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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8일 월요일

[사설]‘절차·탕평 무시한 조각’ 일방통행의 전조인가


이글은 경향신문 2013-02-17일자 사설 '[사설]‘절차·탕평 무시한 조각’ 일방통행의 전조인가'를 퍼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어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을 발탁하는 등 11개 부처 장관을 추가 내정했다. 이로써 닷새 전 발표된 6개 부처장을 포함해 17개 부처 장관에 대한 조각이 마무리됐다. 이 과정에서 실무와 전문성을 중시하면서도 함께 일해 본 사람을 중용한다는 박 당선인의 용인술이 재확인됐다. 책임 총리제나 책임 장관제보다 박 당선인이 국정을 장악해 진두지휘하겠다는 구상의 일단이 읽힌다.

국무총리를 포함해 3차례에 걸쳐 발표된 조각은 박 당선인이 밝힌 대탕평과 거리가 있다. 우선 지역적으로 호남의 경우 전남과 전북에서 각 1명씩 2명이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전북 고창 출신이지만 경기고를 나와 서울 용산에서만 3선의 국회의원을 한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를 호남에 포함시켜야 하느냐는 반론을 감안하면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이 유일하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역시 2명이 입각한 여성도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내정자가 박 당선인의 최측근이라는 정치적 위상을 고려할 때 실제로는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1명이라고 할 수 있다. 박 당선인은 사상 첫 과반 득표율을 올린 데다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지역이나 성별 등을 초월한 대탕평을 실천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으나 허사가 돼 버리고 말았다.

절차적으로도 문제다. 새누리당은 오늘 정부조직개편안을 처리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박 당선인까지 개편안 처리에 협조해달라며 야당에 도움을 요청해 놓은 마당이다. 박 당선인은 개편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상황에서 조각을 강행한 것이다. 신설되지 않은 부총리와 조직법에도 없는 미래창조과학부와 해양수산부 장관을 내정한 셈이다. 입법권을 가진 국회 무시다. 오늘도 개편안 처리가 불투명해서 서둘렀다고 둘러대는 모양인데 이제껏 뭐하다가 이제야 급해졌는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청와대 비서실장 인선이 또 미뤄진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행정관을 임명해도 국가 보안을 다루는 업무 특성상 최소 2주에 걸친 신원조회가 필요한 게 청와대 비서진 자리다. 인사청문회가 필요없다고 하나 새 정부 출범이 불과 일주일 남은 시점에서 쉽게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절차와 내용은 조각의 핵심을 이루는 두 요소다. 이번 조각을 지켜보노라면 박 당선인은 절차에 있어 야당을 자신의 의중을 추인하는 들러리로 전락시켰고, 내용에 있어서도 ‘내 사람 내가 쓴다’는 오만과 불통의 면모를 드러냈다. 일련의 상황이 염려스러운 것은 박 당선인의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을 예고하는 듯한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다. 대통령제 아래서 성공적 국정운영을 위한 준비라면 당선인의 인사, 그것도 조각은 가급적 존중하는 게 좋다고 본다. 그러나 국민이나 야당이 공감할 수 없는 불통이고, 오만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국정은 대통령 혼자가 아니라 국민, 야당과 더불어 완성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2013년 1월 15일 화요일

박근혜, 사도세자를 두 번 죽이지 말기를...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3-01-14일자 기사 '박근혜, 사도세자를 두 번 죽이지 말기를...'을 퍼왔습니다.
[게릴라칼럼] 진정한 '탕평' 원한다면 특권층 1%와 싸워야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12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교부받은 당선증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박근혜 당선인은 취임 직후부터 '대탕평 인사'를 국정 키워드로 표방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민 모두가 행복한 '100% 대한민국'을 실현시키겠다는 것이 그의 약속이다. 

탕평은 고대 중국 역사서인 (서경)의 '홍범' 편에 나오는 정치이념이다. 여기에는 군주가 지켜야 할 9가지 정치원칙인 홍범구주가 나온다. 이 중에서 제5원칙이 탕평과 관련된 내용이다. 

제5원칙의 핵심 내용은 군주가 국가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5원칙을 다룬 부분은 "황극(皇極)은 임금이 표준을 세우는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군주가 표준을 세우는 상태' 즉 '군주가 중심이 되는 상태'가 황극이며, 이 황극에 관한 내용을 다룬 것이 제5원칙이다. 황극의 실현 방법과 관련하여 다음 두 문장이 특히 관심을 끈다. 

