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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일 금요일

“재벌과 타협 성공한적 있나” “국부 창출 경쟁력 인정해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06-01일자 기사 '“재벌과 타협 성공한적 있나”
“국부 창출 경쟁력 인정해야”'를 퍼왔습니다.

[재벌개혁 논쟁]
재벌개혁 문제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치권이 피할 수 없는 핵심 쟁점이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갈수록 심화시키고 경제의 활력마저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재벌 대타협론’이 촉발한 재벌개혁 논쟁에 정치권의 관심이 높다. 새누리당의 경제통인 이혜훈 최고위원과 민주통합당의 대표적 재벌개혁론자인 박영선 의원을 인터뷰해 재벌개혁 문제와 관련한 양당의 기류를 살펴봤다.
박영선 의원 “재벌과 타협 성공한적 있나”

대표적 재벌개혁론자 박영선 의원

“재벌과 타협해 성공한 적이 없다. (타협하다가) 모든 게 재벌이 원하는대로 끝났다.”

국회 내 대표적 재벌개혁론자로 손꼽히는 박영선 민주통합당 의원은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하 선택)에서 제안한 ‘재벌과의 대타협’이 “재벌만 득을 본 채 끝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장 교수가 재벌과 타협해야 한다고 쓴 부분에 거부감이 있다”며 “타협이란 강자한테 어쩔 수 없으니 포기하자는 의미의 단어”라고 말했다.

앞서 장 교수는 ‘선택’에서 대자본의 횡포를 인정하면서도 “‘대자본은 다 나쁜 놈’이라며 타협도 하지 말고 다 때려 부수자고 말하면, 정작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재벌에게 경영권 방어 장치를 허용한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받아야 한다”며, ‘대가’의 예로 복지국가 건설 및 부자 증세 협조, 생산 기지의 해외 이전 제한, 설비 및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등을 들었다.

박 의원은 장 교수의 이런 제안을 전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그는 “어쨌든 이대론 안된다, 뭔가 바꿔야 한다는 점에서 호소력이 있다”며 “문제의식의 출발은 같은 것 같다”고 말했다.

복지국가 지향점에는 동의하지만
경영권 보장 대가로 기금 받자고?
특정세력 선심으로 풀 문제 아니다

-복지가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적 지향점이 돼야 한다는 장 교수의 주장을 어떻게 보나?

“공감한다. 하지만 ‘재벌로부터 (경영권 보장의 대가로 뭘) 받는다는 부분엔 동의하기 어렵다. 재벌로부터 일종의 복지 기금을 받기 시작하면 복지 영역마저 재벌의 손에 들어갈 수 있다. 복지는 국민적 동의가 필요한 것이지, 어떤 특정한 세력의 선심이나 재벌의 시혜에 의해서 이뤄져선 안된다.”

-장 교수는 재벌의 소유가 아닌 소득이 재분배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지금 재벌의 소유 구조는 정상이 아니다. 순환출자로 이뤄졌다. 대주주가 5~6%의 지분을 갖고서 재벌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과세 강화로 접근하자는 주장도 좋다. 하지만 소유는 놔둔 채 과세로 접근하게 되면, 비상장 주식을 통한 편법 증여 등으로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재벌 체제의 문제점은?

“재벌에 권력이 너무 집중돼 있다. 재벌이 못하는 게 없다. 재벌 집중 현상은 어떤 규제나 제한을 가하지 않으면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경제민주화란 게 누구에게나 골고루 기회를 주자는 것인데, 재벌이 기회를 독식하고 있다. 반대로 중소기업과 동네 빵집을 비롯한 자영업자들은 기회를 잃고 있다.”

박 의원은 거대 담론보다, 법률적인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현 정부 들어서 완화된 자본의 ‘금융과 산업’의 분리 원칙을 강화한 금융지주회사법의 개정과 순환출자 제한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민주통합당은 지난 4·11총선 공약으로 이와 함께 지주회사 요건 강화,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부활 등을 내걸었다. 모두 재벌의 경제력 집중 완화 장치들이다. 박 의원은 “이런 게 (재벌과의) 타협이나 과세 강화보다 우선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문제는 권력집중…재벌 못하는 게 없어
출자총액제한 부활 등으로 규제해야
소유구조 손 안보면 과세 효과 없어

-출자총액제나 순환출자 금지 등이 국민들에게 피부와 와닿지 않는 게 문제다.

“어려운 문제란 거 안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해법 중 하나다. 중소기업에 좀더 혜택 주는 식의 접근이 당장 피부와 와닿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골자(뼈대)를 이대로 놔둔다면 재벌독식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재벌개혁은 사람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다.”

-사람들은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과의 경제민주화 방안을 구분하지 못하는데?

“총선 때 민주당이 제대로 국민들에게 설명하지 못했다. 대선에선 이를 제대로 부각시켜야 한다. 새누리당이 2009년 금융지주회사법을 날치기할 때 이혜훈,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들도 반대했다. 이런 의원들과 충분히 대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여당 대부분은 재벌프렌들리(친재벌)다. 재벌개혁의 의지가 없다고 본다.”

그에게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재벌의 집중화는 되레 커지지 않았냐, 국민들은 민주당도 의심한다’고 물었더니, 그는 “그만큼 힘든 문제다. 벽이 높다”고 토로했다.

