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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14일 일요일

나는 알고 있다, 장자연 리스트의 모든 것을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4-12일자 기사 '나는 알고 있다, 장자연 리스트의 모든 것을'을 퍼왔습니다.

탤런트 고 장자연씨에게 성상납 강요 등의 혐의를 받아온 소속사 대표 제이슨 김이 2009년 7월3일 경기도 성남 분당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김씨는 일본으로 도피했다가 인터폴 수배로 현지 경찰에 붙잡혀 118일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성남/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토요판] 표창원의 죄와벌
(9) 고 장자연 소속사 대표 제이슨 김


이종걸 의원 지적처럼
언론사주의 포함 여부 때문에
검찰과 경찰은 장자연 리스트
못 밝히는건가 안 밝히는 건가


연예인 장자연씨 자살 뒤
일본으로 출국 뒤 잠적해버려
“수사에 자존심 건다”던 경찰
인터폴 수배로 김씨 데려오고
41명 수사팀 118명 조사하고도
결국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해



1996년, 연예계는 술렁거렸다. 당대 최고의 인기스타 심은하가 이름도 생소한 ‘스타즈 엔터테인먼트’사와 전속계약을 맺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이듬해에는 이미숙, 최진실 그리고 2001년에는 김남주, 2003년에는 장서희, 2004년에는 아테네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문대성, 2005년에는 정다빈으로 이어졌다. 당시 ‘스타즈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제이슨 김은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교를 졸업한 수재로 할리우드에 넓은 인맥을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연예 매니지먼트 업계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특히, 2001년 홍콩에 ‘서클이엔티’라는 연예기획사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중화권 시장을 공략하는 등 ‘한류 열풍’에도 일조를 하고, 홍콩에서 활동하던 데니스 오를 한국 연예계에 데뷔시켰다. 2002년에는 대기업 씨제이홈쇼핑과 공동출자해 ‘더모델 엔터테인먼트’를 세워, 광고업계에서도 큰손으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더모델’은 월드컵의 영웅 히딩크 감독을 필두로 세계적 스타 장쯔이와 리밍(여명)을 국내 광고모델로 출연시키기도 했다.

2006년부터는 ‘스타즈’ 대신에 ‘더컨텐츠 엔터테인먼트’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그사이 연예계에서는 ‘버클리대학 졸업 학력을 믿을 수 없다’, ‘소속 연예인을 폭행하고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하는 등 성품이 좋지 않다’, ‘조직폭력과 연계되어 있다’, ‘유력 정치인이 뒤를 봐주고 있다’는 등 ‘제이슨 김’의 정체에 대해 이런저런 소문과 의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벼락같은 성공을 질투하는 경쟁자들이 퍼뜨린 루머일까, 아니면 속사정을 아는 내부인이 몰래 전한 ‘사실’일까?



소속사 여배우들의 연이은 자살


2002년 서울지검 강력부(당시 부장검사 김규헌)에서는 ‘연예기획사 대표가 소속 연예인들로 하여금 정계, 재계, 관계 유력인사들에게 성상납을 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에 착수했다. 곧 10여명의 고위층 관계자 리스트가 확보되어 정식 수사에 들어가려는 순간, 대상자인 케이(K)씨가 홍콩으로 출국한 뒤 연락을 끊고 잠적해 버렸다. K씨가 잠적하자 리스트에 오른 고위층들도 하나같이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의 수사는 흐지부지 결말 없이 종결됐고, K씨는 다시 귀국해 버젓이 사업을 재개했다. 그해 9월 국정감사에서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였던 홍준표 의원(현 경남도지사)은 “민주당 의원 세 명이 연예인 성상납을 받았고, 검찰 수사에 압력을 행사했다… 당시 강력부장은 지방으로 좌천됐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홍준표 의원은 후에 그 K씨가 ‘고 장자연 사건’에 연루된 제이슨 김이었다고 언론사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 뒤에도 김씨와 관련된 연예인 성상납 의혹은 거의 2년 주기로 떠올랐다가 가라앉길 반복했다.

소속 연예인에게 성상납, 술시중을 강요한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던 김씨의 기획사에 소속된 적이 있던 여배우들이 연이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지만, 하나같이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서둘러 종결됐다. 2007년 1월, ‘섹시 가수’로 이름 날리다 갑자기 자살한 유니 등이 그들이다.

김씨는 소속 연예인들에 대한 성상납 강요 의혹뿐 아니라 자신을 떠나려는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벌이는 것으로도 악명이 높다. 1997년 탤런트 최정윤씨, 2004년 배우 김민선씨, 2006년 탤런트 정다빈씨 등이 대상이었고, 2013년 현재도 배우 송선미씨 및 이미숙씨를 대상으로 고소를 제기해 법정 분쟁 중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에서 알려진 사실과 정황들만을 바탕으로, 제이슨 김은 “확인되지 않은 미국 명문대 졸업 학력과 할리우드 인맥 등을 내세워 당대의 톱스타들을 끌어들인 뒤, 이들의 이름을 보고 기대감에 부풀어 찾아 온 신인 혹은 연예인 지망생들 중 일부에게 고위층 성상납 강요 등을 하기도 했고, 불만을 품고 자신에게서 떠나려는 연예인들에 대해서는 고소·고발 등으로 괴롭혀 온 ‘악덕 업자’”라는 비난이 제기됐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과정에서 친분이 형성된 사회 유력인사들의 든든한 영향력에 힘입어 자신의 범죄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도 무력화시켜 온 것으로 추정할 여지도 있었다. 이런 배경과 맞물려 그와 관련있는 연예인들이 잇따라 자살한 사건에 세간의 이목이 쏠린 것이다.



언론사 사장을 둘러싼 진실 게임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장자연 사건의 핵심은 “기획사 대표에게 고위층에 대한 술시중과 성접대 강요 및 폭행에 시달리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다는 그녀의 친필 유서에 담긴 내용을 밝혀내고, 그녀가 쓴 편지에 적힌 10여명의 유력인사 등 그를 죽음으로 내몬 ‘악마’들을 처벌할 수 있느냐 여부다.

