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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22일 월요일

"MB에게 4대강사업은 하나님 위"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3-04-22일자 기사 '"MB에게 4대강사업은 하나님 위"'를 퍼왔습니다.

MB "4대강 보에 크레인 달면 4대강은 대운하 된다"


(조선일보)가 22일 뒤늦게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사업이 대운하를 염두에 둔 사업이었음을 폭로하며 4대강사업을 질타하고 나섰다. 4대강사업에 비판적인 박근혜 정부 출범후 (조선일보)의 4대강사업 논조가 180도 바뀐 양상이다.

환경 분야를 10년째 담당하고 있다는 박모 (조선일보) 기자는 22일 4대강사업 관련 기사를 통해 환경단체뿐 아니라 기독교·천주교·불교 등 종교계내 일부 단체들까지 나서 4대강 사업 반대 운동의 수위를 높여가던 2010년 봄때 취재 경험을 공개했다.

박 기자에 따르면,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MB는 이런 사태를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 MB 측근 인사에게 “종교계 반발이 곤혹스럽겠다. MB 심경이 좀 바뀔 여지가 있을까?” 물었더니, 예상과 달리 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천만에! 어림도 없다. MB에게 4대강 사업은 하나님 위에 있거든!”

박 기자는 "당시 MB 측근들 사이에선 ‘하나님 위에 4대강’이란 말이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었다더군요. 이런 신성(神聖) 모독적 발언이 왜 돌았는지는 더 묻지 않았습니다. 3년 넘게 주일예배 주차 안내 봉사를 하고 장로가 된 MB가 그런 말을 했을리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지요"라며 "그러나 MB가 ‘4대강 사업은 불가침’이란 메시지로 측근들을 압도한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MB 정부 5년간 4대강 사업을 취재하면서 풀리지 않던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4대강 사업은 대운하의 전(前) 단계인가, 아닌가’라는 것"이라며 "그러나 올 1월 4일 MB는 4대강 사업을 추진한 인사들을 청와대로 불러 식사를 같이 한 자리에서 ‘속마음’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박 기자에 따르면, MB는 “4대강에 설치된 보 바깥 쪽(하천변)으로 (선박이 머물 수 있는) 계류장을 설치하고 (배를 들었다 내렸다하는) 크레인을 달면 4대강은 대운하가 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때는 아니더라도) 4대강 사업은 (박근혜 정부) 그 다음 정부 때는 (대운하로) 마무리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 기자는 "이 말을 들으니 묵은 의문이 풀리는 시원함과 허탈감, 뭔지 모를 배신감이 들었다"며 "대운하 반대 여론에 밀려 ‘준설 2m 이하, 1~2m 높이의 소형 보 4개’라던 당초 계획(2008년 12월 총리실 발표)을 불과 6개월 후 ‘수심 6m에 10m 안팎의 대형 보 16개’(2009년 6월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로 돌변시켰던 과거 MB 정부의 ‘속내’가 그제서야 훤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라며 MB에 대한 배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철저한 4대강사업 조사 방침을 밝히고 있는 것을 거론한 뒤, "과연 4대강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어느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지 가늠하기 매우 어렵다"며 "다만 어느 쪽으로 귀결되든 각각 조(兆) 단위의 비용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단언했다.

기사를 접한 MB정권때 일관되게 4대강사업에 반대해온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블로그를 통해 보도내용을 요약한 뒤, "이제 주위 사람들이 왜 그 말도 안 되는 4대강사업을 하려드는 MB를 말리지 못했는지가 거의 분명해진 셈"이라며 "그 기사를 쓴 기자는 이 발언을 전해 듣고 묵은 의문이 풀리는 시원함과 허탈감, 뭔지 모를 배신감이 들었다고 하더군요"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4대강사업의 속내가 무엇이었는지도 얼마 있지 않아 낱낱이 밝혀지리라고 믿습니다. 이 태양 아래 영원한 비밀이라는 건 없는 법이니까요"라며 "늘 말하지만 보수언론이 이제 와서야 4대강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서는 게 정말로 아쉬운 일입니다. 그때 우리에게 힘을 보태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지적했다면 그 불행한 사업을 미리 막을 수 있었을 텐데요"라고 유감을 나타냈다.

심언기 기자

2012년 12월 30일 일요일

산 넙치 잡아먹는 제돌이, 고향 서울대공원 돌아온 크레인


이글은 한겨레신문 환경전문 조홍섭 기자 블로그 물바람숲 2012-12-28일자 기사 '산 넙치 잡아먹는 제돌이, 고향 서울대공원 돌아온 크레인'을 퍼옸습니다.

2012년, 토요판이 만난 동물'크레인' 소식 알려지자 입양처 찾아주자는 인터넷 서명운동, 서울대공원 화답
제돌이 방사 논란 계기로 '동물 복지' 개념 어엿한 의제로 자리 잡아

» 강원 원주 치악산드림랜드에서 호랑이 크레인이 서울대공원으로 이송작업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동물자유연대

지난 18일 치악산드림랜드의 호랑이 ‘크레인’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깨어 보니 서울대공원 동물원이었다. 8년 만에 호랑이 크레인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11월24일 토요판은 강원도 원주시의 열악한 치악산드림랜드 동물원의 이야기를 전했다. 경영난 탓에 한때 식수 급여가 중단되고 먹이도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등 동물원은 사육사 한 명의 헌신으로 근근이 유지되고 있었다.

헛날갯짓을 하는 독수리, 바싹 마른 유럽불곰 등 동물들은 고통스러워 보였다. 2000년 말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에서 근친교배로 태어나 입이 삐죽 튀어나온 ‘못난이’ 호랑이 크레인도 그중 하나였다. 시베리아호랑이라고 하지만 근친교배로 뒤얽혀 종보전 가치도 없는 비운의 호랑이. 그래도 새끼 적에는 장난꾸러기 맹수로 텔레비전에 출연했으나, 몸집이 커지자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2004년엔 치악산드림랜드로 옮겨졌다. 

보도로 크레인 소식이 알려진 뒤,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와 동물을 위한 행동은 크레인의 입양처를 수소문했고 인터넷에서는 1만명 넘는 서명이 이어졌다. 서울대공원이 크레인을 받겠다며 화답했다. 치악산드림랜드는 크레인과 유럽불곰을 무상양도하기로 결정했다.

18일 치악산드림랜드에 서울대공원에서 찾아온 수의사들이 도착했다. 저울에 달아 본 크레인의 몸무게는 109㎏에 지나지 않았다. 보통 수컷 호랑이가 170~200㎏ 나가니, 매우 왜소한 몸집이었다. 크레인의 ‘고향 이송 작업’에 동행한 전경옥 ‘동물을 위한 행동’ 대표가 말했다. 

마취제를 세 번 놓자 크레인은 아침에 먹은 생닭을 토하고 겨우 잠이 들었어요. 수의사들이 검진을 시작했죠. 다행히 목 부위에 곰팡이성 피부병이 있는 것 말고는 큰 병은 없는 듯했어요.” 
» 마취제 주사 3방을 맞고 쓰러진 호랑이 크레인. 아침에 먹은 생닭을 토하는 등 불편해했다고 한다. 동물원 근친교배로 인해 어렸을 적부터 백내장을 앓았고 뻐드렁니가 나는 등 치아기형이 있다. 사진=동물자유연대

이날 오후 5시께 크레인은 서울대공원에 도착했다. 호랑이 22마리가 사는 맹수사 내실의 한 독방을 배정받았다. 좁은 면적의 콘크리트 바닥. 내년에는 맹수사의 리모델링 공사가 예정돼 있어서, 일반인이 크레인을 만나보긴 힘들 것 같다.

