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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2일 수요일

북한군의 개입? 계엄군의 잔혹한 진압이 광주항쟁 불렀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3-05-21일자 기사 '북한군의 개입? 계엄군의 잔혹한 진압이 광주항쟁 불렀다'를 퍼왔습니다.
[기고] 80년 (중앙일보) 광주 주재 기자의 생생한 기록

최근들어 황당한 일이 이어지고 있다. 광주민중항쟁에 북한군이 침투해 혼란을 부추겼다는 주장도 그 중 하나다. 종편방송에서 북한 귀순자들을 데려다 엉뚱한 소리를 전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30여년간 사건의 핵심은 거의 밝혀졌고 그 수괴들은 법의 단죄도 받은 지금 이 무슨 해괴한 짓인가 ? 어느 종편 진행자는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방송했다고 한다. 이는 명예회복이 아니라 엄연한 사실에 의혹을 부추겨 명예를 훼손시키는 궤변에 불과하다. 그렇지 않아도 사이버 상에서 광주민중항쟁의 역사와 의미를 깎아내리는 작태가 심해 많은 이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있는데 일부 종편의 방송은 용서받지 못할 해악이다.

필자는 1980년 그해 2월 본사(중앙일보)에서 광주 주재기자로 발령받아 그해 11월까지 근무했었다. 서울 출신의 젊은 기자로 광주에서의 상황은 큰 충격이었다. 광주시민은 물론 여러 취재기자들이 똑똑히 본 현대사의 현장을 나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 바 있다.(5ㆍ18특파원리포트,1997, 풀빛)


ⓒ노순택

『5월 18일은 일요일이었다.중앙일보의 광주 주재기자 중 가장 말석이었던 나는 광주시 유동 지사에 나가 대기상태에 있었다. 이날 오후 무심히 밖을 쳐다본 나는 수십 대의 무장군인을 태운 트럭이 지나는 것을 보고 일이 터진 것을 직감했다. 군 트럭은 지나가면서 M16을 어깨에 걸치고 손에는 보기에도 묵직한 곤봉을 든 군인들을 내려놓고 있었다. 시내 중심가 쪽으로 이동을 쫓다가 본 것은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2인 1조로 차에서 내린 이들은 근처를 지나던 젊은이들을 불문곡직하고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한 젊은이는 무등경기장 부근 광주교에서 다리 난간에 기댄 채 매를 맞다 못해 다리 밑으로 떨어졌다. 주변에 있던 모든 시민들이 이 끔찍한 모습을 모두 목격했다. 기자인 나도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런 사태가 이날 광주시 곳곳에서 일어났을 것은 직접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19일 오후부터 광주 상황은 학생시위가 아닌 시민이 참가하는 민주항쟁으로 타올랐다. 할아버지들도 손에 각목을 들고 나왔다. 시민들은 '전라도 사람 다 죽는다'하고 금남로로 모여들었다. 공수부대의 만행은 19일 광주시내를 공포의 도시로 만들었다.

5월 20일 광주 취재팀이 본사에 송고한 기사의 첫마디는 "사람사냥이 시작됐다"는 흥분에 찬 내용이었다. 물론 계엄하에서 나갈 수 없는 표현이었지만 계엄군의 만행을 더 이상 어떻게 나타낼 수 있으랴.

취재수첩에는 이들의 만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대검으로 찔러" "여자,팬티만 입히고 마구 때리고 폭행" "집까지 쫓아가 마구 구타" "도망가는 시위대에 칼 던져"……

결국 계엄군으로 투입된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폭력이 광주항쟁을 유발한 셈이다. 공수부대의 진압작전은 비무장의 시민을 상대로 한 작전이라기에는 너무 잔혹했다.

20일 오후 금남로의 시민들에 섞여 있던 나는 계엄군의 무자비함에 치를 떨어야 했다. 그들은 시민들이 돌을 던지고 덤벼도 일정거리까지 가까이 오기 전에는 꼼짝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총알같이 튀어나와, 달아나는 사람의 머리를 쇠뭉치 같은 곤봉으로 후려갈겼다. 맹수가 사냥거리를 낚아채는 것 같았다.

나도 정신없이 달아났다. 금남로의 한 병원에 들어가 보니 머리 터진 사람이 즐비했다. 부상의 대부분의 머리가 함몰된 것이었다.

계엄군의 이같은 진압작전은 전쟁시 점령지에서 써도 비난의 대상이 될 만한 것이다.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사람들과의 충돌도 이보다 더 처참하지는 않을 것이다.