이른바 ‘장자연 문건’으로 불린 이 기록에는 언론사 대표, 방송사 피디, 기업체 대표 등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전 다른 연예인 사망 사건처럼 ‘우울증에 의한 자살’로 서둘러 사건을 종결하려던 경찰은 장자연씨의 전 매니저 유장호씨가 유서와 편지 내용을 공개해 언론에 보도되는 등 파문이 일자 ‘범죄 사건’으로 인지하고 수사를 시작하게 된다. 장자연씨의 유족 역시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것으로 의심되는 용의자 7명에 대해 ‘성매매 혐의’ 등으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그런데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주범’으로 지목된 소속사 ‘더컨텐츠 엔터테인먼트’ 대표 김씨가 일본으로 출국한 다음 연락을 끊고 잠적해버렸다. 2002년 ‘연예인 성상납 비리 사건’ 때와 똑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경찰은 김씨에 대해 인터폴에 ‘적색수배’ 요청을 했고 일본 경찰에게 ‘범죄인 인도 요청’을 했다. 외교부를 통해 김씨의 ‘여권 무효화’ 조처도 단행됐다. 김씨는 ‘불법체류자’ 신분이 된 것이다. 김씨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일본에 연고가 없는 김씨의 오랜 잠적은 ‘비호세력’의 존재를 의심하게 했다. 주범 김씨가 사라진 상태에서 경찰 수사 역시 벽에 부닥쳐 중단됐다. 또다시 ‘실체 없는 소문’으로 묻혀버릴 뻔했지만, 2009년 6월24일 일본 경찰은 숨어 있던 김씨를 찾아내 검거했다. 그리고 7월3일, 경기도 성남 분당경찰서 형사들은 일본 도쿄 나리타 공항의 항공기 안에서 김씨의 신병을 일본 경찰로부터 인도받았다. 일본으로 도주한 지 118일 만이었다.

당시 최고의 인기 드라마였던 ‘꽃보다 남자’ 출연 여배우의 자살과 성상납 강요 의혹은 세상을 발칵 뒤집었다. 2009년 4월, 국회에서도 대정부질문을 통해 뜨거운 공방이 전개됐다. 2002년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민주당 의원들을 지목해 공격하던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조선일보사 방상훈 사장이 ‘장자연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며 이 때문에 경찰이 늑장수사를 하는 것 아니냐고 질타를 한 것이다. 당시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도 방 사장의 이름을 언급했고, 국회 밖에서는 인터넷언론 서프라이즈 대표 신상철씨가 합세했다. 조선일보는 이 세사람을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한편 강희락 당시 경찰청장은 국회에서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의 질문에 ‘조선 고위간부 이름이 장자연 문건 명단에 있다’고 확인했다. 이후 세간의 관심은 대한민국 최다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조선일보 사장의 관련성 여부에 집중됐는데, 그사이 주범 김씨가 일본으로 출국하면서 수사가 중단되어 ‘실체 없는 공방’으로 4개월 가까운 세월이 흐른 것이었다.

김씨의 귀국으로 다시 활기를 띤 경찰은 ‘그동안 피의자 신문을 위해 모든 자료를 준비했다’며 진실규명에 대해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조현오 당시 경기경찰청장은 “경찰의 자존심을 걸고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공언했다. 경찰은 김씨를 공항에서 압송해 오자마자 휴식 없이 조사를 강행하는 열의를 보였다. 7월6일, 긴급체포 시한에 맞춰 신청한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구속 상태에서 본격적인 조사가 벌어졌다. 그동안 41명으로 꾸려진 경찰 수사팀은 총 27곳을 압수수색했고, 14만여건의 통화 내역을 조사했으며, 118명의 참고인을 조사했고, 955건에 이르는 계좌 및 신용카드 사용 내역을 조회했다.

그 결과 김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폭행, 협박, 횡령 및 도주 등 네 가지였다. 의혹의 본질인 ‘성상납 강요’ 혐의는 적용되지 않았다. 경찰은 김씨가 사무실에서 장자연씨를 ‘페트병 등으로 폭행’한 혐의, 자살 1주일 전인 2월25일 장씨에게 “함께 마약 한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협박 문자를 보낸 일, 2008년 11월26일 다른 여성 연예인을 성폭행한 혐의로 조사받던 중 도주한 혐의 및 장씨의 영화출연료 542만원 중 242만원을 ‘횡령’한 단서를 확보해 이 혐의들만 적용했다고 밝혔다. 언론사 대표를 포함한 사회 유력인사에게 성상납을 강요한 혐의는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조선일보사 쪽은 고 장자연씨가 ‘스포츠조선 사장’을 ‘조선일보 사장’으로 잘못 기재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스포츠조선 사장은 이를 부인했다.

김씨는 검찰에 송치된 뒤 구속적부심을 통해 보석으로 풀려났고 불구속 기소된 다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다시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2013년 3월에는 연예인 지망생을 대상으로 한 성적 착취를 주제로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연예인 김부선이 “고 장자연 전 소속사 대표로부터 식사하자는 연락을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말한 내용을 문제 삼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며 건재를 과시하기도 했다.



민주당 의원 3명은 누구인가


2011년 연말 대구에서 한 중학생이 자살하면서 학교폭력 피해를 호소한 유서를 남기자, 경찰은 유서에 언급된 가해 혐의 중학생 2명을 구속했고 검찰 역시 구속 기소했다. 아직 미성숙한 10대 중학생이지만 친구를 자살에 이르게 한 괴롭힘 행위의 죄질이 무겁다는 판단이었다.

비슷한 다른 사건에서도 유서가 남겨진 자살 사건은 반드시 그 유서에 적힌 내용과 사람들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실시하고 혐의를 규명해 그에 따른 조처를 취한다. 과연 장자연씨의 유서와 편지에 남긴 절규와 고발이, 성인이며 지속적으로 자신의 지배하에 있는 여성 연예인을 착취하고 괴롭혀 끝내 죽음으로 내몬 것으로 의심된 소속사 대표의 혐의가, 이 중학생 가해자들의 잘못보다 가벼울까? 경찰과 검찰 그리고 법원은 오직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고위직 인사들 보호에 급급한 나머지 김씨에 대한 단죄를 엄하게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2013년 2월8일 서울고등법원은 조선일보와 방상훈 사장이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등을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이 고 장자연씨로부터 성상납을 받았다는 보도 내용은 허위사실이지만, 공익성과 상당성 등 위법성 조각 요건을 갖춰 보도한 언론사 등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솔로몬의 판결’을 내렸다. 그렇다면, 법정에서 친필로 확인된 장자연씨 유서에 담긴 성상납 강요 사건의 실체와 가해자들은 무엇이고 누구인가? 못 밝히는가 아니면 안 밝히는가? 이와 관련해 한때 ‘모래시계 검사’로 이름 높았던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2002년 김씨의 연예인 성상납 사건’을 제대로 수사해 처벌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홍 도지사가 언급한 세 명의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은 누구인가? 진정 장자연씨 죽음을 애통해한다면 지금이라도 밝혀야 한다. 한 연예인을 죽음으로 내몬 이 사건의 열쇠로,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지목되고 있는 당시 기획사 대표 김씨는 지금이라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소상히 밝혀야 한다. 경찰과 검찰은 재수사를 통해 김씨로 하여금 진실을 밝히도록 해, 책임있는 자에게 법의 엄정한 단죄가 내려지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법치국가라는 사실을 입증하길 촉구한다.

