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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8일 화요일

경찰, 평화박물관 압수수색…“회원명부, 회계장부 등 압수”

이글은 go발뉴스 2013-05-27일자 기사 '경찰, 평화박물관 압수수색…“회원명부, 회계장부 등 압수”'를 퍼왔습니다.
한홍구 “이게 朴 강조한 법치냐…시민단체 활동 위축 공안탄압”

경찰이 박근혜 대통령의 출산 장면 그림을 전시한 ‘평화박물관’을 압수수색해 회원명부와 회계장부 등을 압수해 가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시민사회단체 등은 “검․경이 정권의 이해에 따라 유신정권을 비판했던 시민단체를 편파적으로 압수수색 했다”며 “이는 정치적 의도에 따른 공권력 남용”이라고 규탄하고 나섰다.
27일 오전 참여연대 등 83개 시민단체 등은 서울 종로구 견지동 평화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회원명부를 압수해간 것은 명백한 과잉수사”라면서 “이는 시민단체 등 비정부기구를 후원하는 시민들을 위축시키고 단체 활동을 방해하려는 의도”라며 이같이 비판했다.
지난해 11월 보수성향의 단체 ‘정의로운 시민행동’ 대표 정모씨는 평화박물관, 희망제작소, 아름다운재단, 노무현재단 등이 기부금품법을 위반했다며 경찰에 고발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지난 22일 평화박물관을 압수수색해 회원명부와 2006년부터 2012년까지 후원내역을 압수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반 시민이 아닌 소속 회원들로부터 일부 모금을 벌여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는데도 경찰은 압수수색까지 하는 등 과잉수사를 했다”고 비난하는 동시 “기부금품법 4조에 따른 모금활동 사전등록규정은 사실상 사문화되었는데도 수사를 하는 것은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박근혜 정권 최초의 공안탄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부금품법은 불특은 정 다수의 시민을 대상으로 기부금 1000만 원 이상을 모금할 경우 반드시 안전행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사전 등록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평화박물관의 법률대리인을 맡고 있는 이덕우 변호사는 “6·25 전쟁 중인 1951년 만들어진 기부금품법은 지난 1995년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인 권영길 전 의원을 구속시키기 위해 공안당국이 되살렸고 1998년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을 받았다”며 “이후 고쳐진 현행 기부금품법도 태생적인 문제를 안고 있어 국회에서 이를 고치려고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83곳은 27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평화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이 지난 22일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것은 명백한 과잉수사"라고 비판했다. ⓒ 'go발뉴스'

한홍구 평화박물관 상임이사는 이날 “대선 기간 한국사회가 유신의 부활을 저지하기 위해 열심히 싸웠다”면서 “그 중 평화박물관도 한 몫을 담당했기에 압수수색을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법치주의를 강조했다. 이게 법치냐”고 반문하며 “조세 탈루,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의 증거 인멸 등 중대한 범죄에 대한 수사는 이뤄지지 않으면서 범죄가 아니라고 명시적으로 나와 있는 시민단체 활동을 수사하는 것은 명백한 공안탄압”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유신의 부활을 저지하는)활동 등을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등 시민단체 주요 인사들과 민주당 인제근·이종걸·홍종학 의원 그리고 서해성 성공회대 교수 등이 참석해 평화박물관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을 규탄했다.
서해성 교수는 “공교롭게도 기자회견을 하는 오늘이 33년 전 새벽 4시, 윤상원과 그의 동료들이 도청에서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광주항쟁이 비로소 '거룩한 투쟁'이 된 날”이라면서 “오늘 시민단체들이 같이 모여서 (평화박물관 압수수색 사건에)대응하는 일 자체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운을 뗐다.
그는 “오늘을 5월 27일 바로 그날이라 여기자”면서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함께 대응하자. 이날을 치열한 투쟁의 시작점으로 생각하자”고 강조했다.
앞서 평화박물관은 작년 11월 ‘유신의 초상’ 전시회에서 홍성담 씨(58)의 ‘골든타임-닥터 최인혁, 갓 태어난 각하에게 거수경례하다’란 제목의 박근혜 대통령이 수술대 위에 누워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선글라스를 낀 아기를 출산하는 그림을 전시한 바 있다.


김미란 기자  |  balnews21@gmail.com

2013년 5월 27일 월요일

"'일베충'도 자신들 주장이 거짓인 것 알고 있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3-05-26일자 기사 '"'일베충'도 자신들 주장이 거짓인 것 알고 있다"'를 퍼왔습니다.
[이철희의 이쑤시개](19) 한홍구·서해성, '일베'와 '5.18'을 논하다

지난 22일, 형사들이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 아주 작은 박물관에 들이닥쳐 압수수색 영장을 들이밀었다. '정의로운 시민행동'이라는 이름의 단체 대표를 자처하고 있는 정 모 씨가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기부금법)' 위반 혐의로 평화박물관을 고발한 사건 때문이었다.

평화박물관은 지난해 유신을 기억하자는 취지로 홍성담 화백의 이른바 '박근혜 풍자 그림'을 전시했다. (골든타임-닥터 최인혁, 갓 태어난 각하에게 거수경례하다)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박근혜 대통령 지지 단체 및 새누리당으로부터 십자포화를 맞았다. 평화박물관을 고발한 정 씨는 '고발 전문가'인 것처럼 보인다. 정 씨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는 그간 정 씨가 고발했던 단체들과 관련된 '고발 접수증 인증샷'들이 다수 올라와 있다. 노무현재단,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도 등도 역시 정 씨의 '고발'을 피해 가지 못했다. 그는 이 같은 시민사회 단체들을 "종북 좌파" 세력으로 규정하고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관련 기사 : '박근혜 출산' 풍자 그림 논란)


▲ 홍성담_<골든타임-닥터 최인혁, 갓 태어난 각하에게 거수경례하다> 194×265cm, 캔버스에 유채, 2012. ⓒ평화박물관

평화박물관의 상임이사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그는 지난 24일 (프레시안)이 제작하는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에 소설가 서해성 성공회대 외래교수와 함께 패널로 출연해 "평화박물관 압수수색은 박근혜 정부 하 사정기관의창조적 압수수색"이라고 비판했다.

서해성 교수는 "평화박물관은 평화 운동과 문화 운동을 겸하는 조직인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게 표현 활동이다. 몇십 만 명 동원해 데모하는 곳도 아닌데, 압수수색을 하는 것은 결국 표현 활동 위축시키고자 하는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 교수는 관련해 "법적인 대응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씨는 왜 고발했고, 경찰은 왜 압수수색을 했을까. 사실상 그 단초를 제공한 것은 대선 기간에 전시됐던 홍성담 화백의 그림이다. 한 교수는 이 그림을 전시하게 된 배경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유신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와 관련해 전시회 기획을 했다. 당시 홍성담 화백에게 '그런 그림을 그려달라'고 한 것도 아니다. 다만 '대중들에게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이 된다면 그것은 유신의 부활을 알리는 것이라는 의미의 그림이 있으면 좋겠다'고 얘기는 했다. 그리고 그림을 전시했다. 이후 나는 그 (그림 속에 담긴) 컨셉을 가지고 무수히 많은 강연을 했다. '박근혜의 당선은 유신의 부활이고 박정희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박정희가 부활하는 시대로 돌아가고 싶은가' 그런 말들을 했는데 (그 그림의 의미를 말로 한 나는) 아무 일이 없었다. 제 생각에 예술작품을 전시 공간에 건 것을 선거법으로 도저히 걸수 없으니까 그 사람이 엉뚱한 것으로 저희 단체를 걸게 된(고발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홍구 교수는 이어 "이 정권(박근혜 정부)이 출발할 때도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등) 엄청난 범법 의혹들이 나와서 고발되고 했는데, 그에 합당한 정도의 압수수색 조치가 있었나"라고 반문한 후 "우리는 재정과 관련해 홈페이지에 다 공개하고 있다. 이미 공개돼 있는 것을 두고 압수수색을 하니까 과잉수사라고 하는 것이다. 앞으로 법의 형평성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눈을 크게 뜨고 볼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경찰이나 검찰은 (기부금법을) 아주 악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 자체로 (수사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을 것으로 생각은 하지 않는다"면서 "다만 회원 여러분께 송구하다. 저희는 더 열심히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 위축되지 않고 평화와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아주 창조적인 압수수색이었다. 세상이 너무 좋아져서 컴퓨터 뜯어가지 않고 서랍을 다 열어보고 그렇지는 않더라"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서해성 교수는 "이 일로 한 교수나 평화박물관이 법원에 가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것(고발 및 수사)을 통해 평화박물관에 회원 가입을 못 하도록 하는 것을 노리는 것 아니겠느냐. 박근혜 정부 출범하고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는데, 시민단체에 대한 첫 번째 선물이 압수수색이었다. 시민사회 단체도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의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해성 교수는 "만약 경찰 등 사정기관의 논리라면 (회비 받고 있는) 보수단체들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계 모임 등 다 고발당해야 한다. 앞으로 등산 갈 때도 돈 걷으면 안된다"고 지적하며 "그분들의 정치적 해프닝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공권력이 움직였다는 게 문제다.

"'일베충'도 자기 주장이 '거짓'인 것 알고 있다"?

한 교수와 서 교수는 (이철희의 이쑤시개)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일베(일간베스트)' 문제에 대한 분석과 함께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뒷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특히 서 교수는 '일베'에 대해 "'일베'의 중요한 특성은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도 그게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재밌다"라고 말했다.

"87년, 광주항쟁의 진실이 대선의 중요한 화두가 됐었다. 당시 야당은 노태우 후보가 광주 학살의 주범이라고 공세를 폈다. 그때도 (노태우 지지자) 사람들은 '에이 그랬겠느냐'고 했다. 노태우 지지자는 안 믿고자 애를 쓰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광주 이야기는 전 국민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노태우를 지지해야 하니까, 그런 사람들은 광주를 알면서도 처음에는 '아닐 거야' 하는 것이다. '아닐 거야'가 '아닌 거야'로 됐다가 '아니잖아' 이렇게 바뀌는 거다. (일베) 사람들도 광주에 대해 알고 있지만 비아냥거리는 행위 자체를 (서로) 인정을 한다. 최초에는 죄를 부정하고, 그다음에는 재밌어한다. 그러다 보면 사실이 아닌 것을 믿어주는 사람이 생긴다. 그러면 본인도 믿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일베' 사람들도 자기가 주장하는 것이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서 교수의 분석이다. '일베', '5.18', '임을 위한 행진곡' 등 5월을 맞아 논란이 됐던 '역사 논쟁', 보다 자세한 내용은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에서 들을 수 있다.

