 5.16 50주년을 맞아 보수언론들이 경쟁적으로 게재한 특집기사를 나는 읽었다. 보수적 지식층과 논객들이 5.16을 혁명으로 미화하고,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찬양하고, 급기야 5.16과 박정희가 한국 민주화의 길을 열었다는 궤변을 읽으며 나는 내 친구의 삶을 떠올렸고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견딜 수 없어 이 글을 쓸 마음을 먹었다. 37년 전 '투쟁'의 가시밭길에 동참하라는 친구의 제의를 거절하고 '공부'라는 안락한 길을 택했던 내가 용기 있게 '투쟁'의 길에 나섰던 내 친구를, 그리고 내 친구와 함께 투쟁의 길에 나섰던 무수한 '구충서'들을 모욕하고 매도하는 글들에 도저히 침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많은 구역질나는 글들 중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의 글(5월 16일자 칼럼'나를 키운 박정희'-편집자주)을 선택해서 비판의 글을 쓴다. 선택의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다만 한국 보수 언론을 대표하는 대표적 논객이 쓴 글의 논리 전개가 지극히 조야할 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한국 정치사에 대한 그릇된 지식과 편견으로 가득 차 있어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선택했을 뿐이다.

그에 의하면 그가 취재한 박정희의 '부하'들은 오직 박정희의 '청렴과 애국심'만 강조하더란다. 그에게 김태촌과 같은 조직폭력배 보스의 '부하'들을 취재해 보라 묻고 싶다. 보스의 지시로 자행한 무수한 폭력과 살인, 그리고 갈취행각을 과연 그들이 증언하겠는가. 그의 글을 읽으면 '부하'들의 증언이 어느 결에 '모든 사람의 한결같은 증언'으로 바뀐다. 김진 논설위원은 대한민국의 수많은 '구충서'들에게 박정희에 관해 물어 본 적 있나.

그가 서술하는 '공동체'는 오늘날 민주적 공화주의자들이 강조하는 공동체라기보다 오히려 파시스트들이 주창했던 유기체적 전체주의 냄새를 진하게 풍긴다. 그가 묘사하는 공동체적 인간 박정희는 히틀러, 무솔리니, 김일성 같은 전체주의자에 더 가깝다는 말이다.

"내가 발견한 김일성은 공동체적 인간이었다... 인류 문명의 진보와 공동체 발전에 개인의 궤적을 합일시키는 공동체적 인간이었다...그런 인간의 대표적인 사람이 김일성이었다. 그런 김일성이 나의 세계관을 바꾸어 놓았다." 

김 논설위원의 글에서 박정희를 김일성으로 바꾼 표현이다. 노동신문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김일성 주체사상 찬양 글귀와 무엇이 다른가. 김일성 대신 히틀러나 무솔리니를 바꾸어 넣어 읽어 보라. 1930년대 파시즘이 맹위를 떨치던 당시 이들이 주창했던 소위 Lebensraum(레벤슈라움,나치의 '생존권역' 개념-편집자주) 이념과 무엇이 다른가.

그에 의하면 "1960~70년대 한국의 공동체 발전은 안보와 가난의 극복, 그리고 경제발전이었(지) 민주주의는 그 시대의 과제가 아니었다." 그에게 묻는다. 이승만 독재 타도 투쟁에 나섰다 고귀한 목숨을 희생시키고 4.19 민주묘역에 잠들어 있는 민주열사들은 시대적 요구를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자들이었나. 유신독재에 맞서 싸우다 희생된 무수한 '구충서'들, 그리고 박정희 정권의 언론탄압에 분연히 맞서 싸웠던 70년대 언론인들 역시 정신 나간 자들이었나.

그는 나아가 "박정희 개발독재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의 시초였다"고 강변한다. 그의 논리는 한국 근대화의 기초를 닦아 주었던 것이 일제 식민통치였다는 일본 극우 세력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 이제 우리는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의 길을 열어 준 일본에 크게 감사해야 할 판이다. 무엇보다 일제는 '위대한 공동체적(혹은 전체주의적) 인간 박정희(혹은 다카기 마사오;高木正雄)'를 교육시켜 주지 않았나.

그는 "민주주의라는 건 경제개발로 중산층이 형성되어야만 가능"하단다. 오늘날 민주화의 물결이 히말라야 산록을 거슬러 올라 네팔과 부탄을 민주화시키고 또 중동의 빈국 튀니지, 이집트, 시리아, 예멘 등을 휩쓸고 있다는 것을 대 언론인 김진이 정말 모르고서 하는 말인가. 민주화 투쟁에 나선 국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하고 있는 리비아의 카다피가 40여 년 전 쿠데타로 권력을 쥔 다음 소위 '녹색혁명'을 확산시켰을 때 서방의 일부 언론과 학자들은 그를 '근대화 엘리트'로 칭송한 바 있었다. 그러나 카다피는 박정희와 마찬가지로 잔혹한 독재자일 뿐이다. 그가 아무리 텐트에 기거하면서 '청렴'을 가장해 왔고 또 진정 '인민을 위한' 통치를 해 왔다고 큰 소리 치더라도 말이다.

박정희나 카다피처럼 평생 독재자 노릇을 하려 했던 자들에게 '청렴'을 논하는 것이야말로 가소로운 얘기다. 죽을 때까지 나라 전체가 자기 소유일 것으로 믿는 자들이 왜 7년 임기를 채우면 권좌를 넘겨줘야 할 자들처럼 째째하게 푼돈을 모으느라 혈안이 되겠는가.

"쿠데타-혁명도 제대로 구별 못하는 김진이 언론인?

박정희와 유신독재체제로부터 "영양을 공급받아 호의호식"해 온 '박정의의 부하들'의 위선에 찬 증언에 기대어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인사를 능멸하는 김 논설위원에게 분노를 넘어 차라리 연민을 느낀다. 그가 영합하려는 대상이 역사도 아니고 진실도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의 눈으로 볼 때 권력 획득을 목전에 둔 것처럼 보이는 박정희의 딸이야말로 그가 진정 영합하고 또 비호하고 싶은 대상이리라.

"박정희 소장을 비껴간 헌병대 총탄에 감사한다"는 김 논설위원의 언급에 대응해서 "대통령 박정희를 비껴가지 않은 그의 부하 김재규의 총탄에 감사한다"는 말을 나는 결코 하고 싶지 않다. 내 눈에는 김재규 역시 독재자 박정희의 부하일 뿐이다.

