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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10일 화요일

반박은 중계하고 이슈는 논란화, 이게 뉴스인가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4-09일자 기사 '반박은 중계하고 이슈는 논란화, 이게 뉴스인가'를 퍼왔습니다.
[미디어초대석] 동료들 떠난 빈 자리, 기계적 중립이 민망하다

두 번의 대선에서 닉슨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을 담당했던 윌리엄 새파이어는 1973년 뉴욕타임스로 자리를 옮겨 칼럼니스트가 된다. 뉴욕타임스의 논조가 너무 진보적이라고 판단한 사주의 균형 맞추기용 보수논객 채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선거캠프인사의 언론인 변신을 기자들이 그냥 받아들일 리 만무했고, 새파이어는 점심을 같이 먹을 사람조차 없을 정도로 따돌림 당했다. 사직을 고려하던 그의 처지는 그러나 단 한 번의 사건으로 변하게 된다. 바로 워터게이트 사건.
민주당 선거캠프는 물론 기자들까지 도청대상이 된 사실이 폭로되자 새파이어는 자신의 칼럼으로 닉슨을 그야말로 불같이 공격했다. 그가 정파적 이해에서 독립돼 있다는 점을 확인한 기자들은 그제야 그를 동료로 인정했고 그로부터 32년 뒤 은퇴하기까지 새파이어는 미국 보수주의를 대변한 명 칼럼니스트로 활동을 이어갔다.
2012년 민간인 사찰이 화두가 된 한국에선 정반대의 ‘새파이어’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은 불같은 비판을 택한 새파이어와는 달리 ‘중계’와 ‘기계적 균형’이라는 일견 세련된 저널리즘을 구사하고 있다.

KBS 새노조가 지난달 29일 공개한 리셋뉴스9의 사찰문건 폭로 뉴스

먼저 지난달 20일 ‘내가 몸통’이라는 이영호 전 청와대 비서관의 폭로가 있었던 날 이를 다룬 MBC 뉴스데스크 톱리포트를 보자. 기사문의 모든 문장의 주어가 이 전 비서관일 정도로 “윗선은 없다”는 기자회견문 요지를 낭독하듯 전하고 있다. 심지어 “민간인 사찰은 애초부터 없었다”거나 “야당총재와 공개토론을 하자”는 허황된 주장까지 아무 가치판단 없이 그대로 중계했다.
민간인 사찰문건 폭로와 청와대의 반박이후 나타난 보도양상도 중계저널리즘의 진면목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폭로된 사찰문건의 80%는 참여정부의 것이었다는 청와대의 반박을 대부분의 언론들은 그대로 중계했고 이로 인해 민간인사찰이란 이슈는 ‘현 정권의 명백한 과오’에서 누구의 잘못인지 알 수 없는 ‘논란의 영역’으로 옮겨가게 됐다. 청와대의 반박회견이 있었던 지난달 31일과 지난 1일 (KBS)을 보자. 청와대 회견을 그대로 요약한 톱 리포트에 이어 여야의 반응을 엮은 후속 리포트가 붙는, 즉 ‘반박은 중계하고 이슈는 논란화’하는 배치가 이틀 연속 이어졌다. 특히 청와대가 참여정부의 것이라고 주장한 ‘80퍼센트 문건’의 대부분이 정상적인 감찰자료였다는 점은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 야당의 ‘주장’으로만 짧게 서술되고 만다.



물론 선거전 보도에서도 이 방식은 그대로 이어진다. 여당의 선거유세 보도라며 박근혜 새누리당 위원장의 민생탐방이 단독 리포트로 완결성 있게 중계된다. 반면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그리고 자유선진당 등은 한 리포트로 묶여 종합되곤 한다. 그런가하면 정치경력은 물론 여론조사 지지율도 현격히 차이 나는 문재인 후보와 손수조 후보 간의 선거전이 기계적 균형을 맞춘다며 ‘불꽃 튀는 양자 대결’로 보도되기도 한다. 

전봉기 MBC 기자
비리를 감추는 주장을 일방적으로 중계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찬반 논란으로 물타기하는 것이 결코 객관적일 리 없다. 이런 중계 혹은 기계적 균형 보도기법이 처음 나왔던 미국에서조차 객관저널리즘이 단순 중계나 방송시간의 동등한 제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판정난지 이미 오래됐다. 미국의 저널리즘도 기계적 균형은 현실을 왜곡시킬 뿐이라는 공감대 아래, 대신 보도의 진실성과 취재대상으로부터 독립성을 객관성 판단의 잣대로 삼고 있다.
민주사회에서 언론의 가장 큰 존재의의는 시민들이 자치(自治)를 실현할 수 있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고 그래서 선거 보도가 더없이 중요한 것이다. 공정언론을 되살리겠다고 떠난 동료들의 빈자리에서 중계와 기계적 균형의 보도를 양산하고 있는 ‘남은 기자들’. 그들에게 정치인에서 언론인으로 거듭난 윌리엄 새파이어의 선택을 눈여겨보라고 권하고 싶다.   