(이철희의 이쑤시개) 바로가기 클릭! http://pressian.iblug.com/index.jsp


/박세열 기자

2013년 1월 10일 목요일

박근혜 시대, '정수장학회 저격수' 한홍구를 만나다


이글은 미디어스 2013-01-10일자 기사 '박근혜 시대, '정수장학회 저격수' 한홍구를 만나다'를 퍼왔습니다.
[신년 인터뷰]한홍구 정수장학회 공대위 집행위원장

역사학이 발 빠른 학문은 아니지만 역사학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 1년 동안 발이 닳도록 뛰어다녔다.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공동대책위원회의 집행위원장으로서 한 교수는 박 당선인의 정수장학회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 왔고 MBC와 부산일보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숱한 대중 강연을 다녔다.
'2012년에 가장 뜨거웠던 인물'로 한홍구 교수를 꼽은 는 8일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한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자신의 서재를 둘러보고 있다 ⓒ미디어스

멘붕의 시대 속에서 힐링이 난무하고 있다. 48%가 겪고 있는 고통과 신음소리는 SNS를 통해서 쉽게 느낄 수 있다. '정수장학회 저격수' 한홍구 교수는 48%가 그랬던 것처럼 '멘붕'을 겪지 않았을까? 그는 "(선거에 대한) 기대를 많이 했지만 9월부터 이대로 가면 질 것이라는 예감을 했기 때문에 큰 멘붕을 겪지 않았다"며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교수가 집행위원장으로 참여하고 있는 정수장학회 공대위는 지난해 10월 박근혜 당선인의 정수장학회 기자회견에 맞불 기자회견으로 대응하며 '정수장학회 끝장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역사왜곡'에 침묵하고 있는 타 지식인과 다르게 한 교수의 꾸준한 사회참여는 권력의 사냥개가 된 언론에 자각을 촉구한다. 한 교수는 이에 대한 공로로 지난해 12월 '올해의 송건호 언론상'을 받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은 "사회 전방위에 걸쳐 여러 현안의 역사적 연원을 파헤치고 사회문제와 병리현상을 심도 있게 분석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의 노력에도 민주‧진보 진영은 참패했다. 한 교수는 이번 대선의 패인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그는 '친노'의 반성을 찾아볼 수 없다고 일갈했다. 인터뷰 내내 차분했던 그는 친노와 노동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격앙된 목소리로 크게 꾸짖었다.
"'친노'가 노동문제의 해결 없이 한국의 민주화는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지난 몇년 동안 늘 떠든 거지만 김주익의 변호사는 노무현이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시절 김주익은 목을 매달았고 노무현도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친노가 이 지점을 뼈아프게 반성을 해야 한다…(중략)…자칭 진보라는 민주당과 지식인, 언론이 손을 놓고 있었으니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는 최근에서야 사태의 심각성이 불거진 '노조에 대한 손배‧가압류' 문제를 방치한 언론과 지식인의 태만을 비판했다. 한 교수는 "한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기이한 현상"이라며 진보 언론과 지식인, 그리고 민주당에 대한 쓴소리를 이어갔다.
저격수의 명성답게 한 교수는 "이번 박근혜 인수위 인선은 불통과 오만" "윤창중은 함량 미달" "통제에 대해 (침묵하는) 기자들은 권력의 YES맨이 될 것" "김재철과 짝짜꿍했던 이들의 만행을 기록한 흑서가 필요하다" 등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냈다.
기자가 '역사의 진보'에 대해서 묻자, 그는 뜸을 들이며 "대한민국이 겪었던 20세기 백 년 중 단 3년만이 민주정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한계일 수도 있다"며 미래에 대한 비관보다 현재에 대한 우려를 더 내비쳤다. 그의 지적처럼 '박근혜 대통령'이 가져올 미래는 역사의 정체일까?  한 교수는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양극화가 더 고착되고 80년 광주 도청에서 총 들고 지킨 이들의 죽음은 개죽음이 될 것"이라며 "스스로 역사의 주인으로 참여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전문.

"민주당과 친노의 반성, 찾아볼 수 없어…노동문제 성찰 없다면 민주화 불가능"

미디어스(아래 미): 대선 이후 혹시 '멘붕'을 겪었나?
한홍구 (아래 한) : 기대를 많이 했지만 이대로 가면 진다는 예감이 있었기 때문에, 대선이 끝난 후 '멘붕'까지는 아니었다. 물론 당일에는 투표율이 높게 나왔기 때문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하면 진다'는 인식을 9월부터 계속 갖고 있었다.
미 : 한 교수가 보기에 이번 대선의 패인은 무엇이었나?
한 : 민주당이 하나로 움직였다고 생각지 않는다. 또, 지식인들도 생각 외로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SNS에서 소시민들이 죽어라 하고 열심히 싸웠다.
미 : 과거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을 지지했던 50대가 변했다는 평가가 있다.
한 : 일단 민주정권 10년 동안에 상처 받았던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민주정권이 그들에게 상처를 준 것일 수도 있고 수구 언론이 덮어씌운 것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을 애써 눈감아왔다. 그 50대의 상당수가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탄생할 때 지지표를 던졌던 분들이었다는 데서 민주당이 뼈아프게 반성을 해야 한다. 하지만 총선과 대선 이후 반성도 없었고 대책도 없었다. 참 절망스럽다.

▲ (부산=뉴스1) 전혜원 기자= 민주통합당 문재인 전 대선후보가 계사년 새해 첫날인 1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이번 참배행사에서는 노건호씨와 이병완 노무현재단 이사장, 참여정부 인사, 전국에서 모인 지지자들을 비롯해 많은 인파가 모였다. 2013.1.1/뉴스1

미 : 민주·진보 진영의 패배 후유증이 크다. 자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한 : 솔직하게 말하면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망정이지 사실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국회의원 출마도 못할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노무현의 죽음이 가지는 의미와 친노들이 가지고 있는 자리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 반성을 할 기간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충분했다. 4·11총선이 그렇게 됐는데 그걸 이겼다고 자화자찬했다. 그래서 선거 결과에 대해서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멘붕이 심하지 않았다.(웃음)
미 :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가?
한 : '친노'가 노동문제의 해결 없이는 한국의 민주화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지난 몇년 동안 늘 떠든 거지만 김주익의 변호사는 노무현이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시절 김주익은 목을 매달았고 노무현도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친노가 이 지점을 뼈아프게 반성을 해야 한다. 하지만 반성을 하지 않는다. 민주정권 10년을 겪은 이들, 살림살이가 전혀 나아지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민주주의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아무런 준비 없이 나왔다. 경제 민주화라는 건 결국 삼성개혁과 노동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 빼놓고 경제민주화하자는 데 먹히겠나? '차라리 박근혜가 시혜적으로 해주는 게 나아' 그런 생각으로 50대가 투표한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박근혜가 더 잘할 것 같다.(웃음) 민주·진보 진영이 허물어진 건 민주와 노동이 따로 갔기 때문이다. 밑바닥부터 노동문제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이런 성찰이 없다면 5년 후에 또 진다.

박근혜 당선인의 인선…"대변인에 윤창중, 언론인들 치욕스럽지 않나?"

미 : 박근혜 당선인의 인수위원회 인선을 보면 주요 요직에 극우적 인사들이 포진됐다.
한 : 박정희가 18년을 집권했다. 사람들은 박정희를 보고 '용인술의 천재'라는 말을 한다. 한 번 믿은 사람은 확실하게 밀어주고 상황을 봐서 그 자리를 바꿔서 충성 경쟁을 시키기도 하고. 하지만 용인술 천재의 말로는 어땠는가? 10·26이 왼팔과 오른팔이 싸워 가지고 발생한 사건이다. 말년의 박정희는 정말 눈이 어두웠고 불통과 독선만 가득했다. 박근혜가 보고 배운 박정희는 그 마지막 시기, 즉 가장 나쁜 시기의 박정희다. 이번 인사도 그의 불통과 오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 (서울=뉴스1)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1일 오전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새누리당 지도부와 함께 참배한 후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2013.1.1/뉴스1

미 : 대표적인 인물이 윤창중과 이동흡이다.
한 : 역시 박정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박정희는 중정부에서 사람을 두들겨 패던 사람을 정면을 내세우지는 않았다. 옛날 중정부에서는 사람을 잡아다 두들겨 팼지만 지금은 누군가를 조지는데 흔하게 쓰이는 수단이 바로 '말과 글'이다. 윤창중은 일관성을 찾아볼 수 없는 논리로, 가장 천박하게 사람을 조진다. 말을 세게 하더라도 내용과 품격이 있어야지. 그런 면에서 윤창중은 함량 미달이다. 이동흡 역시 법조 내부 평가가 매우 나쁜 인물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사안에 대해 합헌 의견을 내는 등 재판관으로서의 자질도 부족한 사람이다. 이런 인사가 주는 메시지는 명백하다. 짧은 5년 동안 권력 누수 없이 권세를 누리기 위해 처음부터 강경하게 밀어붙이겠다는 박근혜의 의지가 담겨 있다.
미 : 박 당선인은 기자들과의 스킨십을 멀리하고 있다. 인수위 기자실도 제한적으로 배분하고 있다.
한 : 박근혜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그는 태생이 공주고 여왕이다. 그러다보니 대화와 토론은 찾아볼 수 없고 명령과 복종하는 관계만 있다. 애초에 대화와 토론이 불가능한 사람이다. 굉장히 위험한 사람이다. 이렇게 통제를 할 경우, 기자들은 권력에 대해 예스맨의 역할만 할 것이다. 정권을 잡기 이전부터 환관이니 내시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언론인이라고 갖다 쓴 게 윤창중이다. 난 외려 언론인들에게 묻고 싶다. 윤창중 같은 사람을 대변인으로 뽑았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는가? 내가 언론인이었다면 치욕스러웠을 것이다.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투쟁, 우리 공대위는 끝까지 갈 것"

미 : 그간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투쟁을 했다. 성과가 있었다고 보나?
한 : 성과라고 할 게 있는지 모르겠다. 총체적으로 볼 때, 정수장학회가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이슈화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사실을 모르거나 과거의 일로만 치부하고 있다. 정수장학회의 문제의 본질은 MBC와 경향신문이다. 최필립과 이진숙의 대화록이 공개된 것에 대해 많은 분들이 의미를 모르는데, 이는 MBC를 민영화하겠다는 말 아닌가? MBC가 민영화가 될 경우 현직 대통령이 MBC지분의 30%를 갖는 게 된다.
미 : 정수장학회 공대위 활동은 현재 어떠한가?
한 : 대선 끝나고 정식으로 모이진 못했다. 하지만 계속 갈 것이다. 정수장학회 공대위는 문재인 후보가 선거에서 이겼더라도, '시민들을 위한 장학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난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현재는 그 싸움이 조금 더 어려워진 것일 뿐이다. 대통령이 누가되든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장물은 장물이고 뇌물은 뇌물이니까. 우리는 끝까지 갈 것이라는 걸 명시하고 싶다.
미 : 박근혜 임기 내에 MBC민영화가 시도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있는데?
한 : 박근혜가 자기 임기동안 MBC 민영화를 밀어붙이진 못할 것이다. MBC와 관련해서 본인과의 상관성이 명백하기 때문에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럼에도 김재철 사장이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바꾸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이유는 '떡고물'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개떼처럼 이익을 위해 모여 있는 판국이다. 언론운동을 하는 쪽에서 고민을 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방송을 망가트린 자들의 만행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흑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훗날 민주정권이 들어섰을 때 김재철과 함께 짝짜꿍하며 MBC를 말아먹은 자들을 방송계에서 퇴출시킬 수 있다. 가 정말 언론을 다룬다면 팩트에 근거해서 흑서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제대로 정리가 되려면 MBC 구성원들이 내부에서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미 : 약속을 깨고 정수장학회 이사들이 연임됐다.
한 : 당연한 결과다. 형식적으로만 공익법인이다. 우리나라의 재벌이 만든 재단들의 운영을 보면 뻔하지 않나? 박근혜가 정수장학회의 실소유주이기 때문에 10년 동안 이사장을 할 수 있었다. 아직도 영향력이 미치고 있는데 정수장학회와 박근혜가 무관하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볼 수 있겠는가.
미 : 부산일보의 편집장이 해고됐고 다시 편집장을 뽑았는 등 부침이 심하다. 언론노조와 정수장학회 공대위는 서울과 부산을 잇는 운동을 하겠다고 했는데.
한 : 잘 안 됐다. 내가 부산에 몇 번 내려가서 강연을 했는데, 부산 자체도 싸움이 길어지면서 동력이 쇄진됐다. 또, 민주당의 전략 부재로 부산일보·정수장학회 등 과거사 문제를 쟁점화를 시키지 못했다. 민주당은 과거사도 민생도 손을 놨었다. 내가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지만 민주당 강연에서는 늘 '정수장학회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결정타가 아니다. 승패는 민생에서 갈린다'고 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이도저도 아니었다. 적어도 박근혜가 나서서 정수장학회 기자회견을 했을 때, 정치권이 치고 나가면서 이슈화시켰어야 했다.
미 : MBC는 '한홍구-서해성의 직설'의 문구를 리트윗한 정동영 후보에 대해 악의적인 보도를 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 : 정동영 의원에게 미안하다. 우리 이야기를 좋은 뜻을 가지고 퍼 날랐는데 MBC와 우익 언론에 의해서 공격당했다. 기자라면 적어도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들여다보고 뉴스가치가 없다면 기사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뻔뻔하게 우리 이름까지 싹 지우고 공중파에 띄웠다. 그러고 나서 우리를 보호하려고 그랬다나? 정동영을 죽이려고 한 것이다. 물론, 정동영이 전주에서 너무 빨리 국회의원 출마를 하는 등 행보에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지난 2-3년 동안 현장을 그보다 더 많이 찾은 의원이 어딨는가? 그 정도 급의 정치인이 사고방식과 입장을 180도 바꿨다. 더 놀랐던 건 민주당 내에 정동영을 공격하던 이들이 너무 많았다. 현장을 가보지 않은 자들이.

