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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4일 일요일

회장님을 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이글은 한겨레21 2012-11-05일자 제034호 기사 '회장님을 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퍼왔습니다.
[곽정수의 경제 뒤집어보기] 이념 아닌 국민들 삶의 문제로 시대적 대세된 경제민주화… 남 따라갈 게 아니라 스스로 실천 방안 찾아 기회 삼아야

» 지난 9월6일 참여연대가 서울 마포구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저지 농성장에서 경제민주화와 재벌체제 개혁을 위한 정책보고서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우리 회장님이 (감옥에서) 빨리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없겠나?” “우리 회장님이 (실형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이 뭐냐?”
요즘 몇몇 재벌그룹 임직원들을 만나면 듣는 질문이다. 혹자는 전관예우를 받을 수 있는 변호사를 찾거나, 총수에게 우호적인 기사가 언론에 실리도록 하는 방법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과연 원하는 결과가 얻어질까? 아니, 그것이 정말 근본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최근 재벌 총수와 관련한 법원의 달라진 태도는 판사 개인의 소신이라기보다 사회 분위기의 변화 때문이다. 대선을 맞아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경제민주화가 문제의 본질이다. 재벌 총수라도 법을 어기면 더 이상 봐줘서는 안 된다는 민심의 압력이다.

경제민주화 리스크에 ‘대응’ 않는 재계

사실 다른 재벌들도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현대자동차·두산 등의 총수들도 불과 몇 년 전 비자금, 차명계좌, 탈세,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법의 심판대에 올랐다. 그때는 시절이 좋아서 감옥행을 피했지만, 지금이라면 상황이 전혀 달랐을 것이다.
그럼 회장님을 구하는 진정한 해법은 뭘까? 경영은 기업 내부 자원과 역량을 합리적·효율적 방법으로 조직해 외부 환경에 적절히 대응함으로써 조직의 비전과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결국 경영의 핵심 중 하나는 외부 환경의 리스크(위험요소) 관리다. 경제민주화는 재벌에는 곧 리스크다. 싫다고 그냥 무시할 게 아니라, 적절히 대응해서 합리적 해결책을 찾아야 할 리스크다. 더욱이 이 리스크는 일시적인 게 아니다. 재벌그룹 임직원들도 사석에서 만나면 이구동성으로 “(경제민주화는) 이제 시대의 흐름이고,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우리도 다 안다”고 말한다.
재벌들은 경제민주화라는 외부 리스크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내부적으로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몰라도, 국민들 눈에는 좀처럼 달라진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중소기업과의 불공정 하도급 거래, 영세상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골목상권 침해, 전체 고용의 절반을 차지하는 비정규직 문제, 총수들의 법 위반 행위 등 재벌마다 걸려 있는 경제민주화 이슈는 한둘이 아니지만, 그 누구도 국민들 마음을 속 시원히 해주는 전향적 조처를 내놨다는 얘기를 들은 바 없다.
도대체 왜 그럴까? 4대그룹의 한 임원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어떻게 처리될지 아직 모르지 않느냐”고 답한다. 또 다른 재벌그룹 임원은 “다음 대통령으로 누가 당선될지 아직 모르지 않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국회의 법안 처리나 대선 결과에 따라 경제민주화 이슈가 달라질까? 속도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근본 방향은 거스를 수 없다.
이는 경제민주화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국민들 삶의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나는 골목상권의 영세상인,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 대기업 사내 하청으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모두 자기 삶의 어려움을 경제민주화와 연결시킨다.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든, 국민의 삶이 개선되지 않는 한, 경제민주화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경제민주화가 시대적 대세임을 인정한다면, 재벌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가만히 있다가 남의 뒤를 따라가는 방법이 있다. 다른 하나는 남보다 앞서 변화하는 방법이다. 기업의 역량은 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이다. 실제 대기업들은 경기가 어려워질 것 같은 징조가 보이면 ‘비상경영’ ‘위기경영’이다 해서 선제 대응에 나선다. 그런데 왜 가장 큰 리스크인 경제민주화에는 선제 대응을 하지 않고 온갖 집중포화를 맞는 것일까?

