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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26일 수요일

나는 '친박'이 무섭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09-26일자 기사 '나는 '친박'이 무섭다'를 퍼왔습니다.
박근혜 캠프의 3대 코드 '비리', '공작', '망언'

▲ 박근혜 후보의 국민행복캠프 홈페이지 화면. ⓒ 최은경

캠프는 입으로 하는 공약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공약이다. 후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후보와 더불어 일할 사람들. 사실 박근혜 후보보다 더 걱정되는 것이 캠프다. 이른바 '친박'이라는 세력은 선거의 자원봉사자가 아니다. 그들은 '수권 세력'으로서 집권할 경우 국정의 방향을 정하고 집행을 책임질 사람들이다. 하지만 박근혜 캠프는 어떤가? '이념'과 '도덕'과 '양식'의 면에서 이들은 심각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 국민의 불안은 이것이다. "과연 이들이 집권을 해도 나라가 온전할 수 있을까?" 

돌려 막는 비리
 

벌써부터 비리의 봇물이 터져 나온다. 집권도 하기 전에 벌써 이러니, 권력을 손에 쥐면 가관일 것이다. 먼저 "부산의 친박"으로 알려진 현영희 의원이 현기환 전 의원에게 공천헌금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어서 "친박의 좌장"으로 통하는 홍사덕 전 의원이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했다. 선관위에서 수사의 '의뢰'를 넘어 아예 '고발'을 했다는 것은 물증이 충분하다는 뜻이리라. 캠프의 핵심이 낙마를 하다 보니, 아예 캠프 구성을 다시 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박근혜의 아바타" 송영선 전 의원이 사고를 쳤다. 그녀의 녹취록은 길이 보존해야 할 정치학의 귀중한 사료다. 친박 세력이 정치를 어떻게 하는지 구체적이며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그 기록 덕분에 국민들은 대통령이 나눠주는 차관급 자리가 무려 5000개이며, 조직을 굴리려면 1억 5천만 원 상당의 윤활유가 필요하며, 지역구에서 6만 표를 몰아주면 장차관 자리를 얻는다는, 정상적으로는 알기 힘든 귀중한 사실을 알게 됐다. 

제명을 당하자 송영선 전 의원은 총선 당시 공천헌금을 받은 "실세의원"이 존재한다고 폭로했다. 그게 빈 말이 아니라면, 공천비리가 박근혜 후보의 최측근의 손에 조직적으로 저질러졌다는 얘기가 된다. 당이 이렇게 돌아가자, 보다 못한 "친박의 원조" 서청원 전 대표가 당을 구하기 위해 "백의종군" 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구원투수로 나선 이 분도 실은 18대 총선 당시 공천헌금을 수수한 혐의로 징역형을 받은 바 있다. 신악(新惡)의 대안이 구악(舊惡). 이 얼마나 황당한가? 

"박근혜의 아바타" 송영선 전 의원이 박근혜와 박사모를 뒤에 업고 당직자의 뺨을 때리는 장면은 과연 압권이었다. 이게 21세기의 정당 정치에 있을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어느 일간신문은 국민의 우려를 이렇게 전한다. 

문제는 이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수년간 대세론을 달렸던 박 후보를 등에 업고 수많은 친박인사들이 권력의 부나방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것. 총선과 경선 과정에서 친박 핵심인사들이 비리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사고치는 '박근혜 사람들'…집권해도 '걱정' 내일신문 2012.09.25)
 

공작 정치, "나오면 죽는다"

▲ 정준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대선기획단 공보위원이 6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금태섭 변호사(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측)에게 전화를 걸어서 안 원장의 뇌물비리와과 여자문제 폭로를 협박하며 대선불출마를 종용했다는 금태섭 변호사의 폭로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 권우성
박근혜 캠프의 또 다른 코드는 '공작'이다. 박근혜 후보는 대개 언론인 출신으로 채워지는 공보단에 검사 출신의 정준길을 임명했다. 처음부터 안철수에 대한 네거티브를 염두에 둔 포석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그는 트윗에 안철수를 공격하는 부정적 멘션을 올리는 것으로 몸을 풀더니, 급기야 두 가지 허위사실을 들어 협박을 하며 안철수의 불출마를 종용했다. 그는 그것이 '친구끼리' 나누는 가벼운 대화였다고 주장했으나, 택시 기사가 나타나는 바람에 들통이 나고 말았다.

어느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후보는 유독 검찰 출신을 좋아한단다. 가령 박근혜 후보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쇄신 드라마의 핵심인 '정치쇄신특위'의 경우, 위원의 절반가량이 검찰 출신이라고 한다. 특위의 위원장 역시 물론 검찰 출신 안대희 전 대법관이다. 게다가 4·11 총선 때 당시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은 것도 검사장 출신의 정홍원 변호사. 이 분은 결국 현영희 의원 공천헌금 의혹으로 구설수에 올랐다.('무차별 영입한 檢출신…선무당 되나' 문화일보 2012/0907)

하지만 이보다 더 고약한 사정이 있다. 현재 박근혜 주변에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을 주도한 검사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뉴스 타파'에 따르면, 유서대필 조작을 주도한 검사들 중에서

김기춘 검사는 현재 박근혜 후보의 측근인 '7인회' 멤버로 활동 중이다. 강신욱 당시 강력부장은 대법관을 지내고 2007년 박근혜 대선캠프에서 법률지원특보단장을 역임했다. 남기춘 검사 역시 박근혜 캠프에서 클린검증 소위원장을 맡았고, 광상도 검사는 박근혜 후보의 '싱크탱크'로 알려진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에 참여했다. 윤석만 검사는 올해 대전지역에서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출마했으며, 현재 박 후보를 지지하는 외곽 조직에 있다. 임철 검사는 2008년 총선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한국판 '드레퓌스사건' 검사들이 왜 박근혜 캠프에… 미디어오늘 2012.09.01)
 

최근 박근혜 후보는 최근 과거사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그 사과와 반성에 진정성이 있다면, 5공의 연장인 노태우 정권 하에서 벌어진 인권유린에 대해서도 적절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 

박근혜 후보에게는 새로운 인물의 '더하기'보다 기존 인물들의 '빼기'가 더 시급해 보인다. 한 젊은이의 인생을 망쳐놓은 파렴치한 공작정치와 사법범죄의 주체들을 그냥 놔둔 채 과연 '국민대통합'을 운운해도 되는 것일까? 이 문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실언, 망언, 폭언의 차차차
 

또 다른 문제는 박근혜 캠프의 양식을 의심케 만드는 망언 퍼레이드. 시발은 인혁당 관련한 박근혜 후보의 언급이었다. 먼저 친박 좌장 홍사덕 전 의원.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유신을 한 게 아니라 수출 100억 달러를 넘기기 위해 한 것이다" 박근혜 캠프의 정치발전위원인 박효종 교수. "1960년대 초의 참담한 상황과 비교하면 지금은 상전벽해다. 당시 상황을 불가피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결코 부적절하지 않다." 이들의 망언은 결국 정몽준 의원의 타박을 받고 만다. "국민을 돼지로 아느냐?"