서울대공원으로 돌아간 크레인은 수의사의 관리를 받으면서 점차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곰팡이성 피부염도 낫기 시작했다. 다만 좁은 우리와 바뀐 환경 때문에 일정 지점을 왔다갔다 하는 정형행동을 보인다고 동물단체 관계자들은 덧붙였다.

이기순 동물자유연대 정책기획국장은 “최선의 환경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영양 관리와 수의학적 처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차선의 선택을 했다. 유럽불곰 두 마리에 대해서도 시립동물원 등 입양처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 호랑이 크레인이 8년 동안 살았던 원주 치악산드림랜드를 빠져나오고 있다. 사진=동물자유연대

2012년은 우리 사회가 동물복지에 대해 주목하게 된 첫해로 기록된다. 그간 국내에서 동물보호 담론은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 중심이었다. 하지만 구제역 사태와 생매장 처분을 계기로 소, 돼지 등 농장동물로 확대됐고, 제돌이와 크레인 등 동물원의 전시동물로도 논의가 이어졌다. 가장 큰 변화의 계기는 ‘제돌이’였다.
토요판은 3월3일 1면 커버스토리로 제주 앞바다에서 불법포획돼 서울대공원과 퍼시픽랜드(제주 서귀포)에서 공연을 벌이는 제돌이 등 남방큰돌고래에 대해 보도했다. 다소 생소하고 급진적으로 보였던 이 기사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불법포획된 돌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는 게 맞는가’라는 법리적 논쟁에서부터 ‘돌고래 쇼는 윤리적인가’라는 철학적 논쟁까지 벌어졌다. 전경옥 대표는 “동물원·수족관에 사는 전시동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새삼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변화는 서울시에서 시작됐다. 서울시는 보도 9일 만인 3월12일 제돌이에게 야생적응 교육을 시킨 뒤 내년 여름께 제주 앞바다로 돌려보내겠다고 밝혔다. 국내 최초의 돌고래 야생방사, 세계적으로는 최초의 정부 주도 야생방사였다.

제주지방법원도 4월4일 퍼시픽랜드에서 공연중인 돌고래 5마리(1마리는 재판 과정에서 폐사)에 대해 몰수형을 선고했고, 12월13일 고등법원도 같은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퍼시픽랜드는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함으로써, 4마리의 자유는 판결 때까지 늦춰지게 됐다.

» 9월5일 서울대공원의 제돌이가 산 생선을 잡아먹고 있다. 산 생선을 잡아먹는 기술을 따로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제돌이는 야생의 습성을 회복해 어렵지 않게 헤엄치는 물고기를 잡았다. 사진=서울대공원

제돌이는 야생방사에 앞서 서울대공원에서 산 생선을 잡아먹는 ‘사전 적응훈련’에 돌입했다. 산 넙치를 수족관에 풀어주자 바로 잡아먹는 등 야생적응이 힘들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산 생선을 잡아먹는 능력은 야생의 바다에 나가 생존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반면 불법포획돼 퍼시픽랜드에서 쇼를 벌이고 있는 돌고래들이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법원이 몰수형 판결을 뒤집지 않을 것이 확실시되지만, 돌고래 4마리(복순, 춘삼, 태산, D-38)를 받아 바다에 내보낼 기관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대안은 내년 4월 제주 앞바다에 설치될 제돌이의 야생 적응훈련장에 합류시켜 함께 방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퍼시픽랜드가 대법원에 상고해 ‘시간벌기’에 나섬으로써 시일이 촉박해졌다. 고래생태체험관을 운영하는 울산 남구는 이들을 데려가겠다고 제주지법과 국토해양부 등에 밝혔지만, ‘야생방사는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건 것으로 전해졌다.

» 산 생선을 잡아먹는 기술은 돌고래 야생방사에서 가장 중요하다. 제돌이는 어렵지 않게 해냈다. 현재 일주일에 두 번씩 산 생선을 공급한다고 서울대공원은 밝혔다. 사진=서울대공원

국토해양부는 야생방사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예산 부족을 이유로 주저하고 있다. 최명범 국토해양부 해양생태과장은 24일 “야생방사 전에 민간에 임시관리를 맡기더라도 예산이 편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고 약속을 할 수가 없다. 야생방사가 최선인지 생태체험(전시)이 최선인지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국토해양부는 다음달 안에 관련 지방자치단체와 연구기관을 불러모아 이 문제를 논의한다.

한편 동물자유연대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장하나 의원(민주통합당)은 이달 초 제주지법에 4마리 돌고래에 대한 ‘공연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들은 “지난 4월 제주지법 판결 이후 8개월이 넘도록 퍼시픽랜드는 몰수형이 내려진 돌고래들로 공연을 벌이는 등 부당이득을 취해왔다. 국토해양부가 관리하는 ‘서식지 외 보전기관’이나 제돌이 야생적응장에 합류시켜 야생 방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제돌이 논란을 계기로 생소한 개념이던 ‘동물복지’가 우리 사회의 어엿한 의제로 자리잡았다. 정부가 7월4일 국제포경위원회(IWC)에서 과학포경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하자 심한 반대여론에 부닥쳐 결국 포경 재개가 백지화된 일도 제돌이가 아니었다면 없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의 생명권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확산되고 있다. 순창 소 아사사건, 악마 에쿠스 사건 등 잇따른 동물학대 사건에 대해서도 인터넷을 중심으로 뜨거운 논란이 이어졌다.

서울시는 지난 10월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동물보호과’를 만들었다. 12월19일 치러진 제18대 대통령선거에는 처음으로 야당 후보의 공약집에 동물복지가 담겼다. 박근혜 당선인 또한 청와대에 유기동물을 입양하겠다고 밝혔다.

남종영 기자 fandg@

» 경기도 고양시 테마동물원 쥬쥬의 오랑우탄 우탄이. 사진=강재훈 선임기자

품종: 오랑우탄이름: 우탄성별: 남사망일시: 2012년 6월8일사망장소: 동물원 사육실임상진단명: 악성 림프육종사망의 원인: 종양 비대에 따른 호흡곤란에 의한 심장마비주요 소견: 악성 림프육종종대에 의한 기관지 압착 및 전신 장기 전이
  티브이 스타였던 우탄이(20살 추정·수컷)가 남긴 것은 이 검안서 한 장이었다. 먹성 좋던 우탄이는 숨지기 1~2주일 전부터 음식을 남기고 움직임이 둔해졌다. 우탄이가 살던 경기도 고양시의 주주동물원 쪽도 우탄이 진료를 고민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우탄이가 죽었다. 지난 6월8일 아침 우탄이는 자신의 방에서 폐사한 채로 발견됐다. 별다른 외상 없이 깨끗한 사체는 해양동물들의 먹이를 보관하는 영하 19도의 냉동실에 보관돼 있다가 저녁에 부검을 받았다.

그 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우탄이 사체는 냉동실에 그대로 있다. 동물원 쪽은 국제적 멸종위기종이자 국내 자원이 적은 오랑우탄 우탄이를 박제해 전시할 계획이다.

동물원은 우탄이의 빈자리를 새로운 오랑우탄으로 채웠다. 4년 전 부산에서 부도난 동물원 ‘더 파크’에서 데리고 있던 복돌이(10살 추정·수컷)를 6000만원을 주고 구입해 지난 10월께 주주동물원으로 데려왔다. 동물원 쪽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따라 합법적으로 한국으로 들여온 복돌이에 대한 양도신고를 낙동강유역환경청에 마쳤다고 밝혔다.

복돌이는 우탄이의 과거다. 우탄이가 살던 쇠창살 쳐진 초록색 우리가 현재 복돌이의 집이다. 우탄이가 그랬듯, 동물원에 사는 암컷 오랑우탄 오랑이(9살)와의 합방이 기다리고 있다. 동물원에서는 곰 사육장 한쪽을 빌려 복돌이와 오랑이의 신방을 차려준다는 계획이다.

