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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31일 목요일

불산 사망자 유족 "삼성, 조문은커녕 연락도 안 해"


이글은 프레시안 2013-01-31일자 기사 '불산 사망자 유족 "삼성, 조문은커녕 연락도 안 해"'를 퍼왔습니다.
"기계 결함으로 사람 죽었는데 개인 책임으로 돌리나"

슬픔은 분노로 바뀌어 있었다. 이틀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한 유가족들은 눈물이 마른 얼굴로 빈소를 지켰다. 목이 멘 고인의 어머니가 가까스로 말을 꺼냈다. "삼성전자에서 조문을 오지 않아 서운합니다. 사과도 왜 우리한테 안 하고 국민한테 하는지…."

빈소 앞에 놓인 대여섯 개 화환 가운데 삼성전자가 보낸 화환은 없었다. 조문객들도 뜸했다. 30일 삼성전자 반도체 화성공장에서 불산 누출 사고로 숨을 거둔 박 모(34) 씨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강동구 천호동 친구병원 장례식장 풍경이다.

고인의 외삼촌 허 모(51) 씨는 "우리가 28일 삼성전자 담당자에게 사망 경위를 설명해달라고 두 차례 연락했지만 완전히 무시당했다"며 "(고인이 숨진 지) 사흘이 지나도록 삼성에서 조문은커녕 연락도 전혀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동수 삼성전자 사장이 29일 이번 사고에 유감을 표명한 것에 대해서도 유족들은 "유감 표명은 국민에게 했지 우리에게 한 것이 아니다"며 "언론에 유감을 표명하면 뭐하나. 우린 (유감 표명을) 받은 적 없다"고 잘라 말했다. (☞ 관련 기사 : 삼성 반도체 불산 잔류…경찰 수사 난항)

▲ 30일 오후 경기 화성 동탄1동 주민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사업장 불산 가스 누출 사고 관련 주민 설명회에서 삼성 반도체 환경안전팀장 김태성 전무 등 삼성 관계자들과 주민들이 불산 사고로 숨진 고 박 모씨를 위한 묵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박 씨의 유족들은 "삼성전자 관계자가 빈소 조문은커녕 유족에게 연락조차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뉴시스

"그렇게 목숨 걸고 할 만한 일이었나…" 

박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뒤 STI서비스에 입사해 10년 넘게 일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성실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고인의 사촌은 박 씨가 "늘 자부심을 가지고 일한다고 말했다"며 "목숨 걸고 일하다 사망했는데, 그렇게 목숨 걸고 할 만한 일이었나…"라고 허탈해했다.

고인의 어머니는 박 씨가 삼성전자에서 일한다고 했을 때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 줄"은 몰랐다. 그는 "(아들이) 밤중이고 새벽이고 할 것 없이 나갔다지 않느냐"고 가슴을 쳤다. 또 다른 유족은 "삼성에 들어가서 일한다고만 알았지, 걱정할 거 뻔히 아는데 누가 위험하게 일한다고 가족들에게 얘기하겠느냐"고 반문했다.

STI서비스 관계자도, 삼성전자 관계자도 누구 하나 당시 고인의 작업 환경에 대해 속 시원히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동료들도 대부분 쉬쉬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허 씨는 "STI서비스도 삼성에서 잘릴까 봐 직원들이 초비상인 것 같다"며 "어제 동료 한 분이 손을 붙들고 울더라. 미안하다고. 미안해서 가족에게 아무 말도 못 했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고인의 한 동료는 "(고인은) 주로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보고 현황을 총괄하다가 장비에 이상이 생기면 가서 현장을 관리하고 점검하는 일을 했다"고 말했다. 가스 누출 사고가 얼마나 자주 발생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휴대전화가 언제 고장 날지 모르듯이,기계가 고장 나는 시점도 불규칙해서 알 수 없다"고 했다.

