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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30일 금요일

박근혜, 당신이 바로 과거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11-30일자 기사 '박근혜, 당신이 바로 과거다'를 퍼왔습니다.

뭘 모르는 박근혜

"도대체가 문재인은 과거와 싸우기 위해 이 선거에 나온 것인가?""실패한 과거정부의 부활을 막아 달라."

박근혜가 한 말이다.

하나씩 짚자.

박근혜는 정말 뭘 모르는 모양이다. 그녀의 말대로 우리는 지금 먼저 "과거"와 싸우고 있다. 그 "과거"는 바로 박근혜이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결코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역사가 거꾸로 가는 것이다. 그녀의 존재 안에 압축된 과거가 깨끗하게 청산되지 못하면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는 열리지 못한다.

박근혜의 비극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녀가 그 과거의 유령이자, 잔재세력이며 미래로 가는 길을 막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데 있다.

아닌가? 쌍방 소통을 위한 토론은 전혀 할 줄 모르고, "연출된 토론"도 간신히 하고, 5.16 쿠데타와 유신시대의 악행에 대해서는 마지못해 사과하는 척 하고 역사반성의 요구를 "딸이 아버지의 무덤에 침 뱉게 하는 것"이라며 국민을 모독하는 발언이나 하는 그녀다. 이게 바로 우리가 싸우고 있는 "과거"다.

재벌을 키워 경제민주화를 가로막은 역사는 박근혜의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던 일이다. 이에 저항하고 문제를 제기했던 노동자들을 짓밟고 빼앗고 때리고 감옥에 가둔 자도 그녀의 아버지다. 빈부격차와 양극화의 틀을 만든 장본인 역시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다. 남북대치와 냉전을 이용해서 독재를 했던 것도 박정희다.

과거를 타고 앉아 미래를 움켜쥐려는 세력

그렇다면, 박근혜는 자신의 아버지를 정치적으로, 역사적으로 철저하게 부정해야만 이 과거에서 탈출할 수 있다. 딸로서가 아니라, 역사적 존재로서 그리고 정치지도자로서 그렇게 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녀는 우리가 싸워온 그 과거에 갇혔다. 그 과거와 먼저 싸워야 할 당사자는 바로 박근혜 자신인 것이다. 만일 그녀가 그랬다면, 우리는 박근혜에 대한 평가를 달리 해야만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과거를 철옹성처럼 옹호하고 그걸 도리어 이용하고 있다.

"과거를 타고 앉아서 미래를 움켜쥐려고 하는 것"이 그녀의 정체다. 그녀 자신과 박근혜를 둘러싸고 있는 세력들이 우리가 문제 삼는 그 과거와 결별했는가? 아니다. 그 과거에 기반해서 박근혜가 있다. 그리고 이들은 또다시 우리를 그 과거의 논법으로 공격하고 있다. 빨갱이니, 이념이니, 안보를 위협하니, 뭐니 해가면서 박정희의 유령을 부활시키고 있다. 그게 자신들의 힘이요, 무기이자 진지가 되니까 그런 것이다.

실패한 권력의 부활을 막자

따라서 그녀가 한 말을 고스란히 그녀에게 돌려주고 싶다.

"실패한 과거 정부의 부활을 막아 달라."

박근혜는 민주화에 실패한 세력의 후예다. 그리고 그녀는 그 과거권력의 부활을 꿈꾸는 자다. 박근혜로부터 정치적 민주화의 가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박근혜는 빈부격차를 없애는 일에 실패한 정당의 대표다. 그녀는 4대강 환경파괴사업을 비롯해서 검찰의 부패와 타락을 막는 일에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정당의 수장이다. 박근혜는 이명박을 포함한 이제 과거가 되어가는 그 과거권력의 핵심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과거 권력의 부활을 한사코 막기 위해 싸우고 있다.

민생이 힘든데 미래를 이야기 하지 않고 과거만 이야기하는 것이 온당하냐고 박근혜는 주장한다. 맞다. 그러자면, 이렇게 민생이 도탄에 빠진 현실에 대한 책임을 먼저 물어야 한다. 그게 누구일까? 노무현 정권의 실패를 그녀가 거론한다. 그 말에 대해 우선 받아들인다 치고, 그렇다면 그 실패를 복구하기 위한 책임을 지라고 이명박과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집권한 것이 아닌가?

이명박이 망가질 때까지 박근혜는 그동안 뭘 했는가?

그런데 이 이명박 정권이 이토록 처참하게 실패할 때까지 박근혜는 무엇을 했는가? 검찰이 저렇게 망가지고 무너지고 망해가는 데 박근혜와 집권여당이 책임지고 한 일이 뭐 하나 제대로 있는가? OECD 국가중 자살율 1위(매일 42명)가 된 나라에 박근혜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인가?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인가?

경영자가 바뀌었으면, 그 사업체는 실적이 그 전과 달라야 한다. 이명박이 집권한 시기, 박근혜는 그 경영 파트너였다. 상대가 인정하든 아니든, 그녀는 새누리당의 실질적 책임자고, 이명박 정권의 공동 경영자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민생파탄을 거론하면서 문재인 후보를 공격한다? 이게 앞뒤가 맞는 말인가?

우선 자신의 책임에 대해 철저하게 반성하고, 이명박을 공격해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민생을 거론할 자격 자체가 없는 것이다.

막가는 검찰을 방치한 것도 그녀와 새누리당이다. 불법민간사찰부터 시작해서 검찰의 억대 비리에 이르기까지 검찰개혁을 위해 한 일이 뭔가?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도리어 그 검찰을 이용해서 정적을 공격하는 일에나 온통 힘을 쏟아왔던 것 아닌가?

정권재창출? 민생도탄 정권의 연장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하고 싶은 것이 뭔가? 정권 재창출 아닌가? 그건 이명박 정권을 유지해온 세력의 집권 연장이다. 2013년이면 과거정부가 되는 이명박 정권의 새로운 부활이 박근혜로써 실현되는 권력의 실체다. 대표선수만 바뀌는 세력의 목숨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실패한 권력의 부활을 막고자 한다. 얼굴만 바뀌는 세력의 재집권을 저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제 결론은 무엇인가?

그건, "과거의 얼굴에 미래를 분칠해서 나온 박근혜와 그 세력"의 재등장을 우리는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재인이 감당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책임이다. 정권교체와 정치쇄신은 바로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일차적 작업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민주주의는 위협받을 것이며 이 나라의 평화는 공격받게 될 것이다.

