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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29일 목요일

'보수 대통령' 박근혜가 그 문을 열게 되면…


이글은 프레시안 2012-11-28일자 기사 ''보수 대통령' 박근혜가 그 문을 열게 되면…'을 퍼왔습니다.
[김제완의 '좌우간에'](22) 기울어진 축구장, 후반전이 시작됐다

1. 한국사회 현단계의 모습

외국에 나가면 흔히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해외동포들은 요즘 조국의 발전을 보면서 대견해 한다. 그런데 국내에 와서 보면 다들 사는 게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일까. 처음으로 대선에 참여하는 재외국민들이 한 표를 올바로 행사하려면 국내사정을 알아야 한다. 그들을 위해 지난 3년간의 한국정치사회 개론을 작성했다.

양극으로 치닫는 사회

한국사회는 각종지표를 보면 이제 선진국에 진입했다. 1인당 GDP는 2만3천달러에 이른다. 지난해 12월 우리나라는 사상 처음으로 연간 무역규모 1조 달러 시대를 열었다. 무역규모는 수출 수입액을 합산한 것으로 1조 달러를 돌파한 국가는 전세계에서 9개국에 불과하다. 삼성전자는 소니 등 일본의 전자업체들을 일찌감치 따돌렸다. 한국 핸드폰 등 전자제품과 자동차는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세계시장에서 1등을 하는 한국상품이 지난해 131개에 이른다.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 13개를 얻어 5위에 올랐고 LPGA 10위권에 한국여자 선수들이 절반에 이른다. 한국영화는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고 아시아에서 한국 드라마와 가요가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류가 절정이다. 사이의 강남스타일은 빌보드 2위에 올랐다. 국내 어디를 가도 도로 건물들이 번듯하고 터널 교량 등은 최신공법으로 건축된다.

먹고사는 문제 해결한 최초의 시대라는 말을 넘어서 이제는 단군 이래 가장 잘 나가는 시기라 불린다. 어떤 인류학자는 200년마다 국운 상승기가 찾아왔다고 말한다. 400년 전의 세종대왕 시기, 200년 전의 영정조 시기에 이어 지금이 그때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림자가 너무 짙다. OECD 나라 중에 1등하는 것을 모아보았다. 자살률, 노인빈곤률,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 대학등록금 등이 1등이고 출산율, 어린이 청소년 행복지수, GDP 대비 공공지출 등은 뒤에서 1등이다. 저임금 근로자 비율은 ILO 가입국 중 1위이다. 복지수준은 멕시코 다음으로 꼴찌에서 두 번째이다. 자영업자 수는 터키 그리스 멕시코에 이어 4위이고 GDP 대비 가계부채는 영국과 1, 2위 다투고 있다.

이중에 가계부채는 올해 3분기 937조5000억 원에 이르러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무역규모 1조 달러와 같은 수준이며 경제활동인구 1명당 4000만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 셈이다. 한국경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시한폭탄으로 불린다. 양육과 교육의 어려움은 여성들의 출산파업으로 이어져 세계 최저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OECD 통계는 영국의 장하준 교수가 지난 9월 국내 강연에서 정리해준 것이다. 우리 현실이 얼마나 기형적인지, 양극화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통계가 웅변하고 있다.

이따금 만나는 해외동포 중에는 양극화라는 용어가 이해안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판잣집도 없어졌고 거리에서 거지를 보기도 어렵다. 전국민의 절반이 아파트에서 거주하므로 부잣집이나 극빈층의 집이나 카메라에 비친 모습은 별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단단히 뿔이 난 국민들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전쟁 이후 60년 동안 한국사회는 성장을 위해 일로 매진해왔다. 오른쪽으로만 치달았다. 시대가 오른쪽으로 가자고 했고 국민들도 동의한 것이다. 이때 흔히 듣던 말이 파이를 먼저 키우자는 것이었다. 파이를 키우고 그 다음에 나누어 먹자고 하는 말에 다수 국민이 수긍했다. 너무 배고프게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보리고개의 기억이 남아있는 사람에게는 경제 발전을 위해 민주화를 보류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해전부터 심상치 않은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선진국에 들어섰다는 이 사회에서 나는 왜 여전히 생활이 고달프고 행복하지 못한가. 왜 여전히 기득권층의 부패는 계속되고 사회정의는 실현되지 않는가. 지난 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번역서가 100만부 넘게 팔렸다. 내용을 보면 직장인이 읽기 어려운 철학책인데 이처럼 팔린 이유가 무엇일까. 그 제목이 주는 효과라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정의가 없는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인당 GDP가 2만 달러를 넘어 지난해 2만3천 달러를 넘었다. 파이는 이만하면 충분히 커졌다. 그런데 파이가 커지면 나눠먹자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소위 낙수효과라는 트리클 다운 현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랫목이 따듯해지는데도 윗목에는 온기가 올라오지 않는다. 떡고물도 없다. 재벌기업은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곳간에 그득 담아두고 있는데 서민들은 빚잔치를 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재벌 개혁을 겨냥한 경제민주화가 나오게 됐다.