부산에서 잘 먹지 못하고 갇혀 지내기만 한 복돌이는 다리와 팔에 근육이 다 빠진 상태이다. 지금 몸을 만드느라 관람객들을 만나지 못한다. 겨울이 가고 날씨가 푸근해지면 복돌이는 우탄이처럼 우리 안 철창 너머로 관람객을 맞을 것이다.

우탄이와 쇼 동물들의 고단한 밥벌이에 대한 기사( 토요판 5월5일치)가 나간 뒤 제보가 이어졌다. 전직 동물원 사육사였다고 밝힌 이는 우탄이가 사람보다 힘이 세지자 우탄이의 손가락 가운데 인대를 잘라 손을 꽉 쥐지 못하게 한 적이 있다고 알려왔다. 동물원 쪽은 그런 적이 결코 없었다고 부인했다. 단, 철문을 두번 덧씌웠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힘이 센 우탄이가 볼트를 돌려 풀어버리기 때문에 겹겹이 문을 세워 사람과 격리한 것이다.

어떤 이유인지 단정할 수 없지만, 학문적으로 40살까지 사는 오랑우탄의 자연수명이 티브이동물쇼 스타이자 동물원의 자랑이었던 우탄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쇼를 선보이다 맹수의 길을 선택한 우탄이가 하늘나라에서는 오래오래 살기를. 우탄아, 안녕.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2012년 12월 2일 일요일

누가 이 버림받은 맹수를 모르시나요


이글은 한겨레신문 환경전문 조홍섭기자 블로그 물바람숲 2012-11-25일자 기사 '누가 이 버림받은 맹수를 모르시나요'를 퍼왔습니다.

전기료·먹잇값도 없는 치악산 드림랜드의 ‘호랑이 크레인’, 민영동물원의 실태 단적으로 보여줘
"부도 직전 동물원, 관람객은 거의 없다, 불곰은 무언가를 토했다, 독수리는 땅에 떨어졌다"

» H5s12일 강원 원주시 치악산 드림랜드 동물원에서 본 호랑이 크레인의 모습. 2001년 서울대공원에서 근친교배로 엄마 ‘선아’에게 태어난 크레인은 태어날 때부터 녹내장과 안면기형을 갖고 있었다.

지난 12일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치악산 드림랜드. 새벽녘 뿌린 비에 단풍잎이 떨어져 동물원을 빨갛게 물들였다. 멀리서 맹수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 호랑이 크레인이 혼자 앉아 있었다. 비 때문에 호랑이 우리에는 작은 물골이 생겼다. 다큐멘터리를 찍는 황윤 감독과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 그리고 전경옥 ‘동물을 위한 행동’ 대표가 우리로 다가갔다. 어금니가 입 밖으로 길게 자란 기형적인 얼굴. 크레인이 맞았다. 황윤 감독이 정적을 깨뜨렸다.
“크레인!” “푸우~” “크레인!” “푸우~”

» H5s12일 강원 원주시 치악산 드림랜드 동물원에서 본 호랑이 크레인의 모습. 2001년 서울대공원에서 근친교배로 엄마 ‘선아’에게 태어난 크레인은 태어날 때부터 녹내장과 안면기형을 갖고 있었다.

고양이처럼 크레인은 가르랑대며 얼굴을 철창에 비벼댔다. 고양이과 동물이 애정을 표시하는 행동이다. 이상하게도 황윤 감독이 ‘크레인’ 하고 부를 때마다 크레인은 목을 접고 몸을 비볐다. 크레인이 그를 기억한 걸까?
황윤 감독은 2000년 말부터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맹수사에서 갓 태어난 크레인과 넉 달을 함께 지냈다. 동물원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을 찍으면서다. 근친교배로 태어난 크레인은 선천적으로 백내장과 안면기형을 갖고 있었다. 엄마 ‘선아’는 크레인을 돌보지 않았다. 황 감독이 말했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인간의 관행인지 몰라요. 대부분 동물원에서 맹수 새끼는 사육사에게 길러지니까요.”
호랑이 크레인은 태어나면서부터 목줄을 찼다. 영락없는 고양이 같았다. 동물원 사람들은 “이렇게 해야 나중에 커서도 편안해진다. 새끼 때부터 사람 손에 익숙해져야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말했다. 인공포육의 또다른 이유는 호랑이·사자 새끼는 동물원을 홍보하는 데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 2001년 서울대공원에서 갓 태어난 크레인의 모습. 사진=황윤 감독

2001년만 해도 크레인은 텔레비전 동물 프로그램의 ‘아이돌’이었다. 병약하고 겁 많았지만 브라운관에서는 용감한 새끼호랑이로 탈바꿈되어 나타났다. 크레인의 몸집이 불어나자 방송사 카메라는 지체 없이 동물원을 떠났다. 엄마 선아는 그해 병들어 죽었다. 황 감독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크레인은 그 잠깐을 위해 태어났지요… 그 이후엔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였는데, 여기서도 구경하는 사람이 없네.”
크레인이 서울대공원에서 치악산 드림랜드로 온 것은 2004년이었다. 치악산 드림랜드는 1996년 치악산 아래 27만㎡의 강원도 땅을 빌려 동물원과 놀이기구를 갖춘 테마파크로 문을 열었다. 1990년대만 해도 관람객으로 북적였지만, 2000년대 들어선 시설이 낙후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었다. 크레인이 오자마자 드림랜드는 경영난을 겪었다. 2007년에는 전기료조차 내지 못해 단전 조처가 내려졌다. 동물들은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 마실 물도 공급받지 못했다.
모기업인 주식회사 드림랜드는 동물원을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30여종 200여마리를 관리하는 사육사는 단 한 명. 재정이 열악해지면서 동물보호단체로부터 먹이를 공급받는 처지에 놓였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동물들을 살리기 위해 먹이를 보내주고 있다”고 말했다.

드림랜드 사무실의 한 관계자는 “맹수들에게 주는 한 달 닭값만 50만원, 사슴류에게 주는 건초값만 100만원인데 이마저도 감당하기 힘들다. 직원들도 서너 달 월급을 못 받았다”고 말했다. 눈썰매장과 수영장을 닫는 봄, 가을에는 입장료 수입이 300만원밖에 안 된다. 그가 말했다.
“체납 세금만 수십억원이어서 인수할 만한 기업도 없어요. 2015년까지는 이 상태 그대로 갈 거예요. 동물보호단체 지원을 받아 먹이 주면서 끌고 가는 거죠.”

» 치악산 드림랜드 동물원의 유럽불곰. 비정상적으로 몸이 말랐다.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동물원의 관람객은 일행을 제외하곤 없었다. 인기척을 느낀 동물들은 사람을 보자 가까이 다가왔다. 당나귀는 입을 내밀고 꼼지락거리고, 일본원숭이는 분홍빛 손을 내밀었다. 유럽불곰 암수 한 쌍은 몹시 말라 있었다. 암컷은 무언가를 토해내고 다시 먹는 행동을 반복했다. 독수리는 날갯짓을 하다 떨어지길 반복했다. 조희경 대표는 “올 때마다 저런 행동을 한다. 영양상태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드림랜드 땅 임차기간은 2015년까지다. 이 땅을 다시 빌려줄 건지, 동물들은 어떻게 처리할 건지 정부는 아직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동물원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선 자기 부서 소관사항이 아니라는 답만 내놓았다.

