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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9일 일요일

진선미 “국정원 반값등록금 비판 문건에 정동영, 권영길 ‘종북좌파’ 명시”


이글은 경향신문 2013-05-19일자 기사 '진선미 “국정원 반값등록금 비판 문건에 정동영, 권영길 ‘종북좌파’ 명시”'를 퍼왔습니다.

국정원이 야당과 시민단체의 반값등록금 정책을 비판하면서 민주당 정동영 상임고문과 민주노동당 권영길 전 의원을 ‘종북좌파인사’로 규정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건이 공개됐다.

19일 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공개한 ‘좌파의 등록금 주장 허구성 전파로 파상 공세 차단’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보면 “각계 종북좌파인사들은 겉으로는 등록금 인하를 주장하면서도, 자녀들은 해외에 고액 등록금을 들여 유학보내는 등 이율배반적 처신을 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구체적인 사례로는 “‘등록금 상한제’를 주장하는 민노당 권영길 의원은 장녀(미국 코넬대)·장남(프랑스)을 해외로 보내는 등 표리부동 행보” “트위터를 통해 아예 ‘공짜 등록금’을 주장하는 민주당 정동영 의원도 장남을 대원외고 1학년에 재학 중 미국고등학교와 대학에 유학” 등을 열거했다.

이 문건 작성자는 말미에 “야권의 등록금 공세 허구성과 좌파인사들의 이중처신 행태를 홍보자료로 작성, 심리전에 활용함과 동시에 직원 교육자료로도 게재해야 한다”고 밝혔다.

진 의원은 “이 문건이 작성된 ‘B실 사회팀’은 앞서 박원순 서울시장 사찰 문건을 작성한 국익전략실과 같은 곳”이라며 “지난해 12월 이 사건이 처음 불거진 뒤 5개월 가까이 됐는데 검찰의 철저한 수사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구교형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2012년 6월 20일 수요일

'빨치산의 아들', 권영길과 이문열의 차이는…


이글은 프레시안 2012-06-20일자 기사 ''빨치산의 아들', 권영길과 이문열의 차이는…'을 퍼왔습니다.
[김제완의 '좌우간에'] '이넘의 이념'

연재를 시작하며

진보 보수라는 용어의 조합을 사용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말같지만 좌파 우파의 대용품으로 사용된 것은 90년대 중반경부터입니다. 80년대에는 사용되지 않았죠. 서양의 사회과학 사전에는 진보주의라는 말이 없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모든 이념은 진보를 지향하므로 진보주의라는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우리가 밥먹듯이 말하는 진보 보수라는 말에는 이런 여러 비밀이 담겨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애 마지막 몇 달동안을 진보주의 연구에 매달렸습니다. 그는 이때 진보의 비밀들을 발견하고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듯한 충격을 겪었을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그의 유저 '진보의 미래'에서 이런 불평을 했습니다. "이사람 말을 들으면 이사람 말이 맞는 것 같고 저사람 말을 들으면 저사람 말이 맞는 것 같고..." "왜 그리 어렵게 말해싼노." 그의 불평을 통해 우리는 진보 보수 규정이 얼마나 복잡한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노무현의 생애 마지막 작업은 미완의 작업으로 남겨졌습니다. 그 연구를 잇겠다면서 여러사람들이 나섰지만 수차례의 시도에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보 연구가 생각보다 간단치가 않다고 말합니다.

저는 지난 80년대 사회과학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엔엘 피디의 갈등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헷갈리는 이념문제를 종주국에 가서 공부하고 와야겠다고 결심하고 91년 프랑스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공부를 중단하고 재외동포언론운동에 15년 동안 매진했습니다. 재외국민 참정권 되찾기 운동에 40대 장년의 열정을 바쳤습니다. 저는 지금 다시 못 다한 공부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시기적으로도 이념 연구가 더욱 필요해졌습니다. 두 번에 걸쳐 호남이 지지하는 정권을 거치면서 지역갈등이 크게 완화됐는데 그 자리를 이념갈등이 차지하고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문화 등 각 방면에서 진보 보수 갈등이 나타나지 않는 곳을 찾기 어렵습니다. 이념갈등은 한국사회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요즘 통합진보당 사태로 때 아닌 색깔논쟁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요. 이념의 혼돈이 잘 나타난 사례입니다.