압권은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의 망언이다. 그는 과거사의 청산을 요구하는 국민을 아예 간첩으로 만들어 버린다. "역사를 쓰는 일에만 몰두해서 과거로 발목잡기를 하는 세작들이 있지만, 역사를 만들어온 사람들은 새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 오늘을 허비하지 않는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박근혜 후보의 '입' 노릇을 하는 김병호 공보단장의 망언이다. "유신 자체를 기준으로 한다면 당시 가족들은 물론 지금까지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모두 사과해야 한다." 한 마디로, 일일이 사과할 필요 없다는 얘기다.

▲ 친박계 김재원 대변인은 임명장을 받기도 전에 사퇴했다. ⓒ 남소연
후보의 입 노릇을 하는 공보단에서 협박에 이어 망언까지 늘어놓자, 박근혜 후보는 부랴부랴 공보단장과 대변인을 교체한다. 그리하여 등장한 것이 '이정현 공보단장-김재원 대변인'으로 이루어진 투톱 시스템. 한 마디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김재원 대변인-이정현 공보특보' 라인이 부활한 셈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회전문 인사는 그 자체가 "새누리당과 박 후보 측 인재풀의 협소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될 수도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복심' 이정현, 새 공보단장으로 복귀. 경향신문 2012.09.23) 

하지만 이 새로운 공보 라인도 오래 가지 못했다. 김재원 대변인은 임명장도 받기 전에 기자들에게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폭언을 퍼부어댔다. "야, XX들아. 이렇게 한다고 너네들이 특종을 할 것 같냐. 너희가 정보보고 하는 게 우리한테 다 들어온다." 

구원투수가 더 심한 폭투를 한 셈이다. 결국 그는 임명장도 받기 전에 사퇴를 하고 만다. 흥미로운 것은 19대 국회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새누리당 대변인들이 줄줄이 낙마를 했다는 점이다. 김영우, 홍일표, 김재원. 여기에서 박근혜 캠프의 난맥상을 엿볼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박근혜 후보가 김무성 전 의원을 공동선대위장에 준하는 요직에 임명할 예정이라는 기사가 뜬다. 친박 좌장 홍사덕 전 의원이 비리와 망언으로 낙마하자, 돌아온 탕자를 끌어 안으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 기사 바로 아래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6월 항쟁에 참여한 적이 없다"고 발언했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6월 항쟁의 현장에서 찍힌 노 전대통령의 사진은 합성이나 연출이라 주장할 작정인가? 박근혜 캠프의 실언, 망언, 폭언의 퍼레이드는 멈출 줄을 모른다. 

과연 이들이 집권해도 나라는 안녕할까? 

진중권(angelus)

2012년 9월 20일 목요일

與 허점 노출에도 속만 태우는 野 "공격수가 없네"


이글은 위키프레스 2012-09-20일자 기사 '與 허점 노출에도 속만 태우는 野 "공격수가 없네"'를 퍼왔습니다.


민주통합당이 새누리당 홍사덕·송영선 전 의원의 금품수수 의혹 등 연이은 호재 속에서도 효과적인 대여공세를 펼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당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공세의 선봉에 서야 할 최고위원회가 쇄신론에 밀려 문재인 대선후보에게 전권을 넘기고 2선으로 후퇴하면서 새누리당을 공격할 공격수·저격수들이 '무장해제'된 탓이라는 지적이다. 

당내 사정에 밝은 민주당 관계자는 20일 "이번 사태는 새누리당을 곤경에 빠뜨릴 절호의 기회인데 정작 새누리당을 공격할 지도부가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측근인 홍사덕·송영선 전 의원에 대한 추문이 연이틀 불거졌지만 이에 신속히 대응하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사실상 '실기'(失機) 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관련 의혹을 놓고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총공세를 펴는 것은 문 후보의 지지율 제고를 위해서도 필수적인데, 대변인 논평 몇개 나왔을뿐 대응을 제대로 못했다"며 "쇄신도 좋지만 할 건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 관계자는 향후 대선까지 이런 공격력 부재 사태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특히 민주당 내에서 새누리당과 비슷한 사단이 발생할 경우에는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 관계자는 "원래 대선정국에서는 온갖 흑색선전에 비방이 난무하는 법인데 이 경우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맞불을 놓으며 대선후보를 보호해야한다는 것이 정치권의 철칙"이라며 " 또 대선을 앞두고 부인하기 힘든 당내 비리가 발각되면 당 대표와 지도부가 대선후보 대신 책임을 지고 퇴진하는 것이 오랜 전통"이라고 말했다. 

현 상황에서는 문 후보 말고는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이같은 지도부 공백사태를 초래한 당내 일부세력의 정치 경험 부족을 꼬집었다.

당내 일부세력이 경선 논란을 이유로 쇄신론을 앞세워 지도부 퇴진만을 일방적으로 요구한 탓에 결국 이같은 상황이 초래됐다는 것이다. 

이해찬 대표를 중심으로 한 지도부의 퇴진으로 경선 논란을 잠재우려다 오히려 당의 상황 대처 능력이 약화되고 말았다는 지적인 셈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 셈이라는 논리도 폈다.

사실상 지도부 2선 퇴진을 돌이킬 수 어렵게 된 만큼 이제는 당 지도부를 몰아세웠던 당내 세력에게 당 상황 대처 능력 저하의 책임을 물어야한다고 이 관계자는 강조했다

박진오 (pakrjinoh@wikipress.co.kr) 기자 

2012년 9월 19일 수요일

MB, 내곡동 특별법 수용 미루는 이유는…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9-19일자 기사 'MB, 내곡동 특별법 수용 미루는 이유는…'을 퍼왔습니다.
[아침신문 솎아보기] “민주당 정파적 이익 대변, 위헌 소지 있어 숙고의 시간 필요”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홍사덕 전 새누리당 의원이 18일 자진 탈당했다. 홍 전 의원은 “큰 일을 앞둔 당과 박근혜 후보에게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어 드리기 위해 탈당한다”면서 “수사가 마무리돼 저의 무고함이 밝혀질 때까지 모든 활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내곡동 사저 특검법’에 대한 심의를 보류했다. 특검법을 수용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못한 이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재의 요구) 마감 시한인 21일 최종 결정을 할 예정이다.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대립이 악화되고 있다. 18일 중국 100여개 도시에서는 대규모 반일 시위가 발생했고, 중국 해양감시선은 센카쿠 영해에 진입해 일본 자위대 함정까지 출동하는 등 양국관계가 군사대립 수준의 갈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다음은 19일자 아침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쌀 달라’ ‘밀가루 주겠다’ 남북 정권 다투는 동안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국민일보 (安, 대국민 면접 ‘깜짝카드’ 나올까)
동아일보 (中 국치일 100여개 도시서 반일시위)
서울신문 (히든 크라임 신고범죄 18배 무서운 세상)
세계일보 (동북아 영토분쟁·역사갈등의 끝은 어디… 韓·日 독도 홍보전 ‘사생결단’)
조선일보 (中, 對日분쟁 대륙붕, 유엔에 서류 내기 前 한국에 먼저 알려)
중앙일보 (더 쉬워진 '연금 가불' 100세 시대의 딜레마)
한겨레 ('조건만남' 아저씨는 소녀의 나이를 묻지 않았다)
한국일보 ('과거사' 대선 쟁점화)

