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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3일 금요일

<조선>, 박근혜 코드 맞춰 김우중 띄우기?


이글은 프레시안 2013-05-03일자 기사 '(조선), 박근혜 코드 맞춰 김우중 띄우기?'를 퍼왔습니다.

[기자의 눈] 박근혜와 김우중의 아주 특별하면서도 걱정스런 인연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후 재계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앞으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잘 지켜보라.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생길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김 전 회장을 집중 조명하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그것도 연이어.

(조선일보) 기사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30일 뜬금없이 1면 톱으로 김 전 회장 인터뷰를 '단독' 보도했다. 2면과 3면도 김 전 회장에 관한 기사로 도배했다. 이에 더해, 노동절인 1일에도 (조선일보)는 '김우중 2탄' 기사를 내보냈다.

1999년 대우그룹 해체 이후 14년 만에 노동절을 타고 돌아온 김우중. 참 어울리지 않는다. 2001년 2월 대우자동차 노조가 대우그룹 해체의 책임을 묻고 비자금 조성 의혹의 진위를 따지기 위해 '김우중 체포 결사대'를 파리로 보낸 것을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다. 대우그룹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김 전 회장이 남긴 것은 노동자들의 피눈물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해고되고, 감옥에 갔다.

김 전 회장과 노동 운동의 악연은 이것만이 아니다. 김 전 회장은 1985년 6월 대우어패럴 노동자 등이 참여해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동맹파업'으로 기록된 구로동맹파업의 원인 제공자 중 하나로 꼽힌다. (조선일보)는 이처럼 노조 탄압의 상징적 인물 중 하나인 김 전 회장의 화려한 부활을, 다른 때도 아닌 노동절 무렵 세상에 알렸다.

부활의 토대는 이미 착실히 마련돼 있었던 것 같다. 김 전 회장은 현재 무일푼이나 다름없다고 하지만, 그의 부인 정희자 씨는 선재아트센터 관장이고 그 일가족은 정치권의 유력 인사들이 드나드는 아도니스 골프장을 소유하고 있다. 이 외에도 수많은 호텔,미술관 등이 김 전 회장 가족의 소유물이다. 적법한 증여 절차를 거쳐 만들어졌다고 하는 재산들이다. 가족들의 재산이 이처럼 '빵빵'하다는 걸 감안하면, 김 전 회장이 무일푼이라는 말에 걸맞은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멍에'는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8년 1월 풀렸다. 당시 각종 논란 속에서 김 전 회장은 특별 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뒤이어 이명박 정부는 김 전 회장의 또 다른 '멍에'인 대우 구명 로비 사건과 관련해 사면을 추진하다 실패했다. 박근혜 정부는 이를 어떻게 다룰지 주목된다.

어찌됐든 김 전 회장이 이제 막 첫걸음을 뗀 박근혜 정부 내내 언론에 꽤 얼굴을 비칠 것 같은 조짐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 4월 30일 자 <조선일보> 1면


김우중과 박근혜, 그 특별한 인연들
박근혜 시대를 맞아 김 전 회장이 자칭 '1등 신문'을 통해 부활을 알린 것은 우연일까? 김우중 전 회장의 부친은 김용하 씨다. 대구사범학교 윤리 선생을 지냈다. 김용하 선생님 밑에서 윤리를 공부하던 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즉 김 전 회장의 선친은 박 전 대통령의 은사다. 김 전 회장은 1967년 31세의 나이로 대우실업을 설립한다. 이후 전자와 중공업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모두 박정희 정권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김 전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의 장남 지만 씨에게도 은인과 같은 인물이다. 마약 투여 혐의로 구속됐다 풀려난 지만 씨가 재기의 기회를 잡은 것은 삼양산업 대주주가 되면서였다. 당시 삼양산업에 투자한 돈 8억 원을 빌려준 사람이 김 전 회장이다. 지만 씨는 김 전 회장이 대준 종잣돈을 바탕으로, 현재 삼양산업의 후신인 EG를 이끌며 1000억 대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는 '대우맨'도 많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대우경제연구소 소장을 지낸 대표적인 '대우맨'이다. 그는 한때 "박근혜의 경제 교사"로도 불렸던 인사다. 박 전 대통령의 측근인 안종범, 강석훈 의원도 대우경제연구소와 인연이 있다. 2007년 '마포팀'을 만드는 등, 두 차례의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홍보맨으로 활약했던 백기승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은 김우중 전 회장의 공보 대변인 출신이다.
▲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3월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부암동 AW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우그룹 창립 46주년 기념 행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은 2006년 대우그룹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징역 8년6월에 벌금 1000만 원, 추징금 17조9200억 원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2008년 1월 특별 사면됐다. ⓒ연합뉴스


