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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7일 수요일

金-해임 元-수사촉구, 태도변화는 뭐지?


이글은 진실의길 2013-03-27일자 기사 '金-해임 元-수사촉구, 태도변화는 뭐지?'를 퍼왔습니다.
지지율 추락, 국면전환 위해 전략 수정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친분으로 MBC 사장에 선임된 지 3년. 그간 김재철 사장은 대단한 족적을 남겼다. 노조와 직원들을 적으로 돌리고, 공영방송 MBC를 망가뜨리면서까지 정권에 충성을 다했다. 그 과정에서 200명 넘는 직원들이 해고, 정직, 대기발령, 교육발령 등의 징계를 받았다.
MBC를 ‘대혼돈’에 빠뜨렸던 김재철
시청률도 곤두박질치며 콘텐츠 경쟁력이 크게 약화됐다. MBC의 평균 시청률(2009년) 6.04%(2009년/AGB닐슨 조사)에서 4.7%(2012년)으로 내려앉았고, 대표적 뉴스프로그램인 ‘MBC뉴스데스크’ 시청률도 9.49%(2009년)에서 5.32%(2012년)으로 크게 하락했다.
노조뿐 아니라 시민들까지 나서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김재철의 MBC’에 대한 여론이 크게 악화됐지만 170일간의 파업과 3차례의 해임안 제기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었다. 정권의 비호 덕분이었다.


그간 ‘김재철 해임안’이 네 번 상정됐다. 2010년 7월 7일 첫 상정됐지만 MBC 사장 임명권을 갖고 있는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 9명 중 여당성향의 6명이 반대하면서 부결된다. 오히려 2011년 2월 방문진은 김 사장의 연임을 의결한다. 2012년 3월과 그해 11월 등 두 차례 더 해임안이 상정됐지만 마찬가지 사정으로 부결되고 만다.
김재철 해임, 여당 2표는 ‘반란표’일까 ‘소신표’일까?
어제(26일) 네 번째 해임안이 방문진 이사 과반이상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야당이 추천한 최강욱, 선동규, 권미혁 이사와 여당이 추천한 6명의 이사 중 2명이 해임에 찬성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로써 김재철 사장의 퇴진이 확실해졌다.
그간 세차례 해임안 투표에서 줄곧 반대표를 던져온 여당 성향 이사들 일부가 왜 ‘반란’을 일으킨 걸까. 방문진 이사진은 해임 사유로 김 사장이 방문진과 사전 협의 없이 지역사 사장을 비롯한 임원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는 등 MBC의 관리감독 권한을 갖고 있는 방문진 거버넌스 체제를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형식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정치권의 입김에 의해 움직여온 방문진이다. 해임안 통과가 가능했던 것도 정치권, 특히 청와대의 암묵적 허락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봐야 한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사건이 지난해 11월 상정됐던 세 번째 해임안 처리 과정에서 벌어진다.
야당 추천 이사들이 발의한 1차와 2차 해임안 부결은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제19대 국회 개원과 맞물려 여야 정치권의 합의 아래 이뤄진 3차 해임안(지난해 11월)은 통과돼야 마땅했다. 하지만 부결됐다. 하금렬 대통령실장과 김무성 새누리당 총괄선대본부장이 방문진 이사에게 전화를 걸어 ‘김재철을 지켜라’고 지시했고, 이에 따라 김 사장 해임안에 동의하기로 했던 여당 추천 이사 3명이 반대로 돌아섰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재철 보호막’ 거둬들인 이유
‘윗선’의 싸인에 의해 움직이던 여당 추천 이사들 두 명이 해임안에 찬성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반란표’가 아니라 ‘소신표’였다는 얘기다. ‘김재철을 지켜라’는 특명이 내려오지 않았던 게 분명해 보인다. 김재철 사장에게 ‘정치적 보호막’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여당 추천 이사들 중 일부가 자신의 소신에 따라 표를 행사한 것으로 이해하면 틀림없을 것이다.
왜 김재철 보호막을 거두어들인 걸까? 이미 사회적 문제로 비화된 MBC 사태를 김 사장 해임으로 진정시키려는 의도일 수 있다. 또 부실인사로 인해 ‘수첩 참사’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등 새 정부에 대한 비판여론이 높아지는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정치적 노림수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김재철 해임’ 카드는 국면전환용으로 쓸모가 있는 건 사실이다.
이유는 또 있다. 김 사장은 ‘MB의 사람’이다. ‘친이계 사장’을 내보내고 ‘친박계 사장’을 앉히기 위한 절차가 아닐까. 그렇게 볼 수 있는 근거가 있다. ‘친이계’였던 김재우 방문진 이사장의 후임으로 TK출신인 김문환 전 국민대 총장을 밀어 넣었다. 김 신임이사장는 이한구 새누리당 원대대표와 고교 선후배 사이이고, 친박 핵심인 서상기 의원과는 경북중 동기동창이다.


