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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3일 금요일

강금원 별세에 트위플 “최시중은 ‘탈옥 수술’ 받았는데..”


이글은 뉴스페이스 2012-08-03일자 기사 '강금원 별세에 트위플 “최시중은 ‘탈옥 수술’ 받았는데..”'를 퍼왔습니다.
친盧-친MB 목숨줄까지 갈라…“검찰·법원 필히 개혁해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원한 후원자’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의 지병 악화 이유가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한 때문으로 전해진 가운데 구속 수감 중 구치소를 빠져나와 수술을 받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사례와 비교되며 3일 입방아에 올랐다. 

강 회장은 2007년 11월 뇌종양 판정을 받았으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2009년 4월 회삿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당시 강 회장은 뇌종양 악화를 이유로 보석을 신청했으나 검찰의 반대로 기각됐다. 

에 따르면 당시 대전지검 관계자는 “법원에서 강 회장에 대한 보석허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검찰 의견을 물어와 불허 의견을 냈다”며 “검찰 의견은 구속력이 없고 단지 참고사항일 뿐”이라고 밝혔다. 

ⓒ YTN 화면캡처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 2.0’에 직접 글을 올리고 강 회장에 대한 고마움과 안타까움을 표했었다. 노 전 대통령은 4월 17일 “강 회장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대통령이 아니라 파산자가 되었을 것이다”며 “강 회장은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강 회장의 품성을 소개했다.

노 전 대통령은 “그리고 그는 나에게 단 한 건의 이권도 청탁한 일이 없다. 아예 그럴만한 사업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고 대통령 당선 이후 강 회장의 행보를 밝혔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은 “강 회장이 구속이 되었다. 아는 사람들은 그의 건강을 걱정한다”라며 “제발 제 때에 늦지 않게 치료를 받고 건강하게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살아생전 강 회장을 만나지 못하고 영면의 길에 올랐다.

강 회장은 2009년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옥중에서 접했고 매우 서럽게 통곡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대전지방법원 위현석 부장판사는 “강 회장의 건강상태에 대해 병원 2곳에 사실감정을 의뢰한 결과 ‘악성 뇌종양이 발견됐고 시급히 조직검사와 항암치료가 필요하다’는 답신이 왔다”며 5월 26일 보석을 허가했다. 

강 회장은 보석으로 나오자마자 부인과 함께 봉하마을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눈물을 흘렸다. 강 회장은 “면목없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대통령님이 돌아가셨다. 화요일에 내가 나오는 것을 그렇게 기다렸다는 데…. 대통령이 무슨 잘못이 있기에 이럴 수가 있느냐”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일국의 대통령까지 지내신 분을 이렇게 치사한 방법으로 괴롭히느냐. 절대 그러지 않았다. 비리가 없다. 영예롭게 사신 분이다”라고 울분을 토했었다. 

강 회장은 뒤늦게 수술을 받았으나 지난 5월 노 전 대통령 서거 3주기 행사에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 결국 지병을 이기지 못하고 2일 오후 9시께 향년 60세의 젊은 나이로 노 전 대통령 곁으로 갔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 5월 파이시티 인허가 의혹 관련 구속 수감 중 법원의 결정이 내려지지 않음에도 불구, 서울삼성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다(☞ 관련기사). 

최 전 위원장은 5월 21일 구속집행정지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한 후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 23일 오전 7시부터 수술을 받았다. 최 전 위원장이 수술을 받고 있는 시각,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정선재)는 23일 오전 10시부터 구속집행정지 심문기일을 열었다. 피고인인 최 전 위원장이 이미 법원의 허가 없이 수술을 받고 있는데 구속집행정지 심문기일이 진행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에 따르면 서울구치소 관계자는 “구치소 자체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외부병원 이송진료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에 통보하거나 지휘를 받도록 하는 규정이 없어 검찰 쪽에서도 ‘최 전 위원장이 병원에 입원한 뒤인 지난 21일 오후에서야 확인했다’고 법정에서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이재화 변호사는 트위터에 “14년 동안 변호사를 한 나는 이런 경우를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교도소장이 단독으로 결정하였는지 의문이다”며 “구속집행정지결정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으로 심하게 의심된다”고 특혜 의혹을 제기했었다. 