이제 과거는 과거로 돌아가라. 이 과거와 싸우는 이는 모두 미래권력이다. 미래는 미래의 가치를 공유한 세력이 알아서 감당할 테니. 과거가 묻힐 역사의 관과 무덤은 이미 마련되어 있다.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2012년 11월 28일 수요일

문재인의 운명은 '문재인의 생각'에 달려 있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11-28일자 기사 '문재인의 운명은 '문재인의 생각'에 달려 있다'를 퍼왔습니다.
[김민웅 칼럼](101) 이제 다부지게 나갈 때다

박근혜가 집권할 세상을 보여준 "박근혜 특별방송"

단독 토론으로 포장된 박근혜 특별 방송으로 나간 토크쇼는 박근혜의 이미지를 높이는 작업에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다. 최고의 조건이 제공되었음에도 그녀는 명료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내는 능력이 없음을 드러냈다. 엄격한 시간제한이라는 긴장이 없는 상태에서도 그러니, 본격적인 토론에서는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다.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더 많은 바닥을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인 데다, 사회자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은 가로막거나 답을 듣지 않고 넘어가고 부족하다 싶은 박근혜 발언은 보완해주는 등의 친절(?)을 베풀어주는 방송은 모두에게 처음 경험하는 일일 것이다. 대선토론 방송이 이토록 참담한 지경에 이르는 것을 보면, 박근혜가 집권하는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지 누구라도 예견할 수 있게 되었다.

어물쩍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대선의 공식 출발점이 된 11월 27일은 이제 전선이 명확해진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단일화 과정에서 적지 않게 기운을 뺀 야권으로서는 매우 신속하게 전열을 정비하고, 화력을 충분히 갖춰 포문을 열어야 할 때다. 어물쩍 하다가는 시간도 다 지나고, 공세국면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채 자칫 밀리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아니, 이미 그런 조짐도 보인다는 점에서 상당히 우려스럽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후보는 이제 자신이 "야전 사령관"이라는 점을 절실하게 깨우쳐야 할 것이다. 어떤 조건에 놓이더라도 다부진 돌파력을 과시하면서 국면 국면마다의 주도권을 위력적으로 발휘해야 하는 책임이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것은 안철수와의 관계 정립과 단일화의 해법을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필요했던 조심스러움과는 판이한 역량이 요구된다.

그렇지 않아도 남재희 선생이 자신의 칼럼에서, 문재인 후보의 면모에 일침을 놓았다. 지금까지 보아오면서 느꼈지만 시의 적절하게 내놓는 남재희 선생의 제안들은 현실에 대한 균형있는 분석과 내공이 담긴 경륜이라는 점에서 결코 소홀히 넘길 일이 아니라고 본다. 그만한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이는 드물다.

 
▲ 27일 창원에서 유세를 하고 있는 문재인 후보. ⓒ뉴시스

"야전 사령관 문재인"을 보고 싶다

현실을 풀어나갈 때에는 하나하나 신중하게 짚어나가는 보수적 접근을 하는 것 같지만, 지향은 기본적으로 혁신적인 그가 문재인 후보에게 대담무쌍함을 요구할 때에는 지금의 국면이 매우 답답하다는 심정의 표현이다. 중간지대를 잡기 위한 신중성을 조언하고 있지 않다. 속 시원하게 굵은 선을 그으라는 것이다. 나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안철수의 후보 사퇴와, 그 이후의 정치적 파장을 끌어안고 지지 세력을 규합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한 문재인으로서는, 여러 가지 사안들을 한꺼번에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구조적으로 그가 대담무쌍하게 치고 나갈 수 있는 여건이 당의 형편을 보거나 안철수와의 관계로 보거나 내부적으로 별로 아닌 상태다.

파죽지세의 기세로 나가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최전선의 장수는 그 자신이다.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할 수 없으며, 전적으로 자신의 판단과 의지가 중심이 되지 않으면 야권의 집단적 돌파력은 역동성을 갖기 어렵게 된다. 남재희 선생은 "선동성"에 주목했는데, 일견 옳으면서 그 "선동성"은 내거는 주제만이 아니라 내면의 자세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여기서 선동성은 정치에 활력을 불어넣는 능력을 말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영국에서 머물다가 정치권에서 물러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대선에 나섰을 때, 세상은 온통 시끄러웠다. 그때 그가 한 말이 있다. "일단 마음을 먹었으면, 대나무 숲을 순식간에 치고 자르고 나가는 기세로 나서야 한다." 파죽지세(破竹之勢)를 이르는 말이었다. 그는 죽을 각오를 하고 세상의 비난과 욕설에 맞서서 세력을 모아나갔다.

문재인에게 이런 기세가 필요한 때다. 안철수 사퇴 이후 트위터에서 최고의 명언으로 등장한 말은 "문재인의 운명은 안철수의 생각에 달려 있다"였다. 일견 옳은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말을 받아들이는 것은 문재인을 계속해서 수세적으로 만들 뿐이다. 향후의 정국을 풀어나가기 위해서 안철수가 중요하지만, 지금 더 중요한 것은 문재인 자신이다.

문재인의 운명은...

따라서 "문재인의 운명은 문재인의 생각에 달려 있다. 그리고 안철수의 운명은 문재인의 생각에 달려 있다."이다. 안철수의 사퇴방식에 담긴 의미를 평론가들이 여러모로 해석하고, 기대하기로는 문재인의 힘이 달리는 지점에서 안철수의 등판이 상황을 절정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문재인은 이러한 예상에 기대어 움직이면 절대로 안 된다.

단일화 이후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문재인이다. 지지를 유보한 안철수 지지자들을 끌어 모으는 것 못지않게, 그 자신의 정치적 매력으로 박근혜 지지 세력까지 이탈시킬 수 있는 힘을 과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문재인을 믿고 함께 가면, 안철수 지지세력들의 허탈과 상처, 섭섭했던 것도 일거에 해결되고, 박근혜를 좇던 사람들도 아, 이거 문재인 아니면 세상 바로 잡히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꽉 들도록 분명하게 치고 나가야 하는 것이다.

몇 가지 짚어보자.

진전을 이룬 것은 국민의 힘

박정희의 시대와 유신체제가 가한 폭력에 대해 박근혜가 사과의 변을 하자, 그만하면 진전이라고 했다. 아니다. 이건 문재인이 할 말이 아니다. "박근혜를 사과하도록 만든 국민의 힘이 진전"이라고 했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이 힘을 믿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가겠다"고 당차게 말해야 한다. 그래야 역사의 후퇴를 막는 정권교체의 의미와 주체가 확실해진다.

