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조합원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조합원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3년 5월 8일 수요일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조합원이 되세요"


이글은 미디어스 2013-05-08일자 기사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조합원이 되세요"'를 퍼왔습니다.
[인터뷰]협동조합 전환 선언한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다시 태어난다. 프레시안이 선택한 협동조합은 '기존 주주 모델, 무료 신문 모델' 구조에서 악화될 수밖에 없는 경영과 그로 인해 흔들리는 독립 언론의 기치 사이에서 장고 끝에 얻은 결론이었다. 지난해 12월부터 시행된 협동조합기본법은 이들의 '결단'에 윤활유 같은 역할을 했다.
결단의 중심에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있다. 박 대표는 2001년 창간 이래로 12년 동안 묵묵히 프레시안을 이끌어 온 인물이다. 그가 외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협동조합 기반의 매체로 프레시안을 전환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미디어스)는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박인규 대표와 1시간가량 인터뷰를 진행했다.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박 대표는 한국 언론에서 프레시안이 가지는 의미, 광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인터넷 매체의 현실, (오마이뉴스)와의 비교, 프레시앙에 대한 고마움, 협동조합으로서의 가능성과 전략 등을 세세하게 설명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협동조합 전환과 관련해 (미디어스)기자들의 생각을 물었다. 그가 던진 질문은 고민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었다. 프레시안의 선택은 훗날 한국 언론사에서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아래는 박인규 대표 인터뷰 전문.

▲ 주식회사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됨을 알리는 프레시안의 공고문. 프레시안 화면 캡쳐



미디어스(이하 '미'):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을 꾀한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깜짝 놀랐다. 경영의 한계와 새로운 도전이라는 양면적인 추측이 가능한 상황이다. 협동조합으로 전환하게 된 핵심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박인규(이하 '박'): 경영문제가 주요한 문제였던 것은 맞다. 주식회사로 잘 나갔는데 협동조합으로 전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2001년도에 처음 프레시안을 창간할 때에도 주식회사가 아닌 다른 형태, 이를테면 NGO 같은 모델 등을 고민했었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수익성보다는 사회적 역할과 기여가 중요한 것이니까. 협동조합 얘기도 그때 나왔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협동조합하기엔 여건이 어려웠다. 사실 프레시안은 2007년에도 경영난이 있었다. 당시 한 케이블 업체와 인수·합작 이야기가 있었다. 그게 성사 단계까지 갔다가 무산됐었다. 그때 대신해서 출범한 것이 유료회원제인 '프레시앙'이다. 프레시앙으로 실제로 꽤 효과를 보았지만 그것만으로 운영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 후로는 3-4년간 네이버 뉴스캐스트의 덕을 봤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언론의 입장에서는 '독이 묻은 과일'이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혐오광고'나 '낚시기사'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프레시안에 실리는 광고는 우리가 직접 수주하는 것이 아니다. 광고 대행사가 프레시안의 광고 지면을 사서 다른 곳에 분양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혐오 광고랄까, 불편한 광고랄까, 성형외과나 치과 광고 등이 늘어났다. 그런 광고들이 더 광고효과가 높다고 하더라. 그러다보니 여성단체에서 반여성적이라는 비판도 많이 받았다. 이런 고민들도 협동조합 탄생에 큰 기여를 했다. 
 
미: 프레시안은 프레시앙 이외에도 프레시안 북스를 시작하는 등 콘텐츠를 다변화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나?
 
박: 물론 그렇다. 프레시안 북스는 콘텐츠의 다양화 측면에서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프레시안 북스는 사실 '세련되게 돈을 버는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는 취지가 있었다. 기존에는 문화방면이 매우 취약했다. 문화기사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시도해보면 클릭수가 나오질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대안은 책이었다. 책이라는 것은 종교, 학술, 예술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것이기에 책을 중심으로, 서평을 중심으로 깊이 있는 콘텐츠를 만들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우리가 강점을 가질 수 있는 책 리뷰를 통해 활로를 뚫어보자는 시도였다. 그러나 콘텐츠 유료화 측면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대기업 중심의 광고 시장에서 진보언론이 독자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어 내는 일이 너무 어렵다. 결국 작년 하반기부터 경영난을 겪고 독자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면서 협동조합의 추진이 가능해졌다. 
 
미: 처음부터 협동조합으로 가려고 했던 것은 아닐 것 같다. 다른 자구책은 없었나. 
 
박: 그 전에는 합작이랄지, 매각이랄지, 그런 논의들이 있었다. 실제로 모 대기업에 대한 합작 내지 매각이 주주들 사이에서는 합의가 되는 상황이 있었다. 기업에서는 그들에게 경영권을 주면 프레시안에 편집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건과 관련해서 내부 기자들의 반발이 있었다. 또한 프레시안은 외부 필자들이 상당한 역할을 하는 매체라는 점에서도 필자들의 의견도 중요한데, 그 분들 역시 편집권의 훼손과 침해를 우려했다.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 그러다가 12월에 협동조합기본법이 통과되면서 협동조합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3월에 기자들과 함께 심도깊은 논의를 하면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하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


▲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 ⓒ미디어스


미: 프레시앙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여쭤봐도 될까. 
 
박: 3000명 정도 된다. 처음 띄울 때 2천명 정도가 들어왔고, 후에 3천원으로도 회원이 가능하도록 기준을 낮추면서 1천명 정도가 더 들어왔다. 처음에 기획할 때는 '인건비 정도만 프레시앙으로 감당할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심정이었는데 현실은 인건비의 십분지 일 정도를 감당하고 있다. 
 
미: 협동조합으로 전환되면 조합원을 모집하는 것이 중요할 텐데, 프레시앙 회원과는 다른 어떤 권리가 있다고 강조해야 할 법도 하다. 협동조합 조합원은 어떤 차별적인 권리를 가지게 될까?
 
박: 과거 프레시앙에 대해서도 '제3의 주인'이란 표현을 썼지만 후원해주는 것에 대해 일정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이상의 권리를 보장하기는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조합원의 차이라면 당연한 것이지만 의결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비록 1/N의 의결권이라 하더라도 의미는 크다. 소비자 조합원과 생산자 조합원, 그러니까 독자 조합원과 기자 조합원을 나누어 운영하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이사회를 구성하면 기자들이 절반, 독자들이 절반 참여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물론 독자 조합원이 늘면 대의원이 필요할 테지만. 이들이 보도 방향이나 경영 방향에 대해서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부분이 가장 큰 차이점이 될 것이다. 
 
미: 역으로 협동조합원의 정치적 성향이랄까, 이런 것들이 편중되는 경우 조합원들에 의해 프레시안의 고유 편집권이 침해받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가능할 것 같다.  
 
박: 협동조합 전환하면서 기존 주주들이 걱정했던 부분도 이 지점이었다. 외국에서도 협동조합을 기반으로 한 언론이 없는 것 역시 그러한 이유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물론 편집권 독립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그러나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어젠다를 가지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는 일이다. 맹목적으로 프레시안 보도 방향에 방해가 된다고 치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의 참신한 아이디어에 프레시안이 충분히 도움을 받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오히려 참여하는 조합원을 어떻게 늘려야 할지가 더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미: 대표님의 이력을 보자면 경향신문에서는 사원 주주회사로의 전환을 경험했고 프레시안에서는 주식회사 체제를 겪었으며 지금은 협동조합을 모색하고 있다. 언론사의 소유구를 다양하게 경험했던 셈인데, 각각의 차이는 무어라고 보시는지.
 