<문화방송>(MBC) 경제부장 출신인 박 의원은 3선 국회의원이다. 그는 삼성을 비롯한 재벌이 가장 불편해하는 정치인으로 꼽힌다. 2004년부터 의정활동을 통해 재벌의 변칙 증여 및 상속, 금산분리 원칙 위배 등의 문제를 앞장서 다뤄왔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2012년 4월 8일 일요일

놀라운 생산력 뒤 사회적 책임 ‘그늘’


이글은 Economy Insight 2012-03-22일자 기사 '놀라운 생산력 뒤 사회적 책임 ‘그늘’'을 퍼왔습니다.
[Cover Story] ‘글로벌 삼성’의 글로벌 스탠더드- ① 독일 주간지 가 본 삼성


삼성은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세계적 기업이다. 세계 언론들은 삼성의 경쟁력에 놀라움을 표시하는 한편, 삼성의 사회적 책임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등에서 삼성의 성공요인을 분석하는 기사를 다룬 데 이어, 독일 , 프랑스 , 영국 등 유럽 언론들도 지난 2~3월 한 달 사이에 삼성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특히 독일 주간지 는 2월16일 발행된 2012년 8호에서 2쪽에 걸쳐 삼성을 다뤘다. 는 '명령에 의한 성공'(Erfolg auf Befehl)이라는 기사에서 삼성이 애플에 맞설 기업이라고 높게 평가하면서도 백혈병 산재 논란, 무노조 등 아픈 모습도 함께 짚었다.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글로벌 기업이 되려면 삼성의 행보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아야 한다. 는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삼성의 빛과 그림자를 분석함으로써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안착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본다. _편집자
는 삼성이 권위적이지만 또한 창의적이라고 평가한다. ‘명령에 의해 창의성까지 만들어내는’ 힘이 삼성을 세계 일류기업으로 만든 동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칭찬만 하기에는 삼성의 그림자 또한 작지 않다고 지적한다.
"직원이 배가 고파야만 기업이 성공할 수 있다." 삼성 임원들 사이에는 아직도 이런 조롱 투의 말이 나돌고 있다. 삼성이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이 말을 자구 그대로 이해하고 실행에 옮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990년대부터 이건희 회장은 점심 식사를 하면서 임원진과 일간회의를 했다. 하지만 실제 점심을 먹은 사람은 이 회장 혼자뿐이었다. 창립자 이병철의 아들이자 삼성전자 회장 및 삼성그룹 대주주인 이건희 회장은 세계 막강한 재벌그룹의 실력자다.
삼성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유명세를 타고 있다. 지난 한 해에만 전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삼성 스마트폰을 샀다. 삼성 텔레비전과 노트북은 전세계 가정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삼성 제품 사용자 중에 삼성그룹과 삼성가의 실제 모습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업컨설턴트이자 삼성통인 토니 미셸은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토니 미셸은 야심만만한 삼성 임원진의 모습을 다큐멘터리에 담기도 했다. "삼성은 내부 정보가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경호가 삼엄한 성채와 같다."
삼성이라는 성채는 물 샐 틈이 없다. 삼성은 저가 제품을 대량생산하는 업체에서 고부가가치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급부상한 아시아의 재벌그룹 중 대표 주자다. 수평적 위계질서와 최대한의 창의적 상상력을 신봉하는 서구 기업들과 달리, 삼성은 벤처기업의 창의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권위적 특징까지 보인다. 삼성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던 소니 같은 기업체들을 손쉽게 따돌리고, 이제 미국의 애플과 대적하는 상황이다. 이런 삼성을 좀더 알려면 견고한 성채 너머로 엿보는 것 외에 딱히 다른 방법이 없다.
전세계에서 막강한 경제력을 갖춘 삼성의 창업 일가는 혼맥을 통해 정계 인사들과 탄탄한 네트워크를 갖추었다. 그래서 이건희 회장은 사법기관의 유죄판결조차 피해가는 막강한 권력을 누리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주민이 지난 2월27일 대형 할인매장 코스트코에서 60인치 삼성 LED TV를 구입한 뒤 트럭에 싣고 있다. 뉴시스 AP

