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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4일 목요일

[이철재의 영화 속 생태 ⑥]‘남영동 1985’와 4대강, 그리고 이명박의 훈장


이글은 민주의소리 2013-02-13일자 기사 '[이철재의 영화 속 생태 ⑥]‘남영동 1985’와 4대강, 그리고 이명박의 훈장'을 퍼왔습니다.
민주인사 고문 훈장과 4대강 파괴 훈장, 기록하고 기억하자

2000년 1월에 개봉한 이창동 감독 영화 ‘박하사탕’은 순수했던 한 인간이 현대사의 굴곡을 거치면서 타락해가는 모습을 1999년부터 1979년까지 시간을 거슬러가면서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김영호(설경구 분)가 삶에 쪄들고 자포자기한 얼굴로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친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로 꼽힌다. 

사무실 동료들과 영화관에서 ‘박하사탕’을 봤을 때의 일이다. 영화 중반부, 영호는 광주민주항쟁에 진압군으로 투입된다. 그는 실수로 어린 소녀를 총으로 죽인 죄책감에 시달리다 제대 후 시국사범을 쫓는 초임 경찰이 됐다. 그런 그에게 선배들은 그들이 잡아온 이를 고문하라 한다. 영호는 쭈뼛거리면서도 팬티바람으로 포승줄에 사지가 묶인 이를 짐승 다루듯 때리며 고문한다.

그 장면에서 옆자리에 있던 선배가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녀는 자신의 선배가 생각나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80년대 중반 대학을 다닌 그녀는 자신이 옥바라지 했던 선배 이야기를 했다. 어느 날 경찰에게 끌려간 그녀의 선배는 적지 않은 고문을 당했고, 그로 인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망가졌다고 한다.

영화 '박하사탕'의 한 장면. 광주항쟁에 진압군으로 동원된 영호(설경구)는 실수로 소녀를 죽이고 절규한다.ⓒ영화 '박하사탕'

비명 소리, 흐느끼는 소리, 투덜대는 소리

우리 일행 뒤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커플이 있었는데, 영호의 고문 장면에서 “아, 재미없어”라면서 투덜댔다. 스크린에서는 고문에 의한 비명 소리가, 바로 옆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뒤에서는 투덜대는 소리가 묘하게 합쳐져 내 귀에 들어왔다. 내게 영화 박하사탕은 영화 속 장면보다 그때 영화관 상황이 더 크게 기억된다. 

나는 투덜대던 어린 친구들을 탓하고 싶지 않다. 나 역시 그랬으니 말이다. 80년대 후반 대입을 준비했던 나에게 당시 시대 상황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저 한여름에도 창문을 닫게 만드는 최루탄 가스 때문에 공부에 방해되는 것만 근심하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나면서 그 시절이 얼마나 처절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참혹했는지 알게 됐고 눈물짓게 됐다.

80년대 고문 장면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영화가 지난해 11월 개봉한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다. 영화는 군사독재의 폭력이 극에 달한 엄혹한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는 박정희 정권에 이어 전두환 정권이 권력을 잡고 있을 때다. ‘남영동 1985’는 고 김근태 전 민주당 국회의원의 자서전 ‘남영동’을 바탕으로 그 시절 고문을 당했던 이들의 증언이 더해져 영화가 됐다.

70~80년대 대학에는 경찰이 상주해, 민주화 시위를 5분만 해도 성공이라 여겨졌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50대인 한 선배는 그 때 학내에서 시위를 하다 경찰서로 끌려가 ‘몽둥이찜질’을 당했다. 그러다 어느 한 순간 아픈 것이 하나도 안 느껴졌다고 한다. 몸이 나른해지면서 졸음이 쏟아지는데, ‘아 이렇게 죽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영화 ‘남영동 1985’에서 낯선 남자들에 의해 눈이 가려진 채 끌려온 김종태(박원상 분)는 천장에 백열등이 달린 어두운 방안에서 몽둥이와 구둣발로 구타를 당한다. 김종태가 끌려온 곳은 남영동 대공 분실. 민주화 인사를 숱하게 고문했던 이곳은 현재 경찰 인권 보호 센터가 되어 있다. 

영화에서 낯선 이들은 김종태의 팬티까지 벗긴 채 자술서 쓰기를 강요한다. 김종태를 북의 지령을 받는 간첩으로 조작하려 하지만 이를 거부하자 그들은 일명 ‘장의사’라 불리는 고문 기술자를 부른다. 그가 바로 극중 이두한(이경영 분)으로 나오는 이근안 경감이다. 영화에서는 각종 고문 장면이 사실적으로 표현된다. 구타와 무릎 밟기, 그리고 잠 안 재우기, 밥 안주기는 등은 그나마 편한 고문처럼 느껴졌다. 칠성판이란 고문 기구에 김종태의 몸을 묶고 물고문 하는 모습은 보는 이의 치를 떨리게 한다.

이어 고춧가루를 탄 물을 붓는 장면과 전기 고문하는 장면에서는 내가 눈물이 났다. 당시 정권에게 인권과 민주주의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고문은 공포정치의 수단일 뿐이었다. 영화는 김종태가 남영동 대공 분실에 끌려간 9월 4일부터 9월 24일까지 고문을 받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영화에서 극심한 고문 끝에 조작된 진술을 받아낸 이두한은 김종태에게 “김 선생! 사형 당하기 전에 세상이 바뀌면 그땐 날 잡아다 고문하세요”라고 말하면서 사라진다. 

영화 '남영동 1985' 한 장면. 고문기술자 이두한(이경영 분)은 민주인사 김종태(박원상 분)를 대공분실에게 잔인하고 고문한다.ⓒ영화 '남영동 1985'

4대강 사업은 자연에 대한 고문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떻게 인간이 인간을 저렇게 대할 수 있는가’라는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 속칭 ‘장의사’로 불린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김근태 전 의원을 고문한 다음 해인 1986년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옥조근정훈장 받았다. 훈장은 국가나 사회에 공로가 뚜렷한 사람에게 국가에서 그 공적을 표창하기 위하여 수여하는 것이다. 근정훈장은 공무원(군인 ·군무원 제외)으로서 직무에 정려(精勵)하여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라 한다. 

이근안은 정권을 위해, 본인의 출세를 위해 간첩단 및 공안사건을 조작했고, 그 과정에서 고문을 자행했다. 그가 받은 훈장은 군사정권이 그가 매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근안이 정권의 안전을 위해 민주인사를 고문하고 진실을 날조했다면, 이명박 정권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진실을 왜곡해 4대강을 파헤쳤다. 

어느 날 갑자기 멀쩡한 강을 물고기가 살지 않고 새들이 찾지 않는 죽은 강이라 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상식을 부정하며 강 가운데 16개의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를 세워 흐르는 물을 가뒀다. 물을 정화하고 물고기들의 산란처인 모래밭은 오염된 퇴적토이자 홍수를 유발시킨다면서 서울의 남산을 대여섯 개 만들 수 있는 양을 퍼냈다. 그리고 4대강 사업이 성공적이라면서 강이 재창조 됐다고 억지를 썼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은 실패했다. ‘녹조라떼’, ‘보 세굴 현상’, ‘역행침식’ 등은 이 사업이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 중에 일부일 뿐이다. 이 정권은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 고문으로 인권을 철저히 유린하는 것과 억지 논리로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둘 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행위이다. 그런 의미에서 4대강 사업은 자연에 대한 고문이다. 

이근안이 민주인사를 고문해 훈장을 받았다면, 자연을 고문해 훈장을 받은 이도 있다. 심명필 전 4대강 추진본부장과 김건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외에도 4대강을 고문해 훈장과 포상을 받은 이는 무려 1천3백여 명이 넘는다. 이들에게는 철탑산업훈장, 옥조근정훈장, 대통령표창, 국무총리 및 장관 표창 등등이 수여됐다. 

