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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23일 월요일

다수 외신들 “박근혜=독재자의 딸”로 보도


이글은 뉴스페이스 2012-04-23일자 기사 '다수 외신들 “박근혜=독재자의 딸”로 보도'를 퍼왔습니다.
트위플 “‘盧=인권변호사’였는데..”…진중권 “뭇솔리니 손녀인셈”

미국의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즈(이하 NYT)가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21일(현지시간) 주요 인물로 다루면서 ‘더럽혀지지 않은 아우라를 지닌 독재자의 딸’로 표현해 관심을 모았다. 외신들은 그간 박 위원장에 대한 뚜렷한 평가 기준이 없어 독재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 표현해왔다. 

22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NYT는 ‘토요 프로필(THE SATURDAY PROFILE)’란에서 ‘소란스러운 민주주의에서 청결한 기운을 가진 독재자의 딸(In a Rowdy Democracy, a Dictator’s Daughter With an Unsoiled Aura)’이라는 제목으로 박 위원장을 소개했다.

ⓒ NYT 인터넷판 화면캡처

NYT는 박 위원장이 작은 체구를 가졌지만 강한 성격과 카리스마로 체구보다 더 큰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면서 최근 총선에서 새누리당을 승리로 이끌어 차기 대통령의 가능성을 키웠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박 위원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점은 대중적 인기를 얻는 데 도움이 되지만 제약 요인도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보수 진영은 박 위원장을 통해 국가 번영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던 박 전 대통령 시절의 향수를 느끼지만 좌파 진영은 박 위원장을 정치적 반대자를 투옥하고 죽인 군부 독재자와 연관 짓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앞서 프랑스의 유력신문인 르몽드도 4.11 총선 직후 한국의 선거 결과를 전하면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독재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 표현했다. 르몽드는 13일 독재자의 딸로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며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 박 위원장이 이끄는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그간 미국 통신사 AP와 프랑스 통신사 AFP 등도 박 위원장을 ‘독재자의 딸’로 표현해왔다. 2004년 3월 23일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임시 전당대회에서 박 위원장이 당 대표로 선출됐을 당시 AP, AFP 등 외신들은 일제히 “‘독재자의 딸’이 제1야당 지도자가 됐다”고 타전했다. 

올해 대선을 앞두고 대한민국의 강력한 대통령 후보를 외신들이 ‘독재자의 딸’로 표현한 것에 대해 시민들은 새삼 관심을 가지며 인터넷과 트위터에 의견을 쏟아냈다. 

네티즌 ‘천사와**’는 “이 나라가 걱정입니다. 선진국으로 가야하는 험난한 글로벌 경쟁의 여정을 앞에 두고 단순히 박정희 딸래미라는 이유로 동정적 지지를 보낸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jthc****’은 “박근혜 그냥 독재자의 딸.. 아버지에 과오를 인정도 시인도 않고 미화에 중점만 둔다. 이래서 무슨 대통령을 하겠다고 진짜 무서운 사람이다. 일단 되고보자 어떻게 하든 꼬리숨긴 여우일 뿐이다. 박근혜 청문회 등으로 제대로 검증 하지 않은 한 똑같은 정치인뿐..아버지 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다”라고 의견을 냈다. 

트위플 ‘min*****’은 “외신에 쓰이는 박근혜의 수식어는 공통적으로 ‘독재자의 딸’로 시작 한다! 국내 언론들도 자존심이 있는데, 최소 ‘독재자의 따님, 선거의 여왕 박근혜’로 시작하는건 어때? 언론자유지수 87위의 비루한 찌라시들앗!”라고 한국 언론에서는 오히려 이같은 표현이 적은 것을 지적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뉴욕타임즈, 박근혜 = ‘독재자의 딸’ 외국에서야 박정희 딸이 출마하는 것이나, 뭇솔리니 손녀가 출마하는 것이나.... 그게 그걸로 보겠죠”라고 비꼬았다.

파워트위터러 ‘mettayoon’은 “이명박은 이 나라를 어설픈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었고, 독재자의 딸이 인기 있다는 심한 조롱 같이 들리는 군요”라고 한탄했다.

