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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14일 월요일

50대를 찌른 돌직구 ‘다시 잘 살아보세’


이글은 시사IN 2013-01-13일자 기사 '50대를 찌른 돌직구 ‘다시 잘 살아보세’'를 퍼왔습니다.
대학 문화는 1980년을 전후로 명확히 갈린다. 그 이전 학번, 즉 50대는 유신 교육을 철저히 받았으며 학생운동과 동떨어진 세대였다. 삶이 불안해질수록 이들은 과거를 향수한다. 그것이 이번 선거로 나타났다.

 
ⓒ뉴시스 지난 12월19일 서울 여의도중학교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들.

낭만적인 대학생활을 꿈꾸던 내 눈에는 이상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70학번에서 79학번까지 정확하게 3년 터울인 나의 형·누나 4명은 대학 배지를 달고 다녔다. 나도 따라하고 싶었으나 결국 하지 못했다. 배지 다는 문화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다.  

1981년을 기점으로 대학생들은 존 레넌이야 죽든 말든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고 대학 배지는 모두 내팽개쳤다. 대학으로 말하자면, 지금의 50대와 40대를 나누는 기준은 1980년이다.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이 대학의 저항문화로 자리 잡은 것은 1981년부터였다. 대학에 국한해 본다면, 2012년 만 50세인 1962년생 81학번의 정서는 후배 세대에 더 가깝다. 근거가 있다. 

정권을 탈취한 전두환 세력은 대학과 대학생, 학부모에게 두 가지 당근을 주었다. 첫째는 졸업정원제이고, 둘째는 ‘휴교 불가’이다. 1981년부터 대학 정원은 졸지에 2배로 늘어나 대학 들어가기가 쉬웠다. 무슨 일이 있어도 휴교는 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1970년대 서울대 캠퍼스의 쌍쌍파티.

대학 사회와 문화는 순식간에 변했다. 1980년 5월 광주의 진상이 대학가에 암암리에 알려지고 그해 깨진 학생운동 세력이 재건되면서 캠퍼스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전두환 정권은 휴교를 하지 않는 대신 학내 민주화 운동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대학축제의 쌍쌍파티 파트너를 찾아다니던 형·누나들의 70년대식 낭만도, 내가 대학에 들어가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축제는 대동제로 바뀌었다. 파트너 손을 잡고 우아한 포크댄스를 추는 대신, 동지로 돌변한 여학생과 어깨를 부딪쳐가며 ‘해방춤’을 추어야 했다.

1980년을 전후로 대학 사회의 문화와 분위기는 이렇게 명확하게 갈린다. 말하자면, 지금의 50대와 40대의 대학 문화는 1980년을 기준으로 완전히 단절되었다(1980년에는 대학들이 거의 휴교를 하다시피 했다). 문화가 칼로 무 자르듯 이렇게 갈리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18년 독재정권이 비극적으로 막을 내린 혼란 상황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대학에서 체험했던 선배 세대와의 문화적 단절감을, 나는 30년 만에 다시 맛보았다. 바로 지난 12월의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였다. 

흔히 이번 대선의 결과를 ‘50대의 역습’이라고들 한다. 역습? 지금의 50대가, 지금과 다른 성향을 보인 적이 있어야 역습이랄 수 있을 것이다. 그 근거를 2002년 대선에서 진보 쪽으로 더 보낸 지지에서 찾기도 하는 모양이다.

1970년대 부천시청 앞 국기하강식(오른쪽). 모두가 멈춰 서서 손을 가슴에 올려야 했다.

“박근혜는 민생부터 이야기하잖아”

그러나 2002년에도 50대 투표율이 90% 가까이 될 정도로 높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이번에 투표장에 참 많이도 나왔다는 사실이 역습이라면 역습일 것이다. 그들은 과거의 성장 환경과, 지금 처한 환경을 가장 잘 반영한 정치 행위를 이번 투표에서 제대로 보여주었다.     

