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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22일 월요일

"MB에게 4대강사업은 하나님 위"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3-04-22일자 기사 '"MB에게 4대강사업은 하나님 위"'를 퍼왔습니다.

MB "4대강 보에 크레인 달면 4대강은 대운하 된다"


(조선일보)가 22일 뒤늦게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사업이 대운하를 염두에 둔 사업이었음을 폭로하며 4대강사업을 질타하고 나섰다. 4대강사업에 비판적인 박근혜 정부 출범후 (조선일보)의 4대강사업 논조가 180도 바뀐 양상이다.

환경 분야를 10년째 담당하고 있다는 박모 (조선일보) 기자는 22일 4대강사업 관련 기사를 통해 환경단체뿐 아니라 기독교·천주교·불교 등 종교계내 일부 단체들까지 나서 4대강 사업 반대 운동의 수위를 높여가던 2010년 봄때 취재 경험을 공개했다.

박 기자에 따르면,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MB는 이런 사태를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 MB 측근 인사에게 “종교계 반발이 곤혹스럽겠다. MB 심경이 좀 바뀔 여지가 있을까?” 물었더니, 예상과 달리 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천만에! 어림도 없다. MB에게 4대강 사업은 하나님 위에 있거든!”

박 기자는 "당시 MB 측근들 사이에선 ‘하나님 위에 4대강’이란 말이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었다더군요. 이런 신성(神聖) 모독적 발언이 왜 돌았는지는 더 묻지 않았습니다. 3년 넘게 주일예배 주차 안내 봉사를 하고 장로가 된 MB가 그런 말을 했을리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지요"라며 "그러나 MB가 ‘4대강 사업은 불가침’이란 메시지로 측근들을 압도한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MB 정부 5년간 4대강 사업을 취재하면서 풀리지 않던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4대강 사업은 대운하의 전(前) 단계인가, 아닌가’라는 것"이라며 "그러나 올 1월 4일 MB는 4대강 사업을 추진한 인사들을 청와대로 불러 식사를 같이 한 자리에서 ‘속마음’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박 기자에 따르면, MB는 “4대강에 설치된 보 바깥 쪽(하천변)으로 (선박이 머물 수 있는) 계류장을 설치하고 (배를 들었다 내렸다하는) 크레인을 달면 4대강은 대운하가 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때는 아니더라도) 4대강 사업은 (박근혜 정부) 그 다음 정부 때는 (대운하로) 마무리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 기자는 "이 말을 들으니 묵은 의문이 풀리는 시원함과 허탈감, 뭔지 모를 배신감이 들었다"며 "대운하 반대 여론에 밀려 ‘준설 2m 이하, 1~2m 높이의 소형 보 4개’라던 당초 계획(2008년 12월 총리실 발표)을 불과 6개월 후 ‘수심 6m에 10m 안팎의 대형 보 16개’(2009년 6월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로 돌변시켰던 과거 MB 정부의 ‘속내’가 그제서야 훤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라며 MB에 대한 배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철저한 4대강사업 조사 방침을 밝히고 있는 것을 거론한 뒤, "과연 4대강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어느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지 가늠하기 매우 어렵다"며 "다만 어느 쪽으로 귀결되든 각각 조(兆) 단위의 비용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단언했다.

기사를 접한 MB정권때 일관되게 4대강사업에 반대해온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블로그를 통해 보도내용을 요약한 뒤, "이제 주위 사람들이 왜 그 말도 안 되는 4대강사업을 하려드는 MB를 말리지 못했는지가 거의 분명해진 셈"이라며 "그 기사를 쓴 기자는 이 발언을 전해 듣고 묵은 의문이 풀리는 시원함과 허탈감, 뭔지 모를 배신감이 들었다고 하더군요"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4대강사업의 속내가 무엇이었는지도 얼마 있지 않아 낱낱이 밝혀지리라고 믿습니다. 이 태양 아래 영원한 비밀이라는 건 없는 법이니까요"라며 "늘 말하지만 보수언론이 이제 와서야 4대강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서는 게 정말로 아쉬운 일입니다. 그때 우리에게 힘을 보태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지적했다면 그 불행한 사업을 미리 막을 수 있었을 텐데요"라고 유감을 나타냈다.

