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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4일 금요일

왕도 막지 않은 언론, 목사들이 틀어막다


이글은 뉴스앤조이(NEWSNJOY) 2013-05-21일자 기사 '왕도 막지 않은 언론, 목사들이 틀어막다'를 퍼왔습니다.
한기총, 기자 상대로 출입 금지에 고소까지…예장합동도 언론 통제

600여 년 전 어느 봄날, 조선의 왕 태종이 신하 김독에게 물었다. "내가 사냥할 때 사관(史官)이 따라온 이유가 무엇인가." 김독은 "역사를 기록하는 이가 임금의 나들이를 기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하고 답했다. 김독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임금은 구중궁궐에 있어 경계하는 뜻이 날로 풀리고, 게으른 마음이 날로 생기는 것을, 누가 능히 말리겠습니까? 그러므로 임금은 오직 하늘과 역사를 두려워해야 합니다"고 역설했다.
태종처럼 다른 임금들도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기록하는 사관을 성가셔했다. 그렇다고 해서 사관이 기록하는 것을 임금이 막거나 조작할 수 없었다. 한 시대의 절대 권력인 왕도 기록으로 감시하고 경계하는 일을 막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사관의 역할을 하는 언론인들은 왕도 아닌 목사에 의해 기록을 제한받는 형편이다.

한기총, 언론인 출입 막고 고소


▲ 한국 교계에 언론을 통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언론 길들이기 선두 주자는 한기총이다. 한기총은 비판적인 보도를 이유로 <뉴스앤조이> 외에 언론사 3곳의 출입을 막았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한국 교계에서 언론을 통제하는 대표 주자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홍재철 대표회장)다. 한기총은 보도 내용이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2011년 12월 (뉴스앤조이)·(기독교보)·(들소리신문)·CBS가 한기총을 취재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크리스천기자협회는 "한기총의 출입 금지는 언론을 탄압하는 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나 한기총은 언론 길들이기를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한기총을 비판한 기사를 실었다며 (기독교보)의 구본철 국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한기총이 문제 삼은 기사는 기자 수첩으로, 기자가 현장에서 취재한 사실을 바탕으로 주장을 펴는 일종의 칼럼이다. 검찰은 해당 사건을 혐의가 없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한기총은 같은 해에 (뉴스앤조이) 기자를 고소했다. 죄목은 불법 침입. 한기총이 출입을 막았음에도 한기총 사무실에 들어왔고 도청을 했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한기총의 주장을 받아들여 벌금 100만 원으로 약식기소했다. (뉴스앤조이)는 이에 불복하고 정식재판을 청구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재판은 지금까지 4월 15일, 5월 13일 두 차례 열렸으며 다음 심리는 6월 10일에 열린다.

교인 알 권리 무시한 결의, 언론이 따를 이유 없다

이번 재판에서 쟁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한기총이 언론의 출입을 막을 수 있는가'이다. 사단법인인 한기총은 한국교회가 연합해 만든 조직으로, 각 교단에 소속한 교인들의 헌금으로 운영된다. 의결권이 있는 총회대의원과 회의를 주재하는 대표회장은 교단에서 파송한 사람들로 구성된다. 한기총의 진짜 주인은 목회자와 교인이며, 한기총은 이들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단체의 목적과 성격에 반하는 결의를 언론이 따를 이유는 없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기자가 도청을 하려고 한기총 회의실에 침입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기자는 2012년 11월 8일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회의를 취재하려고 들어갔으며 정확한 취재를 위해 평소처럼 녹음기를 두고 기다렸다. 그러다가 한기총 측 인사의 요구로 회의실 밖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녹음기를 회수하지 못했다. 회의가 끝난 뒤 녹음기를 회수했고, 이 사실을 안 한기총 사무총장이 녹음 파일 삭제를 요구했다. 기자는 녹음 파일을 듣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삭제했다. 사건의 정황을 살피면 녹음의 목적이 도청이 아닌 취재였음을 알 수 있다. 상황에 관한 어떤 설명이나 이해도 없이 취재 관행을 불법으로 몰아붙이는 태도는 취재를 제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한기총이 (뉴스앤조이) 기자를 고소했다는 소식을 들은 교계 기자 50명은 서명으로 (뉴스앤조이)에 힘을 보탰다. 한기총의 행태와 주장이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데 많은 언론인이 공감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한기총이 언론의 취재 활동을 제한하는 행위는 단체 본래의 목적과 성격에도 맞지 않는다. 홍재철 한기총 대표회장은 '사랑과 용서', '소통'을 강조하면서도 언론인의 출입을 막고 기사를 고소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홈페이지 갈무리)

언로 막는 나쁜 풍토 번질까 우려

한기총의 언론 길들이기를 따라 하는 교단도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임원회는 지난해에 이어서 올해도 (뉴스앤조이)와 (마르투스)의 출입을 막겠다고 결의했다. 여기에 교단지인 (기독신문)까지 취재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게 하고 있어 사실상 언론을 등지고 있다. (기독신문)은 5월 15일 자 사설에서 "폐쇄적인 공동체의 미래는 어둡다"며 교단의 언론 통제를 비판했다.
"하늘은 형상이 없으나, 착한 것은 복을 주고, 음란한 것은 화(禍)를 주며, 역사가는 정치·행정 운영의 좋고 나쁜 것과 행동의 잘잘못을 곧게 쓰는데, 이를 만세에 전하여 효자와 자손도 고치지 못하게 하니, 두려운 일이 아닙니까?"
조선의 문관 김과는 책임과 권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하늘과 역사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태종에게 전했다. 김과의 말을 들은 태종은 사관의 역할을 인정하고 조심히 공손하게 말하며 행동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백성 위에 군림한 조선의 왕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고백하고 주의 종을 자처하는 목사들보다 낫다.


김은실 (raindrops89)

2013년 3월 11일 월요일

연봉을 숨기는 목사님들


이글은 뉴스앤조이(NEWSNJOY) 20103-08일자 기사 '연봉을 숨기는 목사님들'을 퍼왔습니다.
연봉 은닉은 교권주의의 잔재

어느 조사에 따르면 한국 목회자의 90% 이상이 연봉 3000만 원 이하의 사례비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하위 20%는 불과 1000만 원 이하의 낮은 연봉을 받고 있습니다. 반면에 상위 10% 중에는 터무니없이 높은 연봉을 받아 가는 목사들이 적지 않습니다. 한 대형 교회 담임목사는 무려 6억 원이나 받았고, 지방 소도시 교회 목사가 2억 원의 연봉을 받은 곳도 있었습니다. 거룩한 공교회 역시 세속화에 밀려 사회 양극화의 악영향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이런 연봉 빈부 격차에 대해 약 90%의 목회자들은 상황이 심각하다고 응답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목회자가 가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목사의 85%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가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목사는 겨우 5%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면 목사 연봉은 어느 정도가 적절한 것일까요. 그에 대해서는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신도들은 너무 적어도 안 되고 또는 너무 많아도 문제인 것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개 교회의 지역적 여건에 따라 최저 교사 수준에서 최고 신학대학 교수 수준 그 사이에서 결정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뿌리 깊은 교권주의

연봉의 적정 수준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는 많은 교회에서 목사 연봉을 공개하지 않거나, 분산 처리하여 실제로는 상당 부분을 은닉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과거 한 언론 매체가 어느 지역 교회 세입 세출 예산서를 입수하여 공개했습니다. 아래 내용은 거기에 나타난 담임목사의 지출 항목입니다.
생활비 5400만 원, 자녀 학비 보조(해외 유학) 4920만 원, 목회비 600만 원, 교역자 연구비 600만 원, 교역자 도서비 480만 원, 교통비 360만 원, 그리고 교역자 수양비 60만 원 등으로 외견상 담임목사의 연봉은 모두 합쳐 1억 2420만 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추가로 접대비 1000만 원, 축·조위비 700만 원, 도서 및 정보통신비 500만 원을 비롯해 교회가 제공한 차량인 그랜저XG와 기름 값, 30평 아파트와 각종 공과금 등을 모두 합치면 담임목사에게 준 비용은 거의 2억 원가량 됩니다.
1200명 정도의 교인이 출석하는 이 교회의 총예산 10억 원 5000만 원 중 약 20%를 매년 담임목사가 혼자 가져가고 있습니다. 이 교회보다 규모가 크게 작은 교회로 가면 그 비율은 50% 이상을 넘어서 더욱 심각해집니다. 그래서 목사가 교회를 섬기는 것인지, 교회가 목사를 섬기고 있는 것인지 가히 헷갈릴 정도가 됩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다소 있겠지만, 이런 회계 분산 처리 방법은 여타 다른 교회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공개된 연봉과 실제 수령하는 연봉은 30~50%까지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교회가 소위 말하는 장부 처리상의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부끄러운 수법이 이미 너무 오랫동안 폭 넓게 관습화하고 정례화 하여 장로나 집사 등 다른 직분자들 누구도 강하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40년 전에도 그런 꼼수 예산 결산서를 보았습니다. 한국교회가 일제강점기 이후 영리한 교권주의자들에 의해 얼마나 꾸준히 오염되어 왔는지를 잘 보여 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귀족 목회자들은 겉으로 경건한 척 돈 문제에 초연한 듯하지만, 사실 목사 연봉 공개 문제는 이들이 매우 두려워하는 아킬레스건입니다. 돈은 많이 챙기고 싶은데 이왕이면 표 나지 않게 가져가기를 원합니다. 왜 연봉 총액을 이처럼 숨기려 할까요. 자신들도 교회 돈을 너무 많이 가져가는 것이 매우 염치가 없는 행동임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참목사와 거짓 목사는 돈 문제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최근 교회 공금 횡령이나 오용으로 평생의 목회 경력을 먹칠하고 있는 유명 목사님들을 많이 보실 것입니다. 이들에게 사실 돈 문제만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동안 언론에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조금만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들의 무속적 기복 설교나 언행 그리고 사역 전체가 위선적 기만으로 가득함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교회 몸집을 열심히 부풀리는 이유는 결국은 돈을 많이 가져가거나 교회를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서입니다.