그러나 경제학을 전공해서 쿠데타와 혁명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김진 논설위원에게 정치학자로서 이것 하나만은 정확하게 가르쳐주고자 한다. 1789년 프랑스 인민들이 궐기해서 부르봉 왕조를 붕괴시킨 것은 '혁명'이었다. 그로부터 10년 뒤 브뤼메르 18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군이 무력을 앞세워 총재 정부를 붕괴시킨 것은 '쿠데타'였다. 마찬가지로 1960년 4월 한국 인민들이 궐기해서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것은 '혁명'이었고, 그 결과 수립된 제2공화국을 박정희 소장을 우두머리로 한 군인들이 무력으로 전복시킨 것은 '쿠데타'였다.

무식하면 입을 다물고 있으면 본전은 한다. 알면서도 글을 썼다면 언론인 자격이 없다.

 /김수진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2012년 5월 22일 화요일

진짜 '종북주의자'여, 이제 '커밍아웃'하자!


이글은 프레시안 2012-05-22일자 기사 '진짜 '종북주의자'여, 이제 '커밍아웃'하자!'를 퍼왔습니다.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가짜 '종북주의자'는 가라!

1. 천안함 침몰 원인에 '믿음'을 가진 사람들

지난 주 문화방송(MBC) (100분 토론)에서 진중권 교수가 이런 취지의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북한에 대해 우호적이고 관용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것은 남북 관계의 발전을 위해 좋은 일이다. 하지만 핵 개발도 좋고 3대 세습도 괜찮다고까지 하는 건 좀…."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이 여기 화답하는데, 말도 안 되는 행태의 사례를 하나 더 붙인다. 천안함 북한 격침 설을 부정하는 것.

김진에게는 북한의 천안함 격침이 의문의 여지없는 사실인 모양이다. 그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 자격도 지성인의 자격도 의심스럽다고 보는 것 같다. 정부 발표를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에게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이고 나처럼 그 발표에 반대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김진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천안함 관계 정부 주장을 맹신하는 김진이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언론에 공개된 그 숱한 반증을 보고도 확신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어리석은 것이다.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해 김진과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은 한국 반공주의의 역사 때문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무조건 최악의 생각만 하라는 교육과 선전에 수십 년 동안 세뇌당해 오지 않았는가. 지금 정부의 천안함 주장을 그대로 믿지 못하는 국민이 60퍼센트가 넘는 것은 이 사회가 세뇌 상태에서 많이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아직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상당수 있고, 그 사람들 입맛에 맞추는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있다. 그러나 그 현상이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다. 계속 줄어들고 있는 현상이니까. 그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핵 개발이나 3대 세습을 '말도 안 되는 짓'으로 여기는 진중권의 관점이다. 이 관점에는 이 사회에서 스스로 깨어 있다고 자부하는 이들도 많이 동조하기 때문에 걱정스러운 것이다.

핵 개발은 평화를 위협하는 짓이고 3대 세습은 민주주의 원리에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착한 사람들에게 나쁜 짓으로 보인다. 그래서 남북 관계의 발전을 바라는 사람들도 그 두 가지만은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2. "사람 행동은 형편 따라가는 거란다."

연변의 어느 할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조선족 작가 L씨의 북한 친척 중 연변에 자주 출장 온 분이 있다고 했다. 상당 수준의 관직이나 당직에 있었던 모양이다.

1956년생의 L씨가 어렸을 때는 이 아저씨가 우리 관념으로 산타클로스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먹을 것, 입을 것, 아이들 위한 것, 어른들 위한 것, 늘 뭔가 잔뜩 가져오는 사람이었다. 1970년대까지, 북한이 중국보다 사정이 좋았을 때의 기억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이 아저씨가 가져오는 사람으로부터 가져가는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출장 오면 L씨 집에 묵는데, 우선 가져오는 것이 차츰 없어졌다고 한다. 뭔가 나름대로 선물을 가져오기야 하겠지만 풍족해지는 중국 형편에 비추어 눈에 띄지 않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문제는 이 아저씨 다녀가고 나면 값나가는 물건이 하나씩 둘씩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는 데 있었다. 어느 시점에서 이 사실이 의문의 여지없이 분명해졌을 때 화를 내는 L씨에게 그 어머님이 말씀하셨다고 한다.

"사람 행동은 형편 따라가는 거란다. 걔가 착한 사람이란 건 오래 겪어봐서 알지 않냐? 우리가 참아줄 수 있는 건 참아줘야 한다."

3. 이웃의 행동을 바꾸는 외과적 방법과 내과적 방법

그렇다. 사람 행동에는 형편을 따라가는 면이 있다. 누구나 형편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의로운 사람이라면 어느 범위의 나쁜 짓은 어떤 형편에서도 절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진다. 공자가 말한 불인지심(不忍之心), 즉 '말도 안 되는 짓'이다. 이 의지가 사람의 도덕성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높은 도덕성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고 그러지 않는 사람이 있다. 너무 높은 도덕성을 바라보는 사람은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고 실패할 위험이 크다. 더군다나 자기 기준을 남에게까지 요구했다가 실패할 경우 악인보다도 더 추한 위선자로 전락할 수 있다. 형편이 나와 다른 사람에게 내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는 일은 극히 조심해야 한다.

북한이 핵 개발을 그만두고 국가 권력 세습 체제에서 벗어나기 바랄 때 그 행위를 금지시키는 외과적 방법과 그런 행위를 해야만 하는 형편을 바꿔주는 내과적 방법이 있다. 형편이 괜찮은데도 우리가 싫어하는 짓을 굳이 하려 든다면 외과적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북한의 형편이 대단히 나쁘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그 형편을 나쁘게 만드는 데 남한 정부도 한 몫 해 왔다.

아무리 형편이 어렵더라도 연평도 포격 같은 짓은 하면 안 된다. 대차대조표가 단순한 그런 행위의 비판에는 조심스럽게 생각할 여지가 별로 없다. 핵 개발은 훨씬 복잡한 함의를 품는 일이다. 그리고 국가 권력 세습은 그보다도 더 의미가 복잡한 일이다.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채 우리 기준만으로 재단할 일이 아니다.

4. 되살아나고 있는 민족 정체성의 중요성

북한을 배려하는 사람이 더러 있는 것은 괜찮지만, 그런 사람들도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는, 진중권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생각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두 가지 점에서 생각을 달리한다.

