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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7일 일요일

일본의 조건 ‘ISD는 하지 않는다’


이글은 한겨레21 2013-03-18일자 제952호 기사 '일본의 조건 ‘ISD는 하지 않는다’ '를 퍼왔습니다.
[기획] 3월15일로 한-미 FTA 발효 1년, 미국과 TPP 협상 시작한 일본 다녀온 송기호 변호사 기고… 노무현 정부식의 허위의식 없이 고유의 제도를 유지할 수 있느냐 놓고 논쟁 중

3월15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지 1년이 된다. 성적은 보잘것없다. 정부가 자신했던 장밋빛 경제 효과는 미미한 반면, 우려했던 대로 공공정책이 발목을 잡히는 부작용은 속속 나타나고 있다. FTA 발효 뒤 3개월 안에 미국 쪽에 요구하기로 했던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재협상은 감감무소식이다. 정부가 미국의 무리한 요구에 철저히 놀아난 결과다. 이제 막 미국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을 시작하기로 한 일본은 우리와 상황이 다르다. 신중하고 주도적이다. 완전 관세 철폐는 반대하고 주권을 침해하는 ISD도 제외하기로 했다. 건강의료보험·정부조달·금융서비스 따위 주요 부문은 개방하지 않거나 개방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송기호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가 일본의 생활협동조합인 ‘생활클럽’의 초청으로 지난 2월26일~3월4일 일본에 건너가 ‘TPP를 신중하게 생각하는 국회의원 모임’에서 실패한 한-미 FTA의 지난 1년을 설명하고, 일본 정부·의회가 TPP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을 살펴보고 돌아왔다. 한-미 FTA는 일본이 피하려는 반면교사지만, 일본의 TPP는 한국이 주목해야 할 선례가 된 것이다. _편집자 

» 송기호 변호사(맨 앞줄 왼쪽)가 지난 3월1일 일본 중의원 회관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신중하게 생각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보좌관에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1년 평가’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송기호 제공

일본 도쿄 시내 일본예술원 현관에서는 세 여인을 조각한 입상이 사람을 맞이한다. 일본 조각가 하시모토의 대표작 (화엄)이다. 부처님같이 온화한 얼굴, 부드러운 눈매, 그리고 풍만한 젖이 드러난 몸매를 살포시 감싼 옷을 입고 세 여성이 어깨를 맞대며 나란히 서 있다. 막 깨달음에 이른 듯, 기쁜 미소로 환대한다.

중국을 겨냥한 제2의 탈아론

나는 3명의 동양적 여성상을 보며 이들이 각기 한국·일본·중국 세 나라의 여성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성의 눈빛과 몸에서 세 나라의 평화의 냄새를 맡고 싶었다. ‘화엄’이란 온갖 꽃으로 장엄하게 꾸민다는 뜻으로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깨달음의 비유라고 한다. 그러니 이 작품에 한국이니 일본이니 하는 국적을 갖다붙이려는 내 생각은 부질없는 짓이리라. 하지만 서로 어깨와 몸을 맞대고 평화롭게 나란히 서 있는 여성상에라도 동양 삼국의 평화를 투영하며 위로를 얻고 싶었다. 그만큼 지금 동아시아의 삶은 위태롭다.
오랜 기간 남한에는 미국의 핵무기가 있었다. 아마 일본에도 그랬을 것이다. 벚꽃처럼 짧았던 일본 민주당 정권에서 밝혀졌듯이 미군 핵무기 반입 밀약이 있었다. 오랫동안 북한 사람들은 핵전쟁의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그 결과가 북한의 핵 개발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제 핵으로 남한을 위협한다. 북한은 지난 2월19일, 유엔 회의에서 남한의 잘못된 행동이 ‘최종적 파괴’의 전조가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지난 3월6일에는 최고사령부 성명에서 미국이 핵을 내세운다면 서울과 워싱턴이 핵 공격으로 불바다가 될 것이라고 했다. 다른 나라의 핵 위협을 이유로 핵 개발을 정당화했던 나라가 이제는 다른 나라를 핵으로 위협하고 있다. 또 다른 핵보유국 중국은 일본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다. 동아시아의 모습은 화엄의 세 여성이 품고 있는 아름답고 장엄한 땅과 거리가 먼 곳이 되었다.
어떻게 해야 평화롭게 살까? 도쿄 우에노공원에는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불’이라는 조형물이 있다. 마치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의 올림픽 성화처럼 이 불은 꺼지지 않고 타고 있다. 아시아에서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서구 문명에 도달한 일본, 그리고 오늘 한국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많은 낱말을 번역해서 동아시아에 도입한 일본은 왜 핵전쟁의 피해국이 되었을까?
일본의 서구 문명 수용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회의’ ‘연설’ ‘경쟁’과 같은 일상 용어를 만든 후쿠자와 유키치를 보자. 일본의 가장 고액권인 1만엔에는 그의 초상화가 있다. 그는 세계를 ‘야만, 반개(半開), 문명’의 세 가지로 구분했다. 그는 1875년에 쓴 (문명론의 개략)에서 “단지 진퇴(進退)라는 두 글자가 있을 뿐이며 일본은 앞으로 나아가 문명을 좇을 것인가, 뒤로 물러서 야만으로 되돌아 갈 것인가”라고 썼다. 그리고 1885년 발표한 사설 ‘탈아론’에서 서구 사회를 문명으로 규정하고 한국과 중국을 스스로는 문명화될 수 없는 비문명으로 규정했다.
일본은 서구 문명을 도입하며, 사회진화론과 서구 근대화론을 극복하지 못했다. 문명화가 되지 못한 조선과 중국을 문명국 일본이 지배하는 것을 적자생존의 사회진화론으로 정당화했다. 그리고 식민주의로 맘껏 달려갔다. 바로 여기에서 일본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먹고사는 문제”라고 한 한국보다 정직

