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중앙정보부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중앙정보부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2년 7월 21일 토요일

박영선 “검찰, 과거 중앙정보부 역할하고 있다”


이글은 뉴스페이스 2012-07-20일자 기사 '박영선 “검찰, 과거 중앙정보부 역할하고 있다”'를 퍼왔습니다.
“새로운 공안정국이냐, 내 주변도 샅샅이 뒤지고 있어”

박영선 민주통합당 의원은 박지원 원내대표의 소환통보와 이석현 의원의 거처 압수수색 등에 대해 20일 “검찰이 과거에 중앙정보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박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은 공포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 새로운 공안정국이냐”라며 이같이 불만을 토로했다. 

박 의원은 “실제로 저도 제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 사례들을 몇 차례 지금 확인하고 있다”며 “야당의원들에 대한 표적수사이다”고 비판했다. 

앞서 박 의원은 “검찰에 범죄정보기획단이라고 있다”며 “사실상 야당의원들을 사찰하는 사찰단”이라고 폭로한 바 있다(☞ 관련기사).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에 관해서는 박 의원은 “우울하고 창피함을 느끼고 있다”며 “야당의원으로서 언제까지 흥신소처럼 그 사람의 신상털기에 나서느냐는 문제에 굉장히 디프레스 돼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지금 제1저축은행과 관련된 유동천 회장과 관련된 재판이 진행되고 있어 재판이 열릴 때마다 가보곤 한다”면서 “의혹을 제기할 만한 사안들이 매일 터져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1차적으로 대법관 후보는 인사검증을 거쳐 국회에 보내야 되는데 추천위원회 책임자가 법무부 장관이고 인사검증의 책임자가 민정수석이다”면서 “도대체 무슨 인사검증을 하고 국회로 보냈는지 그 책임론부터 제의해야 한다”고 권재진 법무부장관과 정진영 청와대 민정수석을 비판했다. 

박 의원은 “이런 분을 과연 우리가 대법관 후보로 모셔야 되느냐 하는 자괴감 같은 것이 있다”며 청문회 보고서 채택 불가 방침을 재확인 했다. 

강우종 기자

2012년 7월 16일 월요일

"박근혜 연봉 20억 받을때 난 비참한 생활…죽기전 한 풀고 싶어"


이글은 미디어스 2012-07-16일자 기사 '"박근혜 연봉 20억 받을때 난 비참한 생활…죽기전 한 풀고 싶어"'를 퍼왔습니다.
[단독인터뷰] '정수장학회 원소유자' 고 김지태씨 미망인 송혜영 씨

"(정수장학회는) 개인의 것이 아니고 공익법인인데, 제가 이사장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관계없는 제가 이사장을 관두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는 것인가요?" 지난 10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은 '아킬레스건'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며 일관된 단호함을 보였다. 2005년, 2007년 두 차례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와 '진실 ·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강제헌납"이라고 결론내렸음에도 이는 '정치공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장도 없이 끌려갔던 1962년의 기억

▲ <미디어스>는 정수장학회 창립 50주년을 하루 앞둔 13일, 고 김지태씨(전 삼화고무 회장) 미망인 송혜영씨를 만났다. ⓒ곽상아

지난 14일은 정수장학회 창립 50주년 기념일이었다. 부일장학회가 강제로 국가에 헌납돼 정수장학회로 넘어간 지 벌써 반백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는 정수장학회 창립 50주년을 하루 앞둔 13일, 고 김지태씨(전 삼화고무 회장) 미망인 송혜영씨를 만났다. 1962년 송씨는 남편인 김지태씨가 일본에 가 있는 사이 김지태씨의 귀국을 종용하기 위한 인질용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1달 반 가량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가슴 속에 피맺힌 한이 있다"는 송혜영씨는 50년 전 영장도 없이 새벽에 끌려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새벽에 갑자기 두 사람이 찾아왔어요. 중앙정보부에서 왔다고 하더군요. 영장도 없이, 다짜고짜 '할 이야기가 있으니 가자'면서. 무슨 죄목인지도 모른 채 중앙정보부 부산지부에 끌려가야 했지요. 아침에 도착했었는데, 점심이 지나도록 굶기면서 그냥 기다리게 하더니 오후에는 형무소에 집어넣었어요. 제가 회장님(남편인 고 김지태 회장을 의미)과 독일여행에서 기념으로 사가지고 온 다이아반지와 카메라에 대해서 '밀수'라고 하면서…. 정말 기가 막혀서…. 그때 당시 장신구 하나 정도는 승낙됐기 때문에 저 역시 손에 낀 상태에서 (세관원에게 반지를) 보여주었고 그게 자동 신고되는 거였거든요.
이후에 제 재판이 시작됐고, 세관원도 재판에 불려왔는데 그 사람이 뭐라고 하겠어요? 당연히 '정상통과된 물건이고, 밀수가 아니다'라고 하지요. 그런데 며칠 있다가 그 사람이 세관원 자리에서 해고되더군요. 그 가족은 어떻게 됐을까요? 참 그때는…기막히는 일이 많았지요. 제가 그때 감옥에서 한달 반 정도 있었어요. 회장님은 건강이 안좋아 일본에서 치료중이셨는데, (제가 인질로 잡혀있으니까) 귀국했고, 귀국하자마자 중앙정보부에 끌려갔지요. 그후 저는 사흘만에 풀려났구요…."

