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촛불저항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촛불저항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2년 8월 21일 화요일

이명박 정부의 독선, 촛불저항을 부르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8-21일자 기사 '이명박 정부의 독선, 촛불저항을 부르다'를 퍼왔습니다.
[1987~2012년 경제민주화 실패의 역사·(22) 광우병 파동

미국에서 광우병 파동이 나서 한국이 2003년 12월 쇠고기 수입을 중단했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이 한-미 FTA 타결을 위한 4대 선결조건의 하나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했다. 30개월 미만의 살코기만 수입키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검역과정에서 갈비뼈가 상자채로 발견되고 위험물질인 척추까지 검출되는 소동이 반복됐다. 그래서 2007년 10월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검역이 중단된 상태였다.

정권이 바뀌어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미국에 가서 그 빗장을 모두 풀어버렸다. SRM(광우병특정위험물질)을 제외하고는 연령제한 없이 모든 부위를 수입하도록 문을 활짝 연 것이다. 광우병의 잠복기간은 소의 경우 3년이라 수입기준을 출생 30개월 미만 뼈 없는 살코기로 제한했는데 그것을 풀었다.

광우병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청와대를 비롯한 집권세력이 쏟아내는 말이 너무 천박하고 저급하기 짝이 없었다. 값싸고 질 좋을 고기를 먹게 됐다, 광우병이 무서우면 먹지 마라, 구제역과 달라 전염병이 아니다, 96개국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다, 3억 미국인은 물론이고 미국교포나 유학생이 먹어도 뒤탈이 없다, 미국 가서 햄버거 실컷 먹고 나서 딴소리한다는 따위가 그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질병의 위험성이다. 국민들은 값을 따지는 게 아니었다. 국민건강을 지켜야 할 정부가 검역주권을 포기한 데 대한 불만과 광우병에 대한 공포를 토로한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한-미 FTA 선결조건으로 쇠고기 수입을 재개한 사실을 국민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FTA와 무관하다니, 뚱딴지같은 소리도 늘어놓았다.

집권세력은 96개국 사람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해 먹는데 왜 시끄럽게 떠드느냐는 식으로 나왔다. 한국 등 7개국이 90% 이상 수입하고 나머지 국가는 수입실적이 미미하다. 멕시코는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체결국이지만 30개월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다. 같은 체결국이지만 캐나다는 광우병 발병국가라 완전개방이다. 일본은 20개월 미만 뼈 없는 살코기로 제한하고 대만, 이집트, 홍콩도 미국산은 30개월 미만 뼈 없는 살코기로 제한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무차별적으로 개방했다. 생후 30개월 미만인지 확인이 불가능한 햄, 소시지 같은 가공품까지 포함해서 수입을 허용했다. 소는 20개월간 키우면 성우가 된다. 육우라면 사료 값을 많이 들여 더 오래 키울 이유가 없다. 30개월 이상은 젖소가 아니면 씨받이 암소라 고기질이 나쁘다. 그 까닭에 미국 사람들은 주로 20개월 미만 송아지고기(veal)를 먹는다.

2008년 5월 청계천에서 여중생들이 처음 들었던 촛불의 물결은 국민의 분노를 태우며 꺼질 줄 몰랐다. 장대비에도 도심 곳곳으로 번져 서울의 밤을 밝혔다. 어린 여학생들이 촛불을 들었던 그 자리를 세대와 계층을 뛰어넘어 가족, 연인, 친구끼리 손을 잡고 채웠다. 청와대롤 향해 미친 소를 반대하던 함성이 독재타도, 정권퇴진이란 반향을 일으키며 전국에 메아리쳤다. 촛불저항이 시민불복종운동으로 승화되어 민주주의의 새 장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 2008년,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요구하는 촛불 시위가 방방곡곡에서 벌어졌다. 그로부터 4년 후인 2012년에도 미국에서 네 번째 광우병 소가 발견되면서 다시 촛불 시위가 벌어졌다. 사진은 2012년 5월,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 촉구 시위. ⓒ프레시안(최형락)

민의를 조롱한 이명박 정부의 설익은 정책들

촛불저항은 대통령 인수위 시절부터 잉태되었다. 설익은 정책을 쏟아내며 국민을 너무 당혹하게 만들었다. '강부자', '고소영'으로 이어지는 무자격자-무능력자의 인사파동은 국민에게 절망감을 안겨줬다. 공직자로서는 허물투성이들이건만 'best of best'(최고 중의 최고)라는 말로 덮어버렸다. 거기에는 민의를 조롱하는 독선만 있었을 뿐이다.