전쟁의 공포 vs. 평화의 희망

NLL 북방한계선 문제도 분명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다시 들고 나올 것이다. 그러면 뭐라고 해야 하는가?

"NLL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젊은이들이 분단의 질곡으로 말미암아 더는 희생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의 부모와 형제, 그리고 벗들이 통곡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기성세대는 미래의 세대가 평화로운 통일조국에서 살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단호한 안보태세를 갖추는 것은 마땅한 국가원수의 기본책임입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전쟁의 가능성을 막고 평화의 미래를 만들어나갈 때 우리는 진정 번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해야 한다.

민생은 평화의 기초를 만들어나가면서 풀린다. 한반도의 대결상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것도 지속적으로 불안할 뿐이다. 국민들에게 호소해야 한다. 북의 도발에 대한 단호한 응전은 당연한 일이나, 그런 방식만 열려 있다면 우리는 전쟁의 위기에 언제든 직면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 전쟁의 공포가 아니라, 평화의 희망을 만들어내는 것이 문재인을 선택하는 이유라고 강조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주역은 어디까지나 문재인이다

안철수 지지 세력에게도 자신감 넘치게 말해야 한다. 단일화의 과정에서 생겨난 모든 정치적 감정과 불협화음, 문재인이 책임진다고 해야 한다. 안철수가 그렇게 말했는데, 문재인이 이 말을 그대로 수용하듯 가만히 있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혹시 마음이 상하고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해도 대선 승리를 통해 이 모든 것을 다 보답해드리겠다고 힘차게 발언해야 한다. 안철수를 지지한 까닭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 책무를 다할 테니 다른 곳에 마음 가지 말고 자신에게 확실한 지지를 보여 달라고 해야 한다. 미안하고 고맙고 하는 마음을 넘어, 정권교체의 절박성을 토로해야 한다. 그래야 안철수가 꿈꾸었던 가치가 실현되는 세상이 온다고 줄기차게 강조해야 하는 것이다.

이 대선 정국은 문재인이 주도하는 것이다. 안철수와 함께 한다 해도 주역은 어디까지나 문재인 자신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난 단일화 토론 방송에서 문재인은 문제를 풀어나가는 조정능력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당선된 다음에 할 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세를 몰아 정치의 뜨거움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폭탄을 던져야 하고, 전선을 확실하게 만들어 공격 목표를 선명하게 좁혀 집중적인 타격력을 과시할 수 있어야 한다. 도처에서 난타전을 벌이고, 공격의 재료를 제공하면서 매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화제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는 일에 성공할 때, 문재인과 우리의 민주주의는 승리할 수 있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집권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매서운 각오가 절감될 때, 우리는 폭풍이 몰아쳐오는 전야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문재인, 다부지게 나가라. 우리 모두 함성으로 답하리라.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2012년 11월 26일 월요일

박근혜 "대통령직 사퇴" 발언, 실수였을까?


이글은 2012-11026일자 기사 '박근혜 "대통령직 사퇴" 발언, 실수였을까?'를 퍼왔습니다.
[김민웅 칼럼](100) (남영동 1985)을 봐야 하는 이유

박정희 대통령 시절

"박정희 대통령 때는 괜찮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뭐가 괜찮았다는 것일까? 그리고 여기서 "지금"은 언제일까?

고문 수사관 이근안으로 나온 이경영은 폭행으로 상처가 난 김근태 역 박원상의 몸을 살펴보면서, 차갑고 절도있게 명계남을 비롯한 남영동 수사관들에게 경고한다. 고문폭력과 그로 인한 살해에 대해 문제 제기조차 하지 못했던 박정희 때와는 달리, 전두환 정권 시기에는 고문 폭력의 증거가 드러나 시위를 통한 집단항의 사태가 나는 경우 문책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박정희 때는 그랬다. 물론 전두환 때에도 그런 일이 중지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혁당 사건에서 뚜렷이 드러났던 것처럼, 자기 고향 대구-경북 출신의 젊은 지식인들을 사형판결 후 곧장 처형대로 끌고 가도록 명령을 내린 박정희의 통치는 한 시대를 공포로 몰아갔다. 그리고 우리는 그 딸이 대권을 향한 선거운동 전면에 나서는 역사를 목격하고 있다.

누구도 선뜻 말하려 들지 않았던 역사

겨우 한 달 간에 걸친 촬영기간에 이만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놀랍기 짝이 없다. 전작 (부러진 화살)도 그랬지만, 이번 (남영동 1985)도 시대의 침묵을 깨고 나선 정지영 감독의 영화적 투혼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분단의 계곡에서 죽어간 빨치산 (남부군), 월남전의 비극 (하얀 전쟁)을 비롯해서 그는 누구도 선뜻 말하려 들지 않은 역사의 대목을 서슴없이 짚는다.

칠성판 위에 발가벗겨진 채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받는 박원상의 모습은 처절했다. 김종태라는 이름으로 글자 하나를 바꾼 김근태는 박원상을 통해 다시 역사의 현실에 환생했고, 그가 겪은 고통과 죽음의 얼굴은 우리에게 또렷하게 말하는 듯 하다. "이 일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망각은 바로 저들이 원하는 바입니다." 그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실로 고통스럽지만, 어디 김근태가 치렀던 것 만 하겠는가?

"박정희 대통령 각하와 전두환 대통령 각하에 대들었던 당신 같은 사람들이 여기 와서 다들 생각을 고쳐먹고 나가지요." 남영동을 총괄하는 인물로 나오는 문성근은 박원상에게 타이르듯 말한다. 자신도 경기고등학교 출신의 엘리트라며, 민주화 운동은 북한과 연계된 빨갱이들의 소행이라는 주장을 거듭 강조한다. 이 나라의 민주화는 그런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 영화 <남영동 1985>. ⓒ아우라픽처스

"대통령직을 사퇴"한 박근혜

"오늘로 지난 15년 동안 국민의 애환과 기쁨을 같이 나누어 왔던 대통령직을 사퇴하겠습니다." 박근혜의 국회의원직 사퇴 기자회견의 "실수" 발언이었다. 그러나 실수로 보기에는 예사롭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꽉 박힌 단어가 무엇인지 우리는 여기서 확인하게 된다. 그 15년은 민주정부 10년을 거치고, 5년간의 무식하고 야만적인 권력의 폭행을 견뎌온 시간이었다.