‘친박계’ 좌장, 홍사덕 전 의원 자진탈당

국민일보 19일자 4면

‘친박계’의 좌장격인 홍사덕 전 새누리당 의원이 18일 자진 탈당했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홍 전 의원은 이날 자필로 쓴 보도자료를 통해 “큰 일을 앞둔 당과 박근혜 후보에게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어 드리기 위해 탈당한다”면서 “수사가 마무리돼 저의 무고함이 밝혀질 때까지 모든 활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홍 전 의원은 “검찰이 현재의 상황을 감안해 빠른 시일 내에 수사를 끝내 줄 것을 간절히 바란다”고 촉구했다. 

홍 전 의원이 검찰에 고발된 지 하루 만에 스스로 탈당한 것은 자신에 대한 의혹이 박 후보의 대선 가도에 악재가 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국일보는 전했다. 그러나 홍 전 의원이 박 후보 경선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내는 등 사실상 친박계 좌장 역할을 해 온 만큼 박 후보가 어느 정도 타격을 입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박 후보는 이날 가천대에서 특강을 한 뒤 기자들과 만나 홍 전 의원의 탈당에 대해 “(의혹의) 내용은 잘 모르겠고, 탈당을 하셨다는데 생각해서 결정하신 것 같다”면서 “조속하게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MB, ‘내곡동 사저 특검법’ 심의 보류

이명박 대통령이 ‘내곡동 사저 특검법’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고 서울신문이 보도했다. 특검법을 수용할지 아니면 거부권 행사(재의 요구)를 할지 아직 최종 결심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특검법에 대한 심의를 일단 보류했다. 

서울신문 19일자 1면

재의 요구 마감 시한(부처로 법이 넘어온 뒤 15일)인 오는 21일까지 일단 시간을 벌겠다는 뜻이라고 서울신문은 전했다. 결국 내곡동 특검법을 받을지, 안 받을지는 21일 임시국무회의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 건은 지난 국무회의에서도 논의된 것으로 알고 있고,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는 중”이라면서 “좀 더 신중을 기하고 의견을 듣기 위해 시간을 더 갖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적법 기간까지 2∼3일 시간이 있으니 더 숙고의 시간을 갖는 게 좋겠다”고 밝혔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이 대통령이 ‘장고’(長考)를 거듭하고 있는 것은 내곡동 특검법안이 위헌소지가 많아 섣불리 수용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현행 법안대로라면 야당인 민주통합당이 특별검사 2명의 추천권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정파적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고, 이 사건의 고발 당사자인 민주당이 수사 주체를 지정하는 것도 적법절차의 원칙을 저버린 것이라는 점에서다. 

中·日, 센카쿠 군사충돌 위기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대립이 군사적 대치에 버금가는 수준의 갈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민일보에 따르면 중국 본토에서는 대대적인 반일시위가 계속됐고, 중국 해양감시선은 센카쿠 영해에 진입해 일본 자위대 함정까지 출동하는 등 양국관계는 1972년 수교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만주사변 81주년 기념일인 18일 중국 베이징을 비롯한 100여개 도시에서는 동시다발적인 반일 시위가 발생했다. 중국 외교부 훙레이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반일 시위를 “주권을 수호하는 목소리”라고 옹호했다. 

중국 해양감시선 3척은 오후 5시20분쯤 센카쿠 부근 일본 영해에 진입했다. 해감선은 일본 해상보안청 경고를 받고 40분 뒤에 물러갔다고 국민일보는 보도했다. 앞서 해감선 10척과 어업감시선 1척은 센카쿠의 무인도 중 한 곳인 우오쓰리 섬 북서쪽 주변 해역을 항해했다. 전날 동중국해를 향해 출항한 중국 어선 1000여 척은 센카쿠 서쪽 50㎞ 해역에서 조업을 시작했다고 NHK방송이 보도했다. 

일본 방위성은 물리적 충돌에 대비, 자위대 함정을 센카쿠 인근 해역으로 이동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P3-C 초계기 등을 통한 감시활동도 강화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해상보안청도 기관포가 장착된 1000t급 대형 순시선 ‘아소’를 주변 해역에 파견했다. 

대법원, 27일 곽노현 최종 선고

대법원이 곽노현 서울시교육감(58)의 선거법 위반 상고심 판결을 오는 27일 오전 10시에 선고한다. 대법원에서 항소심 형이 확정되면 곽 교육감은 교육감직을 상실한다.

경향신문 19일자 12면

경향신문에 따르면 곽 교육감은 2010년 6월 서울시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자신과 후보단일화를 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교육감에 당선된 뒤 2억원을 건넨 혐의로 지난해 9월 구속기소됐다. 그에게는 ‘사후매수죄’가 적용됐다. 곽 교육감은 지난 1월 1심에서 벌금 3000만원, 지난 4월 항소심에서는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곽 교육감은 구속기소 직후 교육감직에서 배제됐다가 1심에서 벌금형을 받고 석방된 이후 교육감 업무에 복귀했다. 2심에서는 실형을 받았지만 대법원 판결 확정 전까지 법정구속을 하지 않는 조건부 실형이어서 교육감직은 유지하고 있다고 경향신문은 전했다.

상고심에서 형이 확정되면 곽 교육감은 남은 형기인 8개월을 복역해야 한다. 이 경우 부교육감이 교육감 권한대행을 맡고 재선거로 교육감을 다시 뽑는다. 서울시교육감 재선거는 오는 12월19일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다.

김병철 기자 | kbc@mediatoday.co.kr  

2012년 9월 18일 화요일

홍사덕, 새누리당 탈당에 "또 꼬리자르기?"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9-18일자 기사 '홍사덕, 새누리당 탈당에 "또 꼬리자르기?"'를 퍼왔습니다.
"박근혜 후보에게 부담 안되게"…SNS "무죄라면서?"