개선이 절실한 부교역자 제도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부교역자 처우입니다. 전술한 교회의 부교역자인 교육목사는 연봉이 1320만 원, 교육전도사는 840만 원, 운전사는 1780만 원, 청소원 1000만 원 정도의 연봉을 받고 있었습니다. 어림잡아 담임목사와 약 15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이런 결과는 불필요한 권위주의와 설교 만능주의 덕분입니다. 이게 무슨 중세 시대의 영주와 농노 관계도 아니고 도대체 말이 안 됩니다. 역으로 말하자면, 같은 조건에서 담임목사 한 명을 해고하면 부목사급 교역자 15명 정도를 거뜬히 고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심한 양극화를 보며 필자 같으면 차라리 그리하고 싶습니다. 주일예배 설교자로서 부목사의 역량이 부족할 거라는 궁색한 변명은 아예 하지 마십시오. 초대교회에 무슨 정교역자 부교역자가 따로 있었던가요. 우리 주변에 신실하고 유능한 부목사님들 아주 많습니다. 그 교회 정도의 크기라면 담임목사직을 과감히 폐지하고 그냥 시무 목사 3~5명 정도를 추가로 청빙하여 매년 각 예배 별로 주임 설교자를 임명하고 공동 목회로 사역하면, 고용을 늘려 미자립 교회 문제를 해소하고 부교역자 처우도 개선하고 과도한 인건비를 줄여 다른 선교나 구제에 더욱 힘을 쓸 수 있습니다.
교회는 모든 사역자들이 대등하게 동역하는 곳입니다. 담임목사가 홀로 독주하며 나머지 부교역자들이 부하 직원이 되는 '기업형 목회'는 결코 좋은 목회가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공동목회의 경우 교회 부패나 목회 독재를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음은 물론, 교인들도 다양한 설교를 듣고 더욱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고 교회 각 교육 기관이나 봉사 모임도 더욱 전문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사역자가 굳이 담임 목회를 하겠다고 서로 몸부림치지 않아도 됩니다.
당회장은 당회원들이 임기에 따라 교대로 봉사하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미자립 교회나 작은 교회는 현실적인 여건에 따라 담임 목회제를, 중대형 교회는 공동 목회제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비록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한국교회는 목회자의 돈 문제를 엄격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문제의 대부분은 담임목사직과 관련되어 있고, 아무나 쉽게 목사가 되려 하는 이유에는 장년 교인 80명만 모아도 큰 고생 없이 어느 정도 먹고 살 수 있다는 퇴폐적 목회 풍토가 만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다소 체면을 몰수하고 세습까지 감행하면 가족 기업처럼 대대로 고상한 생업을 보장해 줍니다. 그러니 이 문제는 결코 가벼운 내용이 아니라 교회의 바른 갱신에 관련된 핵심 사항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필자 역시 목사가 꼭 가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가난한 것을 막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목사가 중산층 이상으로 부유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상적인 목회를 하자면 목사는 부유해질 틈이 없습니다. 주변에 널리고 널린 게 가난한 이웃이고, 또한 가까운 동료 선교사나 미자립 교회 목회자들을 보며 어찌 돕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제 아무리 경건한 척 무게를 잡아도 교회 돈으로 치부하는 목사는 바른 목사가 아닐 것입니다. 배부른 종교 지도자가 사역하는 교회는 반드시 부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시대, 말라기 시대, 바리새인 시대, 중세 교회, 그리고 오늘날 한국과 미국의 일부 중대형 교회들이 그런 사실을 명백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여튼 연봉의 크기 자체는 개 교회가 알아서 신중하게 결정할 사항입니다. 하지만 어느 경우이든 회계 처리에서 편법을 쓰며 연봉을 분산하여 숨기지 말고 그 총액을 정확히 공개하고 해마다 공동의회의 엄정한 심판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에는 가족들의 생계마저 보장되지 않는 적은 연봉에도 묵묵히 교회를 섬기시는 성실한 목회자가 많습니다. 그런 반면에 교인들 몰래 과도한 고액 연봉을 받으며 숨기고 가리기에 급급한 목사들은 누구일까요. 우선 자신의 교회부터 냉정하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종이면 종답게 살아야

한국교회는 더 이상 '주의 종'이라는 분들이 교회 돈을 가지고 다른 생각을 못 하게 해야 합니다. 종이면 종답게 살아야 옳지요. 누가 억지로 종이 되라고 시켰던가요. 종처럼 살기 싫으면 취업을 하든 그냥 돈벌이 사업을 할 것이지 왜 엉뚱하게 거룩한 교회에 와서 신도들이 땀과 눈물로 바친 돈을 탐합니까. 소위 소명을 받았으니 긴 옷을 입고 종이라 주장하며 뒤로는 왕이나 귀족처럼 살려고 하는 자들은 모두 다 거짓 목사들입니다.
어느 날 토마스 아퀴나스가 교황을 찾아갔습니다. 교황은 아퀴나스에게 "이제 교회는 금과 은이 풍성하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러자 아퀴나스는 그러면 이제 "교회는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일어나 걸으라는 능력은 나타낼 수 없습니다"고 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한국의 중대형 교회들도 그런 중세 교회를 따라 영적 능력을 상실하고 돈과 건물만 과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초대교회처럼 교회는 스스로 주머니를 비워야 하고 아울러 목회자는 검소해야 합니다. 돈으로 하나님 사업을 하고 건물로 목회하겠다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합니다. 한국교회에 돈이 없어 성장이 멈추었을까요. 대형 교회들이 아무리 돈으로 외형을 키웠어도 그것은 단지 주변의 작은 교회들을 도살하며 교인들의 수평 이동만 부추겼지 결코 한국교회 전체의 성장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진정으로 건강한 성장을 원한다면, 이미 도를 넘어선 건물 확장과 목사 숭배를 멈추고 매년 바닥이 날 정도로 장부를 털어서 구제와 선교에 힘써야 옳습니다.
오늘날 현대 목회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점 중에 하나는 목사가 되어서도 자기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살려는 데에 있습니다. 목사는 이 시대의 영적 파수꾼이며 스스로 종의 길을 서원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종은 자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떤 종들은 너무 방자합니다. 종이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갖고 싶은 것 다 갖고, 그리고 즐기고 싶은 것 다 즐기려 합니다. 그렇다면 그게 상전이지 종입니까. 주의 일도 많이 하고 동시에 자신의 자유와 안락도 적당히 누릴 수 있다는 타협적 사고방식은 적어도 소명을 받은 목회자에게는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직분이 저절로 사람을 거룩하게 하거나 능력 있게 만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거룩한 직분을 맡았으면 적어도 일반인보다는 자신에게 더욱 엄격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신도들에게는 돈을 사랑한다고 엄히 꾸짖고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호통 치면서, 정작 자신들은 온갖 핑계와 명분을 만들어 그 돈을 더욱 챙겨 가는 이런 가증된 행태를 어찌 설명해야 할까요. 게다가 성추행이나 세습이나 논문 표절이라니요. 과연 요즘 순교적 각오로 치열하고 경건한 삶의 예배를 드리는 구도적 목회자를 얼마나 보십니까.
목사가 연봉을 숨기는 행위는 단순히 돈을 숨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탐욕을 숨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지자 이사야는 그런 탐욕스런 목자들을 서슴지 않고 '개'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충성된 파수꾼이 절실한 이 비상한 시대에 한국의 개혁교회는 제대로 짖지 못하는 저런 벙어리 개 같은 목동들에게 더는 속지 말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제자의 길을 겸손히 가야 할 것입니다.
샬롬!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마시자 내일도 오늘 같이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사 56:10~12)."

신성남 (freesurfer)  

2013년 2월 10일 일요일

목사들에게 박사 학위가 왜 필요할까?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3-02-09일자 기사 '목사들에게 박사 학위가 왜 필요할까?'를 퍼왔습니다.
담임목사 청빙 때 '필수 스펙'이 돼버린 학위

 
▲ '사랑의교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오정현 담임목사 소개글. 사랑의교회 당회 조사위원회는 1월 31일 "오 목사의 박사 학위 논문 표절 증거를 확인했다"는 내용의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 사랑의교회

서울 강남 대형교회인 사랑의교회 오정현 담임목사의 박사학위 논문이 표절이라는 교회 내부 조사보고서가 세간에 알려지면서, 개신교 내에서도 '논문표절'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논문표절과 관련이 있는 '박사학위'는 한국교회에서 목사들 스펙에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형교회는 물론이고, 중형교회만 되어도 '박사학위'가 없으면 담임목사를 청빙할 때, 명함조차도 내밀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국교회의 청빙 절차가 문제다

'청빙'이란, 말 그대로 '청하여 모셔온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본래 목회자의 청빙은 개교회(기독교에서 공동체가 되는 교파에 속해 있는 개별적 교회당을 이르는 말)를 이끌어가기에 적합한 목사를 모셔오는 의미였다. 그러나 목사청빙은 개교회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교회가 속해있는 노회에서 결정이 된다. 

본래의 청빙절차는 노회에 속한 교회에 담임목사가 필요하면, 개교회가 노회에 요청하고, 노회의 임원 혹은 원로가 그 교회에 적합하다 판단되는 목사를 추천하여 소개하고, 교회가 노회의 지도를 따라 담임목사를 청빙하였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교계 정치의 힘이 작용하면서, 힘있는 목사들이 자기 식구를 심기 시작했다. 

나름 그런 힘을 가진 목사들에게 청빙을 원하는 목사들이 줄을 서고, 그런 가운데 개교회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들이 청빙되어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으며, 중대형교회에 많은 후배 목사들을 심어놓은(?) 목사는 교계에서도 그 힘을 이용하여 교계 정치를 쥐락펴락하는 힘을 갖게 되었다.

이런 문제들이 생기자, 점차로 개교회중심으로 '청빙위원회'가 꾸려지고, 개교회에서 청빙을 하면, 노회에서 허락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개교회는 청빙절차를 공고하고 후보자들의 지원을 받는다. 교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후보자들의 이력서를 보고 몇몇 후보자를 정하고, 설교를 들어보고 교인들의 총회인 공동의회를 통해서 담임목사 청빙을 결정한다, 그 이후, 노회의 허락은 거반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그러나 여전히 청빙절차에서 대형교회 목사 혹은 교계에서 나름 역할을 하는 명망있는 목사들의 힘이 작용하고, 지원서를 낸 후보자들은 그들의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교단마다 다르긴 하지만, 도시지역에서 자립구조를 갖춘 교회가 담임목사를 청빙하는 경우 최소한 30명 이상의 목사들이 지원한다. 세세한 문제들은 뒤로하고라도, 지원서에 포함된 이력사항에 '박사학위'는 가히 매력적이다. 교인들도, 기왕이면 '박사학위'를 가진 목사를 원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청빙'이라고 하지만, 거반 '채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현실이다. 부끄러운 한국교회의 자화상이다. 