"기계 결함으로 사람 죽었는데 개인 책임으로 돌리나" 

허 씨는 "하청 직원일지라도 10년 넘게 자기들 사업장에서 일했는데, 삼성은 언론에만 (정보를) 유출한다"며 "방송에만 대고 말하지 말고 유족들도 만나서 상황을 설명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더 나아가 "삼성전자가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허 씨는 "우리한테 우호적인 기사가 하나 올라오면, 삼성 측 반박 기사로 포털사이트 기사들이 다 밀린다"며 "우리가 소총을 쏘면 저쪽에서 미사일이 날아오는 격"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고인이) 방제복을 안 입었다고 하다가 우리가 입었다고 반박하니까 언론을 통해 인정했어요. 삼성전자는 밸브를 교체했다고 했는데, 다른 직원 말로는 불산이 새고 있는 상황에서는 (위험해서) 밸브를 교체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 밸브는 노후 밸브라고 하고요. 경찰은 삼성의 브리핑을 인용했습니다."유족들은 유독 가스가 유출된 것 자체가 잘못이고 사람이 죽었는데, '방제복 착용 논쟁'으로 몰아가는 것이 고인의 죽음을 개인 책임으로 돌리려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기계 문제인데, 기계에 결함이 생겼는데 자기네(삼성전자) 잘못은 따지지 않잖아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92조를 보면, 유해 가스가 누출돼서 노동자가 위험해질 우려가 있을 때 사업자는 기계 가동을 멈추고 유해 가스를 모두 제거한 다음 기계를 정비해야 한다.

장안석 건강한노동세상 사무국장은 "삼성전자는 공장을 계속 가동하기 위해 10시간 동안 가스 누출을 방치했고, 27일 밤 11시에야 가스를 제거하지 않은 채 수리 작업에 들어갔다"며 "삼성전자가 기본 안전 수칙만 지켰어도 노동자가 죽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나영 기자 

2011년 12월 21일 수요일

"국정원은 인터넷 검색 수준 …사태 수습 후 책임 물어야"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20일자 기사 '"국정원은 인터넷 검색 수준 …사태 수습 후 책임 물어야"'를 퍼왔습니다'
한나라 내에서도 "이희호 여사 조문 허가하라"

한나라당 내에서도 이희호 여사의 조문을 허용해야 한다는 공개 요구가 나왔다. 19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사실이 알려진 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애도를 표한다"며 "남편이 서거했을 때 조문특사단을 서울에 보내주신 만큼 조문을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었다.

한나라당 구상찬 의원은 20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긴급현안보고 자리에서 류우익 통일부 장관을 상대로 "이희호 여사의 개인적 조문은 허용하는 게 어떻나.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도 북한이 대규모 조문 사절을 보냈다. (이희호 여사 방문이) 인지상정이고, 허용하는 게 남북 관계 발전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정몽준 의원도 "이희호 여사 본인이 조문 하러 가겠다면 정부가 허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에 류 장관은 "조문 문제(이희호 여사 조문 여부)를 포함해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남북 관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또 국민 정서 등을 참작해 신중히 결정할 것"이라며 "(이 여사 방북을 포함해) 유관 부처간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구 의원이 거듭 이 여사 조문 허용을 요구하며 "잘 판단하라"고 말하자 류 장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정부 여당 안에서는 이희호 여사와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부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북한으로부터 조문을 받은 민간인을 조문단으로 보내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류우익 통일부 장관 ⓒ뉴시스

"국정원은 인터넷 검색 수준, MB는 후진타오와 20시간째 '불통'"

