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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8일 금요일

시민사회운동은 박근혜 정부 출범 즈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


이글은 미디어스 2012-12-28일자 기사 '시민사회운동은 박근혜 정부 출범 즈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퍼왔습니다.
[기고/원용진]'멘붕'의 평론가 입장에서 벗어나, '국면'으로 파악해야

박근혜 당선자가 이겨버린 이번 대선은 전문가 멸종을 선언하는 한판 운동회 같았다. 정치 평론가란 직함을 달고 나온 이들은 자신의 사적 정치적 견해를 주저 없이 평론이라며 한껏 펼쳐냈다. 평론이라기 보다는 사적 견해임에 틀림없지만 대중매체들은 그를 크게 구분하지 않으려 했다. 오히려 사적 견해들 간의 충돌을 부추겼고, 극적 충돌과 지속을 부각시키기에 분주했다. 각 후보를 편드는 평론가들이 주먹만 오가지 않았을 뿐 부랑배들의 다툼 지경까지 다다르는 풍경을 연출했다. 대선이 끝나서도 그들의 활약은 눈부시고, 끝간 데 없다. 대선 결과에 대한 해석을 제공하느라 분주하다.
대선 전부터 공해스럽던 정치평론가들의 입이 대선 후에도 연장되고, 그래서 대선이 마무리되었다는 느낌을 갖지 못하고 있다. 제도권 정치와는 일정 거리를 두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그에 관심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운동단체로서는 전문성 없는 소란과 자꾸 연장되는 대선국면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는 제도권 정치와는 상관없이 생활정치에 관심을 두고 있는 시민사회 운동은 제도권 정치가 대중 의제에서 정점에 서는 것을 반길 이유가 없다. 제도권 정치가 대중을 대의해서 대중의 일상을 윤택하게 해줄 수는 있지만 그건 언제나 한정적이다. 대중 의제에서 제도 정치는 주기적으로 그냥 오고갈 뿐이다. 다만 운동단체는 생활 정치를 더 고민하고 제도 정치를 그 함수안에 포함시킬 뿐이다. 대중들의 자발적 참여, 운동단체의 참여 조직화, 그리고 대의제적 제도정치와의 연계라는 수순을 밟는 것이 운동단체로선 지니고 있는 작은 소망이다. 그런 점에서 제도정치가 끝간 데 없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 별로 상쾌할 리가 없다. 둘째는 제도권 정치는 참여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개선과 교정의 대상이라는 점 때문이다. 개선과 교정의 대상을 기대의 대상으로 전환시켜 두는 것은 정치에 관한 착시를 유발한다. 제도권 정치에 대한 고민은 어떻게 개선시켜서 생활정치에 다가올 수 있도록 할 것인가로 초점을 모아야 한다. 운동단체로서는 제도권 정치에 대해 특별히 시간을 내어 운동하는 특별한 국면을 만들 필요가 있을 뿐 상설적으로 그에 고민할 여력이 많지 않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번 대선은 몇 가지 지점에서 운동단체가 고민해야 할 사안을 전해주고 있다. 첫 번째는 젊은 세대가 새로운 희망을 구하고자 하며, 움직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그 동안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젊은 세대는 보호의 대상이거나 신자유주의 경쟁에서 생존해야 하는 경쟁 주체로 묘사되었다. 그리고 호명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 국면에서 발랄한 모습으로 제도 정치에 참여하면서 자신들의 내일이 신자유주의국면에서 제안된 시나리오와는 달라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그들이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삶을 꾸려갈 가능성의 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적극적으로 필요해진다. 조합적 일상, 협력적 생활, 코뮨적 삶 등 다양한 대안과 조직, 운동을 요청하고 있는 바 그를 기획하고, 조직화하며, 추동하는 힘을 갖추는 일이 운동단체의 과제가 되었다. 둘째, 보수성향의 후보를 제외하고는 새로운 비전의 사회상을 그리며 그를 향해 다가갈 의지를 표방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더 많은 사례가 뒷받침되어야 하고, 시행착오를 기반으로 한 정책적 과제를 구성해내며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이 시급해졌다. 이미 이뤄지고 있는 많은 운동 방식, 형태를 정리하고 소개하는 일의 소중함을 의미한다. 제도 정치에서 내놓은 공약들의 추상성이 높았던 것도 제도정치의 업적 그라프를 챙겨주는 멱함수의 존재가 없었던 탓이다. 기왕 생활정치와 제도정치와의 접합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그 일도 시급히 이뤄져야 하는 일이 되고 말았다. 