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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일 토요일

박근혜가 MB에 ‘쓴소리’?....4대강 “정부 믿어야”, 미디어법 날치기 “이 정도면 공감”


이글은민중의소리 2012-11-29일자 기사 '박근혜가 MB에 ‘쓴소리’?....4대강 “정부 믿어야”, 미디어법 날치기 “이 정도면 공감”'을 퍼왔습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18대 대통령 공식선거운동 기간 이틀째인 28일 오후 충남 당진시장에서 유세를 펼치고 있다.

"우리 박근혜 후보는 정부 여당 안에서 쓴소리하는 야당의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모르는 국민들은 아무도 없다."

29일 새누리당 조해진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대변인의 브리핑이다. 조 대변인은 이같이 밝히며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측이 박 후보에게 제기하는 이명박 정부 '공동책임론'에 대해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칙, 소신'을 강조하는 박 후보가 가장 주요하게 내세우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부결을 주도한 것이다. 박 후보는 28일 충청지역 유세에서도 "정치생명을 걸고 세종시를 지켰다"고 역설했다. 

'세종시 수정안'이 '친이명박계' 의원 67명의 서명으로 올라와 표결에 부쳐진 지난 2010년 6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박 후보는 직접 반대토론자로 나섰다. 당시 그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미래로 가려면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며 "오늘 표결을 끝으로 더 이상의 소모적인 논쟁을 접자"고 촉구했다. 

이에 따라 '친박'계 의원들이 반대표에 힘을 실으면서 '세종시 수정안'은 재적의원 275명 중 찬성 105명, 반대 164명, 기권 6명으로 부결됐다. 워낙 임팩트가 강했던 사안이었기에 박 후보는 '원칙과 신뢰'의 이미지를 얻게 됐고, 이번 대선에서도 이를 핵심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MB '대운하'가 '4대강'으로 바뀌자 "정부 믿어야"조중동 종편 허용한 '미디어법' 날치기엔 "이 정도면 공감"2008년엔 해양수산부 '폐지', 대선 앞두고는 '부활'

2007년 대선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당시 후보에게 'BBK' 문제까지 제기하면서 극한의 날을 세웠던 박근혜 후보. 그는 2008년 3월 총선을 앞두고는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며 이른바 '친박계 숙청'에 대해 강한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의 MB에 대한 '쓴소리'는 여기까지였다. MB정부가 들어서고 난 이후에는 주요 시책에 대해 처음에는 반대하다가도 협조하거나 묵인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 공약이었던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대해 박 후보는 대선경선 당시 "강바닥 파고 토목공사 일으킨다고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이후에는 태도가 바뀌었다. MB정부가 '4대강 사업'으로 이름만 바꿔서 사업을 재추진하자, 박 후보는 2008년 12월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부가 대운하 사업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분명히 밝혔으니 믿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국민을 속이는 것인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조중동의 종편 진출을 허용한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서 박 후보는 처음엔 '여야 합의 처리'를 강조하며 한나라당의 강행처리 반대 의사를 밝혔다. 2009년 7월 19일 "내일 당장 직권상정한다면 반대표를 행사하기 위해 참석할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강하게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자신의 수정안 관철을 위한 포석이었다는 게 주된 분석이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사흘 뒤인 7월 22일 오전 박 후보의 수정안을 일부 수용하면서 구독률 20% 초과 신문의 방송 진출을 사전 규제하는 내용을 담았고, '매체 합산 시청점유율' 환산시 신문의 경우 상한선(10%)을 삭제했다. 그러자 박 후보의 입장도 달라졌다.

한나라당의 '날치기' 당시 여야 간 충돌로 본회의장에 입장하지 못한 박 후보는 '미디어법 수정안'에 대해 "이 정도면 국민들이 공감해 주실 것이라고 본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후 박 후보는 종편 개국 당시 이들 방송사와 단독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지난 2008년 통과된 이명박 정부의 '해양수산부 폐지' 법안에 대해선 박 후보는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 해 2월 22일 본회의 가결 당시에도 그는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박 후보는 대선후보가 되자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그는 지난 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전국수산인한마음전진대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해양수산부를 부활시키겠다"고 밝혔다.