달라진 여당, ‘원세훈 수사’ 언급해
여권의 태도가 달라졌다. ‘김재철 보호막’을 거두더니 입을 굳게 닫았던 국정원 사태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당내에 설정돼 있던 ‘국정원 여직원’이라는 금칙어가 해제 됐나 보다. 새누리당 이상일 대변인이 ‘원세훈 게이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치개입 논란과 관련해 5건의 고소고발을 당한 당사자로서 (해외로 출국 기도는) 부적절한 행동이었다고 본다. 원 전 원장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 검찰은 철저하게 수사해 진위를 가려줄 것을 기대한다.”
‘국정원장 해외 도피’라는 초유의 의혹으로 세상이 온통 떠들썩해도 한마디 뻥끗하지 않던 청와대가 왜 입을 열기 시작한 걸까? ‘침묵 모드’로 일관하는 게 불리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이 터지자 박 대통령은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를 향해 “성폭행범이나 사용할 수법을 동원했다”며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등의 거친 표현으로 국정원 여직원을 비호한 바 있다.
‘침묵 모드’에서 ‘선긋기 모드’로
불법을 저지른 사람을 비호한 셈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그 불법행위로 덕을 본 쪽이다. 불법행위의 지시자가 원세훈 전 원장으로 밝혀지는 경우 MB까지 연루됐다는 정황이 나올 수 있고, 이렇게 되면 ‘국정원 게이트’는 ‘이명박근혜’의 작품으로 비쳐질 수 있다. 게다가 원 전 원장의 ‘해외도피설’까지 불거진 마당이다.
서둘러 전 정권과의 연결 통로를 잘라내지 않는다면 무슨 변고를 당할지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에 ‘침묵 모드’에서 ‘선 긋기 모드’로 태도를 바꾼 것으로 풀이된다.


이상일 대변인의 말을 곱씹어 보면 수사 촉구는 형식적인 표현일 뿐 진의가 아니라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앞으로 청와대는 ‘원세훈 게이트는 ‘전 정권의 일에 불과하다'고 강조하면서 동시에 새정부와는 무관함을 강하게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표 도마’ 위에 오른 MB의 두 남자
박근혜 정부가 MB의 두 남자를 도마 위에 올려놓은 셈이다. 우선 대상이 된 사람은 방송장악의 ‘행동대장’이었던 김재철 사장과 MB의 복심이었던 원세훈 전 원장이다. ‘박근혜표 도마’위에서 ‘박근혜표 검찰’이라는 요리사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김재철 사장에 대한 보호막을 거두고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등 며칠 사이에 여권의 전략이 수정됐다. 불통, 독선, 공약 깨기 등으로 지지율이 크게 하락한 상태에서 줄줄이 낙마하는 인사대란까지 겹치자 시급히 국면전환을 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일단은 ‘김재철 해임’과 ‘원세훈 수사촉구’ 등으로 지지율 추락을 멈추게 한 뒤 반전의 기회를 노릴 것이다. 

‘김재철 해임’ 이후 MBC가 어떻게 될 것인가와 ‘원 전 원장 수사’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가 더 중요하다. 하지만 이 ‘두 마리의 생선’은 ‘박근혜표 도마’위에 놓여있다. 새정부의 입맛에 맞는 쪽으로 요리를 하려 할 것 아니겠나.

육근성 

2013년 3월 14일 목요일

강경에서 온건으로…국방부 1주새 누그러져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3-13일자 기사 '강경에서 온건으로…국방부 1주새 누그러져'를 퍼왔습니다.