박근혜가 연봉 20억 받는 사이, 돈 되는 것 다 팔아 생활비 충당

▲ 송혜영씨가 남편인 고 김지태씨가 남긴 수첩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 ⓒ곽상아
사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9년 10월 26일 갑작스럽게 사망했을 당시 김지태 회장 측은 '이제는 부일장학회를 돌려받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강탈한 장본인이 죽었으니까 조만간 되찾게 될 줄 알았다"는 것. 그러나, 상황은 유족들의 바람과 정반대로 흘러갔다. 뒤이어 들어선 전두환 정권은 5.16장학회(부일장학회)를 고 김지태씨 가족들에게 돌려주기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남은 가족들에게 '사유재산'으로 안겨주었다.
"절망했습니다. 박근혜 의원은 김 회장님이 '자발적으로 장학회를 기증한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예요. 회장님께서 장학회에 대해 큰 애정을 가지고 좋은 일도 많이 했는데, 이렇게 강도질할 수 있는 건가요?
정수장학회는 지난 50년간 3만여명에게 장학금 혜택을 주었다고 하는데, 왜 남의 돈을 뺏어서 장학금 준다고 생색을 내는 걸까요? 부일장학회는 1년에 3000명씩 장학금을 주었고, 그걸 50년으로 환산하면 15만명이에요. 만약 부일장학회가 계속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훨씬 더 많은 학생들이 장학금 혜택을 받지 않았겠습니까?"
정수장학회가 사실상 박근혜 의원의 사조직으로 전락해가는 사이, 장학회의 원 소유자였던 김지태씨의 미망인 송혜영씨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야 했다고 한다.
"가지고 있는 것 중에 돈 되는 것은 모두 팔아서 생활비로 써야 했어요. 하도 생활이 힘들어서 62년에 박정희 정권이 '밀수죄'라고 했었던 다이아반지와 카메라도 다 팔아서 생활비로 썼어요. 그 물건들 때문에 난생 처음으로 형무소까지 갔었고 온갖 고초를 당했기 때문에, 웬만하면 팔지 않으려 했었는데…생활이 곤란해서 팔지 않을 수 없었지요….
지금도 생활이 매우 힘들어요. 위수술, 뇌수술 등 큰 수술을 5번이나 해서 건강도 안좋은데 병원비도 없고. 택시 탈 돈도 없어서, 65세 이상이 사용할 수 있는 무료 지하철 표를 이용하면서 다닙니다. 그런데…저와 달리 박근혜 의원은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연봉으로 20억 넘게 가져가지 않았나요? 이게 정상적인 것인가요?"

"박근혜 측이 정수장학회 털고간다"고? 정치적 쇼다

박근혜 의원 측이 대선을 앞두고 고 김지태씨 유족과 접촉하는 등 '정수장학회' 문제를 털고 가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으나, 송혜영씨는 이 보도에 대해 "전혀 사실 무근의 보도"라며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 의원 측에서 전혀 연락온 바가 없다"며 "박근혜 의원이 실제로 유족들과 논의한 것도 없으면서 마치 해결의지가 있는 것처럼 정치적 쇼를 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것.
"만약 우리와 접촉을 했다면 (대선출마를 선언할 때) 어떤 여지가 있었을 텐데,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지 않았습니까?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이 되어서 새 시대를 열겠다고 하는 걸 보면서 해묵은 정수장학회 문제도 잘 해결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출마선언날 밝힌 내용을 보고 대단히 실망했어요.
부디, 박근혜 의원이 저희 유족들의 뜻을 헤아려 주셨으면 합니다. 재산을 강제로 헌납당한 이후, 저는 생활비 걱정을 하면서 사는데…. 계속 이러는 것은 인간된 도리가 아니지 않아요?"
송혜영씨는 '사회환원'이라는 김지태씨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서는 "박근혜 의원 측 이사진은 전부 물러나고, 예전의 부일장학회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송씨는 지난 6일 차남 김영우씨가 CBS 라디오 와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박근혜 전 대표의 사과도 아니고, 최필립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진의 강제퇴진이나 그런 게 아니다"라며 "유족들이 추천하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사들이 장학회를 운영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밝힌 것에 대해서는 "차남의 의견일 뿐 유족 전체의 뜻이 절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현재 차남이 가족들과 동떨어진 생각을 혼자서 하고 있다. (차남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이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차남 한 명의 말만 듣고 '유족의 뜻'이라고 보도해선 절대 안 된다"는 것. 

마지막으로, 송씨는 "박근혜 의원이 좋은 일 하는 셈 치고, 이제 그만 정수장학회를 유족들에게 돌려줬으면 한다"며 "내가 죽기 전에는 반드시 부일장학회를 되찾아서, 남은 가족들끼리 '사회환원'이라는 회장님의 유지를 받들고 싶다"고 호소했다.
"제 나이가 80을 넘겼습니다.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병 투성이인데…. 제가 굉장히 한이 많은 사람입니다. 죽기 전에 한 좀 풀고가고 싶어요. 돌아가신 회장님께서 부일장학회를 되찾고자 얼마나 애쓰셨는지 몰라요. 죽어서라도 '영감, 생전에 그렇게 되찾고 싶어하던 부일장학회를 드디어 원상복귀시켰어요. 좋지요?'라고 말할 수 있도록이요…. 아버지가 한 나쁜 짓을 딸이 바로잡는다면, 아버지도 살고 자기도 사는 길이 될 텐데 왜 저렇게 붙들고 있는 건지 정말 도통 이유를 모르겠네요…."

곽상아 기자  |  nell@mediaus.co.kr

2012년 6월 11일 월요일

‘육영수 영화화’에 트위터엔 ‘박정희 행적 검증’ 후끈


이글은 뉴스페이스 2012-06-11일자 기사 '‘육영수 영화화’에 트위터엔 ‘박정희 행적 검증’ 후끈'을 퍼왔습니다.
“주색탐닉 톱스타 섭렵, 육영수에 폭력” (신동아)기사도 급확산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의 어머니인 고 육영수씨의 일대기와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러브스토리를 영화화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1일 트위터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트위플들은 그간 보수언론의 미화로 가려졌던 박 전 대통령의 실체에 대한 의견과 관련 기사 등을 너도나도 올려 트위터에는 졸지에 ‘박정희 검증’이 불붙은 모습이다. 팟캐스트 방송 ‘나는 친박이다’와 ‘라디오 반민특위’는 그간 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의 실체에 대한 집중조명으로 큰 호응을 얻어왔다. 

노회찬 통합진보당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에서 “박근혜 의원의 부친인 박정희 전 장군이 남로당의 핵심당원으로 가입한 죄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사람 아니냐”며 “원조 종북은 박정희 장군”이라고 일갈했다. 

노 의원은 “과거에 어느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종북이라고 얘기한다면 그런 뜻에서는 박정희 장군”이라며 “새누리당이 사실상 박근혜라는 한 사람의 유일체계로 가고 있는데, 사상마저도 일체의 다른 생각을 허용하지 않는 유일사상 체계로 가려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맹비난했다. 

