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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18일 금요일

'막무가내' 검찰의 '소신' 임은정 검사 죽이기


이글은 프레시안 2013-01-17일자 기사 ''막무가내' 검찰의 '소신' 임은정 검사 죽이기'를 퍼왔습니다.
[기자의 눈] 1964년의 검찰과 2013년의 검찰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있다. "검사는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한 전국적으로 통일적인 조직체의 일원으로서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관계에서 직무를 수행한다는 원칙"이라고 한다. 조금 비약하자면, 검찰 조직은 논리적 완결성과 함께 단 하나의 이성을 가진 거대한 '법인격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판 '리바이어던'이어야 함을 스스로 요구하고, 또 스스로 요구받는다.

이런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과거 독재 체제에서 악용돼 왔다. 1964년 1차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을 복기해보자. 1964년 8월 중앙정보부는 '인민혁명당 사건'을 발표하고, 서울지검 공안부에 사건을 송치했다. 그러나 서울지검 공안부의 담당 검사들은 구속 연장 만료일인 9월 5일 "증거가 없어 기소를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기소를 거부했다. 몇몇 검사는 사표까지 냈다. 그러자 신직수 당시 검찰총장은 당직 검사인 정명래로 기소 검사를 바꾼다. 시쳇말로 '까라면 까야' 하는 검사들이 기소를 거부하니, 사건 내용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검사가 공소장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기소하는 일이 발생했다. '검사동일체의 원칙' 하에서는 이 검사든 저 검사든 상관없음을 검찰 스스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그 이후엔? 고문 조작 논란이 벌어지면서 검찰은 재수사를 해야 했다. 그 결과 처음에 기소된 인원의 절반 이상(26명 중 14명)이 공소 취소로 풀려났고, 나머지 12명도 형량이 훨씬 가벼운 혐의로 공소장의 내용이 바뀌었다.

'검사동일체'의 정점에 앉아 있던 신직수 검찰총장은 이것에 책임을 졌나? 그렇지 않다. 그는 잘나갔다. 서슬 퍼런 유신 체제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냈고, '긴급조치 시절'에는 중앙정보부장도 역임했다.

기자에게 49년 전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 건 (동아일보)의 한 기사였다. (동아일보) 온라인판에 "'브로커 검사' 해임…'막무가내 女검사' 정직"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뜬 것은 15일 새벽이었다. (동아일보)가 지목한 '막무가내 女검사'는 최근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한 임은정 검사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12월 31일(온라인판)에도 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임 검사를 '막무가내 검사'로 몰아갔다.

언론의 '네이밍(naming)'이라는 것이 무섭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렇게 '막무가내 여검사'로 낙인찍힌 임은정 검사에 대한 대검 감찰본부(이준호 본부장)의 징계 청구 결정이 16일 내려졌다. 정직. 무거운 징계다.

임 검사에 대한 중징계가 청구된 계기는 윤길중 전 진보당 간사장 사건의 재심 공판이다. 윤길중 전 간사장은 1961년 5.16쿠데타 후 기소돼 1962년 반공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5.16쿠데타 세력의 혁신계 탄압에 휘말린 윤길중 전 간사장은 7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임 검사는 이 사건의 재심 공판과 관련해, 부당하다고 느낀 상부의 지시에 맞섰다.

'막무가내' 검찰, 그렇게도 '항소' 여지를 남겨두고 싶었나?

▲ 임은정 검사 ⓒ임은정 검사 미니홈피

임 검사는 지난달 28일 '윤길중 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하겠다'고 의견을 냈다. 그러자 '상관'인 김국일 공판2부장검사는 "당시 판결문에 나타난 당사자 진술이 고문·협박에 의한 것이 아니고 수사·재판 기록도 없다"는 점을 들어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달라"고 구형할 것을 주문했다. 임 검사가 이를 거부하자 김 부장검사는 다른 검사에게 이 사건을 재배당했다. 임 검사는 그것도 거부했다. "징계도 감수하겠다"며 법정의 검찰 출입문을 걸어 잠그고 "내가 할 일을 하겠다"는 내용의 쪽지를 써 붙였다.

'윗선'에서 '항소'를 전면 배제하지 않은 것을 임 검사가 받아들이지 않자, '윗선'은 공판 검사를 바꾸는 것으로 대응했다.