심언기 기자

2012년 10월 24일 수요일

‘4대강 담합’ 출발은 2007년 MB 인수위


이글은 경향신문 2012-10-23일자 기사 '‘4대강 담합’ 출발은 2007년 MB 인수위'를 퍼왔습니다.

ㆍ대운하에 부정적인 건설업계에 ‘컨소시엄’ 강압ㆍ당시 5개 업체 지분비율, 4대강 사업까지 이어져

2007년 대선 직후 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이 대통령 임기 내에 끝내기 위해 건설업계에 컨소시엄 구성을 사실상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구성된 대운하 컨소시엄의 시공 지분 분배 방식은 이후 4대강 사업의 입찰 담합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결과적으로 인수위가 4대강 사업 참여 건설업체의 담합을 유도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3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ㄱ건설사의 2007년 12월28일자 대운하 관련 회의 문건을 보면 장석효 당시 인수위 대운하 태스크포스 팀장(현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운하의 여론 수렴과 대국민 홍보가 될 때까지 건설사가 주도해주고 지금부터 모임은 건설사 컨소시엄을 만들어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 관련기사 8면

2007년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직후 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건설업계에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사실상 지시했다는 문건이 나왔다. 이 문건에는 5개 대형 건설사가 이듬해 1월 공동추진협약을 맺은 사실도 기록돼 있다.

인수위가 출범한 지 이틀 만에 열린 이 회의에는 현대건설을 비롯해 삼성물산, 대우건설, 대림산업 등 4개 대형 건설사와 설계사인 유신에서 임원급 인사가 1명씩 참석했다. 

건설사들은 곧바로 컨소시엄 구성에 착수해 열흘 뒤인 2008년 1월7일 ‘공동추진협약’을 맺었다. 현대건설이 20.8%의 시공 지분을 갖고 대우건설, 삼성물산, GS건설, 대림산업은 각각 19.8%의 지분을 차지하기로 했다. 이 같은 지분 분배 기준은 4대강 사업 입찰에서도 똑같이 적용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6월 발표한 4대강 사업 1차 턴키공사 입찰 담합 자료를 보면, 2009년 4월 국내 19개 건설사가 지분율을 합의하면서 현대건설은 9.0%, SK건설을 포함한 상위 5개 업체가 8.0%씩 지분을 갖기로 했다. 대운하 때의 시공 지분과 동일한 지분 비율을 갖는 방식이 되풀이된 것이다. 

김기식 민주통합당 의원은 “4대강 사업이 대운하 사업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만큼 4대강 담합의 ‘씨앗’을 뿌린 주인공도 정부인 셈”이라며 “4대강 담합에 대한 국정조사와 감사원 감사가 실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철응 기자 hero@kyunghyang.com

2011년 12월 20일 화요일

YS정권의 말로를 쫓아가는 MB정권


이글은 대자보 2011-12-20일자 기사 'YS정권의 말로를 쫓아가는 MB정권'을 퍼왔습니다.
[김영호 칼럼] MB정권의 불법과 편법, 한나라당 붕괴해도 정신 못차려

정권말기의 MB가 YS정권의 말로를 열심히 쫓아가는 모습이다. YS는 대통령 당선까지 험로를 겪었다. 김대중과의 대적도 버거운데 돌출변수인 정주영이 그의 잠재적 지지층을 잠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범 초부터 국정전반에 걸쳐 과감한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폭넓은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 그런 그였지만 임기를 1년여를 앞둔 시점에서의 노동법 날치기는 민심이반을 가속화시켜 끝내 식물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감하고야 말았다. MB의 당선은 순탄했다. 노무현 심판론은 그의 모든 허물을 덮어줌으로써 손쉽게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무차별 수입이 촉발한 미증유의 촛불시위를 시발로 집권기간 내내 국민적 저항에 부닥치고 있다. 그런 그가 임기를 1년여를 앞둔 시점에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을 날치기함으로써 한나라당이 붕괴위기에 처하는 곤경에 빠졌다. 