계엄군의 살육은 결국 대규모 시민봉기를 불러일으켰다. 광주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가 아니다. 한 다리 건너면 친구요 친척이요 동문인 곳이다. 옆집 아들의 죽음은 바로 내 자식의 죽음과 다름 아니다.

이 때문에 부마사태서 효과를 본 계엄군의 초전박살 진압작전은 광주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거대한 분노를 촉발했다. 이대로 당할 수 없다는 절박감이 광주시민, 더 나아가 전남도민 모두를 감쌌다.

도저히 대한민국 국군이라고 믿기 어려운 만행은 많은 소문들을 만들어냈다고 나는 믿는다. 공수부대의 이성을 잃은 무자비한 만행은 어떤 유언비어라도 사실로 믿게 만들 만했다.

왜 신군부는 광주에 수천 명의 공수부대를 투입시켜 시민을 적군으로 상대했을까. 공비들과 싸워야 할 공수특전단을 시위 진압에 투입했을 때 일어날 결과를 계엄사는 몰랐단 말인가.

1980년도는 절대권력의 박정희 정권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으나 신군부라는 반동세력이 또 역사를 후퇴시키고 있던 때다. 국민들은 계엄하에서 시들어가는 민주화에 실망과 분노를 품고 있었다. 광주가 아니었더라도 대한민국 어디에선가 유사한 민중항쟁이 일어날 만한 시점이었다.

계엄군의 만행은 잠재해 있던 국민들의 민주화 열기에 기름을 부은 것과 같다. 여기에 광주지역의 특수성, 박정희 정권시대의 피해 의식 등이 어우러져 광주항쟁이라는 커다란 역사의 물줄기를 만들어냈다고 나는 확신한다.

신군부가 특수부대인 공수부대를 계엄군으로 광주에 투입한 것은 민주화를 일거에 잘라버리고 제2, 제3의 항쟁에 본때를 보이는 작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독재에 항거하고 이웃의 아픔에 눈물짓는 민중의식은 총검 앞에서도 이들을 맨주먹으로 나서게 했다.』(일부분)

이 글의 전체 제목은 (아직도 굳지 않은 핏자국) 이었다. 광주민중항쟁 17년 후 이 글을 쓰고, 또 17년이 거의 지났는데도 그 흘린 피는 굳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광주민중항쟁을 역사의 한 페이지가 아니라 오늘의 일처럼 규명하고 교육하고, 되살려야 한다. 그것만이 그나마 희생자들에 대한 작은 명예회복일 것이다.


/장재열 한국과학언론인회 회장

2013년 1월 24일 목요일

박근혜 인수위, 보안은 '철통'…기록은 '깡통'?


이글은 프레시안 2013-01-24일자 기사 '박근혜 인수위, 보안은 '철통'…기록은 '깡통'?'을 퍼왔습니다.
[시민정치시평] '보안'지키더라고 기록은 '보존'되고 '활용'되어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가 있는 삼청동 금융연수원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민들도 차기정부의 얼개를 그리고 있는 인수위를 지켜보고 있다. 인수위는 차기정부의 조직개편안을 마련하는 것을 비롯해서 향후 5년 그리고 그 이후까지 우리나라의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칠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 또, 인수위에는 국민의 청원도 많이 받고 있다. 인수위원회가 홈페이지를 개설한 1월 10일 이후 국민행복제안센터를 통해 10일만에 만 건에 가까운 청원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도 그 청원은 점점 늘고 있다. 박근혜 당선자가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 까지 인수위원회는 더 많은 일을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기록을 생산하고 접수받을 것이다.

인수위 기록은 우리사회의 중요한 기록이다. 또한, 잘 보존되기 어려운 기록이기도 하다. 원래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활동의 이면을 공개하는 것을 꺼리게 마련이다. 권력기관일수록 기록이 남지 않거나 남더라도 일의 진행과정이 생략된 껍데기만을 남기게 된다. 그런 이유로 노무현 전 대통령 이전의 대통령기록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대통령기록에 관하여 규정하고, 지정기록물제도를 비롯한 보호조치를 마련한 이후에서야 대통령기록물이 남게 되었다. 대통령기록은 일부는 현재에도 활용되고 있고, 보호기간을 설정하여 공개를 유예한 기록물도 이후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는 것은 물론이다. 또, 나중에는 정부의 공과를 평가하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다. 인수위 기록도 마찬가지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서는 인수위가 생산·접수하여 보유하고 있는 기록물 및 물품을 '대통령기록물'로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역대 인수위의 기록 중에서도 이번 인수위의 기록은 더욱 중요하다. 인수위가 활동과정을 '철통보안'을 원칙으로 삼고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기록으로 제대로 남지 않는다면 이번 정부가 구성되는 과정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 될 수 있다.