"일반 백성들이 은밀히 뭉치지 않고 높은 사람들이 뭉치지 않는 것은 임금이 표준이 되기 때문이다."-제1문장."치우침이 없고 당을 만들지 않으면 왕도가 탕탕(蕩蕩)하고, 당을 만들지 않고 치우침이 없으면 왕도가 평평(平平)하다."-제2문장. 

제2문장의 '탕탕'과 '평평'을 압축한 게 탕평이란 두 글자다. 탕평의 의미는 제1문장에 나온다. 백성들이 파벌을 만들어 끼리끼리 뭉치는 상태를 배격하는 것이 바로 탕평이다. 바꿔 말하면, 여러 집단과 계층이 골고루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탕평이다. 이 같은 탕평을 통해 '임금이 중심이 되는 상태'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탕평의 본질, 국가가 특정 파벌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 것
 
 
▲ 영조의 어명으로 세워진 탕평비가 보관돼 있는 탕평비각. 서울시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정문에 있다. ⓒ 김종성

'군주가 국가의 중심이 되는 것이 탕평이라면, 이것은 군주 독재를 위한 논리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탕평의 본질은 국가가 특정 파벌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백성들이 끼리끼리 뭉치지 않도록 군주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특정 당파가 아닌 백성 전체의 이익을 위해 국가 조직이 움직이도록 군주가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일반 백성들보다는 '높은 사람들' 즉 특권층이 당파를 만들 위험성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제5원칙의 궁극적 목표는 특권층 내의 파벌이 국가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이 사람 저 사람 끌어모으는 것은 탕평이 아니다. 국가가 백성 전체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탕평이다. 이것은 인사조치에만 국한하지 않고 국가의 법률제도까지 과감히 뜯어 고칠 때만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1% 귀족의 나라'가 아닌 '100% 만백성의 나라'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왕권도 자연스레 강해질 것이라는 게 옛날 왕들의 계산이었다. 

그런데 왕권이 비교적 강했던 중국과 달리, 귀족이 더 강했던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탕평의 원리가 제대로 실현될 수 없었다. 1%를 규제하고 100%를 위하는 군주는 1%의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임금은 폭군이란 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 1%가 99%보다 훨씬 더 강했기에, 옛날 우리나라의 왕들은 탕평을 감히 추진하기 힘들었다. 

탕평이 공식적으로 추진된 것은 조선 후기인 18세기 초반부터였다. 숙종 임금(재위 1674~1720년) 때에 당파 투쟁이 최고로 격렬해지고 이 틈을 타서 숙종이 당파들을 교묘히 대립시키고 지치게 만들면서, 당파 정치는 이전과 달리 크게 약해졌다. 물론 그 후에도 보수파인 노론당 계열이 여전히 제1당이었지만, 숙종시대 후반부터는 노론당을 포함한 당파들의 힘이 예전 같지 않았다. 

이렇게 당파 정치가 약화된 틈을 타서, 숙종의 아들인 영조가 선언한 것이 바로 탕평정치였다. 그는 '1% 양반 귀족의 나라'가 되어 버린 조선을 '100% 만백성의 나라'로 바꾸려면 특정 당파의 독점을 깨고 당파 간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통해 왕권이 자연스레 강해질 것이라는 게 그의 계산이었다. 

이런 시도의 결과로 영조가 즉위한 1724년부터 정조가 사망한 1800년까지는 '1% 조선' 이 아닌 '100% 조선'을 위한 탕평정치가 추진되었다. 물론 그것이 완벽하게 구현된 것도 아니고 또 노론당이 힘을 잃은 것도 아니지만, 이전 시기와 비교하면 이 시대의 정치는 분명히 진일보한 것이었다. 

▲ 사도세자의 사당이 있었던 경모궁 터. 서울대병원 뒤편에 있다. ⓒ 김종성

▲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사망한 장소인 창경궁 문정전 앞뜰. ⓒ 김종성

그런데 이 시대에 영조나 정조보다 훨씬 더 교과서적으로 탕평을 추진한 인물이 있었다. 영조의 아들이자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그 주인공이다. 