이번 대선은 총선의 연장이었고, 그런 점에서 보자면 보수 야권이 연속으로 패한 경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지난 총선은 시민사회 내 여러 운동단체의 활동가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했고 진출한 때이기도 하다. 그들이 참여해 스스로는 제도정치의 입문에 성공했지만 헤게모니 구축에서는 거리가 멀었고, 이번 대선에서도 큰 활약을 보이진 못했다. 이는 시민사회운동단체의 위세의 하락으로 볼 수도 있고, 또 주요 활동가들의 공백으로 인한 미래의 불투명성과도 닿는 사안이다. 과거에 비해 더 큰 맥락의 연대운동이 사라졌고, 또 엄두도 내지 않는 실정이 되고 말았다. 울림이 덜할 뿐 아니라 울림을 보여줄 여력이 없다는 말이다. 운동세력의 약화, 의제의 부족, 연대의 어려움 등은 새로운 방식의 추스림이 필요함을 전해준다. 성명서 중심의 운동에서 탈피함은 물론이고, 생활밀착형으로 가는 일을 더 망설여서도 안 될 일이고, 생활밀착형적 실천으로 연대를 모색해야 할 때를 맞고 있다. 그것이 셋째 과제다. 넷째, 생존의 과제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강화된 시민사회 운동에 대한 억압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생활정치, 대중밀착형 운동으로 버텨왔지만 그 움직임을 더 강화하고, 대중의 힘으로 운동이 생존할 수 있게 하는 모색이 필요한 때다.
어차피 현대사회에서의 시민사회운동은 이중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현 제도 정치를 비판하고, 그가 생산적으로 가동되도록 돕는 일이 첫 번째 전략이다. 그러면서도 중심은 대중과의 연계에 두어야 한다. 하루빨리 대선이야기를 종식해야 하면서도, 대선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하는 이유다. 새로 들어설 박근혜 정부를 이명박 정부와 분리해 사고할 근거는 거의 없어 보인다. 다만 대선과정에서 있었던 대중의 정서구조가 어떻게 바뀌어 있었던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춘 운동 방식과 주제를 찾아야 할 뿐이다. 입의 테크닉이 극도로 화려해진 정치평론가를 비켜가면서 투표 행위를 지표로 파악하며 대중의 욕망의 흐름을 정리해내야 한다 대선 과정에서 징후적으로 읽을 수 있었던 대중의 문화적 열망과 그에 대해 문화운동이 화답해야 할 것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표현의 자유. 이명박 정부기간 동안 표현의 자유는 심하게 위축되었다. 이를 위축시키는 것이 정부의 과제인양 덤벼들기도 했다. 대선 기간 동안 유권자들의 재기발랄한 선거 운동, 소식 전하기 등이 과거보다 활발했던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인다. 특히 대중매체가 지레 짐작으로 움츠려 들어 있는 상황에서 표현의 공간이 존재하게 하고, 그 안에서의 작동이 자유롭게 만드는 일은 문화운동이 역점을 두어야 할 작업이다. 둘째, 거대 담론이 아닌 미시담론으로 공동체를 모으고, 치유하며, 공동체 의제를 만드는데 기반이 되는 공동체 리터러시, 밈(meme)의 확산이 요청된다. 주변을 정치 공동체로만 사고하는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통 공동체, 문화 공동체라는 인식을 갖도록 하는 일이 필요하다. 셋째, 새로운 문화적 경험의 선사다. 새로운 사회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새로운 사회를 설파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민중의 집, 코뮨의 가능성, 소통의 다변화 등을 통해서 경험의 폭을 넓히도록 하는 일은 소중하다. 대중을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소통의 파트너로 삼고 그를 운동의 진동안으로 들어오도록 초대하는 일이 더 많아져야겠다. 문화운동이 앞장서 벌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해오던 문화정책에 대한 가열찬 비판은 지속되겠지만 운동 역량을 에너지별로 배분하고 대중과 더 많은 접면을 갖도록 하는 일이 다시 과제도 부상하고 있는 셈이다. 멘붕에 처했다는 진단이 많다. 이해하지 못하는 바가 아니라 치유와 전망으로 재빨리 선회하는 일이 더 생산적이다. 항상 뒷 담화와 후회로 점철된 문화운동 세력으로 보이던 것에서 벗어나 지금껏 구축해온 성과를 기반으로 방향을 다잡고 에너지 배분의 영리함을 보인다면 지금껏 해온 운동이 오히려 더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국면에 처해있기도 하다. 같은 국면의 되풀이라 여기지 않고 새로운 현상들이 이번 대선 국면에서 드러났으니 끝간 데 없이 복기를 되풀이하는 평론가적 입장에서 벗어나 언제나 그렇듯이 묵묵히 활동을 펼치는 일이 더 지혜롭지 않을까. 새로운 박정권을 운동이 스스로를 재고해고, 제고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국면으로 파악하면 그렇게 우울하지만은 않다.

* 이 글은 문화연대 뉴스레터 (문화빵) 8호에 실린 글입니다.