경제성장을 1% 하면 일자리가 30만개 생긴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 경제성장을 해도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다. 정부자료에 따르면 올해 대학 졸업자는 56만 명인데 일자리는 30만 개이고 그중에서 취업자가 만족하는 일자리는 3만 개에 불과하다. 매년 대졸 실업자가 20만 명 이상 쏟아져 나오는 구조이다. 얼마 전 TV에 나온 삼성의 인사담당 부사장은 지금의 젊은이들이 과거의 어느 세대보다 능력이 우수하다고 말했다. 해외경험도 갖추고 있어서 글로벌 마인드나 영어실력 등이 우수하다. 앞 세대보다 능력이 뛰어난데도 취업을 못하고 있다.

국가차원에서는 잘 나가는데 왜 국민들은 불행한가. 이런 일이 생긴 이유가 무엇일까. 외국인들이나 해외동포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밖에서 보면 대단히 발전된 나라인데 들어와서 보면 국민들이 불행하다고 말해 놀란다. 왜 그런가. 엄살인가. 전보다는 잘 살게 됐는데도 욕심이 많아서 그런가.

성장 일변도 발전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한쪽으로만 발전하다보니 생긴 왜곡현상이다. 오랫동안 오른쪽으로만 끌어당기니 몸이 뒤틀리고 있다. 이제는 왼쪽으로도 끌어주어야 몸이 바로 잡히고 앞으로 더 잘 나갈 수 있다. 일본을 눈여겨봐야 한다. 50년대 이래 보수우파 정당의 장기집권이 일본을 지금의 불균형상태에 빠뜨렸다. 우리도 그 전철을 밟을 것인가.

불균형 발전의 대표적인 사례가 부동산과 교육이다. 지난 80년대에는 주택공급률이가구 수에 비해 현저히 미달했다. 남의 집에 방한칸 얻어 사는 일이 흔했다. 그래서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부동산경기에 풀무질을 했고 여기에 돈이 몰렸다. 그 결과 건설경기가 살아났고 가장 짧은 시기에 다량의 공동주택이 공급됐다. 2002년에 주택보급률 100%를 넘어섰다.

문제는 빛나는 성장의 후과이다. 집값이 지나치게 올라 파리와 뉴욕의 수준에 이르렀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외식비, 택시비는 싼데 비해 주거비는 너무 비싸다고 말한다. 새로이 가정을 꾸려야 하는 30대는 도저히 집을 살 수가 없다. 전세값도 오르고 있어 주거권이 위협받고 있다.

교육문제도 부동산과 구조가 똑같다. 천연자원이 없는 우리에게 가장 풍부한 자원은 사람이다. 그래서 이들을 경쟁력 있는 자원으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했다. 아이들이 고생스럽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그렇게 해서 길러낸 우수한 인재들이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그런데 그것도 정도가 있어야 한다. 브레이크 없이 한쪽으로만 치닫다 보니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청소년 행복지수가 꼴찌이고 자살율도 가장 높다. 이민 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면 첫 번째 이유가 아이 교육문제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교육평론가 이범 씨는 현행 교육제도에서 배출된 인력이 기업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개인 경쟁력 위주로 만들어낸 청년들이 정작 협력을 필요로 하는 팀제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문제가 있으면 이제는 반대쪽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주위사람들과 협력하는 능력을 가르치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할 때가 됐다.

2. 한국정치 지난 3년간 무슨 일이 있었나

흔히 한국의 선거에서 진보 보수의 불균형을 기울어진 축구장에 비유한다. 진보가 한번 이기려면 천신만고 끝에 이기고 보수는 밥먹듯이 쉽게 이긴다는 것이다. 김대중이 집권할 때를 보자. 집권세력이 나라를 거덜낸 뒤에 치러진 97년 15대 대선에서 김대중은 김종필과 손을 잡고서 2위 후보와 겨우 1.6%포인트인 39만 표 차이로 이겼다. 이 선거는 3파전으로 치러져서 보수표가 분산됐었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 2002년의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은 정몽준과 손을 잡고서도 2위 후보와 2.3%포인트인 57만표 차이로 이겼다. 다들 기적이라고 했다.

축구에서 후반전이 되면 선수의 위치가 바뀐다. 한국사회도 오랫동안의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된 것일까. 지난 몇 해 사이에 게임의 양상이 바뀌고 있다. 혁명은 썩은 문짝을 걷어차듯이 이뤄진다는 말이 있다. 모순이 충분히 누적되면 비로소 큰 변화가 온다는 뜻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그런 변화의 초입에 들어섰다. 그런 징후가 처음 나타난 사건이 바로 무상급식이다.