대검 감찰본부가 이런 임 검사에게 중징계를 청구한 것을 보면서 '인혁당 사건 재배당' 사례를 떠올리는 것은 지나친 일일까? '윗선'의 명으로 바뀐 공판 검사는 '윗선'의 입맛에 맞는 구형을 해야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검찰은 그간 과거사 재심 사건에 대해 무죄 구형을 하는 대신 "법과 원칙대로 판결해달라"는 것을 관행처럼 읊조렸다. 엄밀히 말하면 항소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실제로 김지하 시인이 '오적 필화 사건' 무죄 취지 선고 유예에 대해 '왜 무죄가 아니냐'며 항소하자, "법과 원칙대로 판결해달라"고 했던 검찰도 이에 맞서 항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자존심' 싸움 같은 느낌도 들지만, 검찰은 긴급조치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여러 번 항소를 해 비난을 자초한 전력이 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하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대선에서 승리한 것과 임 검사 사건이 맞물리는 것도 우려스러운 게 사실이다.

"유죄를 전제하고 수사, 기소를 했는데 구형이 '무죄'면 논리적 모순 아니냐"는 말도 나오지만, 이는 과거사 재심 사건의 '특수성'을 모르고 하는 얘기거나 일부러 무시하는 얘기다. 과거사 재심 사건은 기본적으로 법원이 내렸던 과거 판결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전제한다. 법원이 숙고해 재심 결정을 내렸는데도, '논리적 완결성'이나 '무결점주의'를 이행하고자 검찰이 기계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이른바 '법 감정'에도,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 수십 년간 국가 권력이 씌운 누명으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고령이거나 이미 세상을 떠났다. 검찰은 의례적으로 항소하지만 이들에게 항소 기간은 피 말리는 시간의 연장일 뿐이다.

임 검사의 무죄 구형은 의미가 크다. 임 검사는 무죄 구형 직전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저는 구형의 의미에 대해 크게 생각했다. 비겁하게 구형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임 검사의 말에는 이 같은 '성찰'이 담겨 있다.

이런 임 검사가 (동아일보)의 표현대로 '막무가내 검사'일 뿐인가? 임은정 검사와 '윗선' 중 누가 '막무가내'인가? 이 대목에서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 때 "증거가 없어 기소를 할 수 없다"던 검사들과 '기소 의견'을 밀어붙였다 망신당한 신직수 검찰총장 중 어느 쪽이 '막무가내'였는지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동아일보)에 "'막무가내' 검찰, 임 검사 '무죄 구형' 막으려 해"라는 제목을 추천한다.


 /박세열 기자 

2012년 12월 31일 월요일

‘용감한 무죄 구형’, 동아일보는 “막무가내 검사”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2-31일자 기사 '‘용감한 무죄 구형’, 동아일보는 “막무가내 검사”'를 퍼왔습니다.
반공법 위반 재심사건, 상부 지시에 저항해 문 걸어 잠그고 구형 논란

1962년 반공법 위반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던 윤아무개씨에 대한 재심 사건. 지난 28일 열렸던 결심 공판에서 서울중앙지검은 “법과 원칙에 따라 법원이 적절하게 선고해 달라”고 구형할 방침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사건을 담당한 공판 검사인 임은정 검사가 무죄를 구형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임 검사가 소속된 공판2부는 회의를 거쳐 공판 검사를 다른 검사로 교체했다. 그런데 임 검사가 이를 무시하고 재판에 참석해 무죄를 구형해 논란이 되고 있다.

31일 조선일보는 “새로 사건을 맡게 된 검사는 임 검사가 법정의 검사 출입문을 걸어 잠그는 바람에 법정에 들어가지도 못했다고 한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임 검사가 공판에 자신 대신 출석하기로 했던 검사가 읽을 수 있도록 법정 검사 출입문에 ‘무죄를 구형하겠다’는 내용의 쪽지를 붙여놓았다고 한다”고 보도했다.

임 검사는 구형을 하러 법정에 들어가기 직전 “당연히 무죄가 나올 사안이고 담당 검사로서 (상부 방침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다른 검사에게 사건이 재배당됐다”면서 “검찰 내부에서 공론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결행했다”는 내용의 글을 검찰 내부 게시판에 올렸다. 임 검사는 “절차 위반과 월권의 잘못을 통감하며 어떤 징계도 감수하겠다”는 글을 남기고 휴가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임 검사가 무죄를 구형하자 곧바로 무죄를 선고했다.

임 검사의 돌출 행동에 대한 평가는 신문 마다 다르다.

조선일보는 서울중앙지검 관계자의 말을 인용, “절차적으로나 내용상 위법한 지시가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사실관계 파악이 제대로 안 된 사안까지 무조건 무죄를 구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이 사건처럼 무죄가 예상되는 재심사건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를 해달라’는 통상 의견을 구형을 대신한다”면서 “‘이번에는 법원에 맡기자는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절차 무시하고 무죄 구형 ’막무가내 검사‘”라고 제목을 달았다.