2013년 4월 7일 일요일

“내 아들 때린 놈이 누구야?” 재벌회장의 무차별 폭력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4-06일자 기사 '“내 아들 때린 놈이 누구야?” 재벌회장의 무차별 폭력'을 퍼왔습이다.

한 악인이 범죄를 저질렀다. 재판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의인으로 묘사된다. ‘강한 남자’와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욕망은 재판 과정에서 관찰됐다. 2007년 5월12일 김승연 한화 회장이 ‘술집 종업원 보복 폭행 사건’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돼 서울중앙지검에서 남대문경찰서로 이송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토요판] 표창원의 죄와벌
한화 김승연, 의인과 악인 사이


그 유명한 2007년 북창동 사건
거물급 전관 변호사들이 돕고
검찰의 솜방망이 구형에도
1년6개월의 실형이 떨어졌지만
동정론·의인론 피어오르며
얼마 안 살고 금방 집행유예


‘법정 탈출’은 오래 못 갔다
2013년 4월 배임·횡령 혐의로
1심 징역4년 선고받고 입원
항소심에선 징역 9년 구형



2007년 3월8일 늦은 오후, 서울 청담동 한 술집 앞에 검은색 차량 6대가 갑자기 줄지어 들이닥쳤다. 곧이어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 십여명이 술집 안으로 난입한 뒤 종업원들을 위협해 한곳에 모았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남자들은 종업원들에게 “오늘 새벽 이곳에서 발생한 폭행사건 가해자들이 누구냐?”고 다그쳤다.

곧 가해자 신원이 밝혀졌다. 서울 북창동에 있는 유흥주점 임원과 종업원들이었다. 남자들은 보스인 듯한 중년 남자의 지시에 따라 몇 군데 연락을 취한 뒤 북창동 유흥주점 종업원 5명을 청담동 술집 ‘현장’으로 불러냈다. 저녁 8시였다. 일행은 다시 이들을 차량에 태운 뒤 청계산 자락에 있는 한 공사장 창고 건물로 끌고 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 라이터 불을 켰다. 불은 건장한 남자들에게 양팔을 붙잡힌 종업원 5명의 얼굴을 차례로 비췄다. 곧이어 어둠 속에서 ‘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번갯불 같은 섬광이 일었다. 전기충격기였다. 라이터 불빛 너머로 양복 입은 남자들 손에 쇠파이프와 몽둥이 등 흉기가 들려 있는 것이 보였다. 종업원들의 공포심은 극에 달했다. 라이터 불빛 속으로 한 중년 남자가 불쑥 나섰다. 모자와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긴 했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이었다. ‘한국화약(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었다.



최문기 전 경찰청장은 왜 전화를 했나


“내 아들 때린 놈이 누구야?”

액션활극 영화에서나 들을 법한, 나지막하고 소름 끼치는 목소리였다. 선뜻 답을 내놓지 못하는 종업원들에게 김 회장은 “내 아들이 눈을 다쳤으니 네놈들도 눈을 좀 맞아야겠다”며 가죽장갑을 낀 손으로 두 팔이 붙들린 종업원들의 눈을 집중 가격했다. 낮은 신음소리가 연신 터져나왔다. 한 종업원이 울기 시작했다.

“전 그냥 종업원인데, 우리 전무님이 가서 사과하고 대충 몇 대 맞고 오라고 해서 온 것뿐이에요. 살려주세요.”

자초지종을 캐물어 대강의 상황과 아들을 폭행한 가해자들이 누구인지 파악한 김 회장 일행은 곧바로 북창동 유흥주점으로 달려갔다.

밤 10시 북창동 유흥주점 앞, 다시 번쩍거리는 검은색 최고급 세단의 행렬이 들이닥쳤다. 김승연 회장과 눈에 붕대를 댄 아들, 그리고 그들을 호위하는 10여명의 건장한 검은색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전자충격기와 쇠파이프 등 흉기를 들고 줄줄이 차에서 내려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머지 ‘검은 정장 청년들’은 술집 주변에 병풍처럼 늘어서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하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술집은 저항 없이 순식간에 장악됐다. 선두에 선 선글라스 차림의 김승연 회장이 소리질렀다.

“다 나와, 이 자식들. 북창동을 다 없애버릴 거야. 내가 누군지 알아? 다 여기서 무릎을 꿇을래, 아니면 가게 문 닫을래?”

멈칫하던 종업원들이 복도에 줄줄이 무릎을 꿇었다. 곧 김 회장 아들 폭행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된 ‘조 전무’가 김 회장 앞으로 불려왔다. 김 회장은 조 전무를 룸 안으로 데려갔다. 곧이어 고성과 함께 뺨을 때리는 듯한 소리가 세 차례 들려왔다.

김 회장은 곧이어 새벽에 폭행을 당했던 아들을 불러 “네가 맞은 만큼 때려라”고 일렀다. 곧 룸 밖에서도 분명히 들을 수 있는 ‘퍽, 퍽, 퍽’ 하는 폭행 소리가 새어나왔다.

2시간여 공포의 폭행이 계속되던 밤 12시, 경찰관 몇 명이 술집 안으로 들어와 “112로 폭행신고가 들어왔는데, 신고한 사람이 누구예요?”라고 물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곧이어 업소 사장이라는 남자가 나서 “우리 종업원끼리 잠깐 다퉜는데, 누가 오해하고 신고를 한 것 같다”고 둘러댔다. 경찰관들은 ‘조심하라’는 경고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곧이어 김 회장은 종업원들에게 ‘술을 가져오라’고 시킨 뒤, 스스로 ‘폭탄주’를 만들어 조 전무와 폭행당한 종업원들, 그리고 자신의 아들과 함께 건배를 했다. 그러곤 ‘서로 때리고 맞았으니 이제 남자답게 화해하고 없던 일로 하자’고 제안한 뒤 ‘술값’이라며 100만원을 건네고 자리를 떴다.

