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일 수요일

용비어천가가 무색한 ‘전두환 찬가’ 언론과 권력 (53)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8-01일자 기사 '용비어천가가 무색한 ‘전두환 찬가’ 언론과 권력 (53)'을 퍼왔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부와 아첨은 경멸의 대상이 된다. 하물며 사회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나 여론을 선도하는 언론인이 그런 행태를 보이면 경멸을 넘어서 사회적 지탄을 받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면서 권세와 영화를 누리던 자들은 지금도 일제 잔재 청산의 심판대에 오르고 있고, 이승만 정권 시기에 ‘국부론(國父論)’을 노골적으로 주장하던 ‘만송족(晩松族)’은 역사에 추악한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에도 아부와 아첨으로 ‘입신양명’하던 정치인이나 지식인이 많았다. 특히 언론계에서 권력을 비판하는 글로 필명을 날리던 기자나 간부가 어느 날 독재자를 찬양하는 쪽으로 변신한 뒤 청와대와 국회로 가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 전두환 전 대통령.

현대판 용비어천가에 관한 한, 1980년 여름부터 시작된 ‘전두환 찬가’에 필적할 만한 사례는 아주 드물 것이다. 그 전개 과정을 살펴보자.
1980년 5·17 쿠데타와 광주 학살로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억누르고 권력을 잡은 전두환은 대통령 최규하에게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설치하자고 건의했다. 말이 건의지 그것은 강요나 다름없었다. 전두환은 5월 31일에 신설된 국보위의 실질적 권력기구인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정권을 장악할 준비를 서둘렀다.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는 8월 16일 최규하에게 압력을 가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한 뒤 2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대통령 선출을 위한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열었다. 단일후보로 나선 전두환은 총 투표자 2,525 명 가운데 2,524 명의 찬성, 무효 1표로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통령 선거 엿새 전인 8월 21일 전군지휘관회의가 ‘예편한 육군대장 전두환’을 대통령후보로 추대하자 조선일보에는 아래와 같은 ‘기사들’이 실렸다.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의 행동-인간 전두환, 그가 육사를 지망한 것은 적의 군화에 짓밟힌 나라를 위하는 길은 내 한 몸 나라에 던져 총칼을 들고 싸우는 길밖에 없다는 일념 때문이다. (···)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천성적인 결단은 그를 군의 지도자가 아니라 온 국민의 지도자 상으로 클로즈업 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 12·12 사건만 해도 그렇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쪽에 서면 개인의 영달은 물론 위험부담이 전혀 없다는 걸 그도 알았으리라. 이미 고인이 된 대통령의 억울함을 규명한다고 하여 누가 알아줄 리도 없는 일이었다. (···) 그가 보여준 일련의 행위는 육사에서 익히고 오랜 군대생활에서 다져진 애국심을 바탕으로 한 도덕적 행위라는 게 주위의 얘기다.
육사 생도들의 프라이드는 높았다. 한줌의 국력까지도 전선으로 보내야 했던 시절이므로 이들에 대한 처우는 사실상 초라한 것이었다. (···) 그러나 전 장군에게 이 쓰라린 역경들은 오히려 견인불발의 인내심, 물욕에 대한 초탈, 체질화된 서민의식, 도덕적 겸허주의, 남의 고통에 대한 연민 등의 덕성을 길러 낼 수 있는 토양이 되었을 것. (···) 양담배 한 갑 정도의 부조리도 참아 넘기지 못하고 바로 잡았던 원칙장교로서 용명을 날렸다고 한다. 청년장교의 우국의 울분 속에 이미 개혁과 숙정의 의지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겨우 석 달 전에 광주 일원에서 수백 명을 살상하고 독재자 박정희의 후계자로 등장한 전두환이 위의 글들에서는 ‘희대의 영웅’ ‘애국심이 강한 지도자’ ‘속세를 초월한 인물’ ‘겸허라고 연민의 정을 가진 사람’으로 나타나 있다. 그야말로 흠집이라고는 전혀 없는 초인 아니면 신 같은 존재이다.
조선일보 8월 23일자 특집 ‘인간 전두환’에는 ‘동기생일지라도 어쩌다 그를 대할 때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암벽을 대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는 최고의 찬사가 들어 있었다.
중앙일보는 8월 27일자 사설에서 ‘대통령 체제의 출현은 80년대의 새로운 발전에 필요한 새로운 활력을 얻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그 사설은 ‘합천에서 청와대까지’라는 제목으로 4회나 연재되었다. 문명국이라는 소리를 듣는 그 어느 나라의 신문이 쿠데타와 학살로 집권한 사람을 나흘 동안 사설로 찬양한 적이 있었던가? 중앙일보는 그 연속사설에서 ‘여권에는 냉정하고 근검절약이 몸에 밴 인물’이라고 전두환을 극찬하는가 하면, ‘이른 새벽 관측소 초병에게 커피를 끓여 주며 격려’를 하고, ‘씨름도 지면 이길 때까지 계속하는’ 불굴의 사나이라면서 그의 ‘따뜻한 인간성’과 ‘굳센 의지’에 찬사를 보냈다.