무상급식이 국민정서의 뇌관을 때렸다

2009년 4월의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난데없이 무상급식이 나타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무상급식을 전면적으로 도입하자는 진보진영과 단계적으로 추진하자는 보수진영의 대립이었다. 무상급식 전면도입은 알고 보면 지나치게 급진적인 정책이다. 좌파성향이 강한 프랑스에서도 부모의 수입에 따라 4등급으로 나누어 소득이 많은 사람이 급식비를 더 낸다.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나라는 북유럽 나라밖에 없다. 그런데도 무상급식이라는 말이 왜 이슈로 떠오른 것일까. 당시 유권자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만큼 발전했으면 우리 아이들 밥 먹이는 것쯤은 국가가 해줄 수 있지 않나. 이런 요구에조차 토를 달고 되니 안 되니 하는 보수정당에 대해서 화가 난다. 국가보안법보다 무섭다는 국민정서법이 발동한 것이다. 그 결과 무상급식을 내세운 진보성향의 김상곤 후보가 당선됐다. 그 뒤로 무상급식이 이슈가 된 투표에서 여당은 판판이 패했다.

무상급식은 복지 문제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한국의 GDP 대비 복지수준은 OECD에서 꼴찌에서 두번째이다. 이런 불균형의 문제점을 오래전부터 주장해왔던 한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갑자기 복지문제가 이슈로 떠오르자 탄식을 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했을 때 아무도 들어주지 않더니 갑자기 복지를 말하는 이 시대가 너무나 놀랍다고 했다. 그의 발언은 복지문제가 얼마나 갑작스럽게 떠올랐는지를 보여준다. 좌파진영의 기획이 아니라 다수 국민들의 마음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터져나왔다는 말이다. 무상급식이라는 말이 국민정서의 뇌관을 때린 것이다.

진보시대로 한걸음씩 진군하다

새로운 움직임이 뚜렷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1년 후인 2010년 6월의 지방선거이다. 여당은 이 당시 발생한 천안함 사건을 보수표를 결집시키려는 등 선거에 이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30대 유권자들이 오히려 화를 냈다. 아이를 안은 젊은 엄마들이 투표장에 줄을 섰다. 이들은 오히려 왜 북한을 잘 다루지 못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했는가 따졌다. 2011년 북한의 1인당 GDP는 720달러로 남한의 2만 3,749달러에 비해 3%수준에 불과하다. 북한에 비해서 국력이 수십배에 이르는데 왜 형님노릇 제대로 못하냐는 것이다. 이들은 고교와 대학생 시기를 진보정권 치하에서 보낸 사람들이었다.

그 결과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대승을 거두었다. 한나라당은 광역선거에서 대부분의 시도지사 자리를 내줬으며 서울의 25개 구청장 중 21개를 빼앗겼다. 이전선거에서 25개 모두 석권했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국민들은 이 선거를 통해 보수정권이 싫다고 분명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이에 놀란 한나라당은 허둥대기 시작했다.

이런 새로운 흐름을 감지하지 못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악수를 두었다. 2011년 8월 무상급식 반대카드를 꺼내들고 도박을 했다. 오세훈은 시대가 바뀌는 전환기에 서있었는데도 그것을 감지하지 못했다. 단지 무언가 잘못 돌아가는 신호로만 보였다. 그래서 그 변화에 저항했다. 그는 무상급식 문제를 주민투표에 붙였다. 전면적 실시와 단계적 실시중 하나를 시민들이 선택하도록 했다. 결과는 패배였다. 8월 24일 실시된 주민투표의 투표율은 25.7%였다. 투표함을 개봉할 수 있는 투표율 33.3%를 달성하지 못해 투표함이 폐기됐다. 오세훈은 이틀 후 시장직을 사퇴했다.

오세훈의 주장은 무상급식 반대가 아니었다. 그의 주장은 무상급식을 단계적으로 실시하자는 것으로 하위 50%계층부터 차차 늘려나가자는 것이었다. 냉정하게 보면 이 안이 더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화가 나있었다. 석달 후인 10월26일 실시된 서울시장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은 패했고 시민운동가 출신 박원순이 당선됐다. 진보시대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면 올해 4월 총선에서 왜 민주당이 패한 것일까. 국민들은 진보시대로 가라는 신호를 분명하게 보여주었고 여론조사를 하면 매번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신호에 취한 민주당은 개혁을 외면했다. 그 결과 당명까지 바꾸며 절치부심해온 박근혜의 새누리당이 역전승했다. 민주당의 무능이 민심과 다른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4월 총선은 야당이 패했지만 민심은 데이터로 자기의 마음을 보여주었다. 의석은 새누리당이 과반을 얻었지만 득표수의 총합은 야당들이 얻은 표가 더 많았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의석수는 152석대 127석이었지만 여권정당 득표율과 야권정당 득표율은 48.2%대 48.5%였다. 4월총선이 국회의원 선거가 아닌 대통령 선거였다면 결과가 뒤바뀌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진보시대로의 진전이 멈춘 것이 아니었다.

