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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31일 금요일

삼성 이수형 전무, 범죄 피의자와 손잡고 페이퍼컴퍼니 설립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5-30일자 기사 '삼성 이수형 전무, 범죄 피의자와 손잡고 페이퍼컴퍼니 설립'을 퍼왔습니다.
동아일보 기자 시절, 660억 주가조작 연루 해외 도피 중인 김석기 중앙종금 회장 회사에 이사로 등재

이수형 삼성그룹 준법경영실 전무가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으로 드러났다. 

30일 뉴스타파가 공개한 3차 페이퍼컴퍼니 명단에 따르면 김석기 전 중앙종합금융 사장과 부인인 연극배우 윤석화씨를 비롯해 이수형 삼성전자 준법경영실 전무, 조원표 현 앤비아이제트 대표이사, 전성용 경동대 총장 등이 조세도피처에 유령회사를 세우거나 주요 주주로 등록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이 전무는 삼성그룹에 입사하기 전인 2005년 6월,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던 시절 김석기 전 사장이 조세도피처인 버진아일랜드에 설립한 에너지링크홀딩스라는 이사로 참여했다. 

이 전무는 뉴스타파 발표 직후 기자들에게 메일을 보내 “김석기 사장이 조원표 사장과 사업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같이 이름을 올리자고 제안해서 수락했다”면서 “이 회사가 페이퍼컴퍼니인 줄 몰랐고, 이후에도 아무 진전된 사항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 전무는 “단 한 푼도 투자하거나 대가를 받은 것이 없으며, 사업 내용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이 전무는 “그 뒤로 김 사장과의 연락은 거의 없었고, 1~2차례 간접적으로 소식을 들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 전무는 “2005년 무렵 조 사장이 김 사장과 함께 사업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내게 ‘어차피 함께 김 사장을 알게 됐는데 같이 이름을 올리자’고 제안해 왔고, (당시 판단에) 투자도 아니고 대가를 받는 것도 아니어서 이를 수락하고 조 사장에게 여권번호와 영문 이름을 알려줬다”고 덧붙였다. 

이 전무는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15년 동안 법조 기자로 일하다가 2006년 5월 삼성그룹 법무팀으로 옮겼다. 뉴스타파가 밝힌 페이퍼컴퍼니 설립 시점은 2006년 8월이다. 이 전무는 “제가 삼성에 입사할 무렵에는 문제의 회사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으며, 이사 등재 사실도 몰랐다”고 해명했다. 


삼성그룹 이수형 전무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시점도 문제지만 그 무렵 김석기 전 사장이 660억원 상당의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돼 검찰 수사를 받다가 해외 도피 중이었다는 사실이 더욱 주목된다. 종합일간지 법조팀장을 맡고 있던 기자가 도피 중인 범죄 피의자를 만나서 취재를 하기는커녕 사업 제안을 받아들이고 주주로 참여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업계에서는 한때 김 전 사장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행방이 묘연했다. 

김 전 사장은 과거에도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해 주식시장을 교란한 바 있다. 1999년 4월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골드뱅크의 CB(전환사채)를 인수해 해외 투자자가 인수한 것처럼 속여 660억원대의 시세 차익을 남긴 혐의를 받고 있다. 실제 골드뱅크를 인수한 자금은 중앙종금에서 나온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이 전무가 2004년에도 조원표 사장이 설립한 회사의 감사로 등재됐던 사실도 드러났다. 이 전무는 “본인에게 자신의 회사의 사외 감사를 맡아 달라고 요청해 무보수로 맡아 주기로 하고 등재됐으나 동아일보를 사직하면서 사퇴했다”고 밝혔다. 조 사장 역시 동아일보 출신으로 두 사람은 선후배 사이다. 

이 전무는 “뉴스타파에 저도 피해자이므로 실명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부탁드렸다”면서 “특히 삼성과는 무관한 것이 너무도 명백하므로 회사 이름을 명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드렸다”고 밝혔다. 이 전무는 또 “저의 뜻과 무관하게 삼성에 누를 끼쳐 죄송하고 면목 없다, 제가 몸 담았던 동아일보와 선후배, 동료 기자들에게도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 전무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도피 중인 범죄 피의자를 만나는 것이 적절치 않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기자는 대통령도 만나지만 범죄자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철학이나 원칙 나름”이라고 말했다. 이 전무는 “지금 상황에서 밝히기는 어렵지만 김 전 사장이 연루된 상당히 큰 건을 취재하고 있었고 취재 협조를 받는 입장에서 김 전 사장의 부탁을 들어줬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다음은 이 전무가 기자들에게 보낸 해명 전문. 