첫째, 북한을 적극적으로 배려하는 사람(종북주의자?)이 우리 사회에 조금만 있으면 된다고 하는 진중권의 생각에 나는 반대한다. 남북 관계에는 민족 정체성의 문제가 걸려 있다. 다른 나라와의 관계가 나와 남의 관계라면 남북 관계는 잃어버린 반쪽끼리의 관계요, 대아(大我)와 소아(小我)의 관계다. 전문가에게만 맡겨놓을 수 없는 일이요, 민족을 아끼는 마음 가진 사람 모두에게 직접적인 자기 일이다.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도 나와 남의 관계를 넘어서는 층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비교해서 하는 얘기다.)

민족과 국가의 힘과 뜻이 줄어드는 세계화의 시대에 개인의 행복 증진을 위한 노력이 민족 정체성 회복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근년 내 글쓰기의 주된 목적이 이 주장의 반박에 있다. 원자론적 세계관에 입각한 개인의 파편화가 현대인, 특히 한국인의 대다수를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 원인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세계화의 주된 흐름이 개인의 파편화를 더욱 심화하는 경제적 세계화에 쏠려 있다는 것이 잘못된 일이다. 세계화 자체는 시대의 흐름인데, 경제적 세계화보다 정치적 세계화에 비중을 두어야 현대인의 불행을 줄이고 인류 문명의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 약자를 보호하는 정부의 역할을 전 세계적 차원에서 실현하는 것이 정치적 세계화다.

정치적 세계화를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정체성이 확실해야 한다. 파편화된 개인이 강자의 횡포 앞에 방치되는 일을 막는 전 세계적 네트워크, 즉 세계 정부의 기반이 그 위에 놓일 것이기 때문이다. 내부의 불화와 불신을 극복하지 못하는 민족은 정치적 세계화에 공헌할 수도 없고 그 혜택을 받을 수도 없다. 민족 문제 해결이 경제 성장이나 민주주의 발전보다도 더 중요한 이유다.

5. 남한이 북한을 흉보고 동정할 주제가 되나?

둘째, 핵 개발과 3대 세습 같은 일은 비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진중권의 생각에 나는 반대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 사정을 우리가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앎(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이라고 공자도 말하지 않았는가.

북한 사정을 잘 모르더라도 핵 개발이나 3대 세습이 나쁜 짓임은 분명한 것 아니냐고 진중권은 생각하는 것 같다. 역사를 공부한 나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생각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일 수는 있지만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나쁜 짓'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핵무기는 20세기 중엽에야 나타난 것이니 역사학도가 특별히 뭐라고 할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국가 권력의 혈연 세습은 인류 사회의 보편적 현상이었다. 민주공화제가 군주제를 널리 대치한 것은 20세기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민주 정치다운 민주 정치가 작동하고 있는 곳은 지금도 많지 않다.

남한에서도 핵 개발과 1인 종신 독재를 시도한 일이 있었다. 1970년대의 일이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남한 형편에서는 그런 일이 '말도 안 되는 짓'이 되어 있다. 지금 북한 형편은 어떤 것일까? 지금의 남한 형편보다는 40년 전 남한 형편에 가까운 것 같다.

남한의 민주 정치 역시 아직도 제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남한 사람이 북한 독재 정치를 흉보거나 동정할 주제가 되는지 생각할 점이 많다. 민주공화제가 혈연 세습보다 좋은 것이라고 우리가 진정 믿는다면 북한에서도 민주 정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도울 길을 찾아야지, 그런 짓 하면 안 된다고 손가락질할 일이 아니다.

오만은 악인만의 것이 아니다. 착한 사람의 오만이 더 무섭다. 북한을 호의적으로 대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도 제국주의시대의 '백인의 짐(white man's burden)'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식민 지배를 확장하면서 '문명'을 전해준다고 자부한 것과 같은 마음으로 '민주주의'의 전파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연합뉴스

6. 명분을 버리고 음모에만 매달리는 '종북주의자'들

통합진보당 사태 앞에 '당권파=NL=종북주의'의 등식을 그리며 종북주의를 척결하면 폭력과 혼란의 성향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말이 전도된 이야기다. 종북주의는 폭력과 혼란이 낳은 결과물이지, 그 원인이 아니다.

북한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반공주의 관점도 긍정적으로만 보는 종북주의 관점도 똑같이 정보 차단의 결과다. '앎'이 없으니 '믿음'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종북주의가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는 말이 있다. 비현실적인 믿음이 일어나는 것은 정보 부족 때문이고, 비밀과 음모의 조직력이 득세하는 것은 불합리한 처벌 때문이다.

어느 사회에나 비밀과 음모를 좋아하는 성향의 사람들이 있다. 밝은 사회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큰 조직을 이룰 기회가 별로 없어서 각자 취미 생활 차원에서 성향을 드러낼 뿐이다. 그런데 억압과 부조리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조직 활동을 벌일 명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작고 비밀스러운 조직에는 명분 자체를 아끼기보다 비밀과 음모를 좋아해서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어 있다. 이따금 180도 '전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명분보다 음모를 좋아하던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행태를 보며 우리 사회가 많이 밝아졌다는 생각을 한다. 국가보안법이 살아있는 한 '종북'은 비밀 조직을 위한 강력한 명분으로 남아있다. '민족 대의'와 '사회 정의'를 포괄하는 당당한 명분이면서 제도적 억압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권파'의 행태를 보면 명분은 간 데 없고 음모만 판을 친다. 원칙과 상식을 무시한 그 희한한 꼼수들은 '민족 대의'를 아끼는 사람들에게서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런 비밀 조직을 통하지 않고도 '종북'의 길을 충분히 찾을 수 있을 만큼 사회가 밝아졌기 때문에, 이제는 스스로 어두움을 좋아하는 자들만이 비밀 조직에 남아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내가 종북주의자임을 당당히 밝힌다. 잡혀갈 걱정 않으면서.

7. 우리는 무엇을 양보할 것인가?

꼭 '종북(從北)'이란 표현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친북(親北)'은 일반 국제 관계에 쓰이는 말이라서 그와 차원이 다른 남북 관계에 쓰기가 어색하다. 고르라면 '중북(重北)'이라 하고 싶지만 번거롭게 그럴 것 있나. 좋은 뜻으로는 아니더라도 '종북'이 많이 쓰여 온 말이고 글자의 뜻 자체가 맞는 것이니 내 주장을 '종북주의'로 표현해 둔다.

내 주장의 요점은 이렇다. (1) 분단 극복은 우리 사회의 일반적 인식보다 훨씬 더 중요한 과제다. (2) 분단 극복은 당사자들의 자발적 노력으로 이뤄져야 한다. (3) 분단 극복과 아울러 해결할 과제들이 남한보다 북한에 많다. 고립 상태 때문이다. (4) 따라서 분단 극복의 구체적 방법은 남한보다 북한 사정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면서 강구되어야 한다.