앞서 장황하게 나의 대학 경험을 이야기한 까닭은, 지금 40대와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한국 50대의 세대론적 정치 성향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50대의 성향은 나이가 들어 보수화한 것이 아니다. 50대의 정치 의식은 아래 세대에 비해 예민하지도 진보 쪽으로 진화한 적도 거의 없었다. 4·19세대, 6·3세대, 386세대에 비해 유신 세대, 긴급조치 세대라는 명칭은 파괴력이 떨어진다. 1987년 6월항쟁에서도 그들은 넥타이 부대로서 후배들의 조력자였을 뿐이다. 1970년대에 대학을 다니며, 당대 청년문화를 이끌었던 대학생들도 후배들과는 많이 달랐다. 

그 세대 대학생 비율도 지금의 40대에 비해 많이 낮은 10% 안팎에 불과했다. 그중에서도 진보 성향의 대학생은 소수에 그쳤고, 그 소수가 주도한 학생운동마저 사회과학으로 무장한 후배들에게 낭만적이라고 평가받았다. 

“박정희 정권 말기에 부마항쟁 같은 게 있었지만, 1960년생인 우리 나이만 해도 절대 다수가 독재에 이미 순응된 상태였다. 당시에는 대학생마저도 독재정권을 비판하거나 저항하는 의식이 별로 없었다.” 79학번 선배가 내놓은 의견이다. “당시 중앙정보부에 쫓기던 여학생이 있었는데 심정적으로나마 동조한 게 아니라 ‘왜 저러고 사나’ 여길 정도였으니까.” 

순응과 순치라는 것은 그 세대가 어릴 적부터 받은 정신교육에서 연유한다. 한국의 전후 세대는 직접 경험했든 아니든 굶주림이 무엇인가를 아는 세대이다. 

“나는 1954년생으로 전후 세대이다. 우리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비록 우리는 덜 굶었으나 배고픔의 공포에 대해서는 아버지에게 들어 잘 안다.” 자신을 늙은 50대라고 소개한 한아무개씨 말이다. 그들은 아버지 세대가 일제강점기에 받은 것과 비슷한 정신교육을 학교에서 받으며 자랐다.  

50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민족주의·국가관·안보관 등의 교육을 지속적으로 가장 짜임새 있게 받은 세대이다. 물론 그 교육의 대부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기에 이루어졌다. 50대의 맨 끝에 있는 나만 하더라도 고교 1학년 때까지 유신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 ‘박정희 키즈’를 만들기 위한 집요하고 철저한 정신교육이었다. 우리는 맞아가며 배웠다.

월요일 아침마다 애국조회를 했다. 매일 아침 교문에 들어설 때마다 “충성!”을 외치며 태극기를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나는 소리가 작다고 겨울 등굣길에 따귀를 얻어맞았다. 베트남과 전방의 국군장병 아저씨들에게 위문편지를 썼고, 국민교육헌장 363자를 달달 외며 반공 글짓기를 하고 포스터를 그렸다. 이승복 어린이는 우리의 영웅이었다. 매일같이 국기에 대한 맹세를 했으며, 국기 하강식 때는 가던 길을 멈추고 경례를 했다. 10월 유신을 지지하는 하얀 흉패를 까만 교복 왼쪽에 달고, 10월 유신은 한국 상황에 가장 적합한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배웠다. 

“어릴 적에 받은 정신교육이 우리 세대에 어마어마한 집단 무의식으로 흐르고 있다. 이것은 적절히 자극만 하면 불시에 튀어나온다.” 앞서 언급한 79학번 선배의 말이다. “대학에 가지 않은 고향 친구들에게 박정희라는 이름은 절대 비판할 수 없는 터부이다. 친구들에게 박정희는 그렇게 각인되어 있다.”

대선에서 50대가 보인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의 많은 부분은, 그이의 이력과 역량보다는 그이가 지닌 이미지와 상징성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는 아버지 시대의 추억을 환기하면서 그 시대에 대한 향수와 ‘경제성장’ ‘안보 튼튼’이라는 키워드로 50대의 ‘집단 무의식’을 자극한 것이다.