 
▲ 상단 기사 <조선일보> 8월 23일자 특집 ‘인간 전두환’, 아래 기사 <경향신문> 8월 19일자 특집 ‘새역사 창조의 선도자 전두환 시리즈 1편’

“한국일보는 9월 11일자 사설에서 ‘민권의 생활적 실현의 선도자로서 전두환 대통령을 우리는 날마다 목도하고 있다’고 예찬하면서, 전 씨가 예술공연을 관람한 사실을 두고 ‘역대 어느 지도자보다도 문예진흥에 크나큰 관심과 비중을 두고 있음이 여러 차례 사사됐다’라고 칭송했다. 광주 학살, 삼청교육대, 언론인 축출, 민주인사 투옥 등 반민권의 상징적인 인물을 두고 ‘민권의 생활적 실현의 선도자’라고 곡필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신문은 이에 앞서 3회에 걸쳐 연재된 특집 ‘전두환 장군 의지의 30년’에서는 ‘구국의 길을 뚫을 수 있다면 백 번 죽어도 한이 없다’는 전 씨의 ‘우국충정’을 소개했고, 취임 1개월 특집 ‘국민 속 파고든 서민의 이웃’에서는 ‘휴일도 밤낮 없는 취임 한 달···민정시찰 때는 악천후에 헬기 강행군’이라고 미화했다.”(, 377쪽)
경향신문은 3회에 걸쳐 연재한 ‘새 역사 창조의 선도자 전두환 장군’에서 ‘서릿발 같은 판단력 뒤에는 훈훈한 인정을 느낄 수 있는 서민풍’이 있다고 찬양하면서 ‘편견 없는 성품은 항상 약자 편’이라고 미화했다.
“전두환 신군부체제의 등장을 비교적 비판적 시각으로 보도해온 동아일보도 전 씨의 대통령 당선 다음날인 8월 28일자 1면 사설에서 ‘전 대통령이 등장한 것은 한국 정치의 고질이었으며 종래 구정권들이 바로잡지 못했던 정권 차원만의 정치성, 관료성, 사대성, 허위의식에 대한 실천적 반론’이라는 둔사로써 전 씨 체제를 비호했다. 동아일보는 또한 8월 30일 전면 특집 ‘새 시대의 기수 전두환 대통령 우국충정 30년···비범 속의 실천’이라는 제목 아래 ‘외제 물건을 전혀 모를 정도로 청렴결백한 생활로 일관해 왔다’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앞의 책, 378쪽)
신문의 사설은 회사의 공식 견해이므로 논설위원들이 무기명으로 쓴다. 그 시절에 이름을 가리고 ‘전두환 찬가’를 써댄 언론인들이 오늘 자신의 글을 다시 읽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리고 기명으로 ‘특집’ 기사를 작성해서 전두환의 눈에 띄어 총애를 받게 된 기자들은?

김종철 (언론인)  |  cckim999@naver.com

지역신문발전기금 예산 배제, 대선 후보는 답하라


이글은 대자보 2012-07-29일자 기사 '지역신문발전기금 예산 배제, 대선 후보는 답하라'를 퍼왔습니다.
[시론] 정부 예산 배제는 지역신문발전지원법 위반, 특별법 무용지물돼

여론 다양성, 지역사회 건전한 발전 등을 이유로, 국회 여야 합의로 제정한 지역신문지원특별법이 무용지물 될 위기에 놓여 있다. 

지역신문지원특별법에 의한 지역신문지원금이 기획재정부에 의해 내년 예산 국고출연이 거부됐기 때문이다. 풀뿌리지역신문연합체인 바른지역언론연대 등 지역신문 종사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법에 보장된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04년 노무현 참여정부시절 여야 합의 6년 한시법으로 국회를 통과한 지역신문지원특별법이 2010년 한차례 연장을 거치면서 8년째를 맞았다. 

최초 지역신문지원특별법은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중앙일간신문에 비해 지방일간신문 및 풀뿌리 주간신문의 열악한 환경의 문제를 풀기 위해 제정했다. 특히 지역의 건전한 발전을 조성해 여론의 다양화, 민주주의 실현 및 지역사회의 균형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취지가 더 강했다. 2005년 첫 시행에 들어갔고, 이후 6년 동안 매년 평균 150억원을 지원했다. 

지난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 우역곡절을 거치면서 2010년 여야 합의를 거쳐 특별법을 6년 더 연장했다. 2011년 당시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011년 40억원, 2012년 200억원, 2013년 200억원 등 3년 동안 총 440억원의 기금을 확보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하지만 최근 국고 출연이 기획재정부에 의해 거부되자 주무 주처인 문화관광부는 내년은 아예 국고 출연을 요구조차 하지 않았다. 2012년 7월 현재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여유자금은 141억원에 불과해 국고 출연을 하지 않으면 사실상 고갈될 위기에 놓여 있다. 

지난 2월 28일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우선지원 주간지선정사협의회 주최 지역신문 발전 모색 토론회에서 안정적 지원을 위해서는 한시적인 지역신문지원특별법이 일반법으로 가야한다는 논의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첨예한 논란이 있을 수 있는 사안이지만 지원사업의 안정적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한시법으로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의견에 토론자들이 대체로 공감했다. 또 이날 지역신문 관계자들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현재보다 좀더 올려 안정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런 논의들이 공염불이 될 위기에 놓여 있다. 일반법 논의에 찬물을 끼 얻는 것은 물론이고, 현재 존재한 한시 특별법 지원 발전기금의 고갈로, 내년부터는 지원 자체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해 있다. 바로 풀뿌리지역신문 및 지방신문 종사자들이 강하게 반발한 이유이다. 

지난 22일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인 민주통합당 배재정 의원이 보도 자료를 통해 언론지원정책을 총괄하는 문화체육관광부가 기획재정부에 내년도 예산지원을 요청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되면서 문제가 심각해졌다. 대선을 불과 5개월을 앞두고 지역신문 홀대 문제가 자칫 여당 후보에게도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사안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역신문발전기금은 지원을 받은 풀뿌리지역신문 및 지방신문들이 지방자치제의 정착을 위해 일정부분 기여해 왔다는 사실을 정부가 모를 리 없다. 국회가 한시법인 지역신문특별법을 한 차례 연기해 다시 제정한 것도 지역신문 지원금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판단에서이다. 

법에 따라 지원된 지역신문발전기금은 정부가 지원을 하지 않는다고 될 사안이 아니다. 바로 법을 어기는 중대한 사안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특별법의 취지대로 지역신문 관련 출연금을 확보해야 한다. 엄정한 심사를 통해 선정한 지역언론의 지원을 소홀히 해서는 절대 안 되기 때문이다. 당초 특별법은 중앙과 지역의 균형 발전을 이루려는 신문시장의 다원적 구조와 지역신문의 경영쇄신, 독자 신뢰를 통한 지역신문의 경쟁력 항상을 위해 제정했다는 사실을 정부가 망각해선 안된다. 