이번 인수위가 보안을 중시하는 이유는 현 이명박 대통령의 인수위가 설익은 정책을 흘려 혼란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설익을 정책을 언론에 흘려 혼란을 주기도 했지만, 그 정책을 검증받는 효과도 있었다. '철통보안'이 준비하는 정책의 문제점을 개선할 기회를 놓치고 있을 수도 있다.

 
▲ 인수위 기록은 우리사회의 중요한 기록이다. 또한, 잘 보존되기 어려운 기록이기도 하다. ⓒ연합뉴스

물론, 모든 인수위원회의 활동이 즉시 알려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은 알려지지 않더라도 그 과정이 기록으로 보존되고, 이를 이후에 활용할 수 있다면 당장의 '보안'으로 나타나는 상당부분의 문제는 차후에 해결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번 인수위의 기록은 '보존'되고, '공개'될까? 인수위법에는 별도의 정보공개나 기록관리 조항을 두고 있지 않다. 기록물관리법이나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따라 대통령 기록으로 관리되고 대통령기록관에 이관되게 된다. 인수위법에는 위원회 활동 종료 후 30일 이내에 인수위의 활동실적과 예산사용 내역 등을 백서로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그 때 인수위 활동 및 성과, 새정부 국정철학 및 정책과제 등을 백서에 담아 선별적으로 공개하게 된다.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는 '성공 그리고 나눔'이라는 제목의 총 1,008쪽의 백서를 남겼다. 노무현 정부의 인수위는 '대화'라는 제목으로 541쪽 분량의 백서를 남기기도 했다. 이런 보여주기 위한 기록은 물론 다른 기록도 보존되고 공개되어야 한다. 많은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생산되는 과정에 대한 기록인 만큼 우리사회의 중요한 자산으로 보존되어야 하고, 국민들의 알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대통령 기록물관리법이 만들어진 이후 첫 인수위였던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는 5만1000여 건의 기록물을 남겼다. 그러나 기록을 부실 이관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8년 4월 15일 의 보도(인수위 활동 기록 '부실 이관')에 따르면 "공문 가운데 붙임 자료 일부가 없거나, 일부 인수위원의 위촉과 해촉에 관한 공문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해당기사는 대통령기록관 관계자를 인용해 "기획안에 '자문위원 위촉자명단'이라는 항목은 있으나 실제명단은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보도했다. 참여연대가 2008년 2월 26일 정보공개청구한 '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인수위원으로 위촉된 인수위원 명단(이름, 현직, 인수위 소속분과 및 직책), 자문위원 포함(위촉 후 해촉 된 위원명단 및 사유포함)'에 대해 2008년 4월 4일 인수위원 명단만 공개하고 "자문위원의 명단은 비공개 기록이어서 공개가 불가하오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며 비공개 결정을 통보했다. 앞서 설명한 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실제 이관 받지 않아 존재하지 않거나, 부실한 기록을 비공개사유를 밝히지 않고 비공개 한 것이다. 비공개시에는 정보공개법에 따라 비공개사유를 명확하게 알려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국가기록원'이 비공개사유도 밝히지 않고 비공개했다는 것은 '법에서 정한 비공개 사유가 아니라 다른 사유로 비공개한다.'고 알려준 것과 같다. 이번 인수위에서는 기록관리를 철저히 해서 이런 일들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 기록물 관리법에서 대통령기록물을 무단으로 파기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무단으로 은닉・유출・손상・멸실시킨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의 벌금으로 엄하게 처벌하도록 하고 있는 것을 말하지 않더라도 중요한 기록을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이번 인수위는 기록을 잘 보존하고 이관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1월 10일 은 '인수위 기록물 관리할 전문직원 한명도 없다'는 기사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기록물 관리를 담당할 전문직원을 한명도 두지 않아 기록관리가 부실할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인수위 때는 각각 1명과 4명의 직원을 국가기록원으로부터 파견 받아 기록관리를 맡겼지만 이번에는 파견한 직원이 없다는 것이다. 필자가 국가기록원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현재까지도 인수위에 파견된 국가기록원의 직원은 없다. 다만,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전화 통화를 통해 노무현·이명박 정부 인수위에서도 직원을 파견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전 정부에 기록관리 인력이 없었다고 해서 이번 인수위에서도 기록을 관리할 인원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기록물관리법에서 기록물관리기관은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을 두도록 하고 있다. 대통령기록을 생산하는 대통령실에는 대통령실 소속의 직원 외에도 국가기록원의 전문가가 파견되어 기록관리를 하기도 한다. 인수위기록의 관리를 위해서는 국가기록원에서 전문직원을 파견 받아 기록물의 관리를 맡겨야 할 것이다.