(2), (3), (4)에 대해서는 독자 대부분이 쉽게 동의할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1)에 대해, 중요하다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 '종북주의'의 실질적 의미가 이 차이에 걸려있다.

분단 극복의 필요성을 매우 크고 강하게 인식한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양보해야 한다. 사치를 포기하는 경제적 양보만이 아니라 사회 보장의 약화와 자유의 축소 등 사회적 경제적 양보도 생각할 수 있다. 종래의 종북주의자들이 무조건 모든 것을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내 주장은 아무것도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서 일단 벗어나자는 것이다.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제4절에서 민족문제 해결의 시대적 중요성을 내 나름대로 간략하게 제시했다. 여기에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다른 이유로 더 큰 중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청하는 것은 분단 극복의 필요성을 지금까지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허심탄회하게 살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통일을 이념의 문제 아닌 현실의 문제로 만들자는 것이다.

끝으로 '종북주의' 깃발을 지켜온 분들에게 한 마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깃발을 지켜 온 공로를 치하한다.

하지만 있지도 않은, 있을 수도 없는 '북한 지령'이 있는 척하면서 당신들은 명분을 등졌다. (지령이 있었다면 북한 한 모퉁이의 음모 집단이 보낸 것이겠지.) '종북'의 명분과 '진보'의 이름을 이용 대상으로만 여긴 당신들은 '국가'를 이용 대상으로만 여기는 극우 세력과 적대적 공생관계로 야합했다. 이제 깃발을 내려놓으시라.


 /김기협 역사학자

2012년 4월 30일 월요일

<중앙> 김진, 박근혜 원색비난...<조선>은?


이글은 뷰스엔뉴스(VIEWS&NEWS) 2012-04-30일자 기사 '(중앙) 김진, 박근혜 원색비난...(조선)은?'을 퍼왔습니다.
김진 "美쇠고기 검역중단? 박근혜, 능력 떨어지거나 용기 부족"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미국산 쇠고기 검역 중단을 촉구한 데 대해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30일 "박근혜는 진실 파악 능력이 떨어지거나, 아니면 진실을 말할 용기가 부족하다"고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다.

김진 위원은 이날 '광우병에 흔들리는 박근혜'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사회가 흔들릴 때 지도자의 능력이 드러난다"며 "이토록 중요한 국면에서 박근혜는 검역중단을 주장했다. 반대 세력에 동조한 것이다. 과연 박근혜 판단력은 안전한가"라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미국산 쇠고기는 역사적·현실적으로 안전하다"며 "국제수역(獸疫)사무국(OIE)은 미국을 ‘광우병 위험 통제국’으로 분류한다. 2008년 파동 때도 이전에 미국에서 발생한 광우병은 2건에 불과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십억 인류 중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인간 광우병에 걸린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이를 알기에 세계인은 요동하지 않는다"며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절대안전을 보증했다.

그는 이어 "박근혜 위원장 등이 주장하는 검역중단은 사실상 수입 중단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이 반격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인은 비(非)과학적인 국민이 된다. 4년 만에 다시 근거 없는 불안에 벌벌 떠는 사람들이 되는 거"라고 비난한 뒤, "2008년 정부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광고를 낸 적이 있다. 박근혜는 이를 들어 ‘신뢰의 정치’를 얘기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수세에 몰린 정부의 ‘감성적인’ 광고였다. 수개월 후 여야는 ‘이성(理性)’을 되찾았다. 수입 중단을 정부가 판단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든 것"이라고 정부를 감쌌다.

그는 더 나아가 "박근혜는 광우병 파동의 본질을 잘 모르는 것 같다. 4년 전 그는 쇠고기 파동에 대해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라며 "이는 사실과 틀린 것이다. 당시 촛불은 처음엔 ‘국민건강’이었다. 그러나 곧 미신과 선동, 반미(反美)가 섞이면서 이념 사태로 변질됐다"며 거듭 박 위원장을 비난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박근혜는 진실 파악 능력이 떨어지거나, 아니면 진실을 말할 용기가 부족하다"고 힐난한 뒤, "지도자라면 이렇게 말해야 한다. '국민 여러분, 미국산 쇠고기 안전에 위험이 생긴 상황은 없습니다. 세계인은 차분하게 대처합니다. 우리도 정부를 믿고 지켜봅시다. 4년 전처럼 괴담이나 선동에 휩쓸려선 안 됩니다. 저는 오늘 저녁 미국 쇠고기를 먹을 겁니다.'”라는 주장으로 글을 끝맺었다.

(동아일보)도 이날자 사설을 통해 "지금 여야는 당시의 신문광고를 근거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하지만 4년 전과 똑같은 미봉책을 선택할 수는 없다"며 박근혜 위원장 이름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으면서도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사설은 "2008년 촛불시위 때 나온 ‘어떤 유언’이라는 노래의 가사는 ‘내가 광우병에 걸려 병원 가면 건강보험 민영화로 치료도 못 받고 그냥 죽을 텐데 땅도 없고 돈도 없으니 화장해서 대운하에 뿌려다오’라고 돼 있다. 우리 사회가 또다시 이런 거짓과 괴담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며 광우병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자 (조선일보)는 (중앙)(동아)과 달랐다.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박 위원장의 검역중단 발언과 정부의 미국 쇠고기 안전 주장을 함께 전한 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계속할지는 미국이 팩스로 보냈다는 자료만 들여다보면서 광우병 발생 확률을 따지는 식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 국민 건강이 걸린 문제인 만큼 국민이 느끼는 심리적 불안을 잣대 삼아 방침을 정해야 한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사설은 또한 "정부는 2008년 5월 8일 주요 일간지에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습니다'라는 광고를 냈었다. 정부는 이제 와 그 광고에 대해 '국민이 위험에 처한다는 판단이 들면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뜻이었는데 한정된 지면 때문에 표현이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다"며 "정부가 4년 전 국민에게 했던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한다면, 그런 정부가 '우리가 수입하는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하는 지금 말 또한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는 의심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며 거듭 정부의 말바꾸기를 비난했다.

사설은 결론적으로 "이 정부는 집권 초 국민 건강보다 미국과의 통상 관계를 앞세우는 모습을 보였다가 촛불 시위를 불러들였던 전과(前科)가 있다"며 "정부가 그때의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이번 광우병 발생에 대해 국민 건강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다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엄격한 기준을 세워 대응해야 한다"며 사실상 박 위원장에게 지지 입장을 밝혔다.