▲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웃음을 짓고 있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미디어스

"진보 언론, 무기력만 남아"…"손배‧가압류, 지식인과 진보 언론의 지적태만"

미 : 대선 토론회에서 이정희 후보가 '다카키 마사오'를 언급했다. 공중파 TV에서 다카키 마사오가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발언이 있고 나서 언론이 본연의 책무를 방기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한 : 2007년도와 비교해보라. 이명박과 박근혜 경선 당시, 이미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최태민과 전두환의 6억원 등의 비리가 흘러나왔고 메인 뉴스에도 나왔다. 허나 이번 대선에서는 한겨레, 경향, 미디어스, 미디어오늘, 오마이뉴스 등 진보 언론들이 참으로 무기력했다. 그런 걸 가지고 파헤치지 않았다. 그런 팩트들을 진지하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현재 나는 일주일에 한 편씩 꾸준히 역사 관련 글을 생산하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근현대사에 대한 이야기와 담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 : 언론뿐 아니라 참여형 지식인들의 움직임도 둔화됐다는 일각의 비판이 있다.
한 : 우리사회에서 지식인의 지적태만을 확인할 수 있는 문제를 꼽자면 바로 손해배상·가압류이다. 지식인들이 밥값을 못한 것이다. 손해배상·가압류에 대해서 지식인들이 아예 손을 놓고 있었다. 이건 한국에만 있는 현상이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 3권을 하위 법률이 받쳐야 하는데 현재 상황은 어떤가? 모든 파업에 손배·가압류를 하는데 노동 3권이 뭔 의미가 있나? 자본가에게 손해를 끼치니까 파업에 힘이 실리는 거지. 사람을 죽인다든지, 방화를 한다든지, 회사의 재산을 고의로 불태웠다든지 명백한 폭력성과 불법성이 있으면 손배·가압류를 물려야겠지만, 회사의 정상적인 조업 손실에 대해 감히 어떻게 손배·가압류를 물리는가? 거기에 대해서 지식인과 언론이 외국에서 사례도 찾고 법령도 개발하고 공론의 장을 만들었어야 했다. 전경련도 총 자본의 입장에서 손배·가압류는 하면 안 된다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
지난주 (한겨레)에서 동일방직에 대해서 썼다. 가만 생각해보니 동일방직에서는 자살한 이들이 없었다. 여성 노동자들이 그렇게 똥물을 뒤집어쓰며 폭력을 당했음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그들이 서로를 믿고 단결했던 것도 있겠지만 나는 '손배·가압류'를 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칭 진보라는 민주당과 지식인, 언론이 손을 놓고 있었으니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민생을 도외시한 채, 그들만 '민주화'가 된 것이다. 이런 식이면 지식인들은 계속적으로 사라지고 진보는 되풀이되는 패배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미 : 지난 (미디어스) 인터뷰 도중 '역사학자라서 행동이 느리긴 하지만 낙관적이다, 넓게 보면 세상은 조금씩 변한다'고 말씀하셨다. 51%가 아닌 시민들에게 힘을 주는 말씀 부탁드린다.
한 : 우리 역사를 보라. 20세기 중에서 앞의 10년은 대한제국이었고, 나머지 90년 동안은 제국주의 일본과 군사독재를 겪었다. 한 세기 중 단 3년만 민주 정권이었다.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여기까지가 한계일 수도 있다. 7-80년대 민주화 운동 세력이 동력을 잃어버렸다. 진보정당도 매우 암울한 상황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박근혜 집권 이후 더욱 양극화가 고착돼 아이들이 장래희망에 '정규직'을 쓰게 되는...이게 현실이라면 80년 광주 도청에서 총 들고 지킨 이들의 죽음은 개죽음이다. 역사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일 수밖에 없다는 걸 끊임없이 상기하며 스스로 역사의 주인으로 참여해야만 한다.

김도연 기자  |  riverskim@mediaus.co.kr

2012년 12월 15일 토요일

너 자신의 청춘을 위해 투표하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5일자 기사 '너 자신의 청춘을 위해 투표하라'를 퍼왔습니다.

1년7개월 만에 ‘직설’로 돌아온 한홍구(왼쪽) 교수와 서해성 작가가 지난 11일 서울 재동의 카페에서 20대 청춘들에게 “너 자신에게 하는 투표”를 하라고 ‘돌직구’를 던지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한홍구-서해성의 돌아온 직설-20대에게 고함

한홍구-서해성이 ‘직설’로 돌아왔다.에서 연재를 끝낸 지 1년7개월 만이다. 50회 동안 직설을 던졌지만 세상은 여전히 고요하다. ‘우아 떨지 않는 말’로 세상을 향해 또다시 싸움을 거는 까닭이다. ‘늙은 의병’으로 여전히 전장을 지키는 그들답다. 한홍구 교수는 (한겨레) 토요판에서 ‘유신과 오늘’이라는 제하의 글을 연재하는 한편, ‘정수장학회 사회환원과 독립정론 부산일보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아 ‘유신의 부활’을 막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16일 오후 5시엔 서울 교보문고에서 (장물바구니-정수장학회의 진실)이란 책을 들고 시민들과 북토크를 연단다. 서해성 작가도 바쁘다. (오마이티브이) ‘대선올레!’ 방송과 함께 전국을 누비며 ‘투표 의병운동’을 벌이고 있다. 12월1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늙은 의병들이 20대 청춘들에게 돌직구를 던졌다. “태어나자마자 ‘빚쟁이’가 될 수밖에 없는 세상을 만든 건 미안한데, 너희들도 침만 뱉지 말고 외쳐야 할 것 아니냐”고. 어떻게? “나 자신의 청춘을 위한 백년 투표, 불패의 투표를 하자”고.

지금 우리가 싸우는 건
역사에 대한 모욕감 때문
선거로 유신 정당화시켜주고
꿈이 정규직인 시대를 위해
80년 광주가 있었던 거야?

안철수 현상도 결국은
‘안되겠다, 새로운 걸 만들자’는
대중들의 의병정신이거든
의병이 다시 나서야 하는 건
정말 비극적인 일이지만

김지하가 마~이 아픈 건 참 짠한데…

서해성(이하 서) 이런 또 ‘직설’일세.
한홍구(이하 한) 직설 끝나고 1년 좀 넘었지?
서 곧은 말로 세상 좀 좋게 해보자고 했던 건데. 이제 좋아지려나.
한 직설 그만둘 때는 이제쯤이면 많이들 떠들 것이다 했는데, 도리어 반대편에서 떠들어. 김지하 떠들어, 김중태 떠들어, 한화갑 떠들어.(웃음)
서 91년 ‘죽음의 굿판을 집어치워라’에 이어 김지하가 다시!
한 나이가 들면 외로워지거든. 사람들 찾아오지 않지, 얘기 들어주지도 않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박씨 집안에서 와서 많이 들어주니까, 헷갈리는 것 같아.
서 ‘지저스 콤플렉스’라고 자기가 하면 그게 뭐든 옳다고 생각하는 거지. 1인 독재에 맞서면서 생긴 또다른, ‘좋은 파시즘’. 평생 쌓아놓은 거 하루아침에 털어날리고 마는.
한 전 국민이 다 알아듣는 말이 있어. ‘마~이 아파.’(웃음) 김지하가 아픈 건 참 짠한데, 각종 추잡한 것들이 한꺼번에 다 나와. (한)화갑이 아저씨 그렇게 된 건, (김)옥두 형님이 한 말씀 하시니 쫙 정리가 되데. 네티즌들 참 똑똑해. ‘옥두 형님이 동교동에서 정리했던 건 신발만이 아니었다.’(웃음)
서 근데 요새 의병이 다시 나온다고 그래.
한 뭐 남의 얘기처럼 말을 해. 딴 데서 조국, 오연호랑 격문을 썼더만.
서 옛날 의병은 낫 들고나왔는데, 이 의병은 핸드폰을 들고나와야 해. 낫은 하나밖에 못 베는데, 핸드폰은 여러 명 꼬실 수 있잖아. ‘투표해라.’ 짱돌 대신 문자를!한 배터리하고 충전기 꼭 지참하고![한겨레TV] 한홍구·서해성의 '대선 직설' 


서 옛날엔 숫돌, 지금은 배터리. ‘하루에 10통 이상씩 전화해라’ 그거 하자고 의병선언 해봤는데 의외로 반응이 괜찮아.
한 나는 열심히 의병들이 핸드폰으로 나를 걸 공급했지. 그런데 우리 둘은 왜 맨날 이렇게 싸우는 거야.(웃음)
서 우리도 좀 좋은 것 좀 해보자. 남 칭찬 좀 하고 그러는 거.
한 난 요새 제일 얄미운 게 열심히 싸운 사람을 우아하게 비판하는 거야. (홍)성담이 형이 그림(박근혜의 ‘유신 출산’)을 그리셨는데, 풍자가 그거밖에 안 되느니, 미학적으로 어쩌고저쩌고하는데, 나는 그 양반이 그만큼이라도 싸우면서 말을 보태면 이의가 없어.
서 80년 광주항쟁 때 싸운 홍성담이 다시 싸워야 하는 거, 난 그게 제일 슬프더라. 늙은 의병이 다시 나온다는 게 슬프잖아. 새 의병이 나와야지.한 의병이 나오는 시기가 왜 그게 슬프냐면 관군이 무너진 시기거든.
서 우리에게 언제 관군이 있었나. 1894년 동학 이래로 이놈의 나라는 어려운 일 있을 때 한 번도 안 빼놓고 의병이 나섰어.
한 불행하게도 민주당이 헤매니까. ‘안철수 현상’이라는 게 민주당 입장에선 창피한 일 아냐. 제1야당이 버젓이 있는데…. 옛날 3선개헌 할 때도 야당은 44석 갖고도 존재감이 확실하게 있었는데, 지금은 백이십 몇 석 갖고도 제 몫을 다 못하니!
서 안철수 현상이라는 건 안철수가 만든 건 아니거든. 그게 의병정신이라고 생각해. ‘아, 이거 안 되겠다. 우리가 새로운 것 만들어야 한다’고 대중이 나선 거란 말이야. 김용옥 도사가 ‘메시아 현상’이라고까지 했는데, 그건 좀 세고….
한 메시아를 자임하고 나온 사람이 있어.서 에끼!한 50년 전에 박아무개씨.
서 이건(안철수 현상) 정말 대중이 만들어낸 거고,한 그건(박정희) 총칼이 만든 것이고.
서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가 대통령을 안 나와도 사라지지 않고 있어. 대중이 스스로 만들어낸 거잖아. 대선 끝난 뒤에도 안철수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유지해야 뭔가 바뀌고 새로운 세계로 갈 수 있을 거야.