교회의 욕심과 개인의 욕심이 합쳐진 결과 '박사학위'

현재 대부분 교단에서는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목사안수를 받는 기준이 있다. 대체로 신학교 졸업 후, 최소 대학원(석사) 과정을 마쳐야 목사고시에 응시할 수 있으며, 목사고시를 통과한 후에도 인턴과정 등을 거쳐 목사안수를 받는다. 남자의 경우, 군입대기간을 제하더라도 최소한 대학 4년, 대학원 2년, 인턴과정 2년 등 8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필자의 경우, 신학교에 입학한 후, 목사안수를 받기까지 11년이 걸렸다.

그러나 이렇게 목사안수를 받았다고 바로 담임목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더욱 도시에 있는 자립교회의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으려면 부목사로서 스펙을 쌓아야 한다. 그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이럴 때에는 될 수 있으면 교계의 명망있는 목사가 담임하고 있는 교회이거나 대형교회에서 부목사직을 감당하는 것이 좋다. 거기에 '박사학위'라는 것이 더해지고, 명망있는 목사가 지원해주고, 대형교회에서 목회했었다는 경력이 덧붙여지면 거의 완벽한 스펙이 되는 것이다. 교회는 이런 목사를 원하고, 목사들은 그에 맞춰 스펙을 준비해온 것이다.

목회자로서의 자질을 검증하는 시스템이 없어서는 안 되겠지만, 속된 말로 대기업에 입사하는 과정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진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목사에 대한 평가도 교회가 얼마나 외적으로 성장했는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교인수와 헌금액수에 따라 목사의 능력이 평가된다. 목회자 간의 사례비는 교회의 크기에 따라 비례한다. 

작은 교회나 농어촌교회의 목회자가 한달 사례비로는 생활할 수 없어 '투잡'을 하는 예도 있지만, 대형교회 목사는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사례비를 받는 일도 있다. 결국, 이런 구조들이 얽히면서, 교회의 욕심과 개인의 욕심이 잘 맞아떨어진 결과로서 박사학위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으며, 가짜 박사학위가 판을 치고, 논문표절이 판을 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한국교회 안에 존재하는 세상보다 더한 어둠

목사는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순결한 사람이어야 한다. 추상적이지만,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 앞에서 순결한 사람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 시대에 선포하며,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주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는 일을 감당하는 일을 맡은 사람이다. 이 일을 함에서 '박사학위'가 있어서 문제될 것은 없지만, 그것이 하나의 치장이 되고 수단이 된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박사학위'를 받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합리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도 박사학위를 받고 싶다. 그러나 학위를 위한 것이나 스펙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싶기도 했기에 학위를 위한 공부의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솔직하게, 지금은 후회가 든다. 작금의 교회현실 속에서 박사학위가 있었더라면 훨씬 세상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었을 터이니까.

그러나 목사는, 박사학위의 여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순결하며, 지금 이 시대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전할 것이며, 세속적인 유혹에도 자신의 직을 정직하게 감당할 수 있느냐가 문제이다. 구약의 수많은 예언자와 예수의 복음을 전한 이들 중에는 학식이 뛰어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시대를 읽어내는 눈과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자신들의 목숨을 내어놓고 직언하는 이들이 존재했기에 인간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은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어둠 속에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따라가기에 바쁘고, 안으로 들어가 보면 세상보다 더 어두운 어둠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예언자로서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교인들의 비위를 맞추거나 세상권력의 비위를 맞추는 그런 죽은 설교가 만연하는 까닭이다. 예언자의 목소리가 사라진 까닭이다.

박사학위 논문표절, 그것이 교회 목사들의 문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교회 안에도 만연하다는 사실, 교회도 박사학위가 없는 목사는 청빙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선 생각해봐야 한다. 판단의 기준이 신앙적이지 않고, 세상적이라는 데 이러한 비극들의 씨앗이 숨겨진 것은 아닐까? 여전히 의문이다. 왜 목사들에게 박사학위가 필요할까? 그리고 왜 박사학위가 없으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이 사회와 교회는 박사학위에 버금가는 삶의 경험이나 지혜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러니까, 너도나도 박사학위를 받으려고 하지. 

김민수(dach)

2013년 2월 8일 금요일

"오정현 목사 사임 건 엄정하게 논의하라"


이글은 뉴스앤조이(NEWSNJOY) 2013-02-07일자 기사 '"오정현 목사 사임 건 엄정하게 논의하라"'를 퍼왔습니다.
기윤실 성명, 오정현 목사 논문 표절 연루에 "통탄"…정관에 따라 이사직 처리하기로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박은조·백종국·전재중·임성빈 공동대표)이 2월 7일 성명을 내고 오정현 목사(사랑의교회) 논문 표절에 관한 견해를 밝혔다. 기윤실은 기윤실에서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오정현 목사가 표절 사건에 연루된 점을 사과하고, 오 목사의 이사직을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윤실은 오정현 목사가 논문을 표절한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백종국 교수(경상대)는 "기윤실이 그동안 정직한 그리스도인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강조했는데, 기윤실 임원이 여기 연루되어 안타깝다. (오정현 목사 본인도)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리 운동을 펼친 단체로서 소속 임원이 비도덕적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이번 성명은 여느 성명과 달리 홍정길 이사장 이름까지 표시되어 있다. 임원의 거취 문제를 다룬 만큼 이사회 전체가 성명 내용을 검토하고 동의해서 발표했다. 인사 처리는 이사회와 오는 3월 4일 열리는 총회를 거쳐야 확정되지만 사실상 절차만 남았다고 볼 수 있다.
기윤실은 사랑의교회도 오정현 목사의 사임 문제를 엄정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했다. 이번 사건이 한국교회와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고, 사랑의교회의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기윤실은 사랑의교회가 당장은 고난과 아픔을 겪더라도 온전한 회복을 할 수 있는 결정을 하길 기원했다.

아래는 성명서 전문이다.

오정현 목사의 박사 학위 논문 표절 문제에 대한 기윤실 입장
(사)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은 오정현 목사의 박사 학위 논문 표절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힙니다.
1. 사랑의교회 당회에서 구성한 '오정현 담임목사의 박사 학위 논문 의혹 관련 당회 조사 위원회'의 조사 보고서와 관련된 보도 내용을 종합하여 보면 논문의 표절 혐의는 더 이상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오정현 목사가 이사로 활동해 온 기윤실은 본 단체의 임원이 논문 표절에 연루된 사건을 접하면서 깊은 통탄과 함께 기독교 윤리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 온 단체로서 송구하고,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2. 이에 기윤실은 정관에 따라 오정현 목사의 이사직에 대한 처리를 이사회와 총회를 통해 공명정대하게 밟을 것이며, 향후 임원을 선출하는 데 있어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도록 하겠습니다.
3. 이번 사건은 이미 교계는 물론 일반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고, 한국교회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교계와 사회에서는 한국교회를 대표해 온 사랑의교회가 이번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한국교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다음 세대의 지도자로 인정받았던 오정현 목사의 행위는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렇게 때문에 더욱 오정현 목사와 사랑의교회를 위하여 고언을 드립니다. 사랑의교회 당회는 조사 위원회의 보고서에 기초하여 오정현 담임목사의 사임 건을 엄정하게 논의하실 것을 요청 드립니다. 지금은 고난과 아픔을 겪겠지만 온전한 회복을 통하여 사랑의교회가 한국교회를 섬길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주어지도록 거룩한 결단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4. 아울러, 한국교회에도 호소합니다. 비단 이 문제는 사랑의교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번 사건은 목회자 청빙 시에 박사 학위를 요구하는 등 한국 교회 내에 만연한 학력 인플레이션 풍조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데, 이는 교회가 세상과 구별됨을 포기하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저희 기윤실은 이 부분에서도 하나님과 사회에 용서를 구하는 죄인의 마음으로 먼저 회개하고, 개선하여 나가는 운동을 펼쳐 나가겠습니다.

2013년 2월 7일(목)
(사)기독교윤리실천운동
이사장 홍정길
공동대표 박은조 백종국 전재중 임성빈

김은실 (raindrops89)

2013년 1월 15일 화요일

세금 내는 목사는 '삯꾼' 목사다?


이글은 뉴스앤조이(NEWSNJOY) 2013-0114일자 기사 '세금 내는 목사는 '삯꾼' 목사다?'를 퍼왔습니다.
목회자 역할 결정하는 것은 소득 명칭 아닌 소명 따라 사는 삶