최명규 기자 press@vop.co.kr

2012년 7월 20일 금요일

“파병 반대” 맞짱 뜨던 ‘인권위 독립성’ 지금은 만신창이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7-20일자 기사 '“파병 반대” 맞짱 뜨던 ‘인권위 독립성’ 지금은 만신창이'를 퍼왔습니다.

노무현정부에 쓴소리 김창국 위원장 
“독립기구란 그런 것
”조영황·안경환 위원장도 전문성 
밑바탕 위상 지켜내
이젠 행정부 소속 취급…
“대통령 임명권 안돼” 비판

지난 2005년 11월 쌀 협상 반대 시위에 참여했던 농민 2명이 경찰 진압 과정에서 사망했다. 12월26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사망 원인은 경찰의 과잉 진압 탓”이라며 경찰 수뇌부를 문책하라는 권고안을 채택했다. 바로 다음날인 12월27일 노무현 대통령은 “인권위 권고에 따라 책임자를 가려내고 피해자에게 배상하겠다”는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다. 이틀 뒤 허준영 경찰청장은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당시 인권위는 사회적 약자인 농민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권력기관인 경찰에 맞서고 대통령까지 사과하게 만들었다.반면 2009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이 현병철 인권위원장을 임명한 뒤, 인권위는 수사, 용산참사, 민간인 사찰 등 국가기관의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았다. 2009년 12월28일 용산참사 문제를 다루던 회의를 “독재했다고 해도 좋다”며 강제 폐회하기까지 했다. 당시의 육성을 담은 음성파일도 19일 공개됐다.

[관련기사] ▷ 현병철 “독재라도 좋다” 육성 공개

이런 태도를 비롯해 국회 청문회에서 쏟아진 여러 의혹과 자격 논란에도 이 대통령은 현 위원장의 연임을 강행할 태세다.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선 대통령에게도 단호했던 인권위가 지난 2년 동안 겪은 몰락의 세월이 더 연장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 대통령과 ‘맞짱’ 뜬 역대 인권위원장 
2001년 11월 출범한 인권위는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며 법이 정한 독립기구로서의 위상을 현실화했다. 초대 김창국 위원장은 2002년 11월 청와대에 사전 보고를 하지 않고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청와대는 ‘공무 국외여행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김 위원장을 ‘경고’ 조처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공무 국외여행 규정’은 행정부 소속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독립기구 수장인 인권위원장이 이 규정을 적용받을 필요가 없다”며 공식 반박했다. 대통령의 지휘와 재가를 받지 않겠다는 인권위 수장의 정치적 메시지이기도 했다.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던 2003년 3월, 인권위는 정부가 추진하던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채택했다. 당시 문재인 청와대 수석은 당시 김창국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발표하는 건 좋은데 대통령한테 사전에 언질도 하지 않을 수 있느냐”며 역정을 냈다. 김 위원장은 “독립기구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일축했다. 오히려 야당인 한나라당은 “대통령 뜻에 반하는 입장을 밝힌 것은 본분을 망각한 국론분열 행위”라며 비난했지만, 노 대통령이 “인권위는 원래 그런 일을 하라고 만든 곳”이라는 견해를 밝혀 논란이 일단락됐다.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은 “출범 초기에는 다른 부처 공무원들이 인권위의 독립성과 권위를 이해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했다”며 “그런데 인권위원장이 대통령과 맞붙는 과정을 지켜본 공무원과 국민들이 독립기구로서의 인권위 위상을 자연스레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 인권위원장 권위가 곧 인권위 위상 
역대 인권위원장들이 청와대의 눈치를 보지 않았던 데는 이들이 인권과 관련한 전문성과 권위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초대 김창국 위원장은 군사정부 시절 시국 사건 변론을 단골로 맡은 저명한 인권변호사였다. 김 위원장은 2002년 10월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던 피의자가 검사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에 대해 지검장이 인권위 조사를 거부하자 전화를 걸어 “당장 조사를 받으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3대 조영황 위원장은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수사한 특별검사 출신이다. 4대 안경환 위원장도 인권법에 조예가 깊은데다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을 지내는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을 한 경력이 있었다. 반면 현병철 위원장은 스스로 언론 인터뷰에서 “(인권을) 모르는 게 차라리 장점”이라고 말할 정도로 인권 관련 경력이 전무하다.외국 사례를 봐도 인권 관련 경력이 없는 사람이 인권위원장으로 임명된 경우를 찾기 힘들다. 뉴질랜드의 로슬린 누난 인권위원장은 유엔 인권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 등 인권 관련 국제기구에서 4년 동안 일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조디 콜라펜 인권위원장은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로 박해받는 이들을 변호했다. 타이의 아마라 퐁사피취 인권위원장은 여성인권과 사회복지 분야에서 활약해온 인류학자다.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국제사회에서 국가인권기구는 한 국가의 ‘양심’으로 불린다”며 “우리보다 정치·경제 영역에서 뒤처졌다고 평가되는 나라에서조차 그 나라의 인권을 상징하는 인물이 인권기구의 수장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 독립기구 수장을 대통령이 임명? 
 인권위법은 “그 권한에 속하는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인권위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현행 제도로는 정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실제 인수위 시절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들려 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현병철 위원장은 2009년 7월 취임한 뒤 처음 출석한 국정감사 자리에서 “인권위는 행정부 소속”이라고 말한 바 있다.이 때문에 후보자추천위원회 등을 통한 민주적인 임명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타이의 경우 임명은 국왕이 하지만, 다양한 인사들로 구성된 위원선발위원회에서 1차로 검증된 후보 가운데 국회가 표결을 통해 결정한다. 인권위원을 선발할 때 인종, 출생국, 종교, 성지향성 등에서 사회적 소수자를 대표하는 사람들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하고 있는 영국처럼 인권위원의 자격기준을 명확하게 할 필요도 있다.