지난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살리기 추진본부 상황실을 방문, 관계자들로 부터 현황 설명을 듣고 있다.ⓒ뉴시스

이름도 밝히지 않고 훈장 받는 이들, 꼭 기억해야

최근 환경운동연합은 민주당 국회의원을 통해 이들의 명단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소속기관과 훈포장 내용 및 날짜는 기록되어 있지만, 정작 이름은 ‘이00’으로 표시되어 있다. 훈장과 표창을 주는 의미는 이를 널리 알려 귀감을 삼으라는 의미인데, 이 정권은 무엇이 켕기는지 이마저도 숨기려 하고 있다.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음에도 여전히 4대강 사업이 잘된 사업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수중에 26만원 밖에 없다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대국민 사기극으로 드러난 평화의 댐을 두고 꼭 필요한 사업이라 말했다고 한다. 아마도 4대강 사업 훈·포장을 받은 이들과 MB와 그 측근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4대강 사업은 성공한 사업이라 주장할 것이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우리는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 기억되기 위해서 그들의 언행을 기록하고, 알려야 한다. 몇몇 뜻 있는 인사들과 환경단체가 나서서 4대강 사업 인명사전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그래서 의미 있는 일이다. 인간에 대한 고문과 자연에 대한 고문 등 부끄러운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으려면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참고로 70~80년대 민주화운동 자료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http://www.kdemo.or.kr/ko)를 통해 접할 수 있으며, 환경운동연합 (www.kfem.or.kr)에서는 4대강 인명사전 진행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철재 에코큐레이터/환경운동연합 정책위원

2012년 12월 3일 월요일

‘남영동1985’ 본 박원순 큰소리…왜?


이글은 경향신문 2012-12-02일자 기사 '‘남영동1985’ 본 박원순 큰소리…왜?'를 퍼왔습니다.

박원순 서울 시장이 고(故)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의 자전적 수기를 바탕으로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벌어진 고문기록을 담은 영화 (남영동1985)를 관람했다.
 

박 시장은 2일 오후 시내 한 영화관에서 보좌관 등 시 관계자 서너명과 함께 (남영동1985)를 관람한 뒤 정지영 감독, 배우 박원상, 이경영, 김의성과 함께 티타임을 통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20여분간 진행된 이 자리에서 박 시장은 “배우들이 (영화찍느라) 매우 힘들었을 것 같다”며 “누구나 한번은 봐야할 영화다. 이런 사회가 저절로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영화”라고 말했다.


2일 오후 서울의 한 영화관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왼쪽에서 세번째)이 영화 (남양동1985)를 관람한 후 배우 김의성씨, 정지영 감독, 배우 박원상씨 등(왼쪽부터)과 함께 포스터 앞에서 사진 을 찍고 있다. /서울시 제공
이어 “(나도)고문자들을 변호하다가 이거 보통 일이 아니다 싶어 일제시대부터 노무현 시대까지 고문 자료를 모아 (야만시대의 기록)이라는 책을 썼다”고 덧붙였다. 이에 정 감독은 “원래 시나리오를 썼을 때 (그 책 제목을 본따서) ‘야만의 시대’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TV 대하드라마 같아서 바꿨다”고 말했다.
 

또 정 감독이 “수능을 끝낸 고등학생들이 오히려 이 영화를 더 잘 보고 잘 받아들인다”고 하자 박 시장은 “제 트위터에 글 올린 거 보면 요즘 중고등학생들이 얼마나 똑똑한 지 모른다”고 응수했다.

이밖에 박 시장은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근황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눈 뒤 영화 관계자들과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박 시장의 영화 관람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박 시장이 지난 9월 를 개인적으로 관람한 이후 (남영동1985)와 (26년)도 보고싶다고 얘기해 와 공식 스케줄로 잡았다”고 말했다.
 

(남영동1985)는 야권 대선주자로 나선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전 후보도 본 적이 있을 만큼 정치계에서도 주목을 받은 영화다. 또 진보정의당 심상정 전 후보,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 도 나란히 관람한 바 있다.

문주영 기자 mooni@kyunghyang.com

2012년 11월 26일 월요일

박근혜 "대통령직 사퇴" 발언, 실수였을까?


이글은 2012-11026일자 기사 '박근혜 "대통령직 사퇴" 발언, 실수였을까?'를 퍼왔습니다.
[김민웅 칼럼](100) (남영동 1985)을 봐야 하는 이유

박정희 대통령 시절

"박정희 대통령 때는 괜찮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뭐가 괜찮았다는 것일까? 그리고 여기서 "지금"은 언제일까?

고문 수사관 이근안으로 나온 이경영은 폭행으로 상처가 난 김근태 역 박원상의 몸을 살펴보면서, 차갑고 절도있게 명계남을 비롯한 남영동 수사관들에게 경고한다. 고문폭력과 그로 인한 살해에 대해 문제 제기조차 하지 못했던 박정희 때와는 달리, 전두환 정권 시기에는 고문 폭력의 증거가 드러나 시위를 통한 집단항의 사태가 나는 경우 문책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박정희 때는 그랬다. 물론 전두환 때에도 그런 일이 중지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혁당 사건에서 뚜렷이 드러났던 것처럼, 자기 고향 대구-경북 출신의 젊은 지식인들을 사형판결 후 곧장 처형대로 끌고 가도록 명령을 내린 박정희의 통치는 한 시대를 공포로 몰아갔다. 그리고 우리는 그 딸이 대권을 향한 선거운동 전면에 나서는 역사를 목격하고 있다.

누구도 선뜻 말하려 들지 않았던 역사

겨우 한 달 간에 걸친 촬영기간에 이만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놀랍기 짝이 없다. 전작 (부러진 화살)도 그랬지만, 이번 (남영동 1985)도 시대의 침묵을 깨고 나선 정지영 감독의 영화적 투혼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분단의 계곡에서 죽어간 빨치산 (남부군), 월남전의 비극 (하얀 전쟁)을 비롯해서 그는 누구도 선뜻 말하려 들지 않은 역사의 대목을 서슴없이 짚는다.

칠성판 위에 발가벗겨진 채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받는 박원상의 모습은 처절했다. 김종태라는 이름으로 글자 하나를 바꾼 김근태는 박원상을 통해 다시 역사의 현실에 환생했고, 그가 겪은 고통과 죽음의 얼굴은 우리에게 또렷하게 말하는 듯 하다. "이 일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망각은 바로 저들이 원하는 바입니다." 그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실로 고통스럽지만, 어디 김근태가 치렀던 것 만 하겠는가?

"박정희 대통령 각하와 전두환 대통령 각하에 대들었던 당신 같은 사람들이 여기 와서 다들 생각을 고쳐먹고 나가지요." 남영동을 총괄하는 인물로 나오는 문성근은 박원상에게 타이르듯 말한다. 자신도 경기고등학교 출신의 엘리트라며, 민주화 운동은 북한과 연계된 빨갱이들의 소행이라는 주장을 거듭 강조한다. 이 나라의 민주화는 그런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 영화 <남영동 1985>. ⓒ아우라픽처스

"대통령직을 사퇴"한 박근혜

"오늘로 지난 15년 동안 국민의 애환과 기쁨을 같이 나누어 왔던 대통령직을 사퇴하겠습니다." 박근혜의 국회의원직 사퇴 기자회견의 "실수" 발언이었다. 그러나 실수로 보기에는 예사롭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꽉 박힌 단어가 무엇인지 우리는 여기서 확인하게 된다. 그 15년은 민주정부 10년을 거치고, 5년간의 무식하고 야만적인 권력의 폭행을 견뎌온 시간이었다.

박근혜는 이 시기,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기여하거나 이명박 정권의 폭력과 부패를 저지하는 일에 노력한 바가 없다. 박정희가 공포정치로 이끌었던 시대에 대한 사과도 밀리고 밀려 마지못해 했고, 이후 보인 모습은 언제 그런 말을 했던가 하는 식이었다. 그러니 그녀의 측근들은 냉전 이데올로기를 동원해서 경쟁상대에 대한 폭언을 퍼붓기를 일상으로 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게 되었다.

바로 그런 냉전사고와 폭언이 도달한 지점이 무고한 이들에 대한 고문이었다. 이제 고문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하지만 경쟁상대를, 안보를 위협하는 자로 몰아세우고 짓밟았던 폭력은 그 형태만 달리 했을 뿐이지 언어의 무차별한 폭력으로 둔갑해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들이 권세를 쥐는 세상이 어떻게 되어갈지 보지 않고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과 민주주의, 그리고 고문

목욕탕에서 아들과 함께 물장구 장난을 벌이던 김근태의 모습은, 물고문의 장면과 겹치면서 우리에게 인간의 삶에 기본조건으로 필요한 물을 인간을 말살시키는 도구로 변모시키는 자들의 냉혈적 면모를 직시하게 한다.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있는 대로 짓밟아 비굴하게 만들고 영혼을 팔게 하는 이들은 악마와 다를 바 없다. 민주주의는 결국 악마와의 싸움이었다.

국가보안법은 이 악마들이 활개 치도록 만든 법이었다. 그리고 고문을 정당한 것으로 생각하게 했고, 그러다가 죽여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확신까지 주었던 법이다. 사형 판결을 받기도 전에 사형이 가능하게 하도록 한 것이 바로 국가 보안법이 해온 일이었다. 그것은 국가를 보안한 것이 아니라, 악마의 권력을 지켜온 법이었다. 고문은 이 권력이 애용한 수단이었다.