"사람들이 선호하고 취업하기 좋다는 학과에 진학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였지만, 쳇바퀴 같이 돌아가는 직장 생활이 지겨워집니다. 마음 같아서는 금방 사직서를 제출하고 보람 있는 일을 찾고 싶지만, 가족들의 생활비를 생각하다 보니 사직서를 생각하기는커녕 생활비 목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의 눈치만 보게 되고, 학창 시절에 가졌던 꿈은 어디 갔는지 찾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어찌해야 하나요?"
위와 같은 상담을 받으면 "우리가 하는 일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를 이 땅에서 실현하는 과정이고, 우리의 일용할 양식(생활비)은 회사의 사장(고용주)이 주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손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것입니다.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형식이 아니라 본질적인 부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라고 일반적으로 대답한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역할은 그것이 직장인 또는 사업자와 같이 돈을 벌든 아니면 가정주부와 같이 돈을 벌지 않든 모든 역할은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사용하여 하나님이 다스리라고 맡겨 주신 이 땅을 관리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직업과 역할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과정으로서 성스러운 것이다. 일의 결과로 얻게 되는 소출은 수고하며 경작한 땅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각자의 필요에 따라 허락하시는 공급이다.
새해 들어 정부가 종교인 과세 개정안(입법 예고)을 예고하면서 목회자 납세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목회자들은 돈 때문에 사역하는 것이 아니고 삯꾼 목자도 아닌데, '근로'소득세를 납부함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에 상처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삯꾼 목자가 비난받은 것은 삯을 받기 때문이 아니라 어려움이 닥칠 때 목자의 본분인 양을 돌보지 않고 달아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할 기준은 삯 여부 보다 주신 달란트의 소명을 지키느냐, 아니면 소명을 버리고 달아나느냐의 차이이다. 주신 달란트의 소명에 대한 고민에는 목회자, 평신도를 구별하는 의미가 없다.
만약 목회자만 삯을 목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사례비 등이 소득이 아니라고 하면, 근로소득이든 사업소득이든 소득을 수령하는 일반 직업인은 삯꾼이 되어 버린다. 목회자들이 교회 강대상에서 교인들에게 맘몬을 섬기지 말고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라고 선포하였지만, 일반 성도들이 세상에서 돈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삯꾼으로 치부되는 상황에 대해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관점이 더 심각한 문제이다.
목회자의 사례비·생활비 등은 교회가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므로 이 땅에 세금을 낼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세상의 주관자로서 사람의 손길을 통하여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생산하는 소출, 우리가 벌어들이는 소득은 표면적으로는 자연과 사람으로부터 얻는 것이지만 그들을 통하여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나가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식하지 못하는 오류이다. 레위 지파에게 십일조를 나누도록 한 것은 열두 지파 중 분깃이 없었기 때문이고, 다른 지파들의 소득으로 레위 지파에게 배분 되었지만 다른 지파들은 공급의 주체가 아니라 '배분의 통로'였다.
목회자만 하나님으로부터 생활의 필요를 충족하고 다른 평신도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생활의 필요를 충족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선 모두가 자연 또는 다른 사람을 통하여 소출과 소득을 수령하지만 공급자는 하나님이시다.
많이 가지고, 많이 버는 사람들로부터 일정 금액을 징수하여 소득이 적은 사람들의 복지를 위하여 사용하자는 관점에서 세금은 '여유로움으로 저희의 부족함을 보충'하는 연보의 취지(고후 8:14)와도 상통한다. 따라서 부과되는 의무이기에 부담하는 세금으로서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공동체내 연약한 지체들을 돕는 능동적 실천 과정으로서 세금에 대한 인식을 전환할 때 그리스도의 사랑이 세상에서 향기를 발하게 된다.

최호윤 / 회계사

2013년 1월 9일 수요일

목사님도 세금 내라, 밀어 붙일 수 있을까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1-09일자 기사 '목사님도 세금 내라, 밀어 붙일 수 있을까'를 퍼왔습니다.
[이슈 브리핑] 헌금만 연간 6조원, 종교인 세금 안 내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

1. 날이 추워서 그런지 뽁뽁이 주문이 폭주한다고요?
= 다시 한파가 시작됐습니다. 오늘 아침 서울 영하 9도입니다. 뽁뽁이, 상품 포장할 때 쓰는 에어캡이라고 하죠. 올 겨울 들어 판매량이 5배 급증했다고 합니다. 요즘 보온재로 찾는 사람들이 많아 24시간 풀가동해도 주문량의 절반도 못 채운다고 하는데요. 별도의 시공 없이 물만 뿌리고 창문에 붙이면 되는 간편한 설치 방법도 인기 요인입니다. 에어캡 단열시트를 창문에 붙이는 것만으로 실내온도를 최고 4도까지 높이고 난방비를 최대 30%까지 절약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업계 전체로는 올겨울에만 1만km의 에어캡이 팔려나간 것으로 추산되는데, 서울과 부산을 10번 왕복하고도 남는 길이죠. 이 때문에 정작 에어캡을 많이 쓰는 포장업체와 유통업체들이 울상이라고 합니다. 에어캡 대신 골판지를 끼워넣고 있다고 하는데 비용도 많이 들고 손이 많이 간다고 하죠.

1-1. 지난달 자동차 보험 손해율이 급증했다던데, 이상한파와 폭설과 관련이 있겠죠?
= 12월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100%를 돌파했습니다. 손해율이라는 건 받는 보험료 대비 나가는 사고 보상금액의 비율입니다. 원래 12월에 사고가 많기는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최고치인데요. 보험사들은 벌써부터 보험료를 올려야 된다며 바람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삼성화재의 작년 12월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107%(잠정치)로 한 달 전보다 26.1%포인트나 올랐습니다. 온라인 보험사들은 평균 110% 안팎, 일부 중소형 보험사의 손해율은 최고 130%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손실을 면할 수 있는 적정 손해율은 국제회계기준(IFRS)으로 77%인데요. 지난달 긴급출동 건수가 252만여건, 60%나 늘어났다고 하죠.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최소 6개월 이상 추세를 지켜봐야 보험료 인상이 필요한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며 “보험사들의 자구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 종교인 과세가 이슈네요. 이제 스님과 목사님들도 세금을 내게 되는 건가요.
=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게 과세 원칙인데. 우리나라 종교인은 36만5000명 안팎, 헌금 규모는 연 6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세금을 부과해서 늘어날 세수는 100억원 정도로, 1000억원까지 보기도 하는데, 많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일부 대형 교회를 제외하고 목사의 80% 정도가 세금을 낼 정도의 소득이 안 된다는 분석도 있고요. (전국 6만여 곳의 교회 가운데 70∼80%는 한 해 예산이 3500만원 미만이어서 목회자에게 사례비를 지급할 수 없다는 통계도 있었습니다.) 근로소득세로 할 것인지 다른 어떤 세금으로 할 것인지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2-1. 다른 나라들은 어떤가요.
= 기독교가 국교인 독일은 종교세를 거둬 각 교회에 운영비로 나눠줍니다. 목사는 준공무원 신분으로 월급을 받아 남들과 똑같이 세금(원천징수)을 내고 있습니다. 미국은 자발적 납세를 권유하고 있는데 세금을 안내는 목사도 있지만, 어느 경우든 각 교회는 목사에게 지불한 사례비를 반드시 당국에 보고해야 합니다. 나라마다 다르긴 하지만 종교인이라고 해서 세금을 안 내는 나라는 없습니다. 이번에 기획재정부도 세수 확보 보다는 국민이면 누구나 세금을 내야 한다는 형평성이 법 개정의 초점이라고 합니다. 오래 전부터 제기됐던 이슈인데 박근혜 당선인이 받아들일지 주목됩니다. 국민일보는 “성직자를 근로소득자로 보는 것은 종교인을 폄훼하는 것”이라는 기독교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3. 삼청동 금융연수원 앞에 1인 시위가 넘쳐난다고요?
= 단골 시위 장소로 뜨고 있습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금융연수원 건물을 빌려 쓰고 있죠.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 전환과 해고 노동자 복직, 반값등록금 확대, 그저께는 용산참사 추모위원회 기자회견도 있었고. 철거민 단체 회원들도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게 요즘 청와대 주변에서는 기자회견이나 1인시위가 뚝 끊겼다고 합니다. “권력의 이동에 따라 시위대도 청와대에서 인수위로 타깃을 바꾼 것 아니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금융연수원은 총리 공관과의 거리가 100m 이내이기 때문에 집회나 시위는 불가능하지만 기자회견과 1인 시위는 가능합니다. 그만큼 새 정부에 바라는 바가 많다는 이야기일 텐데 인수위 시절부터 불통 인수위라는 평가가 많아 우려됩니다.

4. 명동에 일본인 관광객이 사라졌다는 보도는 뭔가요.
= 여름만해도 일본인 관광객들이 60~70%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30%로 급감했다고 하죠. 요즘 나가보면 중국인 관광객들이 훨씬 많습니다. 한국일보 보도인데. 지난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의 전격적 독도방문과 일왕 사과 발언, 뒤이은 일본 정부의 사과 없는 강경대응 등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줄어들었다는 분석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엔화 가치가 낮아지면서, 지난 6월 100엔당 1516원에서 어제는 1215원까지 떨어진 상태죠. 한편으로는 명동에 화장품 가게가 너무 많아서 브랜드숍 매장이 80여개나 된다고 하죠. 4년 전에 비해 4배나 늘어나서, 과열 경쟁에 따른 후유증이 크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5.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타진요 사태가 결국 전원 유죄로 끝났네요.
= 대법원이 어제 타진요 카페 회원 김아무개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미국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타블로에 대해 2010년 8월 “타블로는 미국에 간 적이 없다”는 등의 글을 올려 명예를 훼손한 혐의인데요. 지난해 7월 서울중앙지법은 이 가운데 3명에게 “반성의 기미가 없다”며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반성 의사를 보인 김씨 등 6명에 대해서는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이 가운데 3명이 끝까지 반성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고 2명은 현재 수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의혹을 제기할만한 상황이었다며 반발하고 있지만 언론에서는 타진요 사건을 인터넷 여론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사례라며 거세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법원도 “알 권리나 표현의 자유를 현저히 벗어나는 범죄행위”라는 판단입니다.

6. 반값 등록금을 실시한 서울시립대학교, 등록금 대출이 절반 정도 줄었다고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기도 한데요.
=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서울시립대 등록금 대출자 수는 학기당 평균 990명이었는데 지난해에는 평균 473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전체 재학생 수의 11% 수준에서 4% 수준으로 줄어든 겁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후 서울시립대 반값등록금 공약을 이행하면서 나타난 결과입니다. 

7. 박근혜 당선인 반값 등록금 공약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 일반예산 4조원, 교내장학금 2조원, 대학자구노력 1조원을 바탕으로 소득분위별 등록금 차등지급한다는 계획입니다. 2014년부터 소득하위 2분위까지는 무상등록금, 8분위까지는 25~75%까지 장학금을 차등 지급하겠다는 건데요. 아르바이트 등에 시간을 뺏겨 성적이 상대적으로 낮은 저소득층 대학생들이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지적도 있고, 사립대가 등록금을 올리면 정부의 재정 부담은 높아질 거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사립대 적립금 총액이 11조원을 넘어선 가운데 등록금이 최소한 13% 뻥튀기 되어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등록금 상한제를 도입하고 대학에 교부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반값등록금을 실시해야 한다는 대안도 나옵니다.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논란이 여기서도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8. 동네서점을 지원하는 대책이 나온다고요.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정부 지원을 받아 최근 논란이 됐던 서울 홍익문고와 부산 한양서적, 전남 영암서점 등 각 지역 중소 서점 10곳에 800만원씩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저자 강연이나 독서 토론, 시낭송 대회 등을 열어 지역 문화 거점이 되도록 하는 데 쓰일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올해 상반기에 추가로 10곳의 서점을 선정해 예산을 지원할 방침입니다. “인터넷 서점과 대형 서점에 밀려 지역 서점이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있어 중소 서점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지원책을 도입하게 됐다”는 설명입니다.