박근혜 당선자는 정부 3.0을 약속했다. 정부의 정보를 공유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의미는 좋다. 그러나 실천이 중요하다. 인수위 기록이 그 시작이어야 한다. 공개가 되어야 공유도 가능하고 이를 통해 다른 가치가 창출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공개에 앞서 기록이 제대로 생산되고 관리되어야 한다.


 /장정욱 참여연대 시민감시2팀장 

2012년 9월 5일 수요일

[조연희 칼럼]초등때 ‘폭력’, 고교 졸업 후 5년까지 기록 남기라고?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9-05일자 기사 '[조연희 칼럼]초등때 ‘폭력’, 고교 졸업 후 5년까지 기록 남기라고?'를 퍼왔습니다.

‘대한민국 교과부는 교육은 없다’

지난 8월 31일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교육청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한 성명서 제목이다. 또한 김 교육감은 교육과학기술부의 경기도교육청에 대한 특별감사 실시에 항의하는 의미로 200시간 비상근무를 선포했다. 김승환 전북 교육감과 민병희 강원 교육감도 교육청에 대한 교과부의 특별감사 강행 등 교육자치 훼손에 대하여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성명서를 통해 교과부의 지시에 따라 졸속으로 시행되는 학교폭력 가해학생 학생부 기재는 기본권 침해에 따른 헌법 위반 소지가 있고, 교육의 원칙에도 어긋난 대책이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장관의 지시나 부처의 훈령이 아니라 법률에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1천만 경기도민의 교육 책임자로서, 또한 한 사람의 교육자로서 고민하고 신중히 판단하여 집행 여부를 검토해야 하는 사안이기에 교육감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주장이다.

ⓒ경기도교육청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국가인권위도 개선 권고하는 교과부의 학교폭력 기록 지침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생활기록부 기재 보류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경기도·전라북도·강원도 교육청에 대해 특별감사라는 무기를 들이대며 교육청과 일선 학교를 협박하고 있다. 해당 교육청을 직접 방문하여 관내 학교에 직접 전화를 걸고, 공문을 보내 생활기록부 기재를 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준다는 협박까지 하고 있다. 교과부의 이와 같은 행위는 헌법이 보장한 교육 자치와 교육의 전문성과 자주성을 훼손하는 일이며, 권력을 악용한 반교육적 학교 폭력 2차 가해 행위이다. 헌법과 법령을 무시하고 인간의 기본권을 무차별적으로 침해하는 교과부의 행위가 1차적인 학교 폭력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지난 8월 3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인권친화적 학교 문화 조성을 위한 종합정책권고’에서 교과부의 학교 폭력 대처 방안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여 국무총리, 교과부 장관, 17개 시도교육감 등에 권고를 했다. 국가인권위는 권고문에서 인권친화적 학교 문화 조성을 위해 교육기본법 제2조(교육이념)에 ‘인권존중’을 포함하고 제9조에는 ‘학생의 기본적 인권’ 보장을 기술하도록 권고하였다. 또한 학생인권보장을 위해서는 조례차원의 법 개정을 넘어 학생 인권을 법률로 보장할 것을 주문했다. 교육 환경에 대하여도 언급하였는데, 과밀학급 해소와 행정 업무 경감, 집중이수제 재검토 등을 통해 교원들이 교육과 훈육에 전담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들 것을 권고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학교 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학교생활기록부 기록에 대해서는 졸업 전 삭제 심의제도나 중간 삭제 제도 등을 두어 생활기록부 기록이 또 다른 인권 침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사생활 침해 예방, 개인 정보 최소 수집, 민감정보처리 제한 고려 등 인권이 침해되지 않는 선에서 정부를 교육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작성 방식을 개선할 것을 권고하였다. 

올 해 3월 교과부에서 징계 학생 학생생활기록부 기재 지침을 발표하자, 전교조에서는 지난 3월 인권 침해를 우려해 인권위에 진정을 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서는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하여 지난 7월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및 관리 지침(교과부훈령)’에 대한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인권위의 권고안은 이런 문제 제기 등을 배경으로 나오게 되었다.