김혜영 기자

2012년 3월 28일 수요일

여론이 '중앙' 김진의 ‘색깔론’을 거부한 이유


이글은 미디어스 2012-03-27일자 기사 '여론이 '중앙' 김진의 ‘색깔론’을 거부한 이유'를 퍼왔습니다.
[비평]사실이 없는 색깔론의 무력함

다시, ‘색깔’이다. 선거를 보름여 앞두고, 조중동이 정치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소재는 ‘경기동부’다. 구태의연하더라도 다시 ‘주사파’ 타령이다. 시기는 맞춤하고, 의도는 적나라하다. 비판에 합세한 조중동의 흐름은 일치된 것이었고, 기사의 전개는 유려하다. 조중동은 경기동부를 호명하곤, 사실에 대한 확인과 검증을 건너뛰고 곧장 가정과 주장으로 향했다. SNS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최대한 기정사실화해, 상황을 최대한 익숙한 색깔론의 구도로 단순화했다.
26일까지는 조중동 모두에서 ‘스트레이트’가 범람하던 국면이었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차원에서 진중권 교수의 멘션이 인터뷰 코멘트처럼 널리 인용됐고, 조중동의 구미에 딱 맞는 이야기를 하는 변희재의 발언이 비중 있게 다뤄졌다. 이정희 의원은 ‘쉬리’의 여전사가 연상되는 ‘숙성 괴물’로 묘사되었고, 그녀의 남편은 신비감이 최대한 증폭된 ‘주사파의 이데올로그’로 표상됐다.
하지만 이 대표가 사퇴하고 통진당이 조선일보에 대한 취재거부를 선언한 27일로 접어들며 상황이 좀 변화하고 있다. 소설보다 더 흥미롭던 ‘스트레이트’의 국면이 지나가고, 주장/주의가 난무하는 ‘프로파간다’ 지면이 찾아오자 본색이 드러나고 있다. 


▲ 27일자 김진 칼럼 "역사가 이정희를 거부한 이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이다. 새누리당 대변인으로 임명된 중앙일보 출신 이상일 대변인이 연일 '색깔론'을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그의 동료였던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은 이번 ‘색깔론’에 ‘운명’과 ‘영령’까지 끌어들였다. 김진은 ‘역사가 이정희를 거부했다’고 규정하며, “2년 전 유시민을 무대에서 끌어내렸던 국가안보의 영령”을 또 보았노라고 감탄했다.
김진의 논법을 따라 에두르지 말고, 질러 말해보자. 김진이 2년 전 사례를 꺼내들며, 경기동부를 희생양으로 삼아 원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전선’의 구축이다. ‘MB심판론’의 총선이 아니라 ‘야당심판론’의 총선이다. 하지만 살아있는 권력이 버젓한데, 죽은 권력을 다시 심판하자는 건 논설위원 씩이나 되서 주장하기엔 멋쩍은 '프레임'이다. 제 정신을 가진 언론인이 말하기는 힘든 언어 도단다.
김진은 경기동부를 지렛대로 조중동은 죽은 권력을 심판하자는 낙후된 프레임을 버리고, 미래 권력(이 될지도 모르는 이들을) 심판하자는 세련된 논법을 출격시킨다. 실제, 조중동은 경기동부가 등장한 이후 부쩍 통진당이 원내교섭단체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부각하고 있다. 김진은 아예 이정희를 향해 ‘의회 지도자’라는 표현까지 썼다. 진보정당 대표에 대한 유례없을 융숭한 대접은 역설적이게도 ‘야권 총선 승리=경기동부 미래권력’이란 도식의 구축을 위한 디테일인 셈이다. 
그러나 김진의 이 규정은 무리하다. 무수한 갈래 길과 드넓은 공백이 있다. 한 트위터리안은 이번 사건이 “골방에 있던 운동권 정파 조직이 세상에 드러난 일”이라고 했는데, 김진은 이를 받아 말하자면 “운동권 정파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 셈이다. 그리곤 좌고우면하지 않고, ‘색깔론’으로만 일방 돌진했다. 전매특허의 발현, 전가의 보도, 거침없는 하이킥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잘 먹히지 않는다. 트위플은 ‘주사파의 실체가 드러났다’는 설레발에 비해 여전히 이정희 엄호 양상은 두드러지고, 야권연대에 대한 지지가 공고하다는 점은 여론조사 결과로 확인된다. 왜 일까? 일차적으로 말하면 ‘사실’의 힘이 없기 때문이다. 조중동은 경기동부에 대한 ‘사실’을 갖고 있지 않고, 주사파에 관한 ‘취재’된 진실이 없다. 다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정’을 기정사실로 변환하는 논리적 ‘기술’로 사건을 구성하고 있을 뿐이다. 늘 팔아왔던 ‘색깔론’을 도래한 정치의 계절에 다시 팔고 있을 뿐이다.
이건 흡사, 아스팔트 우파라고 불리는 어르신들이 집회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미국이 도와줘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됐다’고 주창하는 안보에 대한 절대적 믿음 같은 것과 다르지 않다. 내용적으로 빈약하고, 효과 면에선 낙제점이다. 실상, ‘색깔론’이라고 하는 전가의 보도가 이렇게 무딘 칼이었단 점은 놀랍기까지 하다. 지난 십 수 년 간 조중동이 휘둘러 온 ‘색깔론’에 비해 조중동 내부에 축적된 내용의 실체는 트위터에서 떠도는 멘션만큼도 안 된다. 조선은 87학번 이정희를 92년에 결성된 전국연합이 육성했다고 할 만큼 부정확하고, 중앙일보 김진은 ‘영령’을 끌어들이지 않고선 논리를 세우지 못할 정도로 감정적일 뿐이다.
경기동부의 실체에 대해 조중동은 거의 아는 게 없다는 점, 김진이 주사파에 관한한 ‘카더라 통신’ 이상의 정보력이 없다는 점은 그 자체로 매우 시사적이다. 이는 조중동이 누군가에겐 잘 들리지만, 대부분의 이들에겐 전혀 소구되지 않는 메아리라는 점을 보여준다. 양질의 정보가 거의 무제한적으로 제공되는 미디어환경에서 늘 같은 얘기를 하지만 별다른 정보는 없는 김진과 같은 언론인의 존재감은 점점 옅어질 수밖에 없다. 