8-1. 종이책 종말론은 틀렸다, 그런 이야기도 있네요.
= 미국 퓨리서치센터 자료인데요. 지난해 전자책을 읽은 성인의 비율이 16%에서 23%로 늘어났지만 전자책으로만 책을 접한 독자는 30%에 그쳤다고 합니다. 전자책 매출의 3분의 2는 스릴러, 로맨스와 같은 장르소설에 집중돼 있다고 하고요. 미국출판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자책 매출 성장률은 34%, 지난 4년 동안 세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다소 주춤한 추세입니다.

9. 어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조합 최병승씨 소식 전해 드렸는데 법원이 송전철탑 강제집행에 나섰다고요.
= 어제 오후 1시30분께 송전철탑 농성장의 천막 10개 등 노조가 세운 시설물을 철거해야 한다며 강제집행을 시작했습니다. 현수막 10여개를 떼내고 천막까지 철거하려 했으나 조합원들이 막아 중단했고요. 오늘로 농성 85일째. 아직 교섭이 진행중인 상태에서 물러날 수 없다는 입장인데 법원은 15일부터 농성자 2명에게 1인당 매일 30만원씩, 총 60만원의 간접강제금이 부과할 계획입니다.

10. 이정환 기자가 뽑온 오늘의 뉴스는.
= 오늘은 KT 소식이 세 가지 있습니다. 어제 법원이 KT에 직원 퇴출 시나리오가 있다는 사실을 공식 확인했습니다. 청주지법 민사항소1부, 전화개통부서 직원이 낸 부당해고 소송에서 “퇴출 시나리오에 따라 부당해고를 당했다”며 “1천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부진 인력 퇴출 및 관리 방안’에 따라 원고를 부진 인력 관리 대상자로 선정, 지나치게 엄격하게 관리함으로써 조직 내 위계질서 저해 등을 유발했다는 건데요. “KT 본사가 퇴출 프로그램을 주도하지는 않았더라도 묵인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 대목이 눈길을 끕니다.

10-1. 어제 KT가 LG유플러스를 고발한 사건도 있었네요.
= 갑작스런 기자회견까지 열어서 “LG유플러스가 영업정지 중에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가입자를 모집했다”며 방송통신위원회에 엄중 조치를 요청했습니다. 통신 3사가 순차적으로 신규 가입이 금지되는 상황인데요. 7일부터 LG유플러스 차례. KT 주장에 따르면 대리점 직원이 미리 자신이나 지인 이름으로 개통한 스마트폰을 번호이동 신청자에게 제공하거나, 해지 신청이 들어온 계정을 보유하고 있다가 번호이동 가입용으로 활용한다는 겁니다. LG유플러스는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흠집내기”라며 반발하고 있고요. 고자질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인데, 기자들 사이에서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습니다. LG유플러스는 이달 30일까지, KT는 다음달 22일부터 3월13일까지 신규가입과 번호이동 가입이 금지되는데 KT라고 다를까 그런 반응이 나옵니다. 진흙탕 싸움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10-2. 제주 7대 자연경관 전화요금 논란도 계속되고 있어요.
= 며칠 전 감사원 보고서가 공개됐죠. 001로 시작되는 국제전화 투표를 했는데 그게 사실은 국내전화였고 KT가 폭리를 챙겼다는 의혹입니다. KT 는 “속이려고 한 건 아니고 중간에 갑자기 번호를 바꾸면 혼동이 생길까봐 처음 번호를 그대로 유지했던 것 뿐”이라는 건데 전화요금만 수백억원이 나왔죠. KT는 제주도에 41억원을 돌려줬다고 하는데 정확한 이익 규모를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감사원은 “국제전화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국제전화가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는 이상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늘 참여연대 기자회견이 열립니다.

이정환 기자 | black@mediatoday.co.kr  

2012년 10월 3일 수요일

목사가 쪽방 동네 거지 왕초


대형교회의 먹사님들 외제차타고 신도들의 헌금으로 호의호식하는 먹사들은 이분같은 목사님의 모습니 보이냐?
이글은 뉴스엔조이(NEWSNJOY) 2012-09-30일자 기사 '목사가 쪽방 동네 거지 왕초'를 퍼왔습니다.
15년간 도시 빈민 위해 헌신한 김흥용 목사…교회 개척해 사역 계속

▲ 김흥용 목사는 15년간 쪽방 동네 주민들을 돌보며 살았다. 김 목사가 직접 부딪혀 만든 목욕탕과 체력 단련 공간 등은 정부 복지 센터의 모델이 됐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사람 시력을 잃게 하는 전염병이 퍼진 세상을 그리고 있다. 전염병이 휩쓴 도시에는 화장실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배출한 배설물과 치우지 못해 썩어 가는 쓰레기가 도처에 널려 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오물을 온몸에 묻히며 걷고, 거리의 악취를 고스란히 뒤집어쓴다. 등장인물들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몸을 깨끗이 씻을 때, 처음으로 온전한 평화가 깃든다.
몸을 씻고 싶은 마음, 김흥용 목사는 이 욕구가 얼마나 강한지 안다. 10대에 강원도에서 서울로 무작정 왔다가 돈과 머물 곳이 없어 길에서 먹을 것을 구걸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위생과 피부병 등을 이유로 자신과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목욕탕에 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김 목사는 무료 목욕탕을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그래서 1997년 남산 아래 나사로의 집을 세워 경제 약자들을 돌보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욕을 중요하게 여겼고, 2000년에는 무료 목욕탕을 짓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김흥용 목사의 마음가짐은 여느 봉사자들과 다르다. 추상적인 동정심으로 타인을 거드는 게 아니라, 자신의 욕구와 필요를 이해하고 충족하는 데서 빈민들을 바라보고 도왔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목사 안수를 받아 15년간 서울 남산 주변에서 쪽방 동네 주민을 제 식구보다 더 살뜰히 돌볼 수 있었던 힘이다.

홀로 시작한 봉사, 전국 쪽방 동네를 바꾸다

▲ 김 목사는 쪽방 동네 주민들을 직접 씻어 주었다. 2000년부터는 무료 목욕탕을 마련해 쪽방 주민이 와서 씻을 수 있게 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김 목사가 시작한 목욕은 빈민들 삶의 양식을 바꾸었다. 김 목사가 닦아 준 몸, 김 목사가 얻어 준 옷, 김 목사가 다듬어 준 머리칼은 구걸과 이별을 의미했다. 말끔한 사람은 길에서 손을 벌려도 돈을 얻을 수 없었다. 노동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김 목사는 손수레를 한 대 사서 쪽방 동네 사람들과 함께 폐지를 수집했다.
김 목사와 쪽방 동네 사람들이 예전과 다른 삶을 꾸려나가기 시작했을 때, 이들의 생활공간이 잔인하게 운명을 결정하는 현실을 목도해야 했다. 쪽방 동네는 고층 빌딩이 무심히 등지고 있는 서울 용산구와 중구 한 자락에 있다. 도심 속 다닥다닥 붙어있는 0.5평~1평 남짓한 방은 더위에 약하다. 김 목사는 여름마다 더위에 지쳐 숨진 시신을 수습해야 했다.
김 목사는 숨 막히는 더위를 피해 주민이 쉴 곳을 찾았다. 그러다 10여 년 전 서울시 도움으로 60평 규모의 지하 공간을 얻어 용산 푸른 나눔터로 만들었다. 김 목사는 새로 생긴 공간에 운동 기구를 들여 놓아 주민이 무료로 체력을 단련할 수 있게 했다. 한편에는 책과 책상을 두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더위를 피할 수 있으면서 여가 활동도 할 수 있는 장소가 생긴 것이다. 덕분에 올해 열흘간 이어진 기록적인 폭염에도 서울 쪽방촌에서는 사망자가 한 명도 없었다.
김 목사는 맨몸으로 부딪혀 쪽방 동네와 사회가 통하는 길을 내고 닦았다. 김 목사가 만든 나사로의 집은 정부 복지 기관의 모델이 되었다. 지금은 서울에 쪽방 동네를 돕는 복지 시설 7개가 세워졌고, 다른 지역에도 복지 시설이 들어섰다.

▲ 추석을 앞두고 찾은 쪽방 동네에도 명절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용산 푸른 나눔터에서 밑반찬을 만드는 봉사자들이 명절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김 목사를 만나러 용산 푸른 나눔터를 찾은 9월 28일은 밑반찬을 만드는 봉사자들로 북적였다. 매주 금요일은 쪽방 동네 주민에게 주는 음식을 만드는 날이다. 이날은 추석을 앞두고 평소보다 많은 봉사자 20여 명이 찾았다. 봉사자들은 김치를 담그고 전을 부쳤다. 송편도 마련했다. 여기서 준비한 음식은 한 사람 일주일치 반찬이다.
밥은 나눔의 쌀독이 책임진다. 사람들이 나눔의 쌀독에 쌀을 두고 가면 주민이 가져간다. 쌀 한 바가지면 한 사람이 이틀 먹을 분량이 된다. 나눔의 쌀독 역시 전국으로 퍼졌다. 지난 2006년에는 나눔의 쌀독 덕분에 밥을 먹은 주민이 10만 명이 되었다. "제가 근처 호텔에서 먹을 것을 얻어다 나누었던 시절에 비하면 환경이 많이 좋아졌지요." 김 목사의 아이디어와 봉사자들의 도움은 쪽방 동네 먹을거리를 바꾸었다.