마지막으로 여야 대선 후보들도 정부가 내년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출연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 태도인지 명확한 답변을 요구하고 싶다.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도, 특히 지역에 기반을 둔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지도 묻고 싶다. 

이와 더불어 특별기금 지원을 원하는 지역신문들도 스스로 뼈를 깎는 자성과 개혁 의지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김철관

정동영 "재벌개혁,삼성 언급 않는 건 거짓"


이글은 대자보 2012-07-31일자 기사 ' 정동영 "재벌개혁,삼성 언급 않는 건 거짓"'을 퍼왔습니다.
'삼성공화국' 방치한 채 경제민주화 무의미‥핵심은 '노동'  

 이상호 X파일·안철수 생각·우석훈 FTA..'같은 과녁'


"경제민주화를 얘기하면서 삼성을 얘기하지 않는 건 거짓입니다. 그건 믿어선 안됩니다. 그러니까 지금 여야 후보를 검증하는 방법 중에 경제민주화를 얘기한다면 삼성을 얘기해야 합니다. 이게 정직한 현실입니다."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이 대선 화두로 급부상한 가운데,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지난 24일 이상호 MBC 기자의 개소식에 참석해 무소불위의 '삼성' 문제를 강하게 거론해 눈길을 끌고 있다.  삼성 문제란 그룹 총수인 이건희 회장을 중심으로 막강한 정보력과 로비력을 이용해 국가권력과 정책결정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친재벌 정책을 주도하면서,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라는 자조 섞인 비판이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는 상황을 말한다. 대부분의 언론도 삼성과 이건희 회장 문제와 관련해선 눈치를 보며 비판 기사 쓰기를 두려워한다는 건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이 때문에 신자유주의 양극화 체제에서 독점적으로 부(富)를 축적한 재벌 대기업이 막강해진 시장권력의 힘으로 정치권력과 언론을 좌지우지하면서 민주주의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재벌 문제를 연구해 온 전문가들은 "국민의 선택을 받지 않은 재벌 총수가 대통령보다 더 위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삼성과 이건희 문제를 얘기하지 않고서 재벌개혁 하겠다는 건 하나 마나 한 소리"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정치인과 대선주자들조차 삼성 문제를 꺼내는 걸 사실상 금기시하고 있다. 삼성과 이건희를 말한다는 게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사회가 돼버린 것이다. 정치권 스스로가 시장권력에 눈치보고 굴복하는 '반쪽짜리 대통령'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셈이다.  정 상임고문이 삼성 문제를 강하게 거론한 건, 이런 '불편한 진실'을 공론화하려는 의지로 풀이된다. 그는 평소에도 "재벌개혁 없이는 어떤 정권도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대표적인 재벌개혁론자다. 이날 정 상임고문은 또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노동에 있다"며 "노동민주화는 헌법이 분명히 보장하고 있지만, 오늘날 그 균형은 아주 심각하게 무너져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경제민주화는 단순히 재벌개혁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노동권 보장·강화가 함께 이뤄져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지론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정 상임고문은 "요 며칠 사이에 (이상호 기자 X파일), (안철수의 생각), 우석훈의 (FTA 한 스푼)이라는 책 3권을 읽었다"며 짤막한 촌평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이 책들은 관심의 지점이 같은 과녁을  향하고 있다"며 "낡은 것은 죽었는데 새 것은 아직 오지 않은 현실, 구체제는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지만 아직 새 것에 대한 대망. 이것이 세 저자의 관심을 관통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동영, 이상호 기자 (발뉴스) 개소식 발언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p_kl-EEmuus

[발언 전문] 이상호 MBC 기자 우리 정동영 선배는 직업이 최근 들어서 정치인이 아니라 '양보인'이 됐어요. 지금도 우리 김문수 지사를 위해서 순서를 양보하시겠다고 하는데, 사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번에도 정권교체를 위해서 자신의 순서를 양보하신 분입니다. '발뉴스'에서는 양보를 허용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정동영 고문님 모시고 경제민주화를 위해서 좀 선을 그어달라. 명쾌하게 한번 말씀 또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요 며칠 사이에 제가 머리맡에 책 3권을 두고 읽었습니다. (이상호 기자 X파일), (안철수의 생각), 우석훈의 (FTA 한 스푼)이라는…. 그 책 3권을 읽으면서 묘하게 '같다'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뭔가 관심의 지점이 같은 과녁을  향하고 있는 거에요. 그게 뭘까. 그냥 인상으로(말하면). 낡은 것은 죽었는데 새 것은 아직 오지 않은 현실, 구체제는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지만 아직 새 것에 대한 대망. 이것이 이 세 저자의 관심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경제민주화를 얘기하면서 삼성을 얘기하지 않는 건 거짓입니다. 그건 믿어선 안됩니다. 그러니까 지금 여야 후보를 검증하는 방법 중에 경제민주화를 얘기한다면 삼성을 얘기해야 합니다. 이게 정직한 현실입니다. 그리고 저는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노동'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민주화. 헌법이 분명히 보장하고 있지만, 오늘 그 균형은 아주 심각하게 무너져 있습니다. 

박진철 

펜싱 '멈춰버린 1초' 공격은 무효… 과학적 입증


이글은 프레시안 2012-07-31일자 기사 '펜싱 '멈춰버린 1초' 공격은 무효… 과학적 입증'을 퍼왔습니다.
[런던올림픽]한국표준과학연구원 권택용 박사 "공격시간 1초 초과"

012 런던올림픽 여자 에페 개인전 준결승에서 신아람(26·계룡시청) 선수가 '멈춰버린 1초' 때문에 패배한 것과 관련, 판정이 오심이었다는 과학적인 근거에 의한 주장이 제기됐다.