사실, 영·정조는 약간 타협적으로 탕평을 추진했다. 탕평을 표방하면서도 실상은 특정 당파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특히 영조는 정권 유지를 위해 외척세력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이처럼 완벽하지 않았는데도 그들이 훌륭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이전의 왕들이 감히 시도하지 못한 것을 그들이 용감하게 시도했기 때문이다. 

사도세자가 특권층과 죽기 살기로 싸운 이유 

다소 타협적인 영·정조에 비해 사도세자는 매우 원칙적으로 탕평의 이념을 고수했다. 그는 1749~1762년의 13년 동안 영조를 대신해서 대리청정(권한대행)을 수행했다. 따라서 탕평정치가 시행된 76년 중에서 13년 동안은 실질적으로 사도세자의 시대였다. 그러므로 탕평정치의 계보는 영조-정조가 아니라 영조-사도세자-정조였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사도세자는 '100% 조선'을 이루려면 특권층인 노론당과 외척세력을 눌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노론당을 얼마나 경계했는지는 나이 열 살 때부터 노론당을 비판했을 뿐만 아니라 노론당을 비호한 영조의 태도까지 비판한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처가인 홍씨 가문이 사도세자를 죽이는 데 앞장선 사실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그는 외척세력이 국정에 개입하는 것을 견제했다. 노론당과 외척으로 이루어진 '1%'를 견제했던 셈이다. 한마디로, 그는 '100% 조선'에 목숨을 건 용감한 사나이였다. 

사도세자가 대리청정 13년 만에 스물여덟 살의 나이로 뒤주에 갇혀 목숨을 잃은 것은, 그가 교과서적인 탕평을 추구했고 그것이 특권층에게 공포심을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화병을 앓았고 그로 인해 어느 정도 문제가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뒤주에 갇힌 본질적 요인은 '1%'와의 갈등이었다.   

▲ 사도세자가 갇혀 죽은 뒤주의 복원품. 경기도 수원시 화성행궁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사도세자가 1%로부터 얼마나 미움을 받았는지는, 그가 죽은 뒤에도 오래도록 죄인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들인 정조가 왕의 자리에 있을 때도 왕으로 추존되지 못한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왕의 아들이 아닌 사람이 왕이 되면 자기 아버지를 왕으로 추존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정조는 끝내 이 일을 하지 못했다. 사도세자에 대한 특권층의 거부감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사도세자가 왕으로 추존된 것은 구한말 때인 1899년이었다. 100%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1% 때문에 얼마나 곤욕을 치를 수 있는지를 사도세자는 온몸으로 보여줬다. 

사도세자는 251년 전에 죽은 사람이지만, 그는 아직도 우리 주변에 남아 탕평을 외치고 있다. 서울 시민은 물론이고 지방 사람들도 많이 찾는 대학로 서울대병원의 바로 뒤편에는 그의 위패를 모셨던 사당인 경모궁의 터가 남아 있다. 또 경모궁 터에서 왼쪽으로 직경 500미터 거리에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사망한 곳인 창경궁 문정전 앞뜰이 있다. 

박근혜 당선인이 말로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탕평을 원한다면, '1% 대한민국'이 아닌 '100% 대한민국'을 정말로 원한다면, 경모궁 터와 문정전 앞뜰에서 울려퍼지는 사도세자의 절규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한국의 정치환경에서는 사도세자처럼 특권층과의 대결을 불사하지 않고서는 탕평을 추진할 수 없다. 한여름 날씨에 8일간 뒤주에 갇혀 세상과 작별할 각오를 하지 않고는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탕평이다. 

박 당선인이 '100% 대한민국'을 위한 대탕평을 하고자 한다면, '죽기 살기로' 1%와 싸울 각오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진정성 있는 탕평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김종성(qqqkim2000)

2013년 1월 14일 월요일

"우리 생전에 높은 도덕성의 대통령 한번 봤으면"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3-01-13일자 기사 '"우리 생전에 높은 도덕성의 대통령 한번 봤으면"'을 퍼왔습니다.
[전문] 이준구 "朴, 탕평과 대통합 약속만은 지켜 주기를"

대선때 문재인 후보를 찍었던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12일 "진정으로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고, 국민과 함께 웃어주고, 아무런 사심 없이 국정을 운영하는 높은 도덕성의 소유자인 대통령을 우리 생전에 한 번은 봐야만 하는 게 아닌가"라며 박근혜 당선인이 최소한 탕평과 대통합 공약만은 지켜줄 것을 당부했다.