라스베이거스에서 겨우 만난 삼성 임원
취재진은 한국을 직접 방문해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삼성에 요청했으나, 삼성은 이를 거절했다. 몇 주가 지나서야 삼성의 고위 임원과 직접 통화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삼성은 여전히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에 최대한 거리를 두었다. 삼성은 서울 본사에서 9600km 떨어진 미국 모하비사막에서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취재진이 삼성 쪽 관계자를 만난 것은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전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소비자가전박람회(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였다.
국제소비자가전박람회에서 삼성이 설치한 부스는 최대 규모였고, 전시 품목도 가장 많았다. 신시사이저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이 컨벤션센터 전시장에 울려퍼졌다. 전시장 천장에는 디지털 시대의 샹들리에인 브라운관 10여 개로 된 구조물이 매달려 있었다. 구름같이 모여든 관람객 사이를 삼성전자 최지성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전자 직원들 한 무리가 힘겹게 지나가고 있었다. 취재진의 이건희 회장에 대한 인터뷰 요청은 두말할 것도 없고, 최지성 부회장의 인터뷰 요청 역시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그나마 박람회장에서 콘크리트 계단을 올라가니 다소 조용했다. 복도에는 짙푸른 삼성 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서 두꺼운 일회용 종이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고 있었다. 임시로 설치한 벽 뒤에는 한 남자가 취재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시몬 성(성일경 상무, 이하 성 상무)이었다.
삼성전자의 TV부문 임원인 성 상무는 앞으로 벌어질 애플과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넥타이와 양복 차림의 성 상무는 여유로워 보였고, 마치 은행 직원처럼 단정하고 보수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스티브 잡스 애플 전 회장도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업계의 풍토에 비추어볼 때, 그의 모습은 다소 의외였다.
몇 년 전부터 삼성과 애플은 해당 분야 1위 자리를 놓고 일전을 벌이고 있다. 올해에도 삼성과 애플은 평화로운 상태를 맞이하지 못할 것 같다. 소문에 의하면,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이어 TV를 출시할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지난해 10월 사망 직전 자서전 집필 작가에게 애플사의 TV 출시 계획을 암시했다. 잡스는 당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유저 인터페이스가 설치될 것"이라고 했다. 성 상무는 이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삼성은 애플의 TV 출시에 피하지 않겠다"며 어조는 부드럽지만 전쟁 선포나 다름없는 발언을 했다. "애플이 스마트TV를 출시하면 전체 업계에는 이득이 될 것이다. 애플은 삼성의 또 다른 경쟁사가 되는 셈인데, 오랜 경험이 있는 삼성은 이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언제나 만반의 준비 갖추고 있는 삼성
삼성은 언제나 만반의 투쟁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자사 홍보물에서 삼성은 '아이폰 이용자는 애플에 조종당하는 멍청한 노예'라고 조롱했다. 한편, 세계 곳곳에서 삼성과 법정 싸움을 벌이는 것이 애플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삼성의 갤럭시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그대로 베껴왔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2011년 삼성의 스마트폰 판매량이 애플보다 더 많았다. 태블릿의 경우, 삼성은 법정 공판에서 하나씩 승리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애플에 스마트TV가 여전히 미래 비전에 불과한 반면, 삼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분야에서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삼성은 2008년 세계 최초로 TV에 인터넷을 접목했다. 이전까지 컴퓨터에서만 가능하던 인터넷 서핑, 사진 및 영화 보기가 이제 거실 쇼파에 앉아서 TV 브라운관을 통해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치 항상 가능했던 것처럼 너무나 손쉽게 말이다. 최신 삼성 TV는 언어나 동작만으로도 조작할 수 있다. 게다가 이 모델은 평면 화면과 테두리가 거의 없는 탁월한 디자인을 자랑한다.
2004년만 해도 전세계 TV 분야에서 17위에 불과하던 삼성이 이렇게 눈부시게 성장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당시 삼성은 '기껏해야 저가의 TV를 생산해낸다'는 악평에 시달리고 있었다.
삼성은 부정적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2005년 회사의 최고 엔지니어 300여 명을 TV 생산 부문으로 인사발령을 냈다. 이들은 삼성전자에서 최고 실적을 내고 있는 컴퓨터 모니터 부문에 종사하고 있었다. 이건희 회장은 1990년대부터 급격히 부상한 중국의 경쟁업체들과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최고 품질'을 구호로 외쳐오던 터였다. TV 부문에 투입된 엔지니어 300여 명은 자신에게 주어진 미션을 완벽히 이행했다. 이들이 3D TV와 인터넷과 연계된 TV를 개발하는 등 기술 개발의 최정상에 올라서면서, 삼성은 틈새시장 업체에서 일약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떠올랐다.