친박근혜계 좌장격으로 군림한 홍사덕 새누리당 전 의원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검찰에 고발당하자 탈당을 선언해 논란이 일고 있다.
홍 전 의원은 이날 자필로 쓴 보도자료에서 "저는 큰일을 앞둔 당과 (박근혜) 후보에게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오늘 자진 탈당한다"며 "수사가 마무리되어 무고함이 밝혀질 때까지 모든 활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어 "검찰이 현재 상황을 감안, 빠른 시일 안에 수사를 끝내주실 것을 간절히 바란다"며 여전히 자신의 무죄를 강조하기도 했다.
앞서 박근혜 대선 후보의 경선캠프에서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바 있던 홍 전 의원은 지난 2007년 대선 경선 캠프에서도 활동한 바 있다.
이를 두고 트위터리안들은 새누리당이 최근 비리 사태만 터지면 탈당을 한다는 점을 두고 "또 꼬리 자르기가 시작됐다"며 비아냥냈다.
어제 민주당 대변인이 홍사덕에 대한 새누리당 처리안을 예상했었죠? 그대로 됐습니다. 홍사덕이 새누리당 탈당했습니다. 비례는 제명해서 의원직 유지하고, 지역은 탈당해서 유지하고. 도마뱀인지 꼬리는 정말 잘 자르죠?(파워트위터리안 doa ‏@doax)
요즘 새누리당의 트렌드 '당이 나를 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 당을 버린다'(고재열 기자_독설닷컴, ‏@dogsul)
한 사람을 위한 100% 새누리당을 만들려는 헌신이 눈물겹네요. "100% 대한민국" 앞에도 '한 사람을 위한'을 덧붙여야 할 듯.(역사학자 전우용, ‏@histopian)
이밖에도 트위터 여론은 "홍사덕씨 갈 때 가더라도 싸논 똥은 치우고 가셔야지 안그러우?", "역시 빤수 뒤집어 입는다고 구린 냄새가 없어지는건 아니지", "만날 자르고~ 파묻고. 이제 지겹다. 다른 작전좀 내라", "그놈의 꼬리는 도대체 몇개나 됩니까? 차라리 머리를 잘라야", "이정도면 새누리당이 없어질 기세", "당당하면 왜 탈당하는 것인가" 등의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트위터리안 안철수****(‏@ahn*****)는 "박근혜의 대선 가도에 걸림돌이 될 것 같아 스스로 탈당한 것인지, 아니면 박근혜로부터 탈당 요구가 있었던 것인지 몰라도 모양새는 빨리 갖추었네요. 그래도 유신 망언과 뇌물수수라는 펙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죠"라고 꼬집기도 했다.
홍 전 의원은 총선 직전인 지난 3월 중소기업 대표로부터 6천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17일 중앙 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고발됐다.

김경환 기자  |  1986kkh@pressbyple.com

2012년 9월 1일 토요일

‘건망증’ 홍사덕! 유신을 가르쳐주마②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8-31일자 기사 '‘건망증’ 홍사덕! 유신을 가르쳐주마②'를 퍼왔습니다.
정당한 이유 없이 수업 빠지면 사형 당하는 유신헌법

수업 안 들으면 사형시킬 수 있는 긴급조치 4호를 아십니까?

박정희는 자신의 권력을 보장하기 위해 대통령의 긴급조치권을 헌법에 추가했다. 즉 ‘국가의 안전보장이나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또는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처했을 때 대통령이 국정전반에 걸쳐서 긴급조치를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판단해서 자기가 필요하다고 여기면 ‘자기 입맛에 맞는 대로 긴급조치를 취해 사람들을 조질 수 있게 한 것이 긴급조치이다. 긴급조치 위반자들은 민간인이고 계엄령 치하가 아님에도 비상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았다. 군인이 민간인을 재판한 것이다. 유신이 독사라면 긴급조치는 그 독이빨이었다. 박정희는 죽기 전까지 긴급조치를 무려 9번 발동했다. 

긴급조치 1호는 유신헌법에 대해 찬성이든 반대든 일체 의견을 금지시킨 것이다. 의사표현마저 무시한 초헌법적 횡포였다. 그리고 그 첫 구속자가 광복군 출신 재야지도자 장준하선생과 재야운동가 백기완 선생이다. 장준하선생은 유신헌법을 비방했다고 무려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이것도 조국근대화이고 수출100억불 문제이겠는가! 1974년 고 김근태 의원 등이 구속되었던 민청학련 사건 당시 발동한 긴급조치 4호의 내용은 경악할 지경이다.

“학생들이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거나 수업과 시험을 거부하여도 사형·무기징역·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긴급조치 9호의 경우 4년 6개월 정도 지속되었다. 쉽게 말해 계엄령이 4년 반 정도 지속된 것이다. 유신이 사실상 계엄과 다름없는데 거기에 긴급조치라는 보너스 계엄이 추가되었다. 한마디로 전 국토의 감옥화 전 국민의 죄수화가 유신시대였다. 그것을 박정희는 총력안보라고 불렀다. 이것이 잘 살기 위해 스스로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고 협박한 박정희의 유신 실체이다. 

ⓒ자료사진 유신독재에 맞서다 박해를 당하고 끝내 의문사한 '재야 대통령' 장준하 선생(맨 오른쪽)

잘 살기 위한 유신? 누가 잘 살았나?

어디 유신독재가 일인 독재에 그치겠는가. 잘 살기 위해 유신을 했다는 주장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경제성장의 주역인 노동자들이 유신시대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몇 가지 예만 들어보자. 

당시 생산직 노동자들의 주당 노동시간은 1970년에 51.6시간, 1975년 50시간, 1978년 월 260시간으로 주당 65시간이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이었다. “근로자를 가족같이 직장을 내 집같이” 구호 아래 일어난 일이었다. 유신 전야인 1960년대 말 청계시장 재단사 전태일은 박정희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존경하는 대통령 각하, 옥체 안녕하시옵니까?2만 여명이 넘는 종업원의 40%를 차지하는 시다공(보조노동자)들은 평균 연령 15세의 어린이들로써..하루에 90원 내지 100원의 급료를 받으며 1일 16시간의 작업을 합니다. 저 착하디 착하고 깨끗한 동심들을 좀 더 상하기 전에 보호하십시오.“

이 편지를 전태일은 끝내 부치지 못했다. 1969년 전태일은 대통령과 근로감독관에게 다음과 같이 공개장을 보냈다. 

“저희들의 요구는 1일 14시간의 작업시간을 단축하십시오. 1일 10~12시간으로 1개월 특(휴)일 2일을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희망합니다...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그러나 끝내 아무 대답도 없었다. 마침내 전태일은 1970년 11월 근로기준법을 품에 안고 분신자살로서 항의하고 노동자의 자각을 촉구했다 1886년 5월 1일 미국에서 노동자들이 1일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일으킨 파업으로부터 80년 지난 대한민국에서 노동자 전태일은 8시간도 아니고 10시간에서 12시간을 요구하는 이 비참한 절규가 박정희 시대 노동자의 외침이었다. 