‘kath****’은 “그네 언니 오늘 밤에 잠이 안오겠어. 미쿡 뉴욕 타임스가 그네언니를 Dictator's Daughter (독재자의 딸)이라고 했으니”라고 힐난했고 ‘chiw***’은 “독재자의 딸이 대선후보 1순위라니 얼마나 황당해 보였을까?”라고 일침을 날렸다. 

‘chiw***’도 “뉴욕타임즈의 박근혜에 관한 기사 제목이 재미있군요. 의역하자면 ‘어설픈 민주주의 국가의 여전히 인기있는 독재자의 딸’상당히 망신스럽죠. ㅎㅎ”라고 꼬집었다. 

소설가 이외수씨는 “독재자들의 공통점- 언론통제. 인권유린. 예술박해”이라고 말했다. 

‘mon***’은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가 박근혜를 ‘독재자 박정희 전 대통령 딸’이라 했네요”라고 지적했고 트위플 ‘smoking********’은 “뿐 아니라 프랑스의 언론은 ‘박근혜’를 말할 때 언제나 ‘독재자의 딸’이라는 수식을 붙임. 사실이니까”라며 “‘노무현’을 말할 때는 언제나 ‘인권 변호사 출신’이라는 수식을 붙이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yookyu*****’은 “미국언론도 그래요.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라고 빠짐없이 설명해요”라고 의견을 보탰다. 

한편 NYT는 그러면서 박 위원장이 금전 스캔들로 상처를 입은 이명박 대통령과 거리를 두면서 자신의 깨끗한 이미지를 부각시켰고 위기에 빠졌던 집권당의 총선 승리를 이끌어 냈으며 복지 정책 등으로 젊은 유권자들에게 호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박 위원장은 정책보다 개인의 캐릭터로 더 호소한다는 지적이 있다며 부모를 모두 잃고 결혼과 자식을 포기한 박 위원장은 지지자들 사이에서 국가를 위해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여성으로 평가된다면서 성자와 같은 이미지를 누리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NYT는 박 위원장이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으려고 자신과 당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안철수라는 위협 요인을 막기에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2011년 12월 20일 화요일

북 체제 안정 역량, 생각 이상으로 높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20일자 기사 '북 체제 안정 역량, 생각 이상으로 높다'를 퍼왔습니다.
[김민웅 칼럼] 조문 정국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이틀간의 시간 동안 북이 보여준 것

북한의 체제 생존력은 일단 생각 이상으로 높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관련한정보를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알 수 없게 완벽하게 관리한 점은 북의 체제 방어 수준이 만만치 않음을 증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북의 내부를 향한 외부의 개입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과시한 셈이기도 하다.

북으로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급서가 주는 충격과 위기를 관리하고 차기 체제를 조속하게 안정시키는 일 외의 중대사는 지금 없다. 여차하면 북한 붕괴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런 대응은 체제적 필연성을 가진다.

더군다나 김정일 위원장의 죽음에 대한 애도 못지않게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입증해 보이지 못하면, 북한 주민들이 겪을 혼란과 위기감은 통제 불가능의 상태가 된다. 그런 점에서 북의 체제 방어 시스템이 이틀에 걸쳐 이를 해결했다고 판단하고 사망 정보를 공개한 것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이명박 정권의 대북 정보 파악 역량에 대한 질타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의미하다. 이명박 정권만이 아니라 미국도 북의 체제 방어력과 정보관리의 벽을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여기서 중요하게 봐야 할 대목은 김정일 이후의 북이 자신을 철저하게 방어하고 정권 교체 동요기에 외부의 개입 가능성을 치밀하게 차단하는 작업을 완료했다는 점이다. 이걸 제대로 보지 못할 경우, 북의 김정일 이후 체제에 대한 전망은 오판에 기초할 수 있다.

순직한 지도자의 이미지

뿐만 아니라, 김일성 주석의 경우 남북관계를 재정비하는 작업에 몰두하다가 유명을 달리하고 김정일 위원장의 경우에는 북한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현지 지도에 골몰하다가 세상을 떴다는 대목은 북한 주민들에게 김정은 체제로 넘어가는 3대 세습의 정서적 정당성을 부여해준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하다가 순직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는 대를 이어 계승되고, 그에 따라 김정은 체제는 북한 주민들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얻은 것이다.