동양 삼국, 좀더 국제법적으로 정확히 말하자면 유엔 가입국인 북한을 포함한 네 나라 중 어느 나라도 다른 나라를 비문명적이거나 후진적인 사회로 규정해서는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네 나라 중 어느 나라도 자국을 서구 문명이나 근대화의 선진사회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 일본예술원 현관에서 사람을 맞이한 세 여인이 어깨와 몸을 맞대고 평화를 나누며 서로 나란히 서있듯, 네 나라는 서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TPP의 문제도 동양 평화의 문제다.
나의 일본 일정 중, 일본 언론은 아베 신조 총리의 TPP 참가를 기정사실화했다. 도대체 왜 일본은 TPP를 하려는 것일까? 그것은 동아시아 평화에 이로운가? 아베 총리는 지난 3월6일 일본 참의원 본회의에서, 자유무역 체제를 강화하고 환태평양 지역의 활력을 확보하려면 일본이 적극적으로 국제적룰을 만드는 데 참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발언했다. 이것은 중국을 겨냥한 제2의 탈아론이라 할 수 있다.
아베의 발언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한-미 FTA를 하며 한-미 FTA는 먹고사는 문제이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고한 것보다 정직하다. 한-미 FTA는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이 미국과의 FTA 1년에서 겪었듯 미국과의 FTA는 한국에 경제적 효과가 없다. 2013년 2월20일까지의 정부 통계를 보면 FTA 발효 뒤 1년간 오히려 미국 수출은 줄었다. 한-미 FTA는 한-미동맹 유지를 위해 미국이 요구한 대로 한국사회 제도를 변경하는 것이다. 박주선 의원(무소속)이 지난 2월 정부에 요구해 받은 자료인 ‘한-미 FTA 이행법령 목록 및 주요 내용’을 보면 한국은 법률 23개를 포함해 모두 66개 법령을 바꾸었다.
TPP는 한-미 FTA와 마찬가지로 미국-오스트레일리아의 미국적 사회 질서에 일본이라는 소농적 사회 질서가 편입되는 중대한 사건이다. 성균관대 교수로 한국사 연구의 권위자인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가 지난 1월에 낸 라는 책에서 입론했듯,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통해 서구 문명을 받아들인 변화는 17세기 소농 사회의 성립을 전후로 하는 동아시아 사회 구조의 대변동에 비한다면 오히려 더 작은 것이다.
즉, TPP가 가져올 일본 사회의 변화는 후쿠자와 유키치가 19세기 후반에 직면한 서구 문명의 도입 문제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본질적이다.

농업계·의사회·우정회, 완강하게 반대

일본 체류 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일본은 적어도 이런 본질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TPP 논의는 한국의 참여정부와 같은 거짓이 없었다. TPP를 하면 미국으로 수출을 더 늘릴 수 있다든지, 미국이 일본의 경제 영토가 된다든지, 일본이 미국을 선점한다든지 하는 노무현 정부식의 허위의식은 없다. 대신 TPP를 하더라도 일본 고유의 제도, 일본 특질의 사회제도를 유지할 수 있느냐를 놓고 논쟁 중이다. 이것은 자민당이 공식화한 일본의 TPP 참가 6대 조건에서도 알 수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정부가 ‘성역 없는 관세 철폐’를 전제로하는 한 교섭 참가에 반대한다.2. 자유무역의 이념에 반하는 자동차 등 공업제품의 수치 목표는 수용할 수 없다.3. 국민 개(皆)보험제도를 방어한다.4. 먹을거리의 안전·안심 기준을 수호한다.5. 국가의 주권을 손상시키는 ISD 조항은 합의하지 않는다.6. 정부조달·금융서비스 등은 일본의 특성을 살린다.

이런 인식은 일본의 제18대 의사회 회장인 하라나카 가즈유키 회장을 일본 의회에서 만나 의견을 나눌 때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일본 의사회의 ‘일본 의료를 지키는 국민운동’을 이끌고 있다. 일본 의사들은 TPP가 일본의 의료 격차로 이어질 것을 염려해 대대적인 TPP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하라나카 회장은 의회 간담회에서 건강보험제도의 지속성이 일본 사회 유지에 사활이 걸린 문제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일본 사회의 고령화로 2050년이면 노동 가능 인구와 65살 이상 인구의 비율이 1:1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의료비 지출은 65살 이상 인구가 노동 가능 인구보다 5.5배 많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건강의료보험제도 유지는 일본 사회 유지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TPP를 하면 미국 제약회사의 이익 추구 앞에 일본의 건강의료보험은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일본 대장성 국제금융국장을 지냈고, ‘미스터 엔’으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사카기바라 에이스케 교수와의 만남에서도 “TPP는 일본에 필요하지 않다. 일본의 사회제도가 미국화되지 않도록 일본 고유의 제도를 지켜야 한다”는 의견을 들었다. 일본 외무성 국제정보국 국장 출신의 마고사키 우케루 또한 “TPP는 단순한 자유무역이 아니라 일본 사회를 변경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스스로의 힘으로 서구 문명에 도달하고 사회를 운영한 저력이 있었다.