① 김석기 사장을 알게 된 경위

- 1999년 경 중앙종금 김석기 사장이 검찰에 의해 구속됐다가 바로 구속적부심으로 풀려 난 사건이 있었음

- 이 사건 직후 김 사장의 고문변호사와 함께 김 사장을 만나게 됐음. 고문 변호사는 그 전부터 잘 아는 사이였고, 만날 때 후배 기자들 여러 명과 함께 있었음. 조원표 사장도 당시 함께 만났음. 이후 2000년 8월 본인이 미국 탐사보도협회 단기 연수(15일)를 떠난 사이 김 사장이 중앙종금 영업정지 사태로 홍콩으로 출국하고 연락 끊김.

② 2004년 이후

- 본인은 미국 로스쿨 연수를 마치고 2004년 3월 귀국해 동아일보 법조팀장으로 복귀

- 정확한 시점은 기억이 안 나지만 2004년 홍콩을 방문해 김 사장을 만났으며(김 사장 측의 요청으로 만나자는 연락이 왔음), 이후 2005년 5월 홍콩의 한류 짝퉁 실태를 현지 취재하기 위해 홍콩에 출장가서 다시 김 사장을 만났음. 당시 홍콩 海關(우리의 관세청) 청장을 인터뷰 해 5월 19~20일자에 '韓流가 도둑맞는다'는 기사 보도

- 조 사장은 2000년 초 동아일보를 사직했는데, 당시 김 사장이 스카웃 제의했음. 조 사장은 辭讓하고 다른 중소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가서 경영을 맡음.

③ Energy Link 이사 등재 경위

- 조 사장은 2004년 경 본인에게 자신의 회사의 社外 監事를 맡아 달라고 요청. 無報酬로 맡아 주기로 하고 登載(동아일보 辭職하면서 사퇴했음)

- 조 사장은 2005년 무렵 同種업종인 중국 알리바바닷컴과의 투자 문제로 홍콩을 다니면서(알리바바닷컴이 홍콩에 上場했음) 김 사장과 연락. 김 사장은 조 사장에게 "개인적으로 사업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고, 조 사장도 해외 사업의 필요성 등을 고려해 개인적으로 같이 하기로 했다고 들었음.

- 조 사장은 어차피 본인과 함께 김 사장을 알게 됐는데 같이 이름을 올리자고 요청. 본인은 투자도 아니고 대가를 받는 것도 아니어서 그렇게 하자고 하면서 조 사장 통해 여권번호와 영문 이름을 알려 줌

- 당시 이 회사가 페이퍼컴퍼니인 줄 전혀 몰랐고, 이후에도 아무 진전된 사항이 없음. 단 한푼도 투자하거나 대가를 받은 것이 없으며, 사업 내용도 모름

- 이후 2007년 조 사장에게서 문제의 사업이 진전이 없고, 정리하기로 했다고 들었음

- 이상이 전부임. 이후 김 사장과의 연락은 거의 없었고, 1~2차례 간접적으로 소식을 들었음.

④ 삼성과의 관계

- 전혀 관계 없음. 전후 시점과 상황이 명백함

- 문제의 회사 설립은 2005년 6월. 명의 빌려 준 시점도 그 무렵인 것으로 기억함

- 제가 삼성에 입사한 시점은 2006년 5월 17일. 문제의 이사 등재는 뉴스타파 측으로부터 2006년 8월이라고 들었음. 그러나 제가 삼성에 입사할 무렵에는 문제의 회사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으며, 페이퍼컴퍼니 이사 등재 사실도 몰랐음

□ 입장

- 이상이 전부입니다. 문제의 회사가 페이퍼컴퍼니인 줄 몰랐으며, 어떠한 금전 거래도 없었습니다.

- 보도에 따르면 국세청이 문제된 법인 뿐만 아니라 개인에 대해서도 역외탈세 혐의 세무조사를 하겠다고 합니다.