이날 긴급현안보고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20시간 동안 중국 후진타오 주석과 통화를 못한 것과 관련한 대중 외교의 문제점, 김 국방위원장 사망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정보 당국의 미숙함 등이 지적됐다.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은 "우리 정보 능력의 미흡함을 지적한다"며 "당사자인 우리가 예민해야 하는데 정보 수준 이 정도라니 걱정"이라고 말했다. 구상찬 의원도 "정보 당국의 정보 수집력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며 "이런 (어수선한) 상황이 끝난 다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보 당국은 정말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윤상현 의원은 "우리 정부의 대북 정보력이 인터넷 검색 수준이다. 삼성에서는 전날 알았다고 한다. 삼성의 정보력이 어떻게 대한민국 정보력보다 떨어지느냐"고 질타했다. 민주당 박주선 의원은 "우리 정보 당국의 수준을 보면, 국가정보원이 아니라 국가숙박원 아니냐. 통일부가 아니라 숙박부 아니냐"고 비판했다.

정몽준 의원은 "우리 대통령이 중국 정상과 통화를 못했다. 우리가 시도는 했느냐"고 물었고, 구상찬 의원은 "20시간 동안 대통령이 (중국과) 상호 정상간 통화 시도를 했는데 불발됐다. 이런 외교 문제, 어떻게 보느냐"고 질타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 전해진 후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2시 경에, 일본 노다 총리와 2시 50분 경에, 러시아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5시 경에 통화했지만, 중국 후진타오 주석과 이날 오전 11시 현재까지도 통화를 못했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심지어 카운터파트인 중국 외교부장과 통화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해 김 장관은 "서로 체제가 달라서...중국 측과 긴밀히 협의하고 잇고, 대사가 중국 외교부와 계속 (접촉)하고 있지만 (중국 측 관료들이) 해외 전화 통화는 익숙치 않아서 그 문제는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의원이 "북한과 중국간 군사 동맹 때문이냐"고 질문하자 김 장관은 "중국에서 이유를 뚜렷하게 설명하는 게 아니어서..."라고 말했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사망했는데, 중국 국가 정상과 통화를 못하는 이유에 대한 파악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구상찬 의원은 "양국 정상간 대화도, 전화 통화도 안되고, 외무장관간 전화 통화도 안되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것"이라며 "김정일 사망이 (동북아 정세에) 얼마나 큰 변수인가. 그런데 제일 중요한 중국 정상과 통화가 안된다. 대중 외교에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김형오 "군사 자극 않겠다 선언하라" VS "MB정부, 설설 기지 말라"

한나라당 안에서는 향후 정부의 태도와 관련해 강온파가 혼재해 있는 상황이다.

국회의장을 지낸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은 "북한 최고 지도자가 급작스럽게 사망했는데, 남한에 대해 북한이 공격할 상황이 아니지 않나"라며 "북한을 불필요하게 군사적 심리적으로 자극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외교부 장관이 대외적으로 천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몽준 의원은 "일부러 북한을 자극하는 것도 안 되지만 너무 북한을 의식해 스스로 위축될 필요가 없다"라며 "애기봉 성탄 트리 점등은 예정대로 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윤상현 의원은 "북한을 자극하기 위해 점등 안한다? 세상에 이렇게 설설 기는 이명박 정부, 처음 봤다. 그러니 제2의, 제3의 천안함 연평도 사건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현재 정부와 군 당국은 오는 23일로 예정된 경기도 김포 애기봉 등 총 3곳의 성탄 트리 등탑 점등을 하지 않기로 하고 종교단체에 협조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기봉 성탄 트리 점등은 북한이 "도발 행위"로 규정한 상태다.

이에 류우익 장관은 "점등 안한다는 게 아니라 아직 결정이 안 됐다. 허가를 하려고 했는데 북한이 장례중이고, 장례중인 상황을 고려해 민간 단체와 협의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세열 기자