박근혜의 창조 경제 모델이 김우중이라면?

1997년 당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한강의 기적을 수출하자"는 제목의 (시사저널) 서면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언급한 경제비전은 "제2의 한강의 기적"이었다. 실제 '한강의 기적'의 상징 중 하나가 김우중 전 회장이다. 박 대통령의 경제 참모들 중 '대우맨'들이 많은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김 전 회장의 경제 선생은 친형인 김덕중 전 교육부 장관이다. 김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 들어 약진하고 있는 서강학파로 분류된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의 서강대 재학 시절 은사이기도 하다. 김 전 장관은 2010년 11월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교수 시절 자신의 수업을 들었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박근혜 씨는 남달랐어요. 뭐든 정성을 다해 주위를 감동시키는 학생이었습니다. 답안지만 척 봐도 글씨를 얼마나 정성 들여 쓰는지 감탄할 정도였어요. 지금도 그 당시 조교였던 제자를 만나면 박근혜 씨 답안지를 화제로 올리곤 한답니다"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의 아버지가 박근혜 대통령 아버지의 은사이고, 김 전 회장의 형이 박근혜 대통령의 은사다. 찾아보기 쉽지 않은 인연이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청년 해외 창업 조련사가 됐다. 베트남에 '병영'을 차려놓고 청년들을 훈육하고 있다. '글로벌 YBM(영 비즈니스 매니저)' 프로그램이라는이름이 붙은 이 사업은 '대우맨'들의 모임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주관한다고 한다. 이 신문은 김 전 회장이 돈 버는 것 대신 후진을 양성하는 것을 '김우중식 재기'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썼다. 일종의 '김우중식 창조 경제'로도 읽힐 만하다.

또 다른 장면 하나. 지난 3월 22일 서울 부암동 AW컨벤션센터에서 대우그룹 창립 46주년 기념 행사가 열렸다. 이미 해체돼 없어진 기업의 행사에 '대우맨' 400여 명이 모였다. 김 전 회장도 참석했다. (서울경제)에 따르면 한 참석자는 "좁은 한국에서 벗어나 세계로 뻗어 나갔던 대우의 세계 경영과 무에서 유를 창조했던 기업가 정신을 시대에 맞게 계승해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창조'라는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대우그룹 해체에 대해 김 전 회장은 (조선일보)를 통해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대우그룹 해체가 오류였다"고까지 했다. 2006년 대우그룹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징역 8년6월과 벌금 1000만 원, 추징금 17조9200억 원을 선고받았던 김 전 회장이 자신의 과거에 대한 평가가 부당하다는 반박 인터뷰를 세상에 내놓았으니, 부활도 그냥 부활이 아니라 공격적 부활인 셈이다. 2008년 10월, 조풍언 사건에 연루돼 법정에 나와서 "(나는) 기억상실(증)까지 있어 증인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던 김 전 회장의 오늘이다.

대우그룹 해체 후 14년 만에 공격적으로 모습을 보인 김우중. 그의 등장은 우연일까? 김우중에게서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철학이 겹쳐 보인다면 이건 걱정해야 할 일일까, 환영해야 할 일일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새마을운동이 조명받고, 김우중 전 회장이 부활 조짐을 보이고,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요직을 꿰찼다. 하나회 출신이 국회의장에 선출됐고, 그 국회에서 벌어지는 청문회에 출석한 장관들은 '5.16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또 박정희·육영수 기념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진행된다. 마치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모호한 판타지문학이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이다. 다른 의미에서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일이다.