저 개인에 국한해 말씀 드리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제 넘는 얘기지만, 간절히 바랍니다.

저 개인에 대해 세무조사가 이뤄지면 법이 허용하는 한 결과를 공개하겠습니다.

저는 이런 뜻을 뉴스타파 측에 말씀 드리고, 저도 피해자이므로 실명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부탁 드렸습니다.

특히 삼성과는 무관한 것이 너무도 명백하므로 회사 이름을 명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물의를 빚어 죄송합니다.

특히 저의 뜻과 무관하게 삼성에 누를 끼쳐 죄송하고, 면목 없습니다.

제가 몸 담았던 동아일보와 선후배, 동료 기자들에게도 죄송합니다.

2013. 5. 30.

이수형


이정환 기자 |black@mediatoday.co.kr  

2013년 4월 14일 일요일

국정원 추적 100일 ‘원세훈을 잡아라’


이글은 2913-04-12일자 한겨레신문 기사 '국정원 추적 100일 ‘원세훈을 잡아라’를 퍼왔습니다.

참여연대 회원들이 3월24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해외도피'를 막기 휘ㅐ 서 있다. 원 전 국정원장은 해외로 출국하려 했으나, 법무부가 출국금지 조처를 내렸다. 인천공항/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토요판/특집]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3개월 취재 뒷이야기
경찰 외면 속 특종의 8할은 ‘정의로운 취재원들’


대선 직전 수서서 기자회견
기자들은 서장 입만 바라봤다
“게시글·댓글 쓴 적 없다”
경찰은 의심스러운 정황은 덮고
밝혀진 사실들엔 침묵했다
불신은 점점 깊어졌다


3개월간의 추적이 시작됐다
실마리를 잡기는 어려웠다
수사팀은 철통보안을 자랑했고
사건 관련자들은 말을 아꼈다
가장 큰 걸림돌은 ‘공포’였다



기자 40여명과 방송카메라 10여대가 김광석 서울 수서경찰서장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김 서장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가 대선 후보에 대한 비방·지지 게시글이나 댓글을 게재한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한 기자가 물었다. “추가 수사를 통해 중간 수사 결론이 바뀔 가능성이 있나요?”

김 서장은 주저 없이 답했다. “저는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씨의 하드디스크를 분석한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도 “온갖 방법으로 다 조사했지만 정치 쪽으로 댓글 달거나 올린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17일 오전 9시 김 서장의 기자회견은 전날 밤 기습 발표와 다르지 않았다. 경찰은 이미 12월16일 밤 11시 ‘국가정보원 직원의 대선 여론 조작 의혹’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를 기습적으로 발표했다. 대선 최대 현안 중의 하나로 떠올랐던 ‘국정원 여직원’ 사건에 대한 경찰의 발빠른 대응이었다. 김 서장의 브리핑이 있고서 이틀 뒤인 12월19일, 18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대선이 끝나자 경찰 수사는 조용히 이뤄졌다. 보름이 지나고 올해 1월3일에야 경찰은 다시 한번 국정원 사건의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은 “국정원 직원 김씨가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오늘의 유머’(오유)에서 게시글 추천·반대 활동을 했다. 직접 쓴 글도 있지만 대선·정치·시사와는 무관한 개인적인 내용이다”라고 밝혔다. 국정원 직원이 진보 성향의 누리집(웹사이트)에서 ‘추천·반대’의 의견을 표명했다는 내용이었지만, 정치와 무관하다는 점에서 이전 발표와 다르지 않았다. 경찰은 다시 침묵하기 시작했다. 한달 가까이 어떤 수사 결과도 내놓지 않았다. 국정원도 다르지 않았다. 1월9일 (한겨레)와 ‘5분17초’ 동안의 전화 통화에서 국정원 대변인은 4차례나 김씨가 글을 쓴 적이 없다고 밝혔다. 대변인은 “글을 쓴 건 한 건도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경찰과 국정원의 발표로 인해 ‘국정원 직원’ 사건에 대한 파장은 가라앉기 시작했다. 국정원 직원 김씨가 정치적인 글에 ‘추천·반대의 의견을 개인적으로 표명한 것이 문제가 되느냐’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국정원 사건은 그렇게 진실과 멀어지고 있었다.
싸늘히 식은 ‘캡’의 목소리…동아줄을 붙잡다