2011년 12월 20일 화요일

평화를 관리하려면 다가가야 한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20일자 기사 '평화를 관리하려면 다가가야 한다'를 퍼왔습니다.
[김종배의 it] 김정일 조의, 싫어도 필요하니까 해야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코미디다. 28살 밖에 안 된 김정은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이어 최고 권력자가 되는 현실은 난센스다. 우리가 아는 한 김정은은 한 일이 없다. 북한에서 말하는대로 하면 '백두의 혈통', 우리의 일상용어로 하면 '유전자'를 이어받았다는 것 외에는 그가 북한 최고 권력자가 돼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엄밀히 말해 사기업에 불과한 재벌의 2·3세 상속조차 곱게 보지 않는 우리 아닌가. 하물며 2400만 북한 주민의 삶을 짊어져야 하는 북한 최고 권력자 자리를 단지 부모 잘 만나 거머쥐는 모습이 어찌 좋게 보이겠는가. 그건 부조리에 가깝다.

그런데도 원치 않는다. 김정일 위원장 사후의 북한이 급속히 붕괴되는 일은 원치 않는다. 김정은 체제가 불안정성에 휘말리는 것 또한 원치 않는다.


ⓒ연합

이유는 하나다. 한반도 평화 관리가 절대명제요 지상과제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 관리만이 국민의 안녕을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이 점증되는 수준을 넘어 붕괴상태로 이어지면 악몽 같은 상황이 도래한다. 김정은 체제의 붕괴가 한반도 전체를 아수라장 같은 혼미 상태로 내몬다.

솔직하게 묻고 답하자. 북한 체제가 붕괴해 수십 수백만 명의 북한 주민이 월남을 했을 때 우리는 그들을 감당할 여력과 의지가 있는가. 군사적 위기가 고조돼 하루하루를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는 상황을 감내할 수 있는가. 금전적·정서적 비용을 지불할 준비가 돼 있는가.

우리의 현실이 이렇다. 북한을 앞에 두고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북한 최고 권력자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못하면서도 최고 권력자의 정치기반이 안정되기를 기대하는 게, 부인하고 싶어도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감정적·도덕적 접근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감정의 배설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생산성은 없다. 이성적·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북한발 불안요인을 극소화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 조문 논쟁이 한창이지만 그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줄기가 아니라 가지다. 본질적인 문제는 남북간 교류다. 민간을 넘어 당국간 교류까지 모색해야 한다.

한반도 주변 4강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이 점증될 경우 주변 4강, 특히 미국과 중국이 어떤 전략으로 나올지 가늠하기 힘들다. 만에 하나의 상황에까지 대비한다면 남북간 핫라인을 구축하는 건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다. 한반도의 운명이 미중의 선택에 따라 갈리는 상황을 방지하려면 남북간 교류를 통해 완충제 겸 방어제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 정부가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

조문은 이를 위한 출발점이다. 남북간 교류를 트기 위한 시작이요,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첫발이다. 이희호 씨나 권양숙 씨의 조문을 막을 이유가 없다. 그건 사적 조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북한이 조문단과 조전을 보낸 데 대한 답례 차원이다. 이런 사적 조문을 막을 게 아니라 오히려 정부 차원에서 조의를 표하는 것까지 모색해야 한다.

좋아서가 아니라 필요해서 하는 말이다.



/김종배 시사평론가

북 체제 안정 역량, 생각 이상으로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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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칼럼] 조문 정국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이틀간의 시간 동안 북이 보여준 것

북한의 체제 생존력은 일단 생각 이상으로 높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관련한정보를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알 수 없게 완벽하게 관리한 점은 북의 체제 방어 수준이 만만치 않음을 증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북의 내부를 향한 외부의 개입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과시한 셈이기도 하다.

북으로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급서가 주는 충격과 위기를 관리하고 차기 체제를 조속하게 안정시키는 일 외의 중대사는 지금 없다. 여차하면 북한 붕괴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런 대응은 체제적 필연성을 가진다.