박: 경향신문은 원체 역사의 부침이 많은 신문이다. 카톨릭 신문으로 시작했다가 MBC와 함께 정부의 권리를 받게 되었다. 나는 1987년 이후 경향신문 홀로서기 운동을 했었던 사람이다. 경향신문은 그 당시 사단법인으로 꾸려졌다. 당시 내부에서 사단법인은 좋으나 공익성을 담보할 수 있는 사람, 가령 김수환 추기경 같은 분들을 포함해서 이사진을 구성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제작 거부를 하는 등 나름의 투쟁을 했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한화그룹이 경향신문을 인수하는 와중에 나는 해고가 됐다. 사실 경향신문이 사원주주신문이 된 것은 재벌기업이 신문을 포기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지 내부 투쟁의 결과물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런 역사가 축적되어 지금은 나름대로 경향신문의 체제가 괜찮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프레시안은 경향신문에 비할 정도로 규모가 크지 않고 구독료가 없는 콘텐츠를 발행하는 입장이다. 신문산업이 나름대로 만들어온 문법과 많이 다르다. 기존 종이매체는 엄연히 구독료가 존재하고 관행적으로 높은 광고단가가 있기 때문에 자생이 가능한 측면이 있다.
 
미: 조합원이 만 명이 될 경우 광고를 모두 제거하겠다는 약속을 내걸었다. 조합비가 최소 월 1만원으로 명시되어 있으니 조합원이 만 명이면 일억 이상이다. 프레시안을 정상화하는데 필요한 금액이 이 정도인 것인가. 
 
박: 협동조합 하시는 분들 이야기가 협동조합이 자족적인 구조가 되려면 적어도 3만명 정도의 조합원이 필요하다고 하더라. 그러나, 다른 걸 떠나서 인건비 정도만이라도 조합원들이 채워주면 좋을 것 같다. 그러한 판단에서 기준이 만 명이다. 앞서 말했듯 프레시앙 역시 처음에는 그것을 목표로 뒀다. 하지만 현재는 프레시앙 독자들이 후원하는 수준은 전체 인건비의 1/10 정도다. 분명 그들의 도움이 유익했으나, 이제는 확장성을 고민해야 한다. 프레시안이 12년을 버티면서 우리사회에서 언론으로서 역할을 하고 기여를 한 측면도 있다고 자평한다. 협동조합법이 통과된 만큼 더 많은 연대와 참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이 확산되는데 언론기관으로서 역할을 한다면 상호 윈-윈하지 않을까 싶다. 협동조합에 대해서도 단순히 일회성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환경, 인권, 진보 등 숱한 담론들을 논의할 공간이 마련된다는 점을 부각하는 일이 필요하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협동경제에 관한 논의가 심화되고 있는 만큼, 프레시안이 이러한 지점에서 협동조합을 널리 알린다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미: 프레시안의 기여와 역할 얘기를 하셨으니 협동조합을 넘어 프레시안에 대한 평가 얘기로 넘어가도 될 것 같다. 프레시안은 애초 기자 출신들이 많이 모인 언론이었고 인터넷 언론 중에서 가장 저널리즘에 충실한 언론이라는 평을 들은 반면, 반대급부로 초기에는 ‘프린트해서 읽는 중년 독자’들이 주로 많다는 얘기도 있었다. 이런 양면성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을까? 내부에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나?  
 
박: 프레시안 초창기에는 이념적 성향보다는 깊이를 강조했다. 깊이 있는 분석과 논평을 했다. 그러나 2007년을 기점으로 내 또래 언론인들이 다 떠나게 됐고, 그 후엔 신입기자들이 많이 들어왔다. 특히 2008년 촛불시위를 거치면서 이념적 지향이 강해진 측면이 있다. 현재는 이런 부분을 외부 필자의 기고로 상쇄하는 상황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깊이 있는 분석이나 성찰보다 구호나 주장이 다소 앞섰던 적도 있다고 평가한다. 앞으로도 그 부분은 숙제로 남을 것 같다. 주장과 구호에 문제가 있다기보다 언론 본연의 역할인 현실 사회를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당위에는 걸맞지 않았다는 뜻이다. 
 
가령 노동문제에 있어서도 정리해고 철폐라는 구호만으로 사태를 재단하는 것은 너무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정리해고를 어떤 상황에서 용인하고 어떤 정리해고를 줄일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런 지점으로 독자들을 설득하려는 고민을 해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들도 살려나가기 위해 노력하겠다.
▲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 ⓒ미디어스


미: 비슷한 시기에 출발했던 오마이뉴스와 비교를 할 수도 있을텐데.
 
박: 프레시안은 초창기에 언론노조, 기자협회 등 언론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주축을 이뤘다. 새로운 걸 시도한다고 노력했지만 결국 언론판에서의 관행을 지우지 못한 측면이 많다. 프레시안의 한계라고 평할 수 있을 터인데, 오마이뉴스는 그 와중에 새로운 시도를 기획하고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느낀 문제점은 오마이뉴스가 표방하는 '시민기자'라는 것이 기존 언론인에 대한 불만을 토대로 생긴 거라, 언론인이 사실상 아무것도 아니며 그저 매체파워에 기대 기득권세력에 영합하는 이들일 뿐이라는 인식을 깔고 있었던 거다. 그에 반하면 우리는 저널리스트의 전문성이란 것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믿는 이들이었다. 지금도 그 신념은 변함이 없지만 그러다 보니 프레시안이 오마이뉴스보다 대중들과 교감하는 측면에서 부족했던 점은 있는 것 같다. 그러한 부분은 겸허하게 인정한다.
 
미: 프레시안은 방대한 외부 필진을 보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비결이 있다면.
 
박: 별다를 게 있겠나. 개인적인 네트워크와 매체의 노력의 결합이다. 그런데 담론시장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4-5년 전부터 인터넷 신문들이 만들어 온 유형의 담론공간에 기존 매체인 한겨레나 경향신문이 뛰어들었고 흡수해나갔다. 
 
미: 한겨레 hook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인가. 
 
박: 바로 그렇다. 그래서 우리 매체에 있다가 한겨레나 경향신문 필진으로 갔던 분들도 있었고, 프레시안이 이제는 등용문 역할을 한다. (웃음) 매번 새로워져야 한다는 강박은 여전하다.
 
미: 어째서 한국 사회의 인터넷 언론은 독자적인 수익 구조를 창출하는데 실패하고 말았을까. 
 
박: 남 탓하면 안 되는데(웃음). 내 생각에 한국 사회에서 언론시장 만큼은 분명 시장실패가 있다고 본다.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매체가 시장에서 잘 되는 구조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매체의 생존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아직까지도 한국사회에서 압도적으로 보수 세력이 강하다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악조건들도 결국에는 돌파해야 하는데, 경영진이 무능해서 그렇다고 답해야 하지 않을까?(웃음) 저변 확대 측면에서는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 기성언론이라 볼 수 있는, 종이신문이나 방송과 비교했을 때 인터넷 언론만의 고유한 가치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박: 아무래도 자유로운 담론 형성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 아닐까 싶다. 프레시안은 기사가 길다는 악명을 갖고 있었지만 그 긴 글을 통해 우리사회의 문제를 나름 심도있게 짚었다고 생각한다. 또, 일반 대중에게는 덜 알려졌을 지라도 업계의 기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초기에는 대중도 대중이지만 기자들을 자극하자는 포부가 있었다. 독창성도 있었고, 진지한 고민도 많이 했다. 그러나 대중과의 스킨십 등에서는 프레시안이 많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대중지향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앞으로는 이 지점을 정제하고 제대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 번 스타일이 굳어지니까 쉽게 고쳐지지 않더라(웃음).
 