업무상 배임·횡령 혐의로 징역 9년과 벌금 1500억원이 구형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4월1일 오후 항소심 결심 공판을 마친 뒤 구급차를 타고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을 나서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다음날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김승연 회장이 조폭을 동원해 보복폭행을 저질렀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를 시작했다. 남대문경찰서 역시 현장조사와 주변 목격자 대상 탐문수사를 실시하고 있었다.

3월12일, 한화그룹의 고문으로 재직중인 최기문 전 경찰청장이 남대문경찰서장 장희곤 총경에게 전화를 해 “한화그룹 폭행사건을 수사중이냐”고 물었다. 그 뒤 현장에 나가있던 남대문경찰서 수사 인력은 모두 철수됐다. 그즈음 홍영기 당시 서울경찰청장도 최기문 전 청장의 전화를 받았고, 이택순 당시 경찰청장은 한화증권 유기완 고문과 함께 골프를 쳤다. 한화리조트 감사 김아무개씨는 ‘폭행 피해자 관리 및 경찰 로비자금’으로 김승연 회장으로부터 5억8000만원을 받아서 그중 2억7000만원을 거대 폭력조직 ‘맘보파’ 두목 오아무개씨에게 건넸다. 폭력조직을 동원해 ‘입막음’을 시도한 정황이 확인된 것이다.

그렇게 깊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 같던 사건은 4월24일, 언론에 ‘의혹’이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다시 떠올랐다. ‘사건 무마 의혹’을 벗으려는 경찰은 4월26일 김 회장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요청했지만 검찰은 혐의사실 소명이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5월10일, 검찰은 경찰이 신청한 김승연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했고 다음날 법원은 영장을 발부했다. 그사이 ‘조폭 동원’의 연결고리였던 맘보파 두목 오씨는 캐나다로 출국, 도피했다. 6월5일, 검찰은 김승연 회장과 한화그룹 경호과장 진아무개씨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및 ‘형법상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 기소했다.



김문수 지사까지 “너무 그러지 말자”


피고인 김승연 회장은 거물급 ‘전관 변호사’들로 변호인단을 구성했다. 재판을 맡은 판사의 사법연수원 시절 교수, 직속상관인 부장판사였던 변호사, 법원장 출신 변호사 및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 등 법조계 드림팀이었다. 어떻게 보면 복잡한 미스터리였던 미국의 ‘오 제이 심슨’ 사건을 연상케 했지만, 이 사건은 전혀 사실관계나 법률관계를 복잡하게 다툴 여지가 없는 ‘단순한 보복 폭행’ 및 ‘수사 무마를 위한 청탁과 압력’ 사건이었다.

물론, 쟁점은 있었다. 조폭을 동원한 혐의가 추가된다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5조(범죄단체 등 이용·지원)’가 적용돼 징역 3년 이상의 형이 추가되고, 다른 폭행 혐의에도 ‘가중처벌’ 요인이 발생한다. 이 부분은 ‘역량있는 변호사의 변론 능력’이 아닌, 판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관 변호인의 위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김 회장은 이 부분에 분명한 확신을 가졌던 듯하다. 이미 피해자들과는 ‘합의’를 마친 상태였다. 일부 언론은 주요 대기업 회장에게 실형이 선고되면 기업활동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되고 국가경제에 악영향이 초래될 것이라는 논조의 사설과 기사를 실었다. 이에 힘입은 김 회장은 ‘집행유예가 내려질 것’이라는 ‘스스로 재판’을 마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았다면 공개법정에서 여유만만한 태도로 “권투하듯이, 아구를 몇 번 돌렸지”, “귀싸대기를 올려붙였지”, “내가 때리다 때리다 지쳐서 애들 시켜서 대신 때리게 했거든”, “검사 양반은 술집 한 번 안 가봤어요?” 등의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발언을 내뱉었을 리가 없다. 재판 도중 방청석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기도 했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3조에는, 야간에, 흉기 등을 사용하여, 집단적으로 폭행을 한 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아무리 초범 등 작량감경(정상 참작 사유가 있을 때 법관의 재량으로 형을 낮추는 것)을 통해 감형을 한다 해도 그 절반인 ‘2년6개월 형’이 최하 형량이다.

그런데 검찰은 제3조가 아닌 상대적으로 가벼운 제2조(두 명 이상의 공동 폭행) 혐의를 적용했다. 그리고 징역 2년형을 ‘구형’했다. 피고인의 감형 주장에 판사가 귀 기울일 것을 고려해 가능한 한 높은 형량을 구형하는 검찰의 관행에서 벗어난 ‘솜방망이 구형’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낮은 구형량은 사실상 검찰이 ‘집행유예로 풀어주세요’라고 요청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월2일 1심법원은 세간의 이목을 의식해 김승연 회장에게 집행유예 없이 ‘1년6개월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했다. 집행유예를 예상하고 갈아입을 평상복을 준비한 채 법정에서 대기하던 한화그룹 직원들의 표정이 머쓱해진 순간이었다.

김승연 회장에 대한 1심 판결이 끝난 7월7일, 캐나다로 도주했던 폭력조직 맘보파 두목 오씨가 자진귀국해 검찰에 구속됐다. 그의 진술에 따라 김승연 회장에 대한 추가 혐의(범죄단체 등 이용·지원)가 확인되면 김 회장은 형량이 추가될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오씨는 폭행사건 발생 이후 ‘개인적으로, 지인의 부탁에 따라’ 피해자들과의 합의 유도 등 ‘사건 무마’를 도와준 사실만 인정했다. 김승연 회장의 ‘조폭 동원’ 혐의는 기소되지 않았다. 법원의 실형 선고 직후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기업에 대해 일벌백계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 사람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고 더구나 큰 기업인데 약점은 분명히 있다 … 너무 그러지 말자”며 김승연 회장에 대한 실형 선고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동료 경제인들과 일부 언론에서도 유사한 논조를 펴며 ‘동정론’을 불러일으켰다. 김승연 회장이 그동안 행했던 숨은 선행들도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1981년 창업주인 부친의 사망으로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회장 자리에 오른 김승연씨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그룹을 수십배 이상 성장시켰다. 외환위기 이후 경영난에 빠졌던 ‘예술의 전당’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살아나게 해 주었다. 아마 야구와 복싱 등 스포츠 분야 발전에도 큰 공헌을 했다. 특히 미국 해군정보부서 소속으로 북한 군에 관한 첩보를 대한민국에 제공해 ‘국가기밀 유출’ 혐의로 미국 연방교도소에 수감되었던 로버트 김에게 남몰래 거액을 지속적으로 후원해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인’이라는 평가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7월12일, 김승연 회장은 건강 악화를 이유로 형집행정지 결정을 받고 아주대학교 병원에 입원했다. 결국 9월11일, 항소심에서 김승연 회장은 ‘징역 1년6개월 형, 하지만 그 집행을 3년 유예한다’는 집행유예 선고를 받으면서 ‘20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추가로 받고 풀려나게 된다. 실형선고를 받고 교도소에 수감된 지 딱 두 달째 되던 날이었다. 병원 입원 기간을 제외하면 사실 실제 교도소 수감 기간은 며칠 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떠돌며 ‘사법 불신’, ‘사회 불신’을 낳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이다. 검찰은 상고를 포기했다. 김 회장은 재수감될 걱정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홀가분하게 화려한 부자들의 향연장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6년 만에 더 큰 피해 본 회사·주주·투자자