지난주엔 “북 공격 가능성”
이번주엔 “특이 동향 없다”
국민불안 줄이려 국면전환 나선듯
“구체적인 위기해소 노력을” 목소리

지난 5일 북한의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가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겠다”고 밝힌 뒤 강경했던 국방부의 대북 기조가 점차 누그러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국면 전환의 필요에 따라 긴장을 완화하려는 것으로 풀이했다.13일 합동참모본부의 한 관계자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인) 키 리졸브 연습 첫날인 11일 북한 공군의 전투기와 헬기가 수백회 출격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규모는 평시 북한 공군의 출격 규모와 비슷한 것”이라고 밝혔으나, 2012년 여름 훈련 때 북한 공군의 최대 출격 횟수는 120회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 공군의 출격 규모를 과소평가한 것이다. 앞서 북한 공군기가 실제 출격한 11일에도 국방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북한군이 훈련을 강화하고 있으나, 특이 동향이 없다”고 밝혔다. 국방부 최고위 관계자도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고 군사적 도발 가능성을 낮춰 봤다. 북한 공군기의 출격 규모를 집계했을 12일에도 국방부는 “도발 징후가 없다”고만 밝혔다.11일 키 리졸브 연습이 시작된 뒤 나타난 이런 온건한 태도는 지난주 국방부의 강경한 태도와는 상반된 것이다. 5일 북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가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한 다음날인 6일 합참은 “도발 원점과 지원 세력은 물론이고 지휘세력까지 응징할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했다. 7~10일엔 “북한이 대규모 훈련을 하고 있다. 기습 공격 가능성이 있다”며 군사적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지난주 열탕에 있던 국방부와 합참이 이번주 온탕으로 옮겨간 까닭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정부가 국면 전환을 위해 대응 태도를 바꾸고 정보를 통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종대 편집장은 “지난 11일 대통령과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시작으로 이번 주부터 긴장 관리 모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11일 “북한의 도발 대응과 함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작동해야 한다”고 말했고, 같은 날 류길재 통일장관도 “상황은 엄중해도 남북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이런 긴장 완화 분위기가 어디까지 갈까?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정부의 태도 변화는 일단 국민이나 시장 불안을 잠재우려는 ‘국내용’이다.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려면 더 구체적인 위기 해소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종대 편집장은 “현재 남북한과 주변 나라들이 답답한 교착 상황에 있기 때문에 모두 대화 모드로 가려고 한다. 머잖아 북-미간, 그 다음엔 미-중간, 남-북간 대화가 재개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2012년 12월 14일 금요일

다급한 박근혜 "민주당, 성폭행범들 같은 수법"


이글은 프레시안 2012-12-14일자 기사 '다급한 박근혜 "민주당, 성폭행범들 같은 수법"'을 퍼왔습니다.
문재인 맹비난…"모략 밝혀지면 文, 책임져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다급해졌다. 대선을 5일 앞두고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자신을 턱밑까지 추격하며 양측의 상호 비방전도 가열된 가운데, 후보가 직접 나서 "흑색선전과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문 후보를 '네거티브 세력'으로 낙인찍으며 국면 전환을 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박근혜 후보는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린 것은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라며 "저는 오늘 이 순간부터 흑색선전과의 전면전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대선을 5일 앞둔 14일 '흑색선전과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연합뉴스

표정은 단호했고 목소리는 간간이 높아졌다. 박 후보는 이날 격양된 어조로 "성폭행범들이나 사용할 수법", "음습한 정치공작", "국기문란행위", "집단테러" 등의 격한 용어까지 써 가며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을 비판했다.

그는 "문재인 후보가 네거티브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직후부터 민주당과 선거캠프는 오히려 무차별적인 흑색선전으로 선거판을 뒤흔들고 있다"며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선거가 도저히 어렵다고 판단한 때문인지 허위 비방이 갈수록 도를 넘더니 이젠 국가기관까지 정치공작에 끌어들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난 2차 TV 토론회 당시의 '아이패드 논란', 1억5000만 원 '굿판' 논란, 신천지 연루 논란 등 자신을 향해 제기된 의혹들을 거론하며 "이 가운데 어느 하나도 사실이 있느냐"고 따져 물은 뒤 "이런 식으로 사실관계도 입증 못하는 무차별적인 허위사실 유포는 범법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 성폭행범이나 사용할 수법 동원해 젊은 여성 집단테러"

박 후보는 민주당이 국정원 직원의 선거개입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선 "이 나라의 공당이 젊은 한 여성을 집단테러한 것은 심각한 범죄행위"라며 "어제 문재인 후보는 이 사건을 민주주의 근간이 무너진 것이라고 했지만, 민주주의 근간을 무너뜨린 것은 문 후보와 민주당"이라고 공격했다.