동아일보 12월31일 10면.

동아일보는 어차피 무죄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고 보는 검찰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했고 조선일보는 무죄를 구형하기에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긋는 다른 발언을 인용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평가가 엇갈린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두 신문 모두 임 검사가 절차를 어겼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어차피 법원이 무죄를 선고할 가능성이 큰데 임 검사가 너무 나갔다는 의미를 담고 있고 조선일보는 무죄가 안 될 수도 있는데 성급한 판단을 내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겨레는 “검찰은 재심사건에서 무죄로 단정하기 어려운 사안에 대해 관행적으로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 달라’고 구형한다”고 밝혀 공판2부 부장검사와 임 검사가 의견 대립이 있었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한겨레는 “재심사건 검사, 용감한 무죄 구형”이라고 제목을 뽑았다.

경향신문은 임 검사가 공판2부가 아니라 공안부와 갈등을 빚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공안부 맞서 문 잠그고 무죄 구형한 검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결심 공판에 다른 검사가 출석할 예정이었던 건 검찰 공안부와 임 검사의 의견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임은정 검사. 임 검사 미니홈피 캡처.

임 검사의 돌출 행동은 상부의 지시와 절차를 어겼다는 사실을 강조하면 “막무가내 검사”가 되고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는 데 초점을 맞추면 “용감한 행동”이 된다. 경향신문 제목은 “공안부 맞서 문 잠그고 무죄 구형한 검사”인데 중앙일보 제목은 “검찰 방침에 반발, 다른 검사 출입 막고 무죄 구형한 검사”다. 한쪽에서는 공안부에 맞선 용감한 검사로, 다른 한쪽에서는 다른 검사의 출입을 막은 뭔가 떳떳하지 못한 느낌으로 포장하고 있다.

연합뉴스가 인터뷰한 중앙지검 관계자는 “근거법의 위헌 등이 내려진 확실한 사안에는 무죄 구형이 옳겠지만 검찰의 공소유지 등 전체 기능을 생각한다면 사실관계 파악이 제대로 안 된 사안까지 무조건 무죄를 구형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검찰 내부의 복잡한 반응을 전했다. 노컷뉴스에 따르면 임 검사가 검찰 게시판에 남긴 글에 달린 댓글에는 "소신대로 하는 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절차도 중요하다", "검사님 의견에 많이 찬성해왔지만, 이번만큼은 다시 판단하셨으면 한다" 등 부정적인 내용이 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은정 검사는 지난 9월 민청학련 사건 재심 때 무죄를 구형해 이름을 알린 바 있다. 임 검사는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해 권력의 채찍을 맞아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간 사람들, 몸을 불살라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다”면서 “그분들의 가슴에 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됐다”고 구형 취지를 밝혔다.

이정환 기자 | black@mediatoday.co.kr 

2012년 9월 13일 목요일

검사 "박형규 목사께 무죄를 내려달라"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2-09-13일자 기사 '검사 "박형규 목사께 무죄를 내려달라"'를 퍼왔습니다.
한인섭 "임은정 검사의 무죄구형! 모처럼 감동"

유신시절이던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중형을 선고받았던 박형규(89) 목사에 대해 검찰이 사상 초유로 '무죄'를 구형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부장판사 김상환) 심리로 열린 지난 6일 선고공판에서 임은정 검사는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해 권력의 채찍을 맞아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간 사람들이 있었다"며 "몸을 불살라 칠흑같은 어둠을 밝히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임 검사는 이어 이어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의 아침이 밝아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그 분들의 가슴에 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됐다"며 "무죄를 내려달라"고 무죄를 구형했다. 

그동안 유신 관련 재심 사건에서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해달라’고 암묵적으로 무죄 의견을 밝힌 적은 있지만 검사가 직접 무죄를 구형한 것은 처음이다.

재판부도 이에 "피고인과 그를 대변한 변호인뿐만 아니라 검사도 재판부의 판단과 동일했다"며 "장구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기울였을 노력 등이 이 판결을 가능하게 하였음을 고백하면서도 이 판결이 부디 피고인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우리 사법에 대한 안도로 이어지길 소망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박 목사는 1974년 4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아 9개월간 복역한 뒤 출소했으며, 지난 2010년 재심을 청구했다.

보도를 접한 한인섭 서울대 법대교수는 13일 트위터에 "임은정 검사 무죄구형! 모처럼 감동이네요"라며 "앞으로 검사는 재심사건에 기계적으로 유죄구형하는 악선례를 깨고 정의의 검사 되길 바랍니다"라고 임 검사를 격찬했다.

심언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