박근혜는 이 시기,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기여하거나 이명박 정권의 폭력과 부패를 저지하는 일에 노력한 바가 없다. 박정희가 공포정치로 이끌었던 시대에 대한 사과도 밀리고 밀려 마지못해 했고, 이후 보인 모습은 언제 그런 말을 했던가 하는 식이었다. 그러니 그녀의 측근들은 냉전 이데올로기를 동원해서 경쟁상대에 대한 폭언을 퍼붓기를 일상으로 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게 되었다.

바로 그런 냉전사고와 폭언이 도달한 지점이 무고한 이들에 대한 고문이었다. 이제 고문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하지만 경쟁상대를, 안보를 위협하는 자로 몰아세우고 짓밟았던 폭력은 그 형태만 달리 했을 뿐이지 언어의 무차별한 폭력으로 둔갑해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들이 권세를 쥐는 세상이 어떻게 되어갈지 보지 않고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과 민주주의, 그리고 고문

목욕탕에서 아들과 함께 물장구 장난을 벌이던 김근태의 모습은, 물고문의 장면과 겹치면서 우리에게 인간의 삶에 기본조건으로 필요한 물을 인간을 말살시키는 도구로 변모시키는 자들의 냉혈적 면모를 직시하게 한다.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있는 대로 짓밟아 비굴하게 만들고 영혼을 팔게 하는 이들은 악마와 다를 바 없다. 민주주의는 결국 악마와의 싸움이었다.

국가보안법은 이 악마들이 활개 치도록 만든 법이었다. 그리고 고문을 정당한 것으로 생각하게 했고, 그러다가 죽여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확신까지 주었던 법이다. 사형 판결을 받기도 전에 사형이 가능하게 하도록 한 것이 바로 국가 보안법이 해온 일이었다. 그것은 국가를 보안한 것이 아니라, 악마의 권력을 지켜온 법이었다. 고문은 이 권력이 애용한 수단이었다.

고문은 폭력으로 자백을 받아내는 방식이 아니다. 정지영 감독은 고문의 정의가 달리 규정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고문은 있지도 않은 사실을 조작해내는 수법입니다. 강제로 자백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시대는 한 사회 전체가 바로 이 고문에 시달렸다. 권력이 입을 봉쇄하고, 귀를 막고 눈을 가렸다. 그리고 진실을 왜곡하고 있지도 않은 일들을 조작,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때 박근혜는 이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여성 대통령론을 내세운다면 생명이 당하는 고통에 민감해야 할 텐데, 그녀에게서는 그런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 기껏 말하는 것은, "산업화 시대에 본의 아니게 상처받은 사람들"이라는 표현뿐이다. 고문은 본의가 아니었다? 죽은 자들도 있는데 상처 받았다? 김근태는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다가 결국 세상을 뜨고 말았다.

레비나스의 "타자의 얼굴"

유대인 철학자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이라는 개념을 통해, 고난에 처한 이들의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인간은 그 순간 비인간화된다고 말한다. 고통을 겪는 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악마와 손을 잡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나치스가 학살한 유대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다시는 그런 시대가 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본능적으로 굳히게 된다. 마주보지 않으면 그건 견고해지지 못한다.

정지영 감독은 고문 장면을 촬영할 때마다 오케이 사인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니 이 자들이 이렇게 고문했단 말이야?" 하고 고통스러워했다. 영화이고, 연기라고 여기면 되겠지만 촬영은 실제와 거의 방불했고 과거를 다시 복원하는 과정에서 감독 자신도 고문의 현실을 새삼 깨달았던 것이다. 그 시대에 책임 있던 자들이 다시는 역사의 무대에 오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렇게 해서 단단해져갔다.

우리가 '남영동 1985'를 봐야 하는 이유

우리는 왜 이 영화를 봐야 하는가? 그리고 이 영화는 어째서 청소년도 볼 수 있는 15금인가?

야만의 시대를 미래의 유산으로 남겨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시대를 가슴 속에서부터 진실로 반성하고 성찰하지 않는 자들이 권력을 잡는 일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안철수가 본 이 영화를 박근혜는 끝내 외면했다. VIP 시사회 초대에 그녀는 응하지 않았다. 그 까닭을 우리가 모르지 않는다.

를 보는 일은 우리가 발언하는 일과 같다. 대선 국면에서 우리의 의사를 확실하게 밝히는 일과 다르지 않다. 집단관람이 줄을 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토론하는 거다. 청소년과 청년 세대가 이 영화를 보고, 자신들이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게 되었는지 알도록 했으면 싶다. 이들이야 말로 다시는 역사의 후퇴가 생겨나지 않도록 책임져야 할 미래의 주역들 아닌가.

영화가 기록한 어둠의 시대,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그 어둠을 뚫고 나갈 길을 보여주는 방향타이기도 하다.

그제, 농부 철학자 윤구병, 영화감독 정지영, 서울시 진보 교육감 단일후보 이수호와 함께 화천의 감성마을 이외수와 새벽까지 춤과 노래를 곁들인 이야기꽃을 피웠다. "음(陰)의 시간은 양(陽)을 기르는 시간입니다." 이외수의 이 말이 가슴에 꽂혔다. 을 관람하는 시간은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미래를 기르는 시간이 될 것이다. 관람하는 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는 더더욱 확고해져갈 것이다.

(남영동 1985)는 (민주정부 2013)을 여는 또 하나의 창문이 될 것이다.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2012년 11월 14일 수요일

오바마 재선 이후 한반도 정세


이글은 프레시안 2012-11-14일자 기사 '오바마 재선 이후 한반도 정세'를 퍼왔습니다.
[창비주간논평]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적 균형 이룩해야

미국은 여전히 힘겹다. 경제위기에 봉착했던 2008년 이후, 전쟁을 통한 국가팽창 전략에는 제동이 걸렸고, 미국 중심의 일극적 체제(unipolar system)는 이전처럼 가동하기 어려워졌다. 이런 맥락에서 오바마의 당선은 미국의 생존방식에 일대 변화를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지난 4년 동안 오바마의 정치경제적 운신은 생각보다 좁았다. 각료 구성에서도 오바마는 네오콘 세력 일부를 정치적으로 상속받았고, 복지정책 확대 요구와 정부의 부실재정이 서로 충돌하는 모순 속에 자신의 입지를 확보해야 했다. 오바마 1기는 이런 과정을 통해 그가 그토록 부르짖었던 '변화'의 구도가 현실정치에 안착하려는 단계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 추구는 기본적으로 구질서의 퇴각 내지 해체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4년으로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어디 어림이나 있는 것인가? 오바마 자신의 지도력과 개성은 기존 질서에 일정하게 포위되는 상황이었으니 그를 뽑아주었던 유권자들은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의 재선이 가능했던 것은, 2008년 경제위기가 그의 책임이 아니라 부시 정권이 저질러놓은 일이라는 것을 유권자들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4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산적한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것도 인정한 결과였다.