이어 "심지어 그들은 이 여직원의 오피스텔 호수를 알아내기 위해 고의로 주차된 차를 들이받고, 경비실에서 주소를 알아냈다고 한다"며 "성폭행범들이나 사용할 수법을 동원해 여직원의 집을 알아내고 이것을 SNS를 통해 사방에 뿌리기까지 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문 후보가 보호하려는 인권은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만의 인권이냐"며 "이런 세력이 권력을 잡으면 대통령 비방하는 댓글 하나만 달아도, 컴퓨터 내놓으라고 폭력정치·공포정치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그런 엄청난 일을 벌이면서 민주당과 선거 캠프는 제보가 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단 한 가지의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민주당은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할 증거를 오늘 안으로 경찰에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또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명백한 흑색선전임을 민주당 스스로 인정하는 것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또 "이번 사건이 저를 흠집 내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민주당의 터무니없는 모략으로 밝혀진다면 문재인 후보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국가의 안위를 책임지는정보기관마저 자신들의 선거승리를 위해 의도적으로 정쟁의 도구로 만들려 했다면 이는 좌시할 수 없는 국기문란행위"라고 비판했다.

다급한 박근혜 "흑색선전과의 전면전 선언"

박 후보는 "어떻게 해서든 이기고 보자는 행태야말로 지난 선거에서 한 번도 고치지 못했던 우리 정치의 근본 병폐"라며 "선거 때마다 악성 종기처럼 다시 번져나오는 이런 괴질을 단호히 잘라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정치는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는 오늘 이 순간부터 흑색선전과 전면전을 선언한다"며 "이 땅에 다시는 음습한 정치공작과 허위비방이 나타나지 못하도록 이를 단호히 분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박 후보는 '새누리당발(發) 네거티브'에 대한 역공을 의식한 듯 "며칠 전 저의지원 유세에서 안철수 전 후보에 대해 해서는 안 될 막말이 있었다"며 "이 점에 관해서 제가 사과드리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12일 배우 강만희 씨가 박근혜 후보의 대구 유세현장에서 안철수 전 후보에 대해 "간신"이라 칭하며 "죽여버려야 한다"고 막말을 퍼부은 것을 거론한 것이다.

다만 박 후보는 전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발각된 새누리당 SNS미디어본부장 윤모 씨의 이른바 '댓글 부대'를 통한 불법 선거운동 의혹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한편 박 후보의 기자회견 직후 질문·답변을 대신한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은 해당 의혹에 대해 "당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며 "파악하지 못한 사무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저희들은 전혀 파악된 바가 없다"고 관련성을 부인했다.


 /선명수 기자 

2012년 8월 20일 월요일

MB, 제발 그냥 가만히 있어주면 안 되나


이글은 프레시안 2012-08-20일자 기사 'MB, 제발 그냥 가만히 있어주면 안 되나'를 퍼왓습니다.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 "일하고 또 일하겠다"는 말이 두렵다

자랑도 과(過)했고 거짓말도 과했다. 잘한 것은 자기탓이었고 잘못한 건 '글로벌' 때문이었다. 올해 8·15 경축사에서 MB는 그랬다. 모든 지표와 지수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이제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고 했다. 양극화의 골이 깊어지는 등의 어려움은 글로벌경제 위기 탓이라 했다. 대통령에 취임한 후 첫 광복절인 2008년 8월15일 그는 경축사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을 중요한 국정지표의 하나로 선언했다. 인류가 당면한 중요한 현안인 기후변화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중심국가로 간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가 주도한 글로벌 녹색성장 연구소(GGGI)가 이제 국제기구로 출범했고, 국제사회의 항구적 재산이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지난 몇 년 동안(MB가 취임한 이후를 말하는 듯하다) 더 큰 나라가 되었으며, 대한민국의 글로벌 리더십은 더욱 공고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북관계도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현상과 다르게, 실질적으로는 상당한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고 뜻밖의 말을 했다. 그러나 대부분 거짓말이었다.

지금 잘 살게 되었다고 믿는 사람 없다. 서민 부담인 간접세의 폭발적 증가에서 보듯이, 부자감세로 생긴 부담 고스란히 민초(民草)들의 몫이 되었다. 그래서들 아우성인 것 모르는 사람 거의 없다. 체감경제 고통지수가 MB정권 들어 최악을 기록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민주당의 한 대선후보가 분석한 이명박 정부의 경제고통지수는 평균 14.8로, 노무현 정부의 평균 13.3보다 1.5포인트 높다고 했다. 경제고통지수는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가 고안한 것으로, 실업률에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합한 값이다. 지수가 1포인트만 상승해도 국민의 경제상황은 심각히 악화 된다고 했다.