ⓒ자료사진 민주노조를 지키려다 사측의 구사대가 끼얹은 똥물을 뒤집어 쓴 동일방적 노동자들
홍사덕씨 말대로 1970년대 수출의 주요 역할을 했던 방직공장 여성노동자들은 어떠했던가. 1977년 7월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이 민주노동조합을 사수하기 위해 강제 진압에 나선 경찰들에 맞서 옷을 벗고 알몸으로 저항했다. 설마 이런데 경찰이 진입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박정희의 개들은 잔인했다. 알몸의 여성노동자들을 짓밟고 강제연행했다. 1978년에는 회사가 한 수 더 떴다. 남성노동자들을 매수해 여성노동자들에게 똥을 퍼붓고 젖가슴과 입에다 똥을 집어넣는 만행을 저질렀다. 경찰은 이를 구경만 했고 회사는 조합원들을 무더기로 해고했다. 이것이 “직장을 내집처럼 근로자를 가족처럼”이라는 슬로건 하의 노동자의 현실이었다.

박정희의 유신독재를 동요시킨 결정적 계기도 수출역군에 의해서였다. 1979년 가발수출업체인 YH무역의 여성노동자 187명이 회사의 위장 폐업조치로 거리에 나앉게 되자 당시 야당인 신민당사에 가서 최후의 농성을 벌였다. 그러나 박정희는 무려 1000여명의 경찰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그 과정에서 여성노동자 1명이 추락 사망했다. 홍사덕이 수출 주역이라고 추켜세운 가발업체의 여공들이 조국근대화에 대해 박정희로부터 돌려받은 보답이 이것뿐이었다! 

홍사덕씨는 말해야 한다. 1970년대 필자 또한 체험했듯이 박정희의 퇴폐·향락풍조 일소 사회기강 확립 지침에 따라 경찰들이 줄자와 가위를 들고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했다. 머리가 귀를 덮기만 하면 줄줄이 파출소로 끌려가 강제로 뒷머리를 바리캉으로 밀어버렸다. 지나가던 아가씨의 허벅지에 줄자를 대어 치마 길이가 규정을 어기면 길에서 팻말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서 있어야 했던 그 짐승의 시대를 당신은 조국근대화의 시대라고 부를 것인가. 청량리역과 서울역에 경찰을 배치해 놀러가는 청춘남녀들이 들고 가던 기타마저 사회기강 확립이란 구실로 사그리 압수했다. 도대체 홍사덕씨가 말하는 경제성장을 위한 수출100억불은 씻고 찾아보래야 볼 길이 없다. 이 지랄같은 것들이 100억불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는지. 이 어처구니없는 짐승의 폭력이 난무한 유신시대는 오직 한 사람 박정희만을 위한 시대였다. 

이렇듯 장시간 중노동 저임금 비인간적 처우에 시달리면서 산업전사라는 이름 아래 전사해 간 노동자들의 피 위에서 한국 경제는 성장했고, 그 과실은 몽땅 재벌과 소수의 권력자에게 돌아갔다.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된다는 ‘빈익빈부익부’가 그 시절 유행어 아니던가. 

그런 범죄집단의 후계조직이 이제는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노동자들을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한 조국근대화의 기수라며 느닷없이 추켜세우는 추태를 부리고 있다. 정말 타임머신이 있다면 간곡하게 희망한다. 홍사덕씨가 유신 시절 조국근대화의 기수로 불리던 가발공장 여공이나 청계피복공장 노동자로서 한 번 살아보기를.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에게 의무를 다해야 할 정치인들이 국가나 헌법이나 정강정책이 아니라 특정 개인에 게 충성을 바치면서 정치일선에 나서고 있다. 이들의 충성 대상은 국가나 국민이 아니라 박근혜 개인이다. 과거 박정희의 친위조직인 유신정우회가 자연 연상된다. 유신독재 시절 박정희의 심복 이후락 중앙정보부장(현 국정원장)이 당당히 외치던 말 “우리는 박정희대통령을 모시는 박정희교의 신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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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용(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건망증’ 홍사덕! 유신을 가르쳐주마①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8-31일자 기사 '‘건망증’ 홍사덕! 유신을 가르쳐주마①''을 퍼왔습니다.
 ‘박통’은 박정희 대통령 아닌, 박정희 총통

새누리당 홍사덕씨는 1972년 유신독재의 성립에 대해 8월 29일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유신을 한 게 아니라 수출 100억 달러를 넘기기 위해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일간지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는 한 술 더 떠 “우리나라가 와이셔츠, 가발을 만들고 쥐와 다람쥐까지 잡아 팔아서 1971년까지 수출 10억달러를 달성했지만, 1977년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했다”면서 “불과 6년 만에 그렇게 가려면 중화학공업, 장치산업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특별한 권력집중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요컨대 한국 현대사에서 전대미문의 유신독재가 잘살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치일에 이 무슨 망발인가. 유신독재 피해자가 들으면 당장 귀싸대기 올릴 말이다. 

단언하건대 유신체제는 경제성장과 아무 관계가 없다. ‘대통령 니 맘대로 하세요’ 만이 유신의 본질이다. 못 믿겠다고? 유신독재가 어떻게 성립되고 박정희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주 살짝 맛만 보기로 하자. 그래도 끔직한 맛이다.

ⓒ민중의소리 박정희

5대와 6대 대통령을 지낸 박정희는 1971년 대통령 중임제의 헌법을 날치기로 뜯어고쳐 삼선개헌을 해 7대 대통령직에 도전했다. 1971년 4월 27일 제7대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는 이번이 마지막 출마라고 호소하면 표를 구걸했다. 7대 대통령 선거는 유례없는 관권부정선거로 얼룩졌고 박정희는 신민당의 후보 김대중을 간신히 이겼다. 이어 5월에 실시된 제8대 국회의원선거는 박정희가 3선 개헌에 이어 영구집권을 꾀하기 위해 다시 개헌을 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총선 결과 야당은 전체 153석 가운데 65석 즉 재적의원 3분의 1이상의 의석을 차지해 개헌저지선을 확보했다.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은 86석으로 단독 개헌선을 확보하지 못했다. 정치 풍향계라 할 대도시의 투표 내용 또한 야당의 약진이었다. 서울에서 공화당은 1석 신민당은 18석을, 부산에서는 공화당은 2석 신민당은 6석으로 대도시는 박 정권에게 등을 완전히 돌렸다. 