▲ 이정희 대표가 사퇴한 이후에도 조선일보는 계속 '경기동부'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스트레이트를 가장한 '소설'이 범람했는데, 통합진보당은 결국 조선일보에 대한 취재 거부를 선언했다.

그래서, 다시 제기된 ‘색깔’이지만 이번 선거도 ‘색깔’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조중동이 열과 성을 다해 이 대표와 야권연대를 물어뜯는 시간에도 여론은 야권연대를 찍겠단 의지를 다졌다. 김진이 과대망상적 역사를 본 순간,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정희 대표의 사퇴를 정점으로 여론이 다시 ‘정권심판론’을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과학'을 전했다. 야권이 ‘잡음’을 일으킬 때, 이를 색깔론으로 역공한 조중동의 타이밍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영향력은 신통치 않다. 구성력이 너무 떨어지고, 구성 자체가 견딜 수 없이 진부하다. 단언하건데, 김진이 말한 ‘역사의 비상한 작동’ 같은 건 없다. 경기동부가 호명되고 또 주사파 타령이 울려 퍼지지만 조중동이 원하는 ‘전선’은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영령'을 끌어들이는 것은 이미 '이성'의 영역이 아니라는 자기 고백같은 것이 아닌가.

2011년 12월 29일 목요일

정치인들은 여전히 조중동이 두렵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1-12-28일자 기사 '정치인들은 여전히 조중동이 두렵다'를 퍼왔습니다.
[조중동과 야당 정치인] “신상털기에 보복성 기사까지… 문제 많다는 건 알지만 영향력 무시못해”

정청래 전 의원이 지난 13일 MBC 에서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과 ‘맞짱’을 떴다. 정 전 의원은 이날 방송에서 “조중동의 신뢰도는 2003년 당시 19%로 나타났다”, “(가 뜬 것은)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수구 언론 등 언론이 제 역할을 못 했기 때문이다” 등 맹공을 퍼부었다. 정 전 의원처럼 조중동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정치하는 인물은 야권 내 몇 명이나 될까. 민주통합당은 앞으로 그럴 수 있을까. /편집자 주
“정권이 조폭적 언론과의 전쟁선포도 불사해야 한다.”
정치인 가운데 본격적으로 조중동과의 싸움을 시작한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지난 2001년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이와 같은 말을 한 그는 이듬해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출마한 뒤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거절한다.
동시에 노 전 대통령은 그들과의 싸움이 외롭고 험난한 길임을 보여줬다. 이들 신문의 표적이 된 그에게 집권여당조차 결국 등을 돌렸다.
이런 분위기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민주통합당(민주당)은 종합편성채널 탄생을 막기 위해 미디어법을 결사적으로 저지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싸움이 외로웠듯이, 지금도 “전쟁 불사”를 외치는 이는 소수다. 언론개혁에 앞장서는 동료의원들을 말리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나서서 지지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민주당 의원들의 대체적인 모습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굳이 자기 손에 피를 묻히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말로 거대 언론과 불편한 관계를 만들지 않으려는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2004년부터 신문법 개정에 앞장섰던 정청래 전 의원은 “의원 열 명이 함께 이 일에 뛰어들었다면 나만 표적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에게 보복당하고 보니 ‘이런 것이 무서워서 안했구나’ 라고 나중에서야 알았다”고 술회했다. 정 전 의원은 ‘모가지 발언 사건’을 대서특필한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의 보도 이후 18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결국 허위보도로 판결났지만 신문법 개정을 주도했던 그가 ‘표적’이 됐다는 평가가 많았다.
당내 보수적인 인사들이 조중동을 ‘메이저 언론사’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들 신문을 타 언론사보다 우대하고 국정감사 자료와 같은 정보를 우선적으로 제공하는 것도 이러한 인식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극히 일부지만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조중동을 통로 삼아 정보를 흘리면서 언론 플레이를 하는 인사들도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또한 김대중 정권 때는 이들 언론과의 관계가 크게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노무현 정권 이전 인사들은 조중동과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이런 지적을 한 다수 인사들은 “언론에 표출되기 싫어하는 정치인이 어디 있느냐”며 “이들은 조중동의 문제를 모르지는 않지만 언론 개혁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럼에도 미디어법 반대 투쟁에는 당내 모든 인사들이 나섰다. 그래도 민주당이 조중동으로 인한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최소한의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사례다. 하지만 다소 박한 평가도 적지 않았다. 당내 보수 인사들이 이 투쟁에 나선 것은 종편이 출범하면 정권 재창출이 어려워질 수도 있겠다는 절박감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이들에 대해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이들은 조중동으로부터 각개격파당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같은 분위기에는 조중동의 직간접적인 압박과 순치도 작용됐다. 정 전 의원의 예는 ‘찍히면 죽는다’는 이들 신문의 압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압박의 형태는 다양하다. 표적 취재가 대표적이다. 정 전 의원의 경우 신동아가 3개월 동안 일종의 ‘신상털기’를 했다.
탤런트 고 장자연씨에게 성접대를 받은 인물로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실명을 거론했던 이종걸 의원 역시 각종 압박에 시달렸다. 조선일보의 김대중 주필은 통화로 만나자고 청한 뒤 이 의원에게 “방상훈 사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주필은 정치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대표적인 보수 논객이다.
조선일보가 칼럼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한 어느 일본 국회의원이 결국 투신자살한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이종걸 의원이 나가타 소식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한 일은 꽤나 유명하다. 이 의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한 마디로 죽으라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미디어법 처리 당시에도 조중동이 직접적으로 나서지는 않았지만 일부 민주당 의원들을 개개별로 접촉했다는 것이 후문이다. 당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한 의원 관계자는 “조선일보 기자들이 지나가면서 몇 차례 ‘너무 그러지마라’고 말했다”며 “농담 삼아 한 것일 수도 있지만 가히 (기분이)좋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보좌관 출신의 한 서울시의원은 “그때 당시 조중동이 직접적으로 압박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조중동은 존재 그 자체가 압박이 된다”고 말했다. 미디어법 투쟁에 앞장섰던 천정배 전 최고위원도 “조중동이 대서특필하면 (정치인에게) 득이 될 것 없고, 상처를 입는다. 정치인들은 아무래도 (조중동을) 두려워한다”고 지적했다. 
조중동은 자신들에 비판적인 정치인들에게는 순치시키려고도 한다. 이른바 ‘띄워주기성’ 보도다. 언론에 노출되기를 원하는 정치인으로서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정청래 전 의원은 “언론개혁을 내걸고 17대 총선에 나가 당선되자 중앙일보에서 나에 대해 (원고지) 5매 정도의 기사를 써주겠다고 했다. 조선일보에서도 연락이 왔지만 거절했다”며 “나를 순치하려는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들 신문은 정치권을 압박하기 위해 종종 단체의 이름을 빌리기도 한다. 민주당(당시 열린우리당)은 2004년 특정인의 신문사 소유 지분을 제한하는 신문법 개정에 나선 적이 있다. 그러자 한국신문협회보는 그 시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자본집중과 시장 독점 현상은 언론계의 중요한 과제로 다뤄지고 있으나 자연 증가하는 시장 점유율이 높다는 이유로 해당 신문사 사주의 소유지분을 제한하는 사례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지적했다. 협회보를 발간했던 당시 한국신문협회장은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었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정치인들이 자기 검열 과정을 겪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들 신문에서 사설이나 칼럼 등을 통해 당에 비판을 가장한 주문을 하면 많은 이들이 영향력 받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는 여야 모두가 ‘조중동포비아’를 가졌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종편사들의 본격적인 방송 활동과 지상파 방송사들까지 가세한 광고 직접 영업으로 내년 언론 환경은 더욱 척박해질 전망이다. 이런 시점에 민주당은 ‘종편 재검토’를 강령으로 내걸었다. 이러한 당내 분위기 속에서 또 한 번 소수 의원들만의 자기희생만으로 이 막중한 사안을 해내려는 것일까.
외부 환경은 17대 국회 때보다 더 유리해졌다. 조중동 보도에 대해 시민들이 SNS를 통해 평가하고 오보를 걸러내는 작업이 실시간 이뤄지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조중동 비판이 전국민적 스포츠”가 됐다. 이로써 ‘조중동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 하다’는 평가는 일반적으로 자리 잡았다.
낮아진 신문구독률도 간접적으로 이런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이들 신문은 통상적으로 기사 배열·배치 등과 같은 편집을 통해 어젠다를 설정했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기사를 접하는 추세가 늘어나다보니 이 기능의 효과는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외부 환경의 변화만으로 민주당이 언론개혁의 과제를 수행해낼 수는 없다. 결국 문제는 인적 구성이다. 조중동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정치하려면 ‘제대로 된 공천’이 답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민주당 관계자는 “우리 정치 구조는 자수성가한 사람보다는 사회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을 영입하거나 낙하산이 많다. 이미 기득권을 쥔 사람들이라 조중동 개혁을 꺼려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천정배 전 최고위원은 “언론개혁은 개혁 진영이 가진 최대 과제다. (이를 위해)결국 제대로 사회를 바꿔보자는 명확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야당을 주도하는가가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조중동은 정말 문제가 많다. 국회의원들이 불쌍하다. 거대언론이 정론을 펼쳤다면 국회가 이렇게 파행적으로 운영되지 않았을 것이다. 바른 언론이 바른 권력을 만난다.”