50대 초반의 다른 선배는 ‘묻지 마 투표’를 했다고 했다. 그에게 “유신 때 데모한 걸로 아는데 어찌 박 후보를 지지했느냐?”라고 물었다. 그는 말했다.

“아, 됐고. 난 이번에 무조건 박근혜야. 노무현 밀었더니 친노니 뭐니 갈라져서 싸움질이나 하고 민생은 뒷전이었잖아. 이번에 되면 안철수 챙겨야지, 이정희에게도 나눠줘야지, 싸움하다가 민생은 언제 챙기겠어? 그런데 박근혜는 민생부터 이야기하잖아. 한 번 더 속는 셈 치지, 뭐. 더 이상 묻지 마.” 그 선배에게 두 후보의 선거 공약은 별 의미가 없다. 개혁과 진보에 대한 불안과 불신이, 박 후보에 대한 무조건적인 투표로 연결된 것이다.     

한국의 50대가 처한 상황과 그들이 지닌 불안감에 대해서는, 대선 이후에 나온 여러 분석을 통해 널리 알려진 편이다. 그들은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인 동시에 자기들은 부양받지 못하는 세대이다. 자녀에 대해서는 대학 등록금·취직·결혼까지 뒷받침해야 한다. 선배들처럼 정년이 보장된 것도 아니고 아파트 값은 자꾸 떨어진다. 노후 대책도 또렷한 게 없으니 갈수록 불안하다.  

하우스푸어니 뭐니 하며 끊임없이 불안에 내몰리는 50대에게 정교한 선거 공약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건강보험 문제 하나만 놓고 보아도 “친구 100명 중 1명도 여야 후보 공약이 어떻게 다른지 모른다”라고 50대 후반에 이른 한 남성은 말했다. 그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50대는 정말 피곤하거든.”

피곤한 그들에게는 논리적인 선거 공약보다는 정서적인 호소가 잘 먹혀든다. 지금은 피곤하고 불안하니, 큰 변화도 싫고 예전처럼 단순하게 중단 없이 전진하며 살고 싶을 뿐이다. 박 후보의 마지막 구호 ‘다시 잘 살아보세’는 거기에 부응하는 최종병기였다.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에 익숙한 세대의 정서 한복판에 꽂아 넣은 돌직구인 것이다 . 

그런 그들에게 통하는 것은 이정희가 따발총처럼 쏘아댄 ‘6억원’ ‘유신독재’ ‘다카키 마사오’가 아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 왜 안 해? 애국가는 왜 안 불러?’ 같은 우직한 대포 한 방이 훨씬 효과적이다. 어릴 적 받은 교육 효과로 인해 50대는 민족주의로 단단히 무장되어 있다. 50대가 중시하는 민족주의란 요즘 유행하는 애국주의와 유사하다.

이번 결과를 두고 50대의 역습이라고 한다면, 젊은 세대의 신무기에 대한 역습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18대 대선은 트위터니 SNS니 하며 역사상 가장 뜨거운 인터넷 온라인 선거였다. 언론도 여기에 덩달아 춤을 추었다. SNS 여론에는 유독 관심을 많이 보였다. 소외층이 생겨났으니, 바로 50대이다. 

‘얘들 봐라?’ 하는 억하심정이 생겨날 법하다. 그리고 ‘투표율을 높이자’는 구호가 인터넷을 뒤덮자 ‘그래? 내가 높여주마!’ 하며 아무도 예상 못한 카운터펀치를 조용히 날렸다. 문재인 지지자들은 말이 많았으나, 박근혜 지지자들은 말이 별로 없었다.