공개적으로 국민을 협박한 대통령과 유신

영구집권을 꿈꾸었던 박정희는 3선은 했지만 다시 한번 개헌을 하려해도 국회의원 의석수가 재적 의원 2/3에 미달해 개헌을 통한 합법적 종신집권의 길은 불가능했다. 여기서 박정희는 협박과 폭력을 동원했다. 1971년 말 국가비상사태를 뒤이어 계엄령을 선포해 국회를 해산하고 유신헌법 제정이 진행되었다. 1971년말부터 1972년 10월까지 대략 1년에 걸쳐 위수령 발동-국가비상사태선언-7`4남북공동선언-계엄령 선포-국회 새산-유신헌법 통과 등 일련의 유신쿠테타가 진행되었다.

1971년 10월에 각 대학에서 정권반대 시위가 일어나자 박정희는 서울에 위수령(衛戍令)을 발동했다. 군이 서울 시내 곳곳에 무장 주둔하는 사실상의 계엄령에 준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리고 12월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곧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법’을 선포했다. 박정희는 국가비상사태 선포와 함께 1972년을 ‘총력안보의 해’로 규정하고 다음과 같은 대국민협박문을 발표했다. 

“2. 나라를 지키고 보존함에 있어 스스로의 허점이 되는 사회불안은 용서할 수 없으며 받아주지도 않으려니와 이 같은 불안의 씨를 없앤다”“3. 언론기관은 되거나 말거나 책임없이 나라를 지키고 보존하는 일에 왈가왈부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4. 모든 국민은 나라를 지키는 일에 스스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은 물론 이에 자진하여 정성과 열성을 바쳐야 한다.”“6. 만일 사태가 더욱 나빠졌을 때는 우리가 오늘날 누리고 있는 우리의 자유 가운데 어떤 것들은 이를 뒤로 미루어 스스로의 한계를 지켜야 된다”

조선시대 왕도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마치 국민을 적국 포로나 노예를 대하듯이 협박으로 일관한 이 비상사태 조치에 어디 경제성장이 있는가. 100억불 수출도 1000불 국민소득도 없다. 오직 하나, "꼼짝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이 한마디가 비상사태선포의 핵심이다. 경제에 관한 내용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가관이다. 

“잘 살기 위해 스스로의 자유를 제한하자”

자유를 제한하는 게 잘 사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게다가 박정희는 “특별조치법(국가보위법)은 계엄령을 막는 예방주사다”라고 공언했다. 말을 안들으면 계엄령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요컨대 ‘총력안보’를 내걸고 온 국민을 협박하면서 유신쿠데타의 첫 단계를 디뎠다.

ⓒ민중의소리 박정희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은 종신집권을 위한 대반전극이었다. 박정희는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을 북에 밀파해 7`4남북공동선언을 합의한 뒤 통일에 대비해 체제를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명분으로 1972년 10월 17일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강제해산시켰다. 이것이 이른바 10월유신이다. 그리고 살벌한 계엄령 하에서 11월 21일 공무원들을 부정선거에 대규모 동원한 국민투표를 통해 유신헌법을 통과시켰다.

유신독재체제는 계엄령 아래 국회 해산을 하고 공포와 부정으로 강행한 것이다. 투표율과 찬성률만 보아도 대번에 확인할 수 있다. 유신헌법의 투표율이 91.9%이고 그 가운데 찬성률이 92.2%라는 게 정상적인가. 1971년 박정희와 김대중이 맞붙은 제7대 대통령선거에서 그 엄청난 부정선거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는 총투표의 51.2%(유효투표의 53.2%)를, 김대중 후보는 43.6%(유효투표의 45.3%)를 얻었다. 그런데 1년 만에 야당 후보 지지표 거의 전부가 박정희의 유신독재를 지지하는 데로 갔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를 두고 박근혜는 유신헌법도 대다수의 국민이 지지했다고 말하니 정말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다.

‘박통’은 박정희 대통령 아닌, 박정희 총통

유신독재는 5.16에 이은 또 하나의 쿠데타였다. 유신헌법 이전에는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이 없었다. 그런데도 박정희는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법’과 계엄령을 선포하고 강제로 국회를 해산시키고 유신헌법을 제정했다. 명백하게 위헌이자 국가반역행위이다. 명심하자. 10 월유신은 제2의 5.16쿠데타이다. 5.16쿠데타나 유신독재를 적법하다 주장하는 자는 민주주의의 적이며 반국가사범이다. 국가보안법은 이들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유신헌법의 내용 또한 전제군주를 능가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대통령에게 부여해 사실상 총통제였다.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박대통령이라 부르지 않고 ‘박통’이라 불렀다. 히틀러 총통 장개석 총통과 같은 독재자와 동격으로. 심하지 않냐고? 헌법 내용을 살펴보자. 

첫째 대통령 연임 제한을 없앴다.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김대중 후보가 삼선개헌 이후 박정희는 종신집권으로 갈 것이라는 예언대로 박정희는 행동했다. 

둘째 대통령이 국회의원 재적수의 3분의 1을 추천해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케 했다. 이들이 유신정우회(유정회)라 불린 대통령 친위대들이다. 결국 선거에 의해 여당 1/3 야당 1/3 대통령 추천한 유정회 1/3이 되도록 의원수를 배정해 언제나 박정희 추종세력이 국회의원 2/3석을 차지할 수 있게 했다. 

세 번째로 국론이 분열되고 낭비가 많다는 명목으로 대통령직선제를 폐지하고 전국에서 2,395명의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어용조직의 대의원을 선거로 뽑아(물론 지역 유지나 지역 관변단체 사람들이 뽑혔다) 이들이 대통령을 간접적으로 뽑았다. 더 웃긴 것은 토론 없이 단독출마하고 통대의원들은 이에 대해 찬성과 반대 둘 중 하나만 표시하는 투표였다. 이렇게 해서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대통령을 선출(실은 추대)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체육관선거라 불렀다. 1972년부터 1987년까지 무려 15년간 국민은 자신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지 못했다. 그런데 간접선거로 8대 9대에 선출될 때 박정희가 얻은 지지율은 99.9%였다. 일당독재도 이렇지는 않다. 이건 조국근대화가 아니라 조국낙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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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용(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유신 미화’ 시민사회·학계 비판론 확산


이글은 경향신문 2012-08-31일자 기사 '‘유신 미화’ 시민사회·학계 비판론 확산'을 퍼왔습니다.

ㆍ“민주주의 가치 부정… 박근혜 입장 밝혀라”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의 과거 경선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인 홍사덕 전 의원의 ‘유신 미화’ 발언에 대한 비판론이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학계 등도 홍 전 의원 발언이 민주주의 가치 부정과 허구적이라고 지적했다.