“조중동과 인터뷰하고 싶진 않지만…”
야당 의원들, 조중동 딜레마

민주통합당(민주당)에 있어 조중동은 비판의 대상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배척할 수도 없다. 어찌됐든 ‘언론’이기 때문이다. 국민들과 소통하는 하나의 창구로서 조중동은 활용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민주당 인사들에게 이는 좌절의 경험으로 다가온다. 특히 개혁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인사일수록 개혁 진영의 시선은 따갑다.
정동영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가 월간조선과 인터뷰한 것을 두고 영화배우 명계남 씨가 지지를 철회하는 등  ‘노사모’의 지지율이 반 토막 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신문에 가깝다고 인식되면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는 셈이다. 의 정봉주 전 의원도 종편 출범으로 ‘조중동매’에 속한 MBN에 출연하려다 비판 여론에 취소했다. 현재까지 종편사들의 뉴스·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한 민주당 인사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대해서는 당내 평가가 엇갈린다. 정치인들의 언론 출연까지 왈가왈부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는 반면, 이들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잘못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종편은 물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와는 인터뷰하지 않는다는 개별 원칙을 세운 정치인들도 더러 있다.   
조중동과의 ‘위험한 동거’에서 이들 정치인들이 가지는 가장 큰 고민은 개별 기자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회사와 기자를 분리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적대적인 관계가 있다고 해도 자주 마주치다 보면 기자들과 인간적인 정이 쌓인다.
이에 대해 현재 문방위에서 활동하는 한 의원의 관계자는 “조중동과 민주당이라는 집단과 집단으로는 명확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조중동 출입금지’를 써 붙이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고 기자 개개인과 인간적인 관계는 있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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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4일 수요일

100분토론, 김진은 나꼼수 지능깔대기?


이글은 미디어스 2011-12-14일자 기사 '100분토론, 김진은 나꼼수 지능깔대기?'를 퍼왔습니다.
[블로그와] 탁발의 티비 읽기

나꼼수 열풍을 다룬 100분 토론은 교양 넘치는 막말이 난무하는 등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름 성과도 있었다. 나꼼수 현상을 바라보는 보수언론의 반성 없는 태도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100분 토론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경박한 소통’ 대 ‘집단지성’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는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이 보는 현재 한국사회이고, 후자는 김호기 교수가 보는 나꼼수 현상의 진단이다.
말하자면 김진 논설위원이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나는 꼼수다의 무성한 말들이 그다지 품위 있는 것들은 아니다. 제목부터가 근엄하고는 담을 쌓고 시작한 것이 나는 꼼수다이기에 경박하다는 말에 상처받을 리는 없다. 그러나 나꼼수를 즐겨듣는 수백만에 달하는 국민에 대한 예의 있는 표현은 아니었다. 김진 논설위원의 말은 전반적으로 품위를 지키는 듯 했지만 내용면에서는 여전히 국민 특히 나꼼수를 듣는 국민들을 무시하고 깔보는 태도를 숨기지 못했다.



김진 논설위원의 논조는 두 가지였다. 나꼼수에는 팩트가 없다는 것과 품위 없고 경박스러운 편파적 매도라는 것이다. 우선 이 대목에서 빵 터진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누가 누구보다 팩트를 말하고, 편파를 말하는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맞는 말이었다. 나꼼수는 편파적이다. 편파적이지 않다면 나꼼수를 들을 이유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편파는 기존 미디어를 장악한 보수언론과 이명박 정부에 반기를 들지 못하는 굴종언론이 지난 4년간 해온 편파에 대한 편파다. 양에서 절대 불리한 편파지만 그래도 질적으로 커버가 된다. 그래서 나꼼수 열풍이 무섭게 번지는 것이다. 물이 찬 논에는 불이 번지지 않는다. 물이 없어 바짝 마른 논이라야 불길이 번지기 마련이다. 정치와 사회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이 메마른 한국 미디어 환경이기에 나꼼수의 불이 번지는 것이다. 그래서 편파긴 하지만 좋은 편파, 괜찮은 편파다.