미: 민주정부 십 년 동안, 특히 참여정부에서 국가기관이나 공기업의 광고를 군소언론에게 배분해주는 정책을 통해 진보언론들이 상대적으로 수혜를 노렸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후 그 광고가 끊기면서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아내는데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프레시안은 상대적으로 덜했다 보지만 그러다보니 진보언론이 대선 과정에서 정권교체에 목메는 근시안적인 보도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새로운 수익모델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이러한 현실은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 
 
박: 무엇보다도 언론의 독립성과 역량을 함께 강화하는 것이 우선적 과제다. 언제까지나 주류 담론에 대한 항의와 반대로만 진보파의 정치 담론을 형성할 수는 없다. 프레시안도 사회적 약자가 심각하게 억눌릴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구조에서 그들에게 맹목적으로 힘을 실어준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조건 반사적인 반대를 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미: 그런 지점에서 볼 때도 프레시안이 좋은 역할을 했다. 정치에 대한 학술담론과 대중 사이에서 매개의 역할을 한다는 느낌도 받았는데, 앞으로도 그런 기조를 끌고 갈 것인지.
 
박: 학술담론이라기 보다는... 원래 지향했던 것은 전문가들과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 통역을 맡고 싶었다. 가교 역할 말이다. 지식인들은 깊은 지식이 있으나 전달력 측면에서는 기자들에 비해 부족하다. 그래서 전문성을 가진 기자들이 필요한 것이고. 그러나 반복적으로 말을 하는 것이지만 대중과의 소통에 있어서는 프레시안이 일정 부분 실책한 측면도 있다. 전문가를 중점적으로 대변하고 대중을 대변하지 못했달까. 사안을 조금 단순화하고 핵심적인 과제를 독자들에게 선도적으로 제시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그 관성을 깨기란 쉽지 않았다. 언론계 외부에서 나름의 개혁을 주창했으나 우리 역시 언론판에 들어와 있었고 그 내부논리를 쉽게 해체하기 어려웠다. 기자 개개인이 확고한 언론관과 가치를 가지고 노력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미: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박: 프레시안 입장에서 현 국면에서 중요한 것은 협동조합 실험에 있어 '얼마나 많은 조합원들이 참여하는가'다. 가능성을 보고 있지만 결국엔 우리의 역량으로 나아가야 할 일이다. 협동조합 조합법이 시행되었기에 이런 실험이 가능했지만 제도가 그 자체로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 스스로 반성과 성찰을 통해 독자들에게 그리고 조합원들에게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 좋은 말씀에 감사드린다. 프레시안이 미디어스를 포함한 다른 언론들에게 하나의 모델이 되어주었으면 한다.
▲ 프레시안 화면 캡쳐 사진


 협동조합 프레시안 가입신청서 바로 가기 

한윤형, 김도연 기자  |  webmaster@mediaus.co.kr

2013년 3월 23일 토요일

파업 종료 후, 더욱 멀어진 ‘OBS 정상화’


이글은 미디어스 2013-03-22일자 기사 '파업 종료 후, 더욱 멀어진 ‘OBS 정상화’'를 퍼왔습니다.
OBS 사측, 조합원에 선별적 업무 복귀 지시… 노조 “소송 준비 중”

▲ 21일 OBS 노조는 파업을 중단하고 시간 외 수당 등 법적 수당을 요구하는 법적 투쟁으로 방향을 전환하겠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OBS 노조

OBS 노조가 21일 오전 9시부로 전면 파업을 풀었지만 사측은 복귀한 조합원들을 현장에 투입하지 않았다. 또한 OBS는 4월 시행되는 개편 전까지는 파업 당시와 같이 방송을 내보낼 예정이다. ‘OBS 바로세우기’를 내걸고 OBS 노조가 창사 첫 파업을 벌였는데도, 오히려 사측의 태도는 ‘OBS 정상화’와 더 멀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언론노동조합 OBS희망조합지부(지부장 김용주, 이하 OBS 노조)는 지난달 28일부터 22일 간 창사 첫 파업에 돌입해 임금인상 3%, 시간외 수당 지급, 국장 임면동의제 도입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OBS 사측이 임금인상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 노사 간 협상이 성사되지 않았고, OBS 노조는 파업을 중단하고 법적 투쟁에 나서기로 의견을 모았다.
파업 당시 노조의 요구사항을 한 건도 받아들이지 않고 휴일 수당만 기존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100% 올리겠다고만 답한 사측은, 파업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 일방통행을 하고 있다.

조합원들, 복귀 후에도 여전히 ‘대기중’

사측은 파업을 마치고 복귀한 노조를 현업에 바로 투입하지 않아, 조합원들은 사실상 ‘대기’ 상태에 있다. 사측은 21일 “이사회에 보고한 수정 사업계획에 따라 비상 경영계획을 수립, 시행할 예정이다. 이는 경영정상화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근무 지침을 내렸다.
근무 지침에는 대기 상태인 현 비상체제 유지, 복귀 조합원 중 필수 인력의 경우 담당 팀장 및 국장과 면담 후 현업 배치, 필수 인력 비해당자는 지정된 장소 내에서만 업무 수행, 각 팀장 국장은 철저히 부서의 근태관리를 할 것 등이 포함돼 있다.
이무섭 OBS 노조 대외협력국장은 “조합원 180명 중 85%인 150~160명이 파업에 참가했고 어제부로 복귀했으나, 보도국 인력은 모두 사무실에 앉아 있고 제작국 역시 프로그램에 투입된 인력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아나운서국은 10명 중 3명만 오늘(22일) 혹은 다음 주부터 뉴스에 투입이 되며, 기술국은 오늘부터 조를 짜서 일부 들어가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OBS 노조의 전면 파업 당시 OBS는 파업의 여파로 메인 뉴스의 리포트수가 줄어 전체 방영분량도 줄었고 어깨걸이 그림도 사라지는 등 방송에 차질을 빚었다. OBS 노조에 따르면 조합원들의 복귀 후에도 OBS는 파업 때와 유사하게 방송을 내보낼 계획이라고 한다.
이무섭 대외협력국장은 “(사측은) OBS의 시청률이 낮아 시청자들도 자세한 상황을 모르니까 상관없다는 입장”이라며 “OBS를 유심히 보는 사람들이나 재방, 삼방을 알아보니까 회사가 이를 악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대로 방송하라고 사업권을 준 건데 사측은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한다”고 설명했다.

