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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25일 수요일

[아침 햇발] 김구라의 하차 / 정재권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4-24일자 기사 '[아침 햇발] 김구라의 하차 / 정재권'을 퍼왔습니다.

정재권 논설위원
방송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압축판
이라면 그곳에도 고결함과 천박함, 
천사성과 악마성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이미 다 지난 일이지만, 모른 체하고 그냥 지나치기엔 뒤끝이 개운치 않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라진 방송인 김구라 말이다.
김구라는 분명 ‘비호감’이다. 케이블방송을 거의 보지 않는 나에겐 지상파 프로그램에서 보이는 이미지가 전부다. 그는 온 가족이 함께 시청하는 지상파에서조차 ‘구라’라는 이름에 걸맞게 악동 기질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김구라가 (문화방송) ‘라디오스타’에서 느물거리며 출연자를 향해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쥐거나(수입이 얼마냐?), 야유와 무시를 담아 상대의 말을 불쑥 자를 때 솔직히 낯이 화끈거린다. 하지만 그는 막말과 속물근성을 대놓고 상품화하고 아슬아슬한 수위까지 밀어붙인다. 유재석 같은 ‘범생이과’가 되기엔 애당초 그른 캐릭터이지만, 뚜렷하게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했다. 방송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압축판이라면 그곳에도 고결함과 천박함, 천사성과 악마성이 공존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구라가 그 가운데서 담당한 것은 남들이 꺼리는 천박함과 악마성이었다.
그런 김구라가 막말 파문으로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비록 10년 전 무명시절에 인터넷 방송에서 한 말이라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유흥업소 여성종업원들을 싸잡아 비속어로 비하한 것은 잘못이었다. 백번을 양보해도 사려깊지 못했다. 용서를 빌어야 마땅하다. 논란이 인 직후 “반성하고 자숙하겠다”며 물러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럼에도 가슴 한편이 씁쓸하다. 그의 하차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우울한 단면을 함께 목격한 느낌 때문이다. 우선 한번 걸리면 누구든 살아남기 어려운 엄숙주의 혹은 순결주의에 겁이 난다. 김구라의 무기는 두말할 필요 없이 구라다. 속은 썩고 곪았는데도 깨끗한 척 점잔을 빼는 세상을 비트는 게 임무다. 그런 모습에 혀를 차면서도 은근슬쩍 우리는 대리만족을 느꼈는지 모른다. 하지만 막말이 알려진 순간 세상은 온통 엄숙함으로 그를 비난하기에 바쁘다. 방송을 완전히 순백색으로 물들일 기세다. 그렇다고 세상이 맑고 깨끗해질까.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이 넘쳐나는 곳이다. 대통령의 ‘멘토’라는 인물이 4년여 동안 국정에 개입해 분탕질을 치던 와중에 자신에게 불법 로비자금을 전달한 브로커의 운전사에게 꼬리를 잡혀 2억원을 뜯기는 것이 현실이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에게 가장 두려웠던 존재는 대통령도, 야당 의원도, 성난 국민도 아니라 바로 운전기사였을 테니, 블랙코미디도 이런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 이런 가짜 양들보다 악역을 자처한 김구라는 오히려 솔직한 존재였다. 그런데 우리는 늑대들에게 상대적으로 너그러웠던 건 아닌지 자문해본다.
표적을 정했다 싶으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 공격성 또한 두렵다. 김구라가 물러난 뒤 그의 행적을 쫓기 위해 취재진이 아들 동현군이 다니는 중학교에까지 몰려든 모양이다. 등교하는 동현군을 붙잡고 아버지의 거처를 묻고, 같은 반 학생에겐 동현군의 상태를 물었다고 한다. 16살 소년에게 너무 가혹하다.
무엇보다 자신을 스스로 검열하게 하고, 발언보다는 침묵을 선택하게 하는 ‘감시’체제가 공포스럽다. 10년 전이든 5년 전이든 과거에 했던 발언이나 글 하나가 난데없이 튀어나와 목을 조르고, 지금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린 얘기 한마디가 미래의 어느 날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흉기가 된다. 더욱이 그 얘기가 누군가를 조롱하고 풍자하거나, 다수의 생각과 차이가 나는 것이라면 위험의 가능성은 한층 커진다. 혹시나 김구라를 위한 ‘변명’으로 비칠지 모르는 이 글도 그래서 겁이 난다.