소년원 전과 기록은 위법, 단순폭력 경력은 기록해라?

그러나 교과부에서는 교육단체나 법률 단체,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을 무시하고 오로지 지침 관철에 혈안이 돼 초헌법적 지침을 일선 학교와 교육 기관에 보내고 있다. 교육의 정치 중립성과 자주성의 존재 이유가 이처럼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는 많지 않다. 교육적 판단 하에 생활기록부 기재 보류 입장을 밝힌 교육감과 학교장, 교사들의 결단에 대해 교과부는 그 이유의 타당성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교과부 장관이 당장 해야 할 일은 교육단체, 인권단체, 법조계 등 각계 전문가 등의 의견을 구하고 자신들의 지침이 문제가 있을 경우 즉시 취소 결정을 하거나 최소한 보류 입장을 밝혀야한다. 

심지어 교과부 장관은 전국의 모든 학교 교사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지침도 내렸다. 교과부 장관은 학교 폭력으로 인한 소년원 경력 등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라는 지침을 지난 3월에 내렸는데 이는 분명 현행법 위반이다. 현행법은 소년의 품행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면서도 소년의 미래를 위해 소년원 경력을 재판, 수사, 군사상 필요한 경우 이외의 조회에 응하지 못하게 되어 있고, 이를 어길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지침의 현행법 위반이 드러나자 교과부는 소년원 경력 등의 기록은 삭제하라는 공문을 다시 보냈다. 문제는 소년원 경력은 기록할 수 없도록 법에 되어 있기에 기록할 수 없지만,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의 징계 경력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여 고교 졸업 후 5년까지 보전하게 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 폭력에 단순 가담하여 서면 경고 등을 받은 경우에도 고교 졸업 후 5년이 지나야 기록이 삭제된다. 형평성이 어긋나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지경이고,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반인권적인 행위를 학교 폭력을 없애기 위한 방안이라며 막무가내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승빈 기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비롯한 시민사회 단체들이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강요·교육자치 훼손' 이주호 교과부장관 직권남용 고발 기자회견을 열었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더라도 일부 나라에서 학교 폭력 기록을 남기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대개 그 사유가 위중한 경우에 한하고, 그나마 고교 졸업 전에 징계 사유가 삭제된다. 프랑스의 경우, 고교 졸업과 동시에 모든 징계 기록이 삭제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고, 중국의 경우는 근신 기간이 끝나고 나서 해당 학생이 징계 기록 삭제 요청을 할 수 있다. 징계 기간 동안 재교육을 받는다거나 행동의 변화를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교육’이다. 캐나다의 경우는 기록 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행 교과부 지침은 아주 경미한 일로 인하여 서면 경고를 받은 경우에도 삭제하지 않고 기록을 남기겠다는 것이다. 이는 ‘교육’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발상이다.

‘폭력 학생’ 이라고 학생부에 기록하는 게 교육인가?

학교 폭력의 양상이 다양화되고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고,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교과부의 지침이 학교 폭력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그 해결 방법이 교육적인가와 법률 위반의 소지가 있는가이다. 법률로는 기본권 침해의 위헌 요소가 있다는 것이 국가인권위나 민변 등의 판단이 있고, 학교 폭력을 해결하는 문제는 그 근본 원인을 분석하여 사회 구조적 문제, 학교 문화의 개선, 재발 방지를 위한 교육적 방법 개선 등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또한 학교 폭력 가해 학생에 대하여는 자신의 행동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에 대하여 알게 하고 진심으로 반성할 수 있는 방법이 교육적인 것이고, 그래서 학교 교육이 중요한 것이다. 

교과부 장관은 이제라도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지침을 보류하고, 관련 기관과 학부모단체, 교사단체, 교육과 상담 전문가, 법률가 등의 의견을 수렴하고 가장 교육적인 방안으로 학교 폭력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교과부가 교육을 포기하고 정치 논리나 권력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그 존재 이유 자체가 없다. 국가인권위에서 권고한 바대로 아동·청소년 인권법 제정과 인권친화적 학교 만들기를 위한 활동에 힘을 쏟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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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희 교육희망네트워크 집행위원장

2012년 7월 4일 수요일

국방부 “한일군사협정 盧정부 시작, 기록 확보는 못해”


이글은 뉴스페이스 2012-07-04일자 기사 '국방부 “한일군사협정 盧정부 시작, 기록 확보는 못해”'를 퍼왔습니다.
박선원 “찾아낸 알리바이가 고작? 논의 전혀 없었다”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이 ‘밀실처리’ 논란에 휩싸여 있는 가운데 한일간 군사협정 관련 논의가 현 정부 이전부터 있었다는 국방부의 주장을 두고 참여정부 인사인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이 이를 정면 반박했다.