이번 대선의 클라이맥스 중 하나는 중도 부동표를 안고 있던 안철수 후보의 사퇴가 꼽힐 것이다. 그런데 그가 사퇴한 이유를 놓고 언론이 갑론을박하고 있다. 보수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처럼 단일화협상 중에 안철수가 문재인에게 분노해서 마음이 돌아섰을까. 양자간의 TV토론 중에 안철수의 대북정책이 MB정권과 같다고 말해서 상처를 받았을까. 유언비어 수준의 발언도 나왔다. 안철수 문재인의 비공개회담에서 서로 눈싸움하며 몇십분간 말이 끊기기도 하며 감정대립했다는 말도 나왔다. 그런 이유로 사퇴했다고 말한다면 안철수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다름없다.

안철수가 사퇴 결심을 한 이유를 직접 찾아가서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 단일화협상이 시작된 11월중순부터 사퇴 발표를 한 23일까지 뚜렷한 변화가 일어났다. 적합도 지지도 조사에서 뿐 아니라 3자대결 여론조사에서 2-3위가 바뀌어 문재인에게 밀려났다. 이것이 결정적 원인이다. 이 당시 부산대 강연에서 좌석을 3천개 준비했지만 학생들이 5백명만 모였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한 선택을 한 국민여론이 그를 하차시킨 것이다. 중도가 아니라 진보를 선택한 시대정신이 그를 물러나게 했다고 봐야 한다.

투표율 70%가 이번 대선의 승부처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율은 선거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난 선거를 보면 김대중이 당선될 때는 80.7% 노무현이 당선될 때는 70.8% 이명박이 당선된 선거에서는 63%였다. 이 같은 전례에 비춰보면 대선에서 70%를 넘기면 진보후보가 유리하고 넘지 않으면 보수후보가 유리하다. 그래서 18대 대선의 승부처는 투표율이 70%를 넘길 것인가 여부라는 말이 나온다.

박빙의 양상을 보이는 이번 선거의 긴장감을 감안하면 투표율 70%는 넘을 것 같다. 만일 70% 투표율을 보인다고 가정해보자. 지난 4월 총선의 투표율은 54.3%였으므로 약 15%의 유권자가 새로 참여하게 된다. 15%이면 총유권자 4000만 명 중 600만 명이다. 이들 중에는 그동안 투표에 불참했던 수도권 유권자와 2030 유권자가 다수 포함돼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야당 성향이 강하다.

그러므로 선거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구도의 측면에서 보면 야당 필승국면이다. 기울어진 축구장에서 선수들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언론은 이 사실을 부각시키기를 꺼려한다. 보수 진보언론이 각각 자기 진영의 패배주의나 자만심을 경계하기 때문인 듯하다.

게다가 지금 같은 선거 막바지에는 양 진영이 화력을 총동원하므로 혼전양상으로 보인다. 선거판을 정확히 읽으려면 자욱한 화약연기 속에 숨어 있는 큰 구도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구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한국선거의 특징은 예측이 대단히 어렵다는 점이다. 정치선진국과 달리 한국 선거는 돌발변수가 많아서 판세가 엎치락뒤치락한다. 선거를 잘 치루는 쪽이 또는 운이 따르는 쪽에 승리가 돌아간다.

 
▲ 재향군인회 창설 60주년 행사에 참석했을 당시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프레시안(최형락)

3. 60년만에 찾아온 진보의 시대

역사는 진보의 시대와 보수의 시대를 거치면서 나선형적으로 발전한다. 그것을 추동하는 힘은 시대정신이다. 시대정신이란 다수 국민이 절실히 원하는 가치이다. 보수가 집권해서 성과를 거두다가도 그 한계에 이르면 진보가 요구된다. 진보정권도 국민들에게 외면당하면 보수로 바뀐다.

한국사회는 오랫동안 보수 이념으로 지금의 성장을 이뤄냈으나 이제는 사회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보수정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서 보수세력도 진보적인 가치를 내세운다. 새누리당 박근혜가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선점해서 문재인의 공약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보수세력도 진보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지난 총선시기 한 신문의 기사에는 "새누리당은 왼쪽으로 민주당은 더 왼쪽으로"라는 제목이 붙었다. 이 기사 제목이 현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국제 환경을 봐도 신자유주의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표를 먹고 사는 정치권은 진보시대의 도래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마침내 우리 현대사에서 처음으로 진보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열어갈 진보의 시대를 어떤 세력에게 맡길 것인가이다.

노회찬의원은 최근 필자와 같은 인식을 보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진보의 시대를 열어갈 시기이다. 이번 대선은 진보시대의 개막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를 선택하는 선거다. 그러면서 노 의원은 87년 상황을 예로 들었다.

87년 6월 항쟁은 민주화시대를 열었다. 한국사회는 오랜 군사독재 체제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것을 87년 체제라고 부른다. 민주화 시대를 열어나가는 과업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를 87년 연말 대통령 선거에서 결정했다. 그런데 군인출신 노태우가 당선돼 그 역할을 맡게 됐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나서 친구인 전두환을 유배보내야 했고 북한과 공산권에 대해 개방적인 입장을 취해야했다. 남북관계의 이정표가 되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이런 진보적인 정책을 군사반란의 주모자인 노태우가 해냈다. 그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이 같은 자기배반적인 일을 하다 보니 정체성의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끝까지 자기 생긴 대로 살고 있는 전두환과 비교된다.