한반도는 이념에 의해 분단된 세계유일의 땅입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찾기 힘든 여러 가지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하는데도 국가보안법의 영향 때문이겠지만 우리학계에 이념연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념 문제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확인시켜서 간격을 벌려놓기나 하지요. 그래서 어떤 누리꾼은 "이넘의 이념"이라고 재치있게 말하더군요. 그런 이념 이야기를 재미있는 사례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려 합니다.

좌우간에, 좌파와 우파 사이에서

이문열과 권영길은 모두 40년대 생으로 지리산의 경상도쪽 자락에서 태어났다. 이들의 부친은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문열의 부친은 가족을 남기고 월북했고 권영길의 부친은 국군에 의해 사살됐다. 이 두사람의 공통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60년대에 같은 대학을 다녔으며 작가와 기자라는 문필업에 종사했다. 이와 같이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조건에서 살아왔지만 두 사람의 이념은 우리사회 양극의 두 끝점에 위치한다. 무엇이 이들 두 사람을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도록 했을까?

▲권영길 전 의원(좌)와 이문열 소설가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와 최우원 부산대 철학과 교수는 우리사회의 이념 스펙트럼에서 가장 왼쪽과 가장 오른쪽에 서있다. 진보정당도 이제는 자본주의 극복을 꿈꾸지 않고 기껏해야 복지국가를 주장하지만 김상봉은 여전히 자본주의 극복을 말한다. 최우원은 몇 해 전 이런 주장을 했다. "민족반역범 악마 김정일과 그것의 노비 김대중, 노무현, 주사파 일당이 꾸며온 평화협정 체결 등의 음모를 철저히 분쇄하고 국법에 따라 처단한다." 이들은 현재 50대의 동년배이며 각각 독일과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한반도의 남서쪽과 남동쪽 중심도시에서 국립대학 철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처럼 공통점이 많은데도 무엇이 그들을 양극단에 서게 한 것일까.

80년대에 처음으로 주체사상을 소개한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은 한국사회운동에서 신화적인 인물이다. 그는 90년대 초 서해안 바닷가에서 북한이 보내준 잠수함을 타고평양을 방문했다. 그 뒤에 지금 언론에서 언급되는 민혁당을 만들었으나 북한정권에 실망하고 전향했다. 그의 경우처럼 진폭이 큰 전향은 다시 찾기 어려울 것 같다. 그 뒤에 동료들을 이끌고 나와 뉴라이트 운동을 시작했으며 지금은 북한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김영환을 극좌에서 극우로 이동하게 만든 동력의 실체는 무엇일까? 극과 극은 통하는 걸까?

70, 80년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투사였던 이재오 김문수 등은 왜 반성문을 쓰고 한나라당으로 건너간 것일까? 그들의 존재 내부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더 이상 고생을 하고 싶지 않다는 세속적 욕구가 발동했나? 아니면 좌파 동료들과 갈등이 있었던 것일까? 김문수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2009년 8월 언론 인터뷰에서 기자가 변절에 대한 입장을 묻자 자신은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과거에 노동운동도 진보이었고 경기지사로서 투자유치와 일자리 만들기를 위해 뛰어다니고 있는데 이것이 진보 아니냐고 반문한다. 말장난 같기도 하고 맞는 말 같기도 하다.

70년대 박정희와 맞선 시기,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김수환 추기경이 2000년대에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진보진영의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그를 비난했다. 그는 변절한 것일까? 돌아보면 그는 70년대나 2000년대나 양심적인 종교인의 자리에 한결같이 그대로 서있었다. 종교인이 좌파일 리가 없다. 굳이 이념스펙트럼에 비춰보면 중도우파였다. 그런데 군사정권은 극우였기 때문에 그는 상대적으로 왼쪽의 자리에 서게 됐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김대중 노무현의 시대를 거치면서 민주화도 압축성장했다. 이 사회의 중심이 그보다 왼쪽으로 건너갔다. 그는 그 자리에 변함없이 서있었지만 갑자기 이 사회의 오른쪽에서 편재하게 됐다. 그렇다면 그가 변절한 것이 아니라 이념의 착시현상 때문이 아닌가.