‘선별적 업무 복귀’, 구조조정으로 이어지나

김성수 OBS 기자협회장은 “회사의 지침에 따라 현재 기자들이 출입처를 가지 못하고 있다”며 “일부 팀장이 사내에서 제작 가능한 리포트를 만들라고 지시하기는 했다”라고 말했다. 출입처 현장에 투입되지 못한 채, 출입처 관련 단신들을 업데이트하는 정도라는 설명이다.
김성수 기자협회장은 “일을 하자고 들어왔는데 (사측이) 일을 안 시키는 것”이라며 “사원들도 구조조정의 신호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성수 기자협회장은 “보도국 기자들이 30명 정도에 그칠 정도로 인력이 부족해 구조조정 위험이 낮긴 하다”면서도 “개편 전까지는 파업 때의 방송 포맷 유지하며 ‘파업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기간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황선대 OBS PD협회장은 “외부에서 지원받는 프로그램 등에 일부 복귀한 이들도 있어서 ‘전원 대기’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기획안 작성만 맡았으니 기존에 하던 업무 그대로 복귀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황선대 PD협회장은 “아직 개편에 대해 정보가 부족해, PD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에 배정될지 모른다”면서도 제작국 일부만 현장에 투입된 것을 두고 “PD들도 ‘혹시 구조조정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조,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맞서 소송 준비할 것”

OBS 노조는 전면 파업은 20일 만에 끝났지만, 장기적인 ‘법적 투쟁’에 나서겠다는 태세다.
박철현 OBS 노조 사무국장은 사측의 행위에 대해 “OBS는 공익적 민영방송을 표방하며 시청자와 함께 하는 열린 방송이라는 기치로 만들어졌는데, 이런 행위는 지상파 방송으로서의 정체성, 창사 이념, 시청자들과의 약속을 다 저버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철현 사무국장은 “13일 수당 미지급과 관련해 진정을 낸 것에 이어 소송까지 준비할 예정”이라며 “-1호봉, 연장 근무나 야간 근무 같은 시간 외 수당 등 워낙 챙길 것이 많아서 소장 접수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지만 최대한 빨리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수정 기자  |  girlspeace@mediaus.co.kr

2012년 10월 9일 화요일

한국전력, 청와대 지시로 노조파괴 공작 벌였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10-08일자 기사 '한국전력, 청와대 지시로 노조파괴 공작 벌였다'를 퍼왔습니다.
조합원을 '사과·배·토마토'로 분류…책임자 처벌 요구

한국전력이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의 지시를 받고 자회사인 발전회사들의 노동조합을 파괴하는 데 직접 개입한 정황이 공개됐다.

8일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은 이 같은 정황을 묶어 발간한 '발전노조 노동탄압 백서'를 발표했다.

노조에 따르면 정부의 발전노조 기획탄압은 지난 2009년 9월 17일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차장 주재로 열린 '노사관계 회의'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가스노조가 입수한 회의 자료를 보면,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 비서관은 이날 회의에서 "철도공사에는 적극적으로 노조대응을 하고 있으나, 가스와 발전은 계획만 있지 실천은 없음"이라며 가스·발전 노조에 대한 강경대응을 주문했다. 더불어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차장은 "해당기업이 고소, 고발하면 경찰에서는 적극적으로 대처 당부"라며 경찰의 강경대응을 주문했다. 이날 회의에는 노동부, 행안부, 지경부, 교과부, 방통위 등 관련 정부 부처 국장이 참석했다.

▲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차장이 주재한 노사관계 회의 자료. ⓒ발전노조 제공

청와대와 정부부처가 모여 발전노조 대응을 논의하고 한 달 후인 2009년 10월, 발전 5개사는 '노사관계 환경변화와 선진노사관계연구용역'을 공동 발주했다. 그리고 같은 달 발전노조 영흥화력 남성화 지부장을 근무태만을 이유로 해고했고, 11월에는 동서발전이 발전노조와 맺은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했다.

발전노조는 "근무시간 중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는 무리한 해고사유를 들며 남성화 지부장을 해고했는데, 이는 9월에 있었던 BH회의에 따라 발전노조에 강경 대응하고 있음을 사측이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동서발전 이길구 사장은 일방적인 단체협약 해지와 공격적인 노무관리를 자신의 공적으로 포장해 청와대에 보고했다"고도 밝혔다.

"한전이 각 발전회사에 민주노총 탈퇴 이끌어내라고 지시"

백서를 보면 발전5개사의 모회사인 한국전력은 재작년부터 각 발전회사가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를 이끌어내기 위해 얼마큼 노력을 기울였냐를 점수 매겨 경영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다.

일례로 한전은 재작년에 치러진 발전노조 간부선거에서 민주노총 탈퇴를 공약한 후보의 득표율을 계량 평가하고 각 발전회사의 민주노총 탈퇴 후보 발굴 노력과 노조 사무실 회수 노력 등을 비계량 평가했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 탈퇴 후보를 배출하지 못한 중부발전과 남부발전은 최하위 점수를 받았다.

▲ 한전의 발전회사 노무관리 평가 문서 자료. ⓒ발전노조 제공

발전노조는 "한전이 민주노총 탈퇴를 발전회사의 경영평가 지표로 제시함으로써 발전노조 선거는 온갖 지배 개입과 부당노동행위로 무법천지가 됐었다"고 전했다.

특히 민주노총 탈퇴 투표가 부결되자 발전회사 측은 'Plan B'를 시행, 어용노조를 설립하고 발전노조 조합원들을 개별적으로 탈퇴시키기 시작했다. 발전노조는 당시 조합원의 민주노총 탈퇴를 위한 수단으로 '강제퇴출제도'와 '공개경쟁보직제(드래프트제)'가 쓰였다고 설명했다.

드래프트제도는 일하기를 희망하는 3개 부서에서 모두 선택이 안 되면 타 사업소로 강제 발령되고, 타 사업소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3개 부서에서 또다시 선택이 안 되면 무보직 발령, 무보직을 3회 받으면 해고되는 상시 인력 퇴출 프로그램이다.

발전노조는 사측이 "노조 탈퇴서를 안 쓰면 이번 드래프트에서 무보직을 받을 수 있다"며 개별 조합원들을 협박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상당수의 조합원들이 자신의 신념과는 달리 발전노조 탈퇴서를 작성했다고 노조는 설명했다.

▲ 민주노총 탈퇴 투표가 진행되던 당시 '일산화력'이 작성한 문건. 조합원을 성향에 따라 사과·배·토마토로 분류해 관리했다. ⓒ발전노조 제공

노조가 입수한 민주노총 탈퇴 투표 당시 일산화력이 작성한 문건을 보면 사측은 조합원들의 성향을 '사과·배·토마토'로 분류해 관리했다. 토마토로 분류된 조합원은 겉과 속이 모두 빨개 발전노조를 탈퇴하지 않을 조합원을 일컫는다. 사과는 개별 협박하면 탈퇴할 가능성이 있는 조합원, 배는 약간의 협박만으로도 발전노조를 탈퇴할 조합원을 말한다.

발전노조는 사측이 사과 조합원을 집중적으로 협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노조는 "사측이 조합원들의 성향을 분류한 후 사과 조합원 1명당 담당 간부 2명씩을 배치해 집중 관리하고, 해당 조합원의 담당 회사 간부가 특히 집중적으로 회유·협박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발전노조는 경찰청과 정부 기관들이 노조 탄압에 개입한 정황도 공개했다. 노조에 따르면 재작년 11월 동서발전 박노준 노무차장은 경찰청 본청에 근무하는 박은복 정보국 경찰관에게 "죄송합니다 투표를 가결시켰어야 했는데... Plan B 추진일정을 보내 드립니다"라는 내용의 보고를 했다.

또 사측은 '선진화 추진실적 보고서'를 지식경제부에 제출하는 등 노조탄압 진행과정을 정부 유관 부처에 상세히 보고했다. 노조에 따르면 이 보고서에는 "상위직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노무관리를 실시하지 않을 경우 인사적, 급여적 불이익이 곧바로 돌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노조) 총회 투표를 통한 민주노총 탈퇴 시도" 등의 구절이 나온다.