독일의 대표적 종합 주간지 <디 차이트>가 지난 2월16일 발행된 2012년 8호에서 삼성을 집중 조명했다. 이 기사에서 <디 차이트>는 삼성의 경쟁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사회적 책임 경영에는 개선돼야 할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삼성의 성공 비결은 빠른 실행 속도
삼성의 성공은 상명하달식 체계에 기인했다. 삼성은 창의성조차 상부 지시를 통해 뚝딱 만들어내면서 창의력이 부족한 저가 제품 양산 업체의 이미지에서 벗어났다. 삼성보다 TV 판매량이 더 많은 기업은 전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삼성 TV는 이제 어느 기업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탁월한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때 업계 최강이던 파나소닉이나 소니 등 경쟁업체가 부진을 면치 못하는 동안, 삼성은 독일에서 지난 5년간 LCD TV 평균 가격이 600유로로 반 토막이 나도 경쟁력을 잃지 않았다.
성 상무는 삼성이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비결을 잘 안다. "삼성의 성공 비결은 속도다. 삼성은 결정과 실행이 아주 빠르다." 하지만 성 상무는 삼성의 성공 비결을 더 이상 털어놓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도가 전부는 아니다. 삼성이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비결을 한스 비난츠 삼성 독일 지사 선임부사장이 자세하게 말해주었다. 그도 국제소비자가전박람회에 참석하기 위해 라스베이거스에 와 있었다. 비난츠 부사장은 2005년 삼성의 독일 지사에 오기 전까지 10년 이상 일본 가전업체 파나소닉에서 일했다. 삼성그룹의 대다수 임원들과 비교할 때, 그가 삼성의 경쟁사인 일본 가전업체에서 일한 경력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삼성 임원들은 대부분 성 상무처럼 한국에서 이른바 명문 대학을 졸업했고, 삼성이 처음이자 유일한 직장이다. 지금은 양상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존속하는 몇 개월간의 오리엔테이션에 삼성 신입사원들은 기업철학을 체내화해 자신을 삼성이라는 기업체의 일부로 만들도록 훈련받는다. 마침내 삼성 직원들은 '삼성맨'으로 거듭난다.
1분만 성공 즐긴 뒤 59분은 다음 과제 준비
토니 미셸은 "삼성이 해외의 노련한 경영인들을 영입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년밖에 안 됐다"고 했다. 한스 비난츠처럼 경쟁사에서 영입된 임원은 삼성이 초일류기업으로 떠오르던 시점에 대대적으로 시작된 삼성의 변화를 대변한다.
한스 비난츠 부사장은 직설적인 사람이었다.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삼성의 성공이 단순히 속도뿐만 아니라, 감독과 두려움에 기반한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삼성에서 속도전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가전제품은 초밥과 같다. 만든 지 오래된 초밥은 팔 수 없다." 삼성 제품 거래 현황을 자동화한 보고 시스템 덕택에 삼성은 글로벌 수요량 추이를 시간대별로 확인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제품의 거래 흐름을 며칠 이내에 조정할 수도 있다.
삼성의 두 번째 성공 비결은 통제 혹은 감독이다. 삼성은 외부 의존도를 최대한 낮추려고 제품 부품을 최대 95%까지 자체적으로 생산한다. 반면 애플은 경쟁업체에서 납품받는 부품에 크게 의존한다. 대표적으로 애플 아이폰4 부품 비용의 25%에 해당하는 저장칩이 바로 삼성 제품이다. 이 비율은 최신 아이폰4S 모델에서 다소 떨어졌지만, 여전히 삼성이 납품하는 부품 비율은 높은 수준이다.
삼성의 세 번째 성공 비결은 두려움이다. 한스 비난츠 부사장은 "삼성에서의 1시간은 현재의 성공에 대한 기쁨 1분과 다음 과제 준비 59분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이런 삼성의 분위기에서도 지난 10년 이상 이루어진 변화가 감지된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 윤종용 전 부회장과 삼성의 변화를 이끌었다. 윤종용 전 부회장은 1980∼90년대 GE의 최고경영자(CEO)이던 전설적 경영인 잭 웰치 신봉자로 알려졌다. 직원들에게는 엄격하기 그지없던 잭 웰치는 '중성자폭탄 잭'(잭 웰치가 건물은 파괴하지 않고 사람만 살상하는 중성자폭탄처럼 많은 직원들을 정리해고했음을 지적하는 말)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잭 웰치는 위기관리자로도 명성을 날렸다. "어떤 위기도 피 흘리지 않고는 끝나지 않는다"고 했던 잭 웰치는 직원들에게 문제를 외면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윤종용 전 부회장은 잭 웰치처럼 기업의 인수·합병과 대량해고 역시 문제 해결 방법이라는 것을 삼성에 그대로 적용했다. 하지만 한국의 전통적 사고방식에서 대량해고는 드문 방식이었다.
이 시기부터 삼성은 지속적으로 경계 태세에 있는 초일류기업이 됐다. 항상 다음 위기를 방어할 태세를 갖춘 삼성은 혹시 위기 상황을 인지하지 못할까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삼성은 스마트폰과 TV가 과거의 유물이 돼버릴 미래를 대비하는 플랜도 당연히 갖고 있다. 삼성에서 미래의 유망 비즈니스 분야로는 조명과 의료기술이 손꼽힌다. 그리고 삼성은 한번 손에 쥔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키기로 유명하다. 지난 1월 유럽 공정거래감독기관은 삼성이 시장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불공정거래를 저질렀는지 조사하고 있다. 이는 최근 2년 동안 삼성에 대해 벌어지고 있는 두 번째 조사다.
박람회장은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로 시끄러웠다. 최신 TV를 몸의 움직임으로 조작해보는 유리 부스 앞에는 호기심 많은 방문객들이 줄지어 기다렸다. 관람객은 5명 단위로 입장할 수 있었다. 입장한 방문객은 평면 브라운관을 향해 손짓으로 TV 채널을 돌리거나 소리 크기를 조정했다. 삼성의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는 제품 테스트 부스에 전시된 물건만으로 웬만한 가전제품 마트를 채우고도 남을 듯했다. 이 부스에는 휴대전화, 스피커, 컴퓨터, 카메라, 세탁기, 심지어 인터넷과 연결된 냉장고도 전시돼 있다.
2011년 삼성그룹 홍보 동영상을 보면, 그룹에는 삼성전자 외에 많은 기업들이 포함돼 있다. 삼성그룹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소(삼성중공업)와, 세계 최대 규모의 생명보험사(삼성생명)가 있다. 또한 화학업체, 건설업체, 호텔, 현대적인 병원 4개(한국과 두바이 소재), 놀이공원, 경제연구소, 홍보기획사, 한국의 대표적인 야구클럽이 있다. 삼성그룹은 서로 완전히 다른 분야의 계열사 10여 개가 특이한 방식으로 공존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오른쪽 세 번째)은 지난 1월1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멀티미디어 가전 전시회 'CES 2012'를 참관차 방문해 "일본은 힘이 좀 빠진 것 같고, 중국은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뉴시스