문재인, 너무 유기농 하시나한 

문제는 안철수 현상이 하나가 아니라는 거지. 표면에서 보면 합리적 보수, 중도 이런 부분이 있지만 밑에서는 정말 이걸로는 안 된다고 하는 ‘못 살겠다 꾀꼬리’가 있거든.
서 첫번째는 지역정치 그만두라는 거야. 두번째는 너무 낡은 정치 그만두라는 것. 세번째는 ‘야, 서비스 좀 해봐라’ 하는 것. ‘니들은 브이3(V3)라도 나눠줘 봤냐’는 거지.(웃음) 6·2 지방선거에서 (윤)봉길이 형 이후 벤또(무상급식)가 승리를 한 번 거뒀잖아. 이번엔 백신이고. 대중의 이해와 요구에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봐. 문재인 선수가 약이 더 세야 해.한 참여정부 5년 동안에 있었던 일과 관련된 노동, 삼성, 재벌 이런 문제에 대해서 좀더 분명한 태도를 갖춰주시는 게 필요한데 말이야.
서 토론회 보고 나서 하는 말들을 요약해보자면 ‘언니(박근혜 후보)한테는 살충제를 더 많이 쓰고, 이쪽에는 비료를 더 줘야 한다’인데, 선이 분명한 것 같은 느낌을 안 줘서…. 뭐 다 전략과 전술이 있겠지만 좀 아쉬워.
한 너무 유기농 하시나.
서 문제는 유기농이 시장 지배력이 별로 없다는 거지.(웃음)
한 ‘유기농을 먹어보니까 좋더라’ 해야 하는데, 맛도 별로 없고 값만 비싸고.(웃음) 이걸 넘어서야 해.
서 독립운동, 민주화운동도 결국은 의병밖에 없는데…. 역사학자, 왜 우리는 의병으로밖에 안 되는 건가, 젠장.
한 권력을 못 잡았으니까 의병이지.서 의병 모아서 니들 직업군인 해봐라. 국회의원도 하고, 김대중, 노무현, 정권도 잡아보라고 했잖아. 그런데 이 판에 의병이 또 나서는 것에 대해서 ‘거시기’한 대목이 있는 거지.
한 의병은 원래 10대나 20대들이 하는 거지. 역대 의병 중에 우리 나이 먹도록 의병 한 사람은 많지 않아. 한 시대가 지나면서 옛날 의병들이 계속 의병 하는 건 좀 불행한 시대지. 각 시대에, 자기 시대 의병이 나타나야 하는데, 문제는 옛날 의병들이 요즘 젊은이들 꾸짖기만 해. 지난 몇 년 보면.
서 386이라고 흔히 말할 수 있는 사람들, 후배들이 볼 땐 기성세대란 말이지. 기성세대들이 꼰대 노릇 너무 많이 했단 말야.한 사실 꼰대 세대지. 기성세대(라는 말)는 너무 점잖고.
서 꼰대들 중에는 ‘가카’를 필두로 한 이른바 산업화세력. 독재세력, 독점세력이 둔갑해서 이름을 바꾼 게 산업화세력인데. 걔네들은 ‘인마, 왜 니네 좋은 직장 가려서 가려고 하냐, 그러니까 취직이 안 되는 거야’ 그러면서 조지고, 다른 한쪽에선 ‘너희들 왜 그렇게 역사의식이 없냐?’ 하고.(웃음) 사실 그러면 후배들이 얼마나 열 받겠어. 둘 다 ‘우린 이렇게 했는데 니네는 뭐하는 거야?’ 그 말을 너무 많이 했다는 거지. 이번 기회에 20대한테 사과 한번 합시다.
한 미안하지. 난 정말 미안한 건, 지금 20대들은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너무 갈려 버린다는 거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는 건 죄가 돼 버렸어. 지금 세상이 이렇게 힘들어진 것에 대해 20대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데도.
서 한 번 더 꼰대 노릇 해야겠네. 하여간 ‘니네는 왜 이렇게 살살 사냐.’(웃음) 조선시대에 ‘유아징포’라는 게 있었잖아. 애 태어나면 군대 갈 거니까 미리 포(세금)를 내라는 거 아냐. 지금 20대한테는 대학등록금 문제가 유아징포야. 이건 최소한 386이 책임졌어야 해. 이건 탕감해줘야 해. 진보고 보수고 개나발이고 다 떠나서…. 병아리에게 삥 뜯는 거지.
한 출발선은 공평하게. 출발할 때부터 다리에 돌멩이 달고 뛰지는 않도록 해야지.

 
제18대 대통령선거 부재자투표 첫날인 1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학생회관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한 20대 유권자가 투표를 마친 뒤 투표 인증 사진을 찍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우리나라 20대는 너~무 싸가지가 있어서 그

럼에도 불구하고 난 20대에게 불만이 있어! 딱 한 가지야. 알타미라 동굴에 씌어 있었다던 낙서 알아?(웃음) ‘요새 새끼들 싸가지 없어.’ 그런데 우리 20대들은 너~무 싸가지가 있어.
한 어른 공경을 너~무 잘해. 존경하는 건 아닌데. 우리는 참 겁이 없었어. 시퍼런 칼날이 춤을 추는데도 ‘에이, 죽는 놈도 있는데, 잘려도 다시 새살이 날 거야’ 하는 믿음이 있었지. 지금 젊은이들은 그게 너무 약해진 것 같아. 우리가 그렇게 키웠어!
서 더 화가 나는 건 20대들 욕하던 그 많은 형들, 아저씨들, 오빠들은 지금 왜 이렇게 조용하냐는 거야?
한 오십 평생에 처음으로 억울한 생각이 좀 들어. 왜 우리만 뺑이치고 있나. 어디서 시끌벅적하게 떠든다 싶으면 다 우리가 친하게 지낸 놈들이야. ‘저 자식들은 저 나이 들도록 철이 안 들어서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 철난 386 동생들은 정말 이럴 때 피를 토하면서 싸워주면 좀 좋아. 그 수많은 친노들 중에 나보다 분해하는 놈이 적은 것 같아. 분하면 싸워야지!
서 다른 지식인들도 다. 왜 사람들이 이렇게 거룩해지고 만 거지?
한 싸우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아. 축구선수도 늘 훈련해야 하는 것처럼 싸움에도 근육이 있잖아. 김대중, 노무현 10년을 사람들이 너무 낙관했던 것 같아. 태평성대라고 생각하고.
서 과일나무를 더 심을 생각을 안 하고 과일을 따먹었어.
한 자기부터 민주화됐어. 민주화로 얻은 힘을 갖고 그 민주화를 세상으로 뿌려야 하는데 그걸 안 하고 ‘아, 이만큼 세상이 민주화됐네, 좋네’ 하는 사이 노동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서 민주화 이익을 가장 많이 본 게 재벌이야. 자기네들 맘대로 하는 민주화. 근데 그 새누리당이 요새 번역소 차린 거 알아?
한 스트롱~맨!
서 스트롱맨 때 당한 사람들 트라우마 좀 말해보소. 언니(박근혜) 뒤에 스트롱맨이 있는 거잖아.
한 과거사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피해자들을 많이 만나요. 그분들 얘기 듣다 보면 상처가 아물지 않았어. 아물 수가 없지. 가해자가 무슨 처벌을 받길 했나, 잘못했다고 고백을 했나, 사죄를 했나. 이분들이 박근혜에게 자기 아버지를 욕하라고 했나? 상처에다 소금 뿌리지는 말았으면 좋겠어. 인혁당이 두개의 판결이 있다느니, 빨갱이었다느니 하는 건 현재진행형인 범죄야. 지금 20·30대들에게 자기가 태어나기도 전인 40년 전에 일어난 국가폭력까지 책임을 지라고 할 수는 없겠지. 그러나 길 가던 여성이 맞고 있다면 우리 시대 모두의 문제로 느끼는 것처럼 이 엄청난 일을 우리 시대의 문제로 같이 느껴야 해.
서 한마디로 줄이면 유신이 뭐야. 신문에 맨날 쓰고 있더구만.한 한명이 자유롭기 위해 만인이 불행해졌던 시대지. (영화) 에서 명언이 나오데. ‘독재는 한명이 꼴리는 대로 하는 거고, 민주는 저마다 꼴리는 대로 하는 거’라고.
서 전두환 말이 가장 정확해. (성대모사 하며) ‘나한테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말이야.’ 유신이라는 것, 그 시대를 경험한 사람들이 왜 이렇게 두려워하는지는 말해야 맞지. 

의병들은 20대였다, 윤봉길도 20대였다

선거를 통해 뭘 바꿔본다는
경험과 믿음이 없어서
20대 투표율이 낮은 거야
우는 아이 젖주는 건데
젊은이들이 안울어, 침만 뱉어

경제민주화가 걸린 선거
앞으로 20~30년 좌우할 텐데…
윤봉길 의사 80주기인 그 날,
우린 도시락 폭탄 대신에
한표를 던지자 이거야한 

박근혜 후보가 정말 아버지의 부정적 유산과 단절하고 진짜 미래를 얘기하는 후보라면 왜 반대하겠어. 그런데 ‘유신이 뭐가 잘못됐냐’ ‘구국의 결단이었다’고 얘기하는 후보라면, 그런 일을 능히 할 수 있는 사람 아냐?
서 이번 선거에서 가장 불행하게 느끼는 건 딱 한가지야. 난 이번 선거는 정말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아니길 바랐거든. 그런데 12·19 선거 가까워올수록 민주 대 반민주로 가고 있어.
한 그걸 위장하기 위해 저쪽에선 옛날 민주인사 몇 명 갖다가 포장을 하고 있지만….
서 전문용어로 ‘미수꾸리’.(웃음) 나는 경제민주화를 그 입에서 들으니까, 경제민주화가 너무 모욕스러운 거야.
한 우리가 지금 이렇게 싸우고 있는 이유는 역사에 대한 모욕감이라고 생각해. 우리가 젊은 시절부터 여태까지 이렇게 살아온 이유가 된 게 광주 아니야, 광주의 그 힘!
서 그때 (광주)비디오 한편 보고 인생 조진 거지.(웃음) 박종철이가 그랬듯이.한 대한민국이 유신독재를 선거로 정당화시켜주고, 양극화로 애들이 출발선부터 빚쟁이가 되고, 아이들이 장래희망을 ‘정규직’이라고 쓰는 세상이 고착된다면, 80년 5월27일 새벽에 도청에서 총 들고 지키고 있었던 사람들이 미친놈이지. 그런 세상 만드는 데 뭐하러 목숨을 바쳐!
서 박근혜 후보야말로 엄청난 민주화운동의 혜택을 받은 사람이야. 자기 아버지 방식대로라면 선거에 못 나왔지. 대통령 직선제 가져오기 위해서 대체 몇 사람이 죽은 거야!
한 (나지막이) 많이 죽었어.서 민주화가 참 좋긴 좋은 거야. 젠장 괴롭힌 놈도 혜택 주잖아.한 차별은 안 하는데, 아~그걸 너무 악용, 오남용하는 것 같아.