이 두 가지 면모, 즉 (1) 위기의 조건에서 작동한 체제 방어력의 수준과 (2) 지도자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결집도는 북한의 장래에 대한 섣부른 부정적 예상이나 평가를 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렇지 않아도 북은 김일성 주석 사후 체제 위기를 관리한 경험과 경제적 곤경을 헤쳐 온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번의 경우 그 학습효과가 가동할 수 있는 기반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덧붙여,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상태 악화와 김정은 후계 지목이 겹쳐서 진행되었다는 점은 만일의 유고사태에 대비하는 내부의 시스템 작동 준비가 상당 정도 정비되어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볼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쪽에서 생각하듯이 핵심적 지도자의 사망으로 인한 어떤 정치적 혼란이나 군사적 동요란 적어도 체제적 차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김정일 위원장의 예기치 않은 사망은 북 내부에 엄청난 충격과 위기감을 조성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때를 위해 그토록 주변 열강들과의 외교적 관계를 다져놓고 후계구도를 확정했던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존경심이 더더욱 우러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 비상관리체제와 계승 시스템을 김정일 위원장이 정치적 유산으로 남겨놓았다고 본다면, 북의 생존력은 결코 불안정하지 않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김정은이 지난해 10월 노동절 행사 당시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옆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AP=연합

준비된 후계체제와 유리한 주변 환경

또한 김정일 이후의 북은 김정은 하나의 주도 아래 모든 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체제의 방어와 생존을 위해 그를 중심으로 일치단결하는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안정될 수 있다. 주변 환경도 좋은 편이다. 중국의 대북 정책은 북의 체제 생존력에 기본 조건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과 러시아를 교차 방문하면서 후계체제의 안정화 전략을 구사하고, 사망 직전 미국과의 관계개선의 의지도 진전시켜나간 것은 모두 자신의 부재 이후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할 수 있다. 북의 지배 엘리트 들 역시 김정일 위원장이 마련해놓은 기반을 다지는 것 외의 생존전략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에 진력을 다할 것이며 "선군정치"의 최대 수혜자인 군 역시 이런 방향으로 힘을 쏟을 것이다.

김정은이 너무 어린 나이라고 하지만, 3대에 걸친 혁명 가계의 적통이라는 자의식과 짧은 시간의 훈련이지만 최고 지도자 과정을 밟았고 젊은 시절 김일성 주석의 이미지와 혼재되어 있는 면모는 그의 지도력에 일정한 카리스마를 부여하게 되어 있다. 할아버지가 항일 독립투쟁의 경륜을 가지고 있고 아버지는 대미 관계와 경제위기를 관리하고 돌파하기 위한 역량을 보였다면, 김정은의 경우는 세기적 격변기에 강성대국 내지 강성국가의 진로를 구체화하는 과제를 받은 셈이다.

그가 성공할지 아니면 실패하고 말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을 보는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그로서는 생각보다 신중하면서도 결단력 있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 그것이 그의 나이와 경력의 부족함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모를 수 없고, 또 권력의 핵심 주체 세력도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김정은 체제는 견고하게 다져진 아버지의 정치적 유산을 상속받을 뿐만 아니라, 내부의 강력한 지지와 외부의 지원을 받는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북에게 있어서 이것 외의 대안은 없고 중국과 러시아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일본도 이미 예상대로 북에 대한 조의표시를 했고 대북 접근의 밀도를 높이려 들고 있다.

조문 정국으로의 전환

따라서 김정일 위원장 이후 대북 정책에서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은, 김정일 사망에 대한 기본적인 조의의 예를 갖추지 않는다거나 북의 체제 생존력을 가볍게 본다든지 김정은 체제를 우습게 보는 일 따위다. 만일 그렇게 해버린다면, 그것은 북 체제 내부에 긴장을 불러일으켜 한반도의 평화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향후 대북관계 개선의 통로를 스스로 차단해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은 뻔하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조의 내지 조문 정국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물론 그렇다고 이명박 정권의 문제가 이로써 덮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한-미 FTA문제가 망각된다고 여기는 것 역시 착각이다. 잠시 우선순위가 바뀌어 일차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북은 외국의 조문사절을 받지 않는다고 했지 같은 민족의 조문까지 거부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중국의 후진타오가 영결식 참석을 하겠다고 했으니 조문사절 논란은 동양적 예로 볼 때 일단 "굳이 오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한 정도이다. 그게 조의 표시마저 거부하거나 조문의지를 밝히는 것까지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충격에 빠져 있는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우리가 진정 위로하고 한반도 평화의 내일을 위해 필요한 자세를 취하고 있음을 북에 분명하게 표시하는 일이다. '문상정치'라는 말도 있고 '조문외교'라는 말도 있다. 통 크게 그런 각도로 북의 상황을 대하는 노력과 모습을 보인다면, 이제까지의 여러 복잡한 감정과 정책의 모순이 일거에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정도로 풀려나갈 수 있다.