박 전 비서관은 4일 오전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참여정부 당시) 자위대 과장급과 우리나라 국방부 과장급이 만나 한일간 비밀군사정보보호협정을 논의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전혀 아니고 그런 필요성도 전혀 없었다”며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또한, 박 전 비서관은 “북한 핵관련 정보라든지 이러한 정보에 대해서는 한미간 정보협조가 이뤄지고 있고 필요한 경우에는 미일간, 한미일간에 6자회담 석상에서 비공개로 서로 논의가 돼있기 때문에 군사기밀 전반에 대해 한일간 협력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실무선에서 전혀 논의가 없었다”며 “2011년 1월 김관진 국방장관이 일본에 가서 제안하면서 시작된 것이 시초라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박 전 비서관은 “실무선에서 논의됐다고 한다면 적어도 장관급에서 협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 서고 사전에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타진해보는 정도까지 가야 실무선에서 논의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과장급, 대령급이 개인적으로 만나 일본사람에게 이걸 했으면 좋지 않을까,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실무선의 논의라고 볼 수 없다”고 언급했다.

논란의 시작은 지난달 29일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한일간 상호군수지원협정문제는 2008년이 아니라 그 전부터 실무선에서 많이 논의돼왔다”고 전했다. 다만,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 논의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김 대변인은 박 전 비서관에 바로 앞서 가진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손석희 교수가 “참여정부 때부터 이른바 군사협정 실무논의가 있었다고 말씀을 하신 바가 있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김 대변인은 “제가 2008년 이전에 담당했던 분들에게 물어보니까 그때도 실무선에서는 필요성에 대해 계속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 시작은 작년 2월부터다, 그렇게 작년 1월에 합의한 이후부터라고 제가 다시 설명했다”고 전했다. 

김 대변인은 “실무자간 사이는 과거에도 계속 일본하고 만나왔었다. 그렇게 하면서 실무자가 서로 공감했다는 이야기”라며 “기사내용은 2008년도에 우리가 먼저 제안했다고 나와 있는데 많은 논의가 있었기 때문에 딱 그걸 시작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언급했다. 

이에 손 교수가 “당시 실무선에서의 양쪽의 논의라는 것이 다 보고가 되는 사안을 얘기하는 것이냐. 예를 들면 뭐 장관한테 보고가 된다라든가”라고 묻자 김 대변인은 “회담결과는, 협의결과는 다 장관에게 보고가 된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손 교수는 “사실 양쪽에서 만났으면 왔다갔다 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에 그건 금방 조사해보면 나올 수도 있는 그런 내용인데 참여정부 당시 인사들은 아니라고 강력 주장하고 있지 않느냐”고 언급했다.

이에 김 대변인은 “내용까지는 서류를 확인해보지 못했지만 당시 과장을 하신 분한테 물어보니 그 때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서 정확하게 언제부터 시작했다고 말하긴 정확하지 않다”며 “다만, 작년 한일국방장관회담 이후에 했다는 것이 정확하다고 보는게 맞다고 말한 것”이라고 답했다. 

“혹시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을 확보하셨느냐”는 손 교수의 질문에 김 대변인은 “확보하지 못했고 문의만 해봤다”고 답했다. 손 교수가 “기록이 없겠느냐”고 재차 묻자 김 대변인은 “그건 나중에 한번 보시죠”라고 말했다.

한편, 박 전 비서관은 지난달 29일 ‘노무현재단’ 홈페이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안보를 위해 꼭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버티지 못해서 겨우 찾아낸 알리바이가 참여정부 때도 실무자 사이에 논의가 있었다는 헛소리라니 기가찰 일”이라며 “정말 후안무치하고 무책임한 정권이다. 비겁하기 이를데 없다”고 김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을 강하게 비난했다. 

박 전 비서관은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서 먼저 일본측에 군사지원협정을 추진하자고 했다는 건 이미 언론을 통해 다 알려진 사실이다. 군사정보협정 보다 한단계 높은 군사지원협정까지 제안한 게 이명박 정권”이라며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듯 거짓말해선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우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