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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17일 화요일

매출 100조 롯데, 왜 골목상권에 목메나?


이글은 노컷뉴스 2012-07-17일자 기사 '매출 100조 롯데, 왜 골목상권에 목메나?'를 퍼왔습니다.
골목상권 침해행태에 불매운동 돌입

 

올 초 국내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가 유통업계의 핫이슈로 부상한 상황에서도 롯데가 갖은 꼼수를 동원해 골목상권을 옥죄다 결국 제품불매운동이란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됐다.

업계에서는 롯데가 기업의 사회적책임이란 측면은 도외시한 채 상권확장만을 추구하다 그룹전체의 이미지 실추를 자초했고 더 나아가 업계전체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여론이 들끓고 있다.

◈ 불매운동, 기업의 사회적 책임 방기가 부른 禍

골목상권살리기 소비자연맹 등 전국 80여개 소상공인, 소비자단체는 16일부터 롯데그룹의 모든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에 들어갔다.

단체들이 내세운 불매운동의 이유는 대형마트와 SSM의 의무휴업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카드수수료 체계 개편에도 전향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불만이 작용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홈플러스와 이마트 등 다른 대형 유통기업들도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유독 롯데그룹이 불매운동의 타깃으로 떠오른 데는 롯데가 1위 유통기업으로서 사회적책임을 등한히 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최근 롯데슈퍼가 보여준 골목상권 침해행태가 결정적이었다. 롯데슈퍼는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대도시 지역 SSM점포 수를 전방위적으로 늘려가고 있다. 롯데슈퍼가 동원한 방법은 '가맹점 늘리기'와 '농수산물 매출 비중을 인위적으로 51%까지 끌어올리기' 등이다.

롯데는 대중소기업 상생법 때문에 더 이상 점포수를 늘릴 수 없게 되자 아예 프랜차이즈 점포를 늘리는 방법으로 전환해 2009년 이후 61개의 가맹점을 추가 확보했다. 이런 행태는 홈플러스 등 다른 업체와 과당 경쟁을 촉발시켜 중소상인 몰락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롯데는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 골목상권 침해 선봉은 '롯데슈퍼'

농수산물 매출 비중 늘리기는 중소상인은 물론 여론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대형마트와 SSM에 대해 월 2회 의무휴업하도록 했지만 농수산물 매출비중이 51%를 넘으면 예외를 적용받을 수 있다. 

롯데슈퍼는 인위적으로 매출비중을 조정하는 방법으로 서울 여의점 등 30여개 점포의 휴일영업을 추진중이다. 3개 점포는 이미 영업을 재개했다. 롯데관계자는 16일 "농협하나로마트는 가능한데 우리는 왜 안되는 지 모르겠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이와 관련해,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롯데가 자사 이익을 쫓아 뻔히 보이는 꼼수를 쓰는 바람에 유통업계 전체가 도매금으로 비판받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며 롯데를 성토했다.

SSM 점포 수에서 압도적인 1위를(431개) 달리고 있는 롯데가 오히려 홈플러스나(319개)이마트보다(100개) 더한 행태를 보이다 보니 자연 롯데가 비판의 타깃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성과지상주의 기업문화에 '경고음'

여기에는 롯데그룹의 독특한 기업문화도 한 몫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롯데는 다른경쟁기업은 물론이고 그룹 내 유통사업부문 간에도 한치 양보없는 경쟁을 통해 경영성과로 평가받는 성과주의 원칙이 확고하다. 

정부와 입법부가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여러가지 보완장치를 마련하면서 매출감소가 발등의 불이 되자 갖은 수단을 동원해 만회에 나서고 있고 한편으로 그룹 수뇌부는 이를 통제할 능력을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는 형국이다.

매출 100조를 달성하는 기업이 슈퍼마켓 몇 개 늘리고 꼼수로 휴일영업을 회피하려고 매달리는 모습에서 그룹 수뇌부의 역량과 경영철학이 어떤 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유통기업은 국민과 소비자을 직접 대하는 특성상 더더욱 여론을 살피고 약자를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지만 최근 롯데가 보여준 행태는 이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는 지적이다. 

◈ 롯데, "특정기업 불매운동 유감"

롯데그룹은 시민 상인단체의 롯데제품 불매운동과 관련해 유감을 표시했다.

롯데그룹은 16일 "확인 결과 이들 단체의 요구 사안들은 그 동안 체인스토어협회, 카드업계 등과 지속적으로 협의해 오던 내용이다"며 "개별 기업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그룹 차원에서 단체들의 요구를 수용하기 어려움을 시사했다.

특히 "이런 문제를 두고 특정기업을 대상으로 불매운동을 벌인다는 점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롯데그룹의 입장으로 미뤄볼 때 롯데가 독자적으로 단체들의 요구사항이나 불만해결을 위해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소비자, 상인단체가 공언한 것 처럼 불매운동이 힘있게 전개될 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롯데가 대기업 골목상권 침해논란의 첨두에 서게됨으로써 기업이미지 훼손과 영업손실은 불가피해 보인다.

CBS 이재기 기자

2012년 4월 8일 일요일

놀라운 생산력 뒤 사회적 책임 ‘그늘’


이글은 Economy Insight 2012-03-22일자 기사 '놀라운 생산력 뒤 사회적 책임 ‘그늘’'을 퍼왔습니다.
[Cover Story] ‘글로벌 삼성’의 글로벌 스탠더드- ① 독일 주간지 가 본 삼성