동양의 역사에서 조문이란...

김일성 주석의 죽음을 아버지의 죽음으로, 다시 세대가 바뀌어 김정일 위원장의 죽음을 또한 아버지의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북한의 현실에서 매우 현명하게 처신할 일이다. 상대는 의외로 강력한 체제 생존력을 가지고 있으며, 불안정한 요소가 있다 해도 적지 않은 기간 동안 북의 현실을 장악하면서 한반도의 장래를 결정해나가는 주체의 하나다. 그런 상대를 외면하고 무시해버린다면, 그건 한반도의 평화체제 수립에 역행하는 처사가 된다.

이제 곧 오바마 행정부도 북에 대해 조의를 표시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국면에 처한 북한과의 대화통로를 복구하는 일에 지체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대 중국 전략에 있어서도 유리한 선택이 아니다.

여기저기서 잇달아 이명박 정부의 공식적인 조의 표시를 요구하고 있다. 북은 예의주시할 것이다. 그리고 기억할 것이다.

동양의 역사에서는 적장이 죽어도 조문은 가는 법이다. 아니면 조의 정도라도 표한다. 이명박 정권은 그 의미를 혹여 부정하고 싶어도 하물며, 고(故) 김대중 대통령과 손을 잡고 한반도의 평화를 이룩하자고 했던 북의 지도자다. 노벨 평화상의 사실상 한 쪽 당사자다.

그렇다면 북의 핵은 뭐냐고 할지 모르지만,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에 대한 대응과정의 산물 아니던가? 대북압박 내지 적대시 정책의 포기와 북한의 핵전략 포기는 서로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는 사안이다.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가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되는 법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더 길게 말하지 않아도 답이 나오지 않는가?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2011년 12월 13일 화요일

박원순 시장의 정명훈 판단, 낡고 쇠퇴함을 부수는 파격을


이글은 어제이어서 프레시안 2011-12-13일자 기사 '박원순 시장의 정명훈 판단, 낡고 쇠퇴함을 부수는 파격을'을 퍼왔습니다.
[김상수 칼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발전을 위한 제언 2

지금은 지휘자가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는 시대가 아니다.    
민주주의 대중사회로 전환된 20세기 후반부터 유럽이나 미국의오케스트라 지휘자들의 위상 또한 시대변화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었다. 세계 최정상  이라 일컬어지는 베를린 필하모니는 지휘자를 선정할 때, 전 단원의 투표에  의해 결정한다. 또한 독일의 교향악단들은 일반적으로 신입 단원을 뽑을 때도 전 단원의 수락을 받아야 비로소 입단의 자격이 주어진다. 지휘자든, 신입 단원이든, 일정 기간 동안 전 단원에 의해 같이 음악을 할 음악동지인가를 확인하는 절차는 매우 중요하다. 지휘자와 단원들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로 모아진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는 것이 오케스트라 음악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끝없는 야심을 가지고 있던 베를린 필하모니의 카라얀은 강렬한 카리스마를 통해 음악 행정까지 두루 자신의 야심을 실현시켰다. 그는 영상 미디어의 힘에 일찍 착안, 그가 지휘하는 모습을 전용 스튜디오에서 10여대 이상의 카메라를 동원하여 촬영하게 하였고, 편집에 까지 세세하게 관여했다. 하지만 말년으로 갈수록 그의 카리스마는 세대의 변화에 따른 민주적 흐름이나 오케스트라 운영의 절차에서 단원들과 충돌을 빚었으며 단원들과 갈등을 겪으면서 오랜 독단은 거부와 반감을 쌓게 됐다. 이후 1989년부터 베를린 필은 카라얀 시대의 종지부를 고하고, 지휘대의 민주주의 시대를 연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를 내세운다. 아바도가 건강 악화로 베를린 필을 떠난 이후 2002년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과 사이먼 래틀(Sir Simon Denis Rattle)의 베를린 필하모니 상임 지휘자 선정은 전 세계 클래식음악 팬들에게 영상으로 두 사람의 지휘를 중계하면서, 지휘자와 단원들과의 호흡을 직접 볼 수 있도록 연습 실황이 방영되고, 전 단원들의 투표에 의해 사이먼 래틀이 선정되었다. 2010년에 단원들의 투표를 통해 임기가 2012년에서 2018년까지 연장, 현재까지 세계 최정상의 베를린 필을 이끌어가고 있는 래틀은 1980년 버밍엄의 열악한 처지였던 버밍엄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젊은 나이에 부임했다. 그는 그 곳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 잘 알려지지 않았던 버밍엄시립교향악단을 영국의 대표적인 오케스트라로 발전시켰다. 특히 현대음악과 말러의 교향곡에 대한 독특한 해석으로 눈길을 끈 그는 영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영국의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7년 CBE 훈장을, 1994년에는 기사작위(Knight Bachelor)를 받았다.