언론인 고종석씨는 이날자 (한겨레)의 ‘박근혜가 대통령이 돼선 안 될 이유’란 제목의 칼럼에서 “왜 박근혜는 다른 새누리당 후보들과 다른가? 그가 박정희의 딸이기 때문이다”며 “그는 아버지의 정치적 과오를 손톱만큼도 인정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불법으로 빼앗아 지금 그가 움켜쥐고 있는 엄청난 재산을 본디 주인에게 되돌려줄 생각도, 나라에 헌납할 생각도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고씨는 “박정희는 누구인가? 온 겨레가 일본 제국주의의 강압적 식민통치에 신음하고 있던 시절,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를 졸업하고 일본 관동군 장교로 복무했던 사람이다”며 “그는 일본의 괴뢰국가 만주국의 ‘국군’에 들어가기 위해 “만주국과 조국(일본-인용자)을 위해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을 다하겠다’”는 혈서를 쓴 사람이다”고 행적을 짚었다. 

고씨는 “그가 관동군 장교로 복무하면서 조선인 항일투사들에게 총 한 발 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는 이미 민족을 배신한 사람이다”며 “민족반역자라는 말도 걸맞지 않을지 모른다. 스스로 썼듯, 그의 조국은 일본이었으니까”라고 비판했다.

또 고씨는 “박정희는 누구인가? 해방 뒤 좌익 세상이 이내 올 듯하자, 군대 안의 남로당 세포들을 거느리고 대한민국의 전복을 꾀하던 사람이다”며 “그 일이 발각돼 군법회의에서 제게 사형이 구형되자, 군 수사당국에 동료들을 모조리 밀고하고 제 한 목숨 건진 사람이다”, “요즘 ‘종북’, ‘종북’ 하지만, 박정희야말로 원조 정통 종북이다”고 일침을 날렸다. 

아울러 고씨는 “학생과 시민들의 피로 이룩한 저 빛나는 제2공화국을 군사반란으로 무너뜨리고 18년간 이 나라를 철권으로 옥죄었던 사람이다”며 “그 시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애매하게 빨갱이로 몰려서 죽고 다치고 갇히고 망가졌다. 그 당사자들과 유족들은 지금도 따돌림과 가위눌림 속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이력을 짚었다. 

백찬홍 씨알재단 운영위원(mindgood)은 “박정희는 누구인가? 1) 독립군을 토벌하던 관동군의 장교 2) 해방후 남로당 세포들을 거느리고 대한민국의 전복을 꾀하던 원조종북 3) 4.19혁명을 군사반란으로 무너뜨리고 18년간 철권통치한 독재자. 그런 그를 뭐든 잘했다고 주장하는 박근혜”라고 크게 3가지 점에서 정리했다.

EBS 지식채널e 출신 김진혁 PD(madhyuk)는 “박정희나 전두환을 독재자보단 살기 좋은 시대를 만든 지도자로 일부 장노년층이 기억하는 건 당시 언론이 독재자가 아닌 영도자(?)로 끊임없이 미화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이에 비하면 모두 부차적일 뿐이다. 본질은 언론이다”고 언론에 의한 박정희 우상화를 주장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unheim)는 “극우파와 주사파가 같은 부류임을 몸으로 보여주는 분이 박근혜 선친 박정희씨죠. 일제때는 독립군 때려잡던 관동군 소좌, 해방직후엔 남조선로동당 군책을 하다가, 쿠데타로 18년 동안 군사독재... 이 분이 극우파와 주사파의 공동원조이십니다”라고 독설을 날렸다. 

파워블로거 ‘아이엠피터’는(impeter701)는 “故 육영수 여사 영화가 왜 이 시기에 나올까요? 그 영화에는 육영수 여사와 박정희가 매번 여성편력 때문에 부부싸움했던 이야기도 나오나? 루머라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가 쓴 ‘대통령 박정희의 술과 여자’ 기사에 있었던 사건”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현재 트위터와 다음토론방,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송문홍 (신동아)기자의 1998년 11월 기사가 널리 확산돼 있다(☞ 기사 보러가기 ). 

(박정희의 유산)(김재홍著·도서출판 푸른숲) 중 당시 중앙정보부원으로 10·26사건에 가담했던 박선호씨의 군법회의, 증언을 토대로 ‘박정희의 술과 여자’를 소개한 내용으로 박 전 대통령의 여성편력과 부인 육영수씨에 가한 폭력 등이 서술돼 있다.

기사는 “충격적인 것은 그 자리 ‘술시중 여인’으로 일류 탤런트와 가수를 비롯해서 연예인을 지망하는 나이 어린 여대생까지 불러들였다는 사실이다”며 “대통령전용 비밀요정의 호스티스를 시중에서 조달하는 책임자가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였다”고 밝혔다. 

또 “대통령 술자리에 한번씩 왔다 간 여자들은 당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입을 벌릴만한 TV탤런트와 가수 등 연예계의 일류 스타들이었다고 대통령 박정희의 채홍사는 증언했다”고 설명했다.

기사는 또 “박정희의 술과 여자는 많은 비화를 남겼다. 70년대 초 어느날 대통령부인 육영수 여사를 면담한 어느 여성은 육여사의 얼굴에 멍이 든 것을 본다”며 “소문은 퍼지고 청와대출입기자들이 그 배경을 취재했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박정희가 재떨이를 던졌다느니 손찌검을 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고 보도했다. 

이에 한 기자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영부인 얼굴에 멍이 들었던데, 부부싸움을 하신 겁니까?”라고 물었고 이 말에 대통령은 몹시 어색한 얼굴로 헛기침만 했다며 부부싸움은 대통령의 주색 때문이었다고 (신동아)는 육영수씨에 대한 폭행 사실도 전했다. 

(신동아)는 “술자리 마련과 여자 조달하는 일을 청와대에서 한다는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는 날이면 큰 낭패라는 생각에서 그 일을 비밀 공작수행기관인 중정으로 떠넘”겼다며 “어느 모로 보나 그 일을 맡기엔 중정이 안성맞춤이었다, 국가기밀이라는 허울좋은 베일 뒤에서 각하의 술과 여자가 난무하게 된 것이다”고 중정이 여자 조달을 도맡아 했음을 밝혔다. 