혹사로 상한 몸, 그래도 사역을 소망한다

▲ 쪽방 동네 사람들 밥은 나눔의 쌀독이 책임진다. 나눔의 쌀독에 쌀을 두고 가면 쪽방 동네 사람들이 먹을 수 있다. 김 목사가 나눔의 쌀독 옆에서 자세를 취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쪽방 동네 환경은 개선됐지만, 김 목사 건강은 악화됐다.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한 탓이다. 김 목사는 만성 신장염으로 신장을 잘라내는 수술을 해 신장이 전체 1/3만 남았다. 위암으로 위도 떼어냈다. 뇌졸중 병력 때문에 가끔 집을 찾지 못하는 때도 있어 집 주소가 쓰인 명찰을 목에 걸고 다닌다.
74세 작은 노인은 그래도 여전히 '왕초'라 불린다. 바람에 날아갈 듯 여윈 몸이지만, 일할 때만은 장사 같은 힘이 나온다 하여 얻은 별명이다. 그의 일대기를 정리한 책 제목이 (쪽방 동네 거지 왕초)로 결정된 배경이기도 하다.
김 목사는 현재 다른 봉사자들에게 현장을 맡기고 뒤로 물러났다. 대신 조만간에 쪽방 동네서 다시 교회를 열 계획이다. 김 목사가 나사로의집교회를 개척했으나, 그가 아파서 쉬는 동안 쪽방 동네 사역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바람에 교회가 문을 닫은 적이 있다. "용산 복지 센터 3층에 교회를 열려고 합니다." 김 목사 얼굴은 새로운 사역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했다.

김은실 (raindrops89)

2012년 9월 17일 월요일

목사님의 희한한 재주


이글은 시사IN 2012-09-17일자 기사 '목사님의 희한한 재주'를 퍼왔습니다.

“정부가 6개월을 그냥 보내면 10년을 뒤처지게 된다.”9월5일 신성장동력 성과평가 보고대회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이 한 말. 그러니까 지금 이 정부가 6개월을 아홉 번 보냈으니까….



“대선 후보는 고통의 자리다. 쉬운 일이라면 고민조차 하지 않을 것.”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대표가 9월3일 기자회견을 열고대선 출마 의사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해 출마를 시사. 저기 주어가 없어서 그러는데, 이 전 대표님의 고통 말인가요, 유권자의 고통 말인가요?

ⓒ시사IN 양한모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후임자가 되면 서로 시기해서 교회가 편할 수 없다.”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9월1일자 일간지에 실은 광고에서 “목사도 사람이라 잘하는 후임자가 들어오면 시기하고 불편하다. 하지만 아들이 와서 잘하면 흐뭇하다”라고 주장하며 교회 세습을 옹호. 시기하는 한 명만 비켜주면 간단할 일을 참 복잡하게 해결하시네.



“두 사람이 추구하는 것에 차이가 없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경제민주화’를 두고 설전이 오간 9월5일, 박근혜 후보가 한 말. 앞서 두 사람은 “정체불명의 경제민주화”(이한구), “정서상 문제가 있는 사람”(김종인)이라고 주고받았다. 차이가 없는 걸로도 이렇게 싸우는 캠프라면, 차이가 생길 땐 군대라도 부르나.


“물리적 거세, 나중에 판결이 잘못됐다 그러면 호르몬 먹이면 된다.”

성범죄자의 고환을 제거하는 ‘물리적 거세’ 법안을 대표 발의한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이 9월6일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해 한 말. 근대 사법이 청산했다 믿었던 신체형의 부활. 중세에서 갓 건져낸 싱싱한 야만. 


 “나는 대선 후보로, 미셸 오바마와 결혼할 만큼 센스가 훌륭한 남자를 지명하길 원합니다.” 

미국 현지 시각으로 9월5일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한, 미국을 흥분시킨 오바마 지명 연설의 한 대목. 우리 대선만 보면 ‘연설의 시대’가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은 모양.

시사IN 편집국 | webmaster@sisain.co.kr

2012년 8월 19일 일요일

<안철수의 생각>을 읽고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현기자 블로그 휴심정 벗님글방 2012-08-17일자 기사 '(안철수의 생각)을 읽고'를 퍼왔습니다.



(안철수의 생각)을 읽고 무엇보다도 내 맘에 느껴지는 소감은 21세기 정치에 어울리는, 새로운 정치패러다임을 가지고 사회를 리드해갈 수 있는, 모처럼 균형감각을 갖춘 ‘준비된 인물’이 등장하였다는 기쁜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과 경쟁관계에 있는 정당 사람이나 정치하는 사람들이 안철수 교수를 향하여 던지는 비판들 중 ‘경험이 없는’, ‘검증되지 않는’, ‘ 현실정치에 초보입문자’,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 ‘조직된 정당배경 없는 무임승차 기회주의자’ 등등 입맛대로 비판적 평가를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의 진지하지도 않고 시대착오적인 제3류 정치평에 대하여 도리어 연민을 느낀다.

무엇보다도 안철수 교수는 그가 전공한 공부영역과 독서분야가 의학, 현대물리학, 경영학이라는 점이 내 맘에 깊은 관심을 가져다준다. 그는 서울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 공대에서 공학석사 학위를, 그리고 미국 와튼 스쿨에서 경영학석사학위(MBA)를 받았다. 가방끈이 길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시대에 지도자로서 일할 사람이 반드시 갖추었으면 좋을 폭넓은 학식과 훈련을 갖춘 사람이라는 말이다. 의사로서 그는 사람 생명을 비롯하여 소위 생명계(Biosphere)의 메카니즘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는 서울대 핵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서 일하는 것이 시사하듯이 ‘과학’이 무엇인지를 깊이 이해한다. 그리고 안철수연구소를 창립하여 기업이 무엇이며, 현대사회의 경제구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론과 실재에서 두루 경험을 쌓았다. 현대 신문에 거론되는 주목받는 대선후보자들 박근혜,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 이상 4분이 그 나름대로 훌륭한 능력이 있겠지만, 안철수 교수는 흔하지 않게 ‘준비된 인물’이라고 생각된다.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험악하고 복잡다단한 현실정치의 실전경험이 부족한 사람 아니냐는 것이다. 일면 타당한 염려일 것이다. 그러나, 큰 정치가에게 현실정치의 실전경험이란 그렇게 중요한 결격사유가 되지 않는다. 세계사에서 훌륭한 정치적 공헌을 한사람들 중에는 현실정치판의 실전경험을 겪지 않고서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 정책으로써 역경에 처했던 사회와 문명을 건져낸 경우가 많이 있다. 공자가 ‘군자불기’(君子不器)란 말도 그런 뜻이다. 혹시 현실정치의 실전경험이라는 말 속에 지금까지 정치계의 상징처럼 당파정쟁, 계파협상, 정경유착, 관료주의, 이념적 흑백논쟁의 진흙탕 싸움경험이 없다는 의미라면 그런 염려는 타당성이 없다. 많은 국민이 안철수를 기대하는 것은 바로 지난세대의 그런 정치문화에 충분히 식상했고 희생당했기에 이제는 그런 정치행태의 청산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내가 (안철수의 생각)을 읽고 깊은 관심을 갖게된 둘째 이유는 그가 제시한 그의 큰 생각의 틀의 방향이 옳고 건전하기 때문이다. 안철수가 제시한 큰 정치의 세 가지 화두는 복지국가, 정의로운 국가, 그리고 평화통일 이다. 안철수 교수만이 아니라, 오늘 차기 대통령후보로 나서서 뛰고 있는 앞서 거론한 유능한 분들이 모두 용어상으로 보면 대동소이한 주제를 내걸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좀더 깊이 들어가 보면 많은 차이가 있다.

안철수재단의 ‘재산환원’에 즈음하여 그가 연구소 동료들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 중에는 매우 중요한 그의 심장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첫째는 자신이 이룬 놀라운 업적이 자기 자신 혼자만의 재능이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깊은 인식과 그러므로 자신의 기업자산이 자기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둘째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의 핵심 중 하나는 가치의 혼란과 자원의 편중된 배분이며, 그 근본에는 교육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현실진단이다.

복지국가와 정의로운 국가를 실현시키는 과제로서 제일 중요한 문제가 경제의 민주화로 진단하고, 경제민주화의 처방을 어려운 경제이론으로서가 아니라 “소수가 특권을 가지고 시장을 독점하고 좌우하는게 아니라 국민들 누구나 경제주체로서 공정한 기회를 보장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야말로 상식의 정치다. 복지와 정의라는 큰 시대의 화두와 나란히 가는 또 하나의 큰 화두가 우리시대에 평화임을 양심있는 이 나라 사람이라면 다 느끼고 있다. 동족끼리 휴전기간을 60년이나 지속시키면서, 양측이 막대한 군사비를 들여가면서 서로 총구를 겨누고 있는 이런 상황은 아무리 현실론자들이 애국과 이념을 가지고 변명할지라도 ‘정상적 인간사회’모습이 아니다. 부끄럽고 어리석고 죄짓는 짓이다. 그런데, 안철수교수는 “통일은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다”라는 명제를 내걸고 현실적으로 남북이 대화, 교류, 상생,통일로 가는 기본 정치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이 말이 새로운 남북관계를 열어갈수 있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내가 (안철수의 생각)을 읽고 느낀 감동은 그의 근본적인 인생관이다. 나의 직업이 신학교수였고 목사였고 종교계에서 일생동안 일 해왔기 때문에, 그의 인생가치관과 특히 종교관에도 관심이 없을 수 없었다. 그는 자기 부인은 가톨릭신자이지만, 자신은 특정종교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넓게 말하면 ‘현실적 휴머니스트’라고 느껴졌다. ‘현실적’이라함은 인간을 관념적으로 보지 않고 현실적으로 본다는 말인데, 인간이 한없이 야비한 욕심과 권력에 중독된 악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선한 의도를 가지고 인간의 유한성과 한계성을 가지고서 최선을 다해 아름답게 삶을 살고 가는 사람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특정종교에 기울어지지 않는 열려진 태도가 도리어 맘에 들었다. 다만 그는 자기 이름 석자를 길이길이 기억시키고 남기려는 생각은 없고, 지극히 작지만 “좋은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는 말 속에서 적어도 자아집착적인 권력의지나 독선적 독단주의를 거절하는 성숙한 휴머니스트를 본다. 자기종교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 자기이름을 영원히 남기려는 성직자들이 득실거리는 한국교계에서 안철수가 목사인 필자보다 그의 인생관에 투철함으로써 ‘맘을 비운 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대선후보자로서 행보가 어떻게 결판날지는 나는 모른다. 민주당의 훌륭한 후보자들이 최선의 경쟁을 통해 단일후보가 결정되고, 어떤 형태와 과정을 거쳐서든지 정당을 배경으로 하지 않지만 나라를 새롭게 해보려는 재야에서 ‘준비된 사람’이 공식적으로 태도를 천명한다면, 공정한 절차와 민심의 참 소리에 순명하여 국민의 ‘야권후보의 단일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야권의 기대를 받고 있는 김두관, 손학규, 문재인, 안철수 네 분 중에서 어떤 단일후보가 최종적으로 결정되던지 간에, 그들이 진정 맘을 비우고 역사와 하늘의 소명에 순명하겠다는 마음만 가진다면 2013년 한국정치계의 정권교체는 이루어 질것으로 믿는다. 그들의 선전에 격려를 보낸다.