10월 유신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2년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장기독재 토대 마련을 위해 유신헌법을 통과시키면서 이뤄졌다. 당시 정권은 이를 기반으로 긴급조치를 발동하며 집회·결사·언론의 자유 같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했다.

안대희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은 31일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역사적 평가는 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의견이 있을 수 있다”면서 “(나는)대법관 시절 긴급조치가 위헌이라고 판결을 한 바가 있다”고 말했다.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도 평화방송 라디오에서 “헌법적 가치를 수출을 위해 부정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개헌하면서 부적절한 절차가 있었기 때문에 수출 같은 경제 아젠다로 (유신을) 옹호하는 것은 와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도 확대간부회의에서 “박 후보 대선캠프 인사들이 군사독재 미화 발언을 계속한다”면서 “박 후보는 측근들의 독재 미화 발언에 대해 입장을 밝혀줄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헌법·역사학자들도 일제히 비판했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민주헌법국가에서 금과옥조는 3권분립과 기본권 보장”이라며 “유신은 이 두 가지를 철저히 무시하고 독재정권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이미 학계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이 위헌이라고 일치를 봤다”고 밝혔다. 이어 “(박 후보가) 대통합을 한다면서 과거의 잘못된 부분들을 덮고 좋은 것만 취하려 하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도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유신은 경제발전이 아니라 영구집권을 위해 불가피했다”며 “박정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할 능력이 없었음에도 ‘내가 아니면 안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는데, 21세기 지도자 리더십으로는 걸맞지 않음에도 계속 거론되고 있다”고 말했다. 

홍 전 의원은 이날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새누리당 국회의원·당협위원장 합동연찬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경제 얘기를 하다가 유신 이야기가 나온 건데 거두절미하고 그렇게 보도하니까 (논란이 된 것)”라며 “20년 동안 계속해왔던 얘기”라고 해명했다.

이지선·장은교·황경상 기자 jslee@kyunghyang.com

2012년 8월 31일 금요일

홍사덕 30년 전에는 '유신잔재 청산' 목소리 높였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08-30일자 기사 '홍사덕 30년 전에는 '유신잔재 청산' 목소리 높였다'를 퍼왔습니다.
[단독] 초선의원 시절 "유신 때문에 사회불평등 심화"... 논란 재점화될 듯

▲ 제19대 총선 투표일 하루 전인 지난 4월 10일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앞에서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위원장과 유세 중인 종로구 홍사덕 후보(오른쪽) ⓒ 권우성

"우리나라가 와이셔츠와 가발을 만들고 쥐와 다람쥐까지 잡아 팔아서 1971년까지 수출 10억 달러를 달성했지만, 100억 달러는 중화학공업 육성 없이는 불가능했다. 유신이 없었으면 우리나라는 수출 100억 달러를 못 넘었을 것이다."

"분배의 공평도, 즉 경제적 민주주의는 의회의 활성도 즉, 정치적 민주주의와 그 궤적을 같이 한다. 유신체제가 출범한 이래 소득의 불평등, 분배의 불공평은 더욱 심화돼 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독재에 대해 두 사람이 찬반 토론을 벌이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 두 발언은 사실 한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당내 경선캠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고 현재도 박 후보를 돕는 홍사덕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의 입이다. 

'유신이 없었다면 수출입국이 불가능했다'는 말은 홍 전 의원이 지난 29일 기자들과 만나 유신을 옹호한 말이다. '유신체제가 분배의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말은 지난 1981년 10월 12일 국회 경제분야에 대한 대정부질문에서 기자 출신 민한당 초선 홍사덕 의원이 남덕우 국무총리에 질의한 내용이다. 

대선을 앞두고 유신체제를 냉정하게 평가하지 못하는 박근혜 후보의 태도가 결국 대선 승리에 걸림돌이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에 대해 홍 전 의원은 '유신이 경제발전을 앞당겼다'는 논리로 방어막을 친 셈인데 정작 자신도 30여 년 전엔 유신의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다.

 취재 결과, 1981년 야당 의원(민한당)으로 정치권에 입문한 홍 전 의원은 유신독재를 강도 높게 비판한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해 10월 1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홍 전 의원은 "본 의원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5공화국의 첫 번째 과업이 유신잔재의 철저한 청산이어야 하며, 이와 같은 시대적 소명을 승인하고 실천할 때만 제5공화국의 정당성과 도덕성, 나아가서는 그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고 말했다.

홍 전 의원은 현재 한국사회의 화두가 돼 있는 '경제 민주화' 개념도 꺼내들면서 유신정권의 경제정책을 비판했다.

"최저소득층 10%에게 돌아가는 것은 국민소득 가운데 처절하게도 1.75% 밖에 안된다. 1인당 국민소득 1000불이 달성되면 무슨 큰 수가 나는 것으로 생각들을 했지만 막상 달성됐을 때에 최저소득층 10%에게는 1인당 17.5불씩 돌아갔던 것이다. 저는 분노를 가지고 이 문제를 제기한다." 

초선의원 시절 '커진 파이를 왜 나눠 먹지 않느냐'고 분노를 갖고 항변했던 홍 전 의원이 30여 년이 지나 대선 후보가 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을 옹호하면서 '유신이 아니었으면 파이를 키울 수 없었다'고 옹호하고 나선 셈이다.

대변인 시절 성명에는 "반민주적 유신체제 하에 온갖 고난 겪었다"

초선 시절을 거쳐 신민당 대변인으로 자리잡은 후에도 유신체제에 대한 홍 전 의원의 비판적 인식은 여전했다.

야당과 민주화 세력이 전두환정권에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압박하고 있었던 1985년 제헌절에 낸 성명에서 홍 대변인은 "현행 헌법은 과거 유신헌법과 마찬가지로 특정인의 권력장악과 유지를 위해 위인설법된 것으로 민주주의 기본원리를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듬해 2월 21일 성명에서는 "우리의 굴절된 헌정사가 자유당과 공화당 독재 그리고 반민주적 유신체제하에서 온갖 고난을 겪었다고는 하나 최근의 사태와 같은 헌정오손은 진실로 초유의 일"이라고 말했다. 굳이 홍 전 의원의 과거 발언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박정희 독재'인 유신체제를 옹호하고 나선 홍 전 의원을 향한 비판은 야당 뿐 아니라 같은 당에서도 나오고 있다.

정몽준 의원은 30일 트위터에서 "10월 유신이 경제발전을 위한 조치였다는 주장에 크게 실망했다"며 "유신의 논리란 '먹고 사는 것은 권력이 해줄테니 정치는 필요 없다'는 것인데, 국민을 '행복한 돼지'로 보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김현 민주당 대변인은 홍 전 의원의 이번 유신 옹호발언을 "일제의 식민지배 합리화 궤변과 동일한 논리로 유신을 정당화했다"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현직 의원 중 가장 화려한 당적을 보유한 분이자 출마한 지역도 다채로운 분이니 말을 바꾸고 뒤집는 귀재인 만큼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며 "홍사덕 의원을 7인회의 한 사람이자 (경선)캠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중용한 박근혜 후보는 원칙과 책임정치를 강조하는 만큼 (홍 전 의원의 유신 옹호 발언에 대해) 마땅히 답해야 할 것"이라고 공세를 폈다. 