신아람은 30일 영국 엑셀 런던 사우스 아레나에서 열린 펜싱 여자 에페 개인전 브리타 하이데만(독일)과의 준결승에서 연장 승부 끝에 마지막 1초가 남은 상황에서 찌르기를 당해 5-6으로 졌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시간센터 권택용 박사는 31일 보도자료를 통해 "신아람 선수의 공개된 펜싱 비디오 판독 결과, 하이데만(독일) 선수가 세 번 공격하는 데 걸린 시간이 각각 0.06초, 0.19초, 1.17초로 모두 1.42초가 걸린 것으로 분석됐다"면서 "공개되지 않은 뒤로 빠지는 동작까지 고려한다면 그보다 더 걸렸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 박사는 "네 번째 득점으로 이어진 공격은 분명히 경기가 끝난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무효"라면서 "과학적으로 볼 때 오심"이라고 확신했다.

신아람은 종료 1초를 남기고 상대의 공격을 세 차례 막아냈지만 경기시간이 줄어들지 않았고, 결국 네 번째 공격을 막아내지 못해 승리를 내줬다.

권 박사는 하이데만이 인터뷰한 내용에도 과학적인 오류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하이데만은 "1초가 남긴 했다. 하지만 그것이 1.99초인지, 0.99초인지 아무도 알 수 없고, 1.99초라면 몇 번을 공격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빌트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권 박사는 "타이머에 1초가 표시될 경우 0.01초에서 0.99초까지 남았다는 말이며, 그러므로 1.99초는 2초(1.01~1.99)에 해당한다"면서 "앞으로 스포츠 경기에서 타이머를 10분의 1초 또는 100분의 1초까지 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자 자유형 200m에서도 박태환 선수와 중국의 쑨양 선수는 똑같이 1분 44초 93을 기록해 공동 은메달을 수상했는데, 0.001초까지 측정이 이뤄졌다면 승패가 갈렸을 수도 있다.

시간 측정은 스포츠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통신, 방송, 인터넷, 우주, 항공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그 같은 이유로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는 원자시계를 이용해 정확한 표준시를 유지하고 있다.

권 박사는 "우리나라의 표준시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유지하고 있는 9대의 원자시계로부터 만들어지는데, 대한민국 표준시는 경도 0도의 기준이 되는 국제표준 세계협정시와 오차 범위가 30억분의 1초 이내"라고 설명했다.

 /연합 .

'폭력 업체' 컨택터스, 알고보니 군사조직 방불 충격


이글은 프레시안 2012-07-30일자 기사 ''폭력 업체' 컨택터스, 알고보니 군사조직 방불 충격'을 퍼왔습니다.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UDT 출신 채용한 '민간 군사기업' 표방

며칠 새 노동계에서는 컨택터스(CONTACTUS)라는 '용역회사'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다.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에 있는 자동차업체 부품업체인 SJM공장에 200명이 넘는 컨택터스 경비직원들이 들이닥쳐 농성 중이던 조합원 150명을 폭력으로 몰아내면서 35명을 테러했기 때문이다.

부상자 중 11명은 머리가 찢어지고, 팔다리가 부러지고, 얼굴이 내려앉는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다. 지난 토요일까지 멀쩡하던 컨택터스의 회사 홈페이지(contactus.kr)는 용역 경비직원들의 폭력테러 사태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지자 일요일부터 폐쇄된 상태다.

 
▲ 경찰 차림을 하고 헬멧, 방패, 곤봉으로 무장한 사설 경비업체 용역 직원들. ⓒ김상민

'민영화된' 경찰 업무


2010년 10월 12일자는 "국내 노동쟁의나 노사분규로 인한 노조 파업과 노조의 집회시위 그리고 연대시위 현장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모습이 있다. 바로 검은유니폼을 입고 있는 경호원들이다. 최근 CONTACTUS라는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경호원들을 자주 찾아볼 수 있는데…노동쟁의와 노사분규의 집회시위 현장이나 파업이 진행 중인 주요 현장에는 빠지지 않고 배치되어 있다"고 썼다.

기사는 "컨택터스는 투입 가능한 인원을 최소 300명에서 최대 3000명 이상까지 보유하고 있으며, 최신 장비인 투명 헬멧과 방패 및 방검복을 지급하는 등 부대 장비를 갖춰 현장에 배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폐쇄된 컨택터스의 홈페이지 내용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이 회사가 대한민국 경찰 수준의 진압 장비를 가지고 있음이 확인된다. 경찰이 보유한 것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병력 운송 버스와 시위진압용 독일제 물대포 차량까지 보유하고 있으며, 동원한 용역경비직원들에게는 시위진압 경찰용과 다름없는 장비를 지급하고 있다. 또한제주도를 제외한 15개 광역시도에 지사망을 구축하여 전국적인 규모에서 사업을 진행해왔다.

ⓒ컨택터스 홈페이지

시위 진압은 물론 무인헬기 채증까지

회사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시위 방어 장비, 경비감시견 운영, 무인헬기 항공 채증, 채증 전문팀 서비스 등을 자랑하고 있는데, 파업 현장을 진압하는 훈련 사진까지 버젓이 내걸었다. 국가 공권력 수준의 진압 장비와 대응 훈련을 비롯해 무인헬기 항공 채증 같은 전문적인 정탐 활동은 경찰은 물론 국정원 등 공안기관의 협조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파업이 일어난 사업장을 "노동 권력자들에 의해 장악된 … 일부 귀족노조원과 노동 기득권자 그룹에 지배당한 … 현장"으로 묘사하면서 자신들의 테러행위를 "노사 화합과 공동선과 생존 모색"으로 미화시키는 컨택터스의 홍보물을 보면, 한국전쟁 전 해방정국에서 이승만 세력의 비호 아래 친일·친미 극우를 제외한 모든 정치세력에게 살인과 테러를 감행했던 서북청년단 같은 극우테러조직이 떠오른다.