오바마 2기 대외정책의 향방

따라서 그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기로 한 미국 유권자의 선택에는 오바마표 정책이 좀더 뚜렷하게 가시화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실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의 행보는 지난 4년보다 상대적으로 자신감과 자기만의 개성을 가지고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오바마로서는 일극적 위상을 더는 유지하기 어려운 미국의 대외 행동반경에 있어서 '단독적으로 강한 미국'이 아니라 '국제적 협력체제를 지휘하는 미국'을 선택하는 쪽으로 갈 것이다. 이는 '아시아로의 이동'이라는 대외정책의 기조와 합치하는 동시에, 중국 포위 내지 봉쇄 전략이 중심이 되었던 1기의 수정을 의미한다.

 
▲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대통령 ⓒAP=연합뉴스

유럽이 휘청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으로서는 유럽 중시주의 정책이라는 것이 자국에 부담만 가중시키게 된다. 미국은 중국 성장에 대한 견제력을 발휘할 여지조차 그런 위기 해결에 흡수되어버리는 결과에 직면하면서, 아시아ㆍ태평양 국가로서의 위상 굳히기에 진력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대외정책의 방점 변화는 동북아시아에 일정한 평화적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내심 긴장하면서 상대의 의중을 탐색하고 그와 동시에 물리적 대립을 피하려는 처지는, 그 중간지대를 완충지역으로 만드는 효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완충지역의 중심에는 한반도가 지정학적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묘한 '외교 방정식' 위에서 평화를 구하는 방법

이렇게 보자면, 남과 북은 정세를 활용하기에 따라서 상호 평화적 접근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가는 셈이다. 미국과 중국의 대치 가능성이 낮은 상태에서, 남북대화가 지난 시기의 압박에서 일정하게 풀려나 여유를 갖고 진행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각도를 달리 생각해보자면, 미중관계가 미묘한 균형 위에 서 있기에 한반도가 어떤 축으로 기우뚱하게 되는가에 따라 동북아시아 패권체제 재편성의 결정적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미·중의 한반도에 대한 교차성 흡인정책의 강도는 강해질 수 있다. 즉 상대가 유지하고 있는 기존의 동맹질서에 다소라도 균열을 내고 싶어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에 대해, 중국은 한국에 대해 외교적 인력(引力)을 강화할 수 있다.

이같은 정세는, 우리에게 매우 복잡한 '외교 방정식'을 요구하고 있다. 긍정적 틈이 생긴 평화의 공간을 확대하면서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중립적 균형을 이룩해야 남북의 평화통일을 위한 기반을 닦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하고 통일 한반도의 축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다고 미국이나 중국이 판단하게 될 경우,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구나 그 어느 쪽이라도 이를 용납하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조건 위에서 가장 절실해지는 것은 남과 북의 대화와 동북아시아 패권체제의 장력을 넘어서는 상호결속이다. 이 기반 위에 있지 못하는 일체의 동북아시아 질서 재편은 우리에게 또다시 주변의 힘에 휘둘리는 역사를 강요하게 될 것이다. 역사가 열어준 기회를 부디 지혜롭게 사용해야 할 때가 왔다. 오바마와 차기 정부의 평화협력체제의 등장을 고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2012년 1월 27일 금요일

<부러진 화살>, 그 실체적 진실이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1-27일자 기사 ', 그 실체적 진실이란?'를 퍼왔습니다.
[김민웅 칼럼] 100만 관객을 넘으면서

쏜 사람은 없는데 맞은 사람이 있다면?

쏜 사람이 없으면 맞은 사람은 없게 마련이다. 그러나 맞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증거를 확보하는 것은 누구라도 가장 먼저 떠올릴 기본이다. 더군다나 맞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법정에서 증거논쟁을 정리하는 판사라면 그 증거가 얼마나 중대한지도 알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해의 증거라는 것도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의 몸에 박혔다고 하니 그건 가해자가 어떻게 인멸할 수 없는, 피해자의 손에 들어간 가장 확실한 물증이다. 그런데 그 증거가 사라졌다. 누구의 손에 의해서일까? 어떤 경로로?

가령 누군가를 칼로 찌른 뒤, 그걸 범인이 없애버렸다고 그 범죄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찌른 칼을 찾지 못한다고 해서 찔린 상처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 칼이라는 물증이 없을 때에는 다른 정황 증거가 범죄를 입증하는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결정적 물증이 없다고 그 범인이 잡히든 아니든 해당 범죄 사실이 부인될 수 없다. 그러나 이 경우, 그 결정적 물증이 실종된 것은 범인이 은폐 인멸했을 때의 이야기다.

만일 피해자가 주장하는 상처가 석궁 발사의 결과인지 아닌지도 확증되지 못했고, 발사체인 화살이라고 하는 물증도 없어진 상태이며 혈흔이 피해자의 것인지도 밝히는 과정이 없는 상태에서 내려진 판결이라면, 그걸 승복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주인공 김명호로 분한 안성기 ⓒ부산국제영화제

사법부의 권위를 몰락시키고 있는 당사자는...

법정에서 판사가 전문가를 불러 실험해 본 과학적 결과도 부정하고, 피해자의 혈흔 검증도 거부하고 결정적 물증이 사라진 경위에 대해서도 묻지 않고 피해자, 그것도 동료 판사의 말만 근거로 판결을 내려가는 모습을 보였다면 그 재판의 일방성은 도마 위에 오르지 않을 수 없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 셈이기 때문이다.

증거로 제출된 것의 증거능력 판별은 판사의 자유재량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상식적 설득력이 있을 경우에 한 한다. 판사의 자유재량 발동에 필요한 절차를 엄밀하게 구성하는 것이 바로 공판주의의 정신이기도 하고 법의 권위를 확보하는 첩경이기도 하다. 이걸 판사 스스로가 무너뜨리는 순간, 법의 권위를 몰락시킨 당사자는 다름 아닌 판사 자신이다.