문재인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측도 홍 전 의원 발언을 "헌법에 명시된, 3·1운동과 4·19 정신보다도 5·16을 더 우선시 하는 반역사적, 반헌법적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선예비후보사무소의 윤관석 대변인은 이같은 평가를 내놓으면서 "박근혜 후보가 책임있는 정치인이고 대통령 후보라면, 자신의 최측근 7인회 중 한 명인 홍사덕 의원의 이런 발언에 대해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밝혀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손병관(patrick21)
안홍기(anongi)

2012년 7월 14일 토요일

안철수 측 “홍사덕 나폴레옹 발언, 나쁜 정치의 표본”


이글은 경향신문 2012-07-12일자 기사 '안철수 측 “홍사덕 나폴레옹 발언, 나쁜 정치의 표본”'을 퍼왔습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측은 13일 새누리당 박근혜 경선 캠프의 홍사덕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안 원장을 루이 나폴레옹에 빗대 비난한 데 대해 “나쁜 정치의 표본”이라고 반박했다. 

안 원장의 대변인 격인 유민영 전 춘추관장은 이날 오후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홍 선대위원장의 발언은 두려움의 표현”이라며 “미래가치로 이야기하기보다 상대방을 폄훼하고 근거 없이 깎아내리는 나쁜 정치의 표본, 낡은 구시대 정치”라고 밝혔다. 유 전 춘추관장은 “이런 낡은 정치행태 때문에 국민은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는 것”이라며 “그들은 국민이 두려운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 원장 측이 새누리당 측의 공세에 직접 대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 위원장은 12일 기자들과 만나 안 원장을 19세기 프랑스 정치가인 루이 나폴레옹에 빗대면서 “권력을 위해 필요하면 노동자계급이든 소농민이든 붙고, 어떤 때는 귀족계급과도 그러면서 20년을 집권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를 경영하는 데 안 원장은 뭐 하나 보여준 게 없다”며 “국민에 예의가 없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김진우 기자 jwkim@kyunghyang.com

2012년 7월 13일 금요일

홍사덕 “안철수 나폴레옹 3세 같다”에 네티즌 “비유 헛발질”


이글은 뉴스페이스 2012-07-13일자 기사 '홍사덕 “안철수 나폴레옹 3세 같다”에 네티즌 “비유 헛발질”'을 퍼왔습니다.
“선왕 향수 자극해 대통령 된후 독재체제 확립했는데..”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고있는 홍사덕 전 의원이 잠재적 야권 대선주자로 꼽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해 “루이 나폴레옹(나폴레옹 3세) 같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의 13일자 보도에 따르면 홍 전 의원은 전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대해 “권력을 위해 필요하면 노동자 계급이든 소농민이든 붙고 어떤 때는 귀족계급과도 그러면서 20년을 집권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홍 전 의원은 “작은 화단을 하나 가꾸더라도 계획이 필요한데 국가를 경영하는데 있어 안 원장은 단 하나의 비주얼라이제이션(visualization)도 보여준 게 없다”며 “국민에 대해 예의가 없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안 원장은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출마선언도 하지 않으면서 최소한의 검증할 시간도 주지 않고 있다”고 공세를 펴기도 했다. 

일단, 홍 전 의원의 발언은 박 전 위원장,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대선주자 지지율 ‘빅 3’를 형성하고 있는 안 원장에 대한 견제의 성격이 짙어보인다. 

안 원장은 아직 대선출마여부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공식적인 출마선언을 할 경우, 대선판도를 뒤흔들 것으로 예상된다. 참신성에 있어서도 기존 정치인들과 차별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이는 ‘여의도 정치’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로 다가올 수 있다.

야권주자로 분류되고 있지만 타 야권주자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진보적 색채가 강하지 않다는 점에서 중도층 표심 흡수 가능성도 크다는 평가다. 여야 대선주자들의 거의 출마선언을 마친 상황에서 아직 입장표명을 하지 않아 이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지만 박 전 위원장 측에서는 안 원장의 행보를 계속 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홍 전 의원의 발언을 접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비판적인 반응들이 이어졌다.

이들은 포털사이트에 게재된 관련기사 댓글을 통해 “박근혜는 뭐 보여준게 있나?”(dutn****), “당신이나 잘하세요”(palgum**), “편가르기식 계층 나누기식 사고”(harn****), “남을 재단하고 평가하지 말고, 모시는 분이나 잘 모시세요”(wook***), “이 시점에서 안철수는 왜 건드리냐”(craz****) 등의 반응을 나타냈다. 

아이디 ‘syc****’은 “보수정당의 수장이면서 빨간색 로고로 진보 및 젊은 층에 달라붙으려는 박근혜 여사님이 더 하신거 같습니다만”이라고 꼬집었다. ‘eden****’은 “털어서 먼지 안나는 정치인은 안 원장에게 돌 던져라. 그럼 내가 이해하겠다”는 글을 남겼다. ‘ckpo****’는 “네거티브 전략으로 흠집내면 구태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홍 전 의원의 비유가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는 “(루이 나폴레옹은 대선당시) 옛 황제의 조카라는 혈통과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프랑스의 영광스런 추억이 서려 있는 나폴레옹의 전설적인 위업을 환기시키며 평화로웠던 옛 시절을 되찾을 것을 공약으로 내걸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1848년 프랑스의 대통령이 된 루이 나폴레옹은 이후 독재체제를 확립하고 쿠데타를 일으켜 입법의회를 해산시키고 새로운 헌법을 공포했다. 1852년에는 다시 국민투표를 실시해 상원에서 ‘제정’을 다시 실시하기로 결의했고 그는 프랑스 제2제정의 황제로 인정받았다는 것이 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 아이디 ‘geni****’는 “나폴레옹 3세가 왜 대통령에 당선됐는지 모르나”라며 “나폴레옹에 대한 향수병을 자극해서 대통령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절대 박근혜 쪽에서는 나폴레옹 3세를 꺼내서도 안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한편, (한겨레)의 12일자 보도에 따르면 홍 전 의원은 1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 전 대표의 5.16에 관한 생각은 5년전 한나라당 후보 검증 청문회 때와 같은 것이냐”는 질문에 “5.16에 관한 평가를 박근혜 전 대표에게 묻는 것은 세종대왕에게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세운게 역성혁명이냐 군사쿠데타냐고 묻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져 논란이 된 바 있다.

강우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