삼성 매출 규모, 세계 41위 국가와 맞먹어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삼성이 곧 한국이다. 삼성그룹이 발표한 2010년 그룹 총매출액은 2220억달러로, 이는 한국 국민총생산(GNP)의 5분의 1을 넘는 수치다. 만약 삼성그룹이 국가였다면, 삼성은 국가 경제 규모 순위에서 41위를 차지했을 것이다. 삼성그룹이 계획한 올 한 해 투자액으로 주식을 산다면, 독일 프랑크푸르트 주식시장에서 바이어스도르프와 루프트한자 항공사 전체 주식을 매입하고도 남을 것이다.
한국 경제는 '재벌'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대기업들로 유명하다. 재벌은 창업주 일가가 경영을 맡고 있다. 대표적 재벌인 현대와 LG는 삼성보다 규모가 작다.
공식적으로는 서로 분리된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특이한 방식으로 연계돼 있다. 기업문화와 기업 역사를 공유하는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때론 '삼성'이라는 타이틀로, 때로는 상호 출자로 서로 얽혀 있다. 삼성 계열사들은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고 CEO가 다르지만, 삼성의 창업주 일가는 전체 삼성그룹을 예나 지금이나 지배하고 있다.
삼성은 1930년대 후반에 창립됐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아버지 이병철 전 회장은 당시 대구에서 건어물과 채소를 중국에 수출했다. 사업이 번창하자 이병철 전 회장은 창업 뒤 얼마 되지 않아 보험회사와 무역회사를 설립했다. 나중에야 생긴 '삼성'이라는 명칭은 아들을 셋 둔 이병철 전 회장이 '별 3개'라는 의미로 붙인 것이다. 1960년대 이병철 전 회장의 사업은 하락세를 그렸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이병철 전 회장을 비롯한 대기업 총수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은 심지어 이병철 전 회장을 체포하려고 했지만, 결국 이병철 전 회장과 합의를 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오랜 기간의 일제 식민지 시대와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한국 경제는 곤두박질쳤다. 빈곤한 국가 경제를 일으켜세우려면 수출을 크게 늘려야 했기에 대기업들을 후원했다. 대기업 후원은 뒷날 민주정부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어쨌든 당시, 한국이 세계시장을 석권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대기업 육성뿐이라고 군사정권은 굳건히 믿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대기업들이 각각 어느 분야에 투자할 것인지도 일부 결정했다. 군사정권의 경제 투자 계획은 예상대로 맞아떨어졌고, 낮은 대출이자와 세제 혜택, 저렴하면서도 열의에 넘치는 노동력 덕택에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은 오늘날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정치권과 재벌 총수들의 관계는 항상 이중적이었다. 권력자들은 재벌이 '국가 안의 국가'로 성장하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또 한편으론 그들의 정치·경제적 목표 달성을 위해 재벌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정권과 재벌은 지금도 여전히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재벌들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한 권력을 누리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지 에 따르면, 1987년 작고한 아버지 이병철 전 회장의 뒤를 이어 삼성전자 회장에 취임한 이건희 회장은 개인 자산 86억달러로 한국의 최고 갑부다(재벌닷컴에 따르면, 지난 3월9일 종가 기준으로 이건희 회장의 보유주식 평가액은 10조1027억원으로 한국 증시 역사상 처음으로 보유 주식 10조원을 돌파했다). 이건희 회장의 여동생 이명희 신세계 회장은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3월9일 종가 기준으로 보유 주식 가치가 1조6700억원이었다)이고,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 사장은 한국의 억만장자 랭킹 4위를 차지했다(3월9일 종가 기준으로 주식 가치는 1조337억원으로, 주식만 따질 때 한국 16위의 주식부자다). 하지만 부유한 삼성가 형제들이 현재 상속유산을 둘러싼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2월 셋쨋주 초 고 이병철 전 회장의 장남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동생 이건희 회장을 고소한 것이다. 이맹희 전 회장은 자신에게 상속된 유산을 받지 못했다며 6억3500만달러에 상당하는 삼성주식 반환 청구소송을 냈다.
엄청난 부와 경제적 영향력을 등에 업고 삼성가는 정치적으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됐다. 한국에서는 사법기관조차 이건희 회장 앞에서 굽실거리는 형국이다.
비리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건희 회장은 1990년대 중반 첫 정치적 사면을 받았다. 두 번째 사면은 2009년 연말에 전격 단행됐다.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에게 당시 시장가격보다 현저하게 낮은 가격으로 삼성 주식을 물려준 것에 대해 이건희 회장은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 최대 갑부인 이건희 회장을 바로 사면시켰던 것이다. 당시 겨울올림픽 개최지 후보로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한국을 대표할 사람이 필요했던 한국 정부는 이건희 회장을 사면시켜 그에게서 유죄판결의 오명을 지워주었다. 그리고 2011년 평창은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됐다.
이건희 회장의 선견지명과 무일관성
'이건희 회장 없이는 겨울올림픽도 없고, 이건희 회장 없이는 삼성도 없으며, 삼성 없이는 한국도 없다.' 어느덧 70살이 된 이건희 회장의 후광은 이런 논리로만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의 결정은 선견지명이 있다는 인정도 받지만, 일관성이 없다는 혹평을 받기도 한다. 이건희 회장은 과거 삼성그룹이 더 유연할 것을 지시했고, 외부 경영인들에게 삼성그룹의 문을 열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후임은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으로 일찌감치 내정해두었다. 삼성가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삼성그룹 전체에 대한 감독권을 지키려고 혈안이 돼 있다.
삼성가가 그룹 전체를 관리하고 있음은 라스베이거스에서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국제소비자가전박람회가 열리기 전에 이미 삼성 임원들은 취재진이 인터뷰에서 질문해서는 안 되는 주제를 체크해주었다. 전략적 의미가 있는 질문들은 오로지 한국 본사에 서면으로만 제출할 수 있었다.
여느 박람회에서처럼 취재진은 국제소비자가전박람회에서 공식적 일정이 아닌 우연한 계기로 삼성 관계자를 만나게 됐다. 취재진은 예정에 없던 삼성 관계자와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대외비를 전제로 삼성그룹이라는 성채의 내부 상황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삼성의 성공 비결은 속도, 관리와 두려움 외에 엄격한 위계질서라는 또 다른 이유가 더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 삼성 관계자는 "삼성 임원진은 서구 기업의 특징적인 합의 문화는 약점이 많고, 온갖 이해관계를 고려하면 시장에서 필패할 수밖에 없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은 이에 대해 공식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또한 삼성에 서면으로 보낸 질문에 대해서도 취재진은 답변을 받지 못했다.
세계 NGO, '삼성 무자비하다' 비판
이미 오래전부터 노조와 비정부기구(NGO)들은 삼성이 권위적이고 무자비하다고 비판해왔다. 삼성은 2012년 '공공의 눈 상'(Public Eye Award·그린피스가 2000년 이후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되는 세계경제포럼에 맞춰 매년 세계 최악의 악덕기업을 선정해 주는 상)의 유력한 우승 후보였다. 환경을 심각하게 파괴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기업에 그린피스가 매년 수여하는 불명예 상이다. 올해 삼성은 '공공의 눈 상' 3위를 차지했다. "대한민국에서 기업 자산가치 1위의 삼성은 공장에서 일부 금지된 고독성 물질을 사용하면서도 직원들에게 이를 공지하거나 직원을 보호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삼성 직원 최소 140명이 암에 걸렸고, 젊은 직원 최소 50명이 암으로 사망했다.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삼성은 책임을 부인하고 있으며, 암에 걸린 직원들과 사망 직원들을 비롯해 이들의 가족까지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있다." 삼성은 이런 비난에 대해 일절 입을 다물고 있다. 겹겹이 둘러싸인 삼성 성채의 벽은 높고 그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이건희 회장을 둘러싸고 있는 삼성맨들은 시종일관 이런 자세로 여기까지 왔다. 삼성그룹 성공의 그늘에 대한 폭넓고 공개적인 토론은 한국 이외에서는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사람들은 그저 삼성 제품과 삼성의 눈부신 성장에 환호할 뿐이다. '별 3개'라는 의미를 지닌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지난 몇 년간 몇 배로 껑충 뛰었다. 현재 삼성은 전세계 20대 브랜드에 속한다. 이는 아마존과 나이키, 네슬레를 훌쩍 따돌린 눈부신 성적이다.