협상 참가 선언이 오히려 거대한 논쟁의 신호탄

한-미 FTA처럼 일본에서 TPP가 제도화될 것인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아베의 TPP협상 참가 선언은 오히려 거대한 논쟁의 신호탄일 것이다. 자민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인 농업계·의사회·우정회는 TPP를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지금 일본은 한국에서 한-미 FTA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관찰하고 있다. 일본 국회의원들은 박주선 의원이 제공 받은 한국 법령 개폐 목록에 큰 관심을 보이고 이를 일본어로 번역한 것을 읽고 있었다.
일본의 TPP 결정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만일 일본이 TPP를 수용하는 날, 한국에는 그 수용 여부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 자동 편입되는 날, 동아시아는 중국·북한 경제블록과 한국·일본·미국 경제블록으로 나뉠 것이다. 이 틀에서 가장 큰 패자가 누구인지는 명약관화하다. 일본의 TPP 협상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송기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외교통상위원회 위원장 

2013년 1월 11일 금요일

박근혜 정부, 노무현 정부와 닮은꼴?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1-11일자 기사 '박근혜 정부, 노무현 정부와 닮은꼴?'을 퍼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당선인 집무실에서 중국 정부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장즈쥔 중국 외교부 상무부부장과 만나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친서를 전달받고 있다. 인수위 사진기자단

정부 통합 의사소통 시스템 구상
참여정부 전자정부 로드맵 비슷
해수부 부활등 부처 개편도 유사
책임장관제도 참여정부때 시도

‘박근혜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닮은꼴?’11일 시작되는 정부 업무보고를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정부운영 구상이 주목받고 있다. 지금껏 공개된 박 당선인의 공약과 발언 등을 종합하면 정부조직이나 운영 방식은 이명박 정부보다 노무현 정부 쪽에 가까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추구하는 가치는 달라도 국정 목표에 이르는 운영방식은 유사하다는 것이다.대표적인 게 박 당선인이 강조하는 ‘정부 3.0’이다. 한 방향의 정부(1.0)를 넘어 쌍방향의 정부(2.0)를 구현하고, 개인별 맞춤행복을 지향하는 정부(3.0)를 열겠다는 것인데, 박 당선인은 이를 위한 핵심 운영가치로 ‘공개·공유·협력’ 등을 제시하고 있다. 박 당선인은 지난 7일 인수위 첫 전체회의에서 “모든 부처가 물 흐르듯 소통해야 한다”면서 ‘통섭’, ‘융합’ 등의 단어를 반복해 강조했다. 인수위도 이에 맞춰 ‘정부 통합 의사소통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부처간 협업 방안을 논의 중이다. 현 정부통합전산센터를 ‘국가 클라우드 컴퓨팅 센터’로 전환해, 공공부문의 정보가 일반에게도 공개될 예정이다. 각 부처끼리, 또 정부와 민간이 정보를 공유해 국민 유형별로 차별화된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다.이는 참여정부가 전임 ‘국민의 정부’에 이어 ‘전자정부 2기’를 내세우며 인수위 때 전자정부 로드맵을 내놓은 것과도 유사하다. 참여정부는 정부통합전산센터 출범 외에 행정정보 공유 확대, 범정부적 통합전산환경 구축, 통합인사관리시스템 구축 등 정보 ‘공개와 공유’를 위한 31개 과제를 진행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전자정부 예산이 대폭 줄어 주춤했지만, 다음 정부 때는 ‘정보 공개와 공유’가 좀 더 활발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박 당선인의 공약집에는 ‘국가 미래전략센터’, ‘공공부문 부채 종합관리 시스템’, ‘창조적 국가연구개발 혁신 시스템’, ‘통합 통계정보 시스템’ 등 관련 분야를 하나로 묶는 통합시스템에 대한 내용이 많다.정부부처 형태나 운영도 ‘대형 부처’ 중심인 현 정부와 달리 참여정부 때와 비슷해질 가능성이 크다. 외교·국방·통일 의제 조율을 위해 신설되는 청와대 ‘국가안보실’ 역시 참여정부 때 운영됐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유사하다. 해양수산부 부활도 그렇고, 박근혜 정부의 핵심 부서로 떠오르고 있는 ‘미래창조과학부’ 역시 참여정부 때 과학기술부를 부총리급으로 승격했던 취지와 맥을 같이한다.박 당선인이 공약했던 ‘총리의 정책조정 및 정책주도’ 및 ‘예산·인사·조직을 위임 받은 책임장관제’ 역시 참여정부 때 시도됐던 내용들이다. 참여정부 땐 이해찬 전 총리 등이 실세 총리로 정책 전반을 조율했고, 유시민, 김근태, 정동영, 오명 등 실세 장관들이 자신의 책임 아래 각 담당 분야의 국정을 챙긴 바 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2013년 1월 10일 목요일

박근혜 노무현 정부 땐 “사면 반대”…MB에겐?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1-09일자 기사 '박근혜 노무현 정부 땐 “사면 반대”…MB에겐?'을 퍼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7일 오전 서울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에 마련된 대통령직인수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은 김용준 인수위 위원장, 오른쪽은 진영 부위원장이다. 인수위 사진기자단