기사는 또 “박정희의 주색탐닉이 육여사가 죽은 후 홀아비 고독 때문에 생긴 일만은 아니었다. 육여사가 살아있을 때도 주색으로 충돌이 잦았다”며 “다만 홀아비가 된 후 그의 사생활이 더욱 절제없이 무너진 것은 사실이며 이것이 그의 운명을 재촉하는 결과가 됐다”고 전했다. “10·26사건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박정희의 사생활 문란과 판단력 마비가 직접 동기를 제공했다는 것이 박선호의 증언 내용이다”고 (신동아)는 덧붙였다.

기사는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은 일년 중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고위층이 사생활을 즐기는 데 그의 모든 시간을 바쳐야 했고 그것이 공무였다”며 소행사, 대행사의 빈도가 하도 심해서 박선호씨가 이따금 궁정동 안가 비밀요정의 관리자였던 남효주 사무관하고 같이 앉아서 ‘대통령이지만 너무 심하다’는 불평을 주고 받았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신동아)는 “채홍사의 증언에 따르면 박정희의 술자리 여인으로는 이미 유명해진 기성 배우보다는 20대 초반의 연예계 지망생이 더 선호됐다. 그중엔 유수한 대학의 연예 관련학과 재학생도 있었다”고 전했다. 

또 (신동아)는 “대표적으로 그런 지원자들을 골라 보내주는 중간책이 장충동에 있던 모요정의 김 마담이었다. 김마담은 오랫동안 그 분야에서 잔뼈가 굵어 거물정치인과 접하려는 ‘화류계 매미(賣美)’들의 대모였다”며 “특히 연예계에서 스타가 되기 전 20대초의 나이 어린 신참들이 김마담으로부터 은밀히 제의를 받으면 대부분 응락했다”고 서술했다. 

“이들은 그런 자리에 갔다온 경력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그것으로 연예계의 정상에 다가가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했다”며 “그런가 하면 반강제 차출도 있었다. 박 대통령이 영화나 TV연예프로를 보다가 맘에 든 배우나 가수의 이름을 대며 ‘한번 보고 싶다’고 하면 큰 물의가 일어나지 않는 한 대개 불려왔다”고 전했다. 

기사는 “갑작스러운 궁정동 연회 차출지시로 영화나 TV프로 촬영 스케줄이 펑크나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연예계에서 힘쓰는 ‘협회’에서 무조건 출두하라는 연락이 가는 것이다”며 “이런 일로 한두 차례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는 연예계의 제작진 사이에 소문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네티즌들은 해당 기사에 “임상수 감독 (그때그사람들) 영화에 대~충 나오죠. 박정희 채홍사가 한석규역이었던 것 같습니다”, “박정희의 술과 여자 그리고 그의 아내 육영수에게 가해진 폭력 채홍사 박선호가 군법회의에서 증언한 이야기들을 트친님들께 공개합니다!”, “길지만 꼭 읽어볼 내용 다카키 마사오 진짜 추저버!”, “아직도 박정희를 적법한 대통령으로 기억하는 대한민국”, “총에 맞기를 다행이다. 안그랬다면 무기징역이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진락 기자

2012년 4월 24일 화요일

"정수장학회, 그녀가 '오빠' 라 부르던 전두환의 생계용 배려"


이글은 미디어스 2012-04-23일자 기사 '"정수장학회, 그녀가 '오빠' 라 부르던 전두환의 생계용 배려"'를 퍼왔습니다.
[인터뷰]박근혜 아킬레스건 '정수장학회' 저격수 한홍구를 만나다

(대한민국사) 저자로 유명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아킬레스건'인 '정수장학회'의 '사회환수'를 요구하는 저격수로 나섰다. 한홍구 교수는 2005년 국정원 과거사위에서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부일장학회 헌납사건' 조사를 담당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가장 촘촘하게 들여다 본 대표 전문가로 꼽힌다.

▲ <미디어스>는 20일 한홍구 교수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곽상아

부일장학회 헌납사건은 5.16 쿠데타 후 군부세력의 핵심인 중앙정보부가 당시 부산지역 기업인이던 고 김지태 삼화고무 사장의 부일장학회를 강제로 국가에 헌납하게 한 일을 말한다. 당시 부일장학회는 부산시내 땅 10만여평과 부산일보, 부산문화방송(현 부산MBC), 한국문화방송(현 MBC) 등 언론사 주식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정부에 강제로 헌납당했고, 이후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딴 정수장학회 설립으로 이어졌다.
"기자들, 박근혜에게 '핵심'을 겨냥한 질문을 하라"
한홍구 교수는 3월 19일 출범한 '정수장학회 사회환수 공동대책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3월 26일부터는 정수장학회 문제 등을 대중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트위터(@history_hongkoo) 활동도 시작했다.
한홍구 교수는 '정수장학회 저격수'로 나서게 된 이유에 대해 20일 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위원장이 부동의 대선 후보로 등장하고, 부산일보 사태 등이 터지면서 '정수장학회'가 큰 화두로 떠올랐지만 언론노조 차원에서 나서는 것 말고는 체계적인 문제제기가 없는 것 같았다"며 "내가 아무래도 당시 사건을 조사해 역사학자 중에는 (정수장학회 문제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돼버렸기 때문에 '공익근무'에 나선다는 심정으로 올 1년간 죽도록 싸워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정수주장학회 문제의 '섬세한 디테일'들을 알리기 위해 트위터를 시작하게 됐어요. 다들 '정수장학회 사회환수'라는 결론만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맨날 똑같은 이야기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트위터를 시작한 지 1달 정도 됐는데, 사람들이 이 문제를 잘 모르고 있구나 하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한홍구 교수가 트위터를 시작하게 된 이유에는 '기자들의 무식'도 한몫 했다.
"기자들이 사건 자체를 잘 몰라요. 그래서 그런지, 박근혜 위원장한테도 맨날 똑같은 질문만 하죠. 박근혜 위원장이 '정수장학회는 이미 사회에 환원된 공익법인이기 때문에, 나와는 상관없다'라고 말하면 더 이상 질문을 안합니다. 그렇게 단순하게 질문해서 끝내버릴 문제가 아닌데…참 답답했어요.
'민주국가에서 언론사를 빼앗기 위해 사람을 가둬두는 것이 과연 옳은 행동인지'에 대해 박근혜 위원장이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있는지 핵심을 겨냥하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 조선일보가 맘에 안든다고 방우영 명예회장과 일가 친척을 다 잡아놓은 뒤 조선일보를 헌납받은 일이 있었다면'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물어야 합니다. 아마 박근혜 위원장은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펄쩍 뛰겠죠.
그렇다면, 과거에 벌어진 똑같은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물어야 하겠죠? 지나간 일이니까 그냥 덮어두자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런 일이 재발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형성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부일장학회 헌납사건 조사 "대한민국의 못볼 것을 봤다"