이준구 교수는 이날 오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새 정부에 거는 기대, 그리고 우려'라는 장문의 글을 통해 "우리는 그 동안 진심으로 존경할 만한 대통령을 갖는 행운과는 인연이 멀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자신이 왜 박 당선인을 찍지 않았는가를 상세히 밝힌 뒤, "내가 지지하지 않았던 후보가 대통령으로 뽑히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 5년 전만큼 불안하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그때는 한반도대운하니 747이니 하는 허황된 공약이 나를 몹시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것들을 지키려 든다면 우리 사회와 경제에 엄청나게 큰 혼란이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다. 또한 마치 점령군이나 되듯 모든 것을 뜯어고치겠다고 허장성세를 부리는 인수위원회를 보면서 또 다시 불안감이 밀려옴을 느꼈다"며 5년전 MB정권 출범 때를 회상했다.

그는 이어 "이번 박근혜 당선인의 캠프에서는 그런 불안감이 느껴지지 않아 다행이다. 또한 박 당선인의 발언 중에는 적극적으로 기대를 걸어볼 만한 대목이 있어 보인다"며 "예를 들어 탕평과 대통합을 주요한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것은 나의 기대를 한껏 부풀게 만든다. 내편 네편을 철저히 가르는 패거리정치로 일관했던 MB정부 5년 동안 갈기갈기 찢어졌던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유일한 방책이 탕평과 대화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박 당선인이 내건 복지 공약도 기대를 걸어봄직 하다고 생각한다. 그 약속을 지키는 데 필요한 엄청난 재원을 성공적으로 마련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지만, 만약 성공적으로 그 약속을 지킨다면 우리 사회의 복지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 분명하다"며 "뿐만 아니라 국민의 손톱밑 가시를 빼주겠노라는 박 당선인의 발언에도 기대가 크다. 국민의 아픈 가슴을 쓸어주고 불편한 것을 모두 해소시켜 주겠다는 약속이니만큼 그 약속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더 나아질 테니 말이다. 자신은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원칙을 갖고 있다는 박당선인의 말에 속는 셈 치고 한 번 기대를 걸어보려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내가 새 정부에 대한 기대에 가득 차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일어난 일들을 보면 우려되는 점도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나를 가장 걱정스럽게 만든 것은 인수위 대변인과 헌재소장에 지명된 사람들의 됨됨이"라며 "의문의 여지없이 강경 보수 색채를 지닌 그들을 선택한 것은 박 당선인이 내건 탕평, 대통합과 전혀 걸맞지 않는 일"이라며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과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 내정을 질타했다.

그는 또 "요즈음 언론보도를 보면 대통합 인사의 모범사례로 호남출신 총리 말이 많이 나오고 있다. 나는 이런 말이 호남의 민심을 달래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화나게 만들 것이라고 본다. 호남총리는 과거 대부분의 경상도 출신 대통령이 즐겨 쓰던 케케묵은 수법이 아니던가?"라고 호남총리론을 힐난했다.

그는 박 당선인의 언론정책에 대해서도 "나는 우선 박 당선인이 MBC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주목해 보려고 한다"며 "만약 또 다른 정권의 하수인으로 MBC를 이끌게 만든다면 그것은 언론을 계속 집권세력의 지배하에 놓아두겠다는 의지로 읽힐 수밖에 없다. 그것이 대통합의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은 구태여 말할 필요조차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박근혜 당선인이 아무리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지금 공약한 것을 모두 지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때는 설사 공약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 일어난다 해도 이해해 줄 용의가 있다"며 "그러나 탕평과 대통합의 공약만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모든 권력을 독차지하겠다는 욕심 하나만 버리면 이 공약을 실천에 옮기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라며 탕평과 대통합 공약만은 반드시 지켜줄 것을 주문했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새 정부에 거는 기대, 그리고 우려

솔직히 말해 나는 지난 대선 결과에 대해 크게 실망한 사람 중 하나다. 이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나는 ‘그 나물에 그 밥’인 새누리당 후보에 기대를 걸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 동안 당의 이름이 공화당에서 민정당으로, 거기서 다시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거쳐 새누리당이 되었지만, 이름이 아무리 바뀌어도 내가 보기에 이 당의 본질만은 공화당 그 시절과 아무 다름이 없다. 즉 기득권 세력들이 결집해 변화에 한사코 반대하는 기본 속성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본다는 뜻이다.