당선인 입장 질문받은 대변인
“지금은 대답하기 적절하지 않다”
현정부와 대립 비쳐질까 꺼린듯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9일 전해진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말 특별사면 검토 소식에 ‘침묵’ 모드를 유지했다. 박 당선인 비서실과 측근들 역시 ‘새 정부 출범에 도움이 되겠느냐’며 떨떠름해하는 분위기지만, 그와 관련된 직접적인 말은 아꼈다. 박 당선인이 인수위가 현 정부 일에 간섭하며 마치 점령군처럼 비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것도 이런 ‘침묵’과 무관치 않다는 게 인수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조윤선 당선인 대변인은 오후 브리핑에서 ‘청와대의 특별사면 검토’에 대한 박 당선인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최근 그 부분에 대해 특별하게 의견을 말씀하신 적이 없다. 당선인이 청와대와 의견을 나눈 바도 없다. 지금 (특사와 관련해) 대답하기에도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대변인은 “특별사면과 관련해서는 후보 시절 말씀하신 부분이 있는데, 그때와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박 당선인이 후보 시절 언급한 내용은 기업총수들에 대한 잦은 사면을 지적한 것인데, 표현을 보면 박 당선인이 ‘특별사면’ 자체에 매우 부정적임을 알 수 있다. 박 당선인은 지난해 7월10일 대선 출마선언 직후 기자회견에서 “법에 의해 구형을 하고 형이 확정됐는데 얼마 있으면 또 뒤집히고 하는 게 법치를 바로잡는 데 굉장히 악영향을 준다. 법치 확립을 위해서는 한 번 받은 형을 없던 일로 하면 안 된다”고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이어 “잘못한 사람도 돈이 있으면 (감옥에) 들어갔다 금세 나온다는 생각이 만연돼 있으니 일반 국민도 억울하게 생각을 한다. 이런 부분은 엄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박 당선인은 2005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특별사면에 대해 “생계형이나 경미한 범죄자를 사면하는 건 반대하지 않지만, 대통령이 실세들의 부정부패나 비리를 사면하는 것은 사법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사면권을 남발하면 제도적으로 방지하는 입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사면권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지만 대통령 마음대로 하라고 주어진 것은 아니다”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지난 대선 때도 박 당선인 캠프에서는 ‘권력형 비리에 연루된 고위 관료나 정치인’, ‘배임·횡령 등을 저지른 주요 경제사범’에 대한 사면을 제한한다는 의견이 많았다.만약 이 대통령이 비리 측근들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박 당선인으로서도 계속 ‘침묵 모드’를 유지하는 게 곤혹스러울 수 있다. 그동안 박 당선인이 보여준 ‘법질서와 원칙’에 대한 태도나 발언에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당선인의 일부 참모들 사이에선 ‘이명박 대통령이 비판을 좀 받더라도 오히려 지금 특사를 단행하는 게 다음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또 정권 인수인계 기간에 특별사면 문제로 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상황을 박 당선인이 부담스러워해 지금처럼 아예 언급을 피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2012년 8월 29일 수요일

'박근혜 빅카드' 안대희는 안철수 겨냥한 노림수?


이글은 프레시안 2012-08-29일자 기사 ''박근혜 빅카드' 안대희는 안철수 겨냥한 노림수?'를 퍼왔습니다.
[대선읽기] '안대희 효과', 실체 있나…문제는 '소통'이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대법관 출신 안대희 정치쇄신위원장을 영입한 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초반 '차떼기 수사'의 주역으로 새누리당(구 한나라당)을 초토화시켰던 '원흉'을 영입한 것이다.

그렇지만 차떼기 수사 파장으로 새누리당이 박근혜를 선택하게 됐고, '천막 당사'로 상징되는 쇄신이 가능했던 점을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만은 아니다.

오히려 대법관 퇴임 48일만에 대선 캠프로 직행한 안 위원장의 행보나, 노무현 사람으로 각인된 그의 이미지가 뒤집혔다는 점 등에서 파격적이라는 말을 쓸 수 있겠다. 특히전자의 경우 박 후보의 대선 승리를 상정한다면, 사법부 수장급 인사가 '예비 내각'으로 직행하는 것이 될 수 있어 논란의 여지는 많다. 그러나 이것도 과거 이회창 전 대법관이 감사원장과 총리를 거쳐 여당인 신한국당,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나선 적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한국 정치사에서 이상한 일만은 아니다. 후보 확정 후 봉하마을을 찾은 박근혜 후보의 '결단'의 연장선에서 '노무현의 사람' 영입을 바라볼 수도 있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점은 정치 쇄신으로 포장된 '안대희 영입'에 숨겨져 있는 박근혜 후보의 노림수다.

 
▲ 안대희 정치쇄신위원장 ⓒ뉴시스

안대희-남기춘, 공정 + 재벌개혁 겨냥한 포석?

박근혜 후보는 28일 안대희 위원장과 함께 정치쇄신위원으로 남기춘 전 서울지검장도 영입했다. 남 전 지검장은 지난해 1월 한화그룹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다가 "부당한 외압"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검사복을 벗었다. 그는 '칼잡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재벌가 비리를 엄정하게 수사해 주목 받은 인사다. 영화 '공공의 적 2'에 등장한 검사의 실제 모델이 남 전 지검장이었다.