김경재
-한 신학자가 말하는 안철수([에큐메니안], 2012.7.28)

2012년 7월 1일 일요일

교회개혁연대, 전병욱 목회 안돼


이글은 한겨레신문 종교전문 조현기자의 블로그 조현글방 휴심정 2012-06-30일자 기사 '교회개혁연대, 전병욱 목회 안돼'를 퍼왔습니다.

 사진 '전병욱 목사 중보 기도 모임' 블로그 영상 갈무리

교회개혁실천연대가 성스캔들로 삼일교회 담임직에서 사퇴한 전병욱 목사가 홍대새교회를 개척하려는 것과 관련해 29일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교회개혁실천연대는 “삼일교회 당회실에서 여성 교인을 성추행하고 구강성교를 하고 이 외에도 장기간에 걸쳐 다수의 자매가 성피해를 당한 제보가 접수되었다”면서 “전 목사는 목사로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으므로 목회를 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교회개혁실천연대는 홍대새교회에 대해 “전병욱 목사 청빙을 포기하라”고 권고하고, 전 목사가 속한 예장합동 평양노회에 대해선 전 목사를 면직시킬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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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교회개혁실천대의 성명 내용이다.

 전병욱 목사와 홍대새교회에게 권고합니다.

전병욱 목사는 홍대새교회 개척을, 홍대새교회는 전병욱 목사 청빙을 포기하기 바랍니다.

전병욱 목사는 2009년 11월 경 당시 담임하던 삼일교회 당회실에서 여성 교인을 성추행 했습니다. 진상 파악을 위해, 2012년 4월 9일 삼일교회 당회의 공식 발표 내용 일부를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 내용은 당회장실에서 피해자를 호출하여 옷을 벗은 후 구강성교를 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장로들은 2010년 12월 초 자매를 만나 증언을 들었습니다. 이 외에도 장기간에 걸쳐서 다수의 자매가 성피해를 당했다는 제보가 접수되었지만, 이것을 다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를 통해 당시 전 목사는 목사로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최근 전병욱 목사는 오는 8월 15일 홍대새교회를 개척하고 목회에 복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본 단체는 전 목사가 회개와 치료를 통해 목사직을 다시 수행할 만한 자격을 회복했는지 확인하고자 면담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이에 본 단체는 정황 증거들로 판단할 때, 전 목사는 절대로 교회를 개척하거나 목회에 복귀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1. 전병욱 목사는 홍대새교회 개척을 포기하기 바랍니다.

전병욱 목사 측 대리인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피해 여성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이들은 전 목사를 사임시키려고 과장되거나 허위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통해 전 목사는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오히려 사실을 은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 목사가 자신의 범행으로 인해 평생 씻기 힘든 상처를 입은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한 증거는 없습니다. 또한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과거 자신의 저서를 읽고 큰 영향을 받았으나 본 성추행 사건으로 인해 극심한 영적 공황상태에 빠진 전국의 독자들에게 공개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할 때 전 목사는 성중독 환자로 판단되며, 이에 삼일교회 당회 또한 성중독 치료비를 지급했으나 그가 치료 받은 증거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임(2010년 12월)부터 개척(2012년 8월)까지 18개월의 기간은 흉악한 죄질을 감안할 때 자숙의 기간이라 하기엔 너무 짧습니다. 전병욱 목사는 현재 진행 중인 교회 개척 준비를 중단해야 합니다. 지금은 교회를 개척할 때가 아닙니다. 잘못을 시인하고 회개하고 사죄할 때 입니다. 피해자와 그 가족은 물론 삼일교회 성도들과 나아가 한국 교회 전체를 향해 용서를 구하며 자숙해야 합니다. 

2. 홍대새교회는 전병욱 목사 청빙을 포기하기 바랍니다.

홍대새교회의 교회 개척을 환영합니다. 하지만 전병욱 목사 청빙에는 반대합니다. 과거 전 목사가 시무할 당시 삼일교회는 주변으로부터 목사를 우상화한다는 의혹을 받아왔고, 결국 이는 지난 성추행 사건 발생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반면 반갑게도, 현재 홍대새교회는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홍대새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전병욱 목사의 교회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교회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라고 밝히고 있으니 참 다행입니다. 만일 위 언급이 진실하다면, 전 목사 청빙을 포기하기 바랍니다. 굳이 전 목사를 개척 목사로 고집하여 ‘결국 홍대새교회도 전 목사의 교회 아니냐’는 의혹을 살 필요는 없습니다. 게다가 현재 전 목사는 잘못을 은폐하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하지 않고 있기에 목사직에 적합한 자가 아닙니다. 부디 전 목사 청빙 계획을 포기하여, 홍대새교회가 전 목사의 교회가 아닌 하나님의 교회임을 증명하기 바랍니다.  

2012년 6월 29일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 박종운 백종국 오세택 정은숙





예장합동 평양노회에게 요청합니다.

전병욱 목사를 면직시키기 바랍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평양노회 소속 전병욱 목사는 2009년 11월 경 당시 담임하던 삼일교회 당회실에서 여성 교인을 성추행 했습니다. 진상 파악을 위해, 2012년 4월 9일 삼일교회 당회의 공식 발표 내용 일부를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 내용은 당회장실에서 피해자를 호출하여 옷을 벗은 후 구강성교를 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장로들은 2010년 12월 초 자매를 만나 증언을 들었습니다. 이 외에도 장기간에 걸쳐서 다수의 자매가 성피해를 당했다는 제보가 접수되었지만, 이것을 다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를 통해 당시 전 목사는 목사로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본 교회개혁실천연대는 2010년 12월 17일 귀 노회에 을 발송하여, 귀 노회가 전병욱 목사를 권징하여 교회의 거룩성을 지키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귀 노회는 2011년 4월 11일 삼일교회 당회가 제출한 청원, 즉 전 목사의 최소 2년 이내 목회 금지와 목회 복귀 시 수도권 내 목회 금지에 대한 청원을 절차상 하자를 들어 부결시켰기에, 본 단체는 심히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최근 전병욱 목사는 오는 8월 15일 홍대새교회를 개척하고 목회에 복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본 단체는 전 목사가 회개와 치료를 통해 목사직을 다시 수행할 만한 자격을 회복했는지 확인하고자 면담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이에 본 단체는 아래 정황 증거로 판단 할 때, 전 목사는 절대로 교회를 개척하거나 목회에 복귀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전병욱 목사 측 대리인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피해 여성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이들은 전 목사를 사임시키려고 과장되거나 허위 사실을 말하고 있다

”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통해 전 목사는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오히려 사실을 은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 목사가 자신의 범행으로 인해 평생 씻기 힘든 상처를 입은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한 증거가 없습니다. 또한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과거 자신의 저서를 읽고 큰 영향을 받았으나 본 성추행 사건으로 인해 극심한 영적 공황상태에 빠진 전국의 독자들에게 공개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할 때 전 목사는 성중독 환자로 판단되며, 이에 삼일교회 당회 또한 성중독 치료비를 지급했으나 그가 치료 받은 증거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임(2010년 12월)부터 개척(2012년 8월)까지 18개월의 기간은 흉악한 죄질
을 감안할 때 자숙의 기간이라 하기엔 너무 짧습니다. 게다가 새 교회(마포구 상수동)가 옛 교회(용산구 청파동)로부터 이동시간 15분, 직선거리 4km에 불과한 너무 가까운 곳이기에 상식적인 목회 윤리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전 목사의 목회 복귀와 교회 개척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본 단체는 귀 노회가 심각한 성범죄자를 목사로 용인하고 교회 개척도 받아주는 노회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의 징계유보는 직무유기일 뿐입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전병욱 목사를 면직하기 바랍니다. 삼일교회 교인들 또한 지난 6월 28일 귀 노회에 면직 청원을 제출한 바 있습니다. 또한 현재 홍대새교회는 홈페이지에 자신을 “대한예수교장로회”라고 소개하는데, 이는 향후 귀 노회에 가입 의사를 추측케 합니다. 만일 가입 신청 한다면 절대로 수락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본 단체는 귀 노회가 홍대새교회의 가입을 받아들여 성추행 노회로 낙인찍히기를 원치 않습니다.

물론 목사도 한 그리스도인이기에, 아무리 심한 죄를 범했더라도 진정으로 회개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사의 직분은 다릅니다. 귀 교단 헌법이 정하기를, “목사 될 자는...행실이 선량하고 신앙이 진실하며...모든 행위가 복음에 적합하여 범사에 존절함과 성결함을 나타”내고 “자기 가정을 잘 다스리며 외인에게서도 칭찬을 받는 자”(4장 2조 목사의 자격)이기에, 그렇지 못한 전 목사는 면직됨이 옳습니다. 또한 성직자는 당대 최고의 윤리적 기준을 따른다고 스스로 자임하고 세상으로부터 그렇게 요구받는데, 이에 비추어 전 목사는 범한 죄의 위중함에 비해 회복됐다고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미비하여 목사의 자격을 갖췄다고 인정할 수 없어 그를 면직함이 타당합니다.

부디 귀 노회가 전병욱 목사를 면직하여, 귀 교단 헌법이 정한 노회의 존재 목적, 즉 “교회 도리의 순전을 보전하며, 권징을 동일하게 하며, 신앙상 지식과 도리를 합심하여 발휘하며, 배도함과 부도덕을 금지”(10장 1조 노회의 요의)함을 구현하기 바랍니다.

2012년 6월 29일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 박종운 백종국 오세택 정은숙
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영성, 수행, 치유, 공동체에 대한 글을 쓴다. 이 누리꾼들에 의해 ‘인문교양도서’ 1위에 뽑혔다. 기독교 숨은 영성가를 발굴한 은 감신대, 서울신대, 장신대, 한신대의 ‘100대 교양 필독도서’. 이 불교출판문화상과 올해의 불서상을, 이 불교언론문화상을 수상. , , 등의 저서가 있다.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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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26일 토요일

돈 밝히는 목사, 색 밝히는 스님! 오 마이 갓!