누구나 인정하듯, 지난 대선을 보면 공약이란 측면에서 두 후보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약이 더 훌륭하게 보여 2번을 지지했다고 말하는 것은 솔직하지 않은 태도다. 나는 현재 우리 사회에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될 부분이 너무나 많다고 보았으며, 그 일을 과감하게 수행하는 데 누가 더 적합한지의 관점에서 지지 후보를 결정했다.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뀐다고 집권 여당의 체질이 본질적으로 바뀔 리 없으리라는 의구심은 자연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1번은 선택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장 간절하게 바랐던 변화는 경제의 민주화였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힘있는 1%와 힘없는 99% 사이의 간극은 나날이 벌어져 가고 있다. 힘있는 1%를 대변하는 재벌들은 MB정부하에서 엄청난 속도로 몸집을 불려 이제는 정치적 권력으로도 통제하기 어려운 공룡이 되어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나날의 삶이 힘에 겨운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은 이들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에 코너로 몰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친재벌로 시작한 이 정부는 힘이 다 빠져버린 임기 말에 새삼스럽게 ‘상생’을 부르짖어 봤지만 이룬 것 하나도 없이 사회적 갈등만 증폭시켰을 따름이다.

경제민주화라는 것이 대기업의 손발을 묶어 이들을 비효율적인 조직으로 전락시키자는 말이 아니다. 사디스트가 아닌 바에야 대기업 잘 나가는 꼴이 보기 싫어 이들을 망하게 하자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 방면의 전문가가 지적하고 있듯, 재벌 문제와 대기업 문제는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한다.1) 대기업의 효율적 경영 덕분에 우리 경제가 활성화되고 일자리가 늘어난다면 당연히 응원해 주고 도와줘야 한다. 경제민주화, 좀 더 좁게 말해 재벌 개혁이란 것은 대기업의 장점을 죽여 버리자는 뜻이 아니고 재벌들의 파울 플레이를 막는 기본질서를 확립하자는 뜻이다.

일부 재벌들의 파울 플레이는 공평성의 측면과 효율성의 측면 모두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이런 파울 플레이가 나오지 못하는 기본질서를 정착시켜 공평성과 함께 효율성을 높이자는 것이 바로 경제민주화의 목표다. 재벌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때 우리 경제의 효율성이 최고 수준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편법 증여나 일감 몰아주기,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인력 빼오기 같은 불공정한 행위를 뿌리 뽑으면 우리 경제의 효율성이 한층 더 높아질 수 있다. 나아가 시장원칙을 확립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의결권과 이익 청구권 사이의 엄청난 괴리를 해소하는 지배구조 개혁이 필수적 요건이다.

이와 더불어 내가 바랐던 변화는 사회 도처에서 무너져 가고 있는 정의의 기반을 바로 세우는 일이었다. 사회의 소금이어야 할 검찰의 추락은 이제 뉴스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사회 정의를 바로 잡는 기능을 맡아야 할 검찰에 정권의 보위 역할을 맡기니 그런 비참한 추락을 맛볼 수밖에 없다. 가장 정의감에 불타고 가장 능력 있는 사람 위주로 인사를 해야 하는데, 가장 입맛에 맞고 가장 다루기 쉬운 사람 위주로 인사를 하니 기강이 제대로 설 리 없다. 지난 5년 동안 제 편은 두루뭉술한 잣대로 감싸고 남의 편은 먼지까지 털어내는 편파수사를 일삼은 검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정의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또한 측근 인사를 통해 언론을 장악함으로써 사회비판 기능을 마비시켜 버린 것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공영방송의 주인은 국민이지 정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마치 자기네들이 주인인 양 모든 보도를 자기들 입맛대로 통제하기를 일삼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언론자유를 부르짖으며 일어선 양심적인 언론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잔인한 보복이었다. 지금도 해직 언론인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는데 이 문제는 해결될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언론이 본래의 사회비판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주장이 그와 같은 잔인한 보복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이 땅의 정의가 땅에 떨어져 버렸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교육의 측면에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사교육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대학입시를 기형적으로 만들어 버린 탓에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입학지도 교사들마저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입시제도는 돈으로 정보를 살 수 있는 부유층 학부모에게만 유리한 구도를 만들었다. 또한 명확하고 객관적인 기준 없이 자의적으로 운영되는 입학사정관제 역시 스펙 쌓기를 시킬 수 있는 부유층 학부모들로 하여금 결정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복잡하고 기형적일 뿐 아니라 불공정하기까지 한 대입제도를 하루 빨리 뜯어 고쳐야만 한다고 믿었다. 