조광희 변호사도 “감옥을 물리적 장벽으로만 이해한 빠삐용과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은 전 인생을 허비하고서야 탈옥했다. 그러나 감옥을 권력적 장치로 정확히 이해한 최시중은 권력게임을 통하여 순식간에 탈옥을 한다. 배울 게 많다”라고 힐난했다.

조 변호사는 “최시중의 권력형 탈옥에 법무부와 청와대가 관여하지 않았다고 믿는다면, 당신의 뇌는 지나치게 청순한 겁니다”라고 강하게 의구심을 보였다.

이후 재판부는 최 전 위원장이 이미 수술을 받아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만큼 구속집행정지의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며 구속집행정지 신청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기로 했다(☞ 관련기사).

앞서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도 지난 2011년 9월 8일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풀려났다. 천 회장 측은 “고혈압 등의 건강악화로 병원치료가 꼭 필요하고 척추에도 문제가 있어 방치할 경우 하반신 마비의 위험성이 있다”는 병원의 사실조회 결과 등을 첨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관련기사). 

이에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판사 최규홍)는 천 회장의 주장을 받아들여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에 검찰이 항고하지 않아 천 회장은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천 회장은 2011년 6월 16일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과 추징금 32억 1000여 만원을 선고받았다. 

운명 뿐 아니라 목숨줄까지 갈라지는 노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의 사례에 트위터러들은 울분을 토했다. 트위터에는 강 회장을 애도하는 글도 많았지만 목숨 걸린 수술을 제때 받지 못한 점에 분노하는 의견들도 많았다. 

민변의 이재화 변호사(@jhohmylaw)는 “고 강금원 회장은 노무현 대통령 후원자라는 이유로 검찰의 표적수사로 구속됐다. 뇌종양 악화로 보석신청했으나 검찰의 반대로 기각되어 수술시기를 놓쳤다”면서 “반면 검찰은 최시중에 대해서는 보석허가 전에 병원에서 수술하도록 했다. 정치검찰의 두 얼굴!”이라고 비난했다. 

트위터러 ‘Joong*****’은 “뇌종양 병환 중에도 노무현 곁을 지키다. 검찰수사 다 받고 별세하신 강금원 회장님과 재판 중에 수술 받으러 가신 최시중 위원장님... 사뭇 비교됩니다”라고 지적했다. 

트위터러 ‘shim******’은 “강금원 회장의 별세가 새삼 화가 나는 것은 검찰 때문. 살아있는 권력의 종이었던 최시중의 병보석과는 전혀 달랐던 것”이라며 “검찰은 스스로 개혁할 수 없는 조직이므로 국민이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true_jus*******’은 “노무현 대통령의 진정한 후원자인 강금원 회장의 명복을 빕니다! MB정권과 정치검찰은 반성해야 합니다! 병보석 신청도 받아주지 않고~, 최시중과 비교됩니다! 두고보자!”라고 분노했다. 

트위터러 ‘Jeki*****’도 “최시중 이상득 천신일 다 금방 나오는데 강금원 회장은 못 나와서 병을 키우고 60세에 벌써 돌아가셨다 ㅜㅜ”라고 슬픔을 드러냈다. 

‘iron*****’은 “강금원 회장이 돌아가셨단다. 이 정권의 검찰은 강 회장이 제때 수술 받지도 못하게 하면서 최시중 놈은 입원시키고 은진수 놈은 잘도 풀어줬다. 이런 X같은 정권, 얼른 뒈져버려라 ! 퉤 !!! 고인의 명복을 빈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korea*******’은 “강금원 회장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노 대통령과의 우정이 천국에서도 영원하길 기원합니다. 최시중 같은 나이롱 환자는 초호화 병실에서 유유자적하고 강 회장은 진짜 환자인데 제때 치료 못해 60세에 죽게 만든 검찰과 법원 필히 개혁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트위터러 ‘dian******’은 “갑자기 열받네.. 최시중은 구속정지집행 결정 나기도 전에 수술 받게 해주고, 강금원은 뇌종양 악화로 병보석 신청했는데도 거절해서 수술시기 놓친 거 아냐. 노대통령 돌아가시고 나서야 병보석으로 수술 받았네요. 진짜 저것들 죄를 다 어찌 받을까”라고 분노했다.