지휘료만 연간 평균 18억 내외 정도 지출한다면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 연합뉴스.

정명훈의 상임지휘료와 다른 지휘자의 객원지휘료를 포함하여 연간 약 18억내외 정도가 지휘료로 서울시향이 지출한다. 지휘료 지출만으로도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 지휘료 지출과 거의 맞먹는다. 이런 지출의 규모라면 지금과 같은 정명훈 1인에게 지휘료를 몰아주는 식이 아니라, 젊고 패기 있는 한국인 지휘자를 상임으로 두고, 수 명의 국내외 객원 지휘자를 선정해 교향악단이 과거처럼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단원 경쟁 체제보다 지휘자 경쟁 체제로 가는 방식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또는 세계적인 실력의 지휘자 3,4명을 명예지휘자로 위촉해서 연간 2-3회씩 연주지휘를 시키는 방식이 훨씬 더 다양한 연주지휘를 시민들은 경험하고, 오케스트라 단원역시 세계 수준의 기량을 지닌 지휘자들과 연주를 함께 할 수 있고, 당연히 유료관객은 훨씬 많을 테고, 청중은 지속적으로 서울시향 연주를 찾아올 것이다.

지금과 같은 식의 단원들에게 숨 막히는 오디션으로 압력을 넣지 말고, 상임지휘자든 예술감독이든 직책에 걸맞게 최소 5개월간은 국내에 체류하며, 치밀하고 입체적인 연습방법과 연주일정을 알뜰하게 챙기고, 빛 좋은 개살구 식의 ‘찾아가는 음악회’ 등의 일정은 재조정되고, 서울시향의 정기연주회도 정명훈만이 지휘하는 것이 아닌, 진짜로 세계적인 지휘자들에게 정기연주회를 더 만들어 맡긴다면, 교향악단의 질은 성장하게 된다. 

서울시향, 연주의 질을 향상시키는 실질적인 방법 
서울시는 서울시향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해서 더 살펴야 한다. 연주자의 안정적인 연주에의 몰두, 연주자 양성, 지휘자 양성, 영재 육성 등은 서울시향의 또 다른 과제이기도 하고, 서울시의 서울시향에 대한 지원과 주문이면서 시향과 서울시의 의무이기도 하다. 돈을 퍼부어 넘어설 수 있다면 이미 세계의 재벌인 아랍의 왕자들이 오일머니로 세계 최정상의 오케스트라 악단을 탄생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돈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오케스트라의 역사, 민주적인 운영방식, 단원의 자긍심과 앙상블, 시민들의 관심을 유발하는 기획 등 총체적인 오케스트라 운영방식의 대대적인 혁신이 서울시향에 있어야 할 때다. 지휘자와 예술감독을 한 사람이 겸임하게 하고 1인으로 하여금 무거운 책임을 떠맡기는 지금의 방식은 ‘토목공사식 문화성과주의’의 폐해이다.