고문은 폭력으로 자백을 받아내는 방식이 아니다. 정지영 감독은 고문의 정의가 달리 규정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고문은 있지도 않은 사실을 조작해내는 수법입니다. 강제로 자백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시대는 한 사회 전체가 바로 이 고문에 시달렸다. 권력이 입을 봉쇄하고, 귀를 막고 눈을 가렸다. 그리고 진실을 왜곡하고 있지도 않은 일들을 조작,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때 박근혜는 이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여성 대통령론을 내세운다면 생명이 당하는 고통에 민감해야 할 텐데, 그녀에게서는 그런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 기껏 말하는 것은, "산업화 시대에 본의 아니게 상처받은 사람들"이라는 표현뿐이다. 고문은 본의가 아니었다? 죽은 자들도 있는데 상처 받았다? 김근태는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다가 결국 세상을 뜨고 말았다.

레비나스의 "타자의 얼굴"

유대인 철학자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이라는 개념을 통해, 고난에 처한 이들의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인간은 그 순간 비인간화된다고 말한다. 고통을 겪는 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악마와 손을 잡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나치스가 학살한 유대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다시는 그런 시대가 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본능적으로 굳히게 된다. 마주보지 않으면 그건 견고해지지 못한다.

정지영 감독은 고문 장면을 촬영할 때마다 오케이 사인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니 이 자들이 이렇게 고문했단 말이야?" 하고 고통스러워했다. 영화이고, 연기라고 여기면 되겠지만 촬영은 실제와 거의 방불했고 과거를 다시 복원하는 과정에서 감독 자신도 고문의 현실을 새삼 깨달았던 것이다. 그 시대에 책임 있던 자들이 다시는 역사의 무대에 오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렇게 해서 단단해져갔다.

우리가 '남영동 1985'를 봐야 하는 이유

우리는 왜 이 영화를 봐야 하는가? 그리고 이 영화는 어째서 청소년도 볼 수 있는 15금인가?

야만의 시대를 미래의 유산으로 남겨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시대를 가슴 속에서부터 진실로 반성하고 성찰하지 않는 자들이 권력을 잡는 일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안철수가 본 이 영화를 박근혜는 끝내 외면했다. VIP 시사회 초대에 그녀는 응하지 않았다. 그 까닭을 우리가 모르지 않는다.

를 보는 일은 우리가 발언하는 일과 같다. 대선 국면에서 우리의 의사를 확실하게 밝히는 일과 다르지 않다. 집단관람이 줄을 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토론하는 거다. 청소년과 청년 세대가 이 영화를 보고, 자신들이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게 되었는지 알도록 했으면 싶다. 이들이야 말로 다시는 역사의 후퇴가 생겨나지 않도록 책임져야 할 미래의 주역들 아닌가.

영화가 기록한 어둠의 시대,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그 어둠을 뚫고 나갈 길을 보여주는 방향타이기도 하다.

그제, 농부 철학자 윤구병, 영화감독 정지영, 서울시 진보 교육감 단일후보 이수호와 함께 화천의 감성마을 이외수와 새벽까지 춤과 노래를 곁들인 이야기꽃을 피웠다. "음(陰)의 시간은 양(陽)을 기르는 시간입니다." 이외수의 이 말이 가슴에 꽂혔다. 을 관람하는 시간은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미래를 기르는 시간이 될 것이다. 관람하는 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는 더더욱 확고해져갈 것이다.

(남영동 1985)는 (민주정부 2013)을 여는 또 하나의 창문이 될 것이다.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2012년 11월 25일 일요일

한 편의 영화가 세상을 바꿀 때


이글은 한겨레21 2012-11-26일자 제937호 기사 '한 편의 영화가 세상을 바꿀 때'를 퍼왔습니다.
[크랭크인] 주연 배우 박원상·이경영이 말하는 영화 촬영 뒷이야기들“나쁜 역사 반복되지 않도록 부모가 자녀와 함께 보면 좋겠다”


영문도 모른 채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와 며칠째 모진 고문을 당하던 김종태는 어느 날 비교적 말쑥하고 점잖게 차려입은 남자의 방문을 받는다. 남자는 들어오자마자 김종태의 눈에 플래시를 비추며 이리저리 들여다보기도 하고 어깨 근육을 포함해 여기저기를 검사한다. 김종태는 그가 의사라고 생각한다. 그는 다급하게 남자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한다. 지금까지 고문을 당했고 법적 근거 없이 며칠째 감금돼 있다고. 옆에서 수사관들이 갑자기 낄낄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남자는 순간적으로 김종태의 어깨를 잡아 뺀다. 이른바 어깨빼기다. 김종태는 극심한 고통으로 바닥에 나뒹군다. 김종태는 순간적으로 깨닫게 된다. 진짜 고문기술자가 왔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고문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김종태에게는 곧 물고문과 고춧가루 고문, 전기고문까지 당하는 진짜 지옥이 시작된다.

» 영화 <남영동 1985>에서 김근태 역을 맡은 배우 박원상(왼쪽)과 이근안 역을 맡은 배우 이경영. 씨네21 손홍주 기자

상업영화로도 성공 가능성 높아

“정지영 감독께서 전화도 주시고 이메일도 주셨다. 이두한 역을 내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셨다. 감독님의 그런 간곡한 청이 아니었더라도 나는 당연히 이 역을 하려고 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두한 역을 정말 하고 싶었다. 매력적인 배역이기 때문이다. 이런 역할,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배우라면 모두들 이두한 역에 욕심을 냈을 것이다.” 선입견이었을까. 적어도 이경영에게서는, 감독으로부터 역할 제의를 받고 많은 고민을 했다는 얘기를 듣게 될 줄 알았다. 그는 정지영 감독의 영화 (남영동 1985)에서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극중 이름 이두한 역을 맡았다. 영화는 약 1시간46분의 러닝타임 동안 오로지 고문을 하고, 고문을 당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고문을 당하는 김종태 역의 박원상도 박원상이지만 끝 간 데 없이 잔인한 인간을 연기한 이경영에게 시선이 쏠린다. 극중에서 이두한은 한 번도 흥분하지 않는다.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정확하게 상대를 고문한다. 죽음 직전까지. 이때 이경영의 무표정하면서도 차분한 연기는 보는 사람들의 치를 떨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휘파람! (클레멘타인)을 읊조리는 그 휘파람 소리. 고문 장비를 준비하며 이두한은 나지막하게 휘파람을 분다. 김종태는 이제 휘파람 소리만 들어도 오금이 저리고 머리털이 바짝바짝 선다. 그건 고문의 순간보다 더 고통스럽다.
“이두한 역을 준비하며 실제 인물인 이근안을 연구하거나 분석하지 않았다. 오히려 방해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이근안, 내가 상상하는 이근안으로 연기하려고 애썼다. 스스로 그 캐릭터에 대한 설정을 만들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게 더 이근안스러웠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박원상의 칠성판 원샷이 하이라이트”