물론 '판결에 불만을 품고 석궁을 들고 갈 수 있는가'라는 윤리적 문제가 생긴다. 석궁을 들고 해당 판사를 겁주려 한 것은 찬동할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라는생각 대신 "오죽하면"이라는 시각을 가지는 순간 그를 대표로 하는 무수한 이들의 억울한 심정을 읽어내는 것이 판사의 양심이어야 한다. 이 행위를 벌주는 것에 진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담긴 절규를 듣는 것이 판사의 책임이다. 그런 판사가 있으면 그 행위에 대한 지탄은 사회가 알아서 하게 되어 있다.

영화 이 사법부를 겨냥했다고들 난리인 모양이나, 이 영화는 사법부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사법부의 오만과 특권의식, 그리고 기득권 동맹 체제를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태를 만들어낸 것은 영화가 아니라 사법부 자신이다.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시작도 하지 못했을 것이며, 이 영화에 열광하는 이들이 이렇게 매일 급증할 수도 없다.

앙시앙 레짐의 몰락과 2012년의 시대정신

이제 영화 이 일주일을 넘기면서 관객 100만을 기록했다. 이런 식의 고공 행진이 계속된다면 여기에 0이 하나 더 붙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사태가 그렇게방향을 잡아나가는 추세가 되면, 기존질서의 가장 강력한 보루인 사법부를 비롯하여 이른바 낡은 질서의 총체적 구조인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이 일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2012년의 시대정신"과도 그대로 일치하는 현상이 될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단지 사법부의 현실만을 문제 삼고 있지 않다. 이 점이 중요하다. 이 영화에서 우리는 우리 사회가 제기하고 고민하며 토론하고 해결해야 할 사안들과 두루두루 직면하게 된다. 사립학교법, 국가보안법, 노동자 탄압, 사법피해, 교도소 인권상황,언론의 비굴함, 이명박과 BBK, 검찰개혁 등 하나 둘이 아니다. 특히 노동자 탄압은 이명박 정권 아래에서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아래에서도 잔혹하게 벌어졌던 사건들이다.

이 영화는 이러한 사회적 악폐와 구질서의 억압구조를 사법부의 현실에서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뿐이며, 그렇다고 다른 구질서의 권력기관들은 그냥 넘어가도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정부 10년의 공과 과, 그리고 이명박 정권의 폐습, 사법부를 비롯한 권력기관의 오만과 특권체제 이 모든 것이 이 영화에서 하나로 뭉뚱그려 얽혀 있음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감독의 시야는 결코 좁지 않다. 하나로 열을 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 정지영 감독에게 <부러진 화살>의 영화화를 권했던 배우 문성근(오른쪽)이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영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배우 안성기, 감독 정지영, 배우 김지호, 박원상 ⓒ연합뉴스

'2013년 체제'를 향해 하는 길목에서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2013년 체제'를 향해 가는 길목에 서 있는 작품이다. 민주주의의 완성과 남북관계의 진화, 그리고 복지체제의 건설을 위해 필요한 우리의 의식과 시선을 재정리하는 매우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사법부라는 특정한 실체를 놓고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에서 그 주제를 놓쳐서는 안 되지만, 그 한계에 갇혀 논란을 벌이는 것도 기득권 질서의 담론 전략에 갇혀 버리는 일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석궁 사건의 실체 논란과 영화의 사실성, 허구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논란은 그 나름으로의 가치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의 의미를 한정시켜버린다면 그건 또 다른 "농간"에 놀아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정작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메시지는 "우리가 이길 수 있다"이다. 방법도 나와 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밀고 나가 보는 것이다. 대담하게. 그렇다면 누가?

2008년 촛불 광장에서부터 한미FTA 반대, 그리고 야권의 연대와 통합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현실을 역동적으로 변화시켜온 힘의 밑바닥에는 "보통 사람들의 미미하게만 보였던 목소리"가 있다. 세상으로부터 잊힐 뻔했던 석궁 사건의 김명호 교수도 그런 목소리의 하나이고,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 자체가 또한 그런 목소리며 노 개런티로 출연한 연기자들과 스텝도 그런 목소리를 만들어낸 이들이다. 이 영화를 설 개봉으로 과감히 배급 결정한 이들도 마찬가지다.

어디 그뿐인가? 영화 은 거대한 자본의 공세와 벽 앞에서도 SNS를 통한 사회적 응원에 힘입고 있지 않은가? 개봉 1주일 100만 관객도 그런 이들의 위력이 만들어낸 거사이다. 그렇지 않아도 2011년, 세계는 "작은 자들의 반란"과 이들의 힘이 폭발적으로 자라나는 것을 목격했다. 이슬람권에서, 미국에서, 유럽에서, 우리는 "더는 쫄지 않는 작은 자들의 목소리와 행동"을 통해 현실이 바뀌어가고 있는 것을 체험했다. 우리 역시 다르지 않다.

이 영화는 이미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여는 현관이 되었다. 한 시대의 의미를 규정하는 사회적 자산으로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으로 들어서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이걸 따고 들어가서 만들어가야 할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바로 거기에 "의 실체적 진실"이 있다.

이번에는 제대로 쏘게 될 것이다. 영화처럼 유쾌하게.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2012년 1월 20일 금요일

곽노현의 복귀, 제대로 된 논쟁이 시작돼야


이글은 프레시안 2012-01-19일자 기사 '곽노현의 복귀, 제대로 된 논쟁이 시작돼야'를 퍼왔습니다.
[김민웅 칼럼] 곽노현 교육감 판결에 대해

법적 결론 완결되지 않았다.

곽노현 교육감의 벌금형 선고는 실정법적 제약과 곽 교육감의 진심에 대한 경계선에서 내려진 판결로 보인다. 그러나 법원의 최종판단이 3심까지 있다는 점에서 이번 1심 유죄선고가 곽 교육감에 대한 법적 결론이 완결된 것은 아니다.

우선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곽 교육감의 직무복귀가 이루어짐으로써 그간 이명박 정권과 보수 세력이 저지하려 했던 교육 개혁의 방향과 의지가 다시 점화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번 재판에서 곽 교육감이 돈과 관련한 사전 합의에 대한 인지 여부, 사후라도 대가성이 입증된다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이 핵심 사안으로 떠올랐다. 이는 돈의 성격을 어떻게 판별할 것인가의 문제이자, 실정법이 규정한 대가성 금품 제공의 기준에 대한 논란이 걸려 있는 사안이었다.

그런데 곽 교육감이 선거 과정에서 경쟁 상대였던 박명기 교수에게 선거가 끝난 후, 돈을 주었다는 사실은 명백했고 이는 곽 교육감 자신이 인정했다는 점에서 사실 관계의 일차적 진실은 변함이 없었다. 여기서 대립되는 지점은, 어려운 박명기 교수의 처지에 긴급 조력을 했다는 곽 교육감의 주장과 선거 이후 사전 합의에 따른 대가성 금품 제공이라는 검찰의 주장이다.