또한 국제중으로부터 시작해 특목고와 자사고로 이어지는 ‘저들만의 리그’를 개혁하는 일도 대입제도 개혁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라고 보았다. 만약 자사고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 바람직한 것이라면 왜 공립학교에서는 그런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는가? 돈이 없어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공교육에 돈을 더 부어넣으면 되지 않는가? 왜 돈 있는 학부모의 자제는 질 좋은 교육을 받고 돈 없는 학부모의 자제는 질 나쁜 교육에 만족해야 하는지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교육은 미래를 위한 투자일진데, 이런 투자에 돈을 좀 더 많이 쓴다고 해서 낭비라고 말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만약 공교육은 틀에 얽매어 있기 때문에 창의적인 교육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 공교육의 족쇄를 풀어버리면 될 것 아닌가? 그 족쇄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정부인데 그것 탓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진보적인 교육감들이 육성하려 하는 혁신학교를 정부가 한사코 막으려고 나서는 이유가 무언지도 나는 잘 모른다. 고루한 틀에서 벗어나려는 취지는 자사고나 혁신학교나 똑같을 텐데 왜 하나는 적극 육성의 대상이 되고 하나는 훼방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저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싶어 하는 일부 계층에 영합하려는 의도 말고는 달리 생각나는 이유가 없다.

나는 이런 개혁 과제들을 누가 더 과감하게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 판단해 지지 후보를 선택했다. 그러나 이제 선거는 모두 끝났고 이제는 새로이 대통령으로 뽑힌 사람에게 희망을 걸어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비록 어떤 것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이 나와 똑같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올바른 방향으로는 나가주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아니, 방법론상으로는 내 생각과 판이하게 다르다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든다면 나는 흔쾌히 박수를 보낼 용의가 있다.

내가 지지하지 않았던 후보가 대통령으로 뽑히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 5년 전만큼 불안하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때는 한반도대운하니 747이니 하는 허황된 공약이 나를 몹시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것들을 지키려 든다면 우리 사회와 경제에 엄청나게 큰 혼란이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다. 또한 마치 점령군이나 되듯 모든 것을 뜯어고치겠다고 허장성세를 부리는 인수위원회를 보면서 또 다시 불안감이 밀려옴을 느꼈다. ‘어륀지 파동’이 상징하고 있듯, 고쳐야 할 것 고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지 않고 설익은 개혁을 하겠다고 덤비는 태도가 너무나도 불안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들이 자신의 지도이념으로 내걸고 있는 어설픈 신자유주의가 나를 몹시 불안하게 만들었다. 부자를 더 부유하게 만들어줌으로서 서민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게 만들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적 실험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입증된 사실이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아일랜드에서 행해진 실험은 재정적자나 양극화 심화 같은 부작용만 남겼을 뿐 기대했던 효과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판명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신자유주의 이념의 노예가 된 그들은 당당하게 ‘부자감세’를 경제 살리기의 결정적 카드로 들고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가 점차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그렇게 노골적으로 부자 편을 든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이번 박근혜 당선인의 캠프에서는 그런 불안감이 느껴지지 않아 다행이다. 또한 박 당선인의 발언 중에는 적극적으로 기대를 걸어볼 만한 대목이 있어 보인다. 예를 들어 탕평과 대통합을 주요한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것은 나의 기대를 한껏 부풀게 만든다. 내편 네편을 철저히 가르는 패거리정치로 일관했던 MB정부 5년 동안 갈기갈기 찢어졌던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유일한 방책이 탕평과 대화합이다. 그 동안 우리 사회의 고질로 자리 잡아 왔고 이번 선거에서도 유감없이 그 위력을 발휘한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안이 바로 탕평과 대통합임도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박 당선인이 내건 복지 공약도 기대를 걸어봄직 하다고 생각한다. 그 약속을 지키는 데 필요한 엄청난 재원을 성공적으로 마련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지만, 만약 성공적으로 그 약속을 지킨다면 우리 사회의 복지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 손톱밑 가시를 빼주겠노라는 박 당선인의 발언에도 기대가 크다. 국민의 아픈 가슴을 쓸어주고 불편한 것을 모두 해소시켜 주겠다는 약속이니만큼 그 약속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더 나아질 테니 말이다. 자신은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원칙을 갖고 있다는 박당선인의 말에 속는 셈 치고 한 번 기대를 걸어보려 한다.