집권세력이 쏟아내는 말, 말, 말이 너무 어지럽더니 숱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국민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한 게 아니다. 일본처럼 광우병 위험성이 적은 살코기만 사먹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미국 축산업자를 두둔하는 소리만 골라서 내뱉었다. 그것도 국민건강을 걱정하는 소리를 괴담으로 치부했다.

미친 소를 감싸는 허튼소리를 이 입, 저 입이 늘어놓더니 국민을 뿔나게 만들었다. 광우병 쇠고기뿐이었다면 촛불이 들불처럼 번지지 않았을 것이다. 운하만 해도 환경재앙을 염려하는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다. '한다' '안 한다', '물류'가 아니고 '관광'이다, '운하'가 아니고 '치수'이다, '정부주도 사업이다' '아니다' 등등 수시로 말을 뒤집었다. 그것도 모자라 국민을 계몽하려고 들었다.

정부의 중요한 기능은 국민의 이익과 직결된 공적기능의 수행이다. 민간영역에 맡기기에는 투자규모가 크고 공공적 성격이 강한 분야를 정부가 운영하는 것이다. 보건, 철도, 전기, 수도, 도로, 항만, 가스, 방송, 금융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래서 막대한 국민세금을 투입해서 기반시설을 확충한다. 그런데 국민적 논의도 없이 민영화하겠다며 난리였다.

민영화의 본래 뜻은 사유화(privatization)이다. 국민의 재산인 공적영역을 돈 몇 푼 받고 거대자본-외국자본에 넘기겠다는 소리다. 이명박 정권은 잇단 실정을 소통부족으로 치부했다. 언론 탓이라며 언론장악을 노골적으로 획책했다. 군사독재 시절을 떠올리는 언론통제술을 동원했던 것이다.

민심이반이 촛불저항을 불렀다. 그런데 배후세력을 척결한다며 좌파니 반미로 몰아갔다. 경찰은 비폭력 시위에 물대포, 군홧발, 방패 찍기로 대응하며 야만성과 폭력성을 자랑했다. 폭력경찰의 행태도 군사정권과 판박이로 닮았다. 1987년 6월항쟁 때는 명동성당에 지도부가 있었다. 촛불집회에는 딱히 지도부랄 조직도 없었고 누가 누구한테 지시할 수도 없었다. 포털사이트 토론방 '아고라'에서 정보를 나누고 토론하며 촛불을 들었다.

운동 가요는 없었고 해학과 풍자가 넘쳐났다. 젊은 엄마들의 유모차 부대, 예비군 병장들의 호위에 김밥부대도 등장했다. 주류언론에 대한 불신이 인터넷 생중계, 디지털 기기로 무장한 1인 미디어를 불렀다. 거리시위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었다. 무수한 누리꾼들이 집에서 인터넷 동영상을 보고 댓글을 달며 사이버 촛불시위에 참여하고 있었다.

 /김영호 언론광장 공동대표

2011년 12월 20일 화요일

YS정권의 말로를 쫓아가는 MB정권


이글은 대자보 2011-12-20일자 기사 'YS정권의 말로를 쫓아가는 MB정권'을 퍼왔습니다.
[김영호 칼럼] MB정권의 불법과 편법, 한나라당 붕괴해도 정신 못차려

정권말기의 MB가 YS정권의 말로를 열심히 쫓아가는 모습이다. YS는 대통령 당선까지 험로를 겪었다. 김대중과의 대적도 버거운데 돌출변수인 정주영이 그의 잠재적 지지층을 잠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범 초부터 국정전반에 걸쳐 과감한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폭넓은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 그런 그였지만 임기를 1년여를 앞둔 시점에서의 노동법 날치기는 민심이반을 가속화시켜 끝내 식물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감하고야 말았다. MB의 당선은 순탄했다. 노무현 심판론은 그의 모든 허물을 덮어줌으로써 손쉽게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무차별 수입이 촉발한 미증유의 촛불시위를 시발로 집권기간 내내 국민적 저항에 부닥치고 있다. 그런 그가 임기를 1년여를 앞둔 시점에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을 날치기함으로써 한나라당이 붕괴위기에 처하는 곤경에 빠졌다. 