그런데 노태우와 정반대의 자리에서 괴로워했던 사람이 있었다. 노무현은 그의 유저 '진보의 미래'에서 참여정부는 보수시대의 진보정권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대외환경이 좋았으며 이에 발맞춰 경제성장정책을 추진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참여정부는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 만들기라는 기치를 들고 집권했으며 이 부분에 대해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보수시대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미FTA 추진, 이라크 파병, 아파트원가 공개 거부, 비정규직 노동자 정책 등 보수정책을 채택했다. 진보가 진보답지 못하고 보수를 기웃거렸고 이 때문에 많은 지지자들을 잃게 됐다. 노무현이 지금 대통령이 됐다면 우리 역사의 순풍을 맞았을 테고 개인사적으로 불행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진보시대를 여는 일을 보수에게 맡길 것인가

새누리당 박근혜는 오래전부터 여론조사에서 1위를 유지해 대세론을 만들어냈다. 만일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진보시대의 보수대통령이 될 것이다. 민주화시대를 여는 일을 수행했던 군인출신 노태우와 같은 위상에 놓이게 된다. 노무현이 억지춘향 격으로 보수정책을 채용했던 것처럼 박근혜는 진보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지난 연초에 우리는 이미 예고편을 보았다. 보수정당이 당 강령에 있는 보수라는 말을 삭제하려고 시도해 파문이 일었다. 그 뒤에 계속된 좌클릭 행보로 보수지지자들을 실망시켰다.

보수가 좌클릭하고 강령을 바꾼다고 진보가 되지는 않는다. 국민을 현혹시키는 효과만 있을 뿐이다. 그 결과로 진보시대를 여는 대통령의 자리에 보수인사가 들어서면 어떻게 될까. 순조로운 역사 발전과 국운의 순항에 차질이 생길 것이다. 노태우와 노무현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시대와 맞지 않는 정권은 그 자신을 불행에 빠뜨리고 국민은 피곤해진다.

정치인들은 흔히 집권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들 자신에게나 적용되는 말이다. 국민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진보 또는 보수 정치를 필요로 한다. 정치인은 국민의 요구에 따라 불려나와 복무할 뿐이다. 지금 국민은 진보를 호출하고 있다. 22만 재외국민 유권자들이 한국정치사회를 이해하는데 이 글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김제완 세계로신문 대표 

2012년 9월 27일 목요일

장하준의 '투쟁'과 이념갈등의 맨얼굴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26일자 기사 '장하준의 '투쟁'과 이념갈등의 맨얼굴'을 퍼왔습니다.
[김제완의 '좌우간에'] 리버럴과 라이트의 자유전쟁

앞의 글에서 통합진보당 사태에서 나타난 리버럴과 레프트의 충돌현상을 소개했다. 여기서는 리버럴과 라이트는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양자 사이에 어떤 갈등이 있는가 살펴본다. 먼저 이와 관련한 특이한 현상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2005년 5월 보수논객 조갑제씨가 국민대 강연에서 "보수가 진보다"라고 선언했다. 그 이후 뉴라이트가 자신들의 단체 이름에 진보를 넣는 일이 있었다. 보수우파가 자신들을 진보라고 '참칭'하고 나선 것이다. 레프트와 리버럴이 진보로 불리고 있는데 이에 더해서 라이트도 진보를 선언했으니 각 이념정파간의 진보언어 쟁탈전은 중층적 구도를 갖기 시작했다.

이념 스펙트럼상 리버럴과 라이트는 중도우파와 우파의 위치에 서있다. 라이트는 우파적 속성이 더 많은 '더 우파'이며 리버럴은 상대적으로 적은 '덜 우파'라고 할 수 있다. 두 가지 모두 자유주의를 지향하므로 진보적 자유주의와 보수적 자유주의로 불리기도 한다. 좌파가 허용되지 않았던 한국의 제도권 정치에서 여야 정당을 가르는 기준점도 이곳이었다.

이런 정치환경이 만들어진 것은 남북 분단뿐 아니라 미국의 영향도 크게 작용했다. 미국정치는 리버럴과 보수주의로 나뉘는 구도여서 유럽의 좌파 우파와는 다르다. 리버럴이 한국에서는 진보로 불리지만 좌파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사실을 입증하는 사례가 있다. 민주당 출신의 오바마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의료개혁을 추진했다. 이로 인해 보수 시민운동단체인 티파티의 운동가들로부터 "당신 소셜리스트지?"라는 공격을 받았다. 이에 대해 "오, 노우! 나는 소셜리스트 아니다"라고 대답해야 했다.

몇 해 전 인터넷 서핑하다가 우연히 본 이야기가 기억난다. 어느 미국동포가 서울 거리를 지나다가 종북세력을 경계하자는 구호가 실린 플래카드를 보고 매우 놀랐단다. 그가 주목한 것은 구호의 내용이 아니라 이 플래카드의 아래에 쓰여있는 자유총연맹이라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이런 의문에 빠졌다. "아니, 미국에서 자유는 진보의 것인데 한국에서는 왜 보수단체가 가지고 있지?"