▲ 동서발전이 지식경제부에 보고한 '선진화 추진실적' 보고서의 일부. ⓒ발전노조 제공

발전노조는 "이처럼 심각한 노동탄압, 인권침해에도 이에 앞장섰던 발전회사 사장들은 연임되고 출세를 하고 있다"며 "부당노동행위와 인권침해에 응당한 법적·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통합당 홍영표 의원은 8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민간 부문에서 기업들이 창조컨설팅과 같은 노조파괴 전문 노무법인과 컨택터스 등의 폭력 용역회사와 결탁해 노조파괴에 나섰다면, 공공부문에서는 청와대와 정부부처, 경찰이 직접 개입해 전 방위적으로 발전회사 노조파괴에 나섰음이 이번 발전노조의 백서 발간을 계기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만약 MB 정부 5년간의 노조파괴가 다음 정권에서도 지속된다면 다음 정권이 끝날 때쯤 민주노조와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3권은 대한민국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라고 밝혔다.

 /최하얀 기자

2012년 10월 2일 화요일

기자·PD가 ‘삼청교육대’ 불려가 브런치 만드는 기막힌 현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0-02일자 기사 '기자·PD가 ‘삼청교육대’ 불려가 브런치 만드는 기막힌 현실'을 퍼왔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징계당한 언론인만 412명…“살아남은 조합원은 무한도전 김태호 PD뿐”

이근행 (뉴스타파) PD는 ‘청년’이다. 취재현장을 누비는 그의 심장이 뜨거워서다. 지난 20일 밤 서울 프레스센터 (뉴스타파) 편집실에서 만난 그는 밤샘 편집을 앞두고 쪽잠을 청한 뒤였다. 2년 전 이근행 PD는 MBC노조위원장이자 20년차 시사교양PD로 공영방송 수호를 위해 김재철 사장 퇴진을 위한 39일 총파업을 주도하다 해고됐다. 아무도 그에게 힘든 길을 가라 떠밀지 않았다. 그의 선택이었다. 그는 아직까지 MBC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이근행 PD처럼 돌아가야 할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언론인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프레스 프렌들리’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정부의 언론탄압에 따른 파업이 곳곳에서 일어난 결과다. 전국언론노조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들어 412명의 언론인이 편파보도와 ‘낙하산 사장’에 반대하는 행동에 나섰다가 징계를 받았다. 특히 올해 상반기에는 대한민국사 최초로 공영언론사의 연쇄파업이 일어나며 징계자 수가 늘었다. 

MBC, KBS, YTN, 연합뉴스 등 공영언론사는 정부가 임명한 ‘낙하산’ 사장에 의해 각종 보도통제와 제작 자율성 침해를 겪었다. 파업은 더 이상 자기검열 속에 불공정보도의 공범자가 되기를 거부하고자 했던 언론인의 노력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언론 4사 노조 모두 일차적 목표였던 김재철(MBC), 김인규(KBS), 배석규(YTN), 박정찬(연합뉴스)사장 퇴진에 실패했다. 이로 인해 업무복귀 이후에도 기자・PD의 상당수는 현장에 돌아가지 못했다.

▲ MBC에서 해직된 이근행 PD가 '뉴스타파' 카메라를 들고 지난 7월 30일 PD수첩 작가 해고 규탄 대회를 취재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수모…살아남은 조합원은 (무한도전) 김태호 PD뿐 

지난 7월 17일 최장기파업(170일)을 끝내고 업무에 복귀한 MBC노조 조합원들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수모’에 시달리고 있다. 김재철 사장은 9월 말 현재까지 조합원 8명을 해고하고 219명을 징계했다. 하지만 징계가 끝이 아니었다. 지난 8월 18일 정직과 대기발령을 받은 기자․아나운서․시사교양PD 등 조합원 20명에겐 3개월 간 교육 명령이 내려졌다. 커리큘럼은 ‘브런치 만들기’, ‘요가 배우기’ 등 직무 연관성이 반영되지 않은 급조된 것들이었다. 

이정식 한국PD연합회장, 임대근 전 방송기자연합회장을 비롯해 김재철 사장 퇴진에 참가했던 김완태, 박경추 아나운서와 왕종명, 김수진 기자 등이 교육대상자가 돼 여의도 본사와 멀리 떨어진 잠실 아카데미에서 샌드위치 만드는 법을 배웠다. 얼마 뒤 후배 조합원들은 MBC노조 사무실에서 선배들이 만든 샌드위치를 먹으며 우습지만 웃을 수 없는 순간을 경험해야 했다. 

9월 들어선 교육대상자가 추가됐다. (MBC 스페셜) 이채훈 PD, (아프리카의 눈물) 한학수 PD를 비롯해 김경화, 최현정 아나운서 등이 ‘브런치 교육’에 합류했다. 지난 17일에는 정직 2개월이 풀린 조합원 17명 중 12명이 교육발령에 처해졌다. 현재 잠실 아카데미에는 모두 60명의 기자, PD, 아나운서, 엔지니어, 경영부분 조합원들이 보복성 교육을 받고 있다. 한학수 PD는 이곳을 일컬어 “김재철의 삼청교육대”라고 평했다.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은 또 있다. 정년퇴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최상일 민요전문 라디오PD는 업무 복귀 직후 용인드라미아개발단으로 발령받아 사극 세트장을 관리하게 됐다. (PD수첩)출신인 조능희 PD는 사회공헌실로, 송일준 PD와 오동운 PD는 각각 미래전략실과 신사옥건설국으로 전보조치 됐다. 권력비판적인 시사프로를 제작했던 PD들이 업무와 상관없는 비제작부서로 간 것을 두고 징계성 인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무엇보다 경영진의 탄압은 시사교양 PD들에게 집중됐다. 56여명의 시사교양 PD들 중 해고자가 3명, 정직 6명, 교육대상자가 10명이다. 비제작부서로 쫓겨난 PD들까지 합치면 시사교양PD들은 공중분해 상태다. 시사교양PD들은 이미 파업 기간 중 전체 인원의 30%가 대기발령을 받았고, 시사교양국이 시사제작국과 교양제작국으로 해체되며 갈 곳을 잃었다. 그 결과 (PD수첩)은 지난 1월 중순 이후 현재까지 8개월 째 결방 중이다. 

이밖에도 손정은, 문지애, 오상진 아나운서 등 파업에 참여했던 아나운서 대부분은 ‘괘씸죄’가 적용돼 현재까지 맡은 프로그램이 없는 상황이다. MBC 내부에서 현장으로 돌아간 조합원은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밖에 없다는 씁쓸한 농담이 나오는 이유다. 

각종 징계와 보복성 인사로 흩어진 현재 파업조합원들의 유일한 접점은 MBC노조 사무실이다. 3개월 교육대상자가 된 의 임명현 기자는 얼마 전 파업기간 중 해고당한 박성호 기자회장과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노조 사무실에 잠시 들렸더니 박성호 선배가 반겼다. ‘오늘은 교육 끝났어? 어쩐 일이야?’ … 나는 어쩐지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취재현장을 못 뛰고 있어 얼마나 목이 마르냐고. 가슴으로 눈물을 삼켰다.”