대선 이후 국정원 사건에 대한 취재는 쉽지 않았다. 수사팀에서는 한마디도 새어나올 기미가 없었고, 사건 관련자들을 만나기도 어려웠다. 이 와중에 서초경찰서에서는 성추문 검사 사건의 피해여성 사진유출 사건이 배당됐다. 서울 강남·서초·수서경찰서를 출입하는 강남라인 기자들은 더 바빠졌다. 기자들 세계에서 무림의 고수들이 모인다는 강남라인에서 물을 먹는 것은 피할 수 없어 보였다. (조선일보)가 “국정원 김씨가 오늘의 유머 누리집에서 게시글 추천·반대 활동을 했다”고 단독 보도했고, (중앙일보)마저 “김씨의 국정원 업무는 종북성향 글을 추적하는 것이었다”고 보도했다. 캡(사건취재팀 팀장)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어떻게든 만회하려고 안절부절못하며 돌아다니다 우연히 동아줄 하나를 붙잡았다. 국정원 직원 김씨가 쓴 글을 확인할 단서가 생긴 것이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취재 과정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긴 어렵다. 다만 밝힐 수 있는 건, 김씨의 글을 보도할 수 있었던 공의 8할이 ‘정의’라는 단어에 고개를 끄덕였던 취재원들 덕분이었다는 점이다. 나머지 2할은 평범한 시민들을 실체도 불확실한 ‘종북’이라고 낙인찍어온 국정원과, 사건의 실체를 숨겨온 경찰의 기여였다.

취재를 하면서도 또 하나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국정원의 전신이 고문과 미행, 도청 등을 자해하던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가 아니던가. 이런 두려움과 철통보안을 뚫고서 건져올린 ‘사실’은 사건의 본질을 바꿔버렸다.

(한겨레)가 국정원 직원 김씨가 쓴 글의 내용을 보도하기 전까지 국정원 직원에 대한 논란은 ‘특정 글을 추천·반대한 것이 공직선거법 위반이냐’에 초점이 맞춰졌다. 경찰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 법률 검토를 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수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질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경찰 수뇌부는 이미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내린 것처럼 보였다. 김용판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김씨의 컴퓨터 분석 결과 혐의를 찾을 수 없었다’는 한밤중 수사 결과 발표를 자신이 주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은 당시 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에도 김씨의 의심스러운 활동 정황을 이미 알고 있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김씨의 노트북에서 지워진 메모장 파일 하나를 발견했다. 그 파일을 복원하자 20개의 ‘아이디’와 20개의 ‘닉네임’이 나왔다. 김씨가 노트북에서 열람한 인터넷 검색기록은 31만여건에 달했다. 김씨가 지난해 8월 국정원으로부터 노트북을 지급받았기 때문에 하루에 4000건씩 인터넷 검색을 한 셈이다. 이는 일반인의 한달 인터넷 검색량을 뛰어넘는다.

서울청은 이런 내용을 확인하고도 12월16일 밤 11시 중간 수사 결과 발표를 주도했다. 보도자료의 핵심 내용을 작성한 주체도 수서경찰서가 아닌 서울청이었다. 다음날 오전 수서경찰서장이 기자들 앞에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까지 서울청은 하드디스크에 대한 상세한 분석자료를 수서경찰서에 넘기지 않았다. 하드디스크에서 나온 20개의 아이디와 20개의 닉네임을 수서경찰서가 받게 된 시기는 다시 하루가 지난 18일 오후 4시께였다. 수서경찰서의 줄기찬 요청 끝에 서울청이 분석자료를 보내준 것이다.

경찰은 국정원 여직원이 정치적인 글을 게시하지 않았다고 발표했지만, 의심스러운 정황은 남아 있었다. 단서는 ‘20개씩 발견된 국정원 직원의 아이디와 닉네임’이었다. 경찰이 알려준 것은 이게 전부였다. 국정원 직원이 실제 무슨 아이디와 닉네임을 사용했는지는 직접 밝혀내야 했다.