이글은 프레시안 2012-05-25일자 기사 '돈 밝히는 목사, 색 밝히는 스님! 오 마이 갓!'을 퍼왔습니다.
[프레시안 books] 필 주커먼의

2001년. 종교의 초자연적 현상을 뇌신경학으로 풀이해 버린 신경과학자의 책 (이충호 옮김, 한울림 펴냄)가 출간된다. 이 책은 신자들이 신 존재의 증거로 흔히 고백하는 영적체험이 전적으로 두뇌가 만든 개인의 착각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뉴스위크)가 책이 제기한 쟁점을 아예 특집으로 다룰 만큼 큰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그럴 만도 하다. 신정국가에 가까운 미국 사회에서 이런 불경스런 주장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했으니.

2006년.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한음 옮김, 김영사 펴냄)이 출간된다. 그리고 이듬해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김승욱 옮김, 알마 펴냄)도 출간된다. 뒤이어 2008년 필 주커먼의 (신 없는 사회)(김승욱 옮김, 마음산책 펴냄)가 세상에 나왔다.



▲ <신 없는 사회>(필 주커먼 지음, 김승욱 옮김, 마음산책 펴냄). ⓒ마음산책
그 사이사이에 유사한 주제를 다룬 단행본이 훨씬 많이 서점에 깔렸을 것이지만, 내가 당장 떠올릴 수 있는 국제적 수준의 베스트셀러 몇 개를 고르면 대략 이렇다. 이 저술들은 공통적으로 하나같이 제도 종교(사실상 기독교)의 해악과 신 존재론을 과학적으로 반증한다. 나아가 무신론을 종교 해악에 맞서는 정당한 대안으로 입체적인 논증을 직간접적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종교 자유가 인정되는, 아니 정확히는 특정 종교 세력이 우세한 문화권에서 해당 종교에 반하는 주장을 펼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는 시대정신의 패러다임이 매우 느린 속도로 변하는 중이었는데, 그 변화에 유의미한 속도가 붙었다는 징후로 보는 것. (신 없는 사회)에도 나오지만, 세속주의는 종교주의에 밀려 오랜 세월 인문학으로부터 홀대를 받아왔다. 하지만 세속주의 신념을 담은 책들이 연이어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은 전세 역전을 신호로 읽힌다.

또 다른 해석은 특정 종교(근본주의 개신교)의 세가 강한 최강국 미국의 위험 수위를 견제하려는 자정 작용의 발로로 지성계가 나섰다는 신호로 보는 것. 사회 양극화가 가장 심한 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복음주의 신앙이 뿌리를 내린 나라가 미국이다.

위에 열거한 서너 권 가운데 최근 국내에 번역된 (신 없는 사회)의 질감은 다른 책과는 다르다. 논지야 비슷하지만 신의 존재를 객관적으로 반증하거나, 기성 종교가 범한 방대한 해악을 열거하면서 제도 종교의 독선에 통쾌한 카운터펀치를 날려서 평소 종교스트레스에 시달린 반종교 성향 독자에게 후련함을 안기지도 않고, 무신론적 신념을강화하려 들지도 않는다.

다만 신 없는 사회)는 종교심이 지극히 낮은 선진국들의 실상을 조사해서 종교심이 강한 나라(대표적으로 미국)의 처지와 대비시켜서, 정상적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게 한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무신론적 세계관의 우월함을 드러내지만, 무신론적 신념을 강요하려는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그보다 이 책은 종교를 다르게 정의하고 수용하는 스칸디나비아 문화권의 건강 지수를 객관적으로 드러낸다. 필 주커먼의 분석 대상은 종교적 전통은 존재하지만, 사실상 세속주의가 지배하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두 나라 덴마크와 스웨덴에 맞춰졌다. 책의 목적은 종교의 세가 약한 공동체가 오히려 제 기능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보여주고, 비종교적 사람의 세계관이 어떤지 대담 내용을 통해 날 것 그대로 소개하는 것이다.

신앙인이 역설하는 종교의 필요성은 종교가 공동체의 윤리를 지켜주는 버팀목이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또 죽음에 대한 불안을 달래고 생전에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종교가 필요하단다. 그렇지만 현실적 데이터는 이 그럴듯한 주장과 정반대 결과를 내놓는다. 유엔 인간 개발 보고서나 (이코노미스트)의 '삶의 지수' 조사에 따르면, 기대 수명, 국민 총생산, 경제적 평등, 양성 평등, 보건 의료, 공무원 청렴 지수, 자선 행위 등 모든 지표에서 가장 후한 점수를 받은 지역은 비종교적인 나라(대개는 북유럽)로 돌아갔다. 반면 최강대국 이미지가 강한 미국은 선진국 가운데 경제적 양극화가 가장 심한 나라로 조사되었다.

사후의 두려움이 종교를 필요로 한다는 주장도 사실과 정반대다. 저자가 만난 호스피스 간호사의 인터뷰에 따르면 죽음을 앞두고 대다수 비종교인은 초연하게 죽음을 맞지만, 유독 겁에 질리는 쪽은 기독교인이라는 것이다. 생전 자기가 지은 죄의 대가로 지옥에 가게 될까봐 노심초사 한단다. 이에 반면 저자가 인터뷰한 대다수의 북유럽인의 사후 세계관은 간단히 요약된다. 예순여덟의 덴마크 남성(1938년생)은 암으로 사망한 아내와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에 아래처럼 답했다.

-죽음에 대해 : "암도 자연의 일부니까. 생물학적인 현실이잖소.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 속에 존재하는 사악한 요소인 거지. 그러니까 그래요. 나는 종교적인 감정을 느낀 적이 없어요."

-삶의 의미에 대해 : "내 생각에는 지상에서 살아가는 기간도 충분히 긴 것 같아요." (…) 나는 '그리고 또 뭐? 그 다음에는 뭐가 있지?' 하고 말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 그냥 행복하게 사는 것, 아니 불행한 삶이라 해도 삶은 삶이오. 불행한 삶이라 해도 긍정적인 면이 아주 많으니까."

(신 없는 사회)의 저자는 덴마크와 스웨덴에 종교적 전통은 매우 강하게 남아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두 나라는 루터교를 국교로 하고 있으며 저자가 만난 그곳 사람들 상당수는 스스로를 기독교인으로 생각한다고 답할 정도다. 그렇지만 국교가 달리 없는 미국보다 건강 지수가 훨씬 높은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종교를 '신학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문화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목차의 제목을 빌면 '문화적 종교'로 신앙을 생각한다. 때문에 누군가가 인격신으로서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말하면 그건 매우 괴이한 현상이라고 한다. 종교는대화의 주제도 되지 못할 만큼 극히 세속화된 나라지만 종교가 일종의 전통으로 수용되는 것이다. 매년 비슷한 시기에 제사를 지내는 한국 가정의 전통은 제사를 계기로 가족 회합을 하는 것이지, 먼 조상들을 진심으로 숭배하려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스스로를 기독교인으로 생각하는 덴마크인과 스웨덴인 가운데 사후 세계, 예수의 처녀 잉태, 천국과 지옥처럼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수가 지극히 낮을 뿐 아니라, 아예 대화의 화제조차 되질 않는다. 저자가 인터뷰한 상당수는 죽은 후 어떻게 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취지의 답을 내놨다. 일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 "절대로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사라지는 거예요. 그걸로 끝이에요. 정말로."- "내 몸이 분해돼서 자연의 자연스러운 순환의 일부가 될 겁니다."- "벌레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나를 화학물질로 분해할 거예요."- "썩죠. (웃음) 끝이에요."

이 책이 타깃으로 삼은 독자는 누구일까? 아마 저자가 사는 극성맞은 기독교 국가 미국인일 것 같다. 미국은 대통령 조지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 하느님에게 기도로 조언과 자문을 구했다고 공식 발표했고, 그 발언으로 대통령의 신뢰도가 높아질 만큼현대적 신정 국가다.

저자는 그런 미국 독자에게 종교를 대하는 스칸디나비아의 관대한 태도, 즉 문화적 종교를 소개하고 싶었을 게다. 물론 두 나라는 조건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대응법이 같을 순 없다. 스칸디나비아의 비종교인이 종교에 악감정을 품지 않지만, 종교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미국의 비종교인은 매우 반종교적 성향을 띠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미국을 지배하는 기독교에 전투적으로 대응하는 리처드 도킨스 같은 해법 대신, 기독교가 문화로 받아들여져 유명무실해진 북유럽의 건강한 상태를 보여줘서 느리지만 기대 가능한 변화를 꾀한 것 같다.

그럼, 이 책을 읽는 한국의 사정은 어떨까? 저자는 한국을 비종교적인 국가로 꼽았는데, 미국이나 아랍권과 비교하면 그리 분류될 만도 하다. 하지만 한국도 대선 후보가 장로 출신이라는 이유로 선거법 위반을 무릅쓰고 대형 교회에서 그 후보를 지지할 만큼 정교 분리가 위협을 받는 나라가 되었다.

또 자기 결정권이 없는 학생에게 특정 종교를 강요하는 미션스쿨의 오랜 관행이 큰 사회적 문제(2004년 고등학생 강의석의 종교 자유 단식 시위)로까지 비화된 나라이기도 하다. 덴마크나 스웨덴 사람처럼 대처하기엔 종교 열성이 과도하며 실제 삶에 종교의 간섭이 지나친 사회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미국처럼 구성원의 자발적 동참으로 하향식 종교주의가 아니라, 아직은 일부 지도자급 신앙인이 주도하는 상향식 종교주의가 지배하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미국의 정치 지도자는 틈틈이 자신의 종교심을 공개적으로 내비쳐서 지지율을 보호하지만, 한국은 "서울을 하나님에게 봉헌한다"(2004년 서울시장 시절 이명박의 발언)거나, 국가 조찬 기도회에서 무릎 기도를 하면(2011년 이명박 내외) 바로 비난이 쏟아질 만큼 하부 구조(!)는 건강하니 천만 다행이다.

저자의 의도야 뭐건 (신 없는 사회)의 또 다른 인상은, 책을 읽는 내내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비종교 청정 국가들을 꼭 한번 순례하고 싶다 싶은 유혹을 뇌리에 남긴다는 점이다.

 /반이정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