김승연 회장의 ‘법정 탈출’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3년 4월1일, 검찰은 차명으로 소유한 개인 회사의 빚을 그룹 계열사 돈으로 메워 계열사에 3000억원대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뒤 아프다며 병원에 입원한 채 항소심 재판을 받아 온 김승연 회장에게 징역 9년과 벌금 1500억원을 구형했다. 어린 시절 공격적 기업가인 부친으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고 군사독재 시절 공군장교 생활을 한 김승연 회장은 ‘무력과 폭력이 상징하는 남자다움’을 동경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젊은 나이에 대그룹 경영권을 승계받으며 주변의 도전과 공격, 비판에 시달리면서 더욱 공격욕구와 ‘남자다움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커져갔다. 복싱과 사격 등 관련 스포츠단체 회장직 등을 역임하고, 주변에 조폭과 연계된 사람들이 모이면서 스스로 ‘강한 남자’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한편에선 문화와 예술, 스포츠, 애국자 등을 통 크게 지원하며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는 보상심리도 컸다.

인간적으로는 충분히 동정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범죄자치고 그 정도 ‘안타까운 사연’ 없는 이는 드물다. 더욱이 자신의 재산과 사회적 영향력을 과신한 김 회장에게 사법당국의 선처는 ‘역시 난 아무도 못 건드려’라는 잘못된 자신감으로 연결됐고, 결국 더 큰 범죄 혐의로 법정에 서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큰 피해를 보게 된 회사와 주주, 투자자 그리고 우리 사회는 경찰, 검찰, 법원의 부패와 전관예우라는 망국적 폐습에 눈 뜨고 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2012년 9월 16일 일요일

각하를 향해서는 무조건 받들어~ 총?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9-17일자 제928호 기사 '각하를 향해서는 무조건 받들어~ 총?'을 퍼왔습니다.
[초점] 트위터에서 대통령 비판한 이 대위, 상관모욕죄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 선고 변호인 “대통령은 군형법상 상관에 해당하지 않고, 기무사가 월권 행위로 기소 증거 찾아” 항소

대통령을 비판한 군인은 형법 처벌 대상일까? 그렇다면 군인에게 허용된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일까?
최근 이러한 질문과 관련해 논란을 지핀 판결이 나왔다. 지난 8월31일 육군 7군단 보통군사법원이 인터넷상에서 상관인 대통령을 모욕했다며 군검찰이 기소한 이아무개(27·육사 64기) 대위에게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앞서 이 대위는 지난해 12월20일 “가카 이×× 기어코 인천공항 팔아먹을라고 발악을 하는구나” 등 모두 10차례 넘게 인천공항 매각 추진, BBK 의혹, KTX 민영화 추진, 서울 내곡동 땅 문제 등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한 내용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혐의로 군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모범을 보여야 할 군 장교로서 수차례에 걸쳐 상관을 모욕하는 글을 게재해 지휘권을 혼란스럽게 했고 반성의 기미가 없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 이 대위의 군사고등법원 항소심에서는 유권자이기도 한 군인이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는지와 기무사의 수사 범위가 쟁점으로 떠오를 듯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9월28일 서울 경복궁 홍례문 앞에서 열린 ‘6·25 전쟁 60년 서울 수복 기념 국군의 날 행사’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김명진

“유권자 이 대위가 비판한 건 행정부 수반”

현역 군인이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비판한 이 사건은, 언뜻 보면 나라의 부름을 따르는 한 장교의 부적절한 행위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선고가 내려진 날, 이 대위 쪽 변호인은 고등군사법원에 곧바로 항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어떻게 이 대위를 수사했는지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고, 대통령에 대한 상관모욕죄를 들어 군인을 형법으로 처벌하는 것이 과도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 대위 쪽 변론을 맡은 이재정 변호사(법무법인 동화)는 재판 과정에서 “대통령은 군형법의 취지와 연혁에 미뤄볼 때 상관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해왔다. 따라서 군형법의 상관모욕죄를 들어 이 대위를 처벌하는 게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군기 문란이나 각종 반란 등을 처벌하려고 만든 군형법에서는 상관의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있다. “명령복종 관계에서 명령권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명령복종 관계가 없는 경우의 상위 계급자와 상위 서열자는 상관에 준한다.”(제2조 1항) 이 변호사는 “대통령은 군형법에 나온 ‘준상관’(명령복종 관계가 없는 경우의 상위 계급자와 상위 서열자)이 아니기 때문에 ‘순정상관’(명령복종 관계에서 명령권을 가진 사람)인지 여부를 따져야 하는데, 군인이 아닌 대통령을 현역 군인 사이에 적용하는 군형법의 상관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또 “설령 군형법에서도 대통령을 상관으로 본다고 해도,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유권자인 이 대위가 트위터에서 언급한 대통령은 군 최고통수권자가 아니라 행정부 수반이니 정당한 비판의 대상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헌법과 국군조직법에서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자임을 규정하고 있고, 상관모욕죄는 군인 상호 간의 관계가 아닌 군인과 군인 이외의 공무원과의 관계도 포함해야 한다”며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대위를 기소한 군검찰 쪽에서도 대통령령인 ‘군인복무규율’을 근거로 대통령도 상관에 포함된다고 했다. 군인복무규율 제2조 4항에는 상관을 “명령복종 관계에 있는 사람 사이에서 명령권을 가진 사람으로서 국군통수권자부터 바로 위 상급자”라고 명시하고 있다. 원래 이 조항엔 국군통수권자라는 표현이 없었다. 2009년 9월29일 개정 때 이 조항에 국군통수권자가 포함됐다. 2008년 촛불집회 때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거세자, 국방부가 ‘이명박 대통령 등 상관을 비방하지 말라’는 공문을 각 군에 내려보낸 뒤다.