MB는 4대강 사업을 녹색성장의 상징 사업인양 국내외에 거짓말 해댔으나 그 4대강이 오늘날 어떤 모습이 되어 있는지는 다들 안다. 글로벌 녹색성장 연구소도 공식 출범은커녕, '주도국'이라는 대한민국조차 조약관련 비준 안이 국회에 접수되지도 않았다. GGGI가 공식 국제기구가 되려면 15개 회원국 중 3개국 이상이 국제조약을 체결해야 하나, 조약 체결한 나라 아직 하나도 없다고 했다. 결국 말짱 거짓말이었다.

남북관계에서도 미국과 북한이 계속 따로 만나고 다니는데도, 당사자인 우리는 팔짱끼고 구경이나 하고 있는 상태다. MB는 작년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그랬다. 당장 2013년 까지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 하면서, 감세 기조는 유지하겠다고 했다. 이율배반이요 모순이었다.

그러나 그런 건 그렇다 치더라도, 올해 2012년 MB의 8·15 경축사에는 가슴 철렁케 하는 대목이 등장해서 우리를 놀라게 한다. MB는 경축사 말미에서 "임기 마지막 날까지 일하고 또 일 하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여느 때 여느 대통령이 그렇게 말 했다면 미더움을 느끼면서 박수까지 보냈겠으나, 지금 이 시점에서 MB가 그런 목소리를 내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부담스럽다. 조마조마한 생각과 함께 두려움 까지 느껴진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필자는 지난해 11월 칼럼을 통해 MB에게 국정에서 손 뗄 것을 권유한바 있다. 대통령으로서 하고 있는 일이 국익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정부의 '시스템'에 업무를 일임하고 그저 가만히 있어 주는 게 어떠냐는, 고뇌에 찬 충고였다. 그게 국익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내놓은 의견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임기 마지막 날까지 일하고 또 일 하겠다"고 목청을 높이는 것은, 무슨 일 또 저지를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겨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바로 그 축사를 하기 며칠 전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MB가 독도를 방문했다. 이 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첫 방문이었다. 그리고는 일본과의 '갈등 도화선'에 뜨거운 불길이 댕겨졌다. 물론 대한민국 대통령이 대한민국 영토를 방문한 건 문제일 수 없다. 그러나 독도 문제는 그 동안 일본이 끊임없이 자기네 땅 임을 주장하고, 교과서나 방위백서에도 줄곧 그런 목소리를 실어 오던 터였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그 섬에 발을 디딘 것은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도장을 확실히 찍은 듯한 느낌을 주는 일대 '사건'이 되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환호했을 것이고, 일본 국민들은 극도로 '열'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안 그래도 독도는 우리 땅이다. 다른 나라도 그럴 테지만 특히 일본은 꿈결에 옷깃만 스쳐도, 연고권을 따지기 전에 "거기는 우리 땅"이라고 우기기부터 할 만큼, '땅'에 대해서는 유별난 데가 있다. 일본이 대동아 전쟁을 일으킨 것도 밑바닥엔 '섬나라의 땅 욕심'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지금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이 3개국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독도는 역대 대통령이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섬이다. 그랬어도 독도는 우리가 여태까지 실효적으로 지배해 왔고, 지금도 지배하고 있는 우리의 영토다. 그 섬에 MB가 왜 갑자기 가게 됐는지 무척 궁금하다. 많은 사람들이 기분 좋아 했으나 사전에 냉철히 따져봐야 할 대목이 있었던 것 같다. 독도 방문 이후 에 빚어질 일본의 격한 반응은 충분히 예상 했는지, 그 이후의 대응전략까지 마련해 놓고 방문을 결행했는지도 궁금하다. 문제는 그런 것 같지 않아 보이는 데 있다.

이미 레임덕에 빠져있는 MB는 독도에 갔다 와서 '일왕의 사과'를 말했고, "일본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는 않다"는, 대통령으로서 '안하는 게 좋을' 자극적인 이야기들까지 서슴지 않았다. '뼈 속까지 친미 친일' 소리를 듣던 지난날과는 전혀 다른 언행이었다.