정명훈의 재계약은 12월 중에 박원순 시장이 결정
시장이 바뀌었다. 밀실행정은 투명한 행정을 지향해야 한다. 서울시와 정명훈의 계약에서 불합리한 점이 한 둘이 아니다. 비효율적인 시향의 운영을 개선하기위해서라도 재계약은 보다 신중해야 한다. 1인을 우상화하고 특권을 부여하는 식과 예술가의 예술성을 인정하는 태도와는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계약에서 서울시에 정명훈 일방의 우월적 계약은 고쳐져야 한다. 그리고 공평성을 잃은 부분과 비효율적 계약은 서울시민을 모독하는 처사다. 불공정한 예산 집행을 눈감아 주면 안 된다. 보다 보편적이고 기회에서 공정하며 누구에게도 타당해야 하고 미래지향적이고 국가와 시민과 서울시향 단체를 높이고 살리는 방향으로 계약은 진행되어야 한다. 서울시 문화예술 행정의 새로운 비전을 위해서는 그 비전에 걸 맞는 낡고 쇠퇴한 방식을 부수는 파격적인 정책판단과 집행에 주저하지 말아야 할 때가 지금 이 때 박 시장 역할이다.  

전용 콘서트홀은 반드시 필요하다. 시민들이 찾아가면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전용 오케스트라의 콘서트홀은 오케스트라 조건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외국의 사례를 일일이 빌리지 않고도 전용 콘서트홀의 마련은 오케스트라의 질과 시민대중의 음악문화 수용의 측면에서 적극 고려되어야 한다. 부지는 용산시민공원이 적절하지 않을까? 콘서트홀을 중심으로 녹음스튜디오 아카이브(archive)등이 함께 시스템으로 연결되어있는 시설로 말이다.     

서울시향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재설계 할 때 고려 할 수 있는 요인들
서울시향은 재정의 80% 정도를 공공재원(서울시 출연금)에 의존하고 있다. 비율로만 본다면 국내단체평균 10% 정도의 재정자립도와 비교할 때, 그나마 국내 국공립 예술단체 중에는 재정자립도가 낮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오케스트라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전적으로 공공재원에만 의존하는 것은 이제 시대적인 추세가 아니다. 자금 재원조달의 다양화 문제는 서울시와 관계자들이 같이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세울 때다. 전통적으로 공공에의 의존도가 높은 유럽의 오케스트라들도 이 부분을 해소하고자 안간힘을 쏟고 있다. 특히 서울시처럼 현재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오케스트라의 경영자 그리고 지휘자에게는 자주재원보전비율(재정자립도)에 대한 성과와 목표가 주어져야 한다. 예술의 성장은 반드시 계량화하여 측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오케스트라의 경우 재원의 규모는 일정 오케스트라 발전에 비례한다. 경영자로서 그리고 상임지휘자 또는 예술감독으로써 공공재원 투여에 대한 성과 목표와 그 검증은 반드시 필요하다. 지휘자와 경영자가 서로 견제하고 공동의 목표를 갖도록 유도하는 방식은 적극적으로 안출되어야 한다. 

국제적으로 오케스트라 연주자는 종신고용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방식에는 양면성이 있다. 안정적인 예술활동을 보장하기도 하지만 종종 오케스트라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고용의 형태를 준단원-단원-정년제 단원처럼 3단계로 운영하면서 새로운 신예연주자들이 항상 등용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나이가 들거나 연주상해(musician's injury)로 연주활동을 지속할 수 없는 단원들을 교육프로그램 강사나 음악코치 등으로 재훈련시켜 퇴로를 열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평생을 음악연주를 한 사람의 소중한 경험을 서울시나 시향이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시스템마련이 시급하다. 서울시향은 공공재원 의존도가 높은 만큼 가장 중요한 고객인 시민들을 위해 봉사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공공성 있는 프로그램으로 음악교육, 찾아가는 음악회, 그리고 시 산하예술단체와의 협동창작에 명예단원의 역할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프로그램으로 만든다든지, 얼마든지 가능하다.

국악(國樂)을 소홀하게 취급하는 건 자가당착이다. 
어떤 나라든 자국의 전통음악이 있다. 서울시에는 1965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악관현악단으로 창단된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있다. 전통음악의 창조적 계승을 위해 매해 새로운 창작음악으로 관객과 만나려는 노력을 시도하고 있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은 창단 이후 그간 정기연주회 300여회, 특별 연주회 2,000여회를 가졌다. 새로운 실험을 통해 한국음악의 대중화에도 기여를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국악관현악단은 전통의 고유성을 바탕으로 현대 및 미래의 한국음악을 창조해야하는 역할이 있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1년 예산이 서양클래식음악을 주로 연주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 투입예산의 1/9이다. 2010년 사업비 인건비 포함 총예산이 22억원이다. 너무나 빈약한 재정이다. 서울시가 정명훈 1인에게 지급하는 돈의 수준이다. 숫자로만 바도 그동안 얼마나 국악을 서울시가 홀대해왔는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서울시 예술행정의 본말이 크게 뒤집어진 사례다.