공유재산을 담당하는 강원도 토지자원과 관계자는 “위락시설이므로 재산관리 부서가 관광정책과”라고 했고, 관광정책과 관계자는 “민간업체이기 때문에 개입할 만한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동물보호법을 관장하는 원주시 축산과 관계자는 “지난봄 점검 때 동물학대는 없었다. 동물원에서 요청하면 소독약을 줄 수 있다”고 했고, 관광개발팀 관계자는 “앞으로 시설을 어떻게 할지 결정된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다른 부서에 떠넘기기를 해도 될 정도로 동물원 관련 법·제도는 없거나 흩어져 있다. 야생동물은 환경부, 농장·반려동물은 농림수산식품부가 주무부처지만, ‘동물원 동물’을 자기 일로 생각하는 부처는 없다. 환경을 배우는 산 교육장이라고 불리는 곳이 정작 환경보호의 가장 큰 사각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지자체가 운영하는 동물원은 최소한의 관리를 받지만, 민영 동물원은 드림랜드처럼 최소한의 관리 수준에서마저 이탈하곤 한다.

그래서 국내외 동물보호단체는 민간업체의 동물원 설립과 운영을 최대한 제한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국내의 민영 동물원은 테마동물원 쥬쥬(경기도 고양), 에버랜드(경기도 용인), 드림랜드(강원도 원주)와 최근 부산시와 협약을 맺고 건설을 추진중인 더 파크 등 네 곳이다. 동물 생태체험장, 이동동물원을 합치면 수십 곳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 크레인이 사는 민영동물원을 촬영하는 황윤 감독.

드림랜드의 동물들은 잉여적 존재들이다. 근친교배로 태어나 유전자 다양성이 결여된 크레인은 종 보전 가치조차 없다. 동물원에서 그런 생명들이 무수히 만들어진다. 조 대표는 “드림랜드가 2015년 사업을 접으면 그 뒤 동물들은 어떻게 하나?”며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크레인은 이날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오랜만에 사람들이 와서 머물러줬기 때문이었을까. 어금니를 드러내고 크레인은 사람들을 바라봤다. 황윤 감독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우두커니 바라봤다. 

원주/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드림랜드의 동물들은 잉여적 존재들이다. 근친교배로 태어나 유전자 다양성이 결여된 크레인은 종 보전 가치조차 없다. 동물원에서 그런 생명들이 무수히 만들어진다. 조 대표는 “드림랜드가 2015년 사업을 접으면 그 뒤 동물들은 어떻게 하나?”며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크레인은 이날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오랜만에 사람들이 와서 머물러줬기 때문이었을까. 어금니를 드러내고 크레인은 사람들을 바라봤다. 황윤 감독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우두커니 바라봤다. 

원주/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크레인의 엄마 ‘선아’가 사육사 안에 누워 있다. 사진=황윤 감독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이 지정한 국제적 멸종위기종 252마리를 포함해 약 1200마리의 동물들이 사는 경기 고양의 체험동물원 쥬쥬는 ‘동물원’일까?
적어도 법적으론 동물원이 아니다. 국내에서 동물원 설립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과 자연공원법, 개인 또는 민간기업의 경우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설립 근거가 있다. 즉 개인이 설립한 쥬쥬동물원은 법적으로 ‘박물관’이다.
그러나 동물원에 있는 이들은 오래된 유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야생동물이다. 생명체로서 건강과 질병, 최소한의 복지조건을 충족시킬 제도와 법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동물원 동물에 관해서는 법률이 없고, 중앙·지방정부 모두 담당 부서가 명확하지 않으며, 관리 의무 역시 제도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다.
하나씩 따져보자. 환경부가 관리감독 기관인 야생동식물보호법은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대표적인 법이다. 그러나 이 법에는 자연에 사는 동물들(wild animals)에 관한 조항이 주로 언급돼 있고, 동물원 동물(captive animals)의 경우 수출입 조건과 곰 사육 등 특정 동물에 관한 조항만 있지 관리나 보호에 관한 기준이 없다.
농림수산식품부가 관장하는 동물보호법도 마찬가지다. 이 법이 실제 규정하는 동물은 반려동물·실험동물·농장동물이며, 동물원 동물의 복지를 위한 조항은 전무하다. 쥬쥬동물원과 서울시 신당역 동물체험관의 동물 복지와 환경을 정기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 셈이다. 강원 원주시 치악산 드림랜드에 남은 동물들도 그 어떤 후속 조처도 없이 방치돼 있다. 동물원을 관리하고 점검하는 책임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가 자체인증제도에 따라 전문가로 구성된 12명의 인증위원회를 구성해 동물원을 방문한 뒤 동물 관리와 건강 관리 프로그램 등을 검사해 인증 여부를 결정한다. 국내의 한국동물원수족관협회에 등록된 동물원은 19개이다. 지자체 동물원의 경우 이 협회에서 만든 서울특별시 동물원 관리규칙을 모태로 동물원 자체 실정에 맞게 관리 기준을 조정해 운영하고 있지만, 동물원 동물의 복지에 관련한 규정이 미비한 형편이다.

물론 미국과 호주의 동물원수족관협회의 자체인증제도는 매우 권위 있는 제도로 알려졌지만, 법적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비판 또한 없지 않다. 따라서 동물원 관련 법률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동물원 동물을 동물복지법 안에서 보호동물로 규정하고 있으며, 영국의 경우 동물원면허법(Zoo Licensing Act)이 1981년 별도로 제정됐다. 이 면허법에 따라 야생동물을 전시 목적으로 12개월 내 7일 이상을 대중에게 보여주려면 동물원 면허를 따야 한다. 관리 기준이 동물복지에 부적합하거나 동물을 부적절하게 취급할 경우 면허는 발급되지 않는다.
부산에서도 민영 동물원인 ‘더 파크’가 만들어지고 있다. 부산시의회는 10월 부산시가 제출한 ‘동물원 사업 정상화를 위한 협약 동의안’을 심의 의결했다. 협약은 사업자가 준공시점에서 3년 이내 동물원 매수를 시에 요청하면 500억원 범위 내에서 시가 매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재정이 악화되어 운영이 어려우면 시가 매입해준다는 내용이니 애초부터 특혜논란이 있었다.

심의 과정에서도 시공사의 규모를 들어 동물원의 적자 운영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가 제기돼왔다.  최근에는 사업비 조달의 어려움으로 경매설까지 나돌고 있다.
이윤을 목적으로 동물원을 운영하면 동물복지의 길은 요원하다. 체험관과 동물쇼 등 상업적 상품이 유행하게 되고, 반대로 부도가 나서 방치된다면 ‘제2의 드림랜드 사태’도 일어날 수 있다. 동물복지를 지향하는 동물원 가이드라인과 법률 등 국가의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전경옥/ 동물을 위한 행동 대표

남종영 한겨레신문 기자2001년부터 한겨레신문사에서 일하고 있다. 《한겨레》와 《한겨레21》에서 환경 기사를 주로 썼고, 북극과 적도, 남극을 오가며 기후변화 문제를 취재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지구 종단 환경 에세이인 『북극곰은 걷고 싶다』를 지었고 『탄소다이어트-30일 만에 탄소를 2톤 줄이는 24가지 방법』을 번역했다. 북극곰과 고래 등 동물에 관심이 많고 여행도 좋아한다. 여행책 『어디에도 없는 그곳 노웨어』와 『Esc 일상 탈출을 위한 이색 제안』을 함께 냈다.
이메일 : fandg@hani.co.kr       블로그 : http://plug.hani.co.kr/isoundmysight

2012년 6월 24일 일요일

희망버스 1년, 희망고문 1년


이글은 한겨레21 2012-06-25일자 제916호 기사 ' 희망버스 1년, 희망고문 1년'를 퍼왔습니다.
[특집2] 생계 위해 15년 전과 같은 물량조 임시직이 된 ‘스머프’… 85호 크레인은 철거되고 새 노조는 “회사와 하나 되어…” 현수막 내걸어

» 지난 6월13일 울산 동구 한 조선소의 사내하청 임시직으로 일하는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김상만(가명)씨가 15년 전 처음 조선 일을 배운 현대중공업을 바라보고 있다. 김명진 기자

김상만(40·가명)씨를 만난 곳은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조선소가 아니라,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조선소 앞 길이었다. 지난해 6월11일 그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며 고공농성을 이어가던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을 지키고 있었다.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의 버스’ 탑승객들이 처음 영도조선소로 향한 날이다. 김씨는 다음날 희망버스 탑승객들을 배웅하며 눈물을 훔쳤던 한진중 ‘스머프’ 형님들 중 하나다.