결국 올해 1월31일 (한겨레) 보도로 김씨가 작성한 91개의 글이 세상에 공개됐다. 대북 업무를 담당하는 국정원 3차장 산하의 심리전단 직원인 김씨가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통령 후보를 비난하고,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의 금강산 관광 재개 공약을 비판하는 글을 쓴 것 역시 고스란히 드러났다. “김씨가 정치적인 글은 쓴 적이 없다”는 국정원과 경찰의 거짓말이 탄로났다.

보도가 나오자 경찰은 부리나케 기자회견을 열었다. 변명은 궁색했다. 경찰은 1월31일 “게시글이 정치, 시사 등과 관련 없다고 한 것은 그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탓이다. 글도 판단에 따라 대선 관련성이 있다고 볼 수도 있고, 없다고 볼 수도 있다”고 해명했다. 국정원은 김씨의 활동이 “종북세력을 추적하는 국정원 직원의 고유 업무”라고 주장했다.

여론 조작에 참여한 인물은 국정원 직원인 김씨만이 아니었다. (한겨레)가 2월4일 ‘국정원 직원의 아이디 5개를 제3의 인물이 썼다’고 보도하자, 새로운 국면이 시작됐다. 경찰과 국정원은 더 이상 김씨 개인의 행동으로 사건을 무마할 수가 없었다. 이는 곧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했다는 단서이기도 했다.



이씨 찾기 위한 수백번의 클릭


‘제3의 인물’을 찾기 위한 취재 과정은 지난했다. 처음 확인된 것은 제3의 인물 성이 ‘이씨’라는 것뿐이었다. 이씨의 정체는 오리무중이었다. 신분은 물론 나이와 이름조차 확인되는 것이 없었다. 다만 이씨가 국정원 직원 김씨와 유사한 활동을 한 것은 확실했다. 경찰 수사 결과, 이씨가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아이디는 30개가 넘었다. 이 아이디들은 160여개의 게시글을 작성하고 2000회가 넘는 게시글 추천·반대 활동을 하는 데 사용됐다. 국정원 직원 김씨보다 이씨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한 셈이다.

단서는 뜻밖의 곳에서 나왔다. 2월8일 (에스비에스)(SBS) 8시 뉴스는 이씨가 머물렀다는 고시원을 찾아 보도했다. 영상에는 ‘고시원’이라고 적힌 간판의 일부만 담겼다. 이 유일한 실마리밖에 붙잡을 게 없었다.

어려울 땐 단순하게 가는 게 좋다. 인터넷에서 ‘고시원’을 검색했다. 서울 시내 등록된 고시원이 3000개 가까이 나왔다. 실제 거리를 볼 수 있는 인터넷 지도 서비스를 이용해 같은 간판이 있는지 하나씩 확인했다. 설 연휴가 이어진 터라 시간은 충분했다. 첫날 400여개를 검색했지만 같은 간판은 없었다. 다음날 취재를 통해 고시원이 강남구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검색 범위를 좁힐 수 있었다. 결국 이틀 만에 방송에서 나온 간판이 달린 고시원을 찾을 수 있었다.

이씨의 구체적인 신원은 국정원 사건을 함께 취재한 최유빈 기자가 밝혀냈다. 최 기자는 며칠 만에 비밀투성이였던 이씨의 나이와 출신 학교를 알아냈고, 2004년 당시 한나라당의 한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운동을 했다는 사실까지 확인했다. 문제는 2004년 이후였다. 10명이 넘는 이씨의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려봤지만, 이씨의 최근 행적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고시 공부를 하던 이씨가 선거운동을 한 뒤 어떤 과정을 통해 김씨를 만났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존재로 국정원이 대선 여론 조작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은 더 확실해졌다. 이씨의 정체가 밝혀진 뒤 민주당은 이씨를 국정원 직원 김씨의 공범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이씨는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신분이 전환됐다. 경찰의 소환을 피해 잠적했던 이씨는 결국 여론과 경찰 수사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2월22일 수서경찰서에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새로운 정황이 속속 드러났지만, 경찰 수사는 여전히 더디기만 했다. 사건을 수사해왔던 권은희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2월4일 서울 송파경찰서로 발령을 받았다. 권 과장은 사건에 관계된 경찰 중 유일하게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권 과장은 1월23일 “경찰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잖아요. 이 사건의 수사기록에는 수사관의 이름이 남습니다.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수사할 것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서울경찰청은 “1년 이상 과장으로 일했던 모든 경찰 간부를 인사이동한다”는 이례적인 방침을 이유로 인사를 강행했다. 경찰 안팎에서는 권 과장을 이번 사건에서 손 떼게 하려고 내놓은 고육책이라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경찰 수사에 대한 불신은 더욱 깊어졌다. 국정원과 조금이라도 관계있는 사람들을 만나보는 수밖에 없었다. 전·현직 국정원 직원과 국회 정보위원회 관계자 등을 두루 만나 취재를 벌였지만 모두들 국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꺼렸다. 현직들은 “회사를 오래 다녀야 한다”는 이유로 접촉 자체를 꺼렸다. 전직들은 “원세훈 원장 취임 이후 현직 직원을 만나는 것이 금지됐다. 동기들마저 만날 수 없다”며 한탄했다. 국회의원도 “질의를 보내면 ‘비밀이다’는 내용만 돌아온다”며 답답해했다. 의미있는 성과는 2월 말에야 나왔다.