삼성은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세계적 기업이다. 세계 언론들은 삼성의 경쟁력에 놀라움을 표시하는 한편, 삼성의 사회적 책임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등에서 삼성의 성공요인을 분석하는 기사를 다룬 데 이어, 독일 , 프랑스 , 영국 등 유럽 언론들도 지난 2~3월 한 달 사이에 삼성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특히 독일 주간지 는 2월16일 발행된 2012년 8호에서 2쪽에 걸쳐 삼성을 다뤘다. 는 '명령에 의한 성공'(Erfolg auf Befehl)이라는 기사에서 삼성이 애플에 맞설 기업이라고 높게 평가하면서도 백혈병 산재 논란, 무노조 등 아픈 모습도 함께 짚었다.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글로벌 기업이 되려면 삼성의 행보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아야 한다. 는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삼성의 빛과 그림자를 분석함으로써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안착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본다. _편집자
는 삼성이 권위적이지만 또한 창의적이라고 평가한다. ‘명령에 의해 창의성까지 만들어내는’ 힘이 삼성을 세계 일류기업으로 만든 동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칭찬만 하기에는 삼성의 그림자 또한 작지 않다고 지적한다.
"직원이 배가 고파야만 기업이 성공할 수 있다." 삼성 임원들 사이에는 아직도 이런 조롱 투의 말이 나돌고 있다. 삼성이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이 말을 자구 그대로 이해하고 실행에 옮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990년대부터 이건희 회장은 점심 식사를 하면서 임원진과 일간회의를 했다. 하지만 실제 점심을 먹은 사람은 이 회장 혼자뿐이었다. 창립자 이병철의 아들이자 삼성전자 회장 및 삼성그룹 대주주인 이건희 회장은 세계 막강한 재벌그룹의 실력자다.
삼성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유명세를 타고 있다. 지난 한 해에만 전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삼성 스마트폰을 샀다. 삼성 텔레비전과 노트북은 전세계 가정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삼성 제품 사용자 중에 삼성그룹과 삼성가의 실제 모습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업컨설턴트이자 삼성통인 토니 미셸은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토니 미셸은 야심만만한 삼성 임원진의 모습을 다큐멘터리에 담기도 했다. "삼성은 내부 정보가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경호가 삼엄한 성채와 같다."
삼성이라는 성채는 물 샐 틈이 없다. 삼성은 저가 제품을 대량생산하는 업체에서 고부가가치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급부상한 아시아의 재벌그룹 중 대표 주자다. 수평적 위계질서와 최대한의 창의적 상상력을 신봉하는 서구 기업들과 달리, 삼성은 벤처기업의 창의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권위적 특징까지 보인다. 삼성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던 소니 같은 기업체들을 손쉽게 따돌리고, 이제 미국의 애플과 대적하는 상황이다. 이런 삼성을 좀더 알려면 견고한 성채 너머로 엿보는 것 외에 딱히 다른 방법이 없다.
전세계에서 막강한 경제력을 갖춘 삼성의 창업 일가는 혼맥을 통해 정계 인사들과 탄탄한 네트워크를 갖추었다. 그래서 이건희 회장은 사법기관의 유죄판결조차 피해가는 막강한 권력을 누리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주민이 지난 2월27일 대형 할인매장 코스트코에서 60인치 삼성 LED TV를 구입한 뒤 트럭에 싣고 있다. 뉴시스 AP

라스베이거스에서 겨우 만난 삼성 임원
취재진은 한국을 직접 방문해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삼성에 요청했으나, 삼성은 이를 거절했다. 몇 주가 지나서야 삼성의 고위 임원과 직접 통화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삼성은 여전히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에 최대한 거리를 두었다. 삼성은 서울 본사에서 9600km 떨어진 미국 모하비사막에서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취재진이 삼성 쪽 관계자를 만난 것은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전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소비자가전박람회(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였다.
국제소비자가전박람회에서 삼성이 설치한 부스는 최대 규모였고, 전시 품목도 가장 많았다. 신시사이저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이 컨벤션센터 전시장에 울려퍼졌다. 전시장 천장에는 디지털 시대의 샹들리에인 브라운관 10여 개로 된 구조물이 매달려 있었다. 구름같이 모여든 관람객 사이를 삼성전자 최지성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전자 직원들 한 무리가 힘겹게 지나가고 있었다. 취재진의 이건희 회장에 대한 인터뷰 요청은 두말할 것도 없고, 최지성 부회장의 인터뷰 요청 역시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그나마 박람회장에서 콘크리트 계단을 올라가니 다소 조용했다. 복도에는 짙푸른 삼성 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서 두꺼운 일회용 종이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고 있었다. 임시로 설치한 벽 뒤에는 한 남자가 취재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시몬 성(성일경 상무, 이하 성 상무)이었다.
삼성전자의 TV부문 임원인 성 상무는 앞으로 벌어질 애플과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넥타이와 양복 차림의 성 상무는 여유로워 보였고, 마치 은행 직원처럼 단정하고 보수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스티브 잡스 애플 전 회장도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업계의 풍토에 비추어볼 때, 그의 모습은 다소 의외였다.
몇 년 전부터 삼성과 애플은 해당 분야 1위 자리를 놓고 일전을 벌이고 있다. 올해에도 삼성과 애플은 평화로운 상태를 맞이하지 못할 것 같다. 소문에 의하면,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이어 TV를 출시할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지난해 10월 사망 직전 자서전 집필 작가에게 애플사의 TV 출시 계획을 암시했다. 잡스는 당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유저 인터페이스가 설치될 것"이라고 했다. 성 상무는 이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삼성은 애플의 TV 출시에 피하지 않겠다"며 어조는 부드럽지만 전쟁 선포나 다름없는 발언을 했다. "애플이 스마트TV를 출시하면 전체 업계에는 이득이 될 것이다. 애플은 삼성의 또 다른 경쟁사가 되는 셈인데, 오랜 경험이 있는 삼성은 이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언제나 만반의 준비 갖추고 있는 삼성
삼성은 언제나 만반의 투쟁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자사 홍보물에서 삼성은 '아이폰 이용자는 애플에 조종당하는 멍청한 노예'라고 조롱했다. 한편, 세계 곳곳에서 삼성과 법정 싸움을 벌이는 것이 애플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삼성의 갤럭시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그대로 베껴왔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2011년 삼성의 스마트폰 판매량이 애플보다 더 많았다. 태블릿의 경우, 삼성은 법정 공판에서 하나씩 승리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애플에 스마트TV가 여전히 미래 비전에 불과한 반면, 삼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분야에서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삼성은 2008년 세계 최초로 TV에 인터넷을 접목했다. 이전까지 컴퓨터에서만 가능하던 인터넷 서핑, 사진 및 영화 보기가 이제 거실 쇼파에 앉아서 TV 브라운관을 통해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치 항상 가능했던 것처럼 너무나 손쉽게 말이다. 최신 삼성 TV는 언어나 동작만으로도 조작할 수 있다. 게다가 이 모델은 평면 화면과 테두리가 거의 없는 탁월한 디자인을 자랑한다.
2004년만 해도 전세계 TV 분야에서 17위에 불과하던 삼성이 이렇게 눈부시게 성장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당시 삼성은 '기껏해야 저가의 TV를 생산해낸다'는 악평에 시달리고 있었다.
삼성은 부정적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2005년 회사의 최고 엔지니어 300여 명을 TV 생산 부문으로 인사발령을 냈다. 이들은 삼성전자에서 최고 실적을 내고 있는 컴퓨터 모니터 부문에 종사하고 있었다. 이건희 회장은 1990년대부터 급격히 부상한 중국의 경쟁업체들과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최고 품질'을 구호로 외쳐오던 터였다. TV 부문에 투입된 엔지니어 300여 명은 자신에게 주어진 미션을 완벽히 이행했다. 이들이 3D TV와 인터넷과 연계된 TV를 개발하는 등 기술 개발의 최정상에 올라서면서, 삼성은 틈새시장 업체에서 일약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떠올랐다.