그러나 박근혜 당선인이 막상 정권을 잡았을 때 이 모든 약속을 충실히 이행할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일이다. 모든 대통령이 자기가 한 약속을 충실히 지켰다면 지금쯤 우리나라는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어야 마땅한 일이다. 그렇지만 일단은 그 약속을 믿기로 하고 지켜봐 주는 것이 국민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대통령 선거 이전에 갖고 있던 생각은 모두 털어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새 정부의 행보를 주시해 보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새 정부에 대한 기대에 가득 차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일어난 일들을 보면 우려되는 점도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나를 가장 걱정스럽게 만든 것은 인수위 대변인과 헌재소장에 지명된 사람들의 됨됨이다. 의문의 여지없이 강경 보수 색채를 지닌 그들을 선택한 것은 박 당선인이 내건 탕평, 대통합과 전혀 걸맞지 않는 일이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주는 이미지는 화합이 아니라 대결이다. 특히 헌재소장처럼 우리 사회의 기본질서에 대해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기관의 수장을 그렇게 뚜렷한 이념적 성향의 사람으로 앉힌다는 것은 사회통합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으로 읽힌다.

요즈음 언론보도를 보면 대통합 인사의 모범사례로 호남출신 총리 말이 많이 나오고 있다. 나는 이런 말이 호남의 민심을 달래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화나게 만들 것이라고 본다. 호남총리는 과거 대부분의 경상도 출신 대통령이 즐겨 쓰던 케케묵은 수법이 아니던가? 그렇다고 해서 호남인들이 고맙다고 감격의 눈물이라도 흘린 적이 한 번이라도 있나 묻고 싶다. 한 마리의 제비가 봄을 만들어 주지 못하듯, 한 사람의 호남총리가 대통합을 구현할 수 없다. 총리로 뽑힌 그 개인은 가문의 영광일지 몰라도 호남인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탕평과 대통합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그것은 지난 선거에서 2번에게 표를 던진 48%의 유권자의 뜻을 받들어 모신다는 것이 되어야 한다. 선거 그 자체는 단 한 표라도 더 많은 사람이 독식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나 대의민주제하에서 그와 같은 방식으로 뽑혔다 하더라도 일단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자기를 지지하지 않은 소수파의 의견도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박 당선인이 바로 이런 의미에서 탕평과 대통합을 부르짖었다면 그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 될 수 있다. 단지 호남출신의 인사를 총리자리에 앉히는 것이 아니라, 호남인이 갈구하던 바, 즉 사회의 변화를 바라던 그 희망을 정치에 반영하는 것이 진정한 탕평이자 대통합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정권들은 힘없는 총리 자리에 타지 출신을 앉히고 권력의 핵심은 모두 자기 지역 출신으로 채우는 전법을 즐겨 써왔다. 박근혜 후보가 진심에서 탕평과 대통합을 부르짖고 있는지의 여부는 이와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지의 여부에 의해 결정적으로 판가름 날 것이다. 우리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다. 나는 우선 박 당선인이 MBC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주목해 보려고 한다. 만약 또 다른 정권의 하수인으로 MBC를 이끌게 만든다면 그것은 언론을 계속 집권세력의 지배하에 놓아두겠다는 의지로 읽힐 수밖에 없다. 그것이 대통합의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은 구태여 말할 필요조차 없다.