간단한 의문이지만 여기에는 자유가 진보의 것인가 보수의 것인가 라는 심오한 문제가 담겨있다. 어느 미국동포가 무심코 던진 말에서 드러났을 뿐 우리 모두 겪고 있는 일이다. 우리 정치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다음 사례에서 보듯 상반된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자유주의가 진보라고 말한다.

덜 우파와 더 우파, 서로 자유는 자기 것이라고 말해

"왜 한국사회에서 진보가 사랑받지 못하는가. 그것은 자유주의를 적대시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 진보주의가 자유주의를 계승했었다. 그래서 대중적 지지를 얻었다. (…) 진보가 확장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적 토대를 확보해야 한다." -유시민 "선거연합, 가능한가?" (2011년 3월 프레스센터 대토론회)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유주의만이 진정한 진보의 길을 걸었다. 보수주의도 혁신주의도 자유주의와 같은 길을 걷는 동안에는 진보의 편에 설수 있었지만 자유주의로부터 멀어지는 순간 진보의 걸림돌이 되었다. 그 순간 예외 없이 인류를 고통에 빠뜨리는 멍에로 작용했다." (2009년 7월 자유주의진보연합 창립선언문 중에서)

2011년 3월에 열린 토론회에서 노회찬이 진보주의와 자유주의는 따로 가는 게 좋다고 주장하자 이에 반대하면서 유시민이 위와 같이 말했다. 문제는 유시민의 발언과 뉴라이트 단체 '자유주의진보연합'의 창립선언문의 취지가 너무 흡사해서 구별이 안 된다는 것이다. 자유가 어느 쪽의 것인지 헛갈린다는 점에서 미국동포가 서울 거리를 지나다가 겪은 혼란의 내용과 유사하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유주의가 진보다"라고 주장한다. 자유가 자신들의 것이라고 한다. 자유주의에 대한 논란은 복잡한 만큼 많은 학자들에 의해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조지 레이코프의 저서 "자유전쟁"은 이런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자유에는 동의하는 완전히 합의된 핵심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 다른 중요한 부분들은 모두 채워야 할 여백으로 남아 있다. 자유에 대한 해석은, 이 여백을 진보주의자가 채우는가 아니면 보수주의자가 채우는가에 따라 근본적으로 다르게 도출된다. 바로여기서 전쟁이 시작된다. (레이코프 자유전쟁 27쪽)

자유의 개념 영역은 워낙 넓어서 진보 보수가 함께 둥지를 틀고 있으며 이들은 서로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땅따먹기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자유를 두고 벌어지는 개념 쟁탈전이어서 자유전쟁이라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그 전쟁은 미국에서 이런 식으로 수행된다고 레이코프는 말한다. "진보주의자는 말한다. 보수세력들이 자유를 탄압한다고.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은 말한다. 우리야말로 자유를 신봉한다고."

미국의 자유전쟁이 태평양 건너 한국사회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유시민의 발언과 뉴라이트 단체의 선언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이 두 가지의 차이를 판별해주는 도구를 얻기 위해 멀리 찾아갈 필요는 없다. 정치사상 개론서에 나와 있는 두개의 자유주의로 충분하다.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가 리버럴과 라이트를 가르는 기준으로 안성맞춤이다. 70년대 한국사회에서는 자유의 깃발을 들고 민주화운동을 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정치적 자유주의의 진보성이 쉽게 이해될 것이다. 경제적 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와 동의어와 다름없다.

신자유주의와 싸우는 자유주의자 장하준

이 두 가지 자유주의의 차이를 현실 속에서 확연하게 드러내주는 것은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리버럴의 투쟁이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 교수 장하준은 반신자유주의 전사를 자처한다. 그는 비슷해 보이는 두개의 자유주의가 얼마나 치열하게 맞설 수 있는지 보여준다.

▲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 ⓒ프레시안

장하준은 2010년 펴낸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통해서 신자유주의를 통쾌하게 쳐부수고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렇다고 그가 좌파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이 책으로 현대자동차의 포니정 상을 수상했다. 이 상의 수상은 장하준이 좌파가 아님을 "신원보증"해 주는 것과 다름없다. 그는 리버럴이며 그가 공격한 것은 신자유주의 현상들이었다. 그는 자유주의자였으므로 또 다른 자유주의의 어두운 면을 가장 가까이에서 들여다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리버럴과 라이트의 대립은 몇 가지 특성을 갖는다. 장하준의 경우에서 보듯이 신자유주의와의 싸움에서 리버럴이 더 치열한 전투력을 보여준다. 가까이에 있어서 더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이념상의 근접성 때문에 좌파와 우파처럼 구분이 명확치 않아서 이념대립보다 사람간의 대립이 우선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우리사회가 오랫동안 이념갈등으로 피곤함을 겪었던 것은 역설적이지만 이념적 차이가 적었기 때문이다. 이념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보니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싸운 것이다. 그렇다면 이념갈등이 아니라 사람갈등이었는데 이것을 이념갈등이라고 부른 것이 아닐까.