독일의 대표적 종합 주간지 <디 차이트>가 지난 2월16일 발행된 2012년 8호에서 삼성을 집중 조명했다. 이 기사에서 <디 차이트>는 삼성의 경쟁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사회적 책임 경영에는 개선돼야 할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삼성의 성공 비결은 빠른 실행 속도
삼성의 성공은 상명하달식 체계에 기인했다. 삼성은 창의성조차 상부 지시를 통해 뚝딱 만들어내면서 창의력이 부족한 저가 제품 양산 업체의 이미지에서 벗어났다. 삼성보다 TV 판매량이 더 많은 기업은 전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삼성 TV는 이제 어느 기업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탁월한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때 업계 최강이던 파나소닉이나 소니 등 경쟁업체가 부진을 면치 못하는 동안, 삼성은 독일에서 지난 5년간 LCD TV 평균 가격이 600유로로 반 토막이 나도 경쟁력을 잃지 않았다.
성 상무는 삼성이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비결을 잘 안다. "삼성의 성공 비결은 속도다. 삼성은 결정과 실행이 아주 빠르다." 하지만 성 상무는 삼성의 성공 비결을 더 이상 털어놓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도가 전부는 아니다. 삼성이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비결을 한스 비난츠 삼성 독일 지사 선임부사장이 자세하게 말해주었다. 그도 국제소비자가전박람회에 참석하기 위해 라스베이거스에 와 있었다. 비난츠 부사장은 2005년 삼성의 독일 지사에 오기 전까지 10년 이상 일본 가전업체 파나소닉에서 일했다. 삼성그룹의 대다수 임원들과 비교할 때, 그가 삼성의 경쟁사인 일본 가전업체에서 일한 경력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삼성 임원들은 대부분 성 상무처럼 한국에서 이른바 명문 대학을 졸업했고, 삼성이 처음이자 유일한 직장이다. 지금은 양상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존속하는 몇 개월간의 오리엔테이션에 삼성 신입사원들은 기업철학을 체내화해 자신을 삼성이라는 기업체의 일부로 만들도록 훈련받는다. 마침내 삼성 직원들은 '삼성맨'으로 거듭난다.
1분만 성공 즐긴 뒤 59분은 다음 과제 준비
토니 미셸은 "삼성이 해외의 노련한 경영인들을 영입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년밖에 안 됐다"고 했다. 한스 비난츠처럼 경쟁사에서 영입된 임원은 삼성이 초일류기업으로 떠오르던 시점에 대대적으로 시작된 삼성의 변화를 대변한다.
한스 비난츠 부사장은 직설적인 사람이었다.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삼성의 성공이 단순히 속도뿐만 아니라, 감독과 두려움에 기반한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삼성에서 속도전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가전제품은 초밥과 같다. 만든 지 오래된 초밥은 팔 수 없다." 삼성 제품 거래 현황을 자동화한 보고 시스템 덕택에 삼성은 글로벌 수요량 추이를 시간대별로 확인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제품의 거래 흐름을 며칠 이내에 조정할 수도 있다.
삼성의 두 번째 성공 비결은 통제 혹은 감독이다. 삼성은 외부 의존도를 최대한 낮추려고 제품 부품을 최대 95%까지 자체적으로 생산한다. 반면 애플은 경쟁업체에서 납품받는 부품에 크게 의존한다. 대표적으로 애플 아이폰4 부품 비용의 25%에 해당하는 저장칩이 바로 삼성 제품이다. 이 비율은 최신 아이폰4S 모델에서 다소 떨어졌지만, 여전히 삼성이 납품하는 부품 비율은 높은 수준이다.
삼성의 세 번째 성공 비결은 두려움이다. 한스 비난츠 부사장은 "삼성에서의 1시간은 현재의 성공에 대한 기쁨 1분과 다음 과제 준비 59분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이런 삼성의 분위기에서도 지난 10년 이상 이루어진 변화가 감지된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 윤종용 전 부회장과 삼성의 변화를 이끌었다. 윤종용 전 부회장은 1980∼90년대 GE의 최고경영자(CEO)이던 전설적 경영인 잭 웰치 신봉자로 알려졌다. 직원들에게는 엄격하기 그지없던 잭 웰치는 '중성자폭탄 잭'(잭 웰치가 건물은 파괴하지 않고 사람만 살상하는 중성자폭탄처럼 많은 직원들을 정리해고했음을 지적하는 말)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잭 웰치는 위기관리자로도 명성을 날렸다. "어떤 위기도 피 흘리지 않고는 끝나지 않는다"고 했던 잭 웰치는 직원들에게 문제를 외면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윤종용 전 부회장은 잭 웰치처럼 기업의 인수·합병과 대량해고 역시 문제 해결 방법이라는 것을 삼성에 그대로 적용했다. 하지만 한국의 전통적 사고방식에서 대량해고는 드문 방식이었다.
이 시기부터 삼성은 지속적으로 경계 태세에 있는 초일류기업이 됐다. 항상 다음 위기를 방어할 태세를 갖춘 삼성은 혹시 위기 상황을 인지하지 못할까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삼성은 스마트폰과 TV가 과거의 유물이 돼버릴 미래를 대비하는 플랜도 당연히 갖고 있다. 삼성에서 미래의 유망 비즈니스 분야로는 조명과 의료기술이 손꼽힌다. 그리고 삼성은 한번 손에 쥔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키기로 유명하다. 지난 1월 유럽 공정거래감독기관은 삼성이 시장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불공정거래를 저질렀는지 조사하고 있다. 이는 최근 2년 동안 삼성에 대해 벌어지고 있는 두 번째 조사다.
박람회장은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로 시끄러웠다. 최신 TV를 몸의 움직임으로 조작해보는 유리 부스 앞에는 호기심 많은 방문객들이 줄지어 기다렸다. 관람객은 5명 단위로 입장할 수 있었다. 입장한 방문객은 평면 브라운관을 향해 손짓으로 TV 채널을 돌리거나 소리 크기를 조정했다. 삼성의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는 제품 테스트 부스에 전시된 물건만으로 웬만한 가전제품 마트를 채우고도 남을 듯했다. 이 부스에는 휴대전화, 스피커, 컴퓨터, 카메라, 세탁기, 심지어 인터넷과 연결된 냉장고도 전시돼 있다.
2011년 삼성그룹 홍보 동영상을 보면, 그룹에는 삼성전자 외에 많은 기업들이 포함돼 있다. 삼성그룹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소(삼성중공업)와, 세계 최대 규모의 생명보험사(삼성생명)가 있다. 또한 화학업체, 건설업체, 호텔, 현대적인 병원 4개(한국과 두바이 소재), 놀이공원, 경제연구소, 홍보기획사, 한국의 대표적인 야구클럽이 있다. 삼성그룹은 서로 완전히 다른 분야의 계열사 10여 개가 특이한 방식으로 공존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오른쪽 세 번째)은 지난 1월1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멀티미디어 가전 전시회 'CES 2012'를 참관차 방문해 "일본은 힘이 좀 빠진 것 같고, 중국은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뉴시스