▲ 한홍구 교수가 2005년 국정원 과거사위에서 담당했던 부일장학회 헌납사건 관련 자료를 훑어보고 있는 모습. ⓒ곽상아

2005년 부일장학회 헌납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기 전까지, 한홍구 교수 역시 이 사건에 대해 "부일장학회의 원 소유자인 김지태씨와 박정희의 개인적인 원한에 의해 벌어진 일" 정도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사를 하고 나니 부일장학회 헌납사건은 형식상 "국가권력이 동원된 납치 강도극"이요, 내용적으로는 "언론장악" 사건이었다.
"저도 처음에는 부일장학회 헌납의 진실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어요. 원 소유자인 김지태씨와 박정희의 개인적인 원한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는 소문이 있었고, 유족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조사를 해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핵심은 '언론장악'입니다.
1960년 3.15 부정선거 당시 부산MBC가 데모를 생중계 했었거든요. '혁명'을 중계한 거니까 당시로서도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었겠죠? 경찰들은 (중계를 막으려) 부산MBC를 포위했었는데, (경찰이 막을 게 뻔하니까) 중계차를 갖다놓고 부산일보 김지태 사장실에서 데모를 중계했었거든요. 그 당시 박정희가 부산에 있었습니다. 군수기지사령관으로 부산에 있으면서 부산일보와 부산MBC의 엄청난 영향력을 보고 '정권 장악을 위해 언론이 필요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거죠.
그런데 자기들도 빼앗은 언론사를 국가소유로 해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자진헌납처럼 꾸미기 위해 문서도 위조하고 '장학회'라는 형태로 언론사를 소유한 거죠. 국가가 무슨 장학회가 필요합니까? 육영사업에 뜻이 있었던 게 아니라 '장물을 담을 바구니'로서 장학회라는 형식을 취한 거예요. 지금 MB 정부의 언론장악이 문제되고 있는데 언론장악의 씨앗은 박정희 때에 잉태된 것입니다."
한홍구 교수가 당시 부일장학회 헌납사건을 조사하면서 느낀 심정은 "대한민국의 못볼 것을 봤다"는 것.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조사하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을 최대한 만났습니다. 부일장학회 헌납사건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아주 세심한 것 하나까지 복원해 나가는 과정이었지요. 조사를 진행하면서 '정말 이런 짓을 한 자들이 국가권력을 가지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잘못된 게 아직까지도 바로잡히지 않고 있구나, 본질적 구조를 바꾸지 않고 표면적인 것만 몇 개 고쳐서는 한국사회에서 민주화가 이뤄질 수 없겠다고 느꼈지요."
"전두환, 박근혜 돌봐주기 위해 '정수장학회' 탄생시켜"


▲ 박정희의 '양아들' 격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뒷줄 왼쪽)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포즈를 취한 MBC보도 캡처. 전두환 전 대통령 옆은 차지철 전 경호실장이며, 박정희 왼쪽에 있는 이는 차녀 박근영씨.

박정희 정권이 62년 부일장학회를 뺏어 탄생시킨 '5.16 장학회'는 82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정수장학회'로 재탄생된다. 한홍구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5.16 장학회'와 '정수장학회'의 성격은 굉장히 다르다. 준국가기구였던 '5.16 장학회'가 '정수장학회'로 탄생하면서 사실상 박근혜 위원장의 사조직이 되었다는 것. 박정희의 '양아들'이자, 박근혜 위원장이 사석에서 '오빠'라고 불렀던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부모를 잃은 박근혜 위원장의 '생계'를 챙겨주기 위한 차원에서 '정수장학회'가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형식적으로는 재단법인이었으나 사실상 준국가기구였던 '5.16 장학회'는 박정희가 죽고난 이후 공중에 붕 뜨게 됩니다. 박정희의 호위병 출신인 전두환 입장에서는 '준국가기구인 5.16장학회를 어떻게 할 것인가' 보다 '박정희의 남은 가족들을 어떻게 돌봐주느냐'가 더 큰 문제였지요. 박정희는 전두환을 양아들처럼 생각했고, 박근혜 역시 사석에서 전두환을 '오빠'라고 불렀으니까요. 부모를 잃은 박근혜 형제들을 어떻게 먹고살게 해줄까 고민하다가, 5.16 장학회를 정수장학회로 바꿔 사실상 박정희 일가의 사유재산으로 만들어주게 된 겁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어마어마하게 커진 MBC를 박근혜에게 다 줄수는 없어, 70%는 KBS에 주고 30% 지분을 떼어 정수장학회에 준 거죠. 87년 민주항쟁을 거치면서 KBS가 가지고 있던 70%의 지분을 담당할 방송문화진흥회가 만들어졌어요. 원래는 100% 김지태씨 소유였는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방송 MBC의 지분도 여러 번 손을 탄 '장물'인 거죠. 이 잘못된 구조를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근혜, 언제까지 '상관없다' 할 건가?"
때문에, 정수장학회라는 '장물'이 아직까지도 반환되지 않고 있는 것은 '민주국가의 비극'이다. 그러나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나와는 상관없는 문제"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다.
"딸로서 아버지의 강도짓을 인정하기 힘들긴 하겠지요. 인간적으로. 그러나 그것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일국의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이 이렇게 침묵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일반 개인이 아니잖아요? 국가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사람으로서, 과거의 악행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국민에게 줘야합니다. 국민들은 정치지도자에게서 이 문제에 대한 해명과 재발방지 약속을 들을 권리가 있는 거구요. 박근혜 위원장의 인정 여부와 상관없이 정수장학회가 '국가최고의 정보기관을 동원한 최악의 인질강도극'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니까요.
만약 박근혜 위원장이 '정수장학회의 원상회복'을 원칙적으로 말한다면, 정치지도자로서의 위상이 지금보다 굉장히 높아질 것입니다. 지금처럼 '나몰라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비겁하죠.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데는 한 명의 평범한 사람도 책임이 있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위원장은 한 나라의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열두살 때부터 청와대 생활을 했고, 유신 체제의 중요한 부분이었잖아요.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을 맡으면서 10년동안 20억 가까이 연봉으로 가져갔구요.
박정희는 다른 권력자들과 달리 청렴했다고 하는데 '허구'에 불과합니다. 물론, 화장실 변기에 벽돌을 넣었다든지 구멍뚫린 런닝을 입었다든지 이런 것은 모두 사실일 겁니다. 당시 사람들이 모두 그랬던 것처럼, 검약을 생활화하고 소박한 생활을 했을 거예요. 저도 그 점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습니다.
문제는 부정축재죠. 박정희 이후 박정희의 양아들이었던 전두환이 정권을 잡으면서 (박정희의 개인비리를) 다 덮어버렸기 때문에 저희가 모르고 있는 부분이 많아요. 그런데 5.16 군사반란을 일으킬 당시만 해도 신당동에 낡은 기와집 한 채만 가지고 있었던 사람의 자녀들이 지금은 10조원 훌쩍 넘는 자산을 놓고 다투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한국경제의 기적보다 더 놀라운 재테크 신공 아닙니까?(웃음) 과연 정상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증식한 걸까요?"
한홍구 교수는 정수장학회 사건의 전모를 알리는 책도 8월경 낼 예정이다.
"장물이 아직도 반환되지 않고 있는 이 나라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백만부 이상 팔려봤자 다 무슨 소용입니까? 이건 민주주의를 할 거냐, 말거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예요.
만약 최근에 일어난 일이었다면, 가둬놓은 사람을 감옥에 보내야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법정 시효가 만료됐다고 하더라도, '나는 물러나서 상관없는 일'이라고만 하는 게 과연 유력 대선주자에 걸맞는 행동인가요?"