복귀 예정일 6월1일, 휴직 기한 연장 통보

지난해 1월 그는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다. 10년을 꼬박 일한 곳이었다. 억울하고 치사해서 그냥 나갈 수 없었다. 파업에 참여했다. 생계 문제로 파업 대오에서 이탈하는 동료의 수가 늘어만 갔다. 고립감이 심해질 무렵 희망버스 행렬이 찾아들었다. 부당한 정리해고에 대한 비판 여론도 들끓었다. 11월10일, 마침내 김진숙 지도위원이 땅으로 무사히 내려왔다. 정리해고자 94명에 대해 1년 내 재취업, 생계비 지급, 노사 간 민형사상 고소·고발 최소화 등의 내용이 담긴 노사 합의가 이뤄졌다. 그로부터 7개월이 흐른 지금, 김씨는 영도조선소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해고자들만의 일이 아니다. 한진중은 지난해 12월부터 6개월간 순환휴직제를 시행하고 있다. 생산직 700여 명(정규직) 가운데 570여 명이 휴직 상태다. 지난 6월1일은 1차 휴직자 273명이 복귀하기로 한 날. 그런데 회사는 작업 물량이 없다며 휴직 기한 연장을 통보했다.
지난 6월14일 저녁 7시, 현대중공업 인근에선 회색 작업복을 입은 직원들이 퇴근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 거리 한켠에 트레이닝복을 입은 김씨가 서 있었다. 그도 한때는 한진중 작업복을 입고 영도를 활보했을 터다. “15년 전, 다른 직장을 다니다 돈이 너무 안 돼 조선소 일을 처음 시작한 게 여기, 울산이라예. 처음 조선소를 가서는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우예 있노 했다 아입니꺼.” 그는 인근 여관방에서 주로 40~50대인 다른 노동자 7명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울산의 한 조선소 사내하청 업체에서 주는 물량을 받아 작업을 한다. 일종의 임시직인 ‘물량조’ 노동자다.
그는 15년 전에도 물량조 생활을 했다. 돈이 된다 싶으면 조선소 곳곳을 찾아다니며 일을 했다. 몸은 고되어도, 아들 둘과 아내를 부양하는 데는 이만한 벌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정착한 곳이 한진중 영도조선소였다. 떠돌이 생활을 할 때보다 오히려 버는 돈은 줄었다. 그래도 얻은 게 더 많았다. “한진중 다니면서부터는 마누라하고 이야기도 마이 하고 일상이 공유가 되더라고요.”
김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어갔지만, 임시직·비정규직 일은 늘 서러웠다. 같은 조선소에서 일을 해도, 회사에서 지급받는 피서복도 차별했다. 피서복 한 벌로 한 달을 버티기도 했다. 한진중에 정규직으로 입사해 가장 좋았던 것은 소모품이나 자재를 풍족하게 쓸 수 있다는 점이었다. 생전 모르던 ‘노동조합’에도 눈을 떴다.
“옛날에 한 조선소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사람들이 파업을 하더라꼬. 그땐 뭔 지랄들이고 했지. 나는 이렇게 쎄가 빠지게 고생하고 있는데, 파업은 힘있고 빽 있는 사람들만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2010년 구조조정 이야기가 들려왔을 때, 그는 짐짓 ‘잘리면 옛날에 하던 거 하믄 되지’라며 마음을 추슬렀다. 하지만 정리해고를 통보받은 날, 김씨는 남몰래 관물대 앞에서 울었다. “자식들을 위해 여기 왔는데, 고작 이럴라꼬 이 회사에 들어왔나. 내 청춘이 아깝고, 아쉽고…. 감정이 막 복바치데예.”

“일단은 회사가 원하는 걸 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 새 노조에 가입했습니더. 이렇게라도 하면 살길이 열리지 않을까 싶은 겁니다.”

» 지난해 6월11일 전국 곳곳의 시민 750여 명이 희망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로 들어와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 중이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응원했다. 한겨레 자료

이중 취업 금지돼 몸 다쳐도 쉬쉬

파업으로 1년가량 집을 비웠던 그가 지난 1월 다시 집을 나선 건 생계 때문이다. 회사는 약속한 생계지원금 2천만원 중 지금까지 1600만원을 지급했지만, 안정적으로 가계를 꾸리긴 힘들었다. 다른 조선소에서 하청노동자로 일하거나, 건설현장 등을 전전하는 건 휴직자들도 마찬가지다. 휴직자들은 수당이나 상여가 빠진 통상 임금을 받고 있으나 가계를 유지하는 데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휴직자들은 이중 취업이 금지돼 있다. 이 때문에 불리한 계약조건에서 일을 하거나 몸을 다쳐도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
김씨는 다시 물량조 노동자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동안 조선업계에서는 이런 물량조 방식의 임시직이나 비정규직 노동이 더욱 확산돼왔다. 김씨는 아침 6시30분에 여관을 나서 저녁 6시쯤 다시 여관으로 돌아온다. 쳇바퀴 도는 시간이다. 폐쇄된 곳에 들어가 땀 흘리며 작업하다 보니 3개월 만에 6kg이 빠졌다. 김씨의 오른손 검지가 부어 있었다. 양손을 오므리기가 불편하다고 했다. 저녁만 되면, 가족과 함께 생활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 같다. 이렇게 그리움과 서러움을 참고, 고된 노동으로 손에 쥐는 돈은 한 달에 400만원.
한때 영도조선소에서도 정규직·비정규직 합쳐 총 5천여 명이 조업을 했다. 지금 이들 대부분이 일자리를 찾아 떠돌고 있을 터다. 김씨의 벌이는 15년 전과 비슷하다고 했다. 울산까지 온 것도 좀더 많은 일당을 받을 수 있는 자리를 찾기 위해서다. “옛날 부산에서는 용접 A급이면 하루 일당이 13만원 이상이었는데, 지금은 7만~8만원 받는다고 알고 있어요. 일할 사람이 천지니까 임금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요.” 이름 밝히길 꺼린 한 휴직자도 다른 조선소에서 한 달가량 일당을 받고 하청일을 하고 있다. “협력업체 사람들한테 상대적으로 더 힘든 일을 많이 시켜요. 예전에 한진중 정규직 중에서도 위험한 일은 하청 쪽으로 넘기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게 다 지 죽이는 일이 되는 긴데, 그걸 모르고….”
토요일인 지난 6월9일, 7개월 만에 다시 찾은 영도조선소는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조선소 내부에서 조업을 하는 인력은 정규직 140명과 협력업체 직원 200명 정도뿐이다. 영도조선소는 2008년 9월 이후, 물량의 80%를 차지하던 상선 부문 수주 실적이 전혀 없다. 지난해 11월 마지막 선박마저 선주사에 인도돼 방위산업 물량 등을 제외하곤 독(선박조립 설비)이 비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309일간 고공농성을 했던 85호 크레인을, 회사는 파업이 끝나자마자 철거했다. 85호 크레인은 한진중 노동자들의 투쟁 역사가 오롯이 서린 ‘성소’였다. 2003년 김주익 당시 금속노조 한진중 지회장이 정리해고를 반대하며 고공시위를 하다 129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곳도 85호 크레인이다. 그 열흘 뒤 곽재규 조합원이 85호 크레인 맞은편 독에서 몸을 던졌다.
조선소 정문은 외부인 출입이 금지돼 있다. 정문 바로 옆으로 ‘회사 정상화와 민주노조 사수’ 구호가 적힌 천막농성장이 들어섰다. 금속노조 한진중 지회가 지난 6월7일 오전 설치한 천막이다. 조합 간부 10명가량이 돌아가며 천막을 지키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차해도 지회장은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고 했다. 회사는 조합을 상대로 파업손실금 158억원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지난해부터 복수노조가 허용돼 한진중에도 올해 초 또 다른 노조가 생겼다. 회사와 가까운 노조가 들어서자 교섭은 더욱 지지부진해졌다.