1996년 12월 26일 새벽. 서울시내 한 호텔에 집결해 있던 당시 집권당인 신한국당(한나라당 전신)의원을 비롯한 친여의원 154명이 버스 4대에 분승해 국회로 들어갔다. 노동관계법 개정안 등 11개 법안을 7분만에 무더기로 날치기했다. 이것은 YS정권의 몰락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고 말았다. 당시 양대 노총은 정리해고 등을 반대하며 노동법 개정안 철회를 요구하면서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였다. 노동계의 반격은 즉각적이었다. 27일 88개 사업장 15만명이 동시에 파업에 돌입할 만큼 파괴력이 컸다. 이듬해 1월 6일 정부출연기관, 방송사 노조가 파업에 동조하고 여기에 야당, 시민단체들이 가세함으로써 노동법 날치기가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확산되었다. 1월 21일 YS가 노동법 재논의를 지시했고 국회는 3월 10일 여야합의로 신노동관계법을 통과시켰다. 

YS는 역사적 개혁을 단행했다. 사정개혁,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금융실명제 실시,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해체, 국군보안사 조직축소, 12·12 군사반란과 부정축재의 책임을 물은 전두환·노태우 구속 등. YS의 과단성이 이룩한 치적이다. 하지만 노동법 날치기 이후 한보사태가 터지면서 소통령으로 행세하던 그의 차남 현철의 국정농락-부정축재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정치구호로 내세웠던 세계화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선진국 모임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가입이 외환위기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대비책도 마련하지 않고 자본-금융시장을 활짝 열어 젖혀 1997년 11월 외환위기가 터졌다. 국가경제의 파탄을 의미하는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가 도입되었던 것이다. 연쇄도산, 대량실업, 가정파탄으로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겪었고 지금도 그 그늘에서 신음하고 있다. 

출범부터 촛불저항에 부닥친 MB정권의 안중에는 국민이 없다. 고환율정책, 정실인사, 언론장악, 인권탄압, 불통정치가 그것을 말한다. 중요한 사안마다 경찰의 곤봉을 내세워 국민과 싸우는 형국을 연출한다. 민심이나 여론 따위는 필요 없다는 식으로 밀어붙인다. 미국산 쇠고기 무차별 수입을 허용했다가 촛불저항에 부닥치자 미국과 재협상을 통해 연령만 30개월 미만으로 낮췄다. 한반도 대운하를 밀어붙이다 반대여론이 드세자 보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물러섰을 뿐이다. 대의-의회정치를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집권이후 해마다 예산안을 날치기해왔다. 언론악법을 대리투표, 재투표를 통해 날치기했다. 그것도 모자라 온갖 편법-변칙을 동원해 기어코 종합편성채널을 출범시켰다. 한-미FTA는 단순한 역내교역의 자유화가 아니다. 포괄적 경제통합으로서 한국경제의 미국 종속화를 의미한다. 그런데 사회적 합의도 없이 날치기했다. 

YS-MB의 날치기에는 상이점이 있다. YS가 비교적 높은 지지율을 믿었다면 지지율 20%대의 MB는 관제방송-족벌신문의 여론조작-여론독점을 믿는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날치기를 상습적으로 그렇게 기세 좋게 밀어붙일 수 없다. FTA 날치기가 긴 포물선을 그리며 후폭풍을 몰고 올 것이다. 서울시장 보결선거 당일 투표소 변경과 선관위 디도스 공격은 투표방해를 노린 부정선거다. 이것은 수사방향과는 상관없는 국민적 판단이다. 삽시간에 한나라당이 해체국면으로 돌입한 사태가 두 사건의 중대성-심각성을 말한다. 이제 친인척-측근 비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SLS그룹-제일저축은행의 뇌관이 그들을 겨냥하고 있다. 비리의 복마전인 판도라 상자가 권력의 중압에 눌려 닫혀있지만 권력누수기에는 외압이 내압을 견디지 못해 터지기 마련이다. 내년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존립기반을 확보할지 의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보유통을 통제하려고 SNS(사회관계망) 규제-검열에 열을 올리는 게 MB정권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언론광장 공동대표 시사평론가 <건달정치 개혁실패>의 저자 본지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