곽상아 기자  |  nell@mediaus.co.kr

2012년 4월 16일 월요일

언론 여론조작이 판세 뒤집은 '부정선거'


이글은 프레시안 2012-04-16일자 기사 '언론 여론조작이 판세 뒤집은 '부정선거''를 퍼왔습니다.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박정희 후보의 것이건 김대중 후보의 것이건, 유세화면은 사전에 철저한 '손질'과정을 거쳤다. 박정희 후보의 화면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야 했고, 열기가 뜨거워 보여야 했다. 허나 김대중 후보의 화면은 박정희 후보의 것과 차별화 되어야 한다는게 '지침'이었다. 청중이 드문드문 서있는 장면을 골라서방송에 내보내야 했다. 1971년 4월 제7대 대통령 선거 때 그랬다. 필자는 그 방송사의 입사 3년차인 병아리 기자였다.

중앙정보부의 '지시'가 어명(御命)처럼 행세하던 때였다. 군말 없이 영상을 만들어 가던 선배들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있다. 보도국도 촬영실도 다 말을 못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선배들조차 그러던 때인데다, 선배들 담배 심부름까지 해야 했던 시절이라 필자는 무어라 말을 할 계제가 못 되었다. 그해 5월에 치러진 제8대 국회의원 선거 때도 그랬다. 여당 유세는 사람이 많고 야당은 청중이 듬성듬성 해야 했다.

그때와 다르지 않은 '영상조작'이 이번 제19대 총선에서도 등장해 맹위를 떨쳤다. MBC노조는 편파화면의 빈도와 행태까지 밝히며 보고서를 내 놓았으나, 꼭 그 보고서가 아니더라도 조금만 관심 있게 TV뉴스를 본 사람은, MBC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방송들이 어떤 식으로 영상을 손질해 내보냈는지 대개는 짐작한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은 항상 거리의 많은 인파속에서 바람을 일으키며 웃었다. 한명숙 민주당 대표는 겨우 두세명이 함께 걸어가거나 회의하는 장면이 적지 않게 나왔다. 차별화 되었다. 박근혜 위원장 옆에는 항상 자기 이름이 적힌 어깨띠를 메고 지역후보가 함께 했으나, 한명숙 대표는 지역후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경우까지 있어 "누구를 지원하고 있는지"하는 생각이 들게도 했다. 대체적으로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 화면이었다.

특히 앵글의 편파성은 심했다. 예를 들자면 서울시청 앞 광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광장 옆 건물의 1층이나 2층쯤에서 찍은 화면과, 빌딩 옥상에 올라가 전체광경을 촬영한 화면은 느낌에서 보통 차이가 나는 게 아니다. 그런 식으로 비교되는, 서로 상반되는 형태의 영상을 얼굴에 철판도 깔지 않고 태연히 내 보냈다. 방송들이 그랬다.

때 마침 파업 중이라 조금도 기자들 눈치 볼 필요 없이, 거리낌 없이 그런 짓 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영상 뿐 만이 아니었다. 기사 내용도 그랬다. MBC노조는 "선거기간 중 총선보도 역사에 길이 남을 최악의 편파 뉴스가 나갔다"고 목청을 높혔다. 그러나 영상 조작은 앞서 말한 1971년 대통령 선거가 효시 아니었나 싶다. 말하자면 이번 총선의 TV뉴스는 정확히 41년 전으로 시계바늘이 되돌려진 상태에서 전파를 탔다는 이야기다.

물론 전두환 군부통치시대에도 여론조작은 무수히 많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아버지 때 저질러진 '불공정'이 딸의 시대에 또 등장한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적 비극이다. 한 해설가는 이번 총선에서 승패가 갈린 요인을 놓고 "새누리당에는 박근혜가 있었고, 민주당에는 박근혜가 없었기 때문에 그리됐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이 특별한 리더십으로 어려운 형편의 한나라당을 구원하고, 승리를 이끌어 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정확한 표현인지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있다. 선거의 전 과정을 통해 언론이 보여준 총체적인 편파보도를 감안한다면, "새누리당에는 박근혜가 있는 것처럼 (언론에 의해) 비쳐졌고, 민주당에는 박근혜가 없는 것처럼 비쳐졌기 때문에 그리 됐다"는 게 바른 표현이 될듯하다. 한명숙 대표의 리더십에 다소 문제가 있다 치더라도 그렇다.