민일성 기자

2012년 3월 11일 일요일

무한해고+로비 달인=파업유발자 4인방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3-10일자 기사 '무한해고+로비 달인=파업유발자 4인방'를 퍼왔습니다.

왼쪽부터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 김인규 한국방송 사장, 배석규 YTN 사장, 박정찬 <연합뉴스> 사장. 이들 덕분에 지난 4년 동안 한국 언론은 청와대와 더 가까워졌다. (왼쪽부터) 한겨레 김태형·박종식·이종근·한겨레 자료 사진

‘친MB’ MBC 김재철, KBS 김인규, YTN 배석규, ‘연합뉴스’ 박정찬 사장
마치 들불 같다.
문화방송, 한국방송, YTN, (연합뉴스)…. 공정보도 문제로 파업을 하고 있거나 파업 논의가 진행되는 언론사들이다. 정권과 언론계 노동자들 사이에 ‘3월 대전’이 임박했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모두 정권과 밀착한 경영진이 기자와 PD들의 입에 재갈을 물린 것이 화근이 됐다. 가장 큰 문제는 배후의 청와대이고, 그다음 문제는 정권의 입맛에 맞춰 뉴스를 ‘요리’한 사장님들이다. 여기 화제의 사장님들을 소개한다. 말하자면, 언론계 친MB ‘빅4’다.
강자에겐 까이고 약자는 해고하는 김재철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은 언론사 사장들 가운데서도 단연 가장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다. 문화방송 파업이 진행되는 4주째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서 노동조합에서 급기야 ‘사람 찾기’에 나서기도 했다. 노조의 파업이 진행된 이후 근무시간에 인천 송도의 고급 호텔에서 마사지를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사실 그는 ‘기행’으로 이름이 높다. 지난해 시사지 (신동아) 4월호에 실린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인터뷰에서 그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 김 이사장은 그의 문화방송 사장 임명을 두고 “쉽게 말해 말귀 잘 알아듣고 말 잘 듣는 사람이냐가 첫 번째 (사장 선임) 기준이었다”며 김 사장의 역할을 “(문화방송) 좌파 청소부”라고 규정했다. 당시 문화방송의 내부 인사에 대해서도 “큰집(청와대)도 (김 사장을) 불러다가 ‘쪼인트’ 까고 매도 (때리고 해서 인사안을 만들었다)”라고 밝혔다. 문화방송 노조는 당시 방송의 공정성 보장을 요구하며 39일 동안 파업을 했지만, 경영진은 이근행 노조위원장을 해고하고 41명을 징계하는 강경 대응을 했다.
청와대에 가서 맞고 다니면서도 딱히 부끄럽지 않았나 보다. 김 사장은 이후에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해 8월 열린 노사협의회에서 김 이사장을 고소하면 “본인도 죽고 회사도 다 죽는 것”이라는 알 수 없는 이유를 들며 법적 조처를 취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 밖에 (PD수첩) ‘4대강’ 편의 방송을 보류하고, ‘MB 무릎 기도’ 아이템의 방송을 막았다. 최근 한 달을 넘어선 문화방송 파업에 대해서도 ‘청소부’의 본분에 충실했다. 그는 2월29일 박성호 문화방송 기자회장을 해고 조처하고, 양동암 영상기자회장은 정직 3개월에 처했다.
변신의 귀재·로비의 달인, 김인규
김 사장과 이명박 대통령은 고려대 선후배 사이로 오랜 연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사장이 울산 문화방송 사장이던 2007년 9월 그의 모친상에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일부러 일정을 조정해서 조문을 한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 문화방송 노동조합은 파업의 유일한 요구 조건으로 ‘김 사장의 퇴진’을 제시하고 있다.
김재철 사장이 화려하게 사고를 치고 다닌다면, 김인규 한국방송 사장은 권력을 따라 조용하게 ‘작업’하는 유형이다. 2010년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폭로한 김 사장의 행적을 들어보자. 노무현 대통령 집권기인 2006년 11월, 김 사장은 당시 현직이던 양 비서관을 찾아 “(한국방송) 노조를 장악해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 나밖에 없다. 나를 밀어달라”며 사장을 시켜달라고 로비를 했다. 최민희 전 방송위 부위원장도 2011년 1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인규 사장이 올 자리가 아닌데도 불쑥 찾아와 인사를 했다”고 김 사장의 로비 사실을 증언했다. 