작가 박완서의 타계 일주년 기념작으로 올해 1월 소설집 "부처님 근처"가 재출간됐다. 작가활동 초기인 73년 발표된 작품인데 이념전쟁의 와중에 작가의 오빠가 빨갱이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던 실제 경험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여느 분단소설과 달리 작가의 오빠도 좌익이었다. 박완서는 나이 스무살에 목도한 오빠의 죽음이 평생 뇌리에 상흔으로 남아 고통을 겪었던 것 같다. 그가 나이 칠십이 넘은 몇 해 전 어느 케이블 TV와 인터뷰를 했다. 이때 그는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해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통일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될 이념 갈등의 소용돌이가 두렵다는 것이다. 자기 생전에 그런 일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고 했다. 듣는 이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드는 말이다. 도대체 이념이 뭐길래.

지난해 3월 진보대통합 주제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노회찬 진보신당 전 대표는 옆자리에 앉은 유시민 당시 국민참여당 연구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와 같이 하려면 좌클릭해서 진보 쪽으로 오시오." 그러자 유시민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진보인데요?"

필자는 이 장면을 인터넷 동영상으로 지켜보다가 좀 과장해서 말하면 현기증이 일어났다.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더없이 중요한 논의를 하는 자리에서 마치 봉숭아학당 같은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노회찬은 진보를 레프트라고 여기고 말했던 것인데 유시민은 진보를 리버럴이라고 보고 말한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진보인가.

우파 좌파, 보수 진보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같은 부모 아래 같은 환경에서 성장한 형제들 간에도 진보 보수가 갈라지는 것을 보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 같기도 하다. 최근 몇해동안 미국의 과학자들이 이에 대한 연구결과들을 내놓았다. 뉴욕대 심리학자인 데이비드 아모디오는 2007년 논문에서 사람마다 정치 성향이 다른 까닭은 뇌 안에서 정보가 처리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아모디오는 43명에게 보수주의자인지 자유주의자인지 정치적 입장에 대해 질문하고 두개골에 삽입한 전극으로 전방대상피질(ACC)의 활동을 측정했다. 자유주의자의 뇌에서 이 부위가 보수주의자보다 2.5배 더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에서 열거한 모자이크 그림과 같은 단편적인 사례들은 이념이라는 잣대로 설명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변절이라는 말을 듣고 가슴아파했던 사람이라면 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기도만 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이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좌파 우파 진보 보수 등 이념 연구가 금기시되다시피 했다. 국가보안법이 맹위를 떨치던 시기에 이념에 가까이 갔다가는 경을 치기나 했을 테니 이해가 된다. 그 결과 이념에 대한 연구 부족이 지금 우리사회가 겪고 있는 이념갈등의 원인들 중 하나가 됐다. 이념의 본산지인 유럽에서는 복잡다기한 정치 사회 현상들을 간편하게 판단하도록 해주는 잣대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이념 이야기가 나오면 다들 손사래치고 자리를 피하려고 한다. 또는 좌우 중 다른 한쪽에 대한 적대감이 촉발돼 걷잡을 수 없는 싸움에 휘말리곤 한다. 앞으로 좌파와 우파 사이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따져보고 이념의 혼돈에서 비롯된 갈등들이 있다면 풀어내려 한다.

 /김제완 세계로 신문 대표

2012년 5월 5일 토요일

반성없는 당권파 '패악질'…통합진보, 어쩌다 이지경 됐나?


이글은 프레시안 2012-05-04일자 기사 '반성없는 당권파 '패악질'…통합진보, 어쩌다 이지경 됐나?'를 퍼왔습니다.
[해설] '부정경선' 통합진보당, 5년전 민노당 '복사판'

'평행이론'이 실감날 정도로 똑같다. 어찌보면 더 심한 듯도 하다. 2007년 대선을 전후한 민주노동당 분당국면과 현재 통합진보당 이야기다.

언론사 상대 '실력행사'도 5년 전과 닮은 꼴

1997년 대선의 프로젝트 정당인 '국민승리21'의 성과를 기반으로 2000년 1월 30일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이래 이 당이 시끄럽지 않거나 정파 갈등이 잠잠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권영길-노회찬-심상정이 맞붙은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파국의 조짐은 보였다. 대중적 지지를 가진 대표선수를 갖지 못했던 민노당 내 자주파 진영은 공식적으로 권영길 지지를 선언했다. 경선 와중에 노회찬 음해성 동영상이 민노당, 민주노총, 한국진보연대 게시판에 무차별적으로 유포됐다. 아이피 추적 등을 통해 '배후'가 거의 지목됐지만 유야무야 넘어갔다.