▲ 방송 3사와 연합뉴스의 파업 기간 동안 치러진 총선의 선거보도는 공정성을 의심케 했다. ⓒ뉴시스

이번 총선에서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한 게 '김용민 막말 파문'이었다고들 말한다. 이론을 다는 사람이 없다. 민주당에서도 그랬다. 그 때문에 3040유권자들의 투표율이 낮아졌고, 지역적으로는 충청ㆍ강원에서 영향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어떤 언론사에서는 김용민 막말이 야권 연대의 15개 의석(비례포함)을 날렸다고 했다.

이번 총선에서 2000표 차이 이내로 승패가 갈린 지역구가 19곳이었다. 이중 11개 지역구를 막판에 새누리당이 가져갔다. 그 '막말' 때문에 초박빙지역의 야권 단일 후보들에게 1~3% 포인트씩의 마이너스 효과가 나타났고, 그게 바로 야당 우세였다가 여당 차지로 넘어간 초박빙 지역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요컨대 막말 파문 때문에 새누리당으로 넘어간 의석수가 대충 11~15석이라는 이야기다. 그게 넘어가지 않았다면, 야권연대는 151~155석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막말 파문에다 불을 지피기 위해 결사적으로 노력했던 언론들의 역할이 새삼 주목을 받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용민 후보의 막말은 용서받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김 후보는 사퇴해야 마땅했다.

방송사들은 4일부터 연일 주요뉴스가 그 이야기였다. 상황 진전도 없는 같은 내용을 계속해서 뉴스 앞머리에 지겹도록 내보냈다. 조선일보는 4일부터 사설을 포함해 모두 41건의 기사와 칼럼을 쏟아 내 놓은 것으로 보도되었다. 방송과 신문들이 거의 다 그랬다. 그러나 언론의 그런 보도행태는 도가 지나쳤다. 너무 나갔다. 균형 감각이나 공정성도 무시되었다.

발행부수는 적어도 진보 성향의 신문들은 '김용민 사퇴'를 요구하는 사설을 실어 균형을 잡기도 했으나, 방송과 조중동 등 신문들은 달랐다. 별도로 도덕성 문제가 불거진 새누리당 후보들 모두에게는 전혀 다른 잣대를 갖다 대면서 편파보도의 깃발을 높이 들어 올렸다. '막말파문'이라는 이름의 '여론조작'에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는 소리는 그래서 나온다.

암에 걸려 숨진 친동생의 부인을 성폭행 하려 했다는 새누리당 후보가 있다. 피해자인 '제수씨'가 증언을 하고, 그녀의 아들인 조카가 후보인 큰아버지와의 대화를 녹음했다는 녹취록까지 들고 나왔다. 당선자가 된 본인은 펄쩍뛰고 있으나, 피해자가 다른 사안도 아닌 '제수씨 성폭행 미수' 문제를 거짓으로 들고 나온 것 같지는 않다.

다른 사람의 태권도 관련 논문을 거의 '복사'하다시피 했다(표절 수준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렇게 박사학위를 받아 대학교수까지 되었다고 했다. 그 부정한 소행을 감춘 채 IOC선수위원에 당선 돼 세계적 명사 행세를 하고 있는 후보도 있다. 이들 사안은 '막말'을 훨씬 뛰어넘는 '부도덕' 사례였다. 그러나 언론이 이들에게 들이댄 기준은 '막말'의 경우와는 너무도 달랐다. 부도덕에 대한 질타대신 '후보 간 비난사례' 정도로만 보도하기도 했다. 그나마 입 다문 언론도 있었다.

일본이 우리 땅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삼아,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 가려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 독도를 "현실적인 분쟁지역으로 봐야한다"는 일본논리를 대변한 어처구니없는 후보도 있다. 듣기에 따라서는 독도가 우리 영토도, 일본영토도 아니라는 기가 차는 이야기가 된다. "오래전 쓴 글이라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고 그는 발뺌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가 서울대 동문 카페에 이 같은 글을 올린 것은 7~8년전 이었다. 김용민 후보가 인터넷 성인 방송에서 막말을 한 것도 7~8년전 이었다. 다른 것도 아닌 '독도 망언'을 한 새누리당 후보에 대해서도 언론은 무언가 말을 해야 했다.

언론의 편파보도를 통한 여론조작이 선거 판세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민주당으로서는 여소야대의 기회를 놓쳤다고 억울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귀 기울여야 한다. 작년 10월의 서울시장 보궐선거때도 언론의 편파보도는 다름없이 극심했다. 그런데도 박원순씨는 당선됐다. 여론조작으로 '공제'되고도 남을 만큼의 지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편파보도 공제 말고도 민주당은 그동안 공제된 게 적지 않았다. 우선 공천과정에서 오만에 들떠 계파별 나눠먹기나 하다 공제된 게 많았다. 막말파문에서 결단 못 내리고, 곁눈질로 '나꼼수의 오만' 눈치 보며 공제 당한 것도 만만치 않았다. 기생(寄生)을 전문으로 하는 486들이 깎아먹는 공제에도 대비해야 했다.

민주통합당의 출범 때부터 줄곧 주목받던 '친노세력의 자기성찰 부족현상'은 선거가 지나서도 계속되고 있다. '공제' 차원이 아니라 궁핍한 재산에 살림살이 거덜 낼 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다소곳해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이 이야기의 결론은 '언론의 여론조작' 쪽으로 가야한다. 이 나라의 내일을 생각할 때 언론 편파보도가 그만큼 심각한 지경에 와있다. 선거에서도 언론은 편을 갈라놓고 사실보도를 외면한 채 자기편 후보의 잘못 덮으면서, 다른 후보의 허물만을 사생결단의 자세로 부각시켰다. 그게 이번 선거다. 그런 여론 조작으로 선거결과를 뒤집어 놓는 건 언론이 저지르는 부정선거다. 앞으로 대선도 있다.