더군다나 김정일 위원장의 죽음에 대한 애도 못지않게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입증해 보이지 못하면, 북한 주민들이 겪을 혼란과 위기감은 통제 불가능의 상태가 된다. 그런 점에서 북의 체제 방어 시스템이 이틀에 걸쳐 이를 해결했다고 판단하고 사망 정보를 공개한 것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이명박 정권의 대북 정보 파악 역량에 대한 질타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의미하다. 이명박 정권만이 아니라 미국도 북의 체제 방어력과 정보관리의 벽을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여기서 중요하게 봐야 할 대목은 김정일 이후의 북이 자신을 철저하게 방어하고 정권 교체 동요기에 외부의 개입 가능성을 치밀하게 차단하는 작업을 완료했다는 점이다. 이걸 제대로 보지 못할 경우, 북의 김정일 이후 체제에 대한 전망은 오판에 기초할 수 있다.

순직한 지도자의 이미지

뿐만 아니라, 김일성 주석의 경우 남북관계를 재정비하는 작업에 몰두하다가 유명을 달리하고 김정일 위원장의 경우에는 북한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현지 지도에 골몰하다가 세상을 떴다는 대목은 북한 주민들에게 김정은 체제로 넘어가는 3대 세습의 정서적 정당성을 부여해준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하다가 순직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는 대를 이어 계승되고, 그에 따라 김정은 체제는 북한 주민들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얻은 것이다.

이 두 가지 면모, 즉 (1) 위기의 조건에서 작동한 체제 방어력의 수준과 (2) 지도자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결집도는 북한의 장래에 대한 섣부른 부정적 예상이나 평가를 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렇지 않아도 북은 김일성 주석 사후 체제 위기를 관리한 경험과 경제적 곤경을 헤쳐 온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번의 경우 그 학습효과가 가동할 수 있는 기반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덧붙여,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상태 악화와 김정은 후계 지목이 겹쳐서 진행되었다는 점은 만일의 유고사태에 대비하는 내부의 시스템 작동 준비가 상당 정도 정비되어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볼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쪽에서 생각하듯이 핵심적 지도자의 사망으로 인한 어떤 정치적 혼란이나 군사적 동요란 적어도 체제적 차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김정일 위원장의 예기치 않은 사망은 북 내부에 엄청난 충격과 위기감을 조성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때를 위해 그토록 주변 열강들과의 외교적 관계를 다져놓고 후계구도를 확정했던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존경심이 더더욱 우러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 비상관리체제와 계승 시스템을 김정일 위원장이 정치적 유산으로 남겨놓았다고 본다면, 북의 생존력은 결코 불안정하지 않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김정은이 지난해 10월 노동절 행사 당시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옆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AP=연합

준비된 후계체제와 유리한 주변 환경

또한 김정일 이후의 북은 김정은 하나의 주도 아래 모든 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체제의 방어와 생존을 위해 그를 중심으로 일치단결하는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안정될 수 있다. 주변 환경도 좋은 편이다. 중국의 대북 정책은 북의 체제 생존력에 기본 조건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과 러시아를 교차 방문하면서 후계체제의 안정화 전략을 구사하고, 사망 직전 미국과의 관계개선의 의지도 진전시켜나간 것은 모두 자신의 부재 이후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할 수 있다. 북의 지배 엘리트 들 역시 김정일 위원장이 마련해놓은 기반을 다지는 것 외의 생존전략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에 진력을 다할 것이며 "선군정치"의 최대 수혜자인 군 역시 이런 방향으로 힘을 쏟을 것이다.

김정은이 너무 어린 나이라고 하지만, 3대에 걸친 혁명 가계의 적통이라는 자의식과 짧은 시간의 훈련이지만 최고 지도자 과정을 밟았고 젊은 시절 김일성 주석의 이미지와 혼재되어 있는 면모는 그의 지도력에 일정한 카리스마를 부여하게 되어 있다. 할아버지가 항일 독립투쟁의 경륜을 가지고 있고 아버지는 대미 관계와 경제위기를 관리하고 돌파하기 위한 역량을 보였다면, 김정은의 경우는 세기적 격변기에 강성대국 내지 강성국가의 진로를 구체화하는 과제를 받은 셈이다.