“협력업체 사람들한테 상대적으로 더 힘든 일을 많이 시켜요. 예전에 한진중 정규직 중에서도 위험한 일은 하청 쪽으로 넘기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게 다 지 죽이는 일이 되는 긴데, 그걸 모르고….”
앞날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새 노조로

그러던 차에 지난 2월 회사는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했다. “회사가 기존 조합을 상대하지 않으려고 합니더. 7월21일에 노사 교섭 기간이 끝나기 때문에 6월엔 뭐라도 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천막을 친 깁니더.” 천막 바로 옆 건물에 붙은 커다란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거렸다. ‘회사와 하나되어, 한진중공업 75년 역사 조선 1번지 긍지와 자부심을 되찾겠습니다.’ 새로 생긴 ‘한진중 노조’가 걸어놓은 글귀다.
차 지부장은 “생계지원금을 준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복수노조로 조합원들이 많이 갔다”고 했다. 그는 회사가 결국 필리핀 수비크조선소에 물량을 몰아주고 영도조선소를 축소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차라리 내 예상이 틀렸으면 좋겠십니더. 아니, 진짜 틀려가지고 회사를 정상화하면 새 노조에 가서 큰절이라도 할 일 아니겄습니꺼.”
파업 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은, 노동자들 사이에 균열을 일으켰다. 새 노조엔 조합원 550여 명이 가입했다. 반면 기존 노조인 한진중 지회엔 해고 뒤 재취업 대기자 94명을 포함해 220여 명이 남았다. 새로 생긴 노조에 가입하면 휴직이 빨리 풀린다는 근거를 알 수 없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최근 기존 노조에서 나와 새 노조에 가입했다는 한 휴직자는 앞날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은 그는 자신의 신원이 노출되지 않게 해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그 역시 생계를 위해 다른 조선소 하청업체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파업한다꼬 수입이 제대로 없었는데 그 결과가 휴직인 거라예. 계속 회사를 다닐지 걱정이 많이 되는 거예요. 지금 휴직자든, 해고자든, 희망퇴직한 사람이든 다들 어려워예. 일단은 회사가 원하는 걸 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 새 노조에 가입했습니더. 이렇게라도 하면 살길이 열리지 않을까 싶은 깁니다.”
6월10일 낮, 영도조선소 천막농성장을 다시 찾았다. 유난히 파란 하늘 아래 홀로 앉아 있던 이는 한진중 지회 사무장 고지훈(42)씨였다. 애초 정리해고 명단에 포함돼 있었지만, 최종 명단에는 빠졌던 그다. 희귀성 난치병인 척추골간단이형성증을 앓고 있던 딸아이를 배려하라는 동료들의 항의가 이어진 모양이었다. 고씨는 차라리 해고됐으면 마음이 편했을 거라고 했다. 2003년 한진중 정리해고 반대투쟁 직전에 태어난 막내딸 현서는 가족대책위 활동에 나선 엄마 등에 생후 6개월부터 업혀 있었다. 지난해 여름, 부산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다리에 교정기를 심은 채 휠체어를 타고 있던 10살 현서는 여러 차례 수술 끝에 이제 곧잘 걸어다닌다. 그러나 여전히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다.
현서 엄마 전미숙(39)씨는 남편이 다시 천막농성을 해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다. 두 아이를 돌보며, 인근 학교에 조리사로 나가 100만원도 안 되는 돈을 벌어 살림을 꾸려가는 건 그의 몫이다. “아이도 아프고 하니까, 남편한테 그냥 빠지라고 하고 싶어요. 저렇게 천막농성 한다 해서 조합원들이 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내가 아무리 말려도 할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 몸만 다치지 마라 그래요. 회사가 저렇게 휴업 장기화시켜서 다 나가떨어지게 할 것 같아. ”

지난해 8월 한진중 조남호 회장은 부산시청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영도조선소를 포기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월 최대 주주인 조 회장은 약 34억원의 현금 배당을 받았다.

» 지난 6월9일 찾은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건물 앞에는 올해 출범한 복수노조 이름으로 된 현수막이 걸려 있다. 회사는 지난해 11월 노사 합의 뒤 85호 크레인을 철거했다. 박현정 기자

수주한 5천억원 선박 건조, 수비크조선소에서

일주일 넘게 천막 생활을 하고 있는 고씨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회사에서는 계속 금속노조 지회하고는 대화로 풀 수 없다고만 하니까, 저희들이 지금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는 없어요. 조합원이 없으니까 다른 투쟁을 할 수도 없고….”
지난 6월12일, 한진중은 유럽의 한 선주사로부터 5천TEU(TEU: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를 나타내는 단위)급 컨테이너선 10척을 수주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선박은 필리핀 수비크조선소에서 건조하기로 돼 있다. 전체 수주 금액은 4억5천만달러(약 5천억원)다. 회사 쪽은 가격경쟁력 때문에 영도조선소에선 이런 선박을 건조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진중 관계자는 “영도조선소 부지가 26만4천㎡(약 8만 평)에 불과해 1년에 10여 척밖에 건조를 못하는 등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특화를 한다거나 공법·시스템을 개선해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8월 한진중 조남호 회장은 부산시청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영도조선소를 포기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월 한진중의 지주회사인 한진중홀딩스는 이사회에서 주당 250원의 현금 배당을 결정했다. 최대 주주인 조 회장은 약 34억원의 현금 배당을 받았다.
김상만씨에게 만약 영도조선소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그는 지금은 그런 상황을 생각조차 하기 싫다고 했다. “공적으로 합의한 것을 회사가 일방적으로 파기하지는 않을 낍니다. 약속 안 지키면…. 약속을 지키도록 하는 방법을 또 찾아야겠지요.” 해고자든 휴직자든 한진중 노동자들이 바라는 건 오직 하나, 영도조선소에서 작업복 입고 다시 일을 하는 것이다. 회사가 해고자들을 재취업시키겠다고 약속한 기한은 오는 11월10일이다.

6월11일 만난 김진숙 지도위원

“달라진 게 없다고? 우리가 엄청 변했다”

» 박현정 기자
지난해 6월11일 부산 한진중 영도조선소로 향한 희망버스 탑승객들이 그렇게도 보고파 했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지난 6월11일 서울 대한문 앞에 설치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분향소에 잠시 머물러 있었다. 85호 크레인을 내려온 뒤 그는 희망버스가 쌍용차 노동자들을 향해 달려가면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김 지도위원은 “쌍용차가 무급휴직자 461명을 복귀시키기로 한 약속만 지켰더라면, 또 이를 강제하고 독려한 정부가 제 구실을 했다면 절망 속에서 죽어가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정부나 쌍용차 등 자본이 느껴야 할 죄책감을 죄다 시민사회가 떠안고 있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크레인에서 내려온 뒤 강연 등 일정 때문에 계속 바쁘다고 들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어떤가.

=이명박 정권 들어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생존 조건 등이 다 무너진 것 같다. 단협을 맺었으면 지켜야 하는데 그것조차 무너지니 기댈 데가 없는 거지. 전국을 다녀보면 그런 느낌이 온다.