지금은 언론이 얼마나 나쁜 짓 할 수 있는지를 곰곰이 따져봐야 할 때다. 헌법조항대로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할 이 나라의 권력이, 특정방송과 신문의 편파보도와 여론조작을 통해 나오는 이 기막힌 상황을 모두 나서서 결사적으로 막아내야 할 때다. 언론이 바로 서지 않으면 결코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



/오홍근 칼럼니스트

2012년 4월 6일 금요일

박정희, 전두환의 언론사찰, MB정부와 뭐가 다른가


이글은 미디어스 2012-04-06일자 기사 '박정희, 전두환의 언론사찰, MB정부와 뭐가 다른가'를 퍼왔습니다.
[한줌의 미디어렌즈] 1973년 ‘불순언론인 파악보고’ 문건을 다시 보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2007년 10월 24일 발간한 종합보고서에는 언론 편도 들어있다. 참여정부 당시 정부기관 과거사 진상규명의 일환으로 진행한 작업의 결과물이었다. 총리실 사찰문건 공개로 그 실상의 일각이 드러나고 있는 마당이다. 언론만 한번 겹쳐봤다.
박정희 정권 때인 1974년 한국일보는 창간 20주년 기획의 일환으로 10월 22일 신문에 당시 베트남 구엔 반 티우 대통령 인터뷰와 해설기사를 실었다. 해설기사 제목은 ‘보좌관들 부패는 바로 티우의 부패’, ‘광범위한 개혁요구에 체제 위협 우려’. 박정희 정권은 두고 보지 않았다. 중앙정보부가 이를 문제 삼아 편집국장 소환을 시작으로 손보기를 시작했다. 발행인, 편집국장, 편집부장을 줄줄이 연행해 조사했다.
"발행인, 편집국장 및 편집부장 등은 문공부 당국의 보도한계지침 내용을 소홀히 취급함으로써 반정부적 학생 및 종교인 등을 자극 선동하는 보도를 한 데 대하여 본 조사를 통하여 그와 같은 보도가 국내 사태를 더욱 혼란케 하여 결과적으로 북괴를 이롭게 하는 행위였다는 것을 통감하고 앞으로는 정부시책에 순응하여 적극 협조하겠다는 각서를 제출하였으므로 엄중경고 후 훈방 처리함이 가하겠습니다"
중앙정보부가 1974년 10월 26일 작성한 ‘한국일보 월남사태 특집해설기사 보도경위조사보고’ 중 조치의견이다. 각서를 쓰고 ‘착한 보도’를 약속했다. 전두환 정권도 다르지 않았다.
ο 최근의 언론 논조 분석결과 동아, 조선 등 野傾紙(야경지·야당 쪽에 경도된 신문)에서 고정칼럼 등을 통해 의원내각제 개헌안에 대한 부정적 측면 부각 및 직선제 개헌안에 대한 긍정적 논조 전개 등 야당의 개헌주장에 동조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
ο 따라서 유관기관과 협조  - 동아, 조선 경영진 대상으로 칼럼 작성상 문제점 지적, 균형보도 유도  - 칼럼 집필진에 대한 책임순화팀 구성 개별순화 및 집필진 교체유도
안기부가 1986년 9월 10일 작성한 ‘동아, 조선 등 野傾紙의 야당개헌안 동조관련 대책’ 보고서 중 일부다. 경영진 대상으로 문제점 지적, 집필진 교체 유도 등의 대책이 눈길을 끈다. ‘KBS, YTN, MBC 임원진 교체 방향 보고’, ‘친노조·좌편향 간부진을 인사조치하고, 현 정부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배석규 사장 직무대행을 사장으로 임명하여 힘을 실어줘야 한다’, ‘수요회 등 親김인규 세력의 활동으로 KBS의 색깔을 바꾸고 인사와 조직개편을 거쳐 조직을 장악할 예정’…. 정도의 차이가 있을까? 2012년 공개된 사찰문건의 내용도, 그 질도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다시 거슬러 올라가보자.
심○○ : 동아 지방부기자 언론자유수호선언 주동, 천○○의 하수역김○○ : 경향 정치부기자 KT관련기사 일방적 취재, 처가 KT가족과 친교권○○ : 동아 사회부기자 동아일보 보도보류조치 항의, 편집국장에게 건의서 냄
중앙정보부가 1973년 12월 18일 작성한 ‘불순언론인 파악보고’ 문건이다. 당시 명단에 올라간 ‘불순언론인’ 20명 가운데 9명이 해임됐다. 잘린 기자 사찰도 했다.
1. 신동아 김○○ 기자는 75.6.6 시내 무교동 소재 선일장에서 김○○에게 7월초에 김 의원의 옥중 수기를 실으려고 한다면서 정치 얘기는 그만두고, 옥중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얘기를 주로 하여 60매 정도를 14일까지 써달라고 한 바 김○○는 알겠다고 하였음
2. 조치   김○○에게 수기를 투고치 못하게 경고하여 저지하겠습니다.
이 역시 중앙정보부가 1975년 6월 6일 작성한 어느 해직 기자의 동향 보고서다. 다시 2012년 대한민국. 한겨레21 편집장, 방송작가협회 이사장, PD수첩 작가, 김제동씨, 김미화씨 등 언론인, 방송인들에 대한 전방위 사찰이 이루어졌다. 박정희 정권의 행태보다 나은 게 뭔지 모르겠다.
국정원 과거사진상규명위 보고서 언론 편은 5공 정부의 보도지침 등 언론통제 구조를 청와대 정무비서관실을 정점으로 문공부 홍보조정실이 실무를, 안기부, 보안사 등이 지원하는 도표로 정리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묻지 않을 수 없다. 박정희? 전두환? MB정부 5년, 이 정부는 우리 사회를 어디로 되돌린 건가. 현 정부 5년,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았던 건가. 그리고 또 하나. 몇몇 언론들에게 그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던 건가. 정말 어떤 세상이었기에 지금 이 문제에 대해 그리도 침묵하고 회피하는 건가. 그들에겐 어떤 세상이었기에. 궁금하다. 묻고 싶진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