원용진 / 문화연대 집행위원장, 서강대 교수  |  mediaus@mediaus.co.kr

2012년 11월 23일 금요일

범사회적인 'MBC 광고상품 불매운동' 제안합니다!


이글은 미디어스 2012-11-22일자 기사 '범사회적인 'MBC 광고상품 불매운동' 제안합니다!'를 퍼왔습니다.
[특별기고/원용진]시민, 시민사회 제 단체에 드리는 긴급 제안

▲ MBC 여의도 사옥 ⓒ연합뉴스

공영방송 역할 종말 고하고 존폐 위협받고 있는 MBC

MBC의 비정상성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광우병’ 파동을 겪으면서 정권은 방송에 무자비한 압박을 가했다. 제작진이 공권력에 소환되기가 일쑤였고, 경영진까지 흔들리며 자리를 내놓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 이후는 압박의 연속이었고, 정권 친화적 인물로 경영진이 채워지고, 방송은 파행을 거듭했다. MBC 50년사에서 수용자로부터 가장 치욕적인 손가락질을 받는 순간으로 접어들었다. 그 역사를 아는 구성원들은 인사상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경영진에 저항했다. 꺼져가던 저항의 힘이 대선을 앞두고 부담을 느낀 정치권의 협상으로 좋은 결말을 맺는 듯 했다. 하지만 공영방송의 비정상성 마저도 정치적 이득으로 셈하는 쪽의 번복으로 미궁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MBC는 지금 그야말로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에는 종말을 고한 상태이며 방송사의 존폐까지 위협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 김재철 MBC 사장 ⓒMBC

김재철 사장은 법적으로 보장된 임기를 채우겠다고 오히려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온갖 비리를 저지른 사실에 대한 법적 처벌이 의뢰된 뒤 조처가 뒤따르지 않자 의기양양해지기까지 했다. 새롭게 정권이 탄생될 즈음해서 새로운 코드 맞추기로 자신의 방향을 선회했고 그 선회가 자신의 연명에 도움이 되리라는 확신에 가득찬 듯하다. SNS상으로 수집된 정보에 따르면 MBC는 11월 현재 최악의 보도 1,2,3위를 모두 차지하였고, 뉴스 시청률은 종편의 그것에 가깝게 수렴해간다고 한다. 하지만 김재철 사장과 그 주변은 자리를 보전해줄 쪽에 대한 관심만 있을 뿐 수용자들이 어떤 평가를 내리는지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를 감독하거나 견제해야 할 방문진 이사회도 손을 놓고 존폐 위기까지 거론되는 세상의 담론을 가벼이 여기고 있다. 심지어는 희한한 한 쌍이 벌이는 불륜게임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폐허가 된 MBC, 더 참아줄 것인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는 폐허 속에서 그 희망을 찾으려 한 과정의 연속이었다. 참아주는데 익숙했다. 선구자들이야 미리 예견하고, 손을 빨리 쓰자고 제안해왔지만 대체로 시민사회 전반은 ‘그러지 말라’고 점잖게 경고하는 시간을 길게 가져왔다. 언론에 관한 한 더욱 그랬다. 그 만큼 자율성을 강조하자는 취지였고, 그들의 내부적 능동성을 존중하는 배려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언론인들에 대한 배려는 배신을 당했다. 자율성이나 내부적 능동성은 언제나 뒤로 밀리고 정권에 빌붙은 처사가 더 힘을 얻는 쪽이 구심력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폐허에 가까워지면 시민사회는, 수용자는 나섰다. 지켜주자 했던 자율성이나 능동성을 넘어 시민의 힘으로 응징하고자 폐허의 순간에 턱하니 나섰다. 그런 탓에 언론인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언론자율 회복의 순간순간 마다에는 시민의 힘이 작동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폐허가 되기 전까지 잘 해결해라 독려하지만 폐허로 이어지는 국면에는 더 이상 참지 못함을 보여준 것이다.
MBC에도 그런 폐허 직전의 순간이 왔다. 드디어 시민이 팔을 걷어붙일 때가 되었다. 광우병 파동 국면에서 보호받았던 그 기억을 되살려주며 이젠 응징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 응시하던 눈을 거두고 직접 손으로 매를 들 때가 되었다. 누구도 공영방송의 종언에 책임을 지지 않으니 공공성을 지선의 가치로 삼는 시민들이 나서는 도리 밖에 없다. 그 동안 시민들의 조언에 한 번도 진지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시민을 빈정대고, 그들의 언설을 쓸데없는 수다 정도로 흘려버린데 대한 응징을 기획할 때다. 전파의 주인임에도 조롱당한 수용자로서의 권리 회복은 물론이고, 그를 넘어서 새롭게 공영방송을 꾸려가자는 커뮤니케이션 권리의 발휘를 꾀할 때가 되었다. 모든 일을 다 해보고, 인고 끝에 보여주었던 그 행동에 나설 때가 되었다.