해고된 선배 바라보며 “가슴으로 눈물을 삼킨다”

가장 격렬하고 길었던 파업이었던 만큼 MBC의 상처는 다른 언론사보다 크고 깊다. 하지만 파업 기간 중 해고당한 정영하 MBC노조위원장, 강지웅 사무처장, 이용마 홍보국장은 여전히 노조 활동을 이어가며 김재철 사장 퇴진투쟁에 앞장서고 있다. 함께 해고당한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 박성호 기자회장은 후배들을 격려하며 싸움을 이어가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MBC처럼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언론인들은 또 있다. 95일간 총파업에 나선 뒤 지난 6월 8일 현장에 복귀한 KBS새노조의 경우 사측이 133명의 조합원을 징계했다. 23년 만에 파업에 돌입했다가 파업 103일째였던 6월 25일 업무 복귀를 선언한 연합뉴스 노조의 경우도 경영진이 9명의 조합원을 징계했다. 복귀 이후 현장에 돌아갔지만 파업 전과 달라지지 않은 환경에 놓인 언론인들에겐 복귀가 새로운 싸움의 시작인 셈이다.

YTN노조는 2008년 공정방송투쟁이후 지금까지 6명의 기자가 해고되고 45명의 조합원이 징계를 받았다. 특히 2008년 10월 6일 해고된 기자 6명(노종면 현덕수 우장균 조승호 정유신 권석재)은 어느덧 해직 1400일을 넘겼다. 그 사이 노종면 기자는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트위터에서 ‘용가리통뼈뉴스’를 진행했으며, (뉴스타파) 앵커를 거쳐 지금은 YTN불법사찰진상조사특위를 맡고 있다. 현 정부 언론탄압의 상징인 그의 이력은 한국 언론사에 많은 굴곡을 함축하고 있다. 

현장에 돌아가지 못한 동료의 고통은 현장에 있는 동료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경영진의 탄압은 더욱 강도 높아지고,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끼는 현실은 마냥 암울해 보인다. 그러나 언론노동자들은 이 싸움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MBC노조는 방송문화진흥회의 김재철 사장 해임안 통과 여부를 지켜본 뒤 10월 중 재파업을 불사하는 싸움에 나설 예정이다. 전국언론노조 역시 추석 이후 하반기 대투쟁을 전개할 계획이다.

이근행 PD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스스로 다짐하듯 다음의 문구를 남겼다. “그래도, 계속 가라. 시선은 멀리, 호흡은 깊게.” 2012년 언론인들의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정철운 기자 | pierce@mediatoday.co.kr 

2012년 9월 24일 월요일

‘노조파괴 전문’ 창조컨설팅, 7년간 14개 노조 깼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9-24일자 기사 '‘노조파괴 전문’ 창조컨설팅, 7년간 14개 노조 깼다'를 퍼왔습니다.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사무실 들머리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내부문건 입수…조합원 성향 분석·사찰 지침도
민주노총 탈퇴시키면 1억원 ‘성공보수’ 약속까지

회사 쪽과 노사관계 컨설팅 계약을 맺은 뒤 ‘노조 파괴’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한겨레] 2011년 5월25일치 3면)이 제기돼온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이 최근 7년 동안 14개 민주노조를 무너뜨리는 데 관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창조컨설팅은 이 과정에서 사쪽과 가까운 노조 설립 등 각종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고,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 때는 별도의 ‘성공 보수’를 받기도 했다.2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은수미 의원(민주통합당)과 (한겨레)가 입수한 창조컨설팅의 내부 문건을 보면, 창조컨설팅이 노사관계를 안정시킨다는 명목으로 사용자 쪽과 계약을 맺고, 노조 조합원 성향 분석과 ‘일일 관찰일지’ 작성 등 노동조합법을 위반(노조활동 개입)하는 방법까지 동원해 민주노조를 무력화시키는 과정이 담겨 있다.창조컨설팅이 지난해 4월 작성한 ‘노사관계 안정화 컨설팅 제안서’에는 상신브레이크·대림자동차·캡스·성애병원·영남대의료원·레이크사이드컨트리클럽 등 창조컨설팅이 개입해 민주노조가 무력화된 12개 사업장 명단이 적혀 있다. 컨설팅이 진행된 결과, 상신브레이크·대림자동차는 각각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을 탈퇴했고, 성애병원(서울)·레이크사이드 노조는 해산됐으며, 캡스와 영남대의료원은 1000명이 넘었던 조합원이 20~60명으로 줄어들었다. 여기에 창조컨설팅이 개입한 것으로 내부 문건에서 확인된 유성기업·보쉬전장까지 합하면, 최근 7년 동안 창조컨설팅의 관여로 민주노조가 무너졌거나 약화된 사업장은 14곳에 이른다.문제는 이 과정에서 불법행위를 서슴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성기업의 경우 직장폐쇄 기간에 ‘키(key)맨’(사내 동문회장·향우회장·동아리장·계장 등)을 활용해 조합원을 복귀시키고, 이들을 중심으로 사쪽에 협조적인 노조를 만들게 했다. 창조컨설팅의 문건에는 ‘키맨 포섭을 위해 먼저 조합원 분류작업’, ‘(복귀한 조합원에 대해서는) 철저히 관찰한 후, 일일 관찰일지’ 등의 내용도 담겨 있다.또 상신브레이크와 발레오전장 관련 문건을 보면, 사쪽에 협조적인 새노조 위원장 선정부터 노조 설립 시점, 조합원 총회 시나리오까지 모두 창조컨설팅이 맡은 것으로 돼 있다. 이는 ‘노조활동에 대한 지배·개입’으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된다.창조컨설팅은 공식 컨설팅 비용과 별도로, 민주노총을 탈퇴시키거나 조합원 수를 줄여주는 대가로 ‘성공 보수’를 받기도 했다. 창조컨설팅이 상신브레이크와 맺은 약정서에는, 컨설팅 비용(월 3000만~4900만원) 외에 노조가 민주노총을 탈퇴할 경우 1억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돼 있다.(한겨레)는 창조컨설팅의 반론을 듣기 위해 여러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창조컨설팅 쪽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4일 ‘산업현장 용역폭력 청문회’를 열고, 유성기업·에스제이엠(SJM)·케이이씨(KEC) 노사와 심종두 창조컨설팅 대표이사 등을 증인으로 불러 민주노조 파괴 의혹 등에 대해 따져 물을 예정이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2012년 9월 8일 토요일

KBS새노조, 이길영 이사장 퇴진 투쟁 수위 높여

이글은 미디어스 2012-09-07일자 기사 'KBS새노조, 이길영 이사장 퇴진 투쟁 수위 높여'를 퍼왔습니다.
6일부터 이사장실 앞 릴레이 농성, 12일 조합원 총회 개최

KBS 새노조가 이사장실 릴레이 농성을 하며 조합원 총회를 계획하는 등 투쟁 수위를 높여가며 이길영 이사장 퇴진을 촉구했다.

KBS 새노조는 7일 성명을 발표하고 이길영 이사장 KBS 인사기록과 4일 이사회 회의록 공개를 요구했다.

KBS 새노조는 이 성명에서 "이길영 씨 학력조작 사실은 명백하다"면서 "하지만 여당 추천 이사들은 이길영 이사장을 비호하기에 바빴다"고 비판했다.