그가 성공할지 아니면 실패하고 말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을 보는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그로서는 생각보다 신중하면서도 결단력 있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 그것이 그의 나이와 경력의 부족함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모를 수 없고, 또 권력의 핵심 주체 세력도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김정은 체제는 견고하게 다져진 아버지의 정치적 유산을 상속받을 뿐만 아니라, 내부의 강력한 지지와 외부의 지원을 받는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북에게 있어서 이것 외의 대안은 없고 중국과 러시아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일본도 이미 예상대로 북에 대한 조의표시를 했고 대북 접근의 밀도를 높이려 들고 있다.

조문 정국으로의 전환

따라서 김정일 위원장 이후 대북 정책에서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은, 김정일 사망에 대한 기본적인 조의의 예를 갖추지 않는다거나 북의 체제 생존력을 가볍게 본다든지 김정은 체제를 우습게 보는 일 따위다. 만일 그렇게 해버린다면, 그것은 북 체제 내부에 긴장을 불러일으켜 한반도의 평화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향후 대북관계 개선의 통로를 스스로 차단해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은 뻔하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조의 내지 조문 정국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물론 그렇다고 이명박 정권의 문제가 이로써 덮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한-미 FTA문제가 망각된다고 여기는 것 역시 착각이다. 잠시 우선순위가 바뀌어 일차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북은 외국의 조문사절을 받지 않는다고 했지 같은 민족의 조문까지 거부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중국의 후진타오가 영결식 참석을 하겠다고 했으니 조문사절 논란은 동양적 예로 볼 때 일단 "굳이 오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한 정도이다. 그게 조의 표시마저 거부하거나 조문의지를 밝히는 것까지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충격에 빠져 있는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우리가 진정 위로하고 한반도 평화의 내일을 위해 필요한 자세를 취하고 있음을 북에 분명하게 표시하는 일이다. '문상정치'라는 말도 있고 '조문외교'라는 말도 있다. 통 크게 그런 각도로 북의 상황을 대하는 노력과 모습을 보인다면, 이제까지의 여러 복잡한 감정과 정책의 모순이 일거에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정도로 풀려나갈 수 있다.

동양의 역사에서 조문이란...

김일성 주석의 죽음을 아버지의 죽음으로, 다시 세대가 바뀌어 김정일 위원장의 죽음을 또한 아버지의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북한의 현실에서 매우 현명하게 처신할 일이다. 상대는 의외로 강력한 체제 생존력을 가지고 있으며, 불안정한 요소가 있다 해도 적지 않은 기간 동안 북의 현실을 장악하면서 한반도의 장래를 결정해나가는 주체의 하나다. 그런 상대를 외면하고 무시해버린다면, 그건 한반도의 평화체제 수립에 역행하는 처사가 된다.

이제 곧 오바마 행정부도 북에 대해 조의를 표시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국면에 처한 북한과의 대화통로를 복구하는 일에 지체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대 중국 전략에 있어서도 유리한 선택이 아니다.

여기저기서 잇달아 이명박 정부의 공식적인 조의 표시를 요구하고 있다. 북은 예의주시할 것이다. 그리고 기억할 것이다.

동양의 역사에서는 적장이 죽어도 조문은 가는 법이다. 아니면 조의 정도라도 표한다. 이명박 정권은 그 의미를 혹여 부정하고 싶어도 하물며, 고(故) 김대중 대통령과 손을 잡고 한반도의 평화를 이룩하자고 했던 북의 지도자다. 노벨 평화상의 사실상 한 쪽 당사자다.

그렇다면 북의 핵은 뭐냐고 할지 모르지만,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에 대한 대응과정의 산물 아니던가? 대북압박 내지 적대시 정책의 포기와 북한의 핵전략 포기는 서로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는 사안이다.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가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되는 법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더 길게 말하지 않아도 답이 나오지 않는가?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