ⓒ컨택터스 홈페이지

고가 외제품 판매에서 아프간 분쟁지역 요원 파견까지

컨택터스의 사업 영역은 노조파괴 용역 사업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2009년에는 쇼핑몰을 열어 구찌, 페레가모, 돌체, 디올, 프라다에서부터 입생로랑과 에르메스 등을 시판하려 했으며, 그에 앞서 수년 동안 고가 외제품 브랜드의 지적재산권 침해 대응 컨설팅을 다국적기업에 제공했다.

또한 컨택터스 대표 서진호는 '디텍티브 Detective'라는 자회사를 통해 세계비밀서비스협회(WSSA)와 국제비밀서비스협회(ISSA)가 합쳐 1950년 만들어진 세계탐정사협회(World Association of Detectives, WAD)의 한국사무소 업무를 맡아 "해외 명품 구입 대행을 빙자한 사기사건 조사"등을 담당하기도 했다.

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컨택터스가 "민간 군사 기업(PMC. Private Military Company)"을 표방하면서 2008년부터 미군 기지가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바그람 지역에 경호요원을 파견하고 주재 공관의 경호를 담당하기도 했으며, 이를 위해 국내 특수전 부대인 UDT 출신들을 채용했다는 점이다.

위헌적인 준(準)군사조직, 컨택터스

▲ 무장한 용역직원에게 폭행당해 SJM 노동자가 피 흘리고 있다. ⓒ트위터(@dongchimiheang)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나아가 국제평화 유지와 침략전쟁 부인을 선언하고,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며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않음을 확인하고 있다. 특히 우리 헌법은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반(反)노조 사상에 물든 테러리스트들이 '용역'이라는 완장을 두르고 합법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을 테러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테러리스트들은 스스로 '민간 군사 기업'을 표방하는 컨택터스라는 정체불명의 업체에 채용된 자들이었다.

외제 고가품 수입·판매에서부터 탐정·정찰 행위를 거쳐 파업 현장에 테러리스트 투입은 물론, 아프가니스탄 같은 분쟁 지역에 UDT 출신의 '전문용병'을 파견하는 주식회사 컨택터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다국적 '민간 군사 기업'을 표방하는 컨택터스의 인허가와 사업 확대 과정은 합법적이었을까. 아니면 정보기관, 정권 실세, 재벌을 등에 업은 탈법과 부패가 판치는 음모의 과정이었을까.

컨택터스의 이권·청탁 관계 모두 밝혀내야
경찰이 컨택터스의 대표를 소환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수사 초점은 컨택터스의 경비업법 위반에만 맞춰서는 안 된다. 도대체 이 희한하고 기괴한 기업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탄생과 확장 과정에 어떤 불법·탈법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밝혀야 한다. 각종 로비와 이권으로 경찰은 물론 정보기관과 정권 실세, 재벌이나 주한미군, 조직폭력단과 끈끈한 씨줄날줄로 엮여 있는 것은 아닌지를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

나아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노동자 테러로 먹고사는 모든 '용역업체'의 인허가 및 사업 과정을 실사해야 할 것이고, 국내는 물론 국외에 나가서까지 탐정·정찰·테러 행위를 벌이는 업체들의 실상을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지난 7월 17일은 제헌절이었다. '민간 군사 기업' 컨택터스의 노동자 테러는 헌법이 보장한 인권과 노동권을 처참하게 유린한 천인공노할 사건이다. 이 테러 사건에 대한 정부의 처리 과정은 대한민국 법이 만인(萬人,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지, 단지 만 명에게만 평등한 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윤효원 IndustriALL 컨설턴트

"MB 경호업체, '용역깡패' 업체로 급성장"


이글은 프레시안 2012-07-30일자 기사 '"MB 경호업체, '용역깡패' 업체로 급성장"'을 퍼왔습니다.
노조 폭력 용역업체 '컨택터스' 파문 확산

각종 노사 분규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파업을 폭력적으로 진압해 논란이 되고 있는 용역경비업체 '컨택터스'가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개인경호를 맡았던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 전망이다.

민주통합당 장하나 의원은 30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근 안산의 자동차부품업체 에스제이엠(SJM)에 용역 깡패가 난입해 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직장폐쇄를 단행한 일이 있었다"며 "이 업체가 바로 컨택터스 주식회사다. 이 업체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개인경호를 했던 업체로, 2006년 설립한 뒤 이명박 정권 하에서 급성장했다"고 폭로했다.

 
▲ 현재 폐쇄된 용역경비업체 '컨택터스' 홈페이지엔 "국내 최대 규모의 시위진압 장비를 보유한 대한민국 시위·집회 해결사"라면서 "가장 공격적이라고 알려진 이른바 '히틀러 경비견', 방패·헬멧·진압복·곤봉 1000세트와 지휘차량, 진압차량, 항공 채증용 무인헬기까지 갖췄다"고 홍보해 왔다. ⓒ컨택터스 홈페이지

장 의원은 "한국쓰리엠(3M), 상신브레이크, 발레오공조코리아, 유성기업 등 들으면 알만한 노사 분쟁 사업장에 다 투입됐지만 한 번도 경찰의 제지나 고소·고발 없이 지금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청와대나 공권력의 비호없이 어떻게 일개 용역업체가 노동현장에서 활개를 칠 수 있겠느냐"면서 "그러나 쌍방의 폭력 과실이 있어도 조사조차 받지 않는 일이 5년째 반복되고 있으며, 공교롭게도 업체의 법률자문을 법무법인 '영포'가 맡고 있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영포는 민간인 불법사찰로 구속기소된 진경락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을 변호했던 곳이다.