마르쿠스 로베터 Marcus Rohwetter 경제부 기자

ⓒ Die Zeit·번역 김태영 위원

2012년 3월 8일 목요일

경제정책의 기본은 ‘고정관념의 탈피’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3-07일자 기사 '경제정책의 기본은 ‘고정관념의 탈피’'를 퍼왔습니다.

한국경제가 갖고 있는 문제는 너무 많고 고질적이다. 경제의 거의 모든 부문에서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 괜찮은 일자리 부족, 직업 또는 직장간 보수와 안정성의 과도한 격차, 물가상승과 서민가계의 생활고, 전세 폭등과 집값 불안, 가계부채와 정부부채의 급증, 임대소득자와 고소득 자영업자 등의 세금 탈루, 금융 산업의 낙후성, 금융과 실물 면에서의 과도한 개방, 중소·중견기업의 취약과 재벌의 경제력 집중 등 큰 덩어리만 보아도 이 정도로 많다.  여기에다 과다한 사교육과 죽기 살기 식 입시경쟁으로 대표되는 교육문제도 직업 간 과도한 격차 즉 국민경제의 과실을 승자가 독식하는 경제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한 문제가 다른 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문제들이 대부분 구조적이어서 한두 가지 정책으로 단기간에 해결되기도 어려워 보인다.
2013년에 대비한 한국경제의 새로운 발전방안을 찾기 위해서는 그간 언론이나 많은 학자·전문가들이 만든 한국경제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이나 생각을 떨쳐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대표적인 것이 금리인하나 환율인상을 주장하는 사람을 성장론자로 부르는 것, 일자리 부족은 투자부진 때문이라는 것, 우리나라 은행은 규모가 작아 경쟁력이 없다는 것 세 가지이다. 이 세 가지 고정관념이 여러 경제정책의 실패에 근저에 자리하고 있다.
저금리, 고환율, 재정지출 확대의 실상은?
첫째가 금리인하나 환율인상, 재정지출 확대가 성장정책이며 이러한 정책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성장론자라고 많은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은 장기적으로 생산요소인 자본, 노동, 기술과 이에 영향을 주는 요인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것이 경제학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원칙의 하나이다. 이른바 성장론자로 불리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대로 금리인하, 환율인상, 재정지출 확대로 자본축적이 빨라지고 노동인구가 늘어나고 근로자의 숙련도가 개선되고 기술향상이 촉진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보아도 쉽지 않다.  만약 이러한 정책으로 자본·노동·기술 수준을 바꾸어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면 세계에서 저개발국가로 남아 있을 나라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정책수단은 약간의 거시경제학 지식만 있으면 큰 어려움 없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리인하, 환율인상 등은 일시적으로 성장을 촉진할 수 있으나 공짜 점심이 없듯이 반드시 부작용이 있고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장의 효과마저 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더욱이 시장의 흐름이나 경제여건에 맞지 않는 금리인하나 환율인상은 단기적인 경기부양 효과마저 내지 못한 채 시장을 왜곡하는 반시장적 정책이 되거나 물가상승, 부동산 거품 등의 부작용만 초래할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 시장과 경제여건에 맞지 않는 정책이 여러 번 있었다. 대표적인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2008년 초 환율의 급격한 상승을 유도한 정책이다.
금리, 환율, 재정 등의 거시경제정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을 위한 정책수단이 아니고 경기변동의 진폭을 축소하고 가격변수의 급격한 변동을 방지하기 위한 정책수단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따라서 진정한 성장론자는 금리, 환율, 재정 등의 거시정책에만 매달리지 않고 성장의 결정요인인 자본총량과 가용노동량 확대, 기술혁신 등을 위한 법과 제도, 관행 개선에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진정한 성장정책은 가계저축 확대와 생산적 투자 혁신을 위한 정책, 여성인력 활용도 제고와 노동시장의 불균형 해소 등을 통한 가용인력 확대정책, 과학기술 육성을 위한 교육개혁정책, 농업과 금융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 등이다. 이렇게 본다면 여성의 경제활동을 확대시키는 공공 보육시설 설치나 노동시장 불균형 해소를 위한 실업급여 확대정책은 복지정책이기 이전에 훌륭한 성장정책이고 경제발전정책이다.
일자리 부족이 투자부진 때문인가?
두 번째 벗어나야 할 고정관념은 한국의 일자리 부족문제가 투자부진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중요 일자리 대책은 공공근로나 인턴 확대 등을 제외하고는 주택건설과 토목공사 등 건설투자 확대, 금리인하 등을 통한 투자 활성화, 재계 인사와의 회합 등을 통한 기업의 투자 요청 등 거의 모두가 투자 확대와 관계되는 것이었다. 즉 역대정부는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일자리 창출을 위해 투기조장에 가까운 주택경기 부양책을 쓰거나 환경파괴를 무릅쓰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했으며 기업의 불법과 탈법을 용인하면서까지 투자확대를 요청했다. 그런데도 고용상황은 국민 모두가 느끼듯 모두 나빠지고 있다. 장기간 지속된 투자확대정책에도 실업문제가 악화되고 있는 것은 일자리 부족이 투자부진 때문이라는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준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에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독일, 일본, 대만 등에 비해 높은 상태를 1980년대 이후 장기간 지속하고 있어 경제구조상 투자가 부족하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다 기업은 많은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신규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 그나마 기업의 투자도 공장을 새로 짓거나 시설을 늘리는 것 보다는 고용효과가 마이너스인 다른 기업의 인수나 합병, 해외투자에 주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는 국내에서 투자가 어느 정도 포화상태에 이르러 기업이 기대하는 수익을 낼만한 신규 투자기회를 찾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다 건설투자는 이용객이 거의 없는 지방공항, 세금만 축내는 민자 고속도로와 교량, 중복 건설되어 다니는 차가 거의 없는 지방도로, 수도권의 미분양주택 등 심각한 과잉 징후가 곳곳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일자리 부족은 투자부진 때문이 아니고 투자와 수출 등이 늘어나도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정책실패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이전처럼 투자가 늘어나 경제가 성장하면 일자리가 저절로 늘어나는 호시절은 지나갔다. 