모범적인 LG, 자승자박 SK·한화

총수가 재판을 받고 있는 한 재벌그룹의 간부는 “회사 내부의 대책회의에서 온갖 아이디어가 쏟아진다”고 말한다. 그중에는 삼성식의 총수 경영 일선 퇴진 선언은 물론 소유와 경영의 분리 같은 깜짝 놀랄 방안들도 들어 있다. 갑자기 흥미가 당겼다. “그래, 위에서는 뭐라고 해요?” 돌아오는 대답이 허탈하다. “위에 보고할 수 없어요. 보고하면 목이 잘릴 각오를 해야 하는데, 누가 하겠어요.” 합리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면 땜질식 임시방편으로는 안 된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현실은 당장 “감옥에서 나오거나, 감옥에 가지 않을 방법을 찾으라”는 윗선의 지상명령에 따르는 것 외에는 다 불충이다.
요즘 경제민주화 이슈와 관련한 재벌그룹 기사가 쏟아지지만 예외인 그룹이 있다. 바로 LG다. LG는 2001년 재벌 최초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단순·투명한 소유지배구조를 갖췄다. LG는 지금 재벌 개혁과 관련해 쟁점이 되고 있는 순환출자 규제, 금산분리 강화, 계열분리명령제 도입 등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총수 일가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나, 골목상권 침해 이슈와 관련해서도 이름이 오르내린 적이 없다. 11년 전 LG가 막대한 비용을 치러가며 남보다 앞서 지주회사로 전환할 때 적잖은 사람들이 쓸데없는 짓 아니냐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지금 보면 LG는 선제적 대응을 통해 외부 리스크를 근원적으로 제거한 것이다.
SK 사례는 반면교사다. 2003년 분식회계 사태로 총수가 구속되고 이어 외국계 펀드인 소버린의 경영권 장악 시도 탓에 위기에 직면했다. SK는 위기의 근원인 지배구조 개혁을 천명했다. 이사회 중심 책임경영을 전면에 내걸고 조순 전 부총리 등 명망 있는 인사들을 사외이사로 잇달아 영입해 신선한 충격을 줬다. 언론에서는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8년 뒤 총수 형제의 회삿돈 횡령 혐의가 터져 그동안 애써 쌓은 공든 탑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한화는 또 다른 자승자박 사례다. 김승연 회장은 이번 구속이 세 번째다. 2007년 아들 관련 폭행사건으로 구속될 때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던 모습이 엊그제 같다. SK나 한화 모두 보여주기가 아니라 근본 개혁을 추진했다면 지금의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재벌들은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고, 국민의 요구에도 부응하는 경제민주화 실천 방안을 신속히 찾아야 한다. 국내 대기업들이 15년 전 외환위기를 계기로 외형 확장에만 매달리던 구태에서 벗어나 내실 위주의 경영으로 환골탈태한 것처럼, 껍질을 깨는 일대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된다. 필요하다면 총수들 목에 방울을 다는 각오로 말이다.

이웃 중국에서도 부는 경제민주화 바람

경제민주화 바람은 이웃 중국에서도 분다. 중국 기업들은 빠른 경제발전 속에서 노동자들의 삶의 질 향상에 대한 기대가 높아져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 요구를 거세게 받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일부는 시대의 변화를 거부한 채 노동자들을 억압한다. 노동자들의 잇단 자살과 시위는 그 반발이다. 하지만 일부 중국 기업들은 외부 리스크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과감한 경영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15개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 그룹인 킨와는 좋은 사례다. 계열사인 정주케이블을 시작으로 ‘인간 중심 경영’을 구현한 한국의 뉴패러다임 혁신 모델을 도입해 노동자들의 삶의 질 향상, 평생학습 체제 구축을 통한 지식노동자 양성, 회사 경쟁력 강화, 노사관계 개선 등 노사 상생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재벌이 어떤 자세를 갖느냐에 따라 경제민주화라는 위기는 기회로 바뀔 수 있다. 또 그렇게 해야 총수들이 다시 감옥에 가는 일이 사라질 것이다.

한겨레 경제부 선임기자 jskwak@hani.co.kr

2012년 6월 20일 수요일

'빨치산의 아들', 권영길과 이문열의 차이는…


이글은 프레시안 2012-06-20일자 기사 ''빨치산의 아들', 권영길과 이문열의 차이는…'을 퍼왔습니다.
[김제완의 '좌우간에'] '이넘의 이념'