KBS 새노조는 "이사회에서 이길영 씨가 어떤 변명으로 일관했는지 다른 6명의 여당 추천 이사들이 어떻게 비호했는지 밝히기 위해 이사회 회의록이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KBS 새노조는 "이길영 씨 KBS 인사기록도 공개해야 한다"면서 "이길영 씨 주장처럼 학력 등에 대한 허위 기재한 것이 없다면 인사기록을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KBS 새노조는 지난 6일 100인 릴레이 농성을 KBS 신관 5층 이사장실 앞에서 시작했다. 첫 날에는 새노조 김현석 위원장(오른쪽)과 김성일 복지국장(왼쪽)이 농성에 참가했다. ⓒKBS 새노조

KBS 새노조는 지난 6일부터 KBS 신관 5층 이사장실 앞에서 '100일 릴레이 농성'을 시작했다. 릴레이 시위는 매일 2명씩의 조합원이 참석해 오후 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어진다. 또 KBS 새노조는 오는 12일 하반기 공정방송 쟁취 투쟁 결의를 위한 전국조합원 총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KBS는 7일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새노조의 투쟁에 대해 "최근 이사장 선임 과정에서 KBS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논란이 일고 있다"며 "KBS 신뢰도에 상처를 주는 무책임한 행위를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이승욱 기자 | sigle0522@mediaus.co.kr

2012년 8월 21일 화요일

"삼성 A차장이 찾아와 팔 비틀고 야 xx놈아…"


이글은 프레시안 2012-08-20일자 기사 '"삼성 A차장이 찾아와 팔 비틀고 야 xx놈아…"'를 퍼왔습니다.
삼성노조 "에버랜드 간부가 조합원 폭행"

최근 SJM 노조원 폭행 사태를 계기로 '노동자 폭행문제'가 사회 현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삼성에버랜드에서도 노동자 폭행 사건이 일어났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삼성노동조합은 20일 오전 11시 용인 삼성에버랜드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에버랜드 간부가 노조원을 폭행했다"고 주장했다. 삼성노조는 이를 노동 인권에 반하는 사건으로 규정하고 사측에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노조 측은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노조 폭행 사건을 방관한 (에버랜드) 김봉영 사장의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노조 측은 "지난 7월 27일 김영태 삼성노조 회계감사가 근무하는 에버랜드 내 알파인식당에 그동안 삼성노조 설립 전후로 노조를 탄압해온 인사팀 A차장이 찾아왔다"며 "A차장이 근무 중인 김 회계감사에게 손님과 직원이 보는 앞에서 고함과 욕설을 퍼붓고 폭행했다"고 주장했다.

김 회계감사가 노조에 제출한 경위서에 의하면, 사건은 7월 24일 오후 2시경 김 회계감사가 근무하는 에버랜드 내 알파인 식당에서 시작됐다. 이날 MBC 취재진이 에버랜드가 손님 서비스 만족도 1위를 기록한 것에 대해 취재하러 왔다.

김 회계감사가 MBC 기자에게 "(에버랜드가) 손님 서비스 만족도는 1위지만 직원 만족도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네요"라고 말하자, 다른 비정규직 사원이 "(삼성이 월급을 많이 준다고들 하는데) 저희 월급 많이 못 받아요"라고 했다.

이것을 이유로 다음날인 7월 25일 A차장과 B과장이 찾아와 취재진과 대화를 나눴던 비정규직 사원에게 대화에 관한 경위서 작성 및 제출을 요구했다.

김 회계감사는 7월 27일 A차장이 자신을 찾아와 다짜고짜 "앉아봐"라며 "네가 회사 명예를 훼손해서 경위서 받으러 왔다"고 소리쳤다고 주장했다. 김 회계감사는 '용무가 있다면 사규에 규정된 절차를 따라 직속상관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그러자 A차장이 "야 xx놈아, 이리 안 와"라고 고함을 지르며 양팔로 김 회계감사의 왼팔을 2~3분간 비틀었다는 것.

김 회계감사는 이 과정에서 A차장이 웃으며 "넌 곧 뒈져"라고 폭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날) 유니폼을 갈아입으려고 옷을 벗는데 통증이 너무 심해 왼쪽 팔을 들 수 없었다"고 밝혔다. 김 회계감사는 이 일로 전치 2주의 진단을 받았다고 말했다.

▲ 7월 18일,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출범 1주년 경과보고를 하는 삼성노조. ⓒ프레시안(김윤나영)

김 회계감사는 팔 등이 아파 회사에 나갈 수 없다는 이유로 병가처리를 요구했으나, 사측에서 "나와서 하라. 나와서 제대로 결재 안 올리면 결근처리를 하겠다"라고 일축했다고 밝혔다. 김 회계감사는 사건 발생 후 출근하지 않은 채정신과 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밝혔다.

김 회계감사는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내가 MBC 기자에게 한 발언이 명예훼손이라는 게 회사의 주장이지만, 카메라는 치워져 있었고 음식을 주문한 상태에서 기자랑 이런저런 얘기를 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방송에 나간 것도 아니고 인터뷰를 한 것도 아니고 그저 기자와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인데 어떻게 명예훼손이 성립하느냐고 반문했다.

김 회계감사는 "다른 직원들도 있는데 유독 나에게만 폭력행사를 한 것이 이해가 안 된다"며 이는 "노조 탄압"이라고 지적했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출퇴근할 때 보안실에서 카드를 찍으면서 보고하고 밥을 먹고 조금이라도 늦게 오면 나만 핀잔을 들었다. 갓 들어온 신입사원 관리하듯 사측이 나를 관리해왔다"고 주장했다.

김 회계감사는 창립 이래 무노조 원칙을 고수해온 삼성에서 노조 설립을 주장해왔다. 2011년 7월 17일에는 삼성에버랜드 감사팀에서 개인 정보 유출을 이유로 김 회계감사를 조사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삼성의 무노조 원칙이 깨진 것은 2011년 7월 18일로, 이날 삼성노조는 설립필증을 받아 법적 자격을 얻었다. 삼성에버랜드는 노조 설립을 주도한 조장희 부위원장을 해고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해 노조를 탄압한다는 각계의 비판을 받아왔다.

한편 에버랜드 홍보팀 관계자는 20일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실제로는 폭행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얘기 좀 하려고 팔을 잡고 하다가 상처가 난 것이며 현재 김영태 씨가 출근하지 않아 사실관계 확인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남빛나라 기자

2012년 8월 20일 월요일

대선 주자들 '러브콜', 학교비정규직 '정규직'되나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8-20일자 기사 '대선 주자들 '러브콜', 학교비정규직 '정규직'되나'를 퍼왔습니다.
노조결성 1년만에 조합원 2만2천명...문재인 '정규직' 전환 약속

ⓒ뉴시스 13일 국회 도서관 지하 강당에서 열린 '학교비정규직, 이대로 둘 것인가?' 토론회에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가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문 후보는 학교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다.

최근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들로부터 적극적인 '러브콜'을 받는 노동자들이 있다. 바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는 지난 14일 강원 '문재인과 친구들' 호프 미팅에서 "학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문제에 대해서 가장 입장이 선명하고 확실한 후보가 저라고 생각한다"면서 "학교비정규직은 앞으로는 교육감이 직접 고용하고 근무 연수에 따라서 호봉도 보장이 되고, 신분도 보장되는 아주 당당한 교육 공무직으로 전환하겠다. 제가 확실히 약속하겠다"고 강조했다. 문 후보는 13일 국회에서 열린 '학교비정규직, 이대로 둘 것인가?'라는 제목의 토론회에도 참석했다.

같은 당 손학규 후보도 9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산하 전회련학교비정규직노조 간담회에서 "학교에 비정규직을 없도록 하겠다. 같은 일을 하고 상시 고용돼 있는데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여러 불리한 차별을 받는 것을 걷어내야 한다"면서 "상시 직종은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하고, 단계적 호봉제를 도입해야 한다. 학교 회계직이라는 말이 없어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해법에 있어서 온도차는 있어 보이지만, 민주통합당의 유력 대선주자들이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적극적으로 공약한 셈이다. 대부분이 40~50대인 아줌마들에게 무슨 특별한 매력이라도 있는 것일까? 