삼성 매출 규모, 세계 41위 국가와 맞먹어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삼성이 곧 한국이다. 삼성그룹이 발표한 2010년 그룹 총매출액은 2220억달러로, 이는 한국 국민총생산(GNP)의 5분의 1을 넘는 수치다. 만약 삼성그룹이 국가였다면, 삼성은 국가 경제 규모 순위에서 41위를 차지했을 것이다. 삼성그룹이 계획한 올 한 해 투자액으로 주식을 산다면, 독일 프랑크푸르트 주식시장에서 바이어스도르프와 루프트한자 항공사 전체 주식을 매입하고도 남을 것이다.
한국 경제는 '재벌'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대기업들로 유명하다. 재벌은 창업주 일가가 경영을 맡고 있다. 대표적 재벌인 현대와 LG는 삼성보다 규모가 작다.
공식적으로는 서로 분리된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특이한 방식으로 연계돼 있다. 기업문화와 기업 역사를 공유하는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때론 '삼성'이라는 타이틀로, 때로는 상호 출자로 서로 얽혀 있다. 삼성 계열사들은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고 CEO가 다르지만, 삼성의 창업주 일가는 전체 삼성그룹을 예나 지금이나 지배하고 있다.
삼성은 1930년대 후반에 창립됐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아버지 이병철 전 회장은 당시 대구에서 건어물과 채소를 중국에 수출했다. 사업이 번창하자 이병철 전 회장은 창업 뒤 얼마 되지 않아 보험회사와 무역회사를 설립했다. 나중에야 생긴 '삼성'이라는 명칭은 아들을 셋 둔 이병철 전 회장이 '별 3개'라는 의미로 붙인 것이다. 1960년대 이병철 전 회장의 사업은 하락세를 그렸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이병철 전 회장을 비롯한 대기업 총수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은 심지어 이병철 전 회장을 체포하려고 했지만, 결국 이병철 전 회장과 합의를 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오랜 기간의 일제 식민지 시대와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한국 경제는 곤두박질쳤다. 빈곤한 국가 경제를 일으켜세우려면 수출을 크게 늘려야 했기에 대기업들을 후원했다. 대기업 후원은 뒷날 민주정부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어쨌든 당시, 한국이 세계시장을 석권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대기업 육성뿐이라고 군사정권은 굳건히 믿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대기업들이 각각 어느 분야에 투자할 것인지도 일부 결정했다. 군사정권의 경제 투자 계획은 예상대로 맞아떨어졌고, 낮은 대출이자와 세제 혜택, 저렴하면서도 열의에 넘치는 노동력 덕택에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은 오늘날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정치권과 재벌 총수들의 관계는 항상 이중적이었다. 권력자들은 재벌이 '국가 안의 국가'로 성장하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또 한편으론 그들의 정치·경제적 목표 달성을 위해 재벌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정권과 재벌은 지금도 여전히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재벌들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한 권력을 누리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지 에 따르면, 1987년 작고한 아버지 이병철 전 회장의 뒤를 이어 삼성전자 회장에 취임한 이건희 회장은 개인 자산 86억달러로 한국의 최고 갑부다(재벌닷컴에 따르면, 지난 3월9일 종가 기준으로 이건희 회장의 보유주식 평가액은 10조1027억원으로 한국 증시 역사상 처음으로 보유 주식 10조원을 돌파했다). 이건희 회장의 여동생 이명희 신세계 회장은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3월9일 종가 기준으로 보유 주식 가치가 1조6700억원이었다)이고,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 사장은 한국의 억만장자 랭킹 4위를 차지했다(3월9일 종가 기준으로 주식 가치는 1조337억원으로, 주식만 따질 때 한국 16위의 주식부자다). 하지만 부유한 삼성가 형제들이 현재 상속유산을 둘러싼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2월 셋쨋주 초 고 이병철 전 회장의 장남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동생 이건희 회장을 고소한 것이다. 이맹희 전 회장은 자신에게 상속된 유산을 받지 못했다며 6억3500만달러에 상당하는 삼성주식 반환 청구소송을 냈다.
엄청난 부와 경제적 영향력을 등에 업고 삼성가는 정치적으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됐다. 한국에서는 사법기관조차 이건희 회장 앞에서 굽실거리는 형국이다.