독도 방문 후 그는 여야가 다 같이 반대한, 다른 사람도 아닌 현병철 씨, 국민의 83%가 반대한 그 사람의 인권위원장 연임을 재가했다. MB에게는 현병철 씨 연임에 대한 '집념'이 있었던 듯하다. 레임덕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 무척 답답해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병철 씨 연임이 쉽게 관철되지 않는 것을 자신의 통치행위가 방해 받는 '상징적 사안' 쯤으로 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현 씨의 연임을 재가한 것은 독도 방문 사흘 뒤였다. 여론의 흐름을 읽은 뒤 결심했을 것이다.

MB의 독도 방문 목적이 감지되는 대목이다. 레임덕과 관련해 그는 독도 방문에 승부수를 걸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동안의 대일외교 자세가 파격적으로 일관성을 벗어난 것을 보아도, MB가 노린 것은 레임덕에서 벗어나 국면을 전환시켜 보려 한 것이라는 견해가 설득력을 지닌다. 갔다 와서 그는 힘을 얻은 듯하다. 실제로 MB는 독도 방문 후 외부 일정이 부쩍 늘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어찌됐건 MB는 이리 비틀했다가 갑자기 저리 비틀하는, 냉탕 온탕 식 외교행태를 보임으로서, '뼈 속 친일'이라는 비난까지 받던 한일관계를 180도 뒤집으면서, '긁어 부스럼'까지 만들어 놓았다. '독도사태'를 일으킴으로서 MB는 "독도는 분쟁지역"이라고 세계를 향해 악을 쓰고 싶어 하는 일본의 목표를 '친절하게' 도와준 꼴이 되었다. 한없이 혼란스럽다.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이는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개념도, 일관된 전략도, 원칙도 없었다는 심각한 이야기가 된다. 그저 국익 따위는 따져보지도 않은, 즉흥적이고 무책임한, 얄팍한 계산만이 있었을 뿐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새누리당에서 조차 '국민정서에 기대 감정적으로 접근한 것'이라며, 신중해야 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일본의 대응방식은 종전과는 달라 보인다. 독도사태와 관련해 한국 주재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고, 정상간 셔틀외교와 스와프 협정의 재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각료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취약하다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해댔다. 그게 한국의 약점이라는 소리였을 것이다. 기분 나쁜 이야기다.

한국의 안보리 진출 저지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추가조치도 논의 중이라 했다. 국제사법재판소 제소와는 별도로 일본정부는 독도가 일본 땅임을 주장하는 민간 활동에 대해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전방위적 '찝쩍거림'도 강화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나라 국민들이 받게 될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 이런저런 외교력 낭비도 우려되는 판국이다.

게다가 같은 영토 분쟁이라도 일본은 중국 쪽엔 고분고분하고 한국 쪽에는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미 알려진 이야기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진 엊그제 센카쿠 열도 사태에서도 우리가 보았다. 힘이 약하면 쪽팔리며 손해 볼 수밖에 없는 게 국제사회에서 철저히 통용되는 정글의 법칙이다. MB는 그런 것 다 계산해 볼 생각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1965년 5월 미국에 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딘 러스크 국무장관에게 한일수교 협상에 걸림돌이 되는 독도를 폭파해 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명색이 대통령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역사의식이나 개념을 찾아볼 수 없는 소리였다. 그 박정희 씨의 딸이 지금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며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로 뛰고 있다.

박정희 씨의 '독도폭파' 발언 이후 반세기가 되어가는 지금, 독도를 놓고 MB도 일시적인 '레임덕 벗어나기'와 '국면전환'만을 노려 역사의식도 개념도 없는 '덜컥 수'를 놓음으로써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임기 마지막 날까지 일하고 또 일 하겠다"는 그의 목소리가 더욱 두렵다. 그냥 가만히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오홍근 칼럼니스트 

2012년 8월 16일 목요일

박정희 정권은 왜 독도지킴이의 손을 부러뜨렸나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8-15일자 기사 '박정희 정권은 왜 독도지킴이의 손을 부러뜨렸나'를 퍼왔습니다.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 칼럼] 독도 밀약, 이제는 말해야 한다