 /김제완 세계로신문 대표

2012년 6월 20일 수요일

'빨치산의 아들', 권영길과 이문열의 차이는…


이글은 프레시안 2012-06-20일자 기사 ''빨치산의 아들', 권영길과 이문열의 차이는…'을 퍼왔습니다.
[김제완의 '좌우간에'] '이넘의 이념'

연재를 시작하며

진보 보수라는 용어의 조합을 사용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말같지만 좌파 우파의 대용품으로 사용된 것은 90년대 중반경부터입니다. 80년대에는 사용되지 않았죠. 서양의 사회과학 사전에는 진보주의라는 말이 없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모든 이념은 진보를 지향하므로 진보주의라는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우리가 밥먹듯이 말하는 진보 보수라는 말에는 이런 여러 비밀이 담겨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애 마지막 몇 달동안을 진보주의 연구에 매달렸습니다. 그는 이때 진보의 비밀들을 발견하고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듯한 충격을 겪었을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그의 유저 '진보의 미래'에서 이런 불평을 했습니다. "이사람 말을 들으면 이사람 말이 맞는 것 같고 저사람 말을 들으면 저사람 말이 맞는 것 같고..." "왜 그리 어렵게 말해싼노." 그의 불평을 통해 우리는 진보 보수 규정이 얼마나 복잡한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노무현의 생애 마지막 작업은 미완의 작업으로 남겨졌습니다. 그 연구를 잇겠다면서 여러사람들이 나섰지만 수차례의 시도에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보 연구가 생각보다 간단치가 않다고 말합니다.

저는 지난 80년대 사회과학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엔엘 피디의 갈등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헷갈리는 이념문제를 종주국에 가서 공부하고 와야겠다고 결심하고 91년 프랑스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공부를 중단하고 재외동포언론운동에 15년 동안 매진했습니다. 재외국민 참정권 되찾기 운동에 40대 장년의 열정을 바쳤습니다. 저는 지금 다시 못 다한 공부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시기적으로도 이념 연구가 더욱 필요해졌습니다. 두 번에 걸쳐 호남이 지지하는 정권을 거치면서 지역갈등이 크게 완화됐는데 그 자리를 이념갈등이 차지하고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문화 등 각 방면에서 진보 보수 갈등이 나타나지 않는 곳을 찾기 어렵습니다. 이념갈등은 한국사회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요즘 통합진보당 사태로 때 아닌 색깔논쟁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요. 이념의 혼돈이 잘 나타난 사례입니다.

한반도는 이념에 의해 분단된 세계유일의 땅입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찾기 힘든 여러 가지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하는데도 국가보안법의 영향 때문이겠지만 우리학계에 이념연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념 문제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확인시켜서 간격을 벌려놓기나 하지요. 그래서 어떤 누리꾼은 "이넘의 이념"이라고 재치있게 말하더군요. 그런 이념 이야기를 재미있는 사례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려 합니다.

좌우간에, 좌파와 우파 사이에서

이문열과 권영길은 모두 40년대 생으로 지리산의 경상도쪽 자락에서 태어났다. 이들의 부친은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문열의 부친은 가족을 남기고 월북했고 권영길의 부친은 국군에 의해 사살됐다. 이 두사람의 공통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60년대에 같은 대학을 다녔으며 작가와 기자라는 문필업에 종사했다. 이와 같이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조건에서 살아왔지만 두 사람의 이념은 우리사회 양극의 두 끝점에 위치한다. 무엇이 이들 두 사람을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도록 했을까?

▲권영길 전 의원(좌)와 이문열 소설가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와 최우원 부산대 철학과 교수는 우리사회의 이념 스펙트럼에서 가장 왼쪽과 가장 오른쪽에 서있다. 진보정당도 이제는 자본주의 극복을 꿈꾸지 않고 기껏해야 복지국가를 주장하지만 김상봉은 여전히 자본주의 극복을 말한다. 최우원은 몇 해 전 이런 주장을 했다. "민족반역범 악마 김정일과 그것의 노비 김대중, 노무현, 주사파 일당이 꾸며온 평화협정 체결 등의 음모를 철저히 분쇄하고 국법에 따라 처단한다." 이들은 현재 50대의 동년배이며 각각 독일과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한반도의 남서쪽과 남동쪽 중심도시에서 국립대학 철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처럼 공통점이 많은데도 무엇이 그들을 양극단에 서게 한 것일까.

80년대에 처음으로 주체사상을 소개한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은 한국사회운동에서 신화적인 인물이다. 그는 90년대 초 서해안 바닷가에서 북한이 보내준 잠수함을 타고평양을 방문했다. 그 뒤에 지금 언론에서 언급되는 민혁당을 만들었으나 북한정권에 실망하고 전향했다. 그의 경우처럼 진폭이 큰 전향은 다시 찾기 어려울 것 같다. 그 뒤에 동료들을 이끌고 나와 뉴라이트 운동을 시작했으며 지금은 북한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김영환을 극좌에서 극우로 이동하게 만든 동력의 실체는 무엇일까? 극과 극은 통하는 걸까?