정치권력과 재벌권력에 맞섰던 검사로 유명세를 탄 두 사람의 영입은 다분히 현재 대선에서 지지율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안 원장의 주요 이미지인 '공정성'을 겨냥한 인선이라 할 수 있다. 안 원장이 자신의 성공스토리를 통해 '공정성'을 보여줬다면, 박근혜 후보는 실제 부당한 권력에 맞섰던 두 명의 검사 영입을 통해 '공정성'에 대한 의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재벌 변호사로 변신한 재벌 수사 검사

하지만 두 검사의 행보를 자세히 보면 과연 이들이 '대쪽 검사'라 칭송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안대희 위원장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대법관 퇴임 후 48일 만에 정치권에 발을 디뎠다. 노무현 정부에서 승승장구했던 인사가 박근혜 캠프로 간 것도 전형적으로 '양지만 좇는' 권력지향형 검사의 행보라 할 수 있다.

재벌 수사로 유명한 남기춘 전 지검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 6월 결국 김앤장에 '취업'을 해버렸다. 김앤장이 한화 그룹 비자금 사건의 변호인으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 전 지검장은 구설수에 올랐다. 한화 그룹 수사 검사가 한화 그룹 변호 회사에 들어간 셈이다.

남 전 지검장은 최근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 변호인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상득 의원 구속을 야기한 임 회장을 잠시나마 변호했던 그의 이력은 '깨끗한 검사' 이미지를 상쇄시킬 뿐이다. 남 전 지검장 영입의 '정치적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바보야, 문제는 '소통'이야!

또 이런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할 필요도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새누리당에 필요한 것이 과연 '새인물 영입'이었을까.

이른바 '김종인 효과'는 올 초 새누리당이 당명을 바꾸고 "재창당 수준의 쇄신"을 할 때 그 덕을 톡톡히 봤다. 재벌 개혁론자이고, 야권에 가까운 것으로 분류됐던 김종인 위원장은 박근혜 후보의 '의지'를 업고 단박에 쇄신의 아이콘이 됐다. 경제민주화라는 상징성도 거머쥐었다. 이후 새누리당은 처절한 '인적 쇄신'작업에 돌입했다. 결과는 총선 승리였다.

결과론적인 분석이라고 하더라도, 당시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에게 필요한 것이 있었다면 그 답은 '인적 쇄신'이었다. 구세대를 상징하는 인물들이 우수수 떨어져나갈 때, 박 후보는 이명박 대통령에 비판적이었던 이상돈 중앙대 교수, 27살의 이준석 비대위원, 역시 27살의 손수조 당시 부산 사상구 국회의원 후보를 영입했다. 그리고 총선이 끝난지 4개월이 지난 지금, 박 후보는 '안대희 영입'이라는 또 다른 카드를 꺼내들었다.

'안대희 효과'가 있을까? 관련해 최근 주목할만한 여론조사가 나왔다. 와 , 동아시아연구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0일부터 나흘 동안 전화면접조사로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68.9%가 "안철수 교수의 소통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박근혜 후보의 "소통 능력"이 좋다고 답한 응답자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57.3%)에게조차 뒤진 54.9%에 불과했다.

이어 차기 대통령의 중요한 자질로 응답자의 46.4%는 소통을 잘하는 대통령을 꼽았고, 27.2%는 국정운영이 뛰어난 대통령, 22.9%는 도덕성이 뛰어난 대통령을 꼽았다. 국정 운영 능력에서 박근혜 후보가 1위를 했지만 유권자들은 '소통'을 더욱 중시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선을 앞둔 박근혜 후보의 '환부'가 어디인지 명확히 드러난 셈이다.

박근혜 후보가 해결해야 할 핵심 문제가 '소통 부족', '사당화'라는 점은 지겹게 지적돼 왔다. 새누리당 경선에 참여했던 '비박' 주자들은 "독재"라는 말까지 동원해 박 후보를 비판했다. 그러나 박 후보는 지난 7일 한 토론회에서 "당이 두번이나 위기에 빠졌을 때 살려낼 수 있었던 비결은 국민과 통했기 때문"이라며 "국민하고는 통한 것인데 정치권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정치공세라고 본다"고 '소통 부족'에 대한 비판을 일축했다.

지난 26일 박 후보가 서교예술실험센터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가 건넨 녹음기를 보고 "녹음기가 있으면 진솔한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며 돌려주는 모습을 보면 '소통'에 대한 박 후보의 인식이 크게 변한 것으로도 볼 수 없다. 사당화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번 대선 캠프 역시 박 후보의 측근들이 재배치한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른바 '친위' 인사들에게 둘러싸여 외부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구조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지적의 '홍수' 속에서 박근혜 후보의 선택은 '새인물 영입'이었다. 당의 비리를 캐낸 검사를 영입하고, '노무현 사람'을 영입하는 방식은 '김종인 영입'과 같은 '파격 인사'의 재탕일 뿐이다. 8개월 째 '인물 영입'에만 주력하고 있는 셈이다. 한번 효과를 본 '이벤트'는 두번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정치권 통설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다. 김종인 위원장은 '경제민주화'라는 상징성이라도 있었다. 안대희 위원장은 '소통'의 상징성을 갖고 있는가? 부정적이다.