군사독재 정권이나 보수정권이 가장 거론을 기피했던 문제는 희한하게도 독도였다.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릴 때면 일쑤 들고나와, 반일감정을 자극해 국면을 전환시키곤 했지만, 이들의 기본적인 태도는 무관심이었다. 이걸 모르고, 정치적 퍼포먼스에 말렸다가 선의의 피해를 본 경우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게 홍순칠 독도의용수비대 대장이다.역사적으로 독도를 지킨 건 국가가 아니라 민간인이었다. 조선조 울릉도와 독도에서 왜구를 내쫓은 건 민간인 안용복이었다. 해방 후 독도를 지킨 건 예비역 특무상사 홍순칠과 33인의 민간인이었다. 홍씨는 전쟁을 틈타 독도를 제집 드나들듯 하던 일본인들을 몰아내기 위해 의용수비대를 조직했다. 정부 지원도 없어, 가산을 처분하고 의연금을 모아 기관총·박격포 등을 구입하고 의용대도 모집했다. 수비대는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함정의 침범을 두 차례나 격퇴하고, 가짜 해안포를 설치해 일본 함정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기지도 발휘했다.문제는 그 열정이었다. 수비대에서 물러난 뒤에도 1969년, 1972년 독도개발계획서를 경상남도에 제출하는 등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도록 재촉했다. 박정희 정권은 부담스러웠다. 홍 대장은 1974년 12월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사흘 동안 고문을 당했다. 중정의 요구는 더 이상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떠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다시는 글을 쓰지 못하도록 그의 오른손을 부러뜨리기도 했다고 부인 박영희씨는 전했다. 학교 조례 때마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떠들도록 한 정권이 왜 그러는지 홍 대장은 알 수 없었다.전두환의 신군부에서도 똑같았다. 신군부는 1980년대 초 그가 독도 지킴이로 북한 방송에 소개되자, 그를 즉각 체포해 극렬한 고문을 가하여 간첩 조작을 하려 했다. 결국 고문 후유증으로 홍 대장은 1986년 숨졌다. 전두환 정권은 독도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민간인 출입을 막았고, 심지어 노래 ‘독도는 우리 땅’을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독도

1965년 1월11일 서울 성북동 박건석 범양상선 회장의 홈바에서 정일권 국무총리와 일본 자민당의 실력자 우노 소스케 의원이 하나의 메모에 사인을 했다. ‘미해결의 해결’이란 원칙에 따라 성안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독도밀약이었다. 첫째, 독도는 앞으로 대한민국과 일본 모두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한다. 반박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둘째, 어업구역을 설정할 경우 양국 모두 독도를 기점으로 획정하되, 중복되는 부분은 공동수역으로 한다. 셋째, 현재 대한민국이 ‘점거’한 현상을 유지한다. 그러나 경비원을 증강하거나 새로운 시설을 증축은 하지 않는다.(노 다니엘 저 ) 결국 미해결 상태를 해결로 간주하고, 독도 언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일주일 뒤 1년 넘게 교착됐던 정상회담 예비회담은 재가동됐고, 6월22일 한-일 협정이 체결됐다. 함께 발표된 한-일 어업협정은 독도 주변 해역을 공동규제수역으로 규정했다. 밀약 내용 그대로였다. 공동규제수역 혹은 중간수역 규정은 지금까지 지켜진다. 임기 말에 돌연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며 일전불사를 외쳤던 김영삼 정부도 독도 인근 해역을 잠정적 조치수역(중간수역)으로 수용했다.밀약도 밀약이지만, 박정희·전두환 정권은 일본 정부와 민간에게서 막대한 정치성 자금을 받아 썼다. 박정희는 청구권 자금 이외에 1965년까지 5년 동안 6개 민간기업으로부터 6600만달러의 정치자금을 받았고, 전두환 정권은 출범하자마자 일본 나카소네 정부로부터 40억달러의 차관을 받았다. 그러니 독도를 물고 늘어지는 홍 대장을 가만두기 힘들었을 것이다.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에 대한 공세를 높이고 있다. 일왕까지 거론했다. 물론 뒷감당도 못하면서 쏘아대는 말대포라는 시각이 많다. 실제 박종우 선수는 그 피해자였다. 그러니 진정성이 있다면 밝혀야 한다. 독도밀약의 진상과 파기 여부를 말이다. 그래야 ‘독도 쇼’니 정치 선동이니 하는 소모적 논란을 막고 홍순칠, 박종우 같은 어이없는 희생도 막는다.