비리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건희 회장은 1990년대 중반 첫 정치적 사면을 받았다. 두 번째 사면은 2009년 연말에 전격 단행됐다.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에게 당시 시장가격보다 현저하게 낮은 가격으로 삼성 주식을 물려준 것에 대해 이건희 회장은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 최대 갑부인 이건희 회장을 바로 사면시켰던 것이다. 당시 겨울올림픽 개최지 후보로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한국을 대표할 사람이 필요했던 한국 정부는 이건희 회장을 사면시켜 그에게서 유죄판결의 오명을 지워주었다. 그리고 2011년 평창은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됐다.
이건희 회장의 선견지명과 무일관성
'이건희 회장 없이는 겨울올림픽도 없고, 이건희 회장 없이는 삼성도 없으며, 삼성 없이는 한국도 없다.' 어느덧 70살이 된 이건희 회장의 후광은 이런 논리로만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의 결정은 선견지명이 있다는 인정도 받지만, 일관성이 없다는 혹평을 받기도 한다. 이건희 회장은 과거 삼성그룹이 더 유연할 것을 지시했고, 외부 경영인들에게 삼성그룹의 문을 열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후임은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으로 일찌감치 내정해두었다. 삼성가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삼성그룹 전체에 대한 감독권을 지키려고 혈안이 돼 있다.
삼성가가 그룹 전체를 관리하고 있음은 라스베이거스에서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국제소비자가전박람회가 열리기 전에 이미 삼성 임원들은 취재진이 인터뷰에서 질문해서는 안 되는 주제를 체크해주었다. 전략적 의미가 있는 질문들은 오로지 한국 본사에 서면으로만 제출할 수 있었다.
여느 박람회에서처럼 취재진은 국제소비자가전박람회에서 공식적 일정이 아닌 우연한 계기로 삼성 관계자를 만나게 됐다. 취재진은 예정에 없던 삼성 관계자와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대외비를 전제로 삼성그룹이라는 성채의 내부 상황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삼성의 성공 비결은 속도, 관리와 두려움 외에 엄격한 위계질서라는 또 다른 이유가 더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 삼성 관계자는 "삼성 임원진은 서구 기업의 특징적인 합의 문화는 약점이 많고, 온갖 이해관계를 고려하면 시장에서 필패할 수밖에 없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은 이에 대해 공식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또한 삼성에 서면으로 보낸 질문에 대해서도 취재진은 답변을 받지 못했다.
세계 NGO, '삼성 무자비하다' 비판
이미 오래전부터 노조와 비정부기구(NGO)들은 삼성이 권위적이고 무자비하다고 비판해왔다. 삼성은 2012년 '공공의 눈 상'(Public Eye Award·그린피스가 2000년 이후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되는 세계경제포럼에 맞춰 매년 세계 최악의 악덕기업을 선정해 주는 상)의 유력한 우승 후보였다. 환경을 심각하게 파괴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기업에 그린피스가 매년 수여하는 불명예 상이다. 올해 삼성은 '공공의 눈 상' 3위를 차지했다. "대한민국에서 기업 자산가치 1위의 삼성은 공장에서 일부 금지된 고독성 물질을 사용하면서도 직원들에게 이를 공지하거나 직원을 보호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삼성 직원 최소 140명이 암에 걸렸고, 젊은 직원 최소 50명이 암으로 사망했다.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삼성은 책임을 부인하고 있으며, 암에 걸린 직원들과 사망 직원들을 비롯해 이들의 가족까지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있다." 삼성은 이런 비난에 대해 일절 입을 다물고 있다. 겹겹이 둘러싸인 삼성 성채의 벽은 높고 그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이건희 회장을 둘러싸고 있는 삼성맨들은 시종일관 이런 자세로 여기까지 왔다. 삼성그룹 성공의 그늘에 대한 폭넓고 공개적인 토론은 한국 이외에서는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사람들은 그저 삼성 제품과 삼성의 눈부신 성장에 환호할 뿐이다. '별 3개'라는 의미를 지닌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지난 몇 년간 몇 배로 껑충 뛰었다. 현재 삼성은 전세계 20대 브랜드에 속한다. 이는 아마존과 나이키, 네슬레를 훌쩍 따돌린 눈부신 성적이다.