기무사 민간인 사찰 과정에서 찾았나?

군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 대위를 수사했는지를 이번 재판 과정에서 자세히 밝히지 않은 것은 또 다른 쟁점이다. 군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이 대위가 익명으로 활동한 트위터의 내용을 갈무리한 자료를 기무사령부에서 넘겨받아 조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명이 아닌 익명으로 사용하던 트위터의 실제 사용자가 이 대위라는 사실을 기무사가 어떻게 확인했는지는 자세히 드러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변호인 쪽에서는 기무사가 권한을 넘어서는 행위로 이 대위를 기소한 증거를 찾아냈으며, 이는 합법적인 절차로 확보된 증거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기무사가 이 대위의 기소 증거를 확보한 것과 관련해, 기무사가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까지 광범위하게 사찰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형법에서는 기무사의 활동 범위를 내란·외환의 죄, 군형법상의 반란·이적의 죄, 국가보안법, 군사기밀보호법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앞서 재판 과정에서 기무사는 인터넷상에 군과 관련한 검색어를 넣는 식으로 방첩 활동을 하던 중 이 대위의 트위터를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평소 이 대위가 익명으로 트위터를 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기무사가 군인과 일반인의 트위터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대통령 비방글을 수집해온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에서는 2009년 8월 기무사의 한 대위가 민주노총 주최 쌍용자동차 파업집회 현장을 캠코더로 촬영하다가 시위대에 붙잡힌 사건이 있었다. 이와 관련해 당시 민주노동당 당직자 등 15명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은 국가가 1억26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현재 항소심을 준비하고 있는 이 변호사는 “앞으로 수사 과정의 적법성과 이 대위를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법리를 다투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일반 형사죄에서는 인터넷 공간에서의 공인인 정치인에 대한 모욕죄가 성립하지 않고, 표현 자체가 모욕에 해당하기 어렵다는 판례가 대다수”라며 “일반적인 정치 현안에 대해 선출된 대통령에게 ‘가카, 이새끼’ 등의 표현을 하는 것이 모욕에 해당하는지가 항소심에서 다퉈야 할 쟁점”이라고 덧붙였다.

‘국가원수모독죄’ 부활 비판

이번 판결을 두고 시민단체에서는 1988년에 없어진 ‘국가원수모독죄’가 사실상 부활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군인권센터는 8월31일 “군인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하고 있는 평시 군사법원의 폐지 청원 운동(ka.do/oJ)을 전개하겠다”고 반발했다. 군인권센터는 이날 성명을 내고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과 판사와 법률가의 독립(사법권 독립)에 대한 특별보고관에게 이번 사건에 대한 개인 청원을 제출해 국제적 공론화를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위와 관련한 이번 판결에 따르면, 군인은 대통령을 뽑을 권리는 있지만 비판할 권리는 없는 셈이다. 이 대위에게 군사고등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지켜볼 일이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2012년 9월 3일 월요일

‘어린이 성범죄’ 민심 들끓는데…작년 실형 줄고 집행유예 늘어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9-03일자 기사 '‘어린이 성범죄’ 민심 들끓는데…작년 실형 줄고 집행유예 늘어'를 퍼왔습니다.


강간 등 중범죄 실형은 늘어
양형기준 준수율 79%로 ‘뚝’
성폭력범 검거 2만명 첫 돌파

나주 초등학생 납치·성폭행 사건 등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지만, 이런 범죄의 집행유예 선고율은 되레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성범죄자에 대한 불구속 수사 비율 역시 높아졌다.지난달 31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2012년 전국 형사법관 포럼’ 발표 자료를 보면, 13살 미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비율은 2010년 41.3%에서 지난해 48.1%로 증가했다. 어린이 대상 성범죄자의 절반 가까이가 집행유예로 풀려난 것이다. 전체 성범죄자의 집행유예 비율도 2010년 38.8%에서 2011년 40.4%로 소폭 상승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성범죄의 집행유예가 늘어나는 건 성범죄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일부 강제추행 등 과거 성범죄로 여기지 않던 부분이 성범죄로 받아들여지면서 전체적으로 집행유예가 늘었지만, 중범죄는 실형이 늘었다”고 설명했다.실제 어린이 대상 성범죄 가운데 성폭행(강간)과 같은 중범죄는 집행유예 비율이 줄었다. 비교적 경미한 성범죄인 강제추행은 집행유예 비율이 2010년 51.1%에서 2011년 60.9%로 늘었지만, 성폭행은 집행유예 비율이 2010년 4.7%에서 3%로 줄었다. 성폭력으로 상해가 발생한 범죄 역시 2010년 20%가 집행유예였지만, 2011년에는 그 절반인 10.5%만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중범죄의 경우 비록 집행유예 비율이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중대한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상당수가 여전히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있는 것이다. 이경환 변호사(한국성폭력상담소 정책자문위원)는 “대법원 양형기준의 집행유예 기준이 모호하고 재판부의 역량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은데, 형량 강화보다 중요한 것은 전체 성폭력 범죄사건에서 실형선고율을 높여 처벌의 확실성을 높여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형량 면에서도 법원의 성범죄 처벌이 강력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은 최근 잇따른 성범죄로 양형기준(범죄 유형별로 지켜야 할 형량 범위를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정해둔 것)을 높였지만, 오히려 양형기준 준수율은 떨어졌다. 2009년 7월부터 지난해까지 전체 범죄 양형기준 준수율은 90% 수준이었지만, 성범죄는 2009년 하반기 88.6%, 2010년 86.6%, 2011년 79.1%로 큰 폭으로 하락했다. 양형기준을 지키지 않은 경우는 대부분 양형기준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한 것으로, 사회적 요구에 따라 강화된 양형기준이 정작 실제 재판에서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또 지난해 성폭력범 검거 인원이 처음으로 2만명을 넘었지만, 이 가운데 불구속이 8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2012년도 대한민국 재정’ 보고서에 나타난 여성가족부 자료를 보면, 성폭력범 검거 인원은 2010년 1만9712명에서 2011년 2만159명으로 2.27%가 늘어난 반면, 구속 건수는 2010년 2973명에서 2011년 2612명으로 12.14% 줄었다. 검거 인원의 87.04%에 이르는 1만7547명은 불구속 수사를 받았다.