이는 10억 원 직접생산에 필요한 취업자 수인 취업계수의 변화추이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2005년 가격기준 전 산업 평균 취업계수는 1995년 15.9명, 2000년 10.9명, 2009년 7.2명으로 낮아졌다. 특히 제조업 취업계수는 1995년 8.5명에서 2009년 2.5명으로 크게 하락했다. 즉 같은 상품을 만드는데 드는 인력이 14년 만에 1/3 이하로 줄어들었다.
이와 같은 일자리 창출능력 약화는 경제발전과 산업구조 고도화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취약한 경제구조와 정책실패 등이 결합되어 더 심화된 것이다. 한국의 수출산업은 자본집약적 산업의 비중이 크고 부품·소재산업의 경쟁력이 취약해 수출액이나 생산금액 대비 전후방연관효과가 작다. 한국은 수출의 부가가치 유발계수가 2008년 0.533으로 일본 0.834(2005년), 독일 0.686(2007년)보다 낮아 1,000원 상품을 수출하면 533원의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467원은 원자재 수입 등으로 국외로 유출된다. 이와 함께 수출은 취업유발계수가 9.4명으로 소비 17.1명, 투자 13.1명보다 크게 작아 수출이 늘어나도 내수가 위축된다면 고용은 오히려 감소할 수 있는 구조이다.
그리고 노동시장의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실질적인 대책이 거의 없었다는 것과 노동시장 경직성에 대한 잘못된 대응도 일자리 창출을 저해하는 큰 요인이다. 한국은 직업과 직장별로 보수와 안정성 등에서 차이가 너무 커서 구직자들은 당장 일자리가 있어도 전문직이나 공무원 등과 같은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하려고 많은 시간과 비용을 소모하게 된다. 반면 중소기업과 지방기업 등에서는 인력 확보와 수시로 교체되는 직원의 교육에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이와 같은 구직자와 구인자 양측의 불균형이 실업자를 늘리는 한 요인이다.  또한 한국에서는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완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파견직이나 계약직이 광범위하게 도입됨에 따라 노동시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이중 구조화되었다. 공공부문이나 대기업의 정규직처럼 좋은 일자리는 경직성이 개선되지 않고 경기가 좋아져도 채용이 크게 늘지 않는다. 반면에 비정규직은 노동유연성이 과도하게 높을 뿐 아니라 보수도 낮은 탓에 비정규직 취업자 대부분은 스스로를 취업상태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비정규직 확산은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등 노사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어 그 자체가 일자리 창출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종합해 보면 투자와 수출 확대 등과 같은 외형적 성장으로는 일자리 창출이 쉽지 않고 경제 체질을 일자리 창출이 큰 경제구조로 바꾸는 정책, 일자리 창출을 저해하는 제도나 관행의 개선, 노동시장의 불균형 완화정책 등이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정책이라는 것이다.
대형은행이 경쟁력이 높다?
세 번째 잘못된 생각은 은행의 규모가 커져야 경쟁력이 있고 은행이 높은 수익을 내고 있는 것이 은행경영을 잘해서라는 것이다. 은행을 대형화해야 경쟁력이 생긴다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것이다. 경쟁력 있는 은행은 대형화될 수 있지만 대형은행이 경쟁력을 갖는다는 보장은 없다. 세계적인 대형은행은 경쟁력 있는 은행이 영업의 다변화, 국제화 등 제대로 된 경영을 통해 장기간 성장한 결과물이다. 은행이 대형화된다고 저절로 경쟁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합병 등으로 대형화된 은행이 경영실패로 도산할 경우 한국경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이 될 수 있다. 우리금융지주, KB금융지주 등의 자산 규모는 한국의 1년 예산 규모인 300조 원을 상회한다. 은행은 매우 위험한 산업으로 세계 금융위기 사례에서 보듯이 세계적 은행도 잘못하면 쉽게 망한다. 우리도 예외일 수 없어 언젠가는 한국의 대형은행도 도산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의 대형은행의 도산이 국내에 주는 피해는 UBS, HSBC 등과 같이 국제화된 대형은행의 도산이 해당 국가에 주는 피해보다 훨씬 클 것이다. 한국의 대형은행은 영업이 거의 대부분 국내에 집중되어 있어 도산의 피해가 모두 국내에 남기 때문이다. 경쟁력없는 대형은행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일본의 은행산업이다. 당시 자본이나 자산 규모 등을 기준으로 세계 10대 은행의 절반 정도가 일본계 은행이었다. 당시 일본계 은행은 큰 덩치를 기반으로 국제화를 적극 추진했으나 1990년대 말에 위험관리능력과 국제금융능력 부족 등으로 대부분 부실화되어 일본 경제에 큰 짐만 남긴 채 합병 등을 거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한국의 대형은행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몇 조원씩 순이익을 내고 감독당국이 수수료율 인하와 사회공헌 확대를 종용할 정도로 은행산업의 수익성이 매우 좋다. 이와 같은 은행산업의 고수익은 뛰어난 경영능력 덕분이 아니고 은행의 신설금지 등 정책당국의 과보호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 은행이 독과점적 이익을 향유할 수 없는 외국에서는 제대로 영업을 못하고 국제경쟁력이 없다는 점, 경쟁과 업무규제가 심한 서민금융기관의 경우 경영상태가 나쁜 기관이 많다는 점, 시장이 보다 경쟁적인 보험과 증권 부문의 경우 경영상황이 안 좋은 기관이 꽤 있다는 점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한국의 은행산업은 신규 진입이 없는상황에서 합병 등을 통해 손쉽게 대형화하여 고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 칼럼은 계간 ‘광장’(2012 봄)호에 게재된 필자의 글 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2011년 11월 25일 금요일