2012년 7월 19일 목요일

‘오랜 방황’ 박지만씨, “부자 336위” 비결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7-18일자 기사 '‘오랜 방황’ 박지만씨, “부자 336위” 비결은?'을 퍼왔습니다.

박근혜 후보(맨오른쪽)와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오른쪽 둘째)이 2008년 8월 15일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 묘역에서 열린 육영수씨 제34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지만 이지(EG) 회장(왼쪽 둘째)과 부인 서향희 변호사(왼쪽)도 보인다. 뉴시스

박지만·서향희 

지만씨, 히로뽕 등 5번 구속 방황
박태준이 취직시키고 김우중 돈 빌려 포철 독점공급 받는 회사 인수
박태준 자민련 시절 고속성장, 현재 코스닥 시가총액 36위

이상한 주식거래로 구설수 
구속된 삼화저축 신회장과는 체포 직전 식사 ‘로비청탁 의혹’

김현철, 김홍업, 노건평, 이상득. 최근 4명의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다가 구속된 이들이다. 강력한 권한을 가진 우리나라 대통령제의 특성상 자리와 이권을 좇는 이들은 최고 권력자의 최측근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대통령 후보의 가족에 대한 검증도 필요한 이유다.박근혜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의 동생 근령(58)과 지만(54), 이들과 결혼한 신동욱(44) 및 서향희(38)가 그와 가장 가까운 피붙이 및 배우자다.박지만은 16살 때 어머니를, 육군사관학교 3학년인 21살 때 아버지를 총탄에 잃고 많은 방황을 했다. 1986년 육군 대위로 전역했으며, 31살 때인 1989년 코카인 흡입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이후 2002년까지 모두 다섯 차례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사창가에서 히로뽕을 투약하다 붙잡히기도 했다.그를 현재의 ㈜이지(EG) 회장으로 만든 것은 지난해 숨진 박태준 전 총리다. 1989년 구속됐다 석방된 박지만을 삼양산업 부사장으로 앉혔다. 포항제철의 냉연강판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폐산을 독점 공급받아 전자제품 부품에 들어가는 전자용 산화철을 만드는 회사다. 다음해 박지만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으로부터 9억원을 빌려 이 회사 지분 74.3%를 인수하면서 대표이사가 됐다. 박태준이 자민련 총재였던 1998년 이 회사는 유망중소기업으로 선정되는 한편 산업자원부와 중소기업청에서 벤처기업으로 인증받고 몇달 뒤 과학기술부 등이 주관하는 ‘벤처기업상’을 수상하는 등 초고속 성장을 했다. 1999년 회사명을 이지로 바꿨다. 지난해 매출액 846억여원, 순이익 34억여원으로, 18일 현재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순위 36위다. 박지만은 지난해 재벌닷컴이 집계한 400대 부자에서 589억원의 재산으로 336위를 차지했으며, 그가 소유하고 있는 28.7%의 주식을 18일 현재 시가로 계산하면 1240억여원에 이른다.박지만은 몇 차례 이상한 주식거래로 구설에 올랐다. 그는 2010년 말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의 주식 30만주(4%)와 20만주(2.67%)를 장내매도해 146억여원의 시세차익을 챙겼다. 통상 대주주의 주식 처분은 장외에서 블록딜(가격과 물량을 미리 정해놓고 특정인에게 일정 지분을 묶어 일괄 매각하는 것) 방식으로 이뤄진다. 또 장내에서 팔더라도 매도 횟수를 최소한으로 제한한다. 동조 매도 등으로 시장이 교란될 수 있고, 주가 급등락으로 주가조작 의심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10월28일~11월3일 74차례, 12월28일~29일 56차례에 걸쳐 주식을 나눠 팔았다. 그것도 매일 최초 매도가보다 50~250원씩 올려가면서 팔다 거의 최고점에서 매도를 중단했다. 10월28일의 경우 2만4700원→2만4950원→2만5000원→…→2만5800원까지 17차례 매도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날 종가는 시가보다 350원 내린 2만4700원을 기록했다. 지만씨가 처분을 시작한 첫 5일 동안 이지 주식 거래량은 92만7907주로, 그가 판 주식이 3분의 1가량에 이른다. 그러나 그가 20만주를 판 12월28일~29일 이틀 동안 거래량은 476만4540주였다. 그해 12월29일 기준으로 이지 주식의 직전 6개월 동안 하루 평균거래량이 20만1868주였던 걸 보면, 거래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셈이다.