안철수 등판 전엔 얼음 위에 씨 뿌리는 기분서 

자, 20대 이야기 해보세. 20대 투표율이 낮다고 하잖아. 투표 안 하는 게 멋내는 것처럼 돼 있거든.
한 쿨하다고. 또 정치를 난장판으로 만들어서 젊은애들이 관심 안 갖게끔 ‘모두 도둑놈이다’ 하는 식으로 분위기를 만들어버리고. 일부 민주화 세력 중에 부패한 사람 더러 나오니까 그걸 합리화시켜주고.
서 내가 요새 인터넷으로 하루도 안 빼고 방송하고 돌아다니는데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안철수가 다시 나오기 전까진 진짜로 얼음 위에다 씨 뿌리는 기분이더라고. 미치겠더라고. 안철수가 결합하면서 의병들이 나서고 하면서 그제야 싹이 돋아나고 있다는 느낌이 분명히 들어.
한 투표하고 싶어도 못 하는 친구들도 굉장히 많아. 더 큰 문제는 선거로 뭐가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하게끔 만들었다는 거고. 그런데 그런 것들이 사실 역사적 경험 속에서 나오는 건데, 우리가 투표를 해서 뭘 바꿔본 게 정권 자체 빼놓곤 없거든.
서 ‘민주화가 밥입니다’ ‘민주화가 직장입니다’ 하는 걸 보장했어야 하는 건데, 게다가 저쪽에서 경제민주화까지 물타기를 해버리니까. 이른바 의제 점령과 프레임 흐리기인데….
한 또 하나는 민주정권의 체험(때문)이야.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굉장히 어려운 시기에 시작했잖아. 그 시절 어차피 바닥으로 내려간 거, 눈 질끈 감고 재벌개혁 확실하게 해버렸어야 하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너무 빨리 탈출하려고 하다 보니 면죄부를 다 줘버렸지.
서 그것 포함해서 세상 바꾸는 게 20대가 표를 찍느냐 안 찍느냐에 따라 달려 있지.
한 20대들이 이번에 적어도 반값 등록금이면 반값 등록금, 하나에 확실하게 (투표해야 해). 민주당이 아주 과감하게 20대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공약을 해야 해.
서 20대에게 어필하는 게 곧 부모에게 어필하는 거잖아. 복잡하게 할 것도 없어. 내가 늘 말해왔는데 일·몸·집은 하나다. 몸은 100만원으로 해결하고, 일자리는 고용 100퍼센트까지 이를 수 있도록 터전을 닦고, 집은 일자리와 관련해서 정부가 나서서 잘 조절하겠다. 유치원과 대학을 의무교육처럼 다니고 있는데 더 과감하게 해도 욕 안 먹어.
한 정치개혁도 해야지. 청년들이 많이 사는 대학 근처에 과감하게 지역구 의원을 내고 청년들끼리도 청년 어젠다를 활성화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젊은이들이 선거로 뭘 바꿔본다는 그 경험이 없어. 우는 아이 젖 주는 건데, 젊은이들이 안 울어. 침만 뱉어. 젊은 세대들이 이 사회에 건강하게 요구해야 하는데, 그 분노의 타깃을 못 찾는 것 같아.
서 이번에 하는 청춘투표가 인생투표야. 인생이 통째로 걸렸어. 문재인, 안철수를 넘어서 ‘너 자신에게 투표하라!’ 꼰대들 ‘늙은 투표’에 인생 맡기지 말고 ‘나에게 표를’ 던지는 거야. 근데 올해가 임진년이야, 하필. 420년 전 임진년 때도 의병이 나라를 구했어. 나를 위한 투표가 세상을 구하는 거야. 잘하면 내가 이순신이 되는 거야.한 5년 전 선거는 그냥 대통령 하나 뽑는 거였지만 이번에는 국민적 기대가 경제민주화로 모였잖아. 경제민주화라는 건 사실 제헌헌법의 중요 과제였어. 제헌헌법은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민주화의 조화거든. 친일파가 잡으면서 다 깨갱 됐다가 40년 만에 정치적 민주화 됐고, 정치적 민주화 하다 보니 쟤네들(기득권 세력)이 다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서 양극화니 뭐니 해서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됐잖아. 더는 못 참겠다 해서, 그 대안으로 경제민주화를 들고나온 거거든. 경제민주화가 되고 안 되고는 길게 볼 때는 한국 현대사 60년 중 독립운동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그 맥이 계속 살아가느냐 꺾이느냐를 결정하는 거고, 작게 본다면 젊은이들 입장에선 지금 만들어진 체제가 20년 내지 30년 간다는 거야. 우리야 노후가 좀 편하냐 아니냐의 문제지만.
서 우리야 전두환 밑에서도 살았는데, 앞으로도 살면 되지만. 경제민주화가 걸린 선거이기 때문에, 청춘들에게는 요번에 어떻게 첫 단추를 끼우느냐가 앞으로 20, 30년이 걸린 인생투표지.한 투표를 안 하면 불만도 말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

윤봉길 도시락 폭탄처럼, 네 표를 던져! 서 

일본 지배받은 게 34년11개월17일이거든. 박정희가 18년5개월10일17시간 지배했고. 전두환이 8년, 노태우 5년, 이승만 12년. 이거 합치니까 80년이야. 20세기는 껍데기뿐이었던 대한제국 치하 10년, 미군정 독재 3년, 김대중 집권 97년 이후부터 3년 빼면… 한국 사회의 보수적 표심에는 80년 넘게 지배받은 노예적 공포가 있는 거야. 그걸 깨버리는 선거여야 해. 지난 대선은 20대가 아니라 386이 망친 거야. 386이 엠비(MB)가 빤히 더러운 줄 알면서 ‘나의 비비케이(BBK)’에 투자한 거지. ‘내 아파트 값도 좀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노골적으로 갖고 투표한 거거든. 제기랄 유권자는 없고 탐권자만 있었어. 이번엔 진짜 유권자가 돼야 돼. 주권자가 온전한 유권자만 되어도 세상은 딴 길로 안 세는 거야.
한 김대중도 뽑아봤고 노무현도 뽑아봤지만 세상은 안 바뀌었거든. 그 점에 대해서 우리가 젊은이들의 희망을 땡겨 쓰고 무책임하게 부도낸 것에 대해서 우리 세대, 민주화운동 세대들이 정말 반성해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해. 이번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나 정부를 ‘다스리는 통치자’가 아니라 ‘자원 관리자’라고 했음 좋겠어.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자원을 땅 파는 데 쓰느냐 미래에 투자하느냐의 문제인데 젊은이들이 앞서서 우리에게 투자하도록, ‘국가여 우리에게 투자하라’ 하는 거지.
서 가장 저비용을 들여서 내 취업 문제와 건강 문제와 집 문제 해결하는 게 사실은 투표잖아. 그런 점에서 투표란 가장 저비용으로 치르는 가장 값비싼 경제적, 정치적 행동이야. 지금 야당이 그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럴 가능성이 있는 정부라도 만들어놓고 압박해야지. 그러려면 정권교체가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거고.
한 답답한 건 엠비에서 박근혜로 가는 걸 정권교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지.
서 목도리 바꾼다고 영혼이 바뀌고 양말 바꿔 신는다고 발이 바뀌는 건 아니잖아. 이제 마칩시다.
한 12월19일이 윤봉길 의사 80주기야. 윤봉길 의사 80주기를 다카키 마사오를 숭배하는 세력들의 축제일로 만들어선 안 되지. 청년들이 이렇게 불안하고 실업 공포에 떠는 그런 세상이었다면 윤 의사가 목숨 바쳐 독립운동할 이유가 없었던 거지. 윤봉길 의사의 나이, 많지 않아요. 20대. 안중근도 32살이었고.서 역사에 나오는 운동권들이 다 20대지.(웃음)한 윤봉길 의사는 도시락 폭탄을 던졌지만, 우리는 그날 내 표를 던지는 거야. 우리 자신과 우리들의 다가오는 2세들의 미래를 위해서 꼭 투표하고 그 결과를 여러분 당대에 즐기라고 말하고 싶어. 우리 386들은 우리가 즐긴다는 생각을 못 했지만.
서 인터넷 검색 한 번만 해보면 다 알 수 있거든. 윤봉길 의사가 어디에 총을 맞았는지. 일본놈들이 이마에 흰 띠를 두른 다음 정확히 한가운데를 총으로 명중시켰어. 피가 배어 나오면서 자동적으로 일장기가 되도록. 죽음마저도 최악으로 모욕받은 우리 봉길이 형님 80주년이 그날인 게 우리더러 역사적 선택을 하라는 뜻인 거지. 그 이마에서 흘러나온 피를 인주 삼아서 의병투표를 하는 날이자 ‘문안드림’을 훌쩍 뛰어넘어 나 자신을 위해 인생을 걸고 백년투표를 하자는 말씀. 나 자신에게 하는 투표는 언제든 불패의 투표라오. 근데 끝이 너무 거룩하다!(웃음)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한홍구가 청춘에게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은 정동영을 530만표라는 어마어마한 표차로 눌렀지만, 정작 그가 얻은 표는 1149만표로 1201만표를 얻은 노무현의 득표수에 비해 52만표나 적었다. 유권자 수가 266만명이나 늘었음에도 이명박이 얻은 표는 그 전 선거에서 이회창이 얻은 표에 비해 겨우 4만9000표 늘었을 뿐이다. 수구세력이 얻을 수 있는 표의 최대치는 정해져 있다는 얘기다.문제는 투표율이다. 17대 대선은 이명박이 표를 많이 얻어서 이긴 게 아니라, 노무현을 찍었던 사람들이 절반만 다음 선거에 투표장에 나갔기 때문에 진 것이다. 그 사람들이 대한문 앞에 나와 ‘지못미’를 되뇌며 가슴을 쳤다. 강연 가서 “민주화돼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분위기가 금방 썰렁해지니 민주정권 10년을 보낸 뒤 투표장에 가기 싫어질 만도 했다. 투표장 한번 안 나간 탓에 우리는 촛불 들고 몇 달을 거리를 헤맸고, 급기야 분향소에서 눈물 흘리며 소주잔 기울였고, 훨씬 더 팍팍해진 삶을 살아야 했다.민주당 꼴 보기 싫고, 투표한다고 세상이 확 바뀔 것 같지도 않아 투표하러 가고픈 마음이 안 들 수 있지만, 지난 5년 살고 보니 투표장 가야 할 이유는 참으로 절박하다. 재작년보다 작년이 못한 것 같고, 작년보다 올해가 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길게 보면 세상은 우리가 바란 만큼은 아니더라도 꽤 많이 변해왔다. 세상을 바꾸는 주된 동력은 이제 투표가 되었다. ‘1원1표’의 자본주의가 아닌 ‘1인1표’를 통해 인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실천하자. 대한민국의 자원을 강바닥에 퍼붓느냐, 반값 등록금에 쓰느냐 정하는 게 민주주의다. 젊은 벗들이여, 그대의 미래를 그대가 선택하라!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서해성이 청춘에게

  
서해성 소설가

나는 꼰대다.저 광장이 솟구치던 혁명도 꼰대가 되면 한낱 보수에 지나지 않는다. 훈장을 주렁주렁 단 자들이란 자고로 걸음이 느린 법이다. 꼰대란 자기가 겪어온 것으로 후배들을 조지는 자들을 이른다. 이들은 곳간 열쇠와 나침반까지 들고 서서 길잡이를 자임한다. 문제는 열쇠 많은 자가 도둑이기 십상이고 자기 품에 든 나침반이 녹슨 걸 정작 모른다는 데 있다.과거를 부숴버릴 때만 청춘일 수 있다. 청춘투표·인생투표·미래투표·정권교체·징벌투표·의병투표·역사투표, 그리고 경제민주화 투표 등 숱한 이름으로 부르는 이번 대선이, 분명한 건 시대의 나침반 좌표를 다시 설정하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이 좌표 결정을 낡은 언론과 꼰대들의 ‘늙은 투표’에만 맡겨두는 건 청춘들에게 모욕이다.안철수 현상은 누구의 독점물일 수 없다. 그를 매개로 새 세상을 불러내고자 한, 일찍이 없었던 청춘들의 열정은 상당 부분 이미 민주화운동의 새 영역을 대체하고 있다. 이 시대의 파도를 타고 가서 표를 던지는 행위는 밥이 되는 투표이자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내는 민주주의의 지문을 새로 찍는 일이다. 투표는 살아있는 미래를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가장 저비용의 값비싼 제도다. ‘나 자신에게 표를 던지라’는 말이 이것이다.나는 꼰대다. 유신이 부활하려 하는 이 길목에서 꼰대로서 한마디만 하자. 민주주의와 정의에는 묘지가 없다. 그 묘지의 이름이 독재다. 묘지 앞에서 묵념은 필요 없다. 새 좌표에 이것 하나만은 넣어 달라. 그뿐.