마르쿠스 로베터 Marcus Rohwetter 경제부 기자

ⓒ Die Zeit·번역 김태영 위원

2012년 2월 9일 목요일

[사설] 꼼수로 등록금 내린 대학, 정부 지원 안 된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2-08일자 사설 '[사설] 꼼수로 등록금 내린 대학, 정부 지원 안 된다'를 퍼왔습니다.

등록금 고지서가 대학생 자녀 가정에 속속 날아들고 있다. 기대했던 명목 등록금은 기껏해야 10만원 정도 줄었다. 지난해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대학생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생각하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다만 예년보다 1조7500억원 증액된 국가장학금이 있어 등록금 부담을 다소 줄일 수 있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소득 7분위 이하 가정의 대학생에게 등록금의 25% 정도 혜택이 돌아간다고 한다.
그러나 절대로 손해 보지 않겠다는 수도권 사립대의 졸렬한 태도는 학생들의 일시 잠복한 분노를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충분한 여력이 있음에도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찔끔 인하한 것도 착잡한데, 이들 대학은 그로 인한 수입 감소분마저 교육 서비스를 축소하는 따위의 편법과 꼼수로 벌충하려 하고 있다. 결국 학생과 교수에게 부담을 돌리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애초 각 대학이 명목 등록금을 5% 정도 줄이고, 각종 장학금을 확충해주길 기대했다. 사실 많게는 8000억원 가까이 쌓아둔 대학별 적립금이나, 남은 교비회계를 적립금으로 넘기지 않고 등록금 인하에 쓴다면, 그 이상의 인하도 가능하다. 지난해 감사원의 35개 대학 등록금 감사 결과 지난 5년간 이들 대학은 연평균 6552억원, 각 대학별로는 187억원을 남겼다. 특히 예산편성에서 해마다 수입은 줄이고 지출은 늘려 잡아 등록금을 12.7%씩 올렸다. 그런 대학들이 이번에 등록금을 내린 폭은 2~3%에 불과했다.
5% 인하할 경우 학생 1만명 대학의 등록금 감소분은 연 40억여원이다. 2010년 사립대 적립금은 평균 81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연세대(728억원), 홍익대(697억원), 이화여대(288억원) 등 주요 대학들은 수백억원에 이르렀다. 대입전형료 수입만 해도 90억~100억원에 이른다. 주요 대학의 경우 등록금을 12.7% 이상 인하할 여력이 있다고 감사원이 밝힌 이유다.
게다가 일부 대학은 감소한 등록금 수입을, 수업 일수를 축소하거나 시간강사를 줄이는 등 교육 서비스를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벌충하려 한다. 한양대와 광운대는 수업료를 2% 내리면서 수업 일수를 16주에서 15주로 줄였다. 대규모 강의나 사이버 강의를 확대해 교수 인건비를 줄이는 학교도 있다. 서강대, 경희대, 한국외대 등은 전임교수의 강의를 늘리고 시간강사를 줄였다. 학교 장학금을 대폭 줄이는 경우도 있다.
재벌의 탐욕보다 더 심하다. 사회적 책임을 포기한 이들 대학에 대해서는 정부 지원이나 사회적 혜택을 재고해야 한다.

2012년 1월 31일 화요일

배은망덕한 대기업들, 혼내줄 방법 없을까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1-31일자 기사 '배은망덕한 대기업들, 혼내줄 방법 없을까'를 퍼왔습니다.
[홍헌호 칼럼] "상생하지 않으면 모두가 죽는다… 사회적 책임 강제해야 할 때"

유진수 숙명여대 교수가 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대한민국 대기업들을 ‘가난한 집 맏아들’에 빗대어 그들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것이 이 책을 쓴 취지다. 

대기업들을 ‘가난한 집 맏아들’에 빗댄 것은 매우 적절한 비유라고 본다. 필자가 몸 담고 있는 연구소도 2005년 1월 문을 연 이래로 유 교수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대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고민해 왔다. 

1990년대 이후 동유럽에서도 자주 목격되는 것이지만 자본주의로의 이행기나 경제발전 초기단계에 각국이 기업지원을 주로 하는 불균형성장전략을 추진하는 것은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경제발전 초기단계에는 규모의 경제 효과(규모가 클수록 단위당 비용이 적게 들어가 경제적 효율성이 커지는 효과)가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나고, 또 사회간접자본(SOC) 구축이 매우 중요한 국가 과제로 떠오른다. 때문에 각국 정부는 국민들로 하여금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고 또 후세대가 갚아야 할 국채를 발행하여 확보한 재원으로 중소기업을 대기업으로 키우고 SOC 관련 공기업을 키워내는 경향이 있다. 

이 때는 국민들도 직관적으로 규모의 경제 효과가 크게 나타나고, 또 사회간접자본(SOC)의 경제발전 기여도가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정부의 이런 불균형성장전략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경향이 있다. 

불균형성장전략, 지속가능한 성장전략이 아니다그러나 이런 불균형성장전략은 대기업과 공기업을 키우기 위해 근로자들과 농민들, 그리고 자영업자들의 희생을 수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성장전략’이라 볼 수는 없다. 결국 각국은 일정 정도 시간이 지나면 불균형성장전략을 균형성장전략으로 전환하여 대기업들이 경제적 약자들과 성장의 과실을 함께 나누며 ‘동반성장’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러나 경제적 강자가 된 대기업들은 자신들을 키우기 위해 희생된 약자들과의 과실 나누기에 소극적이거나 이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과실 나누기를 체제전복세력의 준동으로 몰아가며 기득권 수호에 몰두하는 경향도 있다. 

경제권력이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성장의 과실 나누기를 거부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경제적 약자들은 정치권력에 대해서는 ‘민주화투쟁’으로, 경제권력에 대해서는 ‘노동운동’으로 맞서게 된다. 정치학자들이 개발도상국이 일정정도 성장하면 대부분 민주화투쟁 시기를 거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재벌은 대박, 민생은 쪽박! 집회 참가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현수막.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박정희도 불균형성장전략을 장기간 고집하다 몰락했다
   

1970년대 박정희의 몰락과정을 보면 ‘YH여공 신민당사 점거농성과 강제해산, 신민당 김영삼 총재의 일본에서의 박정희 비난, 김영삼 총재 의원직 박탈, 부마항쟁(부산,마산에서의 민주화투쟁), 차지철 등의 강경유혈진압론, 김재규의 박정희·차지철 사살’이라는 일련의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는데, 그 맨 앞자리에는 ‘가혹한 저임금과 장시간 근로에 시달리던 YH여공의 투쟁’이 있었다.    

당시 박정희가 15년간의 불균형성장전략에서 벗어나 균형성장전략으로 전환했더라면 어떠했을까. 최측근 총탄의 재물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다른 독재자들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약자들을 희생해서 성장했고, 경제적 약자들의 제몫찾기운동을 체제전복세력의 위험한 준동으로 간주하고 탄압하다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전두환도 박정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도 정말 운좋게 3저호황(저금리, 저유가, 저달러)이라는 단군 이래 최대의 로또를 만났지만 1987년 민주화투쟁 앞에 항복선언을 해야만 했고, 또 노동자대투쟁 앞에 일부 임금 현실화를 해야만 했다. 대기업들이 누리는 성장의 과실에 비해 경제적 약자들의 몫은 지나칠 정도로 적다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광범하게 공유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임금 현실화는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기득권 세력들은 임금이 현실화될 경우 성장률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전혀 근거없는 협박으로 드러났다. 성장률은 떨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임금 현실화가 내수를 자극해서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르는 일이 일어났다. 