2011년 12월 9일 금요일

청와대까지 번진 ‘선관위 테러’ 의혹, 몸통 떨고 있나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1-12-09일자 기사 '청와대까지 번진 ‘선관위 테러’ 의혹, 몸통 떨고 있나'를 퍼왔습니다.
[뉴스분석] ‘조현오 경찰’, 꼬리 자르기 부실수사…윗선개입 의혹, 서둘러 진화

“한나라당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를 돕는 것이 최구식 의원을 돕는 길이라고 생각했다.…젊은층 투표율이 선거에 영향을 많이 줄 것으로 보고 투표소를 못 찾게 하면 투표율이 떨어지지 않겠나 생각했다.”
서울시장 ‘선거 방해’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 수행비서 출신 공아무개씨가 경찰에 진술한 내용이다. 10월 26일 재보궐선거 과정에서 자행됐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박원순 선거캠프 ‘홈페이지 테러’ 사건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중앙선관위 디도스 공격의 목적은 ‘젊은층 투표율을 떨어뜨리기’,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돕기’ 등이라는 얘기다. 핵심은 누가 뭐래도 이번 사건의 배후, 진짜 ‘몸통’을 찾는 일이다. 경찰은 예상대로 꼬리 자르기 부실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12월 9일 오후 공씨의 '단독범행'이라는 내용의 수사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 정치권 안팎의 많은 인사가 경찰 수사를 예견했다.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 수행비서가 주도한 단독범행인 것처럼 결론을 내리고 윗선은 없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러한 예측은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언론은 12월 8일 오후 ‘속보’라는 타이틀까지 달면서 공씨가 단독범행을 자백했다는 경찰 주장을 전했다.


©CBS노컷뉴스

그러나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 수행비서 한 명이 윗선의 지시 없이 수억 원의 비용이 소요될 수 있고, 최고 10년형에 이를 정도의 사법적 처벌을 피하기 어려운 ‘중범죄’를 술자리 말장난처럼 추진하고 실행에 옮겼다는 ‘소설 같은 얘기’를 믿을 사람들은 거의 없다.
검찰이 대규모 수사팀을 구성해 경찰 수사를 사실상 재수사하겠다는 전하는 것도 여론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현오 경찰’은 검경수사권 조정이라는 조직의 중차대한 문제의 방향타가 될 수도 있었던 이번 수사를 예상대로(?) 꼬리 자르기 부실수사로 결론을 내리면서 스스로 궁지에 몰렸다.
경찰이 윗선 개입 의혹을 서둘러 진화한다고 논란이 가라앉는 것은 아니다. 경찰 발표는 한나라당도 수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실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공씨의 입에 의존한 결과 발표는 근본적인 한계를 담고 있다.
게다가 ‘선관위 테러’ 사건을 풀어줄 중요한 열쇠인 10월 25일 저녁 술자리에 박희태 국회의장 김아무개 비서는 물론 청와대 박아무개 행정관도 있었던 게 드러났다. 경찰은 청와대 박아무개 행정관을 소환해 조사했다. 박 행정관은 박희태 국회의장실 김아무개 비서 등과 저녁 자리에 동석했으며 김 비서는 자리를 마친 이후 강남 룸살롱으로 공 비서를 불러 술을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행정관은 강남 룸살롱에는 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저녁 술자리에서 선관위 테러 문제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지 여부 등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 수행비서가  강남 룸살롱 자리에서 박희태 국회의장 비서에게 ‘선관위 테러’ 문제를 상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의문은 증폭되고 있다.


한겨레 12월 9일자 6면.

10월 25일부터 10월 26일 새벽까지 이어진 저녁 자리와 강남 룸살롱 자리 등에 청와대 행정관(룸살롱은 가지 않았다고 주장), 박희태 국회의장 비서,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 수행비서 등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난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박희태 국회의장 비서와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 수행비서가 사건이 불거진 이후 사표를 제출했다고는 하지만 사건 당시 그들의 직책은 엄연히 국회의장 비서와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 수행비서였다.
경찰은 적당한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지만, 검찰 수사도 예고돼 있고, 국회 국정조사나 특별검사제 도입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조선일보는 12월 9일자 사설에서 “해결책은 하나뿐이다. 야권이 요구하는 방식에 따라 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다. 여당은 야당이 요구하는 국정조사와 특검을 받겠다고 신속하게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의 ‘진짜 몸통’을 찾는 작업은 이제 시작인 셈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조승수 의원은 “경찰은 사건의 몸통인 '윗선 개입'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하고 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해 또 한 번 무능함을 증명했다. 이 건은 결국 경찰이 여전히 '정권의 시녀'이자 '검찰의 도우미'라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