관련해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박근혜 후보가 정공법을 버리고 우회로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박근혜 후보가 '소통 부재'라는 자신의 '환부'를 제대로 보지 못했거나, 보고도 덮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미이다. 이 소장은 "결국 '정치권의 때가 묻지 않은 외부 인사 영입'은 새누리당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는 안철수 원장의 활동 공간을 자꾸 넓혀주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수'는 냉정하게 봤을 때, 큰 평가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안대희-남기춘 영입의 진짜 목적은...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두 전직 고위 법조인 영입을 두고 "다른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대선 과정에서 검찰의 움직임은 '변수'가 될 수 있는데, 검찰 내부에 영향력이 강한 두 거물급 인사들을 영입한 것은 결국 '검찰 길들이기'의 일환이 아니냐"는 것이다. 안대희 위원장은 취임 일성에서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었다. 박근혜 후보가 의도한 안대희, 남기춘 영입의 '컨셉'은 그들의 향후 행보가 보여줄 것이다.

 /박세열 기자

2012년 7월 20일 금요일

“파병 반대” 맞짱 뜨던 ‘인권위 독립성’ 지금은 만신창이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7-20일자 기사 '“파병 반대” 맞짱 뜨던 ‘인권위 독립성’ 지금은 만신창이'를 퍼왔습니다.

노무현정부에 쓴소리 김창국 위원장 
“독립기구란 그런 것
”조영황·안경환 위원장도 전문성 
밑바탕 위상 지켜내
이젠 행정부 소속 취급…
“대통령 임명권 안돼” 비판

지난 2005년 11월 쌀 협상 반대 시위에 참여했던 농민 2명이 경찰 진압 과정에서 사망했다. 12월26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사망 원인은 경찰의 과잉 진압 탓”이라며 경찰 수뇌부를 문책하라는 권고안을 채택했다. 바로 다음날인 12월27일 노무현 대통령은 “인권위 권고에 따라 책임자를 가려내고 피해자에게 배상하겠다”는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다. 이틀 뒤 허준영 경찰청장은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당시 인권위는 사회적 약자인 농민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권력기관인 경찰에 맞서고 대통령까지 사과하게 만들었다.반면 2009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이 현병철 인권위원장을 임명한 뒤, 인권위는 수사, 용산참사, 민간인 사찰 등 국가기관의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았다. 2009년 12월28일 용산참사 문제를 다루던 회의를 “독재했다고 해도 좋다”며 강제 폐회하기까지 했다. 당시의 육성을 담은 음성파일도 19일 공개됐다.

[관련기사] ▷ 현병철 “독재라도 좋다” 육성 공개

이런 태도를 비롯해 국회 청문회에서 쏟아진 여러 의혹과 자격 논란에도 이 대통령은 현 위원장의 연임을 강행할 태세다.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선 대통령에게도 단호했던 인권위가 지난 2년 동안 겪은 몰락의 세월이 더 연장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 대통령과 ‘맞짱’ 뜬 역대 인권위원장 
2001년 11월 출범한 인권위는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며 법이 정한 독립기구로서의 위상을 현실화했다. 초대 김창국 위원장은 2002년 11월 청와대에 사전 보고를 하지 않고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청와대는 ‘공무 국외여행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김 위원장을 ‘경고’ 조처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공무 국외여행 규정’은 행정부 소속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독립기구 수장인 인권위원장이 이 규정을 적용받을 필요가 없다”며 공식 반박했다. 대통령의 지휘와 재가를 받지 않겠다는 인권위 수장의 정치적 메시지이기도 했다.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던 2003년 3월, 인권위는 정부가 추진하던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채택했다. 당시 문재인 청와대 수석은 당시 김창국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발표하는 건 좋은데 대통령한테 사전에 언질도 하지 않을 수 있느냐”며 역정을 냈다. 김 위원장은 “독립기구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일축했다. 오히려 야당인 한나라당은 “대통령 뜻에 반하는 입장을 밝힌 것은 본분을 망각한 국론분열 행위”라며 비난했지만, 노 대통령이 “인권위는 원래 그런 일을 하라고 만든 곳”이라는 견해를 밝혀 논란이 일단락됐다.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은 “출범 초기에는 다른 부처 공무원들이 인권위의 독립성과 권위를 이해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했다”며 “그런데 인권위원장이 대통령과 맞붙는 과정을 지켜본 공무원과 국민들이 독립기구로서의 인권위 위상을 자연스레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 인권위원장 권위가 곧 인권위 위상 
역대 인권위원장들이 청와대의 눈치를 보지 않았던 데는 이들이 인권과 관련한 전문성과 권위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초대 김창국 위원장은 군사정부 시절 시국 사건 변론을 단골로 맡은 저명한 인권변호사였다. 김 위원장은 2002년 10월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던 피의자가 검사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에 대해 지검장이 인권위 조사를 거부하자 전화를 걸어 “당장 조사를 받으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3대 조영황 위원장은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수사한 특별검사 출신이다. 4대 안경환 위원장도 인권법에 조예가 깊은데다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을 지내는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을 한 경력이 있었다. 반면 현병철 위원장은 스스로 언론 인터뷰에서 “(인권을) 모르는 게 차라리 장점”이라고 말할 정도로 인권 관련 경력이 전무하다.외국 사례를 봐도 인권 관련 경력이 없는 사람이 인권위원장으로 임명된 경우를 찾기 힘들다. 뉴질랜드의 로슬린 누난 인권위원장은 유엔 인권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 등 인권 관련 국제기구에서 4년 동안 일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조디 콜라펜 인권위원장은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로 박해받는 이들을 변호했다. 타이의 아마라 퐁사피취 인권위원장은 여성인권과 사회복지 분야에서 활약해온 인류학자다.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국제사회에서 국가인권기구는 한 국가의 ‘양심’으로 불린다”며 “우리보다 정치·경제 영역에서 뒤처졌다고 평가되는 나라에서조차 그 나라의 인권을 상징하는 인물이 인권기구의 수장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 독립기구 수장을 대통령이 임명? 
 인권위법은 “그 권한에 속하는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인권위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현행 제도로는 정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실제 인수위 시절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들려 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현병철 위원장은 2009년 7월 취임한 뒤 처음 출석한 국정감사 자리에서 “인권위는 행정부 소속”이라고 말한 바 있다.이 때문에 후보자추천위원회 등을 통한 민주적인 임명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타이의 경우 임명은 국왕이 하지만, 다양한 인사들로 구성된 위원선발위원회에서 1차로 검증된 후보 가운데 국회가 표결을 통해 결정한다. 인권위원을 선발할 때 인종, 출생국, 종교, 성지향성 등에서 사회적 소수자를 대표하는 사람들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하고 있는 영국처럼 인권위원의 자격기준을 명확하게 할 필요도 있다.