민노당의 2007년 대선은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었다. 이명박의 독주 속에 정동영은 'BBK'만 물고 늘어졌고 문국현이 경제민주화를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울 때 민노당은 '코리아연방공화국'을 국가 비전이라고 들고 나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경기동부'의 좌장으로 불리는 이용대 당시 정책위의장의 작품이었다.

이에 대해 '진보언론'들의 비판이 쏟아지자 자주파는 '정면돌파'를 감행했다. 당시 선대위 내 자주파 고위관계자들은 (한겨레), (경향신문), (프레시안)을 항의 방문키로 했다. 첫 방문지인 (한겨레)에서 사단이 났다. "기사에 팩트가 틀린 게 뭐가 있냐. 논조는 편집국의 고유권한"이라고 항변하는 김종구 당시 (한겨레) 편집국장에게 한 자주파 인사는 "너 몇 살 먹었냐"고 고래고래 고함쳤다.

민노당은 이를 동영상으로 촬영해 당 홈페이지에 올렸다가 빈축을 샀다. 당시 한 자주파 인사는 기자를 향해서도 "며칠 있다가 (프레시안)에 갈테니 기다리라"고 '예고'했지만 권영길 후보 등의 반대로 결국 성사되진 못했다.

2012년 3월 총선 국면에서 (프레시안)이 통합진보당 당권파(자주파)계열의 윤원석 성남중원 전 후보 성추행 전력과 청년비례 경선 과정의 온라인 투표 부정 의혹을 최초 보도했을 때도 똑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통합진보당은 부정 의혹을 최초 보도를 한 기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맹비난한 보도자료를 국회에 살포했고, 당 청년위원회는 (프레시안) 사옥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총선 이후엔 윤원석 전 후보가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고소했다.

5년 전 모습 그대로다.


▲ 비례대표 경선에서 부정투표가 확인된 뒤 3일 당 대표단이 수습대책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뉴시스

비당권파도 '방조자' 아니면 '공범'

'윤원석 후보에 대한 검증이 없었냐'는 질문에 당권파 계열 사무총장은 "잘 모르겠다"고 어이없는 대답을 했었다. 경기동부 계열 내에서 윤원석 전 후보의 추문이 '카더라'식으로 떠돈지도 오래됐지만 '정말 몰랐냐'는 질문에 대답을 한 사람은 없었다. 비당권파는 "우리가 뭘 아냐"는 식으로 침묵했다.

그리고 (프레시안)이 윤 전 후보 전력을 보도한 바로 그 다음 날 통합진보당은 '온라인 투표와 현장 투표에 문제가 많다던데'하는 소리를 뒤로 하고 비례대표 명단을 확정발표했다. 그리고 "총선 이후에 진상조사를 한다"는 어이없는 단서가 붙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렀다.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당권파'가 당권파에 질질 끌려다니는 건 마찬가지다. 5년 전에는 평등파 쪽의 항변과 일부 언론의 보도가 있었고, 2012년의 경우에도 유시민 공동대표가 한 때 당무를 거부하는 등 '항거'를 한 모습이 엿보이긴 한다. 하지만 "판을 깨잔 말이냐"는 협박 혹은 회유 앞에 굴복한 비당권파도 잘 치면 방조자고, 엄정하게 보면 공범에 다름 아니다.

'반격'과 '거래제안'도 5년 전과 닮은 꼴

'사고'이후의 모습도 지금까진 과거를 답습하고 있다. 2007년 대선 패배 이후 민노당은 자주파-평등파 합의로 심상정 비대위를 출범시켰다.

납작 엎드려있는가 했던 자주파는 당원 정보를 북한에 넘긴 일심회 관련자들을 제명해야 한다는 비대위측 안에 일제히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대선에서도 진 것이 아니다. 반북주의자들과 당을 함께 못한다"는 반격까지 나왔다. 이정희 대표가 지난 18대 총선에 비례대표로 영입된 직후 의원실 수석보좌관이 된 신석진 대표비서실장이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일 위험한 건 동지로 위장해 세작(간첩)질을 일삼는 일군의 세력"이라며 비당권파 측을 맹공하고 나선 것도 정확히 닮은 꼴이다. 통합진보당 홈페이지에선 당권파 성향 당원들이 자주파 성향의 민주노동자전국회의 출신인 조준호 진상조사위원장을 향해서도 화살을 날리고 있다.