이에 대해 하금렬 대통령실장은 "처음 듣는다"며 "청와대나 공권력이 해당 업체를 비호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컨택터스, '민간군사기업' 지향…총기류 조달 자신해"

장 의원은 이날 별도로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컨택터스는 자사 홈페이지에서 단순한 용역경비업체가 아니라 스스로 '민간군사기업'을 지향한다고 얘기했었다"면서 "충격적인 것은 '무장 경호의 합법성을 획득했고, 총기류와 탄약 및 선박 내외의 무장에 필요한 무기들은 국제 네트워크를 통해 원활한 조달이 가능하다'고 밝히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장 의원이 거론한 컨택터스의 홈페이지(contactus.kr)는 현재 폐쇄된 상태다. 장 의원은 "(홈페이지엔) 아프가니스탄에서 네팔 용병과 함께 찍은 사진을 자랑스럽게 게시해 놓은 페이지도 있었다"면서 "특히 대표이사 인사말에는 '전국의 분쟁현장, 노사분쟁등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일수록 반드시 컨택터스를 떠올려 달라'며 노사 문제에 개입했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고 밝혔다.

실제 컨택터스는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국내 최대 규모의 시위 진압 장비를 보유한 대한민국 시위·집회 해결사"라면서 "가장 공격적이라고 알려진 이른바 '히틀러 경비견', 방패·헬멧·진압복·곤봉 1000세트와 지휘차량, 진압차량, 항공 채증용 무인헬기까지 갖췄다"고 홍보해 왔다. (☞관련 기사 : '폭력업체' 컨택터스, 알고보니 군사조직 방불 충격)

 /선명수 기자

5.16 세력 '구국혁명'커녕 사리사욕 싸움질


이글은 프레시안 2012-07-31일자 기사 '5.16 세력 '구국혁명'커녕 사리사욕 싸움질'을 퍼왔습니다.
[김재홍의 '박정희 권력의 DNA'] 5.16군사반란의 원인, 군내 파벌과 승진불만

5.16군사반란에 대해 구국의 혁명이니 사회혼란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니 하는 역사왜곡이 등장했다. 새누리당의 대통령예비후보인 박근혜 의원이 내놓은 나름의 역사평가다. 그러나 그 발언은 박 의원이 5.16군사반란 주모자 박정희 소장의 딸로서 사인(私人)의 입장과 공당의 대통령예비후보라는 공인의 역사관이 뒤엉켜 있는 것 같다. 일각에서는 박 의원이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계속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으니 자신감이 지나쳐 교만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즉 확고해진 정치적 위상을 이용해 아버지 박정희가 자행한 헌정유린까지도 무리하게 정당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그런 언급은 박정희의 딸로서 어쩔 수 없다고 하면 몰라도 정면으로 '구국의 결단'이니, '최선의 선택이었다'느니 하는 것은 보통문제가 아니다. 국민여론층에서 그렇게 만만하게 넘어갈 리가 없다. 역사 왜곡이 될 소지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일제의 한반도 강점과 식민지배가 불가피했고 결과적으로 근대화에 밑거름이 됐다고 하는 역사왜곡과 동일한 논리가 아닌가.

헌법전문 '3.1운동과 불의 항거 4.19민주이념 계승'4.19혁명 짓밟은 5.16군사반란 미화는 헌법정신 유린

박근혜 의원은 그런 발언을 한 후 자신의 말을 지지하는 국민이 50%가 넘는다고 했다. 그 국민만 투표를 한다고 해도 박 의원은 이미 대통령 당선이다. 그러나 그 50%는 허수였다. 한겨레가 사회여론조사연구소와 함께 벌인 정기 여론조사(7월27~28일)에서 박 의원의 5.16군사반란 정당화에 대해 "동의한다"는 응답은 37.2%에 불과했고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훨씬 많은 49.9%로 나타났다.

특히 박 의원의 5.16군사반란 합리화에 대한 반대는 20대에서 64.9%, 30대 61.9%, 40대 57.7%로 높게 나왔다. 50% 이상 동의를 보인 연령대는 60대 이상에서만 58.5%였으며 50대도 47.1%였다.

60대 이상이라면 5.16군사반란 때 10대, 유신 때 20대여서 박정희 정권 아래서 교육받고 또 고도로 통제된 언론을 접하면서 정치의식이 형성된 세대다. 지금도 머릿속에 개발독재와 강권통치가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식의 정치교육을 받은 악영향이 유산처럼 남아있는 세대라는 것이다. 반민주적 1인 독재체제인 유신헌정을 강행해 놓고서 그것이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예찬하는 극단적 우민화 조작을 하던 정권이었다. 그에 비해 2040세대는 5.16 군사반란 때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뿐더러 유신 때도 유아기였다. 그러니까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정치의식 면에서 오염되지 않은 세대다. 이들 중 다수의 자율적인 의식과 판단은 5.16군사반란을 합리화하는데 동의하지 않았다.

여기서 60대 이상 세대 중에서 5.16군사반란에 의해 짓밟힌 당사자 그룹인 4.19혁명 참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지 않을 수 없다. 피해자 단체로는 4.19혁명 유족회와 부상자회가 국가보훈처에 등록돼 있다. 보훈처에 등록하지 않은 채 광범하게 4.19혁명 참여자들이 자율성을 견지해온 단체가 '사단법인 사월혁명회'(상임의장 정동익)라 할 수 있다.

사월혁명회는 7월26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정례발표회를 갖고 박근혜 의원의 5.16군사반란 미화 발언에 대해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 헌법은 전문(前文)에 딱 두 가지의 역사적 사건과 그 정신을 계승한다고 명기했다. 하나는 항일 자주독립 정신으로 3.1운동을 들었고 두 번째가 반독재 시민혁명 정신으로 '4.19민주이념'이다. 이는 국민 합의의 결과다.

그런데 5.16군사반란은 4.19혁명 정신에 바탕한 제2공화정 헌법과 민주당 정부를 짓밟고 정권을 찬탈했다. 박근혜 의원은 그 4.19혁명 정신을 유린한 군사반란을 불가피하고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미화하고 있다. 그것은 '4.19민주이념'이 명기한 헌법정신에 대한 부정이 아닐 수 없다.