진명선 엄지원 기자 torani@hani.co.kr

2012년 6월 9일 토요일

민주당 초선 "지금이 손뼉 치고 깔깔댈 때냐"


이글은 뷰스엔뉴스(Views&News) 2012-06-08일자 기사 '민주당 초선 "지금이 손뼉 치고 깔깔댈 때냐"'를 퍼왔습니다.
황주홍 "지도부, 국민여론에 무지", "위기는 내부에서 왔거늘"

민주통합당 초선인 황주홍 의원(60. 전남 강진 영암 장흥)은 8일 "지금의 민주당 지휘부는 국민 여론의 동향에 대해서 둔감하거나 무시하거나 무지하다"고 당지도부에 호된 쓴소리를 했다. 

황 의원은 이날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이같이 지적하며 "이런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지닌 정당의 말로는 빤할 수밖에 없다. 결국 시시콜콜하게 보이는 국민 여론 하나하나가 표가 되고, 대선 결정력을 갖기 때문"이라고 대선 필패를 경고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4.11 총선 패배 원인과 관련 "총선 때 민주당은 다양한 악재들을 만났고, 그 다양한 악재들을 무능하고 둔감하게 관리함으로써 참패는 아닐지 몰라도 완패하고 말았었다"며 "사법처리 과정에 있는 후보들을 다량 공천했던 일, 당시 지도부와 같은 라인에 있었던 유력 후보들의 대거 단수공천, 진보당의 관악을 여론조사 조작시비와 진보당 쪽 야권단일후보의 버티기,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문에 대한 지휘부의 우유부단함과 묵묵부답 행태 등등이었다"고 지도부를 비판했다.

그는 총선후 상황과 관련해서도 "4.11 총선이 끝난 뒤에도 민주당 지휘부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며 "당 대표가 총선 결과에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한 정당의 자세라고 볼 수 없는 일들만 즐비했다. 127명의 당선자들끼리 모여 단 한 번도 총선 패배의 원인과 앞으로의 결의를 다지는 시간과 자리가 없었다고 한다면 어느 국민이 이해하실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특히 박지원 비대위에 대해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구성한 민주당이 어떤 비상대책을 논의하고 내놓고 있었는지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며 "생각해 보자. 우리의 ‘비상(非常)’상황이 외부로부터 온 것인가 아니면 내부로부터 온 것인가. MB정권이 핍박을 해서 지금 우리가 비대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그렇다면 비대위의 활동과 전략은 우리 내부를 겨냥하는 것이어야 한다"며 "그러나 오늘 민주당 비대위는 누구를 겨냥하고 있는가. 거의 80~90%의 비대위 활동은 여당과 청와대를 ‘저격’하는데 할애되고 있지 않은가"라고 꼬집었다.