부산/박태우 기자, 이유진 기자 ehot@hani.co.kr

2012년 5월 2일 수요일

곽노현 “사전합의 없었는데 사후매수 성립하나”


이글은 시사인 2012-05-02일자 기사 '곽노현 “사전합의 없었는데 사후매수 성립하나”'를 퍼왔습니다.
교육감 선거 때 상대 후보를 매수한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1년 실형을 선고받은 곽노현 교육감과 돈을 건넨 강경선 교수를 만났다. 곽 교육감은 “선행으로 한 일이 결국 법률적 유죄가 되어버렸다”라고 항변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4월17일 항소심에서 징역 1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2010년 교육감 선거 때 상대 후보를 매수한 혐의로 곽 교육감은 1심에서 30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서울고법 형사합의 2부(재판장 김동오)는 이날 “곽 교육감에게 실무진 간 금전 지급 합의의 직접적 책임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교육감 선거의 후보자 사후 매수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중대 범죄다. 범행 수단과 방법, 범행 후 정황 등을 고려하면 벌금 3000만원을 선고한 1심은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라고 밝혔다.

곽노현 교육감 측은 경제적·사회적으로 위기에 처한 박명기교수를 살리기 위해 선의에서 돈을 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박명기 교수는 카드 돌려막기를 할 정도로 어려운 형편이었고, 사채업자들의 압박에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했다는 것이다. 곽 교육감의 돈을 박명기 교수에게 건넨 혐의로 곽 교육감과 함께 법정에 섰던 강경선 방송통신대 교수는 “곽 교육감은 선거와 당선 이후까지 한 번도 매수를 시도한 적이 없다. 돈을 주자고 주장한 사람도 곽노현이 아니라 나다”라고 말했다. 

곽 교육감은 집행유예 없는 징역형을 받았다. 대법원은 1·2심처럼 사실관계나 형량을 따지지 않고 하급심이 적용한 법률이 맞는지 유·무죄 여부만 판단하는 법률심이다. 곽 교육감은 대법원에서 구속될 확률이 매우 높다. 법원이 재판을 서두르고 있는 만큼 대법원 판결은 7월께 나올 가능성이 크다. 2심 선고를 받은 4월17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집무실에서 곽노현 교육감과 강경선 교수를 만났다. 


ⓒ시사IN 백승기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오른쪽)과 박명기 교수에게 돈을 건넨 강경선 방송통신대 교수(왼쪽). 둘은 검찰의 기소 내용이 대부분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2심에서 집행유예 없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대단히 이례적인 경우다. 

곽노현:재판부가 벌금형에서 징역 1년으로 형량을 높였다. 놀라운 일이다. 설명도 납득도 안 된다. 사실관계가 달라지거나 범죄 혐의가 추가된 게 없다. 이것은 굉장한 모순이다. 선행으로 한 일이, 결국 법률적 유죄가 되어버렸다.2심 선고가 있기 전부터 형량이 높아질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곽노현:재판 중간에 정기인사로 인해 재판부가 바뀌었다. 법리를 다툴 만한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강경선:1심 재판부는 “곽노현은 2010년 5월19일 오전에 유 아무개로부터 후보 사퇴 대가를 3억5000만원으로 하자는 취지의 연락을 받고 거절했다. 그런데 그날 오후에 5억원을 지급하자는 합의를 승낙했을 리가 없다”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곽노현은 후보 단일화 당시 박명기가 조건 없이 명분을 위해 사퇴하였다고 알았던 것으로 인정된다”라고 판결문에 적고 있다. 곽 교육감이 단일화 과정에서 합의 사실을 몰랐다는 것과 매수 행위 자체가 없었다는 것은 2심 재판부도 인정했다. 그런데 사후에 도와준 돈을 단일화와 연관 있을 거라고 해서 사후 매수죄라고 판단한 것이다.

단일화를 위해 사전에 금전적 합의를 하지 않았다고 법원이 인정했다면 후보자 매수가 아니라는 것 또한 인정했다는 뜻 아닌가?

강경선:검찰의 기소 조항인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에는 ‘금전 제공 등에 대한 사전 약속을 범죄 구성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재판부는 이 해석을 ‘사전 약속 없이도 처벌할 수 있다’고 적용한 것이다. 이는 상식에 반하는 판결이다. 이른바 사후 매수는 언어적으로 난센스다. 예컨대, 내 소유에 이미 속하는 물건을 내가 다시 매입할 수 없듯이, 이미 사퇴해버린 자는 후보자 지위를 거래의 대상으로 삼을 수도 없으며, 팔려고 해도 누가 사지 않는다. 사퇴하기 전의 후보자 지위만이 정치적·경제적 거래 대상이 될 수 있다.


ⓒ시사IN 조남진 곽노현 교육감이 4월18일 항소심 선고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곽노현:사전 매수를 하기 위해서는 선거일 이전에 뭔가 약속을 해야 한다. 직접 하든, 제3자를 통해서 하든. 그것에 따라 대가를 지급하거나 나중에 지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매수가 성립된다. 재판부는 ‘사전에 합의한 사람이 없다’고 판결문에 적었다. 항소심 판결에는 매우 재미있게도, 두 번이나 이런 표현이 나온다. “돈을 준 것이 5·19 동서 합의(동서 사이인 박명기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과 곽노현 후보의 회계 담당자가 가진 사적 합의)하고는 무관하다.”선거 전에 합의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인가? 주변에서도 없었나? 

곽노현:이번 항소심 판결의 요지는 이렇다. 첫째로 곽노현이 5·19 합의를 직접 혹은 제3자를 통해 하지 않았다. 두 번째, 나중에 돈을 제공한 것은 5·19 합의 이행과는 무관하게 이뤄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대가성은 인정된다는 것이다. 곧 ‘매수는 아닌데 대가성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매수가 아닌데, 어떻게 사퇴 대가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검찰이 1·2심에서 기소한 팩트가 바닷가 모래성처럼 다 무너졌다. 검찰이 기소한 것 중 남아 있는 것은 ‘대가성’이라고 주장한 것 외에 없다.강경선:법의 자의적 해석이 과도하다. ‘대가성을 인식했다’라는 부분을 증명하기 위해 ‘대가성을 띨 수밖에 없었다는 사정은 인식한다’고 했다. 곧 곽노현에 대한 판결은 후보 매수가 아니라 ‘대가성의 인식’에 대한 것이라는 식이다. 그런데 죄명은 ‘사후 매수죄’다. 사후 매수죄가 되려면 누가 봐도 수긍할 만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선거가 다 끝나고 나서 아무 약속 없이 돈을 주었으니 매수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후 매수죄가 되어버렸다.