박지만이 주식을 팔기 직전인 같은해 9월부터 이지의 주가는 폭등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제가 발표되며 희귀금속 테마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9월20일 1만8700원이던 주가가 한달여 만에 33%가량 치솟았다. 이에 대해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평소 거래량이 많지 않은 주식은 얼마든지 작전세력이 끼어들 수 있다”며 “박지만의 주식 매도 내용을 보면 주가조작에 이용되지 않았느냐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고 말했다.박지만은 이에 앞서 2007년 말에도 두 차례에 걸쳐 같은 방식으로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23만주(6%)를 장내매도해 80억여원을 현금화하기도 했다. 역시 1만원대 초중반이던 이지 주가가 2만원대 후반~3만원대 중반으로 치솟을 때였다.이에 대해 이지 쪽은 “박 회장도 주식 대량매매로 인한 주가등락을 걱정해 처음부터 블록딜을 시도했으나 매수자를 찾을 수 없어 우리투자증권에 주식매매를 일임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이지는 지난 1월4일 한국증권거래소로부터 불성실공시 법인으로 지정됐다. 지난해 12월14일 증권거래소는 ‘현저한 주가급등’과 관련해 이지에 조회공시를 요구했고, 이지는 다음날 “환경설비 신설 공사 공급계약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나 확정된 사항은 없는 점 외에 공시할 중요한 정보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사흘 뒤인 19일 이지는 “이사회에서 자사주 3만9750주를 처분하는 내용을 의결했다”고 공시했다. 조회공시에 대해 답변을 하면 15일 안에 자기 주식을 처분할 수 없게 돼 있는 규정을 어긴 것이다. 이에 대해 이지 쪽은 “회사 공시담당 직원이 규정을 정확히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코스닥 담당 직원과의 구두협의만으로 문제없을 것으로 경솔히 판단해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했다.그런데 거래소로부터 조회공시 요구를 받은 14일 이 회사 이광형 대표이사는 자신 소유 16만3천주를 주당 5만3900원에 장내매각해 87억여원을 현금화했다. 이 대표는 2003년 4월30일 박지만의 지분 5%인 22만5000주를 주당 3430원에 산 바 있다. 그런데 여기에 든 7억7376만원 가운데 7억7000만원은 박지만이 빌려줬다. 이지는 당시 “대표이사의 책임경영을 위해서”라고 공시했지만, 이를 위해서라면 주식매수청구권(스톡옵션)을 부여하든지 최대주주 지분이 아니라 장내매수를 통해 주가를 끌어올리는 방법이 일반적인 데 비춰보면 이례적이다. 이에 따라 박지만이 자신의 지분 일부를 이 대표 차명으로 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한편 박지만은 저축은행 비리로 수감중인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과 관련해 야당의 공격을 받고 있다. 신 회장이 체포되기 직전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같이 식사를 했고, 부인 서향희 변호사가 이 회사 법률고문을 맡았던 사실이 드러나는 등 친분관계가 알려지면서 로비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삼화저축은행은 영업정지를 당했지만 지난 2월 우리금융지주사에 합병돼 살아남았기 때문이다.이와 관련해 2003~2004년께 신 명예회장을 박지만씨에게 소개시켜줬다는 공아무개씨는 지난해 6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지만은 자기 주변 사람 상당수를 신 명예회장에게 소개시켜 줬다. 신 회장이 뭔가 부탁할 일이 있으면 박지만에게 했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 신문은 박지만이 수시로 신 명예회장을 만나 정진석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친구인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 친박계 국회의원 등 정·관·재계 인사들을 소개해 줬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지 쪽은 “박 회장은 이 회장, 정 전 정무수석을 신 회장에게 소개시켜 준 사실이 없으며, 이들은 그 전부터 서로가 잘 알고 있던 사이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김인현 기자 inhye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