편파라는 정도로 나꼼수에 생채기를 낼 수는 없다. 쇠고기 파동으로 일어난 촛불시위를 촛불난동으로 당당히 말하는 김진 논설위원이니 나꼼수를 북한의 사주를 받은 이적집단으로 몰아가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으로 봐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마 참아준 김진 위원의 인내력에 경의를 표할 필요가 있다. 또한 김 위원은 결과적으로 나꼼수를 대단히 이롭게 해주고 말았다. 이런 경우를 아이돌 팬덤 사이에서는 지능 안티라고 한다. 마치 까는 것처럼 하면서 칭찬하는 것으로 정봉주 의원식으로 말하자면 지능깔대기라고 할 수 있다.
100분토론이 끝난 후 최고의 감상평으로 회자된 트위터 글이 있다. “조선일보만 보시던 우리 아버지 100분 토론 보고 나꼼수 듣는 방법 알려 달라고... 김진 위원님 감사합니다~~!”라는 글이다. 결국 김진 위원은 열심히 나꼼수를 까는 척 했지만 나꼼수를 도운 일등공신이 된 것이다. 중앙일보 김진 위원 파이팅!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중앙일보 김진 “촛불은 난동, 인터넷 문화는 경박”


이글은 미디어스 2011-12-14일자 기사 '중앙일보 김진 “촛불은 난동, 인터넷 문화는 경박”'을 퍼왔습니다.
나꼼수 열풍 다룬 100분토론에 출연 … 나꼼수 맹비난

MBC 이 또 한 명의 스타(?)를 배출했다.
13일 밤 12시20분에 생방송으로 진행된 MBC ‘나꼼수 현상, 어떻게 볼 것인가’ 방송에 출연해 “촛불시위는 촛불난동이다” “한국 인터넷 문화는 경박하다” 등의 발언을 한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누리꾼들에 의해 융단폭격식 비난을 받고 있다. 누리꾼들은 이날 김 논설위원의 발언에 대해 “경박하고 천박하다”며 비난을 퍼붓고 있다.


▲ MBC '100분토론' 홈페이지 화면 캡처

인터넷 팟캐스트 라디오 의 열풍을 다룬 이날 에는 김진 논설위원 뿐 아니라 강승규 한나라당 국회의원, 정청래 전 통합민주당 국회의원,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도 토론자로 참여했다.
그러나 이날 토론에서 문제가 된 발언은 주로 김진 논설위원의 입을 통해 나왔다. 비난의 화살을 맞은 대상은 다양했다. 그는 나꼼수 뿐 아니라 한국의 인터넷 문화, 누리꾼 등 다양한 대상을 향해 전방위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심지어, 지난 2008년 촛불을 “촛불 난동”으로 규정했으며, 토론자를 향해서도 “부끄럽다”고 지적을 했다.
“나꼼수, 소통 문화 경박하게 만들어”


 ▲ MBC '100분토론' 방송 화면 캡처

먼저, 김 논설위원은 나꼼수 현상에 대해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훨씬 많다”며 “비평의 대상이 너무 편파적이며 사실에 입각한 비판이 아닌 단순 조롱이고 왜곡”이라고 문제 삼았다.
또, “나꼼수는 소통 문화를 더 경박하게 만든다”며 나꼼수 출연진 4명이 경찰에 고발된 것과 관련해서도 “근거 없이 막말을 한 대가로 거짓 정보와 당사자에 대한 조롱이 극에 달했다”고 맹비난했다.
한국의 인터넷 문화와 관련해서는 “디지털미디어 소통 문화에 있어서 어떤 선진국에 비해 한국의 문화는 대단히 경박하다. 대단히 깊이가 없고 신중하지 못하며 어떤 중요한 사안에 관해서 논리를 전개하고 논점을 제시하는데 있어서 선동과 매도를 하지 본질적인 문제 제기가 없다”며 “예를 들어 ‘미디어악법’과 ‘이명박 독재’ 이런 표현들도 선동과 매도”라고 주장했다.
또 “한국의 경박한 소통문화, 그렇지 않아도 젊은이들이 제대로 된 인성교육을 받을 시간과 공간적 여유가 없어서 계속 경박한 문화로 흐르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이 많은데, 나꼼수가 이런 경박한 문화를 악화시키는데 기여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보도에 대해서는 “이명박 정권에 대해 철저히 비판했고, 비평의 대상에 성역이 없다”며 스스로 호평했다.
이날 김 논설위원의 발언에 대한 인터넷 반응은 폭발적이다.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김 위원을 비난하는 글들이 잇달아 올라왔고, 트위터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도 김 위원을 질타, 비난하는 글이 확산되고 있다.
“나꼼수는 (중앙일보와 달리) 상품권·자전거 주며 호객행위 안 해”
시청자 강 아무개씨는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당신이 뭔데 다수의 불특정대상을 지칭하여 경박하단 표현을 쓰는 거냐. 당신이 가진 기득권과 그 특권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나같이 평범한 시민을 모독하냐”며 “나는 경박하지만 당신들처럼 권력에 달라붙어 사실을 왜곡하며 어떤 무언가에 힘이 돼주며 남을 공격하며 살진 않았다”고 김 논설위원을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또 “나꼼수는 개인의 취향이다. 듣고 싶은 분은 다운을 받으시던 접속을 하시던 자기들 마음대로 들으면 그만이고 듣기 싫으면 안 들으면 그만”이라며 “나꼼수가 방송을 들어달라며 길거리에 나와서 상품권을 주고 자전거를 주며 호객행위를 하고 있냐”고 일갈했다.
아울러 “우리가 모르는 의혹들과 사실들이 적나라하게 비추어지는 그 방송에서 할 말 못하는 기득권 언론에 대한 통쾌함이 나꼼수의 진실이라 생각한다”며 “정말 제 자식 놈은 바르고 정직하게 키워 이 더럽고 더러운 세상에 정말 옳은 소리 할 수 있는 놈으로 키워내야겠다고 김진 위원님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다짐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14일 오전 11시 현재, 김진 논설위원은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3위를 기록하는 등 방송 이후에도 꾸준히 누리꾼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