시민의 삶에 기여하는 서울시향의 비전은 구체적이어야 
물론 나는 서울시 산하 6개 예술전문단체의 예산은 증액되어야 하고, 서울시향의 예산지출과도 균형을 맞추어야 하며 서울시향 예산도 더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시향이 시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시민들을 위한 유용한 프로그램 계발과 단원들의 다양한 훈련프로그램, 오케스트라의 연주중계시스템 마련 등, 오케스트라 체제의 현대화와 시민의 오케스트라 수용방식의 개발 등에는 더 많은 예산소요가 뒤따른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오케스트라 운영의 경영합리성에 있다. 지휘자 또는 상임지휘자의 대우 조정과 서울시향의 경영성과를 평가하는 매뉴얼의 개발, 예산지출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통해서 서울시와 서울시향이 합의하는 경영성과 지표를 도출, 엄정하게 그간의 성과를 평가하고 그것에 기초해 새로운 경영전략을 세워야 한다. 지금 서울시향에 필요한 것은 7년간의 성과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에서 보다 서울시향의 가치를 더 창출해낼 것인지를 깊이 있게 고민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의 삶에 기여하는 서울시향의 비전은 구체적이어야 하며, 어떻게 하면 시민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서울시향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특정인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개발형 경영식이나 막연한 전시선전용 방식이 아니라, 시민들 삶에 천작해 들어가는 오케스트라 운영방식의 안출과 전체 단원의 동의를 이끌어내어 오케스트라의 창의성을 높이는 것으로 진전되어야 한다. 그래서 서울시향이 서울이란 도시의 새로운 자원으로 제대로의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재조정되어야 한다. 이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고 모험도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비전을 제시하고 구성원의 동의를 이끌어내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기 위한 발걸음은 내디뎌야 한다. 결국 여기에는 이제까지의 서울시의 문화예술정책에 있어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며 이에 따른 문화예술행정의 서울시 조직 개편이 먼저 요청된다.

시민의 노동으로의 세금인 공금에 대한 공경이 있어야   
사람은 노동을 하고 대가를 받고 삶을 영위한다. 돈의 많고 적음은 노동의 종류, 시간, 질, 조건, 상황에 따라 조절당하거나 노동을 주문하는 측과 타협도 한다. 때때로 노동의 강도나 양에 비하여 너무 적은 돈을 받는 경우도 많고, 노동의 수고는 하찮은데 지나치게 많은 돈을 불로소득처럼 챙기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노동에 대한 존경이 깨진 사회는 이미 무너진 사회다. 착취도 안 되지만, 노동에 있어서 지나친 과비용도 사회적 낭비고 상실이다. 하물며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는 곳이 사기업이나 어느 특정 개인이 아닌, 시민의 세금인 공금으로 지출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돈의 주인인 시민이 돈의 쓰임새를 잘 알 수도 없고, 또 시민이 노동해서 모아진 돈이 납득하기 어렵게 특정인의 예술적 특권을 위해 계속 비밀스럽게 지출되고 있다면 그건 바로 사회적 죄가 된다. 

후기 - 하나의 주제로 칼럼의 길이로는 꽤 긴 글을 썼다. 서울시향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쓸 수 없는 글이다. 음악을 지휘하고 연주하고 듣는다는 건, 결국 생의 의미를 음악을 통해 찾아 나서는 여정이다. 자신을 알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더 알고, 세상의 세계 속에서 인간의 뜻을 물으러 길 떠나는 차비(差備)에 음악이 있다. 보헤미아(Bohemia) 태생의 오스트리아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는 근대세계의 분열상을 음악으로 재현했다. 그의 곡절 많은 삶만큼이나 그의 음악 또한 온몸으로 분열의 시대를 껴안은 자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적인 음역(音域)의 영토를 만들어냈다. 지난 12월 9일 나는 서울시향 정명훈 지휘의 말러 연주회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