서해성 소설가

2012년 12월 9일 일요일

박근혜가 배운 건 가장 나쁜 모습의 박정희였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2-08일자 기사 '박근혜가 배운 건 가장 나쁜 모습의 박정희였다'를 퍼왔습니다.

박정희의 1963년 대통령 선거 포스터. 생전에 세 번의 직선제 대통령 선거와 두번의 체육관선거를 치렀던 그는, 이제 딸을 통한 네 번째 직선제 선거를 통해 부활하려 하고 있다.

[토요판] 한홍구의 유신과 오늘 박정희의 네 번째 선거
세상이 바뀔까 두려워하는 수구세력이 “세상을 바꾸겠습니다”라는 구호를 들고 나온 것은 웃어넘길 수 있다. 그러나 유신세력이 이번 대통령 선거를 과거 세력과 미래 세력의 대결이라면서 자신들을 지지해달라고 하는 데 이르러서는 그냥 웃어넘길 수 없는 모멸감을 느낀다. 혹자는 이번 선거를 박정희 대 노무현의 대결이라고 하고, 또 1차 티비 토론 이후에는 다카키 마사오 세력 대 김대중 · 노무현 세력의 대결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유신과 오늘’에서는 이번 대통령 선거를 박정희의 네 번째 대통령 선거라는 관점에서 그 의미를 짚어보도록 하겠다.국가예산의 10%를 퍼부었던 1971년 대선박정희는 1963년 8월 30일 전역식에서 눈물을 흘리며 “본인과 같이 불운한 군인이 또 다시 없도록” 운운하며 군복을 벗는 소회를 밝혔다. 20세기 지구의 곳곳에서 군사반란으로 집권한 수많은 군인아저씨들은 거의 다 군복을 입고 통치했지만, 박정희는 군복을 벗고 선거를 치러야 했다. 남북분단이 동서냉전의 대리전을 수행하던 현실에서 미국은 자신의 쇼윈도에 군복이 걸려있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군부 일각에서는 원래의 공약대로 군은 깨끗하게 원대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수도경비사령부 군인들은 군정을 연장하라고 데모하기도 하고, 박정희는 오락가락 갈팡질팡 번의에 번의를 거듭하다가 결국 군복을 벗고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박정희와 윤보선이 격돌한 제5대 대통령 선거는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15만 표로 가장 표차가 적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승부가 갈린 것은 윤보선이 박정희의 ‘여순반란 사건’에 관련된 좌익 전력을 거론하며 제기한 사상논쟁이었다. 사상논쟁은 윤보선의 기대와는 달리 역효과가 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국에 널리 퍼져있던 좌익관련자들이 적극적으로 박정희를 지지해 여기서 승부가 갈린 것이다.평생 권력을 움켜쥐고자 했던박정희는 두 번의 임기뒤삼선개헌안을 날치기 처리했고유신쿠데타 통해 국민들이대통령 뽑을 기회마저 빼앗았다퍼스트레이디 박근혜가 배운 건권력에 취해 비틀거리는가장 나쁜 모습의 박정희였다유신의 부활이냐 종말이냐우린 그 선택의 갈림길에 서있다1967년 5월 3일의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는 윤보선과 재격돌했다. 야당은 오랜 분열을 극복하고 신민당이라는 통일대오를 만들었지만, 후보로는 윤보선을 다시 내세웠다. 51세 박정희와 71세 윤보선의 대결, 가난한 농민의 아들임을 내세우는 박정희와 서울의 대부호 양반가의 후예 윤보선의 대결은 구도가 좋지 않았다. 이제 막 경제개발계획이 궤도에 오르고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돈이 풀리면서 국내의 경제상황도 나쁘지 않았다. 아직 박정희의 독재가 본격화되기 이전이었고, 박정희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자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박정희는 4년 전 15만 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이긴 윤보선에게 116만 표 차이의 대승을 거두었다. 당시 제3공화국 헌법은 4년 중임의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었는데, 중임 임기가 끝나는 1971년에 55세가 되는 박정희는 권력을 내놓을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삼선개헌을 염두에 두고 한 달 여 후인 6월8일에 치러진 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개헌이 가능한 의석수를 확보하기 위해 초유의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박정희는 이렇게 확보한 개헌가능 의석을 이용하여 삼선개헌안을 국회에서 날치기로 ‘처리’했다. 다른 신문들은 ‘통과’라 썼지만, 동아일보만은 언론의 자존심상 ‘통과’라는 말을 쓸 수 없어 ‘처리’라고 했다고 한다.1971년의 제7대 대통령 선거는 비록 야당이 패배하긴 했지만,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박진감 넘치는 선거로 꼽힌다. 대통령 선거를 1년여 앞 둔 시점에서 신민당 유진오 총재가 갑자기 뇌일혈로 쓰러졌다. 야당으로서는 1956년과 1960년 대통령 선거 당시 신익희 후보와 조병옥 후보가 갑자기 세상을 뜬 데 이어 또 다시 불행한 사태를 맞은 것이다. 이때 신민당의 원내총무였던 42세의 김영삼이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왔다.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이 출마한 신민당 내 경선에서 40대 기수론을 주창한 김영삼이 예상대로 1위를 차지했지만, 과반수 득표에 실패해 2차 투표에 돌입했다. 여기서 이변이 발생해 2위였던 김대중이 후보로 선출되어, 박정희와 맞붙게 되었다. 박정희는 1967년의 6·8총선에서 김대중을 낙선시키기 위해 김대중의 지역구인 목포에서 국무회의를 열 정도로 김대중을 싫어했다. 그런 김대중과 경쟁하는 것은 박정희의 자존심을 크게 상하게 했다. 이렇다 할 쟁점을 만들어내지 못했던 윤보선과는 달리 김대중은 예비군 폐지, 4대국 보장론, 대중경제론 등 참신한 공약을 쏟아냈다.박정희는 사회의 구성이 고도화되면서 자연스럽게 분출되는 각계각층의 요구를 수용하고 조화시킬만한 능력도, 품성도 갖고 있지 않았다. 박정희가 본격적으로 지역감정을 이용한 것도 1971년 대통령선거에서부터였다. 당시 중앙정보부 차장보로 박정희 측의 선거에 깊이 간여했던 강창성이 뒤에 고백한 것처럼, 이들은 “모든 부정을 저질러서 박 후보의 당선을 만든 것”이었다. 1971년 국가예산은 5242억이었는데, 박정희 정권이 이 선거에 국가예산의 10퍼센트가 넘는 700억을 퍼부었다. 박정희는 이런 엄청난 부정을 자행하고도 정치신인에 가까운 김대중과의 표차를 94만 표밖에 벌리지 못했다. 1956년의 조봉암 때와 마찬가지로 김대중이 투표에서 이기고 개표에서 졌다는 말이 떠돌았다.유신체제 의전서열 2위와 최태민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큰 쟁점이 된 것은 총통제 문제였다. 김대중은 이번에 박정희의 집권을 저지하지 못하면 박정희가 총통제를 실시하여 영구집권을 꾀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박정희는 김대중이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면서 이번이 국민여러분께 자신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마지막 선거라고 호소했다. 역설적인 일이지만 박정희는 이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유신쿠데타를 통해 국민들에게서 대통령을 선출할 권리를 빼앗아갔기 때문에 더 이상 국민에게 자신을 찍어달라고 부탁할 일을 원천적으로 없애버렸다. 당시 국민학교에서도 반장은 학생들이 직접 뽑았는데, 국민들은 제 나라의 대통령을 뽑을 수 없었다. 박정희는 1972년과 1978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두 번이나 더 대통령에 ‘선출’되었지만, 이것은 선거가 아니라 선거놀음일 뿐이었다. 1987년 6월항쟁에서 구호는 복잡하지 않았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직선제로 민주쟁취” 16글자에 집약된 뜻은 한 마디로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자는 것이었다.박근혜 후보를 흔히 유신공주라 부른다. 그런데 공주라는 말은 가끔씩 오해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1974년 여름 이후 박근혜는 유신체제에서 어린 공주가 아니라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했다. 왕비가 없는 상태에서 공주는 유신체제의 의전서열 2위로 유신체제의 핵심적인 구성부분이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권력의 정점에 섰다. 박근혜는 외모는 어머니 육영수의 온화한 모습을 많이 닮았지만, 속은 영락없는 박정희였다. 박근혜는 아버지로부터 권력의 생리와 운영방법을 배웠지만, 불행하게도 박근혜가 보고 배운 시기의 박정희는 권력에 취해 비틀거리는 가장 나쁜 모습의 박정희였다. 박정희도 처음부터 언로가 막혀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초기의 박정희는 부들부들 떨고 재떨이 집어 던질지언정 기자들하고 논쟁도 했고 대드는 기자들을 중용하기도 했다.박정희가 그래도 기자들과 막걸리를 앞에 두고 때로 고성이 오가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이 있었던 반면, 박근혜는 처음부터 얼음공주였다. 선거의 핵심과제인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힘들게 모셔온 김종인 전 의원조차 가차 없이 잘라버리는 상황에서 박근혜의 눈이 발하는 레이저광선 앞에 모두들 침묵해버리고 만다. 최근 교통사고로 숨진 이춘상 보좌관의 죽음은 그가 박근혜 후보에게 그래도 불편한 진실을 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측근이었다는 점에서 박근혜 후보에게는 치명적인 손실이 아닐 수 없다.박근혜 후보와 관련된 여러 가지 부정적인 이야기의 90퍼센트 이상은 구국선교단 총재라는 최태민이라는 정체불명의 인물과 연관되어 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바에 따르면 주한미대사 버시바우는 “최태민이 박근혜의 인격형성기에 박근혜의 몸과 영혼을 완전히 통제”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2007년 본국 정부에 보고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그 소문의 대부분이 박근혜 후보의 동생인 박근령 등 최측근이나, 박정희를 가장 열심히 찬양한 조갑제나 요새 TV토론에 보수진영을 대표하여 가장 빈번히 얼굴을 내미는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진 같은 사람의 취재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는 점이다.박근혜는 박정희 사후 영남대 이사장에 취임했으나, 학생들의 반발로 곧 이사장 직을 사임하고 평이사로 내려앉았다. 영남대학은 영남학원 상임이사 김정욱, 곽완석 사무부처장, 손윤호 영남병원사무장, 조순제 영남투자전무 등 박근혜가 임명한 측근 4인과 이사진이 1인당 2천만 원이라는 거액(현재는 2~3억 가치)을 받고 30여명을 부정입학시킨 사실이 적발되었다. 이들과 이사진은 마땅히 감옥에 가야 하는 것이었으나, 박근혜와 측근들이 영남학원에서 영원히 손을 떼는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졌다. 이때 박근혜와 함께 사임한 이사진은 상임이사 김정욱, 이사 김창환, 손미자 등인데, 이들은 모두 정수장학회의 이사를 지냈다. 이들 중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지낸 김창환은 최태민의 사촌, 조순제는 최태민의 의붓 아들, 손윤호는 최태민의 처남으로 알려져 있다. 영남학원 이사진에서 부정행위로 쫓겨난 자들을 박근혜는 정수장학회에서 여전히 이사로 기용했다. 현재 박근혜를 보좌하고 있는 보좌진들의 골격은 최태민의 사위인 정윤회가 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버시바우가 한국의 라스푸틴이라고 평한 최태민의 그림자가 박근혜가 흉탄에 어머니를 잃은 황망했던 어린 시절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이다.윤봉길 의사 80주기, 다카키 마사오를 생각한다볼셰비키혁명을 촉발했다고 일컬어지는 제정러시아 시대의 괴승 라스푸틴은 황제까지 혹하게 만들었으나, 박정희가 최태민에 넘어간 것은 아니었다. 박정희의 비서실장이자 술 친구로 10 · 26 사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인 김계원이 적나라하게 폭로한 것처럼 박정희는 “그 X(최태민)가 그 X(박근혜)를 홀렸다”며 최태민과 박근혜에 관한 보고서가 올라오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고 김계원에게 호소했다고 한다. 최태민은 박정희보다도 5살이나 많았는데, 최태민의 존재는 박정희는 물론이고 비서실장 김계원, 민정수석 박승규, 정보부장 김재규 등의 골칫거리였다. 운명의 10월 26일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쏜 김재규는 항소이유서 보충서에서 10·26사건의 먼, 그러나 중요한 이유의 하나로 최태민 문제를 꼽았다. 박정희를 친형처럼 따랐던 김재규로 하여금 박정희의 통치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품게 만든 계기였던 것이다.