-희망버스는 김 지도위원에게 어떤 의미인가.
=어떤 이는 ‘전두환이 육사 가서 사열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럼 6월항쟁은 뭐였냐’라고 물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많은 사람들에게 전두환 사건은 웃긴 일이 아닌가. 그만큼 의식이 발전한 거다. 마찬가지로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희망버스로 인해 달라진 게 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희망버스는 정리해고·비정규직 문제에 공분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눈물과 땀의 결정체였다. 희망버스를 탄 사람들, 우리는 엄청나게 변했는데 상대편은 아직 하나도 안 변했다. 우리가 변했기 때문에 상황은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 희망버스는 잠시 멈춘 것이지 앞으로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크레인 위에서도 희망버스의 힘이 아니었으면 못 버텼다. 나에게는 사람과 인연을 맺는 일이 정말 소중하다. 그게 나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자산이다.

-한진중에 복수노조가 들어섰다.

=자본은 늘 직접 나서 탄압을 하는 시기가 지나면 노-노 갈등을 부추겼다. 회사 쪽이 내세운 복수노조가 민주노조를 무력화하고, 해고자들을 배제해버리는 일련의 과정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렇지만 복수노조를 선택한 일반 조합원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 언제 구조조정에 맞닥뜨릴까 불안감이 굉장히 크다. 노동자들을 회유하고 압박하는 자본이 문제다. 노동자들의 가장 약한 고리를 이용하는 비열한 방식이다. 이보다 더한 상황을 겪으면서도 노동자들이 단결해온 역사가 있다. 민주노조가 떠난 이들을 배척하지 말고 같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게 관건이다.

-그렇게 지켜내려던 노조가 없어질까봐 불안하지는 않나.

=싸움은 이길 때도 질 때도 있다. 옛날에는 한 번 패배하면 감당을 못했다. 지리산에서 일주일간 처박혀 있다가 오고 그랬다. 한 번 이기면, 100번 패배하기도 한다. 패배를 통해서 배우는 것도 많고…. 역사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급하게 생각지 않는다. 할 일 하면서, 또다시 싸워야 하면 싸워야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기도 한데, 그 상황에 맞게 싸우면 되는 거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2012년 3월 8일 목요일

빼앗긴 자들이여, 광장을 점거하자


이글은 레디앙 2012-03-07일자 기사 '빼앗긴 자들이여, 광장을 점거하자'를 퍼왔습니다.
[기고] 3월 10일, '희망의 광장'을 위해…99%를 위한 새 시대

송전탑에도 숱하게 올라봤다도심의 CC카메라탑은 셀 수도 없다한강 난간에 올라가도 봤고매달려 있다 강물로 뛰어내려보기도 했다크레인에도 올라봤고포크레인 위에도 올라봤다건물 옥상에도 올라봤고지붕 위에도 올라봤다
손수 지어 오른 망루도 셀 수 없다망루에서 불타 죽고도1년 동안 장례도 못 지내고 냉동고에 갇혀보기도 했다 목 매단 이뛰어내린 이화염에 휩싸인 이곤봉에 방패에 맞아 죽은 이말할 수 없다
도대체 이 땅의 빈민들은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도대체 이 땅의 농민들은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도대체 이 땅의 1700만 노동자 가족들은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도대체이 땅의 평범한 이들은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공장 문도 닫히고은행 문도 닫히고법원 문도 닫히고국회 문도 닫히고언론사 문도 닫히고주인집 문도 닫히고민주주의도 닫히니모두의 미래가 닫히고모두의 꿈이 닫혔다
도대체우리는 어디로 가란 말인가빼앗긴 자들이여다시 민주주의의 거리를 열어라쫒겨난 자들이여저 너른 광장을 점거하라생을 반납하지 말고저들을 제압하라좌절은 1%의 몫보라. 99%를 위한 새로운 세기가 저기 다가오고 있다
                                                 * * *
[덧말]
아직 내려놓지 못한 각자 크레인 위의 삶