사월혁명회 성명 "5.16군사반란 미화는 제2의 쿠데타 기도"

사월혁명회는 이날 성명에서 "박근혜 의원은 공당의 대통령 예비후보로서의 활동을 중단하고, 4월혁명을 짓밟은 5.16 군사반란을 단죄하는 취지로 4.19민주이념을 대한민국헌법 전문에 규정한 헌법정신에 대한 입장을 먼저 명백하게 밝히라."고 요구했다.

성명은 이어 "박 의원의 5.16 군사반란과 유신체제에 대한 망언을 '제2의 쿠데타 기도'로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맹비난하고 "집권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군사반란을 정당시 하는 위험한 국가관을 가지고 있는데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새누리당 박근혜의원은 5.16을 군사반란으로 인정하고 국민 앞에 사죄하라고 규탄했다.

5.16군사반란이 과연 구국의 혁명인가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1960년 4.19혁명 이후 1961년 5.16과 63년 이른바 민정이양, 그리고 65년 3차 반혁명사건까지 분석적으로 정리해 보아야 한다. 그들은 총칼을 들고서도 최소한 5년 동안 내부 권력투쟁과 검은 정치자금 조달로 나라 전체를 정치적 혼란과 부패상 아래 추락시켰다. 그러면서 4.19혁명 과정에 대해서는 불과 1년을 혼란상으로 규정하고 정권찬탈의 명분으로 삼았다.

5.16군사반란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군 장교 인사적체와 정치군인 발호였다. 군사반란의 주모자들은 군 인사에서 소외된 그룹이었다. 당시 군내 파벌은 지연과 학연, 장교임관 구분 등을 기반으로 형성됐다.

광복군 일본군 만주군과 함께 '하극상파' 형성

5.16군사반란이 일어나기 전 4.19혁명 전후 군내 파벌은 크게 ⧍광복군과 중국군 출신 ⧍일본군 ⧍만주군 ⧍동북(함경도)파 ⧍서북(평안황해)파 ⧍중남부(경기충청)파 ⧍정군운동과 하극상파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때 5.16 이후 박정희 정권아래서 기승을 부린 영남(대구경북과 경남)군벌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첫째, 광복군과 중국군 출신은 해방 후 창군 때 군 수뇌부에서 중심 역할을 맡았다. 중국군(장개석 국민당 군) 소장으로 광복군 참모장을 지낸 이범석이 초대 국방장관, 일본육사 출신이지만 광복군 참모총장을 지낸 유동열이 미군정 아래서 초대 통위부장, 중국군 소장으로 1946년 한국군 경비대 총사령관을 맡은 송호성 등이 주요 인물이다.

이범석은 1946년 민족청년단장, 48년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장관, 자유당 부당수, 4.19혁명 후 참의원 등 정계에서 활동했다. 그는 창군 초기 광복군 정신의 계승 원칙을 천명했으나 실제로는 일본육사 출신들을 많이 등용했다. 그것은 김구 세력에 대한 이승만의 견제 책략을 이범석이 실행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광복군과 중국군 출신의 주류는 김구가 관여하던 낙양군관학교 한인특별반에서 교육받은 인사들이었다. 이들은 자연히 김구의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조직화할 수 있었다. 이것을 이승만이 그대로 둘리 없었으며 광복군계는 군요직에서 차례로 제거되고 만다. 그 뒷자리를 차지한 것이 일본군 출신들이었다.

유동열은 1919년 3.1운동 후 상해임시정부에서 군무총장을 역임, 광복군 양성에 주력했으며 민족혁명당을 조직하여 독립투쟁을 하다가 해방후 환국했으나 6.25 때 납북당했다. 송호성은 6.25 전쟁 중 자진 월북하여 국군의 발전에 기여한 바 없으며 북한에서 강계 월북자 재교육훈련소의 소장으로 일했다.

둘째, 일본군계는 일본육사와 학도병과 지원병 출신으로 이루어졌고 이 중 주류는 일본육사계였다. 일본육사 출신의 주류는 창군 초기 육군참모총장 채병덕과 4.19혁명 직후 과도정부의 국방장관을 지낸 이종찬, 그리고 6.25전쟁 때 육본 작전국장과 남부지구경비사령관을 지낸 이용문을 3걸로 꼽을 수 있다. 해방후 초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이응준, 그리고 51년 휴전회담 대표와 56년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이형근도 일본육사계의 거물이다.

이들은 일본육사에 입학한 후 계림회라는 친목모임을 만들었다. 당시 도쿄에 있던 영친왕은 계림회를 위하여 방을 얻어주고 과자와 과일 등을 보내주기도 했다. 이 계림회 아지트는 조선인 일본육사 출신 선후배들의 친목모임 장소였으며 모임은 해방 때까지 지속됐다.

일본군파 이종찬, 이승만의 군 동원 거부로 육참총장직 해임

이 중 특히 이종찬은 1952년 5월 피난수도 부산에서 이승만이 재선을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참모총장이던 그에게 1개 전투사단의 동원을 명령했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종찬은 이승만이 국회의원들과 언론을 협박하기 위해 군을 이용하려 하자 전방 전투부대 부족과 군의 정치적 중립을 내세워 단호하게 거부했다.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였지만 부당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자 항명한 것이다. 이종찬은 이 사건으로 참모총장직에서 해임되고 사실상 미국으로 추방조치 당하고 말지만 그는 군 안팎에서 참군인으로 존경을 받았다.

이승만은 군의 정치적 이용을 거부한 이종찬의 항명 이후 자신이 통제하기 어려운 장성을 중용하지 않았다. 이종찬의 후임은 백선엽이었으며, 52년 부산 직선제 개헌파동 때 이승만의 군 동원 명령을 이행한 사람은 헌병총사령관 원용덕으로 모두 만주군 출신이다.

일본육사파 채병덕은 6.25전쟁 중 하동전투에서 전사했으며, 이용문도 남부지구경비사령관으로 재직하던 1953년 비행기 사고로 전사하고 만다.