법대로, MBC 프로그램 광고주 불매운동 제안한다!

무엇을 근거로 폐허와 응징을 운위하냐는 반문이 있을지 모르겠다. 최근 언론관계 시민사회단체에서 내놓은 논평만 한번 훑어보면 이게 공영방송에서 벌어질 일인지 악덕 기업에서나 있을 법한 일인지 가늠조차 힘들다. 방송 제작진을 사찰하는 일이 상시화되고 있으며, 파업을 이유로 인사 불이익 조처한 일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된 지 오래다. 여당 관련 인사로부터 전해받은 정보로 대선 후보의 논문에 시비를 건 일, 정작 방문진 이사장의 논문표절에는 눈을 감은 일, 자사 사장의 청문회를 야당의 정치 놀음으로 몰아 버린 일, 정수장학회 방문 사건, 인혁당 사건에 대한 간부의 발언, 작가 해고 및 대체 사건... 더 이상 말하지 않는 편이 MBC에 대해 애정을 가졌던 수용자에 대한 예의일 것 같다. 한 방송사가 그것도 공영방송사가 이런 사건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일을 두고 폐허로 다다르고 있다고 말하지 않으면 그것 자체가 이상한 언설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싶다.
“공익목적을 관철하기 위하여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그들의 주장을 홍보하고 각종 방법에 의한 호소로 설득활동을 벌이는 것은 어떠한 결정을 상대방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기는 한 허용된다 (대법원 2001.7.13.선고 98다51091판결)”
하도 ‘법대로’를 내세우고 있길래 방송 수용자로서 응시하던 눈을 거두고 손에 매를 드는 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았다. 다시 광우병 국면으로 돌아갔다. 그 때 미완의 프로젝트로 끝난 것처럼 보이던 ‘언소주’ 사건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한 판결문을 읽었다. 엄혹한 시절 내려진 판결이라 그대로 다 인정할 수는 없지만 또 다시 매를 든 수용자를 다치게 할 수는 없어 판결에 맞춘 수용자 행위를 고민해 보았다. ‘법대로’ 제대로 MBC에서 방송하는 프로그램의 광고주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일 것을 제안해보려 한 것이다.

수용자가 직접 팔을 겉어붙이고 회초리 들 수밖에 없는 상황

MBC가 폐허가 되더라도 자신을 보전할 수 있다면 눈도 깜짝 하지 않을 사람들이 경영진으로 포진해 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이미 그들은 그런 불퇴전의 각오를 다져왔고, 행동으로 그 각오의 굳건함을 보여주었다. 적어도 내부에서 반발하는 제작진에 대해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러지 말기를 권고하는 언론 운동 진영에 대해서도 그런 태도를 내비췄다. 그렇다면 대립 전선을 바꾸는 일 말고 무슨 방법이 있을 수 있을까. 인기를 먹고 살아야 하는 방송이 수용자와 대립각을 세우는 최후의 결전으로 이 다툼을 옮겨 놓는 도리 말고는 강구되는 바가 없다. 당장 우리 수용자가 가동시킬 수 있는 수중에 든 수단으로서는 불매운동 그것이 유일하다. 언론인, 노조, 이사진, 정책담당자, 정치인 모두가 나서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어 다시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수용자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회초리를 들 수밖에 없다.
한국의 다공영방송 시스템이 여전히 자랑스럽고, 공영방송을 통한 공공성의 발휘가 여전히 우리 삶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모든 시민 수용자께 제안 드린다. 참을성을 가지고 뚫어지게 바라보며 정상화를 기대했던 그 응시의 눈을 이젠 거두자. 질타의 목소리도 거두자. 제대로 ‘법대로’ 할 수 있는 수용자의 최대한의 응징을 전해줄 때가 되었다. 이미 그런 방법을 모색해오던 시민사회 내 제 운동단체와 연대해서 MBC를 통해 광고하는 상품을 불매하는 운동을 벌일 것을 제안한다. 불매운동을 통한 경영 압박을 통해 폐허로부터 희망을 구하는 또 한 번의 민주주의 운동사에 일획을 긋는 시민운동을 벌일 것을 제안드린다. 지상파 방송의 힘이 얼마나 쇠잔해졌는지를 모른 채 우물안 개구리처럼 살고 있는 저들에게 새로운 매체, 새로운 소통방식, 새로운 운동방식이 얼마나 매서운지를 제대로 한번 보여주자고 감히 제안 올린다. 시민의 의사를 조직하고 운동을 위한 활동을 벌일 시민사회 제 단체에도 노고를 아끼지 마시길 감히 요청한다. 모두 같이 폐허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길에서 연대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길 기대하며.

원용진 / 서강대 교수, 문화연대 집행위원장  |  mediaus@media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