5년 전 국면에서 "우리가 총선 비례대표까지도 포기할테니 다른 건 넘어가주면 안되겠냐"고 자주파 일각이 심상정 비대위 측에 정치적 거래를 제안한 것과, 최근 유시민 공동대표 측에 "이정희만 물러나고 비례대표는 자리 지키면 안 되냐"는 제안이 들어간 것도 너무나 흡사하다.

2008년 나왔던 '화려한' 쇄신책 재연될까?

당이 깨지는 것까지도 같은 전철을 밟게 될까? 참여당 출신 통합진보당 인사는 "참여당 출신 당원들은 운동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PD 출신들하고 또 달라서 '판 깨자는 말이냐'는 식의 당권파 협박이 안 먹힌다"면서 "유시민 대표가 '참자'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참자'고 해도 안 통한다"고 말했다.

두고 볼 일이다.당권파들은 당 홈페이지, 일부 언론, 비공개 회동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비당권파에게 '읍소'와 '압박'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분당 직후 민노당은 '뼈를 깎는 쇄신'을 표방했다. 전교조 위원장 출신인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혁신의 책임자로 영입됐고 당 대변인직도 비자주파계열 외부인사가 맡았다. 한 번도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던 당내 자주파 연대체인 '자주민주통일을 지향하는 전국모임'이 갑자기 해산성명을 발표하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이수호 비대위원장은 △외부 인사들이 참가하는 '국민평가위원회' 구성 △당명 개정검토 △노동자 정치세력화 새로운 단계로 발전 △국회의원 중간평가제 및 소환제 도입 △다양한 연대 연합 실현 △패권주의 극복을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 등의 혁신안을 발표했었다.

"주한 미군 범죄활동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해온 인물"이라는 이정희 변호사가 갑자기 영입됐고 '진정성'의 상징인 강기갑 의원이 당의 간판으로 나섰었다. 자주파 인사들은 수면 아래로 모두 사라졌다. 이런 과정을 통해 2008년 총선에서 그래도 5석을 얻으며 선전했다.

'쇄신' 안면몰수하고 '연대'에 전력투구한 '성과'

하지만 '안면몰수'는 그 때 부터였다. 비대위의 혁신안은 오간데 없었고 '신장개업 간판'이나 다름없었던 이수호 비대위원장 등 외부 영입 인사들은 철저히 배제됐다. 권영길 의원 같은 상징적 인물도 겉돌기 시작했다. 강기갑 전 대표 쪽에서조차 "대표가 힘이 없다. 사무총장한테 치인다"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이정희 의원이 당대표가 됐다.

분당 직후에는 그래도 전국적 자주파 연합체 성격이었던 이 당은 경기동부 단일대오 식으로 변모했다. 울산, 인천, 경남 등의 자주파가 지역 돌파에 여념이 없을 때 경기동부는 광주전남과 손을 잡고 중앙을 휘어잡았다. '이정희식 진정성'과 '당권파 단일대오'라는 두 가지 무기를 갖춘 민노당은 주로 '야권 연대'에서 쏠쏠한 성과를 거뒀다. 예전 자주파는 온라인 공간에선 약했는데 그 약점도 극복하는 모습을 보이며. 민주당을 압박하는 한편 국민참여당에 공을 들였다. (민중의소리) 주관으로 이정희-유시민 두 사람이 책도 쓰고 북콘서트도 했다.

진보신당에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 노회찬-심상정도 민노당 주도의 그림에 합류했다. 통합진보당이 출범할 때 "옛날 그림이 그대로 나오지 않겠냐"고 지적하자 진보신당 출신, 국민참여당 출신들 인사들이 "아니다. 진짜 달라졌더라. 저 사람들도 그 간 배우고 깨달은 게 많더다라"고 앞장서 손사래를 쳤었다. 참여당 출신 고위급 인사에게 "편견을 갖지 마라"는 충고도 들었다. 그런데 이 인사는 며칠 전 "심하다 심하다 해도 이럴 줄은 누가 알았겠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또 이렇게 됐다. 게다가 한 번 더 도돌이표 노래를 부를 기미까지 보인다.



/윤태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