나는 50대의 적극적인 투표 행위가, 2012년 초에 강력하게 등장했던 ‘쎄시봉 현상’과 유사하다고 본다. 쎄시봉의 통기타 문화에는 50대의 낭만과 추억이 서려 있다. 우리에게도 고유의 문화가 있다, 우리는 지금도 청바지를 입을 수 있는 영원히 낭만적인 청년이다, 우리에게도 한 방이 있다…. 그들은 쎄시봉 현상을 만들며 이 같은 점을 즐기고 확인했다. 50대는 자기들끼리 교신하며 김어준의 메시지를 전파했을 터이다. “쫄지 마!”

세상살이가 피곤하고 불안할 때면 쎄시봉 같은 복고문화가 힘을 얻게 마련이다. 현실이 괴로우면 과거는 상대적으로 풍요로워 보인다. 정서적으로는 넉넉하고, 경제적으로는 성장만 거듭했으니 그 시절에는 불안이 없었다고 여길 법하다. 과거는 흘러간 게 아니라, 복고문화를 통해 아름답게 복귀한다. 

박근혜 후보는 바로 그 같은 복고문화의 가장 큰 수혜자로 보인다. 50대의 욕망이 복고를 향해 분출된 것이다. ‘다시 잘 살아보세’는 베이비부머에게 필살기였다. 

 성우제 편집위원

2012년 11월 30일 금요일

박근혜, 당신이 바로 과거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11-30일자 기사 '박근혜, 당신이 바로 과거다'를 퍼왔습니다.

뭘 모르는 박근혜

"도대체가 문재인은 과거와 싸우기 위해 이 선거에 나온 것인가?""실패한 과거정부의 부활을 막아 달라."

박근혜가 한 말이다.

하나씩 짚자.

박근혜는 정말 뭘 모르는 모양이다. 그녀의 말대로 우리는 지금 먼저 "과거"와 싸우고 있다. 그 "과거"는 바로 박근혜이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결코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역사가 거꾸로 가는 것이다. 그녀의 존재 안에 압축된 과거가 깨끗하게 청산되지 못하면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는 열리지 못한다.

박근혜의 비극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녀가 그 과거의 유령이자, 잔재세력이며 미래로 가는 길을 막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데 있다.

아닌가? 쌍방 소통을 위한 토론은 전혀 할 줄 모르고, "연출된 토론"도 간신히 하고, 5.16 쿠데타와 유신시대의 악행에 대해서는 마지못해 사과하는 척 하고 역사반성의 요구를 "딸이 아버지의 무덤에 침 뱉게 하는 것"이라며 국민을 모독하는 발언이나 하는 그녀다. 이게 바로 우리가 싸우고 있는 "과거"다.

재벌을 키워 경제민주화를 가로막은 역사는 박근혜의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던 일이다. 이에 저항하고 문제를 제기했던 노동자들을 짓밟고 빼앗고 때리고 감옥에 가둔 자도 그녀의 아버지다. 빈부격차와 양극화의 틀을 만든 장본인 역시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다. 남북대치와 냉전을 이용해서 독재를 했던 것도 박정희다.

과거를 타고 앉아 미래를 움켜쥐려는 세력

그렇다면, 박근혜는 자신의 아버지를 정치적으로, 역사적으로 철저하게 부정해야만 이 과거에서 탈출할 수 있다. 딸로서가 아니라, 역사적 존재로서 그리고 정치지도자로서 그렇게 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녀는 우리가 싸워온 그 과거에 갇혔다. 그 과거와 먼저 싸워야 할 당사자는 바로 박근혜 자신인 것이다. 만일 그녀가 그랬다면, 우리는 박근혜에 대한 평가를 달리 해야만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과거를 철옹성처럼 옹호하고 그걸 도리어 이용하고 있다.

"과거를 타고 앉아서 미래를 움켜쥐려고 하는 것"이 그녀의 정체다. 그녀 자신과 박근혜를 둘러싸고 있는 세력들이 우리가 문제 삼는 그 과거와 결별했는가? 아니다. 그 과거에 기반해서 박근혜가 있다. 그리고 이들은 또다시 우리를 그 과거의 논법으로 공격하고 있다. 빨갱이니, 이념이니, 안보를 위협하니, 뭐니 해가면서 박정희의 유령을 부활시키고 있다. 그게 자신들의 힘이요, 무기이자 진지가 되니까 그런 것이다.