(남영동 1985)를 본다는 건 엄청난 고통이다. 그럼에도 이상하게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그 잔인한 역사의 진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적으로 흥미롭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시간이 휙 갈 만큼 영화는 재밌다. 그건 이상한 역설이자, 기묘한 배반의 정서 같은 것이다. (남영동 1985)는 상업영화로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김근태의 극중 이름 김종태 역을 맡은 배우 박원상이, 당연히, 고생이 많았던 작품이다. 박원상은 전작 (부러진 화살)에 이어 정지영 감독의 영화에 잇따라 주연으로 출연했다. 가해자 역인 이경영보다 피해자 역인 박원상이 오히려 약간 주저했다는 후문이다. “감독님에 대한 신뢰가 워낙 컸고, 이런 작품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이게 평범한 역할은 아니니까 과연 촬영 끝까지 내 몸이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긴 했다. 감독님께 부탁했던 건, 몸을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좀 달라는 것이었다.”
영화에서 그는 정면 누드를 보여준다. 칠성판 위에 사지가 묶인 채 눈을 가리고 누워 있는 신이다.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수치스럽고, 가장 참혹하며,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면이다. 정지영 감독은 전기고문으로 이곳저곳이 타들어간데다 오로지 가린 곳이라곤 눈밖에 없는 몸통을 부감샷으로, 그것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든다. 프레임 바깥에서는 수사관들이 희희덕거리는 소리가 깔린다. 인간과 비인간, 사람과 짐승의 접경은 생각보다 가깝다. 가 얘기하려는 것은 이 장면 하나에 다 모여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감독님이 그 장면을 찍자고 했을 때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다. 오히려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정도다.”(박원상) “처음엔 수사관들이 두런두런 일상의 얘기를 하고 있는 모습까지 프레임 안에 더 넣어서 풀샷으로 찍으려고도 하셨다. 그게 더 비인간적인 느낌이니까. 그런데 막상 박원상의 벌거벗은 모습 원샷을 찍고 나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하시더라. 지금 보니 그 판단이 맞았던 것 같다.”(이경영) 박원상과 이경영도 이 장면이 최고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하는 듯싶다.
두 사람은 이 대목에서만 입을 맞추는 게 아니다. 이 영화가 가진 대중적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이 같다. 둘은 동시에 번갈아가며 이렇게 말했다.
“다시는 과거의 그같은 일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의 손을 잡고 이 영화를 봤으면 한다. 설령 아들에게서 저런 일을 당하고도 아직 우리 사회가 이 정도밖에 안 됐느냐는 얘기를 들을지언정, 과거에 얼마나 끔찍한 일이 있었고,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빚지고 살고 있으며,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함을 같이 얘기하는 분위기였으면 좋겠다. 다행히 이 영화는 15세 관람가로 나왔다.”
(남영동 1985)는 치열한 세계관을 일관되게 지켜온 한 감독의 노력이 없었다면 만들어질 수 없었던 작품이다. 한편으론 이경영·박원상 같은 배우가 없었다면 절대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었던 영화이기도 하다. 고문을 가하는 것, 혹은 당하는 것은, 아무리 연기라 한들 고도의 집중력이 없으면 표현하기 힘든 것이다. 두 사람 모두 한 장면 한 장면 찍으며 육체보다 정신적으로 심하게 탈진됐던 건 그 때문이다. “감독님, 배우들, 스태프들 모두 한마음이 아니었으면 완성되기 어려웠던 영화다. 자칫 사고가 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박원상은 덧붙인다.

관객 많아질수록 세상 달라질 것

쉽게 써지고, 편하게 얘기되는 영화가 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컴퓨터 앞에 앉으면 스크린이 백지장처럼 하얗게만 보일 뿐 한 줄이 제대로 나가지 못하는 영화가 있다. 말하지 않는 것, 그건 침묵과는 조금 다른데, 어쨌든 그럼으로써 더 많은 말을 전달하게 될 때가 있는 법이다. (남영동 1985)가 바로 그런 영화다. 앞으로 극장 박스오피스 앞에 침묵과 자성과 각오의 줄이 이어질 것이다. 관객이 많아질수록 세상이 좀 달라질 것이다. 한 편의 영화가 세상을 바꿀 때가 있다는 얘기는 이래서 나온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2012년 11월 23일 금요일

‘고문, 당신도 아파보라’


이글은 2012-11-22일자 기사 '‘고문, 당신도 아파보라’'를 퍼왔습니다.
영화 는 시종일관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벌어지는 고문을 보여준다. 정지영 감독은 “우리가 같이 아파봐야 민주주의가 훼손될 때 또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필, 봄이었다. 경기도 양평 양수리 종합촬영소에도 꽃이 피었다. 숙소로 쓰는 후생관부터 6세트장에 이르는 길목에 꽃이 만발했다. 이른 아침 촬영장에 가는 거리, 햇빛은 그게 전부였다. 세트장은 암흑이고 촬영이 끝나면 늦은 밤이었다. 먼지 구덩이에서 8명의 남자 배우가 뒤엉켜 한 달 반 동안 영화를 찍었다.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515호를 재현한 세트장에는 욕조, 변기 따위가 전부였다. ‘감옥 생활’이라는 비유 그대로 (남영동 1985)의 스태프와 배우에게 지난 5월은 잔인한 봄이었다. 

1982년에 데뷔해 17편의 영화를 만든 정지영 감독에게도 (남영동 1985)는 가장 힘든 영화였다. “처음엔 왜 내가 힘들지? 화창한 봄날 그런 데 있어서 그런가 생각했어요.” 뒤늦게 고문 장면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고문당하는 연기를 계속 지켜봐야 하는 게 그에겐 고문이었다. 당사자인 배우 박원상은 더했다. 촬영을 끝낸 밤, 다시 그 길로 돌아오며 손이 매운 동료 배우 이천희와 이경영을 미워했다. 두 사람은 고문 수사관 역을 맡아 박원상의 입과 코를 거즈로 덮고 물을 들이부었다. 타고난 체력을 가진 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시사IN 이명익 <남영동 1985>를 연출한 정지영 감독.

11월22일 개봉하는 영화 (남영동 1985)는 알려진 대로, 고 김근태 전 민주당 의원의 자전적 수기 (남영동)을 원작으로 한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던 1985년 9월 김 전 의원은 남영동 대공분실에 붙들려가 22일간 하루 한두 차례 5시간씩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당했다.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민추위)의 배후로 지목됐고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조작된 혐의를 인정했다. 이후 전기고문의 유일한 흔적인 발뒤꿈치 상처를 통해 고문 사실을 밖으로 알렸고, 부인 인재근씨(현 국회의원)는 가수 이미자의 노래 테이프 중간에 그의 진술을 녹음해 미국 인권단체에 군부정권의 고문 사실을 알렸다. 영화는 드라마틱한 사건의 전말보다는, 남영동 고문 장면에 집중한다. 정 감독은 영화적 설정에 방해되는 부분을 제거했다. 관객들과 함께 고문실에 갇히고 싶었다고 한다. 같이 아파보자는 의도였다.  

“고문 기술자의 웃음을 잊을 수 없다”

자전적 수기 (남영동)에서 김근태 전 의원은 말한다. ‘1985년 초 남영동에서 전기고문, 물고문에 못 견뎌 나는 발가벗기고 두 눈이 가려진 채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면서 항복한다고 용서해 달라고 두 손을 빌었다. 그때 고문자인 김수현, 백남은, 그리고 전기고문 기술자(이근안) 입에 번졌던 소리 없는 웃음. 그 웃음을 나는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영화는 그 참담함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러닝타임 106분 대부분은 고문 장면이다. 각오하고 본 관객으로서도 쉽지 않다. 특수한 고문대인 ‘칠성판’도 자주 등장한다. 고문의 강도보다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게 절망적이다. 왜 관객을 이렇게 아프게 하나. 정지영 감독은 그걸 의도했다. “당연한 거 아닌가. 그들은 그렇게 고통스럽게 자기를 던져가면서 알량한 민주주의를 얻어냈는데 힘 안들이고 얻어낸 많은 사람들은 그걸 공짜로 얻은 양 생각하는 것 같다. 민주주의가 훼손되어도 누가 해결하겠지 이런다. 같이 아파봐야 그럴 때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정 감독이 고문 가해자에 대해 영화화하기로 마음먹은 건 1980년대 후반. 장선우 감독이 고문 경찰관 이야기를 그린 임철우의 소설 (붉은 방)을 영화화하기로 했다가 무산되면서였다. 가정에서는 성실한 가장인데 일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고문 경찰관의 이야기를 보고 ‘고문하는 사람도 인간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에 대한 이야기를 써두었다. 사석에서 소설가 천운영씨에게 말했더니 그가 소설로 쓰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온 소설 (생강)은 인간의 야수성을 작가 특유의 세계관으로 잘 묘사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가 영화화하려는 내용과는 거리가 있었다. 지난 1월 (부러진 화살) 개봉 즈음 김근태의 부음을 전해 듣고 (남영동)을 읽었다. 정 감독은 “내 숙제를 이렇게 해결하자. 이거다,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고문 피해자를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연출부와 충주의 작은 농장에 들어가 한 달 만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물에 대한 공포가 있던 박원상은 이번 영화 이후 그 트라우마가 사라졌다고 한다. 연출부의 주문은 단순했다.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고 도저히 못 견딜 때 몸으로 표현하기로 한 것. 그는 “고통이 관객에게 최대한 전해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원작 속 김 전 의원을 흉내 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끌려와 22일간 고문당한 김종태의 캐릭터에 집중하기로 했다. 극중 배역의 이름은 김근태, 이근안이 아니라 김종태, 이두한이다. 야만의 시대, 고문을 당한 사람이 김근태 한 명은 아니기 때문이다(28~31쪽 관련 기사 참조). 

<남영동 1985>의 한 장면. 배우 이경영씨(오른쪽)가 고문 기술자 이두한을 연기했다.