1990년대 이후에 더 극심해진 경제적 약자들의 고통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임금 일부 현실화는 경제적 약자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되었을까. 일부 근로자에게 일부 보상은 되었다. 그러나 경제적 약자의 주요 축인 농민들과 자영업자들, 그리고 중소기업들에게는 더 큰 악몽이 기다리고 있었다.

1990년대 농민들은 UR(우루과이 라운드)이라는 개방압력에 노출되었고, 중소상인들은 유통업 급진개방에 노출되었으며, 중소기업들은 밀려드는 저가 중국산과의 힘겨운 싸움을 해야만 했다. 

정부 관료들은 경제적 강자를 위해서 경제적 약자들이 또 한번 희생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대기업들의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수입개방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농민들은 UR이라는 개방압력에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중소상인들과 중소기업들은 격렬하게 저항하지 않았다. 농민들은 과거 수급불균형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가 개입하여 농민들에게 불리한 결정을 하곤 했기 때문에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깊었으나 중소상인들과 중소기업들에게는 그런 경험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대 거품경제 때 잠복되어 있던 중소상인들과 중소기업들의 재앙은 1997,8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심각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1996년 김영삼 정부가 감행한 국내외 대자본에 대한 유통업 개방은 서민경제에 치명타를 안겼다. 유통업 경제성장기여율은 7.6%(1990년대 전반기)에서 1.8%(2000년대 후반기)로 추락했고, 고용비중은 18.5%(1995)에서 15%(2010)로 추락했다. 전체 취업자가 2450만 명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그것의 3.5%인 86만 명이 유통업 부문에서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중소상인들의 불행은 그들만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았다. 일자리를 잃은 중소상인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다른 산업의 영세자영업 시장으로 진출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유통업 개방은 영세자영업 시장의 과잉사태를 더욱더 심각한 상태로 치닫게 했다.

국세청 통계는 1996년 이후 영세자영업자들의 고통이 얼마나 심해졌는지 수치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세청에 따르면 매년 폐업하는 영세자영업자 수는 1995년 33만 명에서 2009년 75만 명으로 급증했다.

저가 중국산 공산품 유입도 중소 제조업체들에게 치명타를 안겼다. 통계를 보면 1990년대 이후 중소제조업 영세화가 급진전된 것으로 나타난다. 저가 중국산 유입으로 중소제조업체들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과열경쟁 상태인 영세자영업 시장으로 탈출도 못하고, 울며 겨자먹기로 그곳에 머물러 있는 영세제조업체들이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중소제조업체들의 영세화는 향후 제조업 발전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중소기업의 영세화는 설비투자 여력, 연구개발 여력, 인력양성 여력을 소진시키고, 이것들이 소진될 경우 성장잠재력 확충에 심각한 적신호가 켜지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한중FTA가 추진될 경우 중소제조업체들은 또 한번 심각한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최근 한중 무역동향을 보면 부품,소재 등 중간재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만큼 중국산의 질이 높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또 과거에는 범용부품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최근에는 부가가치가 높은 전문부품 비중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경제적 강자들을 위해서 경제적 약자들은 희생됐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되물을 수밖에 없다.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경제적 약자들이 희생되어야 하는가.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경제적 강자들을 위해서 경제적 약자들이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물어야 한다. 경제적 약자들을 희생시키려 하는 경제적 강자들은 이들에 대해 보상할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는가. 어이없는 것은 이들이 경제적 약자들에게 보상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기는 커녕 이들에 대한 보상규모를 줄이는데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대규모 부자감세는 경제적 약자들에 대한 보상규모를 줄이려는 경제적 강자들의 몰염치한 시도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유진수 교수의 책, 에 대해 이야기해 보기로 하자. 그가 말하는 ‘가난한 집 맏아들’은 우리나라 경제발전 초기의 대기업들을 지칭한다. 당시에 가난한 집 맏아들들은 심각할 정도로 동생들에 비해 지적 능력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동생들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았고 더 많을 혜택을 누렸다.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심각할 정도로 소기업에 비해 경영능력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규모의 경제가 있다는 이유로 더 많은 조세지원을 받았고 더 많은 재정지원을 받았다.

‘가난한 집 맏아들’에 대한 지원은 교육에서만 나타난 게 아니다. 혼인을 하고 집을 마련하고 상속을 받는 과정에서도 동생들보다 더 많은 지원을 받았다.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정부로부터 조세지원, 재정지원 외에도 FTA 지원을 받았고, 환율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의 탐욕은 끝이 없었다. 정부가 경제적 약자에 대한보상금을 마련하기보다는 그것을 줄여서 현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자신들의 금고를 채우는 것이 경제에 더 도움이 된다고 우겼다. 

경제적 강자에게 더 퍼 주어야 경제가 산다?  

대기업들과 보수진영 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경제적 약자에게 보상하는 것(복지)은 ‘낭비’지만, 대기업 금고를 더 채우는 것은 생산적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두 가지 명백한 오류에 빠져 있다. 복지(혹은 소비)는 낭비요 투자는 생산적이라는 주장이 그 중 하나고, 대기업 금고를 채우는 것이 곧 투자라는 주장이 나머지 하나다. 

경제분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복지 혹은 소비는 낭비적인 것이요 투자는 생산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매우 위험하다. 소비와 투자의 차이는 별로 크지 않다. 예를 들어 같은 승용차라도 영업용을 매입하는 행위는 투자에 해당하고, 비영업용을 매입하는 행위는 소비에 해당한다. 국민계정상 신축아파트를 구입하는 행위는 투자에 해당하고, 자동차를 구입하는 행위는 소비에 해당한다. 양자 간에 큰 차이가 있을까. 비전문가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 않다. 그래서 한국은행을 비롯한 각국의 경제전문기관들이 투입-산출 분석을 할 때 소비,투자,수출의 단위당 효과가 같다고 가정하는 것이다.법인세 인하가 중장기적으로 효율적이다?