연재를 시작하며

진보 보수라는 용어의 조합을 사용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말같지만 좌파 우파의 대용품으로 사용된 것은 90년대 중반경부터입니다. 80년대에는 사용되지 않았죠. 서양의 사회과학 사전에는 진보주의라는 말이 없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모든 이념은 진보를 지향하므로 진보주의라는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우리가 밥먹듯이 말하는 진보 보수라는 말에는 이런 여러 비밀이 담겨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애 마지막 몇 달동안을 진보주의 연구에 매달렸습니다. 그는 이때 진보의 비밀들을 발견하고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듯한 충격을 겪었을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그의 유저 '진보의 미래'에서 이런 불평을 했습니다. "이사람 말을 들으면 이사람 말이 맞는 것 같고 저사람 말을 들으면 저사람 말이 맞는 것 같고..." "왜 그리 어렵게 말해싼노." 그의 불평을 통해 우리는 진보 보수 규정이 얼마나 복잡한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노무현의 생애 마지막 작업은 미완의 작업으로 남겨졌습니다. 그 연구를 잇겠다면서 여러사람들이 나섰지만 수차례의 시도에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보 연구가 생각보다 간단치가 않다고 말합니다.

저는 지난 80년대 사회과학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엔엘 피디의 갈등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헷갈리는 이념문제를 종주국에 가서 공부하고 와야겠다고 결심하고 91년 프랑스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공부를 중단하고 재외동포언론운동에 15년 동안 매진했습니다. 재외국민 참정권 되찾기 운동에 40대 장년의 열정을 바쳤습니다. 저는 지금 다시 못 다한 공부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시기적으로도 이념 연구가 더욱 필요해졌습니다. 두 번에 걸쳐 호남이 지지하는 정권을 거치면서 지역갈등이 크게 완화됐는데 그 자리를 이념갈등이 차지하고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문화 등 각 방면에서 진보 보수 갈등이 나타나지 않는 곳을 찾기 어렵습니다. 이념갈등은 한국사회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요즘 통합진보당 사태로 때 아닌 색깔논쟁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요. 이념의 혼돈이 잘 나타난 사례입니다.

한반도는 이념에 의해 분단된 세계유일의 땅입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찾기 힘든 여러 가지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하는데도 국가보안법의 영향 때문이겠지만 우리학계에 이념연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념 문제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확인시켜서 간격을 벌려놓기나 하지요. 그래서 어떤 누리꾼은 "이넘의 이념"이라고 재치있게 말하더군요. 그런 이념 이야기를 재미있는 사례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려 합니다.

좌우간에, 좌파와 우파 사이에서

이문열과 권영길은 모두 40년대 생으로 지리산의 경상도쪽 자락에서 태어났다. 이들의 부친은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문열의 부친은 가족을 남기고 월북했고 권영길의 부친은 국군에 의해 사살됐다. 이 두사람의 공통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60년대에 같은 대학을 다녔으며 작가와 기자라는 문필업에 종사했다. 이와 같이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조건에서 살아왔지만 두 사람의 이념은 우리사회 양극의 두 끝점에 위치한다. 무엇이 이들 두 사람을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도록 했을까?

▲권영길 전 의원(좌)와 이문열 소설가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와 최우원 부산대 철학과 교수는 우리사회의 이념 스펙트럼에서 가장 왼쪽과 가장 오른쪽에 서있다. 진보정당도 이제는 자본주의 극복을 꿈꾸지 않고 기껏해야 복지국가를 주장하지만 김상봉은 여전히 자본주의 극복을 말한다. 최우원은 몇 해 전 이런 주장을 했다. "민족반역범 악마 김정일과 그것의 노비 김대중, 노무현, 주사파 일당이 꾸며온 평화협정 체결 등의 음모를 철저히 분쇄하고 국법에 따라 처단한다." 이들은 현재 50대의 동년배이며 각각 독일과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한반도의 남서쪽과 남동쪽 중심도시에서 국립대학 철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처럼 공통점이 많은데도 무엇이 그들을 양극단에 서게 한 것일까.

80년대에 처음으로 주체사상을 소개한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은 한국사회운동에서 신화적인 인물이다. 그는 90년대 초 서해안 바닷가에서 북한이 보내준 잠수함을 타고평양을 방문했다. 그 뒤에 지금 언론에서 언급되는 민혁당을 만들었으나 북한정권에 실망하고 전향했다. 그의 경우처럼 진폭이 큰 전향은 다시 찾기 어려울 것 같다. 그 뒤에 동료들을 이끌고 나와 뉴라이트 운동을 시작했으며 지금은 북한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김영환을 극좌에서 극우로 이동하게 만든 동력의 실체는 무엇일까? 극과 극은 통하는 걸까?