상황논리와 진심의 대결



ⓒ뉴시스
곽 교육감이 박 교수에게 돈을 준 것은 그 어떤 정상을 참작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그런 식이라면 우리 사회는 너무도 인심이 사나와질 것이라는 반박이 있다. 어디에서는 갓끈도 매지 말고 신발 끈도 고쳐 신지 말라고 하는데, 이건 상황에 따른 오해의 가능성을 피하라는 교훈이다.

진보 교육감이라는 위상을 어렵게 얻은마당에 보수 세력의 공세가 뻔한데 아무리 상대의 처지가 급해도 그러지 않는 것이 당연히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옳은 처신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상황 논리가 모든 것을 압도할 경우, 그 상황논리를 넘어서는 진심의 수용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이번 재판의 사실상 핵심은 곽 교육감의 진심을 판단하는 문제이다. 선거과정에서 경쟁상대가 사퇴함으로써 유리한 입장에 서 있게 된 것도 사실이고, 그 상대가 사퇴의 대가를 기대할 만한 정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가 곽 교육감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오간 것도 사실이며, 돈이 건네진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과 조건만 보면 이는 대가성 금품 제공이라는 판단을 내리기에 족하다. 유죄판결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재판은 바로 이러한 조건과 상황이 얽혀 있는 사안의 진실을 파헤치는데서 시작된다. 또한 이 사안에 깔려 있는 진정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명 재판의 의미다.

긴급부조의 진실성, 그리고 윤리적 논쟁

묻자. 우리는 문제가 불거지면 자신에게 불리할 수 있음에도 상대의 처지를 진심으로 생각해서 돈을 건네주는 행위는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고 결론 내릴 수 있는가? 만일 돈의 성격이 정말 "긴급부조"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아무리 긴급부조를 해야 할 상황이라도 상대에 따라 그 긴급부조는 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가령 "원수를 사랑하라"는 종교적 윤리는 언제나 실정법적 판단의 잣대에 묶여야 하는가?

나는 곽 교육감이 실로 용기 있다고 본다. 경쟁 상대였던 후보에게 돈을 주는 일은 위험하다. 뿐만 아니라 사건 직후 이에 대한 사실 인정을 했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모든 정황논리를 뛰어넘어, 교육감 선거를 거치면서 진보교육 운동에 뛰어든 이들이 어떤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으며 힘겨운 처지에 빠지는가를 절실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가 교육의 진보적 개혁에 진력을 다하는 것 이상으로, 함께 선거에 나섰던 이의 처지를 외면하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했다. 정치적으로 순진하고 교육감의 위치에서 무책임한 일을 저질렀다고 비난받을 수 있다.

그런데 곽 교육감이 바로 이러한 자세를 가지고 있기에, 그는 현실의 비난과 오해를 뚫고 교육개혁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진정 조력이 필요한 곳에 조력을 하는 것. 그것이 이 사회를 보다 윤리적으로 진보시킬 수 있는 출발점이다. 이 일을 하는 것은, 현실의 오해라는 거대한 벽을 허물고 나가는 이에게만 가능하다.

곽노현 표 교육 개혁 힘차게 다시 시동을 걸어야

곽노현 교육감 재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쟁은 이제 비로소 제대로 시작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태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는 향후 우리 교육의 내용과 가치에도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에 더해 그간 곽노현 교육감의 진보교육 개혁을 막고자 했던 세력이 이번 일로 어떤 대응을 하게 될는지 주목된다.

이제 우리는 곽노현 교육감의 복귀로, 그간 흐트러져 있던 서울시 교육정책의 흐름을 다시 잡아 교육의 미래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박원순 시장과 곽노현 교육감, 이 쌍두마차가 서울시의 내일을 밝게 해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곽노현 교육감의 무상급식 정책이 오세훈 전 시장의 사퇴를 결과적으로 가져왔고 박원순 서울시장 체제를 만들어내는계기가 된 것이 아닌가?

박원순-곽노현, 이 서울시 개혁의 두 동력이 힘차게 손을 잡고 2012년을 더더욱 흥분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2011년 12월 20일 화요일

북 체제 안정 역량, 생각 이상으로 높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20일자 기사 '북 체제 안정 역량, 생각 이상으로 높다'를 퍼왔습니다.
[김민웅 칼럼] 조문 정국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이틀간의 시간 동안 북이 보여준 것

북한의 체제 생존력은 일단 생각 이상으로 높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관련한정보를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알 수 없게 완벽하게 관리한 점은 북의 체제 방어 수준이 만만치 않음을 증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북의 내부를 향한 외부의 개입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과시한 셈이기도 하다.

북으로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급서가 주는 충격과 위기를 관리하고 차기 체제를 조속하게 안정시키는 일 외의 중대사는 지금 없다. 여차하면 북한 붕괴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런 대응은 체제적 필연성을 가진다.

더군다나 김정일 위원장의 죽음에 대한 애도 못지않게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입증해 보이지 못하면, 북한 주민들이 겪을 혼란과 위기감은 통제 불가능의 상태가 된다. 그런 점에서 북의 체제 방어 시스템이 이틀에 걸쳐 이를 해결했다고 판단하고 사망 정보를 공개한 것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이명박 정권의 대북 정보 파악 역량에 대한 질타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의미하다. 이명박 정권만이 아니라 미국도 북의 체제 방어력과 정보관리의 벽을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여기서 중요하게 봐야 할 대목은 김정일 이후의 북이 자신을 철저하게 방어하고 정권 교체 동요기에 외부의 개입 가능성을 치밀하게 차단하는 작업을 완료했다는 점이다. 이걸 제대로 보지 못할 경우, 북의 김정일 이후 체제에 대한 전망은 오판에 기초할 수 있다.

순직한 지도자의 이미지

뿐만 아니라, 김일성 주석의 경우 남북관계를 재정비하는 작업에 몰두하다가 유명을 달리하고 김정일 위원장의 경우에는 북한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현지 지도에 골몰하다가 세상을 떴다는 대목은 북한 주민들에게 김정은 체제로 넘어가는 3대 세습의 정서적 정당성을 부여해준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하다가 순직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는 대를 이어 계승되고, 그에 따라 김정은 체제는 북한 주민들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얻은 것이다.