정재권 논설위원 jjk@hani.co.kr

2012년 1월 2일 월요일

"미디어렙법은 종편 특혜의 결정판"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1-01일자 기사 '"미디어렙법은 종편 특혜의 결정판"'을 퍼왔습니다.
[기고] 최진봉 텍사스주립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졸속 통과 안 된다"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이 조선, 중앙, 동아, 매일경제 등 보수신문들이 운영하는 종합 편성채널(이하 종편)이 방송광고판매대행사인 미디어렙을 거치지 않고 앞으로 2년간 직접 광고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미디어렙 법안 처리를 여당인 한나라당과 사실상 합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참으로 한심하고 어처구니 없는 처사다. 여태껏 날치기로 처리된 미디어법에 대해 강력한 반대 입장을 펼치며 종편의 저지를 외치던 민주당이 갑자기 입장을 바꿔 종편에 일방적인 특혜를 주는 한나라당의 방침을 대부분 수용하며 미디어렙 법안 처리에 졸속으로 합의한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종편은 태생부터 현 정부의 보은으로 갖가지 특혜를 받아 논란이 됐다. 정부와 여당은 선진국에서도 여론 독과점을 우려해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금지하고 있는 것에는 아랑곳 없이 우리나라 신문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보수 언론사들에게 방송사를 허가해 주기 위해 온갖 반대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날치기로 미디어 법안을 통과시켰다. 더 나아가 종편이 성공적으로 방송시장에 안착 하도록 도와주기 위해 지상파 방송과 달리 주로 시사, 코미디, 드라마, 여행 등 전문분야별로 특성화된 채널로 운영되는 케이블 방송에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종합편성 채널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할 수 있게 허가해 지상파 방송사와 같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채널 배정에서도 지상파 방송의 채널과 인접한 채널 번호를 배당해 주어 지상파와 같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기틀까지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방송광고 영업도 미디어렙의 규제없이 자유로이 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기 위해 종편이 광고영업을 미디어렙에 의무적으로 위탁하는 것을 2년 동안 유예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만약 이대로 법안이 통과가 된다면 앞으로 2년 동안 종편은 합법이라는 미명 아래 약탈적인 광고영업을 직접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개국과 동시에 신문사라는 힘을 이용해 기업들에게 자신들이 운영하는 종편에 광고를 하도록 무언의 압력을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종편의 광고영업을 미디어렙에 의무적으로 위탁하는 것을 2년동안 유예하면 종편들의 약탈적인 광고영업이 더 활개를 치게 될 것이고, 이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보수 신문사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기업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해 방송 광고시장이 혼탁해 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MBC의 광고 직접영업을 막기 위해 종편의 광고 직접영업은 허용한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해법은 없는 것일까. 사진은 지난달 28일 국회 앞에서 열린 언론노조 등 기자회견 장면. 이치열 기자 truth710@

유예기간이 끝나는 2년후도 문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합의한 미디어렙 법안을 보면 종편의 자유 방송광고 영업 유예기간이 끝나는 2년 후, 이들 종편의 방송광고 판매를 위탁 판매하게 될 민영 미디어렙 지분의 40%까지 한 개의 방송사가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어 사실상 종편들이 2년후 자사 미디어렙을 설립해 운영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다. 결국 2년의 유예기간이 끝난후 종편들이 자사 민영 미디어렙을 설립해 운영하게 되면 종편들이 아무런 구속 없이 자유롭게 광고영업을 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마치 2년 후에는 종편들이 민영 미디어렙에 속하게 되어 광고영업의 규제를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재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합의한 법안을 근거로 하면 이는 눈속임에 불과할 따름이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종편들은 2년 후나 지금이나 동일한 조건하에서 광고영업의 특혜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번 미디어렙 법안은 종편에게 주어지는 또 다른 특혜 법안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처럼 종편에 일방적인 특혜만 주는 민영 미디어렙 법안을 민주당이 졸속으로라도 처리하려 하는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민주당 결정에 환영의 뜻을 표한 언론노조는 이번 여야 합의로 “MBC와 SBS의 자사 민영 미디어렙 추진에 제동이 걸렸고, 종편이 2년후 민영 미디어렙에 위탁되는 것을 정당하다는 사회적 확인을 받기 위해서” 라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종편이 자유 광고영업 유예기간 2년이 지난 후 광고영업을 민영 미디어렙에 위탁을 하게 되더라도 신생 민영 미디어렙의 지분을 종편이 40%까지 소유하게 되면, 이는 결국 형식적으로는 종편이 광고영업을 민영 미디어렙에 위탁 판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자사가 소유하고 있는 민영 미디어렙을 통해 광고판매를 대행하게 되므로 자유 방송광고 판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즉 눈 가리고 아웅하는 짓이다.                                

결국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합의한 민영 미디어렙 법안은 MBC의 직접광고 영업을 막는 것이 주 임무이다. MBC의 직접 광고영업을 막기 위해 종편에게 또 다른 특혜를 주는 이러한 무책임한 태도는 즉시 시정되어야 한다. 시간에 쫓겨 졸속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것이 아니라 여론의 다양성과 방송의 공정성, 그리고 공영성이 확보되는 제대로 된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 종편이 온갖 특혜를 통해 방송 시장 지배력을 확장하게 되면 이는 여론의 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뿐만 아니라 결국 부메랑이 되어 야당인 민주당을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