70, 80년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투사였던 이재오 김문수 등은 왜 반성문을 쓰고 한나라당으로 건너간 것일까? 그들의 존재 내부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더 이상 고생을 하고 싶지 않다는 세속적 욕구가 발동했나? 아니면 좌파 동료들과 갈등이 있었던 것일까? 김문수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2009년 8월 언론 인터뷰에서 기자가 변절에 대한 입장을 묻자 자신은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과거에 노동운동도 진보이었고 경기지사로서 투자유치와 일자리 만들기를 위해 뛰어다니고 있는데 이것이 진보 아니냐고 반문한다. 말장난 같기도 하고 맞는 말 같기도 하다.

70년대 박정희와 맞선 시기,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김수환 추기경이 2000년대에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진보진영의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그를 비난했다. 그는 변절한 것일까? 돌아보면 그는 70년대나 2000년대나 양심적인 종교인의 자리에 한결같이 그대로 서있었다. 종교인이 좌파일 리가 없다. 굳이 이념스펙트럼에 비춰보면 중도우파였다. 그런데 군사정권은 극우였기 때문에 그는 상대적으로 왼쪽의 자리에 서게 됐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김대중 노무현의 시대를 거치면서 민주화도 압축성장했다. 이 사회의 중심이 그보다 왼쪽으로 건너갔다. 그는 그 자리에 변함없이 서있었지만 갑자기 이 사회의 오른쪽에서 편재하게 됐다. 그렇다면 그가 변절한 것이 아니라 이념의 착시현상 때문이 아닌가.

작가 박완서의 타계 일주년 기념작으로 올해 1월 소설집 "부처님 근처"가 재출간됐다. 작가활동 초기인 73년 발표된 작품인데 이념전쟁의 와중에 작가의 오빠가 빨갱이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던 실제 경험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여느 분단소설과 달리 작가의 오빠도 좌익이었다. 박완서는 나이 스무살에 목도한 오빠의 죽음이 평생 뇌리에 상흔으로 남아 고통을 겪었던 것 같다. 그가 나이 칠십이 넘은 몇 해 전 어느 케이블 TV와 인터뷰를 했다. 이때 그는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해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통일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될 이념 갈등의 소용돌이가 두렵다는 것이다. 자기 생전에 그런 일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고 했다. 듣는 이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드는 말이다. 도대체 이념이 뭐길래.

지난해 3월 진보대통합 주제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노회찬 진보신당 전 대표는 옆자리에 앉은 유시민 당시 국민참여당 연구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와 같이 하려면 좌클릭해서 진보 쪽으로 오시오." 그러자 유시민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진보인데요?"

필자는 이 장면을 인터넷 동영상으로 지켜보다가 좀 과장해서 말하면 현기증이 일어났다.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더없이 중요한 논의를 하는 자리에서 마치 봉숭아학당 같은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노회찬은 진보를 레프트라고 여기고 말했던 것인데 유시민은 진보를 리버럴이라고 보고 말한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진보인가.

우파 좌파, 보수 진보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같은 부모 아래 같은 환경에서 성장한 형제들 간에도 진보 보수가 갈라지는 것을 보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 같기도 하다. 최근 몇해동안 미국의 과학자들이 이에 대한 연구결과들을 내놓았다. 뉴욕대 심리학자인 데이비드 아모디오는 2007년 논문에서 사람마다 정치 성향이 다른 까닭은 뇌 안에서 정보가 처리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아모디오는 43명에게 보수주의자인지 자유주의자인지 정치적 입장에 대해 질문하고 두개골에 삽입한 전극으로 전방대상피질(ACC)의 활동을 측정했다. 자유주의자의 뇌에서 이 부위가 보수주의자보다 2.5배 더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에서 열거한 모자이크 그림과 같은 단편적인 사례들은 이념이라는 잣대로 설명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변절이라는 말을 듣고 가슴아파했던 사람이라면 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기도만 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이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좌파 우파 진보 보수 등 이념 연구가 금기시되다시피 했다. 국가보안법이 맹위를 떨치던 시기에 이념에 가까이 갔다가는 경을 치기나 했을 테니 이해가 된다. 그 결과 이념에 대한 연구 부족이 지금 우리사회가 겪고 있는 이념갈등의 원인들 중 하나가 됐다. 이념의 본산지인 유럽에서는 복잡다기한 정치 사회 현상들을 간편하게 판단하도록 해주는 잣대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이념 이야기가 나오면 다들 손사래치고 자리를 피하려고 한다. 또는 좌우 중 다른 한쪽에 대한 적대감이 촉발돼 걷잡을 수 없는 싸움에 휘말리곤 한다. 앞으로 좌파와 우파 사이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따져보고 이념의 혼돈에서 비롯된 갈등들이 있다면 풀어내려 한다.

 /김제완 세계로 신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