진명선 엄지원 기자 torani@hani.co.kr

2012년 7월 4일 수요일

국방부 “한일군사협정 盧정부 시작, 기록 확보는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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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원 “찾아낸 알리바이가 고작? 논의 전혀 없었다”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이 ‘밀실처리’ 논란에 휩싸여 있는 가운데 한일간 군사협정 관련 논의가 현 정부 이전부터 있었다는 국방부의 주장을 두고 참여정부 인사인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이 이를 정면 반박했다.

박 전 비서관은 4일 오전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참여정부 당시) 자위대 과장급과 우리나라 국방부 과장급이 만나 한일간 비밀군사정보보호협정을 논의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전혀 아니고 그런 필요성도 전혀 없었다”며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또한, 박 전 비서관은 “북한 핵관련 정보라든지 이러한 정보에 대해서는 한미간 정보협조가 이뤄지고 있고 필요한 경우에는 미일간, 한미일간에 6자회담 석상에서 비공개로 서로 논의가 돼있기 때문에 군사기밀 전반에 대해 한일간 협력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실무선에서 전혀 논의가 없었다”며 “2011년 1월 김관진 국방장관이 일본에 가서 제안하면서 시작된 것이 시초라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박 전 비서관은 “실무선에서 논의됐다고 한다면 적어도 장관급에서 협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 서고 사전에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타진해보는 정도까지 가야 실무선에서 논의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과장급, 대령급이 개인적으로 만나 일본사람에게 이걸 했으면 좋지 않을까,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실무선의 논의라고 볼 수 없다”고 언급했다.

논란의 시작은 지난달 29일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한일간 상호군수지원협정문제는 2008년이 아니라 그 전부터 실무선에서 많이 논의돼왔다”고 전했다. 다만,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 논의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김 대변인은 박 전 비서관에 바로 앞서 가진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손석희 교수가 “참여정부 때부터 이른바 군사협정 실무논의가 있었다고 말씀을 하신 바가 있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김 대변인은 “제가 2008년 이전에 담당했던 분들에게 물어보니까 그때도 실무선에서는 필요성에 대해 계속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 시작은 작년 2월부터다, 그렇게 작년 1월에 합의한 이후부터라고 제가 다시 설명했다”고 전했다. 

김 대변인은 “실무자간 사이는 과거에도 계속 일본하고 만나왔었다. 그렇게 하면서 실무자가 서로 공감했다는 이야기”라며 “기사내용은 2008년도에 우리가 먼저 제안했다고 나와 있는데 많은 논의가 있었기 때문에 딱 그걸 시작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언급했다. 

이에 손 교수가 “당시 실무선에서의 양쪽의 논의라는 것이 다 보고가 되는 사안을 얘기하는 것이냐. 예를 들면 뭐 장관한테 보고가 된다라든가”라고 묻자 김 대변인은 “회담결과는, 협의결과는 다 장관에게 보고가 된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손 교수는 “사실 양쪽에서 만났으면 왔다갔다 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에 그건 금방 조사해보면 나올 수도 있는 그런 내용인데 참여정부 당시 인사들은 아니라고 강력 주장하고 있지 않느냐”고 언급했다.

이에 김 대변인은 “내용까지는 서류를 확인해보지 못했지만 당시 과장을 하신 분한테 물어보니 그 때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서 정확하게 언제부터 시작했다고 말하긴 정확하지 않다”며 “다만, 작년 한일국방장관회담 이후에 했다는 것이 정확하다고 보는게 맞다고 말한 것”이라고 답했다. 

“혹시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을 확보하셨느냐”는 손 교수의 질문에 김 대변인은 “확보하지 못했고 문의만 해봤다”고 답했다. 손 교수가 “기록이 없겠느냐”고 재차 묻자 김 대변인은 “그건 나중에 한번 보시죠”라고 말했다.

한편, 박 전 비서관은 지난달 29일 ‘노무현재단’ 홈페이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안보를 위해 꼭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버티지 못해서 겨우 찾아낸 알리바이가 참여정부 때도 실무자 사이에 논의가 있었다는 헛소리라니 기가찰 일”이라며 “정말 후안무치하고 무책임한 정권이다. 비겁하기 이를데 없다”고 김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을 강하게 비난했다. 