배우 이경영은 고문 기술자 이두한을 연기한 후 김근태 전 의원의 부인 인재근 의원에게 사과하고 눈물을 떨궜다. 영화를 보던 인 의원은 전기고문 장면에서 눈을 감았다. 오히려 고문 기술자(이경영)의 고문 장면은 괜찮았다. 전문가가 아닌 다른 사람(명계남)이 물고문을 하는 장면에서는 잘못해 죽는 게 아닌가 조마조마했다. 자전 수기에서 인간백정으로 묘사되는 이근안은 델타 상표의 사무 가방을 메고 출장을 다니는 전기고문 분야의 전문가였다. 이름 대신 장의사라 불렸다. 이경영은 이근안과 관련된 자료를 부러 보지 않았다. 그에게 동정심이 생길까봐서다. 실제 90㎏에 육박하는 거구의 이근안과 그는 닮지 않았지만 대신, 손이 두꺼웠다. 

영화 속 고문 장면 내내 함께 하는 건 라디오 소리다. 고문하는 중에도 수사관들은 프로야구 중계를 듣는다. 실제 수기에도 나온다. ‘정말 미웠던 것은 구걸하는 것 같은 비명 소리가 아니었다. 라디오 소리였다. 인간에게 파괴가 감행되는 이 밤중에, 오늘, 저 시적이고자 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영화 속 고문관은 발톱을 깎고 김종태에게 연애 상담을 한다. 정 감독은 되도록 고문 수사관을 생활인으로 그리고자 했다. 그들이 인간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남영동 1985)는 (부러진 화살)과 마찬가지로 5억원 규모의 저예산 영화다. 스태프·배우 모두 노개런티로 참여한 덕이다. 문제는 배급이었다. 편집본을 본 메이저급 배급사 관계자들은 난감해했다.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이후 반응이 좋자, 다시 한번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정 감독은 “영화는 괜찮은 것 같은데 꺼리는 걸 보고 아 이게 민감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구나 싶었다”라고 회상했다. 그가 짐작하는 민감함의 이유는 영화가 군사정권을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두환 시대의 이야기이지만 박정희 시대의 이야기로도 해석한다는 것이다. “어느 정권이 들어설지 모르니까 사업에 지장을 주는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그걸 염려하는 거다. 그러니까 얼마나 슬픈가. 아직도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대선 전 개봉을 목표로 한 건 정지영 감독의 의도다. “대선에 영향을 끼치면 좋겠다. 어떻게는 나도 모르겠다. 아픈 과거사의 단면을 본 후보자들의 반응이나 그 반응을 본 관객에게 영향을 미칠 거라고 본다.” 

정 감독은 생전의 김 의원과 몇 차례 인연이 있다. 스크린쿼터 운동을 할 때 그에게 전화가 와 (김 전 의원이 관여했던) 한반도재단 이름으로 공로상을 주겠다고 했다. 2008년 촛불 정국 때 청계광장에서도 만났다. 정 감독을 보고 김 전 의원이 “여기 정지영 감독도 와 계십니다”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김 전 의원은 보건복지부 장관이던 시절 복역 중인 이근안을 만난 적이 있다. 그를 용서했다는 기사가 나왔지만 이후에도 괴로운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정지영 감독은 묻는다. “김종태 개인이 이두한을 용서했다고 해서 용서가 되는 문제인가? 김근태 의원도 용서를 못한 게 괴로웠나보다. 어느 목사한테 얘기했더니 한마디로 정의 내렸다고 한다. 그건 당신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몫이라고.” 감옥 안에서 용서를 빌던 이근안은 출소 후 ‘심문은 예술’이라고 말을 바꿨다.

ⓒ시사IN 자료 경찰인권센터로 바뀐 남영동 대공분실. 김근태 전 의원이 있던 5층은 창이 유난히 작다.

‘기억에 관한 영화’ 젊은 세대도 봐야

박원상은 이 영화를 ‘기억에 관한 영화’라고 정의했다. 그러니 그 시대를 겪지 않은 젊은 세대가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봤으면 한다는 것. 강 과장 역을 맡은 배우 김의성은 “(영화가) 대선용 좌파 선전 영화라고 하는데,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대선보다 크다. 과거로 갈 건가 더 나은 미래로 갈 건가 판단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11월6일 오전, 지금은 경찰인권센터로 바뀐 남영동 대공분실의 전시실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단체가 아니면 찾는 이가 뜸하다고 한다. 김근태 전 의원이 있던 5층 15호실은 구석에 있고 15개 방 중 큰 편에 속한다. 지금은 변기와 세면대만이 그 흔적을 말하고 있다. 박종철 열사가 죽은 9호실만 보존되어 있다.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건물의 5층 창은 다른 층에 비해 유난히 작다. 오전 시간에도 빛이 거의 들지 않았다. 김근태 전 의원은 27년 전 이 남영동 대문을 나와 구치소로 향하는 자동차 속에서 ‘죽음으로부터 돌아왔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 따스한 오후의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비로소 살았다는 걸 깨달았던 것. 영화 (남영동 1985)에서도 햇빛을 찾기는 어렵다. 촬영장에서부터 인색하더니 상영 시간 대부분도 암흑을 마주한 기분이다. 그러니 더욱더, 햇빛이 절실했던 시대의 이야기다.

임지영 기자  |  toto@sisain.co.kr

2012년 11월 22일 목요일

여기가 지옥…남영동 대공분실을 고발한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11-21일자 기사 '여기가 지옥…남영동 대공분실을 고발한다'를 퍼왔습니다.
[인터뷰] (남영동 1985) 고문 피해자 김종태 역을 맡은 배우 박원상

"나는 빨갱이고 폭력 혁명주의자다!"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 5층 515호. 고문관들이 일제히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처럼 입을 모아 합창한다.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을 불법 연행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답을 거짓 자백으로 받아낼 때까지, 그들은 치밀하게 계획된 하나의 거대한 고문 시나리오에 맞춰 움직이는 연기자처럼 움직인다. 그 기계성이, 고문 받는 타인의 지옥같은 심정에 전혀 무관심한 차가운 눈매가, 육체가 극한의 고통을 느끼는 지점이 어딘지 너무 잘 알고 있는 그 익숙한 손길이 엄청난 공포로 다가온다.

"이 남영동 사람들은 제시되고 결정된 방향으로 자기들의 직무를, 아니 작업을 추진해 나가면 그뿐입니다. 이들은 예정되고 설정된 모종의 정치적 목표를 위해, 단정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불온함과 불순함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획득해 내야 합니다."([남영동], 김근태 지음, 중원문화 펴냄)

정지영 감독의 신작 (남영동 1985)는 고 김근태 의원(영화 속 이름은 '김종태'다)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 기술자 이근안(영화 속 이름은 '이두한', 일명 '장의사'로 불린다)을 비롯한 몇몇 고문 경찰들에게 22일 동안 당했던 참혹한 경험의 기록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정지영 감독은 전작 (부러진 화살)에서 김명호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의 '석궁 테러 사건'을 극화하며 사법부 개혁에 대한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번 (남영동 1985)에서도 고 김근태 의원의 수기 (남영동)을 바탕으로, 80년대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던 세력이 여전히 한국의 지도층에 잔존하고 있음을, 당시의 상황에 대해 제대로 정리되거나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진 적이 없음을 다시 한번 매서운 어조로 상기시킨다.(프레시안)은 (남영동 1985)의 11월 22일 개봉에 맞춰 14일 삼청동에서 김종태를 연기한 배우 박원상을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 <남영동 1985>에서 김종태 역을 연기한 배우 박원상.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11월 5일 언론시사회 이후 지금까지 인터뷰를 정말 많이 했다고 들었다.

박원상: 인터뷰를 이렇게 많이 한 건 처음이다. 하지만 더 많이 해야 한다. (남영동 1985)가 부산국제영화제 때 처음 공개된 다음 관객분들이 힘을 많이 보내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람을 주저하실 분이 더 많을 것 같다. 사실 편한 영화일 수가 없으니까. 영화 볼 때 너무 정신적으로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 같아서, 홍보 기회를 더 더 더 달라고 내가 주문하고 있다. 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겠더라. 많은 분들이 '직구의 영화'라고들 하시던데, 홍보하는 방법도 결국은 영화와 같이 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원래 말주변이 없지만, 이번 영화 관련해서 말이 많아졌다.

프레시안: 정지영 감독의 영화 (부러진 화살)과 (남영동 1985)에 연이어 출연했다.