올해 대선일인 12월19일로부터 정확히 80년 전인 1932년 12월19일 일본의 처형장에서 벌어진 일. 일제는 윤봉길 의사의 눈과 이마를 헝겊으로 가린 뒤 10m 거리에서 딱 한 발의 총알로 이마 정중앙을 명중시켜 핏자국으로 일장기 모양을 만들었다.

박근혜는 “곳곳마다 새마을 사람마다 새마음”이라는 구호 아래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을 본 따 새마음 운동을 전개했다. 최태민이 부추긴 공주놀음에 푹 빠져 아버지 속을 지지리도 썩인 딸은 나이 지긋한 교장선생님이나 지역의 원로인사들을 모아 예행연습까지 시키며 몇 시간 씩 줄지어 세워놓고 효도에 대한 강연을 했다. 시골에 가면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이 영애님 오셨다고 큰 절을 했다. 육영수는 말할 것도 없고 박정희도 이런 절을 받지는 않았다며 김재규는 왜 어린 박근혜가 노인들 절 받느냐고 탄식했다고 한다. 박정희는 최태민 문제로 골치를 썩으며 검찰에 수사를 지시하고 봉건시대의 임금마냥 최태민을 불러 친국을 행하는 등 최태민을 떼어 놓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다 썼으나 울며불며 난리 치는 박근혜를 이기지 못했다고 한다. “에미도 없는 게 시집도 안 가고 애쓰는 게 불쌍하다”는 박정희의 동정이 화를 키웠다면, 지금도 박근혜를 불쌍하다고 여기는 일부 대중들의 값싼 동정이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18대 대통령 선거에서 핵심 과제는 경제민주화이다. 1948년 제헌헌법은 한 발 오른 쪽으로 가긴 했지만, 독립운동가들이 꿈꾸었던 나라의 모습을 온전히 담고 있다. 불행하게도 친일파들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제헌헌법은 국가보안법에 깔려 질식당하고 말았다. 대한민국 헌정사는 박정희라는 동일인물에 의해 1961년과 1972년 두 차례나 짓밟힘을 당했고, 민주주의는 크게 후퇴했다. 10·26 사건으로 박정희가 죽으면서 민주주의가 소생의 기회를 맞이했으나 또 다시 박정희의 경호장교였던 전두환, 노태우 일당에 의해 피비린내 나는 광주의 학살을 겪어야 했다. 1987년의 6월항쟁은 간신히 정치적 민주주의만을 회복했다. 안타깝게도 정치적 민주화의 과실은 일반 시민들보다도 재벌과 관료와 수구언론이 따먹어 버렸고,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와 외환위기의 광풍 속에서 양극화의 나락에 빠지고 말았다. 6월항쟁으로부터 25년이 지난 2012년 한국사회는 다시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이명박이 가져온 역사의 퇴행은 한 발 더 나아가 박정희의 부활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는 박정희의 부활이냐, 정치적 민주화에 이은 경제민주화를 성취하느냐의 갈림길에서 2012년의 선거를 치르게 된다.12월 19일은 윤봉길 의사의 80주기가 되는 날이다. 일제는 1932년 12월 19일, 일본 이시카와현 미고우시 육군공병작업장에서 가장 악질적이고 모욕적인 방법으로 윤봉길 의사를 처형했다. 일제는 25세의 청년 윤봉길의 무릎을 꿇려 낮은 십자가에 붙들어 매고는 눈과 이마를 헝겊으로 가렸다. 그리고 10미터 거리에서 딱 한 발의 총알로 윤봉길 의사의 이마 정중앙을 명중시켰다. 피가 흘러나와 헝겊을 붉게 물들였으니 저들은 윤봉길 의사의 죽음으로 일장기를 그린 것이다. 박정희가 하필이면 자신이 롤모델로 삼았던 명치유신의 지도자 이토 히로부미가 죽은 날을 골라 자신의 제삿날로 삼은 것도 심상치 않은 우연이지만, 윤봉길 의사의 80주기 되는 날이 18대 대선일인 것도, 그 날이 다카키 마사오를 숭상하는 세력과 민주세력의 한판승부가 벌어지는 것도 범상치 않은 우연이다.

2012년 11월 30일 금요일

유신공주는 양공주 문제엔 관심이 없었다


이글은 한겨레신문2012-11-30일자 기사 '유신공주는 양공주 문제엔 관심이 없었다'를 퍼왔습니다.


[토요판]한홍구의 유신과 오늘
(20) 기지촌 정화운동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가 선거의 핵심 표어로 ‘여성대통령’을 들고나왔다. 생물학적인 성(섹스)과 사회적인 성(젠더)을 엄격히 구분하는 입장에서는 박근혜의 여성대통령론을 마뜩지 않게 여기고 있다. 박근혜 후보가 동시대 여성 전체는 물론이고 자신의 동년배 여성들과도 달라도 너~무 다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유신과 오늘’에서는 여성대통령을 표방하고 나선 박근혜가 영애로서, 퍼스트레이디로서 생활했던 유신시대에 동년배 여성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돌아보고자 한다. 유신시대 여성들의 삶은 이미 살펴본 여공들보다 더 내려가 기생관광과 기지촌을 들여다보아야 바닥이 보인다.박근혜가 구국의 결단이었다고 찬양해온 유신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일본군 위안부 제도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기지촌 정화운동이 나온다. 인혁당이나 정수장학회 문제와 같은 낯익은 국가폭력 사건의 경우 직접적인 피해자도, 직접적인 가해자나 수혜자도 국민 전체에서 보면 소수라 할 것이다. 그러나 기지촌 문제는 그 피해자가 수십만이고, 수혜자도 특정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데다 너무나 뚜렷하게 현재진행형이다. 기지촌 정화운동을 통해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사실상의 공창제를 운영하면서 힘없는 여성들의 몸뚱이를 담보로 국가안보와 외화벌이를 동시에 해결하고자 했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미군철수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

해방 후 남한에 진주한 미군은 일본군 주둔지역에 주둔했다. 용산 미군기지는 일본의 조선군사령부 자리였고, 미국 공군이 자리잡은 평택도 일본군이 비행장을 닦던 곳이었다. 당연히 일제 때에 형성된 유곽은 미군을 상대로 한 기지촌으로 바뀌어갔다. 사회안전망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던 시절, 갑작스런 전쟁으로 남편을 잃거나 공동체로부터 유리된 여성이 먹고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아무도 그들을 지켜줄 수 없었던 전란 속에서도 순결은 여전히 목숨보다 귀한 가치였다. 한번 ‘몸을 버린’ 여성들, 특히 가진 것이라곤 ‘이왕 버린 몸뚱아리’ 밖에 없는 수많은 여성들은 극도의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갈 곳이 없었다. 수많은 순이들은 지친 몸을 뉘일 곳이라곤 기지촌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에레나가 되어갔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순이가 에레나가 되었을까? 한국전쟁 때부터 지금까지 기지촌을 거쳐 간 여성의 숫자를 관련 연구논문에서는 대개 30만 가량으로 추산하는데, 30만이라면 파월장병 숫자와 비슷한 규모이다.미국은 닉슨독트린에 따라 1971년 3월 7사단과 3개 공군 전투부대 등 주한미군 6만2천 명 중 2만여 명의 철군을 단행했다. 미군철수로 공황상태에 빠진 박정희는 미군의 추가철수를 막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갑’인 미국은 ‘을’인 한국에게 다양한 경로로 기지촌 정비에 대한 요구를 해왔다. 미 대사관은 주로 한국의 기지촌에서 한국인들이 흑인 병사들을 인종차별 하는 것에 대한 닉슨 대통령의 우려를, 미8군 측은 기지촌의 불결한 환경과 성병 문제를 제기했다. 1971년 12월 박정희가 한미 1군단사령부를 순시했을 때 부사령관 이재전은 박정희를 수행하면서 미군 측이 요구하는 기지촌 정화에 대하여 건의했다. 미군은 지원병 제도를 택하고 있는데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이 한국이 성병 발병률도 높고 인종차별도 심하다며 자식의 한국 배치에 극력 반대한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측은 독일이나 오키나와 등지의 쾌적한 기지촌의 예를 들며 한국측에 대대적인 기지촌 정비를 요구했다.청와대로 돌아온 박정희는 수년에 걸쳐 내각에 지시했는데 왜 정화가 안됐느냐고 크게 화를 내면서 청와대가 직접 사안을 챙기라고 지시했다. 담당자는 정무비서관 정종택이었는데, 그는 새마을운동 담당관을 겸임하고 있어 기지촌 정화운동은 기지촌의 새마을운동으로 불리기도 한다. 1971년 12월 31일 청와대에서는 10여개 부처의 차관들을 위원으로 하는 청와대 직속의 기지촌 정화위원회가 발족하여 미국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여 기지촌의 환경개선과 성병의 예방과 치료 등의 과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논의했다.미군 철수의 절박한 상황에서 바짓가랑이라도 붙드는 심정으로 기지촌 정화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기지촌 정화운동이 미국의 요구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추진도 한미합작으로 이뤄졌지만, 한국 정부는 사실 기지촌 정화 운동이 공식적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기지촌의 정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박정희의 지시로 5·16군사반란의 적극 가담자이자 중앙정보부 서울분실장으로 막강한 위세를 떨친 백태하가 주도한 군산의 아메리카 타운은 미군들의 쾌락을 위해 건설된 계획도시였다. 1969년 9월 문을 연 아메리카 타운은 미군을 위한 클럽, 식당, 미용실, 각종 상점, 환전소에 기지촌 여성들을 위한 500여개의 방까지 갖춘 매매춘을 위한 자급자족형 신도시였다. 여성학자들은 군산의 아메리카 타운을 정부 주도하에 설립된 ‘군대 창녀 주식회사’라 부른다.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전투력의 극대화를 위해서는 전장의 병사들이 섹스를 즐길 수 있어야하되, 성병으로 인한 전투력 손실을 막기 위해 깨끗한 성을 공급한다는 국가관리 매매춘 시스템이었다. 이 점에서 기지촌 정화운동은 일본군 위안부제도를 무섭게 빼닮았다.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야만적인 제도지만, 이 제도를 만든 자들은 야만인이 아니라 대일본제국의 가장 우수한 아들들이었다. 기지촌 정화운동을 입안한 자들도 한국과 미국의 엘리트 관료들이었다. 대일본제국의 가장 우수한 아들들도,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일본과 싸웠다는 위대한 미국의 빼어난 아들들도, 일본에서 미국으로 주인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승승장구한 식민지 조선의 수재들도 위안부들의 인권같이 사소한, 어쩌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을 무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박정희에게 기지촌 정화운동을 건의한 이재전이 솔직하게 고백한 것처럼 기지촌 정화운동은 기지촌 주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한미군을 위한 것이었다.