또 이들은 대기업 금고를 채우는 것이 곧 투자라는 잘못된 가정을 하고 있다. 조세연구원의 일부 연구원들도 예외가 아니다. 2009년 국회예산정책처는 이라는 보고서에서 자신들이 조세연구원의 보고서를 살펴 본 결과 "조세 부과로 인한 경제적 비효율성이 법인세에서 가장 크게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자신들은 "법인세 인하의 단기 투자 증진효과는 의문이지만, 중장기적으로  경제적 효율성을 제고하는 데에는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국회예산정책처도 이제는 자신들이 인용한 조세연구원 보고서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문제의 조세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1970년대에는 법인세 부과로 인한 경제적 비효율성이 근로소득세보다 더 작게 나타나고, 2000년대에는 더 크게 나타난다. 

따라서 이들의 분석대로라면 1970년대에는 법인세 부담을 우선적으로 늘려야 하고, 2000년대에는 우선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황당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기업들이 자금난에 허덕이는 1970년대에는 법인세 부담을 우선적으로 늘려야 하고, 대기업들에 현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2000년대에는 그것을 우선적으로 줄여야 한다니. 

조세연구원이 이런 황당한 결론에 도달한 것은 그들이 CGE 모형(연산가능 일반균형모형 : Computable General Equilibrium model)을 토대로 분석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CGE 모형은 수많은 비현실적인 가정을 전제로 한 것으로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CGE 모형의 비현실성](경기대 신범철 교수, 2008년 보고서)

- 지극히 비현실적인 가정이 낳은 지극히 비현실적인 모형- 상품과 생산요소 시장에서 완정경쟁시장과 완전정보를 가정- 생산에 있어서의 규모의 불변을 가정(내생적 성장론은 발붙일 여지가 없음)- 모든 시장에서 균형에 도달한다는 시장청산 조건 가정- 언제나 시장이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초과수요나 초과공급에 따른 경기변동이존재하기 어렵고, 노동시장에서 실업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 생산요소의 완전이동 가정- 실업의 사회적 비용, 자본이동에 따른 사회적 비용 무시- 모든 소비자의 선호상의 차이가 없다고 가정- 모든 생산자간의 생상기술상의 차이가 없다고 가정-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애로우(Arrow)가 사회후생함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불가능성 정리를 증명했음에도 불구하고 CGE 모형 사회후생함수는 존재한다고 가정- 수없이 많은 가정을 전제로 한 모형으로 계산 가능한 것만을 다룬 가상의 세계일 뿐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경제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모형


법인세 감세는 경제를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인다  대기업 금고를 채우는 것이 곧 투자라고 말할 수 없다면 대기업에 대한 정부의 감세액 중에서 몇 %가 투자로 이어지고 있을까. 그 비율을 추정해 보는데 도움이 되는 지표가 바로 한계투자성향(marginal propensity to invest)이라는 지표다. 한계투자성향은 새로 늘어난 소득 가운데 투자에 쓰는 돈의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낸다.


기업들의 시기별 한계투자성향. 한국은행 자료 가공. (한계투자성향 = 투자의 증가분/ 소득의 증가분)

한국은행 통계자료를 토대로 우리나라 기업들의 한계투자성향을 산출해 보면, 1980년대에는 0.94, 1990년대에는 0.89로 나타난다. 한계투자성향이 0.89라는 것은 기업소득이 1억 원 늘어날 때, 설비투자가 8900만원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투자가 활발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최근 십여 년간 기업들의 한계투자성향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2000년대에 0.29로 급락한 것이다. 한계투자성향이 0.29라는 것은 기업소득이 1억 원 늘어날 때 설비투자가 2900만원 늘어났다는 뜻이다. 충격적인 수치다.

기업의 한계투자성향이 0.29로 떨어진 상황에서는 정부의 기업조세지원정책의 경제적 효과가 복지지출정책의 경제적 효과보다 더 낮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 경우에는 정부가 기업에 1억원을 지원하여 2900만원의 투자를 늘리는 것보다는 1억원을 저소득층에 지원하여 1억원에 가까운 소비를 유발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효과가 더 크다. 

따라서 향후 정부는 복지를 희생하여 기업지원을 늘렸던 7,80년대식 조세재정정책에서 벗어나, 복지를 성장의 주요 요소로 인식하는 ‘성장-복지 선순환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부자와 빈자가 상생하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경제발전 초기단계에는 일시적으로 불균형성장전략이 유효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경제는 불균형성장전략을 추진할 경우 성장과 복지가 모두 죽게 되는 그런 단계에 와 있다. 

성장과 복지가 상충관계에 있다는 주장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다. 선진국들 중에서 균형성장전략을 추구하는 북유럽 국가들과 불균형성장전략을 추구하는  미국을 비교해 보자. 이들 중 어느 쪽이 성장, 복지, 재정건전성을 이루는데 성공했을까. 유감스럽게도 미국은 이 3가지 모두에서 실패한 반면, 북유럽 국가들은 3가지 모두에서 성공했다.  

먼저 성장률을 보면 미국의 경제호황기라 불리우는 1993년과 2007년 사이 OECD 30개 회원국 중에서 핀란드의 1인당 GDP 실질 성장률 순위는 6위였고, 스웨덴은 11위, 노르웨이가 13위, 덴마크가 20위였다. 반면 미국은 23위에 머물렀다. 

소득재분배에 있어서도 미국은 북유럽에 비해 형편없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북유럽 4개국의 지니계수(소득불평등지수/수치가 클수록 불평등이 심하다는 뜻임)를 살펴보면 스웨덴과 덴마크가 0.23, 핀란드가 0.27, 노르웨이가 0.28로 나타났다. 반면 미국은 0.38이었다. 지니계수 0.38은 OECD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나쁜 쪽에 속한다. 

재정건전성에 있어서도 미국은 북유럽에 비해 매우 좋지 못하다. OECD에 따르면 2010년 북유럽 4개국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 평균은 47.5%로 OECD 평균 66%보다 18.5% 포인트 낮았다. 반면 미국은 94.4%에 달했다. 

2012년. 우리는 균형성장전략을 추구하여 성장과 복지, 그리고 재정건전성을 모두 얻을 것인지, 아니면 불균형성장전략을 추구하여 이 모두를 잃을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물론 북유럽의 모든 시스템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국식의 불균형성장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