박 전 비서관은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서 먼저 일본측에 군사지원협정을 추진하자고 했다는 건 이미 언론을 통해 다 알려진 사실이다. 군사정보협정 보다 한단계 높은 군사지원협정까지 제안한 게 이명박 정권”이라며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듯 거짓말해선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우종 기자

2012년 6월 15일 금요일

[사설] 불법사찰 ‘물타기 홍보’ 나선 뻔뻔한 청와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6-14일자 사설 '[사설] 불법사찰 ‘물타기 홍보’ 나선 뻔뻔한 청와대'를 퍼왔습니다.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를 두고 청와대가 언론을 상대로 물타기를 시도한 흔적이 드러났다. 청와대 인사가 엊그제 몇몇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검찰 발표에 노무현 정부의 사찰 사례가 포함될 것이라고 귀띔하면서 이를 비중 있게 다뤄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삐딱한 사술로 국면을 모면하려는 청와대의 꼼수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번에도 거기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물타기 시도를 기본 활동이라고 말한 데서는 어이가 없기까지 하다. 이 관계자는 “몇몇 언론사에 연락해 입장을 설명하고 잘 반영해 달라고 부탁했다”며 “기업 홍보실이 그렇듯 우리도 설명하고 부탁한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곧 기업이고 홍보수석실은 기업의 홍보실이란 얘기인데, 기업가 출신 대통령과 아귀가 딱 맞는다. 기업은 수익이 우선이고, 국정은 국민을 먼저 바라보아야 한다. 청와대는 국정과 기업을 혼동하지 말기 바란다.
기업 홍보하듯 물타기에 나선 청와대이니 이번 사건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는 기색이 없는 건 당연하다. 청와대가 서면으로 딱 두 줄 논평을 내어 “송구하다.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한 것은 이를 잘 드러내 준다. 이명박 대통령은 아직까지 이 사건에 대해 가타부타 언급이 없다. 사안이 중하지 않다고 보는지, 아니면 너무 혼비백산해 뭐라 할 말이 없는지 알 길이 없다.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진솔한 사과부터 하는 게 먼저다.
청와대와 검찰, 법무부 등이 사전에 짬짜미를 한 의혹도 짙다. 검찰은 현 정부의 사찰 내용은 수박 겉핥듯 듬성듬성 발표한 반면, 노무현 정부 때 사찰은 매우 구체적으로 발표했다. 청와대는 이를 어떻게 알았는지 언론에 협조 요청을 했다. 어떤 형태로든 수사 결과가 사전에 청와대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이런 얄팍한 꼼수로는 국민을 속이지 못한다. 현 정부의 민간인 사찰은 특정 세력이 특정 인사를 겨냥해 별도의 비선 조직을 만들어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노무현 정부 때 총리실의 공무원 직무감찰 위주의 사찰과는 궤를 달리한다.
이 대통령은 최근 국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곡동 사저 수사를 두고 부실이라고 정치권이 비판하는 데 대해 “그게 바로 정치”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이 쓸데없이 트집을 잡는다는 얘기다. 퇴임 뒤 사저 문제를 두고 물의를 빚었다면 자신의 허물부터 돌아보는 게 상식일 텐데 남에게 손가락질부터 하는 꼴이다. 민간인 사찰이든 내곡동 수사든 한결같이 적반하장, 무책임의 극치일 따름이다.

2012년 6월 3일 일요일

대법관 후보자 13명… 여성이 없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2-06-02일자 기사 '대법관 후보자 13명… 여성이 없다'를 퍼왔습니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1일 대법관 후보자 13명을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추천했다. 후보 명단은 모두 남성 법조인으로 채워졌다. 노무현 정부 당시 우리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성을 반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여성 대법관 2인 체제’는 이명박 정부 들어 붕괴됐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이날 판사 9명, 검사 3명, 교수 1명을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추천했다. 대법관 후보는 강영호 서울서부지법원장, 고영한 법원행정처 차장, 김병화 인천지검장, 김신 울산지법원장, 김창석 법원도서관장, 김창종 대구지법원장, 김홍일 부산고검장, 서기석 수원지법원장, 안창호 서울고검장, 유남석 서울북부지법원장, 윤진수 서울대 법대 교수, 조병현 서울행정법원장, 최성준 춘천지법원장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다음주 중 이들 가운데 4명의 대법관을 내정한다. 다음 대법관 인사는 2014년 3월에 있다.

김삼화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은 “후보자에조차 여성이 없다니 실망이 크다”며 “소수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데 둔감해질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국은 2006년부터 ‘여성 대법관 2인 시대’를 열었다. 2004년 8월 고등법원 부장판사 6개월 차인 김영란 부장판사를 첫 여성 대법관에 임명한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7월 전수안 광주지법원장을 두 번째 여성 대법관에 임명했다. 이후 김영란 대법관이 퇴임한 2010년 8월까지 ‘여성 대법관 2인 체제’가 이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김영란 대법관 퇴임 이후 4번의 대법관 인사에서 여성을 뽑지 않았다. 지난 1월 박보영 대법관을 임명했지만 이번 인사에서 또 여성이 배제되면서 ‘여성 대법관 1인 체제’는 앞으로 2년 가까이 계속되게 됐다. 법원 관계자는 “추천위는 외부 조직이라 후보자들이 제청된 이유와 과정을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추천위에는 법원행정처장과 법무부 장관이 들어간다. 이들이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의사를 전달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얘기다.

미국과 일본은 여성 대법관이 모두 복수다. 미국은 3명의 여성 대법관이 있다. 일본 최고재판소도 여성 재판관이 2명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여성 몫을 배제하면서 논란이 돼온 검찰 몫을 고집스레 유지하는 것은 퇴행”이라고 말했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