▲행사 포스터.
‘희망의 버스’ 건으로 구속되어 3개월여를 차디찬 마루바닥의 0.9평 독방에서 지내다 얼마 전 보석으로 나왔다. 이것도 운명인지, 출소 인사를 해야 할 절친한 이들이 모두 영하 10도의 혹한에 ‘희망뚜벅이’들이 되어 서울에서 평택 쌍용자동차까지 걷기 행진을 하고 있었다. 가서 인사를 하는데도 모두 바빠 말 건네기도 계면쩍었다.
주변 걱정도 많아 바로 발 수술을 받으려 했지만, 다른 건 몰라도, 이소선 어머니 묘소 참배는 하고 들어오고 싶었다. 작년 10월 어머니의 소천 때 ‘이소선 어머니의 희망버스’를 제안하고, 모시며 했던 약속이었다.
85호 크레인 위 사람들이 무사히 내려오고, 나와 정진우 씨도 수배가 풀리면 다함께 어머니 묘소로 찾아뵙고 좋아하시던 소주 한 잔, 담배 한 개비 올리겠다는 약속이었다. 다시 내가 병원으로 들어가게 되면 언제 지킬 수 있을지 모르는 터라, 급하게 일정을 맞춰 어머니 묘소를 다녀왔다.
모란공원에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그제서야 우리는 편하게 몇 마디씩 그간 소회를 얘기하며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검찰은 우리를 공동공모정범이라 해서 무슨 일을 사전에 협의하고 공모한 이들이라 하지만, 사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날 85호 크레인 위에 올라 가 있던 김진숙과 정홍영과 박성호 씨의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서러운 눈물을 보아야 했다. 나도 벅차올라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2차 희망버스가 계획된 후 연일 85호 크레인에 대한 사측과 용역깡패들의 침탈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던가. 박성호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차마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던 이야기. 만약에라도 진짜 강제 침탈이 벌어지면 여기에서 생을 버릴 수도 있다는 각오들을 했다는 얘기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 건물 지붕으로 쫓겨 올라갔다 내려온 이들이 아직도 에서 심리상담 치료를 받고 있듯, 당시의 아픔들이 아직도 모두 이 안전한 평지로 내려오지 못하고 있음을 서럽게, 아프게 느껴야만 했다.
무엇을 이기고, 무엇이 끝났나?
그렇다. 우리는 각자의 삶의 크레인 위에서 내려오지 못했고, 아직도 하고 싶은 말들이 많다. 김진숙과 그의 동료들은 집행유예 등의 형벌을 받아야 했고, 나와 정진우 씨는 이 사회에 작은 희망의 씨앗 하나 심는 일에 함께 했다는 까닭으로, 아픈 이웃을 사랑하고 도우려 했다는 죄로 구속이 되어야 했다. 또 수많은 이들이 약식 기소되어 수백만원 씩의 벌금 폭탄과 아직도 끝나지 않은 기소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한진중공업 사측과 어용노조 집행부는 곧바로 지친 조합원들을 협박 회유해 복수노조를 만들었다. 1년 이내 복직이라는 약속을 어떻게라도 파기해보고 싶은 불손한 시도들이 현장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이기고, 무엇이 끝났다는 말인가.
재능교육 특수고용 비정규직들은 1500일을 결국 넘어야 했고, 얼마전 콜트-콜텍의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은 5년만의 대법 판결에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 함은 반드시 기업의 도산을 회피하기 위한 경우에 한정되지 아니하고,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하여 인원 삭감이 객관적으로 보아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도 포함된다’는 지난 판례의 적용을 받기도 했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로만도 그간 수백만명의 정리해고가 가능했는데, 이젠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까지 노동자들이 감당해야 한다. 그 사이 유성기업과 구미 KEC에서는 더 많은 이들이 잘려 나갔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는 이 시대 모든 평범한 이들의 공통 운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이 3월 10일 토요일 시청광장에 다시 모여 이번에는 ‘희망의 광장’을 열어보자고 했다 한다. 우리의 연대로 한진중공업에서 정리해고를 막아냈던 소중한 승리의 경험을 살려, 이제는 한 공장의 울타리 안에서가 아니라, 이 사회라는 울타리 전체에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라는 우리 시대 최악의 악성종양을 도려내는 간절한 ‘희망’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사탕발림 공약이나마 다행
투쟁하는 노동자들도 개별 사업장 단위를 넘어 사회적으로 연대해 보자는 것이다. 마침 희망의 버스 이후 2012년 총선과 대선이라는 정치적 공간을 맞아 모든 정치권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법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또 다시 사탕발림의 빈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분명하게 그것을 이루려면 작년 희망버스 때보다 더 많은 이들이 모여 광장에서 민중의 법을 먼저 만들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총대선이 어떤 당의, 어떤 인물들의 당선과 집권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요구와 의제를 분명히 하고, 한국 사회의 질적 변환을 꾀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들이다. 그래서 다시는 우리 모두가 여야를 불문하고 구시대적인 정치인들의 권력 놀음의 거수기나 주변이 되지 말고, 우리 모두가 이 막중한 정치의 시기에 분명한 주인 행세를 해보자는 것이다.
이제 수술을 마치고 거동이 아직 불편해 나는 나가지 못하지만, 이 광장에 좀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날 전국에서 모이는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이 다시 김진숙처럼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군요."라는 감격의 인사를 할 수 있도록 진짜 많은 이들이 함께 해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무슨 보살행을 바라는 것도, 무슨 동정이나 연민을 구하는 것도 아니다.
얼마 전 나온 콜트-콜텍과 현대차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대법 판결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의 싸움은 하나하나가 우리 사회의 평범하고 가난한 90%의 운명을 구하고자 하는 사회적 투쟁들이다. 이 싸움을 이제 더 이상 소수의 노동자들이 외롭게, 신경쇠약에 걸려가며, 가정이 파탄나며, 관계들이 모두 어긋나며 과도하게 짊어지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가슴 아픈 일들이지만, 보석으로 출소 이후, 몇몇 기자들과 사람들로부터 쌍차 희망텐트와 재능교육 특수고용직 1500일 투쟁, 인천 부평공장의 콜트-콜텍 농성 등을 얘기하며 "그곳엔 크레인이 없지 않느냐?", "그곳엔 96일을 굶던 김소연이, 김진숙이 없지 않느냐?" 거기다 어떤 때는 눈앞이 아득하게도, "송경동이 없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내 가슴이 미어진 이유
그럴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 아니 그곳에 있는 한 명 한 명이 모두 김진숙이며, 김소연인 것이 보이지 않냐고, 느껴지지 않냐고 울고 싶었다. 그런 전형적 상황이, 그런 야만적인 상황이, 그런 가슴 아픈 사연들이 다시 와야만 또 한번 잠깐 움직일만큼 사람들이 나약하게 보이느냐고, 바보스럽게 보이느냐고, 영악하게 보이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다시 또 한 명의 김소연이, 유명자가 굶으러 들어가고, 또 한 명의 김진숙이 죽음의 계단 한 칸씩을 오르고, 또 누군가 매달리려 내려가고, 또 누군가 내가 희생해서라도라는 위험한 생각의 귀퉁이로 몰린다는 것을 잊었냐고 묻고 싶었다. 다시는 그 누구도 혼자 죽음을 결심하지 않아도 되게 이 평지에서, 이 거리에서, 이 광장에서 먼저 연대하면 좋지 않으냐고 묻고 싶었다.
물론 꿈꿔지는 모든 것은 실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상상되어진다. 하지만, 그 꿈이 모두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제반의 조건들이 맞아야 하는 한계가 있음을 안다. 삶은, 사회는 그런 것이라고 뻗쳐오르던 기대를 접는 때가 더 많기도 하다.
또 어떤 한 사람이 계획되어있지 않았던 한 손만을 내밀 때도 얼마나 많은 고민과 결의가 필요한지도 어렴풋이 알기에 함부로 사람들에게 원칙주의적으로, 교조적으로 어떤 행동을 요구할 수도 없다. 그건 오히려 선의로 치장된 폭력이 되기가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꿈꿔본다. 그런 광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이들이 많을 거라고. 모두가 그런 열린 광장의 시대를 다시 꿈꾸고 있을 것이라고, 법도 국회도 은행도 공장도 주택도 사랑도 우정도 그 어떤 것도 모두 닫혀 있는 이 시대의 척박한 공기 속에서 곧 질식할 것 같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고, 새로운 민주주의의 광장에서 새로운 민주주의의 법과 윤리를 새롭게 주체적으로 제정하고 싶은 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법정에서 혐의를 부인한 이유
사실, 희망버스의 법정에서 나는 거의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했다. 내가 다 한 것으로 하고 더 이상 피해자들을 만들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더 큰 오만일 수 있었다. 희망의 버스는 실제 누가 주고 누가 부이고, 누군가 지시를 내리는 소수의 갑이 있고, 이에 무작정 따르는 을이 있었던 수동적인 운동이 아니었다. 참여한 모든 이들이 그 현장의 주인이었으며, 기획자였고, 주동자였다.
그러지 않고서는 나도 희망의 버스 운동이 모두 설명되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영광임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희망버스 승객 한 사람에 불과했음을 확인하고, 전근대적인 검찰의 기소 내용을 모두 반박할 수밖에 없었다.
정당한 나의 주장대로 희망의 버스 승객들은 나와 보니 그간에도 많은 변화와 변이를 거듭하고 있다. 쌍용의 ‘희망텐트촌’으로, 연대와 ‘희망의 뚜벅이’들로, 강원도와 김해로 향하는 ‘생명의 버스’로, 강정으로 향하는 ‘희망의 비행기’로 수없이 진화해가는 희망의 씨앗들이, 산소들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런 새로운 ‘기획자’들이, ‘주동자’들이 이 광장에 함께 해주기를 꿈꿔 본다. 그들의 연대로 다시 새롭게 출발하는 ‘희망의 광장’이 풍성해지기를, ‘웃으며 끝까지 즐겁게, 투쟁’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빨리 나아 나도 그 문화의 광장에, 기쁨의 광장에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2011년 6월 11일, 1차 희망의 버스 당시 비가 내리는 85호 크레인 아래에서 어울려 밤새 노래하고 춤추던 그 날처럼 눈물겨우면서도, 아름다운 광장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재작년 기륭 투쟁 과정에서 이 병원에 들어와 웅크리고 누워 겨울을 보내고 있을 때 김진숙 씨가 85호 크레인 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전해 듣곤 가슴이 무너졌었다. 그래도 올해는 다행이다. 그가 잘 내려와 이번 희망의 광장 때는 팔순을 맞은 백기완 선생과 토크쇼도 연다고 한다. 허클베리핀·와이낫·무키무키만만수·윈디시티 등 밴드들이 함께하는 희망 콘서트의 제목은 '꽃들에게 희망을'이다.
다시 새 봄이 오고 있고, 이 봄은 이제 더 이상 눈물만 흘리고 있는 봄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쭈뼛쭈뼛 새순들 마냥 솟는다. 이런 생동하는 기분이, 기운들이 너무 좋다.
* 추신 : 부산구치소 시절 지켜주고 찾아봐 주셨던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여러분들의 간절함이 저를 구해 주셨습니다. 열심히, 잘 사는 일로 갚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더불어 희망의 버스 당시 정말 많은 분들이 각양각색으로, 적재적소에서 수많은 일들과, 아름다운 마음들을 내어주신 것으로 압니다. 그분들의 수고가 잊혀지지 않고 기억될 수 있도록 찬찬히 제가 아는 일들을 이 역사 속에 기록해 나가겠습니다. 

2012년 03월 07일 (수) 12:07:27 송경동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