박원상: (부러진 화살)을 통해서 정지영 감독님을 만났다는 게,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은 내게 가장 큰 사건이었다. 정지영 감독님의 영화를 예전부터 좋아했고, 특히 (하얀 전쟁)은 마음 속에 크게 자리잡은 작품이지만 그분과 함께 작업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좋아하면서도 왠지 나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있는 분 같았는데, (부러진 화살)을 찍으면서 정말 많이 배웠다. 드디어 마음의 지표 같은 선생님을 만나게 된 거다. 그분이 "이러이러한 소재로 다음 영화를 찍을 건데 같이 하자"라며 (남영동 1985)를 권하셨을 때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프레시안: 두 작품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실화를 극화한 영화들을 대할 때 어떤 식으로 부담이 더해지는지, 그리고 (남영동 1985) 같은 경우는 어떤 식으로 다가왔는가.

박원상: 흔히 얘기하는 부채의식이 분명 있다. 내 직업이 배우인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함께 참여할 수 있다면 보람을 느끼게 된다. 지금까지 '이건 해야만 하겠다'면서 마음이 끌렸던 영화들이 나를 조금씩 성장시켜준 것 같다. 연기술의 성장이 아니라 내 안의 성장 말이다. 오히려 작품을 통해 내가 더 받게 된다. 특히 같은 경우, 난 정말 생각 없이 살던 놈인데, 생각이 아니라 궁리만 하면서 살았던 것 같은데, 이 영화를 통해 생각이 많아졌다.

물론 고민은 컸다. 고문 연기를 어떻게 하지, 하는 고민은 아니었다. 영화는 다같이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이며, 아무리 어려워도 함께 찍을 수 있으니까 고문 장면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김종태라는 인물이 고 김근태 의원을 모델로 했다는 건 누구나 안다. 내가 그분을 감당해도 되나,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 자의식이 발목을 많이 잡았다. 지금까지 회색으로만 살았는데, 내가 이 역을 맡았을 때 관객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감독님이 내민 손을 놓고 싶지 않은데, 한 손으로는 그 손을 꼭 쥐고 또 한손으로는 시나리오를 든 채 '미치겠다, 어떡하지' 고민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가자, 해보자,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프레시안: 고 김근태 의원을 어디까지 닮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는가. 혹은, 김종태 역에 본인의 해석이 어느 정도까지 들어간 편인가.

박원상: 처음엔 고 김근태 의원에 대한 자료를 닥치는 대로 찾아봤는데 어느 순간 이게 아니다 싶었다. 촬영하다가도 쉬는 짬이 생기면 유튜브로 그분 영상을 찾아보고 그랬는데, 틀린 방향이었던 거다. 물론 대사를 통해 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 전 의장이었다는 과거가 나오면서 당연히 김근태 의원을 모델로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지영 감독님이 시나리오에 구축한 건 김종태라는 인물이고, 김근태 의원 외의 수많은 고문 피해자를 부분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뒤늦게 '아니구나' 싶어서 시나리오로 다시 돌아갔고, 김종태라는 인물에 집중했다.

▲ 영화 <남영동 1985>. ⓒ아우라픽처스

개인적으로는 김종태가 고문에 못 이겨 '배후 세력'으로 함세웅 신부님, 권호경 목사님 이름을 댄 다음, 환상 속에서 자기 분신을 만나는 장면이 정말 힘들었다. 김근태 의원께서 정말 끝을 느끼셨겠구나, 이 좁은 공간에서 스스로를 지탱해줄 수 있는 것까지 무너졌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서적으로, 감정적으로 많이 들어가는 장면들을 연기할 때에는 오히려 이성의 힘을 더 많이 배치해야 한다. 그래야 관객들과 좀 더 깊은 차원에서 만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장면을 찍을 땐 그런 안배를 할 수가 없었다. 리허설 없이 바로 촬영했는데, 끝난 다음 많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아마 김 의원에게도 그 자백이 고문보다 더 큰 상처가 아니었을까….

프레시안: (와이키키 브라더스)(범죄의 재구성)(화려한 휴가)(부러진 화살) 등에서의 임팩트가 워낙 강해서인지, 경쾌하고 다소 야비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서의 색깔이 강했다. 아무래도 (남영동 1985)는 많은 관객들에게 박원상을 '진중한 역'으로 처음 각인시키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박원상: 사실 박원상이라는 배우를 (부러진 화살)이나 다른 영화에서 봤더라도, 이 역과 저 역을 연기한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는 걸 연결 못 시키는 분들이 많다.(웃음)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외모 때문에도 그럴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특정 이미지로 남는다는 것에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앞으로 하고 싶은 역이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난 그런 게 별로 없다. 같이 작업하는 즐거움 자체가 연기의 동력이다.

의 고민은 그런 기존 이미지 때문이라기보다는, 부채의식에서 비롯된 고민이 더 컸다. 1988년 대학에 입학했고, 4년 내내 연극반 생활하면서 공연장에만 틀어박혔다. 연극이 너무 하고 싶었고, 대학에 들어왔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겠다 했다. 그렇게 4년을 보냈고 지금 마흔 세 살이 되기까지 계속 연기를 할 수 있었으니 참 행복하게 인생의 절반을 살아왔다. 그런데 나만 행복했던 거지. 참 많이 잊고 살아왔고.

촬영 끝내고 감독님과 PD님과 함께 김근태 의원이 안장된 마석 모란 공원을 찾았다. 참외 좋아하셨다는 말을 부인이신 인재근 의원님께 듣고는 참외랑 막걸리를 사들고 '무탈하게 잘 마쳤다'는 인사를 드리려 찾아갔다. 그런데 김 의원님 묘가 있는 그 구역 초입에 박래전 선배의 묘가 있었다. 83학번 숭실대 인문대 학생회장이었고 학생회관옥상에서 분신했었다. 1학년 때 공연하다가 그 소식을 들었다. 부학생회장 선배는 독문과 선배였는데 그 선배가 상복 입은 모습도 생각났다. 그동안 다 잊고 있었던 거다. 가슴이 철렁했다. 아마 정지영 감독님이 이 영화를 같이 하자고 하셨을 때 주저하고 고민했던 이유 중에 그 부채의식도 있었던 것 같았다. 다 잊고 살아왔던 놈이 이래도 될까 싶었던….

프레시안: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이미 시나리오가 완성돼있는 상태였나.

박원상: 시나리오는 안 나온 상태였다. (부러진 화살) 홍보 활동 중에, "다음에 고문 이야기를 할 거다. (부러진 화살) 멤버가 그대로 넘어와서 같이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네가 김종태 역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김근태 의원의 수기 (남영동)과 여타 고문 관련 책들을 찾아서 읽었다. 이걸 대체 어떻게 영화로 만들려고 하시는지 궁금했다. 영화적으로 좀 다르게 풀어내실까? 그런데 완성된 시나리오는 (남영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감독님은 '관객들을 아프게 만들게 하려는 게 목적'이라고 하셨다. 영화적으로 에둘러 가거나 윤색, 각색을 해서는 정면 대면을 할 수가 없다. 정면응시를 위해 이 시나리오가 가장 정직하고 효과적인 방식이었다는 데 동의한다.

감독님이 얼마 전 무대인사 때 "여러분, 두 시간 동안 아프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우리 스탭들은 두 달 동안 아팠고, 엔딩 크레딧에 등장한 분들은 평생을 아프다 돌아가셨거나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두 시간 동안 같이 아픔을 느껴서 그분들 마음에 위로가 된다면, 괜찮지 않을까요"라고 하셨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걸로 큰 위로가 되지 않을 거라는 건 알지만, 같은 프레임 안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태도가 아닐까 싶었다.

프레시안: 정지영 감독은 왜 (부러진 화살) 팀이 그대로 가길 원했던 건가.

▲ 배우 박원상 ⓒ프레시안(최형락)

박원상: 감독님은 (부러진 화살)을 13년 만에 작업하셨는데, 관객들이 생각 이상으로 전폭적인 응원을 보내주었다. 아마 지금까지 30년 동안 감독으로서 감당을 하며 살아오신 이력의 그 연장선일 수도 있고, 당신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다고 응원해준 관객들에 대한 감독님의 선택일 수도 있다. 십시일반으로 큰 선물을 받은 데 대한 자연스러운 보답으로서, (부러진 화살) 스탭들이 최대한 넘어와서 작업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신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이게 정상적인 제작 형태는 아니다. 이야기에 맞는 제작비를 들여 모든 스탭들이 적절한 개런티를 받고 일하는 게 상식적이다. 하지만 과 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전제가 되었기 때문에, 영화가 흥행에 실패해서 설령 내 보수를 못 받더라도 상관없고 같이 작업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는 마음으로 모여서 일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조심스러운 부분인데, 그렇게 만들어진 (부러진 화살)이 경제적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촬영 23회 차만에 완성한 영화가 이만큼의 흥행수입을 얻었다고 했을 때, 그 수입만 가져가려는 제작 형태는 반대한다. 부디, (부러진 화살)에서 외형적인 숫자만 빼려 하지 말고 이 사람들이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모여서 작업했는지를 벤치마킹하시길 바란다. 이야기는 통계나 수치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자꾸 통계로만 이야기를 대하려고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면 고만고만하고 비슷한 시행착오들이 자꾸 재생산될 수밖에 없고 관객들도 덩달아 불행해진다. 백양백색으로, 다양한 제작비로 그에 맞는 이야기들이 나와야만 욕을 하고 싸우더라도 생산적인 싸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이경영, 명계남, 문성근, 김의성, 서동수, 이천희, 김중기 등 근래 보기 드물게 남성 배우들의 힘만으로 대부분 이끌어가는 영화다. 이들과의 앙상블은 어땠나.