그는 "확실히 이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라며 "비대위는 외부 ‘적’을 겨냥하기보다는 우리 내부의 결함과 약점들을 겨냥하고 수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진보당 사태를 거론하며 "왜 민주당이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지지자들의 불만이 상당하다는 걸 지휘부는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최근의 ‘진보당 사태’로 야권연대에 대한 회의적 여론이 비등할 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행보로 주류 여론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민주당의 모습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가슴아파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더 나아가 최근 민주당 의원연찬회때 보여준 행태도 호되게 질타했다.

그는 "엊그제(4일) 의원연찬회는 실망스러웠다"며 "1박2일로 한다더니 단 하루 두 나절로 줄여 버리는 것도 실망스러웠고, 모든 일정들이 촘촘하게 잘 짜여져 있어서 127명의 참석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다 연찬회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와 대상으로 역할 규정되어 있는 것 같아 실망스러웠다"고 지적했다. 

그는 "각종 스케줄과 일정들이 모두 다 정상적이고 평상적인 정당의 의원연찬회와 하등 다를 바 없어서 씁쓸했고, 약간은 슬프기조차 했다"며 "제대로 된 토론 한 번 할 수 없도록 촘촘하게 설치해 놓은 연찬회의 메뉴들 때문에 지휘부의 리더들만 언론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도 안타까웠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저녁 먹고 레크레이션 타임이 1시간 40분이나 예고되어 있는 일정표를 보며 온갖 상념으로 마음이 무척 심란해졌다"며 "저녁 먹고 레크레이션장으로 내려가 보니 이미 절반 이상의 의원들은 자리를 뜬 상태였다. 우리 테이블에 함께 앉아 계시던 두어 분 의원들이 '지금 노래 부르고 이럴 때인가, 이런 걸 기자들이 한 줄이라도 쓰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며 염려하는 소리를 했다"고 개탄했다.

그는 "실제로 한 다선 의원이 헤드테이블의 지휘부 쪽에 다가가서 약간의 ‘자제’가 필요할 것 같다는 뜻을 전달했었다"며 " 어떤 다선 의원은 임기 시작 후 첫 번째 의원연찬회에서 분임토의를 생략한 채 레크레이션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조심스럽게 안타까운 소회를 털어놓기도 하였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레크레이션 강사의 숙련된 안내에 따라 옆 의원들의 어깨와 등을 맛사지해 주는 등의 여흥을 즐기던 나는 조용히 상의를 들고 의원연찬회장을 쓸쓸히 빠져나왔다"며 "그 자리에 계속 눌러앉아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을 노래하고 손뼉치며 깔깔대는 것으로 내 첫 임기를 시작하고 싶지는 않은 마지막 자존심 때문이었다"고 분노를 숨기지 못했다. 

그는 "연찬회장을 뒤로 하며 걸어 나오는 내 귀에 지역 주민들의 한결같은 소망사항이 소리없이 귓전을 잡더니 어느새 거대한 함성으로 나를 채찍질하는 것이었다"며 "'제발 정권교체를 이루어다오. 그 좋았던 4.11총선 압승의 기회를 놓쳐놓고 이번 대선도 실패한다면 당신들 민주당은 죽어야 한다'고"라며 준엄한 민심의 소리를 전했다.

황 의원은 비록 초선이나 2004년부터 강진군수를 내리 3번이나 할 정도로 지역적 신망이 절대적인 호남의 강골 지자체장 출신이다. 그는 지역주민을 최우선시하는 강남군수 재직시절에 호남 정치권과 대립이 잦았고 그 여파인지 감사원 감사와 경찰청 수사를 계속 받자, 박원순 현 서울시장, 이홍길 전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상임대표 등 사회원로 11명이 지난해 3월30일 “황주홍 강진군수에 대한 과잉수사는 부당하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광주일고를 나와 연대 정외과를 다니던 유신시절에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1년간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던 그는 그후 미국 미주리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전문가이기도 하다.

김동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