‘사후 매수죄’는 상당히 생소한 개념이다. 해외 사례는 어떤가? 

강경선:이 조문은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다. 미국·유럽 등지에서도 유권자 매수는 있지만 후보자 매수죄는 없다. 후보 단일화 과정은 후보자들 간에 자연스러운 경합 과정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후보 단일화 과정으로 인해 사후 매수죄로 처벌된 예는 이번이 처음이다.곽노현:1심과 같이 2심에서도 ‘(후보자 매수에 대한) 사전 약속을 했다’ ‘직접 또는 제3자를 시켜서 했다’는 기소 내용은 무너졌다. 그래도 ‘대가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유죄’라고 판결한 것은 문제가 있다. 아무나 돈 주면 처벌하겠다는 것 아닌가.

나중에라도 당선자가 낙선자를 도우면 대가성이 있다고 논란이 될 수 있는 것 아닌가.곽노현:선거 연관성을 100% 대가성으로 등치시켰다. 법의 분별력을 믿는 우리에게는 납득이 안 간다. 사기죄가 되려면 사기 행위가 있어야 하고, 절도죄가 성립하려면 절도 행위가 있어야 한다. 사후 매수가 있으려면 사전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법적으로 없다고 인정하고는, 사후 매수는 성립한다고 했다. 판결문 1심 200쪽, 2심 50쪽을 다 읽어봐도 모르겠다. 곽노현과 강경선이 한 행위 중에 파렴치한 행위가 있으면 지적해보라. 파렴치한 범죄행위, 부끄러운 행위가 단 하나라도 있는가. 벌줘야 하는 행위가 있는가. 시민들에게 묻고 싶다.강경선:박명기 후보가 사퇴하기까지 곽노현에 의한 후보 매수 행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박명기 후보가 그동안 지출한 선거운동 비용 7억의 손실을 고스란히 안고 가지 않도록 하자’는 약속이 있었을 뿐이다. 그것도 곽노현은 모르게 진행하자는 의견이었다. 더욱이 합의 형태를 보면, 박명기 교수가 곽노현 교육감을 먼저 찾아간다. 일반적으로 매수를 하기 위해서는 후보 지위를 유지하는 자가 ‘돈을 줄 테니 사퇴하라’고 하는 것 아닌가. 

결국 돈을 준 것이 문제다.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돈을 주면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강경선:가장 중요한 사실은 곽노현이 돈을 주자고 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양쪽의 꼬인 문제를 풀다보니 박명기가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도와주어야겠다 싶어서 곽노현에게 돈 얘기를 꺼냈다. 그러니까 박명기 교수에게 돈을 줘야겠다고 한 것은 나다. 검찰의 논리는 모든 사건에 내가 공모하듯이 끼어들었다는 것인데, 이런 식으로 꿰어 맞추면 곽노현 교육감은 유죄가 될 수밖에 없다. 후보 매수죄라면 곽 교육감보다는 내가 형량이 더 높아야 한다. 사후 매수는 돈 주자는 사람이 높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강경선이 박명기를 알게 된 시점은 박명기가 후보도 아닌 시점이기 때문에 사후 매수죄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곽노현은 교육감인 만큼 사회적 명성에 부합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비(非)법적인 논리까지 작동하고 있다.

곽 교육감은 출범 때부터 보수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아왔다는 평을 듣는다.

곽노현:언론이 ‘곽노현 죽이기’에 나섰다. 언론이 그렇게 지적하던 진보 진영의 공동자금이 과연 어떤 돈인가? 결국 실체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지 않았는가. 는 2011년 9월2일자에 “강경선 ‘2억 단일화 대가 맞다’”라는 제목을 뽑았다. 강경선 교수는 이런 진술을 한 적이 없다. 박명기 교수는 검찰에서 사퇴 대가로 받았다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기사 본문과 제목이 서로 다른 왜곡 보도였다.

범법 행위를 저지르고도 그다지 주목받지 않았던 공정택 전 교육감과 달리 이들 언론의 집중 견제를 받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곽노현:과연 잘못한 일을 했는지 돌이켜보곤 한다. 모든 비판에는 일리가 있다. 그래서 작은 합리적인 이유라도 발견되면 과감히 수용하고 나은 모습을 보이려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확신한다. (교육감이 된 뒤) 해온 일은 교육의 본질을, 민주사회에서 공교육이 지향해야 할 본질을 되찾는 일이었다. 체벌 금지든 학생인권조례든 민주 사회로의 대전환을 의미할 뿐 아니라 공교육의 새 표준이라고 생각한다. 

7월이면 대법원 판결이 날 것 같다. 구속될 확률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 

곽노현:우선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최고 사법기구답게 사후 매수죄의 문제점을 제대로 드러낼 것으로 기대한다. 대법원을 믿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당당하고 꿋꿋하게 교육개혁의 소임을 다해나갈 것이다. 그것이 서울의 135만 유권자, 정책에 성원을 보내준 수백만 시민, 무엇보다 학생들과 교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길이다. 흔들려서는 안 된다. 

재판 여파로 곽 교육감이 교육행정을 제대로 챙길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 하는 학부모들도 있다.

곽노현:흔히 곽노현 하면 무상급식, 체벌금지, 학생인권조례 이런 것들이 떠오르실 거다. 하지만 또 하나 주목해주셨으면 하는 점이, 그동안 꾸준히 늘려온 혁신학교가 59개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여태까지 많은 연구학교, 시범학교가 있었지만, 이 학교들은 특정한 한 측면의 사업을 통해 부분적인 개선을 하는 것이었다. 사업 기간이 끝나면 지속되기 어려웠다. 또 승진 가산점이 얽혀 있어 이런 시도가 승진을 위한 통로로 활용되는 면도 있었다. 하지만 혁신학교는 학교 내 구성원들 간의 관계를 민주적으로 재구성하는 데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이것이 수업 혁신, 생활지도 혁신, 돌봄 혁신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며 지속성을 가지게 된다. 웃지 못할 일이, 보수 언론의 경우 교육면에서는 혁신학교를 다뤄주지 않는데 부동산면에 기사가 나온다. 혁신학교 주변 집값, 전셋값이 오른다고(웃음). 이러한 혁신의 물꼬가 큰 물줄기를 이룰 수 있도록, 교육감으로서 내게 부여된 의무와 책임을 끝까지 완수하려 한다.

주진우 기자 | ace@sisain.co.kr