70, 80년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투사였던 이재오 김문수 등은 왜 반성문을 쓰고 한나라당으로 건너간 것일까? 그들의 존재 내부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더 이상 고생을 하고 싶지 않다는 세속적 욕구가 발동했나? 아니면 좌파 동료들과 갈등이 있었던 것일까? 김문수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2009년 8월 언론 인터뷰에서 기자가 변절에 대한 입장을 묻자 자신은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과거에 노동운동도 진보이었고 경기지사로서 투자유치와 일자리 만들기를 위해 뛰어다니고 있는데 이것이 진보 아니냐고 반문한다. 말장난 같기도 하고 맞는 말 같기도 하다.

70년대 박정희와 맞선 시기,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김수환 추기경이 2000년대에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진보진영의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그를 비난했다. 그는 변절한 것일까? 돌아보면 그는 70년대나 2000년대나 양심적인 종교인의 자리에 한결같이 그대로 서있었다. 종교인이 좌파일 리가 없다. 굳이 이념스펙트럼에 비춰보면 중도우파였다. 그런데 군사정권은 극우였기 때문에 그는 상대적으로 왼쪽의 자리에 서게 됐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김대중 노무현의 시대를 거치면서 민주화도 압축성장했다. 이 사회의 중심이 그보다 왼쪽으로 건너갔다. 그는 그 자리에 변함없이 서있었지만 갑자기 이 사회의 오른쪽에서 편재하게 됐다. 그렇다면 그가 변절한 것이 아니라 이념의 착시현상 때문이 아닌가.

작가 박완서의 타계 일주년 기념작으로 올해 1월 소설집 "부처님 근처"가 재출간됐다. 작가활동 초기인 73년 발표된 작품인데 이념전쟁의 와중에 작가의 오빠가 빨갱이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던 실제 경험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여느 분단소설과 달리 작가의 오빠도 좌익이었다. 박완서는 나이 스무살에 목도한 오빠의 죽음이 평생 뇌리에 상흔으로 남아 고통을 겪었던 것 같다. 그가 나이 칠십이 넘은 몇 해 전 어느 케이블 TV와 인터뷰를 했다. 이때 그는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해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통일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될 이념 갈등의 소용돌이가 두렵다는 것이다. 자기 생전에 그런 일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고 했다. 듣는 이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드는 말이다. 도대체 이념이 뭐길래.

지난해 3월 진보대통합 주제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노회찬 진보신당 전 대표는 옆자리에 앉은 유시민 당시 국민참여당 연구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와 같이 하려면 좌클릭해서 진보 쪽으로 오시오." 그러자 유시민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진보인데요?"

필자는 이 장면을 인터넷 동영상으로 지켜보다가 좀 과장해서 말하면 현기증이 일어났다.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더없이 중요한 논의를 하는 자리에서 마치 봉숭아학당 같은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노회찬은 진보를 레프트라고 여기고 말했던 것인데 유시민은 진보를 리버럴이라고 보고 말한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진보인가.

우파 좌파, 보수 진보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같은 부모 아래 같은 환경에서 성장한 형제들 간에도 진보 보수가 갈라지는 것을 보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 같기도 하다. 최근 몇해동안 미국의 과학자들이 이에 대한 연구결과들을 내놓았다. 뉴욕대 심리학자인 데이비드 아모디오는 2007년 논문에서 사람마다 정치 성향이 다른 까닭은 뇌 안에서 정보가 처리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아모디오는 43명에게 보수주의자인지 자유주의자인지 정치적 입장에 대해 질문하고 두개골에 삽입한 전극으로 전방대상피질(ACC)의 활동을 측정했다. 자유주의자의 뇌에서 이 부위가 보수주의자보다 2.5배 더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에서 열거한 모자이크 그림과 같은 단편적인 사례들은 이념이라는 잣대로 설명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변절이라는 말을 듣고 가슴아파했던 사람이라면 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기도만 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이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좌파 우파 진보 보수 등 이념 연구가 금기시되다시피 했다. 국가보안법이 맹위를 떨치던 시기에 이념에 가까이 갔다가는 경을 치기나 했을 테니 이해가 된다. 그 결과 이념에 대한 연구 부족이 지금 우리사회가 겪고 있는 이념갈등의 원인들 중 하나가 됐다. 이념의 본산지인 유럽에서는 복잡다기한 정치 사회 현상들을 간편하게 판단하도록 해주는 잣대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이념 이야기가 나오면 다들 손사래치고 자리를 피하려고 한다. 또는 좌우 중 다른 한쪽에 대한 적대감이 촉발돼 걷잡을 수 없는 싸움에 휘말리곤 한다. 앞으로 좌파와 우파 사이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따져보고 이념의 혼돈에서 비롯된 갈등들이 있다면 풀어내려 한다.

 /김제완 세계로 신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