비정규직은 양극화의 대명사로 노동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임금노동자 1700만명 중 900만명이 비정규직이다.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인 것이다. 통계청 통계에 따르더라도 600만명이 비정규직으로 전체 임금 노동자의 35%나 된다. 현실이 이러다보니 학교 현장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4월 교과부 발표에 따르면, 학교비정규직은 15만명에 달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이 35만여 명이니, 학교비정규직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42%에 달하는 셈이다.

학교비정규직은 영양사, 사서, 조리사, 사무행정보조 등 80여개 직종에서 일하는데, 급식종사원(영양사, 조리사, 조리원 등)이 6만5천여 명으로 가장 많다. 대부분이 40~50대 여성이고, 임금은 최근에 그나마 처우가 개선돼 100여만 원 수준이다. 호봉이 없다 보니 1년차나 10년차나 기본급이 똑같다. 그외 수당이 거의 없다보니 결국 10년을 일해도 받는 월급은 변함이 없다.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저임금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노동조합을 결성하면서 부터다. 2010년 전남지역에서 학교비정규직 노조가 결성됐고, 2011년에는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가 결성됐다. 현재 전국 5천여개 학교에서 2만2천여 명의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해 있다. 조합원 2만여 명 규모이면 대기업 생산직 노조 수준인데, 1년여 만에 노조의 규모가 이만큼 커졌으니 전국에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순식간에 노조 깃발 아래로 모여든 것이다. 

물론, 저절로 된 일은 아니고 전남 학교비정규직 노조 결성의 주역인 박금자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위원장 등이 전국 단위 학교비정규직 노조 결성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 안 가 본 곳 없이 다니면서 열성적으로 조직사업을 한 결과다. 박금자 위원장 자신도 순천 왕조초등학교에서 16년 동안 조리사로 일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다. 

노조 결성 후 처우가 개선되기 시작해 80여만의 임금이 100여만원으로 올랐고, 교통비, 가족수당 지급 등 몇 가지 수당도 생겼다. 그러나 정규직 영양교사 등에 비하면, 비정규직으로서 여전히 차별 받고 있다. 이에 공공운수노조 전회련학교비정규직본부,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전국여성노동조합 등에 속해 있는 3만여 명의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최근 파업찬반투표를 실시했고 92%의 높은 찬성으로 가결됐다. 정규직으로의 전환과 호봉제 도입이 목표다. 

ⓒ뉴시스 13일 민주통합당 유기홍 의원과 통합진보당 정진후 의원이 학교비정규직 노조원들과 함께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학교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교육공무직 제정 법안을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규직으로의 전환은 법을 제정해야 하는 문제인데,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민주통합당 유기홍 의원이 9월 정기국회에 '교육 공무직'을 신설해 학교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법을 제출할 계획이다. 유기홍 의원은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행복한교육만들기 본부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정치권에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이들이 똘똘 뭉쳐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선 후보들로서는 이들의 지지를 얻게 되면 전국 5천여 개 학교에 퍼져있는 2만 명 이상의 선거운동원을 얻게 되는 셈이니 그만큼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십수년간 비정규직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 더 크게, 더 단단하게 뭉쳐야 희망이 보이는 일이다. 박금자 전국학교비정규직 노조 위원장은 "대선 전까지 3만 명, 내년을 기점으로 5만 명 조직으로 키울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또, 올해 각 시도 교육청과 하는 단체교섭도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웅재 기자 jmy94@vop.co.kr

2012년 8월 19일 일요일

“SJM 회장 아들이 돈봉투 내밀더니...며칠 후 동료들 고발하더라”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8-18일자 기사 '“SJM 회장 아들이 돈봉투 내밀더니...며칠 후 동료들 고발하더라”'를 퍼왔습니다.
[인터뷰] SJM폭력사태 피해자 한정록 조합원

ⓒ이승빈 기자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에스제이엠 공장 앞에서 열린 문화제에서 지난 용역침탈에서 소화기에 맞아 뒤통수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던 한정록 지도위원(가운데 목에 파란색 수건을 두른 이)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달 27일 생애 처음으로 용역폭력을 경험한 SJM 노동조합 조합원 한정록(49)씨.

한씨는 23년간 일했던 직장에서 '컨택터스'라는 용역업체의 직원들에게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했다. 낯선 젊은이들이 들이닥쳐 욕설을 퍼부으며 한씨의 머리를 소화기로 내려쳤고 그의 머릿 가죽은 7cm가량 찢어지고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이틀 전 퇴원한 한씨를 17일 오후 4시께 경기도 안산 SJM공장 앞에서 만났다. 머리카락 사이로 벌겋게 부어있는 상처가 여전했으며 병원에서는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하지만 한씨는 퇴원한 뒤 공장부터 찾았다. 이날 오전 7시부터 밤 9시까지 예정된 일정도 모두 소화하고 있었다. 덥고 힘든데 왜 나왔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회사가 이 모양이라서"라며 간결하게 답했다. 

SJM사장, 돈봉투 내밀더니...조합원 경찰서에 고발

한씨는 SJM 강춘기 대표이사와 김휘성 경영본부장, 인사과 직원 등 4명이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 사람들도 사람이라 미안하긴 하구나'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김휘성 경영본부장은 SJM 회장의 아들이다.

누워있던 한씨에게 강춘기 대표이사가 흰 봉투를 내밀었다. "이게 뭐냐." 병원에는 한씨를 비롯해 동료 3명이 더 있었다. 도대체 왜 돈을 주는 것인지 한씨는 알 수 없었다. 한씨와 동료들은 사과는 받겠지만 돈봉투는 가져가시라고 거절하면서 강 대표이사 일행을 돌려보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한씨는 사장과 회장 아들이 직접 찾아와 사과까지 하면서 빨리 마무리짓겠다는 모습을 보며 정말 빨리 마무리될 줄 알았다고 한다. 한씨를 찾아갔던 SJM 사측은 최근 안산단원경찰서에 조합원들을 절도 및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한씨에게 내밀었던 그 돈봉투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돈봉투를 주면서 '최대한 빨리 마무리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더니 조합원들을 고발한 건 뭐냐. 쇼냐. 어디서 쇼를 하는 것이냐." 한씨는 분개했다. "23년동안 '한 가족'이라고 했던 사람들이다. 회사를 위해 몸을 바쳐 살아왔더니, 두들겨 팬 것도 모자라 돈봉투로 사람 우롱하고 동료들 고발까지 해 뒤통수를 치냐.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이럴 수 있나."

내가 실업자가 돼 헤매거나..깡패가 나타나거나

한씨는 요새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숙면을 취했다는 한씨는 '그 날' 이후 안정제를 손에서 뗀 적이 없다. 잠들었다가도 2~3차례 잠에서 깬다. '악몽' 때문이다.

"내가 실업자가 돼서 해매고 있거나 깡패들이 나타나 내 앞에 서 있어요." 

안정제 없이는 잠들기 힘든 그는 병원에서 나와 공장으로 향했다. 안정이 필요한 그는 '투쟁'을 택했다.

"우리의 목적은 순수합니다. 우리는 노동현장에서 우리 자산인 노동을 하고 살겠다는 겁니다. 저는 그게 이뤄질 때까지 투쟁할 겁니다."

전지혜 기자 creamb@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