‘제3의 인물’ 이씨 찾으려
인터넷 지도 서비스 통해
고시원 수백개 일일이 확인하고
‘원장님 지시 말씀’ 검증에
기자 3명이 매달렸다


고소·고발 이어지는 가운데
조용히 퇴임한 원세훈 전 원장
해외 출국 소식 듣고
밤늦게 그의 집을 찾았다
초인종 눌러도 개만 짖었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걸까



리트위트로 남은 원장님 지시말씀


원 전 원장이 직접 직원들에게 정치 개입을 지시한 내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국정원 내부망에 ‘원장님 지시 강조 말씀’(지시말씀)이라는 게시판이 있고 한 달에 한 번꼴로 다양한 지시사항이 올라오는데 이 중 상당수가 ‘부적절한 지시’라는 것이었다.

혼자서 취재를 더 진행하긴 힘들었다.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실과 지시 말씀의 정체를 찾아 나섰다. 자세한 과정을 밝힐 순 없지만 2주간의 노력 끝에 결국 관련 내용을 입수했다. 25개의 지시사항은 정부·여당의 정책을 옹호하고 이를 반대하는 세력을 종북으로 낙인찍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국정원 직원 김씨가 속한 심리전단이 2010년 보고한 ‘젊은층 우군화 심리전 강화 방안’이라는 문서에 대해 원 전 원장은 “바로 우리 (국정)원이 해야 할 일”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후인 2011년 11월18일 지시말씀에는 “인터넷 여론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라”는 내용까지 담겨 있었다. 4대강 사업, 세종시 문제, 대통령의 해외 순방 칭송 등 정부 여당을 일방적으로 편들라는 지시 내용도 다수였다. 원 전 원장의 지시말씀은 국정원 직원 김씨가 젊은층들이 자주 모이는 ‘오유’ 등 누리집에서 작성한 글의 주제와 일치했다. 김씨의 게시글이 국정원 차원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점은 한층 더 분명해졌다.

문제는 문서의 진위였다. 검증이 필요했다. 기자 3명이 검증 작업에 매달렸다. 우선 국정원 내부망에 원장님 지시 강조 말씀이라는 게시판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10여명에 이르는 전·현직 국정원 직원들을 통해 게시판의 존재를 확인했다. 또 원 전 원장이 취임한 뒤로 이 게시판이 더 활발하게 사용됐다는 내용도 확인됐다.

이후 ‘지시말씀’에 거론된 내용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확실한 단서를 찾았다. 원 전 원장이 지난해 11월23일 지시한 내용 중 일부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트위터에 올라온 사실이다. 그 글을 쓴 사용자는 이미 탈퇴했지만, 다른 사람이 리트위트를 한 흔적이 남아 꼬리가 밟혔다.

원 전 원장의 지시말씀에는 “최근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이 ‘한국과 같이 자원 없는 나라가 원전 활용하는 것은 현명, 관리도 잘한다’고 호평한 내용을 원전 지역 주민들에게 홍보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같은 내용을 거의 똑같이 트위터에 올린 사람 2명이 확인됐다. 하지만 이 발언은 허위였다. 실제 발언을 한 사람은 국제원자력기구가 아니라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사무총장이었다. 원 전 원장이 실수를 한 것이다. 하지만 국정원 직원은 이 실수마저 그대로 옮겨 트위터로 전파했다.