곽병찬 논설위원chankb@hani.co.kr

박정희 정권은 왜 독도지킴이의 손을 부러뜨렸나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8-15일자 기사 '박정희 정권은 왜 독도지킴이의 손을 부러뜨렸나'를 퍼왔습니다.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 칼럼] 독도 밀약, 이제는 말해야 한다

군사독재 정권이나 보수정권이 가장 거론을 기피했던 문제는 희한하게도 독도였다.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릴 때면 일쑤 들고나와, 반일감정을 자극해 국면을 전환시키곤 했지만, 이들의 기본적인 태도는 무관심이었다. 이걸 모르고, 정치적 퍼포먼스에 말렸다가 선의의 피해를 본 경우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게 홍순칠 독도의용수비대 대장이다.역사적으로 독도를 지킨 건 국가가 아니라 민간인이었다. 조선조 울릉도와 독도에서 왜구를 내쫓은 건 민간인 안용복이었다. 해방 후 독도를 지킨 건 예비역 특무상사 홍순칠과 33인의 민간인이었다. 홍씨는 전쟁을 틈타 독도를 제집 드나들듯 하던 일본인들을 몰아내기 위해 의용수비대를 조직했다. 정부 지원도 없어, 가산을 처분하고 의연금을 모아 기관총·박격포 등을 구입하고 의용대도 모집했다. 수비대는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함정의 침범을 두 차례나 격퇴하고, 가짜 해안포를 설치해 일본 함정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기지도 발휘했다.문제는 그 열정이었다. 수비대에서 물러난 뒤에도 1969년, 1972년 독도개발계획서를 경상남도에 제출하는 등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도록 재촉했다. 박정희 정권은 부담스러웠다. 홍 대장은 1974년 12월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사흘 동안 고문을 당했다. 중정의 요구는 더 이상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떠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다시는 글을 쓰지 못하도록 그의 오른손을 부러뜨리기도 했다고 부인 박영희씨는 전했다. 학교 조례 때마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떠들도록 한 정권이 왜 그러는지 홍 대장은 알 수 없었다.전두환의 신군부에서도 똑같았다. 신군부는 1980년대 초 그가 독도 지킴이로 북한 방송에 소개되자, 그를 즉각 체포해 극렬한 고문을 가하여 간첩 조작을 하려 했다. 결국 고문 후유증으로 홍 대장은 1986년 숨졌다. 전두환 정권은 독도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민간인 출입을 막았고, 심지어 노래 ‘독도는 우리 땅’을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독도

1965년 1월11일 서울 성북동 박건석 범양상선 회장의 홈바에서 정일권 국무총리와 일본 자민당의 실력자 우노 소스케 의원이 하나의 메모에 사인을 했다. ‘미해결의 해결’이란 원칙에 따라 성안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독도밀약이었다. 첫째, 독도는 앞으로 대한민국과 일본 모두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한다. 반박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둘째, 어업구역을 설정할 경우 양국 모두 독도를 기점으로 획정하되, 중복되는 부분은 공동수역으로 한다. 셋째, 현재 대한민국이 ‘점거’한 현상을 유지한다. 그러나 경비원을 증강하거나 새로운 시설을 증축은 하지 않는다.(노 다니엘 저 ) 결국 미해결 상태를 해결로 간주하고, 독도 언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일주일 뒤 1년 넘게 교착됐던 정상회담 예비회담은 재가동됐고, 6월22일 한-일 협정이 체결됐다. 함께 발표된 한-일 어업협정은 독도 주변 해역을 공동규제수역으로 규정했다. 밀약 내용 그대로였다. 공동규제수역 혹은 중간수역 규정은 지금까지 지켜진다. 임기 말에 돌연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며 일전불사를 외쳤던 김영삼 정부도 독도 인근 해역을 잠정적 조치수역(중간수역)으로 수용했다.밀약도 밀약이지만, 박정희·전두환 정권은 일본 정부와 민간에게서 막대한 정치성 자금을 받아 썼다. 박정희는 청구권 자금 이외에 1965년까지 5년 동안 6개 민간기업으로부터 6600만달러의 정치자금을 받았고, 전두환 정권은 출범하자마자 일본 나카소네 정부로부터 40억달러의 차관을 받았다. 그러니 독도를 물고 늘어지는 홍 대장을 가만두기 힘들었을 것이다.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에 대한 공세를 높이고 있다. 일왕까지 거론했다. 물론 뒷감당도 못하면서 쏘아대는 말대포라는 시각이 많다. 실제 박종우 선수는 그 피해자였다. 그러니 진정성이 있다면 밝혀야 한다. 독도밀약의 진상과 파기 여부를 말이다. 그래야 ‘독도 쇼’니 정치 선동이니 하는 소모적 논란을 막고 홍순칠, 박종우 같은 어이없는 희생도 막는다.

곽병찬 논설위원chank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