보도가 나간 직후, 한국방송의 막내인 35기 기자 10명은 연명으로 낸 성명에서 “KBS 사장이 되기 위해 ‘충성 맹세’까지 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김 사장은 스스로 거취를 정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해가 바뀐 2007년, 그는 ‘MB맨’으로 변신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방송전략실장 구실을 했다. 한국방송 새 노조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의 변신은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 그는 10년차 기자 시절이던 1982년 3월 (특별 입체기획-5공화국 1년)을 직접 제작하며 “헌정사에서 이룩하지 못한 일들을 국민의 여망과 화합 속에 이룩한 획기적인 한 해였다”고 보도했다.
권력과의 곡예 끝에 그는 마침내 2009년 11월 한국방송에 사장으로 ‘착륙’했다. 그는 등을 손보는 등 방송 옥죄기에 나섰다. 그렇지만 ‘노조를 장악해서 문제가 없도록 하는 데’는 실패했다. 한국방송 새 노조는 지난 2월23일 총파업 찬반 투표를 한 결과, 재적 1064명 중 963명(투표율 90.5%)이 참여해 88.6%의 찬성률로 3월6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정했다. 한국방송 기자들은 또 3월2일부터 무기한 전면 제작 거부에 들어갔다. 새 노조의 요구사항 역시 김인규 사장의 퇴진이다.
‘낙하산의 낙하산’ 배석규 YTN 사장
이명박 정권 들어 언론계의 첫 낙하산은 YTN 위에 내려앉았다. 2008년 6월 이명박 대통령 언론 특보 출신인 구본홍씨가 사장으로 내정됐다. 노조는 ‘낙하산 사장 저지 투쟁’을 벌였다. 새 사장은 노종면 기자 등 6명을 해고하고 총 33명을 징계하는 초강수를 뒀다. 그 뒤 우여곡절 끝에 구 전 사장의 후임으로 배석규 사장이 2009년 10월 취임했다. YTN 노조는 배 사장을 전임 사장이 내려보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니까, ‘낙하산의 낙하산’이다. 배 사장은 구 전 사장의 경남고등학교 후배다. 연으로 이어진 끈은 질겼다. 배 사장은 공정 보도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보도국장 선임 방식을 임명제로 바꾸고, 공정방송위원회를 사실상 폐지했다. 또한 2009년 서울중앙지법의 해고자 전원 복직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를 항소해 소송을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 그의 처신을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7월 은 배 사장이 평일 근무 시간에 광고대행사 대표한테서 골프 접대를 받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노조는 오래 참지는 못했다. 지난 3월1일 노조원을 대상으로 벌인 투표에서 317명이 참여해 208명 찬성(찬성률 65.6%)으로 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정했다.
(연합뉴스)의 박정찬 사장도 논란을 낳는 또 한 명의 주인공이다. 그가 최근 연임 의사를 밝히자 (연합뉴스) 노조는 지난 2월27~29일 이에 반대하는 연가 투쟁을 벌였다. 그렇지만 (연합뉴스) 대주주인 뉴스통신진흥회는 지난 2월29일 박 사장을 차기 사장 후보로 추천했다. (연합뉴스) 노조 역시 파업 돌입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언론자유 11등급 떨어뜨린 MB 정권
이 대통령의 2007년 대통령 공약집을 보면, 언론 분야 공약으로 ‘언론의 자율성과 공정성 확보’를 내걸었다. 내용을 보면 “노무현 정권의 지나친 언론 간섭과 통제로 인해… 우리나라의 언론 자유에 대한 국제적 평가가 추락했다”고 평가했다.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언론인 인권감시단체 ‘국경 없는 기자회’(Reporters Sans Frontieres)가 세계 179개국을 대상으로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 순위를 기준으로 보면, 노무현 정권기(2003~2007년)에 한국은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40위였고, 마지막 해인 2007년에는 39위였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4년 동안 언론자유지수는 평균 51위였다. 2011년에는 44위였다. 평균만 비교하면 이 정권 들어 11등급이나 아래로 떨어졌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