박원상: 촬영 회차는 25회 차, 한 달 반 정도 촬영했다. 양수리 6세트장에서 90퍼센트를 촬영하고 숙소에서 같이 묵었다. 이천희 이 친구가 캠핑 마니아다. 촬영 첫날이었나, 현장에서 뭔가 자꾸 뚝딱뚝딱 만들더라. 자기 집에 있던 테이블이랑 의자를 들고 오고, 널빤지로 탁자를 만들고 협탁도 하나 배치하면서 우리들이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아침에 촬영 콜타임 받고 세트장에 오면 천희가 만든 자리에 나이 순서대로 죽 앉았다. 명계남 선배가 "시나리오 펴" 그러면 다들 엄숙하게 시나리오를 펼치다가, 회의는 집어치우고 다들 낄낄거리면서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이천희는 워낙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는 친구인데 그가 (남영동 1985)에 합류한다는 얘길 듣고 반갑고 놀라웠다. 시나리오를 본 다음 본인이 직접 연락해서 '김 계장' 역을 자청했다고 들었다. 이 계장 역의 김중기 같은 경우 영화 경험이 거의 없는 친구인데, 극 중에서 김종태에게 심정적으로 동화하는 변화를 표현해야 했다. 주변에서 하도 "네 역할이 너무 좋다"고 칭찬들을 하니까 부담이 많았던 것 같다. 나를 포함해서 그 친구들이 전부 명계남 선배, 이경영 선배, 문성근 선배 등과 섞이면서 아주 빨리 현장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 선배들의 도움이 정말 컸다. 김종태 역 때문에 내가 스스로 고립되려고 하던 걸 많이 끄집어내주셨다. 촬영할 때야 가해자와 피해자를 연기하지만 촬영이 끝나고 나서까지 그 무게를 짊어지고 있으면 안 된다. 만일 내가 끝까지 촬영 초반처럼 임했다면 영화를 완주 못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명계남 선배가 객쩍은 소리라도 막 하면서 웃음을 주는 역할을 가장 앞장서서 해주셨다. 그래서 이토록 힘든 영화를 찍는데도 현장 분위기가 참 아이러니하게, 대단히 화기애해하고 재미있었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배우들끼리 그렇게 매번 몰려다니면서 작품과 전혀 상관없는 수다를 떨면서 친해지니까, 정지영 감독님도 연기에 대한 디렉션을 거의 안 하셨다. 시나리오를 읽고 다 같이 공감한 게 있으니까, 믿음과 신뢰가 있으니까 별 말씀을 안 하셨다. 그런 게 배우들끼리 서로 의지하게 하는 최상의 디렉션인 것 같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캐스팅을 완성하고 나면 연출의 절반은 끝났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이러저런 사람들을 모아서 화학작용을 일으키기 위해 가장 고심하는 부분이 캐스팅인데, (남영동 1985)는 배우들이 다 자발적으로 원해서 모인 조합이었기 때문에 완벽했다.

프레시안: 대공분실 세트가 아주 정교하게 지어진 것 같다. 얼마 전 대공분실 실제 설계도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영화를 통해 다시 보니 정말 그 공간의 분위기와 조명 등이 일종의 공포영화적 효과를 주더라. 직접 그 안에서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는 어땠나.

▲ 영화 <남영동 1985>. ⓒ아우라픽처스

박원상: 뉴스에도 나왔지만,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을 지은 분이 김수근 건축가다. 그분이 소극장 '공간사랑'을 만드셨지 않나. 고등학교 1학년 땐가 거기서 처음으로 소극장 연극을 본 다음 연기의 꿈을 키웠다. '공간사랑' 옆의 원서 공원도 참 좋아하는 곳이어서 대학생 때 자주 드나들었는데, 김수근 건축가가 대공분실을 설계했다는 얘길 듣고…그분을 탓하려는 게 아니라, 그 훌륭한 능력을…참 아이러니했다. 씁쓸하기도 했고.

우리 미술팀이 실제 대공분실에 가서 실측을 해왔고, 촬영하기에는 실제 사이즈가 너무 좁기 때문에 약간 넓힌 규모로 세트를 만들었다. 다들 고생했지만 조명팀은 특히 고생이 많았다. 외부에서 빛이 들어올 수 있는 창이 제한되어 있는데, 그나마 간유리가 끼워져 있는 쪽창이다. 전적으로 방 안의 조명만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게다가 제한된 공간 내에서 카메라 앵글은 계속 바뀐다. 조명팀 입장에선 미칠 노릇이다. 카메라의 각도가 틀어질 때마다 조명을 계속 다르게 쳐야 했다. 나중에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우리 조명팀 생각이 정말 많이 나더라.

프레시안: 사운드 부분도 신경을 많이 썼다. 고문 현장에서 틀어놓는 라디오 소리 말고도 대공분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들 말이다.

박원상: 나는 청파동에 태어나서 바로 그 근처, 선린 중학교 근처에서 30년을 살았다. 대공분실이 바로 근처였던 거다. 남영역도 그곳에서 가깝다. 그 앞에는 술집도 많고 온갖 소음이 섞여있다. 전동차 들어오는 소리, 새벽 되면 술 취해서 꽥꽥거리는 소리 같은 것들. 영화 속에서 김종태가 창가로 다가가서 귀를 대는 장면이 있다. 우리 영화가 굵은 직선처럼 나가는 게 아니라 좀 더 디테일하게 들어갔다면 그 소리들이 좀 더 들어갈 수 있었을 것 같다.

빛이 차단되면 눈으로 볼 수 있는 게 제한되니까 어쩔 수 없이 귀가 예민해진다. 촬영할 때 고문대인 칠성판에 눈 감고 누우면 세트장의 다양한 소리들이 크게 들린다. 고 김근태 의원도 아주 잠깐 혼자 남겨지던 순간에, 그런 소리들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자주 상상했다.

프레시안: 고문 장면을 찍을 때 원칙은 어떤 것이었나. 고춧가루야 가짜겠지만, 실제로 물을 들이붓는 장면에서는 실제로 배우의 안위가 걱정될 지경이었다. 그걸 보고나니 나중엔 때리는 장면조차도 전부 실제로 구타당하는 것 같아 무섭기도 했다.

박원상: 그게 감독님의 연출의도였을 것이다. 카메라가 멀리서 바라보는 게 아니라, 가해자의 시선처럼 가까이 들어오는 앵글이 많잖아. 연기의 합이나 다른 방식으로 피해갈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조금씩 고문 연기에 적응해서 찍을 수 있는 시간을 늘려갔다. 물론 이전에 그런 걸 해봤던 경험치가 없으니까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알아서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예를 들어 칠성판에 묶여서 물고문 당하는 장면을 처음 찍을 때, 눈이 가려진 다음 물이 눈코입으로 막 들어오는데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던 물 공포증이 발동해서 갑자기 몸이 경직됐다. 바로 NG가 났다. 명계남 선배가 "연극했던 놈이 왜 그래, 호흡으로 조절해"라고 걱정하는데, 몸이 말을 안 들었다. 생각다 못해 내가 컷 사인을 보내겠다고 했다.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다가 안 되면 신호 보내겠다고, 대신 손발이 묶여있으니 머리를 세차게 흔들겠다고 했다. 그렇게 약속하고 슛 들어갔는데, 힘들어서 머리를 막 흔들어도 내 머리를 잡은 손과 어깨에 힘이 더 들어가더라. 내 사인을 못 알아들었구나 싶어서 이러다 죽는 줄 알았다.(웃음)

▲ 배우 박원상 ⓒ프레시안(최형락)

다시 의논했다. 머리를 흔드는 게 연기인지 신호인지 헛갈리기도 하거니와, 선배들은 이런 장면일수록 한 번에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NG낼수록 몸이 더 고달프니까. 결국 스크립터에게 물어봤다. 고문 장면 촬영 컷 중 제일 짧은 것과 긴 것의 평균을 내보니까 15초가 나오더라. 그 다음부터 촬영할 때 감독님이 스톱워치 들고 있다가 15초 되면 컷을 불렀다. 촬영을 거듭할수록 조금씩 더 길게 찍을 수 있었다. 한쪽에선 자꾸 안 좋은 기억으로 몸이 경직되지만 또 한쪽에선 자꾸 떨쳐내려 노력하면서 조금씩 극복됐다.