실패한 권력의 부활을 막자

따라서 그녀가 한 말을 고스란히 그녀에게 돌려주고 싶다.

"실패한 과거 정부의 부활을 막아 달라."

박근혜는 민주화에 실패한 세력의 후예다. 그리고 그녀는 그 과거권력의 부활을 꿈꾸는 자다. 박근혜로부터 정치적 민주화의 가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박근혜는 빈부격차를 없애는 일에 실패한 정당의 대표다. 그녀는 4대강 환경파괴사업을 비롯해서 검찰의 부패와 타락을 막는 일에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정당의 수장이다. 박근혜는 이명박을 포함한 이제 과거가 되어가는 그 과거권력의 핵심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과거 권력의 부활을 한사코 막기 위해 싸우고 있다.

민생이 힘든데 미래를 이야기 하지 않고 과거만 이야기하는 것이 온당하냐고 박근혜는 주장한다. 맞다. 그러자면, 이렇게 민생이 도탄에 빠진 현실에 대한 책임을 먼저 물어야 한다. 그게 누구일까? 노무현 정권의 실패를 그녀가 거론한다. 그 말에 대해 우선 받아들인다 치고, 그렇다면 그 실패를 복구하기 위한 책임을 지라고 이명박과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집권한 것이 아닌가?

이명박이 망가질 때까지 박근혜는 그동안 뭘 했는가?

그런데 이 이명박 정권이 이토록 처참하게 실패할 때까지 박근혜는 무엇을 했는가? 검찰이 저렇게 망가지고 무너지고 망해가는 데 박근혜와 집권여당이 책임지고 한 일이 뭐 하나 제대로 있는가? OECD 국가중 자살율 1위(매일 42명)가 된 나라에 박근혜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인가?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인가?

경영자가 바뀌었으면, 그 사업체는 실적이 그 전과 달라야 한다. 이명박이 집권한 시기, 박근혜는 그 경영 파트너였다. 상대가 인정하든 아니든, 그녀는 새누리당의 실질적 책임자고, 이명박 정권의 공동 경영자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민생파탄을 거론하면서 문재인 후보를 공격한다? 이게 앞뒤가 맞는 말인가?

우선 자신의 책임에 대해 철저하게 반성하고, 이명박을 공격해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민생을 거론할 자격 자체가 없는 것이다.

막가는 검찰을 방치한 것도 그녀와 새누리당이다. 불법민간사찰부터 시작해서 검찰의 억대 비리에 이르기까지 검찰개혁을 위해 한 일이 뭔가?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도리어 그 검찰을 이용해서 정적을 공격하는 일에나 온통 힘을 쏟아왔던 것 아닌가?

정권재창출? 민생도탄 정권의 연장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하고 싶은 것이 뭔가? 정권 재창출 아닌가? 그건 이명박 정권을 유지해온 세력의 집권 연장이다. 2013년이면 과거정부가 되는 이명박 정권의 새로운 부활이 박근혜로써 실현되는 권력의 실체다. 대표선수만 바뀌는 세력의 목숨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실패한 권력의 부활을 막고자 한다. 얼굴만 바뀌는 세력의 재집권을 저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제 결론은 무엇인가?

그건, "과거의 얼굴에 미래를 분칠해서 나온 박근혜와 그 세력"의 재등장을 우리는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재인이 감당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책임이다. 정권교체와 정치쇄신은 바로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일차적 작업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민주주의는 위협받을 것이며 이 나라의 평화는 공격받게 될 것이다.

이제 과거는 과거로 돌아가라. 이 과거와 싸우는 이는 모두 미래권력이다. 미래는 미래의 가치를 공유한 세력이 알아서 감당할 테니. 과거가 묻힐 역사의 관과 무덤은 이미 마련되어 있다.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