국회에서는 국정원에 질의를 보내 ‘지시말씀’에 거론된 ‘젊은층 우군화 심리전 강화 방안’이라는 문서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문서의 진위가 확인된 이상 보도를 미룰 이유는 없었다. 진 의원실과 협의해 보도 날짜를 잡았다. 그리고 3월18일(한겨레) 1면 머리기사와 두 면에 걸쳐서 ‘지시말씀’이 공개됐다.



원세훈 전 원장집엔 개 한 마리뿐
3월24일 오전 서울 관악구 남현동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집 안에서 개 한마리가 밖을 쳐다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원 전 원장의 지시말씀이 공개되자 파장은 컸다. 지시말씀에서 ‘종북세력’으로 거론된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원 전 원장을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했다. 고소 대열에는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시민단체와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도 합류했다.

원 전 원장은 자신에 대한 고소·고발이 이어지던 3월20일 저녁 몇몇 간부만 모아놓은 자리에서 조용히 퇴임식을 열었다. 수사기관이 석달 넘도록 끌어온 국정원 사건의 배후로 그가 지목되는 시점이었다.

3월22일 저녁, 다급한 제보가 왔다. 원 전 원장이 일요일인 3월24일 해외로 출국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국정원 안팎에서는 원 전 원장이 퇴임 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원으로 간다는 소식이 널리 퍼져 있는 상황이었다. 금요일 밤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밤 10시께 기사를 마무리하고, 출국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서울 관악구 남현동에 있는 원 전 원장의 집으로 향했다.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초인종을 눌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다음날 낮 다시 찾은 원 전 원장의 자택에는 여전히 인기척이 없었다. 10여차례 초인종을 누르고 “잠시만 만나 달라”며 소리도 질러봤지만 개가 대답할 뿐이었다. 진돗개와 수십개의 동작감시센서, 폐회로카메라(CCTV)가 집을 지켰다.

이웃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해 원 전 원장의 집 수리가 일년 내내 진행됐다고 한다. 국정원 관사를 떠나 집으로 돌아오기 위한 준비로 보였다. 하지만 3월20일 퇴임식이 있기 일주일 전께 이삿짐차가 원 전 원장의 짐을 한가득 싣고 나갔다.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거나 이미 국외로 나갈 준비를 마친 것이라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남현동 자택에서는 끝내 원 전 원장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출국 소식이 전해진 뒤 원 전 원장에 대한 여론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일부 시민들은 출국을 막아야 한다며 3월24일 직접 인천국제공항에 나가기까지 했다. 여당 안에서도 “전직 국정원장이 퇴임 직후 해외로 출국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결국 법무부는 원 전 원장에 대한 출국금지 조처를 내렸다. 이후 원 전 원장은 지인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미국으로 출국할 의도는 없었다”, “일본으로 잠시 여행을 갈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번도 직접 출국 논란에 대해 해명한 적은 없다. 그리고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100일이 넘는 취재 과정 내내 ‘보이지 않는 손’이 발목을 잡았다. 그만큼 이번 사건의 실체를 감추려는 이들이 많았던 탓이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고 싶어하는 취재원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항상 ‘정보기관의 그림자가 뒤를 따르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의 실체가 이만큼 밝혀진 것은 모두 그들의 용기 덕분이었다. 이제 그 용기에 걸맞은 대답이 필요하다. 경찰과 검찰의 몫이 여기 있다. 경찰과 검찰이 진정 국민을 위해 일하는 국민의 ‘공복’이라면.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2012년 9월 23일 일요일

새로운 대중공양운동 제안


이글은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조현기자 블로그 휴심정 벗님글방 2012-09-21일자 기사 '새로운 대중공양운동 제안'을 퍼왔습니다.