이게 들숨 날숨 호흡으로 조절하기는 힘들었고, 일단 머금은 숨으로 연기를 해야 했다. 고춧가루 뿌리고 물고문하는 장면은 장면 자체가 긴 호흡으로 가야 했는데, 그렇게 몸을 적응시키니까 되더라. 이렇게 얻어진 고문 연기 노하우를 다른 분들이 사용할 작품이 안 나오면 좋겠지만, 혹시라도 만에 하나 비슷한 영화가 나온다면 그 역할 하는 분 찾아가서 노하우를 전수시켜주고 싶다.(웃음)

많은 분들이 물고문 장면을 물어보시는데, 다른 연기보다 물론 몇 배 더 힘들다. 하지만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적응이 되어간다. 나는 적응할 수밖에 없고, 적응이 되는 일을 한 거다. 하지만 과거에 그곳에선 고문에 적응을 할 수가 없지 않나. 점점 더 낯설고 끔찍해지고. 나 역시 촬영 중간 그 괴리감이 딱 찾아왔을 때 무척 힘들었다. (남영동 1985)의 원제는 (야만의 시대)였다. 정말 미친 시대였던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 참여한 분들 모두 비슷할 텐데, 본능적으로 힘이 드니까 방어기제가 발동했다. 한 장면 한 장면 완성될 때마다 하나하나 지워나갔던 것 같다. 말 그대로 뇌를 자꾸 포맷시킨 거다. 부산국제영화제 때 처음으로 간담회를 여는데, 촬영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나더라. 결국 같이 연기한 김의성 형한테 촬영 당시 상황을 페이퍼로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웃음)

(남영동 1985) 쫑파티 때, 농담삼아 그런 말을 했다. 이 작품을 통해 방만했던 몸을 재정비하고 물 공포증을 극복할 수 있어 좋았다고. 촬영 끝나고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숙소에 수영장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먼저 들어갔다. 옆에서 구경하다가, 나도 수영장에 들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30년 동안 배꼽 위로 올라오는 물속에 들어간 적이 없었고, 다른 영화 촬영할 때도 물 장면은 모두 피했었다. 하지만 (남영동 1985)를 끝내고 나서, 30년 만에 내 의지로 수영장에 들어가 눈을 뜨고 잠영을 했다.

▲ 배우 박원상 ⓒ프레시안(최형락)

이게 참 어떤 면에선 우습다. 고문 피해자분들은 현재 진행형으로 '오늘'을 살 수밖에 없는데, 난 이 작품을 통해서 마음 속 짐을 덜어낼 수 있었다는 게, 어떻게 보면 그게 영화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프레시안: (남영동 1985)에서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의 변환은 아무래도 이경영이 연기한 고문기술자 '장의사'일 것이다. 고 김근태 의원 수기 에선 고문 기술자가 "거리 어느 한 구석에 있을 깡패, 전형적인 어깨 타입의 풍모…눈은 불안정하고 뻐기면서 걷는 인간 백정" 같다는 묘사가 나오는데, 영화 속 장의사는 '미친 과학자(Mad Scientist)' 캐릭터 같더라. 너무 냉정하고 침착해서, 극 중 김종태가 다른 고문관들보다 장의사에게 느끼게 되는 공포가 오히려 그 냉정함에서 유발되는 것 같다.

박원상: 정지영 감독님이 이경영 형한테 "이근안 자료 줄까? 볼래?" 물었더니 "전 대본만 볼래요" 했다더라.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영화 마지막에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이 다시 마주했을 때에도, 장의사가 김종태에게 "용서해주십시오"라고 비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 찍기 전 이경영 형이 감독님한테 슬쩍 물어봤다더라. "진심이었을까요?" 감독님은 그럴 거 같다고 하셨는데, 이 선배는 "전 그냥 어사무사하게 할래요" 하고는 그렇게 연기했다. 난 그게 좋았다.

프레시안: 그렇다면 그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땐 어땠나. 세월이 흘러 둘이 다시 마주하는 장면은, 관객에게도 어떤 감정적인 서스펜스를 느끼게 했는데.

박원상: 김 의원이 특별면회실에 혼자 들어간 게 사실이고, 그 공간에 두 사람만 있었으니까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정지영 감독님은 처음에 김종태와 장의사가 아무 말 없이 앉아있는 장면을 무척 길게 주문하셨다. 나 역시 슛 들어가니까, 다른 생각 없이 앞에 앉아있는 장의사를 물끄러미 오래 쳐다보게 되더라. 첫 대사가 "세월이 참 많이 흘렀네요"인데, 기분이 묘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남영동) 책을 보면 김근태 의원이 용서를 하지 못했다는 게 나온다. 아마 그런 자신에 대한 자책까지 끌어안고 가시지 않았을까 싶은데…그건 정말 궁금하다. 정말 진심이었다면 백 번이고 만번이고 무릎 꿇고 철저하게 용서를 구했어야 옳다. 하지만 실제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시대가 바뀌고 나니 "고문은 예술" 운운하는 이야기를 하는 걸 봐선 그 사과가 진심이었다고 생각되질 않는다.

정지영 감독님도 이근안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다. 음…당사자 외에는 알 수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용서가 안 될 것 같다. 몸이 기억하고 있으니까. 대본에서도 김종태가 용서하는 건지 아닌지 분명히 지시되지 않았다. 김종태가 황급히 몸을 돌려 면회실을 나가려다가 환청처럼 휘파람 소리를 듣고 다시 돌아보는 장면이 있다. 지워버리려고 해도 사라지지 않는 족쇄처럼, 몸이 기억하는 어떤 것이 그 순간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돌아보는데, 나를 쳐다보는 이경영 형 입이 정말 휘파람 부는 것처럼 보였다. 이건 정말 몸의 기억이구나, 그 휘파람 소리가, 싶어서 소름끼쳤다.

원래 촬영한 엔딩 신 중에는 우희진 씨가 연기한 아내와 바닷가를 거니는 장면도 있었다. 장의사를 용서 못한 것에 대해 김종태가 자책하자 아내가 위로한다. "그건 당신 몫이 아닐 거예요"라고. 하지만 특별면회실 장면 찍으면서 내 눈을 클로즈업하는 카메라를 봤을 때, 이게 엔딩 컷이 되겠구나 싶었다. 가 관객과 만나고자 하는 지향점이 그 눈에서 다 설명되는 것 같았다.

▲ 이날 카페에서는 타 매체와의 인터뷰를 위해 <남영동 1985>에서 장의사 역을 맡은 배우 이경영도 와있었다. 휴식 시간에 박원상과 이경영이 마주 앉았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남영동 1985)가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은가.

박원상: 사실 이 작품이 일상에서 스트레스 받은 걸 두 시간 동안 잊게 해주는 상업영화는 당연히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2일 개봉할 때 불특정 다수 관객들이 주저하지 않고 와주시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워낙 정보를 어마어마하게 접할 수 있는 시대니까 '영화가 아프다, 힘들다'는 입소문 때문에 의지가 꺾이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홍보할 때도 이 부분이 가장 난감하다. 관객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꼬실' 수 있는지 모르겠다. 영화가 사실 힘든데, '힘들지 않아요'라고 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마음이 통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영화를 세 번 봤는데, 그때마다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관객들도 이 기회를 흘려보내시지 않고, 저의 유혹에 동참해주셨으면 좋겠다.(웃음)

프레시안: 차기작은 김규리와 함께 등장하는 로맨틱 코미디 (진영이)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출연 당시 그 연애 연기를 아주 인상적으로 봤는데(웃음), 이번에 다시 볼 수 있는 건가.

박원상: (진영이)를…(박원상은 행복한 미소를 크게 지어보였다) 굉장히 재밌게 찍었다. 한 여자의 성장통을 독특하게 다룬 영화다. 며칠 전 어떤 모임에서도 박철민 선배가 키스신 있는 영화를 찍는다고 엄청 부러워했다. 막 시기, 질투, 분노, 협박을 금치 못하던데(웃음), 나로서는 이런 기회가 너무 즐겁고 고마울 뿐이다. 가끔은 이렇게 행복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감사할 따름이다.(웃음)


 /김용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