1996년 12월 26일 새벽. 서울시내 한 호텔에 집결해 있던 당시 집권당인 신한국당(한나라당 전신)의원을 비롯한 친여의원 154명이 버스 4대에 분승해 국회로 들어갔다. 노동관계법 개정안 등 11개 법안을 7분만에 무더기로 날치기했다. 이것은 YS정권의 몰락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고 말았다. 당시 양대 노총은 정리해고 등을 반대하며 노동법 개정안 철회를 요구하면서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였다. 노동계의 반격은 즉각적이었다. 27일 88개 사업장 15만명이 동시에 파업에 돌입할 만큼 파괴력이 컸다. 이듬해 1월 6일 정부출연기관, 방송사 노조가 파업에 동조하고 여기에 야당, 시민단체들이 가세함으로써 노동법 날치기가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확산되었다. 1월 21일 YS가 노동법 재논의를 지시했고 국회는 3월 10일 여야합의로 신노동관계법을 통과시켰다. 

YS는 역사적 개혁을 단행했다. 사정개혁,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금융실명제 실시,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해체, 국군보안사 조직축소, 12·12 군사반란과 부정축재의 책임을 물은 전두환·노태우 구속 등. YS의 과단성이 이룩한 치적이다. 하지만 노동법 날치기 이후 한보사태가 터지면서 소통령으로 행세하던 그의 차남 현철의 국정농락-부정축재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정치구호로 내세웠던 세계화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선진국 모임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가입이 외환위기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대비책도 마련하지 않고 자본-금융시장을 활짝 열어 젖혀 1997년 11월 외환위기가 터졌다. 국가경제의 파탄을 의미하는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가 도입되었던 것이다. 연쇄도산, 대량실업, 가정파탄으로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겪었고 지금도 그 그늘에서 신음하고 있다. 

출범부터 촛불저항에 부닥친 MB정권의 안중에는 국민이 없다. 고환율정책, 정실인사, 언론장악, 인권탄압, 불통정치가 그것을 말한다. 중요한 사안마다 경찰의 곤봉을 내세워 국민과 싸우는 형국을 연출한다. 민심이나 여론 따위는 필요 없다는 식으로 밀어붙인다. 미국산 쇠고기 무차별 수입을 허용했다가 촛불저항에 부닥치자 미국과 재협상을 통해 연령만 30개월 미만으로 낮췄다. 한반도 대운하를 밀어붙이다 반대여론이 드세자 보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물러섰을 뿐이다. 대의-의회정치를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집권이후 해마다 예산안을 날치기해왔다. 언론악법을 대리투표, 재투표를 통해 날치기했다. 그것도 모자라 온갖 편법-변칙을 동원해 기어코 종합편성채널을 출범시켰다. 한-미FTA는 단순한 역내교역의 자유화가 아니다. 포괄적 경제통합으로서 한국경제의 미국 종속화를 의미한다. 그런데 사회적 합의도 없이 날치기했다. 

YS-MB의 날치기에는 상이점이 있다. YS가 비교적 높은 지지율을 믿었다면 지지율 20%대의 MB는 관제방송-족벌신문의 여론조작-여론독점을 믿는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날치기를 상습적으로 그렇게 기세 좋게 밀어붙일 수 없다. FTA 날치기가 긴 포물선을 그리며 후폭풍을 몰고 올 것이다. 서울시장 보결선거 당일 투표소 변경과 선관위 디도스 공격은 투표방해를 노린 부정선거다. 이것은 수사방향과는 상관없는 국민적 판단이다. 삽시간에 한나라당이 해체국면으로 돌입한 사태가 두 사건의 중대성-심각성을 말한다. 이제 친인척-측근 비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SLS그룹-제일저축은행의 뇌관이 그들을 겨냥하고 있다. 비리의 복마전인 판도라 상자가 권력의 중압에 눌려 닫혀있지만 권력누수기에는 외압이 내압을 견디지 못해 터지기 마련이다. 내년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존립기반을 확보할지 의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보유통을 통제하려고 SNS(사회관계망) 규제-검열에 열을 올리는 게 MB정권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언론광장 공동대표 시사평론가 <건달정치 개혁실패>의 저자 본지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