 
조계종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김장을 담그고 있는 모습. 사진 <한겨레> 자료

지금 조계종은 겹겹이 괴로움에 쌓여있다. 몇 달 전에 바깥세상에까지 크게 알려진 도박 문제·일부 본사 주지 선출과정에서 불거진 돈 봉투 사건 등등으로 종단과 불교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이 곱지 않다. 여기에 더하여 중진 승려가 사찰 소유 토지를 몰래 팔아 해외로 도피하는 사건이 터지고, 선불교의 상징과도 같은 일부 총림에서 혼란과 분규가 끊어지지 않고 있어 괴로움이 늘어만 가고 세속인들이 불교 집안을 걱정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럴 때 일부에서는 모든 책임을 종단 집행부에 돌리고 자신은 이런 상황과 관계가 없다고 우긴다. 또 다른 쪽에서는 이 혼란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양쪽이 아주 다른 것 같아 보이지만 ‘나는 책임이 없다’며 발뺌을 하거나 방관자가 되어 자기위안에 머문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사성제의 가르침대로 ‘우리 종단이 혼돈상황에 놓여있음(苦)’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 원인(集)을 찾아 잘못을 없애는(滅) 대안(道)을 마련해야 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 대안이 전체 승가구성원 대표가 모인 쇄신운동이다.

스스로를 살펴보고 잘못을 바꾸겠다는 의지에서 여러 의제를 대중공사에 붙이고 사부대중의 여론을 들어 쇄신안에 반영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자성과 쇄신 운동에는, 이름을 달리하고는 있지만 승속이 망라된 종단 집행부 바깥의 대중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은 승려들의 ‘범계(犯戒)’를 거론하며 범계행위자에 대한 공양과 청법 거부 운동을 주장한다.

승려와 불자들이 헌혈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자료

승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에 이를 바로잡는 마지막 방법이 ‘공양과 청법 거부’임은, 붓다께서도 제어할 수 없었던 승가의 분열을 재가 대중들이 바로잡았던 코삼비 사건에서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승가 내의 모든 절차를 거치고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확인될 때에 쓰는 마지막 방법이며,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쓰는 비상(砒霜)과 같다는 사실을 놓치기 쉽다.

과연 거부가 승가를 쇄신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일까. 거부 운동에 “승가를 바로 세워서 불교를 발전시키고 세상에 안락과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정의감과 애정이 넘쳐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일각에 불신·원망·방관·무관심·책임전가 그리고 승단에 대한 대립과 적개심은 없는가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위에 나오는 부정적인 낱말로 드러나는 일체의 행위를 극복하자는 것이 불교가 아닌가. 부처님께서는 “원한과 증오는 원한에 의해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숱하게 전해주지 않으셨던가. 그런데 붓다의 정법을 세우겠다면서 그분의 가르침을 어기면 되겠는가.

요즘 나는 여래십호 중에서 ‘세간해’와 ‘응공’에 관심을 갖고 그 의미를 되새긴다. ‘세간을 바르게 살피고 이를 해결해주는 세간해’인 붓다는 ‘마땅히 중생들의 신뢰와 존경·공양을 받을 자격을 갖춘 응공’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응공’이신 붓다에게는 일체 대중들이 가르침을 청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붓다가 함께 하지 않는 오늘날 누구에게 공양해야 하는가, 누가 세상 사람들에게 밥을 얻어먹을 자격이 있는가.

“비법을 행하는 승가에는 공양과 청법을 거부하고 정법을 행하는 승가에만 공양을 올리고 법을 청하자”는 내 말은 ‘거부하자’는 말만 강조되어 번번이 오해를 받고 ‘섭섭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내 뜻은 대승의 정신에 충실하려면 그름에 대한 거부와 동시에 옳음에 대한 청원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본래면목을 찾고 청빈과 치열한 구도심으로 정진하는 선원, 어려운 이들을 보살피며 포교에 정진하는 스님과 사찰, 더 나아가 불교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재가불자단체에도 후원을 하고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청법 운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대승적 공양운동이다. 보살행을 실천하는 승가와 재가는 얼마나 참다운 부처님의 진리 대행자인가. ‘그름에 대한 거부와 옳음에 대한 청원’이 동시에 이루어지면, 정법에 힘이 모아지고 그 힘이 커져서 서로 상생하게 된다. 화합은 선언과 구호가 아니라 ‘부정과 긍정’의 동시 지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법인 스님16세인 중학교 3학년 때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대흥사 수련원장을 맡아 '새벽숲길'이라는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과 주필을 지냈으며, 현재 조계종 교육부장으로 승가 교육 진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메일 : abcd369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