‘주한미군 전투력 극대화 위해 
섹스를 즐기도록 하되 
성병으로 인한 전투력 손실을 
막기 위해 깨끗한 성을 공급한다’ 
그것은 일본군 위안부제와 흡사한 
좋게 말하면 국가포주제였다 

영애 박근혜는 그 시절
원로급 인사들을 모아놓고 
충효사상을 강연했지만
밑바닥에서 사회를 떠받치는 
기지촌 여성들 손을 잡은 적 없다

“안보와 달러를 위해 몸을 씻으시오”

기지촌 여성들은 청결한 몸과 깨끗한 성을 판매하기 위해 최소 일주일에 두 번 검진을 받아야했다. 아무리 몸을 파는 여성이라 해도 검진대에 올라 남자 의사에게 치부를 보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렇게 검진을 받아야만 검진증에 도장을 받을 수 있었다. 기지촌 여성들에게 검진증은 신분증이자 ‘영업허가증’이었다. 검진증을 갖고 있지 않다가 미군헌병의 검문(기지촌에서는 이를 ‘토벌’이라 불렀다)에 걸리면 즉심에 회부되었다. 당시 미군의 성병은 놀라울 정도로 증가하고 있었다. 기지촌 정화운동에 대한 탁월한 연구인 캐서린 문의 (동맹 속의 섹스)에 따르면, 1천명 당 성병발생 건수는 1970년 389건, 1971년에 553건, 1972년 692건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미군부대 정문 보초의 주된 임무는 외출 나가는 병사들에게 콘돔을 나눠주는 일이었다고 한다. 검진에서 성병에 걸린 것으로 적발당한 여성은 가차없이 ‘몽키하우스’라 불린 성병진료소에 감금되었다. 반면 성병에 걸린 미군이 완치될 때까지 외출이 금지되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었다. 미군의 7할이 성병에 걸려있건만 성병의 책임은 오로지 한국 여성의 몫이었다. 성병진료소에서는 처음에는 페니실린을 투약했지만 부작용이 자꾸 생기고 잦은 투약으로 내성이 생겨 약효가 떨어지니 투약 용량을 자꾸 늘렸다. 의사들은 부작용이 거의 없었다고 했지만, 여성들은 주사를 맞으면 다리가 끊어지게 아팠고, 많은 사람들이 자다가 죽고, 화장실에서 죽고, 밥 먹다 죽었다고 증언하고 있다.아직 한국경제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던 시절 기지촌 경제의 위력은 대단했다. 이나영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964년 한국의 외화수입이 1억 달러에 불과하던 시절, 미군 전용 홀에서 벌어들인 돈은 근 10퍼센트인 970만 달러에 달했다. 한국정부는 주말외출 나온 미군들이 오키나와나 일본으로 가 성매매 하는 것을 기지촌 여성들을 업그레이드하여 국내에서 흡수하기 위해 그들에게 영어와 에티켓을 교육하려했다. 기지촌 ‘양공주’에서 활동가로 우뚝 선 아메리카 타운 왕언니 김연자의 회고록에 보면 당시 강사들은 이런 식으로 얘기했다고 한다. “흠흠, 에 여러분은 애국자입니다. 용기와 긍지를 갖고 달러 획득에 기여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에, 저는 여러분과 같은 숨은 애국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미국 군인들이 우리나라를 도우려고 왔으니 그 앞에서 옷도 단정히 입고, 그 저속하고 쌍스러운 말은 좀 쓰지 마세요.” 원자재 없이 외화를 벌어들이는 산업 전사들이자 미군을 붙들어 두는 안보전사로 그대들이야말로 참된 애국자이니 긍지를 갖고 일하라는 말에 그렇게 좋은 일이면 제 딸부터 시키지 하고 코웃음 치는 사람도 있었고, 그래 우리는 “열심히 씹을 팔고 좆을 빨자”고 자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영어강사들은 “메이 아이 씻 다운?”하는 식의 교양 영어를 가르쳤지만, 여성들은 바쁜 세상에 ‘메이’는 무슨 놈의 얼어 죽을 메이냐며 자신들에게 필요한 영어란 렛스 고 숏 타임, 렛스 고 롱 타임, 하우 마취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찰서나 ‘자매회’가 주최하는 이런 교양강좌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었지만, 모두들 검진증 뺏기지 않으려면 자리를 채워야 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조선여성들은 학교 문전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일본어를 몰랐다. 그들은 “닛뽄징 조센징 덴노헤이까 오나지네(일보인과 조선인은 천황폐하가 같지요)” 따위의 서비스 언어를 날림으로 배워 급히 외워야 했다.안보 전사답게 기지촌 여성들도 팀스피리트 훈련을 뛰었다. 기지촌과는 달리 훈련 나와서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미군들도 훈련 사이사이의 짧은 시간에 욕구를 풀려니 앞 사람이 조금만 오래 끌면 문을 두드리고 난리를 쳤다. 이렇게 밖에는 길게 줄을 서 있고, 안에서는 5분도 안 걸리게 일을 치르면서 여성들은 옛날 정신대 끌려간 사람들이 이랬겠구나 생각했다. 그 와중에 한국정부는 야전에 임시보건소를 지어 여성들을 검진했다. 여성들이 아니라 미군을 위해서였다. 왕언니 김연자는 그런 데까지 돈 벌러 간 여자들도 참 대단한 사람들이지만 거기에 천막 치고 보건소 세워 준 정부도 참 대단한 정부였다고 혀를 찼다.


한미동맹은 가치동맹 이전에 ‘섹스동맹’

미군기지에서 얼마나 떨어진 곳까지가 기지촌일까? 보산리, 안정리, 용주골만 기지촌이 아니었다. 미군기지는 어디에나 있었다. 대한민국이 캠프 코리아였고, 대한민국 전체가 거대한 기지촌이었다. 미군이 떠나면 우리는 다 죽는다며 미군의 바짓가랑이 잡고 늘어지는 자들이 한국의 ‘지도층’ 인 한, 정신적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기지촌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두 그 거대한 기지촌 캠프 코리아의 주민이었다. 우리가 몸을 팔지 않았고, 우리가 포주질 하지 않았고, 우리가 뚜쟁이질 하지 않았어도 우리는 우리 부모와 우리 형제자매가 그렇게 번 돈으로 밥 먹고 학교 다닌 것이다. 기지촌 정화운동은 아무리 좋게 얘기해도 일본군 위안부 제도와의 관련성을 부인할 수 없는 국가포주제도였다. 이나영 교수의 지적처럼 대한민국 전체가 ‘양공주’가 담보하는 국가안보에 기대어, ‘양색시’가 번 돈에 혹은 그들의 일터와 관계된 경제구조에 기생하며, 일정 부분 미국의 ‘위안부’가 되어 살아왔던 것이다.군대가 있는 곳에 매매춘이 있기 십상이지만, 군대와 매매춘 사이에 필연적인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우디처럼 이슬람 율법이 엄한 나라의 미군기지 앞에는 매매춘으로 흥청대는 기지촌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지촌 정화운동은 도덕적으로 타락한 여성들이나 업주들과 매매춘을 원하는 미군병사 사이의 사적인 거래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기지촌 정화운동은 미국과 한국 두 국가가 긴밀히 협력하여 추진한 국가적인 산업이자 정책이었다. 한미동맹을 얘기할 때 가치동맹을 얘기하지만, 가치동맹 이전에 섹스동맹이 있었다. 미국은 자국 병사들의 안전한 섹스와 스트레스 해소를 원했고, 한국은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과 미국 병사들이 뿌리는 달러를 원했다. 두 나라는 굳게 손잡고 기지촌 정화운동을 펼쳤다.19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군범죄에 관한 기사는 신문에 자주 실렸다. 그러나 기지촌 정화운동과 거의 동시에 시작된 유신시대의 신문지상에서 미군범죄에 관한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는 기지촌 여성들을 안보전사이자 산업역군이라고 떠받들었지만, 정작 그들의 인권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혼혈’ 자식들은 미국으로 입양보내고 홀로 남은 이들은 이제 늙고 병든 몸으로 고독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8월 31일 기지촌여성인권연대가 발족했다. 그동안 기지촌 여성들을 위해 활동해온 이들이 먼저 깃발을 들었지만, 어찌 이 문제가 기지촌여성인권연대만의 과제이겠는가? 거대한 기지촌 캠프 코리아의 주민 모두는 이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기지촌 여성 문제는 모든 국민이 책임져야 할 문제이지만, 국가포주제를 건설하고 운영한 수장의 따님인 박근혜 후보는 각별한 책임을 느끼고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 그들은 사회가 조금만 문 열어 주었어도 우리가 이렇게 살지는 않았다고 지금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들이 정녕 안보전사였다면 마땅히 국립묘지에 모셔야 하는 것 아닌가? 국립묘지 문 열어달라는 말은 안 하겠다. 다만 그들을 향해 굳게 닫혀 있는 우리 사회의 문, 우리의 마음의 문은 열어야 할 것이다. 그 문을 가장 먼저, 가장 활짝 열어야 할 책임은 다른 누구보다도 박근혜 후보에게 있다. 공주와 양공주는 딱 한 글자 차이지만, 이 사이에 우리나라의 모든 여성이 다 들어간다. 영애 박근혜는 그 시절 자신보다 두세배 나이를 잡수신 교장선생님이나 원로급 사회인사들을 모아놓고 새마음정신 고취란 이름으로 충효사상을 강연했지만, 정말 이 사회를 밑바닥에서 떠받치는 기지촌 여성들의 손을 잡은 적은 없다. 박근혜 후보여, 여성 대통령을 표방하려면 동시대를 산 동년배 여성들의 희생에 먼저 경의를 표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