[사설]‘경쟁력 키우면 된다’는 무책임한 FTA 피해대책


이글은 경향신문 2011-11-24일자 사설 '[사설]‘경쟁력 키우면 된다’는 무책임한 FTA 피해대책'를 퍼왔습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날치기 처리된 이후 정부와 여당은 ‘이제 남은 것은 후속대책뿐’이라고 강조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관계장관회의에서 피해 예상분야에 대한 지원대책을 주문한 데 이어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도 “민주당이 요구한 방안의 100%를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후속대책은 결국 기존 FTA 피해대책의 지원액을 얼마간 늘리는 것이 될 공산이 크다. 협정 발효를 기정사실화하고 피해계층의 FTA 반대를 혈세로 무마하려 한다는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미 FTA 피해대책은 전혀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지원액을 늘린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 대표적인 피해분야인 농축산업의 대책을 보면 피해 추정에서부터 부실의혹을 받는다. 우리는 한·미 FTA 발효 이후 미국 농산물 수입이 연평균 4억2000만달러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 반면 미국 농무부가 추정한 한국에 대한 수출증가액은 2조1000억원으로 우리 추정치의 5배다. 이 같은 허술한 피해 추정을 바탕으로 정부는 지난 8월 22조원 규모의 피해대책을 발표했다. 그나마 수년째 이미 시행 중인 지원사업, 농어민 숙원사업 등 한·미 FTA에 따른 피해보전과 거리가 먼 갖가지 지원책을 쓸어담아 22조원을 채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피해보전 직불제를 제외하면 사실상 융자 형태의 지원이 대부분이다. 농업 다음으로 피해가 예상되는 제약업계도 정부의 피해 추정치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가까스로 마련된 유통법·상생법이 한·미 FTA 발효로 무력화될 경우 중소 유통상인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장치마저 없어지게 된다.

피해산업·피해계층에 대한 정부의 생각은 단순하고 무책임하다. ‘개방 파고에 맞서 경쟁력을 높이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분야가 역시 농업이다. 역대 정권은 시장 개방 때마다 ‘농업도 경쟁력을 키우면 된다’며 수십조원의 혈세를 퍼부었다. 복지정책·농촌정책·농업정책이 혼재된 ‘돈으로 때우는’ 정책의 결과 농업 경쟁력은 제자리걸음인 채 농민들만 빚더미 위에 올라앉게 됐다. 한국 농업의 미래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청사진을 제시하기보다는 개방 반대를 그때그때 혈세로 무마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민이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고 ‘개방’ 얘기만 나와도 사색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경쟁력을 키우면 된다’는 것이 정부 논리다. 이 대통령은 그제 관계장관회의에서 “농업이라고 세계 최고가 되지 말란 법 없다. 농민들도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농업을 수출산업으로 키울 수 있다는 적극적 자세를 갖는다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농민이 적극적으로 노력하면 세계 최고의 농업이 될 수 있다는 대통령의 지적에 공감하고 희망을 가질 농민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