헌재소장 자리가 권력의 핵심 중 핵심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상당히 중요한 자리인 것은 사실이고, 따라서 어떤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려 하는지롤 보고 앞날을 어느 정도 점쳐 볼 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헌재소장으로 선택된 사람을 보고 든 느낌은 솔직히 말해 “약간 불안하다”는 것이다. MB정부에서는 출범 초기의 고소영, 강부자의 악령이 임기 내내 그 정권의 주위를 맴돌았다. 새 정부는 그런 불행한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앞으로 줄지어 발표될 새 정부 중요 인사들의 면면 역시 헌재소장의 경우와 그리 다르지 않다면 우리의 기대는 곧바로 실망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아무리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지금 공약한 것을 모두 지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때는 설사 공약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 일어난다 해도 이해해 줄 용의가 있다. 예컨대 복지공약 같은 것은 현실적 여건상 100% 충실하게 지켜지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무리해서 공약을 지키려 하느니보다 오히려 국민의 양해를 구하고 포기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탕평과 대통합의 공약만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모든 권력을 독차지하겠다는 욕심 하나만 버리면 이 공약을 실천에 옮기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동안 진심으로 존경할 만한 대통령을 갖는 행운과는 인연이 멀었다. 진정으로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고, 국민과 함께 웃어주고, 아무런 사심 없이 국정을 운영하는 높은 도덕성의 소유자인 대통령을 우리 생전에 한 번은 봐야만 하는 게 아닌가. 우리 국민은 박근혜 당선인에게 그런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그 단 한 번의 기회를 과연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순전히 그의 선택과 결단에 달려 있다.

박태견 기자 

2012년 12월 28일 금요일

[사설] 감동도 탕평도 없는 ‘캠프 인사’로는 곤란하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2-27일자 사설 '[사설] 감동도 탕평도 없는 ‘캠프 인사’로는 곤란하다'를 퍼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어제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비롯해 인수위 핵심 인사들을 인선했다. 인수위원장엔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낸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 부위원장에 진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이 임명됐다. 인수위 내의 국민대통합위원장에는 한광옥 전 선대위 국민대통합위 수석부위원장, 국민대통합위 수석부위원장에는 김경재 전 민주당 의원 등이 발탁됐다.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인선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 감동도 없고 탕평도 없는 인사다. 당 선대위 인사들을 그대로 가져다 쓴 ‘그 나물에 그 밥’ 인사다. 박 당선인이 윤창중 수석대변인 인사에 이어 이번 인사에서도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 같아 걱정스럽다. 정권 초기에 당선인이 하는 일의 태반이 요직 인선인데,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인수위원장에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한 것은 사실상 인수위를 박 당선인의 친정체제로 이끌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김 인수위원장은 무난한 인물이지만 자기 색채를 가지고 일을 추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여태껏 당에서 그랬듯 인수위에서도 박 당선인 측근 몇몇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반복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인수위 안에 국민대통합위와 청년위를 두어 두 가지 과제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는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구체적인 인선을 보면 국민통합과는 거리가 멀다. 국민대통합위 부위원장에 김경재 전 의원이나 김중태 전 서울대 민족주의비교연구회장 등 ‘막말 인사’들이 포함된 것은 심각하다. 김경재 부위원장은 선거 때 “광주 사람들이 문재인, 안철수를 뽑는 건 정의에 대한 배반이다”는 등의 지역감정 조장 발언을 일삼았고, 김중태 부위원장은 “문재인 후보가 낙선하면 부엉이 귀신 따라 저세상에 갈까 걱정”이라는 등 상식 이하의 발언을 한 장본인들이다.국민통합을 하려면 무엇보다 반대자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막말 파문이나 일으킨 함량 미달 인사들을 데려다 놓고 어떻게 국민통합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국민통합이 무슨 선거 논공행상 하는 자리는 아닐 것이다. 국민통합을 추진할 인사들이야말로 시간을 두고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널리 찾아야 했다.박 당선인이 대선 공약을 담당했던 진영 정책위의장을 인수위 부위원장에 임명하고 인수위 규모도 줄이는 등 실무형 인수위를 구성하려 한 것은 의미가 있다. 과거 인수위가 의제 설정에 너무 나선 탓에 논란을 자초한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인수위는 무슨 일을 새로 시작한다고 설칠 것이 아니라 그간 제기되고 약속한 국정과제들을 차분히 정리하는 데 집중하기 바란다.정권 초기 인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향후 5년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 불통과 독선, 아집으로 하는 인사는 언젠가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이런 점에서 박 당선인의 두 차례 인사는 매우 걱정스럽다. 진정 성공한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이제라도 국민 눈높이에 맞추어 인사의 방향과 원칙을 재점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