이 두 가지 면모, 즉 (1) 위기의 조건에서 작동한 체제 방어력의 수준과 (2) 지도자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결집도는 북한의 장래에 대한 섣부른 부정적 예상이나 평가를 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렇지 않아도 북은 김일성 주석 사후 체제 위기를 관리한 경험과 경제적 곤경을 헤쳐 온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번의 경우 그 학습효과가 가동할 수 있는 기반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덧붙여,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상태 악화와 김정은 후계 지목이 겹쳐서 진행되었다는 점은 만일의 유고사태에 대비하는 내부의 시스템 작동 준비가 상당 정도 정비되어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볼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쪽에서 생각하듯이 핵심적 지도자의 사망으로 인한 어떤 정치적 혼란이나 군사적 동요란 적어도 체제적 차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김정일 위원장의 예기치 않은 사망은 북 내부에 엄청난 충격과 위기감을 조성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때를 위해 그토록 주변 열강들과의 외교적 관계를 다져놓고 후계구도를 확정했던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존경심이 더더욱 우러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 비상관리체제와 계승 시스템을 김정일 위원장이 정치적 유산으로 남겨놓았다고 본다면, 북의 생존력은 결코 불안정하지 않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김정은이 지난해 10월 노동절 행사 당시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옆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AP=연합

준비된 후계체제와 유리한 주변 환경

또한 김정일 이후의 북은 김정은 하나의 주도 아래 모든 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체제의 방어와 생존을 위해 그를 중심으로 일치단결하는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안정될 수 있다. 주변 환경도 좋은 편이다. 중국의 대북 정책은 북의 체제 생존력에 기본 조건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과 러시아를 교차 방문하면서 후계체제의 안정화 전략을 구사하고, 사망 직전 미국과의 관계개선의 의지도 진전시켜나간 것은 모두 자신의 부재 이후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할 수 있다. 북의 지배 엘리트 들 역시 김정일 위원장이 마련해놓은 기반을 다지는 것 외의 생존전략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에 진력을 다할 것이며 "선군정치"의 최대 수혜자인 군 역시 이런 방향으로 힘을 쏟을 것이다.

김정은이 너무 어린 나이라고 하지만, 3대에 걸친 혁명 가계의 적통이라는 자의식과 짧은 시간의 훈련이지만 최고 지도자 과정을 밟았고 젊은 시절 김일성 주석의 이미지와 혼재되어 있는 면모는 그의 지도력에 일정한 카리스마를 부여하게 되어 있다. 할아버지가 항일 독립투쟁의 경륜을 가지고 있고 아버지는 대미 관계와 경제위기를 관리하고 돌파하기 위한 역량을 보였다면, 김정은의 경우는 세기적 격변기에 강성대국 내지 강성국가의 진로를 구체화하는 과제를 받은 셈이다.

그가 성공할지 아니면 실패하고 말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을 보는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그로서는 생각보다 신중하면서도 결단력 있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 그것이 그의 나이와 경력의 부족함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모를 수 없고, 또 권력의 핵심 주체 세력도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김정은 체제는 견고하게 다져진 아버지의 정치적 유산을 상속받을 뿐만 아니라, 내부의 강력한 지지와 외부의 지원을 받는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북에게 있어서 이것 외의 대안은 없고 중국과 러시아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일본도 이미 예상대로 북에 대한 조의표시를 했고 대북 접근의 밀도를 높이려 들고 있다.

조문 정국으로의 전환

따라서 김정일 위원장 이후 대북 정책에서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은, 김정일 사망에 대한 기본적인 조의의 예를 갖추지 않는다거나 북의 체제 생존력을 가볍게 본다든지 김정은 체제를 우습게 보는 일 따위다. 만일 그렇게 해버린다면, 그것은 북 체제 내부에 긴장을 불러일으켜 한반도의 평화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향후 대북관계 개선의 통로를 스스로 차단해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은 뻔하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조의 내지 조문 정국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물론 그렇다고 이명박 정권의 문제가 이로써 덮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한-미 FTA문제가 망각된다고 여기는 것 역시 착각이다. 잠시 우선순위가 바뀌어 일차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북은 외국의 조문사절을 받지 않는다고 했지 같은 민족의 조문까지 거부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중국의 후진타오가 영결식 참석을 하겠다고 했으니 조문사절 논란은 동양적 예로 볼 때 일단 "굳이 오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한 정도이다. 그게 조의 표시마저 거부하거나 조문의지를 밝히는 것까지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충격에 빠져 있는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우리가 진정 위로하고 한반도 평화의 내일을 위해 필요한 자세를 취하고 있음을 북에 분명하게 표시하는 일이다. '문상정치'라는 말도 있고 '조문외교'라는 말도 있다. 통 크게 그런 각도로 북의 상황을 대하는 노력과 모습을 보인다면, 이제까지의 여러 복잡한 감정과 정책의 모순이 일거에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정도로 풀려나갈 수 있다.

동양의 역사에서 조문이란...

김일성 주석의 죽음을 아버지의 죽음으로, 다시 세대가 바뀌어 김정일 위원장의 죽음을 또한 아버지의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북한의 현실에서 매우 현명하게 처신할 일이다. 상대는 의외로 강력한 체제 생존력을 가지고 있으며, 불안정한 요소가 있다 해도 적지 않은 기간 동안 북의 현실을 장악하면서 한반도의 장래를 결정해나가는 주체의 하나다. 그런 상대를 외면하고 무시해버린다면, 그건 한반도의 평화체제 수립에 역행하는 처사가 된다.

이제 곧 오바마 행정부도 북에 대해 조의를 표시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국면에 처한 북한과의 대화통로를 복구하는 일에 지체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대 중국 전략에 있어서도 유리한 선택이 아니다.

여기저기서 잇달아 이명박 정부의 공식적인 조의 표시를 요구하고 있다. 북은 예의주시할 것이다. 그리고 기억할 것이다.

동양의 역사에서는 적장이 죽어도 조문은 가는 법이다. 아니면 조의 정도라도 표한다. 이명박 정권은 그 의미를 혹여 부정하고 싶어도 하물며, 고(故) 김대중 대통령과 손을 잡고 한반도의 평화를 이룩하자고 했던 북의 지도자다. 노벨 평화상의 사실상 한 쪽 당사자다.

그렇다면 북의 핵은 뭐냐고 할지 모르지만,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에 대한 대응과정의 산물 아니던가? 대북압박 내지 적대시 정책의 포기와 북한의 핵전략 포기는 서로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는 사안이다.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가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되는 법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더 길게 말하지 않아도 답이 나오지 않는가?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