일본군파는 또 일본육사 출신과 지원병 하사관 출신 간에 알력이 심했다. 하사관 출신으로는 일본군 지원병으로 입대했다가 해방 후 군사영어학교를 거쳐 임관한 송요찬과 최경록이 대표적이었다. 송요찬은 4.19혁명 당시 육군참모총장으로 계엄사령관이었다. 육참총장 재직 때 군의 부패 척결에 앞장섰으며 일본군 하사관 출신의 보스로 상당한 군벌을 형성했다. 5.16군사반란 후 국방장관과 내각수반 겸 외무장관을 지냈다.

최경록은 5.16 때 박정희가 부사령관이던 2군의 직속상관 사령관으로 처음에 군사반란에 반대했다가 차츰 묵인 자세를 취했다. 유신 후에도 교통부장관과 유정회 국회의원을 지냈다.

일본군계는 학병 출신도 상당수 군 수뇌부에 진출했다. 5.16군사반란 당시 육군참모총장으로 초기 최고회의 의장에 추대됐으나 반혁명 혐의로 투옥된 장도영, 민주당 정부 때 육참총장 재임시 정군운동의 표적이 됐던 최영희, 그리고 5.16 때 육사교장으로 군사반란에 반대하다가 구금된 강영훈 등이 학병 출신이다.

이승만, 김구 관련된 광복군 거세 후 일본군파 중용일본군 비대해지자 다시 만주군파 키워 일본군파 견제

셋째, 만주군파는 이승만이 광복군과 중국군 출신을 거세한 뒤 중용했던 일본군파가 비대해지자 다시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육성한 세력이다. 특히 52년 부산 직선제개헌 파동 때 만군 출신이 군의 정치적 이용에 공을 세운 후 육군참모총장을 백선엽(두 번 중임)과 정일권이 독과점하면서 만군계가 급성장했다.

만군파는 초기의 봉천군관학교와 그 후의 신경군관학교로 나뉘지만 함께 나라를 빼앗긴 조선인으로서 만주에서 일본인이나 중국인과 경쟁하면서 교육받아 동병상련 관계로 단결력이 강하다.

봉천군관학교 출신으로는 정일권과 김백일 송석하 신현준 백선엽 등이 유명인사다. 신경군관학교 출신은 이주일 김동하 윤태일 박임항 방원철 박정희 이한림 강문봉 김윤근 등이다. 이 중 5.16 당시 제1야전군 사령관이던 이한림은 처음부터 군사반란에 반대했으나 나중에 박정희에 회유당하고 공직에 참여한다. 또 5.16에 가담했던 군단장 김동하와 박임항은 나중에 이른바 반혁명 사건으로 고초를 겪기도 한다.

이들 중엔 만주군관학교 우수졸업자로 일본육사에 편입한 경우도 상당수에 이른다. 박정희 이한림 이주일 박임항 강문봉 김윤근 등이 그들이다.

신경군관학교 출신 중에 이주일(감사원장 지냄) 윤태일(중앙정보부 차장 지냄) 등 박정희 정권에서 고위직을 지낸 인사가 많이 배출됐다.

넷째, 동북(함경도)파로는 정일권, 이한림, 강문봉 등이 중심인물이었고 다섯째, 서북(평안황해)파는 백선엽과 백인엽 형제를 중심으로 파벌을 이루었으며 여섯째, 중남부(경기충청)파로 이형근 박병권 김종오 민기식 최경록 등이 보스 노릇을 했다.

군내 소외된 육사5기와 8기 하극상파가 5.16군사반란 꾸며

일곱째, 4.19혁명과 5.16군사반란을 전후해서 학연과 지연으로 유력한 파벌을 형성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 군 인사에서 소외된 불만세력이 이른바 정군운동과 하극상사건을 일으킨다. 이들은 만주군 출신내의 비주류, 미군정하 경비사관학교에서 교육받고 임관한 육사5기 그룹, 정부수립 후 첫 육사출신 장교가 된 육사8기 그룹이었다.

4.19혁명 이전 이승만 정권아래서 정군운동은 인사적체 때문에 발화됐다. 계급사회인군대에서 승진이 막혀있다는 것은 가장 심각한 불만사항이다. 그런데 이승만 정부는 군 수뇌인 합참의장과 육군참모총장직을 소수의 몇 사람이 2~3회씩 중임하는 독과점식 인사정책을 유지했다. 이유는 창군된 지 오래되지 않아 장성들의 나이가 젊었고 또 이승만도 새로운 사람보다는 손에 익은 장군을 계속 중용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채병덕 정일권 백선엽은 참모총장을 각각 두 번씩 중임했으며, 함참의장의 경우 김종오는 3대나 연임했다. 또 이형근 정일권 백선엽 최영희 김종오는 합참의장도 하고 이어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그 결과 육사5기의 경우 대령에 7~8년이나 머물러야 했고 8기생은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하는데 8년이 소요됐다.

특히 기록적으로 1300여명이 임관한 8기는 승진적체에 위기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임관한 동기생 중 절반 정도가 6.25전쟁을 겪으면서 희생됐음에도 5.16 이전 1차 대령 진급자는 7명에 불과했다.

이들 8기생은 총리와 국방장관을 찾아가 육군참모총장의 임명 기준을 제시하는 등 하극상 행동에 들어간다. 8기생 8명이 하극상을 벌였다 해서 8-8그룹이라 불리는 이들이 나중에 5.16군사반란의 주모그룹이 되는 것이다.

김종필 김형욱 신윤창 길재호 옥창호 석창희 최준명 오상균 등이 그들이다. 이 중 최준명 오상균은 육본에 8기생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소개'방침에 따라 지방에 전보되는 바람에 5.16주체세력에 끼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 8기그룹은 또 5.16군사반란 주모세력 내부에서 김재춘 문재준 박치옥 등의 5기그룹과 치열한 권력투쟁을 치러야 했다.

 
▲ 5.16군사반란 주모세력 내부 육사5기의 중심인물 김재춘(제3대 중앙정보부장)과 8기의 리더 김종필(초대 중앙정보부장)은 치열한 권력 각축전을 벌였다.

/김재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